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9장 [[310. '아 하나님의 은혜로'] [85.구주를생각만해도][490. 주여 지난 밤 내 꿈에]...브루스 탐슨. 서거 소식(240723)..내눈여소서주볼수있도록
##다윗의 충성심은 단연 으뜸일것...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초는 [언약 반드시 이룸+사랑]으로서, 목자의 아만-헤세드-목숨 거는 ((주님 빼어닮은, 쉼 없는))사랑의 열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주님으로 사는 리더들이여!! [문제해결사] 보다는 [문제 해결 받는 자 됨] 배우라!!*** .....십자가 대속의 은혜, 아만+헤세드의 주님 신뢰하고 감사함 인해 그 마음 중심의 견고한 심지로 충성 다하며 그 참된 믿음 발휘하는, 참되게 믿는이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그 사업장-사회-나라의 안정성이 결정됨을 명심하라... .....섭섭함은 교만을, 감사는 겸손을, 찬송은 동행 인한 이김-평강을 내포한다 .....돌아봅니다, 내가 무엇이길래 은혜로우신 주님은 오늘 이 자리에 이르까지 돌보셨습니까!!, 오늘 이 은혜가 필요한 나의 므비보셋은 누구인가...주 앞에서 주 이름 부름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 곰곰이 신학이나 과학이나 그 어떤 학문이란 모두 사실적인 그 어떤 것의 상대적인 일면만 드러낼 뿐이요, 진리가 아니니, 믿음의 대상이 결코 아니요, 오직 영생자존-생존하시는 하나님 만이 내가 믿는 그 믿음의 근원의 창시자시요 믿음의 대상이시다!!..주님만 찬양할지라!!, 아멘 .....주님 안에서 그분의 특별 은총--아만+헤세드, 인자(lovingkindness and mercy = 자비-은혜-긍휼, 곧 온통 내어주시며 돌보시고 보호하며 가르쳐 양육하시는 사랑)를 이 땅에서부터 영원히 누리며 그분 자신으로 사는 자여, 변함 없는 믿음의 성실로, 하나되신 그분과 함께 그분으로 살라, 은혜 그 자체이신 그분의 통로로서 그분을 베풀며 공급하라!!...특별 은총 아래 베푸신 바 일반은총의 의미를 알고 감사하며 바르게 적용하고 주님 임재 아래서 베풀기를 베우라.. 주님의 안타까운 마음따라 (강도만난 한 형제의 불행 돌아봄) 먼저 선대함의 긍휼-자비-은혜 베풂으로 중재-중보기도 + 복음 증인, 긍휼 주님의 돕는 손 됨 실행으로 나아가라 .....[벧전2:9, 10...*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요9:1-7..*1.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분명한 이해가 필요하다...[하나님이 (자신의 영광 위해) 일부러 불구로 만들거나, 불구로 태어나게 하셨다 함이 아니라...이는 모든 질병에 대해서도 동일함] 그의 불구된 (그러서는 그 결과 나타남에 대해 전혀 어찌할 수 없었던바) 상태를 통해서 (하나님이 친히 하시고자 하는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 하고 계심..
===다윗과 므비보셋((구주의 버려진 바 된, 잊혀지고 전혀 쓸모없다 여겨진바, 죄인을 찾아 부르심 통해, 주와 함께 한 상에서 먹게 하심의 표상)) .....므비보셋 = 부끄러움, (백해무익한)해치는자 :: 장애자에 대해 가져야 할 바, 동병상련의 동일한 심정으로 아만-헤세드로 대하라.. 1.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헤세드] 베풀리라[=아사] 하니라 2. 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 3.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불충한 종...므비보셋 봉양 책임을, 마길에게 넘겼음) 시바에게는 므비보셋이 nothing-nobody"철저히 무명씨, 죽은자, 절뚝발이...무시해도 좋은자"였다. 4. 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 ]....*로드발 = 로(없다) + 드발(=드빌, 목초지) = (풀 한포기 나지않는 황무지, 그와 같은) *암미엘 = 내 백성 *마길 = 팔다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 = 로드발! 로드발은 히브리어 부정어인 ‘로’와 목초지라는 ‘드발’의 합성어. 로드발 즉, 목초지가 없는(황무지, 요단 동편 므낫세 지파 땅..나중에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일시 이곳으로 피신함) 마길의 집이라는 표현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라는 의미. 자기 가족 먹여 살리기도 빠듯한 가난한 형편인데, 마길은 므비보셋을 맡아 품어 근근이 보호하고 있었음 5.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6.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친히 이름 불러주고 계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7.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8.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9. ○왕이 사울의 시종 시바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10.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 명이요 종이 스무 명이라 11. 시바가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모든 일을 종에게 명령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시23:4) 12. 므비보셋에게 어린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시바의 집에 사는 자마다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13.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 ......구주, 곧 왕의 상에서 먹는 자마다 예루살렘에서 사는 자 됨을 참되게 알아야 한다.. ------------ [NASB]제9장
1. Then David said, "Is there yet anyone left of the house of Saul, that I may show him kindness for Jonathan's sake?" 2. Now there was a servant of the house of Saul whose name was Ziba, and they called him to David; and the king said to him, "Are you Ziba?" And he said, "[I am] your servant." 3. And the king said, "Is there not yet anyone of the house of Saul to whom I may show the kindness of God?" And Ziba said to the king, "There is still a son of Jonathan who is crippled in both feet." 4. So the king said to him, "Where is he?" And Ziba said to the king, " Behold, he is in the house of Machir the son of Ammiel in Lo-debar. " 5. Then King David sent and brought him from the house of Machir the son of Ammiel, from Lo-debar. 6. And Mephibosheth, the son of Jonathan the son of Saul, came to David and fell on his face and prostrated himself. And David said, "Mephibosheth." And he said, "Here is your servant!" 7. And David said to him, "Do not fear, for I will surely show kindness to you for the sake of your father Jonathan, and will restore to you all the land of your grandfather Saul; and you shall eat at my table regularly." 8. Again he prostrated himself and said, "What is your servant, that you should regard a dead dog like me?" 9. Then the king called Saul's servant Ziba, and said to him, "All that belonged to Saul and to all his house I have given to your master's grandson. 10. "And you and your sons and your servants shall cultivate the land for him, and you shall bring in [the produce] so that your master's grandson may have food; nevertheless Mephibosheth your master's grandson shall eat at my table regularly." Now Ziba had fifteen sons and twenty servants. 11. Then Ziba said to the king, "According to all that my lord the king commands his servant so your servant will do." So Mephibosheth ate at David's table as one of the king's sons. 12. And Mephibosheth had a young son whose name was Mica. And all who lived in the house of Ziba were servants to Mephibosheth. 13. So Mephibosheth lived in Jerusalem, for he ate at the king's table regularly. Now he was lame in both feet. ===== 사무엘하 9장 (개요) 본 장에 기록된 일은 모두 다윗이 요나단을 생각하여 그의 자손에게 베푼 자비에 대한 것이다. 1. 그는 자비롭게도 사울의 집안의 후손이 있는지 알아 본다. 그리고 므비보셋이 있음을 알아낸다(1-4). 2. 므비보셋이 그 앞에 인도되자, 자비롭게 영접한다(5-8). 3. 다윗은 그와 그의 권속에게 친절한 배려를 한다(9-13). ------ 요나단을 기억한 다윗(삼하 9:1-8) Ⅰ. 다윗은 사울의 패가에 남은 자들이 있는지 알아 본다(1절). 이것은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훨씬 후에 일이다. 왜냐하면 사울이 죽을 당시는 므비보셋이 다섯살이었는데, 이제는 아들을 보았기 때문이다(12절). 다윗은 너무나 오랫동안 요나단의 은혜를 잊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생각이 난 것이다. 종종 우리가 해놓고 잊어버린 약속이 없는지 생각해 보는 일은 좋은 것이다. 늦게라도 이행함이 아주 안함보다는 낫다. 바울이 우리에게 요약해 준 다윗의 일생은 이렇다(행 13:36).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자기 세대를 봉사했다.” 즉 선행을 자기의 본분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이제 그 실례를 찾아 보자. 1. 그는 선을 행할 기회를 찾았다. 그는 요나단의 자손들 중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 주리라는 마음만 먹고 있었어도, 요나단에게 한 약속은 이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그들을 찾았다(1절). 그럴 만한 사람을 만나자 그에게 대해 자세히 물었다. “사울의 집에 남은 자가 없느냐! 내가 그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노라”(3절). “누구 없느냐? 내가 그에게 정의를 실행할 뿐 아니라(민 5:8), 친절을 베풀리라.” 좋은 사람은 좋은 일할 기회를 찾는 법이다. “관대한 자는 관대한 일을 행한다”(사 32:8). 우리가 은혜를 베풀어야 할 진짜 대상들은 일부러 물어보기 전에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그런 자들이다. 가장 곤고한 자가 소리도 못 지른다. 2. 그는 사울의 집에 남은 자가 있는지를 묻고, 그들에게 요나단으로 인하여 자비를 베풀겠다고 했다. “사울의 집에 남은 자가 있느냐?” 사울에게는 식구가 많았었다(대상 8:33). 나라 전역을 덮을 만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물어보아야 할 문제이다. “남은 자가 있느냐?” 하나님의 섭리는 그 많던 식구들도 얼마나 쉽게 멸절시키는가를 보라. 인간의 죄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사울의 집안은 유혈을 좋아한 집안이었으니, 그렇게 말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21:1). 그러나 하나님은 비록 아비의 죄를 자손에게 갚았지만, 다윗은 그러고자 하지 않았다. “사울 때문이 아니라, 요나단을 인하여 내가 자비를 베풀려 하는데, 누구 남은 자가 없는가?” (1) 사울은 다윗의 숙적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진심으로 그의 집안에 자비를 베풀려 하고 있다. “사울 집에 남은 자가 있느냐? 내가 그들을 멸하여, 나나 나의 후계자에게 더 이상 방해거리가 못되게 하리라.” 그는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기드온의 집안 중 하나라도 남겨두지 말자는 것이 아비멜렉의 정신이었다(사 9:5). 그리고 “왕손”은 한 사람이라도 씨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비아달의 정신이었다(대하 22:10, 11). 그들은 정권 찬탈자들이었다. 다윗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는 사울의 집안에 자비를 베풀려 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고, 또 그들이 자기에게 어떤 일을 하든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다윗은 마음 바탕이 자비로와서, 그들이 자기에게 한 일을 용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피해나 불의를 행한 자가 있다면, 우리는 그들과 그들의 자손에게 기회가 있으면 자비를 베풀겠다는 각오를 보임으로써, 그들을 용서했다는 정직한 자세를 입증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 그들을 복수하지 말아야 될 것은 물론이요, 사랑하고 “선을 행해 주어야” 한다(마 5:44). 우리에게 피해를 준 사람에게는 일푼의 동정도 베풀 수 없다고 물러나서는 안 된다. 이것이 악을 이기는 길이다. 또 필요할 때면 우리가 자비를 입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 (2) 요나단은 다윗의 절친한 친구다. 그러므로 그의 집안에 자비를 보이려 했다. 이것은 교훈이다. ① 우리는 약속을 기억해야 한다. 약속한 것은 상대방이 요구하지 않더라도 의식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실하시니, 우리도 피차에 불신한 행위를 말아야 한다. ② 우정, 옛 우정을 기억해야 한다. 친구, 그리고 그들의 권속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은 우리의 거룩한 신앙의 규율이다. “친구를 가진 자는 먼저 우애를 보여야 한다”(잠 18:24). 섭리자께서 우리를 출세시켜 주시고, 우리의 친구와 그 집안은 망하게 했더라도, 이전의 친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 때는 친구들은 우리의 도움을 절실히 요청하는 때요, 우리는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최적의 기회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을 지속하라는 엄숙한 우정의 명약은 없다고 하더라도, 곤궁에 있는 자는 친구에게서 도움을 받아야 된다고 했다(요 6:14). “형제는 곤궁한 때를 위해 태어났느니라.” 우정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던 자들이, 우리보다 먼저 그 식구와 이름과 후손을 남기고 갔을 경우 그들을 보살피고 친절을 베풀어야 할 의무를 말해 준다. 3. 다윗은 그들에게 베풀기로 약속했던 자비를 “하나님의 자비”라고 칭했다. 그것은 큰 자비일 뿐만 아니라, (1) 하나님을 증인으로 하고, 다윗과 요나단이 했던 계약의 이행에 의한 자비이기도 하다(삼상 20:42). (2) 하나님의 모범을 따르는 자비이다. 우리도 하나님처럼 자비로와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를 노엽게 한 자들을 살려두신다. 우리도 그리해야 한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요구했던 것은 이것이다(삼상 20:14, 15).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나의 자손에게도 그리하라.” 하나님의 자비란 사람이 보통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자비이다. (3) 그것은 경건에 의한 자비요, 하나님을 생각하고 행하는 자비요, 그의 영광과 은총을 생각하여 하는 자비이다. Ⅱ. 므비보셋, 요나단의 아들에 관한 정보가 들어왔다. 시바란 사람은 사울가의 늙은 종이었다. 그는 집안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를 불러 조사해서, 요나단의 아들이 살아있으나, “절름발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앞에서 보았다. 4:4). 그리고 지금 그는 묻혀서 살며, 아마 요단 건너편에 있는 길르앗, 로드발에 있는 자기 어머니의 한 친척과 같이 살 것이라 했다. 그는 거기서 “잊혀졌다. 죽은 자처럼 마음에서 떠났다”(시 31:12). 그저 묻혀 사는 것이 그에게는 더 편했다. 옛날의 영광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Ⅲ. 그를 궁전으로 데려왔다. 왕은 (아마 시바를) 보내어 예루살렘으로 신속히 데려오게 했다(5절). 그래서 마길의 수고를 덜어 주었고, 아마 므비보셋의 이야기를 해 준 시바에게는 상급을 주었을 것이다. 이 마길은 마음이 퍽 관대한 사람 같다. 다윗이나 그의 정부에 대해서 어떤 반감을 가져서가 아니라 한 임금의 아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심정으로 미브보셋을 환대했던 것이다. 나중에 그가 압살롬을 떠나와서 다윗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보게 된다. 마길은 마하나임에서 왕이 곤궁해 있을 때, 그에게 음식을 제공해 준 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17:27). 그러나 다윗이 그에게서 므비보셋을 데려오려고 했을 때에는, 자기가 마길에게서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오리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 그때에 므비보셋에게 자비를 베푼 것을 생각하여, 마길은 더 즐거운 마음으로 다윗을 도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는 데 너그러워야 한다. 언제 우리 자신이 곤궁에 빠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전 11:2). “물을 주는 자가 물을 받게 되리라”(잠 11:25) 1.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나와 깎듯이 부복했다. 그는 절름발이였지만, “엎드려 절했다”(6절). 다윗도 요나단이 왕위에 오르려 했을 무렵, 그에게 그렇게 영예를 표했었다(삼상 20:41 , “그가 요나단에게 3번 절하니라”). 그리고 이제는 사태가 완전히 역전되자,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그렇게 절한 것이다. 낮은 자리에 있을 때에 경의를 표한 자들은 자기들이 높은 자리에 있게 되면, 경의를 받게 될 것이다. 2. 다윗은 온갖 정성을 다해 그를 맞았다. (1) 그는 놀랍고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므비보셋! 오! 그 사람이 살아 있었구나?” 그는 므비보셋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으리라. 그가 태어날 때쯤에는 요나단과 친했기 때문이다. (2) 다윗은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두려워 말라”(7절). 다윗의 시선이 그에게 당혹함을 준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므비보셋에게 어떤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자비를 베풀려고 부르러 보냈다는 점을 이야기해 주었으리라. 높은 사람은 자기 하급자들이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좋아해서는 안 된다(위대하신 하나님도 그러지는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급자들을 오히려 격려해 주어야 한다. (3) 다윗은 왕권의 이름으로, “그의 아버지 사울의 모든 땅” 곧 그의 아버지의 재산을 돌려 주었다. 당시 그 재산은 이스보셋의 반란으로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었다. 이것은 그에게 말로만의 자비가 아니라 현실적인 은총이었다. (4) 이토록 그를 부양할 만한 충분한 재산을 주고도, 요나단으로 인하여 (아마 그의 얼굴이 유난히 요나단을 닮았을 것이다) 항상 자기 식탁에 같이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거기서는 잘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지체에 맞는 동료들을 가지게도 된다. 비록 므비보셋이 절름발이라 보기는 흉했고 일을 하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아니했는지 몰라도, 그의 훌륭한 아버지를 생각해서, 다윗은 그를 자기 식구처럼 대한 것이다. 3. 므비보셋은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이 은혜를 수락했다. 그는 마치 빚이라도 받듯이 모든 자비를 취해 버리고, 그런 것은 친구들에게도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 반대이다. 다윗이 베푸는 은혜에 놀랐다(8절). “주의 종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이처럼 돌아보시나이까?” 그는 얼마나 자기를 낮추었는가! 한 방백의 아들이요, 임금의 손자였지만 그는 자기를 “다윗 앞에서 죽은 개”라 칭했다. 이토록 하나님의 섭리가 낮아지게 만들었을 때는, 스스로 겸비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마땅하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처지를 낮추시고, 우리의 사기를 저하시켰다면, 우리는 편한 마음을 갖자. 그렇게 겸비한 자는 다시 높아질 것이다. 그는 또 다윗을 얼마나 찬양했는가! 마음만 있었다면, 다윗을 헐뜯기도 쉬웠으리라. 다윗이 내 아버지의 재산을 돌려 준다고? 그것은 내 것을 내게 주는 것일 뿐이다. 같은 식탁을 사용한다고? 그건 나를 감시하려는 정략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므비보셋은 다윗의 말을 모두 존중했고, 아주 큰 자비로 받아들였으며, 자기를 지극히 낮추었다(삼상 18:18 참조). ------- 므비보셋에게 베푼 호의(삼하 9:9-13) 므비보셋 문제가 일단락 짓는다. 1. 그의 아버지의 재산 소유권이 그에게 확정되고, 시바가 그 증인이 된다(9절). 아마 사울은 그의 아버지도 부자였으므로 재산이 퍽 많았던 것 같다(삼상 9:1). 땅과 포도원을 물려받았다(삼상 22:7). 그것이 얼마나 되든, 이제는 므비보셋이 주인이 되었다. 2. 그 재산 관리는 시바에게 일임되었다. 시바는 내용을 잘 알고 있으니, 관리도 잘할 수 있었고, 그의 아버지의 종이었으므로 믿을 수도 있었고, 많은 식구와 하인을 거느리고 있으므로, 그 일을 하기에 충분했으리라(10절). 이리하여 므비보셋은 아주 편안하게 되었다. 염려없이 많은 재산을 누렸고, 수입은 많으나 지출의 필요가 별로 없었다. 다윗의 식탁에서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기 몫 외에 자기 아들과 하인들을 위한 식량이 필요했던 것이다 .시바의 아들들과 종들이 그의 수입원으로 살았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그들의 수효가 여기에 나온 것 같다. “아들이 15, 종이 20이라.” 아마 이들은 그 수입의 거의 전부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재물이 늘면, 먹을 자도 느나니, 주인이 자기가 쌓아 둔 것을 눈으로 본들 낙이 무엇이랴?(전 5:17) “시바의 집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이 므비보셋의 종이 되었다” 했다(12절). 즉 그들은 모두 므비보셋 덕으로 먹고 살았다. 그의 재산의 기생충들이었다. 그러면서 그와 그의 일을 돕는 다는 구실을 붙인 것이다. 유대인들의 속담이 있다. “종을 많이 둠은 곧 도둑을 많이 둠이다.” 시바는 이제 기뻤다. 그는 재물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왕이 명하신 대로, 주의 종이 다 행하리라”(11절). 이제 다윗은 그리스도, 곧 그의 주(主)의 아들, 뿌리요 자손인 자의 한 예표이므로, 므비보셋에게 자비를 베풀어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타락 인간들에게 베푸시는 자비와 사랑을 예증하셨다. 이 은혜는 다윗이 요나단에게 대해 의무를 이행했듯이, 그렇게 의무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반역한 죄수들이요, 사울의 집과 같이 그를 배신한 형벌을 받고 있으며, 타락으로 인해서 절름발이와 쓸모없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 타락한 인종을 불러서 찾으시며, 요구하기도 전에 그들을 먼저 구하러 오신다. 그에게 부복하여 자기를 맡기는 자들은 잃어버렸던 유산을 도로 찾아 주실 것이요, 아담이 잃어버린 것 이상의 더 좋은 낙원을 물려 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식탁에 자녀들과 더불어 앉게 될 것이요, 하늘의 음식으로 즐기게 되리라. “주여, 인간이 무엇이관대, 이토록 높이시나이까?” ..==== ==호크마== 사무엘하 (9 : 1~13) 1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ㅇ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 다윗 왕이 이처럼 사울 가문에 대하여 관심을 표명하게 된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분명치 않다. 때문에 혹자들 간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논란이 있다. (1)혹자는 이스보셋이 암살당한 직후(4:5-12)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Thenius).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때는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기(5:1-3) 전으로서 고작해야 므비보셋(4:4)이 13세에 불과한 때였기 때문이다(2:10, 11;5:5). 그러나 본문은 므비보셋이 젊은 아들을 둔 장성한 성인임을 밝히고 있으니(12절) 이치가 맞지 않는 것이다. (2)또 다른 학자들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의 길보아 전투(삼상 31장)가 있은 지 약 20여년이 지난 때 곧 다윗의 40년 통치 기간 중, 중반기 때(5:4, 5)의 일일 것이라고 주장한다(Pulpit Commentary). 왜냐하면 길보아 전투 당시 므비보셋은 고작 5세에 불과했으나(4:4) 지금은 어엿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있기 때문이다(12절). 따라서 지금 므비보셋의 나이는 아무리 적게 쳐도 20세는 넘었음이 분명한 것이다. 한편 이때는 다윗이 어느 정도 이스라엘을 안정 궤도에 올려 놓은 때이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본 견해를 지지한다(Keil & Delitzsch, Lange, Matthew Henry). 즉 그들은 모두들 그 동안 눈코 뜰새 없이 강력한 통일 이스라엘 왕국 건설에만 전념했던 다윗이 이제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서자 그 옛날 절친했던 친구 요나단과의 언약(삼상 20:14, 15, 42)을 기억했을 것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3)한편, 러스트(Rust)는 이 사건이 21장에 기록된 기브온 사람들의 보복 사건 이후에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한다. 즉 과거 사울 왕은 이스라엘을 위한 지나친 열심으로 기브온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한 적이 있었다(21:1). 그런데 이제 시대가 바뀌자 기브온 사람들이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다윗에게 사울 왕의 아들들의 생명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21:7에 보면, 다윗은 그때 므비보셋을 아껴 그를 그들에게 내어주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곧 므비보셋이 이 사건 이전부터 다윗의 보호를 받았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 그러므로 러스트(Rust)의 견해는 근거없는 것이 되고 만다. ㅇ내가 요나단을 인하여...베풀리라 - 다윗이 이처럼 사울의 후손, 그것도 특별히 요나단의 후손을 찾아 선대(善待)하려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였다. 즉 첫째, 요나단은 다윗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었기 때문이다(삼상 18:3, 4;19:1-3;20:4-42). 둘째,다윗은 요나단 생전에 그의 가족을 보호해 주기로 언약한 바 있기 때문이다(삼상20:14, 15, 42). 아무튼 다윗이 은혜를 베풀기 위해 사울 가문의 남은 자를 찾고 있음은 요나단과 다윗 간의 우정이 죽음 이후에도 계속될 만큼 깊고도 성실한 것이었음을 증거해 준다(삼상 18:1-3;20:42). ㅇ은총 - 구약에서 은총 또는 은혜에 해당하는 말로는 '헨'과 '라촌' '헤세드' 등이 있다. 이 중 '헨'은 단순히 '즐겁고 아름다운 것'을 의미하며, '라촌'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호의'를 의미한다. 그러나 본절의 은총에 해당하는 '헤세드'는 이와는 달리 언약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2:6 주석 참조. 즉, 이 말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출 19:5, 6)대로 택한 백성에게 부어 주시는 것과 같은 풍성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출15:13;20:6;34:6;신 5:10, The Interpreter's Bible).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서 다윗이 지난번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그의 후손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삼상 18:3;20:8, 42). 2 사울의 종 하나가 있으니 그 이름은 시바라 저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저에게 묻되 네가 시바냐 가로되 종이 그로소이다 ㅇ사울의 종...시바 - 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베드'는 그 당시 사회에서 가장 비천한 자를 의미한다. 한편, 사울의 종 시바(Ziba)는 훗날 압살롬의 난을 피해 유랑길에 나섰던 다윗에게 자기의 주인 므비보셋을 모함하고선 그 재산을 차지하는데 이로써 그가 간특(奸慝)한 자였음을 알수 있다(16:1-4;19:24-30). 3 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 ㅇ하나님의 은총 - 이는 곧 다윗이 요나단의 후손에게 베풀고자 하는 은총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의미한다. 즉 이제 다윗은 하나님께서 지금껏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을 기억하고 그도 타인에게 그 같은 은총을 베풀려 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다윗이 요나단과 맺은 맹세가 곧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은 것이었는바(삼상 20:14, 15, 42) 이제 그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대로 신실히 이행하려 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 489). 즉 다윗은 사울 가문에 은총을 베풀려는 것은 비록 자신이지만 은총을 베풀도록 자신을 주장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이 말을 통해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무슨 일에서든 먼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잊지 않는 아름다운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자세가 아닐 수 없다(고전 10:31). ㅇ요나단의 아들...절뚝발이 - 므비보셋(Mephibosheth)을 가리킨다(6절). 그는 다섯 살때에 사울과 요나단의 전사 소식을 듣고서 급히 도망하던 유모의 팔에서 떨어져 불행히도 절뚝발이가 되었었다(4:4). 한편 본장에는 므비보셋이 절뚝발이란 사실이 두 번이나 언급되고있다(13절). 이는 곧 더 이상 사울 가문에 희망이 없음을 의미함도 있지만(4:4 주석 참조) 여기서는 무엇보다 므비보셋이 절뚝발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친아들처럼 사랑한 다윗의 사랑과 인격을 강조하기 위함이다(11절). 그런데 이는 오늘날 영적 절뚝발이와 같은 우리들에게도 그리스도와의 언약을 기억하고선 영생의 축복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시사해 주기에 충분하다(사 36:5;렘 31:8;요 3:16; 엡2:12, 13;히 12:12). 4 왕이 저에게 묻되 그가 어디 있느냐 시바가 왕에게 고하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5 다윗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저를 데려오니 ㅇ로드발 -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17:27에 의하면 로드발(Lo-debar)은 요단 강 건너편 마하나임 부근의 한 성읍이었을 것이다. 혹자는 이곳이 수 13:26에 언급된 '드빌'(Debir)이라고도 주장하는데 확실한 증거가 없다(Keil & Delitzsch). 한편 '로드발'이란 말은 '목초가 없는'이란 뜻으로서 그곳은 일종의 황무지와 같은 척박한 지역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ㅇ마길 - 그의 이름이 17:27에도 언급되어 있는데, 거기에서 그는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마하나임에 도착한 다윗과 그의 종자들에게 후히 선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사실을 통해 볼 때 마길(Machir)은 곤경에 처한 자를 돌볼 줄 아는 사랑의 정신을 지닌 자이자 그에 필요한 재물도 넉넉히 지녔던 자임을 알 수 있다. 6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서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대답하되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ㅇ므비보셋 - 본명은 '므립바알'(Meribbaal)이다(대상 8:34). 그러나 '바알'이란 말이 이방 신의 이름이란 이유로 이는 후대에 '므비보셋'으로 개명(改名)되었다. 4:4 주석 참조. ㅇ주의 종 - 이처럼 므비보셋은 자기를 가리켜 다윗의 종이라고 겸허한 자세를 취하였다. 여기서 '종'이란 이미 앞에서 나온 '에베드'로 '노예'를 의미한다. 2절 주석 참조. 즉 므비보셋은 다윗에 대하여 자신을 노예와 같이 완전히 자유가 없는 자로 칭하였던 것이다. 7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찌니라 ㅇ무서워 말라 - 왕위에 오르면 일단 정적(政敵)과 그 일가 친족들을 모조리 진멸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한 일반적 관례이다. 따라서 므비보셋은 그 같은 관습에 따라 다윗 왕이 자기를 죽이지 않을까 염려하였을 터인데 본절은 바로 그러한 므비보셋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려는 다윗의 애정어린 분부이다(Keil, Lange). ㅇ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 사울의 밭은 기브아에 있던 그의 사유지를 의미하는데(삼상 10:26) 아마도 이 말은 그 동안 시바가 관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다윗의 이러한 약속은 간교한 시바에게는 큰 실망거리였겠으나 마길의 집에 숨어살던 므비보셋에게는 더 없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ㅇ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 이말의 의미는 이중적으로 볼 수 있다. 즉, 이말은 말 그대로 다윗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은 또한 상호간의 아름다운 교제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시 69:22;128:3;단 11:27). 따라서 이 말은 다윗과 므비보셋이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서로 아름다운 교제의 왕래가 있을 것을 뜻하기도 한다(Rust). 8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ㅇ죽은 개 같은 나 - 유대인들은 개를 멸시하였다(출 22:31;삼상 17:43;24:14;왕하8:13;시 22:16, 20). 더구나 '죽은 개'란 시체를 의미하는데 모세 율법에서 시체는 아주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여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레 22:4). 따라서 본 절은 가장 보기싫고 하찮은 인간을 비유한 말임을 알 수 있다. 3:8 주석 참조. 한편 이처럼 므비보셋이 자신을 극도로 비하시켜 표현한 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1)다윗 왕의 큰 은혜에 감격하였기 때문이다. (2)또한 그 자신이 다윗 왕의 은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Keil, Lange). 9 왕이 사울의 사환 시바를 불러서 이르되 사울과 그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ㅇ아들 - 여기에서 아들은 손자(grandson)를 의미한다. 즉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로서 사울의 손자인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아들이나 손자를 모두 '벤'이란 말로 표현한다.6:3 주석 참조. 10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저를 위하여 밭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을 공궤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 다섯이요 종이 스물이라 ㅇ네 주인의 아들을 공궤하라 - 여기서 '아들'이란 말은 므비보셋 한 개인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아내와 자식들을 거느리고 있는 한가족의 대표자 므비보셋을 의미한다고 보아야한다. 왜냐하면 므비보셋 개인은 다윗과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도록 되어있는바(7, 13절) 시바가 공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의 실제적인 의미는 '네 주인의 가족들을 공궤하라'는 말임을 알 수 있다(Keil, Lange). ㅇ시바는...종이 스물이라 - 본절은 적어도 다음 두가지 사실을 시사해 준다. (1)시바가 므비보셋과 그 가족을 공궤하기 위하여 밭을 경작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노동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Lange, Matthew Henry). (2)사울의 종 시바가 그 동안 사울의 유산 중 상당 부분을 유족(遺族)에게 돌리지 않고 착복했을 것이라는 점이다(Pulpit Commentary). 시바의 이 같은 사악하고 간교한 성품은 후에도 여실히 나타난다(16:1-4;19:26, 29). 11 시바가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온갖 일을 종에게 명하신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ㅇ므비보셋은...먹으니라 - 이와 똑같은 구절이 본장에서 모두 4회나 반복되어 있다(7, 10, 13절). 이는 본서 저자가 요나단과의 언약(삼상 20:14, 15, 42)을 철저히 이행하는 다윗의 의리와 사랑을 잘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록한 것임에 분명하다. 한편, 혹자는 다윗이 이처럼 므비보셋을 선대한 이유에 대하여 다윗이 므비보셋의 세력을 처음부터 견제하기 위해 그를 자기 가까이에 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Hertzberg).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은 본서 전체에 나타난 다윗의 인품과는 너무나도 상반된 것이다. 12 므비보셋에게 젊은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무릇 시바의 집에 거하는 자들은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ㅇ젊은 아들...미가 - 여기서 '젊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톤'은 정확히 어떠한 연령층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대개 나이 어린 층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면 무난하다. 한편 이러한 므비보셋의 아들 미가(Micha)는 후에 많은 자손들을 갖게 되며 이 자손들은 이스라엘의 용사(勇士) 및 지도적인 인물들이 되었다(대상 8:35-40;9:40-44). 13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 ㅇ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 - 므비보셋의 약점과 그에 대한 다윗의 은혜를 서로 대조시키고 있는 구절이다. 즉 이와 같이 본서 저자는 이 둘을 대조시켜 놓음으로써 므비보셋에 대한 다윗의 사랑이 극진하며 또한 헌신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The Interpreter's Bible). 3절 주석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