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상15장 [461.십자가를질수있나] [439.십자가로가까이] [217.주님의뜻을이루소서] [495.내주여뜻대로] [455.주님의마음을본받는자] [459.누가 주를 따라 섬기려는가] [303.날위하여십자가의]
말씀이신 Q, 말씀하시는 Q, 전존재가 말씀과 하나!!, 마음이 말씀의 이루시며 이끄심따라 하나되어 동행함...그 말씀 그대로 순종하여 [온전히!!] 이루도록..바로 그렇게 살아감!!...아멘!!...오늘 거듭난 참 믿는이 그대는 진정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말씀)으로 살고 있는가....그게 아니라면, 무엇 바라며 살고 있는가..세상 가치따라 입신 양명 위해 (그대 스스로의 고군분투 노력 기울여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 ...그것 성취하여 얻고자 = 이것이 바로 타락한 사람의 실체인 "육체"이다) 다른이들을 짓밟아 누르고 스스로 왕 되려 함이란...다름아닌 아말렉의 영으로[ "아말렉"이란 단어를!! 이렇게 분해하고 싶다..아말렉=암 + 말렉/멜렉 = 나는 왕 족속이기에 왕이요, 왕이라야 한다!!...왕으로 대접하라..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 주겠다] 행하고 있음이니..(("나는 왕이다...나야말로 유일한 왕이다"라며...오로지 부정적 의미에서...생명 가진 존재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를 독차지하기 위해 완전한 파괴-진멸을 서슴지 않는 잔인한 폭력 통해 [궁극적으로] 창조주 영생하시는 영원하신 주재 Q을 대적하여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지존자 왕 되려 함)) ... 까닭모를 분노와 변덕스러움 그대로 폭력과 학대 가하며..이유없이 공격하고 적대시하며 투쟁적으로 살아감은 바로 그대는 또 하나의 사울로서 살고자 함인 것을 명심하라
##['정저지와(井底之蛙)', '좌정관천(坐井觀天)'의 관념체계로서의 신념belief이냐 참 생명 신앙faith이냐 ....그대의 존재 기반은??] ......신념은 참 신앙이 결코 아님!!...신념(=belief,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에 비추어 "참되다"고 여기고 붙들어 취하는 객관적 관념 체계).....반면에 신앙(= faith...그리스도와 하나..실생활에서 그대로 작동되는 바 영원 자존 영생 유일무이의 참 생명 빛, 참 근원자, 창조주 하나님이자 그분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셔서 대속의 죽음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그리고 동시에 거듭난 참 믿는이 안에 내주하여 하나로 사시는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실지로 누림으로써 그리스도로 살며,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그분을 누림)
......신념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그래서 토론-논쟁 끝에 감정 다툼-시기-미움-살인조차도 발생한다]]....심지어 세인들이 "우믈안 개구리"로 여겨버리는 무시해버리는 사람에게조차..... 그것 없이는 삶의 행동 가치 결정 기준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 어느누구고간에 이 세상에서는 자기와 자기 관점에서 보고듣고 이해하여 결론 지은바 의견 제시할 자유는 있는 셈이다.. [[((Q을 대적하여 떠나버린...제아무리 인류사회 유익-공존-번영을 위한다는.)) 세상의 모든 -ism은 궁극적으로는 (사탄마귀에게 이용-조종 당하는) 아말렉으로 그 정체가 드러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듭난 믿는이에게서 주 보시기에 [영생의 유일무이한 창조주, 주재께서 모든 자비와 긍휼로 불쌍히 여겨 부분 부분 열어 보여주시지 않으시면 유한한 피조물인 사람은 결코 아무것도 스스로 참되게 발견하여 알 수 없음을 인정하고나서야 참 실제/실체가 드러나는 법이니, 세인들은 그 적용 결과 혜택을 보게 된다....그러므로, 옛사람들이 발견해 낸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겸손히 재평가하기를!!] ....신념(belief)의 유용성이란...글자 구성 그대로...belief -->be life into {Him, JC]--곧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주님의 경이로움 안에서, 열어보여주시도록 끝까지 추구하는 믿음 발휘하여)) 하나 되어 들어가 그분 자신을 생명 역동 근원 삼아 그분의 공급하심으로 사는 존재됨 안에서....바로 그 지점에서라야 신념의 참 가치가 드러나게 될 것!!..... ((어떤이는 하나님 없다고 그 관점에서만 보려 하며, 그대는 그대 안에 계신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있기에.....이미 발견되어진 사실에 대한 소모적 논쟁은 그만 두고(인생이란 그토록 짦다.."임종때까지도 제한받지 않으시는 창조주 하나님 존재하심을 그토록 저주하며 조롱하며 부정하였던 유한한 정저지와, 니이체의 종말을" 기억하라!!)...다만 주님이 친히 그에게 말씀하사 바르게 인도해 주시도록 (사무엘이 주께서 최종 결정 내리신바 사울 버리심에 대해 그토록 울었던 심정으로!!) 중보기도하며, 그대는 주만 바라며 ...침묵함이 옳다!!)) .....심지어 거듭난 참 믿는이라해도 주께서 "이것은 참되니, 이 길로 행하라"라고 일러주셨던바를 토대로 [지난날에 그랬으니 지금도 그러는 게 맞겠지]하며 새로이 여쭈고 확인함 없이 그냥 행동하려는 경향이 몸에 배어있게 된다 ((그러나!! 이 말씀을 생명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생명은 죽어 고착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날마다 새로이 참 생명 주님 그분께 새로이 듣고자 해야 한다!!))....이른 바 바로 오늘 새로이 깨우쳐 더해주시는 생명말씀이 오늘 적용할 바 참 신앙 생활의 준거요 틀인 셈이다... 그러나 영생의 사람아, 거듭난 참 믿는이여!! 고개들어 시선을 그대의 영원유일무이한 머리-주인-주님이신 분께 집중하여 듣고 또 보라....전지전능하신 .주님의 주권적인 뜻을 가지고 계신 주권자 되심을 진정으로 인정해 드리고 있는가?.....그분에게만 주권적, 참 결정권이 있다....지극히 크고 광대하신 분, 참 자유의 근원이시며 제한 받지 않으시는 그분을 [그대 나름의 선입관과 틀-규격에 맞추어서, --이미 말씀하신대로 보자면, 이래야만 하는거 아닌가요??...꼭 그래야만 해요...나 화낼거예요--하고] "앙탈부리며 떼쓰며 고집부리며" 제한하려 하고 있는 모습은 없는가...((거듭난 참 믿는이라 해도 피조물인 그대의 시야는 우물 바닥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 보는 개구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음을 기억하라))....가장 좋은 것 주시려 하는 그분의 선하고 기쁘고 온전하신 뜻 열어주시기를 구하되, 오직 주뜻 이루시도록 주께 전적인 순종의 ((오늘 합당한)) 걸음으로 "비록 죽음-절망 뿐인 황경에 밀어넣으시더라도!!, 바로 거기에 주님이 친히 계셔서 함께 하며 홀로 두지 않으시기에] 절대 신뢰하며 동행하자..완전하신 그분의 판단과 지식, 지혜를 신뢰하자.... 세상이 그대에게 무어라 말하며 시비걸고 박해하든지 주님이 처리하시도록 일일이 대응하려 말고 침묵하고 그냥 내버려두라 ...다만 십자가 아래에 거듭난 전존재 두기를 관심하자... 진정 주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아버지의 뜻 이루심에 순종하여 끝까지 올인하셨음을 기억하라...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출17:11)”...주님의 믿음 = 에무나 비록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는 이적을 경험한 백성들이지만 목이 마르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요구를 모세를 통하여 들어 주시자, 이번에는 다시 배고픔의 문제가 그들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게 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추격하는 애굽의 최첨단 전차부대를 유례가 없던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따돌리게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래 (출15장)가 채 끝나기도 전에 터져 나온 원망이었다. 그러나 430년 기간 동안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이제 막 태어난 이 신생국가 백성들의 배고파 우는 소리에 여느 다른 부모처럼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자녀들에게 먹을 음식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갈 처신에 필요한 기본 규칙에 대해서 알려주셨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에게 가르치신 것은 시간(time)에 대한 자연의 질서였다 : 각각의 날에는 그 날에 할당된 만나가 주어 졌으니, 각각의 날은 그 전 날과는 아주 다른 새로운 날이라는 것이다. 월요일은 일요일 다음의 날이고 화요일은 월요일 다음의 날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음날을 위하여 만나를 저축해 둘 필요가 없었다. 이 가르침의 초점은 안식일은 주중의 다른 날과는 다른 성질의 날이니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안식일에는 그 어떤 새로운 것도 창조되는 날이 아니므로 한 주의 일은 그 전 날 끝내야 한다는 말이다. 창세기에서도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창2:1)”라고 안식일 전 날의 상황을 묘사하였다. 여기“다 이루어지니라(finished, Vayekhlu= וּלּכֻ יְוַ“(의 히브리어 원 뜻은 다소 난폭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파괴(destruction)”라는 뜻의 “Klaya”에서 온 단어이다. 문장 전체를 원 뜻에 맞추어 재해석하면, 안식일 전날까지 철저하게 소모하고 파괴하여 이제 새로운 안식일 부터의 한 주는 폐허 위에서 새롭게 싹을 내어서 시작하라는 뜻이 된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만나를 통해서 가르치시고자 한 원칙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세상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파괴가 필수적이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애굽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듣도 보도 못한 경이로운 현상들을 체험하며 여호와 하나님이 이끄시는 승리의 현장들을 연이어 목격하게 되었다. 그런 승리는 너무도 완벽하여 그 어떤 휴유증도 그 어떤 반대급부도 요구되지 않았다. 그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기뻐,“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출15:1~18)”라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승리를 노래(the song of the sea)했다.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승리들에만 취해있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만나를 주시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삶의 순환성(cyclicality)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셨다. 그래서, 풍요라는 것은 언제나 빈곤으로 자리가 바뀌어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그 풍요는 파괴로부터 새롭게 싹을 낼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것들에서 검고 희고가 하루 사이에 뒤바뀌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만나의 이야기(출16장)가 곧바로 아말렉과의 전투이야기(출17장)로 이어졌던 것이다. 아말렉군이 르비딤에서 이스라엘을 갑작스럽게 공격하였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전장에 보내고, 자신은 산 위에 올라가 여호와 하나님께 팔을 들어 기도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모세의 팔이 내려오면 지고 들고 있으면 전세가 다시 역전되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아말렉과의 전쟁은 애굽의 바로와의 전쟁에 대한 반대 거울상이라 하겠다. 애굽과의 전쟁에서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고 멋진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아말렉과의 전쟁은 오름이 있고 내림이 있었다. 그것도 그 승리를 노래(the song of the sea)로 기쁘게 부른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말이다. 그러나 그래도 시간은 새롭게 가고, 그들은 생존하여 나라를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 전장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이 기록되어 있으니... 곧 하늘로 두 팔을 다 들어 올려 중보기도에 들어가는 모세...그 모세의 믿음의 신실함과 참됨(=에무나..믿음), [이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에 자기를 내어주는 메시아의 표상의 그림]이 나오고 있다.... 출애굽기 17장에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흉포한 아말렉 족속과 맞서 싸운다. 이스라엘의 병력만으로 그들과 맞설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모세는 전장 위에 우뚝 솟은 언덕에 올라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중보기도에 들어가고 있다. 아론과 훌의 도움을 받아 모세는 그의 팔을 하늘로 올려 유지하는데.. 모세가 손을 들고 있는 동안, 여호수아는 전장에서 우세를 점하게 되었다. 극도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출애굽기 17:12). “내려오지 않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는 에무나 אֱמוּנָה 라고 적혀 있다. 이 단어는 “(주님JC, 그분의 믿음”을 뜻하며 여기서 거듭난 참 믿는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어 “아멘 = 진실로!!...계시록에 등장하시는 주님 다리에 FAITHFUL AND TRUE라 쓰여있다...”이 유래되었다. 아말렉 부족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우세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가 취했던 팔의 자세가 아니라 ((주와 합한...주님의 믿음 그대로!!)) 모세가 가지고 있는, 발휘되는 생생한, ((이를 위해서는 두세사람이 함께 동일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하나 되어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계셨다..“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그 믿음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오직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언덕 위에서 팔을 밖으로 뻗고 있는 모세의 모습은 성경의 또 다른 믿음의 장면을 상기시키는데요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다. 모세가 팔을 들어서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물리치게 도왔듯이, 예수님(예수님의 히브리어 이름은 예슈아 혹은 여호수아)께서는 두 팔을 들어서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셨다. 아말렉과의 전쟁을 이기고 나서 하나님께서는“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 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출17:14)”라고 명령하셨고, 이에“모세는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출17:15-15)”.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와 갈증과 배고픔으로 시달리던, 어찌 보면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가장 취약했던 광야시절 초기에 그들을 공격했던 아말렉의 죄성의 근원은 아각(삼상15장:사울왕)과 하만(에스더) 때로 계속해서 대를 이어 나타나 그때마다 이스라엘을 파괴시키려 시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더불어 싸우셨다. 그래서...하나님은 그것을 기록하라고, 기억에서 지우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기록의 목적은 말소의 목적의 반대라 하겠다. 말소가 기억 속의 모든 것들을 잊기 위함이라면, 기록은 정확히 그 반대로 잊지 않고 생각나게 하기 위함이다. 특별히 이 아말렉과의 전쟁을 기록하라 하신 이유는 이 전쟁처럼 악한 것들과의 전쟁에서는 승리와 패배가 가까이 있다는 순환성(cyclicality)과 함께, 결국 이런 전쟁의 최종은 우리의 승리로 끝이 난다는 언약을 영원히 기억시키시고 싶으셨던 것이다. 이 기록된 말씀은 악한 것들과의 싸움으로 지속되는 우리네 인생의 긴 여정에서 하나님 나라, 그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는 만나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친히 방문하여 찾아오사 당신 자신을 주심으로 안위하시며 함께 행하시는 [=파카드] 주님은 기억하고 권념하시는[=자카르] 분이시다 ....우리는 또한 주님 말씀과 메시지, 사건을 떠올려주시는 분을 따라 기억을 더듬어 회상하고 진정한 에무나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기억하라, 권념하라’는 말은 히브리어 ‘자카르’(zakar)이다. 이 단어의 기본 개념은 ‘기억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등의 뜻으로 사람의 정신적 활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때로 이 단어가 ‘권고하다’의 뜻으로 쓰일 경우에는 사람들의 망각을 일깨워 잊어버렸던 사실들을 떠올리고 기억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주님께서 ~에게[주님 자신이든지, 그대에게든지 이미 발생케 하시어 일으키신 사건 관련 말씀과 메시지를] 기억나도록 하여주신다))함이다. 이 경우는 주로 히브리어 ‘사역형’인 ‘히필’(Hiphil) 형태가 쓰였다. 따라서 ‘기억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자카르’는 단순히 과거의 어떤 사실을 기억하고 암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주의를 기울여 묵상하고 회상하고, 스스로를 권면하여 일깨우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영적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성경에서 이 단어가 처음 쓰인 것은 창세기 8:1에서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라는 말씀에서 ‘권념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권념’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짐승들을 ‘생각해 주신 것’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모세는 옛날을 ‘기억하라’고 명령형으로 서술하였다. 이는 기억에 대한 당위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과거의 수많은 사건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적 교훈을 깨닫기 위해 성도들은 옛날의 일들과 과거 인물들의 삶을 묵상하고 회상해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나님의 언약을 떠올리거나 나에게 말씀하시는 영적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의 결과는 때로는 ‘회개’를 불러오는 원동력이 된다. 에스겔 6:9은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하리니”라고 하였다. 또한 민수기 15:40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라고 말씀하였다. 이는 올바른 ‘기억’이 참된 회개를 불러와 하나님 앞에 거룩한 모습으로 서게 해 줌을 일깨워 준다. 따라서 성경을 읽고 상고하려는 자는 성경을 통해 ‘옛날’을 잘 기억해야 한다. 그 기억이 나의 과거의 삶을 회상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떠올리게 하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의 바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눅8:25)... "Where is your faith?" = (히브리 성경..이대로가 아니라 거꾸로 순서를 바꾸어 읽음..,,"믿음이 적은 자들아(마8:26)" = 마 에무나 케타네이 (("케타네이 에무나 마")) 요15장 묵상!!.... "거듭난 나의 영 안에 내주하여 계신, JC의 바로 그 믿음 " = 에무나!!!....이것이 이미 그분께서 이루어주신 그대로!! 그분과 하나 된 내 안에 있기에((그분이 내 안에 내가 그분 안에...내가 너희안에, 너희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복음서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믿음"은 전적으로 모두 히브리 단어"에무나"를 사용하고 있음을 명심하라...거듭난 믿는 이마다 이미 TUQ과 하나 안에 있으니...그리스도는 친히!!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길이자, 양의 문 되심으로써 하나되게 하셨고 이제 부활 생명의 그영으로서 거듭난 참 믿는이마다 그의 영 안에 들어와 내주하고 계시기에.. 주님의 물음은 "네 믿음이라 여기고 있는 그것이 바로 너와 하나이신 하나님의 전능한 믿음, 주관적 체험 통해 구체적으로 정말 생생하게 체험-확증된 임마누엘 구주 JC의 믿음이 맞느냐, 아니면 무력무능한 피조물이자 타락한 사람, 곧 육체의 피상적이며 막연한 믿음 그대로냐" 를 묻고 계심이다.. === 생생하게 발휘되는 살아 생동하는 산 믿음인[절대 기쁨, 절대 긍정, 절대 신뢰, 절대 감사, 절대 감격!!] 진정한 에무나!! .....헬레크 예호와 에트 암 헤벨 나할라 예호와 = 세굴라....((여호와의 전존재를 쏟아부어 소유 삼은바, 둘도 없는 가치의 보배/보물 ...특별한 소유이자 줄로 재어 놓은 그분의 기업, 그분의 백성이요 동행/동반자/반쪽 = 선민, 더 나아가 완전한 하나 안에서 막힘 없이 교통하여 완전히 친밀한 앎-사랑-섬김 가운데...상호 거함-상호 소유-상호 기업-상호 감상/맛봄/음미하며 찬송하며 춤추며 기뻐하며 누림 (신32:9)
===사울이 아말렉을 치다(BC1025..믹마스 전투 후 23년 경과 시범 .사울.65세...사무엘88세...15세 다윗 베들레헴에서 기름부음 받음) 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에서의 후예 중 한 족속)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르비딤에서의 기습 사건]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파카드) .......@@파카드...두가지 의미!! ......[세상 불신자, 하나님 대적자] 상벌 판단 위한 깊고 세밀한 감찰 결과, 징벌 판결 그대로 집행 처리할 집행자를 임명하여 보내어 집행하다....세다, 계수하다, 돌보다, 시찰 혹은 방문하다, 임명하다 .....[거듭난 참 믿는자] .(부르짖는 자-절규하는 자에게) 방문하여-친히 만나 사랑스레 친절과 너그러움으로 감싸며 다정히 위로 격려하며 끝까지 예정된 그 길을 끝까지 산 믿음으로 다 임마누엘 주님과 하나 되어 걸어갈 수 있도록 권고하다 ===최고의 응답은 찾아와 만나 위로하시며 하나 안에 동행인도하심..<파카드קדַפָּ<의 축복..JC== [사66:2..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욥10:12...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시106:44...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희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 고통을 권고하시며] .....<권고하다>의 히브리어가 <파카드קדַפָּ<.... 방문하다 간섭하다 찾아가다 깊이 생각하다.... 하나님께서 친히 방문하셔서 깊이 들여다 보시는 것을 의미... 하나님의 손길이 닿는 것...돌보다 주목하다의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파카드קדַפָּ<에 녹아 있다. . ...<파카드קדַפָּ<의 뜻에 가장 가까운 것이 직접 찾아 가시다....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께서 연약한 자의 부르짖음에 친히 찾아 가셔서 만나 주시는 것.... 그 연약함을 어루 만져 주시며 기억하시며 돌봐 주시기 위해서 ...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며 그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시기 때문.... 고통 가운데 있는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부르짖는 것이니, 기도로 절규하는 것 ... 마음 속의 모든 것을 주께만 아뢰어 토로하는 것 . ...... 하나님의 가장 큰 응답은 친히 함께 해 주시는 것 ... 찾아 가셔서 그 길을 함께 걸어 주시는 것 ...그 안에 모든 응답이 다 있다 ... 곧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 ...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으니 .. 그분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 <파카드קדַפָּ<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파카드(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세다, 계산하다, 돌보다, 시찰 혹은 방문하다, 임명하다'를 의미한다. 기본 의미에 있어서는 아랫사람을 감독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검사의 형태를 띨 수도 있고 또는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그 종속된 자의 환경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도록 조처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스파이저(speiser)는 이 어근이 '주의하여 돌보다, 주의하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사실상의 원래 의미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소한 용례의 절반이 종속된 자와 관련된 윗사람의 적극적 행위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러한 행위가 이 단어의 의미에 있어서 중요한 일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 70인역본이 이 단어를 '에피스켑토'나 그와 유사한 단어로 번역한 예가 가장 많다는 사실도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a) 파카드는 '세다, 계수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KJV에서는 이 단어를 110회나 "계수하다"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70인역본에서는 이 용례 중 8회만을 아리드메인(arithmein) 으로 옮기고 보통은 에피스켑테인(episkeptein) 또는 그와 관련된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용법에 있어서 이 단어의 실제 의미가 병력을 소집하거나 동원 가능한 인력을 확인하는 것이었음을 시사한다. 이 용어는 보통 군사나 레위인 또는 제사장들과 관련되어 있다. 단순한 셈이나 계수의 개념을 표현하는 여타의 히브리어 단어들도 많다. 주목해야 될 사실은 소위 민 1장의 인구조사는 것은 단지 "싸움에 나갈만한"(민 1:20) 성인 남자들만을 그 대상으로 하였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인구조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즉 그것은 "그 군대대로"(민 1:3) 싸움을 위해 병력을 조직하는 행위였다. 그것은 모세가 가데스바네아로부터 가나안을 침공할 준비를 하면서 병력을 소집한 것이다. 이와 유사한 민 26장의 계수 행위는 중복되는 기사가 아니며 별개의 자료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이는 동편으로부터 여호수아가 침공하기 위해 실시한 또 한번의 병력 소집이었다. 삼하 24장에 나오는 다윗의 "인구조사" 역시 왕의 자만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머릿수 헤아림이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모종의 군사적 모험을 감행하기 위한 준비였을 가능성이 짙다. 군대장관 요압이 소집의 임무를 맡았다는 사실과 그가 이를 강력히 반대했다는 점에 유의하라(R. L. HARRIS). (b) 파카드는 KJV에서는 57회를 "visit"(시찰하다, 방문하다)로 번역하였는데(RSV도 이 용례의 다수를 이 단어로 번역) 이 경우 본 단어는 거의 언제나 "시찰(방문)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현재는 영어의 visit에서 이 의미가 크게 퇴색되었다. 그리고 이때 또한 좋은 방향이나 나쁜 방향으로 종속된 자의 위치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는 행동을 뜻하기도 한다. 바로왕이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을 다루면서 한 사람은 왕궁에서의 그의 직위에 복직시키고 한 사람은 교수형에 처하였는데 이 기사 중의 창 40:13, 창 40:19에서 사용된 "머리를 들다"라는 문구가 본 단어와 밀접한 대등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스파이저 (Speiser)가 말한바 있다. 단어 파카드는 렘 23:2에서 두 개의 상반된 의미처럼 보이는 개념으로 상기와 유사하게 사용되었다. "시찰(방문)하다" visit가, 많은 용례에서 상해를 주거나 해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RSV는 이들 중 다수를 "벌하다" punish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수의 용례에 있어서 '시찰(방문)' visitation이라는 것이 유익한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예를 들면 창 50:24-25, 룻 1:6, 삼상 2:21, 시 8:4, H5, 렘 15:15, 렘 29:10 등이다. 사 24:22에서는 악한 세력들이 잠시 동안 하나님에 의해 갇힌 바 되었다가 여러 날 후 하나님에 의해 "시찰을 받는다"(한글개역: "형벌을 받을"). ---학자들 간에는 이 구절의 "시찰하다"가 징벌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방면을 의미하는가의 여부에 대해 의견이 대략 반반으로 나뉘는데 델리취(Delitzsch)와 칼빈(Calvin)은 후자의 해석으로 기울어진다. "시찰하다" visit라는 단어가 현대의 의미(make a call: 방문하다)로 사용되었다고 생각되는 경우는 한 곳 뿐이다(삼상 15:2, 한글개역: "추억하노니"). 여기의 모든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꽤 다른 개념으로 나타나는 수 많은 용례에 비추어 볼 때 이 구절이 일반적 용법으로부터의 예외가 아님을 추론할 수 있다. 이 단어가 "빠뜨리다" miss, "없다" lack, "결핍하다" want 등이나 그 수동태로 번역되기도 하는데(도합 약 16회) 이러한 의미가 언뜻 보기에는 상당히 다른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나 면밀히 고찰해보면 이 동사의 일반적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따라서 삼상 20:6, 삼상 20:18, 삼상 20:25, 삼상 20:27에서 다윗의 자리가 비었다든가 다윗이 없다고 언급한 것은, 자기 부하에 대한 사울왕의 감독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삼상 25:7, 삼상 25:15, 삼상 25:21에서는 가축 또는 양떼들을 잃지 않았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나발의 가축떼에 대한 다윗의 보호와 연관된다. 렘 23:4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하나도 축나지 않을 것을 언급하고 있다. 민 31:49과 삼하 2:30에서는 행방불명된 자들의 숫자 점검과 아울러 전쟁의 생존자들을 조사한 내용이 나온다. 왕하 10:19에서는 왕이, 바알 제사장들을 조사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모으라고 명령한다. 삿 21:3에서는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한 지파라도 없어지면 안될 그 심각성에 대해 말하였다. (c) 파카드는 히필형에서 종종 왕이 관리들을 임명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예레미야를 감옥에 '두었다'고 말하면서(렘 37:21),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자기의 영을 '부탁한다'고 말할 때도 히필형을 사용하였다(시 31:5, H6). 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헤렘<자취조차 남김없이 싹쓸이 처리!!> 명령...여리고 성에서의 진멸명령과 동일)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4. ○사울이 [주 명령에 의거하여]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그당시 브엘세바와 함께 유다 남방 경계를 이루는 성읍.<그 아래 에돔과의 사이에도 바란광야로 불리는 작은 규모의 광야가 있음 :: >..사무엘 닫시 이동 약탈 유목 생활하던 아말렉 거주지역은 주로 유다 남단에서 다소 가까운 광야 주변지역,.. 즉, 애굽 앞 수르에서 가데스바네아/애굽시내를 거쳐 에시온게벨에 이르는 도로를 따라 시내반도와 가나안 사이의 광야 지역 대부분....이스라엘은 가데스바네아 불순종사건으로 38년간 그 지역을 맴돌았었다)에서 세어 보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 명이라 5.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시키니라 6.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7.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8.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여호와께서 사울을 버리시다 10.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아말렉 정복 명령에 대한 불순종...분명히 인식해 둘 바는 오직 성령께서 주관하사 인도하시며 이끄실 것을 신뢰하며, 청종할 바 듣는이 나는 어찌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여쭘으로써 한걸음씩 전적 신뢰하는 믿음으로 동행하는것이 하나님 경외함일진대...하나님 말씀을 첨삭하여 [타락한 사람, 곧 한낱 육체에 지나지 않는바] 주제넘게 제멋대로 자행자지함, 제 소견에 좋은대로 행하는바 "허울좋은 겉치레의 순종"이란 절대적이신 분에 대한 불순종일뿐이요. 참생명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감 = 버려짐, 밟혀짐을 선택하는 영적 자살일뿐이요, 기름부음이자 영적 촛대를 옮겨버리심을 당하게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는것 ::: 사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 대적 아말렉을 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을 보자면...완전히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고, 여기서 사울은 그의 영적 실상/실체를 ((그 자신이 하나님의 뜻 이룸을 막아서는 아말렉 되었음을!!)) 완전히 철저하게 드러낸바, 하나님과 사무엘에게 (하나님 왕국의 대리왕의 그릇으로서는 전혀 자격 없음, 단지 전쟁수행용도로만 쓰일뿐) 버림받았고 그에게서 촛대를 옮기고 계셨다. ........예표론에서 아말렉은 육체--타락한 사람---을 상징함 ::: 아말렉은 예표론에서 육체, 곧 타띾한 사람[=옛사람 나, 옛자아]을 상징한다.(출17:8-16, 창6: 3.상 롬3:20 상) ...성경의 신성한 계시는 하나님이 육체를 창조하시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사람은 뱀의 유혹에 미혹되어 넘어가 타락하여 결국 육체가 되었고, 창6:3절은 사람이 육체가 되었기에 하나님이 그와 더불어 어떤 것도 하실 수 없으심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 롬 3:20절 상반절은.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육체]는 육체에 속한 사람 그 자체를 뜻한다. 모든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 우리 그리스도 안의 믿는이들은 구원받았지만, 우리 중 대부분이 여전히 (주 보시기에는 멸절판결하신바 이미 죽었고 그 최종처리만 기다리고 있다!!) 육체 안에( 육체로!!) 살고 있을 수 있기에 !! " 성령을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말씀하고 계신다. ((바울은.."[십자가보혈/말씀/성령을 누림으로-항기쉬기범감!!--이를 통해서 주 하나님의 뜻 이루는바!!]..나는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노라, (거듭난 존재인 내 안에 사는 이는) [옛사람, 육체로서, 심지어는 거듭난 존재로 볼 때도]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라"고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충만하여 넘쳐나는 성령께서 주도하시며 이끄시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시는 삶의 모본을 보여주고 있다..))...((오직 주께 붙어 있어!! 하나 됨 안에 머물러 그리스도를 살아갈 때)) 성령따라 하나되어 그리스도로 살 때..육체 안의 사단-죄성은 신진대사적 변화를 통해 저절로 처리되고 밀려나 진멸되었음을 알게되리라!! .......온 우주 가운데서. 하나님의 실지 대적은 사단이 아니라 "육, 곧 성령을 따라 살지 않고 육체에 종노릇하며 육체에 머물러 육체에 속한자로 사는 한, (거듭났다 해도!!) 바로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임을 명심하여야 한다!!(롬8:7) ...[회복(주님께 돌이켜 JC를 구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함으로써 부활생명의 성령이 그의 영에 내주하고 계시는바) 안에서 교회 생활 하는 거듭난 믿는이라해도 여전히] 우리의 육체는 타락한 사람, 곧 죄의 몸이니, 완전히 사단과 하나이다. 육체가 없다면 사단은 하나님을 거스려 싸울 길이 없을 것이다. 보라!!, 교회 생활 안에서 모든 문제는 육체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이 가장 다루시기 어려운 것이 육체이다!! .......거듭난 믿는이로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영 안에 있거나(성령따라, 그영따라 하나로 행하거나) 육체 안에 있을 수 있다. 그 중간이란 없다...우리가 우리 영을 사용할 때, 이상이(vision = 빛 되신 주님이 비추심따라 보게 하시는 바 영적 시력, 곧 영적 분별력) 분명하며 교회와 인도자 장로들과 함께 기쁨 안레서 주님의 놀라우심을 찬양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 안에 머물고 있다면, 이상은 흐려지게 될 것이요, 비판과 갈등이 교회 내에 가득하고, 우리 육체가 너무괴롭힘 당해서 정말 교회 생활로부터 떠나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된다. 바로 이 문제들의 근원인 육체 안에 있음을 인식할 때마다, 우리는 [결코 베들레헴에 닥친 1년 흉년동안 그리스도의 생명 산실을 섣부르게 지레짐작으로 떠나 모압으로 가버렸던 엘리멜렉처럼!! 떠나서는 안된다...견디고 버티고 인내로 기도하면서 주님의 용서를 구함이 마땅하고 회복 안으로 이미 우리를 이끌어 한 되게 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출17:8-16절까지 그림을 되짚어 보라....중보기도자 모세는 보조자 아론(제사장)-휼(왕)과 함께 하나되어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지고 산꼭대기에 서서 기도하고 있었으며, 그 기도를 들으시고 주께서 친히 앞장서서 싸우는 군대로서 힘과 능력 공급하시는 바 여호수아는 택한자들과 함께 아말렉과 싸워 패배시켰다....그후 하나님은 그분이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루리라"고 선포하셨다(16절)...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말렉이 야기시킨 2좌절을 얼머너 엄중하게 여기셨는가를 분명히 부여준다. 삼상15:2절의 때에 이제 하나님은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것으로 인해 아말렉을 진멸-멸절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사울은 하나님의 백성의 지도자(나기드)로 기름부음 받은후, 암몬과 블레셋족속을 패배시켰고...결국 아말렉 사람들이 일어나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지는 것을 방해-좌절시키고 있었으며, 이제 사울은 그들을 완전히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분명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다 죽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유일한 대적인 육체를 대표하는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사울에게 명령하실 때, 하나님은 지혜롭게 사울을 시험하시기 위해 그를 한 지점((선택적 자유의지 발휘 가능한 지점))에 두고 계셨다. .........결과적으로, .사울은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으며, 변명에 급급했고 참 회개에 둘어가려 하지도 않았다!!...사울은 아말렉을 치고 그들의 왕 아각을 사로잡았다(7-8상).. 그들의 백성을 멸했지만,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8-9상)"...사울에게는 이것이야말로 그가 스스로 부요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진정!! 타락한 사람, 곧 육체의 소욕을 이루려 함이었는데, 오해와 착각 가운데 빠져 있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망할 생각으로!! 그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자신의 군주국을 세우려 했고 그것을 결코 끝까지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사무엘은 분명히 그의 어떠함을 그대로 행하여 자기를 폭로한바 그릐 행함에 대해 주님의 입의 말씀으로 명쾌하게 지적하여 드러내고 있었으니...그것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분명히 깨닫게 된 바 정신차려 회개하며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주께 자복하고 다 쏟아내버려라..진정으로 돌이켜 회개하고 거듭나야만 하며, 거듭난 자의 영에 속한 자의 생명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심이었다!!(다윗은 [나단을 통해 일깨워주신바]그 말씀 듣고서 주께로 돌이켜 새 삶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고집하며 자복-회개함 그 자체를 거절하고 있었기에..."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선포하기에 이르고 있었다....그제서야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비로소 범죄를 인정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백성 탓으로-백성을 말씀보다 더 두려워 하였다!! =백성이 하나님인가?...하나님 없이는 백성이 없다!!...그대가 주 보시기에 참되다면..백성은 주님이 얼마든지 필요한 만큼 붙여주신다..- 돌리고 있었다!!)) ... "*24.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25.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26.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27.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28.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29.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30.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여호와 하나님께 자복하여 용서를 구해야 함에도 ((방향이 여전히 주께 향함이 아니요..그냥 다만 면피용으로)) 사무엘에게 자신을 용서해 달라 구하고 있었으며!!,(장로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만은.. 그와 함께 돌아가서 여호와께 경배드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해 달라 하고 있었던 바, 사무엘은 아각을 처리해야 하기에...(그리고, 주님 백성들의 혼란을 염려하고 있었기에... 함께 동행하고 있었다) 그러한 와중에도!! 사무엘은 여호와의 엄중하신 말씀이 이미 주어졌기에!! 분명히 여호와는 당신께서 뜻하신 바를 변개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그대로 선포하고 있었다..((그대에게도 !! 미혹된 바 그러한 유혹에 넘어갔었음을, 그런 경험 분명히 있으되..주께서 [주께서 주신바 아닌것마다!!] 그것을 nothing으로 여기고 잊어버리라, 그리고 너의 참 의미요 생명 근원인 구원자 하나님, 내게로 돌이키고 바로 너의 모든 공급원천인바 나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와 회복 = 부활 생명 삶 안에 머물라" 권고하심따라. 주께 나아가 전 존재를 쏟아 통곡하며 주님의 눈물을 흘리게 한 죄마다 전적으로 자복하고 돌이킴으로써 새롭게 하여 주셨던 지난날의 쓰라린 아픔의 경험 있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보라, 사무엘을 사울에게 보내시기전에..여호와께서는 사무엘에게 사울이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다 철저히 행하여 이루지 않았으며 다만 그럴듯하게 변명하며 결코 돌이키려 하지 않고 있기에!! 그분이 사울을 왕으로 임명하신 것을 후회한다고 말씀하셨고...사무엘은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울 수 밖에 없었다(10-11절) 12. [하나님 마음과 하나로 그분의 지시따라...주님 말씀 하신바 분명한 뜻 드러내 전달하고, 아각 처리를 위해]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14.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라 15.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1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 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말씀하소서 ***[433.귀하신주여] 17.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25.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동상이몽, 화이부동의 "지극히 어색한!!" 침묵의 동행)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무엘이 아각을 처형하다 32. ○사무엘이 이르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끌어 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이르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33. 사무엘이 이르되 네 칼이 여인들에게 자식이 없게 한 것 같이 여인 중 네 어미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다 34. ○이에 사무엘은 라마로 가고 사울은 사울 기브아 자기의 집으로 올라가니라 35.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아침 일찍 사울을 찾아가는 사무엘은, 갈멜에 자기를 위해(자신의 군주국을 부요케 한) 승리 기념비를 세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무엘을 만난 사울로부터 그 자신은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였노라고 말하였고, 사무엘은 "그렇다면 지금 내 귀에 들려오는 바 양과 소 울음소리는 무엇이냐" 묻는바, 백성들이 여호와께 제사드리기 위해 가장 좋은 소와 양을 따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멸하였으며 아말렉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변명하며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던바, 사무엘은 거기서 중단시키고...여호와께서 전날밤 그에게 말씀하신 그대로를 전해준 다음..."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었던바 왕에게 기름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분명히 명하신바 가서 죄인 아말렉사람을 진멸하여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신 그대로 청종하지 않고 탈취하기에만 급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다고 말했던 바, 사울 자신은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했지만 백성들이 (길갈에서 여호와께 제사 드리려) 양과 소를 전리품으로 취했다고 여전히 주장하고 있었다. . ...그 때 사무엘은, 15:22-23절에 가록된 매우 강한 말을 사울에게 했다 [삼상15:22-23... *22.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무엘은 여기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사울, 당신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드리기 위해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겨두었다고 말하지만..하나님은 당신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에게 아말렉과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는 대신,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해 얼마의 소와 양을 간직해 두었고, 오늘 아침 당신 자신을 위해 승전 기념비를 세웠으며 하나님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세우지 않았으니....보십시오,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낫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곧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사울, 당신은 하나님을 거스려 반역했고, 반역은 사술의 죄와 같으며 또한 무당의 죄와도 같습니다. 당신이 행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악한 영의 뜻을 수행하려는 목적으로 앇한 영을 접촉한 것과 똑같이 악합니다....당신은 당신의 머리이신 하나님께 복종치 않고, 주제넘게 당신의 방식과 당신의 뜻에 따라 행했습니다. .... 이제 당신의 왕권은 끝났습니다.... 당신이 여호와의 말씀을 거절했으므로, 그분은 당신이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하셨습니다.".....사울은 그리하여 하나님을 거스리는 반역자로, 하나님의 원수로 그 정체가 드러났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우리의 육체로는 그 어떠한 것도 하지 않도록 이러한 :사울의 불순종 이야기"에서 경고받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그분께 합당하도록!! 그분을 경외하고 사랑함으로써 두려워하고, 우리 육체란 다만 "지옥불의 불쏘시개 감이자 십자가로 처리되어야 할 무용지물" 뿐임을 반드시 !!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보라!! ((전적으로 무죄한))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이땅에 오셔서 역사상 모든 인류의 죄를 전가 받고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을 통해!!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우리 영을 거듭나게 하시려고 우리 안으로 오셨고, 이제 그분은 우리 영 안에서 친히 사시고, 움직이시며, 행동하시어 그분의 생명 유기체인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해 거듭난 우리를 생명 노선으로 인도하는데 앞장서고 계신다.. 이 유기체,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이며, 장차 올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서 완성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의 공과를 배워야 하고, 그 정과 욕심을 우리 육체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야 하며, 항상 그리고 모든 것을 십자가 위에 두어야 한다(갈5:24).... 우리는 신실하게 우리와 하나이신, 생명주는 그영, 완결되신, 우리 영 안에 재주하시는 영이신 주님을 좇아 우리의 영을 훈련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왕국, 곧 내재적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건축될 것이다....이것이 거듭난 참 믿는이인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결코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자신을 위한 군주국을 세우려고 시도해서는 안된다.. --- -------- [NASB]제15장 1. Then Samuel said to Saul, "The LORD sent me to anoint you as king over His people, over Israel; now therefore, listen to the words of the LORD. 2. "Thus says the LORD of hosts, 'I will punish Amalek [for] what he did to Israel, how he set himself against him on the way while he was coming up from Egypt. 3. 'Now go and strike Amalek and utterly destroy all that he has, and do not spare him; but put to death both man and woman, child and infant, ox and sheep, camel and donkey.' " 4. Then Saul summoned the people and numbered them in Telaim, 2000000 foot soldiers and 100000 men of Judah. 5. And Saul came to the city of Amalek, and set an ambush in the valley. 6. And Saul said to the Kenites, "Go, depart, go down from among the Amalekites, lest I destroy you with them; for you showed kindness to all the sons of Israel when they came up from Egypt." So the Kenites departed from among the Amalekites. 7. So Saul defeated the Amalekites, from Havilah as you go to Shur, which is east of Egypt. 8. And he captured Agag the king of the Amalekites alive, and utterly destroyed all the people with the edge of the sword. 9. But Saul and the people spared Agag and the best of the sheep, the oxen, the fatlings, the lambs, and all that was good, and were not willing to destroy them utterly; but everything despised and worthless, that they utterly destroyed. 10. Then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Samuel, saying, 11. "I regret that I have made Saul king, for he has turned back from following Me, and has not carried out My commands." And Samuel was distressed and cried out to the LORD all night. 12. And Samuel rose early in the morning to meet Saul; and it was told Samuel, saying, "Saul came to Carmel, and behold, he set up a monument for himself, then turned and proceeded on down to Gilgal." 13. And Samuel came to Saul, and Saul said to him, "Blessed are you of the LORD! I have carried out the command of the LORD." 14. But Samuel said, "What then is this bleating of the sheep in my ears, and the lowing of the oxen which I hear?" 15. And Saul said, "They have brought them from the Amalekites, for the people spared the best of the sheep and oxen, to sacrifice to the LORD your God; but the rest we have utterly destroyed." 16. Then Samuel said to Saul, "Wait, and let me tell you what the LORD said to me last night." And he said to him, "Speak!" 17. And Samuel said, "Is it not true, though you were little in your own eyes, you were [made] the head of the tribes of Israel? And the LORD anointed you king over Israel, 18. and the LORD sent you on a mission, and said, 'Go and utterly destroy the sinners, the Amalekites, and fight against them until they are exterminated.' 19. "Why then did you not obey the voice of the LORD, but rushed upon the spoil and did what was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20. Then Saul said to Samuel, "I did obey the voice of the LORD, and went on the mission on which the LORD sent me, and have brought back Agag the king of Amalek, and have utterly destroyed the Amalekites. 21. "But the people took [some] of the spoil, sheep and oxen, the choicest of the things devoted to destruction, to sacrifice to the LORD your God at Gilgal." 22. And Samuel said, "Has the LORD as much delight in burnt offerings and sacrifices As in obeying the voice of the LORD? Behold, to obey is better than sacrifice, [And] to heed than the fat of rams. 23. "For rebellion is as the sin of divination, And insubordination is as iniquity and idolatry. Because you have rejected the word of the LORD, He has also rejected you from [being] king." 24. Then Saul said to Samuel, "I have sinned; I have indeed transgressed the command of the LORD and your words, because I feared the people and listened to their voice. 25. "Now therefore, please pardon my sin and return with me, that I may worship the LORD." 26. But Samuel said to Saul, "I will not return with you; for you have rejected the word of the LORD, and the LORD has rejected you from being king over Israel." 27. And as Samuel turned to go, [Saul] seized the edge of his robe, and it tore. 28. So Samuel said to him, "The LORD has torn the kingdom of Israel from you today, and has given it to your neighbor who is better than you. 29. "And also the Glory of Israel will not lie or change His mind; for He is not a man that He should change His mind." 30. Then he said, "I have sinned; [but] please honor me now before the elders of my people and before Israel, and go back with me, that I may worship the LORD your God." 31. So Samuel went back following Saul, and Saul worshiped the LORD. 32. Then Samuel said, "Bring me Agag, the king of the Amalekites." And Agag came to him cheerfully. And Agag said, "Surely the bitterness of death is past." 33. But Samuel said, "As your sword has made women childless, so shall your mother be childless among women." And Samuel hewed Agag to pieces before the LORD at Gilgal. 34. Then Samuel went to Ramah, but Saul went up to his house at Gibeah of Saul. 35. And Samuel did not see Saul again until the day of his death; for Samuel grieved over Saul. And the LORD regretted that He had made Saul king over Israel. ----------- 사무엘상 15장 (개요) 본 장에는 사울이, 아말렉을 완전히 멸망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왕위에서 탈락되는 내용이 있다. 사울은 그의 전쟁과 승리를 통해서 그의 이름을 자랑하며 영원히 빛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잘못된 처사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을 멸망의 길로 떨어뜨렸으며, 자신의 명예를 진토 속에 버림받게 했다. 1. 사울은 아말렉을 완전히 섬멸하라는 명령과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1-3). 2. 이 원정을 위한 사울의 준비(4-6). 3. 사울의 성공과 부분적인 사명 성취(7-9). 4. 사무엘에게서 받은 심문 그리고 그가 내놓은 많은 너절한 자기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내려진 선포(10-31). 5. 아각의 처형(32, 33). 6. 사울과 사무엘의 마지막 이별(34, 35). ----------- 아말렉을 진멸하되 아각을 살림(삼상 15:1-9) Ⅰ. 사무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울에게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라고 엄중히 요구했다. 그리고 그는 사울이 순종하는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하나의 구체적인 사건을 가지고 그를 시험하고자 한다고 명백히 가르쳐 주었다(1절). 이처럼 그의 순종을 시험하고자 한다는 것을 밝혔으니 만큼 그의 불순종의 죄는 더욱 큰 것이 되었다. 1.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이런 말을 했다.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주셨다.” 하나님은 왕에게 왕의 권세를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왕이 하나님을 위해 그 권세를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왕을 영광스럽게 하여 주셨다. 그러므로 왕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것인가를 배워야 한다. “하나님이 그대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왕은 이스라엘의 분쟁들을 해결하고 질서를 지켜 나가야 한다. 왕은 이스라엘을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왕도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속한 자며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다른 사람들보다 높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께 대해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이런 명령을 사울에게 전해 줄 만한 사람이다. 2. 사무엘은 사울에게 일반적인 면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명령을 그에게 내리시든지 그는 꼭 순종하여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 순종하여야 할 강력한 의무를 우리에게 부과시켜 주신다. 우리는 마땅히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시 116:12). Ⅱ. 사무엘은 사울에게 지금까지 그가 행한 어떤 것보다도 더욱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를 지적했다. 사무엘은 그 명령의 권위를 더욱 높이기 위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라는 전제를 달았다. 사무엘은 또 그 명령의 엄중함이 지나친 것이 아니라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을 내가 기억하는가”(2절)라는 말을 전해 주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 내셨을 때 아말렉 사람들이 그들을 해하였기 때문에 아말렉과 싸우신 일이 있다. 그 싸움의 이야기는 출애굽기 17장 8절 이하에 있고 그들의 죄에 대한 책망은 신명기 25장 18절에 있다. 그들은 비열하게 이스라엘 사람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때 하나님은 아말렉과 대대로 싸울 것이며, 아말렉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시겠다고 맹세하셨다. 이러한 일이 이제 사울에게 부과되었다(3절). “가서 아말렉을 치라. 이제 이스라엘은 강하여졌고, 아말렉의 불의도 극도에 이르렀다. 이제 가서 그 저주받은 백성을 일소하라.”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 “남녀와 소아와 젖먹이”를 죽이되 동정을 해서 남기지 말고,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진멸하되 욕심 때문에 한 마리라도 남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분명한 명령을 받았다. 1.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특히 그들이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서 그들에게 해를 끼친 자들은 조만간에 분명히 그 일이 계산되었다. 2. 하나님은 멸망시키고자 한 자에 대해서도 오래 기다리신 일이 있다. 그 선포가 즉시 시행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3. 그러나 그 시행이 늦어지기는 하되 아주 지연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에 대항해서 싸운 일에 대한 보복의 날은 드디어 온다. 하나님의 정의는 서서히 작용하시지만 틀림없이 작용하신다. 4. 심판이 늦어지면, 그만큼 그 심판은 가혹하다. 5. 하나님은 그의 일을 시행할 가장 좋은 도구를 선택하신다. 이 일은 피를 보아야 하는 처절한 일이다. 그러므로 사울은 그 일을 해야만 하는 거칠고 지독한 사람이었다. Ⅲ. 사울은 여기에서 그의 군대를 소집하고 아말렉 땅을 습격했다. 사울이 전쟁터로 이끌고 간 군사의 수는 보병이 20만 명이라는 거대한 숫자였다(4절). 그가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며, 그 승리가 모험에 가까웠을 때 그를 따랐던 군사의 수는 6백 명에 불과했다(13:15).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말렉과 싸우기 때문에 그 승리가 확실할 때는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몰라도 이번 경우에는 유다 지파에게는 퍽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전체 모인 수의 20분의 1인 1만 명이라는 극히 적은 수밖에 모이지 못했다. 한편 (레위 지파는 제외한) 다른 열 지파에서는 20만 명이 모였다. 유다 지파의 영광의 날은 가까이 왔다. 그러나 아직 이르지 못했다. 사울은 군사의 수를 들라임에서 계수했다. 그 지명은 어린양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린양처럼 세었다고 보기도 하며, 훗날 유다 사람들이 숫자를 세는 방법과 같이 유월절 어린양을 세듯, 다시 말하면 열 명에 대해 어린양 하나를 쳐서 세듯이 세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사울은 군사들을 이끌고 아말렉의 수도인 아말렉 성으로 이끌고 갔다. 그것은 사울이 그들을 약올려 전쟁을 일으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Ⅳ. 사울은 아말렉 사람들 중에 살고 있던 겐 사람들에게 이제 아말렉을 칠 터이니 너희는 그들 중에서 떠나라고 다정한 충고를 했다(6절). 이때 사울은 매우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정성을 다해서 그들에게 충고했는데 아마 사무엘의 지시를 따라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겐 사람들은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의 가족이나 친척들이었다. 그들은 천막을 치고 살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쉽사리 다른 곳으로 옮길 수가 있었다. 그 당시 그들의 대부분이 아말렉 사람들 가운데 살고 있었다. 그들은 비록 장막을 치고 살았지만 자연적인 요새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디서든지 살 수 있는 용감한 족속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보금자리를 바위 위에 두고 있었다”(민 24:21). 발람은 그들이 쇠미하리라고 예언한 바가 있다(민 24:22). 그러나 사울은 그들을 진멸할 수가 없었다. 1. 사울은 그들의 조상이 애굽에서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었던 친절을 기억했다. 이드로와 그의 가족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광야를 지날 때에 그들에게 크게 도움을 주었으며, 그들의 눈 역할을 해 주었다. 그런데 이제 오랜 후에 그들의 후손에 대해 이 일이 기억하신 바 되었다. 이처럼 선한 사람들은 그들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유산으로 남겨 놓는다.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가 무덤에 들어간 뒤에 우리의 선행의 열매를 거두어 가진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베푼 친절을 몰라보는, 불친절한 분이 아니시다. 그들은 마지막 큰 날, 의로운 자가 부활할 때에 기억하신 바가 되며, 보상을 받게 된다. “내가 굶주렸을 때에 너희가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는 칭찬을 듣는다. 겐 사람들의 조상들이 베푼 온정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동시에 아말렉 사람들의 조상이 행한 악행을 벌하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뚜렷이 나타내셨다. 좋은 일을 후손에게 물려주게 하시는 하나님이 왜 궂은 일도 후손에게 물려주게 하시지 않겠는가? 그의 백성들을 돌봐 주시는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시고, 그들을 저주하는 자들을 저주하신다”(민 24:9; 창 12:3). 그들은 그들이 받은 친절에 대해서도 이로 갚을 수 없고, 그들이 받은 상해에 대해서도 스스로가 보복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두 가지를 모두 하여 주신다. 2. 사울은 아말렉 사람들 가운데 있는 그들의 장막을 옮겨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아말렉 사람들 중에서 떠나 내려가라”고 했다. 하나님은 진노의 심판을 땅에 내리고자 하실 때에, 귀한 자와 타락한 자를 구분하시며, 온유한 자들을 그의 노여움에서 가려 주시기 위해 애쓰신다. 하나님의 원수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그것은 그들의 죄에 참예하지 않고 그들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계 18:4). 유다인들에게는 이런 말이 있다. “악인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리고 악인의 이웃에게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Ⅴ. 사울은 아말렉과 싸워 이겼다. 그것은 전쟁에서의 승리라기보다는 악인에 대한 단죄를 처형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 이유가 정당하고, 그 소명이 분명한 만큼 그 문제는 조금도 애매모호한 점이 없다. 사울은 “아말렉 사람을 치고”(7절), 그 모든 백성을 진멸했다(8절). 이제 그들은 그들의 조상의 죄의 대가를 값비싸게 치르었다. 하나님은 때로 죄의 대가를 보류했다가 그 자손들에게서 물으신다. 그들은 우상 숭배자였고, 그 밖의 다른 죄들도 많이 범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해서 마땅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물으시고자 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스라엘 땅을 전쟁터로 만들었던 그들의 죄까지도 함께 물으셨다.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심판은 신비한 것이오며! 당신의 정의는 너무나 뚜렷하옵나이다! Ⅵ. 그러나 사울은 그의 일을 반밖에 시행하지 못했다(9절). 1. 사울은 아각을 살려 두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과 같은 왕이었기 때문이며, 아마 상당한 양의 몸값을 받아내기를 바라서 그랬는지 모른다. 2. 사울은 소와 양의 좋은 것들은 남기고, 가치 없는 것들만을 진멸했다. 그 때 많은 아말렉 사람들이 그들의 재산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도망갔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이후에도 아말렉에 대한 말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사울은 자기 수중과 자기의 세력 하에 들어온 아말렉 사람과 그 재산들을 모조리 진멸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다. 보복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만큼 사실상 진멸된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를 위한 희생물이었다. 그러므로 사울이 이때 상처나고, 병들고, 다리를 절며 그리고 파괴한 것들만을 진멸하면 족하고, 자기의 목장과 식탁을 위해서는 가장 좋은 것과 기름진 것을 남겨놓은 것은 실로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이었다. --------- 하나님의 버림받은 사울(삼상 15:10-23) 사무엘은 아말렉을 진멸하는 문제에 대해 사울에게 명령한 그의 명령이 잘 시행되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사울을 방문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가 엄격하다는 것과 이에 반대인 인간의 마음은 배반하기 쉽고 속임수가 많다는 확실한 실례를 볼 수 있다. Ⅰ. 이 문제를 두고 하나님과 사무엘 사이에 은밀히 말을 주고 받은 것을 볼 수 있다(10, 11절). 1.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이를 사무엘에게 알려 주었다.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라.” 하나님의 후회는 우리의 후회와 같은 마음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방법과 처분의 변화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변경하지 않으신다. 다만 방법의 교체를 원하실 따름이다. 그 변화는 사울에게 있었다.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말씀을 사울의 이지러진 복종과 지나친 욕심에 대해 내리셨다. 그리하여 사울은 스스로 하나님을 그의 적으로 만들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왕국을 맡기고, 왕국에 속한 영예와 권세를 그에게 주신 것에 대해 후회하셨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은 어떤 한 인간에게 지혜와 은혜 그리고 그의 두려움과 사랑을 주신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의 이런 은사와 소명은 후회가 따르지 않는 것들이다. 2. 사무엘은 애통했으며 그런 일이 없기를 원했다. 사울에게 내려졌던 하나님의 은혜가 몰수당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시기로 결심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사무엘은 근심하고, 그러한 명령이 사울에게 실현되지 않도록 그를 위해 중재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온 밤을 새워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다른 사람들은 침상에 누워 잠자고 있을 때, 사무엘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으며, 하나님께 매어달렸다. 사무엘은 그 자신이 정권에서부터 밀려 나온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또 어떤 사람들처럼 그의 뒤를 이은 사울이 그처럼 속히 물러나게 되었다고 은근히 좋아하지도 않았다. 반면에 사무엘은 사울의 안정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으며, 그에게 비참한 날이 이르지 않기를 원했다. 죄인이 버림받는 것을 선인들은 슬퍼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Ⅱ. 사무엘과 사울 사이에 공공연히 말을 주고받은 것을 볼 수 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이 무거운 소식을 가지고 길갈로 갔다. 아마 사울이 출전하기 전에 길갈에서 만나기로 악속했던 것인지 모른다. 사울이 길갈로 내려갔다(12절). 그곳은 사울이 왕으로 등극한 곳이다(11:15). 이제 사울은 자기가 순종을 잘 했다는 것이 인정받음으로써, 다시 한 번 그곳에서 왕위가 더욱 확고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이 유다 산지에 있는 도성인 갈멜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보다는 자기 영광을 구해서 승전비를 세웠다는 말을 들었다. 사울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념비를 (혹은 손을) 세웠다. (사실 그는 자신의 승전을 과시하는 일보다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일이 더 급선무였다). 그가 화려한 행렬을 지어 길갈로 “돌이켜 행하여 내려갔다”라는 표현을 보아서 위세 당당하게 길갈로 개선 행진해 들어간 것 같다. 그러한 곳에서 사무엘은 사울을 만났다. 1. 그리고 거기서 사울은 사무엘에게 자기의 순종을 자랑했다. 이것을 사울은 다음과 같은 인사로 표시했다(13절). “원컨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당신이 보내온 전갈을 나는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그때 그는 철면피가 되지 않았다면 자기가 순종했노라고 주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울은 사무엘의 책망을 막아보려고 했다. 이처럼 죄인들은 그 자신을 정당시함으로 “여호와의 심판”을 피해 보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직 여호와의 심판을 피하는 길은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길 뿐이다. 자기의 신앙을 극구 자랑하는 자에게는 편견과 위선이 없지 않다고 보여진다. 2. 사무엘은 사울의 명백한 불순종의 표시를 가지고 그에게 죄가 있다고 선포 했다. “당신이 여호와의 명령을 완전히 준행하였나이까? 그렇다면 저 양들의 소리를 어찜이니이까?”(14절). 사울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도 그의 행한 바에 의해 크게 신세 지는 바가 많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이 사울의 신세를 져야 할 분이 아니시라는 것과 사울이 하나님께 거스르는 행위를 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증거로서 “양들과 소들의 울음소리”를 내세웠다. 아마 사울은 자기의 승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그 짐승을 행렬의 후미에 붙여서 이끌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것들이 그를 해하는 증거품들이라고 호소했다. 그것만을 가지고도 사무엘은 사울의 거짓을 완전히 반증한 셈이다. 짐승들의 울음소리는 (금과 은의 녹과 같이, 약 5:3) “그를 반박하는 증거” 가 되었다. 그럴 듯한 거짓이나 위선은 언제나 그리고 여러 번 가장 뚜렷하고 거절할 수 없는 증거에 의해 반박받고 반증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증거를 반박하고 있는 그들의 육체에의 탐닉과, 세상에의 사랑과 그들의 욕정과 무자비 그리고 거룩한 의무에 대한 태만 등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3. 사울은 이러한 책망에 대해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했다(15절). 아말렉 사람들의 양과 소들을 그가 끌고 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자기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1) 그것은 자기의 잘못이 아니요, “백성들이 남긴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사무엘의 특별한 명령인 줄을 알면서도 사울의 특별한 명령이 없이 백성들이 감히 그런 일을 했다는 투로 말했다.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을 비난하며, 그 잘못을 자기 탓으로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 죄란 자기의 자식이면서도 누구나 자기 집 문 앞에 세워 두기는 싫어한다. 그 잘못을 유혹자나 동료나 또는 단순히 일한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고 자기의 죄과로 고백하지 않는 것은 자기의 회개치 않는 마음을 속이는 것뿐이다. (2) 좋은 계획이 있어서 그랬다고 이를 정당화했다. “그것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그랬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일은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인 만큼 당신은 이 일에 대해서 나무라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짐승들을 남겨 놓은 사울과 백성들의 궁색한 변명이었다. 또 설사 그것이 사실이었다고 해도 그들의 처사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도둑질한 것으로 번제를 드리는 것을 미워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짐승들을 전쟁터에서 그에게 제물로 바치라고 지시하셨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제단에서 제물로 드리려고 가져왔다고 해서 고마워하실 것이 없으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방법과 하나님 자신이 지시하신 법대로 섬김을 받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잘못된 방법을 정당화하여 주지 않으신다. 4. 사무엘은 그의 변명을 무효화 내지 무시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심판을 내렸다. 사무엘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만을 전했다(16절).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도저히 그처럼 심한 책망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목사가 자기에게 너무 심한 말씀을 한다고 불평하는 자들은 이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있는 한 그는 다만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며, 그에게 주어진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기서 사울이 말한 것과 같이 다만 “말씀하소서”라고 말해야 한다. 사무엘은 그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전했다. (1) 사무엘은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그를 왕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기억하게 했다(17절). 하나님은 그의 상태가 낮을 때 그를 기억하여 주셨고, 그의 심령이 낮은 것을 보시고 그에게 보응하여 주셨다. 귀하게 되거나 부하게 된 자들은 때로 그들의 비천한 출발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처럼 귀하게 되었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언제나 그를 그처럼 귀하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알아보아야 한다. (2) 사무엘은 사울이 실시해야 했던 하나님의 명령이 얼마나 쉬운 명령이었던 것인가를 밝혀 주었다(18절).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셨다”라고 했다. 그 일이 그처럼 쉽고 그 성공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 일을 전쟁이라고 하지 않고 길로 보낸다, 즉 여행을 보낸다는 말로 표현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철천지원수를 멸절시키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다. 사울이 만일 그 자신을 거부하고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아말렉에 속한 모든 것을 진멸했다면 그는 실패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이 싸움 때문에 비난을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3) 그러므로 사무엘은 이 싸움에서 스스로의 이익을 도모했으며, 스스로를 부하게 하고자 했던 것이 얼마나 용서받지 못할 일인가를 보여 주었다(19절). “어찌하여 탈취하기에만 급하였으며, 왕 자신을 위해 기를 쓰고자 하는 다른 마음을 지님으로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켰나이까?” 돈을 사랑함이 악의 뿌리가 됨을 보라. 그리고 또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는 것은 가장 큰 죄가 됨을 보라. 그것은 불순종이다.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셨나이다.” 5. 사울은 자기에게 내려질 단죄를 모면하기 위해 여러 번 자신에 대해 변명했다(20, 21절).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였으며, 내가 하여야 할 일을 다했습니다.” 하고 변명했다. 그는 자기 생각으로 볼 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보았다. 그처럼 그는 자기 자신이 볼 때 하나님보다는 자기가 더 지혜롭다고 보았다. 하나님은 그에게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렇지만 그는 명령을 수행하면서 아각을 살려 두었다. 그는 아각을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처럼 육체에 속한 악한 마음은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의 생각과 같은 정도로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