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삿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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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7장 [549.내주여뜻대로]


#기드온 =  나무를 베는 자(벌목꾼), 즉 강한 용사'...여룹바알('바알로 직접 싸우게 하라)

......[[기드온과 300용사 전투]]

지중해 연안에 있는 갈멜산, (바로 남쪽에 기손강 하류)...기손강이 흐르는 상류 길보아산, 그 동편 구릉지대에 펼쳐진 이스르엘 골짜기(남쪽은 길보아산-그 밑은 에브라임산지, 골짜기 북쪽은 모레산...그 인근에서는 평지에 가까움...그대로 요단까지 이어짐), 골짜기 그 북쪽에 모레산(모래 언덕), 모레산 남쪽에는 길보아산(그 기슭에 하롯샘 위치), 모레산 북쪽에 다볼산이 위치하며(모레산-다볼산 그 사이는 엔돌), 이스르엘 골짜기(거의)는 요단강까지 이어지고 있다....길보아산 기슭에서부터 발원한 두 갈래 하천, 이스르엘 골짜기 동편에는 하롯강이 요단으로 흘러들어가고, 서편에는 기손강이 대해로 흘러들어간다.

....모레산은 남쪽으로 길보아산과 북쪽으로 다볼산 사이에 위치해 있다. 날씨가 좋을때는 모레산 정상에서 남동쪽과 벧산(벧샨)과 남서쪽의 므깃도를 볼 수 있다. 하롯샘에서 300명으로 추려진 이스라엘은 야간 기습작전을 준비한다. 100명씩 무리를 나눠 미디안과 아말렉 진영으로 들어가되 나팔과 항아리에 담은 횃불을 준비하고, 적 진영 근처에서 나팔을 불면서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고 적을 놀라게 하는 작전이었다. 아래 사진에서 당시의 대치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사사기 7장 1절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여기서 기드온의 전투에 관한 시편의 언급은 당시 미디안 아말렉의 진영의 위치를 특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주는 미디안에게 행하신 것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소서 그들은 엔돌에서 패망하여 땅에 거름이 되었나이다"(시편 83:9-10)

밤에 길보아산 기슭 하롯샘에서 출발한 기드온과 300명의 군사들은 모레산 너머 엔돌에 있는 적진으로 다가갔다. 야간기습에 놀란 미디안 아말렉 군사들은 벧샨 방면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기드온과 이스라엘은 (에브라임까지 합세하여) 요단강 너머까지 추격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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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사사로 선택 하셨습니다. 

1.하나님은 그를 통해 미디안의 압제에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전 먼저 그의 집에 있는 바알 제단을 없애버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이름은 ‘요아스’라는 사람 입니다. 그 뜻은 ‘보호하며 붙드시는 여호와, 여호와의 불 방어벽’이란 뜻 입니다. 

그러한 이름을 가진 사람의 집에 여호와가 아닌 바알을 위해 불을 피우는 제단이 있었으니 참 모순적 입니다. 

기드온의 집에 있던 바알을 위한 제단은 개인용이 아니라, 성읍 사람들 모두가 바알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사용하던 제단이기에 누구나 쳐다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성읍 사람들이 찾아와 바알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단을 집에 가지고 있었으니,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 역할을 했거나 아니면 제단을 지키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서 돈을 벌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알 제단은 기드온 집안의 명예와 재물을 가져다 주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바로 이 바알 제단을 파괴하라, 새로 주를 위한 제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 그 나무로 !!) 기드온의 아비에게 있는 7년된 둘째 수소를((=주님을 떠난 7년간을 속죄하는 예물을 암시?...그렇다면 기드온 자신에 대한 속죄는?...Q이 친히 나타나심 인해 용납하심으로써 이미 처리해 버리셨다 여기셨음을 의미!!))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제단 위에 예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주님은  왜 불신세상과 거듭난 믿는이에 대한 다루심의 태도가 그토록 다를까요?...

불신세상에 대해서는 주님 안으로 들어오기를 거절하고 사탄의 거짓-미혹-유혹따라 마귀 자식으로 살기를 선택함에 대해 안타까워하시나, 믿는이가 주와 하나되어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며,  더 나아가 소명과 사명따라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복음 전파함 통해 듣고-돌이켜 회개하여 믿고 구원 얻기까지 버려두심 가운데 두심, 한편 거듭난 믿는이에 대한 태도는, 이미 십자가로 대가를 치루고 되사오신 이들이니, 극진히 사랑하시기에, 지고지선-최상의 진복, TUQ안에서 그리스도로 살기로 한 약속따라, 그분과 하나됨으로써 이룰 바 왕-선지자-제사장의 기름부음 받아 모든 피조세계를 섬기며 다스릴,Q의 참 아들들이자 주님 나라의 영원한 친 백성의 그 명분따라 이 땅에서도 그리스도의 대사로 사는 그 삶 살기를 바라시며, 영혼의 잠에 빠져 있는 상태, 모든 나태-불순종-자기연민에서 깨어나, 인생의 참 의미는 Q말씀안에서 누릴 지성소(드비르)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걷는 길로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 고난과 징계를 베푸심>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우상을 먼저 제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나에게 좋아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나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기드온이 우상을 찍어내지 못하면, 계속해서 미디안의 괴롭힘 속에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양자택일의 순간입니다!!...거듭난 영혼, 참되게 믿는이에게는 누구나!! 반드시 그 순간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우상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들도 계속해서 죄의 노예로 살아가며 하나님으로부터 진노의 심판과 벌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혹시 우리 삶에 하나님께서 끊어내라고, 찍어버리라고 말씀하시는 죄악은 없습니까? 결단하고 버릴 수 있기를...

2,기드온은 바알의 제단을 허물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아버지가 관리하고, 모든 성읍 사람들이 사용하는 제단을 대낮에 허문다는 것은 무척이나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성난 바알 추종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일 입니다. 기드온은 목숨을 걸고 이 일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당시 성읍 모든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신이며, 최고 신이라고 여기며 섬기는 바알의 제단을 허문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겠습니까? 

기드온이 얼마나 큰 용기를 가지고 이 일을 행했을지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의 아버지가 관리하고 있던 바알 제단은 그의 집에 큰 경제적 수익도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그것을 허물었을 때 가족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3.그러나, 그는 주께 순종합니다..죽기를 각오하고, 최우선적으로 이 일을 행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와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한 기드온은 환한 대낮이 아닌 컴컴한 밤중에 이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알의 단을 허물고, 아세라 우상을 찍어버렸고, 그 옆에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제단을 쌓고, 수소를 잡아 하나님께 제사 드렸습니다.

4.마땅히 닥칠 일,  가슴 이픈 일이 예상됨에도 기꺼이 감수할 각오를 하며!! 가슴 아프게 주께 맡기며 오히려 중보-중재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성읍 사람들은 바알의 제단이 허물어진 것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바알 제단이 무너진 것을 보고 화가 난 사람들은 수소문하여 결국 이 모든 일이 기드온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은 당장 요아스의 집에 찾아가 기드온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바알 제단을 부쉈다는 이유로 기드온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가나안 족속 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인 므낫세 지파 사람들 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는 자들이 바알의 제단이 허물어진 것을 보고 분노하고 있는 것을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우상숭배에 심취해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표면적 문제는 미디안의 압제를 당하고 고통 당하고 있는 것이었으나, 진짜 문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고 있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 였습니다.

5.하나님은 그 때, 일하십니다..

...그분의 주권에 끝까지 죽기까지((비록 그 일로 인해 목숨을 잃게 하심으로써 그분께로 취하여 가시더라도, 진정 이땅에서의 별리, 곧 죽게 하신다면 기꺼이 죽으십시다..영생 안으로 들어감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십시다!!)) 순종하시기를..

((주께서 움직이신 바))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기지를 발휘하여 바알이 정말 신이라면 그가 자신의 제단을 훼파한 기드온을 직접 치도록 자신의 아들을 내버려두라고 말했습니다. 

성읍 사람들은 요아스의 말을 듣고 기드온을 죽이려고 했던 마음을 돌리고, 바알이 기드온을 직접 심판하고 벌 줄 것을 기다리기로 결정 합니다. 

이 사건으로 기드온은 ‘여룹바알’이란 별명을 얻게 됩니다. ‘여룹바알’이란 말은 ‘바알과 다투는 자’란 뜻 입니다.

6.이제 비로소 진정한!!. 세상의 빛과 소금 됨의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자, 이와 같이 기드온이 목숨을 걸고 자신의 집에 세워진 바알 제단을 제거하자, 그제서야 하나님은 그를 통해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34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예수님도 똑 같은 표현을 쓰고 계셨습니다...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가 사사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 입니다.

33절 말씀을 보니까 미디안 사람들이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과 연합하여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 이스르엘골짜기는, 그  남서쪽이 바로 요한계시록에서  아마겟돈 전쟁이 벌어지는 바로 그 므깃도 지역 입니다.)) 

나중에 나오겠지만 무려 13만5천여명에 달하는 엄청나게 많은 병력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이스르엘 골짜기에 모여 있는 것입니다. 

아마 그 모습을 보았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적군의 숫자에 압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임한 기드온은 용기를 내어 나팔을 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집 했습니다. 

35절에 기드온을 통해 소집된 지파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므낫세, 아셀, 스불론 납달리 지파인데 3만2천여명입니다. 

왜 지금 엄청난 숫자의 적군과의 싸움을 앞두고, 기드온은 열두 지파를 다 소집하지 않았을까요? (소집해도 <자기네와는 당장 무관하다고>응답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성경학자들은 사사시대 때 이스라엘 열두 지파들의 연대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미디안 군대는 지난 7년 동안 강력한 낙타 부대를 통해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습니다. 낙타 부대는 산지로는 잘 가지 않고, 평지로만 다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 군대를 피해 산 속으로 굴 속으로 도망쳐 숨어 지낸 것이죠. 

기드온의 나팔 부름에 응하지 않은(않았을..) 이스라엘 지파들을 살펴보면 유다, 시므온, 베냐민 지파와 같이 산지에 사는 지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미디안의 침략에도 비교적 피해가 적은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기드온이 나팔을 불었을 때도 미디안과의 전쟁에도 잘 나서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싸움을 위해 지파를 소집 했으나, 생각보다 많이 모이지 않자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7,너그러우신 주님, 친절한 하나님의 임마누엘의 징표, 그 사인을 알게 하십니다!! 

((발휘하는, 도약하는, 전진하며 업그레이드 되는 산 믿음으로!!)) 구하는 자에게  주님은 친히!! 임마누엘의 주관적 체험과 경험의 깊이를 ((평생에 걸쳐 전존재에 각인되도록!!)) 

이에 그는 하나님께 징표를 구했습니다. 그 유명한 기드온의 ‘양털’ 사건 입니다. 

그는 양털 한 뭉치를 타장 마당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말라 있으면 하나님께서 이전에 하신 말씀대로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임을 믿기로 결정합니다. 다음 날이 되자 그의 말대로 주변 땅은 말라 있었고, 양털은 이슬에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이 정도 되면 “하나님, 제가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역시 하나님 뜻은 정확하십시다.”하고 나가서 싸울만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기드온은 또 한 번 표지를 구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양털의 이슬은 마르기가 쉽지 않지만 땅은 해가 뜨거나 바람이 불면 마르기 쉬운 성질을 갖고 있는 거죠. 그래서 혹시 전에 자신이 구했던 표지에 대하여 ‘하나님의 하신 일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자연 현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번에는 반대로 구했습니다.) 이번에는 땅은 다 젖고, 양털은 말라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번에도 그의 요청대로 해주셨습니다....많은 분들이 기드온의 양털 장면을 보고, 기도할 때 표지를 구합니다. 

((아직 믿음이 정직하며!!, 순전-온전-완전-순결하신, Faikthful and True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기를...정녕 그렇게 되기를 주님은 바라십니다만...., 동시에, 한편으로 다시 마음에 곰곰이 그 동기의 순수성을 반드시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 사사기는 지금 뒤로 갈수록 이스라엘을 구원받기 위해 선택된 사사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어 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 보다 앞선 사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여 갔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있었던 것 아닐까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두 번씩이나 양털을 통해 표지를 구했던 것 아닐까요.... 우리는 신앙의 밸런스를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표지를 구하는 것이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불신의 표시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의 "쉬운길 = 넓은길이 좋은길"이라는, 유혹하는 속삭임에 대해, 떠오르는 마음의 생각따라 그대로 행하시지 않고, 오히려 그 근본 동기를 (("유일한 참" =지고지선, 최상의 기준이신 Q..말씀하시는 Q, 그 Q 경외함..안에서 비추어 점검해 보시고서는..주예수님은, 시험 받으실 때  분명히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하심으로써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이 부족한 기드온의 요청에 응답해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 양털 사건을 통해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이스라엘 진영에서 전쟁을 하기 위해 모인 숫자가 3만 2천명 입니다. 많은 숫자 같아 보이지만, 미디안 군사는 13만 5천명이나 됩니다. 

적군이 약 4배나 더 많은 상황 입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절대로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기드온은 ‘어떻게 이 적은 병력을 가지고 미디안 군대를 이길 수 있을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8.우리 연약함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내 생각과, 기대와 반대로 말씀하며 이끄신다..여겨질 때에는!!!, 그 때조차. "놀라운 일 행하시려나 보다" 의 반응으로, 오직 주님을 절대 긍정-절대 가쁨-절대 신뢰-절대 감사로!! 오히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눈에 마우증거 아니뵈어도,,"하는 자세와 태도로 <이끄시며, 하자 하시는 그대로> 절대 순복하십시다,,오늘 하루 주님 뜻따라 주님의 삶 살기를 선택하십시다 ))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은 기드온이 놀랄만한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기드온아, 너와 함께 있는 군사가 너무 많다.” 

얼마나 충격적입니까? 지금 적군이 이스라엘보다 군사 숫자가 4배는 더 많은데,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이스라엘 군사가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이유인즉슨 만일 이대로 이스라엘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미디안 생각보다 별 것 아니었네? 우리가 생각보다 힘이 세구나?” 하는 식으로 교만하게 될 것을 방지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사기 7장 2절 말씀을 봅시다. “(삿 7: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미디안과 싸우기 두려운 자들은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3만 2천 명 중에 무려 2만 2천명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스라엘 전력의 2/3가 떠난 것입니다. 그 결과 이제는 이스라엘과 미디안의 군대 숫자 차이가 4대 1에서 13대 1로 바뀌었습니다. 

이스라엘 병사 한 사람이 미디안 사람 13명을 상대해서 싸워야 하는 더 불가능해 보이고 힘든 전쟁으로 바뀐 것입니다. 기드온은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번 더 기드온에게 지금도 너무 군사들이 많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기드온은 또 다시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 중 싸울만한 자격이 있는 자를 택하시기 위해 병사들을 물을 마시는 하롯샘으로 데리고 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웬만한 장소에 가면 다 마실 물을 구할 수 있습니다. 물이 없으면 돈을 주고 사먹어도 됩니다. 그러나 지금 본문의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물이 귀합니다. 게다가 무척 더운 지역 입니다. 그러니 시원한 샘물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물 속으로 첨벙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손에 잡고 있던 병기를 다 내려놓고, 샘물 앞에 두 무릎을 꿇고 뜨거운 태양에 더워진 머리를 물 속에 담그며 벌컥벌컥 물을 마신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손으로 물을 움켜 입에 대고 혀로 핥아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숫자가 정확하게 300명 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300명을 미디안과 싸울 정예의 용사로 선택하셨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왜 하나님께서 이 300명을 고르셨는지 질문해 왔습니다. 과연 물 마시는 자세와 전쟁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성경 학자들은 아마도 이 300명이 물을 마시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한 손에는 병기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물을 마신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전쟁터에서 마른 목을 축일 수 있는 물을 만나도 주변에 있을 적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을 수 있는 침착하고 신중한 사람들만이 전쟁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300명은 전쟁에 어쩔 수 없이 의무감으로 나온 자들도 아니요, 이스라엘을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에스더도 그랬지요)는 마음으로 나온 사람들 입니다. 

자, 이제 미디안과 이스라엘의 병력 차는 더 벌어져 450대 1이 되었습니다. 누가 봐도 전력 차이로 인해 미디안이 이길 수 밖에 없는 전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병사들의 숫자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이 불가능해 보이는 450대 1의 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확실히 온 천하에 알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자, 300명 밖에 안 되는 군사를 이끌게 된 기드온은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불신과 의심이 찾아왔습니다. 

“아니 어떻게 300명으로 13만 5천 명을 상대한단 말인가?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이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괜히 싸우러 나갔다가 개죽음만 당하는 것 아닐까?” 

이와 같이 겁에 질리고 두려워하는 기드온을 향해 하나님께는 또 다시 승리의 표지를 보여주셨습니다. 

9.더 풍성한 은혜...더 놀라운, -항상-플러스의 은혜로 굳센 확신 불러 일으켜 주고 계십니다.

[[마치...요건 몰랐지..??하시는 우리 하나님, 우리 아버지!!...찬양합니다..^0^!!]]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먼저 기드온에게 미디안 진영을 염탐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기드온이 본 미디안 진영은 끝을 알 수 없는 병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삿 7:12)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누구라도 300명으로 이 수다한 적군을 상대하려면 오금이 저리고 겁이 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충직한 부하 <부라>와 함께 단 둘이 몰래 염탐 나간 기드온은 마침 미디안 두 병사가 하는 이야기를 엿듣게 됩니다. 

“이보게, 내가 꿈을 꾸었는데 말일세, 보리빵 한 덩어리가 산에서 우리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왔어. 그렇게 장막 가까이로 굴러 들어오더니만, 그 보리빵 덩어리가 장막을 치니 장막이 “와르르”하고 무너지는 게 아닌가!”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또 다른 미디안 병사가 말했습니다. “그 꿈은 다른 꿈이 아닐세.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란 자의 칼을 나타내는 꿈이야. 하나님이 미디안 사람들과 우리 진영을 그자의 손에 넘기신 거야.” 

조금 전 미디안 병사가 말한 ‘보리빵’은 고급 음식이 아닙니다. 서민들이 일상에서 자주 먹는 매우 값싼 빵 입니다. 

또한 우리 나라 성경에는 ‘덩어리’로 해석된 히브리어는 ‘말라 비틀어진’이란 해석도 가능 합니다. 

즉 미디안 병사가 꿈에서 본 것은 ‘말라 비틀어진 값싼 보리빵’이었습니다. 갓 구운 빵도 아니고, 척박한 땅에서 자란 거친 보리 빵 입니다. 

이 말라비틀어진 보리빵은 기드온을 상징 합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택하신 기드온이 얼마나 연약하고 평범한 사람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자기 자신을 말라비틀어진 값싼 보리빵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얼마나 볼품 없는 빵 입니까? 

서민들도 돈이 없어서 사먹는 빵이지, 돈만 있으면, 보리 빵이 아니라 밀 빵을 사 먹는 시대였습니다. 허나 하나님은 이와 같이 연약하고 볼품 없는 자를 통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부족하고 작은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그 사람이 힘이 없고 연약하고 볼품 없을수록 하나님의 크심이 더 잘 나타나기 때문 입니다. 

내 자신이 특별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 입니다. 자신은 특별한 재능도 없고, 가진 것도 많치 않아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더러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요. 우리 하나님은 ‘말라비틀어진 보리빵’ 같은 인생도 사용하십니다. 

말라비틀어진 보리빵 같은 보잘 것 없는 인생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민족을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권능의 손에 붙들린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드온과 삼백 용사가 사용한 무기도 매우 독특 합니다. 빈 항아리, 항아리 안에 든 횃불, 나팔 이게 전부 입니다. 칼 한 자루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은 450대 1이라는 불가능한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말도 안되는 것 같은 일이 가능했을까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전쟁이기 때문 입니다. 

결국 미디안 군사들은 기드온과 삼백용사들의 횃불과 나팔 소리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며 서로 자기들끼리 칼로 싸워 자멸해 버리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입니다. 13만 5천명을 상대로 300명이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을 들고 싸워 승리한 놀라운 전쟁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돈도 있어야 하고, 혹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야 하고, 명문 대학을 나와야 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그러한 것들이 없으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의 관점 일뿐 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습니다. 말라비틀어진 보리빵 같은 인생도 주님의 손에 붙들리면 천하의 역사를 움직이는 주인공이 됩니다.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과 같이 전쟁에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이는 평범한 물품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끝을 알 수 없는 적군을 이기는 승리의 도구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능력 입니다. 기드온과 삼백용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인간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백한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행복은 내 자신의 능력이나 소유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은 온전히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 될 것이고, 가장 풍성한 삶이 될 것입니다. 

기드온과 삼백용사가 뛰어난 자라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권능이 크신 분이시기에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크시고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매일매일 이 세상에서 놀라운 승리를 쟁취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드온이 미디안을 치다

.....[막9:23..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1.  ((삿6:34..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먼저 자신의 마음가짐-태도-자세 정비하되 모든 거리낌 토설허며 회개하고, 오직믿음으로 구하고-기대하며-기다리며 앙망-주목-응시하며 바라보는 기드온에게 성령이 임하셨으니!! ..주 예수님도 똑 같이 그러하셨다..참되게 믿는 우리에게도 이미 허락되어 있다!!..[눅4:18 ( 사61:1,2)...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3만2천명이) 일찍이 일어나 [길보아 산]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13만5천여명)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이스르엘 평야 지대]에 있었더라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이제 너는 [전쟁에  소집된 이들에게 대한 규례대로!!]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길보아 산의 이명.. "자갈-돌이 많은 고지대 지역"의 뜻.3만2천명..]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6.  (서서)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8.  이에 (그 300명)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에 있었더라

9.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11.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두렴없이]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12.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13만5천명..8:10.

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14.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18.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19.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2경=밤10-새벽2시...이경 초는 10-11시 사이)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21.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사르단, 여리고 북쪽)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요단강 건너 동편 지역)에 이르렀으며

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24.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고

25.  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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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7장

1.  Then Jerubbaal, who is Gideon, and all the people that were with him, rose up early, and pitched beside the well of Harod: so that the host of the Midianites were on the north side of them, by the hill of Moreh, in the valley.

2.  And the LORD said unto Gideon, The people that are with thee are too many for me to give the Midianites into their hands, lest Israel vaunt themselves against me, saying, Mine own hand hath saved me.

3.  Now therefore go to, proclaim in the ears of the people, saying, Whosoever is fearful and afraid, let him return and depart early from mount Gilead. And there returned of the people twenty and two thousand; and there remained ten thousand.

4.  And the LORD said unto Gideon, The people are yet too many; bring them down unto the water, and I will try them for thee there: and it shall be, that of whom I say unto thee, This shall go with thee, the same shall go with thee; and of whomsoever I say unto thee, This shall not go with thee, the same shall not go.

5.  So he brought down the people unto the water: and the LORD said unto Gideon, Every one that lappeth of the water with his tongue, as a dog lappeth, him shalt thou set by himself; likewise every one that boweth down upon his knees to drink.

6.  And the number of them that lapped, putting their hand to their mouth, were three hundred men: but all the rest of the people bowed down upon their knees to drink water.

7.  And the LORD said unto Gideon, By the three hundred men that lapped will I save you, and deliver the Midianites into thine hand: and let all the other people go every man unto his place.

8.  So the people took victuals in their hand, and their trumpets: and he sent all the rest of Israel every man unto his tent, and retained those three hundred men: and the host of Midian was beneath him in the valley.

9.  And it came to pass the same night, that the LORD said unto him, Arise, get thee down unto the host; for I have delivered it into thine hand.

10.  But if thou fear to go down, go thou with Phurah thy servant down to the host:

11.  And thou shalt hear what they say; and afterward shall thine hands be strengthened to go down unto the host. Then went he down with Phurah his servant unto the outside of the armed men that were in the host.

12.  And the Midianites and the Amalekites and all the children of the east lay along in the valley like grasshoppers for multitude; and their camels were without number, as the sand by the sea side for multitude.

13.  And when Gideon was come, behold, there was a man that told a dream unto his fellow, and said, Behold, I dreamed a dream, and, lo, a cake of barley bread tumbled into the host of Midian, and came unto a tent, and smote it that it fell, and overturned it, that the tent lay along.

14.  And his fellow answered and said, This is nothing else save the sword of Gideon the son of Joash, a man of Israel: for into his hand hath God delivered Midian, and all the host.

15.  And it was so, when Gideon heard the telling of the dream, and the interpretation thereof, that he worshipped, and returned into the host of Israel, and said, Arise; for the LORD hath delivered into your hand the host of Midian.

16.  And he divided the three hundred men into three companies, and he put a trumpet in every man's hand, with empty pitchers, and lamps within the pitchers.

17.  And he said unto them, Look on me, and do likewise: and, behold, when I come to the outside of the camp, it shall be that, as I do, so shall ye do.

18.  When I blow with a trumpet, I and all that are with me, then blow ye the trumpets also on every side of all the camp, and say, The sword of the LORD, and of Gideon.

19.  So Gideon, and the hundred men that were with him, came unto the outside of the camp in the beginning of the middle watch; and they had but newly set the watch: and they blew the trumpets, and brake the pitchers that were in their hands.

20.  And the three companies blew the trumpets, and brake the pitchers, and held the lamps in their left hands, and the trumpets in their right hands to blow withal: and they cried, The sword of the LORD, and of Gideon.

21.  And they stood every man in his place round about the camp; and all the host ran, and cried, and fled.

22.  And the three hundred blew the trumpets, and the LORD set every man's sword against his fellow, even throughout all the host: and the host fled to Bethshittah in Zererath, and to the border of Abelmeholah, unto Tabbath.

23.  And the men of Israel gathered themselves together out of Naphtali, and out of Asher, and out of all Manasseh, and pursued after the Midianites.

24.  And Gideon sent messengers throughout all mount Ephraim, saying, come down against the Midianites, and take before them the waters unto Bethbarah and Jordan. Then all the men of Ephraim gathered themselves together, and took the waters unto Bethbarah and Jordan.

25.  And they took two princes of the Midianites, Oreb and Zeeb; and they slew Oreb upon the rock Oreb, and Zeeb they slew at the winepress of Zeeb, and pursued Midian, and brought the heads of Oreb and Zeeb to Gideon on the other side Jor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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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7장 (개요)

제6장에서 기드온이 하나님과 어떻게 대화를 나누었으며 바알을 어떻게 쳐부수었는가 하는 그의 공적을 읽었다. 본장에서는 기드온이 출전해 이스라엘군을 지휘하고 미디안 군대를 패주시킨 일을 살펴보게 된다.

1.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군대의 수효를 3백 명으로 줄이도록 명령했다  (1, 8).

2.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용기를 주시기 위해 적의 진영으로 가 한 미디안 군사가 꿈 이야기하는 것을 몰래 엿듣도록 했다(9-15).

3. 기드온은 적의 진영으로 가 적군과 싸우지 않고 먼저 그들을 놀라게 했다(16-20).

4. 기드온의 공격은 성공했다. 그들은 적군들을 도망가게 했고, 흩어진 군사들을 전멸시켰다. 그밖의 이웃 지파들도 기드온과 힘을 합해 적군을 전멸시켰다(21-25). 이것은 여호와의 전쟁을 기록한 책 가운데서도 매우 이름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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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의 정병 3백 명(삿 7:1-8)

Ⅰ.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이끌고 미디안을 치는 데 최선을 기울여 훌륭한 장군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자 했다(1절). 

일에 전념해 조금도 지체할 틈이 없었으므로 그는 “일찍이 일어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확신한 그는 일이 지연되지 않도록 서둘렀다. 

그는 유명한 샘 곁에 진을 쳐서, 군사들이 물이 없이 고통 받는 일을 덜어 주었다. 

그 곳은 높은 지대였으므로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던” 미디안을 치기에 다소 유리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이란 결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오히려 서둘러 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가시는 것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더욱 분발해 나가야 한다(삼하 5:24).

Ⅱ. 하나님은 예정되어 있는 이 싸움의 승리에 대한 영광을 홀로 받으시기 위해, 기드온에게 그 싸움을 위해서 단 3백 명의 군사들만을 남기라고 지시하셨다.

1. 현재의 군대는 3만 2천 명이었다. 

그 중대한 일에 비하면 모집된 인원은 오히려 매우 적은 수였으며, 이제 그들과 대항하기 위해 온 미디안 사람들의 수에 비해서도 극히 적은 군대였다. 

기드온이 이 숫자로는 너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오시어 “너무 많다”(2절)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이 숫자로도 잘 싸우기 힘들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이 곳에 온 모든 사람을 쓰기에 적합치 않다는 것을 아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 안 되는 지극히 적은 사람들의 손을 통해 큰 일을 하시는 것을 가끔 발견하는데 그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그렇다. 

여선지 드보라는 “여호와를 돕지 아니한”(5:23) 자들을 비난했거늘, 하물며 이렇게 중요한 싸움에서 자원해 온 자를 돌려보내야만 했는가? 물론 그렇다.

(1)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일을 수행하시는 데 많은 인원이 필요치 않으며, 또한 사람의 행위로 덕을 입으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일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여기서 하나님은 미디안 사람의 수효에 비해 자기들은 너무 적은 수라고 생각하고 비겁하게 그들에게 굴복하는 겁 많은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했다. 

이제 이스라엘은 만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면 한 사람이 천 사람을 무찌를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3) 여기서 하나님은 인간이 뽐내지 못하게 하셨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자만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슬러 자긍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하셨다. 

마찬가지로 영예로운 일을 거부하는 자들은 그 승리의 영예를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하셨을 때 그들의 입에서는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는 말이 나올 것이 틀림없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해야”(고전 1:31) 하며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2. 하나님은 그들의 수를 줄이려고 두 가지 방법을 취하셨다.

(1) 하나님은 비겁하고 약한 마음을 가진 자들은 돌아가도록 명하셨다(3절). 

요단 이편에 자리잡은 므낫세 지파를 그들의 조상으로 갖고 있던 길르앗 사람들은(민 26:30) 길르앗 산이라 부르는 높은 곳에 진을 치고 있었으므로, 엄청난 적군의 수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었다. 이것을 보고 겁을 먹고 있던 자들은 돌아가도 좋다는 지시를 들었을 때, 매우 기뻐하며 그 곳을 떠나갔다. 이와 같은 지시는 율법서에 나와 있다(신 20:8). 

기드온은 아마도 이 율법은 그들의 땅을 더 확보하려 할 때 해당하는 것이지 지금처럼 그들의 땅을 지키기에도 힘에 겨운 이런 때에 맞는 율법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군대의 힘이 얼마나 약한지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았다면 그는 이런 지시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기드온과 같은 용감한 대장 아래서라면 미디안과 같은 적을 무찌르는 일을 어느 이스라엘 사람이 두려워하겠냐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3분의 2나 되는 군사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의 대장과 함께 계시어 그들을 구하시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단지 적군에 비해 너무 빈약하게 보이는 군사력에 겁먹고 기드온의 이런 선고를 이용해 달아나 버렸다. 

그들이 그렇게 쇠퇴한 정신을 갖게 된 것은 오랫동안 남의 억압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죄의식이 노려보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감히 앞에 놓여진 죽음을 대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두려움에 떠는 약한 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합당치 않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모인 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적다.

(2) 하나님은 또다시 그들에게 면직령을 내려 단지 3백 명만 남게 하셨다.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라”(4절). 그들을 더 해고시켜야 했다.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이 우리들보다 얼마나 높으신가를 보라. 

기드온의 군대가 시스라를 친 바락의 수보다는 많았지만(4:14), 기드온은 아마도 그의 군사의 수가 매우 적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믿음으로 인한 용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그는 이렇게 위험한 싸움을 하려 하지 않고, 가장 유리한 방법을 택해 후퇴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군사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셨고, 그들의 수가 3분의 1로 줄었을 때도 여전히 “너무 많다”고 하셨다. 

여기서도 우리는 때로 교회와 그것의 이익을 약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해내는 데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고, 강력하고, 지혜롭지 않아도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수를 줄이심으로써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시는”(시 21:13) 것이다.

기드온은 그의 군사들을 물가로 데리고 가도록 명령받았는데, 그는 아마도 하롯 샘에서부터 흐르는(1절) 냇가로 그들을 데리고 갔을 것이다. 

그 곳에서 기드온이나 또는 다른 사람이 군사들이 어떻게 물을 마시는지를 살펴야 했다. 

그들은 모두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고자 했을 것이며, 기드온은 그들에게 이제 곧 싸움이 시작되면 한동안 물을 마실 수 없을 터이니 이 시간에 어서 활기를 얻도록 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명 물을 맘껏 들이켜기 위해 말처럼 무릎을 꿇고서 그 입을 물에 댔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개처럼 물을 핥지 않고 그들의 손으로 조금씩 물을 떠 빨리 입을 축였을 것이다. 

후자에 속한 사람들은 겨우 3백 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이들을 데리고 미디안 사람들과 싸울 것을 명하셨다(7절). 

먼저 행한 방법으로는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는 진지한 태도를 지닌 자들을 잘 가려낼 수 없었지만, 이제 두 번째 방법으로 해서 그런 자들을 잘 가려 낼 수 있었다. 즉 그들은,

① 오랫동안 고통을 잘 견뎌낼 수 있는 자들이었으며, 목마르거나 지치는 것을 불평하지 않고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거나 허영을 부리는 자들이 아니었다.

② 그들 자신의 만족보다는 하나님과 그들의 나라를 위해 싸우기를 조금도 지체하지 않으려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선택하시며 이들은 그것을 기뻐할 뿐 아니라 선한 일을 하는 데 매우 열심을 기울인다. 

이들의 수는 적고 힘은 매우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구하고자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 3백 명만 남기고 그 외의 사람들을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가도록” 하라고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기드온의 믿음과 용기에 커다란 시련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돌아가도록 명을 받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열성을 품고 있던 자들이었으므로 아주 멀리 떠나지 않고 이 3백 명이 싸움을 할 때 도울 수 있도록 한쪽에서 대기해 있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큰 일을 위해 더 많은 수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기드온의 군사들은 면직되고 그 수가 더욱 줄었다.

3. 싸움을 위해 든든히 무장해야 할 군대가 얼마나 허술한 장비를 갖추었는지 살펴보자. 

만일 이 3백 명이 하인들과 시종들을 데리고 있었고, 또 칼과 창으로 이중 무장되어 있었다면 더 쉽게 적을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매우 허술한 무장을 하고 있었다.

(1) “그들은 양식을 손에 들고” 있었고(8절), 짐은 뒤에 남겨 두었다. 

각자가 자기의 식량을 짊어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에 대한 하나의 시험이었다. 

곧 자기들이 짊어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식량의 전부인 그런 판국에 그래도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그들의 근면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즉 그들이 힘 자라는 한 최대의 식량을 기꺼이 운반하려 하는지를 시험하는 시련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실로 하루살이 품꾼의 생활이었다.

(2) 모든 군사는 나팔수가 되었다. 

해고당한 군사들은 이 3백 명을 위해 나팔을 두고 갔으며, 그들은 싸움이 아니라 무슨 경기에 참석하는 사람들처럼 무기 대신 나팔을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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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하는 기드온(삿 7:9-15)

군사가 이처럼 많이 줄었으므로 기드온은 믿음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도저히 싸우러 갈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의 군대를 강화시키는 대신 그의 믿음을 더욱 크게 하셨다.

Ⅰ. 하나님은 기드온이 믿음을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하나님께로 온 말씀만이 믿음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그가 바라는 것에 대해 충분한 약속을 해 주셨다(9절).

1. 하나님께서 그 행동의 근거가 되는 명령을 내리셨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기드온의 처사는 대장으로서 무모하고 지혜롭지 못한 판단으로 보였을 것이다. “일어나라”(KJV). 너희 군사가 적지만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2. 기드온의 승리는 매우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으나, 하나님은 그에게 확실한 성공을 약속해 주셨다.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그것은 모두 너의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은 그가 어떻게 일을 행할 것인지 매우 근심하고 있던(아마 그랬을 것이다) 바로 그 날 밤에 전해졌다. 

“그의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그의 영혼을 즐겁게 하셨다”(시 94:19). 이처럼 하나님은 거룩한 위로를 강하게 그리고 때맞게 내려 주신다.

Ⅱ. 하나님은 기드온의 믿음을 더할 수 있는 좋은 지주를 그에게 주셨다.

1.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미디안 진영에 몰래 가서 무엇인가를 알아오도록 하셨다.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를 데리고 가서(10절)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11절).” 

그것은 그의 믿음을 아주 강하게 할 말을 들으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연약함을 아시며, 조그만 일로도 그들이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기드온의 마음의 동요를 미리 알고 계신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내려가 그 곳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 하나님께서 말씀하는 것을 더욱 확신하도록 하셨다. 

기드온은 그가 매우 신임하는 “그의 부하 부라”를 데리고 가도록 명령받았는데, 이 부하는 아마도 바알 제단을 부술 때 그를 도운 열 사람 중에 속한 자일 것이다. 

그는 단지 부라만을 데리고 가도록 명령받았으며, 이것은 그의 부하로 하여금 그가 들은 것을 증언해 주고 이 일을 이스라엘에 알릴 때가 오면 이 말을 더욱 확고히 세울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그가 부하를 데리고 가야 했던 이유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고 아무 도움이 없는 것보다 작은 도움이라도 있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었다.

2.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다소 절망적인 광경을 보게 하셨던 것이다. 

비록 밤이긴 했지만 메뚜기 떼 같은 무수한 적군의 수를 보고(12절) 그는 매우 놀랐을 것이다. 그들이 가진 약대의 수도 모래알처럼 셀 수 없이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힘과 용기가 메뚜기보다 낫지 못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이 말을 통해 기쁜 전조를 알게 하셨으며, 기드온은 이 말을 듣고 왜 하나님이 그를 그 곳으로 보내셨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적중에서 동료들끼리 하는 말을 엿들었는데, 아마도 이들은 잠들지 않은 채 침상에 함께 있었을 것이다.

(1)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우리들이 보통 그렇게 하듯이 밤에 꿈꾼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꿈을 다시 말한다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그는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집으로 굴러오는 꿈을 꾸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이 떡이 우리 장막의 하나에 이르러(그것은 아마도 그들 진영의 본거지였을 것이다) 매우 크게 부딪혀 무너뜨려서,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묻히게 되었다(13절).” 

솔로몬은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다”(전 5:7)고 말했다. 사람들은 때로 꿈의 우스꽝스러운 공상들로 해서 혼잡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의아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2) 이 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동료가 그것을 해몽해 주었으며 이것이 기드온의 마음을 끄는 것이었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기드온의 칼날이라”(14절). 이 해몽하는 자의 말에서 그의 가족을 위해 곡식을 타작한(6:11-19) 기드온이 떡덩이로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그와 그의 군대는 밀가루로 만들어진 빵조각처럼 보잘것없고 보리떡처럼 우습게 보이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불 위에서 급히 구워 낸 떡처럼 빨리 한데 뭉쳐 보기와는 달리 강한 힘으로 이 큰 적군을 무찌르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한가?”(창 40:8) 

사람에게 이런 꿈을 꾸게 하신 것도, 이렇게 풀이하게 하신 것도 모두 하나님이셨다. 

만일 기드온이 이 꿈 이야기를 듣고 그와 그의 부하들이 그것을 해석했다면 별 의미가 없으며, 기드온에게도 별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적군을 통해 이런 해몽이 나온 것은 그것이 모든 인간의 마음과 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미리 겁부터 먹고 있는 자들은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하나님이 미디안을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대적해 싸우시는 사실을 아는 자들은 감히 싸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그를 바로 이 곳으로 가게 하시어 이 말을 듣게 해 주신 것을 알고는, 군사들의 수가 줄어 근심하던 마음에 매우 큰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큰 일을 할 보리떡으로 비유된 것을 아주 기뻐했다. 이렇게 용기를 얻은 그는 다음과 같은 태도를 취했다(15절).

1. 그는 그 일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즉 그는 즉시 머리를 숙여 하나님께 경배드렸거나 아니면 그에게 승리를 확신시켜 주시고 그것으로 용기를 얻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흘러넘쳐 팔을 들어 하늘을 우러렀을 것이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 말하고 그 분을 경배할 때 하늘로 향하는 문은 열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믿음을 북돋워 주는 찬미를 하나님께 돌려야 하며, 사소하고 우연한 일로 보이나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해야 한다.

2. 그는 그가 받은 이 위로를 그의 친구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일어나서” 곧 출전할 준비를 하자.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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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전을 편 기드온(삿 7:16-22)

Ⅰ. 기드온은 한밤중에 미디안 군대를 몹시 놀라게 했다. 

그는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박해하고 두렵게 했던 그들을 이렇게 놀라게 함으로써 패주시키고 멸하려 했다.

1. 기드온이 행한 공격은 여러 면에서 포로로 잡힌 롯을 구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적군을 공격한 그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군사의 수에 있어서도 비슷했다. 즉 아브라함의 군대는 318명이었으며 기드온의 수는 3백 명이었다. 

그들은 둘 다 군대를 나누어 밤에 공격했고, 이렇게 매우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창 14:14, 15). 

또한 기드온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었을 뿐만 아니라(미디안 사람들은 그두라의 후손이었다) 그의 믿음을 물려받은 자였다. 기드온은,

(1) 그의 군대가 적긴 했지만 3개 대로 나누고(16절), 그중 1대는 자기가 직접 지휘했다(19절). 

큰 군대(기드온은 큰 군대인 것처럼 보이려 했다)는 보통 우익, 좌익, 본부로 나뉘기 때문이다.

(2) 그는 모든 군사에게 그가 행하는 대로 하라고 명했다(17절). 

기드온은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단호하게 들려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선뜻 이 일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명령으로나 북소리로 군사들을 지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먼저 일을 행하는 것을 보고 그들로 하여금 그대로 따라 하도록 지시했다.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라.” 

우리의 대장 되시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도 이처럼 그 분의 군사들에게 명했다. 

즉 그 분의 행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끼쳐”(벧전 2:21)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따르도록 했다. “내가 행한 대로 너희도 행하라.”

(3) 그는 적군들이 방심한 채로 편히 있을 밤을 틈타 그들을 공격해 매우 당황하게 만들려 했다. 

더욱이 그의 군사는 수가 적어 잘 들키지 않는 이점이 있었다. 자정이 조금 지난 깊은 밤중에 일어나는 싸움은 상대를 더욱 놀라게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밤에 놀라는 것(시 91:5)과 밤의 두려움(아 3:8)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알고 있다.

(4) 기드온이 계획했던 것은 그 거대한 적의 무리를 놀라게 해 패주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매우 치욕적인 패배를 주려는 것이었다. 그는 군사들을 오른손에는 나팔로, 왼손에는 횃불이 든 항아리로 무장시켰으며, 이런 모습으로 적군을 향해 진격하는 것이 그에게 모욕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적군을 향해 행군한다기보다는 마치 어린아이들이 장난하는 것 같은 무장을 하고 나아갔다.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도다”(사 37:22). 

군사의 수가 적었던 것은 그의 계획을 퍽 유리하게 해 주었다. 수가 적기 때문에 이들은 들키지 않고도 적진 가까이에까지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적군이 보초를 교대할 때(19절) 그들을 매우 놀라게 해서 혼비백산시키고 이 틈을 타서 일을 벌일 계획을 했다. 

기드온은 적군을 위협해 혼돈을 일으키게 하기 위해서 세 가지 방안을 고안해 냈다.

① 시끄러운 큰 소리를 냈다. 

모든 군사들이 매우 공격적인 태도로 나팔을 불게 했고, 동시에 항아리를 깨뜨려 부수게 했다. 아마도 이들은 서로의 항아리를 맞부딪쳐 깨뜨림으로써 더욱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게 했고 이에 적군들은 매우 놀라 서로를 죽이는 사태까지 일어났을 것이다.

② 갑자기 횃불을 밝혀 주위를 환하게 했다. 

그들은 “말 아래 둔 촛불처럼” 횃불을 숨겨 가지고 왔다가 갑자기 모든 횃불을 밝혀 들어 적 진영을 번갯불처럼 눈부시게 해 놓았다. 아마도 그들은 야영 천막에 불을 질러 더욱 혼란을 빚게 했을 것이다.

③ 커다란 함성을 질렀다. 

모든 사람은 “여호와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18절) 하고 외치도록 되어 있었으며, 그들이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20절) 하고 외친 것은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들로부터 들은, “그것은 기드온의 칼날이다”(14절) 하는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드온은 그의 이름을 적군들이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 약점을 이용해 그의 이름을 외치게 했으나, 그는 하나님 없이는 그의 이름이 보잘것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을 앞세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호와를 위해 그리고 기드온을 “위해” 싸운다는 그 강한 목적의식으로 인해 군사들은 더욱 큰 용기로 싸움에 나아갈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여호와의 위대한 이름과 기드온의 이름을 외침으로써 적군을 두렵게 했다. 여호와의 칼은 모두 기드온의 성공의 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의 칼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며 인간은 그 도구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며, 인간은 크든 작든 모두가 하나님의 종이다. 적군은 두려움 때문에 패배하고 말았으며, 그들이 패배한 것은 특히 “여호와의 칼날”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손에 칼을 들지 않고도 “칼”이란 말을 외치는 것만으로 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적들도 “입으로 나오는 검”(계 19:21)에 의해 모두 달아나 버린다.

2. 미디안 사람을 멸한 이 방법은 다음과 같이 비유될 수 있다.

(1) 그것은 영원한 복음을 전파하고 나팔을 불고 어둠 속을 비칠 횃불을 그릇 속에 넣고 나아가(고후 4:6, 7) 이 세상에 있는 마귀의 왕국을 파괴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고전 1:27) 선택하시어 보리떡을 미디안의 천막에 던지셨으니,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칼이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칼이 되었다.

(2) 그것은 심판의 날에 임할 두려움으로 비유될 수 있다. 

훌륭한 홀 주교는 이에 대한 비유를 다음과 같이 적용하고 있다. 이 나팔 소리와 횃불들이 오만한 미디안과 아말렉을 혼비백산시켜 두려움에 떨게 한 것같이, 마지막 심판의 날에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 세상은 불붙고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어 사라지고 주님께서 큰 함성 속에 내려오실 것이라 한다.

Ⅱ. 이 경보작전은 훌륭한 승리를 거두었다. 

미디안 사람들은 마치 여리고의 벽들이 큰 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리듯이 아우성치며 죽어갔고, 이 광경을 보고 기드온은 “그들의 열조가 그들에게 이른 이적을”(6:13) 체험했을 것이다. 

기드온의 군사들은 그의 명을 지켜 “각기 당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고”(21절) 나팔을 불어 그들을 놀라게 하여 서로 죽이게 했으며, 횃불의 불을 당겨 그들을 멸하게 했다. 

그들은 미디안의 처소로 뛰어들어가 탐욕스럽게 적군의 피를 묻히거나 약탈하지 않고 단지 침착하게 “여호와의 구원을 보고” 있었다. 

그 구원은 단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다. 이 계획이 얼마나 큰 효과를 거두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적군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려워했으므로 모두가 이 일을 당해 매우 놀랐다. 

기드온의 군사가 번개처럼 그들을 포위하자, “그들은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다”(21절). 

그들이 이렇게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우리는 그들이 기드온 군사의 수효가 그렇게 크게 격감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은 기드온 군사들의 최후 통첩이 있은 후로 점점 더 수효를 증가시켰으리라 결론지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나팔을 불며 횃불을 든 군사들이 매우 강한 군대일 것이라는 생각에, 앞뒤를 잴 필요 없이 달아나기에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에게 이런 공포심을 일으킨 것은 다분히 초자연적인 권능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 군사들이 적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좇았으니”라는(수 23:10) 약속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친히 공포심을 그들에게 준 것이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힘이 때로 큰 두려움을 주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즐거운 위안이 되기도 한다.

2. 그들은 서로 뒤엉켜 쓰러졌다.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었다”(22절). 

이 혼돈 속에서 그들은 나팔 부는 자들과 횃불 든 자들이 진 밖에 서 있는데도 처소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고 생각해 옆에 있는 동료를 적군으로 착각하고 서로 찔러 죽였다. 

이처럼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벧전 3:6) 않도록 우리의 정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 유익한 일이다. 우리는 어떤 재앙에 처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이처럼 교회의 적들을 자기들끼리 멸하도록 하신다. 그러나 교회의 친구들이 이렇게 파멸한다면 그것은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 그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달아났다. 

그러나 날이 밝자 그만 실수로 인해 치명적 패배를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이미 다시 돌아가 이스라엘군을 무찌르기엔 너무 늦은 때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그들의 나라로 돌아갔으며 3백 명의 기드온 군사들이 그 곳을 점령하게 되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며”(잠 28:1),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래고 그 뒤를 쫓아올 것이다”(욥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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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의 승리(삿 7:23-25)

이 영광스러운 승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자.

Ⅰ. 면직되어 흩어져 있던 기드온의 군사들은 그들의 적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이 비열한 자들을 맹렬히 추격했다. 

이 일을 행한 자들은 납달리와 아셀 지파에서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은 그 때 그 먼 곳으로 온 것이 아니라 이미 그전에 군사로 지원했으나(6:35), 면직된 자들이었다. 

싸우기를 두려워했던 자들은(3절) 이 위험한 고비가 지났을 때 전리품이라도 나누어 가질 양으로 적을 추격하는 일일지라도 전심을 다했다. 

마음은 있었으나 싸움이 허락되지 못한 자들이나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군에서 면직당한 이들은 역대기하 25장 10, 13절에 나오는 “심히 노하여 돌아간” 자들과는 달랐다. 

이들은 전선에 나아가 군대를 비록 도울 수 있는 영예를 거부당했지만, 그 승리를 얻기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Ⅱ. 기드온의 소집 명령을 받아 에브라임 사람들은 요단 건너에 있는 여러 냇가를 지켜서서 돌아가는 적군들의 퇴로를 차단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이스라엘에 이와 같은 재앙을 가져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들을 전멸시키는 일을 도왔다. 

그래서 살육당한 그들의 시체는 사방에 있었다(에 6:13). “그들은 나루턱을 취하였다”(24절). 즉 그들은 강기슭에 잠복해, 도망해 오는 미디안 사람들을 잡으려 했다. 

여기에는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숨겨져 있었다(사 24:17). 

Ⅲ. 미디안 군대의 방백 두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에게 잡혀 요단에서 살해되었다(25절). 

그들은 갈가마귀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오렙이란 자와 이리라는 뜻을 지닌 스엡이란 자였는데, 그들의 이름은 아마도 성품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도망하다가 한 사람은 “바위 아래”(사 2:21; 계 6:15), 또 한 사람은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해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던(6:11) 그런 “포도주 틀” 옆에 숨었다. 

그러나 그들의 은신처는 살해당할 장소가 되었으며, 그 곳에 “여기에서 미디안의 방백들이 죽었도다” 하는 이름을 붙여 그 후손들에게 영원한 치욕으로 남게 되었다.

===호크마
...=====7:1
여룹바알 - '바알과 논쟁하다', '바알에게 대항하다'는 뜻으로 기드온이 바알(Baal)의 단을 훼파하고서 얻은 이름이다. 6:32 주석 참조.
하롯샘 -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얄룻'(Jalud) 샘으로 알려져 있다(Cundall,Hervey). 
이샘은 '이스르엘 골짜기'의 바로 북쪽 길보아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한편 '하롯'이란 지명은 다윗의 30인 용사 중 '삼훗'과 '엘리가'의 출신지로(삼하23:25) 언급된 것 외에는 성경에 더 이상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만 블레셋 군대가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기 위해 진 친 곳이 '이스르엘에 있는 샘'곁이 었는데(삼상 29:1), 이것이 하롯샘과 동일한 샘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스르엘 골짜기 주변에는 샘을 끼고 있으면서 군대가 진을 치기에 적당한 장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모레산 -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모레'(Moreh)는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이 있는 '세겜'에 속한 한 지역이다(창 12:6;신 11:30). 그런데 이 지역은 전투 장소로 묘사된 '이스르엘 골짜기'남쪽에 떨어져 위치하고 있으므로 '모레 산'과 동일시될 수 없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혹자는 모레 산은 높은 곳이므로 북쪽이며 하롯 샘은 낮은 곳이니 남쪽이라는 주장을 편다(Cassel). 그러나 이것은 막연한 주장일 뿐 위치를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을 못준다. 따라서 다만 '모레 산'은 '하롯 샘' 북쪽의 어느 한 곳일 것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다.
=====7:2
너를 좇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 사실상 기드온을 좇은 이스라엘 백성은 32,000명으로(3절) 메뚜기 떼 같은 적들과 비교할 때(12절;6:5) 그렇게 많은 수효는 아니다. 왜냐하면 무기가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는 사람의 수효와 훈련 정도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거의 판가름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36,000명의 알렉산더대제(Alexander the Great)의 군대가 60만의 바사 왕 고레스 3세(Cyrus III)의 군대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이긴 적도 역사적으로 실제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분명 그리 많지않은 수의 이스라엘군이 엄청난 병력의 미디안 연합군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수효를 줄일 것을 명하셨는데, 그이유는 다음 두가지에서였다. 즉 (1)구원의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시고(2)믿음의 정예(精銳) 용사를 뽑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세우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 한 목적은 단순히 이방의 압제를 그치게 하려는 데 국한되지 않았다. 
즉 하나님께서는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각성시켜(6:7-16)  당신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주요 목적을 지니고 계셨던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전투 인원을 극소수로 제한시킴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1)겸손히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였고 (2)구원이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삼상 14:6).
=====7:3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 하나님의 백성이 대적과 싸움에 있어서 '두려워서 떤다'는 사실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통하여 영광받으시기를 거절하셨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을 돌아가게 하셨다. 만일 이들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 커녕 스스로 자긍할 자들임에 틀림없다.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 여기서 '길르앗 산'은 요단 동편의 갓, 르우벤, 므낫세 반 지파의 지경(地境)에 걸쳐 넓게 퍼져 있는 길르앗 산지를 가리킨다. 5:17주석 참조. 
때문에 혹자는 본절의 길르앗은 '길르앗'(* )이 아니라 '길보아'(* )의 오기(誤記)라고 주장한다(Clericus, Bertheau, Cassel, Cundall). 왜냐하면 현재 이스라엘이 진치고 있는 곳은 요단 동편의 길르앗 산지가 아니라 길보아 산기슭의 하롯샘 곁(1절)이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Vol.II.p.341). 
그러나 본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길르앗'이라하면 요단 동편의 므낫세 반 지파를 일컫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서'란 말은 '-으로'라고 번역하여, 본절을 '길르앗 산으로 떠나 돌아가라'라고 번역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기드온을 따른 사람들 중에는 그와 같은 지파인 므낫세 지파 사람들이 가장 많았을 것이며, 많았던 점에 의거할 때(6:35) '길르앗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자연히 '집으로 돌아가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영역 성경 RSV도 이를'집으로 돌아가라'(let-return home)는 의미로 의역하고 있다.
=====7:4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 아마 1차 관문을 통과하고 남은 이들 백성 중에는 '졸장부'라는 비난이 두려워서 남아 있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며, 또한 전쟁의 승리 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을 불신앙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남아 있는 1만 명도 많게 보시고 다시금 재감군(再減軍)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께서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고했다(약 1:13). 그런데 본절에서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시험하신다고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각각의 문맥에 따라 해결될 수 있다. 즉 야고보 사도가 말한 시험은 인간 자신의 욕심에 미혹되어 인간 스스로 고난에 빠진 것을 의미하며, 본문에서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전쟁에 합당한 자를 고르시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해서는 2:11-23 강해, '시험의 종류와 목적'을 보다 참조하라.
=====7:5
그 혀로 물을 핥는 자 - 6절에서는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라고 언급되어있다. 
카일(Keil)의 말대로 이들은 서서 물을 움켜 조금씩 핥았던 자들이다. 그런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이들이 평소와는 달리 마음 놓고 물을 마시지 못한것으로 보아 겁장이들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Keil & Delitzsch Commentary,Vol.II,p.342). 
한편 혹자는 이들이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들보다 훨씬 재빠르므로 전쟁에 보다 적합한 자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Goslinga). 
아무튼 이들은 서서 혀로 물을 핥았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주위를 경계하면서, 방심하지 않는자들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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