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왕하9.예후의 반란/북이스라엘왕 요람 살해_유다왕 아하시야 살해_이세벨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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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9장  [38.“예수 우리 왕이여//75.주여 우리 무리를]   [257.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435. '나의 영원하신기업] [546.주님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523.어둔 죄악 길에서]


===예후가 이스라엘 왕이 되다

1.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라모트 길르아드<레이시-멤-타브, 김멜-라멛-아인-달렛> 영Q께서 진리말씀으로 사역하사 완성하여 드러내심, 성령으로 친히 제자삼으시며 분배/전이하신바로 생명사역하심으로써 구별/성별/분별 하시는 열린문 되심을 나타내심***

2.  거기에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의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그를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  ******라모트 길르아드<레이시-멤-타브, 김멜-라멛-아인-달렛> 영Q께서 진리말씀으로 사역하사 완성하여 드러내심, 성령으로 일러주시며 분배/전이하신바를 사역하사 구별/성별/분별 나타내심***님시<눈-멤-쉰-요드> :: 생명 확장의 진리말씀 부으심바 그 생명 사역으로, ..<갇힘에서>끌어내어 구출하다 **여호사밧<요드-헤이-바브(상)-쉰-페이-테이트>여호와께서 부어주신 말씀따라 지혜로 나타내다 ***예후<요드-헤이-바브(중)-알렙>..여호와 그분이시다.

3.  기름병을 가지고 그의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하지 말지니라 하니

4.  그 청년 곧 그 선지자의 청년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5.  그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아 있는지라 소년이 이르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나이다 예후가 이르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누구에게 하려느냐 하니 이르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하는지라

6.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청년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노니

7.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8.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9.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10.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그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왕상21>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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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예후가 나와서 그의 주인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그에게 묻되 평안하냐 그 미친 자[-샤가.쉰-김멜-아인..선지자를 비아냥/경멸조로 지칭..미친자/저능아]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냐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가 말한 것을 알리라 하더라

12.  무리가 이르되 당치 아니한 말이라 청하건대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 하니 대답하되 그가 이리 이리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 하는지라

13.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이스라엘 왕 요람이 살해되다

14.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아람의 왕 하사엘<חֲזָהאֵל.계시하심의 하나님**하존 חָזוֹן-계시/묵시>과 맞서서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15.  아람의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부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알리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16.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예즈레엘 יִזְרְעֶאל..농부로서 친히 밭갈고 씨를 뿌리사 (그 결과) 만족하시는 하나님>로 가니 요람 왕이 거기에 누워 있었음이라 유다의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하사엘<하즈-엘 :: 하존(헤이트-자인-바브(상)-눈) + 엘로힘>...완전하신 부활생명의 Q께서 계시로 보여주심...손수 기경-생명 씨앗 뿌리신바 그 영혼 수확으로 만족하시도록 동거동주동행하라..  **님시(확장되는바 활력 넘치는 생명, 그 진리말씀을 부으심따라 생명 사역 이루심)-->여호사밧(부어주신 바 여호와의 말씀마다 지혜가 됨)-->예후(여호와 바로 그분 나타나심) **이스르엘<예즈르엘...요드(일하심)-자인(결과로 만족하심)-레이시(영)-아인(분배/전이), 알렙-라멛(엘로힘 산출)>---

17.  ○이스르엘 망대에 파수꾼 하나가 서 있더니 예후의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하니 요람이 이르되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어 맞이하여 평안하냐 묻게 하라 하는지라   *****파수꾼<차파..체데-페이-헤이>전개되는 사실, 실제 그대로 직고하다

18.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하니라 파수꾼이 전하여 이르되 사자가 그들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19.  다시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었더니 그들에게 가서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를 따르라 하더라

20.  파수꾼이 또 전하여 이르되 그도 그들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가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갈대아 역은 반대로..예후의 통솔 같으니..그는 (지금) 조용히 통솔하기 때문입니다..표현  :: 아마도 성 근처까지는 신속 맹렬함으로, 그 근처에 이르러서는 조용/천천히..완급 조절 중..>으로 하니

21.  ○요람이 이르되 메우라 하매 그의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나봇<눈-베이트-바브(상)-타브>확장의 활력 생명 넘치게 하사 거처 삼으신바 그 인격 변화가 완전함*** ***아하시야<알렙-헤이트-자인-요드-헤이.. = 알렙<하나님>-하즈<이상 :부활생명 그릇 만드심>-요드-헤이<여호와..예슈아 나타남> ***요람 =여호람 <요드-바브(상)-레이시-멤>생명 인격 변화 이루시는분, 여호와, 그분의 영의 거처 **이세벨 : 알렙-<요드-자인-베이트 :: Q이 손수 만드신바 그릇, 그 안에 거하심>-라멛

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

23.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하니

24.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그가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진지라

25.  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2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제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이 밭에 던질지니라 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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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 아하시야가 살해되다

27.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28.  그의 신복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29.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이세벨 왕후가 살해되다

30.  ○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31.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

32.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이르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33.  이르되 그를 내려던지라 하니 내려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

34.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이르되 가서 이 저주 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35.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36.  돌아와서 전하니 예후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37.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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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9장


1.  Now Elisha the prophet called one of the sons of the prophets, and said to him, "Gird up your loins, and take this flask of oil in your hand, and go to Ramoth-gilead.

2.  "When you arrive there, search out Jehu the son of Jehoshaphat the son of Nimshi, and go in and bid him arise from among his brothers, and bring him to an inner room.

3.  "Then take the flask of oil and pour it on his head and say, 'Thus says the LORD," I have anointed you king over Israel. "'Then open the door and flee and do not wait."

4.  So the young man, the servant of the prophet, went to Ramoth-gilead.

5.  When he came, behold, the captains of the army were sitting, and he said, "I have a word for you, O captain." And Jehu said, "For which [one] of us?" And he said, "For you, O captain."

6.  And he arose and went into the house, and he poured the oil on his head and said to him, "Thus says the LORD, the God of Israel, 'I have anointed you king over the people of the LORD, [even] over Israel.

7.  'And you shall strike the house of Ahab your master, that I may avenge the blood of My servants the prophets, and the blood of all the servants of the LORD, at the hand of Jezebel.

8.  'For the whole house of Ahab shall perish, and I will cut off from Ahab every male person both bond and free in Israel.

9.  'And I will make the house of Ahab like the house of Jeroboam the son of Nebat, and like the house of Baasha the son of Ahijah.

10.  'And the dogs shall eat Jezebel in the territory of Jezreel, and none shall bury [her.]' "Then he opened the door and fled.

11.  Now Jehu came out to the servants of his master, and one said to him, "Is all well? Why did this mad fellow come to you?" And he said to them, "You know [very well] the man and his talk."

12.  And they said, "It is a lie, tell us now." And he said, "Thus and thus he said to me, 'Thus says the LORD," I have anointed you king over Israel. "'"

13.  Then they hurried and each man took his garment and placed it under him on the bare steps, and blew the trumpet, saying, "Jehu is king!"

14.  So Jehu the son of Jehoshaphat the son of Nimshi conspired against Joram. Now Joram with all Israel was defending Ramoth-gilead against Hazael king of Aram,

15.  but King Joram had returned to Jezreel to be healed of the wounds which the Arameans had inflicted on him when he fought with Hazael king of Aram. So Jehu said, "If this is your mind, [then] let no one escape [or] leave the city to go tell [it] in Jezreel."

16.  Then Jehu rode in a chariot and went to Jezreel, for Joram was lying there. And Ahaziah king of Judah had come down to see Joram.

17.  Now the watchman was standing on the tower in Jezreel and he saw the company of Jehu as he came, and said, "I see a company." And Joram said, " Take a horseman and send him to meet them and let him say, 'Is it peace?' "

18.  So a horseman went to meet him and said, "Thus says the king, 'Is it peace?'" And Jehu said, "What have you to do with peace? Turn behind me." And the watchman reported," The messenger came to them, but he did not return. "

19.  Then he sent out a second horseman, who came to them and said, "Thus says the king, 'Is it peace?'" And Jehu answered, "What have you to do with peace? Turn behind me."

20.  And the watchman reported, "He came even to them, and he did not return; and the driving is like the driving of Jehu the son of Nimshi, for he drives furiously."

21.  Then Joram said, "Get ready." And they made his chariot ready. And Joram king of Israel and Ahaziah king of Judah went out, each in his chariot, and they went out to meet Jehu and found him in the property of Naboth the Jezreelite.

22.  And it came about, when Joram saw Jehu, that he said, "Is it peace, Jehu?" And he answered, "What peace, so long as the harlotries of your mother Jezebel and her witchcrafts are so many?"

23.  So Joram reined about and fled and said to Ahaziah, "[There is] treachery, O Ahaziah!"

24.  And Jehu drew his bow with his full strength and shot Joram between his arms; and the arrow went through his heart, and he sank in his chariot.

25.  Then [Jehu] said to Bidkar his officer, "Take [him] up and cast him into the property of the field of Naboth the Jezreelite, for I remember when you and I were riding together after Ahab his father, that the LORD laid this oracle against him:

26.  'Surely I have seen yesterday the blood of Naboth and the blood of his sons,' says the LORD, 'and I will repay you in this property,' says the LORD. Now then, take and cast him into the property,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

27.  When Ahaziah the king of Judah saw [this,] he fled by the way of the garden house. And Jehu pursued him and said, "Shoot him too, in the chariot." [So they shot him] at the ascent of Gur, which is at Ibleam. But he fled to Megiddo and died there.

28.  Then his servants carried him in a chariot to Jerusalem, and buried him in his grave with his fathers in the city of David.

29.  Now in the eleventh year of Joram, the son of Ahab, Ahaziah became king over Judah.

30.  When Jehu came to Jezreel, Jezebel heard [of it,] and she painted her eyes and adorned her head, and looked out the window.

31.  And as Jehu entered the gate, she said, "Is it well, Zimri, your master's murderer?"

32.  Then he lifted up his face to the window and said, "Who is on my side? Who?" And two or three officials looked down at him.

33.  And he said, "Throw her down." So they threw her down, and some of her blood was sprinkled on the wall and on the horses, and he trampled her under foot.

34.  When he came in, he ate and drank; and he said, "See now to this cursed woman and bury her, for she is a king's daughter."

35.  And they went to bury her, but they found no more of her than the skull and the feet and the palms of her hands.

36.  Therefore they returned and told him. And he said, "This is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spoke by His servant Elijah the Tishbite, saying, 'In the property of Jezreel the dogs shall eat the flesh of Jezebel; 

37.  and the corpse of Jezebel shall be as dung on the face of the field in the property of Jezreel, so they cannot say, "This is Jezeb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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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9장 (개요)

하사엘과 예후는, 아합의 집을 징벌하고 파멸시키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되도록 작정된 사람들이다. 엘리야는 그들을 이 일에 지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아합이 겸손해졌을 동안은 그것이 유예되었다. 그래서 그들을 그 역할에 지명하는 일은 엘리사에게로 넘겨졌다. 앞 장에서는 하사엘이 아람 왕위에 오른 것을 읽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스라엘의 왕위에 예후를 등장시켜야 한다. 요람과 아하시야가 그랬듯이, 하사엘의 칼을 피한 예후는 그들을 처리해야 했다. 

이것에 대해 본 장은 다음의 기록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1. 어떤 임무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을 통해서 예후에게 주어진다. 그 임무란 그에게 통치권을 주어서, 아합가를 파멸시키게 하는 것이다(1-10).

2. 예후는 그 임무를 신속히 수행한다.

   (1) 그는 그것을 그의 군대들에게 전한다(11-15).

   (2) 그는 직접 이스라엘로 행군한다(16-20). 그리고 거기에서 다음 인물들을 처치한다.

     ① 이스라엘 왕 요람(21-26).

     ② 유다 왕 아하시야(27-29).

     ③ 이세벨(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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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부음을 받은 예후(왕하 9:1-10)

여기에서는 예후가 왕이 되도록 기름 부음을 받은 사건을 보게 된다. 그 때 그는 길르앗 라못에서 왕에게 고용된 군대 지휘관(아마 참모장이었을 것이다)으로 있었다(14절). 

거기에서 그는 그의 주인인 왕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으나, 그 주군을 대항하여 싸우라는 보다 높은 왕의 명령을 받은 것이다. 

예후가 이전에도 정권을 목적했거나 생각했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에게 제시된 임무는 전혀 의외의 일이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엘리야에 의해서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았으나, 다른 명령을 받을 때까지는 행동하지 말라는 비밀지령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마치 사무엘이 다윗에게 왕이 되기 오래전에 기름을 부었던 것과 같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가능성이 없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하사엘에게도 또한 기름을 부었다고 생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이 일들을 하도록 명령했을 때는, 하나님이 그에게 엘리사로 하여금 “그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도록” 기름을 부으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그것은 엘리야가 없어진 후에 하나님은 엘리사에게 지시하여 그들에게 기름 붓는 일을 맡기시려 한 것이었다.

Ⅰ. 주어진 임무.

1. 엘리사는 예후에게 기름 붓기 위하여 자기가 직접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늙어서 그러한 여행을 할 수 없었고, 너무 잘 알려져서 그 일을 몰래 할 수가 없었으며, 사람 눈에 띄지 않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선지자의 생도들 중의 하나를” 보냈다(1절). 그들은 엘리사를 아버지와 같이 존경했을 뿐만 아니라(2:15), 그를 아버지와 같이 좇고 순종했다.

예후에게 기름 붓는 이 일은,

(1) 위험이 따랐다(삼상 16:2). 그러므로 엘리사 자신이 나서는 것은 적합하지 않았고, 선지자의 생도들 중의 하나가 적합했다. 그들의 생명은 엘리사의 생명보다는 귀하지 않았고, 엘리사가 하는 것보다는 위험이 적었다.

(2) 그 일은 수고를 요구했다. 그러므로 전력을 다할 젊은이에게 더 적합했다. 젊은이는 일하게 하고, 노인은 지휘하게 해야 한다.

(3) 그러나 그것은 왕에게 기름을 붓는 명예로운 일이었다. 그 일을 하는 자는 그 후에 그 일을 위해 발탁될 것을 희망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젊은 선지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그들 중의 하나를 고용했다. 그는 모든 명예를 독차지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젊은 선지자들과 영예를 나눠 갖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2. 엘리사가 그를 보냈을 때,

(1) 그가 예후에게 부을 기름을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이 기름병을 취하라.” 솔로몬은 “회막에서 가져온 기름”으로 부음을 받았다(왕상 1:39). 

그런 기름을 이 때에는 얻을 수 없었지만 선지자의 손에서 온 기름은 하나님의 집에서 온 기름과 동등했다. 왕에게 기름 붓는 일은 계속되던 행사는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솔로몬의 경우와 같이 왕위 계승이 혼란한 때, 또 요아스의 경우(11:12)와 같이 왕위 계승이 방해될 때, 또는 예후의 경우와 다윗의 경우와 같이 통치권이 새 가문으로 옮겨질 때에만 기름 붓는 식이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항상 사용되었지만,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2) 엘리사는 그가 해야 할 “말을 그의 입에” 두었다고 했다(3절). 즉 “내가 너에게 왕으로 기름 부었다”라고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 외에 엘리사가 그에게 한 모든 말(7-10절)을 그에게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로 보내는 자들에게 자세히 지시하여 보내실 것이다.

(3) 엘리사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① 그 일을 비밀리에 행하라. 

그는 예후를 다른 장관들 중에서 뽑아내어, 골방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2절). 아마 그래서 그 선지자의 임무에 대한 예후의 확신이 시험당했을지도 모른다. 

그 때 그는 자기의 소명을 증명할 아무런 증거도 댈 수 없었다. 예후가 그 의식 때문에 갑자기 힘이 나게 되었다면, 그것이 그가 기름 부음을 받았음을 충분히 증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거기서 여하한 다른 증명도 필요치 않다. 나타난 결과가 그 표적의 최상의 증거였다.

② 그 일을 신속히 행하라고 했다. 

그가 그 일을 위해 갔을 때, 그는 “허리를 동여야” 했다. 그가 그 일을 하고서, 사례비나 대접을 받으려고, 혹은 예후가 무슨 일을 하려는가 보기 위하여 “지체하지 말고 빨리 달아나야” 했다. 빈둥거리고 쓸데없이 지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과 같이, 자기의 일을 민활하고 힘차게 하는 것이 선지자의 생도들이 할 일이다. 그들은 재빠르게 날아다니는 천사와 같이 되어야 한다.

Ⅱ. 위임이 전달되었다. 

그 젊은 선지자는 자기 일을 신속히 행했고, 곧 길르앗 라못으로 갔다(4절). 거기에서 그는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하고 전쟁 회의를 하는 장군들을 발견했다(5절).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자기의 외모는 초라하지만―무리 가운데서 예후를 불러냈다. 

그는 틈이 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마치 권위 있는 자와 같이 말했다―“나는 당신에게 전할 말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마 예후는 자기의 사명에 대해 약간의 예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는 영예를 찾아서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우리 모든 사람 중에서 뉘게 하려느냐?”고 물었다. 

그가 먼저 말했기 때문에 그가 용무의 대상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모두 예후 그가 바로 목표한 사람임을 만족했던 것 같다. 

선지자는 그를 혼자 데리고 가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6절). 성령의 기름 부음은 숨겨진 일이다. 그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나, 그것을 받은 자만이 아는 새로운 기름이다. 이와 함께,

1. 그는 예후에게 왕의 관작을 수여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나는 그의 이름으로 온 사신이다―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라.” 

그는 그에게 논의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칭호를 주고, 다음과 같이 하여 그가 왕이 되리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1) “이스라엘 하나님에 의해서”다. 

즉 그 하나님에게서 자기의 권력이 나왔음을 그는 알아야 한다(그에 의해서 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권력을 써야만 하며, 하나님께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치리자들도 하나님의 사역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 의지해서, 그리고 그에게 온전히 헌신하면서 그의 영광을 위해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여호와의 백성의” 왕이 되었음을 상기시켰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히 타락했다 할지라도,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과 그들의 모든 영예로운 관계를 박탈당했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아직은 그들에게 이혼증서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후는 자기가 왕이 되어 다스릴 그 백성을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즉 자기의 예속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인, 그의 아들들, 그의 장자들로서 대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학대하거나 압제해서는 안 되며, 그 자신도 하나님을 위하여 자제하며, 하나님의 법에 의해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2. 그 젊은 선지자는 예후가 당장에 할 일을 지시했다. 

그가 할 일이란 아합의 모든 집을 멸절시키는 일이다(7절). 이것은 그가 왕위에 나아가는 길을 개척하여, 권좌의 소유를 보장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죄악되고 가증스러운 그 아합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시행하기 위한 일이다. 선지자는 아합을 그의 “주인”이라고 불렀다. 이 관계는 아무런 이의(異意)가 없을 것이다. “그는 너의 주인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아들과 그의 후계자에게 대항하여 일어서는 것은, 하나님께 직접 받은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닐 경우라면, 단지 천박한 망은(忘恩)이요, 반역, 반란, 그리고 나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너의 주인 아합에게보다도 하늘에 계신 너의 주님께 더 높은 의무를 지고 있다.” 하나님은 “아합의 온 집을 멸망시킬 것이요, 그것은 바로 너의 손으로 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런즉 두려워 말라. 그가 너에게 명령하시지 않았느냐? 범죄할까 두려워 말라. 그의 명령이 너를 의롭다 할 것이고, 너를 지지해 줄 것이다. 위험을 두려워 말라. 그의 명령이 너를 안전케 하실 것이며, 성공하게 하실 것이다.”

그 선지자는 예후가 현명하게, 그리고 올바른 방법으로 이 큰 일을 아합의 집에 시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그들의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이 다루시는 그들의 논쟁의 근거가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과 싸우시는가를 말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의하시는 것을 예후도 유의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즉 하나님이 유의하시는 것은 바로 그들이 흘린 하나님의 종들, 선지자들 그리고 다른 신실한 예배자들의 피였다. 이제는 이세벨의 손에서 그 피를 찾으시겠다고 했다. 또 그들이 우상 숭배자들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벌을 받기에 충분할 만큼 악했고, 그들에게 임한 모든 것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기에서 아직 언급되지도 않고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다투시는 이유는 그들이 박해자들이라는 점에 대해서였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제단들을 훼파”했을 뿐 아니라, “칼로써 그의 선지자들을 살해”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어떤 죄악도 이것보다는 군주와 백성의 죄악의 그릇을 완벽하게 채우지 못하며, 어떤 죄악도 이러한 죄악보다 더 분명하고 쓰라린 파멸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이 죄악이 바로 예루살렘의 최초의 파멸(대하 34:16)과 최후의 파멸을 가져왔던 죄다(마 23:37, 38).

이세벨의 음행과 마술보다도 그녀가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이고, 남은 자들은 골방과 동굴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이 더 하나님을 자극시켰다(왕상 18:4).

(2) 아합가의 운명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철저한 파멸을 선고받았다. 즉 그들을 교정하기 위한 징계가 아니라 뿌리째 뽑아버리려는 심판이다. 예후는 동정이나 호의나 인정을 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했다. 아합에게 속한 모든 자는 살해되어야 한다(8절). 여로보암과 바아사의 집안이 파멸된 것에서 본을 따서 시행해야 했다(9절). 그리고 특히 이세벨을 개들에게 던지라는 지시를 받는다(10절). 아합 왕가의 피의 전량(全量)으로도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순교자들의 피를 보상하기에는 너무나 적고 부족했다. 하나님의 계산으로는 그의 종들의 피가 너무나 고가(高價)였기 때문이다.

이 용무를 마친 선지자는 최선을 다해 속히 귀가했다. 그리고 예후를 혼자 남겨 두어, 그가 앞으로 해야 할 바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지시를 구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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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에 나선 예후(왕하 9:11-15)

잠시 후 예후는 회의석상에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일어난 일을 억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 사실을 그냥 덮어 두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면 그와 그 군대장관들 사이에 일어난 일을 알아보도록 하자.

Ⅰ. 군대장관들은 젊은 선지자를 경멸하면서 말했다.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뇨?(11절) 그가 그대에게 온 용무가 무엇이뇨? 그리고 왜 그대는 그와 얘기하기 위하여 그렇게 물러가 줄 만큼 그의 비위를 맞추려 했는가? 선지자들이 군대장관들과 친구인가?” 그들은 그를 “미친 자”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 선지자는 “저희와 함께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기를” 원치 않고(벧전 4:4), 자기를 부정하는 삶과 금욕 및 이 세상 경멸의 삶을 살았고, 자기들의 시간을 예배에 바치는 그런 자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그들은 선지자들이란 바보들이요, “신이 감동한 자는 미쳤다”(호 9:7)고 생각했다.

종교를 갖지 않은 자들은 흔히 신앙심을 경멸하여 말한다. 그리고 그들을 미친 사람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우리의 구주를 향해 “그는 미쳤다”고 말했고,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그는 악마에 들렸다”(그런 자는 실로 얼마나 불쌍한 자인가!)고 말했고, 사도 바울에 대해서는 “많은 학식이 그를 미치게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고(至高)의 지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고,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자들은 미친 사람들로 간주된다. 아마 예후는 동료들을 책망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즉 “너희는 그 사람이 선지자임을 알라. 그런데 왜 그를 미친 자라고 부르는가? 너희는 그의 가르침이 광기에서 나오지 않고 영에서부터 나옴을 알라”고 하던가, 혹은 “너희는 그가 선지자임을 알라. 그 용무는 나에게 내 결점을 말해 주고, 나에게 나의 의무를 가르쳐 주는 것임을 알 수 있지 않느냐?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너희에게 알려 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의 말을 일축해 버리려 했지만, 그들은 그에게 얘기하기를 강청했다. “당치 않은 말이라. 우리는 그의 임무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없노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말하라”. 예후는 재촉을 받고 나서, 그 선지자가 “자기를 왕으로 기름 부었다”고 알렸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머리에는 기름이 보였을 것이다(12절). 그들 중 어떤 자가 나서서, 요람에 대한 충성심에서거나 그에게 질투를 느껴 왕이 되는 길을 막아서거나, 아예 처음부터 그의 계획을 좌절시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예후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했고, 그 사실을 고백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누구를 믿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일으킨 자가 자기를 지원하시리라는 것을 믿었다.

Ⅱ. 그들은 예후가 왕위에 오른 것을 알게 되자마자 그 새로운 왕에게 경의를 표했다(13절). 아무리 그들이 그에게 기름 부은 선지자와 그의 직분에 대해서는 천하게 생각했을지라도, 그들은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왕으로서의 직위에 대해서는 대단한 존경심을 표했고, 앞서 나가 나팔 소리로 그가 왕 됨을 알렸다. 그들은 예후에 대한 복종과 충성, 그리고 그의 인간 됨과 정권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가 왕이 되어 높은 지위와 평안을 누리는 것을 보고자 한다는 욕망 따위를 표하기 위해, 그들은 자기 옷을 그의 발 아래 깔았다. 그래서 예후가 “계단 꼭대기에” 있는 옷 위에 섰거나 혹은 앉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 광경은 그 의식을 빛내기 위해 최초로 통고받고 모여 온 군인들에게 보였을 것이다. 하나님이 미리 그들의 마음속에 예후를 승인할 마음을 주신 것이다. 이것은, 강물의 흐름과 같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왕들의 마음은 물론 백성의 마음을 돌리시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은 요람의 통치에 불안을 느꼈든가 예후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가졌던 것 같다. 아무튼 사태는 혁명이 일어날 만큼 무르익었고, 그들은 모두 예후의 편이 되었고, “요람을 배반하였다”(14절).

Ⅲ. 예후는 지극히 조심스럽게 진행해 나갔다. 그는 요람에 비해 이점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점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요람은 군대를 떠났다. 심하게 부상하여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예후의 훌륭한 처신은 두 가지 사실에서 나타났다.

1. 그는 군대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들의 조언과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만일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이라면, 우리는 이러이러하게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이것은 예후가 그들의 판결과 그들의 충성을 신뢰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것은 둘 다 그들을 기쁘게 하고, 확고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일어나, 굳게 서기를 원하는 자들은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2. 그는 요람을 급습하고자 했다. 그래서 신속히 그를 공격하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채지 못하게 했다. “아무도 이스라엘에 그것을 전하러 가지 못하게 하라. 그래서 덫과 같이 파멸이 그와 그의 집에 임하게 되리라. 공격에는 때로 신속성이 공격력만큼 중요해지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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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후의 혁명(왕하 9:16-29)

길르앗 라못에서 이스라엘까지는 하룻길의 행군 이상이었다. 두 지점 중도쯤에서 그는 요단 강을 건너야 했다. 예후는 가능한 한 아주 신속히 행군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보다 먼저 이스라엘에 이 소식이 닿지 않도록 최선의 주의를 기울였을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그의 모습을 먼저 보게 된다. 다음에는 그가 저주받은 왕에게 도달하는 것을 본다.

Ⅰ. 요람의 파수꾼이 먼저 멀리서 예후와 그의 종자(從者)들을 보고, 왕에게 한 무리가 가까이 옴을 알렸으나, 그들이 우방인지 원수들인지를 말해 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왕은 (그 일이 무엇인지 알고자 안달이 나서, 그리고 아마도 그에게 부상을 입힌 아람 사람들이 그를 추격하여 그의 궁전에 피를 흘리게 하고 그를 사로잡으러 오고 있다고 생각하여 마음을 놓지 못해서) 먼저 한 연락병을 보내고, 다음에 또 다른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정보를 가져오도록 했다(17-19절). 그는 그가 전투에서 겪은 커다란 공포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죄책에 대한 그의 양심은 그를 끊임없는 전율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사신들은 모두 동일한 질문을 했다. 즉 “평안이냐? 우리 편이냐 적군 편이냐? 희소식이냐 흉보냐?” 하는 질문이다. 각기 대답도 동일한 것이었다. 즉 “평안이 네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내 뒤로 돌아서라”(18, 19절)고 예후는 대답했다. 마치 이렇게 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내가 대답할 답변은 너에게가 아니라, 너를 보낸 자에게니라. 그러므로 너는 네 자신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내 뒤로 돌아서며, 나를 따르는 병사들 중에 편입하라”는 뜻이다. 파수꾼은 그 사신들이 포로가 되었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그 파수꾼은 그 군대의 지휘관이 예후처럼 말을 몰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예후는 맹렬하게 모는 것으로 알려진 것 같다. 이리하여 그는 자기 일에 뜨겁고 열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임을 보여 주었고, 전력을 다하여 전진하는 자임을 드러내었다. 그러한 격렬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야 예후에게 맡겨진 그 일에 대한 최적임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할 적절한 도구를 선택하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의 격렬성 때문에 알려진다면, 그것은 명예로운 일이 아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용사보다 낫다. 갈대아 의역본은 정반대의 의미를 부여한다. 즉 “통솔하는 모습이 예후의 통솔법과 같습니다. 그는 조용히 통솔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그리 급히 올라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별로 지체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그가 천천히 행군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것은 요람이 자기에게로 나아올 시간적인 여유를 주어서, 자기가 성에 들어가기 전에 그를 미리 처분하려 했기 때문이라 한다.

Ⅱ. 요람 자신이 그를 맞으러 나갔다. 그리고 유다 왕 아하시야도 함께 데리고 갔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려고 나갔을 뿐 적을 예상하지 않았고, 싸울 준비도 하지 않은 채였다. 사람들은 때로 자기들의 멸망의 날이 오면, 급히 나아가 멸망을 맞으려 하니, 섭리자 하나님은 인간을 얼마나 기묘하게 조정하시는가?

1. 요람이 예후를 맞은 곳은 불길한 장소였다.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났다고 했다(21절). 그 땅을 보는 것만으로도 요람을 두려워 떨게 하여 예후를 승리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요람은 나봇의 피를 흘린 죄가 있었고, 이제 예후는 나봇을 위하여 싸운 엘리야의 저주를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 하나님의 섭리는 사건들의 상황을 기묘하게 조정하사, 죄와 벌의 관계가 얼굴과 거울 속의 얼굴과의 관계와 같게 하신다.

2. 요람의 물음은 동일했다. “예후여, 평안이뇨? 너는 아람 사람들에게서 도망쳐 오는가, 아니면 그들을 정복하고 오는가?” 요람은 그것이 평화인 줄로 알았다.

다른 어떤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흔히 매우 악질적인 죄인들은 자기들이 비록 멸망 직전에 있을 때에도, 만사가 잘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뽐내며 스스로에 대해 평화를 소리쳐 외치는 수가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3. 예후의 대답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예후는 그에게 하나의 질문으로 답했다.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비록 그녀는 왕의 미망인이었으나, 실제로는 섭정을 하는 여왕이었다) 예후가 얼마나 그를 단순하게 취급했는가 보라. 전에는 그가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또 다른 한 마음을 가졌다. 죄인들이 항상 달콤한 말을 듣지는 못할 것이다. 언젠가는 자기들의 몫을 받게 될 것이다(시 36:2). 다음 사실들을 살펴보자.

(1) 예후는 요람의 어미의 죄악을 꾸짖었다. 왜냐하면 제일 먼저는 그가 그 죄악을 배웠고, 다음에는 자기의 왕권으로 그것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음행, 곧 육체적 음행과 영적 음행으로(그녀는 우상을 섬겼고, 그것도 아주 음탕하게 섬겼다) 비난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그리고 그녀의 우상들을 위하여 사용된 점과 복술과 마술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 이런 일들은 수없이 많았다. 또 음행과 복술을 더욱 심하게 했다. 왜냐하면 악한 길에 자신을 던진 자들은 그들이 어디에서 멈추어 설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죄는 또 다른 죄를 낳는다.

(2) 이러한 이유로, 예후는 그를 평안을 가장하는 모든 허식에서 추방시켰다. “뉘우치지 않은 죄악이 그렇게 많은데, 그 집에 무슨 평안이 임할 수 있겠는가?” 죄의 길은 결코 평안의 길이 될 수 없음을 명심하자(사 42:21). 죄인들이 하나님과 무슨 평안을 가질 수 있겠으며, 자기 양심에 무슨 평안을 지니겠는가? 여전히 자기의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이 이생에서나 내생에서 무슨 선한 것과 평안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죄를 고집하는 한, 아무 평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죄를 뉘우치고 버리면, 즉시 평안이 있게 되리라.

4. 즉시 처형이 시작되었다. 요람은 그의 어미의 죄에 대한 말을 듣고 낙담했다. 그는 곧 오랫동안 자기에게 위협을 주던 그 최후의 날이 왔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는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예후가 바로 우리의 원수이며, 지금은 우리가 안전을 위하여 도망갈 때로다” 하고 소리쳤다. 두 사람이 다 도망갔다.

(1) 그러나 이스라엘 왕 요람은 즉시 살해되었다(24절). 예후는 자기 손으로 직접 그를 처치했다. 그의 아버지에게는 갑옷의 접합점 사이로 그 운명의 화살이 뚫고 지나지만, 이 활은 되는 대로 당겨지지는 않았다. 예후는 요람이 도망갈 때, 그의 양 어깨 사이로 화살을 쏘았다(그것은 하나님이 “그 박해자에 대하여 정하셨던” 하나님 자신의 화살들 중의 하나였다. 시 7:13). 그리하여 그 화살은 그의 심장을 뚫었고, 그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는 아합의 집의 종손이었으므로 제일 먼저 제거되었다. 그는 율법의 선고에 의해서 범죄자로 죽었다. 예후는 그 율법의 선고를 시행하는 자로서 그 죽은 시체를 처리했다.

나봇의 포도원이 가까이 있었고, 그것은 엘리야가 아합에게 선고한 파멸의 전말을 요람에게 생각나게 했다. 엘리야는 그에게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내가 나봇의 피와 또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했다(25, 26절). 나봇의 아들들은 아버지 나봇의 범죄 공모자로 함께 처형되었거나 아니면 그 후에 비밀리에 살해되었다. 그래야 아들들이 탄원하지 않을 것이며, 아버지의 죽음을 보복하지 않을 것이었다. 또 아버지를 잃었다 해서 그들이 낙담하지 않을 것이며, 또는 (그의 전 재산이 그의 포도원과 함께 몰수되었을 때) 그들의 생활 터전을 잃는 일이 없도록―그렇게 되면 실상 죽게 되는 것이다―하자는 것이었다. 이 일에 대해 아합의 집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요람이 아주 교만하고 유쾌한 태도로 그 무죄한 피를 희생시키고서 자기가 차지했던 바로 그 땅이 이제는 극장이 되어서, 거기서 그의 자식의 죽은 시체가 세상에게 구경거리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그가 시행하시는 심판에 의해서 알려지신다(힉가욘, 셀라, 시 9:16).

(2) 그는 유다 왕 아하시야를 추격하여 곧 멀지 않은 곳에서 살해했다(27, 28절).

유다 왕 아하시야가 비록 요람의 무리 가운데 있었다 할지라도, 그가 혈족으로나 죄악으로나 아합의 집과 결합되지만 않았더라면 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아합가의 일원이었다(그는 자기의 죄로 인해 스스로 그렇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하시야도 그들의 운명을 함께해야 했던 것이다. 예후는 정당하게 자기의 임무가 그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들과 함께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함께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악을 행하는 자들과 연합하는 일은 위험한 것이다. 우리도 죄와 그 죄로 인한 비참함에 함께 휩쓸릴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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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벨의 비극(왕하 9:30-37)

아합의 집안에서 최악의 범죄자는 바로 이세벨이었다. 바알 우상을 끌어들인 것도 바로 이세벨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살해했고, 나봇의 살해를 음모했고, 먼저는 자기 남편을 충동질하고, 다음에는 자기 아들들을 충동하여 악을 행하게 한 장본인이었다. 여기서 그녀는 “저주받는 계집”이라고 불리며(34절), 그 저주는 그 나라에 대한 저주다. 또한 자기 나라가 잘되길 원하는 모든 사람은 모두 그녀에게 저주를 하게 된다. 그녀의 통치가 3대까지 계속됐으나, 마침내 그녀의 날은 끝나게 되었다. 우리는 이세벨과 비교되는 두아디라교회의 거짓 여선지자에 대하여 읽는다(계 2:20). 그녀의 죄악도 이세벨과 동일했다. 즉 하나님의 종들을 꾀어서 우상을 숭배하게 했고, 그녀에게는 이세벨에게와 같이 “회개할 긴 기간이 주어졌다”(계 2:21). 그리고 여기서 이세벨에게 임한 것처럼, 마침내는 무서운 파멸이 그녀에게 임했다(계 2:22, 23). 그래서 이세벨의 파멸은 우상 숭배자들과 성도 박해자들의 파멸을 보여 주는 한 전형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특히 저 큰 음녀, 곧 매춘부의 어미, 자기도 “성도들의 피에 취하고” 열방을 “그녀의 음탕한 포도주로 취하게” 만드는 자의 한 모형이다(계 17:5, 6, 16). 우리는 여기서 다음 사실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Ⅰ. 이세벨이 심판에 도전했다. 그녀는 예후가 자기 아들을 죽였다는 사실과, 그를 죽인 이유는 그녀의 음란과 술수 때문이라는 것, 아들의 시체를 나봇의 땅에 던졌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에 따른 것이요, 예후가 지금 이스르엘로 오고 있다는 등의 사실을 들었다. 따라서 그녀는 거기서 그의 복수의 칼에 희생될 차례가 되었다는 것을 각오해야만 했다. 이제 그녀가 자기의 운명을 어떻게 맞이했는지 보라. 그녀는 성문 입구의 창문에 앉아서 예후를 모욕하고 반항했다.

1. 그녀는 하나님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자신을 숨기는 대신, 자신을 드러내며, 도망가는 것을 조소했고, 두려움을 조롱했으며, 놀라지도 않았다. 하나님을 거역하여 굳어진 마음이 얼마나 대담하게 고집을 부리는가 보라. 그녀는 “하나님을 치려고 달려가는지라”(욥 15:26). 그러나 자기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대해 이처럼 굳게 하지 않는 자들은 번영하리라.

2. 그녀는 자신을 겸비케 하거나 자기 자식에 대한 숨막힐 듯한 슬픔에 잠기지도 않고, 오히려 “얼굴에 화장을 하고 머리를 꾸몄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위대하고 위엄 있는 것처럼 나타내려 했다. 그러면 예후가 위압되어 용기를 잃고 그의 진로를 멈추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단조함과 굵은 베를 띠라 하셨다.” 그러나 화장하고 분장하고 나서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다(사 22:12, 13).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오만한 마음보다 더 명백한 멸망의 길은 없다. 화장한 얼굴을 이세벨의 거울에 비추어 보라. 그리고 그 얼굴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알아보라. 그녀는 하나님의 보복의 도구인 예후 앞에서 두려워 떠는 대신에 오히려 위협적인 질문을 함으로써 그를 두렵게 하려고 생각했다. “주인을 죽인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고 물었다.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1) 그녀는 자기 집안을 치기 위해 나온 하나님의 손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들린 칼에 불과한 예후 앞에서는 화를 냈다. 우리가 고난을 받고 있을 때는, 우리가 하나님께 굴복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때인데도 우리의 고난의 도구에 대해서 화를 내기 쉽다.

(2) 그녀는, 예후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분명히 그 자신의 멸망으로 끝날 것이며, 그 일로 예후가 평안을 얻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하면서 제멋대로 즐거워했다. 예후는 그녀에게서 평안의 모든 허식을 제거해 버렸다(22절). 그런데 이제 그녀는 자기가 그를 죽이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 평화의 길에서 떠난 자로 간주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님을 명심하자. 적극적인 개혁자들, 곧 신실한 견책자들은 고통을 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빌 1:28).

(3) 그녀는 예후에게 이 기도의 실행을 단념하게 하기 위해서 한 선례를 인용했다. “시므리여, 평안하뇨? 아니, 시므리는 평안하지 않았다. 그는 유혈과 반역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7일 만에 부득이 궁전을 불살랐고, 그 속에서 자신도 불탔다. 그런데 너는 그보다 더 나은 운명을 기대할 수 있겠느뇨?”라고 한 것이다. 그 사건과 유사한 경우라면, 예후에게 그런 비망록을 들려주는 것은 아주 적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앞서 간 죄인들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도 그들의 발자취를 밟을까 조심하게 하는 경고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므리의 실례를 예후에게 적용시킨 것은 잘못이었다. 시므리는 그가 한 일에 대해 아무런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야심과 잔인성 때문에 그 일을 하게끔 저주받았다. 반면에 예후는 선지자의 생도 중의 하나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았고, 하늘로부터의 명령에 따라 이것을 행했다. 그리고 하늘도 그를 지지해 줄 수 있었다. 사람이나 사물을 비교함에 있어서 우리는 값진 것과 비루한 것 사이를 주의 깊게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죄인들의 운명과 유용한 사람들의 운명을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Ⅱ. 예후는 그녀를 치려고 도움을 청했다. 그는 창을 올려다보고, 무례하지만 무력한 그녀의 분노의 위협에 위압되지 않고,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고 소리쳤다(32절).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 즉 그 땅을 개혁하고, 그 땅을 더럽힌 자들을 처벌해야 할 사명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그 일을 하기 위해 도움을 구하고 있다. 도울 만한 사람, 이 일을 지지해 줄 만한 자를 찾는 것이다(사 43:5). 모세와 같이(출 32:26), 그는 깃발을 들고 “누가 여호와의 편이냐?” 하고 선언했다. 그리고 시편 저자는(시 94:16) “누가 나를 위하여 저 행악하는 자들에게 올라갈꼬?”라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개혁사업이 일단 착수되었을 때는, “누가 그것에 편들 것인가?” 하고 물어야 할 때다.

Ⅲ. 그녀의 수종자들이 그의 정당한 보복에 그녀를 넘겨 주었다. 두세 사람의 시종들이 자기들은 예후의 편임을 믿도록 그를 격려하는 얼굴로 내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보고 소리쳤다. 다른 명령을 들을 때까지 그녀를 사로잡거나 확보하지 말고, 즉시 그녀를 아래로 던지라고만 했다. 이것은 행악자에게 돌을 던지는 한 방법이었다. 즉 그들을 어떤 가파른 곳에서 거꾸로 집어던지는 방법이다. 그래서 그녀가 나봇에게 돌을 던진 그 일은 보복되었다. 그들은 그녀를 아래로 던졌다(33절). 만일 하나님이 예후를 옳다고 인정한다면, 그의 명령은 또한 그들을 옳다고 인정해 줄 것이다. 그들은 그녀를 섬겼지만, 이세벨의 악을 은근히 싫어했고, 그녀를 증오했을 것이다. 혹은 그녀는 자기 주위의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대했고 난폭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그녀에게 복수할 기회를 기뻐했다. 혹은 그들은 예후의 성공을 살펴보고서, 그에게 비위를 맞추어 궁전에서의 자기들의 자리를 유지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녀는 아주 수치스럽게 죽임을 당했다. 성벽과 길바닥에 부딪히고 나서 말들에게 짓밟혔다. 그리고 그녀의 피와 뇌수들로 길바닥과 말이 온통 더럽혀졌다. 교만과 잔인성의 종말을 보라. 그리고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하고 말하라.

Ⅳ. 예언과 같이 개들이 그녀의 수치와 멸망을 극에 달하게 했다. 궁전에서 다소 원기를 되찾고 나서, 예후는 이세벨이 여자이고 직위를 가지고 있던 자이니 그 점을 생각하여 그녀를 매장해 주는 정도의 존경을 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매우 악했지만, 그녀는 딸이며, 왕의 딸이며, 왕의 부인이며, 왕의 어미였다. 그래서 “가서 그녀를 매장하라”(34절)고 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가 말한 것(10절, “개가 이세벨을 먹으리라”)을 잊어버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잊지 않으셨다. 예후가 마시고 먹는 동안, “마을을 배회하던” 개들(시 59:6)이 그녀의 시체를 먹어 치웠다. 그리하여 그녀의 화장했던 얼굴은 사라져 버렸고, 뼈만 남은 해골과 다리와 손만이 남았다. 굶주린 개들은 그녀의 혈통이 지니는 위엄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왕의 딸도 개들에게는 한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우리가 우리의 육체를 배불리 먹이고, 육체를 유쾌하게 움직일 때도, 그것들은 얼마나 비천한가를 생각하자. 잠시 후 육체들은 지하의 벌레들이나 지상의 짐승들에게 향연을 베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후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자, 그는 다음의 경고를 기억해 냈다. “개들이 이스르엘 성 곁에서 이세벨을 먹으리라”(왕상 21:23). 불명예스러운 기념비 이외에 그녀를 회상할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공적인 날에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고, 그 때면 “이 사람이 이세벨이다. 그 자태가 얼마나 위엄 있으며, 아름다운 모습인가! 그녀는 얼마나 위대하게 보이는가!” 하는 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악한 자들도 매장되는 것을 보아 왔다(전 8:10). 그러나 때로는 여기에서처럼 그들은 매장되지 못한다(전 6:3). 이세벨의 이름은 아무데도 남아 있지 않지만, 성경 속에 오점이 찍힌 채로 남아 있다. “이것이 이세벨의 티끌이다.” “이것이 이세벨의 무덤이다.” 혹은 “이것이 이세벨의 자손이다”라는 말조차도 이젠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악한 자들의 이름은 썩어질 것이다. 지상에서 썩어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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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9장

1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ㅇ선지자 엘리사가 - 성경에서 본절과 같이 '선지자'와 '엘리사'틀 함께 묶어서 표현한 곳은 극히 드물다. 즉 지금까지는 엘리사라는 이름만 언급되거나(3:13;4:1;6:1)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별칭(4:7;5:14;6:10;7:2)이 따로 따로 쓰였다.그러나 여기서 특별히 선지자 엘리사라고 기술함으로 '선지자'의 신분과 엘리사의 이름을 강조한 것은 새 왕의 옹립(擁立)과 관련된 것이다. 즉 선지자 엘리사라고 표현함으로 인해 예후를 왕으로 세우는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 일의 완성을 위해 엘리사가 사역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ㅇ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 랍비들의 전승에 따르면 엘리사에게서 사명을 받은 생도가 아밋대의 아들 요나 선지자일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분명한 근거는 없다(14:254).  좀 더 자세한 것은 2장 주제 강해, '선지자의 생도들'을 보다 참조하라.

ㅇ너는 허리를 동이고 - '동이다'란 말은 히브리어 '하고르'를 번역한 것으로 '허리띠로 조르라'는 명령어이다. 히브리인들은 통으로 된 옷을 입었기 때문에 활동에 용이하도록 허리에 띠를 둘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여행 차림은 어떤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임을 나타낸다(4:29).

ㅇ길르앗 라뭇으로 가라 - 본절의 표현 양식으로 보아 당시에 엘리사가 거주하고 있었던 곳은 사마리아가 틀림없다(Bahr). 그리고 사마리아와 길르앗 라못은 요단강을 경계선으로 하여 동서로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는 꽤 먼 편이었다. 즉 사마리아와 길르앗 라못의 사이는 약 65km 정도 되는 거리이다. 한편 이때에 예후는 길르앗 라못을 지키고 있었으며 이스라엘 왕 요람은 하사엘과의 전투에서 부상당하여 이스르엘에서 치료를 하고 있었다(15절). 전투중인 길르앗 라못에 관한 보다 자세한내용에 대해 서는 8 :28 주석을 참고하라.

2 거기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3 기름병을 가지고 그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지니라

4 그 소년 곧 소년 선지자가 드디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5 저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았는지라 소년이 가로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씀이 있나이다 예후가 가로되 우리 모든 사람중에 뉘게 하려느냐 가로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6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소년이 그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니

7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주리라

8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9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ㅇ이스라엘을 다스린 네 왕가는 (1) 여로 보암 왕가(B.C. 930-909 ), (2) 바아사 왕가(B.C. 909-885), (3) 오므리 왕가(B.C. 885-841), (4) 예후 왕가(B.C. 841-752)이다. 그런데 여로보암 왕가는 여호와의 노를 격동사칸 알로 안하여(왕상 15:30) 바아사에 의한 멸망을 당했고(왕상 15:29), 바아사 왕가는 7일 동안 왕노릇한 시므리에 의해서(왕상 16:15) 아합과 같이 그 일족이 몰살됨으로 멸망했다(왕상 16:11, 12). 그리고 시므리도 바아사와 동일하게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범죄함으로(왕상 16:19) 왕궁에 불을 놓고 그속에서 타죽었다(왕상 16:18). 그와 더불어 아합의 왕가 또는 오므리 왕가는 예후에 의해서 멸절하게 된다. 한편 이들의 공통점은 '여호아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점이다. 특히 본절에 언급된 앞의 세 왕조는 금송아지 우상과 바알 및 여러 우상들을 섬겨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우상 숭배 죄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로 통칭되었다(왕상 12:28;15:26;16:2, 19, 26,31;22:52).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상 숭배죄를 어느 왕조보다도 많이 범한 아합왕조에 대해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 시키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벌은 자신의 배만 위하는 탐욕의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왜냐하면 탐욕은 우상 숭배이기 때문이다(엡 5:5). 그 대표적인 예로 아간과(수 7:1-26) 그리스도를 팔아 넘긴 유다가 있다(행 1:18). 그러므로 재물과 명예, 그리고 방탕한 일에 욕심을 내는 모든 사람도 본절에 기록된 아합 왕가가 받은 심판 뿐 아니라 아간과 가룟 유다가 받은 심판에서 제외되어 있지 않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여 그 길을 돌이켜야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겔 39:9, 11, 18, 19).

10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벧을 먹으리니 저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

11 예후가 나와서 그 주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묻되 평안이뇨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뇨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 말한 것을 알리라

ㅇ그 미친 자 - 여기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메슈가'는 대단히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즉 신 28:34에서는 그것을 의학적인 정신적 질병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다윗은 이와 비슷한 정신적 질병이 걸린 것처럼 눈속임을 한적이 있던 것이다(삼상21:13). 또 호 9:7과 렘 29:26에서는 악한 선지자들을 경멸하는 용어로 즉, 선포적이고 질타적인 의미의 말로 본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미 3:5-8). 한편 혹자는 이것을 선지자가 무아경에 빠졌을 때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한다(Montgomery). 그래서 삼상 10장에 나오는 선지자의 무리들의 이상한 행위도 이와 같은 유로 간주한다. 그 뿐만 아니라 본절에서도 예후의 군대 장관들은 무아 경지에서 예언하는 선지자를 조롱하는 말로 '그 미친 자'라고 표현했던 것이다(Keil). 이것은 당시 선지자들에 대한 평판이 대체적으로 경멸하는 풍조였음을 반영하는 말이다.

ㅇ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개 왔더뇨 - 군대 장관들이 예후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은 선지자의 생도가 갑작스럽게 출현했다가 사라졌기 때문에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하는 궁금한 마음과 함께(Pulpit Commentary) 어떤 중대한 소식을 갖고 왔을지 모른다는 추측 때문일 것이다(Keil & Delitzsch).

ㅇ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 말함 것을 알리라 - 본 구절에 대해 학자들 간에 주장하는 바가 각기 다르다. 혹자는 이 말을 예후는 그 사건을 이미 사전에 계획된 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의미를 다 알지 않느냐고 군대 장관들에게 반문했다고 본다(G.Rawlinson). 즉, 군대 장관들이 그 선지자 생도와 함께 계획적로 자신을 왕위에 앉히려고 꾸님 연극이기 때문에 질문한 바를 자신들이 더 잘 알지 않느냐는 의미로 본다.   또 한편 혹자는 그대들이 그 선지자 생도가 미쳤을 뿐 아니라 정신없이 말한 것을 알리라. 그래서 선지자가 들어올 때 아무와도 이야기한 것이 없는 것과 같이 나갈때도 그렇게 했다고 한다(Bahr, Keil & Delitzsch). 이와 달리 어떤 학자는 예후의 대답은 그들도 장차그 젊은 선지자의 신분과 그가 말한 내용을 알게 된다는 의미로 했다고 주장한다.

12 무리가 가로되 당치 않은 말이라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 대답하되 저가 이리 이리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

ㅇ당치 않은 말이라 - 이것은 예후의 반문에 대한 그들의 분명한 의사 표시이다. 즉, 예후의 추측이 옳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다. 11절에서 '평안이뇨'라고 물었을 때 예후는 군대 장관들의 심중을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이제는 그들의 심중을 간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예후는 자신의 왕위에 관한 문제였음을 그들에게 밝히고 있다.

13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취하여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가로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ㅇ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취하여 - 겉옷은 수치를 가릴 뿐 아니라(창 3:10,11) 정숙을 유지하게 해주기 때문에(벧전 3:3) 인격과 권위를 상징한다. 따라서 군대장관들이 이와 같은 행위를 한 것은 평소에 예후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마음이 간절했음을 나태낸다. 심지어 그 선지자의 생도를 미친 자라고 경멸했던 그들이 선뜻 선지자의 말을 받아들인 것이 바로 그러한 마음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한편 겉옷을 취하여 바닥에 펴는 군대 장관들의 행위와 마 21:8에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에 대해 무리들이 옷을 펴는 행위는 왕에 대한 백성들의 예우(禮遇)일 뿐만 아니라 왕으로 인정한다는 의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예후가 서 있던 맨바닥 위에 그들이 옷을 깔고 그를 거기에 세운 후 왕으로 선포한 것(Keil, Kimchi)은 왕의 보좌가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임시로 행한 조치였다.

ㅇ나팔을 불며 - '나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파르'는 '양각'이라고도 번역되는데 이것은 수양이나 수염소의 뿔로 만든 '신호용 나팔'로서 두 가지 음계 밖에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 나팔이 쓰인 용도는 안식일때 시작(레 23:24). 개전(開戰,수 6:4;삿 3:27;7:18), 왕의 즉위(11:24), 각종 위험에 대한 경고(겔 7:14;33:3-6;호 8:1;욜 2:1)등이 있다. 그러나 왕상 1:34과 여기서나 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왕의 대관식 때 나팔을 불었던 것과 같이 나팔을 분 것이다(E. Werner, "Musical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Vol. 3, p. 469-476). 즉 예후가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였음과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신호였던 것이다.

ㅇ예후는 왕이라 - 앗수르 왕 살만에셀 3세(B. C. 859-824)의 비문을 보면 예후의 이름이 두 번 언급되어 있다. 이 비문에 따르면 예후는 하사엘로부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공물을 바쳤다는 것이다(Ancient Near Eastern Texts, p.280; Ancient Near East in Pictures, p. 351-355). 그리고 이 비문 예후를 '오므리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옳지 않다. 그러나 그 비문에서 그렇게 기록한 것은 오므리 왕조가 이스라엘 왕조 중에서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뿐만아니라 사르곤 2세(B. C. 722-705)의 시대까지 이스라엘은 오므리 왕조로 알려져 있었다(C. C. Smith).

14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아람 왕 하사엘을 인하여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ㅇ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 본절은 앞절에서 일어난 사건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즉, 선지자의 생도가 왔다 간 이후에 발생한 일련의 공개적인 행위를 통해 요람에 대한 배반이 공식화되었다는 의미이다(G Rawlinson). 그렇기 때문에 요람이 부상을 입기 전, 다시 말해서 선지자의 생도가 이곳에 오기 전에 비밀의 약정이 있었다는 견해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Koster, Lange Commentary).

ㅇ아람 왕 하사엘을 인하여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 요람이 하사엘과 싸운 것은 길르앗 라못을 방어하기 위한 싸움이었음이 여기서 판명된다(8:28 주석 참고, Lange Commentary, Keil & Delitzsch). 그리고 본절의 기사는 예후가 요람을 배반한 사실이 하사엘과의 전투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즉, 이 전투에서 요람은 능력을 재대로 발휘하지 못해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잃게 된 반면 예후는 이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여 모든 군대 장관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Bahr). 더군다나 21절을 보면 요람이 거의 완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시달린 병사들을 위로하러 길르앗 라못으로 돌아오지 않고 이스르엘에서 병 문안을 온 유다의 아하시야 왕과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군대 장관의 원망을 산 것으로 생각된다(Lange Commentary). 실로 요람에 대한 선임이 이와 같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예후가 배반하여 요람을 치러 갈 때에 모든 병사들이 그의 말에 절대 순종하였던 것이다.

15 아람왕 하사엘로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상한 것을 치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전하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ㅇ본절이 8:28, 29절의 말씀과 중복된 것은 이 두 가지가 동일 저자에 의해 쓰여지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는 단순한 반복(Thenius)이 아니다. 앞의 기사는 온전한 역사적 기술이며 여기서는 1-14절돠의 연관성을 보여 주기 위한 추가적 설명인 것이다(Bahr).

ㅇ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 예후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혁명의 정당함을 물음과 동시에 자신의 거사 도모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16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이 거기 누웠음이라 유다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 왔더라

ㅇ유다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 요람의 조카였던 아하시야는 정치적인 면으로 길르앗 라못의 전투에서 요람을 원조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도 요람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다. 8:29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17 이스르엘 망대에 파숫군 하나가 섰더니 예후의 무리의 오는 것을 보고 가로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요람이 가로되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어 맞아 평안이냐 묻게 하라

ㅇ망대에 파숫군 하나가 섰더니 - 여기서 파숫꾼은 단순한 성문지기가 아니라 멀리서 다가오는 위험을 미리 알리는 직무를 맡은 병사를 가리킨다(T.R. Hobbs, 삼상 14:16;삼하 18:24-27). 한편 본 망대는 이스르엘 망대중에서 길르앗 라못을 향하고 있는 동남편의 망대를 가리키는 듯하다.

ㅇ예후의 무리의 오는 것을 보고 - 여기서 '무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쉬프아'는 '풍부함', '넘쳐 흐르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신 33:19). 즉 그렇기 때문에 본절은 예후가 무리들을 이끌고 올 때에 요람을 암살하기에 넉넉한 규모의 군사들을 동반했다는 말이다.

ㅇ평안이냐 묻게 하라 - 요람 왕은 파숫꾼의 보고를 듣고 즉시 사자(使者) 한 명을 그 무리들에게 보냈다. 그런데 요람 왕이 사자를 보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두가지 주장이 있다. 이러한 상반되는 이견(異見)은 '평안이냐'라는 말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른다. 공동 번역과 Living Bible은 이 말을 그 무리들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아 보라는 명령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지나친 의역이다. 왜냐하면 본절에 쓰인 '평화'라는 말은 '샬롬'으로서 일상적인 인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창 33:1-11 강해, 구약 시대의 인사법 참조>. 즉 당시 요람 왕은 다가 오는 무리들을 아군으로 확신 하고 그들로 하여금 빨리 전황에 대한 보고를 듣기 원했던 것이다. 요람은 부상으로 인하여 오랫 동안 전쟁터에서 떠나 있었으므로 전황에 대해 무척 궁금했을 것이다(8:28, 29). 전황을 알아 보기 위해 나갔던 사자들이 돌아오지 않자 직접 나간 요람이 예후를 보고 동일하게 '평안 이냐'라고 물었던 것도 (22절)마찬가지로 이해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 되느냐'는 영역 성경(Modern Lnaguage Bible)의 번역도 이러한해석을 지지한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파수꾼'은 히브리어 '초페'를 번여한 것이다. 이는 '먼 곳을 응시하다', '몸을 굽힌다 '라는 의미의 '차파'에서 온 말로 성 지키는 자의 행동과 시선에 긴장감이 돌 뿐만 아니라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리게 한다.

18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가로되 왕의 말씀이 평안이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가로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돌이키라 하니라 파숫군이 고하여 가로되 사자가 저희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ㅇ요람은 두번씩이나 똑같이 한 명의 사자만을 보내어 평안을 묻게 했다. 이것은 요람이 분명 그 무리들을 아군으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요람이 위험을 감지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둔감한 인물이었는가를 보여 준다.  한편 요람의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이 심판을 행하시는데 더욱 순조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진노를 더욱 가속화시켰다(Wycliffe).

19 다시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었더니 저희에게 가서 가로되 왕의 말씀이 평안이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가로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돌이키라 하니라

20 파숫군이 또 고하여 가로되 저도 저희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의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ㅇ그 병거 모는 것이 ...미치게 모나이다 - 여기서 '미치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11절의 '미친 자'와 동일한 어근, 즉 '미친듯이 날뛰다',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다'를 의미하는 '솨가'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런데 예후의 용맹함이 바로 이와같은 어구로 수식되고 있다는 것은 요람과는 달리 그가 얼마나 정력적인 사람이었던가를 말해준다. 한편 요람은 무리들이 미친듯이 급히 말을 몰아쳐 온다는 파수꾼의 보고를 받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를 맞으러 나간다. 그런데 이때에도 요람은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22절에서도 역시요람은 평안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미치게 모는' 예후의 모습을 통해 평소에 그가 과격한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예후의 혁명이 그처럼 광적이었으며 잔인했음을 암시해 준다.

21 요람이 가로되 메우라 하매 그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ㅇ요람과 아하시야가 예후를 맞은 것은 그와 접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람과 싸우던 그에게서 전시의 상황을 듣고자 함이었던 것같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항해 보지도 못하고 죽게 된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쉽게 죽임을 당한 것은 아합 왕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볼 수 있다.

ㅇ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 '나봇의 토지'는 아합의 탐욕과 배교를 상징하는 곳이다. 그런테 우연히 예후와 요람이 이 곳에서 상봉하게 된 것은 아합의 죄값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주권적인 섭리 의해 이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를간적으로 볼 때는 마치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예언의 말씀에 따라(7-10절) 정확히 성취 되는 것이다.

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가로되 예후야 평안이냐 대답하되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ㅇ예후야 평안이냐 - 혹자는 이 말을 '길르앗의 완정은 성공적인가?'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고(Wycilffe) 다른 학자는 이것을 '군대에 이상은 없는가?', '어떤 재난이 발생 했는가라는 뜻으로 이해한다(Rawlinson). 그러나 예후는 이와는 달리 그 질문의 의미를 '너와나 사이에 문제될 것이 없지 ?'라고 받아 들여 부정적인 답변을 한 것이다.

ㅇ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 - 여기서 '이세벧의 음행'은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비유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Bahr).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이세벨이 직접적으로 음행을 범했다는 기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빼문이다. 그러나 '음행'은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우상 숭배'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레 20:5;렘 3:2, 9;겔 23:27;호 2:2), 그녀가 지은 수많은 범죄, 즉 바알을 숭배한 우상 섬김의 배도(背道)는 음행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또한 '술수'는 우상숭배에 따르는 일종의 마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세 율법에서는 이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출22:18;신 18:10, 11). 한편 여기서 특별히 이세벧의 죄악을 언급하고 있는 첫째 이유는 그녀가 아합이 지은 범죄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고, 둘째 이유는 그녀의 악행과 반대 행위인 예후의 반란의 정당성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7절).

23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ㅇ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 여기서 '손올 돌이켜'라는 표현은 손으로 병거를 되돌렸다는 의미이다. 한편 이와 비슷한 상황인 왕상 22:34에서는 아합이 병거 모는 자에게 손을 돌이킬 것을 명령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요람이 직접 자신의 손을 돌이켜 병거를 몰아 도망하고 있다. 즉 요람은 다른 병사의 호위도 없이 단신으로 병거를 몰았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요람은 예수의 대답을 통해 어떤 모반(謀反)이 있음을 알아차린 것 갈다(Keil & Deltizch, Vol. III, p. 342). 그러나 이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내린 심판이라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Wycliffe).

ㅇ아하시아여 반역(叛逆)이로다 - '반역'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르마'는 모든 종류의 '속임' 또는 '박역'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것을'반역'이라고도 번역할수 있으나 원문의 본래의 뜻은 반역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것을 가리켰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예후의 행위가 요람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의외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예후는 요람을 주인으로 섬기는 위치에 있었고(7절)요람은 그에게 큰 직권을 맡길만큼 그를 신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그 순간 전까지도 요람은 예후의 반란을 전혀 싱싱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후의 행위는 그에게 '속임'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이와 같이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도적이 오는 것 같이 순식간에 임하는 것이다(마 24:43;눅 12:39).

24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기어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살이 그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저가 병거 가운데 엎드러진지라

ㅇ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기어 - 이 구절에 해당하는 원문을 직역하면 '예후가 자기 손에 활을 채웠다'이다. 이것은 활을 쏘기 위해 시위에 화살을 장전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삼하 23:7). 한편 '힘을 다하여 활을 당긴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본문에는 없는 것으로 일부 영역본(KJV, RSV, Living Bible)과 한글 개역 성경은 이를 생생하게 나타내기 위해 상황 어구를 첨가한 것이다.

ㅇ두 팥 사이를 쏘니 - KJV가 이를 '두 팔 사이'(between his arms)로 번역한 것과는 달리 RSV, NIV, Living Bible에서는 '어깨 사이'(between the shoulders)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사람의 '몸통 부분'을 가리킨다. 또 공동 번역에서는 이를 '등'이라고 의역했는데 이것은 아마도 요람이 도망갈 때 등을 보이고 갔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한편 Vulgate역에서도 예후가 요람의 '어깨 사이'를 쏨으로 인해 화살이 요람의 심장을 비스듬이 관통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bahr, Keil & Delitzsch).

25 예후가 그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취하여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 아비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 아래 같이 저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ㅇ그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 여기서 '장관'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솰라쇼'는 '세번째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세번째 사람'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본래 병거에 타는 세 사람 가운데서 세번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래서 카일(Keil)은 빗갈이 예후와 함께 병거에 탄 부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특수한 군사적인 용어로서 본래의 이와 같은 의미는 사라지고 하나의 직위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쓰였던 같다(T. R. Hobbs).따라서 이것이 5절에 기록된 군대 장관, 즉 소부대의 지휘자(leader)와 같이 예후보다 직급이 낮은 부하를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10:25;15:25;대상 12:18) 한편 예후와 행동을 같이한 이 빗갈이라는 장교는 아합 시대에도 예후와 함께 아합의 부하였다.

ㅇ네가 기억하려니와 - 대부분의 고대 사본들과 70인여(LXX)은 이를'내가 기억하거니와' 혹은 '내가 기억하노니'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히브리어 '재콜'을 다음에 이어지는 낱말 '아니'라는 1인칭 때문에 잘못 번역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해 본절은 '기억하라'라는 명령형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Rawlinson:NIV, "Remember how you").

ㅇ너와 내가...아합을 좇았을 때에 - 본절은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왕에게 예언할 때 그 자리에 예후도 함께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왕상 21:19).

ㅇ저의 일을 예언 하셨느니라 - '예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샤'는 '올리다', '짐을 지다'를 뜻하는 동사 '나샤'로부터 파생된 명사이다. 이것은 1차적으로는 '짐', '올림'을 의미하나 2차적으로는 '선지자들의 선포나 경고' 혹은 '위험을 내포하는 예언'(사13:1;14:28;15:1;나 1:1;겔 12:10)등을 뜻한다. 본절의 내용에 기인해 볼 때 예후는 아합에 대한 엘리야의 선고를 잊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 예후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10:16). 또한 만일 예후가 믿음이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을 진멸하기 위해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기름부으라고 명령하시지도 않았을 것이다(왕상 19:16). 더욱 확실한 사실은 이후가 왕이 되어 바알의 당을 헐고 그곳에 변소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 예후를 칭찬하신 것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10:27).

2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젯날에 나봇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 시체를 취하여 이밭에 던질지니라

27 유다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동산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쫓아가며 이르되 저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저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28 그 신복들이 저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성에서 그열조와 함께 그 묘실에 장사하니라

29 아합의 아들 요람의 십 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30 예후가 이스르엘에 이르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31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가로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32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가로되 내 펀이 될 자가 누구냐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33 가로되 저를 내려던지라 하니 내려던지매 그 피가 담과 말에게 뛰더라 예후가 그 시체를 밟으니라

34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가로되 가서 이 저주 받은 계집을 찾아 장사하라 저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35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손바닥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36 돌아와서 고한대 예후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로 말씀하신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을지라

37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 같이 밭 면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벧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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