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6.05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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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주 예수 그리스도(마 5:18; 요 10:35)와 사도 바울(갈 3:6; 딤후 3:16)의 증거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 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진술된 대로(1:8), 우리는 성경의 원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오류가 없이 기록되었고 그 본문이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구약성경에서 전통적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야곱 벤 카임에 의해 편집한 제2 랍비 성경(봄버그판)을 표준적 본문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본다.

성경은 성도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들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영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함 통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며 살아야 한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고 있다.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잘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 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 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서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내용 목차 ===

머리말 ····················································································3

서론························································································7

1장: 욥이 재산과 자녀를 잃음···········································9

2장: 욥이 자기 건강까지 잃음·········································18

3장: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함·········································21

4장: 엘리바스--죄 없이 망한 자가 없다·························24

5장: 엘리바스--하나님의 징계는 복되다·························28

6장: 욥--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 ··········37

7장: 욥--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 ·····························41

8장: 빌닷--네 자녀들이 범죄했기 때문이다····················46

9장: 욥--하나님과 쟁변할 자 없다··································50

10장: 욥이 하나님께 탄원함··············································62

11장: 소발--욥에게 회개를 촉구함···································66

12장: 욥--하나님께서는 악인의 형통을 허용하셨다·········70

13장: 욥--너희는 다 쓸데없는 의원들이다·······················73

14장: 욥--허무한 인생을 쉬게 하소서······························76

15장: 엘리바스--악인은 일평생 고통을 당한다 ················80

16장: 욥--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다······························89

17장: 욥--의인은 그 길을 독실히 행함····························93

18장: 빌닷--악인의 빛은 꺼진다 ·······································96

19장: 욥--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다·····························100

20장: 소발--악인은 하나님의 벌을 받는다····················104

21장: 욥--어찌하여 악인이 형통한가? ···························107

22장: 엘리바스--악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112

23장: 욥--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신다··························118

24장: 욥--하나님께서 악인의 심판을 지연하신다··········124

25-26장: 빌닷과 욥--벌레 같은 인생····························128

27장: 욥--악인은 하나님의 보응을 받는다····················130

28장: 욥--지혜는 고귀하다·············································133

29장: 욥--옛날은 복되었다·············································136

30장: 욥--그러나 지금은 고난 중에 있다······················141

31장: 욥--나는 의롭게 살았다········································145

32장: 엘리후가 말을 시작함···········································151

33장: 하나님은 자신을 다 알리지 않으심······················155

34장: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심····································159

35장: 사람의 의는 하나님께 유익을 드리지 못함··········164

36장: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선하심, 엄위하심··············167

37장: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크심····································172

38장: 하나님께서 자신을 증거하심·································175

39장: 동물 세계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181

40장: 네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185

41장: 온 천하의 것이 내 것이다 ····································189

42장: 욥의 회개와 회복··················································192

===서론===

욥기의 저자는 전통적으로 욥 자신이거나 모세라고 본다.1) 어떤 학자들은, 욥의 사건이 족장 시대의 것일지라도, 욥기는 솔로몬 시대에 쓰였다고 보나,2) 그것은 매우 부자연스럽고 욥기의 내용의 진실성을 손상시키는 생각이라고 보인다. 또 어떤 이들은 심지어 욥기가 욥과 그 친구들의 실제의 대화를 쓴 역사가 아니고 하나의 드라마라고 하지만, 욥기는 희곡이 아니고 역사적 내용이다. 

매튜 풀(Matthew Poole)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본서는 허구나 비유가 아니고 참된 역사이다. 그것은 우리가 거기에서 장소들, 인물들, 사물들과 그 상황들에 대한 정확하고 명확한 진술들(2:11; 42:14 등)을 가진 그 책의 전체 문맥으로부터, 또 에스겔 14:14와 야고보서 5:11같이 그를 경건과 인내의 참되고 두드러진 예로 말하는 성경의 후대 저자들로부터 충분히 분명하다.3)

욥기 내용은 모세 이전 주전 2천년경의 족장 시대에 적합하다. 그것은 특히 욥의 오랜 수명(약 200세 이상)4)이나 제사 방식과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등에서 추론할 수 있다. 또 욥기의 배경은 이방 세계이다. 

욥기는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112회 사용하지만(엘54회, 엘로아흐 41회, 엘로힘 17회), 여호와라는 명칭은 32회만 사용한다.5) 또 구약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17회밖에 나타나지 않는 ‘전능자’(솻다이 )라는 명칭이 본서에서는 31회나 사용된 것도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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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atthew Poole, Albert Barnes, A. R. Fausset 등. 탈무드는 모세로 봄(Baba Bathra 14b).

2) Luther, Keil & Delitzsch, E. J. Young, M. F. Unger, G. L. Archer.

3)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I, 921.

4) 욥의 자녀들은 10명이었고 자녀들이 어느 정도 컸다고 보면(1:2) 30세쯤 결혼하여 약 30-40년이 지났다고 볼 수 있으며, 고난 후 140년을 더 살았으니(42:16) 200세는 넘었을 것이다. 헬라어 70인역 본문은 “170년을 더 살았으며 그의 연령이 240세이었더라”고 되어 있다.

5) 구약에 엘로힘( ) 2570회, 여호와( ) 약 6823회 나옴(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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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들은 욥기의 내용이 족장 시대의 사건이고 그 시대에 쓰여졌음을 보이는 것 같다. 

출애굽기 6: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욥은 ‘우스 땅’에 사는 자이었다(1:1). 우스 땅은 에돔 지역이었다고 본다(애 4:21). 

헬라어 70인역의 욥기 끝에는 욥을 아브라함의 5대손인 에돔 사람(에서의 자손)이라고 증거하는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그의 이름은 전에는 요밥이었고 . . . . 또 그 자신은 에서의 아들들 중 하나인 그의 아버지 자레와 그의 어머니 보소라의 아들이었으므로 그는 아브라함의 5대손이었다. 또 이들은 에돔을 다스리는 왕들이었고 . . . . 또 그에게 온 친구들은 에서의 자손들 중 데만사람들의 왕 엘리파스와 소캐 사람들의 군주 발닷과 미내 사람들의 왕 소발이었다.6)

욥기의 주요 내용은 욥의 고난과 회복이다. 본서의 특징적 진리는 고난이다. 

성도가 당하는 고난에는 (1) 죄에 대한 징벌로 받는 고난이 있다. 그것은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이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2) 특정한 죄에 대한 징벌이 아니고 단지 신앙 인격의 훈련을 위한 고난도 있다. 

욥의 고난은 그런 고난이었다. 사도 바울이 당한 고난(고전 4:11-13; 고후 6:6-10; 11:23-27)도 이런 고난이었다. 

의인에게는 고난이 많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죄의 징벌이 아니고 단지 그의 인격의 단련을 위해 주시는 고난이다. 성도는 이런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마 5:10-11; 행 14:22; 빌 1:29; 골 1:24; 딤후 3:12). 

===욥1장

1-5절, 의인 욥

[1절]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우스 땅’은 에돔 지역이었던 것 같고(애 4:21), 욥은 아브라함 시대 사람이거나 그의 몇 대 자손이었던 것 같다.7)

본문은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한다.

‘순전하다’는 원어(탐 )는 비교적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인격을 가리킨다. 

노아가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증거할 때(창 6:9), ‘완전한’이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또 성경이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는 자이어야 한다고 말할 때도(딤전 3:2) 같은 뜻이다. 

우리는 성경말씀에 비추어 또 자기 양심에 비추어 책망할 것이 없는 삶을 살기를 힘써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4:4에서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고 간증하였고,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21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는다”고 말했다.

또 욥은 정직하였다. ‘정직함’은 올바름, 기준에 맞음이라는 뜻이며 의롭다는 말과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바르게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또 욥은 하나님을 경외했고 악에서 떠난 자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경건의 본질이요(잠 1:7) 그럴 때 사람이 악을 떠날 수 있다(잠 16:6). 노아나 다니엘도 그러했다.

[2절]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7) 헬라어 70인역 후기(後記)는, 우스 땅이 에돔과 아라비아 국경 Ausis땅이며, 욥은 에서의 아들 자레의 아들, 즉 아브라함의 5대손이었다고 말한다.>

욥은 많은 자녀들을 두었다. 자녀 출산은 하나님의 뜻이다. 

창세기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물론, 자녀를 안 주시는 경우도 있다. 

노아는 500세 이후에 세 아들을 낳았다(창 5:32). 아브라함도 100세에 한 아들을 얻었다. 그러나 자녀 출산은 하나님의 일반적 뜻이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다(시 127:3). 자녀 출산과 양육은 비록 힘든 일이지만 복되고 보람 있는 일이다.

욥은 자녀들을 낳아 기르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우리는 수고롭고 복잡한 삶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 

에녹도 그러했다. 창세기 5:21-22,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독신(獨身)은 신앙생활하기에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신앙생활은 현실도피적 생활이 아니다. 

정상적 신앙생활은 현실 속에서 수고하면서 사는 생활이다. 그것은 결혼한 사람들이 자녀들을 낳아 기르며 가정을 이끌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을 포함한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 단위이며 성도의 일차적 경건 훈련의 장소이다. 

자녀는 가정에서 경건한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함과 그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게 사는 법을 배운다. 

성도는 가정에서 믿음과 사랑, 겸손과 인내, 순종과 용서 등을 연습한다. 가정에서 잘 생활하는 자가 바르고 좋은 인격이 된다. 

사도 바울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교훈했다(엡 6:1, 4).

[3절] 그 소유물은 양이 7천이요 약대가 3천이요 소가 5백 겨리[1천]요 암나귀가 5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욥은 물질적 부요함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재물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소유물이며 재물의 복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도 복을 주시므로 그가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巨富)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었었다(창 26:12-14).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몸의 소생과 토지 소산과 가축들의 새끼의 복을 약속하셨다(신 28:4).

그러나 물질적 부요는 신앙생활에 큰 방해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주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며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셨다(마 19:23-24). 

왜냐하면 부자는 마음이 해이해지고 교만해지고 하나님 대신 돈을 의지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였다(딤전 6:9-10).

그러나 욥은 부자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경건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했고 교만치 않고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고 재물에 종노릇하지 않았다. 

그는 욥기 31:24에서 “내가 언제 금으로 내 소망을 삼고 정금더러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던가”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욥은 동방 사람들 중 가장 큰 자이었다. 

동방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후처의 자손이나(창 25:1-6), 아브라함의 여종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자손이나(창 25:12-18), 에서의 자손을 가리킬 것이다(창 36장).

[4-5절]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그 잔칫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의 자녀들은, 아마 다 성장한 후에도,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누이들까지 청하여 함께 먹고 마셨다. 그들은 형제들 간에 우애가 좋았다. 

욥의 가정은 부모와 자녀 간에 또 형제들 간에 사랑과 순종과 우애가 있는 모범이 되는 가정이었다.

그런데 욥은 그 잔칫날이 지나면 자기 자녀들이 혹시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염려하여 그들을 집으로 불러 성결케 하였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욥은 죄의 심각성과 성결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경건과 거룩함과 온전함뿐 아니라, 자녀들의 경건과 거룩함과 온전함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육신적 차원에서 자녀들을 위할 뿐 아니라, 영적 차원에서 자녀들을 위했다. 그는 자녀들의 구원과 신앙 인격을 위해, 죄 짓지 않게 하기 위해, 혹 지은 죄를 씻음 받게 하기 위해 힘썼다. 그는 부모로서 열 명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그러했다.

본문은 “욥의 행위는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말한다. 그는 한두 번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항상 그렇게 행했다. 

그것은 참된 자녀 사랑이다. 부모에게 주는 성경 교훈의 핵심은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라는 것이다. 

잠언 22:6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교훈하였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의인 욥은 모든 성도들에게 본이 된다.

첫째로,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온전하였고 정직했고 악을 떠났다.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전하고 정직하고 악을 떠나야 한다.

둘째로, 욥은 많은 자녀들을 낳아 기르면서도 하나님을 잘 섬겼다. 우리도 우리의 자녀들을 바르게 기르면서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

셋째로, 욥은 물질적 부요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잘 섬겼다. 물질적 부요는 많은 경우 신앙생활에 시험거리가 되지만, 욥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물질적 여유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

넷째로, 욥은 자녀들의 경건함과 온전함과 거룩함을 위하여 힘썼다. 부모의 첫 번째 의무는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경건하고 거룩하고 선한 인격이 되도록 잘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이다.

6-22절, 욥이 재산과 자녀들을 잃음

[6-7절]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가운데 왔는지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을 가리킨다. 

욥기 38:7은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놓을 때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다고 말한다. 

사탄은 타락한 천사들 중 하나이다. 그의 죄는 교만이었다고 보인다(딤전 3:6). 사탄은 실재(實在)한다. 그는 에덴 동산에서 뱀 속에 들어가 하와를 범죄케 하였다. 요한계시록 12:9는 그를 ‘큰 용, 옛 뱀’이라고 불렀다.

사탄은 땅에 두루 돌아다니며 활동한다. 그는 세상 사람들을 죄 짓게 하고 성도들과 하나님의 일들을 대적하고 어지럽히며 파괴시킨다.

그는 거짓말쟁이요 살인자이며(요 8:44) 다윗을 격동시켜 인구조사를 하게 하였고(대상 21:1)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적하였다(슥 3:1). 

그는 예수님을 시험한 자요(마 4장)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게 하며(고후 4:4) 세상의 죄악된 유행과 풍조를 조장한다(엡 2:2). 그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자이며(벧전 5:8) 온 천하를 꾀는 자이다(계 12:9).

사탄의 권세는 크다. 그는 이 세상 임금(요 12:31), 이 세상 신(고후4:4), 공중에 권세 잡은 자(엡 2:2)라고 불리며 요한일서 5:19는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사탄은 마침내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 요한계시록 20:10은 온 세상을 미혹하는 마귀가 최종적으로 불과 유황 못, 즉 지옥 불못에 던지운다고 예언했다.

[8절]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순전하고 정직하고 경건하고 악에서 떠난 자이었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의인이었다. 

사람의 판단과 평가는 완전치 못하다. 사람은 다른 이의 중심을 알지 못하고, 그의 외모만 보기 쉽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귀한 종 바울을 비난하고 욕하고 악평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고 하나님의 평가이다. 잠언 16:25는,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말한다. 

구약성경은 열왕들의 역사를 기록할 때, 그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자이었는지, 악한 자이었는지를 기록하였다. 

솔로몬은 늙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온전치 못하였다(왕상 11:4). 아사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고(왕상 15:11), 오므리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왕상 16:25), 아하시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왕상 22:52). 열왕기상하에는 29번, 역대하에는 11번, 총 40번 ‘하나님 보시기에’ 혹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표현이 나온다. <8) 왕상 15:3, 5, 14; 16:7; 왕하 3:2; 8:18, 27; 10:30; 12:2; 13:2, 11; 14:3, 24; 15:18, 24, 28; 16:2; 17:2; 18:3; 21:2; 22:2; 23:32, 37; 24:9, 19; 대하 14:2; 24:2; 25:2; 26:4; 27:2; 28:1; 29:2; 33:2; 34:2; 36:5, 12.>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지 말고 정직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또 우리는 남을 볼 때도 외모만 보지 말고 그의 중심을 살펴보려 하고 그의 신앙 인격을 유의해 보아야 한다.

[9-11절]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사탄의 비난은, 욥이 까닭 없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물질적 복 때문에 섬긴다는 것이다.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동기는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하여 주신 바 그대로 <상호 사랑/인침/절대적 연인-상호 거함/누림-상호 소유/기업>의 회복됨, 그 어떤 피조물도 멸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위하시는, 질투하시는 사랑으로 회복된 연인/신부, 또한 바로 그렇게 주님 빼어닮아가며 바로 그렇게 절대적 사랑의 열정으로 반응하는 연인/신부를 원하심,.. 그 질투(음부만큼이나, 곧 음부에 내려가서 친히 찾아 오실만큼 질투하심), 그 사랑(죽음 만큼이나 강한, 곧 성육신하여 대속의 죽음으로 값을 치르고 되사오심), 그 열정(이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끌 수 없으며 모든 것을 살라버리는 여호와의 불길임)  <죄로 타락하였으나,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신부로 정한 믿는이/교회를 위하여> 성육신-십자가 죽음으로 대속해주시고 음부까지 내려가셔서 그 권리를 되찾아 오셔서 자유케 해 주시고 부활생명을 부어주심으로 <성령으로> 내주하사 교통하며 하나되너 동행하시는> 사랑과 생명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적 복 때문인가? 그러면 물질적 복이 없으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중단될 것이다. 그가 물질적 복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도 버릴 것이다. 

더군다나 [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그 은혜 받아 사는 자의 자각이 없이는] 하나님 때문에 고난을 받거나 순교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런 신앙은 고난을 견디기 어렵고 순교는 아예 불가능할 것이다. 성경은 순수한 신앙을 가르친다. 

예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 

씨 뿌리는 비유 중에, 돌밭에 떨어진 씨는 환난과 시험에 넘어지는 경우를 가리켰다(마 13:20-21).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말했다(행 14:22). 

또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말했고(빌 1:29), 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다고 말하였다(롬 14:7).

[12절]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의 소유물을 주관하는 권세를 주셨다. 손은 힘을 상징한다. 

사탄은 세상의 것을 상당히 주장한다. 그는 욥의 모든 재산을 없애고 모든 자녀를 죽이기도 하였다. 

누가복음 4:6에 보면, 사탄은 예수께 말하기를, 나에게 절하면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너에게 주리라,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므로 내가 나의 원하는 자에게 그것을 준다고 하였다. 사탄은 상당한 권세를 가졌다.

그러나 사탄은 오직 하나님의 허락 속에서만 또 하나님의 허락하신 한계 안에서만 그 권세를 가지며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유일한 주권자이시다. 그는 사탄과 악령들도 주장하신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많은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귀신들은 심지어 돼지 속에 보내시기를 그에게 간구하였었다(마 8:31). 세상 끝에 하나님께서는 사탄과 악령들을 지옥에 던져 넣으실 것이다(계 20:10).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고난을 허락하심은 유익케 하시는 깊은 뜻이 있다. 

사람은 평안할 때 교만해지고 해이해지고 범죄하거나 탈선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천국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사람이 고난을 당하면 세상의 헛됨을 알고 죄를 멀리하고 더 거룩해지며 하나님만 더 사모하고 의지하며 천국을 소망하게 되고 또 무엇보다 겸손해진다(시 119:67, 71; 고후 1:8-9; 12:7).

[13-22절]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사자가 욥에게 와서 고하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갈대아 사람이 세 떼를 지어 갑자기 약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거친 들에서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한지라.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벗은 몸]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赤身)[벗은 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은 하루아침에 큰 재앙<인재와 천재>을 당했다.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한 사자(使者)가 욥에게 와서 스바 사람들이 습격하여 소들과 나귀들을 빼앗고 종들을 죽였다고 말했고, 또 한 사람이 와서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 양들과 종들을 불살랐다고 말했고, 또 한 사람이 와서 갈대아 사람들이 습격해 약대들을 빼앗고 종들을 죽였다고 했다. 또 한 사람이 와서 거친 들에서 대풍(大風)이 와서 집이 무너져 자녀들이 다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말했다. “내가 모태에서 벗은 몸이 나왔사온즉 또한 벗은 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은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가 주관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고 이 모든 일에서 범죄치 않았고 하나님을 향해 어리석게 원망치 않았다. 

열 정탐꾼들의 불신앙적 보고를 받고 밤새도록 통곡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던(민 14:1) 이스라엘 백성과는 너무 달랐다.

욥의 신앙과 의로운 인격은 혹독한 고난 가운데서 더욱 빛났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사탄과 악령들은 세상을 주관하며 때때로 성도들에게 시험과 고난을 준다. 

그러나 우리는 사탄과 악령들이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만 우리에게 고난을 줌을 알고 사탄과 악령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 세상 사는 동안 그들과 잘 싸워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물질적 복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를 믿고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고 그의 뜻과 계명에 순종하여 그 앞에서 바르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욥은 그의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잃었으나 하나님을 원망치 않고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니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욥처럼 극심한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원망치 말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그가 주기도 하시고 취하기도 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만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

===2장: 욥이 자기 건강까지 잃음

[1-3절]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욥에게 닥친 재앙은 사탄이 준 것이지만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된 것이며 욥은 그런 고난 속에서도 그의 순전함과 믿음을 굳게 지켰다.

[4-5절]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그러나]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사람은 생명이 귀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희생해도 자기 생명이 보존되면 만족하지만, 몸이 병들어 죽을 지경이 되면,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께 욕할 것이라고 사탄은 주장한다. 사탄은 끝없이 변론하고 반론하고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송사쟁이이다.

[6절]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깊으신 뜻 가운데서(!!!) 사탄의 활동 범위를 정해 어느 정도 허용하신다. 그는 사탄에게 욥의 건강을 치도록 허락하셨다.

[7-9절]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탄은 악한 피부병으로 욥을 쳤다. 심각한 악창이 그의 온 몸에 났다. 욥은 몸이 너무 가려워서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조각으로 몸을 긁었다. 

그때 욥의 아내는 남편을 동정하거나 위로하기는커녕 그를 몹시 구박하였다. 그러나 욥은 믿음 없는 아내의 구박에도 낙망치 않고 더욱 믿음으로 나아갔다. 

참 신자는 돛단배와 같다. 돛단배는 바람이 있어야 앞으로 잘 나아간다. 참된 신자는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그의 믿음이 더욱 빛난다. 

그는 더욱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그에게 기도하고 그를 의지하고 그의 계명을 지킨다.

[10절]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이것은 그가 앞에서 말한,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라”는 고백(1:21)보다 더 진전된 고백이다. 

욥은 모든 일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전제하고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거저 받았으면 재앙도 받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께 복받는 것을 좋아한다면, 재앙 받을 때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자기 중심적이며 이기적인 태도일 뿐이다. 

욥의 고백은, 사람이 [생사화복 일체에 있어서!!]하나님의 주권적 처분에 겸손히 <인내의 오래참음, 오직 신뢰로>순응해야 함을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크신 지혜와 의와 선으로 사람의 모든 일들을 섭리하심을 믿어야 하고, 고난 중에도 참고 기다려야 한다.

[11-13절]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그에게 이 모든 재앙이 임하였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처소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조문[동정]하고 위로하려 하여 상약(相約)하고 오더니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7일 7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 고로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

욥의 친구 세 사람은 욥의 소식을 듣고 그를 위로하러 서로 약속하고 왔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에서의 자손이며(대상 1:45), 수아 사람 빌닷은 아마 아브라함의 후처(창 25:2) 그두라의 자손일 것이다.

그들은 경건하고 존귀한 자들이었다고 보인다. 그들은 욥의 고난이 심각함을 알았다. 욥은 사람들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쇠약했다.

그들은 일제히 소리질러 울며 겉옷을 찢었고 하늘을 향해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렸다. 사람이 괴로움이 심하면 겉옷을 찢는다. 

르우벤은 구덩이에 요셉이 없음을 보았을 때 겉옷을 찢었었다(창 37:29).

또 욥의 친구들은 7주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한 말도 못하였다. 욥의 큰 고통은 이렇게 묘사되고 증거되었다.

그러나 욥의 고통의 기간은 긴 것 같지 않다. 첫 번째 재앙은 하루에 되었고(13절) 두 번째 재앙은 첫 번째 후, 몇 일 안 되어서였고, 친구들의 방문도 두 번째 재앙 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욥기 3장부터 42장까지의 기록된 내용은 방문하여 7일 지난 후,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욥의 고난은 <길어도!!>몇 달 정도였던 것 같다(욥 7:3).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사탄의 활동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사탄은 하나님께 나아와 욥을 비난하면서 그의 몸의 건강을 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기를 구하였다. 

사탄은 끊임없이 성도들을 비난하고 시험하며 오늘날도 세상에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벧전 5:8). 

그러나 우리는 사탄과 악령들의 활동들까지도 주관하시는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고난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우리 자신을 살펴 회개할 바를 찾으며 입으로라도 범죄치 말아야 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 벗은 몸으로 와서 죽을 때 벗은 몸으로 간다.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과 같이 때때로 하나님의 재앙을 받는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께 원망하거나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3장: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함

[1-10절]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욥이 말을 내어 가로되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남아(男兒)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었더라면, 그 날이 캄캄하였었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마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취지 말았었더라면, 유암[어둠]과 사망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 것이라 주장하였었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면, 낮을 캄캄하게 하는 것이 그 날을 두렵게 하였었더라면, 그 밤이 심한 어두움에 잡혔었더라면, 해의 날 수 가운데 기쁨이 되지 말았었더라면, 달의 수에 들지 말았었더라면, 그 밤이 적막하였었더라면, 그 가운데서 즐거운 소리가 일어나지 말았었더라면, 날을 저주하는 자[자들] 곧 큰 악어를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자들]가 그 밤을 저주하였었더라면,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었더라면, 그 밤이[그 새벽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였고 내 눈으로 환난을 보지 않도록 하지 아니하였음이로구나.

욥의 친구들이 욥을 방문한 지 7일 후에, 욥은 입을 열어 자기 생일을 저주하였다. 

그는 차라리 그 날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또 그 날의 새벽이 밝아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평안할 때 자기의 생일을 중요하게 여기며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심각한 고통 중에서는 생일이 결코 기쁜 날이 아니다. 생일의 저주는 이 세상의 삶의 헛됨을 잘 보여준다.

8절의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큰 악어를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은 마술사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것은 욥이 그들을 인정한다는 뜻이라기보다 사람들의 일반적 생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11-19절]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었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유방이 나로 빨게 하였던가.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자기를 위하여 거친[황폐한] 터를 수축한 세상 임금들과 의사들(counselors)[모사들, 조언자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에 채운 목백들(사림 )[방백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또 부지중에[버려진] 낙태한[낙태된] 아이 같아서 세상에 있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었을 것이라.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곤비한 자가 평강을 얻으며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거기서는 작은 자나 큰 자나 일반으로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욥은 또 그가 어찌하여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않았고 살아서 엄마의 젖을 빨며 살았는가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거기에는 황폐한 터를 수축한 세상의 임금들과 모사들이 있고 금은으로 집에 채운 존귀한 자들도 있었을 것이며 또 자신이, 태어날 때 죽어서 난 아이들처럼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거기에는 악한 자들의 소란스러움도 없고 수고하고 피곤한 자들에게 평안이 있고 감옥에 갇힌 자들에게도 평안이 있을 것이며 종들에게는 자유함이 있다고 말한다.

[20-26절] 어찌하여 곤고한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번뇌한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그것을 구하기를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더하다가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이는] 나는 먹기 전에 탄식이 나며 나의 앓는[신음하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구나. [이는]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미쳤음이로다].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로게즈 )[격동, 소동]만 임하였구나.

욥은 몸의 극심한 고통 중에서 죽음과 무덤을 심히 사모한다. 

사람은 극심한 고난 중에 죽음을 사모하게 된다. 욥의 처지는 매우 고통스런 처지이었다. 

그는 음식을 먹기 전에 탄식소리가 나며 그의 신음하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그에게 임했고 그의 무서워하는 것이 그의 몸에 미쳤다. 그에게는 평안이나 평온이나 안식이 없고 격동만 있었다. 

사람은 고난 중에 죽음을 사모한다. 선지자 엘리야도 그러하였다. 

그는 바알의 선지자들과 갈멜산 대결에서 승리하고 그들을 다 죽였으나, 엘리야가 한 일을 아합 왕에게서 들은 왕후 이세벨이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고 통보하자, 두려워 자기 목숨을 위해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며 말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왕상 19:4).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고난 많고 허무한 세상을 사랑치 말아야 한다. 

요한일서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다(전 1:2; 12:8).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천국만 소망해야 한다. 

시편 39:5-7, [다윗도]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천국은 이 세상보다 더욱 사모할 만하다.

고린도후서 4:18, [바울도]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린도후서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우리가 천국의 복됨을 안다면, 우리는 돈과 명예와 쾌락에 이끌려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 수 있다.

===4장: 엘리바스--죄 없이 망한 자가 없다

[1-6절]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가로되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염증이 나겠느냐? 날지라도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교훈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면 강하게 하였고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이제 이 일이 네게 임하매 네가 답답하여 하고 이 일이 네게 당하매 네가 놀라는구나. 네 의뢰가 경외함에 있지 아니하냐? 네 소망이 네 행위를 완전히 함에 있지 아니하냐?[너의 경외함이 네 확신이 아니며 네 행위를 완전히 함이 네 소망이 아니냐?(NASB, NIV)]

본장은 욥의 친구 중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말이다. ‘염증이 난다’는 원어(라아 )는 ‘참을 수 없다. 조급하다’는 뜻이라고 본다.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염증이 나겠느냐?”는 말은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조급하지 않겠느냐?”는 뜻 같다. 

엘리바스는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말을 듣고 그의 생각을 말하지 않고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엘리바스는 전에 욥이 여러 사람을 교훈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 즉 힘이 빠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넘어져 가는 자’ 즉 낙망하여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다고 말한다. 또 그는 “그러나 이제 이 일이 네게 임하니 네가 답답하여 하고 이 일이 네게 당하니 네가 놀란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어려움 당한 이웃을 위로하기는 쉬우나 막상 자신에게 그런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것을 이기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엘리바스는 또 욥에게 “너의 경외함이 네 확신이 아니며 네 행위를 완전히 함이 네 소망이 아니냐?”고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 장래를 확신케 되고 행위를 완전히 할 때 장래를 소망케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형통함과 평안함이 있다. 시편 25:12-13,“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또 행위를 완전히 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다. 잠언 4:18,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잠언 10:9,“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7-11절]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사자의 우는 소리와 사나운 사자의 목소리가 그치고 젊은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늙은 사자는 움킨 것이 없어 죽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

엘리바스는 또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라고 말한다. 

그는 정직한 자는 망하지 않으나 악을 계획하고 행하는 자는 재앙을 당할 것이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보응을 받을 것이며 사자같이 강한 자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징벌하시고 그는 엎드러지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악한 자들은 망할 것이다. 시편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1: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잠언 13:9,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기쁨과 행복]은 꺼지느니라.” 잠언 14: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섭리자, 심판자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은 신약성경도 여전히 증거하는 성경 진리이다. 로마서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갈라디아서 6:7-8,“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썩는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12-21절] 무슨 말씀이 내게 가만히 임하고 그 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곧 사람이 깊이 잠들 때쯤하여서니라. 내가 그 밤의 이상(異像)으로 하여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골절이 흔들렸었느니라. 그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었느니라. 그 영이 서는데 그 형상을 분변치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앞에 있었느니라. 그때 내가 종용한[조용한] 중에 목소리를 들으니 이르기를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오히려 믿지 아니하시며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하물며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하루살이 혹은 나방(moth) 앞에서도](KJV, NASB)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조석[아침부터 저녁] 사이에 멸한 바 되며 영원히 망하되 생각하는 자가 없으리라. 장막 줄(이스람 )[혹은 ‘그들의 탁월함’(KJV)]을 그들에게서 뽑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이 죽나니 지혜가 없느니라.

엘리바스는 사람이 아무리 의롭고 거룩하다 하여도 창조자 하나님보다 의롭고 거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욥도 비슷한 말을 했다. 욥기9:2, “내가 진실로 그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수아 사람 빌닷도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라고 말했고(욥 25:4), 엘리후가 욥에게 노를 발하며 그의 부족을 지적한 것도 그가 하나님보다 자기를 의롭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욥 32:2).

사람은 실상 하나님 앞에서 의(義)를 내놓을 것이 없는 죄인이다. 그는 죄성을 가진 누추한 피조물이다. 

더욱이, 사람은 흙으로 지어진 연약한 존재이며 조만간 죽을 존재이고 그의 삶은 덧없이 짧고 허무하다. 장막 줄이 뽑힌다는 말은 장막을 거둔다는 뜻으로 사람의 몸의 죽음을 묘사한 것이라고 본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사 40:6; 벧전 1:24). 

또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셔서 인생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부족과 허무함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만 경외하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과 천국과 영생만 사모해야 한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우리의 행위를 완전케 해야 한다(6절). 

그것이 성경의 교훈이요 거기에 소망과 평안이 있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시편 119:1,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잠언 4:18-19,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은 우리로 온전케 하려 하심이다(딤후3:17). 

이사야 48:18,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둘째로, 사람은 범죄하면 망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이다. 

시편 1:6,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1: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잠언 13:9,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잠언 14: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로마서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그러므로 우리는 범죄치 말아야 하고 모든 죄를 멀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거룩하신 완전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부족, 또 비천과 허무를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소망해야 한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피조물이며 연약한 죄성을 가진 존재이다. 우리에게는 의가 없다. 사람의 행위는 부족하고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모든 죄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명령만 순종하며 그의 말씀대로 의롭게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존재이며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음을 알고 겸손해야 한다.

===5장: 엘리바스--하나님의 징계는 복되다

1-16절, 고난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자

[1-2절] 부르짖어 보아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천사들]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이는]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키느아 )[화](BDB)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멸함이니라].

사람이 왜 분노하고 화를 내는가? 그것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다 맡기지 않고 교만하고 욕심을 부리고 불만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사람은 분노하고 화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분노와 화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특징이며 그것은 그들에게 해가 될 뿐이다. 

그것은 오늘날 의학 상식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사람의 몸의 질병들의 원인이 되며 결국 사람을 죽게 만든다.

또 그것은 사람으로 마귀의 시험에 떨어지기 쉽게 만든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26-27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기고 그 마음에 온유와 겸손, 자족함과 이웃 사랑이 있으면, 분노와 화를 많이 줄일 수 있고 또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여기에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길도 있다. 즉 사람이 건강하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야 하며(잠3:7-8), 마음을 평안하게 하며 과로하지 말고 적당한 노동이나 운동을 하고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되 가급적 소식(小食)을 해야 한다.

[3-5절] 내가 미련한 자의 뿌리박는 것을 보고 그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그 자식들은 평안한 데서 멀리 떠나고 성문에서 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그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

미련한 자는 그 자녀들도, 그 재산도 다 복되지 못하다. 

사람은 다 미련한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를 얻지 못하면 그 자신도, 그의 자녀도, 그의 재산도 복되지 못할 것이다.

[6-7절] [비록](키 ) 재앙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요 고난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아니지만](KJV),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모든 사람의 고난과 불행은 타고난 것이다. 그것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 기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여자에게 잉태와 해산의 고통을 선언하셨고 아담에게는 땀 흘리는 수고의 삶을 선언하셨다. 또 땅은 그로 인해 저주를 받았다(창 3장).

사람의 삶은 그 자체가 고난이며 고난으로 충만하다. 욥은 사람의 삶을 힘든 노동이나 품꾼의 날에 비교했고, 또 인생이 괴로움이 가득하다고 말하였다. 

욥기 7:1,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차바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냐? 그 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

욥기 14:1,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야곱은 자신이 지나온 130년의 시간을 ‘험악한 세월’이라고 표현했고(창 47:9), 하나님의 종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시 90:10).

사람의 참된 평안과 영생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고(마 11:28), 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셨다(요 14:27).

[8-11절]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슬퍼하는 자를 흥기시켜[일으켜] 안전한 곳에 있게 하시느니라.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들, 기이한 일들을 셀 수 없이 많이 행하셨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그가 행하신 기이한 일들로 가득하다. 

시편 104:24는,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거대한 우주를 운행하시고 천지만물을 주관하신다. 그는 수없이 많은 짐승들과 새들과 물고기 들을 기르시고 먹이신다. 

시편 104:27은,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라고 말한다.

인간 사회에서의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도 그러하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택자들의 구원 계획을 가지고 인류 역사를 섭리하신다. 

그는 아브라함을 불러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 그는 요셉의 생애를 섭리하셨고, 모세의 생애를 섭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많은 기이한 일들을 행하셨다. 그는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또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기이한 일들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의 기적, 죽음, 부활을 통해 복음을 확증하셨고 신약교회를 세우셨고 자기 백성에게 천국의 산 소망을 주셨다. 그는 오늘날 우리 개인의 영육의 삶도 섭리하신다. 그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12-14절] 하나님은 궤휼한[간교한] 자의 계교를 파하사 그 손으로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시며 간교한[지혜로운] 자로 자기 궤휼[간교함]에 빠지게 하시며 사특한 자(니프탈림 )[마음이 비뚤어진 자들]의 계교를 패하게 하시므로 그들은 낮에도 캄캄함을 만나고 대낮에도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간교한 자들, 세상적으로는 지혜로우나 교활하고 심령이 비뚤어진 자들의 계획과 계교를 다 파하신다. 그는 그것들을 다 헛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시편 9:15는,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그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라고 말했다. 

또 고린도전서 3:19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자기 궤계에 빠지게 하신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형들이 아버지 몰래 요셉을 팔아버린 일이 드러나게 하셨다. 

그는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을 죽이려던 하만의 계획도 헛되게 하셨고 도리어 그와 그의 동료들이 죽임을 당케 하셨다. 

또 그는 은 30에 주님을 배신했던 가룟 유다의 계획을 헛되게 하셨다. 유다는 그가 받은 돈을 유대 지도자들에게 도로 갖다준 후에 목매어 죽었다.

예수께서는 저 악한 유대 지도자들과 또 주님을 배신한 제자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나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15-16절] 하나님은 곤비한(에브욘 )[궁핍한] 자를 그들의 입의 칼에서, 강한 자의 손에서 면하게 하시나니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소망이 있고 불의가 스스로 입을 막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처분이며 또한 긍휼의 처분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고난으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성도들을 결코 버려두지 않으시며 악한 자들의 입과 손에서 건져내어 주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정당한 일 외에는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교만과 욕심과 미움을 버리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온유와 겸손, 의와 선, 사랑과 자족함으로 살아야 한다.

둘째로, 사람은 고난의 삶을 사는 존재이다. 엘리바스는 사람이 고난을 위해 났다고 표현한다. 

세상의 고난은 근원적으로 죄에서 왔다. 우리는 오직 사람의 참 평안과 영생이 되신 구주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악을 벌하시는 일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을 행치 말고 악인들의 계획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공의로운 섭리자이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계명대로만 행해야 한다.

17-27절, 하나님의 징계는 복되다

[17절]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라는 표이기 때문이다. 

잠언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히브리서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징계는 유익이 많다. 우선,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로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한다.

시편 119:67은,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말하고, 시편 119:71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한다. 또 히브리서 12:10-11은,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한다.

또 모든 고난은 우리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소망하게 하는 유익이 있다. 

시편 39편에 보면, 다윗은 죽을병에 걸렸을 때 땅의 것이 그림자같이 헛됨을 깨닫고 고백하기를,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시 39:6-7). 사도 바울도 아시아에서 극심한 환난을 당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죽을 고생을 하였을 때 이를 통해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고후 1:8-9).

[18-20절] [이는]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고치심이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救贖)하실 터인즉. 

하나님의 징계는 징계 자체로 끝나지 않고 유익을 주시고 회복의 은혜를 주신다. 

부모가 자녀를 훈계하고 책망하고 벌을 주고 또 필요한 경우 매를 드는 것은 그의 잘못을 바로 잡아주려 함이며 매를 때린 후에 상처에 약을 발라준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를 때리시고 고통을 주시지만, 그 고통을 물리쳐주시고 그 고통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다. 

징계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개인이나 세상의 최종적 심판은 무서운 것이지만, 현실의 삶의 여정에서 받는 하나님의 징계는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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