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2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사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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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8장

===이사야의 아들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가지고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2.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언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3.  내가 내 아내를 가까이 하매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4.  이는 이 아기가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임이라 하시니라

===앗수르 왕의 침략

5.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6.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7.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깨우치시다

9.  너희 민족들아 함성을 질러 보아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10.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

11.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려 주시며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 것을 내게 깨우쳐 이르시되

12.  이 백성이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고 하지 말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삼으라

14.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15.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르라

16.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 봉함하라

17.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18.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9.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21.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22.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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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8장 (개요)

본장과 다음에 오는 4장(13장까지)은 모두 하나로 계속된 연설 또는 설교이며, 그 내용은 이제 곧 이스라엘 왕국에 임할 큰 멸망과 앗수르 왕에 의해 유다 왕국이 겪게 될 큰 혼란을 알려 주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그들의 죄로 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흑암시대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위해 충분한 위로가 마련되어 있으며, 그것은 특히 메시야의 시대를 가리키고 있다. 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앗수르 왕에 의해 아람과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리라는 예언(1-4).

2. 그 교만하고 승리를 뽑내는 왕에 의해 이스라엘과 유다 땅에 임하게 될 황폐함(5-8).

3. 그러한 혼란 중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질 큰 위로, 그들은 다음과 같은 확신을 얻는다.

   (1) 그 대적들은 그들에 대해 의도했던 바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9, 10).

   (2) 그들이 계속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피난처 되심을 발견할 것이며(11-14), 다른 사람이 넘어져 절망 속으로 빠질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은 시대를 위해 그들 자신이 보존됨을 보게 될 것임(15-18). 끝으로,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경고를, 즉 그들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신접한 자들에게 의논하지 말고(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기 자신을 절망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지키라는 경고를 하고있다(9-22). 그리고 이 권고와 위로는 고통 중에 있는 우리에게 항상 유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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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예고(사 8:1-8)

이 대목 속에서는, 앗수르 왕이 다메섹과 사마리아와 유다를 쳐서 이기리라는 예언이 나와 있다. 그런데 다메섹과 사마리아의 두 나라는 그에 의해 황폐케 되고, 유다는 크게 놀라게 되리라고 했다.

Ⅰ. 이 예언을 기록하고, 그것을 모든 사람이 보고 읽을 수 있도록 공표하며, 기록으로 남겨 놓아, 그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께서 그 예언자를 보내셨다는 것을 그들이 알 수 있게 해 놓으라는 명령이 이사야에게 내렸다. 왜냐하면 그것을 아는 것이 그 예언의 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요 14:29). 그는 "큰 서판을 취하여," 다섯 장(章)에 걸쳐있는 장황한 말을 명료하게 기록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그가 앗수르 왕이 그 나라를 침입하는 것에 관해 말한 것을 모두 거기에 기록해야 했다. 그는 그것을 "통용 문자로," 즉 통상적인 문장법과 문체로 "써서," 모든 사람이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해야 했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라" (합 2:2 참조). 하나님께 관해 말하고 기록하는 자들은, 모호한 것을 피하고 다른 사람들이 깨닫도록 말하고 쓰도록 하는 길을 연구해야 한다(고전 14:19). 사람들을 위해 쓰는 자들은 통용 문자로 써야 하고 천사들의 문자나 방언을 탐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책 앞에는 짧막하고도 의미가 담겨 있으며 해석하기 쉬운 표제를 붙이는 것이 관례이므로, 그 예언자는 그의 책을 "마헬살랄하스바스" - 속히 노략되리라 - 라고 부르라는 지시를 받고 있는데, 그것은 앗수르 군대가 매우 속히 그들에게 침입해 와서 크게 노략해 가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표제를 듣는 자들에게는 그 책의 내용과 의미로 전달되었을 것이며, 그것을 읽거나 읽는 것을 들은 자들에 의해 기억되어졌을 것이다. 많은 내용을 몇 마디 말로 적는 것은 때로 기억을 훌륭히 도와주며, 그것은 더욱 많은 것을 우리가 보유할 수 있게 해 주는 손잡이 역할을 한다.

Ⅱ. 이 기록이 잘 입증되도록 예언자를 돌보았다(2절). "내가 진실한 증인을 불러(기록을) 증거하게 하리라" 고 하셨다. 그는 그 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그 예언을 적었다. 그리고 거기에 그들의 이름을 서명하게 했다. 그것은 앗수르 사람들이 그 나라를 침입하리라는 것을 이사야 예언자가 매우 오래 전에 이미 예언했다는 사실을, 후에 기회가 생기면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사야는 그의 증인들의 이름을 매우 명확하게 제시하여, 누구든지 그들을 잘 알 수 있게 했다. 그들의 수는 둘이었다(왜냐하면 "두 증인의 입으로 나온 말이면 확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제사장 우리야였다. 그는 아하스에 대한 이야기에서 언급되어 있으나, 그의 선행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언급된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우상의 제단으로써 아하스의 비위를 맞춰 주었기 때문이다(왕하 16:10, 11). 그러나 당시에 그는 진실한 증인이었으므로, 그를 거부할 이의는 없었다. 예언자들이 자기들의 의도의 성실성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세심한 배려를 기울이는가를 보라.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가르침 받은 것을" 분명히 믿게 하며, "교묘히 꾸며진 헛이야기를 좇지 않게" 하려 함이다.

Ⅲ. 그 아이의 이름으로 그의 책의 표제를 삼아, 그것이 더욱 주목을 받고 더 영속적 효력을 발휘하게 했다(3절). 그의 아내는 "예언자" (AV)라 불리우고 있다. 그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곧 또 하나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는 먼저 번의 아들처럼(7:3), 그의 이름에 어떤 설교를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전자는 긍휼을 나타내는 "스알야숩" - "남은 자가 돌아 오리라" - 이었으나, 후자는 그 은혜가 무시되었기 때문에 "마헬살랄하스바스" - "그가 속히 노략할 것이라" , 또는 "그가 속히 노략되었다" 라는 심판을 알리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이 예언은 이 한 이름 속에서도 이중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사태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내가 내 말을 속히 지키리라" (렘 1:12). 그 아이가 그 이름으로 또는 그 이름의 일부분으로 불리웠을 때마다, 그것은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메모로서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만나기 쉬운, 아마도 문 앞에 와 있는 변화와 환란을 자주 상기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우리 처녀들을 보면서 즐거워할 때도,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지금의 상태가 장차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Ⅳ. 그 예언 내용은 이 신비스러운 이름을 설명해 주고 있다.

1. 이제 유다를 치려고 동맹을 맺은 아람과 이스라엘은 매우 짧은 시일내에 앗수르 왕과 승리감에 넘치는 그의 군대에게 손쉬운 먹이가 될 것이다(4절), "이제 갓 태어나 이름을 얻은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아빠나 엄마는 보통 아이들이 처음으로 알게 되는 말에 속한다), 즉 "1, 2년 내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 지금은 매우 든든하고 그 이웃들에게 매우 거대한 존재인 그 성읍들의 노략물이 - 앗수르 왕 앞에 옮긴바 될 것이다. 앗수르 왕이 성읍과 촌락을 약탈하고 그 전리품으로서 가장 좋은 것들을 자기 나라로 보내어 그것을 풍성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을 약탈하는 자들은 자기들도 약탈당하는 것을 각오해야한다(33:1). 왜냐하면, 여호와는 의로우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을 괴롭히는 자들은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2. 유다에는 아람과 이스라엘 세력에 몰래 동조하고 다윗의 집을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하나님은, 앞에서 이야기된 바대로(7:17) 유다를 크게 괴롭히게 될 앗수르 왕을 사용하여 그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다음을 관찰하자

(1) 불만을 품고 있던 유다의 무리들의 죄는 무엇이었는가?(6절) 그 예언자가 여기에서 이야기를 던지고 있는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렸다" 는 것이다. 다른 나라나 그 왕처럼, 그들 자신의 나라와 정부가 이 세상에서 그리 큰 존재가 못되며 그리 크게 소문나 있지도 않다는 이유로, 그들은 그것을 멸시했고 또 비방하기를 좋아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그들에게 조용하고 작은 음성으로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그들에게 제안하는 위로를 거절했고, 그것을 무익하게 만들었다. 즉 그들은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는데," 그 자들은 그들 나라의 원수였고 또 지금 실재로 그들을 침입하고 있었던 자들이다. 그 유다 사람들은 그들을 용감한 자로 추켜 올렸고, 그들의 책략과 힘을 찬미했으며, 그들의 거동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그들의 성공을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그들의 계획이 잘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기원했고, 탈주하여 그들에게로 끼어들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독사들이 그 나라의 심장부에서 당당하게 육성되고 있었다. 즉 그 나라의 녹을 먹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원수들에게 달라붙어 있다. 그들이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그들과의 이해관계를 또한 끊어버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이 죄로 인해 그들에게 내리실 심판이 있다. 에브라임과 아람을 황폐케 할 바로 그 앗수르 왕이 유다에서 그 무리에 속해 있는 자들에게 채찍과 공포가 될 것이다(7, 8절). 그들이 "실로아의 물을 버리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에 그들 자신을 적용시키려 하지 않고, 그 아래에서 불안하게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 흉융하고 창일한 큰 하수" 를, 곧 구스강을 "그들 위에 덮을 것이다." 그들은 유다 땅에는 구스강과 비교될 만한 자랑스런 강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멸시했다. 예루살렘에 있는 강은 매우 하찮은 강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자 만일 너희가 이처럼 유브라데스강의 숭앙자가 되려한다면, 충분히 그렇게 해 주리라. 그 강 유역에 자리하고 있는 나라 앗수르의 왕이 자기의 영광과 함께 큰 군대를 거느리고 쳐들어 오리니, 너희들은 그의 영광을 찬양하며, 너희 나라의 왕은 멸시하라. 너희 왕은 전장터에 그런 군대를 투입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군대를 너희에게 이끌고 올 것이다." 우리가 사람들을 그들의 세상 재물과 권력으로 평가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재물과 권력으로 우리의 채찍이 되게 하시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부자가 우리를 압제한다" 는 것은 부자를 찬미하는 일을 반박하는 논증으로 사용된다(약 2:3, 6). 우리는 부드럽게 흐르는 실로아 물을 가장 기뻐하도록 하자. 급히 흐르는 물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본문의 뜻은, 앗수르 군대가 그들에게 대홍수 곧 물의 범람처럼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격파하고 그들 위에 덮으리라는 것을 경고해 주는 것이다. 즉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흐르리라는 것이다. 그들을 대항하거나 저항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산헤립과 그의 군대는 유다에 들어올 것이며, 거의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으므로, 그것은 그 나라를 침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곳을 지나 진행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는 목에까지 미치리라." 즉 그는 예루살렘 곧 그 나라의 머리를 포위할 정도로 멀리 나아올 것이고, 그 어느 성읍이든 그의 수중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벗어나리라. 그것은 거룩한 성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환란의 홍수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머리는 물에 잠기지 않도록 지켜 주실 수 있고, 또 지켜 주실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위안과 영적 생명을 보존해 주실 것이다. 그들의 영혼까지 들어온 물이 그 목에까지 이를 수는 있지만(시 69:1), 거기에서 그 교만한 물결은 정지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위로를 주는 또 하나의 암시가 있는데, 그것은 비록 앗수르 사람, 즉 그 먹이를 노리는 새의 펴는 날개, 곧 비록 그의 군대의 좌우 날개가 유다 땅에 편만할지라도, 그 땅은 여전히 임마누엘의 땅이라는 사실이었다. "네 땅은 임마누엘이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땅이 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그가 태어나서 살고 가르치고 기적을 행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온의 왕이었으므로, 그 땅에 특별한 관심과 배려를 기울였다. 임마누엘(그리스도)이 자기의 땅으로 시인하는 모든 나라는 - 그는 자기를 인정하는 모든 나라를 - 대 홍수를 당할지라도 멸망되지 않을 것이다. "원수가 홍수처럼 들어오는 때라도" , 임마누엘은 그의 소유를 안전히 지킬 것이며, "그를 향해 기를 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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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격려(사 8:9-15)

그 예언자는 여기에서 아하스와 그의 왕실과 나라가 그들을 치려는 열 지파와 아랍의 동맹군의 위협으로 인해 겪고 있는 현재의 환란으로 화제를 돌리고 있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는 다음 사실들을 볼 수 있다.

Ⅰ. 그는 침입해 오는 대적들을 무시하고 개가를 부르고 있다. 실상은 그들에게 도전하고 있고 또 그들의 패망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9, 10절). "너희 민족들아 너희 먼나라 백성들아, 예언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들을지어다."

1. "우리는 너희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치기 위해 이제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리라는 것만은 의심치 않는다. 너희는 철저히 단결하여 훤화한다. 너희는 너희 허리를 동인다. 그리고 다시 너희 허리에 띠를 띤다. 즉 너희는 행동할 준비를 한다. 너희는 결심을 하고서 그 일에 착수한다. 너희는 칼을 찬다. 너희는 허리 띠를 바짝 졸라맨다. 너희는 너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너희 자신과 서로를 활기있게 해 주고 격려한다. 너희는 함께 도모한다. 참모 회의를 열고, 너희가 유다 땅의 주인이 되기 위한 적당한 방책을 찾아내기 위해 온 머리를 동원한다. 너희는 말을 한다. 즉 너희는 그것에 관해 결단을 내린다. 항상 심사숙고만 하지는 않는다. 너희는 행할 것을 결정하며, 그 일이 한 마디 말로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의 성공을 크게 확신한다." 교회의 원수들은 매우 큰 수법과 결심과 확신을 가지고서 교화를 대적하는 계획을 수행한다. 그리고 그것은 필경은 그들에게로 되돌아올 돌을 굴리기 위해 온갖 수고를 다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2. "이것은 너희의 모든 노력이 쓸데없으리라는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다. 너희는 너희 뜻한 바를 얻거나 승리를 얻을 수 없으리라. 너희는 필경 패망하리라 고 했다. 비록 너희가 훤화할지라도, 비록 너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경계책을 동원하여 일을 진행시킬지라도, 나는 너희의 모든 계획이 좌절되고 너희가 필경 패망하리라는 것을 거듭거듭 말해둔다. 아니, 너희의 계획한 것이 파멸될 뿐만 아니라, 너희가 꾀한 시도가 바로 너희 파멸의 원인이 될 것이다. 너희는 너희가 유다를 치려고 만든 그 계획에 의해 패망할 것이다. 너희 도모가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여호와를 거수를 수 있는 지혜나 계획은 없기 때문이다. 너희의 결심은 실행에 옮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서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말하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그 말을 이룰 자가 누구냐?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의 주장과 뜻을 대적하여 세워진 것은 설 수 없고 불가피하게 패망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니라(이것은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 - 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메시야가 우리 중에서 태어나게 될 것이며 이처럼 영예롭게 될 백성은 완전한 멸망에 내버려 질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그의 성전, 그의 성경, 그의 약속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의 방어물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는 우리편에 서시며 우리쪽에 가담하시고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처럼 시온의 딸은 그들을 멸시했다.

Ⅱ. 이사야는 그 자신이 받은, 바로 그 위로와 격려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다. 그들에 대해 계획된 일은 매우 엄청났다. 다윗의 집, 곧 그 신하와 왕족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7:2). 그때에 백성들의 간담이 서늘해진 것은 당연했다.

1. 그 예언자는 그 백성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그러한 놀라운 두려움에 지지 않고 그들과 같은 생각에 휘말려 들지 않도록, 하나님으로부터 그가 배운 방법을 우리에게 발하고 있다(11절).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게 하시며 이 백성의 길로 행치 말 것을, 즉 그들이 말하는 대로 말하지 말고, 그들이 행하는 대로 행하지 말며 그들과 같이 두려운 생각을 품지도 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화친하자는 또는 앗수르 왕의 도움을 청하자는 그들의 제안에 찬성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 예언자에게 그 흐름에 휩쓸리지 말도록 가르치셨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아무리 선한 사람들에게라도 험악한 구름에 놀라 무서워하는 기질이 있으며, 두려움이 만연될 때에는 특히 그러하다. 우리에게 비록 그 길이 선한 길이 아닐지라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자들의 길로 행하려는 경향이 모두 농후하다.

(2)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시며 인정하시는 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이 가고 있는 타락의 물줄기, 특히 공포의 물줄기를 거슬러 헤엄칠 수 있도록 가르치실 것이며, 또 그렇게 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다른 백성의 길이 아니라 참되고 독자적인 길로 행하도록 가르치실 것이다.

(3) 타락은 때로 아주 선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매우 활발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들도 강한 손질에 의해 의무 이행에 대한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특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총명을 주실 수 있고 불신앙과 편견에서 나오는 반박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마음을 가르치실 수 있으나, 이러한 점에서 그와 같이 가르치는 자는 아무도 없다.

(4)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는 자들은 먼저 자신들이 의무에 관한 것을 잘 배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서야 실지로 남들을 가르칠 때 매우 힘있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대부분 마음에 와 닿는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써 가르침을 받은 것을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

2. 이사야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고 있는 말은 무엇인가를 보자.

(1) 그는 그들에게 죄악적인 두려움을 대적하도록 주의하고 있다(12절). 옳지 못한 두려움이 이 당시 이 백성들이 가고 있던 길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두려움이 만연되고 있었다.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들은 그 형제들에게도 사기를 저하시킨다(신 20:8). 그러므로 "이 백성이 맹약한 자가 있다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맹약한 자가 있다 하지 말라." 즉 다음과 같은 뜻이다.

① "그들과 연합하여 그들이 계획하고 예측하는 일에 맹약하지 말라. 자기 자신을 안전케 하기 위해, 불신앙과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그들의 사유를 말미암아 앗수르 사람들과 동맹하는 자들과는 연합하지 말라. 이러한 맹약에 들어가지 말라." 환난을 당하여도,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안전함을 위해 모든 우회적인 방법을 택하도록 만드는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도록 해야 한다.

② "그들이 스스로 무서워 놀라고, 또 서로를 놀라게 하는 그 맹약을 두려워 말라. 소요를 일으키는 모든 일에 모의가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불안해하지 말며, 어떤 조그만 일이 잘못되었을 때, 음모로다, 음모로다 하고 곧 외치지 말라.

아람이 에브라임과 연합한다고 하는 불길한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싸워야 하는가? 도마아야 하는가? 항복해야 하는가?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열방처럼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 말라(렘 10:2). 땅 위의 흉한 소식을 두려워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견고케 하라. 그들이 두려워하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그들의 현재의 상태를 두려워 말라. (본래의 단어가 의미하는 뜻 그대로)떨거나 흔들리게 될 정도로 놀라지 말라." 교회의 원수들이 사악한 모의에 착수하더라도, 교회의 친구들은 그 모의로 인해 잘못된 두려움을 가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2) 이사야는 그들에게 은혜로운 신앙적인 두려움을 지니라고 충고하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라" (13절).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인 두려움은 사람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것을 막는 특별한 예방제이다(벧전 3장 14, 15절을) 보면 이것이 인용되어 있고, 또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어 있다.

① 우리는 하나님을, 그 손에 모든 능력을 지니시고 모든 피조물들을 마음대로 다루시는 만군의 여호와로 여겨야 한다.

② 그분의 뜻에 따라서 우리는 그를 거룩하게 해야 한다.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드려야하며, 그가 거룩하신 하나님 되심을 믿는 자답게 그에게 행해야 한다.

③ 우리는 그를 우리의 두려움으로 곧 우리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그를 무서워해야 하며, 그의 섭리에 대해 경외감을 품어야 하며, 그의 주권을 경외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진노하심을 두려워하고, 그의 모든 뜻에 조용히 복종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영광을 올바로 사모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우리 원수들의 화려함이 어두워지고 무색하게 되는 것, 그리고 그들의 모든 능력이 저지당하고 방해당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느 4:14 참조). "사람이 분노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들을 지은자 여호와를 잊은" 것이다(51:12, 13; 눅 12:4, 5 과 비교하라).

(3) 이사야는 그렇게 하면 거룩한 안전과 마음의 평정을 얻으리라고 단언하고 있다(14절).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시라. 그를 두려워하라. 그러면 너희는 그가 너희 소망, 너희 도움, 너희 방패 그리고 너희 구원자이심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고 보존하실 것이다. 그가 성소를 위해서"

① "너희를 거룩하게 하실 것이다. 그가 너희를 성결케 하실 것이다" (혹자는 그것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찬미로써 하나님을 거룩하게 한다면, 하나님은 은혜로써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것이다.

② "너희를 편케 하실 것이다. 그가 너희의 성소가 되실 것이니, 너희는 안전을 위해 그리로 도망할 수 있을 것이며, 거기에서 너희는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특권을 얻을 것이다. 너희는 그가 침범할 수 없는 피난처요. 방어 수단임을 발견할 것이며, 너희 자신에게 위험이 닿지 못함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자는 어떤 재앙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Ⅲ.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에서 믿음이 없고 불경건한 자들의 멸망을 경고하고 있다. 그들은 앞에서 언급한 위로에 동참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성소(피난처)가 되시나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는" 자들(6절) 즉 피조물을 자기의 두려움과 소망으로 삼는 자들에게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다(14, 15절).

그 예언자는 이스라엘 집들의 귀족들이 "만군의 여호와를 거룩케" 하려하지 않으리라는 것과 또한 그들에게 하나님이 "함정과 올무" 가 되실 것을 예견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도움과 지주가 되심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익을 얻기는커녕, 그들은 그 말씀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는 그들을 그에게로 인도하기는커녕, 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향기였던 것이 그들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향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걸려 넘어질 것이다. 그들은 죄와 멸망으로 빠질 것이다. 그들은 칼에 의해 쓰러질 것이며 포로로 사로잡혀갈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것들이 우리에게 거치는 것들이 된다면, 그것들은 우리를 파멸시킬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믿지 않은 유대인들에게 적용시키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했고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부딪히는 돌이 되셨던 것이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않아 순종치 아니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성경을 적용시켜 인용하고 있다(벧전 2:8).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그들은 거기서 넘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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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중요성(사 8:16-22)

이 대목 속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또 성경이 위탁되어 있음으로써, 말할 수 없는 특권을 누린다.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 그를 그들의 두려움으로 삼고, 그가 성소염을 발견하기 위해 "증거의 말씀을 싸맨다" (16절).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거룩한 계시라는 더없이 값진 보배를 두셨다는 것은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을 나타내는 중대한 일례이다.

1. 그 계시는 "증거의 말씀이며 율법" 이다. 이 예언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그것은 고통과 환란이 닥쳐올 때,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안전하게 보존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입증하셨고 요구하셨다. 증거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명한다. 율법으로서의 그것은 우리의 실천을 명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진리에 동의하는 동시에 그 교훈에 복종해야 한다.

2. 이 증거의 말씀과 율법은 싸매어지고 봉인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에 무엇을 더하거나 제하여 버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보내신 편지로서 국새를 찍고서 싸매어지고 봉인되어졌다. 구약 성서를 싸매고 봉인한다는 것은, 많은 예언서들에 대한 상세한 해설은 신약 시대를 위해 보류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라(인치라)" (단 12:4). 그러나 그 때에 싸매어지고 봉인되어졌던 것이 이제는 펼쳐지고 공개되어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어" 졌다(마 11:25). 그러나 다른 세상에 대한, 그리고 미래의 상태에 대한 사실에 관해서는 여전히 그 증거의 말씀은 싸매어지고 봉인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분적으로밖에는 모르며 부분적으로밖에는 예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그 말씀은 "선지자들의 자손과 언약의 자손" 의 제자들의 손에 신성한 기탁물로서 위임되어 있다(행 3:25). 이것은 그들에게 맡겨진 훌륭한 것이며, 그것을 그들에게 보관할 책임이 있다(딤후 1:13, 14). 예언자들을 자기들의 보호자로 가지고 있던 자들은 계속 그 기록된 말씀을 잘 지켜야 한다.

Ⅱ. 우리는 이 특권을 잘 사용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의해서 그것을 배울 수 있다.

1. 그 예언자 자신이 행실과 결단에 의해서이다(17, 18절). 그는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받아들였고, 당한 여러 가지 낙심 가운데서도 그는 그것으로부터 위로를 얻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이 만족스럽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한 사역자들이라야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장 잘 추천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1) 그 예언자를 낙심시켰던 괴로운 일들이 있다. 그는 다음 두 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① 하나님의 불쾌한 표정이다. 그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그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불쾌한 표정을 하시는 것이 그를 낙심케 했다. 왜냐하면 그는 백성들의 권익에 마음을 크게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야곱의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고, 현재 그들을 무시하시는 듯 보이며 그들을 그의 진노의 표적 아래 두셨다" 고 했다. 그 예언자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알리는 일을 맡았지만, 그는 재앙의 날을 바라지 않은 자였으므로 이처럼 그것을 슬퍼했다. 야곱의 집이 야곱의 하나님을 버렸을 때, 그 하나님이 그들에게서 그의 낯(은총)을 가리우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② 사람들의 멸시와 비방이다. 그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들에게 퍼부어진 멸시와 비방이 그를 낙심케 했다. 율법과 증거의 말씀이 그들에게 일임되어 있었다.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징조와 예표가 되었다." 즉 "우리는 괴물들이나 기이한 사람들처럼 주시당하며 우리가 길을 갈 때 손가락질당한다고" 했다. 그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이 예언적인 이름은 아마도 그 마을의 불경스러운 조롱자들에 의해 조소당하고 희롱당했을 것이다. "나는 무리에게 이상함이 되었나이다" (시 71:7).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특이함으로 인해,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않기 때문에(벧전 4:4) 세상에 이상한 존재가 된다(슥 3:8).

여기에서의 이 예언자는 그리스도의 한 모형이었다. 왜냐하면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자녀임을 입증하기 위해 이것이 인용되어 있기 때문이다(히 2:13).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로다." 부로들은 그들의 자녀를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로 여겨야 한다. 야곱도 그렇게 여겼다(창 33:5). 사역자들은 그들에게로 개심한 자들을 자녀로 여기고, 따라서 그들에게 은유해야 하며(살전 2:7), 또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자녀라고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유익을 주는 도구의 역할을 하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 곧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을 자기의 자녀로 여기신다(요 17:6).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 믿는 자들은 비방을 받고(눅 2:34)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행 28:22) 징조와 예표가 되고 있다.

(2) 이러한 낙심에 처하여 이사야는 격려를 받았다.

① 그는 그를 낙심시키는 모든 것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손을 보았다. 그래서 거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야곱의 집에 어떤 환란이 있든, 그것은 하나님께서 낯을 가리우시기 때문이다. 아니 야곱의 집과 또 그 집의 친구들에게 어떤 멸시가 퍼부어지든,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가 시므이로 하여금 다윗을 저주하도록 명하셨다(욥 19:13; 30:11).

② 그는 하나님께서 시온산에 거하시는 것을, 그리고 그 자신을 그의 백성에게 나타내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들의 경의를 받으실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았다. 하나님이 잠시동안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실지라도, 그들은 어디에서 그를 발견하며 되찾을지를 알고 있다. 하나님은 시온산에 거하신다.

③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바라고 그를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그가 낯을 가리우실 때일지라도, 그의 동작을 따르며 겸손한 확신을 가지고, 그가 긍휼의 길로 돌아오실 것을 기대하기로 결심했다. 믿음과 기도로써 하나님을 바라는 자들은 그를 소망과 기쁨으로 기다려도 좋다. 우리가 어떤 구체적 위로를 얻지 못할 때라도 우리는 계속하여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고 그에게 복종하면서 잠시간 기다려야 한다.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게 되리라" (슥 14:7).

2. 이사야가 그의 제자들에게 준 충고와 조언에서 배울 수 있다. 그들 중에 율법과 증거의 말씀이 봉인되었고, 또 그들에게 그 생명력 있는 신탁이 맡겨졌던 것이다.

(1) 이사야는, 그들이 환란의 날에 마귀와 거래하는 신접한 자에게 의논하고, 신접한 자의 조언을 구하며, 장차의 일을 짐작하기 위해 신접한 자의 말을 듣고자 하는 유혹을 받으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사울은 자기가 곤경에 빠졌을 때, 엔돌의 신접한 여인에게 둘었고(삼상 28:7, 15), 아하시야는 에글론의 신에게 물었다(왕하 1:2). 이 마술사들은 이상하고 기이한 동작과 어조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지절거리며 속살거렸다" 고 했다. 그들은 머리를 싸매고 다녔으므로, 앞을 분명하게 볼 수 없었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똑똑히 볼 수 없었다. 단지 서로를 엿볼 수 있는 정도였다.

또는 본문에 사용된 이 두 단어("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다")는 그들의 음성과 말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들은 제비나 학이나 비둘기같이(38:14) 나지막하고 울림이 있고 파열적인 음성으로, 똑똑히 발음도 하지 않은 채, 때로는 슬픈 어조로써 말한다. 그들은 여호와의 예언자들과는 달리 담대하고 명료하게 말하지 못하고, 백성들을 교훈하기보다는 그들을 재미나게 해 주기를 원하는 자들과 같이 말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들을 찾아가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행하도록 권할 정도로, 비참하게 주책스러운 자들이 있었다. 심지어는 더 나은 것을 알고 있었던, 그 예언자의 제자들에게도 그런 자들과 "맹약한 자가 있다" 고 하는 말을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던 것이다.

이러한 악을 금지한 분명한 율법이 있었지만(레 19:31; 20:27), 아직도 그런 일이 이스라엘에서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민족에게서 지금도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신앙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것을 생각만 해도 놀라게 될 것이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마술과 주문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은밀한 기교로써 운수를 말해 주는 척하며, 병을 고쳐 주고 잃은 것을 찾아 주는 척하는 자들과 의논하는 것을 무서운 일로 알라. 왜냐하면 이것은 극악한 죄이며, 사실상 위에 계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이사야는 그들에게 이 유혹에 대한 대책을 주고 있다. 곧 그들의 입에 말을 넣어 주고 있다. "혹이 이처럼 너희를 꾀려하고든,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라. 사람들은 자기들의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① 즉 "사람이 자기들의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것이 신앙의 원리라고 그들에게 말하라. 그런데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게 구해야 하며, 그와 의논해야 하고, 신접한 자들과 의논해서는 안 된다.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으로 행하리로다(미 4:5). 일월성신으로 자기의 신을 삼은 자들은 그것들을 구했다(렘 8:2). 죄 아래 있고, 환란 가운데 있는 백성들이라면 자기들의 하나님께 용서와 평안을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의심 가운데 있고 궁핍과 위험 가운데 있는 백성이라면, 자기 하나님께 지시와 도움과 보호를 구하지 않겠는가?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의 백성이므로, 우리가 그에게 구하는 것이 분명 우리 의무이다" 라는 것이다.

② 또한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우상에게 구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말하라" 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신상에게 생명과 또 생명력 있는 위로를 구한다는 것, 그리고 죽은 친구들 - 그들을 신격화하고 그들에게 기도를 드리면서 - 에게 우리를 위해 그런 일을 해달라고 하는 것은 더 할 나위없이 어리석은 일이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다(전 9:5, 10). 그러므로 산 자가 그들에게서 위로 받기를 기대하여 그들에게 아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무당들은 엔돌의 신접한 여인처럼 죽은 자에게 물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우둔함을 공개하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산자 곁에서 살아야 하며, 죽은 자 곁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 빛과 생명이 없는 자들에게서 어떻게 빛과 생명을 구할 수 있겠는가?

(3)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의논할 것을 명하고 있다. 그들 중에 있는 예언자들이 그들에게 매사에 대한 것을 직접 말해 주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기록된 말씀이 있었고, 그들은 거기에 의뢰해야 했다. 성경책을 선용하는 방법을 아는 자들은 결코 마술사에게 의논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구하는 방법과 그의 마음의 지식에 이르는 방법을 알고자 하는가?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으라." 거기에서 선한 것을, 그리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례를 우리의 상담자로 삼으라. 그러면 우리는 올바른 상담을 얻을 것이다.

① 우리는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보자. 우리는 "이 말씀에 맞게 말해야" 한다. 즉,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기준으로 삼고, 그것에 순응하며, 그것으로부터 충고를 받고, 거기에 호소해야 한다. 그리고 매사에 그것에 의해 지배되고 결정하며, 올바로 고치는 말씀에 착념하고(딤전 6:3),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들을 말해야 한다. 그 율법과 증언에 거스르는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치 않고, 그것에 맞게 말해야 한다.

② 왜 우리는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이렇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보자.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가장 큰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에게는 정녕히 빛" 곧 "아침빛이 없다" 는 것을 입증한다. 그들은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선과 악, 참과 거짓의 구별도 못한다. 하나님의 계시를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인간적 총명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들은 이성(理性)의 말을 옳게 인정하지 못한다.

혹자는("빛이 없다") 그 말을 하나의 경고로 해석하고 있다. 즉 "만일 그들이 이 말씀에 맞지 않게 말하면, 그들에게는 빛 곧 축복이나 위로나 위안이 없을 것이다. 오직 그들은 암흑과 절망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 라는 뜻이다. 그것은 그 다음 구절과 상통한다(21, 22절). 사울은 그가 신접한 여인에게 의논했을 때 무슨 빛을 얻었는가?(삼상 28:18, 20) 또는, 빛들의 아버지에게서 떠난 자들이 무슨 빛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4) 그는 신접한 자들에게 찾아가고, 하나님의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파멸을 읽고 있다. 그들에게는 빛 곧 위로나 형통함이 없을 것이며, 온갖 공포와 비참함을 예상해야 한다(21, 22절).

① 그들이 두려워한 환란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 그들은 "이 땅을 헤매" 정착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침입해온 대적의 사나운 힘에 의해 이곳 저곳으로 쫓겨다닐 것이다. 그들은, 그 나라가 매우 황폐하여 얻을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되고, 그들 자신과 그들의 친구마저도 매우 가난하게 되어, 그들이 가질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생활 필수품을 얻기 위해 어디로 갈지 몰라 "곤고할" 것이다. 그러므로 배불리 먹던 자들이 굶주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는 모든 복이 떠난다는 것을 기억하자.

② 그들은 이러한 고통을 불만스럽게 여기고 참지 못함으로써 매우 불안정하게 될 것이다. 선한 사람은 궁핍할지라도 자기를 진정시키며 마음 편히 지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 백성들은 "주릴 때에 안달하며," 그들의 분을 채울 만한 것이 없을 때, 그 자신들의 마음을 괴롭힐 것이다.

③ 그들은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아니, 그들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매우 성가시게 할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모든 방법이 끊어지고 그들의 지혜가 다한 것을 발견할 때, 그들은 의무와 품위에 대한 모든 규율을 잊게 될 것이며, 패역하게 "자기의 왕을 저주할" 것이며, "자기의 하나님" 을 모독적으로 저주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심중에 그리고 침방에서" 저주하는 것 그 이상이 될 것이다(전 10:20). 가장 선하고 가장 지혜로운 왕들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을 그런 때에, 그들은 그들의 왕이 공무를 더 잘 처리하지 못한다고 해서, 마치 그것이 그의 과오인 것처럼 여겨 그를 저주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충성의 멍에를 끊어버렸을 때 그들의 신앙의 멍에도 곧 매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그 다음에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한다. 또 그를 저주하고 죽는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그들을 해한 것처럼, 그의 섭리와 다루며 그것을 비방한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그 다음에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한다" (잠 19:3). "우리의 마음이 속에서 뜨거울 때에" "우리의 일에 재갈을 먹이는" 비결을 배우라. 왜냐하면 대개 성급하여 하는 말은 지극히 죄악적인 말이 되기 때문이다.

④ 그들은 그들 자신을 절망 속에 내던질 것이며, 어느 길을 보든지 위로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위를 바라 볼 것이나, 하늘이 그들에게 낯을 찌푸리고 침울한 표정을 할 것이다. 그들이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때는 그렇게 될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들은 땅을 굽어 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싸우고 있는 자들에게 무슨 위로가 주어질 수 있겠는가? 거기에는 환란과 흑암, 그리고 고통뿐이다. 모든 것들이 위협적이다. 한 줄기의 유쾌한 빛이나 소망스러운 전망도 없다. 그들은 그들의 격렬한 두려움에 의해 흑암 중으로 쫓겨들어갈 것이다. 이것은 그들 주위의 매사가 암담하고 두렵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빛을 보지 못하리라는 이사야의 말을(20절) 설명해 준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대해 눈을 감는 자들은 당연히 흑암 속에 버려질 것이며 끝없이 방황할 것이다. 또 자기들이 붙인 불은 아무런 도움이 못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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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 본장은 7장과 동일한 역사적 맥락 위에 놓인다. 앞서 선지자는 임마누엘이라 하는 아이가 성장하기 전에 먼저 수리아와 에브라임이 몰락하고 그 다음에 유다가 황폐해질 것을 예언한 바 있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경과했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1년은 넘지 않았을 것이다(Kissane).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 새로 주어질 이 징조는 멀리 있는 모든 사람들도 뚜렷이 볼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큰 서판을 취하도록 명령되었다. '서판'(* , 길라욘)은 금속으로 만든 판을 가리킨다(30:8).

그 위에 통용 문자로 - '통용 문자로'(* , 베헤레트 에노쉬)라는 말은 직역하면, '(한)사람의 필체(writing style)로'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문자로 기록하라는 것이다.

마헬살랄하스바스 - 본래의 음대로 읽으면 '마헤르-솰랄-하쉬-바즈'이다. 그 뜻은 '신속하게-약탈물을-급속히-노획물을', 즉 '약탈과 노획이 급속히 이르름'이다. 이는 수리아와 에브라임이 앗수르에 의해 머지 않은 장래에 노략당할 것을 나타낸다(4절).

=====8:2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 -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왕에게 빌붙어 후에 예루살렘 성전 경내에 앗수르 제단을 건립하는 데 협력한 자이며(왕하 16:10-16), 스가랴는 아마도 아하스 왕의 장인을 가리킬 것이다(왕하 18:1,2;대하 29:1). 이들이 진실한 증인이라 불리는 것은 그 지명도와 영향력이 커서 백성들에게 사실을 왜곡됨 없이 말해주리라고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8:3

내가 내 아내와 동침하매 - 직역하면 '내가 여선지자를 가까이하매'이다. '여선지자'(* , 하느비아)는 그의 아내를 말한다. 고대 근동에서는 대개 그 남편이나 부친의 품위를 따라 여자에게도 그와 비슷한 칭호가 부여되었기 때문에(출 15:20) 그녀가 반드시 어떤 예언자적 기능을 수행했으리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8:4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 '아빠'(* , 아비)와 '엄마'(* , 임미)는 갓난 아이가 최초로 발음하는 소리이다. 이제 예언 성취의 시간은 임마누엘의 때보다 더 앞당겨졌다. 왜냐하면 아이의 성장에 있어서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줄 아는것'(7:15,16)보다 '아빠-엄마'라고 웅얼거리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앗수르에 의한 수리아와 사마리아의 몰락은 훨씬 더 급박한 사실로 눈앞에 놓이게 된다.

=====8:5

여호와께서 다시...일러 가라사대 - 수리아와 사마리아의 약탈만으로 모든 일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유다가 앗수르에게 도움을 구한 일로 인하여 장차 벌어질 사태를 백성들 또한 목도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본절은 7:10에서 처럼, 짧은 시간의 경과를 전제할 수도 있다(Alexander).

=====8:6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 실로아 물은 기혼 샘물에서 발원하여 예루살렘 도성의 동편을 끼고 흐르는 작고 가느다란 시냇물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에 대조적인 의미로 쓰였다. 이는 곧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은근하고도 비밀한 보호를 뜻한다. 그러나 백성들의 마음은 불신앙으로 인해서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짓눌려 있어서 천천히 흐르는 이 실로아 물이야말로 참된 구원이 됨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 유다 백성들이 르신과 베가의 연합군의 파멸을 보고 자만하여 기뻐한다는 뜻이다(rejoice...,KJV, NIV). 참조로, 기뻐하다'는 뜻의 '마소스'(* )대신에 '두려워하다', '녹다'는 뜻의 '마사스'(* )를 대치시켜 해석하기도 한다(RSV, Hitzig).

=====8:7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 눈에 보이는것만으로 위로를 삼는 백성들에게 앗수르 군대의 힘과 위용이야말로 거세게 넘실대는 유브라데 강물처럼 마음 든든한 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범람하는 그 강물이 마침내 수리아와 사마리아를 넘어 유다에까지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을 의지하는 이는 다 이와 같을 것이다.

=====8: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목에까지 미치리라 - 앗수르에 의한 유다의 약탈은 목에까지 물이 차는 정도의 극심한 홍수 상태로 비유되었다. 선지자의 예언처럼, 디글랏 빌레셀의 대군은 몇 년 안 되어 유다의 넓은 지역을 파괴하고 예물뿐 아니라 공물까지 바칠 것을 요구하였다(대하 28:20,21). 그러나 더 큰 피해는 그 후대의 왕, 특히 산헤립(B.C. 705-681) 때에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이여 -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말이 문장 맨 뒤에 놓여 있다. 선지자의 눈은 다시 임마누엘이라 불리는 한 아이에게 향한다. 이는 범람하는 물결이 거의 목에 차고 새의 편 날개가 온 땅을 덮는 것처럼, 유다 전역이 물에 잠긴 듯한 위급한 상황 속에서 유일한 구원의 희망이란 오직 그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이 소망스러운 이름을 기점으로 하여 선지자의 어조와 전망은 일변한다. 비록 가까운 장래에 적들로부터 주어질 재난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승리와 구원은 이 땅 위에 임할 것이다.

=====8:9,10

명령법과 반복법으로 이루어진 본문은 임마누엘이 주는 위로와 보호를 말하고 있다. 그 요지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백성들을 세상의 나라들이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너희 민족들아 훤화하라 - '민족들'(* , 아밈)은 앗수르인들을 위시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적대하는 모든 민족들을 가리킨다. '훤화하다'(* , 로우)는 '격노하다', '시끄럽게 날뛰다'(Henderson), '제멋대로 날뛰다'(Alexander)는 뜻으로 전쟁의 함성을 말한다.

필경 패망하리라 - 격동하고 허리를 동이며 모략을 짜내는 등 저들이 온갖 수고와 준비를 아끼지 않을지라도 그 승부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뭇 세력들에게 주어질 궁극적인 운명은 패망뿐이다.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말이 9절에서만 3번, 10절에서는 동일한 뜻을 가진 단어로 2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니라 - 저들이 필경, 궁극적으로 패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이 놀라운'임마누엘'(* )의 선언 때문이다. 여기서 임마누엘은 칭호로 쓰이지 않고 선언적인 진술로 사용되었다.

=====8:11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게 하시며 - 임마누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반응은 실망스러운 것이었으므로 선지자의 마음은 자연 위축되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처음부터 예측된 것이었다(6:9,10). 따라서 하나님은 연약해진 그를 강하게 만드실 필요가 있었다. '손'(* , 하야드)은 전능자 여호와의 손을 가리키며, 그 손이 선지자에게 얹혀질 때 특별한 영감과 능력을 덧입을 수 있었다(겔 1:3).

=====8:12

이 백성의 맹약(盟約)한 자가 있다 말하여도 - '맹약'이라 번역된 '케쉐르'(* )는 '공모하다', '협력하다'는 뜻의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그 현대적 의미는 '반역', '배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말은 신하가 군주를 거역하고 모반을 일으키는 경우에 주로 사용되었다(왕하 11:14;14:19;15:30).

당시 르신-베가 동맹군에 맞서 친앗수르 정책을 추진하고 있던 정치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노선을 추종치 않고 반대하는 자들은 - 이사야 선지자가 대표적이다 -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반역자들로 간주되었다. 본문에서 선지자에 대한 동(同)시대인들의 시각을 확연하게 엿볼 수 있다. 아모스와 예레미야에게도 이와 동일한 비난이 가해졌다(렘 20:1,2;26:8-11;암 7:11-13).

=====8: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하고 -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은 그의 거룩하심에 대한 참된 인식에서만 주어진다. 그의 거룩하심을 인식한다 함은 그가 만군의 여호와, 곧 피조세계와 구별되어 홀로 높이 계시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알아뵙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황의 변화에 따라 안절부절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8:14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 '거룩한 피할 곳'으로 번역된 '미크다쉬'(* )는 '거룩한 것'(a holy thing)이란 뜻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피난처, 은둔처로 간주되어온 거룩한 장소 곧 성전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왕상 2:28, Gesenius, Rosenmuller, Ewald). 여호와는 그를 믿고 그에게 도피하는 이들에게 피난처요 산성이 되어 주실 것이다(시 18:2).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올무가 되시리니 - '이스라엘의 두 집'은 에브라임과 유다를 가리킨다.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오직 인간의 생각만을 의지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는 자신들의 길을 가로막는 거북한 장애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진리가 신약 성경에서 보다 명백하게 표현되었으니, '거룩한 자'(* , 토 하기온, 눅 1:35)-'미크다쉬'에 상응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에게는 그가 보배가 될 것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될 것이다(롬 9:33;벧전 2:7,8). '예루살렘'은 강조적인 의미로 첨가된 것이다.

=====8:15

거칠 것이며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걸릴 것이며 잡힐 것이니라 - 본문은 여호와가 그를 믿지 아니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거치는 돌'이 될 것이라는 앞절의 위협의 연속이다. 그것은 5개의 동사로 구성되는데 앞의 세 동사들은 '돌과 바위'에 관계되며 뒤의 두 동사들은 '함정과 올무'에 관계된다.

=====8:16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 이 명령은 여호와로부터 선지자에게 주어진 것이다. '싸매며'로 번역된 '초르'(* )는 '기입하다', '새기다'는 뜻의 '추르'(* )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Vitringa), '묶다'는 뜻의 '차라르'(* )에서 파생된 말이다(Alexander). 선지자는 증거의 말씀을 적은 두루마리를 묶어 봉함하도록 명령받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백성들에게 여호와로부터 주어진 계시가 무시되고 거절되었기 때문이다.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 - 이제 그 말씀은 소수의 사람들, 즉 그 마음속에 선지자의 예언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한정되어질 것이다. 선지자의 활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작은 집단에 제한될 것이며 전체로서 그 나라는 부정적인 태도 때문에 주의 계시를 들을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할 것이다(Leupold).

=====8:17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 그의 공적 사역이 위축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로부터 얼굴을 돌리시는 이 암담한 때에 선지자가 취할 태도는 '기다림' 외에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 기다림은 '기대함'이다. 기대함은 소망으로 앞을 내다봄이다. 이러한 믿음의 자세가 '기다리며'(* , 하카), '바라본다'(* , 카와)는 두 동사에서 잘 나타난다. '카와'는 '기대한다'는 뜻이다.

=====8:18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 주의 말씀이 거부되고 그의 활동이 제약되는 상황에서도 선지자의 마음은 조금도 위축되지 아니하였다. 이는 아마도 11절의 결과 때문일 것이다. 본문의 해석은 크게 둘로 나뉜다. 먼저, 몇몇 옛주석가들은 히브리서 기자가 본문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용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히 2:13) 여기서 말씀하시는 이는 메시야 자신이며, '자녀들'은 그의 영적인 자녀들이라고 주장한다(Henderson). 그러나 많은 현대 학자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화자(話者)이며, '자녀들'은 그의 두 아들 즉 스알야숩과 마헬살랄하스바스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Gesenius, Ewald, Delitzsch, Rosenmuller). 이 해석이 타당하니 첫째, 선지자를 비롯하여 그의 두 아들이 모두 그 이름을 통한 징조와 예표로서 백성들에게 보내어졌다는 것과, 둘째, 히브리서의 인용과 관련하여, 국가적 위기의 순간에 선지자와 그 아들들의 이름이 갖는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는 구속의 모형과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Delitzsch).

징조와 예표 - 이 두 용어는 '미래 사건의 표징, 암시'(* , 튀포스)를 뜻하는 같은 의미의 낱말들로서 자주 결합되어 쓰인다(신4:34;6:22;7:19;26:8;28:46; 29:2; 4:11;시 135:9 등).

=====8:19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 불신자들이 유혹하는 소리이다. '신접한 자'로 번역된 '오보트'(* )는 원래 '부풀게 하는 가죽'(욥 32:19)이란 뜻의 '오브'(* )의 복수형인데, 여기서는 '미래를 예언하기 위해 지하로부터 영을 부르는 사람, 즉 마술사'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신 18:11;삼상 28:8;대상 10:13). '마술사'로 번역된 '야데오님'(* )은 '알다'는 뜻의 '야다'(* )에서 파생된 말로, '아는 자', '지혜로운 자', '점쟁이'를 의미한다(레 19:31;신 18:11).

=====8: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 불신자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한 후에 신자의 마땅히 행할 바를 명시한다.

본문은 전쟁시에 사용되는 슬로건(표어)의 형태로 되어 있다(삿 7:18 참조):'율법과 증거(의 말씀)에게로!'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 '율법과 증거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규정하는 최고의 권위이자 규범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태도 여하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좌우된다. 앞서 말한 표어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그에 합당한 불행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8:21,22

아침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겪게 될 비참한 상태가 두 절에 걸쳐 묘사된다.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 - 우선, 그들의 처지는 사막의 불볕 아래 음식도, 물도 없이 허덕이는 비참한 모습과도 같다. 선지자는 아마도 앗수르의 압제 아래 백성들이 당하게 될 곤경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번조(煩燥)하여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 그들의 고통이 너무도 격심하기 때문에 그들은 분노하며 자기의 왕과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저주하게 될 것이다. '번조하여'(* , 히트카차프)는 '분노하다', '격노하다'는 뜻이다. 스스로 자초한 불행에 대하여 그 모든 원인을 그들의 지도자에게, 더 나아가서는 그들의 하나님에게 돌려 저주하는 행위는 가장 비열한 짓으로 여겨졌다(출 22:28;왕상 21:10).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 - 문자적으로는 '어두움 속으로 내쫓기리라'이다. '아펠라'(* )는 짙은 어두움에 사용된다(출 10:22). '쫓겨 들어간다'로 번역된 '메누다'(* )는 '내몰다', '추방하다'는 뜻을 가진 '나다'(* )동사의 수동 분사형이다. 선지자의 묘사는 비유로 가득하다. 본장의 마지막 절에서 지배적인 색조는 흑암이며, 주된 정조는 절망이다. 이 모든 것이 아침을 빼앗긴 자, 곧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이들에게 예정된 운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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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7-12장은 '임마누엘서'(the Immanule book)로 불리워진다. 이 부분은 주로 앗수르의 압제 중에 나타나는 구원의 표징으로서의 임만누엘 예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본장은 내용적으로 전장(7장)과 밀착되어 있는데, 이미 예언된 아람 왕 르신과 에브라임 왕 베가의 멸망(7:7-9)에 대한 다른 형태의 예표라고 볼 수 있다. 

이 예언은 앞으로 '한 아기를 통한 구원'(9장), '이색의 한 싹을 통한 구원'(11장)등으로 진전되면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보다 명확히 계시하게 된다.

이와같이 임마누엘의 예언을 계속해서 선포하고 있는 본장은 (1)마헬살랄하스바스의 징조를 선포하는 전반부(1-4절), (2)임마누엘의 위로를 전달하는 중반부(5-10절), (3)구별된 자들을 향한 위로와 경고를 전달하는 후반부(11-22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이사야는 '스알야숩'(7:3), '임마누엘'(7:14)의 징조를 거부한 아하스에게 더욱 확실하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하고 있다.

한편, 본장의 역사적 배경은 전장과 동일하다. 현재 유다는 앗수르의 압제 아래 약탈을 당하는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시리아(아람)와 에브라임 동맹군의 침입을 받은 유다 왕 아하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군사적 도움을 청하여 난국을 극복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하스의 요청으로 아람과 다메섹을 정복한 앗수르는 그 여세를 몰아 유다까지도 정복하려고 시도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여 선지자 이사야는 계속해서 '임마느엘의 예언'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본장은 7장의 예언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발전을 제시한다. 

7장에서는 임마누엘 예언이 아람과 에브라임 두 왕의 멸망과 관계하여 하나님의 주신 하나의 징표로서 드러나고 있지만, 본장에서는 좀더 진전하여 앗수르의 압제 중에 나타나는 '임마누엘의 위로와 승리'로 나타난다. 즉, 임마누엘은 심판 중 받게 되는 위로로서 이스라엘 땅의 주인이요,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요, 환난 중에 그 백성이 도움을 호소하며 의지할 자라는 것이다(8-10절). 

이러한 사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 유다의 구원은 오직 임마누엘에 의해서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임마누엘이 항상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이 열방 중에서 부별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며, 이스라엘을 해하려는 모든 세상 세력이 그 앞에서 패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답변이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장은 유다의 위기적 국면에 대해 임마누엘의 위로를 전달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내용을 몇 단락으로 세분하여 좀더 자세히 고찰하여 보기로 한다.

1. 마헬살랄하스바스의 징조(8:1-4)

아람과 북왕국의 침약으로 두려움에 가득 찬 아하스는 스알야숩(7:3), 임마누엘(7:14)의 징조를 보여 주면서 승리를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 

그래서 본 단락을 통해 마지막으로 마헬살랄하스바스의 징조가 주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로 하여금 큰 서판에 당시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통용 문자로 '노략이 신속하고 약탈이 급속하다'라는 뜻의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쓰게 하시며, 또한 아들의 이름을 서판에 쓴 그대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짓게 하셨다. 

이러한 징표를 통하여 선지자는 짧은 기간 내에 다메섹과 사마리아가 멸망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이제 본 징조를 통해 알 수 있는 영적 교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하나님은 인간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전달하신다 : 이사야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큰 서판을 준비하여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글자를 썼고, 또한 아들의 이름도 동일하게 지었다. 하나님은 임박한 진노를 갈렬하게 포현하기 위하여 인간 자체를 증표로 삼으신다. 

(2)하나님은 연약한 인간을 통하여 당신의 예언을 확증하신다(2절) : 이사야를 통해 주어진 말씀의 증인으로 채택된 사람은 앗수르의 제단을 본 따 성전의 제단을 건축함으로써 의심을 제거하시는 자상한 분이시다. (3)하나님의 예언은 분명히 성취된다(4절)

: 아기가 엄마, 아빠를 부르기 전에 두 나라가 멸망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메섹이 B.C 732년, 사마리아가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됨으로써 완전히 성취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신실하게 수행하시는 전능자이시다.

2. 임마누엘의 위로(8:5-10)

다윗의 집을 해하려던 두 왕의 심판에 대한 징표와 예언이 끝나자,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그들이 심판받게 된 이유를 말씀하신다.

 다메섹과 사마리아는 세상적 유익을 위하여 유다를 쳐서 곤하게 하고, 파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아하스를 폐위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삼아 다윗의 집의 계보를 끊고자 하였다(7:5,6). 

그런데 그들의 이러한 의도는 다윗 왕조를 영원히 멸망시키려는 음모로서 영적으로 볼 때 다윗의 후손을 통해 구속 역사를 성취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정면 도전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다윗의 계보를 통해 메시야를 보내시고(11:1,10) 하나님 나라를 굳게 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9:7). 그러므로 다윗의 집에 도전한 아람과 에브라임은 앗스르에 의하여 파멸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앗수르의 침략은 아람과 에브라임에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유다까지도 위급한 입장에 처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사야는 이미 계시된 '임마누엘에 의 한 구원'(7:14)을 생각한다. 

특히 여기서는 7장의 내용에다가 임마누엘이 온 이스라엘 땅의 주인(왕,통치자)이라는 사실이 첨가되어 나타나고 있다. 

더 나아가 선지자는 임마누엘이 주실 구원과 승리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열국의 패망을 강하게 선포한다(9,10).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은 하나님의 백성을 방해할 수 있는 세상 세력이 존재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적들이 전쟁의 함성을 높이고, 허리를 동여 전쟁 준비를 하며, 함께 전략을 짜고 계획한다 해도 필경은 패망할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통하여 선지자는 낫수르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치고 승리의 서망을 담대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3. 구별된 자들을 향한 위로와 경고(8:11-22)

앞에서 다세멕과 사마리아의 패망을 알려주시고(1-4절)유다의 안전(5-10절)을 확인해준 하나님께서는 이제 관심을 이사야와 그의 제자들, 더 폭넓게는 구별된 자들에게 돌려, 위로와 경고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이스라엘은 결코 세상적인 가치나 주술적인 우상에 빠지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인내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1)하나님에 대한 겨외심(11-15절), (2)인내하는 신앙(16-18절), (3)말씀에 대한 추구(19-22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 본 단락의 주도적인 사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언약 백성에 대한 경고(11-13절) : 하나님은 이사야와 그의 제자들에게 유다의 불신을 책망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도록 촉구하면서 설령 "반역자'라는 잘못된 판단을 받을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순종한 이스라엘은 함정과 올무에 걸리게 되어 비참한 결과를 당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언약 백성이라도 범죄하면 은혜의 수여가 철회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발하고 있다. 

둘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청종 요구(20절) : 이사야는 구별된 자들에게 당시의 패역한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 게 묻지말고(신 18:9-14 ; 왕하 17:17 ; 21:6) 오직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으라고 당부한다. 그럴 때 모근 국가적 재난에서 벗어나 진정한 은혜와 평화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본장을 통해, 거룩한 경외심(holy reverence)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11-15절). 

하나님을 신뢰하는 백성들은 어떤 세상의 세력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임마누엘되신 하나님은 어렵고 힘든 위기 상황을 당할 때마다 참된 위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요 6:44 ; 10:28 ; 17:6,12 ; 행 13:48 ; 롬 8:30) 담대하게 순례의 행진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함께하신 임마누엘이 오늘날 교회와 함께하시기에 어떤 세상 세력도 참된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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