| 삿8장 [459.누가주를따라섬기려는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때]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늘문이열리면..[312 너하나님께이끌리어]
===기드온이 죽인 미디안 왕들 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2.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3.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4.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자 삼백 명이 요단 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5.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7명의 방백+70명 장로들이 관할) 이르되 나를 따르는 백성이 피곤하니 청하건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의 뒤를 추격하고 있노라 하니 6. 숙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는지라 7. 기드온이 이르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8. 거기서 브누엘로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그같이 구한즉 브누엘(=브니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은지라 9. 기드온이 또 브누엘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하니라 10. ○이 때에 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있는데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칼 든 자 십이만 명이 죽었고 그 남은 만 오천 명 가량은 그들을 따라와서 거기에 있더라 11. 적군이 안심하고 있는 중에 기드온이 노바와 욕브하 동쪽 장막에 거주하는 자의 길로 (우회하여)올라가서 (기습작전으로)그 적진을 치니 12. 세바와 살문나가 도망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온 진영을 격파하니라 .....개인적 복수((세바와 살문나가 자기 형제들을 죽였기에)) 위한 "초토화" 전쟁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13.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14.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그를 심문하매 그가 숙곳의 방백들과 장로들 칠십칠 명을 그에게 적어 준지라(블랙리스트 작성) 15.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너희가 전에 나를 희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들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16. 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17. 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심정적으로는 어느정도 이해가 되지만, 통탄할 일이다!!..((미디안과의 전쟁인데..동족까지 죽이고 있다))...모든 권력은 절대적으로 변질되고 타락한다...절대권력은 즉시 타락한다...영적으로도 그러한데, 민족 문제 해결한 후에는 오호라..그 기드온이 .오히려 개인의 원한을 갚고 있었으니...오히려 동족을 죽이고 학대하고 있다 18. ○이에(승리의 개선 직후) 그가 (다볼의 학살 사건에 대해) 세바와 살문나에게 (추궁하여)말하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더냐 하니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 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하니라 19. 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Q이 허락하신 [거룩한 싸움인 성전의]범위를 넘어서서!! 미디안의 본거지까지 쳐들어가서 그들을 붙잡아서, 개인적인 원한을 갚는 보복전으로 변질되고 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20. 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이 그의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21. 세바와 살문나가 이르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하니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22.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두려움의 반응) 23.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거짓말이다!!...전쟁에서는 승리하였으되 일상의 경건에서는 오히려 패배자였다.....오로지 날마다 새로이, 말씀 안에서 [자기를 바라봄이 아니라] 오직 성령따라 행하라..오직 날마다 나를 죽음에 넘기며 복음만 전하라..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려면 결코 목회에 뛰어들지 말라...주님의 선하심으로 악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자로 부르셨다.. .....좋은 설교를 말하거나 좋은 설교를 듣는 자가 "의로운 자가" 아니라 실지로 주 앞에서 말씀 그대로 살아내는 자라야 의로운 자이기에 그렇게 말씀따라 살기를 추구하라!! 24. [기드온의 우행 기록...조심하라!!..모든 일 행한 후에도 끝까지 주안에 굳게 서라!!]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마땅히 멸해야 할 물건이었다!!...그것을 개인적으로 도용했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죄 짓게 하는 환경 만들고 만다...전쟁은 승리했으나 구원 위한 사사로운(그러나 가장 중요한 전쟁..매일 죽고 성령을 따라, 그리스도로 사는) 전쟁에는 패자가 되고 말았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려면 목회에 뛰어들지 말라.. 25.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26.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전리품을 모두 거두고, ..정치-군사-종교 권력 집중 추구.. ::: 여룹바알이 ....바알브릿을 만들다니!! = 절대 권력은 반드시 그 즉시 타락한다!! 28.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 ===기드온이 죽다 29.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주하였는데 30.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31.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아버지는 왕이다 = 아들 이름을 통해 왕이 되었다)이라 하였더라 32.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나이가 많아 죽으매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되었더라 33.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여룹바알이 바알브릿,,언약의 바알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음]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바알브릿 Baal-berith...바알 베리트는 1168과 1285에서 유래했으며, '계약/언약의 바알(주)'을 의미...가나안의 생산의 신이며 세겜 사람들이 숭배하였다(삿 9:4)...기드온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신을 섬겼다(삿 8:33)...'엘브릿'이라고도 불린다(삿 9:46). 34. 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35.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 그의 집을 후대하지도 아니하였더라 ---------- [KJV]제8장 1. And the men of Ephraim said unto him, Why hast thou served us thus, that thou calledst us not, when thou wentest to fight with the Midianites? And they did chide with him sharply. 2. And he said unto them, What have I done now in comparison of you? Is not the gleaning of the grapes of Ephraim better than the vintage of Abiezer? 3. God hath delivered into your hands the princes of Midian, Oreb and Zeeb: and what was I able to do in comparison of you? Then their anger was abated toward him, when he had said that. 4. And Gideon came to Jordan, and passed over, he, and the three hundred men that were with him, faint, yet pursuing them. 5. And he said unto the men of Succoth, Give, I pray you, loaves of bread unto the people that follow me; for they be faint, and I am pursuing after Zebah and Zalmunna, kings of Midian. 6. And the princes of Succoth said, Are the hands of Zebah and Zalmunna now in thine hand, that we should give bread unto thine army? 7. And Gideon said, Therefore when the LORD hath delivered Zebah and Zalmunna into mine hand, then I will tear your flesh with the thorns of the wilderness and with briers. 8. And he went up thence to Penuel, and spake unto them likewise: and the men of Penuel answered him as the men of Succoth had answered him. 9. And he spake also unto the men of Penuel, saying, When I come again in peace, I will break down this tower. 10. Now Zebah and Zalmunna were in Karkor, and their hosts with them, about fifteen thousand men, all that were left of all the hosts of the children of the east: for there fell an hundred and twenty thousand men that drew sword. 11. And Gideon went up by the way of them that dwelt in tents on the east of Nobah and Jogbehah, and smote the host; for the host was secure. 12. And when Zebah and Zalmunna fled, he pursued after them, and took the two kings of Midian, Zebah and Zalmunna, and discomfited all the host. 13. And Gideon the son of Joash returned from battle before the sun was up, 14. And caught a young man of the men of Succoth, and inquired of him: and he described unto him the princes of Succoth, and the elders thereof, even threescore and seventeen men. 15. And he came unto the men of Succoth, and said, Behold Zebah and Zalmunna, with whom ye did upbraid me, saying, Are the hands of Zebah and Zalmunna now in thine hand, that we should give bread unto thy men that are weary? 16. And he took the elders of the city, and thorns of the wilderness and briers, and with them he taught the men of Succoth. 17. And he beat down the tower of Penuel, and slew the men of the city. 18. Then said he unto Zebah and Zalmunna, What manner of men were they whom ye slew at Tabor? And they answered, As thou art, so were they; each one resembled the children of a king. 19. And he said, They were my brethren, even the sons of my mother: as the LORD liveth, if ye had saved them alive, I would not slay you. 20. And he said unto Jether his firstborn, Up, and slay them. But the youth drew not his sword: for he feared, because he was yet a youth. 21. Then Zebah and Zalmunna said, Rise thou, and fall upon us: for as the man is, so is his strength. And Gideon arose, and slew Zebah and Zalmunna, and took away the ornaments that were on their camels' necks. 22. Then the men of Israel said unto Gideon, Rule thou over us, both thou, and thy son, and thy son's son also: for thou hast delivered us from the hand of Midian. 23. And Gideon said unto them, I will not rule over you, neither shall my son rule over you: the LORD shall rule over you. 24. And Gideon said unto them, I would desire a request of you, that ye would give me every man the earrings of his prey. (For they had golden earrings, because they were Ishmaelites.) 25. And they answered, We will willingly give them. And they spread a garment, and did cast therein every man the earrings of his prey. 26. And the weight of the golden earrings that he requested was a thousand and seven hundred shekels of gold; beside ornaments, and collars, and purple raiment that was on the kings of Midian, and beside the chains that were about their camels' necks. 27. And Gideon made an ephod thereof, and put it in his city, even in Ophrah: and all Israel went thither a whoring after it: which thing became a snare unto Gideon, and to his house. 28. Thus was Midian subdued before the children of Israel, so that they lifted up their heads no more. And the country was in quietness forty years in the days of Gideon. 29. And Jerubbaal the son of Joash went and dwelt in his own house. 30. And Gideon had threescore and ten sons of his body begotten: for he had many wives. 31. And his concubine that was in Shechem, she also bare him a son, whose name he called Abimelech. 32. And Gideon the son of Joash died in a good old age, and was buried in the sepulchre of Joash his father, in Ophrah of the Abiezrites. 33. And it came to pass, as soon as Gideon was dead, that the children of Israel turned again, and went a whoring after Baalim, and made Baalberith their god. 34. And the children of Israel remembered not the LORD their God, who had delivered them out of the hands of all their enemies on every side: 35. Neither showed they kindness to the house of Jerubbaal, namely, Gideon, according to all the goodness which he had showed unto Israel. ======= 사사기 8장 (개요) 본 장에서는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과 싸워 이긴 승리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또 그의 생애와 통치에 관한 나머지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1. 기드온이 노한 에브라임 사람들을 지혜롭게 진정시켰다(1-3). 2. 그는 용맹스럽게 미디안 군사들을 추격했다(4, 10-12). 3. 그를 야비하게 모욕한(5-9)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정당하게 징벌했다(13-17). 4. 그는 훌륭하게 미디안의 두 왕을 살해했다(18-21). 5. 이런 일로 해서 겸손한 그는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다(22, 23). 6. 그는 자기의 성읍에 에봇을 만들어 둠으로써 어리석게도 그 백성들의 미신적인 기질을 조장시켜 이스라엘의 큰 올무가 되게 했다(24-27). 7. 그는 40년간 이스라엘을 평온히 다스렸다(28). 8. 그는 영예롭게 죽었으며 많은 자손을 남겨 놓았다(29-32). 9. 기드온이 죽자 곧 백성들은 그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잊었다(33-35). -------- 에브라임을 진정시킨 기드온(삿 8:1-3) 이스라엘의 적 미디안 사람들이 항복하자마자, 과격한 성격을 지닌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기드온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이 때 만일 기드온이 큰 지혜와 관용으로 그들을 즉시 제지시키지 않았다면 의외로 큰 싸움이 터져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적장 오렙과 스엡을 잡아 기드온에게 가지고 왔을 때 그들은 기드온의 성공을 축하하고 자기들이 해야 했던 그 일을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을 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에게 화를 내며 그와 다투려 했다. Ⅰ. 그들의 트집은 매우 불평스럽고 부조리한 것이었다.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갈 때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1절) 에브라임은 므낫세의 형제다. 므낫세는 기드온의 혈족이었으며, 야곱과 모세의 큰 축복을 받았다. 그러므로 에브라임은 므낫세가 그를 능가할까 봐 매우 시기하고 있었다. 이처럼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서로 분쟁하는 것에 대해, 이사야 9장 21절에 언급되어 있다.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잠 18:19). 그러나 그들이 기드온과 다투려는 것은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그들은 기드온이 미디안을 공격하러 갈 때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성냈다. 왜 그들은 주동자로 부름 받지 못했는가고 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선두에 서는 영예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해야 했다. 그는 그 영예를 자기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으며 그것을 탐내지도 않고, 오직 하나님께 이 모든 것을 돌렸다. 그러나 에브라임 사람들은 이 거룩한 대가를 차지하려 그와 “다투었다.” 2. 왜 에브라임 사람들은 그 일을 자진해서 행하려 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적이 그들의 나라를 치기 위해 일어섰다는 소문을 들었고,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정식으로 요청을 받지 않았다 해도 나라를 위하는 마음에서 마땅히 그 싸움에 참가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그들의 백성들을 위해 이 실질적인 수고를 하지 않았으면서도 하나님보다 그들 자신이 이 영예를 차지하려 했다. 드보라 시대부터 이런 에브라임의 뿌리가 있었다(5:14). 그런데 왜 이제야 그것이 나타나게 되었는가? 그 싸움 자체가 그들을 필요로 하고 있었으므로 기드온의 요청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3. 기드온은 그들을 부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면목을 세워 주었다. 만일 그가 그들을 불렀다면 그들은 대부분 겁에 질려 되돌아갔거나 아니면 게으르고 참을성이 없어 면직당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드온이 그들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치욕을 면할 수 있었다. 비열한 자들은 위험한 고비가 지났을 때 매우 용감해지나 이 위험한 일을 해낼 용기도 없으면서 명성을 얻으려 한다. Ⅱ. 기드온의 대답은 매우 평온하고 온화했으며, 자기를 변명하기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었다(2, 3절). 그가 그들에게 답변한 태도는 다음과 같다. 1. 극히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그는 그가 받은 모욕에 대해 분개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태도에 노한 말을 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는 부드럽게 그들에게 조리에 맞게 설명해 주었다. 그의 이런 태도는 미디안을 이긴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감정을 잘 극복한 것으로서 참된 영예를 받을 만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도 낫다”(잠 16:32). 2. 매우 점잖고 겸손하게, 기드온은 자신보다도 그들을 더 높게 평가해 주었다.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즉 적의 패잔병들을 추격해 죽인 에브라임 사람들이 제일 처음 공격을 제시한 기드온보다 더욱 영예로우며 나라에 더 큰 공헌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교회의 적을 멸하는 일은 포도송이를 거두는 것으로 비유된다(계 14:18). 기드온은 여기서 포도송이를 모은 자기보다 포도송이를 따낸 그들이 낫다고 말한 것이다. 승리를 하기 위해 싸우는 과정이 종종 승리의 획득보다도 더욱 영예롭고 중대하다. 여기서 하나님이 에브라임을 인정해 주기보다는 그들 자신이 자기들의 용기와 행동을 높이 평가했다. 기드온은 그들의 업적을 치하하기 위해 자신의 공적을 낮게 평가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씌워 준 화관을 결코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들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너희 많은 군사들이 그 큰 인물들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니 겨우 삼백 명의 군사를 지닌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용감한 일에 비교되겠느냐?”고 했다. 이런 기드온의 태도에서, 우리는 자기 부정의 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1) 겸손한 태도는 다른 사람의 시기를 제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때로 의로운 일을 한 자가 시기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전 4:4). 그러나 그 일을 행한 자가 그것을 자랑하지 않을 때는 시기를 받지 않게 된다. 자기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자들을 그 여러 훌륭함에서 끌어내리려 하는 자는 정말 사악한 자다. (2) 그것은 또한 분쟁을 끝맺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교만에서는 다툼만이 일어날 뿐”이기 때문이다(잠 13:10). (3) 위대한 일을 행한 자가 겸손한 마음을 지닌다는 것은 가장 아름답고 존경할 만한 일이다. 기드온의 승리는 그의 겸손을 크게 드러냈다. (4) 겸손한 자들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한다”(롬 12:10). 그러면 이 쟁론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에브라임 사람들은 기드온을 그들의 대장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이 영예롭게 하신 자로서 마땅히 존경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매우 저속한 말투로 극히 우스꽝스러운 것을 트집잡으며 분노를 터뜨렸다. 몹시 화를 낼 때 이성은 침착을 잃게 된다. 그러나 기드온의 “유순한 대답은 그들의 분노를 쉬게 했으며”(잠 15:1), 그에 대한 “그들의 노가 풀리었다”(3절). 즉 그들은 기드온에게 분노를 느끼고 있었으나 기드온의 침착한 태도가 그것을 서서히 식혀 주었다. 아무리 위대하고 선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받드는 자들의 어리석음과 불친절한 행위 때문에 인내를 시험당하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며, 그것을 이상한 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 미디안을 추적하는 기드온(삿 8:4-17)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게 된다. Ⅰ. 기드온은 용맹스러운 대장으로서 남은 미디안 사람들을 추격해 강타를 가했다. 먼저 많은 수의 적군들을 살해했다. “칼 든 자 12만 명이 죽었다”(10절). 기드온의 군대는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해치웠으며,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손쉬운 먹이였다. 그러나 일반 군사들보다도 도망하기 쉬웠던 두 미디안의 왕들은 1만 5천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에브라임 사람들이 길을 막기 전에 요단 강을 건너 자기 나라로 돌아왔던 것 같다. 기드온은 만일 그들을 도망치게 한다면 그의 임무를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을 그 곳에서 쫓아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을 이 세상에서 쫓아내려고”(욥 18:18) 했다. 이런 결심 때문에 그는 단호하게 그들을 추격했고 마침내 그 일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1. 그의 굳은 결의는 매우 훌륭했다. 그는 지극히 불리한 조건과 저조한 사기 속에서도 자기의 뜻을 실행했다. (1) 그는 단지 3백 명의 군사들을 데리고 있었으나 이제 그들은 나팔과 횃불 대신 칼과 창을 들었다. 하나님은 “이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리라”(7:7)고 말씀하셨으며, 기드온은 이 약속을 굳게 믿고 단지 3백 명의 군사들만 데리고 있었다(4절). 이 약속의 말씀으로 해서 그는 수천 명의 힘보다 이들 3백 명의 군대에 더 많은 기대를 걸었다. (2) 그들은 “비록 피곤하나 그를 따랐다.” 즉 그들이 일을 행하느라고 지칠 대로 지쳤으나, 그들은 아직도 적을 치기에 게으르지 않았다. 우리 영혼이 싸울 때에도 우리의 힘이 극히 미약하긴 하나, 이처럼 우리의 전력을 다해야 하며 비록 피곤하나 싸우는 데 게으르지 않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역할이다. (3) 비록 자기의 동족들이 기드온을 낙담시켰으나, 그는 열심을 잃지 않고 아직 다하지 못한 일을 완수하기 위해 계속 진격했다. 만일 우리를 도와야 할 자들이 우리의 의무 이행을 방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우리는 의무 이행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비난과 경멸을 묵살할 줄 모르는 자들은 하나님께 용납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모른다. (4) 그는 “장막에 거한 자의 길”(11절)을 통해 먼 길을 행진했다. 그것은 그가 그 곳 사람들이 성내에 있는 마을 숙곳이나 브누엘의 사람들보다 친절하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거나(도시보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대체로 더 관대하며 인정이 많다), 아니면 적군들이 기드온 군사가 그 길로 들어오리라고 조금도 기대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보다 갑작스러운 기습작전을 도울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결국 그는 승리를 완수하기 위해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로소 그는 자기의 군사 3백 명이 배고픔과 갈증과 고통을 잘 참아 낼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유리한지를 알게 되었다. 여기서 “적군이 안연히 있었다”는 구절로 보아, 그는 전처럼 밤에 적군을 습격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죄인들의 방심은 그들을 파멸시키며, 경계하고 있지 않을 때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2. 그의 성공은 선한 일을 하는 자들의 결의와 근면에 큰 격려가 되었다. 그는 적군을 무찔렀으며(11절), 두 왕을 사로잡았다(12절). 사악한 자들은 뜻하지 않는 때에 두려움을 만나리라.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을 피하여” 달아나는 자는 오히려 달려가 엎드러질 것이다. “그가 철병기를 피할 때에는 놋활이 쏘아 꿸 것이요”(욥 20:24), “재앙은 죄인을 따르는”(잠 13:21) 연고다. Ⅱ. 의로운 사사로서의 기드온은 무례하고 못된 이스라엘 사람들,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징벌했다. 그들은 모두 갓 지파에 속한 백성들로서 요단 건너편에 살고 있었다. 1. 그들의 범죄는 중대했다. 기드온은 극히 미약한 수의 군사로 이스라엘의 공통된 적을 추격해 이스라엘을 완전히 구원했다. 그의 대열은 먼저 숙곳을 지나 브누엘을 통과했다. 그러나 그는 이 곳을 지날 때 방백들이 그를 정식으로 환영하며 그의 승리를 축하해 준다거나 성읍의 주요 인사들이 영접을 하거나 그의 군사들을 돕지 못한 것을 사과한다거나 하는 일들을 기대하지 않았다. 비록 그는 이 모든 것을 받을 권리가 있었지만 단지 굶주린 그의 군사들을 위해 필요한 식량을 제공해 줄 것을 매우 겸손히 간청했다. “청컨대 나의 종자에게 떡덩이를 주라”(5절). 길 가는 나그네가 이런 부탁을 한다 해도 들어주어야 하거늘, 이 자들은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계 17:14) 군사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매우 영예롭게 한 자들로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웠고 지금도 그 일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 승리를 거둔 공로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 형제들은 그들을 위해 마땅히 필요한 것을 주어야 했다. 그러나 숙곳의 방백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했다”(눅 18:2). 이유는 이렇다. (1) 그들은 하나님을 경멸했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구하기 위해 세우신 기드온의 정당한 요구를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그를 모욕하고 희롱했으며 그가 이미 이루어 놓은 영예로운 성공을 무시했고, 지금 하려는 일을 방해했다. 그리고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는 미디안의 남은 군사들을 보고서 그들이 기드온을 잔인하게 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느냐?” 그들은 기드온의 빈약한 군사 수를 보고 결코 그가 그들을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2) 그들은 형제들에게 조그마한 동정심마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믿음은 물론 사랑도 결여되어 있어, 기진맥진한 자들에게 떡 한 조각도 주려 하지 않았다. 이런 자들이 방백인가? 이렇게 타락하고 사악한 자들을 이스라엘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이들은 물론 바알 숭배자이며, 미디안을 이롭게 하는 자들이었다. 브누엘 사람들도 기드온의 요청에 똑같은 대답을 했으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8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2. 그들의 죄악에 대해 기드온이 형벌을 경고한 것은 매우 정당한 일이었다. (1) 그는 그들을 즉시 처벌하지 않았다. 적을 추격하는 그로서는 더 시간을 지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그들이 불가능하리라 생각하는 일을 성공시키고 돌아와 그들을 더욱 부끄럽고 당황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2) 그러나 그는 어떻게 벌할 것인가를 말해 두면서(7, 9절), 하나님이 그를 도와 꼭 성공하리라는 확고한 믿음을 보여 주었다. 만일 그들이 조금이라도 분별력이 있었다면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그것을 속죄하기 위해 그후에라도 곧 그에게 식량을 보내 주었을 것이며, 만일 그들이 그렇게 했다면 그는 물론 용서해 주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형벌을 경고하시며 회개하도록 재촉하시나, 악인들은 “임박한 진노를 피하려” 한다(마 3:7). 3. 그들이 경고를 무시했으므로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었으나 그것은 매우 정당한 것이었다. (1) 숙곳의 방백들이 가장 먼저 형벌을 당했다. 기드온은 그 곳에 77명의 방백들과 장로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들의 이름과 거처를 문서에서 발견했다(14절). 그들은 그가 미디안 사람들을 거의 잡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놀랍게도 그는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다. 이제 그의 3백 명의 군사는 재판장들이 되었다. 그래서 모든 방백들을 포위하고 사로잡아 기드온 앞에 포로로 데리고 왔을 때, 그는 “이 자들은 내가 결코 승리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여 내 청을 모두 물리쳐 버렸다”(15절)고 했다. 또한 그는 그들에게 가시와 찔레로 형벌을 주었으나 죽이지는 않은 것 같다. ① 그는 그들의 몸을 가시와 찔레로 고통당하게 했으며, 그들의 “살을 찢었다”(7절). 남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자는 이렇게 무자비하게 심판을 받을 것이다. 아마도 기드온은 그들의 마음이 약하고 겁이 많아서, 자기 군사들의 거칠고 단호한 행동을 비웃고 있었다는 점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기드온은 그들의 나약함 때문에 그들을 이렇게 괴롭혔다. ② 그는 그들을 훈계했다. 이렇게 고통을 줌으로써 그는 숙곳 사람들을 징벌했다(16절). 그는 그들을 죽이려 하지 않고 이렇게 훈계로써 바로잡아 장차 지혜롭고 더 나은 자가 되게 하려 했다. “그는 그들을 알도록 하였다”(문자적 의미로 그러하다). 즉 그는 그들이 어리석음을 깨닫고, 하나님과 또 자기들의 의무를 알도록 인식시키고, 기드온이 누구인지 알도록 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화관을 씌워 주신 이 승리를 통해서도 기드온이 누구인가를 알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가시와 찔레로 고통을 당할 때에야 비로소 그전에 깨닫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채찍과 꾸지람”으로 “지혜를” 주시며(잠 29:15), 이렇게 해서 올바로 되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귀를 열어 교훈을 듣는다”(욥 36:10). 우리의 거룩한 구세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다(히 5:8). 모든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겔 28:24), 특히 “육체에 가시”(고후 12:7)가 되는 것을 그렇게 이해하고, 그렇게 이용하라. “이것으로 하나님은 나를 깨닫게 하시니, 내가 그 안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2) 다음은 브누엘 사람들이 화를 당했는데, 물론 그들은 어떤 타당한 이유로 해서 숙곳 사람들보다 더 가혹한 벌을 받은 것 같다(17절). ① 그는 “그들의 망대를 헐었는데” 그 곳은 그들이 신봉하고 영광을 돌렸던 곳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미디안 사람들을 쫓기보다는 그들 자신의 안이를 찾으며 기드온과 그의 군사들을 비웃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만으로 해서 파멸해 버리는 수치를 당하게 된다. ② 그는 “그 성읍 사람들을 죽였다.” 그러나 그가 죽인 자들은 단지 그를 모욕한 사람들만이었을 것이며, 아마도 방백들이나 장로들은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 성읍의 가장 무례하고 야비한 자들만 죽였으며,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위협만 가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브누엘의 사람들을 징벌하였다”고 했다. -------- 미디안의 두 왕의 죽음(삿 8:18-21) 여호와의 집에서 시작된 심판은 이스라엘 사람들인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징계했으나, 그것만으로 모든 심판이 끝나지는 않았다. 기드온은 미디안의 왕들을 잡아 그의 승리를 입증했고 이제 그는 이들을 심판해야 했다. Ⅰ. 그들은 얼마 전에 다볼 산지에서 기드온의 형제들을 살해했음이 드러났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미디안 사람들을 피해 산에 있는 굴속에 숨었을 때(6:2) 이 두 왕은 그들을 찾아내어 잔인하게 죽여 버렸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너희가 죽인 자들은 어떠한 자이더뇨”(18절)라고 물은 것은, 그가 그 일을 이제야 물어볼 정도로 형제들의 살해에 무관심해서나 이 거만한 왕들이 그것을 숨기려 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이 살해한 일을 자인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해 그들의 처벌을 더욱 정당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죽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비록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긴 했지만 지금의 이 기드온의 표정처럼 그들도 놀라운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큰 일을 위해 태어난 “왕자 같더라”고 했다. Ⅱ. 살해한 것을 자백한 이상 기드온은 오렙과 스엡을 죽였을 때처럼(7:25)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 그들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피를 보수하는 자”(민 35:24)를 선정해 그들을 죽이도록 했다. “그들은 내 형제이도다”(19절). 그들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기드온은 구태여 그들을 죽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피 흘린 그의 형제들이 그에게 통곡하므로 그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손으로 복수해야 했다. 그들이 왕이긴 했지만 그에 의해 그들의 피가 흘려져야만 했다. 그들은 이런 일을 당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살인자는 모두 이 세상에서도 벌을 받게 된다. Ⅲ. 이 일은 곧 기드온의 손을 통해 수행되었다. 그는 “피를 보수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가까운 핏줄인 그의 아들을 택해(그의 아들도 또한 살해당한 자들의 친척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을 죽이도록 했다(20절). 기드온은 아마도 그의 아들이 이런 의로운 일을 담대히 행하도록 훈련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1. 이 소년은 그 자신이 이 일 하기를 꺼려 했다. 비록 그들은 아무 반항도 못한 채 죽게 되어 있었지만 그는 “아직 어려서” 이런 일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워했다. 용기는 항상 혈통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2. 그 죄수들은 기드온이 그들을 죽여 주기를 원했기(21절) 때문에 그들을 죽여야 한다면 기드온 자신의 손으로 죽여 달라고 애원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영예롭고 편했다. 기드온의 센 힘으로 좀더 빨리,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떠하면 그 힘도 그러하니라.” 이것은 바로 기드온의 성숙된 힘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들은 “너는 지금 센 힘을 갖고 있다. 그 소년이 그 일을 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러니 네가 우리를 죽여다오” 하고 부탁을 한 것이다.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그들이 성인이 된 후에 좀더 큰 힘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기드온은 그들을 재빨리 죽이고 “그 약대 목에 꾸몄던 달 형상의 장식을 취하였다.” 이 장식은 아마도 그들의 충성이나 우상 숭배를 나타냈을 것이다. 바알 신이 해로 상징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세라는 달로 상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모든 장식을 떼어 버렸다(26절). 여기서 우리는 그가 여느 사람처럼 자기의 유익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왕의 파멸과 두 방백(7:25)의 죽음은, 오랜 후에 교회의 적을 파멸시키는 전례로서 언급되었다. “저희 귀인으로 오렙과 스엡 같게 하시며, 저희 모든 방백으로 세바와 살문나와 같게 하소서”(시 83:11). 그래서 이들을 그들처럼 죽게 하소서. -------- 기드온의 겸양과 우행(삿 8:22-28) Ⅰ. 기드온이 이 위대한 승리를 거둔 후 백성들은 그들을 다스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그는 매우 겸손하게 이것을 거절했다. 1. 그들이 기드온에게 그것을 요청한 것은 올바른 일이었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셨으니 우리를 다스리소서”(22절).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수고를 기울였던 기드온이 이후로부터 당연히 그들을 다스릴 권한과 영예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셔서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한 자가 이후에 그들을 다스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시켜 보자. 그 분은 우리를 가장 사악하고 위험한 우리 영혼의 적의 손아귀에서 구원해 주셨다. 그러므로 그 분은 마땅히 우리를 다스리셔야 한다. 하늘에서 큰 신임을 얻고 이 세상에서 이렇게 큰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훌륭한 통치자가 우리에게 또 있는가? 우리는 구원받았으니 그 분을 “두려움 없이 섬기게” 되었다(눅 1:74, 75). 2. 기드온이 그들의 청을 거절한 것은 영예로운 일이었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않겠다”(23절). 그가 행한 것은 그들을 섬기려 한 것이었지 다스리기 위해 한 일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그 자신이 위대해지고 명예를 얻으려고 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 주려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자신이 권세를 탐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그의 자손에게까지 물려주려는 욕심도 없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이나 죽은 후에나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특별히 그 분의 성령을 보내시어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그는 겸손해서 그 자신과 그의 공적을 자랑하지 않았다. 그는 그가 행한 훌륭한 일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대가를 받았으므로 다스리는 영예를 누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마 20:26). (2) 그는 신앙심이 강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스려 주실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싫어하며 다른 백성들처럼 왕이 다스리기를 바란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의 공적을 미끼로 그들의 통치자로 삼아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피하려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드온은 결코 이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선한 자는 하나님께 돌려야만 하는 영광을 그 자신이 받으려 하지 않는다.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고전 1:13) Ⅱ. 기드온은 노략물로 에봇을 만들어 승리를 기념하려는 변칙적인 열심이 있었다. 1. 그는 노획품으로 얻은 귀고리를 모으도록 요청했는데, 이런 장식품들은 살해당한 자들 가운데 많이 있었다. 그가 이런 장식품들을 요구한 것은 그 물건이 가장 좋은 금이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사용하기에 알맞다고 생각해서거나, 또는 미디안인들이 이 금 귀고리를 미신적인 의미로 지녔기 때문이다. 금송아지의 형상을 만들기 위해 금을 요구했던 아론처럼(출 32:12) 기드온도 그것을 요구했다(24절). 그는 그에게 자신들을 다스리도록 요청한 자들이 금 귀고리 정도 주기를 거절하지는 않을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요구했을 때 그들은 그것을 내주었다(25절). 2. 그도 또한 자기 몫으로 되었던, 미디안 왕들에게서 취한 전리품을 내어 놓았다(26절). 그들은 가장 훌륭한 노략품으로 “수놓은 채색 옷”을 얻었다(5:30). 3. 이것으로 그는 에봇을 만들었다(27절). 그것은 기드온 사사의 성읍에 이 거룩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그럴 듯한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신성한 의복인 에봇을 만든다는 것은 경솔한 처사였다. 나는 훌륭한 사람의 행동은 될 수 있으면 좋게 보려는 자로서 기드온의 행실 역시 좋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가 보통 그러하듯이(호 3:4), 에봇과 함께 드라빔을 갖고 있지 않았나를 의심하게 된다. 또한 그는 이미 전에 거룩한 일을 행하기 위해 단을 쌓았으나 앞으로도 계속 여기에 제물을 드려 의심스러운 일들은 신탁으로 상의하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스펜서(Spencer) 박사도 이와 같은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각 지파는 각자 통치조직을 갖고 있었으며, 그들은 또한 자기네 지파의 종교를 갖고자 했다. 사사기 전체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실로와 거기에 있는 법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된 곳이 없다.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 그럴 때도 있지만, 주로 인간들의 범죄로 인해서, 오직 한 제단에서만 예배를 드리도록 규정해 놓은 그 율법은 초기에도 기대만큼 그렇게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후대에는 지극히 선한 왕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에도 “(우상 숭배의) 산당이 제거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율법은 그리스도의 한 모형에 지극히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즉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만 우리의 모든 예배가 하나님께 열납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드온은 그의 무지와 경솔함 때문에 비록 선한 의도였을지라도 에봇을 만드는 죄를 범했다. 실상 실로는 그 곳에서 멀지 않은 에브라임에 있었으나, 그 지파 사람들이 그에게 잘 순종하지 않으므로(1절), 그는 아마 신탁할 일이 있어도 그 곳에 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집 옆에 그런 것을 두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리 이 일이 선한 뜻에서 행해졌다 할지라도, 또 처음에는 별로 해를 끼치지 않았다 할지라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차, (1)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게 되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제단과 제사장을 버리고 새로운 변화를 즐겨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으며, 에봇을 섬기는 사례까지 벌어졌다. 더욱이 그것을 기드온과 같은 훌륭한 자가 세웠다 하여 점점 존경하는 마음이 지나쳐 미신적인 신앙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훌륭한 사람이 한 발 잘못 딛은 길을 많은 사람들이 따라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죄의 시작, 특히 우상 숭배나 옳지 못한 신앙은 “물이 새는 것 같은즉”, 그 예는 로마 교회의 치명적인 타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물들기 전에 “그쳐야 한다”(잠 17:14). (2) 기드온이 말년에 여호와의 집을 열심히 섬기지 않고 그의 집에 제단을 쌓은 것은 그에게 커다란 올무가 되었다. 이것은 그를 죄악으로 이끌었으며, 그의 후손들까지도 파멸하게 했다. Ⅲ. 기드온은 직책을 맡을 동안 이스라엘을 평온히 다스렸다(28절). 그들에게 그리도 귀찮게 굴던 미디안 사람들은 이후로 그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 기드온은 왕의 권능과 영예를 받으려 하지 않았으나, 그는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그의 백성을 위해 훌륭한 통치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태평하였다.” 이 때까지 이스라엘의 세월은 40년을 단위로 계산되었다. 옷니엘은 40년간, 에훗은 80년간, 즉 40년간을 2번, 바락도 40년간 사사를 지냈으며, 기드온도 역시 40년간 다스렸다. 또한 그들은 40년간을 광야에서 방황해야 했다. “사십 년간 나는 이 세대와 더불어 슬퍼하였도다”(겔 4:6). 이후에도 엘리는 40년간(삼상 4:18), 사무엘과 사울도(행 13:21), 다윗과 그리고 솔로몬도 각각 40년간 다스렸다. 40년은 약 한 세대다. ---------- 우상에게 돌아간 이스라엘(삿 8:29-35) 여기서 기드온의 이야기는 끝난다. Ⅰ. 그는 이제 평민으로 돌아가 살았다(29절). 그는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자랑하지 않았으며 궁전이나 성에서 살려고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고, 그가 명성을 얻기 전에 살았던 그의 집으로 돌아가 거했다. 이처럼 용감한 로마인들도 급한 싸움이 터졌을 때 농사 짓던 것을 내던지고 싸움터로 달려와 군사들을 지휘했으나, 그것이 끝났을 때는 집으로 돌아가 다시 밭일을 했다. Ⅱ. 그의 가족은 번성했다. 그는 여러 아내를 거느리고 있었으며(이것은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이들에게서 70명의 아들을 가지게 되었다(30절). 그리고 첩에게서 난 아비멜렉(“나의 아버지는 왕”이란 뜻을 지님)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으며(31절), 그로 인해 그의 가문은 몰락해 버렸다. Ⅲ. 그는 장수하다가 영예롭게 죽었다. 그는 하나님과 자기 나라를 섬기는 날 동안 오래 살았다. 누가 더 이상 오래 살기를 원하겠는가? 그는 “그의 아비의 묘실에 장사되었다.” Ⅳ. 그가 죽은 후 백성들은 타락해 버렸고,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갔다.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제재하던 기드온이 죽자 그들은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게 되었고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하게” 되었다(33절). 그들은 기드온이 불법으로 만들어 놓은 에봇을 가장 먼저 섬기기 시작했고(27절), 이제는 또 다른 신을 위했다. 거짓 예배는 거짓 신을 불러온다. 그들은 이제 바알브릿(Baalberith)이라 부르는 새로운 신(여신이라는 의견도 있다)을 선택했다. 어느 학자들의 의견으로는 브릿은 브리투스와 같은 이름으로, 페니키아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던 지명이라 한다. 바알브릿은 계약의 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아마도 이것을 숭배하던 사람들은 여기에 계약을 덧붙여 놓음으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람 사이에 이루어졌던 언약을 모방하려 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김으로써 그들은, 1.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억지 아니했다.” 그들이 전에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이 이를 벌하시기 위해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 붙이셨으나, 이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다시 불러들여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 내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심판과 은혜들을 모두 기억하지 않았고, 그들이 받은 감명을 모두 잊어버렸다. 2. 기드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35절). 기드온이 그 백성들의 선조로서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나, 그들은 그가 죽은 후 그의 가족들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에게 도움을 준 친구나 은인들에게 감사해야 하며, 그들이 죽었을 때라도 그 감사를 그 가족들에게 돌려야 한다. 이스라엘은 기드온의 가족에게 이런 친절을 보여 주지 않았는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하나님을 잊은 자가 그 친구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다. === ===호크마 =====8:1 에브라임 사람들 - 이들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가장 불평 불만이 많은 지파 사람들 이었다. 이들은 여호수아 당시 므낫세 지파와 더불어 자기들이 기업으로 받은 영토가 다른지파에 비해 좁다고 불평했던 적이 있다. 또한 훗날에도 그들은 본절에서 기드온에게 했던 것과 같은 말을 사사 입다에게도 하면서 다투었던 적이 있다(12:1). 이러한 저들의 소위(所爲)는 거의 고질적이었는데 훗날 이스라엘 왕국을 분절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여로보암 역시 이 에브라임 사람이다(왕상 11:26).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이 어쩜이뇨 -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쟁에 빠진 지파는 비단 에브라임 한지파 뿐만 아니라 여러 지파들이었다(6:35). 더군다나 에브라임 지파는 전쟁 말기에서나마 참전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러한 말로 비난한 것은 이스라엘 전체 지파 중에서 자신들이 주도권(hegemony)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기드온이 에브라임 사람들을 높여 주면서 그들의 노를 풀었던 사실에서 분명히 나타난다(2,3절). =====8:2 나의 이제 행한 일이...비교되겠느냐 - 이 대답에서 기드온의 성품이 드러난다.그는 겸손하고 온유하여 명예와 영광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의 분별력은 뛰어나 에브라임 사람들의 불평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내부의 분열위험을 감지하고 지혜롭게 예방책을 강구하였다(잠 15:1).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낫지 아니하냐 - '끝물 포도'는 '맏물 포도'를 거둔 후 남은 포도를 의미한다(사 24:13). 때문에 KJV, NIV, RSV등은 본절을 '에브라임의 포도 찌꺼기가 아비에셀의 수확한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로 번역하였다. 여기서 '포도 찌꺼기'즉 '끝물 포도'는 '맏물 포도'보다 맛이 시고 질도 훨씬 뒤떨어진다. 그런데도 기드온이 에브라임 산지의 '끝물 포도'가 자기 고향에서 생산되는 '맏물 포도'보다 훨씬 좋다고 말한 것은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기드온 집안 사람들인 아비에셀(6:11)이 처음부터 끝까지 세운 공로보다 전쟁의 막바지에 참여한 에브라임 지파의 공로가 훨씬더 크다는 사실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물론 에브라임 사람들은 미디안의 두 방백을 죽였을 뿐 아니라 적들의 퇴로를 차단하는 등 큰 역할을 하였음에는 틀림없다(7:24,25). 그러나 아무리 낮게 평가하여도 싸움의 전 과정을 주도했던 기드온과 그의 소속 가문의 업적은 에브라임 지파의 것에 비해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뒤떨어질리 없다. 그런데도 기드온이 이처럼 겸허한 태도를 취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심때문이었다. 즉 그는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지파들간에 분열이 생기는 것은 원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그는 반목(反目)보다는 화평을 추구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신앙의 정도(正道)에 자신을 승복시켰던 것이다(마 5:9; 빌 2:3). =====8:3 하나님이...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 미디안 연합군이 기드온의 군대에게 쫓겨 도망갈 때 요단 나루터에서 그 길목을 지키고 있던 에브라임 지파가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죽인 사건을 가리킨다. 7:25 주석 참조. 그런데 기드온이 이 사건에 대하여 '하나님이...너희 손에 붙이셨으니'라고 한 것은 곧 '하나님께서 너희로 하여금 그토록 명예로운 일을 하게 하시지 않았느냐? 는 일종의 반문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1.2,pp.170f). 나의 한 일이 어찌...비교되겠느냐 - 즉 하나님께서 에브라임 지파로 하여금 미디안 두 방백을 죽이는 명예로운 전과(戰果)를 올리게 하신 이상, 그밖에 기드온 자신이 행한 모든 일들은 그 같은 영광에 비하면 하찮은 것들에 블과하다는 말이다. 이 말을 하매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 -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는 교훈이 꼭 들어맞은 경우이다. 만일 기드온이 자신의 지도자적 권위에 도전해 온 에브라임 지파를 용납치 아니하고 또한 저들의 시비를 공박하려고만 들었다면 이처럼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러지 아니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길 줄 아는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이었다(빌 2:3). =====8:4 기드온과 그 좇은 자 삼백명이...피곤하나 - 사실 이들은 '모레 산 앞 골짜기'(7:1), 즉 이스르엘 골짜기에서부터 적과 싸우며 요단 나루턱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적군을 추격하였으니 매우 지쳐 있는 상태였을 것이다. 이는 기드온이 자신과 병사들을 위하여 체면 불구하고 숙곳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요청한 사실에서도 분명히드러난다(5절). 따르며 - 기드온과 그의 정예병 삼백 인은 비록 피곤하고 지쳤으나 끝까지 적을 추격했다. 이들이야말로 충실한 정병(精兵)이며, 최후까지 긴장하여 희생적 봉사에 참여한 순교적 투사들이었다. 승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잠시 출전하여 다행히 두 적장을 죽인 공로를 내세워 이익과 명예를 얻으려 했던 에브라임 사람들과는 그 유가 다른 충성이었다. 애굽의 모든 영화와 부귀를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당하기를 더 원했던 모세의 신앙과 가히 비견될 만하다(히11:23-26). =====8:5 숙곳 사람들 - '숙곳'(Succoth)은 요단 동편의 갓 지파가 기업으로 차지한 성읍이다(수13:27). 이곳은 얍복 강에서 북쪽으로 약 16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그런데 본절에서 '숙곳 사람들'이란 그곳에 거하는 이스라엘 거민인지 가나안 원주민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런데 기드온이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게 스스럼없이 떡덩이를 요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 거민은 갓 자손들일 것이다. 나는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따르노라 - 본절에는 '세바'와 '살문나' 두사람이 모두 미디안 왕인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은 각기 '미디안'과 '아말렉' 그리고 '동방 사람'의 왕 중 어느 한 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미디안 두 왕'이라 칭한 까닭은 아마 미디안, 아말렉, 동방 사람이 연합하여 미디안 연합군을 이루었기 때문인 듯하다(6:3). 즉 세바와 살문나는 미디안 연합군의 두왕이었던 것이다. 한편 이 두 왕은 '오렙'과 '스엡'이 에브라임 사람들과 싸우는 중에(7:25) 요단 강을 건너 도망쳤을 것이다. =====8:6 숙곳 방백들 - '숙곳' 거민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을 의미한다.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떡을 주겠느냐 - 기드온이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해서 싸워 이길 수 있을지 어떨지 잘 모르므로 떡을 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즉 숙곳 방백들은 기드온의 300명 용사를 무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드온의 군대가 미디안에게 패할 경우 미디안으로부터 받게 될지 모를 보복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기드온에게 말한 것이다. 이것은 동족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한 이기주의적이며 기회주의적인 태도였으니 응징받아 마땅했다(Wycliffe,Keil & Delitzsch). =====8:7 여호와께서...내 손에 붙이신 후에 - 모래 산 앞 골짜기에 진쳤던 대적들을 기습한 이래(7:19이하) 계속된 추격전으로 인해 기드온의 용사들은 기진 맥진한 상태였다(4절). 거기다가 예상 밖의 푸대접을 받은 터였지만, 기드온은 전의(戰意)를 상실하지 않고 오혀려 승리의 확신을 더욱 굳게 다지고 있다. 오늘날 주의 일을 하는 데에도 이와 유사한 어려움이 많이 닥친다. 응당 협력해야 할 사람이 의외로 냉담한 태도를 보일 때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하여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고후 4:8; 빌 3:14).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들가시'는 광야에서 자라는 매우 딱딱한 가시를 의미한다. 히브리 원문에서도 이것은 '광야의 가시'(*, 코체 하미드바르)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찢으리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타작하리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의 표현을 '기드온이 그들을 돌가시와 찔레 위에 눕혀 놓고 타작용 기구로 그들 위에 눌러 끌겠다'는 의미로 해석한다(Cundall). 또한 어떤 학자들은 '타작하다'란 맡을 '가혹한 형벌을 가하다'란 의미의 비유적 표현으로 이해한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Bertheau). 아무튼 본절은 기드온이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방백들의 살을 타작하듯이 징벌하겠다는 의미로 기드온의 극도로 분노한 상태를 보여준다. 그 까닭은 지금 기드온이 수행하고 있는 전쟁이 하나님의 성전(聖戰)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5:13-15 강해, '성전'(聖戰)을 참조하라. 한편 오늘날도 사단과의 영적 전투에서 관망만 하고 참여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정죄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에 적극 동참하는 까닭은 궁극적인 하나님의 승리가 불을 보듯 명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8:8 브누엘 - '브니엘'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다. 숙곳 동쪽 약 9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에드 다합 에쉬 쉐르퀴예'(Tell edh-Dhahab esh-Sherqiyeh)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숙곳과 마찬가지로 얍복 강 바로 위에 있는 갓 지파의 성읍이었다. 이 '브니엘'이란 명칭은 야곱이 얍복 나루를 건너기 전 그곳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였다 하여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 칭했던 데서 비롯되었다(창 32:30). =====8:9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 - 기드온은 숙곳 방백들에게는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붙이신 후에'라고 말했다(7절). 따라서 이는 '적들을 완전히 섬멸시킨 후자신이 평안히 돌아오는 때'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망대를 헐리라 - '망대'는 성읍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파수꾼들은 이 곳에서 적의 침입을 관찰하고, 적의 침입이 있을 때 나팔을 불어 전 성읍에 위험을 알린다. 따라서 이러한 망대가 무너지면 그 성읍이 적에게 점령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기드온이 이 '망대'를 헐어 버리겠다고 브누엘 사람들에게 위협한 것은 그 성읍을 파괴해 버리겠다는 의미였음을 알 수 있다.....㉠숙곳은 갓 자손에게 주어진 성읍으로(수13:27), 그들은 싫든 좋든 기드온을 도울 의무가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를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이 세바와 살문나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그리했다고 보면서 정당화하려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야말로 아군이야 죽던 말던 적군을 이롭게 하는 행동이 되어 당연히 문책을 받아야 한다. ㉡기드온이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다면, 뒤로 미루지 않고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응징했을 것이다.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는 자업자득이란 말이 해당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빵 한 덩어리와 자신들의 목숨을 바꿀 각오가 되어있었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동족의 지도자인 기드온과 그의 군사들의 생명을 빵 한 덩어리로 위협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도 물 한 모금 때문에 영원한 불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마25:40~42). ㉣전시 상황에서 아군에게 식량 등을 내주지 않는 비협조는 당연히 죽음에 처해질 범죄행위이다. ㉤그렇기에 전쟁에 참여한 요단 서편의 지파 이름이 기록되고 있는 것과는 대비적으로 동편의 지파 이름은 언급되지 않고 은근히 비하적으로 ‘숙곳 사람’ ‘브누엘 사람’ 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8:10 갈골 -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 유세비우스(Eusebius)와 제롬(Jerome)은 카르카리아(Carcaria) 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카르카리아' 성은 사해 동쪽의 '페트라'(Petra)에서 남쪽으로 하루 길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모압 사람의 지경에 속해 있다. 그러나 이곳은 갓 지파의 영역에 있는 '노바와 욕브하'(11절)와 멀리 떨어져 있는곳이므로 '갈골'의 위치로는 적당하지 않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1. 2, p.353). 한편 히브리 본문에는 '갈골'을 보통 '울타리로 쳐진 곳'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는 '양의 우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실 모세 당시 갓 자손은 '욕브하'와 그 근처 성읍을 점령하여 그곳에 양의 우리를 지은 적이 있다(민32:35,36). 그러므로 본문의 '갈골'은 고유명사로 취급하기 보다는 보통 명사로 취급하여 '노바'와 '욕브하' 근처에 있는 '양의 우리로 지어진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함이 타당할 것이다.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 지금까지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 그리고 동방사람의 연합군을 대표적으로 말할 때에는 '미디안 사람'으로 칭했다(6:14;7:1,14,15,24). 그러나 본절에서는 '동방 사람'으로 언급되어 있다. 아마 이것은 미디안 사람이 거의 전멸하고 동방 사람들이 많이 살아 남았든지 아니면 그들이 진치고 잇는 곳이 동방 사람이 거하던 곳과 인접해 있던 데에서 비롯된 것 같다. 십 이만 명이 죽었고 그남은 일만 오천명 가량 - 전사자(戰死者) 십 이만명은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수효였다. 그리고 패잔병에 해당하는 일만 오천 명 또한 기드온 삼백용사에 비하면 무려 50배에 달한다. 따라서 그들은 갈골에 이르러 진영을 가다듬어 일전(一戰)을 준비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호와의 크신 권능을 체험한 바 있는기드온 용사들의 사기는 의기 충천해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패잔병들은 위축되어 또다시 도주하기에 급급한 상황에 이르렀다. =====8:11 안연히 있는 중에 - 이말은 세바와 살문나가 군대의 호위 가운데서 안전하게 거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바와 살문나를 호위하고 있는 군사들 역시 기드온의 손에서 벗어났음을 확신하며 안심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에서 기드온의 300명 용사가 그들을 치자 그들은 예기치 않은 공격에 놀라 전의(戰意)를 상실했을 것이다. 노바와 욕브하 동편 장막에 거한 자의 길 - 노바와 욕브하 동편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에게로 가는 길을 의미한다. 아마 이곳은 갓 지파와 동방 사람들이 사는 지경의 경계 지역일 것이다. 한편 '노바'와 '욕브하'가 정확히 어디에 위치한 성읍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헤스본 부근에 위치한 성읍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곧 길르앗 산지의 어느 한 지점이다. =====8:12 온 군대를 파하니라 - '파하다'에 해당하는 '하라드'(* )는 '공포에 떨게하다', '당황하게 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기드온에게 세바와 살문나가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접한 미디안 연합군이 완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궤멸(潰滅)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이상으로 7장에서부터 계속되었던 기드온군과 미디안 연합군과의 싸움은 끝이 난다. =====8:13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 KJV는 이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해가 뜨기 전에 전장에서 돌아오다가'로 번역하였다. 그 까닭은 '헤레스 비탈'에 해당하는 원어 '밀마아레 헤하레스'(* )를 '해가 뜨기 전'이란 뜻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몇몇 학자들도 지지하는 견해이다(Luther, Hervey). 그러나 본절을 굳이 이처럼 의역(意譯)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 '헤레스 비탈'이란 말은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군과 싸워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았던 곳인 '갈골'(10-12절)에 대하여 보충 설명해 주는 말로 봄이 더 낫다. =====8:14 한 소년 - '소년'에 해당하는 '나아르'(* )는 '사환'(삼하 9:10), '어린 아이'(출 2:6), '청년'(출 24:5; 33:11) 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단어이다. 본문에서는 그가 숙곳 방백과 장로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청년'으로 해석하는 편이 좋다. 신문하매...기록한지라 - 사로잡힌 소년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숙곳의 방백과 장로 칠십 칠인의 명단을 폭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써 숙곳의 방백과 장로들은 동족에게로부터까지 버림을 받는 지경에 당도한 셈이다. 숙곳 방백과 장로 칠십 칠 인 - 이들은 슥곳 성읍을 다스리며 재판을 총괄하는 그성읍의 대표자들이다. 6절에서는 방백들만이 기드온을 조롱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본절에서 기드온이 보복하고자 한 사람 중에는 장로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몇몇 방백들의 말이라 해도 그 성읍 대표 모두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연대성(Solidarity) 때문이었을 것이다. =====8:15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 기드온은 숙곳 방백들에게 자기를 조롱한 것(6절)이 얼마나 어리석었었가를 보여 주기 위해, 그 증거로 전쟁에서 사로잡은 미디안 두 왕(12절)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그의 의도는 숙곳 방백들로 하여금 더 이상 쫓기고 있는 적들이 또다시 힘을 키워 보복하지 못하리라는 점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또한 자기 동족의 고통을 같이 나누지 않은 숙곳 방백들은 이제 세바와 살문나처럼 자기 손에 사로잡힌 바 된 것을 시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8:16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 이 표현은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을 죽인 것이 그들의 죄에 대한 징계임을 분명히 나타내 준다(6,7절). 즉 기드온이 그들을 죽인 것은 사소한 개인적인 악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와 관계된 그들의 죄에 대한 징계로서 뚜렷한 대의 명분이 있었던 것이다. =====8:17 브누엘 망대를 헐며 - 기드온에 의해 브누엘 성읍이 완전히 파괴된 것을 의미한다. 9절 주석 참조. =====8:18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 - 여기서 '다볼'(Tabor)은 이스라엘 골짜기에 위치한 '다볼 산'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곳은 일전에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의 군대에 대항하기 위하여 진쳤던 곳이다. 4:6 주석 참조. 그런데 지금까지는 세바와 살문나가 다볼에서 어떠한 사람들을 죽였는지 전혀 언급이 없었다. 아마 이는 세바와 살문나가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치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탈할 때(7:1) 그 중 일부를 죽인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런데 이때 죽임을 당한 자들은 다름아닌 기드온의 형제들이었다(19절). 모두 왕자 같더라 - 이로 미루어 볼 때 기드온의 형제들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8:19 그들은 내 형제 내 어머니의 아들이니라 - 공동 번역은 이를 '그들은 한 어머니에게서 난 내 형제들이다'로 번역하였다. 이는 세바와 살문나에게 죽임 당한 자들이 단순히 기드온과 같은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 분명히 기드온의 친형제였음을나타내 준다.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면 나도...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 이는 곧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에 대하여 '피의 복수'를 하겠다는 뜻이다. 고대 근동에서는 누군가가 피살당한 경우 그 사람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족이 복수자가 되어 살인자의 생명을 요구할 의무와 권리가 있었다. 그것은 노아 시대 이래 '피를 흘리게한 자는 그자역시 피를 흘려야 한다'는 율법 사상에 근거한 규례였다(창 9:6). 따라서 본절의 기드온의 보복 행위 역시 사사로운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공의(公義)의 심판을 가하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죄의 복수'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신 19:6주석을 참조하라. =====8:20 그 장자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 이처럼 미디안 연합군을 지휘하던 대장이자 왕이었던 세바와 살문나가 적장(敵將)은 물론 용사도 아닌 한갖 소년 여델에 의해 죽임당하게 되었다는 것은 굉장히 치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소년이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 이처럼 기드온의 장자 여델은 아직 나이가어려서 세바와 살문나를 죽일 만큼 용기있는 소년은 아니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처형한 것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였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아들은 어려서 300명 용사 안에 분명히 포함되지 못하고 집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7:2-8). =====8:21 사람이 어떠하면 그 힘도 그러하니라 - 이 말은 기드온의 장자 여델이 나이 어리기 때문에 그의 힘과 용기도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기드온이 직접 자기들을 죽여 달라는 역설적인 의미의 호소이다. 한편 그들이 이와 같이 기드온에게 직접 죽고자 자청한 것은 힘도 없는 어린 아이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용사에게 죽임을 당하는 편이 덜 수치스럽다는 생각에서였음이 분명하다(Keil, Wycliffe). 새 달 형상의 장식 - 금이나 은으로 된(26절) 반달 형상의 장신구이다(사 3:18). 미디안족들은 월신(月神)을 숭배하던 관습에 따라서 반달 모양의 장식품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기드온은 이 장식물을 세바와 샅문나를 쳐서 승리한 기념으로 취했던것이다. 한편 이외에 그와 함께 출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미디안 사람을 친 후 여러 가지 장식물을 노략물로 가져왔다(24절). 이와 같이 전쟁에 승리하여 적국의 물건들을 노략물로 취하는 것은 고대 전쟁에 있어서 보편적인 일이었다. =====8:22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 이 말은 기드온의 집안대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달라는 요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요구한 것은 당시 고대 근동에 왕위 세습 제도가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물론 당시의 사사 제도는 아직 미분화된 이스라엘의 통치를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과도기적 체제였다. 그리고 왕정(王政)에 대해서는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지시하신 바 있다(신 17:14-20).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구원한 기드온의 인간적 용맹과 지도력에 의존하여 안전을 확보해 보려는 의도에서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때가 이르러 왕을 택하시고 세우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행위이다. 이스라엘이 진정 왕정이 도래할 필요가있다고 판단되었다면, 백성들은 하나님께 간구했어야 마땅하였다. 따라서 임의로 왕을세우고자 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왕되신 하나님(삼상 8:7; 12:12)을 경홀히 여기는 불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8:23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진쟁에서 승리한 것이 자신의 힘과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며 모든 영광을 그분이 받아야 마땅하다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또한 기드온이 했던 이 말은 백성들로 하여금 인간 지도자를 의뢰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뢰하도륵 하는 교훈도 담고 있다. =====8:24 그 대적은 이스마엘 사람이므로 금귀고리가 있었음이라 -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처 사라의 몸종인 하갈이 낳은 아들이다(창 16:15). 그 후손인 이스마엘족은 시내 반도 북동쪽에 있는 바란 광야를 중심으로 유목 생활과 대상(隊商)을 하였으며,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소생인 미디안 족속(창 25:2)과 매우 친밀하게 지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본서의 저자는 이스마엘과 미디안을 같이 생각했던 것 같은데 실상 별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이스마엘 사람'은 아라비아의 유목민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이며 넓게는 미디안족도 이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들은 항상 이동하면서 생활했으므로 언제든지 자기들이 원하는 물건과 바꾸어 사용할 수 있는 귀중품 특히 금을 많이 지니고 다녔다. =====8:25 겉옷 - 이에 해당하는 '시믈라'(* )는 대개 사막 지대 사람들이 낮에는 겉옷으로, 밤에는 이불 대용으로 사용하던 긴 '외투'를 가리킨다. 귀고리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이 실상 '귀고리'가 아닌 '코걸이'였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당시 아라비아 일대의 유목민들은 많은 장식품들로 코를 단장하는 풍습이 성행했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풍습은 오늘날에도 일부 근동 지방에서 볼 수 있다(A.C.Hervey). 그러나 '귀고리'에서 해당하는 '네젬'(* )은 일반적인 '장식용보석'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귀고리와 코걸이를 막론한 모든 종류의 장신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좋을 것 같다(Lange). =====8:26 금 귀고리 중수가 금 일천 칠백 세겔이요 - 한 세겔(Shekel)은 약 11.4g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사람에게서 노략한 금의 무게는 21.38kg 가량 되었다.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자색 의복 - 고대 애굽 및 팔레스틴 일대에서는 지중해의 조개에서 추출한 액으로 붉은 보라 빛 염료를 만들었다. 따라서 이 자색 염료로 염색한 천이나 의복은 매우 귀할 수 밖에 없었는데 대개 귀족이나 왕족들만 착용하였다. 로마 병정들이 예수님을 체포한 후 그에게 붉은 홍포를 입힌 까닭도 곧 '자색'이 당시 '왕'을 상징하는 색깔이었기 때문이다(마 27:27,28). =====8: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서 - '에봇'(Ephod)은 본래 대제사장의 의복으로서 앞으로는 가슴을, 뒤로는 등을 덮었던 조끼 모양의 상의(上衣)였다.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할 때에 대제사장은 이 옷을 입고 우림과 둠밈으로 판결을 구하였다(출 28:6-30). 그런데 기드온은 금으로 이 예봇 형상을 만들어 자기 성읍에 둠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범죄케 하는 소지를 마련하였다. 즉 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로에 있는 성막의 제사에 집중하지 않고, 오브라에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함으로써 무질서 속에서 점차 우상 숭배의 길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자기의 성읍 오브라 - 베냐민 지파의 성읍 '오브라'(수 18:23)와는 구별되는 곳으로 기드온의 집안이 거주하던 성읍이다. 6:11 주석 참조.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 '음란'이란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와 관련하여 사용된 용어이다(겔 16:58; 23:27,29). 즉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이 만든 에봇을 우상을 섬기듯이 섬긴 것이다. =====8:28 미디안...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 이 말은 미디안 사람이 기드온으로부터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그 세력이 매우 약화되었음을 가리킨다. 사실상 미디안사람들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살아 남았으며 유목생활도 계속 유지하였지만(사 60:6)더 이상 이스라엘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사십 년에 그땅이 태평하였더라 - 7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던 미디안 세력이 철저히 진멸됨으로써, 이스라엘은 다시 평화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적 평화 이면에는 타락의 움직임이 음틀거리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생전에도 에봇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등 가증한 행실을 버리지 못하였으며(27절) 기드온의 사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알을 열렬히 숭배하기 시작하였다(33절). 요컨대 그들은 자유와 평화를 신앙 성숙의 기회로 삼지 않고 도리어 육신의 정욕을 충족시키기위한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갈 5:13). 우리는 이러한 기사를 통해 인간의 본성에 자리잡은 우상 숭배 욕망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굳이 새겨진 이방 신의 형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늘날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황금 만능주의, 출세 제일주의, 극단적 이기주의 등도 우상 숭배나 다름이 없다(사 60:6). =====8:29 여룹바알이...자기 집에 거하였는데 - 기드온이 노년(老年)에는 사사로서의 공직을 사퇴하고 조용히 집에 머물면서 여생을 보낸것을 가리킨다(Wycliffe). =====8:30 본절은 기드온이 아내를 많이 얻어 70명이나 되는 아들을 두었을 만큼 이스라엘사회에서 큰 지위를 얻었던 사실을 암시한다. 특히 이것은 기드온이 비록 왕위를 거절했으나 왕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이 짧은 구절을 통해서 기드온이 말년에 영적으로 매우 타락했음도 시사해 주고있다. 아내가 많으므로...아들이 칠십 인이었고 - 기드온은 많은 아내들 뿐만 아니라 최소한 한명 이상의 첩(妾)을 거느리고(31절) 마치 큰 방백과 같이 호사스러운 생활을하였던 것 같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일부 일처 제도를 세우셨으나(창 2:18-25) 이스라엘 백성은 당시 주변 여러 나라의 문화적 영향을 받아 일부 다처 제도를 공공연하게실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기드온은 사사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방 악습을 따랐으며, 그로 인해 70명의 아들이 거의 몰살당하는 징벌을 받게 되었다(9:5). 이와 관련해서는 창 4:16-24 강해, '일부 다처제' 및 창 16:1-6 강해, '축첩 제도의부당성'을 참조하라. =====8:31 세겜에 있는 첩 - 기드온의 본래 거주지는 '오브라'였다(6:11). 그런데 그는 첩을 세겜에도 두고 있었다. 이 사실은 기드온이 첩들을 여러 지역에 많이 두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한편 '세겜'(Shechem)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50Km 정도 떨어진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한 성읍이다(수 20:7). 아비멜렉 - 이 이름의 뜻은 '왕의 아비' 또는 '아버지는 왕이시다'란 의미이다. 이 이름은 그의 아버지 기드온의 지위에 따라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기드온이낳은 70명의 아들 중 유독 이 '아비멜렉'이 언급된 것은 훗날 그가 왕위 찬탈 사건을일으켰기 때문이다(9장). =====8:32 아비에셀 사람 - 므낫세 지파 중 아비에셀의 가계(家系)에 속한 자들을 가리킨다(수 17:2). 기드온과 그 아비 요아스도 이 아비에셀 사람이다. 6:11 주석 참조. =====8:33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하고 - 사사의 죽음은 곧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과 직결되었다(2:19; 3:12; 4:1; 6:1).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은 주로 우상 숭배였으며, 이에 따라 여호와 신앙은 그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또한 이스라엘 전체 역사 가운데 가장 심각한 우상 숭배는 바알 숭배로서 이스라엘의 분열 왕국 이후에도 계속될 정도로 그 뿌리가 깊었다(왕하 10:18,28; 21:3).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할 때도 이 종교는 이스라엘 가운데 잔존해 있었다(렘 2:8). 바알브릿 - 구약시대 당시 세겜지역에 존속했던 가나안인들의 바알 신이다. 그뜻은 '언약의 바알'로 곧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바알과 언약을 맺었음을 보여 준다. 즉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을 매우 열렬히 숭배했음을 가리킨다. 한편 '바알브릿'은 '엘브릿'(언약의 엘, 또는 언약의 하나님)으로도 알려졌는데(9:46),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섬기며 그와 언약을 맺었음을 의미한다(34절). 이처럼 '바알브릿'이란 말은 이스라엘 사회에 우상 숭배가 극심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용어이다(MatthewHenry's Commentary, Vo1.2.p. 176). =====8:34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지아니하며 - 이는 곧 저들이 일전에 하나님 앞에서 패역하여 대적들의 손에 빠졌던 것(6:1-5)은 물론 그들이 부르짖자 기드온을 통해구원해 주셨던 역사(6:6-7:25)마저 모조리 잊어버린 것을 가리킨다. 만일 그들이 이러한 과거를 조금이라도 기억하였더라면 사사기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타락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8:35 그의 집을 후대치도 아니하였더라 -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진 이후 이전에 바알 단을 파괴하였던 여룹바알(6:25-32) 곧 기드온의 가정을 선대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과거 기드온에게 대대로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그의 집에 충성을 보였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자세이다(22절). 바로 이러한 점은 훗날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 거민들과 공모하여 반역을 도모하게된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9장). ----------- 7장에 이어 기드온이 미디안 족속을 계속 추격하여 요단 동편 헤레스 비탈 전쟁에서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아 돌아오는 기사이다(1-21절). 그리고 그 이후 여호수아의 마지막 행적에 관한 기사이다(22-35절). 일찌기 소심하고 겁 많던 기드온(6:15)은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6:34) 자기를따르는 자 300명으로 1천배가 넘을 만큼 많은 수의 적을 대적하여 섬멸시키는 놀라운 전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했던 기드온도 이토록 엄청난 승리를 얻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자기들을 직접 부르지 않았다는 일로 기드온에게 트집은 잡았었다(1-3절). (2) 기드온과 그의 종자 300명이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다가 지치고 주렸을 때 자기 동족인 숙곳 사람들(5절)과 부누엘 사람들(8절)에게 양식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기드온은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한편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만사 형통(萬事亨通)이라고 생각하여 인생길에 어떠한 난관도 없는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이 땅에 성도를 두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화목의 대사로서의 복음 전파 사명 완수와 함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는, 주의 사랑-생명 안에서 거룩하고 복된, 지고지선의 진복, 곧 참된 견인과 경건 이룸의 믿음-소망-사랑의 성장성숙 위함이니!!)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진리(롬 5:20)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 말씀 그 자체에 대해서도 진정.. 주님의 마음으로 듣는 귀가 열리기를..사도 바울도 영으로 듣기를 권고하였다!!)) 그 예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가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그를 넘어뜨리기 위한 온갖 음모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사도들을 통해 교회가 점점 확장될 때에도 성도들에 대한 박해는 더욱 거세어졌다. 이런 점에서 [살아 생동하는, 발휘되는 바 주님의 믿음,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진정한 참 믿음으로서의]믿음이라는 것은 성도들에게 몰아닥치는 시련을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련과 부딪쳐 끝까지 싸울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라 하겠다. 만일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뒤쫓던 중 도중에서 만난 어려움으로 인해 그 쫓는 일을 포기했더라면 결코 그는 대적들을 섬멸시키는 전과를 거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할 때에 자기들에게 시련이 찾아올 때마다 믿음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지도자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었다. 그리하여 결국 그들 모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나아갔던 인물이었으므로(민 14:1-25) 약속의 땅에 들어갔다. 이러한 출애굽 역사에 대하여 히브리서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분명 순종하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히 3:16-19). 1. 에브라임 지파의 불만(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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