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왕하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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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12장 [370. 주 안에 있는 나에게] [545.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요아스 = 여호아스 = 여호아쉬 ..<요드-헤이-바브(상)-알렙-쉰(우) >= 여호와 + 이쉬(엘로힘-샤마임 : 진리/말씀,, 불/빛...영에속한사람>, 

**아마샤.. = 아마츠야<알렙-멤-체데,요드-헤이> =아메츠((진리말씀의 생명 나무)) + 야흐((여호와)) 

**여호야다..<요드-헤이-바브(상),요드-달렛-아인> = 여호+야다, 여호와의 증인 <여호와께서 아신다>  

**스가랴..제카르야..<자인-카프-레이시-요드-헤이> 

===유다 왕 요아스

1.  예후의 제칠년에 요아스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3.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4.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성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모든 은 곧 사람이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5.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 성전의 어느 곳이든지 파손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으나

6.  요아스 왕 제이십삼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7.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부터는 너희가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그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8.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성전 파손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동의하니라

9.  ○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가져다가 그것의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전문 어귀 오른쪽 곧 제단 옆에 두매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 오는 모든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더라

10.  이에 그 궤 가운데 은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올라와서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대로 그 은을 계산하여 봉하고

11.  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자의 손에 넘기면 그들은 또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12.  또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고 또 여호와의 성전 파손한 데를 수리할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게 하며 그 성전을 수리할 모든 물건을 위하여 쓰게 하였으되

13.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성전의 은 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 그릇이나 은 그릇도 만들지 아니하고

14.  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15.  또 그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16.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

17.  ○그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하므로

18.  유다의 왕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19.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 반역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 궁에서 그를 죽였고

21.  그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였더라 그는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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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12장


1.  In the seventh year of Jehu, Jehoash became king, and he reigned forty years in Jerusalem; and his mother's name was Zibiah of Beersheba.

2.  And Jehoash did right in the sight of the LORD all his days in which Jehoiada the priest instructed him.

3.  Only the high places were not taken away; the people still sacrificed and burned incense on the high places.

4.  Then Jehoash said to the priests, "All the money of the sacred things which is brought into the house of the LORD, in current money, [both] the money of each man's assessment [and] all the money which any man's heart prompts him to bring into the house of the LORD,

5.  let the priests take it for themselves, each from his acquaintance; and they shall repair the damages of the house wherever any damage may be found.

6.  But it came about that in the twenty-third year of King Jehoash the priests had not repaired the damages of the house.

7.  Then King Jehoash called for Jehoiada the priest, and for the [other] priests and said to them, "Why do you not repair the damages of the house? Now therefore take no [more] money from your acquaintances, but pay it for the damages of the house."

8.  So the priests agreed that they should take no [more] money from the people, nor repair the damages of the house.

9.  But Jehoiada the priest took a chest and bored a hole in its lid, and put it beside the altar, on the right side as one comes into the house of the LORD; and the priests who guarded the threshold put in it all the money which was brought into the house of the LORD.

10.  And when they saw that there was much money in the chest, the king's scribe and the high priest came up and tied [it] in bags and counted the money which was found in the house of the LORD.

11.  And they gave the money which was weighed out into the hands of those who did the work, who had the oversight of the house of the LORD; and they paid it out to the carpenters and the builders, who worked on the house of the LORD;

12.  and to the masons and the stonecutters, and for buying timber and hewn stone to repair the damages to the house of the LORD, and for all that was laid out for the house to repair it.

13.  But there were not made for the house of the LORD silver cups, snuffers, bowls, trumpets, any vessels of gold, or vessels of silver from the money which was brought into the house of the LORD;

14.  for they gave that to those who did the work, and with it they repaired the house of the LORD.

15.  Moreover, they did not require an accounting from the men into whose hand they gave the money to pay to those who did the work, for they dealt faithfully.

16.  The money from the guilt offerings and the money from the sin offerings, was not brought into the house of the LORD; it was for the priests.

17.  Then Hazael king of Aram went up and fought against Gath and captured it, and Hazael set his face to go up to Jerusalem.

18.  And Jehoash king of Judah took all the sacred things that Jehoshaphat and Jehoram and Ahaziah, his fathers, kings of Judah, had dedicated, and his own sacred things and all the gold that was found among the treasuries of the house of the LORD and of the king's house, and sent [ them] to Hazael king of Aram. Then he went away from Jerusalem.

19.  Now the rest of the acts of Joash and all that he did,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Judah?

20.  And his servants arose and made a conspiracy, and struck down Joash at the house of Millo [as he was] going down to Silla. 

21.  For Jozacar the son of Shimeath, and Jehozabad the son of Shomer, his servants, struck [him,] and he died; and they buried him with his fathers in the city of David, and Amaziah his son became king in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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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2장 (개요)

본장에서 우리는 요아스의 통치 역사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장에서 살펴보았던 영광스런 출발에 부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7살 때만큼 40살 때에는 그리 유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훌륭했던 통치로 평가받는 것 중의 하나이다. 

역대기(대하 24장)에는 여기서보다 더 나쁘게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제사장 중 한 사람을 그가 죽였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다음에 관한 기록만 보게 된다.

1.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은 잘 다스렸다(1-3).

2. 성전을 수리하는 데 열성적이며 활동적이었다(4-16).

3. 하사엘과의 잘못된 계약 후에(17-18), 수치스럽게 죽었다(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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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스의 통치(왕하 12:1-3)

여기에서 요아스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볼 수 있다.

Ⅰ. 그는 40년 간 치리했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다스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순리대로 하면 더 오래 다스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겨우 47세였을 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1절).

Ⅱ. 그는 여호야다가 살아서 교육해 주는 동안에는 의롭게 잘해 나갔었다(2절). 

지위나 재산과 권력과 자유를 너무 빨리 누리게 되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들은 미처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도 모를 때에 그것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이 그들에게 중대한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요아스에게도 그런 위험이 있었으나, 여호야다같이 현명하고 경험 많고 믿음직스러운 좋은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잘 보호될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은 요아스 자신에게도, 나이가 들었을 때까지도 그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의 지도를 받으려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젊은 사람들, 특별히 어린 왕들, 그리고 중요 직위에 있는 모든 젊은이들이 좋은 지도를 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의로운 일”이 어떤 것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을 주위에 가지고 있다면, 그 사실은 그들에게 큰 자비이다. 또한 그들이 그러한 사람들의 조언과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그때는 그들도 혼자의 힘으로 현명하고 효과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임의로 하게 버려 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잠 29:15).

Ⅲ. “산당은 제하여지지 아니하였다”(3절). 

나라의 곳곳에 제사와 분향을 위한 단이 있었다. 이것은 여호와의 영광을 위해 만든 것이나, 예루살렘에 있는 제단에 대항하고 경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사적(私的)인 제단들은 아마 초기보다도 후기의 악한 통치자 시대에 많이 사용된 것 같다. 왜냐하면 후기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기가 안전하지도 않았고, 성전 제사도 규정대로 드려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호야다도 그것들을 묵인한 듯하다. 왜냐하면, 몇몇 생각이 깊은 자들은 자기들이 더 좋은 제단을 지니지 못할 바에야 그런 것들을 좋게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여호야다 자신도 성전을 개혁하고, 거기다가 사물을 잘 정리해 둠으로써, 백성들을 점차로 산당에서 떠나게 하고자 했을 것이다. 또한 그들도 차츰 그런 제단에서 떠나고자 했을 것이다. 아니었다면, 제사장 여호야다나 요아스 왕은 그들의 개혁 사업을 끝까지 추진시켜 나갔든가, 또는 그렇게 뿌리깊은 관습을 막을 충분한 용기와 실력이 모자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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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수리(왕하 12:4-16)

여기에서 요아스의 통치 중에 있었던 성전 수리 기사를 볼 수 있다.

Ⅰ. 성전이 수리해야 될 정도로 낡았던 듯하다, 비록 솔로몬이 가장 좋은 재료와 기술로 견고하게 지었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파괴되기 시작했고, 지붕, 벽, 마루, 천장, 창문 혹은 뜰의 일부 중에 “퇴락한 것”이 있었다(5절). 성전이라고 해도 결국 오래 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하늘나라 성전은 결코 낡아지지 않을 것이다. 시간의 이빨이 이 퇴락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아달랴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전을 깨뜨렸고”(대하 24:7), 성전 봉사를 증오하는 자들이 성전을 훼파했다. 또한 제사장들이 그때 그때에 퇴락한 것을 수리하려고 하지도 않았기에 점점 더 파괴되어갔다. 이런 값진 포도원을, 그렇게 쉬운 조건으로 포도즙 틀을 간수하다가, 때가 오면 소작료를 지불해 줄 만한 능력도 없는 그런 농부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마 21:33). 그들의 위대한 주인 여호와께서 이와 같은 저들의 큰 낭비에 대해서 저들을 문책한 것은 당연한 일이요, 그가 그의 심판으로 “법률이 말하는 것처럼”(locum vastatum) 황폐에 대한 복구 작업을 하셨으니, 그때는 간과되어 오던 성전이 완전히 땅바닥에 뒹굴었던 때였다.

Ⅱ. 왕 자신이 성전 수리를 원하는 최초의(그런 것 같다) 선구자적인 사람이었다. 

제사장들이 이 일을 걱정하거나 여호야다 자신의 열성적인 점은 찾아볼 수 없고, 왕이 이 일에 열의를 내고 있다.

1. 왜냐하면 그가 왕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권력을 가지고 신앙을 보존하며 육성하고, 불평을 해결하며 부패를 일소하고, 사역자들을 자극하여 그들의 의무를 이행하게 하도록 하기를 기대하며 요구하신다.

2. 왜냐하면 성전은 그가 어렸을 때 양육 받고 피난해 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고마운 생각이 그것에 대한 경외의 열심으로 나타났다. 신앙적인 집회에서 위로와 은총을 경험한 자들은 그 집회가 당하는 수치를 자기 자신의 짐으로 여기고(습 3:18), 그 집회를 지지하는 일을 관심사로 삼으며, 그 번영을 자기들의 주요한 기쁨으로 여길 것이다.

Ⅲ. 제사장들에게 성전 수리를 위한 돈을 모으고, 일의 진행을 지켜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왕은 돌보아야 할 나라 일이 있었으므로 이 일까지 직접 감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에 열심이었고, 그 일에 가장 적합하고 유능하다고 생각되는 제사장들을 고용하여 그 일을 관리하게 했다.

1. 왕은 그들에게 헌납하는 물건들을 수집하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헌물이 들어올 때까지 지체하지 말고, 정당하다고 생각되는 속전(贖錢; 출 30:12), 정한 몸값(레 27:2-3) 혹은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4절)을 직접 거두어들여야 했다. 제사장들은 자기들이 아는 사람들에게 모두 이 돈을 거두어들여야 했었다. 사실 제사장들을 모르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이용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선한 일이 이루어지도록 그들을 격려해야 한다.

2. 요아스는 그들에게 징수한 돈으로 “여호와의 전의 퇴락한 곳을 수리하는 데” 쓰라고 명령했다(5절).

Ⅳ. 이 방법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6절). 

적은 돈이 거두어졌다. 제사장들은 거의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백성에게 세금을 내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또는 백성들도 제사장들의 관리에 대해서 신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내는 데 열성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제사장들이 이유 없이 불신임 당했다면 백성들의 수치이다. 만일 이유가 있다면 제사장들에게는 더 큰 수치이다. 

징수된 돈도 원래의 목적을 위해 쓰여지지 않았다. “여호와의 전의 퇴락한 것은 수리되지 않았다”고 했다. 제사장들은 돈이 다 징수되면 수리하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성전 수리는 점점 늦어지게 되었다. 교회의 일은 대개 늦어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는 교인 자신이 그 일을 늦어지게 한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들이 징수한 적은 돈을 제사장들의 생계를 위하여 쓰는 것이 좋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열 족속(이스라엘)이 반란을 일으키고 남은 두 족속은 비참하게 타락했기 때문에, 이 당시 제사장들의 생계는 대단히 궁핍했을 것이 틀림없다.

Ⅴ. 다른 방법이 하달되었다. 

왕은 “여호와 전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는 일”(7절)에 자기의 온 정신을 쏟고 있다. 

말년에 그가 배교한 것은, 그가 과연 성전 건물에 많은 열정을 바쳤듯이, 그렇게 성전 예배에도 열정을 가졌는지를 의심스럽게 해 준다. 

많은 사람들은 건물과 교회 미화에 대한 열정과 경건의 모양에 대한 열정은 가지고 있으나, 경건의 능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방인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열성을 칭찬한다. 그리고 그의 스승이었던 여호야다가 태만한 것을 알고는 스승까지도 책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는다. 

그의 견책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에, 제사장들도 자기들이 이 이상 더 그 일을 맡기에는 부적당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으며, 다른 방법을 택하는 일에 응낙을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돈을 받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8절). 제사장들은 자기들이 그 일을 할 만한 자세가 안 되어 있음을 발견하고는,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일은 정직하게 이루어졌다. 이제 다른 방법이 시행되었다.

1. 그것은 돈을 징수하기 위한 조치였다(9-10절). 

돈을 개인의 손에다 바치지 않고 공적인 궤에 넣게 했다. 백성들은 세뿐만 아니라 그 선한 일을 위해서도 자원의 예물까지 준비해서 풍부하게 궤에 넣었다. 

대제사장과 왕의 서기가 궤에서 그 돈을 꺼내서 “계수하고”, 그것을 목적대로 쓰도록 비축했다. 공적인 분배가 정확하게 이루어지면, 공적인 헌납도 즐겁게 이루어진다.

(1) 가져온 돈은 뚜껑이 있는 구멍을 통하여 궤에 넣었다. 

그것은 일단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내라”(고후 9:7).

(2) 궤는 성전 입구의 우편에 놓여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보고 우리 주님께서 자선의 규칙으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주셨다고 한다. 백성들이 성전 수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대로 헌납하면서도, 규정대로 제사장들의 일정한 생계를 유지해 주는 일도 중단하지 않았다. 속전과 속건 보상금(법에 따라 제사장에게 주어야 하는. 레 5:15-16)의 은은 제사장에게 돌려야 했다. 성전 봉사자들을 성전 수리라는 이름 아래 굶어 죽게 해서는 안 된다.

2. 징수된 돈을 쓰기 위한 조치가 있었다. 

그들은 다른 일에 정신을 쓰기 때문에, 이런 일에는 숙달되지 못한 제사장들에게 돈을 맡기지 아니하고, 직접 “그 일을 하는 자들”이나 최소한 이 일을 “감독하는 자들에게” 주었다(11절). 집무에 따라서 사명을 맡기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모든 예술가는 정해진 단골 손님을 가지고 있다”(Tractant fabrilia fabri). 그러나 거룩한 전쟁을 싸우도록 부름 받은 자들(사역자들)이 세상 일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여 위탁받은 자들은 이 일을 다음과 같이 했다.

(1) 조심스럽게 재료를 구입하고, 일꾼에게 임금을 지불했다(12절). 

일은 그 일을 이해하고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지를 아는 사람들이 할 때, 급속히 이루어진다.

(2) 신앙적으로 했다. 그들이 정직하다는 평판은 계산서를 조사하고 장부를 감사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금이나 공적인 일을 맡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신앙적으로 일하는 법을 여기에서 배워야 된다. 즉 인간이야 계산하든 안 하든 하나님은 그들을 계산하시리라는 것을 아는 자답게 일해야 한다. 

정부, 나라, 교회를 속이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그들 앞에 그대로 드러내어 놓으실 때는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2) 그들은 성전 장식이나 금이나 은그릇을 사는 데 쓰지 않고, 먼저 필요한 수리를 하는 데 사용했다(13절). 

우리는 여기서부터 이런 것을 배울 수 있다. 즉 모든 지출은 가장 요긴한 것에 우선적으로 되어야 하며, 공공의 일도 내 집안 일처럼 성심껏 관리해야 된다는 교훈이다. 

이 수리가 마쳐지자, 그 남은 돈을 비로소 성전 예배를 도울 기물을 구입하는 데 썼다는 것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대하 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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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스의 최후(왕하 12:17-21)

== 여호야다라는 영적인 구심점이 없어지자 요아스는 금새 흐트러지고 말았다. 왕은 유다 방백들의 말을 듣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요아스왕과 백성들이 다시 여호와께로 돌이키도록 경고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았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셨다. 스가랴는 백성들 앞에 높이 서서 외쳤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역대하 24:20b)" 그러나 무리들은 돌이키기는 커녕 진리를 외치는 목소리를 묻어버리고자 함께 모의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이고 말았다. 요아스 왕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망각하고 그 아들을 죽인 것이다. 스가랴는 죽으며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요아스가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 숭배자와 박해자가 되자, 여호와의 능력이 그를 쇠하게 했다. 그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악화되었다.”

Ⅰ. 그의 부귀와 명예는 그의 이웃 나라에 의해 쉽게 희생되었다. 

하사엘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10:32), 유다와 예루살렘도 위협받았다. 그는 강한 도시 가드를 쳐서 취하고(17절), 거기에서 왕의 성, 거룩한 성인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오려고 하였다. 

한편 그 성의 방어는 그 성읍의 죄악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요아스는 하사엘을 대항할 정신도, 힘도 없었다. 오히려 요아스는 그에게 모든 성물과 왕궁과 성전 곳간에 있는 모든 금을 주었다(18절). 그것은 뇌물을 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다른 곳으로 진군하도록 하려 함이었다. 만일 나라의 안전을 위해서 이 일을 합법적인 것으로 본다면, 성전 자체를 잃는 것보다는 성전의 금을 잃는 것이 더 잘된 일이라 할 수 있다.

1. 그러나 만일 요아스가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고, 따라서 그의 보호를 빼앗기지 않았더라면, 그의 형편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하사엘을 격퇴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2. 그는 스스로 사기가 저하되어 자신을 비굴하게 만들었고, 왕과 군인, 또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명예를 상실하고, 하나님께 헌납된 물건들을 주어버렸다.

3. 또한 그는 자신과 그 나라를 황폐케 했다.

4. 그는 하사엘로 하여금 침공도 아니하고 그렇게 많은 노획물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함으로써 다시 쳐들어올 기회를 주었다. 

이로 인해서, 아람 군대는 그 다음 해에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그결과, 폭정에 시달렸던 그의 신복들은 틈을 타서 원수 갚느라] 왕을 죽이고 성을 약탈했다(대하 24:23-24).

Ⅱ. 그의 생명은 그의 신복들에 의해 쉽게 희생되고 말았다. 그들은 그를 모반하고 죽였다(20-21절). 

그들이 그의 아들이 왕위 계승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 나라를 목적한 것이 아니라,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역대기에 보면, 그가 선지자인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인 것이 원인이 되었다.

이 사건에서 그들이 얼마나 불의한가를 볼 수 있다(복수는 그들이 할 것도 아니며 그들에게 속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것을 보게 된다. 

기름부은 자를 해치거나 선지자를 해하는 자는 멸절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 피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 때는 선지자의 피가 가장 크게 소리친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왕들로 하여금 알게 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요아스는 죽었다. 그는 영으로 시작해서 육으로 끝을 맺었다. 

하나님은 흔히 이 세상에서라도 배교자들에게는 당신의 진노의 표시를 남기신다. 그것은 모든 죄인들 중에서도 신앙을 배교한 자들이 “여호와를” 가장 “멸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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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2장

1 예후의 칠년에 요아스가 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사십년을 치리 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ㅇ히브리 원문에는 11:21이 본장의 1절로 기록 되어 있고 본장의 1절은 2절로 되어 있다. 그래서 Lange Commentary(Bahr)와 Ward Biblical Commentary(Hobbs)는 본절을 11장 마지막 절로 간주하여 설명하고 있다.

ㅇ예후의 칠년에. - 북이스라엘의 예후(B.C. 841-835)와 남유다의 아달랴(B.C.841-835)는 같은 해에 왕위에 올랐는데 아달랴는 유다를 6년동안 다스렸다(11:3). 따라서 요아스가 7세에 왕위에 오른 해는 예후의 칠년에 해당된다.

ㅇ요아스. - '여호와는 강하시다', '여호와는 도와주신다' 라는 의미의 이름인데 성경의 많은 곳에서는 '여호아스'로 혼동되기도 한다. 그래서 KJV과 RSV에서는 이를 Jehoash(여호아스)라고 표기하고 있다.

ㅇ그 모친의 이름은 시비아라. - 유다에서는 왕들의 통치 약력을 소개할 때 그 어머니가 누구였더라고 언급하는 것이 관례인 듯하다(14:2; 15:2). 한편 '시비아'(치비야)라는 이름은 '가젤'(gazelle)이란 뜻인데 아프리카 영양(羚羊)의 일종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ㅇ브엘세바 사람. - 이곳은 엘리야가 이세벧을 피하여 호렙 산으로 도망가는 도중에 들렀던 지역(왕상 19:3)이다. 그리고 이곳은 헤브론의 서남쪽 약 45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는 '빌에세바'로 불리워지고 있다. 또한 이성읍은 '맹세의 우물'이란 뜻으로 시므온 지파 땅이며 국경 도시로서 전략상 중요한 지역이다(삼상 3:20; 삼하 24:7;대하 30:5). 한편 '시비아'라는 이름은 브엘세바 출신인 사람들에게 주로 붙여지는 것같다(Gibson).

2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ㅇ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 이 구절을 번역하는데 있어서 혹자는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했으므로 그의 전 생애 기간 동안...정직히 행하였으되"라고 번역한다(Ewald, Thenius). 그러나 대하 24:2을 근거로 볼 때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 있을동안에는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그가 죽고난 이후에는 하나님께 범죄하였음이 틀림없다. 즉 그는 여호야다가 죽자 바알 숭배에 관심이 있는 새로운 측근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 타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대하 24:15-25). 한편 여호야다는 13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대하 24:15) 그가 죽은 시기는 요아스 왕 23년 이후인 것 같다(6절).

3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ㅇ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 산당에 드린 제사가 우상 숭배였다는 기록은 아무데도 없다(Hobbs). 그러나 이곳이 비합리적인 여호와 숭배 장소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Wycliffe). 아사(왕상 15:14)나 여호사밧(왕상 22:43)과 같은 선한 왕의 경우에도 이 산당은 제거시키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산당 제사는 히스기야 시대(18:4)에서야 비로소 제거 되면서 요시야 왕 때에 예배의 중앙화를 이루게 되었다(23:8). 한편 이러한 산당 예배는 당시 예배의 중앙화를 이루지 못한 유다의 일반적인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결과는 나라의 쇠망을 촉진시키는 일이 되었다 (Wycliffe).

4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무릇 여호와의 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은 곧 사람의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ㅇ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 본절에서 성전 보수의 주체가 요아스 왕임을 본서의 저자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포로 시대 이전에는 제사장보다 왕의 권위가 더 존중되었음을 의미한다(H. Ringgren, Israelite Religion, p.211).   한편, 본절과 병행 구절인 대하 24:4에서도 동일하게 요아스 왕의 주도권이 강하게 나타나 있어 이를 더욱 뒷바침한다(Rawilnson).

ㅇ여호와의 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은. - 요아스 왕은 성전 수리를 위하여 한 때 모세가 법막(法幕)을 위해 거두었던 세금을 다시 바치게 하였다(대하 24:6). 이때 거두어 들인 세금의 종류는 다음 세 가지로 분류된다. 1) 사람의 통용하는 은(銀).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각 사람이 위로 지나갈 때에 드는 돈'이다.   이것은 일종의 인두세나 주민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인구 조사에 의해 계수된 20세 이상의 장정들로부터 받는 돈인데 이는 출 30:13, 14에 근거한 세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어떤 사건에 의해 수입으로 들어오는 돈도 아니고(Ewald) 세상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돈(Luther)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포로 시대 이후에도 이러한 종류의 세금이 해마다 징수되었던 것 같다(느 10:32). 2) 각 사람의 몸 값으로 드리는 은.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각자의 평가에 대한 사람의 돈'이란 뜻이다(Keil & Delitzsch). 그래서 이것은 서원하는 자들에 대한 제사장의 평가에 따라 징수되는 세금으로서 연령이나 남녀의 성별의 차이에 따라 그 징수액이 각각 달라졌다(레 27:2-8). 그리고 사람이나 생물의 첫태생을 여호와께 바칠 때 드리는 세금도 여기에 포함된다(민 18:15,16). 3) 자원하여 여호와의 전에 드리는 은. 자발적인 헌물로서 성소에 바치는 은을 말한다. 이것은 성막에 관련된 경우와 같이(출35:21) 자원하는 예물이었다. 그런데 이 돈들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각각 자기가 살던 성읍에 가서 잘 아는 사람들에게 받아와서 성전의 퇴락한 곳을 고치는데 사용하였다(Bahr, Keil & Delitzsch, Vol. 3, p. 366). 한편 역대기에서는 이 세가지의 종류의 세금을 전체적으로 통칭하여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의 회중이 법막을 위하여 정한 세"라고만 표현하였다(대하 24:6). 그런데 이것은 성전 건축을 위한 반 세겔의 헌납(출 30:12, 13)까지도 포함한 것이다.

5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 들여서 전의 어느 곳이든지 퇴락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더니

ㅇ각각 하는 자에게서 받아들여서. - 위에서 언급한 세금들은 유다의 각 고을에 있는 제사장들이 거두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성전 수리도 성전에 종사하는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에게 맡겨진 것 같다. 즉 이것은 성전 복구를 위한 요아스 왕의 큰 뜻과는 달리 성전 수리가 전 국민적 운동이 되지 못하고 매우 소극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당시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포로 시대 이후에 성전을 복구하기 위한 제사장들의 열의와 비교해 보면 당시 성직자들의 상태가 어떠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대하 24:5). 한편 본절에 나타난 '아는 자'란 히브리어 '마카르'로서 '친족'에서 유래한 말인데 '상인'(merchant), 또는 '매매자'라는 의미도 지닌다. 아마도 이들은 후일 성전에서 직업적으로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마 21:12)의 효시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ㅇ퇴락한 것. -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 왕 때(B.C. 959년; 왕상 6:38) 지어진 것으로 당시를 요아스 왕 때(B.C. 835-796)의 초기로 보더라도 그것은 약 130년, 혹은 140년 정도가 된 것이다(Keil & Delitzsch). 그 뿐만 아니라 성전은 아달랴의 아들들에 의해 심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보수할 곳은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대하 24:7).

6 요아스왕 이십 삼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오히려 전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ㅇ이십 삼 년에 이르도록...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 이토록 성전 수축이 지연된 원인은 에 가지로 생각될 수 있다. 1) 헌금이 너무 적게 들어왔다. 그러나 이 원인은 제 2성전 수축안에 의해 성전이 쉽게 수리된 것으로 보아 헌금의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타당하지 않다. 2) 제사장들이 헌금을 거두는 데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도 타당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4절에 언급된 헌금은 제사장들이 힘들여 거두어 들인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왕이 바뀌어 성중이 평온해졌으므로 백성들이 자발적인 헌금이 많았을 것이다. 3) 바쳐진 헌금을 제사장들이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이 원인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즉 제 2성전 수축 명령을 받은 제사장들이 '성전에 드려진 그 은으로 전의 은대접이나 불집개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 그릇이나 은 그릇이나 만들지 않았다'는(13절) 말은 그것들이 첫 성전 수축 명령때에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4) 지금까지 우상 숭배로 피폐해진 제사장들이 그 헌금을 자신의 생계 수단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Bahr, Rawilnson). 그래서 요아스 왕은 제사장들의 생활을 위해 먼저 배려를 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어떤 책망도 하지 않고 성전 수리를 위하여 일꾼을 쓰게 하고 새롭게 헌금을 하도록 종용한 것이다.   어쨌든 제사장들이 성전 수축을 지연시킨 것은 그 일에 대한 사명감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데 근본 원인이 있다 하겠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사명감이 결여된 자는 하나님의 일을 바로 수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일할 자를 뽑을 때에는 반드시 확고한 사명감을 가진 자를 선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딤전 3:1; 4:15).   한편, 13:1을 보면 요아스 왕 23년은 이스라엘 왕조가 바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였다. 그런데 요아스 왕이 성전 수리를 명령한 것이 언제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그 일을 지지부진 했고 또 왕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것 같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에 변화가 일어나던 그 해에 요아스 왕은 다시 어떤 영적인 각성을 촉구할 만한 책임을 직감하고 성전 수리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7 요아스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전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부터는 너희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저희로 전 퇴락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8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전 퇴락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응락하니라

ㅇ대제사장 여호야다. - 여호야다 당시에는 '대제사장'이라는 직명이 없었으며 제사(祭司)와 제사장 구별만 있었다. 바벧론 포로기 이후에 이 용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ㅇ저희로...드리게 하라. - 헌금하는 사람이 직접, 지금으로 말한다면 성전 수리 위원회 같은 데 드리도록 하고 제사장은 이에 관여하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ㅇ너희 아는 사람들 - 은 제사장들이 수금하는 지역에 해당하는 수금 대상자들을 가리킨다. 왕은 성전 수축 계획이 지연되었기 때문에 제 2의 성전 수축 계획을 수정 발표하고 이를 강행했다. 재원은 이전과 같으나 재정 관리 방법과 책임자를 달리했다.  1) 성전 수리와 관계된 헌금은 제사장들이 받지 못한다. 2) 성전 수리 책임을 제사장들에게 지우지 않는다. 3) 성전을 수리하는 자들에게 직접 지불하도록 명령했다(11절). 한편 8절의 '응락하니라'라는 말의 원어는 '오다', '나타난다'라는 의미로서 '동의하다'는 뜻이 파생된 말이다. 즉 이는 입술로 만의 승락이 아니라 지적인 판단에 의해 행동으로서 동의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9 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취하여 그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전문 어귀 우편 곧 단 옆에 두매 무릇 여호와의 전에 가져 오는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더라

ㅇ한 궤를 취하여. - 이 궤의 용도에 대하여 본절에서는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으나 아마 은을 거두어 들이는 데 사용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은을 달아서 돈대신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절에 나타난 궤는 아마도 역사상 최초의 '헌금고가'라고 할 수 있다. 이 헌금궤 규례는 예수의 시대까지도 존속되었다. 그런데 이 헌금궤를 지키는 책임은 성전문을 지키는 제사장이 졌다. 한편 이스라엘에서 은 대신 동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포로시대 이후부터 였다(스 2:69, H. Hamburger, "Money",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Vol. 3,p.423-435).

ㅇ여호와의 전문 어귀 우편 곧 단 옆에 두매. - 여기서 말하는 '단'은 바로 '번제단'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히브리 원문을 직역해 보면 '성전에 들어갈 때에 오른 편에 있는 제단 가까이에 두매'가 된다. 그런데 대하 24:8에는 그 궤를 성전문 밖에 두었다고 했다. 즉 역대서에는 '밖'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후차'를 사용함으로 본절과는 다른 장소를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해서 그 궤가 처음에는 단옆에 놓였다가 나중에는 편의상 문 밖으로 옮겨졌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Wycliffe). 그러나 이 두 기록을 종합해 보면 이 헌금궤가 놓이 위치는 성전 안뜰 번제단 근처, 즉 성전의 현관 밖 오른 편이다(Bahr,Rawilnson).

10 이에 그 궤 가운데 은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올라와서 여호와의 전에 있는대로 그 은을 계수하여 봉하고

ㅇ왕의 서기. - 왕의 서기에 관해서는 22장에서도 언급되어 있다. 즉 서기는 왕을 도와 대리 임무를 수행하는 비서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18:18; 대상 27:32) 문서를 기록 하거나 전리품을 셈하여 정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한편 성전을 수리하기 위한 헌금을 계수하는 데에 왕의 서기가 등장하 것은 요아스 왕이 직접 성전 수리 사역에 관여하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한편 본절의 서기에 대해 '민간인 사무원'이라고 하는 혹자의 주장(Bahr)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을 하기가 힘들다.

ㅇ대제사장. - 열왕기하에서는 '대제사장'이라는 명칭을 매우 드물게 사용했다(22:4,8; 23:4).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여호야다를 가리켜 '대제사장'이란 호칭을 쓴 적이 없기 때문에 본절의 언급은 더욱 이상하게 보인다. 따라서 '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가돌'은 그 사람의 직업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 그 사람의 인품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Hobbs). 그래서 '가돌'이라는 단어는 4:8에서와 같이 수넴 여인을 가리키는 '귀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 대제사장이라는 용어는 점차 사라지고 그 이후로부터는 단순히 '제사장'이라는 호칭이 쓰였는데 이것은 왕권의 강화로 제사장의 권세가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제사장의 권세가 다소 회복되었던 왕국시대 후기에서부터는 다시 '대제사장'이라는 호칭이 쓰였다(Rawilnson).

ㅇ그 은을 계수하여 봉하고. - '봉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추르'로 서 '속박하다', '포위하다', '동여매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는 '자루에 넣어 묶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원문을 직역해 보면 이것은 '봉하여 계수하고'가 된다. 그런데 이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때 순서가 바뀐 것처럼 생각된다. 즉 은을 계산할 때 먼저 자루를 봉하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먼저 은의 일정한 양을 자루에 넣은 뒤 그 무게를 저울에 달므로써 계산했었다(5:23). 그렇기 때문에 벌게이트(Vulgate)역의 해석을 보면 먼저 자루에 넣어 묶은 뒤에 계산한 것으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은은 하나하나의 낱개로 계산하지 않고 그 무게로 값을 측정했기 때문이다(Keil). 따라서 '...은을 쏟아 내어 세었다'라고 번역한 공동 번역은 다소 부정확한것이다.

11 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전을 맡은 자의 손에 붙이면 저희는 또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ㅇ맡은 자의 손에 붙이면. - 여기서 '손'(야드)은 '권력'이나 '책임'의 상징적 표현이다. 따라서 '맡은 자'란 곧 성전 수리 공사를 총괄하는 '감독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본절을 통해서 우리는 요아스 왕이 따로 궤를 만들게 한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성전 수리를 위해 내는 돈과 제사장들의 생계를 위해 내는 의무적인 돈을 섞이지 않도록 구분짓기 위해서였다. 4절에 언급된 세 가지 세금 징수는 엄격히 말하면 제사장들을 위한 세금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 성전 수리 비용을 제사장들이 생계 비용으로 많이 사용해서 성전 수리는 등한히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성전 수리 만을 위해 그 궤 속에 있는 은이 사용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역대하 34:12에 의하면 이 감독은 레위인들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12 또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고 또 여호와의 전 퇴락한 데를 수리할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게 하며 그 전을 수리할 모든 물건을 위하여 쓰게 하였으되

ㅇ미장이. - 문자적으로는 집을 지을 때 벽 따위에 흙이나 시멘트를 바르는 일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건축하는 사람들의 지시에 의해서 실제적으로 작업하는 인부를 가리킨다(KJV, NIV, RSV, masons).

ㅇ석수. - 채석장(採石場)에서 돌을 캐내는 사람이 아니라 돌을 다듬고 깎는 일을 하는 기술자를 가리키는 말이다(KJV, hewers of stone; NIV, stonecutters; Living Bible, quarryman). 한편 역대서에서는 '철공장'과 '놋공장'도 더불어 언급함으로 인해 성전의 구석 구석을 수리해야 함을 나타내고 있다(대하 24:12).

13 여호와의 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전의 은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그릇이나 은그릇을 만들지 아니하고

ㅇ본절과 대하 24:14절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본절에서는 성전수리를 목적으로 드려진 은으로 여호와의 전에 쓰이는 성기(聖器)를 만들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역대기에서는 그 기구들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하 24:14절은 실제로 본장 16절 이후에 해당되는 기사로서 성전 수리를 다 마치고 난 이후에 전의 성기(聖器)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절은 성전 수리 작업을 하는 도중에는 은을 다른 곳에 쓰지 못하게 하였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성전에 쓰이는 기구들에 대한 자세한 목록은 왕상 7:50에 나타나 있다. 한편 당시에는 성전 건물 자체도 매우 퇴락했지만 그 안에 있는 각정 집기들도 많이 없어졌던 것 같다. 사실 성전의 각종 귀금속들은 약탈당하거나 강대국에 조공으로 바쳐지곤 했다(18절; 왕상 14:26; 15:18). 그러나 성전수리 중에는 이렇게 없어진 기명들을 만드는데에 관심을 우선적으로 성전 수리를 완수하는 데에만 모든 심혈을 기울였던것이다. 그만큼 성전 수리 작업이 중요했음을 반증한다. 그렇지만 성전 수리 작업이 완수되자 남은 돈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기명들을 만들었다(대하 24:14). 그러므로 본장과 대하 24장의 내용 간에는 하등의 모순이 있을 수 없다.

ㅇ은대접. - 이것은 예배시에 직접 사용했던 그릇이다(출 12:22).

ㅇ불집게 - 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으나 제사용 도구로서는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25:14; 렘 52:18).

ㅇ주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즈라코트'는 '뿌리다'라는 뜻의 '자라크'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런데 이 도구는 불을 옮길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출 27:3).

14 오직 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전을 수리 하게 하였으며

15 또 그 은을 받아 일군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ㅇ회계치 아니하였으니. - 여호와의 전을 맡은 자(11절), 즉 감독자는 거두어들인 모든 은을 일꾼들의 임금과 성전 수리비로 마음껏 사용했다. 그러나 그가 성실히 일했기때문에 따로 회계할 필요가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믿음과 신뢰를 그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사회도 이러한 상호 신뢰로 그 기반을 다질 때 정직한 사회, 서로 아끼고 이해하는 사회가 된다. 이는 곧 하나님 나라의 한면을 보여준 듯하다(눅 17:20, 21). 한편 15절에 나타난 '회개하다'란 말은 히브리어'하쉐브'를 번역한 말인데 그 의미는 '생각하다', '고려하다', '평가하다', '계산하다', '찾아내다'이다. 이는 은의 쓰임, 용도에 대해 회개할 때 하나도 남김없이 세세하게 검토하는 것을 가리킨다.

16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전에 드리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

ㅇ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 - 이러한 본절의 기록을 보아 1차 성전 보수 때의 실패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을 해결한 듯하다. 즉 처음의 보수 때에는 제사장의 생활 문제에 대해 제도적으로 이를 뒷바침하지 않았으나 2차 때에는 이를 보완한 것 같다. 왜냐하면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오직 제사장에게 돌려져 그들의 생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속건제에 관한 레 5:15-19의 기록을 보면 번죄한 자들이 '속건제'를 드릴 때 1)어떤 지정된 가치에 따라 제물을 드렸다. 즉, 여호와의 성물 또는 금령을 범한 자는 '흠 없는 수양 또는 은'을 드려야 했으며, 이웃에 대해 범죄한 자 또한 흠 없는 수양을 드려야 했다. 2) 범죄한 그 사람에 대하여 반드시 의무적으로 변상해 주어야 하며, 3) 제사장들에게 바칠 세금으로 배상 가격의 1/5을 바쳤다. 그런데 만일 당사자가 죽게 되면 그 친족들에게 보상하거나 제사장에게 하도록 되어 있다(민5:6-8). 한편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은 속죄제에 대한 속전(the atonement money)을 받게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혹자는 이 속전이 1) 이미 속죄된 것과 유사한 실수를 범한 경우에 드리는 돈이며, 2) 희생물에 대한 세금이며, 3) 희생 대신에 드리는 보상이라고 설명한다(De Vaux Ancient Israel, Vol, 1, p. 429-430).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세금이 징수되었다는 기록은 성서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Hobbs), 많은 학자들은 제사장들의 수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자원하여 헌금을 바쳤을 것이라고 본다(Keil,Bahr, Rawilnson). 그런데 속죄제는 고의성이 없이 하나님 앞에 지은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으로 집단적인 것은 매절기 때마다 드렸고 (레 4:13, 14). 개인적인 것은 필요에 따라 제사를 드렸다(레 4:27, 28, 31).

17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취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한고로

ㅇ때에. - 이것은 16절과 17절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역대의 기록을 보면 본장에 기록된 사건 이외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죽음과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사망 이후 아세라 숭배를 허락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대하 24:15-18).   그리고 또 여호야다에 이어 제사장이 된 스가랴를 요아스왕이 돌로 쳐서 죽이게 한 사건도 기록되어 있다(대하 24:20-22). 따라서 본절에 기록된 아람왕 하사엘의 침입은 요아스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볼 수 있다(대하 24:24).

ㅇ하사엘이 올라와서. - 유다와 아람은 최근에 들어 서로 침략하고 공격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이 유다와 아람의 세력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Rawilnson). 그러나 하사엘이 유다를 공격한 것은 아람의 영토 확장 정책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사엘이 유다를 공격할 때에는 앗수르의 살만에셀 3세(B.C. 859-824)가 다메섹을 두 번째 공격하고 난 이후(B.C. 840-837)인 것이다. 그리고 이 침공은 10:32, 33에 기록된대로 북이스라엘에 대한 공격과는 직접 관련된 사건이다. 즉 하사엘은 자기 나라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하여 서진(西進) 정책을 폈으며 이로 인하여 북이스라엘과 유다는 다함께 심각한 경제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군사적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한편 대하 24:23에 따르면 하사엘이 유다를 공격한 시기가 요아스 왕이 성전 수리를 기념하는 1주년 후였음을 알 수 있다.

ㅇ가드를 쳐서 취하고. - 가드(Gath)는 현재 '텔에스-사피'(Tell es-Safi)나 또는 '텔쉐이크-엘 아레이니'(Tell Sheikh el Areini)에 해당되는 곳으로서(R. A. S.Macalister, B. Mazar) 예루살렘의 남서쪽 약 30km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성경에서의 '가드'는 본래 불레셋의 주요한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였으며(삼상 6:17) 초기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Stinespring, Interpreter'sDictionary of the Bible, Vol. 2, p.355-356). 그 뿐만 아니라 이 성읍은 기름진 해안 평야(블레셋 평야)의 일부로서 르호보암 시대에 유다를 방비하는 성읍들 가운데 하나에 속하는 요새이기도 했다(대하 11:8).

ㅇ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한 고로. - 아람의 변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유다의 남방에 있는 가드(Gath)를 하사엘이 먼저 침략한 것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다. 그러나 하사엘의 편에서 볼 때 물질적인 소득과는 별개의 문제로 가드의 후방에서 예루살렘을 제거하는 것은 전략상 상당히 유익한 것이다. 한편 가드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적어도 약 64km 이상 떨어진 먼 곳이었기 때문에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18 유다 왕 요아스가 그 열조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취하여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내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ㅇ대하 24:24에는 아람의 적은 구대에 의해 유다의 많은 숫자가 대패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큰 패전 때문에 요아스는 자기 조상 때부터 성물(聖物)로 여호와의 전에 바쳤던 모든 보물을 하사엘에게 내어 주게 된 것이다. 본문의 17절과 18절을 얼핏보기에는 가드를 빼앗김으로 인해 요아스가 싸움도 하지 않고 보물을 다 내어준 것처럼 보이나 대하 24:24에서는 큰 참패 이후에 그렇게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대하 24:23). 이러한 이유로 인해 본문의 내용과 역대하 24장과는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혹자는 이 두 기사가 서로 다른 전쟁을 언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Thenius). 그러나 이 견해는 전혀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두 기사는 조화될 수 있다. 왜냐하면 역대하의 기록은 단지 좀 더 자세히 기록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대기에서는 하사엘의 침략을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사후에 바알을 숭배하고 심지어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인 데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해석했다(대하 24:23, 24). 그러나 본문은 여호야다가 죽은 후 요시야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으로 어려움을 해결했던 잘못을 지적하는 차원에서 기록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요시야의 사역을 설명하기 앞서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단서를 붙였다(2절). 어쨌든 요아스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왕실과 성전의 재정이 거의 바닥날 지경에까지 처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품을 떠나 방황하는 자가 고통받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가 하나님 앞으로 속히 돌아올 수 있도록 권면해야 한다(왕상14:1-20).  한편 이 싸움에서 요아스가 큰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이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반영해 준다(대하 24:25).

ㅇ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 이 왕들은 바알을 숭배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 대한 예배를 쳤폐시키지도 않았다. 그래서 백성들과 권위있는 제사장들과의 공개적인 충돌을 피하였던 것이다(Bahr). 그 뿐만 아니라 종교를 혼합적인 것으로 만들어 여호와의 성전에까지 예물을 드리는 일도 했던 것이다(Rawilnson).

ㅇ왕궁에 있는 금을 다 취하여. - 요아스는 유다의 3대 왕인 아사가 아람 왕 벤하닷에게 조공을 주어 전쟁을 피한 일(왕상 15:18),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셋에게 뇌물을 주고 항복한 일(16:8),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산헤립에게 보물을 주고 전쟁을 협상한 사건(18:15)과 같은 방법으로 전쟁을 끝마친다.

ㅇ보내었더니. -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쉐라흐'는 '보내 버리다', '포기하고 내주다'란 의미이다. 이는 곧 요아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왕궁의 보물을 준 사건이 기쁨에 의해서가 아니라 억지로 내어 주었음을 반영한 용어이다.

19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것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서 모반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궁에서 저를 죽였고

ㅇ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서. - 본문에서는 요아스의 신복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이 단지 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만 되어 있다. 그러나 대하 24:24-27에는 요아스의 신복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와 경위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기 기록은 신학적인 이유로서의 설명은 될 수 있으나 반란의 정치적인 동기는 제공해 주지 않는다.

ㅇ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 - 어떤 주석가들도 여기에 언급된 '실라'에 대해서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실라'라는 용어가 지명인지, 혹은 거리를 나타내는 말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자는 대부분의 고대 역자들이 이 단어를 단순히 특수한 명사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한다(Bahr). 그러나 그 정확한 의미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한편 또다른 혹자는 이를 '거리'라고 추측하고 (Grotius, Thenius), 다른 학자들은 '경사지'라고 판단하나(Ewald) 이를 뒷바침할 만한 근거는 미약하다.

ㅇ밀로 궁에서 저를 죽였고. - 요아스가 어디서 죽임을 당하였는지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대하 24:25). 본절에서 '밀로'는 '채우다'라는 뜻의 '말라'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이를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 이것은 기드론 골짜기를 끼고 있는 구릉지, 즉 오벧의 경사지에 만들어져 있는 계단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K. Kenyon, B. Mazar). 2) 이것은 다윗(삼하 5:9)과 솔로몬(왕상 9:15, 24)이 지은 요새로서 오벧의 북서쪽에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G.A. Barrois,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Vol. 3,p. 382-383). 한편 본절에서는 밀로 궁이 실라로 내려가는 길가에 위치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실라'에 관해 알려진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데니우스(Thenius)와 같은 학자들은 '실라'가 현재의 다윗로에 해당하는 길이기 때문에 욥바문에서 하람 지역을 연결하는 경사진 곳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밀로'의 2) 번 해석과의 어떤 연관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21 저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이었더라 저는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여호사바드. - 대하 24:26에는 두 모반자를 "시므앗의 아들 사밧과 시므릿의 아들 여호사밧"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본절과 역대서 사이에 나타난 기록의 차이점은 본절이 부친의 계보를 딴 이름인 반면에 역대기는 모친의 출신지에 따른 이름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Hobbs). 그리고 '앗'(-ath)이라는 이름의 어미는 앗수르나 아랍인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부쳐지던 것이다. 또한 '시므릿'(대하 24:26)은 히브리어 '소멜'의 여성형인데 (Rawilnson), 이것은 당시의 유대사회에 국제적인 결혼이 성행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결혼 풍습은 요아스가 우상숭배를 허용하였기 때문에 더욱 성행하였을 것이다. 한편 본절의 병행 구절인 대하 24:26에서 시므앗의 아들을 '사밧'이라고 한것은 히브리어 '자칼'을 '자바'으로 오기한 것으로 보인다(Wycliffe). 그리고 '사갈'은 '여호사갈'의 축약형이다.

ㅇ저는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 대하 24:25에 의하면 요아스가 다윗성에 장사되긴 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라는 본절이 역대기의 기록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Thenius). 그러나 이것을 기록자의 관점 차이로 이해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즉 역대기는 보다 신학적인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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