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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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4장  [366 '어두운내눈밝히사'][363. 내가 깊은 곳에서][424. 아버지여나의 맘을][423. 먹보다도 더 검은][255. 너희죄흉악하나] [395 자비하신예수여] [369. 죄짐맡은우리구주] [446. 주 음성 외에는]...구주의십자가보혈로, 내주없이는 못살아, 주를아는가 주를아는가


[왕하10:15...*15...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 

 

::::: 임마누엘 나의 주여, 주님께서 절대적 진실-신실-거룩하심 같이..보혈-말씀-성령으로 오소서!!... 새롭게 하신 오늘 하루, 매순간마다.. 주께 대해, 그리고 모든 이 하나하나에 대해 그러하도록!! 오직 주님이면 족하오니...열린 하늘로부터 새로이 주님 영광 부어 적셔 점유-충만 감동하심으로 운행하사 저를 일깨우소서...주님의 기쁘신 뜻 온전히 이루소서...하나되신 주 임재 움직임 더 새로이 생생히 알리시며 주님 생각과 마음-심정 일러주시며 보이시며 깨닫게 하소서,,, 친히 주장하사 이끄시며 일하시며 행하소서...나의 그리스도 주님께서 친히 거듭난 내 안에 사심 이루사, 그리스도 주님을 살며 주님의 입의 말씀으로 내 입에 채우시는 바 감동따라 하게 하시는 말씀만 담대히 하도록 이끄소서 ::::


===언약궤를 빼앗기다

1.  [여호와께서 그의 입에 채워 전파하게 하시는바]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2.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만군의 여호와,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Q의 언약궤, 그 영광에 대한 참된 이해와, 합당한 존숭함은 있는가.., 왜 Q의 움직이심이 없었는가....이에 대한 겸비한 여쭘-근본적 문제 발견해서 처리 받기 원하는 정결/친밀함의 회복 위한 필수적인 영적 감각도 없이....구역질 일으킬 정도로 극도로 타락한 시정 무뢰배의 강탈 행위와 미신적 주술에 찌들어 부적 수준까지 하락시키는 영적 지리멸렬함 드러내고 있었음 ....

.....오늘, 동일한 영적 전투에 임할바, 그대는 오늘, 섣부름이나 짐짓 추정, 자행자지함으로써 주 영광의 이름 강탈함이 아니라!!...거듭난 참 믿는자 그대는 진정!!, 주님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주를 아는가?:::[주로 주 되시게 하라(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벧전3:8-17(15)...*8.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3.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4.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6.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엘리가 죽다

12.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13.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14.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이 떠드는 소리는 어찌 됨이냐 그 사람이 빨리 가서 엘리에게 말하니

15.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16.  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17.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삼손 사후 35년 경과시점)이었더라

===비느하스의 아내가 죽다

19.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 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20.  죽어갈 때에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21.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22.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적어도 400년동안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한 Q의 궤가 결국 승리한 블레셋 사람들에게 사로잡힌 것은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난 것을 의미하며, 그 때로부터 궤는 이스라엘안에서 독자적인 하나의 역사를 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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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4장

1.  And the word of Samuel came to all Israel. Now Israel went out against the Philistines to battle, and pitched beside Ebenezer: and the Philistines pitched in Aphek.

2.  And the Philistines put themselves in array against Israel: and when they joined battle, Israel was smitten before the Philistines: and they slew of the army in the field about four thousand men.

3.  And when the people were come into the camp, the elders of Israel said, Wherefore hath the LORD smitten us to day before the Philistines? Let us fetch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out of Shiloh unto us, that, when it cometh among us, it may save us out of the hand of our enemies.

4.  So the people sent to Shiloh, that they might bring from thence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of hosts, which dwelleth between the cherubim: and the two sons of Eli, Hophni and Phinehas, were there with the ark of the covenant of God.

5.  And when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came into the camp, all Israel shouted with a great shout, so that the earth rang again.

6.  And when the Philistines heard the noise of the shout, they said, What meaneth the noise of this great shout in the camp of the Hebrews? And they understood that the ark of the LORD was come into the camp.

7.  And the Philistines were afraid, for they said, God is come into the camp. And they said, Woe unto us! for there hath not been such a thing heretofore.

8.  Woe unto us! who shall deliver us out of the hand of these mighty Gods? these are the Gods that smote the Egyptians with all the plagues in the wilderness.

9.  Be strong and quit yourselves like men, O ye Philistines, that ye be not servants unto the Hebrews, as they have been to you: quit yourselves like men, and fight.

10.  And the Philistines fought, and Israel was smitten, and they fled every man into his tent: and there was a very great slaughter; for there fell of Israel thirty thousand footmen.

11.  And the ark of God was taken; and the two sons of Eli, Hophni and Phinehas, were slain.

12.  And there ran a man of Benjamin out of the army, and came to Shiloh the same day with his clothes rent, and with earth upon his head.

13.  And when he came, lo, Eli sat upon a seat by the wayside watching: for his heart trembled for the ark of God. And when the man came into the city, and told it, all the city cried out.

14.  And when Eli heard the noise of the crying, he said, What meaneth the noise of this tumult? And the man came in hastily, and told Eli.

15.  Now Eli was ninety and eight years old; and his eyes were dim, that he could not see.

16.  And the man said unto Eli, I am he that came out of the army, and I fled to day out of the army. And he said, What is there done, my son?

17.  And the messenger answered and said, Israel is fled before the Philistines, and there hath been also a great slaughter among the people, and thy two sons also, Hophni and Phinehas, are dead, and the ark of God is taken.

18.  And it came to pass, when he made mention of the ark of God, that he fell from off the seat backward by the side of the gate, and his neck brake, and he died: for he was an old man, and heavy. And he had judged Israel forty years.

19.  And his daughter in law, Phinehas' wife, was with child, near to be delivered: and when she heard the tidings that the ark of God was taken, and that her father in law and her husband were dead, she bowed herself and travailed; for her pains came upon her.

20.  And about the time of her death the women that stood by her said unto her, Fear not; for thou hast born a son. But she answered not, neither did she regard it.

21.  And she named the child Ichabod, saying, The glory is departed from Israel: because the ark of God was taken, and because of her father in law and her husband.

22.  And she said, The glory is departed from Israel: for the ark of God is ta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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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amuel 4 Amplified Bible

===Philistines Take the Ark in Victory

1 And the word of [the Lord through] Samuel came to all Israel. Now Israel went out to meet the Philistines in battle and they camped beside Ebenezer while the Philistines camped at Aphek. 

2 The Philistines assembled in battle formation to meet Israel, and when the battle was over, Israel was defeated by the Philistines, who killed about four thousand men on the battlefield. 

3 When the people (soldiers) came into the camp, the elders of Israel said, “Why has the Lord defeated us today before the Philistines? Let us bring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here from Shiloh, so that He may come among us and save us from the hand of our enemies.” 

4 So the people sent word to Shiloh, and from there they carried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of hosts who sits above the cherubim; and the two sons of Eli, Hophni and Phinehas, were with the ark of the covenant of God.

5 So it happened that as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came into the camp, all [the people of] Israel shouted with a great shout, and the earth resounded. 

6 When the Philistines heard the noise of the shout, they said, “What does the noise of this great shout in the camp of the Hebrews mean?” Then they understood that the ark of the Lord had come into the camp. 

7 The Philistines were afraid, for they said, “God has come into the camp.” And they said, “Woe [disaster is coming] to us! For nothing like this has happened before. 

8 Woe to us! Who will rescue us from the hand of these mighty [a]gods? These are the gods who struck the Egyptians with all kinds of plagues in the wilderness. 

9 Take courage, and be men, O Philistines, so that you do not become servants to the Hebrews, as they have been servants to you; act like men and fight!”

10 So the Philistines fought; Israel was defeated and every man fled to his tent. It was a very great defeat, for thirty thousand foot soldiers of Israel fell. 

11 Also the ark of God was taken; and the two sons of Eli, Hophni and Phinehas, were killed.

12 Now a man [from the tribe] of Benjamin ran from the battle line and came to Shiloh that same day with his clothes torn and dust on his head [as signs of mourning over the disaster]. 

13 When he arrived, Eli was sitting on his seat by the road, keeping watch, because his heart was anxious about the ark of God. When the man arrived to report [the news] in the city, everyone in the city cried out [to God, for help]. 

14 When Eli heard the noise of the outcry, he asked, “What is the noise of this uproar?” And the man came hurriedly and told Eli. 

15 Now Eli was ninety-eight years old; his eyes were dim so that he could not see. 

16 The man said to Eli, “I have come from the battle line. Indeed, I escaped from the battle line today.” Eli said, “How did things go, my son?” 

17 The messenger replied, “Israel has fled before the Philistines and there has also been a great slaughter among the people. Also your two sons, Hophni and Phinehas, are dead, and the ark of God has been taken.” 

18 When he mentioned the ark of God, Eli fell off the seat backwards by the side of the [city] gate. His neck was broken and he died, for he was old and heavy. He had judged Israel for forty years.

19 Now his daughter-in-law, Phinehas’ wife, was pregnant, and was about to give birth; so when she heard the news that the ark of God had been taken and that her father-in-law and her husband had died, she kneeled down and gave birth, because her [labor] pains began. 

20 And about the time of her death [following the sudden birth] the women attending her said to her, “Do not be afraid, for you have given birth to a son.” But she did not answer or pay any attention. 

21 And she named the boy [b]Ichabod, saying, “The glory has left Israel,” because the ark of God had been taken and because of [the deaths of] her father-in-law and her husband. 

22 She said, “The glory has left Israel, for the ark of God has been taken.”

===Footnotes

1 Samuel 4:8 Even though the Philistines associated the God of Israel with the ark, they still thought in terms of multiple gods.

1 Samuel 4:21 Hebrew for “Where is the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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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4장 (개요)

전 장에서 예언된 엘리의 집의 멸망은 실현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얼마 동안 있다가 일어났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분명히 그다지 오래 있었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한 죄인들을 하나님은 때로 조속히 처리해 버리신다.

1.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받은 치욕과 손실(1, 2).

2. 홉니와 비느하스로 하여금 하나님의 궤를 그들의 진영으로 가져오게 함으로 자기들의 전력을 보강해 보려고 했던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계획(3, 4), 

그러나 한때 그들은 안심할 수 있었고(5),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을 줄 수 있었으나 오히려 블레셋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6-9).

3. 드디어 이스라엘은 패배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게 되었다(10, 11).

4. 이 소식이 실로에 전달되었고, 그 결과 비극이 잇달았다.

   (1) 온 성읍이 혼란에 빠졌다(12, 13).

   (2) 엘리가 실신하여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14-18).

   (3) 엘리의 며느리도 불행한 결과를 듣고, 갑자기 해산하여 아들을 낳고 곧 죽었다(19-22). 이와 같이 그 소식을 듣는 자들의 두 귀가 울리는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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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과의 싸움(삼상 4:1-9)

사무엘과 관련된 이 부분의 첫 마디 말씀은 “그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와 아무런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그들이 블레셋과 싸우러 간 것은 사무엘의 어떤 지시에 의해서 간 것임을 보여 주지 않고 있다. 

비록 그가 새롭게 등장한 선지자이긴 했어도, 그에게 의논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가져다 놓은 것보다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가 아직 젊었기 때문에 그를 무시했으며, 그를 통해서 신탁을 구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아직 공적인 일에 자신을 개입시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그로부터 몇 년 후에야 다시 들을 수 있으며(7:3), 여기서는 다만 “그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었다”라고만 되어 있다. 

말하자면 온 땅에서 모여드는 신앙심이 돈독한 사람들만이 그를 의지했으며, 그와 의논했던 것이다.

또는 그의 말이란 엘리의 집에 대한 그의 예언을 의미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예언을 알고 이야기했으며,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사람들은 그 예언과 여기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비교해 보며, 그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Ⅰ. 블레셋과 싸움이 벌어졌다(1절). 

이 싸움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멍에를 벗어나려고 하는 시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먼저 회개하고 자신들을 개혁했더라면 반드시 성공했을 것이며, 바르게 시작했으면 좋은 결과로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싸움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40여 년 동안 다스리는 기간의(삿 13:1) 중간쯤에 일어난 것이며, 삼손이 죽은지 얼마 안 되어 일어난 것이라고 패트릭(Patrick) 주교는 계산하고 있다. 

그는 생각하기를 삼손이 죽으면서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살륙한 것이 크게 이스라엘을 고무하여 이런 싸움을 시도하게 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엘리가 오랫동안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을 보아서(18절), 이 싸움은 삼손이 죽은지 40년 후에 일어난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다.((35년!!))

Ⅱ. 이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패배했다(2절). 

공격해 들어가던 이스라엘이 오히려 크게 살륙당했고, 그 싸움에서 4천 명 가량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한 사람이 천 명을 상대하여 무찌를 수 있으리라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되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였다.”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는 가증히 여길 죄악이 편만했으며, 따라서 이스라엘이 바라던 승리가 그들의 원수에게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Ⅲ. 그들은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작전 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하고, 그들의 생활을 고치지는 않고 다른 짓들만 했다. (그런 선생들 밑에서 배웠으니만큼) 그들은 잘못 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 그들은 싸움에 진 것을 두고 하나님께 불평을 토로했다(3절).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패하게 하셨는가?”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서 노여워하시게 된 그 까닭을 참으로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매우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스라엘이 비록 이를 시인하고자 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은 분명히 죄를 범해왔고, 범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오히려 Q께 대해 뻔뻔스럽게 추궁하고자 하며, Q께서 하신 일을 불만스럽게 생각하여 불만 품고 항의하며, Q께서 하신 일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며 Q께 항쟁하고자 하는 것같이 보였다.

그들은 그들의 괴로움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시인했다(이것만은 그들도 바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를 패하게 하신 이는 여호와시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대신 이에 대해 항의하였으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노여움을 표시했고, 그들이 하나님을 노엽게 한 진실한 까닭을 알아보고자 하지 않았다. 

“어찌하여 우리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였는가?”라는 말은 진정한 까닭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께 대해 그 처사가 온당치 못하다고 불평을 토로하는 것에 불과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도 마음으로는 여호와를 원망한다”(잠 19:3). 그리고 잘못이 하나님께 있다고 불평한다.

2. 그들은 하나님께 궤를 그들의 진영으로 가져오면 다음 번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리석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그런 제안을 했고(3절), 백성들은 재빨리 그렇게 했다(4절).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도록 실로에 사람을 보냈다. 

엘리는 감히 이를 반대하지 못하고 그의 불경스런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함께 보내 주었다. 

아마 엘리는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을 따라 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1) 백성들은 하나님의 궤를 존중히 여기고 있었다. “오! 이를 가져오게 하라. 놀라운 일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것이다.”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하나님의 궤란, 제도적인 면에서 볼 때,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인 상징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룹들 사이에 계시겠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룹들은 하나님의 궤 위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궤와 함께 어디로든지 따라가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이 신성한 궤에 대해 그들의 존경심을 최대로 표시하면, 이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임을 확실히 나타낼 수 있으며 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시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참신앙의 진수에서 떠난 자들은 흔히피상적 종교의 형식만을 좋다하고 이에 집착하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거부하는 자도 그 형식만을 취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전을 찬양하며, 여호와의 궤를 열심히 붙들고 있지만 그 전의 주인이신 여호와와 그 궤의 임자이신 하나님은 전혀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기독교라는 그 이름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표시하면 그 기독교 자체를 무시해도 상관없는 듯이 행하는 것과 같다. 

더욱이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우상화했으며, 그것을 바라보기를 마치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의 형상을 바라보고 예배하듯 한갖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았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예배하지 않는 것은 그를 전혀 예배하지 않는 것과 같다.

(2) 그들은 하나님의 궤에 대해 엄청나게 잘못 생각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그들의 진영에 가져오기만 하면, 그 궤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실 것이며”,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① 궤가 행진을 시작하여 떠날 때에 모세가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라고 한 바가 있다(민 10:35). 

그들은 그 궤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사 그들을 성공시켜 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시사 그들을 돕게 하는 데는 달리 또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껍질만의 궤가 그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②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움직여도 좋다는 허락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못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주할 때 그의 궤를 그가 지시하는 곳에 두라고 그의 율법에서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시했다(신 12:5, 11).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궤가 있는 곳으로 와야지, 하나님의 궤를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져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또 그들이 그것을 소유해도 좋다는 정당한 법적 근거가 없으며 또 그것을 있는 곳으로부터 옮겨도 좋다는 허락이 없는데 이를 마음대로 옮긴다고 해서 어떤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욕되게 할 뿐이다.

③ 가령 그들이 하나님의 궤로부터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하자. 하지만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은 사람들로 이를 가져오게 할 때 그들은 어떤 축복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하나님의 궤가 그처럼 배은망덕한 제사장들의 손에 있으면서 이스라엘에 대해 어떤 도움을 준다면, 이는 그들의 잘못을 인정해 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Ⅳ. 하나님의 궤가 도착했을 때 이스라엘 진영에는 큰 기쁨이 터져 나왔다(5절).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렸다.” 

그들은 이제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도 치르기 전에 승전가를 높이 불렀다. 

그들은 이처럼 함성을 지름으로써 그들 자신들에게는 생기를 북돋아 주고, 대적들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승리는 확실한 것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육체적인 인간들은 종교의 형식적인 특전과 실행에 대해 개가를 올리며, 이것들을 전적으로 의지한다. 그들은 마치 이것들이 그들을 틀림없이 구원하여 줄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그들의 진영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보좌이신, 하나님의 궤가 그들을 하늘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Ⅴ. 이스라엘 진영에 여호와의 궤가 오게 되자 블레셋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군사들은 매우 가까이에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블레셋 진영에서는 이스라엘이 함성을 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곧 이스라엘이 어찌해서 의기가 양양해졌는지 알 수가 있었다(6절). 그리고 그 때문에 오게 될 결과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1. 왜냐하면 전에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신이 그들의 진에 이르렀도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화로다.”라고 말했으며(7절), 또다시 “우리에게 화로다.”(8절)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은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자들도 두려워 떠는 이름이었으며, 이스라엘과 싸우는 이방인들에게도 두려움이 되었다. 

인간의 본능적인 인식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대항하시면 그들은 저주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블레셋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가를 보자. 

그들은 마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그 하나님의 궤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이스라엘의 진영 중에 전혀 계시지 않으셨던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도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건전한 생각을 가지지 못했던 것인만큼 그들이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오! 이것은 지금까지 그들이 취했던 어떤 전술보다도 더 우리를 두렵게 하는 새로운 시도로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분명히 이는 우리 군사의 간담을 녹게 하고, 그들의 손목에 맥이 풀리게 하겠구나.”

2. 예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매우 큰 놀라움을 가져다 주었던 일을 기억했다.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8절).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것 같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애굽 사람들에게 내린 재앙들은 하나님의 궤가 작성되기 이전,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로 나오기 전에 내려진 것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이야기를 잘못 알고 있었으며, 또 그 놀라움의 근거가 하나님께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궤 자체에 있다고 잘못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그 궤를 우상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블레셋 사람들은 그 궤를 하나님 자신이라고 잘못 알고,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능한 신들”이라고 말하기는 하면서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농담으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말로 이스라엘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았다면 마땅히 후퇴하거나 아니면 강화조약을 맺을 차비를 차렸을 터인데, 그렇지 아니하였으며, 오히려 서로를 고무하여 더 큰 함성을 지른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이 어려운 처지가 오히려 그들에게 새로운 결단을 촉구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니라”(9절)라고 서로를 고무하게 되었다. 

블레셋 군대의 사령관들은 그들의 병사들에게 그들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종으로 삼았던 것을 기억하게 하며, 만일 여기서 그들이 위축되어서 이스라엘의 종이 되면 얼마나 창피스러운 일인가를 기억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속에서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불러 일으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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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패전(삼상 4:10-11)

여기에는 그 전쟁의 결과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Ⅰ. 이스라엘이 싸움에 패하였다. 

모든 군사들은 완전히 흩어졌으며 패주했고, 전번처럼(2절) 다시 규합할 수 있도록 그들의 진영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의 살길만을 찾아 각자의 집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3만 명의 이스라엘 군사들이 살육을 당했다(10절).

1. 비록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그들의 대적인 블레셋 사람들은 할례받지 못한 백성들이라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패배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정당한 권리와 자유를 지킬 수가 없었으며, 이를 지키는 데 실패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배반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커다란 확신을 가졌으며, 보다 용감할 수 있었는데도 그들은 패배했다. 

블레셋 사람들이 두려워 떨 때 그들은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매, 블레셋의 공포는 승리로 변했고, 이스라엘의 함성은 애가로 변했다.

3. 하나님의 궤가 그들과 함께 있었건만 이스라엘은 패했다. 아무리 귀한 특권이라도 이를 남용할 때 그들을 지켜 주지 못하며 , 그들을 살려 주지 못한다. 

그들의 진영 가운데 아간이 함께 있는 한, 아무리 하나님의 궤가 거기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

Ⅱ. 하나님의 궤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다. 

그리고 하나님의 궤 때문에 먹고 살고 있기 때문에 이를 지키기 위해 그 곁에 가까이 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했다”(11절). 

이 비극을 시편 기자는 78편 61, 64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그 능력을 포로에게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저희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도다.”

1. 그들의 악한 인품을 볼 때 제사장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그다지 큰 손실은 못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엘리의 집에 대해서는 무서운 심판이 되었다. “네 두 아들이 한 날에 죽으리니 이것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2:34)란 예언과 “네 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33절)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었다. 

만일 엘리가 자기의 책임을 다해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느 7:64) 했다면, 그들은 구차한 삶이기는 하나 살아남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가 그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서, 그들을 할례받지 못한 자들의 칼로 이 세상에서 쫓아내게 되었다. “여호와는 심판을 통해서 자기를 나타내신다.” 

칼은 누구나를 멸망시킬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특히 보복이라는 칼을 기다렸다. 그들은 그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장소에 있지 못했다. 

전쟁의 진영 가운데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이 자기의 마땅한 본분을 떠나 있으면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스스로 막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런데 이것이 또 전부는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허락도 없이 하나님의 궤를 위험한 곳으로 가졌왔기 때문에 이를 원수의 손에 넘겨 주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잘못됨이 얼마나 가증한 것인가를 잘 보여 준다.

2. 그러나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해 매우 커다란 하나님의 심판이 되었으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노여움의 표시가 되었다. 

이제 그들은 그들의 악함으로 말미암아 특권을 상실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특권을 믿고 있었으며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 계시건만 하나님의 궤가 그들을 지켜 주리라고 믿었던 그 어리석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곳에서 하나님의 궤를 가져다가 위험한 곳에 내놓게 했던 그들의 경솔함과 무력함에 대해 크게 후회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허망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지시 받기를 원치 않으시기에, 하나님의 임재 말씀을 상징하는 궤의 참 의미를 진정하게 알고 주님을 따름이 없는 자들에게는 냉담하시며 그들로 눈에 보이는 궤에 얽매여 있게 하시면서도 그분 자신은 그 궤에 자신을 묶어 놓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은 어리석은 친구들에 의해 모욕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원수들의 손에 자신을 맡기기를 더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감히 겉모양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실 수 있었던” 사람들 가운데서도 바깥 어두운 데 내어쫓김을 받을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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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의 죽음(삼상 4:12-18)

블레셋 사람들에게 진 치명적인 패전의 소식이 실로까지 전달되었다. 

나쁜 소식일수록 빨리 전달된다. 이 소식은 즉시 온 이스라엘에 전해졌다. 각기의 장막으로 도망친 자들은 분명히 본 바를 이웃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다. 

하지만 어느 곳보다도 이 슬픈 소식은 실로에 즉시 전달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급히 실로에 전령을 보냈다. 그 사람은 베냐민 사람이었다. 

((유다인들은 그 사람이 사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는 옷을 찢고, 그 머리에 티끌을 무릅썼다.” 

그는 그가 달려가는 것을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슬픈 소식임을 알려 주며, 또 그 자신도 매우 가슴이 아프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이런 표시를 했을 것이다(12절). 

그는 그 소식을 가지고 곧장 실로를 향해 달려갔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기사들을 볼 수 있다.

Ⅰ. 그 성읍이 그 소식을 접하게 되었을 때의 형편을 볼 수 있다. “엘리는 성문 곁에 앉아 있었다”(13, 18절). 

그러나 전령은 그에게 먼저 소식을 전하기를 꺼려해서, 그의 곁을 그대로 지나쳐 가서 온 성에 슬픈 소식을 고하였다. 

그리하여 전에 예언되었던 바 그대로,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렸다”(3:11). 그들의 가슴은 무서움에 떨었고, 그들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온 성이 부르짖었다”(13절). 

이것이 온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침통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실로의 멸망과 쇠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후 얼마되지 않아 하나님의 궤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아오기는 했지마는, 다시는 결코 실로에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촛대가 그들에게서 옮겨졌으며, 그 성읍은 점차 쇠잔해져서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실로의 성막을 떠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에게서 떠나 가시게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궤를 그들 속에 간직함으로 340년간 축복을 누려 왔던 에브라임 지파는 그 영광을 상실했다(시 78:60, 67). 그리고 그 후에 그 영광은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 산”으로 옮겨졌다(68절). 이는 실로 사람들이 “그들의 은혜의 날”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실로를 버렸던 일을 오랜 후에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로 이용된 일이 있다(렘 7: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실로에 가서, 내가 어떻게 행하는가를 보라.” 

그러한 까닭에 실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말을 듣고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Ⅱ. 엘리에게 내려진 비참한 운명을 볼 수 있다.

1.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비록 나이가 많고, 눈이 잘 보이지 않았고, 몸이 둔했어도 이스라엘의 영광이 백척간두의 위험한 지경에 놓인 것을 알고는 그대로 자기 방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누구보다도 먼저 그 소식을 듣고자 하여 몸소 길가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큼 엘리의 마음은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떨리고 있었다”(13절). 

엘리의 세심한 마음은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며, 승리의 소식이 가드에 알려지며, 아스글론 거리에 전파되면, 이는 하나님께 얼마나 욕을 돌리며, 이스라엘에게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불운을 가져다 주게 되는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엘리는 또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알고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잘못(특히 엘리의 아들들의 잘못) 때문에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게 되었으며 블레셋 사람들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지금 그의 마음속에는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라(2:32)는 예언이 떠올라서 두려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또 그의 마음은 그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궤를 전쟁하는 진영으로 끌고 가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그를 떨게 만들었다.

훌륭한 신자들은 모든 세속적인 일이나 자기 자신의 문제보다는 하나님의 교회의 문제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두고 있으며, 하나님의 교회가 위험에 처했을 때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만일 하나님의 궤가 안전치 못하다면 어떻게 안심할 수 있단 말인가?

2. 엘리에게 전해진 소식은 슬픈 소식이었다. 

그는 비록 볼 수는 없었지마는, 온 성이 “부르짖고” “훤화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것이 애가요 슬픔의 노래요 탄식소리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심스러운 지도자답게 “이 훤화하는 소리는 어쩜이뇨.”라고 물었다(14절). 

진중에서 되어진 모든 일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자세히 말해 줄 수 있는 전령이 진중에서부터 왔노라는 대답을 엘리는 들었다(16, 17절).

이스라엘 군대가 패배하고, 많은 군사들이 살육을 당했다는 소식은 사사인 그에게는 매우 슬픈 소식이었을 것이다. 

또 아버지로서, 비록 그들을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기는 했어도 그의 두 아들이 회개하지 못한 채 비명에 죽었다는 소식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 때문에 그의 마음이 그처럼 떨렸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심령은 그것들보다 더욱 큰 관심사에서 쏠려 있었다. 그 관심사는 다른 것들을 덜 생각하게 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압살롬의 소식을 듣고 다윗이 취했던 것과 같이, 그의 아들들에 관한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고 해서 그 말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전령이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궤에 대한 소식을 틀림없이 말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고 했던 것이다. 

엘리는 그가 이렇게 말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하나님의 궤는 안전합니다. 그것을 지금 도로 모셔 오는 중입니다.” 

그랬다면 그의 기쁨은 능히 다른 재난 때문에 오는 슬픔을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며, 이로써 안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령은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나이다.”라는 말로 그의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그 말을 듣자 엘리의 마음은 큰 충격을 받았으며, 그의 심령은 낙담했고, 그는 졸도하여 의자에서 넘어졌다. 

그는 실신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했기 때문에 말 한 마디 못한 채 갑자기 죽었다. 그의 심장이 먼저 터지고 다음에 그의 목이 부러졌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요 사사인 그가 무참히 쓰러졌다. 98년간 그의 목 위에 붙어 있던 그의 무거운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40년 동안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한 그의 영광의 면류관이 그의 머리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의 태양은 구름 속으로 가리워졌고, 그의 악한 아들들을 바로 잡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그 자신이 넘어지고 쓰러지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때로 그 자신을 바르게 처신하지 못한 의인들에게 하나님 자신의 불만의 표시를 나타내 보여 주신다. 

이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보고 두려워하는 가운데 경고로 삼게 하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비참한 죽음을 당하지만 영원한 죽음이 아닌 죽음을 당하는 수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불의한 죽음을 죽되 평안하게 죽는 수가 있다.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엘리의 죽음이 대속받지 못했기 때문에 목이 꺾인 나귀 새끼의 죽음과 같은 것”(출 3:13)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엘리에 대한 칭찬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그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죽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궤와 함께 쓰러지게 하라. 하나님의 은혜가 떠났는데 경건한 이스라엘이 어디에서 위로를 찾을 것인가?” 

하나님의 궤가 없는 이 세상에서는 살 필요조차 없다는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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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느하스 아내의 죽음(삼상 4:19-22)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하나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것은 엘리의 집이 처량해지는 이야기이며,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이 몰고 온 슬픈 느낌이었다. 

또 그 이야기는 비느하스의 아내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비느하스는 이 모든 재난을 이스라엘에 몰고 오게 한 장본인들인 엘리의 아들들 중의 하나이다. 

그녀는 젊은 나이지만, 나이가 많은 그의 시아버지 엘리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생명을 바치게 되었다. 

검은 머리도 흰 머리를 가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슬픔에 젖어 무덤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음을 가져왔다. 

여기에 나타난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그녀는 다음과 같은 여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Ⅰ. 그녀는 매우 연약한 심령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녀의 마지막 때가 가까이 이르게 했던 것이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마 24:19)라고 말씀하신 바 계시다. 

그것이 비록 사내아이라 할지라도 그 출산이 기쁨이 되지 못하는 것은 “수태 못하는 이가 복이 있다”(눅 23:29)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행한 시기에 놀라운 소식이 전달되었다. 그 소식은 다른 커다란 공포와 또 슬픈 격정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주었다. 

그녀가 존경하던 시아버지의 죽음과 또 아무리 나쁜 남편이라도 그녀가 사랑했던 남편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듣고, 더욱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부려 해산하였다”(19절). 그녀에게는 온갖 도움이 모두 필요한 때였는데, 오히려 그 소식은 그녀의 심령마저 약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능히 스스로의 힘으로 아이를 낳을 힘이 있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자 맥이 빠지고 죽어 가게 되었다. 

그것은 그녀의 생을 위로한 크신 위로를 잃어버린 마당에 도무지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처럼 괴로움에 처한 사람들은 은혜로우신 언약으로부터 위로를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일반적인 슬픔만이 아니라 그들이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갑작스럽고도 매우 위급한 비탄에 처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때에 신앙은 그를 연약하지 않게 하여 준다(시 27:13).

Ⅱ. 그녀는 비록 악한 남편과 짝을 맺게는 되었어도, 매우 은혜가 충만한 여인이었다. 

“남편과 시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가졌던 그녀의 관심은 단지 그녀의 본능적인 정서의 발로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고 할 때에 나타냈던 그녀의 커다란 관심은 하나님과 거룩한 것들에 대해 품었던 그녀의 경건하고 고귀한 정서를 나타낸 것이었다.” 

전자는 그녀의 출산을 재촉했다. 그러나 후자는 그녀의 심령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 그녀의 유언에 의해 밝혀졌다.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라고 그녀는 말했다(22절). 

그녀는 자기가 속한 자기 가족의 멸족보다도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게 됨으로써 당하는 이스라엘 온 민족의 침울한 운명을 더욱 안타깝게 한탄했던 것이다. 

이러한 슬픔이 그녀를 죽게 만들었다.

1. 그 슬픔이 그녀로 하여금 자기의 자식을 돌보지 않게 만들었다. 그녀의 옆에 있던, 아마 그 성읍의 귀부인들이었을 여인들이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했다. 

그리고 그 여인들은 그녀의 관심이 전적으로 아이를 출산하는 데서 오는 고통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아이가 태어나자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즉 이제 어려운 때는 지나갔다는 것이었다(아마 그 아이는 그녀의 첫아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지도 아니하며, 관념치도 아니하였다.” 

만일 그녀에게 다른 근심이 없었다면, 그 출산 때문에 오는 괴로움은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다시 기억지 아니”하게 되었을 것이다(요 16:21).

(1) 하지만 그녀 자신이 죽어가는데 그 기쁨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때는 영적이며, 하나님께로서 오는 기쁨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다. 죽음은 너무나 심각한 것이기에 세상에 속한 기쁨을 맛보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 죽음은 쓸쓸하고 거치른 것이다.

(2) 또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을 애통해 하는 사람에게 그 기쁨이 무슨 소용이 된단 말인가? 

실로에 있던 하나님의 궤를 잃어버렸고, 그것이 블레셋 땅에 노획되어 갔는데, 이스라엘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여도 그것이 그녀에게 조금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우리가 더욱 바라고 있다면 세상적이며 물질적인 쾌락에서 우리는 기쁨을 얻지 못한다. 

더욱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임재와 사랑의 돌보심에서 위로를 얻고자 하면 더욱 그렇다. 

그처럼 “무거운 마음”을 가진 자에게 “노래를 불러 준다는 것”은 마치 “신김치에 초를 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2. 그 슬픔은 그녀로 하여금 자기 아이의 이름을, 그 침울함을 기억할 수 있는 이름으로 짓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남편이 죽었기 때문에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었지마는 사실 그 아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단지 “이가봇”이라고 부르라고만 했다. 

그것은 “어디에 영광이 있단 말인가?” 또는 “아이고 영광이여!” 또는 “영광이 떠났다”(21절)라는 뜻이다. 

그것은 그녀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자 하는 메말라 가는 마지막 입술에서 새어나온 말이다(22절).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그 아이는 명예롭지 못한 아이이니만큼 그 아이의 이름도 명예롭지 못하게 지어서 불러라.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은 갔다. 이제 다시 그것을 회복할 희망도 없다. 이제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름이, 더욱이 제사장들의 이름이 영광스러운 이름이 될 수 없구나.”

(1)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다른 민족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임재의 감시와 하나님의 많은 계명이 그들의 부요와 이익보다도 더욱 그들의 영광이 되었다.

(2)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런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와 하나님의 계명이 없어질 때, 그것은 곧 그 자신의 죽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떠나시면 영광도 떠나고 모든 선한 것도 함께 사라진다. 하나님이 떠나가시면 우리는 저주를 받으리로다!

===호크마--

=====4:1

사무엘의 말이 전파되니라 - 이 말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대언자(선지자)로서 그 권위가 모든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이 말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이스라엘을 새롭게 이끌어 나갈 사무엘의 모습을 부각시켜 주는 3장 하반부(19-21절)에 연결되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제로 벌겟역(the Vulgate)이나 수리아역(the Peshitta)에서는 이 말을 전장에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나 혹자들(Keil, Gerlach)은 이 말을 블레셋 전투를 다루고 있는 본장(4장)과 연관시켜, 곧 사무엘이 블레셋 전투를 위해 이스라엘 군사를 소집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 아스라엘이 사사요 대제사장인 엘리의 주관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는 타당치 않다(Pulpit Commentary). 

아울러, 만일 사무엘의 소집하에 출전(出戰)했다면 이후 전쟁의 대패(大敗) 책임도 분명 사무엘에게 돌아갔을 것이고, 따라서 사무엘의 권위도 형편없이 추락되었을 터인데, 이후 전개되는 상황에서 그러한 점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엘리 사후 사무엘의 권위는 더욱 강화되었다. 

따라서 이 모든 점은 위의 어구가 사무엘의 선지자 직의 권위를 요약 정리하는 말로서, 곧 3장의 결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준다. 

이스라엘은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 여기의 '블레셋 사람'(the Philistines)은 본래 해양 생활을 하던 민족으로서, B.C. 13세기 말에 헬라 본토인들의 압력에 의하여 자신들의 본거지 에게 해(海) 지역을 떠나 애굽으로 침입해 들어갔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애굽 왕 라암세스3세(Ramses )에게 쫓겨 다시 가나안 땅의 지중해 쪽 해안으로 건너와 거기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Burrows, What means these stones, p. 277). 한편 아모스 9:7은 그들이 갑돌(그레데 섬) 지역에서 왔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들이 B.C. 2000년 경의 아브라함 시대에 성경의 무대에 처음 등장할 때에는(창 20:1, 2;26:1), 그레데 섬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튼 그 이후 블레셋 족속은 특히 사사 시대에 들어와서는 가나안 땅의 남서쪽을 완전히 장악하여(삿 3:3) 끊임 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혀왔다(삿 13:1-16:31). 

당시 이들은 높은 수준의 문명을 소유했었다. 즉 이들은 가나안 지역에서 유일하게 제철기술을 보유하여(13:19-22;17:7), 이 기술을 기반으로 잘 무장된 강력한 군대를 갖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다른 금속에 대한 제련 기술 및 공예 기술도 뛰어났다.

에벤에셀-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사한 곳이며, 또한 법궤를 빼앗긴 곳이다. 

오늘날 그 위치는 분명치 않으나, 학자들은 야파(Jaffa) 북동쪽의 '마이델 야바'(Majdel Yaba)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 '에벤에셀'은 후일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를 쳐부수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돌에다 사무엘이 명명한 '미스바'와 '센' 사이의 '에벤에셀'(7:12)과는 다른 곳인 것 같다.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 쳤더니 - 여기서 '아벡'(Aphek)은 이스라엘이 진 쳤던 에벤에셀 서쪽 약 3.2km 지점인 아르곤 강의 근원지 근처로서, 샤론 평야의 한 지점이었다(29:1). 

그런데 이곳은 원래 가나안 족속들의 아성(牙城)이었다는 사실에서 볼 때, 블레셋 족속들이 당시 팔레스틴 지역에서 얼마나 맹위를 떨치고 있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블레셋 족속들이 이곳에 진(陣)을 친 이유는 자신들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사적 행동을 취한 이스라엘에 보복하기 위함이었다.

=====4:10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 여기서 '쳤더니'(* , 라함)는 '싸우다', '삼키다'의 뜻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마음의 배수진을 치고 마치 삼킬듯이 결사적으로 싸웠음을 보여 준다.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 '각기 장막으로 도망가다'라는 표현은 전쟁에서 처참하게 완전한 패배를 당하여 뿔뿔이 자신들의 집으로 흩어져 숨는 모습을 묘사할 때 성경에서 자주 사용된 표현이다(13:2;삿 20:8;삼하 18:17;19:8;20:1;왕상 12:16). 따라서 이와 같은 양상은 들에서 마주쳐 싸웠던 첫번째의 싸움(2절)보다 훨씬 처참한 패배였음을 시사한다. 

이스라엘 보병 - 당시 이스라엘 군대는 기병이자 전차병없이 보영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R. Payne Smith). 

엎드러진 자가 삼만 - 이같은 전사자(戰死者)의 숫자는 이스라엘 한 지파의 장정 숫자와 거의 비슷하였다(민 26장). 

따라서 이 처참한 패전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온 백성이 받은 심리적 충격은 실로 대단했을 것이다. 

한편 발굴 탐사에 따르면, 이때 블레셋 사람들은 이 아벡(Aphek) 전투에서의 승리의 여세를 몰아 이스라엘 본토로 쳐들어 갔고, 심지어 실로(Shiloh)의 성소까지도 파괴한 듯 하다(렘 7:12;26:6). 

뿐만 아니라 이때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처음으로 지역 수비대를 상주케 하였고(10:5;13:3), 아울러 자신들의 제철 산업을 독점적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이 소유했던 제철 공장을 파괴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들의 제철 산업에 전적 의존토록 만들었던 것같다(Leon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ory). 

특히 20세기 초 덴마크 발굴 탐사대에 의하여 조사된 실로(Shiloh) 유적지는 B.C. 11세기 어간에 심하게 파괴된 흔적이 드러났다고 한다(Albright).

=====4: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 하나님의 시내 산 계시에 의존하여 모세가 법궤를 제작한 이후로(출 25:10-22;37:1-9), 그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생각케 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확인시켜 주는 지극히 거룩한 상징물이었다. 그러므로 금번 아벡 전투에서 블레셋 족속들에게 법궤를 탈취당한 사건은 이스라엘 성막사에 있어서 극히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여하튼 여호와의 법궤를 빼앗긴 일은 상징(象徵)을 마치 본질(本質)인 양 생각했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두려운 징계였던 것이다. 아울러 법궤 탈취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일깨워 주셨다. (1) 전능하사 무소 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여하한 상징물, 또는 공간적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2) 하나님의 임재(臨在)가 떠난 법궤는 아무 쓸모 없는 단순한 궤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3) 범죄로 인해 언약이 파기된 곳에서는 그 어떠한 의식(儀式)을 치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전혀 방패와 도움이 되어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엘리의 두 아들 죽임을 당하였더라 - 이같은 사실은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이자, 또한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적 예언의 준엄한 실제적 성취였다(2:33,34).

=====4:12-15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패배한 슬픈 소식이 "엘리"에게 전달되었을 때에 그의 뜨거운 관심은 법궤에 있었다. 

그는, 그의 책임문제 때문에 "그 마음이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떨었고(13절), 그에게 보고하는 자가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자기 의자에서 자빠져...목이 부러져"죽었다. 그는 자기의 두 아들의 죽음보다 법궤를 빼앗긴 것 때문에 더욱 놀랐던 것 같다. 법궤에 대한 그의 실책은 죽을 지경으로 비통(悲痛)한 일이었고, 그는 그 때문에 극도의 슬픔에 빠졌었다. 

사람이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깊이 빠져 버리면 그 죄 때문에 닥쳐오는 환란 가운데서 자기의 문제를 수습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하였다(사 55:6). 

우리는 엘리의 태도에서 그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 그것은 그가 "길곁 자기 의자에 앉아" 전쟁 소식을 기다린 잘못이다(13절). (1) 그는 왜 그런 위기에 회개하지 않고 초조하게 어떤 요행수를 바랐던가? (2) 그는 왜 그 때에 기도하지 않았던가?

======4:19-22 

비느하스의 아내는 이스라엘의 패전 비보(법궤를 빼앗긴 것과 그 시부와 남편의 죽은 소식)를 듣고 갑자기 해산하고 죽었다. 

그는 운명하기 직전에 그 낳은 아들에 대해서는 관심치도 않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난 사실을 심히 슬퍼하여 갓난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 )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영광이 없다', 또는 '영광이 떠났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의 죽음에서 깨달을 것이 있다. (1) 그는 신앙이 타락한 가족들 속에서 고요히 탄식하던 숨은 성도였다는 것, (2) 그의 심령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불타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희생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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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 상하는 거듭난 참되게 믿는이들의 모든 일상사에서 주로 주 되시게 함, 그분의 머리되심, 그리스도를, 그분을 따라 그분으로 살기, 근본동기에 있어서 주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의 이름-영광 구하며 그분의 갈망따라 그분의 움직임으로만 행하기를 연습함의 중요성과 그 엄중함을 증거하며 근본동기에 있어서 주로 주 되시게 함이 최우선순위이자 매사에 있어서, 숨 쉬는 모든 순간 살아냄의 관건이 되어야 함을 드러내고 있다!!

((사사기 사건 전개 순서))
==사사기 본론부의 내용이 서론부에서 전술한 바대로 범죄→징계→회개 -→구원→망각→재범죄’라고 하는 사사 시대의 악순환의 패턴을 따라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패턴의 6차례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본론부의 내용 구조는 이스라엘의 끝없는 배신과 타락 및 하나님의 계속된 구원의 은총을 극명하게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분인 제17-21장은 ((하나님 섬김의 모본이 되었어야 할 레위인들의 타락상에 대해 고발하는))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사사기 본론부인 3:7-16:31절까지의 내용이 각 지역별 사사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기록하되 대략적인 연대기적 순서를 고려하여 기록하였다면, 결론부인 제17-21 장은 연대기적 고려를 완전히 탈피하여 두 개의 에피소드를 통한 사사기 당시의 타락상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 가장 먼저 사사기 서두에 두어서 사사기 역사 전체를 조망하는 부분으로 삼아도 시간적 순서가 맞아들어가리라..
>>첫 번째 에피소드인 제17,18장은 미가의 신상 주조 및 단 지파가 라이스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미가의 신상을 탈취하는 과정 등을 보도하고 있다.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된 우상 숭배는 단 지파 차원의 우상 숭배로 확산되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뿌리 깊은 우상 숭배의 진원(震源)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당시 성직제도 운영의 혼탁상, 여호와 신앙의 기복 종교로의 변질, 그리고 종교적 혼합주의(Religious Syncretism) 등 신앙의 총체적 혼란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제19-21장은 한 레위인의 첩에 대한 베냐민 지파 기브아인들의 악행이 베냐민 지파와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 간의 치열한 동족상잔으로 발전하는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는 레위인의 축첩, 기브아 비류들의 동성애 요구 및 레위인 첩에 대한 윤간(輪姦), 길르앗과 실로의 처녀 납치 등 주로 성(性)의 모티브를 통해 전개되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성도덕이 그 시대 전체에 도덕적 수준을 측정하는 척도(barometer)이기 때문이다. 곧 사사기 기자는 당시 사회의 성적 범죄와 성질서의 문란상을 제시함으로써 사사 시대 전체의 도덕적 타락상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경홀히 여겨 무시/멸시하는), 자행자지함에 대한 악습은 어느덧 체질화 되어버린 것이었을까!!
===삼상4장에서는 언약궤 강탈 사건이 나오고 있다.
.. ...이 때 여호수아때의 교훈을 잊어버렸던 것은 아닐까...바로 앞서 전개되었던 여호수아시대에서 이미!!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명령하시는 Q께서 앞서서 친히 나아가시며 인도하심에 완전히 따를때에만 (주님과 백성은 하나로서) 대적에 대해 승리가 항상 보장되기에 온통 주님 움직이심 보기를 갈망하며 먼저 회개함 통해 정결케 하고 영광의 주님만을 주목하고 기다릴 때 이김 주심을 철저하게 가르치고 계시는바,  주께 나아가 주님 지시대로 요단을 건너고 여리고를 점령했으나, 아이성의 실패를 통해서 전쟁을 비롯한 모든 일상사가 주로 주 되시게 함 위해 주께 합당한 성결과 의의 회복, 곧 회개와 전적인 순종이 있을 때에라야, 주님께서 이끄실 바 먼저  앞서 예비하신 그대로 동행-부종함 통해 승리의 전쟁이 됨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 베냐민 지파와 나머지 지파간의 1.2차 내전 때는 레위인의 간악한 선동에 말려들고 있는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 심정 알아드리며 회개함, 하나님 이름의 영광 회복 앙망함으로써, 하나님의 심정에 하나되어 친히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어찌 움직이실지, 하나님의 갈망하심따라서만 행하기로 결정하지 않고!! 장로들은 섣부르게 이미 전쟁하기로 마음 먹고 모든 결정을 먼저 내리고 난 다음에(주님은 여기까지만 관여하시라는듯, 주님은 가만히 계시라는 듯) 마치 주님께 통보하듯 절차만 따름으로써, 그분 이름의 영광과 그분의 영원한 갈망 이룸을 백성으로하여금 분명히 인식하고 함께 바로 그것 위하여!! 먼저 앞서 나아가시는 여호와의 움직임따라 이끌어 인도하며 주도적-구체적으로 싸우시는 주님의 움직임은 놓치고 있었기에 패하는 그림을 보게 된다...그러나, 3차 전투를 앞두고는 철저히 주님 마음을 따르기로 중심으로 회개함, 기다림, 돌이킴으로써 주님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는바, 벧엘로 나아가 온종일 저물도록 금식하고 (속죄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겸비함으로써 주께 여쭈는 바 주님의 심정따라서만 행하려는바 주님 마음의 움직임을 구하게 되는데, 그 때에는 주님의 언약궤 옆에 제사장 비느하스가 서 있음을 볼 수 있다...그 때 주님 마음을 따라 지도하시는 전략을 따라 승리를 주고 계셨다.....그후에도 또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주께 묻지 않고 자의적 판단으로 남아있는 ((주님 마음 아프게 하는!!)) 베냐민 장정들에게 아내를 마련해 주기 위한 악행을 두 차례나 더[길르앗 야베스 처녀만 남기고 모든 성읍 주민 멸절 + 절기축제 참가 처녀 납치 허용] 범하고 있었다..
......이제, 사무엘상4장에 들어와서는 오히려 장로들의 어리석음과 독불장군식 전횡은 더욱더 극에 달하고 있었으니.....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장로들 중 그 어느누구도 주께 묻지 않고 그냥 군대를 에벤에셀로 보내며 나가서 아벡에 진친 블레셋과 싸우게 하고 있음을 보라(삼손 사후 약 40여년 흐른 시점이다)....먼저4천명을 잃고 난 후에 정신 차리고 한다는 말이(제 정신이 든 것은 아니었다) "여호와께서 우리로 패하게 하셨다"는 원망과 투정 뿐이요, 여호수아의 겸비함은 찾아볼 수 없다...게다가 내린 결정은 "우리가 전심으로 주께 돌아가자!!"가 아니라 "실로에 가서 언약궤를 가져와서 궤로 하여금 우리를 구원하게 하자"함이었으니 "만홀히 여김 당하시는" Q의 심정과 아픔은 도외시하고, "Q을 존중함 없는" "오히려 경멸히 여기는" 그러한 그들을 위하여서는 결코 움직이시지 않으시겠다는 주님으로부터 언약궤를 강탈했고, 홉니와 비느하스를 동행케 하여 전쟁에 내보내고 있었다.(=우상숭배나 다름 없는 미신적 푸닥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암5:4..6...14,15....*4.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6.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14.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언약궤는 Q의 체현이신그리스도의 예표요, 또한 땅 위에 Q왕국을 세우는, 그분의 경륜 수행 위해 그분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TUQ의 임재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주님께서 명령하심 통해서라야!!  궤를 가져옴은 바로Q의 임재를 가져오는 것이 됨을 명심해야 했었다!!..주님의 의도를 따라 궤가 앞서 나아가야만, 곧 Q과!!, 그분의 경륜과 갈망이 앞서 먼저 나아가심으로써 길을 인도하셔야, 진정한 의미에서 Q의 움직이심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어떤 문제들, 곧 개인-가족--나라의 문제조차 주께 가지고 나아가 말씀드릴 필요가 있다 여겨질 때!!!,  Q께서 친히 역사하시어 치료해 주시기를 간구할 때조차 거듭난바 참되게 믿는이로서 최우선순위는 보혈을 의지하여 보좌로 나아가서!! 주 앞에서 철저히 겸비함의 회개 가운데!! 기도자 자신의 근본 동기를 돌아봐야 하리라

......문제나 병듦의 근원이 무엇인지, 문제 해결이나 병 나음이 과연 [주께서 드러내실 바 그 마음의 근본 동기를 분명히 드러내고 처리함 통해 주께로 돌이키지 않으면 주님의 움직임과 운행하심은 없을 것이기에 오히려 낭패함과 흉년과 병고 지속됨과 죽음-망국/포로로 잡혀감만이 있을 뿐인바] 지금 상황과 처지에서 벗어나 돌파됨이 주님의 경륜 이룸과 어떻게 관계되는지, 그리고 전적으로 그분의 경륜 이룸을 위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관심 안에 머물러 있어서 간구함인지, 아니면 오로지 문제의 근본을 직시함 아니라 피상적으로만 보면서 자신이나 가족, 국가 사회의 안위-안전-평화-안식-이익을 위해 구함인지... 기도자 자신은 그 중재하며 구하는 근본동기를 분명히 주 앞에서 주 안에서 먼저 돌이켜 봐야 한다....과연 그대의 모든 구함의 근본 동기가 ((진정한 의미에서, 여호와 사랑하심을 알고 친밀함 안에서 그분ㅇ께서 부어주시는 믿음-소망-사랑에 힘 입는바)) 그분의 이름과 영광을 위함에 있고, 그분의 경륜 이룸의 갈망인 "이 땅위의 주님의 영원한 거처 얻으심"  유일무이한 그리스도의 몸-교회/왕국 얻으시도록 하려 함에 있는가? ("먼저 그분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마6:33"말씀하심은 바로 그것을 분명히 지적하며 말씀하고 계심이다) 그렇지 않다면.그것은 Q의 친히 움직이고 운행하심 없이!! Q 이름과 Q의 영광을 (강도처럼) 탈취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Q께서 엘리제사장 때,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4천명가량 죽게 하셨을 때, 그렇게 패배하도록 내버려두신 주님의 주권적 속뜻 앎을 경홀히 여겼음을 진정 회개하며,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 더럽혔음을 아파하면서 ...깊이 여쭈라 하심인데 그것을 도외시하며 무시하고!! (기억하라!! 여호수아는 아이성 첫 전투에서 패한바 그 까닭 알기를 주께 겸비함과 회개로 나아가 구했고, 주님은 그의 겸비한 여쭘에 대해 분명히 그분의 부정적 움직임의 이유를 알려주고 계셨으며, 그 근원적 문제를 드러내고 처리한 후에, 주님의 전략에따라 전심전력을 기울이고 마음을 한데 모아 집중하여 두번째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계셨다) 블레셋과의 첫 전투에서 4000명의 군사를 잃고 패한 후, 전쟁의 제도적 미비만을 염두에 둔 백성의 장로들이나 엘리 제사장이나 [주님의 임재가 왜 없었는지에 대한 깊은 회개와 주 앞에 나아가 여쭘 없이] 장로들은 실로로부터 빼앗다시피 언약궤를 (탈취하여) 이동시켜 가져와서 홉니와 비느하스를 함께 앞세워 전투에 임했지만 [주님은 절대 움직이려 하지 않으셨기에] 보병 삼만명가량 더 죽었고,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으며 언약궤는 빼앗기고 말았다는 소식을 듣는 그 자리에서 엘리 제사장도(98세) 죽고 말았음을 절대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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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벡과 에벤에셀))==

BC1050년경, 블레셋과 이스라엘 간의 중요한 전쟁이 샤론 평야에서 있었다. 

((이스라엘 12 지파는 가나안 땅에 정착했지만, 약속의 땅을 모두 차지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의 여러 토착민들과 이주민인 블레셋 민족과 공존해야 했다.))

 당시 이스라엘의 가장 위협적인 세력은 블레셋 민족이었다. 블레셋 민족은 남쪽 가사에서부터 북쪽 야르콘 강에 이르는 지중해 해안 평야에 정착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주로 중앙 산지에 정착하였다. 해안 평야에 정착한 블레셋 민족과 산지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자주 충돌하였다. 이 두 민족 간에 한 중요한 전쟁이 샤론 평야와 에브라임 산지의 경계 지역인 아벡과 에벤에셀에서 일어났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국가 체제를 크게 변화시켰다.

두 민족 간의 중요한 전쟁은 사무엘상 4장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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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 쳤더니 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4천 명 가량이라.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가로되 “히브리 진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찜이뇨!”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가로되 “신이 진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가로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일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3만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삼상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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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은 1차 전쟁에서 4천명가량 죽이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전쟁에서 패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실로로 사람을 보내어 그곳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전쟁터로 가져오게 했다. 하나님의 법궤가 승리를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법궤가 실로에서 에벤에셀 진영으로 옮겨질 때에,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도 법궤와 함께 전쟁터로 왔다. 

하나님의 법궤가 이스라엘의 진영에 이르자 이스라엘 군사들은 크게 용기를 내었다. 그들의 외침은 하늘을 찔렀고, 땅을 진동시켰다. 

이스라엘의 외침에 놀란 블레셋 사람들은 더욱 용기를 내어 두 번째 전쟁에서는 더욱 큰 승리를 거두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3만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하나님의 법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했다. 

전쟁의 패전 소식은 실로에 거주하던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정신적, 신앙적 공황 상태에 이르게 했으며, 엘리 제사장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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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의 멸망을 기록한 성경(렘 7:12, 14, 26:9, 시 78:60) 을 읽고, 실로를 발굴한 고고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아벡과 에벤에셀에서의 전쟁 (삼상 4)에서 승리한 블레셋 민족은 내친 김에 중앙 산지로 진격하여 실로를 멸망시켰고 하나님의 성막도 이때에 유린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착 초기에 이스라엘 국가는 12 지파의 장로들, 제사장들, 사사들에 의해 다스림을 받았다. 그리고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의 사역자이며 백성의 지도자들이 등장하여 나라를 구원하였다. 이런 이스라엘의 초기 통치 구조는 아벡과 에벤에셀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크게 흔들렸다. 

이후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블레셋의 위협을 받았다. 블레셋의 위협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중앙 집권 체제의 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결국 사무엘 선지자로 하여금 베냐민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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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벡의 정확한 장소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아벡은 현대 유대인 도시인 로쉬 하아인 (Rosh haAyin)의 서쪽, 이스라엘 국립 공원인 텔 아벡 (Tel Aphek) 또는 안티파트리스 (Antipatris)로 불리는 곳이다. 고대 이집트의 역사 기록인 투트모세 3세의 원정 비문에 따르면, 아벡은 남쪽 오노 (Ono)와 북쪽 소고 (Socho) 사이에 위치한다. 지리적으로 아벡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국제 해변 길에 위치하며, 물이 풍부한 야르콘 강의 수원지를 끼고 있다. 주전 1세기 헤롯 1세는 아벡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그 도시 이름을 자신의 부친 이름을 따라 안디바드리 (Antipatris)라고 불렀다. 현재 아랍인들은 구약의 아벡을 라스 엘 아인(Ras el-Ein)으로 부른다. 아벡 유적지를 방문하면, 19세기 오토만 터키가 남긴 요새가 아직도 남아 있다.

1972년 텔아비브 대학의 고고학자들은 아벡을 체계적으로 발굴해 왔다. 그 결과, 주전 3천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적과 함께 가나안인, 헷족속, 수메르인, 아카디아인, 이집트어로 기록된 많은 비문들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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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벡의 정확한 장소와는 다르게, 에벤에셀의 정확한 위치는 확인 중이다. 텔아비브 대학의 고고학자들은 아벡 근처를 연구하면서 아벡 평야의 동쪽에서 작은 유적지를 발견하였다. 아랍 토착민들은 이곳을 이즈벳 짜르타 (Izbet Zartah)라고 부른다. 이즈벳 짜르타는 블레셋과 대치한 상태에서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장소이다.

이즈벳 짜르타는 약 1 에이커의 작은 농촌 마을로써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이스라엘 시대의 전형적인 주택 구조인 ‘4개의 방으로 구성된 집터’ (4 room house)들을 발굴하였다. 여러 채의 집들 둘레에는 보호 장벽이 세워졌으며, 건물들 사이의 여분 공간은 곡식 창고 (silo)로 이용되었다. 그리고 바위를 파서 빗물을 저수한 저수조들은 아직도 확인할 수 있다.

아벡과 이즈벳 짜르타의 위치를 비교하면, 사뭇 대조적이다. 두 유적지는 약 2마일 정도 떨어져 있지만 아벡은 샤론 평야의 약간 높은 언덕의 물이 풍부한 야르콘 강의 수원지에 위치한 반면, 이즈벳 짜르타는 사마리아 산지의 바위 언덕에 있다. 아벡은 기름진 평야의 녹색 지대에 있는 반면, 이즈벳 짜르타는 거친 바위의 황량한 곳에 있다. 한 곳은 중요한 국제 도로 상에 위치해 있고 다른 한 곳은 국제 도로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다. 이런 이유로 아벡은 초기 가나안 시대 (주전 3천년)부터 오늘까지 정착의 역사를 갖고 있는 반면, 이즈벳 짜르타는 이스라엘의 정착 초기 (Iron Age I/ 1200 B.C.-1000 B.C.)의 약 200년간만 정착했을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즈벳 짜르타는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의 작은 농촌이었으며, 군의 전초기지 (outpost)였다는 점이다. 정착 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주로 산지에 머물렀다. 그러나 주전 990년 경, 다윗 때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야르콘 강과 블레셋 평야를 모두 점령하고 통치하였다. 가나안 전체가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게 되므로 지역 간의 경계 마을인 이즈벳 짜르타와 같은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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