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하5장 [312.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623. 주님의 시간에]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440.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430. 주와 같이 길 가는것]
@@@[시온산] 시온성, 다윗성(=시온산성)@@@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삼하 5:7) .....시온(Zion)은 '요새'란 뜻으로,예루살렘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구릉(丘陵)의 이름이다(풀핏 주석). 그런데 여부스족속에 의해 이곳에 세워진 산성을 다윗이 빼앗아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이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시온'은 광의적으로 예루살렘 전체를 묘사하는 말로 곧잘 사용되었는데(왕하 19:21; 사 3:16; 슥 2:10),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었다(사 24:23;옵 1:17). ....."그때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어 자기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다스리실 것이며 그와 같은 영광 때문에 해와 달이 무색할 것이다."(이사야 24:23)......"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22-24) ......본문에 나타난 세 가지 호칭(시온산,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동의어이며 하나를 가리키는 다양한 표현이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집이라고도 불렸으며 이스라엘 지파들이 만나던 장소였고, 영광스러운 하늘 도성의 기초로 불려지기도 하였다(LXX 사 28:16; 54:11-14). 이러한 시온 산이라 불린 '하나님의 도성'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은유로서(히 12: 28절; 겔 48:35; 계 3:12) 새 언약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미래에 완전히 소유할 나라임과 동시에(히 13:14) 이미 소유하고 있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나라이다(28절). •시온산과 세일 산 가나안의 시온산이 언약의 땅을 상징한다면(시 87:1-5), 세일 산은 에돔을 대표하는 산으로서 이방인의 요새를 의미한다(겔 35:2,15). 이 산은 사해와 아카바 만(gulf) 사이의 아라바 동쪽 지역에 위치해 있다. 에서는 아마도 산악지대인 이 땅을 전쟁을 통하여 점령하였거나 아니면 거주민 호리 족속과의 통혼을 통하여(2절) 점차 자신과 후손의 거주지로 차지해 나갔을 것이다. 한편,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발 붙일 만큼의 유업도 얻지 못하였으며(행 7:5),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헤브론 근처의 막벨라 밭을 사라의 매장지로 사기전까지는(창 23장)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그와 동일한 약속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삭과 야곱도 그 약속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삭과 야곱도 그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하고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들은 그 때에 '장막에 거하였다'. .....'장막에 기거했다' 는 표현은 조상들이 완전히 정착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나그네 생활을 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약속해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바를(창 12:2, 3) 성취하실 것을 굳게 믿었다.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기 깨문이다"(히 11:10).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참고 기다리며 믿음의 인내를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나타낸다. '터'는 '기초'를 의미하는 것으로 '터가 있는 성'은 히 11: 9의 '장막'과 상반되는 표현이다. 장막은 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동하기 위한 임시 거처인 반면에 '터가 있는 성'은 한 곳에 고정된 영구한 집이다. 이 성은 지상에 있는 어떤 도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진동치 못하며 장차 올(12:28;13:14) 영원한 하늘 도성으로 하나님에 의해 견고히 세워진 '시온 성'을 암시한다(시 48:8;87:1-3, 5;121:3;사 14:32;33:20, Lane).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10) '경영하시고'의 헬라어 '테크니테스(τεχνίτης)'는 '기술'을 뜻하는 '테크네(τέχνη)'에서 파생된 단어로 '기술자', '설계자' 혹은 '건축가'를 뜻한다. 이를 앞서 언급된 '성'과 결부시킬 때 본절에서는 '설계자'나 '건축가'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지으실'의 헬라어 '데미우르고스(δημιουργός)'는 '사람의 무리'를 뜻하는 '데미오스(δῆμος)'와 '일'이란 뜻의 '에르곤'의 합성어로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자'의 뜻을 지닌다. 이 두 가지 표현은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성을 건축하셨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손수 지으신 하늘나라의 도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믿음과 인내를 할 수 있었음을 시시한다. • 다윗이 시온성을 정복한 과정 본래 시온성(예루살렘)은 여부스라는 족속이 거주하였던 곳으로 북쪽을 제외한 세 방향이 천길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천예의 요새였다. 다윗이 천혜의 요새 시온 산성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었는가는 성경에 세세히 기록 되어 있다. 시온성은 해발 750미터의 고도에 위치한 곳이다. 천애의 요새지만 한 가지 단점은 물을 외부에서 얻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이 남동쪽 기혼 샘이라는 풍부한 물을 가진 샘이 있었지만, 기혼샘은 성곽 외부에 있었기에 전쟁과 같은 유사시에 그것을 길어 오는 것은 큰 문제였다. 다윗은 시온성은 정복하기 위해(여호수아가 시작한 가나안 정복을 매듭짓는 의미) 용맹한 부하를 "수구로 올라가게 해서" 정복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수구'는 '하수도','배수로','지하 통로'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곧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기혼 샘에서 남쪽 저수지로 흘러 들어온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수직으로 파놓은 갱도(坑道)를 의미한다. 이 갱도는 성 안에서 성 밖으로 연결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난공 불락의 예루살렘 성안으로 군사들이 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따라서 다윗이 이곳을 통해 적 진지에 들어가 공을 세우는 자에게 푸짐한 상급을 주겠다고 약속하자 요압과 그 군사들이 이에 응하였던 것이다(대상 11:6). ....한편 이 수갱(水坑)은 1886년 그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1967년 워렌(Charles Warren)이 재차 발견하여 현재 '워렌 수갱(수직갱도)'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이 수갱이 B.C 2000년 경에 예루살렘 거민들에 의해 건설되었음도 밝혀내었다. •천혜의 요새 시온성이 천혜의 요새라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은 이 성에 살던 사람들이 다윗에게 한 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다윗 왕과 그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삼하 5:6)"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수구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절뚝발이와 소경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소경과 절뚝발이는 집에 들어 오지 못하리라 하더라"(삼하 5:8) ..... "절뚝발이와 소경", 여기서는 다윗이 당시 지형적인 이점을 의지하고 교만하게 말했던 여부스 사람들(6절)을 비꼬는 말이다. 즉 저들은 불구자가 아니었지만 이제 다윗의 공격 앞에 꼼짝 못하고 그대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절뚝발이와 소경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는 훗날 속담이 되어 '미운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다. 즉 여부스인들처럼 자기의 힘만 믿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사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어떠한 집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다윗, 시온성을 더욱 견고히 함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 5:9-10). .... '밀로(מלּוא)'- 채우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이 '밀로'(Millo)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이것이 흙이나 돌로 쌓아 올린 성채(城砦)를 의미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이 성채는 아마도 여부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읍에서 가장 취약 지구인 북방의 방어를 위해 북동쪽이나 북서쪽 한쪽 모퉁이에 세워 놓았던 것일 것이다. 아무튼 다윗은 이 밀로를 기점으로 하여 예루살렘에 성벽을 둘러 쌓음으로써 외세 확장의 기틀과 여호와 종교를 위한 중앙 성소의 기초(대하 3:1)를 마련하게 되었다. • 시온산과 새예루살렘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계 14:1) 시온 산에 서 있는 어린양의 모습은 계 12:17에 묘사된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는 용의 모습과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시온 산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약간씩 차이가 났다. 즉 포로 시대 이전에는 유다의 전영토와 이스라엘 전족속을 의미했고 포로 시대 이후에는 성전과 예루살렘성을 가리켰다. 또한 구약성경과 예언서에서 시온은 메시야가 오셔서 구속받은 자기 백성들을 모으는 장소를 상징했다(시 48:1;사 24:23;욜 2:32;미 4:1, 7). 이러한 배경을 지닌 '시온 산'이 본문에서 어디를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실제적으로 지상에 있는 땅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2) 혹자는 영적인 세계인 하늘에 속한 것으로서 구속받은 십사만 사천 명이 거하는 곳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히 12:22의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에서 '시온'을 '하늘의 예루살렘'과 관련시켜 이해한다. (3) 혹자는 지상에서 이루어질 메시야 왕국 또는 천년 왕국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히 12:22의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갈 4:26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무두 하나님이 계신 하늘 시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땅에 거하는 구속 받은 성도들에게 이 땅에 이루어질 메시야 왕국의 전형이나 모델로서 제시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니멀리스트 관점에서 보면 다윗성은 남북으로는, 요새화 된 밀로(오벨 언덕) --다윗의 백향목 궁--실로암 못까지, 동쪽은 기드론 골짜지, 서쪽은 두로베온(티로포엔, 중앙)골짜기로 구분하고, 맥시멀리스트 관점에서는 다윗 궁과 남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시온산까지 포함하여 남쪽의 힌놈골짜기, 서쪽의 기혼골짜기까지 포함하고 있다..----예수님 당시, 갈보리산은 진영밖/성밖에 위치했고 최후의 만찬 장소는 힌놈골짜기와 기혼골짜기가 만나는 곳 인근이었다..
[유다왕 되기까지 10년 동안 15군데를 이동하며 도망다니는 다윗] ....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는데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 생각하며 살펴보자.....베들레헴에서 기브아로 이동, 도피행각 시작 ::: *1)라마-->*2)기브아-->*3)놉-->*4)가드-->*5)아둘람-->*6)모압 미스베-->*7)헤렛수풀-->*8)그일라-->*9)십 광야-->*10)마온 광야-->*11)엔게디 광야-->*12)바란 광야-->*13)가드-->*14)시글락-->*15)헤브론 1) 라마(삼상 19:18) 다윗은 제일 먼저 도피한 곳은 사무엘 선지자가 있는 라마이다. 사울은 세 번에 걸쳐 전령들를 보냈는데 예언을 하다가 돌아온다(삼상 19:20-21). 사울이 직접 나섰지만 그도 예언한다. 심지어 너무 뜨거워 하루 종일 옷을 벗었다. 다윗을 죽이려는 시도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게 분명한데도 사울왕은 깨닫지 못한다. 예언한다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게 아니다. 마음을 열고 순종하는 게 중요하다. 2) 기브아(20:1) 다윗은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의 요나단을 찾아가 마지막으로 사울의 의중을 확인한다. 초하루날 식사 자리에 참석하지 않자 사울왕은 화를 내며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진다. 요나단은 에셀바위에서 화살을 쏘는 것으로 다윗에게 도망치라고 신호해준다. 다윗과 요나단은 상호 보호의 약속을 체결하며 위대한 우정을 보여준다. 권력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정치인들과 너무 대조적인 걸 본다. 한번 약속했으면 어떤 상황이든지 약속을 지킬 때 하나님도 신실하게 역사하신다. 3) 놉(21:1) 다윗은 기브아에서 4km 떨어진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간다. 아히멜렉은 먹을 것을 찾는 다윗에게 제사장만이 먹는 거룩한 떡을 성결 확인후 준다. [예수님도 안식일에 이삭 먹은 걸 따지는 바리새인들에게 이 일을 예로 드셨다.(마12:3)] 하나님께 드린 진설병을 제사장만 먹으라는 율법 정신의 의미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거룩한 떡이 부정하게 관리되지 않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중요하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느라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신앙인이 되지 않아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에돔사람 도엑이 사울왕에게 고하여 제사장 85명이 죽임당했다(22:18).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이렇게 많이 죽인 걸 보면 사울왕이 얼마나 미쳤나 알 수 있다. 4) 가드(21:10) 너무나 생명의 위협을 느낀 다윗이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블레셋 가드왕에게 간다. 가드는 골리앗의 고향이다. 놀라운 것은 그들도 다윗에 대한 소문을 환히 알고 있었다...다윗은 거기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갑자기 침을 흘리며 미친 척 한다...다행히 가드왕은 미친 놈을 데려왔다며 다윗을 쫓아냈고, 다윗은 위기를 넘겼다. 이때 지은 시가 시편 34, 56편이다. 시편 150편 중에 73편이나 다윗이 썼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노래한거다. 그래서 시편은 고난 중에 큰 위로가 된다. (시 34:6-8)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무나 곤고한 상황에서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찾았는지 느껴진다. 우리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둘러 진치고 건져주신다. 다니엘기도회가 진행중이다. 함께 말씀 듣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볼 것이다. 5) 아둘람 굴(22:1-2) 다윗이 아둘람굴로 도망쳤을 때, 가족과 환난 당하고 빚지고 마음이 원통한 자가 모인다. 그곳에서 위로받으려 무려 4백여 명이 모였고 다윗은 목자의 심정으로 그들을 돌본다. 오합지졸이지만, 긍휼의 마음으로 돌보니 나중에 용사가 되고 왕국의 리더들이 된다. 개척교회는 아둘람굴과 같다. 삶이 힘들지만 함께 하며 위로받고 성장해가는 것이다. 함께 울고 웃으며 끝까지 견디다 보면 나의 신앙과 삶이 훌쩍 자란 것을 보게 될거다. 좋은 환경을 모두가 원하지만, 진정한 변화와 축복은 고난을 통과할 때 온다. 교회에 나를 보내주신 것을 감사하며 기쁨으로 순종하길 축복한다. 6) 모압 미스베(삼상 22:3) 다윗의 증조할머니 룻이 모압 출신이었기에 다윗은 부모를 잠시 모압 왕에게 부탁한다. 자기 때문에 부모님까지 힘든 광야의 삶을 살게 할 수 없었다. 다윗의 효심이 보인다. 7) 헤렛 수풀(삼상 22:5) 부모님을 맡기고 다윗은 갓 선지자의 말씀을 따라 유다 땅 헤렛 수풀로 이동한다. 사울이 찾아올 수 없는 곳에서 살면 편하겠지만 다윗에게는 꿈이 있다. 사울왕 같은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왕국의 왕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만나는 훈련은 필수인 것이다. 대충 살거면 훈련은 필요없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면 강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광야에서 살아가는 훈련이었다면 이젠 배신과 쫓김의 훈련을 받는다. 8) 그일라(삼상 23:1-5) 자신도 도망치는 신세인데 그일라가 블레셋의 약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다윗이 첫 번째로 한 일은 무엇인가? 23장 2절에 보면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은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하셨지만 다윗의 사람들은 반대했다. 그러자 다윗은 다시 하나님께 물었다.(23:4)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승리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사울왕에게 밀고했고 사울왕은 다윗을 잡을 최적의 기회라며 내려온다. 하나님은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배신할 것임을 알려주신다. 목숨걸고 도와줬는데... 다윗은 그일라에서 큰 걸 배웠다.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 꼭 기억하라.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신뢰할 대상이 아니다” “어떻게 그 사람이 나를 배신할 수 있어? 내가 얼마나 잘 해 줬는데...” 이런 사람은 보증서서 집과 재산도 다 날리고, 배신을 여러번 당해야 정신차린다. 배신당했다며 미워하고 욕하고 저주하지 말고, 처음부터 사랑의 대상으로 보길 축복한다. 9) 십 광야(삼상 23:15) 사울왕이 매일 다윗을 수색하며 다녔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사울왕에게 넘기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잡힌다.(마10:29) 다윗은 마지막으로 요나단을 만나 위로받는다. “두려워말고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라” 한편, 십 사람들은 다윗을 밀고한다. 계속 하나님은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시편 54편을 지었다.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고 하나니만 붙든다. (시 54:4)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10) 마온 광야(삼상 23:24) 사울은 마온 황무지까지 다윗을 쫓아왔지만 블레셋이 침노하자 어쩔 수 없이 돌아간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고난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피할 길을 주심을 경험한다. 고난 없는 삶을 원하는가? 대충 살면 된다. 경건하게 살수록 핍박이 강력하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1) 엔게디 광야(24:1) 사울은 블레셋과 싸움을 마치자 다윗을 잡으러 3천명을 이끌로 엔게디 황무지에 왔다. 급히 용변을 보러 굴 속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다윗이 숨어있었다. 다윗의 사람들은 사울을 죽일 기회라 했지만 다윗은 사울의 겉옷자락만 살짝 벤다. 그런 후 다윗의 마음은 괴로웠다.(24:5) 왜? 왕의 인격을 조롱했다는 마음이 들어서다. 하나님이 기름부은 종에 대한 결례를 행한 것은 아닐까 양심이 찔렸던 것이다. 이때 지은 다윗의 시가 시편 57편이다. 하나님은 왜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을까? (시 57: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사람들은 ‘다윗은 왕을 죽이려는 역적이다’ 비방했는데 이 일을 통해 오해를 풀어주셨다. 사울왕이 웅덩이를 파고 자기가 거기에 빠진 걸 보며 외친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다윗은 새벽을 깨우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그랬더니 적이 파놓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주실 뿐 아니라 그들이 빠지게 하셨다. 다윗이 원수를 갚지 않고 사울왕에게 선을 베풀었더니 사울왕이 이렇게 축복했다. (삼상 24:19하-20)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미치광이 사울왕이 다윗의 진심 앞에 감동하여 다윗을 축복한다. 또 다윗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이 견고히 설 것이라고 축복한다. 정의도 중요하지만 원수에게 사랑을 베풀 때 이런 진한 감동이 나오는 것이다. 원수를 갚으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상대방은 다시 복수의 칼을 들고 달려오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원수를 사랑하라. 사랑이 어려우면 기도라도 해주라! 그러면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나만 축복하시는 게 아니라 자손대대로 복을 내려주신다.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이처럼 다윗의 도망길은 진짜 왕으로 만들어지는 훈련의 과정이었다.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있을까?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꾀부리지 말고 하나님께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새벽을 깨우길 축복한다. 다윗처럼 도망만 다니지 않고 진정한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길 축복한다. :: 12) 바란광야 -->13) 가드--> 14)시글락-->15) 헤브론 ------------- .....[환난의 경한 것과 영광의 중한 것]....[(고후 4:16-18)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Q나라 이미 맛본 다윗이었기에!!..기름부은 자로서 자기 안팎의 의 모든 사람들을 분별하며 여호와 Q과 동행함=경외함의 길을 따라 사랑-믿음-소망의 인내로 걷고 있었다.::: 진정으로 항복-스스로 주 앞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는자마다 다 받아줌이 합당함을 일깨우고 계심!!.**[이를 위한 주님 친히 준비시켜주심] 내안의 사울(군주국가 세워 자립하려 함 = 사탄의 궤계에 스스로 걸려듦이었다) --이스보셋 = 기름부은자 사울의 후손을 존귀히 여김(서로 주 안에서 형제 됨 인식하여!! 오직 주 앙망하며 인내하고 참아주며 기다려주며 덮어줌) ::: 스스로가 판단하고 처리함 아니라 주님께서 처리하시도록 (원수 사랑하며) 인내하며 기다려야 함 **내안의 스루야의 아들(괴롭히는 유혹과 핍박 :: 파내어 끊을수록 더 발견되는 여전한 연약함/약점들...또, 내 옆에 계륵이나 혹 같은, 때때로 치우쳐 제멋대로 교만 행하며 힘들게 하는/주께 부르짖게 하는 대상...그래도 그 안에 여전히 아직 남아 있는 Q 나라 만개 기다리며 바라 봄.(주께서 도와주시도록!! 구하며) 합당한 시점까지 포용하고 품어야)..+ 아브넬(기회주의적 공명심/교활함/책임 전가/배신의 영을 날마다 근절함)....(이 역시 주께서 도와주시도록!! 구하며) 합당한 시점까지 포용하고 품어야) **내안의 아말렉청년/레갑과 바아나(경건을 이익의 재료 삼음([=교회 출석의 속마음은 사업/장사/거래 목적]..구제/자선이란 명옥 하에 세상적 타협 제의해며 생색 냄) = 날마다 분별함으로써 근절하고 쳐내야 함.... 대표적 전개 구절들 :::[((내가..오늘 약하여서..제어하기 어려우니..여호와는..갚으실지로다--날마다 바로 오늘, 여호와 앙망함))삼하3:39..--->[((분별의 영을 따라 처리함..좋은소식..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피흘린 죄를...명령하매...)) 삼하4:9-12..*--->[((임마누엘...점점강성하여가니라))삼하5:10....((그리고))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
[창15:13-18..((Q이 일방적 횃불언약으로 [그분의 목숨 = 성육신하신 하나님, 곧 참 구주 JC의 목숨 = 을 일방적으로 거는, 일방적 구속사적 생명 언약]영원한 생명 언약 세우심]..Q은 주님 자신 이름으로 맹세하시며, 아브라함은 신뢰하고 붙드는 참 믿음으로 주 앞에 서 있다..오늘날도 동일함....여기서 진리이신 하나님 여호와의 공의와 정의, 정직, 인자. 믿음-소망(희망)-평강이 유출되어 나옴...이것이 Q-사람 간 수직적 베리트, 이에 바탕하여 남녀간 결혼 언약인 수평적 카라트(베리트, 카라트 :: 베다, 자르다)를 맺는 것이요 여기서[십자가 사랑] 입헌군주적 나라와 사회 계약 전제가 출발됨을 장 자크 루소는 말하고 있음))......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생명 언약을] 세워[=베리트(수직적), 카라트(수평적)...베다-자르다(죽음) = 맺다, 체결하다, 세우다]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영원히 영원 안에서!!, 주님은 이 땅을 새롭게 하심 통해 새 예루살렘 도래케 하신다]
주 임재 앞에서!!, 하나되어 전존재에 두루 녹아계신 주 임재 그 이끄심따라, 마음 중심으로부터 전심-일편단심으로, 매 호흡마다(하나되신 주님의 지정의의 어떠하심의 발출로서), 열어 부어주신바 주경외함-지식-지혜-총명/명철-재능-권능-힘 아낌없이 전력 다해!! 사랑-빛으로 섬기기를 모든 순간 실행함.. ***"이단"이란, 천지의 주재-살아계신 영생 지존자 하나님을 한낱 기복 위한 우상으로 만들어버리는것..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은 우상이요, 그 중 가장 괴악한 것이 "옛자아-죄성/육신"이니...경계하라 성령 안에 깨어 분별-대적하라!!
....전심전력 다 기울이는 목자 다윗의 양 돌보기.....양은 지독한 근시, 방향감각 없고 냄새나고 무기력, 때로 고집스럽고 제멋대로 죽는줄도 모르고 앞선 양 뒤꽁무니를 따라감..그러나, 목자의 사랑의 음성만은 알아보며, 위경에서는 목자를 찾는다..그 양의 임자가, 그 본래 소유자가 누구였든지 무관하게!!..일단 자기에게 맡겨진 양은 (서두르지 않고 먼저 부드러이 대하며, 안돈시키며, 친해지고, 아껴주며, 비록 낯설어 땡깡부리며 속 썩이며 시험하더라도 오래참아주고 긍휼-친절-온유함으로 기다려주고) 한 마리 한 마리마다에 대해 [이름붙여 부르며, 사랑과 깊은 관심, 곧 생명 가치 크기를 진지한 마음으로 절감하며 용감대담무쌍함 안에서!! 정성 기울여] 그 특성을 잘 파악하고 지극 정성으로 돌보며 격려하며 다독여 주고 평강 안에 복된 삶 살도록 주위를 잘 살펴 명철-기지와 지식과 지혜를 발휘하며 주께 여쭈며 문제를 해결하고 늘 감사 찬송하며, 그들을 보호-인도-양육하기를 목숨 걸고 싸워 이겨 퇴치시키며 지켜 왔던바 주님은 그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왕"이라 말씀하고 계셨다. ....스스로 쟁투 거쳐 강제적으로 취한 세상 권력 속성은 (벌거벗은) 늘 불안한 폭력에 지나지 않으나, 참 목자의 권위와 권세란, 영적 참 권위-권세-자격 근원이신, [친히 내주하사] 깨닫게 하시는 분께서 열어 주사 직역 맡겨주심따라!! 또한, 진정한 깨달음과 기쁨 가운데 [초대와 부름따라 자원하여 그의 양무리 안에 들어오기를] 자발적으로 동의하며 따르고자 하는 백성의 권한 위임으로 오게 됨...**그러나, 깨어있어야 할지니, 다윗이란, 사람의 사랑받음이요, 여디디아란 Q의 사랑받는자란 뜻이지만, 아쉽게도 솔로몬은 (전 생애동안!!) 그 이름에 합당한 삶 살지는 못했다.**
....[다윗의 두번 째(유다 왕으로서)와 세번 째 기름부음(이스라엘왕으로서)]].. 모두 헤브론에서 있었음.....[하나님의 갈망 , 참되게 배워 (거듭난) 자기 것 = DevineDestiny-OriginalDesign= 삼아!! ] 주 안에서 임마누엘로 동행하여 걸으며, 익히 알며 구함으로 사는자.]...생명을 귀히 여기며 영생 구원 위하는 다정한 목자로서 언약적 왕의 마땅한 , 오래참음의 길을 겸손히 주 앙망함으로써 걷기를 마다하지 않는, 주 임재로 살아가는 다윗!!...진정한 욍중 왕이신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실 거처, 곧 그분의 임재가 거하며 말씀하시는 바 법궤가 안식할 지성소 성전, 그 터전을 어디에 두기 원하시는지에 대한 궁구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라 인도받고 제물로 드렸던 모리아산이 위치한 시온산을 포함한 예루살렘이 당연히 그곳임을 이미 배워 익히 알고 있었다...이로 인해 유추하건대, 두번의 기름부으심은 주님 사귐-주님 마음 알기 학교 시작 시점에, 그리고 졸업 시점에(그의 성품이 무르익었음을 인정??) 헤브론에서 있었지만, 언약하신 때에 이르러서는, 예비해 두신!! 모리아산=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아야 함을 알고 있었다...이땅을 걷는 모든 믿는이마다 어쩌면 두번의 기름부음이 더 부어져야하는!! 영적 헤브론에 있는바, 주께서는 하늘 시온-새 예루살렘을 마련해두셨다(우리는 그 새 예루살렘의 구성원이요 구성 요소들이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다.....그러므로 이는 벧후 1 :5-7 그대로였으니;........[벧후1:5-7(미덕지절인경우사)...5. 그러므로 ([오직 성령 안에서])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5장에서 나타난 바, 하나님의 두 가지, 넘치는 은혜 베푸심의 이벤트를 보라!! === 시온산성, 곧 예루살렘 공략 점령 허락하심은 통일 이스라엘 왕국으로서 다윗 왕국(하나님나라의 그림자) 위한 그림을 완성하는 "화룡점정" 찍으심이요, 히람의 자발적 공물 제공은 이방인들에게로 확대될 바 나라의 영광을 확증하며, 블레셋을 두 번 연달아 이기게 하신 르바임 계곡 1,2차 전쟁은 산뜻하게 포장한 영원히 기억될 선물, 영원한 이김과 평강을!! 함께 만들어 넘겨 주심이었다.((다윗 통치 기간 중에는 블레셋은 도발 준동할 의욕을 완전 상실한다!!))
[[권위/권세(LORD JC's Authority = 세상의 소금과 빛, 성의진선이신 보혜사-말씀의, 사랑-공의의 순종과 희생적 섬김 감사찬양 기반)와 권력(world a.= 하나님 영광 가리는 수건과 가스라이팅, 곧 타락한 세상의 오도/착각/기만을 참되게 깨닫지 못한 가운데 내질러진, 영원가치 지닌 영생구원 추구함에 대해 무지무각함, 그 소치인 이기적-방어적 폭력 기반) = 엑수시아(성화-영화의 담지자/그릇 됨) ::: 권능 (power) = 두나미스(그 담긴 바 내용, JC-복음-을 받아 누리고 체득-간직한 그대로 그분을 참되개 전파-넘겨줌의 특권 행사함)]]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권능'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두나미스'는 '할 수 있다. 가능하다, 힘이 있다'는 뜻의 '두나마이'에서 파생된 명사형으로 '강한 힘, 이지적인 능력, 전능한 일'이란 의미이다. ......보통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의미로 알려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능력'(두나미스...power)을 얻기 위해 기도하곤 한다. 그러나 이 단어가 쓰인 용례를 보면 숨겨진 속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령(말씀)이 임하면 권능(두나미스)을 받아 말씀의 증인이 되며 (행1:8)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그러한 권능(두나미스)이 어디서 났는지 사람들이 놀라고 (마13:54, 막6:2)...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두나미스)이 충만하여 성령으로 말하며 (행6:10) .... '권세'(엑수시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품을 수 있는 부여받은 직역/자격으로서의 능력'이라고 말한다면, '권능'(두나미스)은 '하나님의 말씀[=곧 하나님 자신, 하나님 이름 = 그분 존재 자신 = 전지전능 창조주 하나님, 인격이신 그 자신으로서 진리 생명 빛이신 분 그 자체]을 전해주고 넘겨주는 실제적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헬라어 '두나미스'가 히브리어로는 '코아흐'라고 하는데 이를 파자하면 '완성된 진리로서의 생명zoe을 넘겨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데서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을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출9:1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말씀)을 온 천하에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 모세를 세우면서 '능력'(두나미스)을 보여주시고 그 능력을 주셨는데, 모세가 받은 능력은 다름 아닌 말씀을 전하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성령(말씀)이 임했다는 것은 나의 말(율법)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품을 수 있는 권세(엑수시아...주님 나라에 속한 하나님 자신이신 진리 생명 말씀을 전파/전도하여 넘겨주는 증인이자 전권대사의 고유 자격이자 능력)가 임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전령=증인= 전권대사로서 하나님 말씀인 복음을 전함에 전혀 지장 없도록 필요충분한 정도로.. 하늘로부터 부어주시는, 더 이상 제한받지 않으시며 자유로우시며 막힘없는] 능력(두나미스....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 그분의 영, 주님 그분 자신이심)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능력(두나미스) 행함이란, 눈에 보이고 육신을 만족케하는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 의미에서의 행함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의 말씀, 생명 말씀을 참되게 그대로 전해준다는 의미에서의 행함을 말하는 것이며 그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살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진정한 '능력'(두나미스 )행함의 삶을 사는 것이다. >>권위는 헬라어로 ‘exousia’인데 이 단어는 ‘ex(나오다)’과 ‘ousia(존재)’의 합성어이다. 그러므로 권위는 유일무이한 참 근원자 만왕의 왕 참 지존-주재-주권자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에게서 흘러나온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를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주셨고,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그 엑수시아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흑암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포로됨의 속박과 압제에서 진리 안의 참 자유 누림의 나라로 옮겨주심의 구속을 완전히 이루어 주셨고, 이와 더불어 이 땅에 계실 때 가지셨던(아버지로부터 받으신바) 그 엑수시아를 부활생명의 성령을 분배해 주심으로써 나누어주셔서 전권대사요 참 증인 삼으셨다)) 거듭난 참 믿는이, 부활생명 원천이신 그분의 성령이 내주하시며 또한 위로부터 증언자로서 합당한 권능의 영을 부어주신 바 된 우리에게 주셨다(마 28:18). 영적 권위, 위치상의 권위, 통치상의 권위 등 이 모든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권위-권세-자격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로 그 권위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라는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나와 예수님이 받으셔서 우리에게 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는 하나님의 좋은 선물이다. 선물은 좋은 것이므로 권위는 좋은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는 창세기 1장에 나타나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 말씀대로 그대로 되었다(창 1:7, 9, 11, 15, 24, 30)고 성경은 말한다. 이것이 권위이다. 그 권위를 받은 우리 또한 “(다바르=로고스이신바!! 주님 말씀 그대로) 그렇게 될지어다. = 아멘 아멘 아멘”라고 [참되게] 말할 수 있게 하신다. 이것이 권위의 기도이다. 바로 그러한 창조행위의 모습은 그렇게 되라는 권위를 부여받은 세상 피조물들이 씨를 만들고 열매를 맺고 낮과 밤을 주관하고 공중을 날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기어 다니고 땅을 충만하게 채우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피조 세계에 수고스럽게 직접 개입하신다. 왜냐하면 피조 세계의 창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말에 궁극적인 생명의 완성이 일어날 때까지 하나님의 창조는 말씀의 권위로 계속된다. 이 말씀의 권위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에게 주어졌다(창 1:26). 하나님은 멀리 떨어진 하늘에서 주권자의 칙령으로 이 세상의 창조를 완성하시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을 지닌 존재들을 지으심으로써 하늘을 바라보는 존재인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세계를 세상에서 친히 완성시키시려고 하신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매우 인격적인 결정이시다. 사람의 창조에 관하여 신격의 세분 사이에 회의가 있었다(창 1:26).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겠다고 결정하신 일은 영원 과거에 있었다. 이것은 사람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엡 3:9-11).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의도는 그분 자신의 권위를 사람에게 주어 이 세상의 창조를 종말에 궁극적으로 완성하시려는 신성한 경륜을 수행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에서 주신 그 권위도 인간들은 잘못된 판단으로 사람의 권력으로 변질되었다. 우상숭배가 바로 그 예인데, 우상은 인간을 취약함에서 건져내고 썩고 변질된 황홀경의 맛을 보여주어 도취시키면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권위를 왜곡된 파워(power)의 모습으로 변질시켰다. 우상 숭배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바벨론 제국이다. 바벨론 제국은 니므롯으로부터 시작하여 바벨론 제국이 되었다가 로마가 되었다가 말세에 큰 바벨론이 되어 나타나 주님께 대적한다(창 10:8-10, 계 17-18장). 이 세상은 지금 바벨론이 추구하는 것을 추종하고 있다. 물질적인 세상뿐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세상도 바벨론을 추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종교적인 바벨론(계 17장)과 물질적인 바벨론(계 18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들이 아름답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야 할!!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인 권위를 마치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나 된 듯이 휘두르는 권력으로 쓰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수단으로 제대로, 정당하게, 개인과 공동체를 살리는 방식으로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임해 주신 것을 권력으로 써버리게 되면 그로 인하여 이 세상은 지옥이 되지만, 참되게 깨닫고 주님 마음에 합당하도록!! 권위로 쓰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 즉 다스림이 있는 사랑의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물질적인 나라가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화평과 기쁨과 사랑이기 때문이다(롬 14:17).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더 알아가며 더 누려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하나님께 받아 우리에게 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다는 것의 의미와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랑과 빛과 거룩과 의라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위가 있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과 빛과 거룩과 의라는 하나님의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창 1:26). .......모든 사람에게 어떤 권력이 있다. ((자세히 글자 구성을 보라 :: 권력이란 단어 속에 힘 "력"은 Q 임재따라 순종함의 "Q의 대리자"에 대한 참된 인식에서 떠나고 Q을 배제할 그 때는 "사탄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자의" 무지막지한 강제와 폭력 휘두름일 뿐이니, 곧 권위의 변질이다. 높은 자리든 낮은 자리든 어떤 자리에 있든지 권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면 권력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의 변질이라는 것을 참되게 깨달아 알았으면 얼마나 좋을까...그래서 회개함으로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받았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권위는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것이지만, 권위의 변질인 권력은 세상을 자기 왕국으로 만들려고 한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한 왕국을 만드는 것을 죄라고 하신다.
■여호와를 앙망하는(사40: 영혼에게 주시는 ((부활/회복/창조/성취 + 보호/방어/지킴))의 능력!! = <코아흐-כוח + <오즈עזֹ< [창15:1...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엘 마겐 + 마시아....)) 너의 지극히 큰 상급((= 보수/대가..은혜))이니라] [사40:28-31...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시81:1...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찌어다].... [마3:17...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후13:4...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능력의 히브리어는 <코아흐כוח <또는 <오즈עזֹ<.....*1) 코아흐כוח<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영혼에게 주시는, 주님 그분 자신이신 능력, 곧 권능=뒤나미스을 의미....수동적인 인생에서 (오똑이처럼!!) 능동적으로 일어서는 그 힘, 힘 권세 능력 권능의 의미로 사용 *2) <오즈עזֹ<에는 힘과 보호라는 뜻이 있다.... 그 어느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전지전능 하나님께서 친히 그늘이되사 보호하시는바 불의 방어벽/방패-피난처/안식처-요새/산성/반석 되심 의미 ---하나님을 앙망 하는 자에게 주시는 능력이 <코아흐כוח<와 <오즈עזֹ<입니다 곧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인생의 길을 열 수 있는 힘입니다 그 어떠한 위험과 위협에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보호 하시는 그 힘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영혼에게 오늘도 일하고 계십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그 능력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기에..
===[나라]강성..가돌//[개인]형통....찰라흐..:::: 형통하다 = 돌진하다/돌파하다, (주님의 영원한 경륜적 갈망 이름 위해, 예비하신 바 다루심 과정 그대로 다 거쳐서 마침내 뜻하신 바 그 뜻 그대로, 궁극적으로 영원에 이르도록) 외부적 환경과 장애, 즉 일시적 풍열수습조한에도 불구하고 그의 참 생명이 흔들림 없이 " 참생명 주와 하나", 그 참 믿음의 다바크(붙좇음)=상호거함/교통/누림/기업됨의, 돌진/돌파하고 극복함 통해, 곧 엄동설한 뚫고 새싹 나고 꽃 피고 열매 산출/성숙-거둠(출생-성장-만개-과숙-추수)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 보기에 기쁨이 되는, 시종여일하게, 참되게) 내적-본질적 생명 활력으로 인해 긍정적 변화 영속적 발현 :: 돌파/전진-번성/번영-창대[풍성-부요-충만]케 되다 === become continually greater(more and more powerful) in... make it prosper in ........형통에는 두 종류의 형통이 있음 알아야 할지니.. 분명히 겉과 속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첫째, 세상적-상대적-일시적-환경적 형통... 사전의 정의처럼 ‘사람의 눈으로, 겉보기에!!, 세상적 기준에서!!...하는 일마다 잘 되고 번성하는 것’을 말하며. 겉다르고 속 다를 수 있다. 둘째, 성경이 말하는 영적-절대적-영속적-내적 형통이 있으니, 요셉의 형통이 그러하였다. ........요셉의 인생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으며,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성실히 일하여 인정을 받고 가정 총무가 되기도 하였으나 여주인의 유혹을 뿌리침으로 증오와 모함으로 감옥의 죄수가 되는, 불행이요 비극을 겪는 와중에도!!. 그런데 성경은 그가 형통하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세기39:23) 성경에서 말하는 절대적 형통이란? .......단순히 하는 일마다 잘 되고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느냐 하시지 않느냐를 형통과 불행의 기준으로 삼는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성공하였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써 그 결과로 나타나는시지 않으면 진정한 형통이 아닌것이요,. 요셉처럼 어려움에 처하였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진정한 형통이라는 것이다. 요셉에게 대해 성경이 적용하며 쓰인 “형통”은 히브리어로 “찰라흐 ( צלח)” .... “찰라흐”는 “돌진하다. 뚫고 나아가다”라는 뜻이다. ....앞에 놓인 안팎의 장애물은 [임마누엘 주님 의뢰하여] 돌진하여 돌파하라고 주어진 것이라는 깨달음 아래 이끄시는 분과 함께 나아감인 것이다.. ......세상에 살면서 때로 어려움의 시기를 만나고, 실패하고 넘어지게 되리니...사업의 문을 닫기도 하며 직장을 그만두게 되기도 할 바,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고난과 어려움이요 실패요 좌절로 볼 수도 있으나, 주님은!! ..그러나 [성경의 눈,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관점, 주님과 하나 되어 동거-동주-동행 관점이 생겨나게 되면, 달리 보는 내적 시력과 시야가 열리는 바...아하!! 바로 그 시점이 전개되었네...나를 친히 업으시고-안아주시고-무등 태워 건네주시는 분!! 주님께 전존재가 전심전력으로 집중-올인하여 달라붙어 있어서 그분의 걸으심으로써 함께 돌진-돌파할 타이밍 왔네!!...하며, 오히려 주님을 친밀히 앎의 시기 다가욌음을 환영하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그분의 걸으심으로 모든 어려움과 난관을 돌진하여 뚫고 나아갈 때 비로소 참 형통이라고 한다. ....쇠사슬에 묶여 애굽으로 끌려갈 때에도,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노예로 지낼 때에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절망과 좌절의 상황에도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찰라흐의 힘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이에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증거하고 있음이다. .....지금, 혹시 바로 그런 지고지선의 진복, 그 지복지관의 환희 안에 지나는바!!, 복된 절대적 형통의 삶을 살고 있는가? ....때론 건강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매달 렌트비와 갚아야 하는 융자금에 어려움을 겪고 있든지,. 사업장의 어려움과 심지어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일자를 찾아야 함에 잠 못 이룰 때도 있을 수 있으나 그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진정 형통한 자, 참 평강 그리스도의 반쪽, 참 형통 그리스도의 반쪽 참 사람"으로서 주님 누림의 시간이다. .....모든 어려움과 난관을 뚫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함께 하사 “찰라흐의 형통”을 마침내 영원무궁히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적 어려움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용기 내라,. 힘 내시라. 찰라흐의 하나님이 함께 하사 그 모든 것을 이기고 기쁨의 춤을 출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모래위의 두 발자국>이 언젠가 우리의 이야기가 될 날이 올 것이다.... 어느 날 밤 난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는 꿈이었습니다. 모래 위에 두 발자국이 남겨졌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의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황혼이 되어 걸어 걸었던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발자국이 하나만 있었습니다. 섭섭한 마음으로 주님께 물었습니다.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가장 어렵고 힘들 때 주님은 어디로 가셨나요?” 주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야, 나는 너를 홀로 두고 떠난 적이 없단다. 시련과 고통의 순간에 보인 그 발자국은 너를 업고 간 내 발자국이란다.” 어느 날 난 다시 꿈을 꾸었습니다. 그 때에도 모래 위에 찍힌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 여전히 하나 밖에 없는 발자국이었습니다. “주님, 정말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군요.” 주님께서 “그래 그때는 정말 힘들고 어려웠지.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쳤었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지그재그로 엉망이 된 두 사람의 발자국이 보였습니다. “이건 무슨 발자국이죠?” 주님이 기쁨 가득한 얼굴로 대답하셨습니다. “ 모든 어려움이 지난 후 우리가 함께 즐거워 춤을 추었었지.” .....그렇다. 어렵고 힘들 때 전능의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 “찰라흐”의 형통, 능히 뚫고 이겨나가도록 도와 주사 마침내 모든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한 후 우리는 주님과 함께 기쁨의 춤을 출 날을 맞이할 것이다. 그 날을 소망하며, 어떤 어려움과 힘든 일에도 믿음으로 나가시길..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형통한 사람'이었다. (창 39:2) 그러나 성경은 요셉 개인사적 형통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요셉 자신의 개인적 비전을 이루어 가는 역사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비전(vision)을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이다. 하나님나라 백성에 대한 구원사이다. 그러므로 요셉 기사의 형통 사상은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우리들의 신앙 내용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 시각이 분명해야 한다. 요셉의 형통 기사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하나님나라의 한 시점이요 부분',. 좁게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을 통해 열두 지파로 형성될 이스라엘 민족 국가를 이루시는 역사의 한 시점이요 부분이기에.... 그래서 성경은 요셉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에 '요셉의 역사'가 아니라, '야곱의 약전, 즉 야곱의 역사'(창 37:2)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요셉의 형통은 이와 같은 성경 자체의 관점을 통해 보고 들을 수 있어야 바른 것이다. 사람마다의 생각을 따라 입술에 널리 오르내리는 것과 같은 형통 개념이 아니다. 요셉의 형통은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3)"는 말씀에서와 꼭 같은 개념의 형통이다. '복 있는 사람'에게서 나타나게 되어 있는 삶의 모습이다. 생명수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시냇가에 옮겨졌고 심기어진(수동형) 나무와 같이 복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잎사귀는 마르지 않게 될 것이며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나무는 주인의 뜻이 아니라면, 자신의 새로운 자리인 시냇가를 스스로 떠날 수 없다. 주인의 그 선한 뜻 안에서 이탈할 수도 없게 되어 있다. 마르지 않게 될 나무의 생명력과 시절을 따라 맺게 되는 그의 적절한 열매는 주인의 선한 뜻을 반영하게 될 것이니... 성경으로 말씀하고 있는 요셉의 형통이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요셉의 형통에는 희비(喜悲)와 고락(苦樂)이 늘 교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비전(vision)을 이루시는 역사 안에 있는 인생의 희비고락인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증조할아버지 되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는 하나님나라의 큰 역사를 이루시는 한 시점, 한 부분을 감당케 하시는 생애를 살았던 것이다. 스데반이 설교하여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요셉은 다만 '하나님의 은총과 지혜'(행 7:10)로 살펴 살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나라 역사의 한 시점이요 한 부분으로 감당하게 되는 그의 세상을 성실로써 순종하여 살게 되었던 것이다. 요셉의 형통은 자신의 꿈과 비전을 이루려 하는 의지와 노력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 차원의 형통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나라의 크신 역사 안에서, 그를 택하시고 세우셔서, 그로 하여금 그 역사의 한 시점과 부분을 적절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모든 은혜와 은사로 함께하시며,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는 형통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요셉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것으로 말하려 하지 않고 행동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보내심을 받은 분'으로서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요 8:43)"는 말씀 그대로였다. 그들은 지금 그들의 '어떤 잘못된 방식'에 의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방식, 즉 자기 것으로 말하고 듣는 방식'에 의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고 밀씀하심이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즉 성령의 능력으로 듣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니... 그리스도의 말씀을 사람 자신의 해석을 통해 듣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 당신의 생각과 말씀이나 행위는 자신 '스스로의 것이 아니다'고 거듭 강조하시는 말씀의 교훈,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시는 말씀인 것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는 마귀'(요 8:44)를 좇고(따라 부분적으로만 듣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보는 우리 심령의 눈과 귀가, 이와 같이 되어서는 안 되리라.... 우리는 지금 '십자가의 도'가 너무나도 분명한 신약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의 안목이 아직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듣는 틀 속에 갇힌 인간사적인 것이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는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는, 주의 말씀을 더욱 깊이 고민하며 기도해야 할 사람의 성경 안목인 것이다. 요셉의 형통은 하나님나라의 크신 구원의 역사 안에서의 형통이었다. 성경은 요셉이 자신의 개인적 비전을 품고, 그것을 이루어 나아가고 있는 인간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비전(vision)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큰일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는 창세전부터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비밀(골 1:26)이지만,. 그러나 이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십자가의 도'로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나타내신 은혜와 진리인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삶의 원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삶의 모든 과정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좇아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원인과 과정마다에서 또한 감사의 결과를 산출해 주시며 감사하게 하신다. 또 그 감사의 결과 위에 더욱 큰 감사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하고 계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는 이와 같은 은혜와 진리가,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하게 하고 계심이다(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 모두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요셉의 형통과 꼭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다 .. [526. 목마른 자들아]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대상35장에 의하면 35만명 운집..1차 통일 이스라엘 총회) 다윗에게 (그들 스스로)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택하신 바 된, 한 형제됨 확증 :: 아브넬, 이스보셋의 죽음과 무관함 객관적 보증!!-->입헌군주제 형태 :: 아브넬도 이를 확신하고서 협상했었다) 2.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일편단심+충성된 목자됨 확신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신학적 해석..도토리 속에 이미 상수리 나무가 감추어져 있음..작은일에 충성된 자라야 큰 일 맡아 능히 충성되게 해낼 수 있음!! = 참 믿음에서 나오는 오래참고 기다림 배운 바, 평강 안에서 주님의 시간 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참 지혜....참된 용기와 담대함) .....주님은 한사람의 소시민적 일상 속에 주님 나라에서의 감당할 바 직역을 감추어 놓으셨음..목자였던 다윗을 [쟁취 위한 피흘림 없이!! 자발적 동의와 원함으로 인한 언약 맺음 통해..3번의 기름부음 받음 통해!!]이스라엘의 참 목자 되게 하고 계심.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베리트(하나님과 사람), 카라트(사람과 사람)]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삼하3:21...아브넬이 다윗에게 말하되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을 맺게 하고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가니라] ......이는 아브넬도 그 필요성을 알고 있었기에 그 절차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던 바였다..(상호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믿음과 사랑의 목자-주권자 삼음의, 자발적 권한 위임인바 "참된 권위 = 엑수시아"임을 명심하라...동일한 헬라어 단어, 엑수시아를 쓰지만 "(세상) 권력"은 일방적 폭력 휘두름으로 쟁취-행사하는 폭력 휘두름 허용함일뿐이다. 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주님의 때 기다리면서)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JC만난 참 믿는이-거듭난 자-JC로 사는자, 그대 자신이 본질로, 언약적기초인 말씀하시는 Q께로 돌아가야 한다!!... 주님과의 언약적 기초가 중요하다!!....죽을 때까지 견고한 심지로 아버지의 뜻따라 살아가신 변함없는 언약지킴이이신 JC와 함께 살며 거하며 걸을 때, 이 JC의 지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자가 될 것...다윗을 그렇게 만드사 [일편단심, 산 믿음-소망-사랑의 (아벨처럼..언약의) 사람으로 젊었을때부터 임마누엘로 함께 하사 붙드신 하나님!!..]..그와 함께 지내면서, 가까이 하는 주변 사람들은 그 어디에서나(아둘람 동굴-->엔게디 광야-->시글락 공동체-->헤브론..)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 그를 닮아갔다!!
===다윗이 시온[= 모리아 산]을 빼앗아 성을 둘러 쌓다 ..[305.나 같은 죄인 살리신]..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행13:22, 삼상16:1-18)] 뭘 모르는 세상, 기만/포로-오도/착각-가스라이팅당함/죄 중독-저주 가운데 마귀사탄, 원수 대적자의 대변하는 입술이 되어 "네 꼬라지를 보라..네가 감히.."라고 "나 예수께로 나아오라"고 초대하여 부르신 분께 나아가 영접하여 거듭남으로 주와 하나됨을(=이것이야말로 예루살렘 점령함이다) 막아서고자 하나 누가 주님보다 강한가!!.... 6.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함-가나안의 후손)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다윗이 점령하기전까지 예루살렘 점유 중이었던 여부스족속...[속설에는]그들의 신전 사제 서임 위해서는 [참된 시력-시선 없앰]눈을 빼거나 [참된 자발적 순종 없앰] 다리를 분질렀다??)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빗대어 경멸하는 조롱의 극치!!]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단단한 바위로 온통 사방이 둘러싸여 있는 바 난공불락의 지형적 잇점 가진 철옹성 형태였기에, 그때까지 완전점령한 자가 없었기에 ..그 누구도 점령불가였던것처럼!!)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7. ["내게 나아오라" "할 수 있다...하거라-허락한다" 하신이는 전능자 주 하나님!!, 그에게 성밖 기혼 샘으로부터 성내로 잠입하는 돌파의 길[수직 수로..끌어 올려 물 깃는 통로] 보여주셨으니!!]다윗이 [수하 몇사람과 함께 특공 기습부대로 수로 통해 침입-공략하여]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다윗을 위해 남겨두셨음....예기치못한 새로운 선물 ::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서 통일 이스라엘에게 주님이 허락하신 예기치 못한 깜짝선물로서 제공!!) ......##Zion의 본래 뜻(이중적) ::건조한 땅/사막 + 산마루 반석/바위 천연 요새...그러나, 거기에 기혼 샘이 터져나오고 기드론 시내 골짜기기 있다..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성령 따르라...구주JC이름 불러 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하라, 회개하고 주께 주도권 넘겨드리라]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JC이름으로 기름부음 받은이의 모독/방해자를!! 대적하라...하나도 남기지 말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하나님의 내소인]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이는 결코 장애인 비하가 아님..[마태복음 21 장 14절 /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워렌의 수갱 Warren's Shaft--‘워렌의 수갱’은 영국 엔지니어 찰스 워렌(Charles Warren)이 1867년에 발견한 수직 갱도.....이는 예루살렘 밖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예루살렘의 주요 수원 기혼 샘에서 산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 수직 갱도.....다윗이 정복하기 이전에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시온 산성(다윗이 정복한 후 다윗 성이라 불렀고, 다윗 시대의 예루살렘이다)은 산 위에 있었다. 물을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요 수원인 기혼 샘에서 물을 끌어올 수밖에 없었다. 시온 산성에서 곧바로 기혼 샘의 물을 끌어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산성에서 계단으로 된 터널과 수평 터널을 거쳐 워렌의 수갱에 이르게 되고, 물동이를 이 수갱으로 내려서 기혼 샘에서 흘러나온 물이 고여 있는 구멍(sinkhole)에서 물을 길어 올렸다. 워렌의 수갱의 길이는 대략 14m 정도...(최근 라이흐(Reich)와 슈크론(Shukron)이란 학자는 다윗 시대에 워렌의 수갱이 물이 흘러가는 수로로 사용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성 안의 사람들이 지하로 들어갔다가 자연 동굴 통로로 가서 기혼 샘에 있는 망루에 내려가서 거기에 있는 커다란 웅덩이 물(기혼 샘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인 웅덩이)을 길었다고 말한다.)....다윗이 여부스 족속의 시온 산성을 정복할 때 요압이 이끌던 다윗의 군대는 아마도 이 기혼 샘에서 워렌의 수갱을 통해서 산성으로 올라갔거나(사무엘하 5:8). 아니면 지금은 막혀 있는 자연 동굴 통로(Natural Tunnel)로 여부스 족속의 시온 산성으로 침입했을 것이다. 9.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기혼샘 아래에 있는 밀로로부터 외벽을 세워 둘러 근원을 보호하였음...나선형 또는 계단식으로..기혼 샘이 노출되지 않도록] 성을 둘러 (새로이 성채 있는 외벽을)쌓으니라 [=더 이상 변치 않도록 주님이 지키심] ......(기도하며 궁구하는 다윗, 그들의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시온산 주변의 물 긷는 곳이 어디인지 찾아따라가다가, 마침내 간헐적 분출 동반하는 마르지 않는 기혼샘을 발견-->여기로부터 물을 끌어 성내에 공급하는 성내로 연결된 수로(=워렌의 수직 갱도) 발견 :((:: 간헐적 용출천인 기혼샘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수로를 만들어서 성내로 공급함)), 바로 그 수로를 타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성 점령....나중에 히스기야때는 앗수르와의 전쟁을 예견하여 [기드론 골짜기로 흐르는]기혼 샘 지류들을 전부 봉쇄하여 막아버리고 기혼샘 근처 실로암 못(=물 저장고...구 예루살렘 동남쪽에 외부로 노출된 인공 연못...나면서부터 눈먼 맹인에게 침으로 흙을 개어 눈에 바른 후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셨음..요9장)으로 통하는, 성 안으로부터 수직-계단-경사식으로 내려가 533미터의 수평에 가까운 (히스기야) 터널을 통해서만 물이 흐르도록 터널을 만들었고(워렌의 수직 갱도와 연결시켰음) 이를 통해 성 안에 물을 끌어 올렸다고 봄) ......(([또 하나의 간헐천 베데스다 못가에 친히 가셨던 예수님은...(낫기를 원하는!!) 38년된 중풍병자를 낫게하셨다!!] '베데스다'의 뜻은 '자비의 집, 은혜의 집'........베데스다 연못은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있는데 양쪽에 두 개의 문이 있는 양문이 아니고, 가축의 양의 문...그 문을 '스데반의 문'이라고 한다....양의 문이라는 이유는 하나님의 성전에 제물을 드릴 속죄양들을 이 문을 통하여 들어왔기 때문... 지금도 이 연못이 남아 있으며 그곳에 기념 교회가 세워졌고, 스데반의 문 위쪽에는 지금도 양을 사고 파는 장터가 있다....베데스다의 연못에서 주님이 사랑의 기적을 베푸셨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 연못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대신해 속죄의 제물로 죽어갈 양들이 그 문을 통과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을 것...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요1:29절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기혼 샘은 다윗 성, 곧 예루살렘의 주요 수원(water source)이었다. ....예루살렘의 동쪽, 곧 기드론 골짜기로 물을 흘려보내는바, 밀로 아래쪽(밀로는 기혼 샘의 덮개에 해당함)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전, 여부스 족속이 시온 산성에 있을 때도 기혼 샘은 그들의 주요 수원이었다. 이 기혼 샘은 간헐천이어서 건기인 여름에는 하루에 두 번 정도, 우기인 겨울에는 하루에 네댓 번 정도 솟아올라 물을 기드론 골짜기로 흘려보내서 1년 내내 예루살렘에 신선한 물을 공급했다(오늘날도 히스기야 수로를 통해서 흐르는 신선한 기혼 샘물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에 정착하는 족속들은 물을 안정되게 공급받기 위해서 기혼 샘에 수조처럼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다...실로암 못이 바로 그 샘물 저장소로서, [예수님 당시에도] 그 흐름이 성 안 외부로 연결-노출되도록 해 놓아서 성 안에 신선한 물을 공급하였었다....성경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옹립된 후 여부스 족속이 정착하고 있던 시온 산성, 곧 예루살렘을 정복할 때 “물 긷는 데”, 곧 수로를 이용해 산성 안으로 침입했다고 전한다(삼하 5:8, 이 블로그 “다윗의 성” 항목 참고). 여부스 족속은 기혼 샘의 물이 모이는 수로에 물동이를 넣어서 물을 길었을 것이다. 이 수로는 아마도 수직 갱도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수직 갱도가 워렌의 수갱(Warren's Shaft)라고 본다. ----기혼의 샘과 실로암 실로암은 성경 여러 곳에 나오는데, 구약에서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사 8:6), ‘왕의 동산 근처 셀라못’(느 3:15), 그리고 앗수르 왕 산헤립과 히스기야의 전쟁에서 히스기야가 수로를 만든 이야기에서 ‘아래 못’으로 등장한다. 옛 예루살렘 성에는 물을 공급받는 길이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성 밖에 있는 ‘기혼의 샘’에서 물을 공급받는 것이었다. 기혼의 샘은 예루살렘 성의 존립 여부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 곳이었다. 그래서 ‘다윗 성’이라 불리는 옛 예루살렘 성은 기혼의 샘을 기준으로 샘 근처에 세워졌다. 다윗이 여부스 족속이 이전에 예루살렘 땅에 쌓은 성을 정복할 때에도 기혼의 샘을 먼저 점령하고, 그 물길을 통해서 공격을 감행했다. 그리고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는 영적인 의식을 행할 때 기혼의 샘이 그 장소로 많이 쓰였다. 예를 들면, 솔로몬이 이곳에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을 때,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군사들이 물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기혼 샘만 제외하고 성 밖의 모든 물 근원을 막았으며, 하나님의 지혜 대로 수로(터널)를 만들어서 (지하저수지인 실로암 못[=아래 못]에 저장되도록 만들고) 그 기혼 샘의 물 흐름을 실로암 못에서 히스기야 터널(수로)로 저절로 흐르도록 성안으로 이끌어들여 수직갱을 통해 길어올림으로써 물을 공급받았다. 그렇게 판 히스기야 터널의 끝이 기혼 샘 옆에 있는 실로암 못이다....(한편, 예루살렘 동남쪽, 기혼 샘 가까이에 있었던 옛 못(old pool...= [예루살렘 동쪽골짜기쪽] 폐쇄시킨 기혼 샘 못)을 윗못이라 불렀고, 여기서 산헤립의 군대사절단이 유다의 대표와 만났었다..) ---히스기야 터널 히스기야 터널은 어른 걸음으로 30분 가량 걸어야 터널을 다 통과할 수 있다. 터널의 높이는 2m 정도 되며, 폭은 한두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 18세기 중반부터 고고학자들에 의해 히스기야 터널과 실로암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고, 18세기 말에 한 아랍 소년이 돌에 새겨진 비문을 발견하면서 모든 것이 밝혀졌다. 이 비문을 ‘실로암 비문’이라고 하는데, 비문에는 수로가 어떻게 파여졌는지 당시의 상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히스기야 터널은 남쪽과 북쪽 양쪽에서 꼬불꼬불하게 파들어 갔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중간 지점에서 양쪽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정확하게 만난다. 전체 길이는 무려 533m에 이른다. 공사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실로암 비문에서 당시 공사자들의 증언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3규빗을 남겨두고 상대쪽의 목소리가 들렸다. 터널이 뚫렸고 우리는 서로 껴안고 철도끼(혹은 곡괭이)를 서로 부딪치게 했다. 샘에서부터 일천이백 규빗의 물이 흘러나왔다.” -[--실로암 못 실로암은 ‘아래 못’으로 불렸는데(사 22:9), 왕의 처소와 가까이 있었기에 당시에는 ‘왕들의 연못’으로 불리기도 했다. 옛 실로암은 길이 17.4m, 폭 5.4m, 깊이 5.7m의 돌로 된 인공 못이었다. 지금은 옛날 모습은 없고 그 형체만 조금 남아 있다. 신약 성경에는 실로암 망대 사건이 나오는데(눅 13:4), 무너졌다고 추정되는 망대는 실로암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유적 발굴팀에서 망대의 아랫부분을 발견했다고 보고한 적이 있다. 예수님 시대에 실로암의 물은 침례와 같은 유대교인들의 종교의식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한 가지 아는 것은… 실로암을 둘러보면서 마음에 가장 떠오르는 이야기는, 히스기야와 산헤립의 이야기도 아니고 실로암 망대 이야기도 아니었다. 바로 예수님과 날 때부터 소경 된 자의 이야기였다.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기독교 순례자들은 저마다 요한복음 9장 이야기를 떠올리며 가이드의 인도로 실로암을 찾을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9장 이야기 속에는 복음의 비밀이 여럿 숨겨 있다.....당시에 소경이나 절름발이 같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유대인들 사이에서 죄로 인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말미암은 것인지를 예수님께 물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통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게 말씀하셨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고 하셨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도구인 것이다.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바로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는데,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어 그의 눈에 바른 후 그를 실로암으로 보내셨다. 그리고 얼마 후,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로암에 내려간 소경은 눈이 온전히 나아서 돌아왔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유대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담대하게 말했던 바로 그 소경이었다가 나은자의 이야기가 굉장히 감사하다. 그의 부모도 유대교인들이 두려워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는데, 그는 유대교인들을 예수님이 죄인이라고 거세게 몰아세울 때 담대히 이렇게 말했다.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 9:25)....이 말은 소경이 된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간증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가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아만 장군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엘리사 선지자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담가 문둥병에 걸렸던 몸이 깨끗해졌다. 아마 나아만도 사람들에게 “내가 전에는 문둥병자였으나 지금은 깨끗해졌나이다” 하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간증을 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 값을 갚으셨고, 그 사실을 믿음으로 내가 거듭났다. 그 후로 나도 소경이었던 자나 나아만처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전에는 더러운 죄인이었으나 지금은 깨끗한 의인이 되었습니다.”....소경이었던 사람은 성경도 잘 모르고, 유대 종교인들만큼 신학적인 지식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아는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종교지도자들이 가진 모든 사상과 이론을 이기고도 남았다. 우리도 거듭난 후 우리를 깨끗하게 한 예수님의 피가 우리 마음에 있어서, 우리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모든 지식과 이론을 깨뜨리고 이기는 것을 본다. 이런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비결이다!!...지속적으로 끝까지 그 안에서 새로와져야 함)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가돌(being greater and mmore) = 강성 <----형통...모든 것 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 그분 자체가 확장증대됨) ::: 창39:2, 3..(찰라흐 ::: 형통 = 진전/발전-번성-번영-창대) ----[창39:2,3...*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시23:..((유족=무한자족하시나 사랑이신 주님, 그분을 위하는 크기따라 형통-위대하게 하시는 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길로 인도하신다)).*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요삼2-4, ((잘됨 [= 형통+ 강건 = 번성-번영-창대...참 신앙으로 진리 안에 살아감..시1편, 팔복의 삶]은 언약적 관계 온전-완전-순전-순결함 회복으로부터 :: 주님과의 언약적 교제 안에서==>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확장...곧, JC로 사는, 거듭난 영혼의 관계적 회복 = 관계적 형통이 바르게 세워지고 유지되는 것이 참 형통이다--주로부터!! 와야 형통함 온다))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2 Beloved, I pray that in every way you may succeed and prosper and be in good health [physically], just as [I know] your soul prospers [spiritually]. 3 For I was greatly pleased when [some of the] brothers came [from time to time] and testified to your [faithfulness to the] truth [of the gospel message], that is, how you are walking in truth. 4 I have no greater joy than this, to hear that my [spiritual] children are living [their lives] in the truth.] ......[사26:1-21...제26장..((여호와께서 백성에게 승리를 주시리라))..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2.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5. 높은 데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6.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7.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8.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9.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10.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11.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오나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들을 사르리이다 12.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의 모든 일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13.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는 주만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4.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 15.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 16. 여호와여 그들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17.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산고를 겪으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 앞에서 그와 같으니이다 18. 우리가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을지라도 바람을 낳은 것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하였나이다 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어 놓으리로다 ((심판과 회복)) ...20.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21. 보라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당한 자를 다시는 덮지 아니하리라] -----***JC안에 거함([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심]믿음-소망-사랑 ==> 8복 + 성령의 열매)==>견고한 심지의 동행 =임마누엘로 인한 형통(찰라흐)에로 이어짐***----증인 됨의 나날!! ===찰라흐....형통하다 = 돌진하다/돌파하다, (주님의 영원한 경륜적 갈망 이름 위해, 예비하신 바 다루심 과정 그대로 다 거쳐서 마침내 뜻하신 바 그 뜻 그대로, 궁극적으로 영원에 이르도록) 외부적 환경과 장애, 즉 일시적 풍열수습조한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돌파하고 극복함 통해, 곧 엄동설한 뚫고 새싹 나고 꽃 피고 열매 산출-성숙-거둠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 보기에 기쁨이 되는, 시종여일하게, 참되게) 번성-번영-창대케 되다 === 1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 나를 지으신이, 부르신이, 보내신이가 하나님!! ......다른이가 보기에는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 해도, 주님이 주셨기에 바로 그것을 !! 너무너무 귀하고 보배롭게 여기는 바로 그 사람이 주께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오 놀랍도다!!, 주님을 발견하는 그대여!! .....이 사건을 바라보는 다윗의 영적 해석 :: 넘치는 은혜의 주님께서 두로 왕 히람에게 자발적 선제적 화친 행위로서 (그의 마음 감동시키심 통해) 왕궁 건축이라는 선물 제공, 이그런 마음 주시고 를 허락하신 분은 여호와이시니, 자기를 통일 왕으로 기름부으셨음은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분의 맡기신 백성을 잘 섬기는 목자 되라] 하심이니, 이는 오직 전적인 은혜로 그리하셨음을 감사함.....자랑거리가 하나도 없음 인정하며 마음 중심에 새겨 다짐함..(비록 넘어져도, 십자가로 넘어진 다윗이었다!!) :: 비른 믿음은 바른 깨달음!!..사랑스럽게 볼 수 밖에 없는바, 주님의 기쁨이다!! ((두로왕 히람의 고백)) 다윗이여!!...그대를 보니 살아계신 천지의 주재 참 하나님을 보는 것 같도다.. 살아계신 하나님 믿고 살고 누리는 그대를 보니 그대와 함께 하며 살아계신 하나님 만나고 싶고 뵈며 그분으로 살고 싶네..그분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그분에게 헌정하는 선물 드리고 싶네...나도 그대의 예배 무리에 끼워주게나....이제 알았도다..!! ===다윗의 아들과 딸들 ::: 시편45편.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 보게 될 바, 어린 양의 아내, 예수님의 신부인 유기적 생명 공동체 = 단체적 그리스도의 몸 교회..를 표상함 [((이스라엘의 왕도))신17:14-20...14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주시는 그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고 살 때에, 주위의 다른 모든 민족같이 당신들도 왕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 15 당신들은 반드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당신들 위에 왕으로 세워야 합니다. 당신들은 겨레 가운데서 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고, 같은 겨레가 아닌 외국 사람을 당신들의 왕으로 세워서는 안 됩니다. 16 왕이라 해도 군마를 많이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되며, 군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이집트로 보내서도 안 됩니다. 이는 주님께서 다시는 당신들이 그 길로 되돌아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17 왕은 또 많은 아내를 둠으로써 그의 마음이 다른 데로 쏠리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자기 것으로 은과 금을 너무 많이 모아서도 안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