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삿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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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5장  [249. 주사랑하는자다찬송할 때에]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

......사사 드보라와 바락의 전쟁참여 호소에도 불구하고, 르우벤은 (논의만 무성했고 막상 전쟁 참여 요청을 거절, 참여하지 않았으며) 길르앗(이렇게 표현 할 때는 르우벤 지파 지경 상부, 동편 가나안을 총칭함..동편 므낫세 반지파 + 갓 지파)과 함께 (암몬-아말렉과 함께 침입하여 여기로 인근에 기지를 세우고 압제하던 모압왕 에글론 압제로부터) 에훗의 덕을 입고 회복되었음에도, 그리고 가까이에 위치한 단-아셀은 납달리와 함께 빌하에게서 태어난 형제들로서 골육지친이었음에도 형제의 전쟁에 무관심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특별한 설명은 없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아쉽게도!! 사사 에훗 때에도, 사사 드보라 때에도 유다지파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유다의 참여는 없었던 듯 하다)

.......길르앗(Gilead)

인명: 1.므낫세자손으로 마길의 아들이며(민26:29) 슬로브핫의 할아버지이다(민27:1)......2.사사입다의 아버지이다(삿11:1).....3.갓자손으로 미가엘의 아들이다(대상5:14). ....지명: 넓게는 요단동편의 땅을 말하며(수17:5) 좁게는 북쪽으로 야르묵강, 남쪽으로 아르논강, 서쪽으로 요단계곡 사이의지역을 말한다(수13:11; 17:5). 이 지역은 물이 풍부하고 목초가 많아 목축업에 적당한 곳이었다(대상5:16;미7:14). 포도와 올리브 재배를 많이 하였고 유향은 유명한 특산물이었다(렘8:22;  6:11). 이곳의 유명한 지역으로는 길르앗라못, 길르앗야베스, 마하나임, 미스바, 숙곳 등이다. 사사 입다(삿11:1)와 엘리야(왕상17:1)는 이곳 출신이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길르앗 산으로 도망하였다(창31:21).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오기 전 이곳에는 아모리 사람, 모압 사람이 살았는데 이스라엘에 의해 정복되어(민21:24) 므낫세반지파와 갓, 르우벤지파에게 분배되었다(수13:15-31). 그리고 암몬의 침입을 받았을때 길르앗장로들은 사사입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삿11:4-11), 입다는 암몬을 크게 이겼다(삿11:32-33). 암몬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공격해 왔을때 사울이 물리쳤고(삼상11:1-11)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길르앗으로 피신하였다(삼하17:24). 이때 길르앗사람 바르실래가 다윗을 영접하여 다윗을 공궤하였다(삼하17:26). 압살롬은 다윗을 추격하여 길르앗에 진쳤고(삼하17:24-26). 다윗의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에브라임 수풀근처에서 결전하였다(삼하18:6). 그러나 긴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리는 바람에 압살롬은 요압의 병기를 맡은 소년에 의해 죽임당하였다(삼하18:9-15). 이스라엘왕 베가 때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에 의해 이곳이 정복당하고 거주민들이 포로로 끌려갔다(왕하15:29). 그리고 아람(시리아)에 의해 많은 침입과 압제를 받았고(암1:3), 유다지파 야일은 길르앗의 23개의 성읍을 가졌다(대상2:22).


1.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이르되

2.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3.  너희 왕들아 들으라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4.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5.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 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6.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7.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8.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9.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10.  흰 나귀를 탄 자들, 양탄자에 앉은 자들, 길에 행하는 자들아 전파할지어다

11.  활 쏘는 자들의 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물 긷는 곳에서도 여호와의 공의로우신 일을 전하라 이스라엘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의로우신 일을 노래하라 그 때에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

12.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가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13.  그 때에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내려오셨도다

14.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들은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들이요 베냐민은 백성들 중에서 너를 따르는 자들이요 마길에게서는 명령하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들이 내려왔도다

15.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 하니 잇사갈과 같이 바락도 그의 뒤를 따라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16.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찌 됨이냐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17.  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거주하며 단은 배에 머무름이 어찌 됨이냐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도다

18.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19.  왕들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왕들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은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20.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21.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22.  그 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 소리가 땅을 울리도다

23.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24.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25.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우유를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고

26.  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일꾼들의 방망이를 들고 시스라를 쳐서 그의 머리를 뚫되 곧 그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도다

27.  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28.  시스라의 어머니가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며 창살을 통하여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가 그의 병거들의 걸음이 어찌하여 늦어지는가 하매

29.  그의 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그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30.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 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 놓은 채색 옷이리로다 곧 양쪽에 수 놓은 채색 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31.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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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5장

1.  Then sang Deborah and Barak the son of Abinoam on that day, saying,

2.  Praise ye the LORD for the avenging of Israel, when the people willingly offered themselves.

3.  Hear, O ye kings; give ear, O ye princes; I, even I, will sing unto the LORD; I will sing praise to the LORD God of Israel.

4.  LORD, when thou wentest out of Seir, when thou marchedst out of the field of Edom, the earth trembled, and the heavens dropped, the clouds also dropped water.

5.  The mountains melted from before the LORD, even that Sinai from before the LORD God of Israel.

6.  In the days of Shamgar the son of Anath, in the days of Jael, the highways were unoccupied, and the travellers walked through byways.

7.  The inhabitants of the villages ceased, they ceased in Israel, until that I Deborah arose, that I arose a mother in Israel.

8.  They chose new gods; then was war in the gates: was there a shield or spear seen among forty thousand in Israel?

9.  My heart is toward the governors of Israel, that offered themselves willingly among the people. Bless ye the LORD.

10.  Speak, ye that ride on white asses, ye that sit in judgment, and walk by the way.

11.  They that are delivered from the noise of archers in the places of drawing water, there shall they rehearse the righteous acts of the LORD, even the righteous acts toward the inhabitants of his villages in Israel: then shall the people of the LORD go down to the gates.

12.  Awake, awake, Deborah: awake, awake, utter a song: arise, Barak, and lead thy captivity captive, thou son of Abinoam.

13.  Then he made him that remaineth have dominion over the nobles among the people: the LORD made me have dominion over the mighty.

14.  Out of Ephraim was there a root of them against Amalek; after thee, Benjamin, among thy people; out of Machir came down governors, and out of Zebulun they that handle the pen of the writer.

15.  And the princes of Issachar were with Deborah; even Issachar, and also Barak: he was sent on foot into the valley. For the divisions of Reuben there were great thoughts of heart.

16.  Why abodest thou among the sheepfolds, to hear the bleatings of the flocks? For the divisions of Reuben there were great searchings of heart.

17.  Gilead abode beyond Jordan: and why did Dan remain in ships? Asher continued on the sea shore, and abode in his breaches.

18.  Zebulun and Naphtali were a people that jeoparded their lives unto the death in the high places of the field.

19.  The kings came and fought, then fought the kings of Canaan in Taanach by the waters of Megiddo; they took no gain of money.

20.  They fought from heaven; the stars in their courses fought against Sisera.

21.  The river of Kishon swept them away, that ancient river, the river Kishon. O my soul, thou hast trodden down strength.

22.  Then were the horsehoofs broken by the means of the pransings, the pransings of their mighty ones.

23.  Curse ye Meroz, said the angel of the LORD, curse ye bitterly the inhabitants thereof; because they came not to the help of the LORD, to the help of the LORD against the mighty.

24.  Blessed above women shall Jael the wife of Heber the Kenite be, blessed shall she be above women in the tent.

25.  He asked water, and she gave him milk; she brought forth butter in a lordly dish.

26.  She put her hand to the nail, and her right hand to the workmen's hammer; and with the hammer she smote Sisera, she smote off his head, when she had pierced and stricken through his temples.

27.  At her feet he bowed, he fell, he lay down: at her feet he bowed, he fell: where he bowed, there he fell down dead.

28.  The mother of Sisera looked out at a window, and cried through the lattice, Why is his chariot so long in coming? why tarry the wheels of his chariots?

29.  Her wise ladies answered her, yea, she returned answer to herself,

30.  Have they not sped? have they not divided the prey; to every man a damsel or two; to Sisera a prey of divers colors, a prey of divers colors of needlework, of divers colors of needlework on both sides, meet for the necks of them that take the spoil?

31.  So let all thine enemies perish, O LORD: but let them that love him be as the sun when he goeth forth in his might. And the land had rest forty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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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5장 (개요)

본 장에는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를 멸한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개선의 노래가 있다. 그 때에도 오늘날같이 승전했을 때에 시를 짓는 일이 흔히 있었던 것 같다. 이 시는 사사 시대의 시로서 오늘날까지 보존되는 유일한 시다. 이 시는 여선지자 드보라에 의해 지어진 찬양의 시며 후세에는 찬양의 한 전형이 되었다. 또한 그것은 오늘날 역사상에도 빛을 던져 주고 있는 시다.

1. 이 시는 하나님께 대한 찬미로 시작된다(2, 3).

2. 이 시는 지나간 위대한 일들을 다음과 같이 상기시켜 전하고 있다.

   (1) 당시 이스라엘에 나타났던 하나님과 시내 산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비교해 놓았다(4, 5).

   (2) 그들이 재난당했을 때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것을 찬양했다(6-8).

   (3) 이 승리의 영광을 나눈 자들도 그녀와 함께 찬미할 것을 청했다(9-13).

   (4) 이 싸움에 출전해 영예를 얻은 지파와 협조를 거부해 치욕을 얻게 된 지파들의 태도를 반영해 놓았다(14-19, 23).

   (5)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위해 어떻게 싸우셨는지를 묘사했다(20-22).

   (6) 시스라를 죽인 야엘의 영광을 특별히 크게 칭송해 놓았다(24-30).

   (7)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이 노래는 끝맺는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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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라와 바락의 노래 (1)(삿 5:1-5)

앞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기사를 행하신 것을 읽었으나, 이제 여기서는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찬미를 살펴보게 된다. 

모든 세대의 교회는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칭송하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Ⅰ. 노래로 하나님을 찬미했다.

1. 그 노래는 매우 자연스러운 기쁨의 표현이었다.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 5:13). 거룩한 기쁨은 바로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찬미이며 감사다. 

하나님은 그 분의 안에서 즐거워하는 우리를 통해, 그리고 그 분의 놀라운 역사를 통해 영광 받으시기를 즐겨 하신다. 

종들의 기쁨은 바로 그 분의 즐거움이며, 종들의 노래는 그 분에게 아름다운 가락이 된다.

2. 노래는 위대한 사건들을 영구히 보존시킬 수 있고 그 지식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이웃에게 노래를 전하고 부모는 자식들에게 전해, 책이라는 매개체가 없던 시대이거나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 하나님의 일을 잘 알 수 있었다.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시 145:4 이하).

Ⅱ. 드보라가 이 노래를 지었는데, 그것은 7절에 “나 드보라가 일어났다”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첫 번째 구절에서도 “드보라도 노래하였다”라고 나타나 있다.

1. 그녀는 여선지자로서의 재능을 잘 발휘해 노래 가사를 지었고, 전편에 흐르는 가락은 매우 깨끗하고 고상했다. 

또 그 표현법도 우아해 이 훌륭한 배합 속에는 아름다움과 위엄이 들어 있다. 어떤 시도 이 거룩한 시와 비교될 수 없다.

2. 승리한 이스라엘 군사에게도 이 노래를 배우고 부르게 함으로써, 한 여군주로서의 그의 권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에게 이 시를 배우게 함으로써 그녀 자신이 찬미를 받고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시를 통해 자기와 함께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일에 동참케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 싸울 때에 앞장섰으며 이제 감사드리는 일에도 역시 그랬다.

Ⅲ. 이 노래는 싸움이 있었던 바로 그 날이 아니라 싸움이 끝난 직후, 감사의 날로 지정될 수 있었던 축제일에 불렸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 때, 우리는 찬미의 보답을 드리는 데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은혜에 대한 감명이 생생할 때 속히 찬미를 드려야 한다. 

그것은 바로 그 날 즉시 답해 드려야 한다.

1. 그녀는 전 백성의 할렐루야로 노래를 시작하고 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혹은 문자 그대로 축복할지어다)”(2절). 

이 노래의 의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것이었으므로 이 구절을 첫부분에 내놓고 있다. 

이것은 주기도문에서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하는 첫 번째 탄원과 같이 그 다음에 오는 내용을 설명해 주고 거기에 방향을 인도하고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두 가지 일을 찬미하고 있다.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오만하게 학대하던 적을 벌하시어, 이스라엘이 받은 모든 상처를 갚아 주셨다. 

“여호와께서” 의로우신 하나님으로 “자기를 알게” 하셨으며, 하나님은 “심판을 행하심”으로 원수를 갚아 주시는 보복의 하나님이시다(시 9:16).

(2) “백성이 즐거이” 이 싸움에 “헌신하였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친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선한 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또한 일을 기꺼이 하면 할수록 그 뜻과 행적에 더 많은 은혜를 받게 된다. 

이 두 가지 일로 인해 드보라는 노래를 지어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했다(13절). “나 곧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노래할 것이라.” 

비교할 수 없는 권세와 저항할 수 없는 권능을 가진 하나님, 곧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는 모든 것을 교회의 이익을 위해 통치하신다.

2. 그녀는 이 세상에서 극히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을 불러 그녀와 함께 찬미하고 그 찬미의 주제를 주목하라고 명령했다. 

"너희 왕들아, 들으라. 방백들아, 귀를 기울이라.”

(1) 그녀는 그들로 하여금 그들보다 더 위대하고 고귀한 분이 한 분 계시며, 그들이 이 세상에서 느끼는 교만은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알게 했다. 

또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하며, 말이나 병거도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기에는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2) 그녀는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기와 함께 찬미하기를 바랐다. 

또 벨사살 왕처럼 더 이상 헛된 우상을 섬기며 찬양하지 않기를 원했다. 그는 “금, 은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했다”(단 5:4). 

그녀는 다윗 왕과 같이 그들에게 말했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길지어다”(시 2:10, 11).

(3) 그녀는 시스라의 운명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을 해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하나님께서 조만간에 그들이 행한 것을 갚으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3. 그녀는 하나님이 이전에 행하신 일들을 이번 일과 비교해 봄으로써 이 위대한 구원을 행하신 하나님을 더욱더 영광스럽게 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셨던 일을 미루어보아 지금 그 분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시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셨나이다”(4절). 이 말은 다음의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그것은 이스라엘의 적을 복종케 하고 정복하셨던 하나님의 권능과 정의를 나타낸다. 

이런 일은 하박국 3장 3, 4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거기서는 이스라엘의 적 대신 교회의 적들을 멸하는 것을 이처럼 서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에돔 들에서 인도하실 때, 큰 공포와 두려움으로 시혼과 옥의 군대를 치시사 그들이 마치 땅과 하늘이 맞붙으려 한다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말발굽 아래 굴복시키셨다. 그들은 자기의 주위 세계가 녹아 버리는 것과 같이 마음이 나약해졌다. 본문은 하나님의 엄위의 영광스러운 출현과, 땅을 지키고 하늘을 태양 아래 있는 눈과 같이 방울져 내리게 하며 산을 녹일 수 있는 하나님의 권능의 놀라운 효능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시편 18편 7절과 비교해 보라. 하나님의 뜻은 어떤 피조물도 방해할 수 없으며, 그 뜻이 모두 이루어지는 날에는 그 분을 거역하는 것처럼 보였던 모든 것이 그 뜻 앞에 굴복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도울 것이다(사 64:1, 2 참조).

(2) 또는 그것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었을 때 이스라엘에게 그 분의 영광과 권세를 드러내신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때는 문자 그대로 “땅과 산이 진동하고 하늘이 새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이것을 신명기 33장 2절, 시편 68장 7, 8절과 비교해 보라. 모든 왕과 방백들은 드보라가 찬미한 신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며, 그들이 경의를 표하던 천하고 무능한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 시리아역 주석은 이것을 율법을 내리는 일에 적용시켜, “산이 진동하였도다”라는 구절을 색다르게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다볼, 헐몬, 그리고 갈멜은 서로 분쟁하였다. 하나가 말하였다. ‘거룩한 권세를 내게 이르게 하라.’ 또 하나가 말하였다. ‘아니다. 그것을 내게 이르게 하라.’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모든 산 중에서 가장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시내 산에 이르게 하셨다.” 아마도 짐작건대 시내 산은 돌이 많고 황폐한 산으로서, 별로 쓸모가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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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라와 바락의 노래 (2)(삿 5:6-11)

Ⅰ. 드보라는 야빈의 폭정하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의 상황을 묘사했다. 

그들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들의 구원은 더욱 찬란하고 은혜로운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6절). 

블레셋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했던 “삼갈의 날부터” 현재 야엘의 날에(야엘은 이렇게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이르기까지 그 나라는 줄곧 이처럼 황폐했다.

1. 상거래가 없었다. 

백성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적의 기습을 막아 줄 군사들이 없었고, 그들 사이에 있는 도적과 강도들을 규제하고 처벌할 법관이 없었으므로(파산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노상에서 약탈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모든 상업은 중단되고 모든 공로(公路)는 사람들이 거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이전처럼 상인들의 마차 행렬도 없었다.

2. 여행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어떤 명령이나 정부가 있었을 때에는 여행자들이 대로에서 안전할 수 있었고 도둑들은 샛길로 숨었으나, 이제는 그와 반대로 강도들은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대로상에서 사람들을 욕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성실한 여행자들은 끊임없는 공포 속에서 샛길로 걸어다녀야 했다.

3. 경작지가 없었다. 

마을 주민들과 농부들이 일하기를 멈추었으므로 들은 황폐한 채로 내버려져 있었고 도적들이 끊임없이 약탈해 갔으므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위협을 느끼는 집을 버리고 잘 방어된 성읍 속에 숨어 있었다.

4. 사법부도 없었다. 

그들의 법정들이 있는 성문에서도 싸움이 있었다(8절). 그러므로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감히 내려갔던” 것은 그들이 구원을 얻었을 때였다(11절). 끊임없이 감행된 적의 기습은 치리자들의 권위를 떨어뜨렸고 백성들의 이익을 빼앗아 갔으며 통치 기능을 마비시켰다.

5. 성문을 출입할 수 있는 평화가 없었다. 

통행하는 성문에는 적들의 횡포가 심했다. 뿐만 아니라 궁수(사수)들이 우물가에 나타나 물 긷는 자들에게 공포를 주었다.

6.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없었으므로(8절), 그들은 정신적으로도 무력으로도 자신이 없었다. 

그것은 그들이 압제자들 때문에 무기를 지니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들 자신이 싸움의 기술을 무시해 익혀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비록 그들이 창과 방패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할 기술이나 마음이 없었으므로 내버려 두어 녹슬어 못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Ⅱ. 드보라는 이런 불행에 처하게 된 이유를 한 마디로 요약했다. 

즉 그것은 그들이 “새 신(神)들을 택하였기” 때문이다(8절).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이처럼 적의 수중에 넘어가게 된 것은, 그들의 우상 숭배 때문이었다. 하나님 여호와는 한 분이신 주님이었으나, 그들은 이에 만족지 못했다. 그들은 더욱 많은 신들을 갖고자 했다. 하나님은 태고의 상재이시며 여전히 똑같은 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분께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마치 새 옷을 좋아하는 아이들처럼 새 신들을 섬겨 새로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영웅을 명부에 기록하고자 했다. 조상들은 여호와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택했으나(수 24:21), 그들은 그 선택을 계속 지키려 하지 않고 마음대로 새로운 신들을 택했던 것이다.

Ⅲ. 그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하셔서 그들의 호소를 들어주신 위대한 자비를 중히 여겼다. 

그녀 자신이 먼저 시작했다(7절). 민중의 화평을 교란시켰던 자들을 규제하고 처벌하며 백성들에게는 자기들의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기 위해 마침내 “나 드보라가 일어났다.” 그러자 모든 것의 양상은 빨리 호전되었다. 먹이를 노리던 짐승들은 이 기쁜 빛이 비치자 그 행적을 감추었고, “사람은 다시 나와서 노동하며 수고하였다”(시 104:22, 23). 이처럼 그녀는 그 백성들에게 어머니가 되어 사랑을 베풀고 안녕을 위해 수고와 관심을 기울였다. 그녀 밑에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다른 치리자들이 있었다(9절). 그들은 그녀처럼 백성들을 바로잡기에 힘을 기울였으며, 싸움이 터졌을 때 그들의 권위와 직책의 특권을 들어 출전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싸움터에 나가 헌신했다. 물론 그들이 “즐거이 헌신한”(2절) 태도는 백성들의 마음을 감화시켰을 것이다. 이런 치리자들에 대해 그녀는 “내 마음이 그들을 사모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즉 “나는 진실로 그들을 사랑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은 영원히 내 마음을 얻을 것이며, 나는 결코 그들을 잊을 수 없으리라”고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과 그의 교회를 섬기기 위해 자신의 영광을 자진해서 포기한 자는 갑절의 영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임을 기억하자.

Ⅳ. 그녀는 이 위대한 구원의 특별한 혜택을 입은 자들에게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릴 것을 촉구하고 있다(10, 11절). 백성들의 상황이 행복하게 바뀌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발견했을 때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말하게 만든다.

1. 너희 “흰 나귀를 탄 자들,” 즉 고귀한 귀족들은 말해야 한다. 

그 지방에서는 말을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나귀는 아마도 우리의 나귀보다 훨씬 좋은 품종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타고 있는 나귀의 빛깔로 사람들의 신분을 구별했다. 이 흰 나귀는 드문 것이었으므로 보다 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귀한 신분을 지니고 있는 자들로서 압돈의 아들들과 손자들을 들 수 있다(12:14). 이런 자들도 이 구원으로 해서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자유를 얻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지위를 되찾았으므로 하나님을 찬미해야 할 것이다.

2. “화문석에 앉은” 자들도 싸움의 칼이 정의(재판)의 칼을 꺾어 버리지 않음으로써 자기들이 그 자리에 편히 앉을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매우 귀중한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해야 한다.

3. 길에 행하는 자들도 오랜 동안 길거리에서 그들을 괴롭힌 강도들을 제거해서 이제 두려움 없이 길을 걸을 수 있게 해 주신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감사하고, 믿음의 대화 속에서 함께 길을 가는 동료들에게 이것을 말해야 한다.

4. 또한 이제 그들의 우물은 빼앗기지도 않게 되었고 막히지도 않게 되었으며, 물 길으러 갔을 때 적에게 잡힐 위험도 없었다. 

그러므로 안전하고도 편하게 물을 길을 수 있는 사람들도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칭술해야” 한다. 그들의 나라를 화평케 하고 모든 영광을 지켜 준 것은 드보라나 바락의 행위가 아니라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었다(시 118:23). 이 일을 통해,

(1) 오만한 대적들에게 집행하신 하나님의 정의를 볼 수 있다. 

그 모든 것은 여호와의 의로우신 행동이다. 심판의 보좌에 앉으사 의로우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리고 그 분께 세상의 심판자로서의 영광을 돌리자.

(2) 공포에 떨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곧 “고을들에 거하는 자들”에게 베푸신 자비로움을 볼 수 있다(겔 38:11). 

그들은 적에게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고 극심한 고난을 받아 왔으며 큰 위험에 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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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라와 바락의 노래 (3)(삿 5:12-23)

Ⅰ. 드보라는 그녀 자신과 바락을 선동하며, 그들을 격려해 주시고 적들을 크게 혼미시켜 승리를 주심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이스라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그 승리를 최대한 엄숙히 축하했다(12절).

1. 드보라는 여선지자로서 그녀 자신이 열광적으로 노래했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다시 “깰지어다, 깰지어다” 하고 반복한 것은, 이 일의 탁월성과 어려움을 암시해 주고 있다. 사실 이 일을 수행하는 데는 지극한 용맹과 사기가 필요했다. 온갖 능력과 수완을 다 기울여야만 이 일을 수행할 수 있었다. 여기서 그녀는 자신의 나약성과 이 일에서 위축되어 열의를 잃기 쉬운 기질을 잘 표현해 놓았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깨닫고 분기해서 해야 할 일임을 알자(시 108:2).

2. 바락은 대장으로서 득의만면하게 이 일을 행해야 했다. 

“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비록 시스라의 군사들이 싸움터에서 모두 살해당했다 할지라도, 우리는 싸움이 끝났을 때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은 많은 적의 무리가 포로로 사로잡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이들을 사슬에 묶어 바락의 뒤를 따르게 하여, 그가 성읍으로 들어가 백성들을 만났을 때 승리를 더욱 빛나도록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짓밟는 것을 낙으로 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그들을 욕하고 그들 앞에서 자긍하던 자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통치의 위대한 뜻에 이바지하기 위함이었다.

Ⅱ. 그녀가 이렇게 찬미하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13절). 

이 영광스러운 승리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특히 드보라를 매우 위대하게 보이게 해 주었으며,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이었다.

1. 이스라엘 백성은 수적으로도 적고 보잘것없는 백성들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권세 있는 자들을 지배할 수 있게 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많은 사람들이 적에게 살해당했고,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그 가족과 재산을 타국으로 피신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살아남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도움을 내리시어, 그들의 목을 조르고 있던 굴레를 벗겨 버렸을 뿐 아니라 그들의 압제자들을 쳐부수는 능력을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 있는 한 그 수가 아무리 적더라도(하나님은 최악의 경우라도 한 사람의 이스라엘 백성은 살아남게 하실 것이다) 거기엔 희망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사람이 남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힘세고 유력한 자들을 이기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 드보라 자신은 연약한 여성이었다. 이들은 에덴 동산에서 타락한 이래로 남자에게 복종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보다도 더욱 높으신 하나님께서 그녀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힘센 남자들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즐거이 그녀에게 복종했고, 그녀로 하여금 가나안의 힘센 남자들을 이기게 하셨으므로 그들은 그녀가 지휘하는 군사들에게 패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다”(눅 1:48). “여호와는 나 여자로 힘센 남자들을 지배하게 하셨도다.” 천하게 여겨지던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마 21:42) 일이 아닐 수 없다.

Ⅲ. 그녀는 이 위대한 일과의 관계에서, 여러 부류 사람들을 낱낱이 구별해 말하고 있다. 

즉 대적이 된 자들, 동조해 싸운 자들, 그리고 중립을 지킨 자들 등이다.

1. 그들을 대적한 무리들. 적의 힘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그 힘이 크면 클수록 그들을 이긴 승리는 더욱 영광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 

야빈과 시스라는 이미 언급된 바 있었으나 여기서 좀 더 상세히 나타난다.

(1) 아말렉은 야빈과 동맹을 맺고 그에게 도움을 보냈다. 

에브라임은 여기에 아말렉에게 대항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14절), 아마도 그들은 시스라에게 합세해 이스라엘을 공격해 오는 아말렉 사람들을 막거나 살해했을 것이다. 아말렉은 모압을 도와 이스라엘을 억압한 적이 있었으며(3:13), 이제는 야빈을 도왔다. 아말렉은 하나님의 백성과 불구대천의 원수였으며, “여호와께서 대대로 싸우리라”고 하신(출 17:16) 바로 그 백성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욱 위험스러웠다.

(2) 가나안의 왕들은 여호수아에게 패한 후로 다시 국력을 회복해 야빈과 합세하고 군세를 더욱 강하게 했다. 

그런데 그들은 하솔의 왕에게 종속되어 있었을 때부터 이스라엘의 잔인한 원수였다(수 11:10). 이 왕들이 “와서 싸웠다”(19절).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으나 그들의 적들은 많은 왕들을 갖고 있었으며, 이들이 동맹을 맺어 힘을 합했을 때는 엄청난 힘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있던 이스라엘은 이 모든 적에게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이 왕들이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즉 그들은 돈으로 야빈의 군대에 고용된(돈으로 고용된 자들은 궁지에 몰리게 되면 때때로 일을 그르친다) 자들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스라엘을 멸하기 위해 나선 자들이었다. 시리아역 주석은 “은을 획득하여 부유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단지 이스라엘을 멸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게 여겼다고 했다. 따라서 이들의 힘은 더욱 무서웠고 더욱 잔인할 수밖에 없었다.

2. 그들을 위해 함께 싸운 무리들. 이 위대한 업적을 도운 여러 지파들이 여기에 영광스럽게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영광 받으실 주된 분이나 협력한 그들도 마땅히 칭찬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결국 이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하늘이었다.

(1) 에브라임 지파와 베냐민 지파―드보라는 이 지파들과 살았었다―는 그녀의 영향을 받아 분발하고 용감히 나가 싸웠다. 

에브라임 지파 내에 있었고 베냐민 지파와도 퍽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뿌리가 아말렉을 대적했다(14절). 12장 15절에 보면 에브라임 땅에는 “아말렉 사람의 산지”라고 불리는 산이 있다. 혹자들에 의하면, 본문의 의미도 그런 것이라 한다. 즉 그들은 그 구절을 “아말렉에는 한 뿌리가 있었다”고 해석하는데, 그것은 그 산에는 자기들의 압제자들을 저지하려는 사람들의 단호한 결의가 있었으며 그것이 이 문제의 뿌리였다는 것이다. “에브라임은 너희 베냐민을 뒤따랐도다.” 비록 베냐민은 에브라임의 동생 되는 지파였고 특히 당시에는 수로 보나 재물로 보나 그들보다 열등했지만 베냐민 지파가 앞장서서 행할 때 공동 목적을 위해 그들을 뒤따랐다. 만일 우리가 앞장설 만큼 대담하지 못하다면, 우리는 선한 사업을 위해 우리보다 열등한 자들이 앞서 갈지라도 그들을 비웃거나 뒤따르기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에브라임 지파는 싸움터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많은 군사들을 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지파에 속했던 드보라는 그들 가운데 이 일을 위해 온 성의를 기울이려는 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이에 대해 아주 색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는 이 내용이 에브라임 출신의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쳐부수어 승리를 거두게 한 뿌리가 되어 왔으며(출 17장), 베냐민 출신의 에훗이 그 후 아말렉과 모압을 치는 뿌리가 된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 에브라임과 베냐민, 마길(요단 건너편에 있는 므낫세 반 지파) 그리고 스불론에 의해 시작된 용기가 용사들에게 전달됨으로써 그들은 이 위대한 계획을 위해 매우 크게 기여했다. 백성들이 오랫동안 무기를 사용하지 못했고, 침체되어 있었던 이런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바락이 군사를 일으켰을 때, 

① 용기 있는 자들은 이 일을 하기 위해 왔고, 마길에서도 “다스리는 자들이” 내려왔다. 

마길은 모세의 시대에 용맹하기로 이름난 집안(민 32:39)이었으므로, 그 용맹은 계속 전해 내려왔을 것이며 그들이 국경 지방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② 학식 있고 재주 있는 자들도 왔다. 

스불론에서는 “저술가의 펜을 잡은” 자들이 왔다(KJV, 14절). 이들은 명령을 회람시키고 군사들을 검열해 보고서를 기록하는 일을 맡았던 자들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청지기같이”(벧전 4:10) 공중의 이익을 위해 몸과 마음을 기울여 봉사해야 한다.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학자들이라 싸움의 기교나 경험이 없었지만 이런 일을 당해 손수 무기를 들고 나섰다는 것은 그들의 성숙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블랙모어(Richard Blackmore)도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스불론의 서기관들과 학자들은 붓대를 놓고 칼을 휘둘렀다.”

(3) 잇사갈 역시 훌륭히 도왔다. 

그 지파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겼으나 “어깨를 내려 짐을 메었다.” 이것이 그 지파의 특성이다(창 49:15). 그들은 야빈에게 조공을 드리는 굴레 메기를 혐오해, 이제 비굴한 안식보다는 대범한 수고를 택했다. 또한 그 지파에서 모인 군사들은 얼마 안 되는 것 같으나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 바락과 함께하였다”(15절). 아마도 이들은 이 긴급한 사태를 맞이해 싸움의 전략에 많은 조언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방백들은 바락과 함께 손수 싸움터로 나간 것 같다. 바락이 걸어갔다면, 그들은 명예나 안일을 생각지 않고 바락과 함께 걸어갔을 것이다. 그가 가장 위험한 계곡으로 들어섰다면, 그들은 스스로 바락과 함께 돌아다니며 그의 오른팔이 되어 충고했을 것이다. 잇사갈 사람들은 “시세를 알고”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대상 12:32).

(4)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는 모든 지파 가운데 가장 대담하고 적극적인 지파였다. 

그들은 바락에 대해 특별한 우애를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야빈의 땅과 매우 근접해 있어 다른 어느 지파들보다도 더 무거운 속박의 굴레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구속받으며 살기보다는 영예롭게 죽기를 원해 하나님과 그들의 나라에 대한 경건한 열성을 품고 “들의 높은 곳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다”(18절). 이렇게 영웅적인 용기를 갖고 있는 그들은 철병거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죽음에까지도 도전했다.

(5) 하늘의 별들도 이스라엘의 편이 되어 주었다(20절). 

성좌의 위대한 주인이신 하나님의 명에 따라 “별들이 그 다니는 길에서” 악의에 가득 찬 “시스라와 싸워” 빗발과 천둥을 퍼부음으로써 시스라의 군대를 진멸하는 데 기여했을는지도 모른다. 시리아역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하늘로부터 별들이 나오는 곳에서부터 시스라를 대적하는 싸움이 행해졌다.” 즉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권능을 행하시어 하늘의 사자들로 하여금 시스라를 멸하는 일을 돕도록 했다. 아무튼 하늘에 있는 무리들은(여호수아의 말에 해가 멈춰 섰던 것처럼, 별 무리들이 정지한 것은 아니고 그들의 궤도를 그대로 돌면서) 시스라와 대항해 싸웠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적을 대항해 싸운다. 아마도 별의 섬광에 말이 놀라 달리다가(22절), 말굽이 부러졌을는지도 모르며, 그들이 끌던 철병거가 오히려 자신들을 공격했을는지도 모른다.

(6) 기손 강도 이스라엘의 적을 대항해 싸웠다. 

그 강은 그 곳을 지나 도망하려는 적의 무리를 휩쓸어 갔다(21절). 보통 때는 그 강이 얕은 강이었고, 자기 나라 안에 있는 것이었으므로, 그들은 자기들의 건널 길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큰 폭우로 인해 아마도 그 강물이 불어나 수심은 매우 깊어지고 물살은 세어져, 그 곳을 건너려는 자들은 기운에 지쳐 건너가지 못하고 물에 빠져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22절에 나타난 대로 “빨리 달리던” 말발굽은 부러지게 되었다.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불렸는데, 이것은 고대 역사가들이나 시인들이 그것을 찬양하거나 묘사해 온 때문이거나, 아니면 그 때 시스라를 멸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래전부터 예정해 놓으신 강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오래전부터 “옛 못의 물”을 만드셨다고 전해지고 있다(사 22:11).

(7) 드보라 자신의 영혼이 그들을 대적해 싸웠다. 

그녀는 거룩한 환희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내 영혼아, 네가 힘있는 자를 밟았도다”(21절). 그녀는 전심을 다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킴으로써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또한 모세가 자기의 손을 들어올려 아말렉을 정복한 것과 같이, 그녀는 기도를 올림으로써 시스라를 전멸시켰다. 우리의 영혼이 거룩한 기도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한다면, 대적은 짓밟힐 것이며 우리들 앞에서 전멸할 것이다.

3. 이 큰 싸움에서 그녀는 이스라엘 군대를 도와야 할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돕지 않은 중립자들을 지적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 불리던 많은 사람이 이 영광된 일을 야비하게 버리고 싸우기를 거절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유다나 시므온 지파는 싸움터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참가할 기회를 얻지 못했으므로 그들이 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두 지파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싸움에 참가치 않은 자들은 마땅히 씻을 수 없는 치욕의 낙인을 받아야 했다.

(1) 르우벤은 비겁하게 이 일을 기피했다(15, 16절). 

그는 오래전에 장자의 명분을 박탈당했고, 임종에 처한 자기 아버지의 유언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물이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창 49:4). 이 르우벤 지파는 다음 두 가지 때문에 싸움에 출전하지 않았다.

① 그들의 분열. 드보라는 그들의 불화를 두 번씩이나 언급해 그들의 수치를 드러냈다. 

“르우벤의 분열 때문에”(또는 그 분열 속에는. KJV) “크게 살핌이 있었다.” 즉 “마음의” 감명과 탐색이 있었다. 르우벤은 요단 강으로 인해 가나안과는 분리되어 있었다. 이것은 실상 그들이 그 싸움에 열성을 다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핑계를 내세우며 출전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서로 갈라져 각자의 영예를 추구하고 위험스러운 일은 피하려는 마음 때문에 이 불행한 사태에도 불구하고 서로 단합하지 못했으며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형제들과 협력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또한 나머지 지파들과 의견을 달리해 싸우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거나 실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해, 출전하는 자들을 비웃으며 그들 자신이 참가하기를 거부했다. 이처럼 르우벤 지파가 형제애를 냉각시키고 그들 사이를 이간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지파들은 우울한 생각에 잠겨 마음에 크게 살핌이 있었다. 우리의 형제가 우리들이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보고 화를 내며, 그들의 도움과 사랑이 필요할 때 냉담한 태도를 지닌다면, 우리는 슬프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② 그들은 세상일을 핑계삼았다. 

르우벤은 양을 돌봐야 한다는 구실로 싸움터보다 더 안전하고 포근한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 있었다.” 그들은 “양떼들의 우는 소리를” 듣기 좋아했고, 또는 여기에 적혀 있는 대로 양치는 목자들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듣기 좋아했다. 르우벤은 군사들의 북소리나 나팔 소리보다 이런 것을 듣고자 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은 고통을 피하고 안이함을 찾으려는 마음에서 자기들의 의무를 버리고 세속적인 일이나 이익에 지나치게 집착하려 한다. 편협한 이기심을 지닌 자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이익이 되는 것은 구하지 않고 오직 돈을 모으고 “다 자기 일을 구한다”(빌 2:21).

(2) 단과 아셀 지파도 똑같이 행했다(17절). 이 두 지파는 해변가에 머물러 있었다.

① 단은 그의 배를 꼭 지켜야만 하는 것처럼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고(눅 14:18, 19) 말하며 싸움에 협력하기를 거절했다. 

아마 단 지파는 바다에서 일하는 자기들이 육지에서 싸우기에는 적합치 않다는 이유를 들어 이 일을 모면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부 생활을 천직으로 삼는 스불론 사람들도 출전해 열심히 싸워 주었다. 우리의 의무를 남에게 전가하려 하는 것은 단지 용기와 결단력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므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② 아셀 지파는 바닷물에 의해 갈라진 방파제 등을 수리해야 하며, 자기들의 토지가 침식되지 않도록 보수해야 한다는 것을 핑계삼아 집에 머물러 있거나 배에 앉아 있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렵고 위험해 하고픈 마음이 없을 때는 극히 조그만 것이라도 핑계삼아 집에 머물러 있으려 하기 쉽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로스는 정죄를 받았고, 거기에 거하는 자들에게 저주가 선포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한 때문이었다”(23절). 아마 메로스라는 곳은 이 일이 벌어졌던 바로 인근 성읍에 위치한 어떤 도성일 것이다. 그 주민들은 하나님에 대한 복종과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해 선한 싸움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야빈의 철병거를 두려워하고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려고 잔인하게 거절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도움이 필요 없었고 그들 없이도 충분히 그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태도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그들은 자기들의 도움이 없어 이 일이 실패하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누가 하나님의 편인가?” 실지로 판명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도우러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저주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과 대적되는 힘(암흑 왕국의 권세와 능력) 사이에는 결코 중립되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돕지 않는 자들을 적으로 간주하신다. 이 저주는 만군의 대장이자 우리 주 예수, 즉 “여호와의 사자”에 의해(“그가 저주하는 자들은 정말 저주받은 것이다”) 선포된 것이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권능과 권세를 받지 못했으므로 저주를 내릴 수 없다. 당신의 선한 군사들에게 충분히 보답하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비겁한 자들과 도망한 자들을 분명히, 그리고 엄격하게 벌하실 것이다.

메로스 성읍은 당시 중요한 곳으로서 많은 도읍이 세워졌던 것 같다. 

그러나 아마도 여호와의 사자가 저주한 이래로,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가 저주한 무화과나무처럼 시들고 타락해 버린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후에 성경에서 그 성읍에 관해 언급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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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라와 바락의 노래 (4)(삿 5:24-31)

드보라는 이 승리의 노래를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Ⅰ. 이 일을 완성시키고 승리를 빛나게 한 또 하나의 여주인공 야엘을 칭찬했다. 드보라는 전에 야엘이 권능을 행하게 되는 날 이 나라를 위해 일할 것을 언급한 적이 있다(6절). 그녀는 때가 왔을 때 즉시 권능을 행한 야엘을 칭찬했다. 그녀의 시는 이 끝 부분에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노래가 되었다. 드보라는 24절부터 야엘에 대한 칭송을 아끼지 않고 있다. 즉 야엘은 가나안의 왕과 화평을 지키느니보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복종했다. 그녀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 위급한 사태에서 마치 싸움터에서 호령하는 지휘관처럼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와 싸우시는 것을 보고 용감히 이스라엘을 위해 싸웠다. 그러므로 “야엘은 장막에 거한 여인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그 보잘것없고 좁은 활동 영역이라 해도 장막 내에 임하는 것이 본분인 자들도, 그들의 능력을 다해 하나님을 섬길 때 결코 그들의 상급을 잃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자. 장막에 거하는 야엘은 싸움터에서 활약한 바락과 마찬가지로 풍성한 축복을 얻었다. 드보라는 여기서 두 가지의 큰 실망의 사건을 매우 훌륭하게 묘사해 놓고 있다. 이 사건보다도 더 인간을 당혹하게 하고 괴롭게 하며 부끄럽게 해 주는 것은 없다. 그 사건은 바로 죄인들이 당할 영원한 치욕을 상징한다.

1. 시스라는 자기가 굳게 신뢰했던 친구에게서 숙적을 만나게 되었다.

(1) 야엘은 그에게 친구로서의 호의를 보여 주었는데,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충동해 그녀로 하여금 그를 배반하도록 지시하기 전까지는 그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외에는 달리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25절). 그가 갈증을 채우기 위해 단지 물을 청했을 때, 그녀는 자기의 훌륭한 가사 관리를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우유를 주고” “버터를 내어 옴으로써,” 즉 (혹자들의 생각대로) 버터를 뽑아 낸 우유―우리는 이런 것을 버터 우유라 한다―를 줌으로써 그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그에게 준 것은 우리가 크림이라고 부르는 버터가 든 우유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우유가 어떤 것이었든 간에 그녀의 집에 두었던 가장 훌륭한 것을 그에게 제공했음이 틀림없다. 그녀는 그것을 식탁에서 쓰는 그릇에 담지 않고 그녀가 갖고 있던 가장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다. 이런 그녀의 태도는 시스라로 하여금 그녀에 대한 신뢰를 더욱 견고하게 해 주었고, 그는 안심하고 깊이 잠들 수 있었다. 그러나

(2) 그녀는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적이 되었다. 이 일은 26, 27절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① 야엘의 모습은 얼마나 훌륭한가? 그녀는 그렇게 오랫동안 강한 힘으로 이스라엘을 위협했던 이 오만한(KJV 난외에 있는 대로) 시스라를 망치질해 재주조하며, “그의 백골에 있는 그의 죄악”과 함께(겔 32:27) 그를 죽여 무저갱으로 보냈다. 그녀는 마치 그 장막의 막대기나 널빤지를 박듯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이 일을 해낼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를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 26절에 보면 “그녀가 그의 머리를 뚫었다”고 했다. 이것은 아마도 그녀가 그를 방망이로 친 후 그가 다시 일어날까 염려해 그가 지니고 있던 칼을 뽑아 그를 죽인 것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머리를 잘라내야 할 이유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에 그런 일이 언급된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이 구절은 “그녀가 그를 쳐서 머리를 뚫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비난하면서 거만하게 쳐들고 다니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하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계획을 고안해 내던 그 머리는 이제 야엘에게서 안식처를 찾았다. 그녀의 못이 선한 의지에 의해 그의 머리를 파고 들어갔다.

② 야엘의 발 앞에 쓰러진 시스라의 모습은 얼마나 비참해 보이는가?(27절) 그는 여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쓰러졌다. 그녀는 그가 완전히 죽을 때까지 방망이로 그를 쳤으므로, 그가 살려고 몸부림쳐 보았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 거만한 자는 영예로운 침상에서 죽거나 번쩍거리는 칼날에 또는 강철로 된 화살에 맞아 영광스러운 상처를 입고 싸움터에서 죽어 간 것이 아니라 단지 보잘것없는 한 장막에서, 그것도 여인의 방망이에 맞아 수치스럽게 죽어 간 것이다. 이처럼 오만한 자의 운명은 수치로 끝난다. 이것은 죄인들에게 있어서는 행운이 그들을 결국 파멸로 이끈다는 하나의 생생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즉 행운은 죄인들에게 귀한 그릇에 우유와 버터를 담아 아첨하고 속살거려 마음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 주나, 그것은 결국 그들의 머리와 마음을 비참하게 파멸시킨다. 따라서 이런 아첨은 치명적인 것으로 그들을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딤전 6:9, 10).

2. 아들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기대하고 있던 시스라의 어머니는 그가 패배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28-30절).

(1) 그녀는 그 아들의 승리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고?” 그녀의 이 말은 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그녀는 그의 성공을 매우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두려움을 갖지 않았다), 그의 영광을 보기 위해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부족한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영광을 빨리 보려는 마음으로 초조해 늦게 오는 병거를 책망하고 있었다. 이처럼 그녀는, 아들이 불행한 사태를 당해 그리도 자신만만하게 여기던 철병거도 버리고 도망해야 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채 늦어지는 것만을 불평하고 있었다. “그의 영광의 수레도 이제 그의 집의 수치가 되었다”(KJV, 사 22:18). 우리는 일시적인 행운, 특히 시스라의 어머니가 탐닉하고 있던 것과 같은 헛된 영광을 갈망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욕정에 대한 집착과 조바심은 우리로 하여금 큰 편견을 갖게 하며 오류를 범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에 대해서는 이 같은 갈급한 심정으로(“예수 그리스도여 어서 오시옵소서”) 기다려야 한다. 이것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녀는 아들이 거대한 노획물을 가지고 돌아오리라는 어리석은 확신과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녀의 지혜로운 시녀들도 그가 늦게 돌아올 만한 좋은 일이 있으리라 생각해 그녀에게 그렇게 말해 주었다. 이에 대해 그녀는(시리아역에 있는 대로 “그녀의 지혜로써”) 거드름을 피우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틀림없이 그들은 노획물을 나누느라고 이렇게 시간이 걸리나 보다.” 이처럼 노략물을 즐겨 취하려는 그들은,

①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 여자들은 그 군사들이 노획한 여자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자랑할 정도로 여성의 위치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② 그들은 매우 유치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시스라의 채색 옷이 화려하게 나타내는 것을 보려고 기대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처녀에게서 약탈한 “수놓은 채색 옷”은 얼마나 멋있을까! 반복해서 “양편에 수놓은 채색 옷이리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상상을 즐겁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수놓은 옷들을 시스라가 그의 어머니와 그 시녀들에게 선물해 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이처럼 우리는 이 세상의 부귀와 명예와 즐거움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에게 수치와 실망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적들이 가장 의기양양해 있을 때에 그들을 멸하시는 경우가 많다.

Ⅱ. 드보라는 하나님께 대한 다음과 같은 기도로써 이 노래를 모두 끝맺고 있다.

1.하나님의 모든 적은 멸망하기를 기도드렸다.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수치스럽게 그리고 비참하게 망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멸하기 위해 의기양양한 자들을 도리어 멸하시어 실망하게 해 주옵소서. 시스라에게 행한 것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시 83:9). 우리는 비록 우리 자신의 원수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향해 멸망을 내려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또 하나님의 어떤 대적들이 현저하게 패배하는 것을 볼 때는 더욱 용기를 얻어 하나님의 모든 적도 망하도록 간구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여선지자로서 드보라가 드린 이 기도는 때가 이르면 주의 원수가 패망하리라는(시 92:9) 것을 예언한 말이었다.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결코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며 버틸 수는 없다. 그리고 드보라는 하나님의 모든 친구들에게는 환희와 위안을 주십사고 기도드렸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뜻이 이 땅에서도 잘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들은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그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빛나고 영광스럽게 하시옵고 태양빛이 따갑게 괴롭힌다고 저주하는 그들의 적에게까지 그 힘이 미치게 해 주옵소서. 그들로 하여금 그 길을 달리기를 기뻐하는 장사처럼(시 19:5) 되게 하옵소서. 또한 그들은 안개를 몰아내는 햇볕처럼 더욱더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게 하소서(잠 4:18).”

하나님을 성실히 사랑하는 모든 자는 그런 영예와 기쁨을 필경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영원히 우리 아버지의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단 12:3) 것이다. 이런 노래로 축하한 이 승리는 한 세대 동안 이스라엘이 화평할 수 있었던 행복한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즉 이 때부터 기드온이 일어날 때까지 이스라엘은 평온할 수 있었다. 만일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이렇게 평온 속에 있을 때에도 스스로를 바로잡는 데 “게을리 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였다면” 그들의 나라는 계속 태평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호크마

=====5:1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 본절만으로는 본장에 기록된 찬송이 '드보라'와 '바락'의 공동 저작인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3, 7절에서 본 찬송의 1인칭 주어가 '드보라'인 점을 고려할 때, 이 노래는 '드보라'의 저작임에 분명하다(Keil, Hervey, Lange, Matthew Henry). 

그렇다면 본절에서는 왜 두 사람이 노래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는가?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해결될 수 있다. 

즉 드보라는 야빈 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사실을 기념하여 바락은 물론이고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찬미하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했었다. 

그리하여 히브리 노래의 한 유형인 화답송(和答頌)의 형태로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한편 성경에는 여인들이 지은 노래로 본장 외에'미리암의 노래'(출 15:21), '한나의 노래'(삼상 2:1-10), '마리아의 노래'(눅1:46-55) 등이 있다.

=====5:2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 본절에 해당하는 원문은 '비페로아 페라오트베이스라엘'(* )이다. 70인역(LXX)은 이를 개역 성경과 거의 동일한 의미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인도로'(* , 엔 토 아르크사스타이 아르케구스 엔 이스라엘)라고 번역하였다. 이는 몇몇 학자들도 받아들이는 해석이다(S.R.Driver, C.A.Briggs). 

그런데 본절에 사용된 히브리어 '비페로아'와 '페라오트'의 동사형 '파라'(* )는 '석방시키다', '(머리카락을) 풀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곧 상징적 의미로서, 그 정확한 뜻은 '힘을 과시하다', '힘을 발휘하다'이다. 이에 따라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이스라엘의 힘 있는 자들이 힘을 다했고'란 의미가 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p.308). 즉 이 말은 이스라엘의 두령들, 방백들(9절)이 힘을 다해 충성했음을 가리킨다. 

더욱이 이러한 해석은 이스라엘 시문서의 한 특징인 '평행법'(parallelism)과도 잘 조화된다. 

왜냐하면 본절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서는지도자들의 헌신과 대비되는 백성들의 헌신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Cundall). 

그러나 이상의 두 가지 해석 중 그 어느 쪽을 취하여도 상관은 없는데, 그 까닭은 둘 다이스라엘 지도자들의 헌신과 솔선 수범적 행위를 잘 드러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 백성들이 지도자들의 말을 따라 기꺼이 헌신하여 전투에 참가한 것을 가리킨다. 

이는 바락이 군사를 모집하자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일만명이 지원한 것(4:10)과 그외 여러 지파도 적극 조력한 사실(4,15절)에서 잘 나타난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 본시(本詩) 전체의 내용은 언뜻 볼 때 전쟁에 참여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헌신과 용기 그리고 연합에 대하여 노래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배후에서 친히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을찬양하는 데 진정한 목적이 있었다(3,5,11,13절).

=====5:3

너희 왕들아 들으라 방백들아 귀를 기울이라 - 본절에도 역시 강조를 위한 '평행법'이 사용되어 본문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그런데 본절에 언급된 '왕들'과 '방백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지칭한 말이 아니다. 

그 근거로는 (1)당시 이스라엘에는 왕이나 방백이 없었다는 점(17:6;18:1;19:1;21:25)을 들 수 있다. 

또한(2)'왕'이란 단어가 복수 형태를 취하여 여러 나라의 왕들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을 들수 있다. 

따라서 열방의 통치자들에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시며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할 유일하신 최고 통치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라 하겠다(Keil,Lange, Wycliffe).

내가...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여기서 '찬송하다'에 해당하는 '자마르'(* )는 '연주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단순히 노래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악기를 사용하여 찬송하는 것을 가리킨다(시 33:2;71:22;98:5; 147:7; 149:3). 

이스라엘인들은 일찍부터 하나님을 찬앙함에 있어서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며 그에 화답하여 노래 부르는 예배법이 발달되어 있었다(출 15:20;삼하 6:5). 

이와 관련하여서는 대하 5:11-22강해, '공중 예배에 있어서의 음악과 악기'를 참조하라.

=====5:4

주께서...진행하실 때에 - 여기서 드보라는 자기 선조들의 출애굽 노정 때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역사적인 사건을 회상하고 있다. 

즉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 강림하셨다'는 모세의 회상과 연관지어(신 33:2), 드보라는 야빈과의 전쟁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세일...에돔 들 - 둘 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는 과정에서 지나온 사해 남동쪽의에돔인의 산지를 가리킨다. 신 33:2 주석 참조.

땅이 진동하고 - 출애굽 당시에 나타난 크고 두려운 하나님의 권능과 기이하신 역사를 가리키는 말이다(Matthew Henry). 

이와 같이 드보라는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권위앞에 모든 피조물들이 두려워하며 떨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고백하였다(삼하 22:8;시 68:8;77:18;나 1:5;합 3:6).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 하늘에서 비가 쏟아진 것을 뜻하는 시적 표현이다. 이는 노아 홍수를 연상케 한다. 즉 노아 홍수 때에도 하늘의 창들이 열리고땅의 샘이 터져 40주야 비가 쏟아졌다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다(창 7:11,12). 

이처럼 드보라는 하나님의 기이하신 능력을 찬양함에 있어서 과거 실제적으로 발생했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노래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생함을 더해주고 있다.

=====5:5

시내 산도...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 '시내 산'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의 율법을 베푸신 장소였다(출 19:18).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모세와 대면하실 때 그 주위는 연기로 자욱함과 동시에 온 산이 진동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위엄과 영광과 권세를 나타내신 것이다. 출 19:16-19 주석 참조. 그런데  드보라가 여기서 그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최근에 드볼 산과 기손 강을 중심으로 시스라와 싸워 대승한 사실(4:12-16) 역시 그같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는 사건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5:6

삼갈의 날...야엘의 날 -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족과 하솔 왕 야빈의 압제 하에서고통당하던 때를 가리킨다. 

이때 '삼갈'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던 블레셋 사람 600명을 소 모는 막대기로 죽여 이스라엘을 구원했었다(3:31). 

그리고 '야엘'은 이스라엘의 압제자 야빈 왕의 군대 장관인 시스라를 지혜롭게 처치했었다(4:17-22).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 - 당시 이스라엘의 황폐상을 표현한 것이다. 즉 당시에는 블레셋족과 야빈의 압제가 극심하여 상거래(商去來)도 없었으며 법질서도 마비되어 있었기에 노상(路上)에서 약탈 행위가 빈번히 자행되었다. 

때문에 약탈, 폭행 등을 피하여 행인들은 큰길로 다니지 않고 소로로 다녀야 할 형편에 처해 있었다. 

다시말해 블레셋족과 야빈의 압제 하에서 이스라엘은 경제가 핍절되었으며, 무법 천지가 되어 백성들에게 평안이 없었던 것이다.

=====5:7

이스라엘에 관원이 그치고 그쳤더니 - KJV는 이를 '이스라엘에 마을 주민들이 끊어지고 끊어졌다'(The inhabitants of the villages ceased, they ceased in Israel)로 번역하고 있다. 왜냐하면 KJV는 '관원'에 해당하는 원어 '페라존'(* )을 성벽이 없는 마을의 주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 주민들은 튼튼한 성벽이 있는 성읍으로 피신하기 위하여 마을을 떠난 셈이 된다(Lange,Wycliffe).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페라존'을 '능력자' 즉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가리키는것으로 본다(Gesenius, Teller). 이는 70인역(LXX)도 '페라존'을 '능력 있는자들', '힘 있는자들'(* , 뒤나토이)로 번역하고 있는것에 의해 뒷받침된다. 따라서 본절을 뒷부분과 연결시켜 이해한다면, 당시 이스라엘에 강력한 지도자들이 없었음으로 부득불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뜻이 된다(Keil& Delitzsch Commentary, Vol.II.p.311).

나 드보라가...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 - 야빈의 학정에 시달리던 이스라엘에는 참된 지도자가 없었는데, 드보라 자신이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특히 여기서 '어미'라는 표현은 욥이 자기에게 의탁하던 자들과 관련하여 스스로를'빈궁한 자의 아비'라고 고백한것과(욥 29:16)같이 하나님께서 보낸 '보호자'란 의미를 지닌다((Keil & Delitzsch Commentary,Vol.II.p.312) 다만 드보라는 자신이 여성이므로 '어미'란 표현을 사용했으며, 욥은 자신이 남성이므로 '아비'란 표현을 사용했을따름이다.

=====5:8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 이스라엘에 이방인의 압제와 전쟁의 참화(慘禍)가 임하게 된 원인이다. 

즉 이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과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킨 탓이다(Pulpit Commentary). 

그런데 여기서 우상과 이방신들을 가리켜 '새신들'(new gods)이라 표현한 것은 그것들이 과거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신 32:17)이기 때문이다(Keil, Lange). 즉 이스라엘은 영원하시고 참된 신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마치 새 옷 입기를 즐기는 어린 아이처럼 새 신(神)들을 섬긴 것이다(2:17;3:6,7).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방패와 창이 보였던고 - 드보라는 대적들이 이스라엘을에워싸고 곧 공략하려 드는 일촉 즉발의 위기 상황을 '전쟁이 성문에 미쳤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에겐 적을 방어하거나 공격할무기가 변변찮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철병거를 지닌 하솔 군을 격멸시켰는데,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이적과 권능을 베풀어 이스라엘을 도우셨기때문이다(4:12-16,23,24). 따라서 드보라가 당시 이스라엘에 무기가 있었느냐고 반문한 것은 역설적으로 바로 이 같은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사만 명 - 시스라와의 싸움을 위해 출전하였던 이스라엘의 주력군은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군사 일만 명이었다(4:10).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사만 명'은 어떻게 된 것인가? 아마 이는 이들 주력군을 도와 같이 전쟁에 참전하였던 이스라엘 여러 지파의 병력을 합한 대략적 수효일 것이다. 

즉 14,15절을 보면 시스라와의 싸움에는 비단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뿐 아니라 에브라임, 베냐민, 므낫세 반, 잇사갈 지파등이 참여했었음을 알 수 있다.

=====5:9

앞 부분에서의 분위기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구절이다. 즉 6-8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중단하므로 압제자의 멍에에서 신음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본절에서부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고서 기뻐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Goslinga). 

더욱이 본절에서 드보라는 하나님과 화해를 이룬 이스라엘 방백들이 시스라와의 전투에 즐거이 헌신한 사실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 이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사실의 재차 반복이다. 2절 주석참조.

내 마음이...사모함은 - 이처럼 드보라가 이스라엘 방백들을 사모하였다는 말에 대하여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이를 다음과 같은 뜻으로 보았다. "나는 참으로 그들을 사랑하며 존경한다. 그들은 영원토록 내 마음을 차지하였다. 나는 결단코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Vol.II.p.147). 

즉 이는 곧 이스라엘의 방백과 두령들이 자신을 도와 전쟁에 적극 참여하고, 솔선 수범한 것에 대하여 드보라가 깊이 감사하고 있는 말이다.

=====5:10

흰 나귀를 탄 자들 - 이스라엘 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것은 어린 나귀를 탄 것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상류층에 속한 신분임을 암시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10:4;12:14). 고대 근동에서 나귀는 중요한 운송 수단이었다(창22:3;수 9:4;느 13:15). 그런데 흰색의 나귀는 좀처럼 드문 짐승이니, 이것을 타고 다닌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 아닐 수 없었다(Keil, P.Cassel).

화문석에 앉은 자들 - '화문석'은 오늘날에도 평민들이 구하기 힘든 귀하고 비싼 물건이다. 

따라서 '화문석에 앉은 자들'이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부유하고 여유있는 계층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길에 행하는 자들 - 일반 평민 또는 행상(行商)을 가리킨다. 이들은 압제자의 시대에는 마음놓고 길을 갈 수 없었으나(6절), 하나님께서 그 대적들을 훼파하셨으니(4:12-24) 이제 안전하게 길을 갈 수 있었다. 

한편 이상과 같은 흰나귀 탄 자, 화문석에 앉은 자, 길에 행하는 자들이란 결국 이스라엘 모든 계층,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선파할지어다 - 본문에는 어떤 사실을 선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만 다음에 이어지는 드보라의 노래 중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11절)이 언급되어 있으므로, 드보라는 백성들에게 압제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신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라고 가르친 것으로 추정된다.

=====5:11

활 쏘는 자의 지꺼림에서, 멀리 떨어진 - 여기서 '활 쏘는 자'란 다름아닌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심하게 괴롭혔는지는 4:3에 잘 암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졌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에 대한 대적들의 압제가 종식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이들을 진멸하셨으니 이제 이스라엘백성들에게는 다시금 평화가 찾아든 것이다(10절).

물 긷는 곳에서도...칭술하라 - 여기서 '물 긷는 곳'이란 우물을 가리킨다. 

그런데 보통 고대 근동 지역의 우물은 마을 어귀에 있었다(요 4:5-8,28). 그래서 이스라엘이 적의 압제 하에 있을 때에는 마음놓고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적들을 분쇄해 주셨으니 안심하고 물을 길으러 갈 수 있게 되었다. 

드보라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두고서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한 것이다.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 -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백성들의 주요 회합(會合) 장소였다. 

그곳에선 비단 상거래 뿐 아니라 공식 재판, 중요 사항 공지, 친교등이 이루어졌었다(창 19:1;신 21:19;느 13:19). 그러나 이스라엘이 야빈과 시스라의 군대와 전쟁하는 동안에는 이러한 회합이 이루어질 리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고(4:12-24) 다시금 팔레스틴에는 평화가 깃들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백성들은 생활의 주요 무대인 성문으로 모여들 수 있었는데, 본절은 바로 이같은 사실을 가리킨다.

=====5:12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노래할지어다 - 드보라가 이처럼 스스로에 대하여 네번이나 '깰지어다'는 말을 반복한 것은 자신을 향해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즉 그녀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앞에서 영적으로 깨어 그 놀라움과 영광을 힘있게 찬송할 지도자적 책임이 있었다(Matthew Henry).

바락이여...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 여기서 '사로잡은 자'란 바락이 시스라군을 진멸할 때 생포한 포로들을 가리킨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이제 그들을 끌고서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가라 하였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케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Lange, Matthew Henry).

=====5:13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 야빈의 압제 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정에 시달렸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재산과 가족을 외국으로 피신시키거나 아니면 그 와중에서 적에게 살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20년 동안 야빈의 압제 하에서도(4:3) 굳건히 살아남은 백성들이 있었으니 이들이 곧 시스라와의 전투에 참여한 것을 가리킨다(4:6-10).

여호와께서...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셨도다 - 여기서 '용사'란 야빈의 군대 장관인 시스라와 그의 군사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대적과 싸우시기 위해 나서신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 '여호와께서 강림하셨다'는것은 그분이 눈에 보이게 이 땅에 임하신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는 그분이 초자연적인 이적으로 적들을 패퇴시키며 이스라엘을 도우신것을 가리킬 뿐이다(4:15).

=====5:14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는 아말렉에 뿌리박힌 자요 - 에브라임 지파 중 이번 전투에 참가한 자들은 전에 아말렉 족속이 거주했던 지역(12:15)의 사람들이란 의미이다.

그런데 70인역에 따라 RSV와 공동 번역에는 이 '아말렉'이 '골짜기'로 번역되어 있다. 

아마 이는 과거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 내에서 아말렉 족속이 거주했던 지역이 에브라임 산지와 그 골짜기 주변이었던 점에 근거한 번역일 것이다.

베냐민은 너희 백성 중에 섞였으며 - 본절을 통해 볼 때 베냐민 사람들은 일개 지파의 자격으로서 참전한 것 같지는 않다. 

대신 그들은 여러 지파들 틈에 섞여 일개인적으로 참전(參戰)했던 것 같다. 이는 아마 그들이 팔레스틴 남부 지역에 위치해 있었던 탓에 북부 지역의 지파들과는 달리 야빈의 압제를 덜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그들은 야빈과의 전쟁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고 자연히 일부 사람들만이 개인적으로 전쟁에 참여했을 것이다.

마길에게서는 다스리는 자들이 내려왔고 - '마길'은 므낫세의 독자였다(창 50:23).그런데 이 '마길'의 자손, 곧 므낫세 지파 중 절반은 요단 동편에 정착하였으며(수13:29-31) 나머지는 요단 서편에 들어갔다(수 17:1-13). 따라서 본절에서 '마길'이라는 표현은 이 중 요단 서편에 거한 므낫세 반 지파만을 의미한다. 

이 지파는 아셀, 스불론 그리고 잇사갈 지파와 북쪽 경계를 이루며 살았으므로 잇사갈 지파의 경내에 있는 다볼 산(4:12)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한편 여기서 '다스리는 자들'이란 군대의 지도자들을 의미한다. 이는 곧 므낫세 지파에서는 군 지휘관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내려왔음을 알려 준다.

스블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가 내려왔도다 - '대장군'에 해당하는 원어 '소페르'(* )는 '계수하는 자' 또는 '서기관' 등의 뜻이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 단어이다(Keil). 그런데 '대장군의 지팡이'가 무엇을 지칭하는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의 여지가 있다. 즉 RSV, NIV, Living Bible, 공동번역 등은 모두 개역 성경과 같이 번역하고 있으나 KJV에서만은 '작가의 붓'(pen ofthe writer)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KJV의 번역을 지지하여, 스불론 사람들은 시돈 사람들처럼 상업에 능하고 장사를 전문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도 전쟁 경비를 계산하는 일을 맡아 보았다고 주장한다(P. Cas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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