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2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사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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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6장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심판하시다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4.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5.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아 그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르시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6.  떠드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들려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7.  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8.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아이를 갖도록 하였은즉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해산하게 하는 이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11.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13.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14.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15.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시리니 그의 수레들은 회오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여움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책망하실 것이라

16.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당할 자가 많으리니

17.  스스로 거룩하게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에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8.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19.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2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 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 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21.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3.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24.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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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66:10-14----

[사66:10-14..*10.예루살렘(그리스도의 신부, 어린양의 아내)을 사랑하는(샤마흐...기뻐하다+즐거워하다)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길...기뻐하다>즐거워하다)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아헤브..사랑하다-좋아하다-<참된 의미에서>집착하다-서로 결합한 하나로서 거하다)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마소스...주체 못할 극도의 넘치는 기쁨의 찬송과 외침으로 주께 영광 돌림)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수스)  *11.너희가 (젖이 풍성한 유방을 가진 하나님 여호와, 엘샤다이의 품에 안겨)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카보드..풍부-다량-부-영예-영광 나타내심)의 풍성함(지즈...생동하는 생명의 풍성-부요-충만)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아나그..부드럽고/유순하고-고상하며-곱고/우아하며 아름답고-절대적으로 기뻐하다)  *12.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샬롬)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샤아..귀엽게 보시며 누리시는 주로 인해 염려 사라지고 만족하며 기쁘고 즐거워 주님 무릎에서 장난치며 주님 누리고 서로 받아줌) 것이라  *13.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나함...후회하며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14.너희가 이를 보고(라아...비라보고 조사하여 보아 확실히 알다) 마음이 기뻐서(수스) 너희 뼈가 연한 풀(새로 돋은, 생명 충일한, 어리고 연한 풀)의 무성함(파라흐...싹터 봉오리를 맺음)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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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기쁨을 얻으려고 온 힘을 다하나 세상의 기쁨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완전한 기쁨이고 영원한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누릴 기쁨과 위로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늘의 기쁨을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기쁨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쁨의 성읍 예루살렘에 대해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예루살렘의 기쁨입니다 예루살렘은 아이를 해산한 어머니 같습니다. 어머니는 "넉넉한 젖 위로의 품 아이가 노는 무릎"이 있습니다 고라자손은 "예루살렘으로" 위로를 얻었습니다(시84:13) 바울은 사라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갈4:26)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가 기쁨에 참여하게 합니다(10).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평강과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줍니다(12) 

기쁨을 7가지 단어로 표현합니다 사랑하는(사마흐 = 기쁨과 즐거움으로 삼는), 기뻐하라(길) 즐거워하라(아헤브....) 주체못할 주 여호와 하나님의 넘치는 기쁨(마소스)으로 기뻐하라(수스) 즐거워하리라(아나그 = 위로받다) 놀디(=샤아...참생명<신성과 참 인성의 CJ 안에서> 자유로이 하나님을 향유하다) 이 단어들은 완전한 기쁨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온전한 위로가 있는 기쁨입니다(13) 여기서 자식(케이쉬)은 남자 어른을 말합니다(창22:3) 위로받는 자가 성숙한 상태에서 위로하는 자를 깊이 이해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또 위로라는 단어는 후회의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사용되고 있습니다(욜2:13) 하나님의 후회로 재난과 심판이 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누릴 진정한 기쁨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기쁨을 누릴 처소 새 예루살렘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시는 예수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합니다(계21:2) 새 예루살렘은 열두 문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안에는 건물 성전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이 직접 성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계21:22)

예수는 자신의 기쁨을 나눠주십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 기뻐하며 기쁨을 독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가진 기쁨을 제자들도 가지게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요17:13)

예수의 기쁨은 세상이 준다고 하는 기쁨이 아닙니다(요14:27)

예수께서 이루신 기쁨은 완전하고 영원한 기쁨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완전한 위로를 얻게 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귐에서 진정한 위로를 얻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이 사귐을 위하여 우리의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요일1:6-7) 그리고 예수는 우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여 우리의 눈물을 씻어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하십니다(계7:17)

3.우리는 약속된 기쁨과 위로를 믿음과 소망으로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며 다가올 기쁨을 준비해야 합니다.

"사랑하라"(10)는 말 "샤마흐"은 "기뻐하고<=주님 마음 참되게 깨닫고 바로 그분 마음으로 하나됨으로써 맞아들여 환영하며> 즐거워하라<마치 주님과 결혼한 주님의 짝된 지체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그렇게 좋아하며 집착하는, 결합한 하나가 되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세상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시62:10)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합니다(시33:1)우리는 하늘의 새 예루살렘을 사랑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합니다(계18:20).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의 기쁨, 하늘 기쁨인 바] 그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세상 기쁨은 일시적 표면적 기쁨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말씀으로 박해받을 때 오히려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마5:11-12) 

바울은 고난이 있는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에 기뻐하라고 했으며(빌2: 17-18) 고난과 핍박이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했습니다.(살전5:16)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위하여 성숙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 교제의 시작은 주를 영접하며 시작됩니다.(계3:20) 

성장과 성숙은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붙어있듯이 주님과 함께하며 말씀을 품고 살 때 이루어집니다 이럴 때 주님과 더 온전하고 깊은 교제가 됩니다.(벧후3:18) 

성숙한 자가 되어 온전한 위로를 누려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의 영원한 기쁨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미래의 꿈과 비전에 대한 분명한 확신으로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기쁨]과 [즐거움]-----

@@기뻐하다, 즐거워하다...jm'v;(8055, 사마흐) 

사마흐(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rejoice, glad'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50회 이상 나오며, 칼, 피엘, 히필형으로 사용되었다.

사마흐는 마음(참조: 출 4:14, 시 19:8, 시 104:15, 시 105:3), 영혼(시 86:4)과의 관련성이 지적해 주듯 성질 전체로 기뻐하거나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눈의 밝은 것(잠 15:30)이 마음을 기쁘게 하기도 한다.

사마흐는 여러 이유와 대상들이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을 묘사한다. 

포도주(시 104:15, 삿 9:13, 전 10:19), 기름과 향(잠 27:9), 지혜로운 아들(잠 15:20, 잠 10:1, 잠 27:11), 친절한 말(잠 12:25), 사랑하는 자를 만남(출 4:14), 하나님의 율법(출 19:8), 의인의 증가(잠 29:2), 하나님의 절기(느 12:43).  

그러나 기쁨의 이유로서 가장 빈도높게 열거되는 것은 여호와와 그의 구원이다(대하 20:27, 시 5:11, 시 9:2, 시 16:9, 시 32:11, 시 40:16, 시 63:11, 시 64:10, 시 86:4, 시 90:15, 시 92:4). 참으로 여호와께 대한 기쁨은 인간의 힘이다(느 8:10). 

나아가서 이러한 구절들의 다수가 이 기쁨에 동참하도록 인간을 부르고 있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절기 때에 그리고 중앙의 성소에서 기뻐하라는 부탁을 받는다(신 12:7, 신 14:26, 신 16:11, 신 26:11, 신 27:7). 이스라엘의 기쁨은 그들의 회복과 함께 완성될 것이다(시 14:7, 시 126:2, 사 9:2, 사 25:9, 사 35:10, 사 51:3, 사 51:11, 사 65:14-19, 슥 2:10).

((기쁨, 즐거움, 유쾌함....hj;m]ci(8057, 쉬므하) 

쉬므하(명여)는 사마흐(jm'v; , 8055)에서 유래했으며, '기쁨, 즐거움, 유쾌함'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94회 나온다(창 31:27, 민 10:10, 삿 16:23, 삼상 18:6, 대하 20:27, 욥 20:5, 시 4:8, 시 100:2, 잠 10:28, 아 3:11, 사 9:2, 렘 15:16, 겔 35:15, 욜 1:16, 욘 4:6, 습 3:17, 슥 8:19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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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다, 즐거워 하다...lyGi(1523, 길) 

길(동사)은 기본어근이며, '기뻐하다, 즐거워 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4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길은 '기뻐하다, 즐거워 하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종교의식상의 축제적인(cultic festive) 기쁨을 가리킨다. 이 기쁨은 과거와 현재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구원행위로 인한 공적 표현이다(예: 시 32:11).

이 단어는 공적 예배의 범주를 넘어서,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며 기뻐하는 공동적, 개인적 태도 양자를 다 의미하게 되었다(참조: 시 9:14, 시 16:9, 시 21:1, 시 31:7, 시 35:27). 이 기쁨은 과거의 하나님의 구원 체험에 대한 표현이며 나아가서는 미래에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대해 주실 것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것이다(합 3:18). 신자는 이를 여호와께서 이미 보증하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전능한 행위에 대한 말없는 증거들, 즉 하늘과 땅과 산 및 섬 등과 같은 피조 세계까지도 기뻐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것들도 모두 기쁨에 동참하거나 또는 기뻐하라는 부름을 받고 있는데(시 96:11, 시 97편 등등), 여기에도 역시 공적 예배의 강조점이 담겨 있다. 하나님 자신도 기뻐하신다(사 65:18 이하). 바벨론 포로 기간과 그 후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비참한 상황에서 조차도 일어나게 되는 자기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기쁨은, 궁극적 구원에 대한 예견적 감사와 메시야에 대한 기쁨을 포함하는 데까지 확대되었다(사 61장). 히브리인들의 감사와 찬양의 태도가 가장 심원한 표현에까지 도달한 것은, 바로 이러한 종말론적 영향에서였다(참조: 시 96:11 이하, 시 97:8, 사 25:9)(E. Beyreuther).

하나님의 역사와 성품에 대해 기뻐하는 전형적인 실례로는 일반적인 하나님의 역사(시 118:24), 백성들을 회복시키심(사 49:13), 적으로부터의 구출(시 9:14) 그리고 적으로부터의 보호(시 31:7-8), 하나님의 영광과 심판(시 97:8),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대상 16:31)에 대해 기뻐하는 것이다. 이런 기쁨의 다른 원인들로는 현명한 아들(잠 23:25), 아름다운 신부(아 1:4), 탈취물을 나누는 것(사 9:3), 그리고 원수의 불행(시 13:4)에 대한 것이 있다. 악한 자는 행악을 기뻐한다(잠 2:14)(J. P. Lewiss).

과거와 현재와 종말론적 미래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지극히 큰 기쁨은 그 후에도 계속 이어져 내려와 랍비 신학(Rab, theology)과 랍비들의 유대주의 신앙의 특색을 이루게 되었다(SB Ⅳ 2, 851이하). 유대인의 전(全) 삶의 목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하늘의 어떤 합창단의 선율과도 같은 유대 백성의 극적인 역사'에는 기쁨이 수반되었으며, 이 기쁨은 예배의 측면에서 그들의 종교 생활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E. Stauf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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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다 love, 좋아하다 like, 사랑스러운 lovely...bhea;(157, 아헤브) 

동사 아헤브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를 의미하며, 그 의미의 강도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부터 게으른 대식가의 육체적인 식욕에까지 이른다. 이 동사는 칼 어간의 모든 법(mood)과 니팔 분사형, 그리고 피엘 분사형으로 나온다. 16회의 피엘형은 강의적인 것이 아니라 대개 부정한 '연인' lover을 가리킨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00회 이상 나온다.

구약성경에서 사랑은 그 사람을 강요하여 그가 좋게, 또는 올바르게 평가하거나 인정하는 사물이나 사람에게로 이끌어 가는 자발적인 힘이다. 

사람은 이 사랑의 힘에 제어를 받아 자기 자신을 주거나 혹은 사랑의 원인이 되는 대상을 확고히 붙잡거나 혹은 즐거움을 주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사랑은 내적 인격에 심은 영혼의 불가해한 힘이다. 

사람이 사랑의 대상을 올바로 인정하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한다(신 6:5). 

사랑과 미움은 생의 양극이다(전 3:8, 전 9:6). 

사랑은 인간 상호간의 사랑, 하나님의 인간과의 사랑, 사물에 대한 사랑 등을 나타낸다.

(a)  이 단어는 남녀의 사랑에 대해 사용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하나님과 관계, 그리고 남녀의 성적 관계를 시사해 준다. 이 남녀의 사랑은 이성(sexes) 상호간의 생명력 넘치는 충동을 의미한다. 선지자 예레미야(렘 2:25)나 호세아(호 3:1, 호 4:18), 그리고 에스겔(겔 16:37)은 사랑의 성적(sexual) 측면을 매우 진하게 묘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단어는 남녀의 연애나 열애(창 29:18이하, 창 34:3, 삿 16:4), 합법적인 부부의 행복한 사랑(창 24:67, 삼상 1:5)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창조의 기사는 성의 구별과 부부간의 사랑이 생을 풍요하게 하는 은사임을 설득력 있게 이해시켜 준다(창 2:18이하).

「그러나 이 사랑은 성적 사랑의 범위를 포함하지만 그것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헌신적 사랑과 생활의 충실함이 합쳐져 있다. 

구약의 초기 기록에 의하면 이러한 사랑은 일부다처나 일처다부 사상과 부합하지 않는다. 구약성경은 충실(참조: 창 20:13, 삿 14:16, 삿 16:4-5, 겔 16:8, 겔 23:17, 호 3:1), 상호의존(참조: 창 24:67), 책임(참조: 삼하 13:1, 삼하 13:4, 삼하 13:15)과 같은 인간 사랑의 다른 측면을 제외하고 성적인 것에 집중하는 위험을 이해시켜 준다(The interpertreter's D.B).」

더 나아가서 아가서는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라고 열정적인 사랑의 강력한 힘을 찬양까지 한다. 이 노래는 성적(남녀) 사랑의 기이함과 적극적인 힘을 찬양하지만 그 찬양에는 그 사랑이 근거를 두고 있는 상호의존과 신앙심(헌신)을 강조하고 있다(참조: 아 2:16, 아 3:1-8, 아 7:10, 아 8:6-7). 

아가서에서 사랑을 묘사할 때 거의 대부분 아헵(아가파오)과 아하바(아가페)를 사용했다. 그러나 여자가 남자를 부른 칭호는 도드(d/D , 1730, 사랑하는 자)를 사용했다.

이러한 사랑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암논과 다말의 이야기는 성충동의 야수성, 즉 대상자와 성적 관계를 가지려는 무절제한 요구를 보여준다(삼하 13:1-22). 사랑은 성애 또는 성욕적인 영역에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근원, 곧 마귀로부터 기인한 원시적 힘인 미움을 부인함으로 맞서는 적극적인 능력이다. 이 이야기는 이 두 가지 충동의 야수성도 투명하게 보여준다(삼하 13:1-22). 

결혼이나 부부 생활은 상대에 대한 사랑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 삼손의 신부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치 아니하는도다"라는 히스테릭한 말에서(삿 14:16, 참조: 삿 16:15, 창 29:31, 창 29:33) 동일한 요소가 표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법까지도 사랑과 미움의 성욕적 증상에 관여하고 있다(신 21:15이하, 신 22:31이하, 신 24:1이하).

아헤브가 '사랑의 행위를 하다'(일반적으로 이것은 야다<알다>나 샤카브<~와 함께 눕다>로 표현된다)라는 뜻을 가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러나 왕상 11:1에서 이 단어는 이러한 부가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참조, 렘 2:25).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바를 기록할 때, 이러한 의미를 사용하였다: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호 3:1). 이 단어의 이런 의미는, 이 동사가 사역동사의 어간(분사로서)으로 나올 때 현저하게 나타난다.

(b)  이 단어는 부모와 자식, 가족간의 사랑에 대해 사용되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사랑했으며(창 22:2), 리브가는 아들 야곱을 사랑했다(창 25:28). 야곱은 요셉과 베냐민을 사랑했다(창 37:3, 창 44:20). 잠언은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경계하느니라"고 했다(잠 13:24).

또한 이 단어는 며느리의 시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같은 가족간의 사랑을 표현한다(룻 4:15).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은 어느 곳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부모를 존중하고 존경하며 또 부모에게 복종해야 한다.

「참고 - 창 47:29에 보면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인애(헤세드: 친절, 자비)란 단어를 사용하여 자기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기를 요청했다. 이것이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족속이나 가족의 유대는 이스라엘에서 매우 강하였다. 그러므로 '근친' 관계의 중요한 요소인 사랑에 대하여 놀랄 일이 아니다. 그것은 룻 3:10에서 이성 곧 남녀 사랑과 관련되어 있다. 그곳에서 인애(헤세드: 친절, 자비)는 남녀 사랑의 개시와 가까운 친족에 대한 충실, 이 둘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가족적 사랑이 너무 선택적일 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창 25:28). 그 결과로 야곱과 에서가 서로 반목하고 미워하게 되었다. 요셉에 대한 야곱의 편애로 인하여 다른 아들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시기하게 되었다(창 37:4). 배타적인 사랑은 증오가 들어올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있다. 이는 사랑이 헌신적일 뿐만 아니라 책임을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c)  아헤브은 때때로 종이 그 주인의 지배하에 남아 있기를 원하는 주인에 대한 특별하고도 강한 애착심을 나타낸다. 

출 21:5에 보면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라고 한다. 아마 여기에는 가족애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들이 그의 아버지를 사랑하듯이 종이 그의 주인을 사랑한다(신 15:16). 이러한 의미가 강조되는 구절로는 삼상 16:21이 있는데 여기에는 사울이 다윗을 크게 사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을 사랑하고(삼상 18:16) 심히 존경하게 되어 그의 모든 행동들을 경탄으로 바라보았다.

(d)  이 단어는 친구의 특별한 애착을 나타낸다. 

다윗과 요나단 사이의 사랑은(삼상 18:1, 삼상 18:3, 삼상 20:17) 여인의 사랑보다 더 깊은 우정의 차원이었다 -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삼하 1:26).

(e)  아헵은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 부친을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 신복을 솔로몬에게 보내었으니 이는 히람이 평일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왕상 5:1). 

다윗에 대한 히람의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국제적인 우호 관계나 화해 정책을 예증하는 것이다. 후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그것이 그가 지극히 충성스러웠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f)  더 나아가 이 사랑은 사회적 공동 생활의 근본과 규범으로 나타난다 -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 19:18). 이러한 면에서 사랑은 이웃을 위한, 그리고 이웃을 향한 헌신이며, 이웃을 형제로서 받아들이는 것이고 이웃이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특히 외국인(레 19:34)과 가난한 자(레 25:35)와 고아의 권리와 관련된 사회적 법률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이웃 사랑은 단순한 친절이나 호의로 해석할 수 없다. 이것은 편협한 배타주의를 배제한다. - 바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웃이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적(enemy)으로 생각되는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도 의미한다.

그 이유로 신 22:1-4이 동포를 도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인 반면, 출 23:4-5은 특별히 이 의무를 적대적인 사람에게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은 동료일 수도 있고 적일 수도 있으므로, 그는 사랑의 대상이지 법적 제한의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개인은 법적 개인보다 우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형태에서 출 23:4이하의 요구와 아마도 한층 더 높은 수준인 잠 25:21에 있는 기본적 진술("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은 원수를 향한 성향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으나 한 특별한 방식의 행위의 의무를 지우는 것으로서, 원수에 대한 사랑을 실천적으로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요셉은 그의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선으로 악을 갚는 그런 실례를 보여준다(창 50:19).

물론 구약성경에는 이러한 원수를 사랑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시 109편과 잠 14:20 및 적대 국가들에게 향한 일반적인 태도는 이에 대한 예증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의해 부과된 윤리적인 요구의 고결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g)  이 단어는 구체적인 것이나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기름(잠 21:17), 은과 풍부(전 5:10), 뇌물(사 1:23)을 사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악(시 52:3-5), 사망(잠 8:3), 허사(시 4:2-3), 거짓 맹세(슥 8:17)를 사랑했다. 

또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시 119:47), 율법(시 119:97), 증거(시 119:119), 법(119:159), 그리고 그들은 선(암 5:15), 진실과 화평(슥 8:19), 구원(시 40:16-17)을 사랑했다.

(h)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기를 "사랑하라"고 명하셨다(신 6:5). 

그리고 시편에는 이 계명에 대한 순종의 증거들이 포함되어 있다(시 116:1, 시 145:20). 반대로 하나님은 사람들, 특히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신 4:37, 사 43:4, 말 1:2). 주님은 또한 시온의 문들(시 87:2), 정의와 공의(시 33:5), 성전(말 2:11)과 같은 것들을 "사랑하신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한다(수 22:5). 예레미야는 이 백성이 방황하기를 좋아한다고 질책하였다(렘 14:10).

(i)  이 분사형들은 종종 '친구' friend로 변역되곤 한다. 

대하 20:7에 보면, 아브라함은 주의 "벗"이라고 한다.

(j)  위에서 지적하였듯이 피엘형 분사를 번역한 영어 단어 "lover" (연인)는 종종 매춘을 암시하는 경멸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다. 

선지자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등은 이스라엘의 부정한 관계를 언급하기 위해서 이 단어를 사용한다. 호 2:7, 호 9:12, 겔 16:33, 겔 16:36-37, 렘 22:20, 렘 22:22, 렘 30:14, 애 1:19, 슥 13:6 등). (참조: R. L. Alden; Nelson's ED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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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기뻐함, 즐거워 함...c/cm;(4885, 마소스) 

마소스(명남)는 수스(cWc , 7797)에서 유래했으며, '몹시 기뻐함, 즐거움'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7회 나오며, 신랑의 '즐거움'(사 62:5), 예루살렘에 대한 '기쁨'(사 60:15, 시 48:2, 애 2:15), 불경건한 자의 '즐거움'(욥 8:19)등에 대해 사용되었다. (참조: BDB). 

((크게 기뻐하다, 기뻐하다...cWc(7797, 수스) 

수스(동사)는 기본어근이며, '크게 기뻐하다, 기뻐 날뛰다 exult, 기뻐하다 rejoice'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7회 나온다.

(a)  이 단어는 신명기에서 복과 저주에 대한 모세의 경고에 사용되었다(신 28:63과 신 30:9에 각각 2회, 모두 4회). 3회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율법에 순종할 때 그들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었으며, 1회는 불순종할 때 그들을 멸망시키기를 기뻐하신다고 경고한다.

신 28:63에서 "기왕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을 행하시고 너희로 번성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던 것같이 이제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망하게 하시며 멸하시기를 기뻐하시리니". 여기에서 수스는 의인들에게 복을 내리고 악인들을 형벌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히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신 30:9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이스라엘이 그에게 다시 돌아올 때 "여호와께서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한다.

(b)  이 단어는 선지서들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기뻐하시고(사 62:5, 사 65:19, 습 3:17) 그들에게 기쁨으로 복 주신다(렘 32:41).

(c)  이 단어는 시편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것을 묘사한다. 시 70:4에서 "주를 찾는 모든 자로...기뻐하고 즐거워 하게 하시며"라고 표현한다. 시 119편에서 기자는 큰 기쁨 중에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대한 즐거움을 표현한다: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 하나이다"(시 119:162).

 

마찬가지로 선지서에서도 백성들이 여호와의 구원에 대해 즐거워한다고 표현하였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사 65:19, 사 66:14). (참조: BDB; TWO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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