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4장 (개요)
본장을 전 장의 마지막, 즉 여기 나온 평안의 약속과 거기에 나온 무서운 경고와 비교해 보면, 우리는 사도처럼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볼" 수 있다(롬 11:22). 몰락한 유대 교회에게는 시온이 밭같이 갊을 당했을 때의 엄위가 있으나, 그 폐허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 교회를 향해서는 인자, 그것도 큰 인자가 있다. 이는 여기 약속된 바대로
1. 민족들이 몰려옴으로 인해서 그것은 발전되고 확대될 것이다(1,2).
2. 그것은 평온과 평화 속에서 보호될 것이다(3,4).
3. 그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며, 변함없이 성실하며, 진실할 것이다(5).
4.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그의 모든 슬픔은 제거될 것이다(6,7).
5. 그것은 광대하고 번성하는 통치를 할 것이다(8).
6. 그들의 고통은 결국 행복으로 인도될 것이다(9,10).
7. 그의 원수들은 잠잠해질 것이다. 아니, 그들은 교회에 대한 자기들의 계획 속에서, 그 계획에 의하여 멸망할 것이다(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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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창설 예언(미 4:1-7)
본장의 시작인 "그러나" 는(한글 개역과 다름) 매우 안정되고, 하나님의 교회의 유익을 마음 가까이 두고 그의 번영을 관심하는 자들에게는 매우 기운찬 소생을 준다. 우리가 가끔 교회의 타락을 볼 때, 특히 교회 치리자, 일반 통치자, 제사장, 예언자들이 자신의 이익들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돌보지 않는 것을 볼 때, 그리고 교회의 황폐를 볼 때, 즉 시온이 그로 인해 "밭같이 갊을 당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이 한 날에 둘 다 멸절할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이름이 더 이상 기억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또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교회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가지지 못하리라고 결론지을 준비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믿음이 패하지 말게 하자. 교회의 잿더미에서 또 다른 불사조가 나올 것이다.
전 장의 마지막 말에서 "수풀의 산당과 같게" "성전의 산" 이 황폐하게 되었다는 것을 읽었다. 그런데 그러한 광야가 다시 열매맺는 땅으로 되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다. 본장의 처음 말들은 "여호와의 전의 산" 이 황폐로 인해 굴욕당한 것만큼 다시 잦은 출입에 의해 위엄의 회복을 가져온다. 비록 시온이 밭같이 갊을 당했어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흩으시지" 않으셨고, 유대인의 몰락에 의해 구원이 이방인에게 도래하여, 결국 세상의 부요함을 증진하게 된다(롬 11:11, 12). 이것이 예언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신비이다. 그리고 그는 다른 예언자가 같은 때에 여호와의 말씀에 의해 말한 것과 똑같이 본장의 처음 세 절에서 말한다(사 2:2-4). 이는 "이 두 증인의 입으로부터" 이 약속이 세워졌음을 보여 준다. 그 말씀은 이미 부분적으로 성취되었고, 약속하신 이가 신실하시므로, 앞으로도 성취될 복음의 교회에 관련시켜 볼 때, 매우 귀한 약속들이다.
Ⅰ. 하나님께서 세상에 세우시는 교회가 있을 것이다. 이는 유대 교회의 결점과 파멸 후에 있을 일이며, 마지막 날에 있을 일이다. 즉 몇몇 율법 학자들이 시인했듯이 "메시아의 날들에" 있으리라. 하나님의 백성은 새로운 성격에 의해 연합될 것이며, 새로운 영적 예배 방식이 시행될 것이며, 또한 새로운 체제의 직책들이 부가되리라. 이 새로운 성격에 의하여 더 좋은 특권이 인정될 것이며, 구약이 제정했던 것보다 더 나은 규정들이 인간들 사이에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설립을 위해 만들어질 것이다. "여호와의 전의 산" 이 다시 하나님의 신실한 예배자들이 설 든든한 땅이 될 것이며, 그들은 가서 그 앞에 참여하여 (전을) 세울 것이다(1절).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통일의 중심이 될 것이다. 한 교회가 세상에 세워질 것인데, 여호와께서 매일 "구원받을 자를 더하실" 것이다.
Ⅱ. 이 교회는 견고하게 터를 닦고 잘 지어질 것이다. 그것은 "산들의 꼭대기에 곧게 설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친히 바위 위에 세우실 것이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기초 위에 세워진 견고한 요새여서, 음부의 권세(문)가 이를 무너뜨리거나 해치지 못할 것이다(마 16:18). 그 기초는 "거룩한 산" 에 있고(시편 87:1), 제거될 수 없고 제거되지도 않을 "영원한 산" 에 있다. 그것은 한 산 위의 성전으로서가 아니라 많은 산 위에 세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기초는 확실하며 크기 때문이다.
Ⅲ. 그 교회가 높이 들려져서 뛰어나게 될 것이다.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난다." 처음에 작던 것이 크게 성장한 것을 보고 사람들이 놀랄 것이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지상의 어떤 왕국보다도 더 빛나는 광채를 발할 것이다. 그것은 "숨기우지 못할 산 위에 있는 동네" (마 5:14)와 같이 될 것이다. 이 나중 성전의 영광이 처음 것보다 더 크다(학 2:9; 고후 3:7, 8 등).
Ⅳ. 그 교회에 허다한 회개자들이 생길 것이며, 계속 개종자가 늘어나리라.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가기를 마치 강물이 끊임없이 흐르듯할 것이니, 각처로부터 교회로 신자들의 무리가 끊임없이 흘러들어 갈 것이다." 이는 마치 유대 민족이 경배하려고 성전으로 모여들었던 것과 같다. 그 때 많은 지파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 산 위의 전으로 왔으나 복음의 시대에는 많은 민족들이 교회로 몰려들 것이며, "구름과 비둘기처럼 그들의 창으로 향해 날 것이다." 사역자들은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기 위해" 파송되되, "헛되이 힘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을 믿고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된 무리들이 복받쳐 서로 격려할 것이며,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 산은 우리 중에 솟았고, 그 영적인 전은 우리 문 앞에 와서 우리 중에 세워졌으므로, 우리가 멀리 여행할 필요가 없도다" 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백성들은 "주의 권능의 날에 즐거워" 하게 되며(시 110:3), 안드레가 베드로를, 빌립이 나다니엘을 불러 그리스도와 만나게 해 주었듯이 힘자라는 대로 다른 사람들을 줄겁게 할 것이다. 그들은 "결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할 것이니(신 33:19)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 또 각각에게 충분할 것이다.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1. 이 개종한 사람들이 "야곱의 하나님의 전" 에서 발견되리라 기대한다. 그들은 그 곳에 와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 그 도는 우리로 그와 함께 걷게 하고 그에게 맡겨 우리로 은혜롭게 그와 만날 수 있게 하는 도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러 오는 곳에서 우리는 그를 통해 가르침을 받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2. 그들이 이처럼 하나님께 대해 배울 때 그들이 하게 될 일이 있다. 즉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굳건하게 결심한 자들을 그들이 배운 대로 행하도록 가르치시리라고 안심하고 기대할 수 있다.
Ⅴ. 이 일을 위해 새로운 계시가 세상에 선포되리니 교회가 세워지고 무리들이 그리로 몰려들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복음을 여기서는 "여호와의 말씀" 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무리가 큼이라" (시 63:11 . 한글 개역과 다름). 그것은 하나님의 원뜻과 권위로 되어 있다. 그것은 주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 공포되기 시작했다(히 2:3). 그리고 그것은 "율법" 이니, 곧 믿음의 율법이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고, 그리스도에게로 향해" 있다.
이것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온으로부터" 나가게 되었는데, 이 성읍들은 구약 율법 시대의 큰 성읍으로서, 성전, 제단, 예언이 있었고, 유대인들이 각 곳에서 예배하러 모여들던 곳이었다. 그러므로 복음은 구약과 신약의 연관을 보여 주기 위해서 일어나야만 한다. 즉 복음은 율법에 반대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의 설명과 예증이며, "그것의 뿌리로부터 자라난 가지" 이다.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시고 기적을 행하셨던 곳은 예루살렘에서였다. 거기서 그는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 거기서 성령께서 부어지셨고, 모든 민족에게 회개와 죄의 용서를 외쳤던 사람들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라" 는 명령을 받았으니, 그로 해서 황폐한 세계에 물줄기가 흐르게 되었다.
Ⅵ. 복음이 전파될 모든 곳에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회개케 하는 권능이 동반될 것이다(3절). "그가 많은 민족 중에서 심판하실" 것이다. 율법을 주는 분 메시야가 여기서는 심판주이시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그에게 "모든 심판을 맡기셨고," "그는 심판하러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의 말씀, 즉 "그의 복음의 말씀" 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왔는데, 이는 그가 "거룩한 산 시온에 세운 왕" 으로서 앉으실 때 통치하시고 심판하실 황금 지팡이(홀)다(시 2:6). 그것을 가지고 그는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8).
다윗의 자손이 "이방 중에서 심판하실" 것으로 약속되었으니(시 110:6), 그가 영원한 복음의 수레를 타고 나아가, "정복하고 또 정복하실" 때에 그리하실 것이다.
Ⅶ. 서로 간의 평화와 사랑의 섭리가 메시야 왕국의 설립의 복된 결과일 것이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것이다. 즉 난폭하고 용맹스러웠던 성 잘내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놀랍게도 누그러져 온화하고 유순하게 될 것이다(딛 3:2, 3). 회개 이전에는 남에게 해를 끼치고 또 해를 못참던 자들이, 회심 이후에는 해를 참고, 반면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복음이 역사하는 한 그것은 인간을 화평하게 하나니, 이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 요, "정중하고도 용이하게 권고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민족들이 복음으로 변화된다면 오직 그때에만 세계적인 평화가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을 때, 로마 제국에는 보편적인 평화가 있었다. 최초로 복음의 교회로 인도된 자들은 모두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행 4:32). 그리고 우리는 초대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훌륭히 "서로 사랑했는가" 를 살필 수 있다. 하늘에서는 이것이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다음과 같이 약속되었다.
1. 아무도 불화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의 기술이 향상되는 대신에(어떤 이는 이를 왕국의 영광이라고 한다) 잊혀져서 소용없는 것으로 폐기될 것이다. 그들은 이전처럼 "더 이상 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그들이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없고 그들의 이웃을 보호할 필요가 없고 그들의 이웃을 해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더 이상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않을 것이다." 복음이 사람을 겁장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평화롭게 할 것이다.
2. 모두가 악과 악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4절). "그들은" 안전하게 "앉아서," 아무로부터도 방해받지 않을 것이며, 평안히 앉아서 자신들을 귀찮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그 열매를 먹고 그 잎 외에 다른 보호처를 필요로 하지 않으리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그들을 두렵게 할 아무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도 두려워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솔로몬 때처럼 "평화가 넘쳐날 것이다." 그를 따르던 자들이 세상에서 괴로움을 당했지만, 이제 그 안에서 큰 평안을 누린다. 이 말이 우리의 생각과 달리 들릴지 모르나 우리는 그 말을 믿어야 하나니,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그리고 그의 말씀은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니, 그는 그 말씀으로 이야기하신 것을 섭리와 은혜로써 행하실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 이신 분께서 "평강의 하나님" 이 되시리라.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 그분께서 보호하시는 자는 평안하게 됨이 마땅하다.
Ⅷ. 교회들은 그들의 의무에 있어서 꾸준할 것이며, 그들의 평화를 선용할 것이며, 결코 여호와를 격동케 하여 여호와께서 그 평온을 빼앗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교회들이 안식을 누릴" (5절) 때 그들은 교화되고 확신을 얻으며, 평안을 누릴 것이다. 또 이방인들은 신도 아닌 신들에게 그렇게 하듯 그들은 하나님께 확실한 믿음을 보여 주리라.
앞 일의 예언들에 대해(사 2:2), "오 야곱의 족속아! 오라, 그리고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라는 말이 뒤따랐다(사 2:5).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하리로다" 라고 되어 있다. 평화가 고난을 뚫고 여호와께로 향하려는 우리의 결심을 굳게 할 때에 그 평화가 참으로 축복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이제 다음의 사실들을 살펴보자.
1. 이방인들은 얼마나 끈질기게 그들의 신들에게 매달리는가?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도다." 그들의 신을 가지고 그에게 매달려 예배와 봉사를 할 것이며 그에게 의지하여 확실히 믿을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으로 신(神)을 삼든지, 그들은 모든 행동과 만사에 있어서 그 신의 이름으로 행한다. 사공들은 폭퐁 중에 "각각 자기의 신을 불렀다" (욘 1:5). 그리고 자기의 신들을 바꾼 나라의 예는 찾아 볼 수 없다(렘 2:11). 만일 천군이 그들의 신들이라면 그들은 그 신을 사랑하며 섬기며, "그 신들을 좇으리라(렘 8:2)."
2.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얼마나 단호히 하나님께로 향하기를 결심하는가?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하리로다. 우리는 우리 모든 길에서 그를 시인하며, 끊임없이 그를 주목하며 행하리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 외에는 행하지 않으며 그와의 관계를 자신있게 공포하리라." 그들의 확신이 단호하여, 논쟁할 여지가 없음을 주목하자.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하리라." 이는 공의롭고 이치에 맞으니, 그는 "우리의 하나님" 이시다.
또 그것은 영구한 결심이다. "우리는 영원히 그를 행하며, 결코 그를 떠나지 않으리라. 그는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이실 것이며, 따라서 우리도 그의 백성으로 결코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Ⅸ. 분산, 비탄, 연약함이 교회에 있지만, 교회는 형성되어 설립되고 매우 중요시될 것이다(6,7절).
1. 교회의 상태는 부분적으로 유대 민족의 부패를 통하여,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신음하던 압제를 통하여, 구약의 마지막 시대에는 비천하고 연약하고, 매우 무력하게 되었다. 그들은 "상하고, 근심하며, 흩어진" "양떼" 와 같았다(겔 34:16; 렘 1:6, 17). 그들 중에, 또는 다른 곳에 있는 선한 사람들은 흩어져서 매우 연약해졌고, 다소 잃어버려져서 멀리 보내졌다.
2. 이 모든 비탄이 치유되고, 질병은 고쳐질 것이 약속된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셔서(마 15:24), "이스라엘의 잃은 양" 에게 그의 사도들을 보내실 것이다(마 10:6). 주저하며 용기가 없어서 바로 서지 못하는 유대인들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모으셨나니(7절), 그들은 로마서 11장 7절에 언급된, "은혜로 택하심을 얻은 남은 자" 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자였다. 또한 멀리 쫓겨난 이방인들 중에서(이방인들은 그렇게 서술되어 있다. 엡 2:13; 행 2:39) 그는 강한 나라를 일으켰으니, 그들의 대다수가 유대인보다도 더 많이 교회로 들어왔다(갈 4:27). 그리고 그와 같은 강한 나라인 복음의 교회는 지옥의 문이 결코 틈타지 못할 견고한 나라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어떤 나라보다 더 많으며 "여호와와 그의 권능 안에서 강하게 되었다."
Ⅹ. "메시야" 께서 이 왕국의 왕이 되사 그것을 보호하고 치리하시며, 그것의 만사를 최선으로 명하시기를 시대의 마지막까지 하실 것이다. 주 예수께서 말씀과 성령에 의해 "시온 산에서 그들을 치리하리라." 또 이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리니 "그의 치리와 평화의 증가에는 끝이 없을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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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시온의 승리(미 4:8-13)
이 대목은 시온과 예루살렘을 말하며, 여기서는 "양떼의 망대" 또는 "에돌의 망대" 라고 불렀다. 그러한 장소는 베들레헴 근처에 있다(창 35:21). 또 혹자의 추측으로는, 그것은 천사들이 목자들을 그리스도의 탄생의 소식에 접하게 했을 때, 목자들이 양 떼를 치던 바로 그 장소라 하며, 어떤 이들은 베들레헴을 말한다고 생각하고 있다(5:2). 어떤 이들은 "양문" (느 3:32)이라고 불리우는 예루살렘 문에 있는 망대라고 생각하며, 그 문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루살렘 또는 시온, 즉 "다윗의 망대" 인 듯하다. 이스라엘의 모든 양들이 일 년에 세 번 거기로 몰려온다. 그것은 "요새" (성채)(예루살렘에 있는 한 장소의 이름도 되는 "오벨" , 느 3:27), 또는 "시온의 딸" 로 호칭되는 성이었다.
Ⅰ. 양떼의 망대요 그리스도의 양들 모두가 한 목자 아래 보호되는 양의 우리인 영적 예루살렘, 곧 복음의 교회라는 영광스런 약속을 받는다. "네게로 돌아오리라. 네가 오랫동안 원하고 바랐던 것, 처음 지배까지, 즉 다윗과 솔로몬의 지배와 동등한 위엄과 권세가, 이 통치로 예루살렘이 처음 일어났고 포로되어 빼앗겼던 왕국이 예루살렘의 딸에게 다시 올 것이다. 그것은 예전처럼 위대한 자태를 나타내어 나라들 중에서 빛날 것이며,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리니, 이는 첫 또는 으뜸되는 통치이다." 그러나 이것은 스룹바벨에게서 성취된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통치는, 내적으로 영광과 주권, 그리고 외적으로 권세의 확장을 고려해 볼 때 처음 통치만 못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메시야" 의 왕국을 지칭해야 하며(갈데아 의역판은 그렇게 언급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께 "그 조상 다윗의 위" 를 주시사 "거룩한 산 시온" 의 왕으로 세우시고, "이방을 그의 유업으로 주고" (시 2:6), "장자로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할" (시 89:27; 단 7:14) 때에 그 완성을 볼 것이다. "다윗이 심령으로 그를 주(主)라고 불렀으며," 다윗은 그를 목격했고(Pocock 박사가 말한 것처럼), 이 목격은 진실하며, 그가 솔로몬보다 위대하셨고, 그들의 어떤 통치도 그 크기와 수명에 있어서 메시야의 통치와 비교가 안 됐다. 사람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 이라고 외치며 그리스도를 예루살렘에서 환영했으니, 이는 그것이 "시온의 딸에게" 돌아온 "첫 통치" 였음을 보여준다.
복음서 기자는 그것을 시온의 왕이 그녀(시온)에게 오시리라는 약속으로 적용한다(마 21:5; 슥 9:9). 어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한다. 시온과 양떼의 망대 예루살렘, 유대인의 나라에게 "처음 통치가 돌아왔다." 즉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처음으로 세워졌고 "왕국의 복음" 이 먼저 "선포되었고" (눅 24:47), 거기서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유대인의 왕" 이라고 불리워졌다.
Ⅱ. 이는 문자 그대로의 예루살렘의 환난에 대한 예언에 의해 설명된다. 이 환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복음의 예루살렘에 행하실 것의 일에 대한 한 모형과 상징으로서,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호의와 구원이 허락될 것이다.
1.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고통 중에 놓인다. "그녀는 크게 부르짖으니, 그녀의 이웃 전부가 그녀의 (딸 시온) 슬픔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녀의 속에 왕이 없고," 그녀가 가졌던 영예와 권세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왕비로 앉았을 때처럼" 열방을 다스리는 대신 그들에 의해 통치되고 포로가 되었다. 그녀의 "모사가 죽었으므로" 그녀는 더 이상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그녀의 원수의 뜻에 맡겨져서 그 원수들의 모사에 의해 처리된다. "고통이 그녀에게 임했다" (한글 개역과 다름).
(1) 그녀는 바벨론으로 잡혀가 슬픔의 고통이 있게 된다. "그녀는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하게 되었으며, 온갖 불편을 당하게 된다. 그녀는 바벨론까지 이르러 지겨운 70년을 불행한 포로 생활로 보내고, 구원받기를 기다려 그 때를 오랫동안 생각하며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당한다."
(2) 그녀가 바벨론에서 구원을 얻을 때, 그리고 거기서 그녀의 원수의 손으로부터 구원받을 때도 아직 두려움의 고통 중에 있었다. 한 환난의 끝이 다른 환난의 시작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역시," 곧 예루살렘은 재건되는 때에도, "많은 나라들이 그녀를 대적하여 모이기" 때문이다(11절). 그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 때도 그랬듯이, 힘 자라는 대로 성전과 성벽을 건축하는 일을 방해했다. 그들은 마카비 시대에도 그랬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녀를 더럽히자." 그녀를 죄로 더럽혀진 곳처럼 여겨지도록 하며, 하나님과 인간에게서 버려지고 포기되도록 하자고 했다. 그녀(예루살렘)의 성고가 더럽혀지게 하고 그녀의 영예를 티끌 속에 묻어버리자. "우리의 눈을 들어 시온을 보게 하며" 그 부패를 보고 기뻐하기를 에돔에 관해 말해진 것처럼 하라(옵12. "네가 형제의 날에 방관하지 아니할 것이다"). 눈을 들어 시온에서, 오래 고대하던 그 날에 대한 우리의 소망을 보자.
그들은 이처럼 적이 자기들을 적대하여 연합하고, 자기들을 비방하는 소리를 들을 때, 의심할 바 없이 비탄에 빠져 크게 부르짖게 되리라. "밖엔 전쟁이요, 안에는 공포로다."
2.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공포가 진정되었다.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의 슬픔과 두려움을 잠잠케 하며 그 속에 빠지지 말라. 이는 사태가 지금 네게 불리하나, 마침내는 잘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의 고통이 크지만, 그 고통은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과 같아서(9절), 애써 구로하여 낳을 것이니, 결국은 좋게 되리라."
예루살렘의 고통은 죽어가는 고통이 아니라, 해산하는 진통과 같으니, 잠시 후에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기쁨 때문에 이 고통이 잊혀질 것이다. 바로 그 예루살렘이 이 일로 평안을 얻어, 어떠한 곤궁도 참음으로써, 메시야의 강림 때까지 남을 것이다. 이는 거기에서 처음 그의 나라가 세워졌고, 그녀는 그 축복을 가지고 있는 한 멸망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마침내 그녀가 밭같이 경작되어 무더기가 될 때도(3:12 에서 경고된 대로) 그녀의 특권은 영적 예루살렘에 양도되어, 그녀에게 주어진 약속은 완성될 것이다. 이제 예루살렘은 안심할 것이니,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녀의 바벨론 포로 생활은 끝날 것이니, 복된 아침이 되리라(10절).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이는 하나님의 종의 구실을 한 고레스 왕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의 모형이었고, 영원한 복음 속에 선포된 영적 사슬로부터 해방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매인 자들에게 해방을 주셨던" (눅 4:18, 19) "여호와의 희년" 이다.
(2) 그녀의 원수들의 계획이 후에 좌절될 것이다. 아니 도리어 그들에게 덮칠 것이다(12,13절). 그들은 그 한 날을 약속했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날" 로 밝혀질 것이다. 그들이 "시온을 치려고 모여" 파괴하려 했으나, 그것은 그들 자신의 파멸의 화근임이 밝혀질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되리라.
[1] 그들이 시온을 치려고 함께 모여온 것이 그들의 파멸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깨뜨리려고 "연합하여 허리띠를 매지만," 오히려 그들이 "쳐서 깨뜨려질" 것이다(사 8:9). "그들은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함께 모여, 신의 섭리가 그들 속에 나타날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로 인해 무엇을 계획하시는지 거의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권고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함께 모여 무엇을 목적으로 할는지는 알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아 무엇을 목적하시는지는 모른다. 그들은 시온의 파멸을 목표로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멸망을 목표하신다. 사람이 신의 섭리를 성취하는 도구로 쓰일 때는, 그들과 하나님의 의도는 전혀 딴판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앗수르의 왕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는 그의 백성의 타락을 징계할 막대기여서 그들을 개혁하는 데 쓰여진다. "그의 뜻은 이 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 같지 아니하다" (사 10:7). 그리고 여기서는 이렇게 된다. 열방이 마치 전장(戰場)에 모여드는 병사들처럼 시온을 치려고 모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곡식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같이" 그들을 모아 쳐서 깨뜨리신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시온에 대적하여 모이지" 않았더라면, 그토록 쉽고 효과적으로 파멸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회를 파멸시키려는 원수들의 계획들이 흔히 그들 자신의 파멸이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을 파멸을 위해 준비하고 그 길에 자신을 나아가게 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손이 계획한 올무에 걸린다."
[2] 시온은 그들을 이기는 영예를 가지게 되리라(13절). "곡식단이 타작 마당에 모이면" 곡식이 소에 의해 밟히는 것처럼, 그들이 밟힐 때, "일어나서 칠지어다, 딸 시온이여! 그들을 두려워하는 대신에, 그들로부터 도주하는 대신에, 대담하게 그들을 공격하되 신의 섭리가 허락하신 그들을 짓밟는 기회를 취하라. 너 자신의 연약함을 핑계하지 말고 네가 그와 같은 수 많은 원수의 연합에 상대가 안 된다고 말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도록 네 뿔을 철같게 하며, 그들이 넘어질 때 그들을 밟도록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라! 이리하여 너는 오랫동안 너를 쳐서 깨뜨렸던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때 "딸 바벨론은 때가 이른 타작 마당과 같은지라" (미구에 추수 때가 이르리라. 렘 51:33). 그리고 "지렁이 같은 야곱" 이 하나님께서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타작 기계" 가 된다(사 41:14, 15). 뒤바꿔진 처지가 얼마나 기이하며, 복된지! 야곱은 타작마당이었고, 바벨론은 타작 기계가 되었도다!(사 21:10)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이 할 정복 사업을 가지실 때, 그는 그들에게 힘과 능력을 공급하시고, 그 뿔을 철 같게 하고 그 굽을 놋같게 하실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하실 때 그들은 그가 주신 힘을 사용하여 맡기신 일을 수행해야 한다. 시온의 딸도 일어나 타작해야 한다.
[3] 그 승리의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질 것이다. 시온은 이 곡식단들을 타작마당에서 타작하지만, 타작된 곡식은 하나님의 제단에 제물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즉 내가 그것을 성별하리라), 그들의 제물을 온 땅의 대주재께 돌리리라." 시온의 승리로 획득된 탈취물은 성소로 가져와 미디안의 경우처럼 부분적으로(민 31:28), 또는 여리고의 경우처럼 전부 하나님께 드려질 것이다(수 6:17). 하나님은 여호와시오, 만유의 원천이시니, 그는 "온 땅의 대주재" 요 힘의 원천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어떤 탈취물이나 재물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지만, 만일 기꺼워한다면 그것을 요구하실 수도 있다. 또 우리는 우리 자신과 함께 우리 가진 모든 것을 그의 영예를 위해 바쳐 그가 지시하는 대로 쓰여지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 가진 모든 것은 그 위에 "여호와께 돌리는 거룩함" 을 가져야 하며, 우리의 탈취물과 재물 모두는 "온 땅의 대주재께 구별하여 드려야" 한다(사 23:18).
그리고 예상 외의 성공은, 그것이 전쟁에서의 탈취물이든지 무역에서의 수입이든지 간에, 특별한 감사를 요한다. "우리에게 부요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정직하게 얻은 것에 대해서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 모두를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의 그의 패배를 가리킨다고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바벨론의 멸망, 또 다른 이들은 마카비의 성공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석학한 포콕(Pocock) 박사와 몇몇 사람들은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룰 흑암의 세력에 대한 영적 승리에서 완전히 성취되었다고 생각한다. 열방은 자기들이 기독교가 아직 성장하지 못했을 때에 파멸시켰다고 생각했으나, 기독교가 그들을 이기고 승리하였으니, 곧 증오에 가득 차서 대적하던 자들, 특히 유대 민족은 "깨어졌다" (마 21:44).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무리가 교회로 거두어져서 그들과 그들의 재물이 "온 땅의 대주재" 이신 주 예수께 구별되어 드려졌다.
====호크마===
..========4:1
o말일에 이르러서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 '말일에'(베아하리트 하야밈)에 대해서 혹자는 '한정이 없는 먼 미래'를 의미하며, 본래는 그것이 종말론적 용어가 아니나 문맥상 본 구절이 여호와의 날을 지칭하기 때문에 종말론적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McComiskey). 그러나 70인역(LXX)에서 '마지막 날들에'(엔 타이스 에스카타이스 헤메라이스)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신 4:30; 겔 38:16; 호 3:5) '베아하리트 하야밈'은 종말론적으로 해석되는 것이 자연스럽다(Lange, Calvin). 그러므로 본장은 단순히 앗수르의 포로 상태에서 귀환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를 통해서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신탁이다(Smith). 한편 '여호와의 전의 산'은 시온을 의미한다(2,7절, Delitzsch). 이곳은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며 현존하시는 산이다. 3:12에서 성전의 파괴를 선언했던 것과는 달리 여호와의 전이 시온에 세워질 것을 선언한다. 더욱이 시온은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서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볼 정도로 고양(高揚)될 것이며 그 결과 모든 민족들, 곧 열국들은 시온에 매료되어 그곳으로 몰려오게 될 것이다(시 87편, Lange).
=====4:2
o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 '시온'은 여호와의 전이 소재한 여호와의 산이다. 그러므로 산 자체에 강조점이 있다기보다 여호와께서 임재하신다는 사실에 초점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시온은 곧 여호와의 임재와 현존을 뜻한다. 열국들이 시온에 매료되어 몰려드는 것은 시온 자체에 매료시킬 만한 요소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시온에 임재하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말일에' 열국들은 시온에서 흘러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게 되며 그 말씀을 받기 위해서 시온에 현존하시는 여호와 앞에 몰려들게 된다. 열국은 그 때에 여호와의 앞에 몰려들게 된다. 열국은 그때에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해서 완전히 변화될 것이다. 그들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살게 될 것이며 죄와 사망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도를 따른 여호와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Delitzsch).
=======4:3,4
o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 말일에 모든 열국이 모여들 시온은 약육강식(弱肉强食)과 같은 세상적인 원리가 통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의 재판장이며 심판자이신 분은 폭력이나 권력에 의지하여 부당한 판결을 하는 사람이나 나라가 아니라 바로 공의로우신 여호와 자신이시다. 여기서 '심판하시며'는 '다스리다'라는 의미이다. 여호와는 시온에서 온 우주의 주권자로서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실 것이며, 세상에서 '힘의 논리'로 좌지우지 했던 '강한 이방'을 판결하실 것이다.
o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 목가적인 주제를 설명하고 있는 본문은 시온에 있을 평화를 표현한 것이다. 당시의 다른 선지자들도 목가적인 표현을 통해서 평화를 묘사하고 있다(사 11:6-10; 호2:15; 암 9:13-15). 미가는 이 표현을 사용하여 메시야가 도래하여 이루실 왕국의 통치 원리를 설명하였다. 메시야 왕국의 통치 원리는 세상 나라의 원리인 힘이 아니라 평화이다. 세상은 철을 가지고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칼과 창을 만드나 메시야 왕국은 농기구를 만든다. 세상은 약탈자와 침략자로 인해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평안히 거할 수 없으나, 메시야 왕국에서 자연스럽게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밑에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평안히 쉴 수 있다는 것은 솔로몬 시대에 누렸던 평화롭고 번영된 나라를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선지자 스가랴가 선포한 메시야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왕상 4:25; 슥 3:10). 메시야 왕국에서는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통치 시대에 누렸던 것처럼 번영과 평화가 넘쳐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는 힘있는 자가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지배하며 약탈하지만, 메시야 왕국에서는 의롭고 공평하신 메시야가 평화로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o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 이는 앞서 언급된 모든 말씀을 보증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모든 것이 황폐해질 것이라는 선언을 들은 유다 백성들에게 미가가 예언한 본문의 말씀은 전혀 믿기지 않을 사건이었다(Calvin). 그러나 그것은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전해진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결코 변개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이 약속은 변치않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보증이다.
=========4:5
o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 본절은 미가가 예언한 메시야 시대의 사건들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미래의 사건임을 시사한다(Smith). '이름'(쉠)은 그 이름의 소유자의 인격, 본질, 속성, 영예 등을 나타낼 떠 사용된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는 메시야 왕국에 들어간 자들이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하며 여호와의 능력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한다(슥 10:12, McComiskey, Delitzsch).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전능하심을 통해서 자신의 모든 성품을 드러내셨다. '만민'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 곧 우상의 능력으로 살아가지만, 메시야 왕국을 소유할 여호와의 백성들은 만군의 주가 되신 전능하신 여호와의 능력 안에서 행하게 되므로 온전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한편 미가가 본절에서 '만민'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2절의 '많은 이방'과 연결되는 것으로 유다 백성의 삶이 필연적으로 이방국가들과 상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방 국가와 유다는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Smith).
=======4:6,7
o그 날에는 - '그 날'은 1절에 언급된 '말일에'와 병행을 이루는 표현이며 메시야 왕국을 세우는 마지막 때를 시사한다(Lange, Delitzsch).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날에 심판받은 상태에서 회복되어 구원을 받게 되고, 예루살렘은 만국 중에서 높임을 받을 것이다(1절).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 본문은 메시야 왕국을 세우시리라는 소망의 말씀이다. 메시야 왕국에 참여하게 될 하나님의 백성은 '저는 자'와 '쫓겨난 자'이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직접 심판하셔서 '환난을 받게 된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자기 땅에서 쫓겨나는 수치를 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저는 자'처럼 연약하며 무력한 존재로 전략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힘을 잃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구원만을 바라보는 그들을 다시 불러 모으셔서 남은 백성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강한 나라로 만드실 것이다. 여기서 '되게 하고'(* ,심티)는 '...으로 만들다'라는 의미로서 메시야 왕국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McComiskey). '남은 백성'은 결코 백성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호와는 심판을 받아 수치를 당하고 비참한 삶을 영위하는 백성들을 다시 모아서 메시야 왕국에 들어가게 될 남은 백성으로 만드시며 강한 나라로 만드실 것이다.
o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 - 여호와께서 남은 자들로 성취하실 강한 나라는 하나님이 직접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는 영원한 나라이다. 여기서 '이제부터'는 미가가 예언하는 당시의 현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일에 이루실 최종적인 구원의 때를 가리킨다(Von Orelli). 하나님은 그 날에 남은 자들의 왕이 되셔서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다.
=======4:8
o너 양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 '양떼의 망대'와 '딸 시온의 산'은 동격이다. '시온의 산'에서 '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펠'은 성전이 잇는 산과 기드은 골짜기와 붙어 있는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요새를 가리킨다. 이것은 후에 시온과 농의어로 사용되었다(대하 33:14; 느 3:25-27, McComiskey). 시온의 산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양떼의 망대를 구약 성경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다윗 왕가를 지칭하는 표상이다(삼하 7:8; 시 78:70; 렘 13:17; 암 9:11, Von Orelli, Delitzsch). 더욱이 '이전 권능'이라는 표현은 '양떼의 망대'가 다윗 왕가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모아 세우실 메시야 왕국, 곧 강한 나라가 이전에 다윗과 솔로몬이 세웠던 나라보다 훨신 더 부강하고 번영하며 평화스러운 나라일 뿐만 아니라 다윗을 통해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던 영원한 왕권의 성취임을 알려준다.
=======4:9
o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 본절은 앞서 언급된 예루살렘에게 있을 장래 영광에 대한 예언과는 대조적으로 현재 예루살렘이 겪는 고난을 나타낸다. 그들이 고난 중에 부르짖는 이유는 '왕'이 없기 때문이다(Von Orelli). 여기서 '모사'는 왕과 동의어이다(Lange, Orelli). 여기서 '모사'는 왕과 동의어이다(Lange, Delitzsch). 백성들은 왕이 없음으로 인해서 고난을 당하였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왕이 없어졌고'는 이방 국가처럼 단순히 국가의 붕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으며 다른 이방 국가에게 예속된 것을 의미한다(McComiskey, Lange).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이며 하나님의 율법을 세우고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대리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의 상실은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와 인도하심의 폐지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것은 다윗 왕권이 영원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깨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왕권의 상실은 메시야가 오셔서 이루실 영원한 다윗의 왕권과 평화의 상실을 뜻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당혹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은 이스라엘의 겪는 고난을 비유한 것이다(사 13:8; 렘 6:24; 호 13:13). 해산하는 여인이 당하는 고통은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이방 국가들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해산하는 여인이 고통을 당한 뒤에 생명을 창출하는 것처럼 이스라엘도 고난 뒤에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Mays, Smith).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이다(10절).
=======4:10
o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하며 또 바벧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 미가 선지자는 본 구절에서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을 한 후에야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포로 과정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성읍에서 나가서'이다. '나가서'는 이스라엘 성읍이 원수들의 손에 의해 함락되는 것을 뜻한다. 둘째는 '들에 거하며'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원수들의 포로가 되는 것을 나타낸다. 셋째는 '바벧론까지 이르러'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벧론'이다. 혹자는 미가가 예언할 당시에는 앗수르의 위협이 있었을 뿐이며 바벧론은 단지 앗수르의 속국에 불과했기 때문에 '바벧론'이란 언급은 후대의 삽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해석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1)바벧론은 하나님이 없는 세계 권력의 중심지이다(Lange). 바벧론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적대감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창 10:10; 11:4-9) 이방 국가 전체를 뜻한다. (2)바벧론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킨 역사적 바벧론 국가이다(Von Orelli). 더욱이 다음에 나타난 '원수들'과 '많은 이방'(11절)이 모두 복수라는 사실은 본절의 바벧론이 역사적인 바벧론 국가일 가능성을 훨씬 증폭시켜 준다(McComiskey). '바벧론까지 이르러'는 당시 앗수르의 속국에 불과했던 바벧론이 강대해져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을 선포한 미가의 예언적 계시이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국가의 권력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당하며 포로 생활을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o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 '원수들의 손'은 앞서 언급된 '바벧론'을 가리킨다. 미가는 하나님께서 바벧론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모습을 '속량'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속량'은 팔았던 것을 값을 주고 다시 사는 것을 뜻한다(시 78:55,Lange). 이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 생활이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시사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섬기지 않는 자기 백성들을 징계하신다. 백성들이 연약하여지고 비참해져서 다시 하나님을 찾을 때 구원하시고 강대한 나라로 만드신다(6,7절).
=======4:11
o이제 많은 이방이 모여서 너를 쳐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 '많은 이방'은 앞서 언급된 '바벧론'과 '원수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시온의 대적자들이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목적은 '시온이 더럽게 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온이 더럽게 되며'는 단지 시온의 백성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좀더 심하게 시온의 완전한 멸망이나 파괴를 뜻한다. 많은 이방들은 시온을 완전히 멸망시킴으로 시온의 거룩함인 하나님의 백성이 아무것도 아님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4:12
o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 모략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곡식단을 타작 마당을 모음 같이 그들을 모으셨나니 - 많은 이방의 목적(11절)은 헛된 생각이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시온의 거룩함을 짓밟는 것처럼 생각하였으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시온이 더럽혀지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으로 인해서 멸망당하는 것은 이방의 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많은 이방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된 것과 그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시온을 공격하기 위해서 모여든 많은 이방들을 통해서 시온을 징계하실지라도, 나중에는 시온을 공격한 이방들을 철저히 진멸시키실 것이다. 왜냐하면 이방들은 시온을 공격하여 완전히 멸망시킴으로 시온을 더럽혔을 뿐만 아니라 오만하여져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대적하여 승리한 것으로 착각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시온을 공격하기 위해 모인 많은 이방들은 심판을 기다리기 위해 모인 것에 불과했으며 그들의 승리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Smith).
======4:13
o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 내가 네 뿔을 철 같게 하며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니 - '뿔'은 힘을 상징한다(신 33:17; 삼상 2:1). '굽'은 '타작마당'(12절)과 연결된 것으로 이스라엘의 타작 마당을 상기시킨다. 이스라엘은 타작할 때 밟아서 낟알을 털어내었다. 하나님은 이방으로 인해 멸망당한 이스라엘에게 철과 놋과 같은 힘을 주셔서 마치 곡식을 타작하는 것처럼 많은 이방을 쳐부수게 하실 것이다.
o내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 그들의 재물을 온 땅의 대주재께 돌리리라 - '구별하여'(베차)는 성전(聖戰)을 나타낼 때 사용된 용어이다. 이것은 시온이 많은 이방을 쳐부수는 전쟁이 하나님과 대적자들과의 싸움임을 알려준다. 이 전쟁에서 시온을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많은 이방을 물리치고 얻은 탈취물을 구별하여 '온 땅의 대주재'되신 여호와께 드릴 것이다. 이처럼 여호와는 온 땅의 대주재로서 절재적인 주권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권력을 다스리신다(McComisk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