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상19..다윗의 광야15..고난의 도피행각 시작..창끝 피함, 미갈의 도움으로 자기집에서 빠져나옴, 라마나욧으로 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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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9장  [408.나어느곳에있든지] [493.하늘가는밝은길이] [540.주의음성을내가들으니] [543.어려운일당할때] [491.저높은곳을향하여][508.우리가지금은나그네되어도][391.오놀라운구세주예수내주] [394.이세상의친구들]  [401.주의곁에있을때]


******누구나 진흙으로 만드신 바 됨/주님 뜻 따라 그분 안에 거하며-가르침 받고 보내신 자의 자각(겸손) --거듭난 참 믿는자, 주 앞에 선 단독자 ::: 거부고수두분의 극복은 오직 주 앙망함 안에서 동행할때 (주님 얻고 그 가운데 발견됨)...주님의 사랑/기쁨 됨의 시너지...이 때 주변 이웃들과의 생명 결속 통한 하나의 교회(그리스도의 몸) 이룸과 섬김, 그 의미를 알게됨.

"너는 나의 유일무이한 사랑과 기쁨이라, 나의 마음엔 오로지 너 밖에 없단다. 너는 어떠니..너 없이는 하나님인 내가 너무 외로워서 살수없고 살맛 안난단다 (하시는 주님,)  내가 너를 그토록 사랑하고 지금도 사랑하고 기뻐하며 축복하기에 열정 다해 이 땅에 심었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됨의 가장 보배롭고 존귀함 온전히 누리도록 가르치며 성령 임재의 달콤함과 새로움 그 능력 안에 사는, 참 생명길 전파하는 대사로 이 땅에 보내었단다"


[[다윗의 도피생활]]..다윗의 인생 광야(말씀이신JC 임마누엘과 걷기에, 미드바르) 15

......성경은 다윗의 도피 생활에 관하여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삼상 19-31장). 다윗의 도피 생활이 시작된 때는 블레셋의 골리앗 장수를 죽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주전 1020년경이었으며,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된 주전 1010년까지 약 10년이나 지속되었다. 다윗은 도피하는 과정에서 숱한 우여곡절과 고난을 겪으면서 남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어떠한 역경도 이겨나갈 수 있는 참된 지도자로 연단받았다. 다윗의 도피 생활 10년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다윗의 도피처 15(16)군데는 성도의 피난처 되시는 주님의 그림자를 보여 주는 듯하다(삼하 22:3, 시 14:6, 46:7, 11, 91:2, 9, 142:5, 144:2).

@@ 제1기@@ 라마에서 헤렛 수풀까지의 행로 (대략 주전 1020-1018년, 약 3년간, 삼상 19:18-22:23)

제1기는 사울의 추적이 너무도 맹렬하여 다윗이 도피하는 데 급급했던 시기.... 다윗의 도피 생활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 속에 최후 승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축복의 기간이었다.

1) 라마 / 뜻 : 높은 곳

다윗은 제일 먼저 사무엘 선지자가 있는 라마로 도피하여 사무엘과 함께 ‘나욧’(선지 학교)으로 가서 거하였다(삼상 19:18). 사울은 세 번에 걸쳐 사자를 보냈으나 예언을 하다가 돌아왔고(삼상 19:20-21). 사울이 직접 나섰지만 그도 마찬가지였다(삼상 19:23-24). 사울은 다윗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깨닫지 못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2) 기브아 / 뜻 : 언덕, 작은 산

다윗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자(삿 19:14, 20:10) 사울의 고향(삼상 10:26, 11:4)인 기브아에 있는 요나단을 찾아가 마지막으로 사울의 의중을 확인코자 했다. 다윗과 상호 보호의 약속을 체결하고(삼상 20:12-16), 위급한 사태를 다윗에게 알림으로 위기에서 구원한 요나단은(삼상 20:41-42) 하나님의 주권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큰 믿음의 소유자였다(참고-삼상 14:6).

3) 놉 / 뜻 : 높은 곳

다윗은 ‘제사장들의 성읍’ 놉으로 가서(삼상 22:19) 장래 일에 대해 하나님께 물으려 하였다(삼상 22:10, 15). 다윗이 도피중인 것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떡과 골리앗의 칼을 주었고(삼상 21:1-9), 이 일은 후에 아히멜렉과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많이 흘리는 빌미가 되었다.

4) 가드 / 뜻 : 술 짜는 틀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간 다윗은(삼상 21:10), 미친 체하여 간신히 생명을 구했다(삼상 21:13-15). 다윗은 자신의 종적을 사울에게 밀고하는 수많은 대적자들 때문에(삼상 23:22-23, 시 56:6) 위태롭고 불안한 생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였다(시 56:3-4, 10). 이때 지은 시가 시편 56, 34편이다.

5) 아둘람 굴 / 뜻 : 피난처, 은신처

다윗은 가족을 비롯하여 자기에게 모여든 환난 당한 자와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 4백여 명을 다스리며 왕으로서 자질을 갖추어 가기 시작하였다(삼상 22:1-2). 여기서 다윗이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그리워함으로 그의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블레셋을 충돌하고 물을 길어오자 다윗이 마시지 않고 하나님 앞에 부어 드린 일이 있었다(삼하 23:16-17, 대상 11:18-19). 이 시기 지은 시편 142편에서 다윗은 외롭고 곤고한 처지를 표현하면서도 소망에 찬 믿음의 고백을 드렸다.

6) 모압 미스베 / 뜻 : 망대

다윗의 증조할머니 룻이 모압 출신이었고, 당시 사울은 모압과 전쟁 중이었으므로(삼상 14:47) 다윗은 부모를 잠시 모압 왕에게 맡길 수 있었다(삼상 22:3). 그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만을 의지하며, 부모를 공경했던 참된 신앙 인격의 사람이었다.

7) 헤렛 수풀 / 뜻 : 나무가 울창한 숲

다윗은 갓 선지자로부터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듣고 유다 땅에 있는 헤렛 수풀로 옮겼다(삼상 22:5). 사울은 그의 신하 도엑으로부터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운 사실을 듣고, 아히멜렉과 함께 놉에 있는 제사장 85명과 남녀와 아이들과 짐승까지 다 죽이는 대학살을 저질렀다(삼상 22:18-19). 이 때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 와서 다윗과 함께 합류했다(삼상 22:20-23).

@@다윗의 도피생활 - 제2기 -@@.그일라에서 십 황무지까지의 행로(대략 주전 1017-1015년, 약 3년간, 삼상 23:1-26:25)

다윗은 왕으로 안락과 권세를 누리기 전에, 황무지의 공포와 삭막함 속에서 극심한 고난과 수없는 좌절을 견뎌내야 했다. 동족들의 밀고와 배신, 뼈저린 고독 속에 연단을 받았다.

8) 그일라 / 뜻 : 요새, 요충지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 땅 그일라를 공격하여 식량을 약탈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하나님께 응답을 받고 나가 대승을 거두고 그일라를 구원하였다(삼상 23:1-5). 그러나 누군가의 밀고에 의해 곧 사울에게 노출되었고(삼상 23:7), 서둘러 도망치게 되었다(삼상 23:9-12). 그러한 가운데서도 다윗은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만을 가까이 하는 신앙을 몸에 익혔다. 

9) 십 황무지 / 뜻 : 용해(鎔解) - 녹이다

다윗은 십 황무지 수풀에서 마지막으로 요나단을 만나 소망을 얻었다(삼상 23:15-18). 한편, 십 사람들은 다윗을 밀고하는 일에 열심이었고, 다윗은 마온 황무지 아라바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삼상 23:19-20, 24). 이러한 한계 상황에서 지은 시가 시편 54편이다. 그는 환난 중에도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감사하고 찬송하였다.

10) 마온 황무지 / 뜻 : 주거, 거주

마온 황무지까지 다윗을 쫓아온 사울은, 블레셋이 쳐들어왔다는 급한 소식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떠났다(삼상 23:26-28). 이로써 하나님은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고 있다. 

11) 엔게디 황무지 / 뜻 : 새끼 염소의 샘

블레셋과 싸우러 갔다가 돌아온 사울은 다윗을 잡기 위해 엔게디 황무지에 왔다가 급히 “그 발을 가리러(용변을 보기 위해)” 굴 속에 들어갔다(삼상 24:2-3). 굴 속에 있던 다윗은 사울의 겉옷자락만 살짝 베고 그를 죽이지 않았다(삼상 24:3-14). 다윗은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끝까지 선으로 악을 이긴 것이다. 이때 지은 시가 시편 57편이다.

12) 바란 광야 / 뜻 : 굴이 많은 땅

사무엘 선지자가 별세하였다는(삼상 25:1) 소식에 큰 충격을 받은 다윗은, 도피처 중 남쪽으로 가장 먼 곳인 바란 광야로 도피하였다.

13) 갈멜 / 뜻 : 포도원, 과수원

날마다 도망다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600여 명으로 불어난 무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다윗은 거부 나발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자 분노하여 나발을 죽이려 하였는데,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와서 다윗이 왕이 될 것을 확신하면서 직접 원수 갚는 것을 막고(삼상 25:30-31), 다윗의 생명이 하나님과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다고 하며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삼상 25:29). 아비가일의 말은 고독하고 지친 다윗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14) 십 황무지의 하길라 산

다윗이 십 황무지 하길라 산에 숨어 있음을 알고(삼상 26:1-3), 사울이 3천 명을 이끌고 쫓다가 밤에 깊이 잠들었을 때(삼상 26:2 5, 12), 다윗은 그를 죽이지 않고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조용히 나왔다(삼상 26:4-11). 다윗은 하나님이 직접 자신을 왕으로 세우실 정한 때까지 기다리면서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제3기@@ - 블레셋 땅 가드에서 시글락까지의 행로(대략 주전 1014-1010년, 약 4년간, 삼상 27:1-삼하 1:27)

절대적 위기에 몰린 다윗이 할 수 없이 다시 블레셋 땅으로 망명한 시기이다. 사람들이 날마다 다윗에게 나아와 ‘큰 군대’를 이루어서,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다고 말씀하였다.

15) 가드 / 뜻 : 술 짜는 틀

다윗은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두 번째로 갔는데, 이 때 함께 한 용사가 600명이었고 그들이 각기 가족을 거느렸으므로, 대략 2천 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삼상 27:2-3). 다윗이 가드에 갔다는 소식을 듣고 사울은 다윗 쫓기를 포기하였다(삼상 27:4).

16) 시글락 / 뜻 : 굴곡

아기스는 다윗의 거처로 시글락을 허락하였고, 사울이 죽기까지 다윗은 블레셋에 16개월(1년 4개월) 동안 있었다(삼상 27:6-7). 다윗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간 것은 잘못이었다(삼상 27:1).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다윗은 블레셋 편으로 참여해야 했고(삼상 29:1-2), 아말렉이 침략하여 시글락을 불사르고 부녀자들을 사로잡아 갔다(삼상 30:1-4). 곤란하고 비통한 상황에서,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기를 얻게 되었다(삼상 30:6).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다윗은 마침내 두 아내를 비롯, 탈취당한 모든 것을 찾아 돌아왔다(삼상 30:17-20). 

수많은 죽음의 위기 가운데 다윗을 지켜주신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하심이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기 전에 먼저 정금 같은 신앙 인격으로 단련하신 것이다(행 7:29-30, 욥 23:10).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10년간의 도피 생활을 통해 구속사적 경륜을 이루는 위대한 신앙의 지도자로 만들어 가셨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하다

1.  [딸 미갈이 다윗의 아내가 된 후에]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맨 정신으로)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좋아하므로

2.  그가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3.  내가 나가서 네가 있는 들에서 내 아버지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아버지와 말하다가 무엇을 보면 네게 알려 주리라 하고

4.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칭찬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5.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6.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7.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고 요나단이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전과 같이 있었더라

8.  ○전쟁이 다시 있으므로 다윗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죽이매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니라

9.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의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10.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그제야 비로소 ..사울이 실성-발작할 때에만 실수로 자기를 죽이려 함이 아니라 제정신 든 때에도 정말로 살의를 품었음을 깨닫고!!] 다윗이 그 밤에 [자기집으로]도피하매

11.  사울이 전령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 한지라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 죽이라는 공식 명령이 떨어졌기에] 당신이 이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12.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매 그가 피하여 도망하니라

13.  미갈이 우상을 가져다가 침상에 누이고 염소 털로 엮은 것을 그 머리에 씌우고 의복으로 그것을 덮었더니

14.  사울이 전령들을 보내어 다윗을 잡으려 하매 미갈이 이르되 그가 병들었느니라

15.  사울이 또 전령들을 보내어 다윗을 보라 하며 이르되 그를 침상째 내게로 들고 오라 내가 그를 죽이리라

16.  전령들이 들어가 본즉 침상에는 우상이 있고 염소 털로 엮은 것이 그 머리에 있었더라

17.  사울이 미갈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나를 속여 내 대적을 놓아 피하게 하였느냐 미갈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그가 내게 이르기를 나를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 하니라

......미갈의 말!!...주님, 저로 주님 임재 안에서 늘 있도록 내 맘 붙들어 주사 코람데오로, 주님의 달콤한 임재 앞에서 행케 하여 주소서.....주님 앞에서 솔직 대담하게 용기를 내어 아비 사울에게 충성스레 직언을 하고 있는 요나단과는 달리...미갈은 다윗을 위하여 목숨 내걸고 그의 진실됨을 충간할 정도까지는 그녀의 사랑함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걸까요....(백색 거짓말조차 금하라!!) 아비로부터 꾸중듣는 그 자리만 모면하려고 변명했던바 그 백색 거짓말은 (그녀 스스로에게 올무가 된바) 그녀로 하여금 결국 (다윗이 분명히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 결혼 강요의 수모조차 무릅쓰는) 입장에 처하게 했고, 이는 (비록 나중에 [미갈을 연모했던터라?? 그토록 다윗한테 보내고 싶지 않아서 눈물 흘리며 한참을 뒤따라가는]발디로부터 미갈을 빼앗아 도로 그의 아내로 다시 데려오지만....분명히, 강탈에 다름없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으며...다윗은 미갈에 대해 처음에도 그렇고 그냥 뜨뜻미지근한데..정략결혼이었나요?) 후에도 코람데오로 행하여 주님의 궤 앞에서 넘치는 기쁨으로 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춤춘 다윗에게 (왕으로서 체면 좀 차리라고 함부로?? 말함으로써) 평생 외면 당해 독수공방케 됨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다윗의 무언가 개운치 않은 (강탈당함??-강탈하여 되찾아옴...참사랑 상실의 상대적 박탈감?? )느낌은 우리야의 아내를 넘보는데로 이어짐을 느끼게 합니다....주여 저를 도우소서!!

......다윗은 아비가일에게 청혼하기전에 (정략결혼인지 모르겠으나...주께 여쭘 없었음) 에셀바위를 떠나 놉의 아히멜렉 제사장을 만난 후 가드왕 아기스에게 의탁하러 갈 때에 이미 이스르엘의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은 상태였으며..삼상25장에 이르러 사무엘이 죽고난 다음에 바란광야에 있을 때 아비가일을 얻었고, 그후에야 미갈을 발디에게 아내로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기록된 순서를 보자면, 아히노암,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한 소식은 다윗을 기다리며 독수공방하고 있던 미갈에게는 큰 배반감을 들게 한 충격이었을 것이요, 자기를 연모하여 오던 발디의 아내가 되라고 강요하는 사울의 제언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이 움직였을것.....주여 저를 도우소서..

(삼상.25:44...사울이 그의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더라) .....미갈은 이미 발디에게 자의반타의반으로 아내로 준바되었지만....수년이 지나는 동안 어느새 다윗과 요나단 사이처럼?? (깊이 연연하는 사랑으로 하나되어 있던.....적어도 발디 그 자신에게는 그러했다....바후림까지 울며 따라오고 있었다...미갈은 틀림없이 이에 감동받았으리라) ....그런데!!, 다윗은 헤브론 왕으로 등극한 후에 발디로부터 미갈을 강제로 데려오고 있다.. (아브넬이 충성서약 지킬 의도가 잇는지 시험할 요량으로, 곧) 정치적 목적으로??.... 떼어내어 자기에게 오게 하였다.((주님마음을 따라 살펴 본다면 분명히 이것은 하나님의 대리왕에게는 합당치 않은, [주께 여쭘 없이] 육을 따라 행한 탈취행위로 봐야할듯!!)).<삼하3:12-16>...게다가 긍휼-자비-겸손-온유-용납/용서-사랑-평강-생명넘침의 너그러이 품어줌은 사라지고...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바, . (일종의 열등의식과 쓴뿌리가 작동하여 말꼬리를 잡고 충동적으로  관계를 깨뜨리는 독설을 퍼붓고 있는바, 다시는 주워담을 수 없었다....이로 인한 패배감과 자괴감은 또 하나의 탈취와 살인을 야기시키고 있었다...우리야의 아내와의 동침+차도살인지계로 우리야 죽임)

(삼하6:20-23..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사울은 엘라골짜기 전투에서 골리앗 쓰러뜨리는 이에게 큰딸 메랍을 주겠다고 공포했지만 (다윗은 사양했고)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에게 출가시켰는데, 메랍은 다섯아들을 낳았고,.... 메랍을(어떤 변고가 있었던것같음) 대신해서 미갈이 그들을 거두어서 [자기가 낳은 아들들같이]키워주었다.(삼하21:8)..

18.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

....(다윗을 맞이한 사무엘은 아무런 말이 없이 침묵한채 듣고만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고난-역경의 시기를 거쳐 일절 오래참음의 인내를 배운, 선한 왕 됨의 성숙에 이르게 하시려는 주님의 의도를 깨닫고 있었다)

19.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20.  사울이 (사울이 저어했던바는, 사무엘이 혹시라도 함께 있는 다윗이야말로  백성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왕임을 공표할까봐)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1.  어떤 사람이 그것을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다른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했으므로 사울이 세 번째 다시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2.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도착하여 물어 이르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어떤 사람이 이르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23.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

24.  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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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19장

1.  Now Saul told Jonathan his son and all his servants to put David to death. But Jonathan, Saul's son, greatly delighted in David.

2.  So Jonathan told David saying, "Saul my father is seeking to put you to death. Now therefore, please be on guard in the morning, and stay in a secret place and hide yourself.

3.  "And I will go out and stand beside my father in the field where you are, and I will speak with my father about you; if I find out anything, then I shall tell you."

4.  Then Jonathan spoke well of David to Saul his father, and said to him, "Do not let the king sin against his servant David, since he has not sinned against you, and since his deeds [have been] very beneficial to you.

5.  "For he took his life in his hand and struck the Philistine, and the LORD brought about a great deliverance for all Israel; you saw [it] and rejoiced. Why then will you sin against innocent blood, by putting David to death without a cause?"

6.  And Saul listened to the voice of Jonathan, and Saul vowed, "As the LORD lives, he shall not be put to death."

7.  Then Jonathan called David, and Jonathan told him all these words. And Jonathan brought David to Saul, and he was in his presence as formerly.

8.  When there was war again, David went out and fought with the Philistines, and defeated them with great slaughter, so that they fled before him.

9.  Now there was an evil spirit from the LORD on Saul as he was sitting in his house with his spear in his hand, and David was playing [the harp] with [his] hand.

10.  And Saul tried to pin David to the wall with the spear, but he slipped away out of Saul's presence, so that he stuck the spear into the wall. And David fled and escaped that night.

11.  Then Saul sent messengers to David's house to watch him, in order to put him to death in the morning. But Michal, David's wife, told him, saying, "If you do not save your life tonight, tomorrow you will be put to death."

12.  So Michal let David down through a window, and he went out and fled and escaped.

13.  And Michal took the household idol and laid [it] on the bed, and put a quilt of goats' [hair] at its head, and covered [it] with clothes.

14.  When Saul sent messengers to take David, she said, "He is sick."

15.  Then Saul sent messengers to see David, saying, "Bring him up to me on his bed, that I may put him to death."

16.  When the messengers entered, behold, the household idol [was] on the bed with the quilt of goats' [hair] at its head.

17.  So Saul said to Michal, "Why have you deceived me like this and let my enemy go, so that he has escaped?" And Michal said to Saul, "He said to me, 'Let me go! Why should I put you to death?'"

18.  Now David fled and escaped and came to Samuel at Ramah, and told him all that Saul had done to him. And he and Samuel went and stayed in Naioth.

19.  And it was told Saul, saying, "Behold, David is at Naioth in Ramah."

20.  Then Saul sent messengers to take David, but when they saw the company of the prophets prophesying, with Samuel standing [and] presiding over them, the Spirit of God came upon the messengers of Saul; and they also prophesied.

21.  And when it was told Saul, he sent other messengers, and they also prophesied. So Saul sent messengers again the third time, and they also prophesied.

22.  Then he himself went to Ramah, and came as far as the large well that is in Secu; and he asked and said, "Where are Samuel and David?" And [someone] said, "Behold, they are at Naioth in Ramah."

23.  And he proceeded there to Naioth in Ramah; and the Spirit of God came upon him also, so that he went along prophesying continually until he came to Naioth in Ramah.

24.  And he also stripped off his clothes, and he too prophesied before Samuel and lay down naked all that day and all that night. Therefore they say, "Is Saul also among the proph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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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9장 (개요)

다윗이 결혼하자, 우리는 다윗이 사울의 사랑을 받아, 안전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사울의 질투가 더 심히 타올라서 그 위험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리라 맹세했고, 다윗은 네 번씩이나 사울의 칼에서 피해야만 했다. 

본 장에는 이처럼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을 때마다 이를 잘 피할 수 있었던 기사가 네 번 나온다.

첫 번째는 요나단의 신중한 중재로 그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1-7).

두 번째는 그 자신의 빠른 동작 때문에 이를 피할 수 있었다(8-10). 세 번째는 미갈의 절개 때문에 피할 수 있었다(11-17).

네 번째는 사무엘의 보호와 사울에게 임한 하나님의 신의 감동 때문에 피할 수 있었다(18-24). 

이처럼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신다. 하나님의 섭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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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을 위한 요나단의 중재(삼상 19:1-7)

여기에 나오는 사울과 요나단은 다윗에 대해 각각 다른 생각을 가진 인물로 나타났다.

Ⅰ. 사울은 다윗에 대하여 매우 가혹한 원수가 되었다. 

사울은 그의 아들과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말했다(1절). 

다윗을 은근히 제거하려던 그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사울은 다윗이 불법자라고 선언하며, 그를 비난하고, 그들의 충성을 다해 다윗을 되도록 빨리 죽여 없애라고 명령했다. 사울이 어떤 정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자기의 적의를 표명하고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은 것과 또 그의 모든 신하들이 다윗을 사랑하는 줄 알면서도(이것은 그 자신도 말했던 바가 있다―18:22), 그의 살인명령에 대해 신하들이 반항할는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그의 적의가 그처럼 치밀한 음모에 의해 꾸며진 것이 아니었든지, 또한 아직까지 그의 정의가 그처럼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니었거나, 아니면 나봇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거짓 증거를 꾸며댔든지,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위장되지 않은 악독은 그다지 위험한 것이 아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그처럼 사랑하는 줄 알면서도 그가 다윗을 죽이리라고 기대한 것도 이상스럽다. 

아마 요나단이 왕위의 계승자인 만큼 그도 자기처럼 다윗에 대해 질투심을 품고 있으리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를 도와서 다윗의 친구가 되게 하셨다.

Ⅱ. 요나단은 다윗과 매우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절친한 친구이다.” 요나단과 다윗이 바로 그런 사이였다. 

요나단은 다윗의 영광이 자기의 영광의 빛을 가리건만 그를 계속해서 좋아했고, 뿐만 아니라 운명의 거친 물결이 다윗을 향해 엄습해 올 때 그를 위해 용감하게 나서기도 했다.

1. 요나단은 다윗에게 그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 줌으로 안전을 꾀하게 했다(2절). “너는 조심하여 위험을 피하라”고 했다. 

요나단은 사울의 부하들 중에 사울에게 아첨하거나 또는 다윗을 질투하기 때문에, 다윗이 눈에 띄는 대로 사울의 명령을 실행하는 자가 있을는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의 마음을 달래어 다윗과 화친하도록 노력했다. 

다음날 아침 요나단은 사울에게 다윗에 대한 이야기를 여쭈었다(3절). 그는 밤에 그런 기회를 가지지 않았다. 아마 밤에 사울이 술에 취했기 때문에 말할 만한 계제가 못 된다는 것을 알았든지, 아니면 사울이 잠들었다가 깨면 그 명령을 스스로 취소하리라고 기대했든지, 또는 아침까지 말할 기회를 찾지 못했든지 어느 하나일 것이다.

(1) 다윗을 위한 요나단의 중재는 매우 조심성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혜의 온유함을 가지고 진행되었다. 요나단은 아버지를 화내게 할는지 모르면서도, 그의 친구에 대해 매우 좋게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절친한 친구의 모범이다! 그는 아래와 같은 점에서 다윗을 칭찬했다.

① 요나단은 다윗이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사울 자신을 위해서, 행한 일들을 들어 그를 칭찬했다.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4절). 

요나단은 다윗이 수금을 타서 사울의 병을 고쳐 준 일과, 그가 용감하게 골리앗과 싸워 이김으로 사울과 사울의 왕국을 지켜 준 일을 증거했을 것이다. 

그는 또 사울에 대해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신 것이라”고 그에게 호소했다. 

요나단은 또 다윗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다”고 하여 그가 사울의 훌륭한 신하일 뿐 아니라, 하늘의 도움을 받는 자이며, 이스라엘의 친구가 됨을 여러 가지로 증명했다. 그리하여 그를 죽이라고 명령한 것은 훌륭한 신하에 대한 도리가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며, 백성들을 해하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② 요나단은 다윗의 무죄함을 칭찬했다. 

다윗이 비록 전에는 많은 공을 세웠으나 지금에 와서 어떤 잘못이 있다면 그에게 마땅히 죄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4절, 그의 피는 무죄하기 때문에―5절, 만일 그를 죽이면 이는 전혀 까닭이 없는 죽음이겠나이다”라고 호소했다. 

그러므로 요나단은 무죄한 피를 흘린 죄가 그의 집에 계승되는 것은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하여 사울의 명령을 취소하도록 했다.

(2) 요나단의 중재는 매우 신중했기 때문에, 그대로 효과를 거두었다. 

하나님은 사울의 마음을 열어 요나단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우리는 비록 우리 아랫사람들의 말이라 할지라도 정당한 이유 있는 충고라면 들어야 한다. 

정당한 말은 이처럼 힘이 있다. 아직 사울은 다윗에 대한 그의 증오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① 사울은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철회했다(6절).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치 아니하리라”고 맹세했다. 

여기서 사울이 어떤 엄숙한 의전적인 절차를 통해서 맹세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밝히 나타나 있지 않다. 아마 사울은 그런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꼭 그런 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다만 그 분위기가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울은 다른 경우에 매우 경솔하게 그리고 모독적으로 맹세했던 일이 있다. 따라서 이번의 맹세에 대해서도 그 신빙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처럼 쉽사리 지나가는 말로, 농담조로 맹세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쉽사리 그 맹세를 팔아 버리고, 조금도 그 맹세를 지키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사울이 다윗을 가까이 끌어들여서, 쉽사리 그를 죽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거짓으로, 악독한 계획을 가지고 맹세했다고 본다. 

그러나 사울이 아무리 나쁜 사람이기는 해도 그가 그처럼 악독하다고는 볼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은 그의 생각 그대로 다윗을 죽이지 않기로 맹세했었는데, 얼마 안 가서 그의 마음이 변했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② 사울은 궁전에서의 다윗의 위치를 다시금 허가하여 주었다. 요나단이 다윗을 사울에게로 데려왔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 앞에서 여전히 출입하였다”(7절). 다윗은 폭풍이 지나가고 그의 친구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의 마음을 언제나 평온하게 하여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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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창을 피한 다윗(삼상 19:8-10)

Ⅰ. 다윗은 여전히 왕과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계속했다. 

비록 사울이 다윗의 선을 악으로 갚았으며, 다윗의 선행이 오히려 사울의 질투의 원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다윗은 결코 그 때문에 나라를 위한 그의 일을 피하지 않았다. 

선을 행하건만 악으로 보응받는 자들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아무리 심술궂고 은혜를 모르는 자에게도 여전히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심을 기억하고,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다윗은 비록 사울로부터 모욕적인 대우를 받았지만 자기 할 일을 다했다.

1. 여전히 다윗은 그의 칼을 가지고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싸웠다(8절). 

블레셋과의 싸움이 다시 벌어졌다. 이 싸움은 다윗을 다시금 유명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다윗은 매우 용감하게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쳤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2. 다윗은 왕을 위해 여전히 그의 수금을 기쁘게 연주했다. 

사울이 전처럼 다시 악신에게 사로잡혔을 때에, “다윗은 손으로 수금을 탔다”(9절). 

다윗은 이제 이러한 일은 자기가 할 일이 못 된다고 하여 이를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들은 그것이 비록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고 하나, 좋은 일이라면 서슴없이 그 일을 한다. 

다윗은 전날에도 이런 일을 하다가 위험한 일을 당했던 것을(18:10) 기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선으로 악을 갚는 법을 배웠으며, 그의 의무를 다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안전하게 지켜 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다윗은 그의 원수가 병들었을 때 어떤 마음을 품었던가를 보라(시 35:13, 14). 아마 그것은 사울이 병들었을 때를 말할 것이다.

Ⅱ. 사울은 여전히 [오직 그를 선대함으로 순진무구하게 행했던]다윗에 대해 악독한 마음을 품었다. 

전날 창조주의 이름으로 다윗을 “결코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그가 이제 와서는 직접 자기 손으로 그를 죽이려고 했다. 

여인의 후손에 대한 뱀의 후손들의 적개심은 이처럼 불치의 것이요 전혀 개선의 가망이 없는 것이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인간의 마음이다(렘 17:9). 

다윗이 최근에 블레셋과 싸워서 거둔 명예는 사울의 악의를 없애기는커녕 오히려 전에 품었던 바가 있는 질투심을 더욱 강하게 부채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사울이 이처럼 악한 마음을 품게 되었을 때에 “악신이 그에게 접하였다”(9절)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해가 지도록 분을 품고 있으면 마귀가 틈을 타기 때문이다”(엡 4:26, 27). 

마음의 조바심은 비록 사탄의 꾐에 의한 것이지만 대개는 그 근원이 인간의 죄와 어리석음에 기인한다.

사울의 두려움과 질투는 그 자신을 몹시 괴롭혔다. 그리하여 그는 단창을 손에 들지 않고는 그의 집에서조차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단창을 들고 있는 듯이 보이게 했지만 실은 다윗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사울은 다윗을 벽에 박아 놓으려고 힘껏 창을 던져, 그 창이 벽에 박힐 정도였다(10절). 그처럼 사울은 강한 악신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처럼 그의 격노도 강했다. 

아마 사울은 그가 지금 다윗을 죽인다고 해도 그가 “바른 정신을 가지지 않은”(non compos mentis)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나 사람들로부터 용서를 받으며, 모든 것이 정신착란증 때문에 온 것이라고 핑계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어떤 모양을 꾸미든지 그 때문에 속지 않으신다.

Ⅲ. 하나님은 여전히 다윗을 돌봐 주시며 그를 살펴 주신다. 

사울은 다윗을 찌르지 못했다. 다윗은 재빨리 몸을 피해 도망갈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친절하신 섭리 때문에 그 밤으로 피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신 것을 기억하면서, 다윗은 그의 시편에서 가끔 하나님은 그의 방패와 반석과 요새가 되시며, 그의 영혼을 죽음에서 건져 내신다고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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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을 피해 도망친 다윗(삼상 19:11-17)

Ⅰ. 사울은 계속해서 다윗을 해하려고 계획을 꾸몄다. 

다윗이 사울의 단창을 피해서 달아났을 때 사울은 그가 곧장 자기 집으로 갔으리라고 추측했는데, 사실 다윗은 자기 집으로 갔다. 

그리하여 사울은 그의 사자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의 집 문에서 지키고 있다가 아침에 그가 일어나면 그를 암살하게 했다(11절). 

조세푸스(Josephus)는 말하기를 그 계획은 다윗을 붙잡아 그를 반역자로서 사형에 처하라고 선고할 재판정으로 이끌어 갈 계획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보다 간단한 방법이 기술되었다. 즉 그를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리하여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를 두고 지은 시편 59편에서 다윗은 그의 원수를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라고 했으며, “그 입술에는 칼이 있다”고 했다(시 59:2, 3, 7).

Ⅱ. 다윗은 놀라운 방법으로 이런 위험에서 피했다. 

사울이 다윗의 올무가 되게 하기 위해 그에게 준 미갈이 오히려 다윗을 피하게 했고 다윗을 지켜 주고 보호해 주었다. 

사탄은 때로 그 자신의 화살에 맞는다. 미갈이 어떻게 자기 남편의 위험을 알게 되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미갈에게 왕궁으로부터 어떤 소식이 왔든지 또는 다윗이 지적한 대로 (시 59:7) 그들이 말하기를 “누가 들으리오”라고 할 수 있으리만큼 조용하고 은밀히 행했겠지마는, 다윗과 미갈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집 주위를 배회하는 무리들을 미갈이 목격했든지 했을 것이다. 

미갈은 자기의 아버지가 다윗에 대해 큰 분노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자기 남편의 안전을 위해 크게 노력했다.

1. 미갈은 다윗으로 하여금 위험을 벗어나게 했다. 

미갈은 그 위험이 매우 임박하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녀는 “내일에는 당신이 죽임을 당하리라”고 말했다. 

미갈은 다윗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거기 누워 있는 것을 햇님이 내일 아침에 보면 “다시는 영원히 또 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조세푸스는 의역했다. 

그리고 즉시 다윗을 피하게 했다. 다윗은 피하기보다는 싸우는 데 더 능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기 집을 덮치는 자들을 칼로 막는다는 것은 더 용이하고도 합법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미갈은 모든 문을 암살자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고, 피하게 하였다.”

시편 59편을 다윗이 지은 것이, 그가 도망하기 전 그의 집 내실에서 지은 것인지 혹은 그가 도망가서 숨은 곳에서 지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런 놀람 속에서 오히려 그의 믿음은 더욱 강해져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를 죽이려는 때가 아침이었기 때문에, 매우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라”(16절)고 노래했다.

2. 미갈은 사울과 그리고 사울이 고용해서 다윗을 죽이기 위해 보낸 무리들을 기만했다. 

아침이 되어 다윗의 집의 문들이 열렸는 데도 다윗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사울의 사자들은 다윗을 찾기 위해 집안을 뒤지려고 했다. 또 실제로 뒤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갈은 그들에게 다윗이 병이 들어 침상에 누워 있다고 했다(14절). 그리고 믿지 못하겠거든 그들이 확인해 보라고 했다. 

미갈은 이미 나무 우상을 가져다가 다윗의 침상에 눕히고, 마치 다윗이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옷을 입히고 또 염소털로 엮은 것을 머리 부분에 씌워 놓았기 때문에 능히 그들을 속일 수가 있었다(13절).

미갈의 거짓말과 속임은 조금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진리는 그녀의 거짓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미갈은 사울의 사자들이 다윗이 도망친 것을 알면, 틀림없이 그를 추격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윗으로 하여금 안전하게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간을 끌고자 했다.

사울의 사자들은 다윗이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서는 그를 끌어내지 않으리 만큼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 정도의 동정은 보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울은 다윗이 아프거나 말거나 그대로 끌고 오라고 명령했다. “그를 침상째 내게로 가져오라. 내가 그를 죽이리라”고 했다(15절). 

병든 자를 짓밟으며, 그대로 놓아도 절로 죽어가는 사람을 불러 죽인다는 것은 가장 비열하고 야만적인 처사이다. 그처럼 사울은 다윗의 피에 굶주려 있었으며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그는 다윗의 죽음을 직접 확인해 보고, 얼마 전까지도 “내 손을 그에게 대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자기 손으로 그를 직접 죽이지 않고는 만족할 수 없다고 말하게 되었다. 이처럼 인간은 한 번 자기의 감정에 불을 질러 놓기만 하면 점점 더 포악해진다.

사자들이 다시 갔을 때 그 속임수가 폭로되었다(16절). 

그러나 그때는 이미 다윗이 안전하게 피한 때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미갈이 발각이 되었다고 해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사울은 미갈이 다윗을 도망가도록 도와준 것을 꾸짖었다. “너는 어찌하여 나를 속였는가?”(17절) 사울은 미갈이 자기 딸이므로 제 남편을 배반하면서까지라도 자기를 도와주리라고 기대할 만큼 어리석었다. 미갈은 마땅히 제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제 아버지와 제 아버지의 집을 버릴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들 스스로가 신앙이나 이성의 기반에 서 있지 않은 자들은 다른 사람 역시 쉽사리 그러한 기반을 벗어나리라고 기대한다.

사울의 꾸지람에 대답하면서 미갈은 다윗의 사람이었건만 자기 남편의 명망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지 못하고 대답을 했다. 

그는 핑계를 대서 말하기를 “다윗이 내게 이르기를 나를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고 말했다고 했다. (그녀 자신이 서둘러서 다윗을 도망치게 했지만) 자기가 다윗이 도망치지 못하게 했던 것처럼 암시한 것은, 반대로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었다는 것을 말해 주며, 다윗에 대한 사울의 증오의 근거를 확고히 해 주는 결과가 되었다. 다윗은 미갈이 여기서 말한 것 같이 자기가 살겠다고 하여 그렇게 비열한 짓을 할 만큼 야만적인 인간이거나 흉악한 남편은 결코 아니었다. 

다윗 역시 다윗의 후손(예수)처럼 그의 친구와 그의 원수 모두에게서 고난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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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앞에서 예언하는 사울(삼상 19:18-24)

Ⅰ. 여기에는 다윗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그 장소가 나와 있다. 

그 밤으로 집에서 빠져 나온 다윗은 친척들이 있는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으며, 또 자기를 위해 환호성을 울렸던 이스라엘의 어느 한 성읍으로도 가서 자기의 은신처로 삼지 않았다. 그는 곧장 사무엘에게로 달려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고하였다”(18절).

1. 왜냐하면 사무엘은 그가 앞으로 왕에 오를 것이라는 것을 확언해 준 사람이며, 지금 그러한 확신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마음이 급하여(혹은 시 116:11과 같이 “경겁 중에”) “모든 사람은 거짓말장이다”(그를 살려 주겠다고 했던 사울만이 아니라, 그에게 왕좌를 약속했던 사무엘까지 포함해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으므로, 그러한 고난 속에서 그의 믿음을 북돋아 줄 용기를 사무엘이 아니면 어디서 구할 수 있었겠는가? 

사무엘에게 도망감으로 다윗은 “하나님의 날개 그늘”을 믿고 그를 자기의 피난처로 삼을 수 있었다. 어디 가서 그 이상 안전한 곳을 찾을 수 있겠는가?

2. 사무엘은 선지자였으므로 이러한 고난의 날에 그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를 잘 충고해 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그의 시편에서 그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리기 전날 밤의 정경을 노래한 것이 있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지시받기 전에 먼저 사무엘의 말을 듣고자 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3. 사무엘에게 가면 하나님께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선지자들의 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현재의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는 기쁨을 그들과 함께함으로 얻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다윗은 사울의 궁전에서는 조금도 편안치가 못했고, 만족스럽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사무엘의 교회에서 그러한 편안함과 만족을 찾기 위해 그리로 갔다. 

하나님과 사귐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들을 구하기 위해 다윗은 환난날에 여호와께 숨었다(시 27:4-6).

Ⅱ. 여기서 다윗이 어떻게 보호받았는지 볼 수 있다. 

다윗과 사무엘은 선지자의 학교가 있는 “라마 나욧으로 가서 거기 거하였다.” 그곳은 블레셋 사람들도 그러한 모임을 방해하지 않던 특별한 장소였다(10:10). 

그러나 사울은 정탐꾼을 통해서 다윗이 그곳에 있다는 말을 듣고(19절),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잡아오게 했다(20절). 

그런데 그 사자들이 다윗을 데리고 오지 못하자, 더 많은 사자들을 보냈다. 그리고 그들도 돌아오지 않자 세 번째 사자들을 보냈는데(21절), 그들에게서도 소식이 없자, 이번에는 사울 자신이 그곳으로 갔다(22절). 사울은 그만큼 다윗의 피에 굶주려 있었고, 다윗에게 그의 악독한 음모를 뒤집어 씌우려고 애썼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로 여러 번 자기 계획이 실패했건만, 여전히 다윗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와 같은 일을 위해서 왕이 스스로 나선다는 것은 자신을 몹시 천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핍박자들은 자기의 악독함을 실행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모도 참으며, 어떤 일에 대해서도 주저하지 않는다. 

사울은 다윗을 붙잡기 위해 다른 공무는 일체 중단했다.

다윗은 이제 (전에 자기가 지키는 양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자의 입에 들어갈 위험에 놓였는데, 어떻게 여기서 구출을 받았는가? 전에 다윗이 자기의 양을 구해 주었던 것처럼 그 사자(lion)를 죽인 것도 아니고, 엘리야처럼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서” 사자들(messengers)을 불태워 죽인 것도 아니고, 잠시 동안 사자들(lions)이 양이 되게 함으로 구출받게 되었다.

1. 다윗이 선지자들과 함께 있는 곳에 온 사울의 사자들은 “하나님의 신이” 그들에게 임하자 “예언”을 했다. 

다시 말하면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들은 다윗을 붙잡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이 붙잡히는 몸이 되었다.

(1) 이처럼 하나님은 다윗을 안전하게 지켜 주셨다. 

그들도 예언자의 명에 의해 도취경에 들어감으로 그들의 사역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다윗에 대해 조금도 개념치 않게 되었든지, 아니면 잠시 동안 선한 성품을 가지게 됨으로 , 감히 그런 나쁜 일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2) 하나님은 선지자의 무리들과 성도들의 교제 위에 영광을 내려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원하시기만 하면 충실한 성도들의 모임에 그와 함께하신다는 표로써 악한 인간의 마음을 두렵게 하실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참으로 그들과 함께하신다”(고전 14:24, 25)는 것을 알게 하셨다. 또한 신앙적인 모임에 나타나는 은혜와 그리고 그런 감동을 도무지 받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에도 신앙적인 모임에서는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는가를 보라. 성도들의 회합 이외의 곳에서 어떻게 그런 성령의 감동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3) 하나님은 인간의 영들에 대해 자기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 주셨다. 

인간의 마음과 혀를 지으신 분은 이 두 가지 모두를 당신의 목적에 봉사하게 하실 수 있으시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다가 그들의 축복을 예언했다. 

어떤 유대인 저술가는 이때 사울의 사자들이 예언한 내용은 다윗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한다.

2. 사울 자신도 그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예언자의 영에 사로잡힌 바가 되었다. 

사울처럼 악한 사람이 선지자가 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닌가고 생각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을 지키고자 하실 때는 비록 사울이라 할지라도 [홀(Hall) 주교가 표현한 것과 같이] 나욧의 연기 냄새를 맡은 순간 그의 사자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예언을 하게 되었다(23절). 사울은 왕의 옷과 전투용 복장을 벗어 버렸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이런 일을 하는 데는 너무 좋았거나 너무 무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혼수상태나 또는 황홀경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가 종일 계속되었다.

다메섹의 성도들은 신약 성서의 사울의 심령이 변화됨에 따라서 그가 내뿜으려고 했던 분노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 변화는 구약의 사울의 경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구약의 사울의 경우는 단지 놀라운 일이며 단지 하루 동안에 걸친 것이었지만―신약의 사울의 경우는 성화(聖化)로 들어간 것이며, 영원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은사를 행하지만 은혜는 없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저들을 모르노라고 하신다(마 7:22, 23). 

그리하여 이제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는 속담이 또다시 들먹이게 되었다(10:12 참조). 

그러나 그 상황이 전과는 달랐다. 그 반대가 되었다.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으며, 악신의 부림을 받고 있으면서도 선지자들과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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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사무엘상 19장

1 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과 그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

ㅇ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 원문상 '다윗을 죽이는 것에 관해서 말하였더니'로 번역해야 한다(Klein, Smith, Lange, Keil). 결국 이것은 (1) 다윗에 대하여 살의(殺意)를 품는 단계(18:8, 9), (2) 살해하기 위하여 음모를 꾸미는 단계(18:17, 25)를 지난 마지막 단계로서, 곧 이제는 공개적인 궁중 회의를 통해 다윗 살해 계획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에 이르렀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사울이 다윗을 끝까지 죽이려 했던 까닭은 자신의 왕권 수호 뿐 아니라, 자신의 후손에게 그 왕권을 세습시키려 한 세속적 아집과 욕심 때문이었다.

ㅇ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 - 여기서 '기뻐하다'(하페츠)란 말의 기본 개념은 '마음이 기울다'란 의미로서, 요나단의 마음은 이미 다윗에게로 향했음을 의미한다. 

실로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했다(18:1). 특히 다윗의 영광은 자신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그러한 이기적인 욕심을 떠나 변함없이 다윗을 사항했다. 이러한 요나단의 자기 부인(自己否認)과 자기 희생의 정신은 후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말한 세례 요한의 예수께 대한 사랑과 희생의 정신과 유사하다.

2 그가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ㅇ아침에...숨어 있으라 -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로 꾀한 이상 그 모든 일은 신속히 진행될 것이 확실하였으므로, 요나단은 급히 다윗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되도록 아침 일찍부터 몸을 피신하여 사태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라고 요청했다.

ㅇ은밀한 곳 - 문자적으로는 '그 은밀한 곳'. 결국 여기의 '그'라는 정관사는 다윗도 이 장소를 잘 알고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3 내가 나가서 너 있는 들에서 내 부친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부친과 말하다가 무엇을 보거든 네게 알게 하리라 하고

ㅇ너 있는 들 - 이곳은 2절의 '은밀한 곳'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아마 이곳은 사울이 아침마다 습관적으로 산책을 즐기던 궁정(宮廷) 근처의 들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나단이 다윗을 이곳에 숨어있게 한 까닭은 다윗으로 하여금 사울 부자(父子)간의 대화를 엿듣도록 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단지 요나단은 다윗에 대한 부친의 살해 음모에 관해 어떤 정보를 입수했을 경우, 신속히 그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다윗이 거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토록 하려는 목적에 다른 것이었다(Keil).

ㅇ무엇을 보거든 - 차라리 '무엇을 알거든'으로 번역함이 좋다(7절). 

즉 이때 요나단은 자신의 간곡한 중재(仲裁)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이 다윗을 반드시 죽일 작정인지, 또는 그렇게 할 경우 사울이 언제 어떻게 다윗을 죽이려고 시도할 것인지 등에 대하여 알아내려고 했을 것이다.

4 요나단이 그 아비 사울에게 다윗을 포장하여 가로되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5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ㅇ여기서 요나단은 다윗을 살해하려는 음모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기에 앞서 다윗을 죽이는 일의 부당성을 부친 사울 왕에게 간곡히 설파한다. 다윗을 위한 요나단의 변호는 다음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1) 지금까지 다윗이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이스라엘과 사울 왕을 위해 충성.헌신한 사실 (2) 그러므로 만일 다윗을 죽일 경우 그것은 무죄한 피를 흘리는 경우가 되고, 또한 그것은 여호와께 큰 범죄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밝히는 요나단의 변호는 큰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ㅇ포장하여(*      , 토브) - 문자적으로는 '선하게(좋게,  기쁘게) 말하다'(speak well of~ ; NIV, RSV)란 뜻이다.

ㅇ왕께 행한 일은...선함이니이다 - 여기의 '왕께 행한 일'은 원문상 복수라는 점에서, 다윗이 왕을 위해 지금까지 충성되이 실행했던 모든 선한 일들을 가리킨다.

ㅇ그가...블레셋 사람을 죽였고...왕이...기뻐하셨거늘 - 여기서 '블레셋 사람'은 단수로 사용되어 '그 블레셋 사람'이란 뜻인데 곧 '골리앗'을 가리킨다(17:10, 42). 

그러므로 여기서 요나단은 이스라엘이 그 블레셋 거인의 위협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다윗이 생명을 걸고 이스라엘과 왕의 명예 회복을 위해 단신으로 싸웠고, 결국 승리했을 때 사울 왕이 사심없이 기뻐했던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때만해도 사울 왕은 다윗에 대해 어떤 시기나 질투심 없이 그를 사랑했었다. 

요나단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함으로써 사울 왕의 양심의 심금을 울리고자 한 것이다. 한편 사울 왕이 다윗을 미워하기 시작한 때는 여인들의 노래(18:7) 사건 이후부터였다.

ㅇ무고히...무죄한 피를 흘려 - '무조지한 피'를 흘리는 일은 모세 율법에서 철저하게 금지되고 있다(신 19:10;21:8;27:25). 

그러나 후일 바로 이같은 범죄를 저질렀던 므낫세 왕은 하나님의 특별한 진노의 대상이 되었었다(왕하 21:16;24:4).

6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치 아니하리라

ㅇ본절은 다윗을 위한 요나단의 간곡한 설득이 실효를 거뒀음을 말하고 있다.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위를 힘입어 정직하게 진실을 호소한 요나단의 간곡한 변호는 사울 왕의 마음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ㅇ맹세하되...죽임을 당치 아니하리라 - 혹자의 주장처러 여기 사울 왕의 이 맹세는 요나단을 일시 속이기 위한 거짓 맹세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적어도 악신의 영향을 받기 전까지는(9절) 사울 왕이 다윗을 곁에 두고도 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나단의 간곡한 변호에 사울 왕이 감동을 받아, 일시동안 사울과 다윗간에 화해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울 왕의 이 맹세는 오래지 않아 또 변하고 말았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이 떠나버린 사울 왕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헛맹세를 하는 등 변덕과 광기의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ㅇ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시는 것처럼'(As the  Lord lives, RSV)이란 뜻으로(Klein), 곧 '여호와의 삶을 두고서(결고서)' 맹세한다는 뜻이다.

7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알게 하고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앞에 여전히 있으니라

ㅇ사울 앞에 여전히 있으니라 - 이 말은 다윗이 예전처럼 천부장으로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사울을 위해 수금을 타는 궁중 악사로서 계속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음을 가리킨다.

8 전쟁이 다시 있으므로 다윗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도륙하매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니라

ㅇ전쟁이 다시 있으므로 다윗이...크게 도륙하매 - 엘라 골짜기 전투(17:1-54) 이후에도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에는 국지전(局地戰)이 빈번히 발생했다(18:30). 

다윗은 그때마다 숙적 블레셋을 당당히 격퇴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천부장으로서의(18:3) 본분을 충실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감당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성공과 형통은 또다시 사울 왕의 시기와 질투심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따라서 사울 왕은  자신의 맹세(6절)를 스스로 깨뜨리고 다시금 다윗을 죽이기 위해 광분하였다.

9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ㅇ여인들의 창화(唱和) 사건(18:7) 이후 시도된 사울의 다윗 살해 기도는 18:11,17, 21;19:1 등에 이어 또다시 재현되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첫번의 경우(18:10, 11)와 비슷한 상황 가운데서 발생하였는데, 즉 악신(惡神)의 영향으로 사울 자신이 직접 창으로 다윗을 살해하고자 시도한 경우이다. 이처럼 사울이 또다시 악신의 영향을 받은 주된 이유는 다윗의 형통과 성공이었다(8절). 즉 자신은 하나님께 버림당했다는 심한 콤플렉스, 다윗이 자신의 왕좌를 노리고 있다는 강박 관념, 백성들의 마음이 온통 다윗에게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피해의식 등등이 시기와 질투심으로 불타올라 걷잡을 수 없는 광기적 형태로 분출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자에 대해 하나님께서 악신이 활동하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사울은 악신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ㅇ여호와의 부리신 악신 - 16:14 주석 참조.

10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

ㅇ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 여기 사울의 이같은 행동은 18:11에서와는 달리 실제 창을 던지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18:11에서의 사울의 행동은 창을 쥐고 두어번 휘두른 경우이지만, 여기서는 다윗을 겨냥하고 창을 날린 것이다.

ㅇ그는...피하고 - 무예가 뛰어난 사울의 투창이 이처럼 빗나가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는 사울이 악신의 영향으로 정신이 혼미해 있었기 때문이며, 궁극적으로는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ㅇ창은 벽에 박힌지라 - 이것은 사울이 실제 다윗을 향해 창을 던졌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11 사울이 사자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 한지라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일러 가로되 당신이 이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ㅇ아침에...죽이게 하려 한지라 - 사울이 다윗을 그 밤에 죽이지 아니하고 다음 날 아침에 죽이려 한 까닭은, 아마도 섣부른 야간 행동은 오히려 다윗의 야음(夜陰) 도주를 도와 줄 우려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ㅇ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죽임을 당하리라 - 다윗에 대하여 사울이 적개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던 미갈은 (1) 사울의 사자들이 집 주위에 매복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든지 (2) 오빠 요나단으로부터 어떤 정보를 입수했든지 (3) 궁전에 들어갔다가 사울과 다윗 사이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었거나 혹은 어떤 정보를 입수했다든지 함으로써 사울의 음모를 알아챘을 것이다(R. Payne Smith). 특히 두번째의 추측은 이전의 경우(19:2, 3)와 비교해 볼 때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 추측이다.

12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내리우매 그가 도망하여 피하니라

ㅇ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우매 - 사울의 사자들이 문을 지키고 있어기 때문에, 미갈은 창문으로 다윗을 도피시키고 있다. 

이처럼 생명을 노리는 자들의 손을 피해 창문으로 도피한 유사한 경우가 여호수아 당시의 여리고 정탐군(수 2:15), 초대 교회 당시의 사도 바울(행 9:25;고후 11:33) 등의 경우에서도 나타난다. 한편, 이때 다윗이 자신의 절박한 상황을 토로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원을 간구한 내용이 시편 59편이다. 즉 시 59편에서 다윗을 '환난날에 피난처'(시 59:16)되신 하나님께 자신의 애매한 고난을 가탄원하며(시 59:3, 4) 구원을 호소하였던 것이다(시 59:1, 2, 4-13).

ㅇ다윗의 도피 생활-1 - 다윗은 처음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사울의 음모를 듣고, 창문을 통해 도망쳐, '라마'(Ramah)의 사무엘에게로 피신했다. 이어 다시 '기브아'(Gibeah)로 돌아와 사랑하는 친구 요나단과 뜨거운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놉'(Nob)으로 도피했다. 놉에서 다윗은 그곳 제사장으로부터 음식과 무기를 제공받고 계속 도망쳐 다니다가 결국 블레셋 땅의 '가드'(Gath)로 도망쳤다. 그런데 다윗이 블레셋 족속드로부터 의심을 당하자, 그는 급히 그곳을 빠져나와 '아둘람'(Adullam) 근처의 동굴로 피신했다. 그리고 다윗은 그곳에서 많은 동지들을 규합했다(19:12-22:1).

13 미갈이 우상을 취하여 침상에 뉘고 염소털로 엮은것을 그 머리에 씌우고 의복으로 그것을 덮었더니

ㅇ우상을...침상에 뉘고 - 여기서 '우상'은 곧 '드라빔'( 테라핌)을 가리키는데, 단어 형태는 복수지만 단수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드라빔'(teraphim)은 '편안히 살다'란 뜻의 '타라프'에서 파생된 말로, 구복(求福)과 점술(占術), 그리고 신탁(神託) 행위와 관련된(겔  21:21;슥  10:2)  가정  수호신(守護神)이다(삿18:17, 24). 즉 아람과 갈대 족속들로부터 도입된 이 우상은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 가정에 행운을 가져다 주는 가정의 수호신으로 널리 인정되었다. 그리고 이 우상은 인간의 형상을 닮은 반신상(半身像)으로서 보통 나무나 은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크기는 약대 인장 밑에 숨길 정도의 작은 크기로부터(창 31:34) 사람의 키와 맞먹을 정도의 큰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최근 발견된 누지(Nuzi) 서판에 의하면, 어떤 가정 내에서 이것을 소유한 자는 그 가정 전체에 대한 지배권 및 그 가정의 재산을 가장 많이 차지할 수 있는 권리를 소유한 것으로 인정되었다(창 31:19, 0-35). 바로 이같은 점에서, 라헬이 그랬듯이(창 31:19) 미갈도 이 우상을 자신의 아버지 사울에게서 훔쳤을 가능성이 있다(Klein). 한편 이것은 한 가정을 단위로 해서 모셔졌던 우상이라는 점에서 그 크기는 전반적으로 다른 우상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았다. 그러나 여기서 '침상에 뉘고'라는 말은 미갈이 소유하고 있던 이 '드라빔'이 사울의 신하들로 하여금 다윗이 누워있는 줄로 믿게할만큼 큰 규모의 드라빔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아무튼 이 드라빔은 많은 종교 지도자 및 선지자들의 우상 척결 정책에도 불구하고 족장시대로부터 포로 시대전까지 이스라엘 사회내에 면면히 존재하고 있었다(창 31:19;삿17:5;18:14;삼상 19:13;겔 21:21;호 3:4;슥 10:2).

ㅇ염소털로 엮은 것을 그 머리에 씌우고 - 여기서 '염소털로 엮은 것'은 보통 (1) 두터운 누비 이불(Stoebe, 왕하 8:15), (2) 베개(Hertzberg), (3) 가발(Mccarter)등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엮은 것'(케비르)이라는 단어의 용례상 (1)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따라서 여기의 '그 머리에 씌우고'는 '그 머리 부분에 놓고; 로 번역함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씌우고'로 번역된 '사마'라는 단어는 원래 '위치 시키다', '놓다'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70인역(LXX)은 이를 '염소의 간'(헤파르 톤 아이곤)으로 번역했는데, 그이유는 마치 사람이 숨쉬듯이 위장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갈의 의도는 멀리서 보았을 때 마치 사람의 머리털 처럼 보이려고 했기 때문에, 70인역의 번역은 설득력이 없다.

ㅇ의복으로...덮었더니 - 여기서 '의복'은 헐겁게 입는  통상복을 가리킨다(Smith). 이 통상복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흔히 이불 대용으로 사용되었다.

14 사울이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잡으려 하매 미갈이 가로되 그가 병들었느니라

ㅇ그가 병들었느니라 - 우상으로 마치 사람의 모습처럼 만든 미갈은 아침이 되어 사울의 군사들이 다윗을 체포하기 위해 들이닥치자 이처럼 둘러댐으로써 다윗으로 하여금 멀리 도망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게해 준다.

15 사울이 또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보라 하며 이르되 그를 침상채 내게로 가져오라 내가 그를 죽이리라

ㅇ사울이...다윗을 보라 하며 - 이것은 사울이 보낸 최초의 군사들이 미갈의 계략에 완전히 넘어간 채, 사울에게 돌아가서 다윗이 병들어 누웠다고  보고했었음을 암시해 준다. 한편 여기의 '보라'는 다윗이 병들어 있는지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라는 명령이다.

ㅇ침상 채...가져 오라...죽이리라 -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반드시 다윗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뜻으로, 폭군 사울의 잔인성이 드러나고 있는 구절이다.

16 사자들이 들어가 본즉 침상에 우상이 있고 염소털로 엮은 것이 그 머리에 있었더라

17 사울이 미갈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나를 속여 내 대적을 놓아 피하게 하였느냐 미갈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그가 내게 이르기를 나를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 하니라

ㅇ미갈은 다윗을 보호하기 위해 '그가 병들었느니라'(14절)고 첫번째의 거짓말을 한 이후, 사울의 확인 명령으로(15절) 그 사실이 거짓으로 발각되자(16절) 이제 여기서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에게는 다만 방조죄(放調罪) 밖에 없다고 두번째로 거짓말을 한다.

ㅇ어찌하여...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 - 이 말은 곧 다윗의 협박에 의해 마지못해 그의 도피를 방조하고, 또한 거짓말(14절)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미갈의 자기 변호이다.

18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고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거하였더라

ㅇ다윗이...라마로 가서 - 여기서 '라마'(Ramah)는 다윗의 출발지인 '기브아'(10:26)에서 북쪽으로 약 3.2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선지자 사무엘의 고향이자 그의 활동 중심지였다(1:1;7:17).

ㅇ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 다윗이 이처럼 사무엘에게로 도망간 이유는 (1) 우선 사울의 살해 음모로부터 자신의 신변 안전을 도모하며 (2) 앞으로 자신이 취해야 될 처신에 대해 선지자의 자문을 얻기 위함이었을 것이다(Keil). 그때 다윗은 사울이 적어도 사무엘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존중하여, 거기가지 자신을 죽이러 사람을 보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한편 이처럼 다윗이 자신의 도피처로 사무엘의 고향 라마를 쉽사리 택한 것은 이전부터 사무엘과 다윗 사이에 개인적인 교제가 이루어져 왔음을 시사한다(F. R. Fay).

ㅇ사울이...행한 일을 다 고하였고 - 아마도 이것은 (1) 이스라엘 왕인 사울이 정신적으로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으며 (2) 그 결과 다윗 자신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을 것이다. 이때 사무엘은  사울에 관한 다윗의 보고를 듣고 크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바 된 상태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13:13, 14;15:26, 35).

ㅇ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 사무엘보다 다윗을 앞서 언급하는 본 어구는  다윗이 이미 역사의 주역이 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여기서'나욧'(*        )은 '거처', '거주지', '초원지대' 등의 의미를 가지는 아카디아어 '나움'에서 온  단어로서, 마치 오늘날의 기숙사와 같은 숙소 시설을 가리킨다(Smith, Keil, Fay). 이같은  추정은 이 단어가 항상 특정 지명과 함께 언급된다는 사실로써 보다 분명해 진다. 즉 '나욧'은 사무엘이 자신의 주변에 모여드는 제자들을 수용키 위해 세운 기숙 시설을 가리키는 특수한 명칭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나욧'은 단순한 기숙 시설 이상의 '교육의 집' 또는 '선지 학교'란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그리고 '나욧'이 '초원 지대'를 뜻하는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라는 사실은 이 교육을 위한 기숙사가 목자들이 거주하는 초원 지대에 위치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Klein, 삼하 7:9;렘 33:12). 아울러 '나욧'이 복수로 표기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것이 어려동(棟)으로 구성된 교육용 숙소 시설이었음을 암시해 준다(Keil).

19 혹이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ㅇ혹이...고하여 가로되 - 다윗이 처 미갈의 도움으로 기브아 집을 도망쳐  나온 이후, 아마도 사울은 군사들에게 그의 도피처를 탐색 하라고 명령했을 것이며, 어쩌면 많은 현상금까지 내걸었는 지도 모른다. 아무튼 다윗의 도피처는 발견되었고, 그 사실은 즉각 사울에게 보고되었다.

20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의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신이 사울의 사자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ㅇ선지자 무리의 예언하는 것 - 여기서 '선지자 무리'는 당대의 대선지자였던 사무엘의 영적 지도를 받기 위하여 그의 주변에 모여들어 훈련을  받던  젊은  생도들이었다(10:5). 그리고 '예언하는 것'(니브임)은 '예언하다'(나바)의 단순 수동형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의미의 신령한 상태 즉 성령에 감화 감동되어  (1)여호와의 영광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10:5) (2) 또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에 담아주신 신령한 계시를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Wilson). 따라서 이들 선지자 무리는 이때 자의식을 상실한 채 무아지경 곧 황홀경(ecstasy)의 상태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이때 이들은 분명한 자의식(自意識)을 소유한 채 경건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R. P Smith).

ㅇ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 - 이것은 사무엘이 그때 그 선지자 무리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왕상 4;7;왕하 2:5). 그리고 '나욧'에서 그 선지자들의 무리를 직접 지도.감독하고있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상황은 확실히 본서 10장의 상황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즉 그대는 사무엘이 그 선지자 무리를 일일이 지도하지 않았으나, 여기서는 사무엘이 그들을 직접 지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의 변화는 당시 사무엘이 선지자직을 제외한 모든 일에서 해방되어, 그들을 지도하는데 전념할 수 있게 된 때문일 것이다.

ㅇ볼 때에...사자들에게 임하매 - 이같은 현상은 '볼 때에'라는 말을 통해서 어느 정도 규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때 사울의 사자들은 선지자 무리가 엮어낸 독특한 분위기를 '본' 후, 즉 접한 후 그 분위기에 휩쓸려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볼 때에'(야르, 원형은'라아')가 3인칭 단수로 표기된 것은 매우 흥미롭다. 그것은 아마 본 저자가 사울의 사자들 전체를 하나로 취급했기 때문일 것이다(Keil). 즉 본 저자는 이같이 표기함으로써 사울의 사자들 모두가 마치 한사람처럼 선지자들이 예언하던 독특한 분위기에 휩쓸려 들어갔음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이다.

ㅇ하나님의 신이...임하매...예언을 한지라 - 다윗을 잡으러 간 사울의 사자들은 사무엘과 선지자 무리의 신련한 예언의 노래에 휩쓸려 들어가고, 또한 그때 위로부터 하나님의 영이 강권적으로 임하므로, 그들 역시 자제할 수 없는 예언의 상태에 사로잡힌 것이다. 특히 여기서 '예언'(나비)이란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받아 미래의 일을 선언하는 것과 같은 선지자적 예언이 아니라, 영감받은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사울의 사자들은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묵시적(黙示的) 황홀경 상태에 들어가 자신들도 모르는 중에 영감 깊은 신령한  노래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Fay, Smith). 결국 라마 나욧의 다윗은 더이상 피할곳도 없는 절대 절명의 위기 속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 구원받았다고 볼 수 있다.

21 혹이 그것을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다른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고로 사울이 세번째 다시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ㅇ다른 사자들을 보내었더니...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 본절은 사울이 보낸 세  그룹의 사자들이 모두 '하나님의 신'에 의해 사로잡히는 바람에 다윗을 체포하려 했던 사울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말해준다. 그러자 마침내 사울이 다윗을 체포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22절).

22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이르러 물어 가로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혹이 가로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ㅇ세구에 있는 큰 우물 - 여기서 '세구'(Sechu)는 '전망대'란 의미이다. 이곳은 기브아와 라마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라마  북쪽 4.8km  지점의 오늘날 '슈웨이케'(Suweikeh)로 추정된다(Conder). 한편 '큰 우물'은 문자적으로 '그 큰 우물'이란 뜻인데, 여기에 정관사로 '그'가 붙어 있다는 사실은 이 우물이 그 근처에서는 매우 유명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혹자는 이것을 '저수지'나 '물탱크'로이해하기도 한다(Smith). 한편 칠십인역(LXX)에는 '세구에 있는 큰 우물' 대신 '산 위에 있는 타작 마당'으로 되어 있다. 이럴 경우 우리는 히브리 본문(Masoretic Text)에 그 독법(讀法)의 우선권을 두어야 할 것이다.

ㅇ라마 나욧 - '라마의 선지 학교'란 뜻이다. 18절 주석 참조.

23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ㅇ하나님의 신이...임하시니...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예언을 하였으며 -  사울의 체험은 그가 보낸 세 그룹의 사자들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20, 21절). 즉 여기의 '이르기가지'는 사울이 자신이 보낸 사자들과는 달리 선지자 무리의 신령한 분위기를 접하기도 전에 이미 '세구'(Sechu)로부터 예언을 시작하여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계속 예언 행위를 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결국 사울은 자신의 사자들과는 달리 보다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로, 그리고 보다 지속적으로 황홀경의 상태 속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당시 성령의 역사는 보다 강퍅한 사울의 심령 상태를 완전히 주장하시어, 그로 하여금 다윗을 체포하겠다는 의지를 스스로 포기 하게끔 만든것이다.

24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ㅇ그가 또 - '그는 심지어'란 뜻으로, 이는 사울에게 임한 기이한 현상으로 말미암은 저자 자신의 놀라움을 표현하는 말이다(Klein).

ㅇ그 옷을 벗고 - 옷을 벗는다는 것은 성경 용례상 수치스러운 행동 중의 대표적 경우로 취급된다(창 3:7, 10, 11;삼하 10:4, 5;미 1:11). 그러므로 사울이 이같은 행동을 한 까닭은 (1) 근본적으로는 사울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수치를 드러낼 정도로 성령의 역사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며 (2) 또한 실제적으로는 사울이 황홀경의 영적 심리 상태로 발생하는 체열(體熱)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Abarbanel, Fay). 그러나 여기서 사울이 벗은 것은 겉옷(베게드) 뿐이었지 속옷은 아니었다(사 20:2-4;미 1:8).

ㅇ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 칠십인역은, 사무엘이 사울과 길갈에서 헤어진 후 죽을 때 까지 사울을 만나지 아니했다는 본서의 언급(15:35)과  조화시키기 위해 여기 '사무엘 앞에서'를 '그들 앞에서'로 고쳤다. 그러나 여기의 '사무엘 앞에서'는 15:35의 언급과 모순되지 않는다. 그 가닭은, 여기 사무엘과 사울의 만남은 사울이 거의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사무엘을 거저 보았을 뿐, 15:35절의 언급처럼 상호 교제를 나눈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ㅇ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 여기서 '종일 종야'는 그때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한편 '벌거벗은 채'란 의미인데, 이것은 사울이 속옷까지 완전 벗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겉옷을 벗어 사울이 왕으로서 체통을 잃을 만한 부끄러운 상태에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리고 '누었더라'(나팔)는 '엎드러지다'란 의미로서, 결국 이것은 대단히 오래도록 지속된 예언 상태로 인해 그때 사울이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기운이 빠진 상태에 있었음을 가리킨다. 한편, 그러나 사울이 이같은 영적 상태에 계속적으로 빠져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아마 한동안 하나님의 신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황홀경의 상태에서 손짓 발짓을 섞어 노래를 하는 등의 행위를 한 후, 그로 인한 피곤감으로 깊은 잠에 빠져버렸을 것이다(R. Payne Smith).

ㅇ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 이 말은 본래 어떤 사람이 본래의 그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행동을 할 때 적용되는 말이다. 10:11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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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무엘-요나단-사울-다윗에게서 배우는 교훈 == 오늘날, 신약시대를 사는 거듭난 참 믿는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코람데오, 즉 시공을 초월하여 하나되어 계신분, 그영이신 주님 임재를 붙듦-누림이라 할 것...거듭난 참 믿는이마다 2중적인"~안에"의 신비로운, 그러나 이미 공개된 비밀 누림이 허용된바, 그가 이미 주 안에, 그리고 그의 영 안에 그영이신 주님 거하심을 극도로 섬세하고도 예민하게 느끼며 동행-동거-동주 가능토록 하셨음을 [연습-실행하며] 무시로 실지로 살아냄이 중요.. 하나되어 계신 주님과의 친밀한 앎-사랑/기쁨/평강-교통/소통의 하나됨으로 동행함으로써 육체(타락한 사람 = 옛사람 = 죄성)를, 육체 소욕 따름을 거절하여 대적하고, 오히려 [주예수님 이름 부름으로써]십자가로 넘겨 처리해 버림 :: 이로써 고난-역경 중에서라도 오로지 주뜻 그대로 이루기를 구하며[자신(자기자랑-자기연민-자기주장-자기 의)을 내려놓고 십자가 아래에 둠의 십자가 공과를 참되게 배우도록] 도움-공급의 능력이시요 동시에 보호-지킴의 능력이신 주권적 섭리의 Q을 경험함 통해 극도로 신뢰하기를 배울 수 있게 하고 계심 
[엘리]Q의 정하심에 따른, 출생에 의한 선택된 제사장으로서 12지파에게 할당된 모든 좋은땅의 최상의 분깃(Q,그리스도)을 누릴 권리를 가졌지만(민18).. (Q께 백성을 올려드리며 백성의 사정을 대신 아룀으로써 백성을 Q께 드리고, Q으로부터 신성한 계시를 받아서 백성에게 말함으로써 Q을 공급함으로써 맡은바 이중역할을 충성되게 담당함의 )제사장 직분을 경홀히 여기고 태만하였고(삼상2:28-29) 주님의 제사를 모독한, 악한 두 아들을 훈계하기를 느슨히 함으로써, 그의 비극적 종말과 함께, 신성한 계시, 즉 (Q이 베푸시는바) Q을 위해 말하는 제사장 직분의 쇠퇴를 가져왔다. (결국 선지자 직분을 따로 세우셔야 했다) 
[사무엘] 그의 모든 신분들과 직무들에 충실했다...그의 온 일생동안 제사장으로서 섬겼다.. 나실인으로서, 그는 실패없이 그의 헌신을 지켰다. 제사장-선지자로서,Q을 위해 정직히 말하하여 신성한 계시에서 쇠퇴해 가는 제사장 직분을 대치하기 위해 선지자 직분을 시작했다. 사사로서, Q께신실하고 사람들에게 공정했으며, 땅위에서 Q의 경륜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사사직분을 끝내고 시대 전환을 위해 왕권을 이끌어왔다., 그는 좋은땅의 할당된 분깃, 곧 그리스도를  온 생애동안 최대로 누린 사람이었고 그의 누림에는 아무런 결함이 없었다. 그의 역사에서 유일한 결함은 두 아들들을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사사들로 세운것이라 할 수 있는데, 두 아들들은 그의 길을 따르지 않았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은 왕을 요구했다(8:1-7)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사무엘은 분명히 이 문제에서는 실수를 하였지만, 이로 인해 주님으로 하여금 그분의 경륜 성취를 위해 그분의 백성들 가운데 있는 상황을 친히 다루시도록 도움을 주었다. 
[요나단] 다윗을 사랑하고 그와 언약 맺었고, 다윗이 왕으로 등극시 둘째가 될 것으로 예견했기에 다윗에게 그렇게 말하여 격려했고, 자기 스스로 세우려는 군주국의 왕좌를 보존하여 아들 요나단에게 넘겨주기 위해 다윗을 (방해물로 여겨) 처리하려는 사울의 뜻과는 달리 주님은 Q의 왕국을 내다보고 계시는 바 그 왕좌에 앉을 주님의 대리왕은 자기가 아니라 다윗을 합당하게 여기고 계심을 분명히 깨달아 알았고 기꺼이 인정하고 있었다....그러나, 주님의 뜻-생각-심정을 알면서도 (아비 사울에게는!!)전파하여 알리고 실행하기를 주저했던 것 아닐까)...즉, 천연적 애정때문에 아비 사울에게 [주께서 그로 하여금 깨닫게 하신바를] 말하여 설득하지 못했고, ....주님 마음은 어떠시며, 어찌 해야 주님뜻 이룰 수 있을지... 아비를 떠나서 다윗과 함께 가서 하나로 있어 다윗을 그의 머리삼아 동행함으로써, (그로 인해 아비 사울 스스로 목숨걸고 여쭈어 듣고자 함으로써, 자발적으로 나아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주께 친히 여쭈어 주님께 적극적으로 돌이키도록) 아비의 군주국에는 관심없음을 행동으로 나타내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하지 않음 인해 아비 사울과 함께, 그도 전쟁중 사망이라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되는바, 좋은땅에 대한 그의 분깃을 합당하고도 충분히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림을 상실하고 말았다. . 
[사울] Q께 택함 받고 사무엘에게 기름부음 받아 이스라엘 왕(=나기드)가 됨 ==> 그러나, 사울 왕의 불순종 두번[[*13장(사무엘 오기전 자의적으로 제사 집전--주님이 세우신 권위 한도를 침범), 15장(아말렉 멸절 명령 어김 = 거역이자 반역)]] + [[야심/시기심에 사로잡혀 다윗 죽이려 계속 시도함]] = Q과 그분의 경륜에 대해 원수와 하나된 바, 사탄마귀의 주구가 되었고 백성에 대한 그의 왕권(나기드)을 잃었으며 Q의 약속하신 좋은땅에 대한 누림조차 몰수되고 끝장남 
[다윗] Q께 택함 받고, 사무엘을 통해 Q의 기름 부음 받았으며 (골리앗 죽인 후) 이스라엘 여인들에게서 사울보다 더 칭송 받음....결코 교만하지 않았고, 왕국에 대한 야심을 품었던 흔적이 전혀 없음... 사울의 핍박 아래 최소 7년(혹은 10년)동안을 [고난과 역경을 묵묵히 참아내며, 주님 말씀을 존중하여 따르며, 주님의 선하심-인자하심 안에 붙들고 붙들려 있어 거함으로 점점 더 닮아가며 성숙해져 가며.. 더 나아가 행동 결정 위해서는 짐짓추정-자기연민에 빠져듬 아니라 경청하기를 배워 실행하며, 친히 주께 여쭈며 순종함으로써 주님의 운행하심-인도하며 이끄시며 일하심/행하심을 앎과 친밀함으로] 마침내 고난과 역경의 시련을 통과함 ... 두 번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잡았으나 사울이 Q의 기름부음 받았다는 것으로 인해, Q을 경외함으로!!, 스스로 손을 들어 그를 죽이기를 원하지 않았다..육체를 따라 넘어질뻔 하였던적도 있는바 단 한번, 아비가일의 남편 부자 나발(유다땅 갈멜, 갈렙족속)을 죽이고자 하는 살의를 품었으나 [호의로써 풍성한 결실 거두도록 그 주위를 두르는 보호막이 되어줌으로써 보호-안전을 제공하고 유익을 끼친 바 양털깎기 수확기에 겸손히 나아가 동행하는 수하 6백여명을 먹이고자 수확물의 일부 공궤 요청에 대해 배은망덕한 태도로 악담-냉소로 거절하였기에] 그의 아내 아비가일의 충언을 듣는 즉시 주님 말씀하심임을 인식하고 회개하여 거둬들이고 있었다. (한번이라도 주님이 기름부으심은 주께는 영원한 인침이요 기념이다!!...그 기름부음은 그가 스스로 목숨 끊는다면 모를까..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고 다윗은 그렇게 보고 있었다--이것이 주님의 마음의 애탐이다[곁길로 나아갔더라도, 깨닫고 돌이키기를 학수고대하며 바라신다]!!) .다윗에게 있어서 사울은 언제나 변함없이 Q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이었기에, 그렇게 사울을 끝까지 높여 존중하기로 주 앞에서 결심한 바 그대로 끝까지!! 일편단심 그 마음을 견지하고 있었다[24, 26장..... Q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손상시키는 행동을 결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자행자지함으로써 자의적 판단따라 스스로 손을 들어 손상시키려 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바 그가 이미 선하신(=칼로스) 주님이 그의 안에 사시는 바 그것을 살아냄의 선함(=아가도스)으로 살아감을 자연스레 드러냄이라... Q의 왕국 안에서 좋은 질서(마음의 평강)을 유지했음을 가리킨다.] ....때때로 그의 목숨을 노리는 사울의 핍박으로 인해 (비록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죽였고 블레셋에게 완패를 안겨주었으며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항상 승리를 가겨다주었음의 유용함/유익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사울의 개인적 야심(군주국을 추구했고, 그 왕좌를 아들 요나단에게 순조로이 넘기려 하는 천연적 애정)과 시기심따라 죽이려함으로써] 블레셋 땅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던 때도 있었으나, 주님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항상 떠나지 않았음... 사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도 전혀 기뻐하지 않았으며 [사실을 부풀리고 과장해서 "사울이 창을 주며 죽여달라고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사울을 창으로 찔러 죽였노라"고 말한 아말렉인을 오히려 "죽이라" 명하고] 오히려 (사울과 요나단을 위한) 조가를 짓고 애통해 함.... 스스로 보복하려 하지 않았고, 오직 Q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을 부인함에 대한 공과를 많이 배웠음(삼상13 :14.상) ....온갖 시련 안에서 Q을 신뢰하고, 그분의 주권적 인도를 따라 행한 사람이었고(17:36-37, 23:14-16, 30:6하-10), 시험당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함으로써, 그는 Q과 하나요, 늘 앙망-청종하는 바 Q을 좇아 행한 사람으로 드러남... Q께서 그분의 택하신 백성에게 약속하시고 주신바 좋은땅(그리스도)을 누림에 있어서 참된 이스라엘 자손의 전형적 모본이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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