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5장: 말, 충성, 온유, 원수 사랑, 별거 1-7절, 왕의 영광, 악인 제거, 교만 [1-3절]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의 편집한 [필사(筆寫)한](KJV, NASB, NIV) 것이니라.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잠언 30-31장을 제외한 잠언의 대부분의 내용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쓴 내용이며, 25장부터 29장까지는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필사(筆寫)한 것이다. 솔로몬은 잠언 3천개를 썼다(왕상 4:32). 하나님께서 하시는 어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다 알 수 없다. 신명기 29:29,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그러나 어떤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이다. 일을 계획하고 행하며 그것을 부지런히 살피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잠언 18:9,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잠언 27:23,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로마서 12:8,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할 것이니라].” 나라 일들을 힘써 살피는 왕은 훌륭한 왕이다. 물론 왕의 깊은 마음은 백성이 다 알지 못한다. [4-5절]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 위(位)[왕위]가 의(義)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불순물이 섞인 은 원석에서 찌끼를 제거하면 은장색이 쓸 만한 순은(純銀)이 나오듯이, 왕의 신하들 중에서 악한 자를 제거하면 그 왕의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설 것이다. 악한 자란,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자, 비양심적인 자, 아첨하는 자, 남을 해치는 자 등을 가리킨다. 그가 왕에게 약간 도움을 주었을지 모르나 참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실상 그는 자기 이익을 구하는 자이다. 그는 결국 왕의 나라를 어지럽히며 평안을 무너뜨리고 왕의 명예도 땅에 떨어뜨릴 것이다. 왕의 왕위는, 악인이 제거되고 의인이 세워질 때 견고케 된다. 잠언 16:12, “악을 행하는 것은 왕의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잠언 29:4, “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왕의 보좌와 나라는 공의로 굳게 서며 평안을 누릴 것이다. 또 하나님의 의(義)의 내용은 인자함과 사랑이다. 그러므로 의로운 왕은 백성에게 인자함과 사랑을 실천하여 나라 안에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아볼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나라와 그 왕위는 견고해지고 평안을 누릴 것이다. 잠언 20:28,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 위(位)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 잠언 29:14,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伸寃)하면 그 위(位)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교회도 비슷하다. 교회에서도 악인들이 징계를 받고 의롭고 선한 자들이 세움을 받을 때 교회는 평안 가운데 든든히 세워질 것이다. [6-7절]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大人)의 자리에 서지 말라. 이는 사람이 너더러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 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 왕은 겸손한 신하를 사랑하고 신임할 것이다. 왕 앞에서 자기 자신을 높이는 자는 그보다 더 높은 사람이 나타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주께서는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 상석에 앉지 말고 말석에 앉으라고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왜냐하면 자기보다 더 귀한 사람이 오면 상석을 내어주어야 할 것이며 그러면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주께서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높이지 말고 낮추라는 교훈을 주신 것이다(눅 14:8-11). 주께서는 겸손에 대해 교훈하셨다. 그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 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고(마 20:26-27), 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3:12). 또 사도 바울도 교인들에게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라”고 교훈하였고(롬 12:10), 또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했다(빌 2:3).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을 알고 있다. 우리는 지옥 갈 자들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큰 구원을 받았다. 또 우리가 가진 모든 좋은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고린도전서 4:7,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또 하나님께서는 다른 이들도 우리와 똑같이 사랑하셔서 그들을 위해 독생자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귀히 여겨야 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다 알지 못하므로 그것을 다 알려 하지 말고 오직 그를 의지해야 하지만,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잘 계획하고 행하고 부지런히 살펴야 한다. 둘째로,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면 그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해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선한 자가 되어 하나님께 쓰임을 받어야 한다. 또 우리는 교회에서 믿음이 없고 악한 자들을 징계하고 의롭고 선한 자들을 세움으로 교회를 견고하고 평안케 해야 한다. 셋째로,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크게 여기거나 내세우지 말아야 하고, 주 안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성도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며 사랑해야 한다. ===8-12절, 다툼, 경우에 합당한 말, 책망 [8절] 너는 급거히[성급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 욕을 보게[수치를 당하게] 될 때에 네가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우리는 성급히 나서서 이웃과 다투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무슨 일을 파악하고 판단하기 전에 성급히 나서면 수치를 당할 것이다. 잠언18:13,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수치]을 당하느니라.” 잠언 29:20,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또 원고의 말이 옳은 것 같으나 피고가 와서 밝히는 경우도 있다. 잠언 18:17,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 사람이 성급히 나서서 다투면 실수하기 쉬운 까닭은 사람이 누구나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지식과 이해력은 한계가 있고 사람의 기억력과 판단력도 그러하다. 말의 표현력도 불완전하다. 또 사람은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이기 쉽다. 사람이 감정이 앞서면 사리판단력이 약해진다. 그러므로 화가 났을 때는 조금 참고 감정을 가라앉히는 것이 좋다. 그래야 실수를 안 하고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교훈한다. 잠언15:28,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잠언 17:27,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을 내뱉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또 우리는 노하기도 더디해야 한다. 잠언 14:29,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그러므로 야고보서 1:19-20도,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교훈하였다. [9-10절]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수욕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남의 은밀한 일’(NASB, NIV)이라는 원문(소드 아케르 )은 “은밀한 일을 남에게”(KJV)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그것은 원문의 전통적 읽기이며21) 문맥에도 맞는 것 같다. 사람이 이웃과 가급적 안 다투는 것이 좋으나 부득이 다툴 경우가 있다. 어떤 오해가 있을 때나, 억울하게 비난을 받았을 때나, 또 물질적 손실을 당했을 때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때에 관계된 문제만 변론해야지, 그가 다투다가 알게 되었거나 평소에 알고 있던 상대의 은밀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 상대의 사적인 문제를 남에게 누설하는 것은 인격의 결함이며 그런 사람은 인격적이지 못하다는 비난과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또 남의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치 않는 것은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적 예의와 덕이다. 하나님 앞에서 부족이나 실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가 돌아다니며 사람에 대해 말하지 말고 또 남의 비밀을 누설치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레위기 19:16,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잠언 11:13,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잠언 20:19,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11절]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경우에 합당한 말’이란 ‘상황에 적절하게 말해진 말’을 가리킨다. 그 상황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말이나 동문서답같이 엉뚱한 말이나 주제나 핵심에서 벗어난 말은 별 가치가 없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우에 <21)전통적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는 소드 에 분리액센트가 찍혀 있고, 아케르 에는 연결액센트(다음 글자와 연결해 읽는)가 찍혀 있다.> 합당한 말은 사리나 이치에 맞고 이성과 양심에 맞고 더욱이 성경에 맞는 말이다. 또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에는 그때의 상황과 듣는 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다. ‘아로새긴 은쟁반’이라는 원어(마스킷요스 카세프 )는 ‘은으로 만든 전시물, 은으로 만든 조각상’(BDB, KB)이라는 뜻으로 영어성경은 ‘은 그림’(KJV) 또는 ‘은으로 만든 틀’(settings of silver)(NASB, NIV)이라고 번역하였다.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는 매우 아름답고 가치 있어 보이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기쁨을 얻게 할 것이다. 경우에 합당한말이 바로 이와 같다. 그러므로 잠언 15:23은,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말한다. 의인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 적절하고 유익한 말을 하는 지혜가 있다. 그러므로 잠언 10:20은,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고 말하였고, 잠언 15:28은,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고 말했다. 야고보서 1:19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말하였다. [12절]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슬기로운 자 곧 지혜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게 사는 자이다. 슬기로운 자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과 조언을 주며 필요한 경우는 책망도 준다.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과 같다. 물론, 듣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리 좋은 말도 소용이 없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말이라도 그에게는 유익이 없다. 그러나 좀 부족한 전도자나 설교자의 교훈이라도 그 교훈을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유익이 있다. 지혜로운 자는 다른 이들의 권면과 충고를 듣는다. 잠언 12:15는,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고 말한다. 겸손한 자는 어린아이에게서도 무엇을 배울 것이다. ‘금고리’는 ‘금 귀걸이’(KJV, NASB, NIV) 같은 것을 가리키고 ‘정금 장식’은 금목걸이, 금팔찌, 금반지 등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들은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이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그에게 유익을 줄 것이다. 슬기로운 자의 책망이 그렇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슬기로운 자의 책망을 싫어하지 말고 오히려 사모해야 할 것이다. 잠언 1:8-9는, 부모의 훈계[징계]는 자녀의 머리에 아름다운 관이요 목에 금사슬이 된다고 말하였다. 또 잠언 3:22는, 지혜의 말씀은 영혼의 생명이 되며 목에 장식이 된다고 말하였고, 잠언 4:9도, 지혜는 그것을 얻은 자의 머리에 아름다운 관을 두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잠언 27:5는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낫다”고 말하였고, 잠언 27:9는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다툼을 가급적 피해야 하지만, 부득이 다툴 때는 성급히 나서서 다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특히 다툴 때 그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이웃과 다툴 때 그때 관계된 문제만 말하는 것이 옳고, 감정이 상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대방의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감추고 싶은 부족과 실수가 있고 그것을 덮어두는 것은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적 예의와 덕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다. 우리는 상황에 부적절한 말을 삼가고, 경우에나 상황에 합당한 말을 해야 한다. 넷째로,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다.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잘 들으면 자기에게 큰 유익과 복이 된다. ===13-16절, 충성, 거짓 자랑, 인내, 절제 [13절] 충성된(네에만 )[충성된, 변함 없는, 믿을 만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친낫 쉘렉 )[눈(雪)의 차가움]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원문에는 ‘얼음 냉수 같다’는 말이 앞에 나와 강조되어 있다. ‘얼음 냉수’는 오늘날 말로 하면 얼음 띄운 물이나 냉장고에 넣었다 뺀 물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추수하는 날은 추수하느라고 땀 흘리고 덥고 목마른 날이다. 그때 얼음 냉수는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 것인가.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주인에게 이러하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주인의 마음을 얼음 냉수같이 시원케 할 것이다. 충성이란 자기가 맡은 일을 이루기 위해 변함 없이, 초심을 잃지 않고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용두사미(龍頭蛇尾) 즉 처음에는 거창하게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흐지부지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조석변이(朝夕變移) 즉 아침하고 저녁하고 마음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작심삼일(作心三日) 즉 결심한 것이 3일밖에 못 가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것은 충성이 아니다. 충성된 사자는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그것은 특히 교회의 직분자들, 목사, 장로, 권사, 교사 등에게 적용될 것이다. 보낸 자와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당회와 교인들을 통해 일꾼들을 세우신다.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일은 영혼 구원의 전도와 목회의 일이다. 특히 전도는 신약교회의 최대의 과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를 일꾼들로 부르셨다. 우리는 하나님께 충성해야 한다. 맡은 자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이다(고전 4:2). 주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신다(계 2:10). [14절]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라는 원문(이쉬 밋할렐 베맛탓 솨케르 )은 ‘거짓된 은사(gift)를 자랑하는 자’(KJV)라는 말이거나 ‘선물을 거짓되이 자랑하는 자’(NASB)라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받지 않은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자이거나 남에게 선물을 준다고 거짓말로 자랑하는 자를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즉 성령의 은사는 남에게 자랑하라고 주신것이 아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주지도 않으신 은사를 받은 것처럼 자랑하는 것은 허위 광고, 과장 광고와 같다. 그것은 거짓이며 허풍이다. 그것은 참으로 나쁜 일이다. 거짓된 은사를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다. 그것은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고 바람도 불지만, 비올 듯한 모양만 있고 비를 뿌리지 않는 것과 같다. 유다는 그의 서신에서 거짓 교사들을 “바람에 불려 가는 물 없는 구름”이라고 묘사했다(유 12). 우리는 거짓 교사들의 허풍을 분별하고 배격해야 한다. 또 남에게 선물을 주지도 않으면서 선물을 줄 것처럼 거짓말하는 것도 악한 일, 불신실한 일이다. 우리는 무슨 선한 일이든지 조용히, 은밀히 해야 한다. 주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나 남에게 구제할 때 자랑하거나 선전하거나 남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은밀히 하라고 교훈하셨다(마 6:1-6). 메시아께서는 다투지도 않으시고 외치지도 않으시고 아무도 길에서 그의 소리를 듣지도 못하리라고 예언되었다(마 12:19).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생활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무슨 봉사를 하든지 야단스럽고 떠들석하게 자기를 선전하면서 하지말고 조용하게, 은밀하게, 겸손하게 해야 한다. [15절]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예푸테 )[그 말에 설득 당하나니](be persuaded)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관원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탄원하였으나 들어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때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한다고 포기하면 일이 그것으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이때 인내가 필요하고 자기 부정이 필요하다. 자존심과 감정을 버리고 상한 마음을 버리고 참고 인내하며 자신의 정직하고 정당한 소원을 계속 간청하면 마침내 관원이 설득 당하여 그의 말을 받아줄 것이다. 그것은 주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말씀하신 불의한 재판관과 한 과부의 비유의 내용이기도 하다. 한 과부가 낙심치 않고 불의한 재판관에게 간절히 탄원하여 응답 받은 것처럼, 오래 참고 관원에게 간청하면 좋은 응답을 얻을 것이다. 본문은 또,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유순한 말이 뼈같이 딱딱한 마음을 감동시킨다는 뜻이다. 잠언 15:1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말한다. 성질을 내는 과격한 말은 상대방을 노하게 만들며 그의 마음을 더 닫게 만든다. 그러나 유순한 대답은 상대방의 노를 쉬게 하며 닫힌 마음도 조금씩 열 것이다. 물은 가장 약한 물질이지만, 못 들어가는 곳이 거의 없고 날카로운 바윗돌도 깎아서 부드럽게 만든다. 유순한 말도 이와 같다. 온유는 성도의 덕이며 하나님의 종들의 덕이다.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디모데후서 2:24-25,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 . .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16절] 너는 꿀을 만나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하므로 토할까 두려우니라. 잠언 24:13에서는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고 말했으나, 본문은 꿀을 과식하면 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절제에 대한 교훈이다. 꿀뿐 아니라, 모든 맛있는 음식이 다 그러하고 세상의 모든 즐거운 일들이 다 그러하다. 우리는 모든 좋은 것들을 절제 있게 사용해야 한다. 절제는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덕의 하나이다. 사도 바울은 벨릭스 총독에게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관해 전하였다(행 24:25). 절제는 성령의 열매들 중 하나이다.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 . .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실상,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허무하다(전 1:2). 그러므로 시편 39편은 모든 사람이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다고 표현하며 우리의 소망이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였다(시 39:6-7). 사도 바울은,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저것을 다 폐하실 것이라고 말하였다(고전 6:12-13).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임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느니라”고 말하였다(요일 2:15-17). 물론, 금욕주의가 대안은 아니다. 전도서는 사람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중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우며 허무한 세상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교훈했다(전 2:24; 5:18; 9:9).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며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딤전 4:1-5).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자가 되어 그가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들을 잘 수행하고 끝까지 완수함으로써 우리를 세우시고 그의 일을 맡기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야 한다. 둘째로, 거짓 은사를 자랑하거나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다. 우리는 세상일이나 신앙생활이나, 기도도 구제도 허풍으로나 자기를 자랑하면서 하지 말고 조용하고 충실하게 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감정적으로 행하지 말고 범사에 인내하며 온유하고 유순한 말로 자기 의견을 말함으로 상대방을 설득해야 한다. 오래 참으면 관원도 그 말에 설득 당한다.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는다. 넷째로, 우리는 꿀을 적당히 먹고 과식하지 말아야 한다. 허무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즐거움이 있으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세상의 즐거움을 적당히 누리며 범사에 절제해야 하고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17-20절, 이웃 왕래, 거짓 증거, 불신실, 동감 [17절]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호카르 라글레카 밉베스 레에카)[네 발을 네 이웃의 집으로부터 드물게 하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본문은 사람이 이웃집에 자주 드나들지 않고 드물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이라고 교훈한다. 이웃집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은 자기의 일에 충실하지 못하고 남에 대한 말도 하기 쉽다. 잠언 11:13,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잠언 20:19,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또 사람마다 개인의 시간 계획이 있고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런 사람에게 30분 혹은 1시간의 시간을 빼앗는 것은 큰 일이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이게 행동하지 말고 남을 생각하고 예의를 가져야 한다. 남의 시간을 필요로 할 때에는 먼저 정중히 양해를 구해야 하고 전화가 필요한 경우에도,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하신 이웃 사랑의 원리에 맞다. 사랑은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상대를 배려한다(고전 13:4-5). 그러나 상대방의 구원을 위한 접촉이나 방문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상대방의 영혼 구원은 가장 귀한 일이므로 그 일을 위해서 접촉하고 방문하는 것은 우리가 기회를 잡아 힘써야 할 귀한 일이다. 본문은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고 말한다. 특별한 일 없이 이웃집에 자주 드나드는 것은 이웃에게 폐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웃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어야지 귀찮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선하고 흠 없는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 [18절] 그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살이니라. 그 이웃에 대해 거짓말로 비난하는 자는 그 이웃을 방망이로 때리고 날카로운 칼로 베고 뽀족한 화살로 쏘아 찔러 죽이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명하셨다(출 20:16). 거짓말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이다. 그것은 마귀의 행동이다. 마귀는 에덴 동산에서 뱀을 통해 거짓말로 하와에게 접근하여 그를 범죄케 하였고 아담과 온 인류를 죄와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창 3장). 주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8:44). 거짓말을 하는 것은 마귀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남을 치는 거짓 증거는 교만과 미움에서 나온다. 교만은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게 만들며, 미움은 남을 해치고 죽이게 한다. 미움과 살인은 멸망의 죄악이다. 사도 요한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말했다(요일 3:15). 성경은 거짓말하는 자와 살인하는 자는 천국에서 제외되고 지옥에 던지울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22:15,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요한계시록 21:8,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19절] 환난 날에 진실치 못한 자(보게드 )[배신자, 불신실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쉔 로아 )[나쁜 이](NASB, NIV)와 위골(違骨)된 발(레겔 무아뎃 )[뒤뚝거리는(tottering) 발](BDB) 같으니라. ‘진실치 못한 자’ 즉 배신자, 불신실한 자는 양심적으로 행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따라 입장을 바꾸고 관계를 변하는 자이다. 그는 우리가 부요하고 형통할 때는 친근히 하다가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즉 물질적 어려움이 있고 환경적 재난이 닥칠 때에는 등을 돌리는 자이다. 환난 날에 배신자, 불신실한 자를 의뢰하는 것은 나쁜 이와 뒤뚝거리는 발과 같다. 이나 발은 몸에 꼭 필요한 지체지만, 나쁜 이는 음식을 씹는 기능을 잘 못하는 이며 뒤뚝거리는 발은 걷는 기능을 잘 못하는 발이다. 그것들은 쓸모 없고 오히려 통증이 있어서 고통과 짐이 되는 지체들이다. 이와 같이, 환난 날에 배신자, 불신실한 자를 의뢰하는 것은 쓸모 없는 일이며 오히려 마음에 고통과 짐이 되는 일이다. 물론, 우리는 서로에게 하나님 안에서 신실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하나님과 그의 진리 안에서 의리를 지키고 변함 없이 사랑하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 사랑엔 거짓이 없고(롬 12:9), 또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전 13:5).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사람은 우리가 의지할 대상이 아니고 때때로 우리를 배신하고 떠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2:22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말했다. 주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셨다(요 2:24). [20절]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쏘다[소다] 위에 초를 부음 같으니라. 추운 날에는 옷을 더 입어야지 옷을 벗으면 더 춥다. 또 소다에 식초를 부으면 부글부글 끓고 열이 나고 이산화탄소 즉 탄산가스와 더불어 유해물질이 발생하여 눈이나 피부에 해롭다고 한다.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그의 마음을 위로하기는커녕 그의 마음을 더 상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지 말고 은밀히 그를 위해 기도하든지 혹은 함께 기도해야 하며 또 그에게 위로의 말을 해야 할 것이다. 성도는 고난 중에 기도해야 한다. 야고보서 5:13은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고 말한다. 성도는 다른 사람과 마음을 같이해야 한다. 그것이 온유와 겸손의 마음가짐이요 사랑의 마음가짐이다. 욥은, “고생의 날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라고 말했다(욥 30:25). 사도 바울은,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한다”(고전 12:26),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 말라” 하였다(롬 12:15-16). 사도 베드로도,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같은 생각을 가지며] 체휼(體恤)하며[같은 감정을 가지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라” 하였다(벧전3:8). 우리는 서로 같은 생각과 같은 감정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고 자기 일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는 상대방의 영혼 구원을 위한 접촉 이외에는 이웃에게 폐가 되거나 부담을 주는 방문을 삼가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일이나 영적인 일이나 각자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이웃에 대해 거짓말로 증거하여 이웃을 치거나 찌르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남을 치는 거짓 증거는 교만과 미움에서 나온다. 우리는 교만과 미움을 버리고 겸손히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 셋째로, 환난 날에 불신실한 자를 의뢰하는 것은 나쁜 이와 뒤뚝거리는 발과 같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신실한 친구가 되어야 하고 환난 날에 신뢰할 만한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사람을 믿거나 사람에게 자신을 맡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해야 한다. 넷째로,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 위에 초를 부음 같다. 우리는 이웃과 생각과 감정을 같이하여 그가 울 때 함께 울고 그가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해야 한다. 그것이 온유함과 겸손함의 마음가짐이요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가짐이다. ===21-24절, 원수 사랑, 참소하는 혀, 다투는 여인 [21-22절]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본문은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라는 교훈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원수이었던 우리를 사랑하셨고 오래 참으셨고 구원하셨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보이신 하나님의 마음과 행위를 본받아야 한다. 주께서도 비슷한 내용을 교훈하셨다. 마태복음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에게 선을 베풀며 너희를 모욕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전통 본문). 누가복음 6:27-28,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사도 바울도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였다(롬 12:20-21). 핀 숯을 머리에 놓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핀 숯이 쇠를 달구듯이 그의 선행이 원수의 마음을 감동시켜 회개케 하고 변화시킴을 뜻할지도 모른다. 원수가 생각하기에, 자기는 상대방에게 악을 행했는데 상대방은 자기에게 선을 행하기 때문에 감동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원수가 그래도 변하지 않으면 그가 원수에게 한 선행이 도리어 그의 머리에 놓여진 하나님의 진노의 숯불이 된다는 뜻도 포함할 것이다. 본문은 또 네가 원수를 선대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상을 주시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원수 사랑의 선행에 대해 상을 주실 것이다. [23절] 북풍이 비를 일으킴같이 참소하는 혀(레숀 사세르 )[은밀한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 ‘일으킨다’는 원어(테콜렐 )는 ‘가져온다’(NASB, NIV)는 뜻이거나(BDB), ‘몰아낸다’(drive away)(KJV)는 뜻이다. <22) ‘은밀한 혀’는 ‘은밀하게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혀’라는 뜻이라고 본다(BDB). > 한글 본문은, 북풍이 비를 일으키듯이, 은밀하게 남을 헐뜯는 혀가 비난당하는 당사자나 바른 생각을 가진 자들을 분노케 만들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말을 삼가야 한다. 주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7:1-2). 혹은, 본문의 뜻이, 옛날 영어성경의 번역대로, “북풍이 비를 몰아내듯이, 노한 얼굴은 남을 헐뜯는 혀를 몰아내느니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팔레스틴 땅의 북풍은 보통 비가 없는 바람이라고 한다. 팔레스틴 땅에는 보통 서풍이나 남서풍이 비를 가져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본문은,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은밀히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말을 할 때 그것을 듣지 않고 그 앞에서 화를 내면 그는 다시 와서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디모데전서 3:11은, 사람이 장로와 집사가 되려면 그의 아내들이 참소하지 않는 자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24절]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 21:9도 같은 말씀이다.) 잠언 21:19는,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비슷한 내용을 말한다. 다투는 여인은 성격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람은 자기의 욕심이 충족되지 않으면 불만하고 다툰다. 사람이 욕심이 없으면 불만도 없고 다툼도 없을 것이다. 사람의 가치는 경건함과 선함과 온유함 등의 덕성에 있다. <22) ‘일으킨다’는 원어(테콜렐 )는 ‘가져온다’는 뜻이거나(헬라어70인역, BDB), ‘몰아낸다’(drive away)는 뜻이라고 보인다(헬라어 시마쿠스역, Vg, 카일-델리취, 유대인 학자들 아벤 에즈라, 죠셉 킴치).> 여성의 가치도 그러하다. 성경은 특히 여성의 덕으로 하나님을 경외함, 덕스러움, 선행, 온유함, 조용함 등을 든다. 잠언 31:30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잠언 12:4는, “어진[덕스러운]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고 말한다. 또 디모데전서 2:9-10은,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고 말하고, 또 베드로전서 3:4는 “[너희 단장은]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말한다. 그 외에도, 성경은 검소함, 절제, 근면 등을 여성의 덕으로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얼굴이 예쁜 것이 큰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으나, 실상 사람의 외모보다 그의 영혼이 더 중요하며 그 영혼이 그의 인격을 형성한다. 사람의 인격이 그 외모보다 훨씬 중요하다. 결혼의 행복은 가정의 평안과 사랑에 있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지만, 사람 편에서 겸손과 온유, 사랑과 인내를 갖춘 선한 인격이 필요하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마실 물을 주어야 한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끝까지 그에게 선을 베풀어야 하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남을 비난하지 말아야 하고 또 우리에게 와서 은밀히 남을 비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화를 내어 쫓아내는 것이 좋다. 남을 비난하는 것은 나쁜 일이요 그런 것을 방치하는 것도 나쁜 일이다. 셋째로,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 우리는 사람의 가치를 외모에보다 인격성에 두어야 한다. 모든 여성도들은 경건과 선함과 온유함의 덕을 갖추도록 힘써야 한다. ===25-28절, 좋은 기별, 의인의 굴복, 영예, 마음 제어 [25절]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도시에 나가 학원에서 청소하고 일하면서 공부하던 학생이 대학 입학 소식을 부모님께 전해드렸을 때를 한번 생각해 보라, 시골에서 아들의 소식을 목마르게 기다리던 부모님의 기쁨은 참으로 컸을 것이다. 죄인들은 목마른 자와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하셨다(사 55:1). 주께서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마 5:6). 죄인들은 세상에서 사는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나 죄 문제의 해결과 영생에 대해서 알지 못하여 <그들의 영혼이 이미 죽어 있는, 시한부로> 목말라 있다. 천국 복음은 먼 땅에서 오는 가장 좋은 소식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소식이며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어야 할 기쁜 소식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사람이 전적으로]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라고 말하였다(딤전 1:15). 하나님의 복음은 목마른 자들에게 생수와 같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수가성 여인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고 말씀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다(요 4:10, 14). [26절]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으니라. 우물이나 샘은 먹는 물이다. 의인의 말과 행동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된다. 잠언 10:11은,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고 말한다. 물이 흐리어짐과 더러워짐은 물을 못 먹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의인이 의를 지키지 못하고 악인의 위협과 핍박에 굴복하여 불의를 용납하고 타협하고 절충하는 일이 있다. 경건했던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죽음의 위험 때문에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었다. 사도 베드로는 주께서 잡히신 날 밤에 사람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었다. 그것들은 자신들과 다른 이들을 크게 실망시킬 만한 일들이었다. 그런 일들은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참사랑-생명의 구주, 신랑이신 하나님이 마음 아파 하신다!!> 사람들은 의인의 말과 행위를 통해 의가 세워지기를 기대하고, 악인이 득세할 때 탄식한다. 잠언 29:2,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이나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신앙과 의를 지키기를 원하신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사자굴의 위협과 풀무불의 위협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했다(단 3장, 6장). 주께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다(마 5:10-11). 베드로와 요한은 공회에서 유대 지도자들이 그들을 경계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했을 때 대답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말했다(행 4:17-20). [27절]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 꿀은 달고 맛있는 좋은 음식이다. 성경은 지혜를 꿀에 비유하였었다. 잠언 24:13-14는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 . .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고 하였다. 또 다윗이나 시편 119편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표현하였다(시19:10; 119:103). 여기 본문은 영예를 꿀에 비유한다. 영예는 좋은 것이며, 불명예나 수치는 나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부, 어린양의 아내, 하나님의 친구-자녀-백성-기업-소유-기쁨-누림은 바로 믿는이의 다함 없는 영원 진실 무궁한 영예임을 알라!!> 그러므로 잠언 22:1은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라고 말했고, 전도서 7:1도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말했다. 로마서 2:7도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영생으로 갚으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경은 꿀을 적당히 먹어야 한다고 교훈한다. 잠언 25:16은, “너는 꿀을 만나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하므로 토할까 두려우니라”고 말했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 그 중에서도 영예에 대한 균형-중용-질서-조화, 곧>절제를 교훈한 것이다. 그것은 음식에서 뿐 아니라, 영예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영예는 좋은 것이지만, 우리가 그것에 대한 욕심을 품는 것은 좋지 못하다. 사람들은 영예를 위해 외식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남에게 악을 행하기도 한다. 그것은 세상적 욕심이며 세상 사랑이다. 전도서 1:2는 “[세상의 일들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말하였고, 또 요한일서 2:15-17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 . .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했다. [28절]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마음’이라는 원어(루아크 )는 ‘영’이라는 뜻이다.마음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 등 영의 활동이다. <루아흐는, 사람 안에 창조하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심 통해 조성되었고 오직 하나님의 참 생명, 조에Zoe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여기에 하나님 자신의 모든 영광-이름-어떠하심의 모든 것을 담아 공급하신다)...바로 하나님의 이 말씀으로 살도록 창조하신 영, 생각-감정-의지 등 혼적 활동 기능을 가진 영, 곧 내적 사람 전반을 의미하는 바, 좁게 보자면 생각 자리가 마음이라 할 수 있다!!...영의 기능으로서는 직관-양심-영교 등으로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영과 마음을 제어하고 다스린다는 말은 절제를 가리킨다. 자신을 절제하는 사람은 좋은 인격자이다. 그는 마음의 의지 곧 심지(心志)가 견고한 자이다. 이사야 26:3은, “주께서 심지(心志)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않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다.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은 외부인의 침입에 무방비 상태인 것과 같다. 그는 마귀의 시험과 죄의 유혹과 세상의 악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성벽 곧 바른 우주관, 인생관, 가치관이 필요하고 경건과 의의 생활규칙이 필요하다. 또 경건과 의를 실천할 힘과, 불경건과 죄를 버릴 힘이 필요하며, 끊을 것은 끊고 피할 것은 피하고 힘쓸 것은 힘쓰는 결단력과 절제가 필요하다. 잠언 4:23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말한다. 우리는 마음을 지키고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고(고전 6:12; 10:23), 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말하였다(고전 9:25).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간에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그러나 실상, 절제는 성령의 열매이며(갈 5:22-23)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을 수 있는 덕성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먼 땅에서 오는 좋은 소식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다.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적으로 목마른 죄인들에게 전파되어야 할 좋은 소식이다. 우리는 이 구원의 좋은 소식을 널리 전하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 둘째로,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물의 더러워짐 같다. 우리는 악인 앞에 굴복하지 말고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신앙과 의를 지키고 범죄치 말고 본을 보이며 고난도 각오해야 한다. 셋째로, 꿀을 많이 먹는 것은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은 헛되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예와 영광은 좋은 것이지만, 세상 영광을 구하는 것은 헛된 욕심이다. 우리는 세상적 영예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자기 마음을 제어하는 좋은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늘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 26장: 미련한 자, 게으른 자 ===1-3절, 미련한 자의 영예, 까닭 없는 저주, 막대기 [1절]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팔레스틴 땅은 여름이 곡식을 추수하는 때이다. 여름에 눈이 오면 곡식을 추수하고 타작하는 데 큰 지장이 될 것이며 채소들은 다 얼어버릴 것이다. 비는 씨를 뿌리거나 곡식이 익는 계절인 초겨울과 초봄에 와야 적당하다. 그러므로 여름에 눈이 오고 추수 때에 비가 오는 것은 적당치 않고 오히려 지장이 된다.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같이, 미련한 자에게 는 영예가 적당하지 않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고 그의 계명대로 살지 않는 자이다. 그는 교만하고 정직하지 않고 악하며 거짓되다. 영예를 얻는 것은 예를 들어 교회의 직분과 사회의 직위를 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치 않다. 그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행함으로 그 직분을 어그러뜨린다. 그는 그 직분과 직위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높아지고 교만해져서 더 큰 잘못을 범한다. 그는 그 직분과 직위를 남용하고 오용한다. 파사 왕 아하수에로의 신하 하만은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심히 노하여 그와 그의 유다 민족을 다 멸하려고 계획하였고(에 3:5-6), 또 집뜰에 50규빗[23미터] 되는 나무를 세워 그를 그 나무에 달아 죽이려고 계획하였었다(에 5:14). 초대 교회 때에도,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는 주의 종들을 대접지 않고 악한 말로 비방하고 대접하는 자들을 금하고 교회에서 내어쫓았다(요삼 9-10). [2절]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 저주는 하나님께서 상대방에게 재앙을 내려주시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악인에게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이 임하기를 기원하는 것은 공의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정당성이 있다. 시편의 많은 저주의 시들이 그러하다. 예를 들어, 시편 6:6은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실 것이라고 말하며, 또 시편 7:16은 악한 자의 잔해(殘害)[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까닭 없는 저주는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자에게 재앙을 기원하는 것 같은 정당성 없는 저주를 가리킨다. 그런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같이 임하지 않을 것이다. 재앙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것이며 그는 불의하고 부당한 재앙을 내리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이방인 선지자 발람의 말을 듣지 않으시고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다(신 23:5). 또 시므이는 다윗 왕을 저주하였으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저주 까닭에 선으로 자기에게 갚으실 것이라고 말했다(삼하 16:12). (한걸음 더 나아가!!...미움과 저주는 사랑 충만한 마음, 그 활력과 사랑의 능력을 흐뜨러 뜨리기에) 정당한 저주라 하더라도, 예수께서는 신약 성도들에게 원수를 저주하지 말고 사랑하며 그를 축복하라고 교훈하셨다. 누가복음 6:27-28,“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또 사도 바울도,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고, 악에 대해 보복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며 악한 자에게 끝까지 선을 베풀라고 교훈했다(롬 12:14, 19-20). 그것은 우리가 지옥 갔어야 할 큰 죄인이었으나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代贖) 사역으로 구원 얻었기 때문이다. [3절]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자갈[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재갈’은 말을 어거하기 위해 입에 가로로 물리는 쇠토막을 가리킨다. 말이나 나귀 같은 이성 없는 짐승에게는 재갈과 굴레와 채찍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람이 그것들을 제어하고 순종케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짐승과 다르며 사람은 말로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있고 권면하고 책망도 한다. 사람은 남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상대방이 마음을 닫지만 않는다면, 그에게 자기의 마음과 뜻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닫고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미련함이 조끔씩 있다. 미련한 자는 무지와 고집, 교만과 완고함이 있다. 그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미련한 아이에게 부모의 매가 필요하듯이, 미련한 자에게는 채찍이나 매나 막대기가 필요하다. ((믿는이도 어느정도 어리석고 연약함이 늘 있기에!! 이처럼 믿는이 스스로는 하나님께 순복함, 성령께 자원함으로 복종하는 것이 숙달됨=영적 성숙이 어렵기에, 전적으로 속사람을 다루시는 주님의 생명과 사랑의 연단이 반드시 필요하다...온전한 생명 성숙과 열매 맺음 이것을, 주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알며 사랑하며 섬김 원하며, 신뢰함으로 구하라!!)) 잠언 10:13,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잠언 18:6, “그[미련한 자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잠언 19:29,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 미련한 어른들의 등에 필요한 막대기는 하나님의 징계의 고난을 가리킨다. 시편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히브리서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우리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고 지혜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시편 32:9는,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하였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여름에 눈이 오고 추수 때에 비가 오듯이,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않다. 미련한 자는 그 영예를 남용하고 오용한다. 우리는 영예를 구하지 말고 지혜를 구해야 한다. 둘째로,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 같다. 우리는 까닭 없는 저주를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 셋째로,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이다. 우리는 미련함을 버리고 온유함과 순종심을 가져야 한다. ===4-6절, 미련한 자에 대한 대답 [4절]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계명을 알지 못하고 행치 않는 자이다. 그런 사람은 교만하고 자신을 높이고 남을 멸시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육신적인 것, 물질적인 것을 사랑한다. 그는 돈을 자랑하고 집을 자랑하고 자식을 자랑하고 외모를 자랑하고 세상 권세를 자랑한다. 그런 사람은 흔히 뭐니뭐니 해도 세상에서는 건강이 최고라든가 돈이 최고라는 등의 말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미련한 자의 말들에 동의하여 “물론, 그렇죠”라고 대답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다 틀린 말들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와 정반대로 가르친다. 전도서 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시편 20:7,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이사야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이사야 40:6, 8,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요한일서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5절]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그에게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우리는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말에 대해 대답하지 않고 잠잠해야 할 때가 있으나, 하나님의 진리에 관계될 때, 또는 침묵하면 상대가 오히려 <자기의 미련함을 자각하지 못하고 분수에 지나치게 스스로 자랑하고 뻐기면서> 자신을 지혜롭다고 여길 수 있을 때 ((반드시 영 안에서, 입에 넣어주시는 성령의 말씀을)) 말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침묵하실 때도 있었지만, 필요한 때는 언제나 말씀하셨다. 그는 바리새인들이 그가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에 대해 비난하고 금하였을 때,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18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라고 말씀하셨다(눅 13:15-16). 또 유대인들이 간음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 율법대로 돌로 칠 것인가를 질문하였을 때, 그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요 8:7). 이것은 그들의 말로써 그들의 부족을 깨우치신 사건이었다. 사람은 남의 잘못은 잘 보고 또 정죄하지만, 막상 자신도 정죄를 당할 만한 부족한 자임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라고 묻자, “나도 한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고 되물으셨다(마 21:23-25). 그럼으로써 그는 어리석은 자들의 시험하는 질문의 입을 지혜롭게 막으셨다. [6절]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자(者)는] 자기의 발을 베어버림이라. 해를 받느니라. 누구 편에 기별한다는 것은 <자기의 뜻과 의향을 , 신뢰하는 이에게 맡겨서> 전달 받는 상대방에게 자기의 뜻을 전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요즘에는 편지나 전화, 혹은 문자나 이메일이 있어서 전하는 일이 쉽지만, 예전에는 사람을 직접 보내어 전하게 하였다. 전달자의 임무는 자기를 보내는 자의 말과 마음을 충실히 전하는 것이다. 그런 데 미련한 자 편에 (곧 미련한 자에게 맡겨서) 기별하는 자는 자기의 발을 베어버림과 같다. 발을 베어버림과 같다는 말은 전할 말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보내는 자의 전하는 뜻이 바르게 전달되지 않고 변질되고 왜곡되어 그를 보낸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해를 입는다. 이것은 목사와 교사, 또 넓게는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해야 할 진리의 말씀을 주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칭의(稱義)의 복음이요 또 구원받은 자들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살게 하고 온전케 되게 하는 성화(聖化)의 교훈이다. 말씀의 봉사자들과 모든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롭고 충성된 전달자가 되어야 한다(딤후 4:3-5). 그러나 미련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충실한 전달을 저버리고 자기들의 어리석은 생각을 따라 이단 사상들을 전하고, 병 고침과 물질적 부요함의 복을 가르치는 설교를 하고, 내세에 대한 소망보다 현세에 대한 관심만 전하며, 또 요즈음에는 예화가 가득하고 유머가 있는 재미있는 설교를 함으로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것들은 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지 못하는 일이요 도리어 하나님의 일에 해가 되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어리석은 자의 말에 동의하여 대답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잠시라도 어리석은 자들의 불경건하고 부도덕하고 헛된 말에 동의하지 말고 그 어리석음에 동조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어리석은 자의 말에 대하여 침묵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고 성경에 근거해 바르게 대답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럼으로써 어리석은 자의 생각과 말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우쳐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잘못을 모를 것이다. 셋째로,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자는 자기 발을 베어 버림같이 해를 받는다. 우리는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지혜롭고 충성된 자들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해 성경적 기독교가 밝히 증거되게 해야 한다. ===7-9절, 미련한 자의 잠언과 영예 [7절] 저는 자의 다리는 힘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다리는 걷는 기능을 하는 중요한 신체기관이다. 다리가 튼튼한 자가 건강한 자라고 한다. 사람은 적당한 영양섭취와 충분한 운동으로 다리를 건강케 해야 한다. 저는 자의 다리는 힘없이 달려 있다. 저는 자는 다리를 가지고 있으나 그 다리가 제 구실을 못하는 자이다. 본문은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이 저는 자의 힘없이 달려 있는 다리와 같다고 말한다. 입은 음식을 먹는 기관이기도 하지만, 특히 말을 하는 기관이다. 잠언은 교훈적이고 유익한 말을 가리킨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별 교훈이 되지 못하고 별 유익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미련한 자는 온 세상의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사람의 삶의 규칙으로 주신 그의 계명을 알지 못하므로, 그의 잠언에 가장 중요한 것 곧 경건과 도덕성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지혜자는 그 입으로 하나님께 찬송하고 기도하며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고 바르고 유익한 충고를 주고, 또 위로와 격려를 주고 때로는 책망도 한다. 잠언 10:21은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한다”고 말하며, 잠언 12:18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같다”고 말하며, 잠언 15:4는 “온량한[건전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고 말한다. 신약성경은 우리가 남에게 유익을 주는 덕스러운 말을 하라고 교훈한다. 에베소서 4:29는,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교훈한다. [8절]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물매’는 투석구(投石具) 즉 돌을 멀리 정확하게 던지는 기구이다. 그것은 옛날 이스라엘과 애굽, 앗수르, 바벨론 등지에서 사용한 무기의 하나로서 2미터 정도의 가죽끈의 중간을 넓게 하고 거기에 돌을 싸서 끈의 양끝을 모아 잡고 돌리다가 한쪽 끝을 놓아 돌을 날리는 도구이다. 앗수르 사람들은 발 앞에 계란 모양의 돌을 쌓아 놓고 던졌으며 애굽 사람들은 목에다 돌을 담은 그물을 걸고 던졌다고 한다. 사사기20:16은 사사 시대에 베냐민 사람들 중에 물매를 던져 정확하게 맞히는 자들이 700명이나 있었다고 증거한다. 사울 시대에 소년 다윗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울 때 물매를 사용하였다(삼상 17:40). 당시 목자들은 양을 해치러 오는 짐승을 막는 도구로 물매를 썼던 것 같다. 본문은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이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미련한 자는 불경건하고 교만하고 의와 선을 행치 않는 자, 거짓되고 악한 자, 비양심적인 자이다. 영예를 준다는 말은 직분을 주고 중요한 책임을 맡긴다는 뜻이다. 직분은 <목표하는, 중요한>일을 하기 위해 주는 것이며 일을 위해 필요하다. 돌을 물매에 맨다는 말은 돌을 날려보낼 수 없음을 말한다. 물매가 <목표물을 맞추기 위해 돌을 날려보냄의>물매로서의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미련한 자는 그의 미련함, 곧 그의 교만과 악함과 거짓됨 때문에 그의 영예 즉 그의 직분을 잘 사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을 어그러뜨리고 해를 끼친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 본이 되지 못하고 또 유익을 끼치지 못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열왕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이 그러했다. 오늘날 교회 직분자들과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과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는 미련하고 무익한 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9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의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술 취한 자는 바른 정신, 건전한 정신, 제 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이 술 취하면 실수하고 범죄하기 쉽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고 말했다(엡 5:18). 술 취한 자의 손에 든 가시나무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바른 정신을 가진 자는 가시나무를 불쏘시개로나 쓸 것이다. 그러나 술 취한 자는 그것을 지팡이인 줄 알고 잡음으로 자기 손을 상할 것이다. 그의 손은 베이고 찔리고 찢길 것이다. 또 그가 그것을 사용하여 남을 치면 남에게도 같은 해를 줄 것이다. 그는 그것으로 남의 몸을 베고 찌르고 찢어 큰 상처를 입힐 것이다.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이와 같다. 잠언은 교훈의 말이다. 미련한 자는 그의 미련함을 말로 나타낸다. 그는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말을 하며, 그 말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덕스럽고 건설적인 말이 아니고, 남에게 해를 주고 마음의 상함을 주는 말이다. 잠언 12:18은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한다”고 말하며, 잠언 15:4는 “패역한 혀는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고 말한다. 미련한 자가 그렇다. 야고보서 3:8-9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미련한 자의 혀가 그러하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2:1은,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말하며, 에베소서 4:29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라”고 말하였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저는 자의 다리가 힘없게 달려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아무 유익이 없는 말을 하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를 얻어 남에게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다. 미련한 자는 직분을 맡아도 교회에 덕을 세우고 유익을 끼치지 못한다. 우리는 미련한 직분자, 봉사자가 되지 말고 지혜롭고 충성된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교회에서 주신 선한 봉사의 직무를 잘 감당해야 한다. 셋째로,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의 손에 든 가시나무와 같다. 그것은 자신에게 해가 되고 남에게도 해를 준다. 우리는 우리의 입을 지켜 악한 말을 금하고 선하고 덕스러운 말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10-12절, 미련한 자 [10절] 장인(匠人)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자를 고용함과 같으니라. 본문은 여러 뜻으로 번역되는 구절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뜻은 어느 정도 이해된다. ‘장인’이라는 원어(라브 )는 ‘크신 자[하나님]’(KJV), ‘장인(匠人)’(게세니우스), 혹은 ‘궁인(弓人, 활 쏘는 자)’(NASB,NIV) 등으로 번역된다. 또 ‘만들지라도’라는 원어(메콜렐 )는 ‘만드는 자’(BDB, KJV) 또는 ‘상하게 하는 자’(KB, NASB, NIV)로 번역된다. ‘지나가는 자’라는 원어(오베림 )는 ‘범죄자’(KJV) 또는 ‘지나가는 자’(NASB, NIV)라고 번역된다. 옛날 영어성경(KJV)은 “모든 것을 만드신 크신 하나님께서는 미련한 자도 보응하시고 범죄자들도 보응하시리라”는 뜻으로 번역하였고, 히브리어 학자 게세니우스는,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드나,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범죄자를 고용함과 같으니라”는 뜻으로 번역했다(한글 개역성경과 비슷함). 근래의 영어성경들(NASB, NIV)은, “모든 사람을 상하게 하는 궁인(弓人)처럼, 미련한 자를 고용하거나 지나가는 자를 고용하는 자가 그러하리라”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어느 번역이 바른 번역인지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근래의 영어성경 들이 문맥상 적절해 보인다. 본절은 미련한 자를 고용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본다.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같이 별 유익이 없거나 범죄자를 고용하는 것같이 오히려 해가 될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에 그 일에 적합한 자를 잘 심사하여 고용해야지, 아무나 고용해서는 그 일을 잘할 수 없고 더욱이 미련한 자에게 일을 맡기면 오히려 심신의 고통과 해를 당할 것이다. [11절]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개는 음식이 나쁘든지 속이 안 좋든지 하면 토할 것이다. 또 토한 것은 위액과 섞여서 냄새도 이상하고 맛도 이상할 것이다. 그렇지만 매우 훈련된 개가 아니면, 개는 얼마 후 배가 고프면 그것을 또 먹는다. 개들은 지혜가 없어 욕구와 충동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짐승들이 다 그러하다. 짐승은 지혜와 생각이 없고 도덕성이 없다. 미련한 자는 이와 비슷하게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한다. 미련한 것이 무엇인가? 불경건한 것이나 우상숭배 같은 것, 또는 부도덕한 것, 즉 남을 비방하는 것이나 음란한 것이나 거짓된 것 등이 미련한 것이다. 또 헛된 것들, 즉 돈을 사랑함, 세상을 사랑함, 명예를 사랑함, 사치와 허영, 과도한 쇼핑, 지나친 외모 치장 등이 미련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정당한 욕구가 있고 정당치 않은 욕구가 있다. 의식주의 기본적 필요는 정당하고 또 결혼도 하나님께서 주신 행복이지만, 음란이나 알코올 중독, 탐욕과 사치와 허영 등 무엇이든지 절제치 못하고 양심에 거리끼는 것을 행하는 것은 미련한 것이다. 미련한 자는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한다. 애굽에서 나왔던 이스라엘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늘 거역하였다(신 9:7, 24).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또’ 혹은 ‘다시’ 범죄하였다고 증거했다(삿 3:13; 4:1; 6:1;10:6; 13:1). 시편 78:17, 40-41,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l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