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장
1.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4.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5.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6.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그들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할 나라들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7.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8. 보라 내가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마주보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9.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10.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11.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12.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리시는데 내가 내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찬송할지어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처소로부터 나오는도다 하니
13. 이는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생물 곁의 바퀴 소리라 크게 울리는 소리더라
14.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가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시키시더라
15.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 가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 중에서 두려워 떨며 칠 일을 지내니라
===파수꾼 에스겔
16. ○칠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20.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21.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에스겔이 말 못하는 자가 되다
22.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 하시기로
23. 내가 일어나 들로 나아가니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에 머물렀는데 내가 전에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영광과 같은지라 내가 곧 엎드리니
24. 주의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25. 너 인자야 보라 무리가 네 위에 줄을 놓아 너를 동여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26. 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27.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
------------
Ezekiel’s Commission.3.
1 He said to me, “Son of man, eat what you find [in this book]; eat this scroll, then go, speak to the house of Israel.”
2 So I opened my mouth, and He fed me the scroll.
3 He said to me, “Son of man, eat this scroll that I am giving you and fill your stomach with it.” So I ate it, and it was as sweet as honey in my mouth.
4 Then He said to me, “Son of man, go to the house of Israel and speak My words to them.
5 For you are not being sent to a people of unintelligible speech or difficult language, but to the house of Israel,
6 not to many peoples of unintelligible speech or difficult language, whose words you cannot understand. But I have sent you to them who should listen to you and pay attention to My message;
7 yet the house of Israel will not be willing to listen to you and obey you, since they are not willing to listen to Me and obey Me, for the entire house of Israel is stubborn and obstinate.
8 Behold, I have made your face as hard as their faces and your forehead as hard as their foreheads.
9 I have made your forehead like emery (diamond), harder than flint. Do not be afraid of them or be dismayed before them, though they are a rebellious house.”
10 Moreover, He said to me, “Son of man, receive into your heart all My words which I will speak to you and hear with your ears (listen closely).
11 Go to the [Jewish] exiles [in Babylon], to the children of your people, and speak to them, whether they listen or not, and tell them, ‘Thus says the Lord God.’”
12 Then the Spirit lifted me up, and I heard a great rushing sound behind me, “Blessed be the glory of the Lord in His place [above the expanse].”
13 And then I heard the sound of the wings of the living beings as they touched one another and [I heard] the sound of the wheels beside them, a great rushing sound.
14 So the Spirit lifted me up and took me away, and I went embittered [by the sins of Israel] in the rage of my spirit; and the hand of the Lord was strong on me.
15 Then I came to the exiles who lived beside the River Chebar at Tel Abib. I sat there for seven days [in the place] where they were living, overwhelmed with astonishment [by my vision and the work before me].
16 At the end of seven days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me, saying,
17 “Son of man, I have appointed you as a watchman to the house of Israel; whenever you hear a word from My mouth, warn them from Me.
18 When I say to the wicked, ‘You will certainly die,’ and you do not warn him or speak out to tell him to turn from his wicked way to save his life, that same evil man will die in his sin, but you will be responsible for his blood.
19 However, if you have warned the wicked and he does not turn from his wickedness or from his wicked way, he will die in his sin; but you have [a]freed yourself [from responsibility].
20 Again, when a righteous man turns from his righteousness (right standing with God) and sins, and I place an obstacle before him, he will die; since you have not warned him, he will die in his sin, and the righteous deeds which he has done will not be remembered; but you will be responsible for his blood.
21 However, if you have warned the righteous man not to sin and he does not sin, he will surely live because he took warning; also you have [b]freed yourself [from responsibility].”
22 The hand of the Lord was on me there, and He said to me, “Arise, go out to the plain, and I will speak to you.”
23 So I got up and went out to the plain; and behold, the glory and brilliance of the Lord was standing there, like the glory I had seen by the River Chebar, and I fell face downward.
24 Then the Spirit entered me and made me stand on my feet; He spoke and said to me, “Go, shut yourself up in your house.
25 As for you, son of man, they will put ropes on you and bind you with them so that you cannot go out among them.
26 And I will make your tongue stick to the roof of your mouth so that you cannot talk and you cannot be a man who rebukes the people, for they are a rebellious house.
27 But when I speak with you, I will open your mouth and you will say to them, ‘Thus says the Lord God.’ He who hears, let him hear; and he who refuses [to hear], let him refuse; for they are a rebellious house.
===Footnotes
Ezekiel 3:19 Lit delivered.
Ezekiel 3:21 Lit delivered.
=========
에스겔 3장 (개요)
본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맡기신 일을 실행하기 위해서 그 예언자를 더욱 더 준비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1. 앞 장에 접속하여 에스겔은 그 앞에 펼쳐진 두루마리 책을 먹는다(1-3).
2. 앞 장에 나오는 것과 같은 취지의 지시와 격려가 에스겔에게 주어진다(4-11).
3. 에스겔은 강력한 충동 아래 있었고 그 충동이 그를 사로잡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아가게 했다(12-15).
4. 선지자로서의 직책과 임무에 대한 설명이 파수꾼의 비유로 나온다(16-21)
5. 예언자의 말하는 자유의 억제와 회복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데에 기인된다(22-27).
---------
두루마리를 먹는 선지자(겔 3:1-15)
이 대목은 앞 장과 같은 내용으로서 그리고 같은 환상의 계속으로서, 어떤 번역자(translators)에 의해서 앞 장과 적절히 결합되어 있다.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해야만 했던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며,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대해 알려 준 지식은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은 것이었다. 지금 여기에서 선지자에게 가르쳐지는 것은 다음과 같다.
Ⅰ. 에스겔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방법(1절). "인자야 이 두루마리를 먹으라" 고 그리스도(에스겔이 보았던 "보좌위에 앉으신 이" 1:26)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말의 의미는, 이성(이해)안에 이 계시를 수용하며, 이 계시의 의미를 이해하며, 이 계시를 올바르게 파악하며, 마음에 이것을 간직하며, 이 계시를 적용하며, 이 계시에 감동되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리스도는 말씀하시기를 "너의 마음속에 이 계시를 새기며, 이 계시를 새김질하라" 고 하신다. "너는 이 계시가 온전한 것같이 완전히 이 계시를 취하며, 이 계시와 다른 것을 만들지 말라. 아니, 네가 음식을 먹는 것처럼 그렇게 이 계시 안에 있는 즐거움을 맛보라. 그리고 너의 영혼이 이 계시에 의하여 힘과 영양분을 얻게 하고, 네가 음식을 필요로 하는 것같이 이 계시를 먹고 마시게 하라. 또한 네가 음식물로써 너를 채우듯이 이 계시가 너의 영혼에 풍성하게 하라" 고 그리스도는 에스겔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자들은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명상해야 한다. "내가 주의 말씀을 얻었기에 그것을 먹었나이다" (렘 15:16).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것을 잘 알아야 하며, 그것에 감동되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의 풍성하신 빛과 열로써 사람들에게 명확하고 열렬하게 말해야 한다.
1. 이 명령이 가르쳐진 방법. 앞 장에서는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고 되어 있으나, 여기에서는 "네가 받은 것을 먹으라" (1절)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손에 의해서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져온 것이며, 우리는 그 말씀을 아무런 이의없이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성서 안에 있는 것이 우리 앞에 놓여져서 우리가 그것을 받을 때, 우리는 그것을 먹어야만 한다. 그리고 다시 3절에서도,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고 한다. "너는 그것을 지겨운 것으로 생각해서 먹지 않고 다시 토해서는 안 되며, 감사하는 마음과 영양이 된다는 생각으로 그것을 먹고. 배 속에 그것을 보유해야 한다. 너는 엘리후처럼 말이 가득하게 될 때까지 이 환상을 즐리라(욥 32:18). "말씀이 네 안에 거하게 하며, 너의 가장 깊은 곳을 차지하게 하라."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당연히 받게 하고 그 말씀을 즐기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 마음과 더불어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우리 마음의 모든 기능이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히 소화시키기 위하여 제 구실을 다하게 되며 그 말씀은 in succumet sanguinem - 즉 우리 피와 정신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세상적인 것들을 비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창자에 이 두루마리를 채울 수 있다."
2. 이 명령은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가?(10절) "내가 네게 일러 사람들에게 들려 줄 모든 말을 너는 귀로 듣는 것같이 너의 마음으로 받으며, 그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으라. 이 말을 너의 귀에 담아 두라" (눅 9:44). 그리스도는 이제 자기가 말씀하시는 것 뿐만 아니라, 장차 어느 때든 자기가 하실 말씀에도 선지자의 주의를 요구하신다. "너의 온 마음으로 이 말씀을 받으며, 이 말씀을 명상하고 너의 자신을 전적으로 이 말씀에 의탁하라" (딤전 4:15).
3. 환상 속에서 이 명령이 준수된 방법. 그리스도는 "에스겔의 입을 여시고 그 두루마리를 먹이셨다" (2절). 만약에 우리가 진정으로 그 말씀을 우리 마음 가운데에 받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는 성령에 의해서 그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가져오며 그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거하도록" 하실 것이다. 만약에 "두루마리" 를 펴신 그리스도께서 계시의 영된 자기 영으로서 그 말씀(두루마리)를 우리 앞에 펼쳐 놓기만 하고, "지혜의 영" 된 그의 영으로서, "우리의 총명을 열지" 않으며, 우리에게 그 말씀의 지식을 주지 않고 우리에게 그 말씀을 먹지 못하게 하신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 말씀에 낯선 자가 될 것이다. 선지자는 그 두루마리가 먹기에 매우 불쾌하고 초라한 음식물이라는 생각에서 그것을 꺼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두루마리는 그의 "입에서 달콤한 꿀맛" 같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만약 우리가 극히 어려운 명령일지라도 기꺼이 복종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 가운데서 위안을 얻을 것이며, 그것은 우리가 의무를 행하느라 겪는 모든 어려움에 대해 풍성한 보상을 해 줄 것이다. "그 두루마리가 비록 애가와 애곡과 재앙으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선지자에게는 "달기가 꿀" 같았다. 은혜로운 영혼들은 큰 기쁨으로 이런 하나님의 진리를 받을 수 있지만, 이런 하나님의 진리는 동시에 사악한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말씀이 된다. 성 요한이 이 같은 징조(sign)에 의해 계시의 일부분에 참여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계 10:9, 10). 요한은 "천사들의 손에서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그의 입에서는 꿀같이 다나 배에서는 쓰게 되었다." 우리는 에스겔이 먹었던 그 두루마리도 역시 이와 같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14절에서 선지자(에스겔)는 "근심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Ⅱ. 에스겔은 그가 받은 하나님의 계시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1절) "이 두루마리를 먹고," 그리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에스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때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해서는 안 되었다. 사명을 띠지 않고는 가게 하지 말며, 또 그 사명을 절반만 이행하는 일도 없도록 하자. 그러나 에스겔 자신이 그 말씀을 완전히 이해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의 선을 위해서 부지런히 또, 열심히 그것을 전해야만 했다. "거룩한 자의 말씀을 감추어서는" 안 된다(욥 6:10). 왜냐하면 그것은 장사하라고 준 달란트를 땅에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스겔은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해야" 만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알리는 것이 예언자들의 대권이기 때문이다. "율법(살아있는 신탁)의 주심" 이 그러하듯, 예언도 "그들에게 속해 있다." 에스겔은 갈대아 사람들의 죄를 꾸짖기 위해서 파송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인들의 죄를 책망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족속에게" 파송되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들은 잘못이 있다면 남의 자식이 아니라 자기 자식을 견책하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대해 에스겔에게 내린 지시는 앞 장의 내용과 매우 흡사하다.
(1) 에스겔은 하나님이 그에게 말했던 것만을 그리고 그것 모두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앞에서도(2:7) 말했다. 즉 "너는 내 말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지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하나님은 말하기를(4절), "너는 내 말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고 하신다. 에스겔은 내용 면에 있어서는 물론이요,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법에 있어서도 가급적이면 그가 직접들은 것과 같게 말해야 했다. 축복받은 바울은 매우 훌륭한 창조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성령이 가르쳐 주는 말씀으로" 이야기했다(고전 2:13). 성서의 진리들은 성서의 언어로 나타났을 때, 즉 그들의 본래의 옷을 입었을 때 제일 아름답게 보인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잘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2)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자기가 가는 곳이 "이스라엘 족속" 이요, 하나님의 족속이요, 또한 자기 자신의 족속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했으며, 그들을 충실하고 온화하게 다루어야 했다. 이스라엘인들은, 에스겔 자신이 친밀감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며, 같은 나라 사람이고, 시련 가운데 함께 있는 동료였다. 그들과 에스겔은 함께 고난받는 동료이었으며, 후에는 유다에서 바벨론에 이르는, 매우 슬픈 환경 가운데서 함께 길을 간 동료 여행자들이 되었고, 때때로 그들과 함께 울어 주었으며, 서로가 사로를 아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동정하는 방법을 체험을 통해서 알고 있으며, 자신들의 결점에 같이 아파할 수밖에 없는 그런 예언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에스겔에게는 자기 동족의 일에 관여하게 되었다는 것이 다행한 일이었다. 그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에게 파송된 것이 아니라, 에스겔 자신의 민족의 사람들에게 보내진 것이었다. 통하지 않는 언어는 길고 무겁게 보인다. "너는, 네가 그들에게 말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며, 이해할 수도 없고, 네 자신의 뜻을 그들에게 이해시킬 수도 없는 그런 열국으로 보내진 것이 아니니라."
사도들은 실제로 "방언(언어)이 다른 열국으로" 보내졌다. 만약에 사도들이 "방언의 은사를" 갖지 않았더라면 열국 백성들에게 아무런 선도 행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겔은, 그가 잘 알고 있으며, 그들로부터 인정받기를 희망했던 소수의 사람들이며 같은 민족인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만 보내졌다.
(3) 에스겔은 하나님이 이미 말해 준 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한 성격을 기억하고 있어야 했으며, 만약에 에스겔이 그들 안에 있는 절망을 보더라도, 마음이 변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기에" (7절), 어떤 죄책도 그들을 부끄럽게 하지 못하며, 어떤 진노한 경고도 그들을 떨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것은 그들의 완악함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1]만약 예언자가 열방에게 갔더라면, 그들이 이스라엘만큼 완악하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를 다른 민족에게 보냈다면, 비록 "언어가 다르지만, 그들은 예언자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열방들은 적어도 예언자의 말을 참을성있게 들으려 했으며, 동족에게서 얻을 수 없었던 존경심을 예언자에게 보여 주려 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예언자있었던 이스라엘 족속은 불순하고 변화되지 않았던 때에도,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설교에 움직였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은혜의 방편들이 그것을 통해서 자신들을 개선시켰을 사람들에게는 보류되고 자신들을 개선시키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사실 말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설명해야 하며, "여호와여, 당신의 판단은 크고도 깊나이다" 라고 말해야 한다.
[2]이스라엘 족속은 하나님 자신께 대해서 완고했다. "이스라엘 족속이 네 말을 듣지 아니하리니, 이상히 여기지 말라. 그것은 그들이 나의 말을 듣지 아니하려는 때문이니라." 그들은 예언자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막대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막대기를 통해서 "여호와의 목소리가 성읍에 울려퍼진다." 만약에 그들이 예언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직접 "하늘의 소리" 로써 그들에게 말했다 할지라도 믿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언자의 말을 거부한다. 즉 그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그들의 "육적인 마음에 원수가" 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족속은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 나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실행하는 직무를 맡고 있는 예언자들에게 귀를 막아버린다.
(4) 에스겔은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를 강철같이 강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8, 9절). 에스겔은 어느 것으로도 감동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사자를 모욕하고, 그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일로 자부심을 갖는, 그런 "패역하고 마음이 강퍅한 사람" 들 에게도 보내졌다. 이렇게 강퍅한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을 아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1]하나님은 이런 일을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 에스겔의 얼굴을 강하게 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다." 너에게 이런 경우에 요청되는 굳건함과 담대함을 부여했다."
아마 에스겔은 천성적으로 수줍어하고 겁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가 그 일을 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하나님이 은혜로써 그를 적절하게 만들어서 난관을 이기게 하셨을 것이다. 사악한 자들이 종교를 반대하는 일에 강퍅하면 할수록, 종교를 변호하고 보호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더욱 더 단호하고 공개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무죄한 자들로 사곡한 자들을 대항해서 분을 내게 하라" (욥 17:8). 악한 자가 대담해질 때는 덕있는 자가 비겁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 해야 할 일이 생길 때는, 그 일을 위하여 사람들을 부르시어, 그들에게 때에 맞는 힘을 주실 것이다. 또 필요한 경우라면,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사 충실한 사역자들의 "이마" 를 "금강석" 같이 단단하게 하실 수 있으며, 또 하실 것이다. 어떤 위협적인 힘도 그들의 안색을 바꾸어 놓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도다" (사 50:7).
[2]따라서 에스겔은 그의 사명을 완수할 용기를 가져야 하며, 거룩한 안심을 지니고 일을 진행하며, 그의 적들의 어떤 비난이나 위협도 대수롭지 않게 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그들의 얼굴을 두려워 말며, 무서워 말라. 그들의 무력한 적의의 위협이 너의 의기를 저하시키지 못하게 하며, 너의 앞길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 담대한 죄인들에게는 용감한 책망자가 있어야 된다. "악한 짐승들은" 엄하게 "꾸짖어야" 하며(딛 1:12, 13), "두려움으로써 구원받아야" 한다(유 23). 하나님을 친밀하게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될 것이며, 사악한 자들의 교만한 모습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험담하는 혀를 몰아내는 화난 얼굴로 하여금 책망하는 혀를 제지하지 못하게 하자.
(5) 성공의 여부는 어떻든 간에, 에스겔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도를 계속해야 했다(11절). 에스겔은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가야" 했다. 그들은 환난 가운데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들이리라고 희망했던 것이다. 에스겔은 그가 친밀한 연분을 맺고 있는 이스라엘 족속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자녀들로" 여겨야 했으며, 바울이 그의 동족을 위해서 했던 것같이, 에스겔도 그들을 위해서 깊은 사랑을 가져야 했다(롬 9:3).
에스겔은 여호와가 그에게 말했던 것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해야" 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말해야 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해야 했다. 에스겔이 말한 것은 하나님의 권위가 후원해 주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하다 하라."
우리의 사역의 성패가 우리에게 무관심할 수는 없겠지만, 어떻든 우리는 우리의 일을 계속해야 하며, 하나님에게 그 결과를 위임해야 한다. "여기에는 아주 선한 사람들만 있기 때문에 말할 필요가 없다" 거나, 혹은 "여기에는 매우 악한 사람들만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해야 아무 소용도 없다" 고 말해서는 안 된다.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하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전하라." 그들이 그 말씀을 거부할 때는 그들에게 위험이 초래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라.
2. 이와 같이 예언자에게 주어진 임무에 따라서 세밀한 지시가내림을 본다. 여기서는 다음 사실들을 알게 된다.
(1) 에스겔의 이런 선교는 거룩한 천사들도 크게 기뻐하였다. 천사들은 본성으로는 자기들만 못한 자이지만 그가 그렇게 명예스런 임무에 종사하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한다.
에스겔은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12절). 그것은 마치 천사들의 무리들이 예언자의 취임식을 보기 위하여 모여들 때 나는 그런 소리와도 같았다. 왜냐하면 천사들에게는 "하나님의 각종 지혜가 교회로 말미암아 알려졌기(즉, 교회로부터 반영되어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엡 3:10). 천사들은 이런 위대한 광경에 가능한 한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는 듯이 보였다.
에스겔은 "그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문자대로는 "서로 입 맞추는" 소리를 들은 것인데, 이것은 천사들의 상호간의 애정과 협력을 의미한다. 그는 또한 천사들과 어울려 천사들 "바로 맞은 편" 으로 나아가고 있는 섭리자의 "바퀴들의 소리" 를 들었다. 이런 모든 것은 에스겔의 주의를 끌기 위한 것이었으며, 시중을 드는 영광스런 수행원들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 그에게 충분한 조력을 해 줄 것임을 에스겔에게 확신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소리는 찬송으로 끝난다. 에스겔은, 천사들이 "여호와의 처소에서 나는 영광을 찬송할지어다" 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1]위에 있는 하나님의 처소인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 환상 중에 하강했다. 아니면 그곳으로 다시 되돌아 가고 있었다. 모든 천사들이여, 이 환상을 보고 "여호와의 영광을 찬양하고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 148:1, 2)고 말하는 동료 천사들과 함께 찬양을 드려라. "찬양하라. 그의 모든 천사들이여."
[2]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 떠나고 있다. 천사들은 영광의 떠남을 슬퍼하지만, 그일로 인한 하나님의 공의는 찬양한다. 어쨌든 하나님은 항상 찬송을 받고 영광을 받으며, 앞으로도 세세토록 그러할 것이다.
예언자 이사야가 사명을 받을 때도, 하나님이 이와 같은 찬송을 받으시는 것을 그가 들었다(사 6:3).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는 많은 수치를 당하는 때에도, 저 세상에서는 하나님이 많은 존경을 받고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는 일은 하나님께 신실한 모든 자들에게 위로가 된다. "여호와의 영광" 이 우리가 사는 지상에서는 많은 멸시를 당하지만, "하나님이 계시는 천상에서는" 많은 "찬송을 받으신다."
(2) 이 예언자 자신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있는 무장으로 그의 직책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주어진 은혜는 헛되지 아니했다." 왜냐하면
[1]하나님의 영이 강한 손으로 에스겔을 인도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갈 것을 명령했지만, "하나님의 영이 그를 들어 올릴 때" 까지는 그가 움직이지 않았다. "바퀴 가운데" 있던 "생물들의 영" 이 이제 이 예언자에게도 임하여, "그를 들어 올리었으니," 처음에는 천사들의 환호성을 아주 분명하게 듣게 하기 위해서였으나(12절), 여기서는 (14절) "에스겔을 들어올려," 그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데리고 갔다." 재난을 자기 백성에게 가져가고 또 그것을 예고하는 것은 그 자신이 매우 꺼려했기 때문이다. 에스겔은 기꺼이 변명을 하려 했지만, 예레미야가 당했던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렘 20:7). "주는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읍니다." 에스겔은 그가 보고 들었든 모든 것을 자기만이 알고 있으려 했지만, "그러나 여호와의 손이 그를 강권하여" 압도해 버렸다. 예언자적 충동이 에스겔 자신의 성향을 극복했다. 그래서 사도들같이 "그가 보고 들었던 것을" 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행 4:20). 하나님이 사역자로 부르신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 직무를 행할 머리와 마음을 주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에스겔은 슬픈 마음으로 따라갔다. "주의 신이 나를 데리고 가사,"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했다" 고 했다. 에스겔은,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예언자로 활동할 때 겪었던 어려움과 고통과 방해와 학대를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예레미야와 같은 흔적을 가져야만 할까?" 라고 에스겔은 생각했다. 포로 생활은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 포로 생활 속의 예언자의 생활은 어떠했겠는가? 이러한 것 때문에 에스겔은 고뇌와 불안 가운데서 갔다. 은혜의 역사가 명백하게 나타난 곳일지라도 어떤 경우에는 잘못된 생각에서 나오는 큰 망설임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요나처럼, 나는 나의 임무를 피해서, 하늘의 환상에 불순종하여서가 아니라, 기뻐하지 않으면서, 괴로운 마음으로 갔노라." 에스겔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을 때는, 그 계시가 그에게 "꿀처럼 달았다" (3절). 에스겔은 그 말씀(계시)을 명상하는 가운데 충만한 기쁨으로 그의 온 생애를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에스겔이 그의 동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려고 했을 때는, 그들이 그 말씀에 무관심하고 그 말씀에 화를 내고, 죄악을 더욱 가중시키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래서 에스겔은 "괴로운 마음으로" 갔다. 그것은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매우 큰 슬픔이다. 백성들이 개혁되기를 매우 꺼린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종들이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그들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신실한 사역자들에게는 여간 큰 고통이 아니다. 에스겔은 실망을 경험했기 때문에 "분한 마음(뜨거운 마음)로 갔다." 그러나 "여호와의 손이 에스겔을 힘있게 감동했다." 즉 에스겔에게 그의 임무 이행을 강요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임무를 하기에 적절하게 하고, 그에게 그 임무를 관찰시키도록 했으며, 에스겔이 경험했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주었다. 그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그 임무를 더 잘 수행했으며, 그 임무에 자신을 몰두시켰다. "그때에 그가 사로잡힌 백성에게로 왔다" 고 했다(15절). 그곳은 저들이 모여와서 "앉아 있는" 곳이었다. 그는 "칠일 동안 그들 가운데서 거하면서" 그들과 같이 일하고, 이야기하고, 독서를 하면서, 그들의 행실을 주시했다. 그러면서 에스겔은 자기에게 임할 "여호와의 말씀" 을 기다렸다.
백성들에게 그들의 영혼에 대해서 적절하게 말하려고 하는 사역자들은 에스겔이 여기서 그러했던 것처럼, 그 백성들과 친해야 하고, 그 백성들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 즉 "백성들과 함께 거하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친절하게 전해 주어야 하며, 그 백성들이 "바벨론 강가에 앉아 있다" 할지라도, 그들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에스겔은 "그곳에서 크게 놀랐으며" (한글개역-" 悶沓히") 그의 백성들의 죄와 불행 때문에 매우 슬퍼했고, 그가 보았던 환상의 화려함에 의해서 압도되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에스겔은 "그곳에서 매우 고독했다" (혹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환상도 보여 주지 않았으며, 사람들 중 아무도 그를 방문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여호와의 말씀" 이 그에게 임하기 전에는) 에스겔은 슬픔을 머금은 채로 지냈으며 좋은 인내심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이 높이 세워서 크게 쓰시려 하는 사람들은 먼저 낮아져야 하며, 얼마 동안은 고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다시 나타난 여호와의 영광(겔 3:22-27)
하나님은 예언자에게 친히 자세하고도 중대한 사실을 보여 주었으며, 많은 사명을 띠고 가는 그 일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지시를 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에스겔의 이스라엘의 큰 회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정이 아주 다르게 나타남을 발견한다. 그의 일은 우선 그의 소명의 화려함에 비해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Ⅰ. 여기서 에스겔은 더욱 자세한 지시를 받기 위해 물러난다. 에스겔이 마지못해서 가는 것을 보면,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겨 주신 일에 대한 자신의 실력에 대해서 철저한 신념을 갖지 못했던 것같이 보인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예견하고 있던 어려움에 대해 용기를 북돋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새로운 환상을 은총으로 보여 주심으로써 그에게 생기와 활력을 더해 주시려 하신다.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에스겔을 "들로" 불렀다(22절).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은 "에스겔과 함께" 어떤 "이야기를" 하려 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초라한 포로요, "인자" (人子)에 불과한 사람과 함께, 아니 죄를 지은 사람에게 이와 같이 친밀하게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겸양을 보며, 이러한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더욱이 그 사람은 하나님이 보낼 때에, "분한 마음으로 갔고," 이번에는 그는 그의 일을 행하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런 자였던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 하늘과 땅 사이의 이런 축복받은 교제는 그리스도의 중재에 힘입고 있음을 시인하자.
여기에서는 홀로 있음의 유익을 보게 된다. 또 그것이 묵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됨을 볼 수 있다. 하나님과만 함께 있기 위하여 세상을 물러나는 것, 하나님과 함께 이야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에게 말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것이다. 선한 사람은 에스겔의 경우처럼 홀로 있다고 말할 것이다. 에스겔은 "사로잡힌 자들" 에게로(15절) 나아가기보다는 자발적으로 "들로 나아갔다." 왜냐하면 들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갖는 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이 세상과의 어떤 교제보다도 이런 일을 우선 적으로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에스겔은 "들로 나아갔으며," 거기에서 그는, 그가 "그발 강가에서 보았었던 것과 동일한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은 장소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할 것이다.
하나님은 "에스겔과 이야기하기 위하여" 들로 그를 불렀으나, 하나님은 그 이상의 것을 에스겔에게 베풀었다. 즉,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자기의 "영광" 을 보여 주었다(23절). 지금은 그런 환상을 기대할 수 없지만, 우리가 믿음에 의해서 "주의 영광을 보고," "주의 성령에 의해서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에 못지 않는 은혜가 있음을 고백해야 한다. "모든 성도들은" 이런 "명예를 가진다." "너는 주를 찬양하라" (고후 3:18).
Ⅱ. 에스겔은 여기에서 당분간 가르침을 계속하지 말라는 제재를 받는다. 에스겔이 "여호와의 영광" 을 보고서 "엎드렸을 때," 그는 하나님의 장엄함과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영" 이 에스겔을 일으키기 위하여 그에게 "임했을 때" 에스겔은 제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여호와의 영이 매우 놀라운 사실을 속삭이는 것을 들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에스겔을 당장 중요한 광장으로 보낼 것이며, 그의 동족에게 사랑을 받게 하며 에스겔과 그의 메시지를 그의 동족들이 받아들이게 하며, 에스겔은 자기 앞에 열려진 행운의 넓은 문을 가지며, 하나님은 에스겔의 입을 대담하게 열게 하기 위해서 말씀의 문을 열어 줄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에스겔에게 말해진 것은 이런 기대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다.
1. 에스겔을 공중 집회에 보내는 대신,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라고 지시한다.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24절). 에스겔은 공적인 집회에 나타나서는 안 되며, 설사 에스겔이 이런 공적인 집회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에게 주목하지 않을 것이며, 그가 당연히 받아야 할 존경도 보여 주지 않을 것이다. 또 그것은 에스겔과 그의 형제들 모두에 대한 책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에스겔은 그가 자기 형제들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요, 그의 형제들은 그에게 냉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공적인 집회에 나가는 것을 금했다. 우리가 선택한 일이 때때로 우리에게 심판(징벌)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선생들이나 그들의 백성들이 혹은 양편이 모두 엄숙한 집회(예배)에 무심하게 될 때, 하나님이 선생들을 외딴 곳으로 물러나게 하는 것은 의로운 일이다. 에스겔은 자신을 폐쇄해야 했다. 그것은 마치 에스겔이 그의 집에 갇힌 것같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갇히게 되며, 에스겔이 다음 장(章)에서 말하는 예루살렘의 포위의 징후를 보이기 위해서이다. 에스겔은 "그의 집안에 감금되었으며," 하나님의 마음의 더 깊은 뜻을 발견할 것이며, 그가 밖에 나갔을 때 사람들에게 말해야 할 여러 가지 것을 습득했을 것이다.
우리는 "유다 장로들이" 그를 방문하여, 때로는 "그의 집안," "그의 앞에 앉아서" (8:1) 그의 무아경지의 증인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에스겔이 "사로잡힌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그에게 보이셨던 모든 일을 말한" 것은 11장 25절에 가서야 비로소 있었던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소명을 받은 사람들은 연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며, 그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해야 하며, 때때로 그들의 집에 틀어박혀서 독서와 명상에 열중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그들은 모든 자들에게 유익함을 줄 것이다.
2. 하나님은 에스겔을 보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리라고 보증해 주는 대신에, "이스라엘인들이 너를 줄로 동여맬 것" 이라는(25절) 사실을 말해 준다. 그것은 다음의 어느 한 뜻이리라.
(1) 그들이 에스겔을 범인으로 취급한다. "이스라엘인들은 그가" 평화를 어지럽히는 사람이라고 취급해서 형벌을 주기 위해서 "동여맬 것이다." 그들이 예언자들을 박해했기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에서도 여전히 예언자들을 박해한다.
(2) 정신나간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들은" 에스겔이 정신을 잃고 있을 때 "그를 동여매려" 할 것이다. 그들은 에스겔의 광폭한 행동을 그가 미친 탓으로 돌리기 위해서이다. 군대 장관들은 예후에게 말하기를 "무슨 까닭에 이 미친 사람들이 너에게 왔느냐?" 하고 물었다. 총독 베스도는 "너는 네 정신이 아니구나" 하고 바울에게 말했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우리의 구주인 예수에게도 그와 같이 말했다(막 3:21). 아마도 이것이 에스겔이 자신을 집안에 은폐시켜야 되는 이유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에스겔이 미쳤다는 구실로 그를 동여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그들 가운데로" 나오지 않았다. 예언자들은 저들을 학대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나가는 것을 금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3.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에스겔의 입을 여는 대신에, 하나님은 그를 침묵하게 했으며 그의 "혀를 입 천장에 붙게"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에스겔은 상당한 기간 동안 벙어리가 되었다(26절). 바벨론에 사로잡혀온 경건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즉 "만약에 우리가 예루살렘을 잊는다면, 우리의 혀가 입 천장에 붙을지로다" (시 137:6). 에스겔은 누구 보다도 더 예루살렘을 기억한다. 그러나 아직 그의 "혀는 그의 입 천장에 붙어 있다." 그리고 말하는 것이 완전히 금지되어 있다. 그 이유는 에스겔이 파송된 "백성들은 패역한 족속" 이며, 그렇기에 그들은 "책망자" 를 둘 가치조차 없기 때문이다. 에스겔은 그들에게 교훈과 훈계를 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 충고나 훈계를 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에스겔이 그들에게 대담하게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매우 패역했기" (2:7)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이 드러나자, 에스겔이 이제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침묵을 지켰으니, 그들에게 전혀 말하지 않았다. 뉘우치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뉘우치게 하는 방편을 빼앗긴다. 만약에, 오랜 시련 후에, 책망자가 귀먹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왜 책망자는 벙어리가 될 수 없겠는가? 만약에 에브라임이 "우상에 연합되었다면," "그를 외롭게(alone)할 것이다."
"너는 벙어리가 되고, 책망자가 되지 말지니라" 는 말씀은 만약에 에스겔이 벙어리가 아니었다면, 책망했을 것이다라는 말을 의미한다. 만약에 에스겔이 적어도 말할 수 있었다면, 그는 악한 자의 악을 고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말할 때에," 그리고 에스겔을 통해서 말하려고 계획했을 때는, 그가 "입을 열 것이다" (27절).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비록 잠시 동안은 침묵할지라도, 하나님의 때가 오면 입을 다시 열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의 사역자들에게 말할 때는, 자기가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하기 위해서 사역자들의 귀를 열 뿐만 아니라, 거기에 응답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의 입도 열어 주신다. 모세가 그의 백성들에게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 너울을 썼었지만, 그가 하나님을 향해서 올라갈 때는 그 너울을 벗었다(출 34:34).
4. 때가 되어서 그가 다시 사람들에게 말하게 될 때 그에게 성공을 보중해 주는 대신,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 문제를 불확실한 채로 남겨두었다. 에스겔은 그 문제에 대해서 당황해서는 안 되며, 그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되든지 그대로 되게 버려 두어야 한다. "들을 자는 들을 것이다." 그는 그 말씀을 들음에 의해서 위로를 얻을 것이다. 그 말씀을 "듣는 자는," "그의 영혼이 살 것이며," 그 말씀 "듣기를 꺼려해서 듣지 않는 자" 는 영혼의 위험을 초래할 것이다. "만약에 네가" 그 말씀을 "비웃으면," "너는 홀로 그것에 대해 고통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이나 그의 예언자가 이것으로 인해서 손실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언자는 죄인을 견책하는 그의 임무를 충실히 행할 때 보상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은 죄인을 견책하는 임무를 행하지 않는 예언자를 책망함으로써 그의 정의를 빛나게 하시리라.
=========
3장: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심
===1-15절, 에스겔을 준비시키심
[1-3절]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집에] 고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두루마리 책을 주시며 먹으라고 말씀하셨다(본문에 ‘두루마리’라는 말이 세 번 나옴). 그 두루마리에는 에스겔이 전해야 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다. 에스겔은 입을 벌려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것은 말씀을 즐거이 받아들이는 것을 상징하였다고 본다. 사람이 아무리 무엇을 먹이려 해도 입을 다물고 있으면 먹일 수 없다. 먹는 자는 입을 벌려야 먹을 수 있다. 말씀을 받는 자는 열린 마음,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말씀을 잘 받을 수 있다(10절).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가서 전할 수 있다. 그는 조금 먹을 것이 아니라 배에, 창자에 채워야 했다(3절). 하나님의 종들은 성경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며 말씀의 충만함을 얻어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담대히 잘 전할 수 있다. 에스겔이 먹은 그 두루마리의 말씀은 그의 입에서 달기가 꿀 같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참으로 기쁘고 복된 말씀이다.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의 맛이 꿀보다 더 달고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증거했었다(시 19:10; 119:103).
[4-7절]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말이 어려운[방언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집에] 보내는 것이라.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알아듣지 못할 열국에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었더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이스라엘 족속은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이는 이스라엘 모든 족속이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보내시는 대상은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방언이 어려운 이방인들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그가 그를 이방인들에게 보내셨더라면 그들이 그의 말을 들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시대에 사도 바울이 전도할 때도 유대인들은 바울의 말을 대적하였으나 이방인들은 듣고 기쁘게 받았다(행 13:44-48).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보내시는 대상은 이스라엘 족속이다(이스라엘 족속이라는 원어는 ‘이스라엘 집’이라는 말로 본서에 75회 나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전도자나 설교자의 말을 듣는 것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요 그의 말을 거절하는 것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배척하고 거절하는 것이다. 주께서는 제자들을 전도자로 보내시면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0:40).
[8-11절]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로 화석(火石)[부싯돌]보다 굳은 금강석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 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하시더라.
에스겔이 보냄을 받은 이스라엘 족속은 얼굴이 굳고 이마가 굳은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얼굴과 그의 이마를 굳게 하시되, 부싯돌보다 더 굳은 금강석같이 굳게 하셨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그 패역한 족속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아야 했다. 또 그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선포해야 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비슷한 교훈을 하였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 4:2-4). 오늘 날 설교자들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가감 없이 전해야 한다.
[12-15절] 때에 주의 신[영]이 나를 들어 올리시는데 내 뒤에 크게 울리는 소리가 들려 이르기를 여호와의 처소에서 나는 영광을 찬송할지어다 하니 이는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 생물 곁에 바퀴 소리라. 크게 울리는 소리더라. 주의 신[영]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행하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있게 나를 감동하시더라.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가에 거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 중에서 민답히[놀라서] 7일을 지내니라.
그때에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께서 그를 들어올리시는 것을 느꼈다.
그는 또 여호와의 영광을 찬송하라는 큰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은 네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 그 생물들 곁의 바퀴 소리와 요란한 큰 소리이었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그를 들어올려 데려가셨고 그는 괴롭고 분한 심령으로 행하였다. 그가 괴롭고 분한 심령을 가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극심한 죄악과 그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바벨론 군대의 침공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손이 힘있게 그 위에 있었고 그의 권능이 힘있게 그를 감동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발 강가에 거하는 사로잡힌 백성들 가운데로 인도하셨다. 에스겔은 그 곳에서 당황하고 놀란 마음으로 7일 동안 지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됨과 패역함 때문에 괴롭고 분한 심령과 당황하고 놀란 심령이었지만 힘을 잃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 아래 있었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성경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먹게 하셨다. 이것은 물론 상징적 사건이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정금보다 더 귀한 말씀이며 꿀보다 더 단 말씀이다. 시편 19: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편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하니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복되다(시 1:2-3).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책을 사랑하고 읽고 묵상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패역한 사람들에게도 전도해야 한다. 에스겔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한 자들에게 보내졌다. 그들은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고 그들에게 전하여야 했다. 우리의 전도 대상자들도 때때로 패역한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담대히 전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교훈하였다(딤후 4:3-5).
셋째로, 전도를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바른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해야 한다.
둘째, 강한 마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부싯돌보다 더 굳은 금강석 같은 이마를 주셨다.
그는 에스겔에게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셋째, 하나님의 권능이다. 에스겔은 심령의 괴로움과 놀람 중에도 하나님의 권능이 그 위에 있었다. 주께서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 .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행 1:8).
===16-27절, 파수꾼으로 세우심
[16-17절] 7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에스겔이 델아빕 그발 강가에 거하는 그 사로잡힌 백성들 가운데서 7일을 지낸 후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 시점과 상황에서 선지자에게 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 백성의 파수꾼으로 세우셨다고 말씀하셨다. 파수꾼은 군대의 경계병 혹은 보초병과 같다. 에스겔을 파수꾼이라 부르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대신해 이스라엘 백성을 깨우치고 경고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18-19절]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값[핏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파수꾼의 사명은 엄숙하였다. 악인의 경우, 만일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파수꾼이 그 악인에게 경고하고 깨우치지 않았다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 죽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핏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파수꾼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말하였고(롬 1:14-15), 또 “[내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하였다(고전 9:16).
그러나 파수꾼이 악인에게 경고하고 깨우쳤는데도 그 악인이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떠나지 않고 회개치 않았다면 그는 그 죄악 중에 죽을 것이며 파수꾼의 영혼은 보존될 것이다. 이 경우에 파수꾼의 잘못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파수꾼의 사명을 다한 것이다.
[20-21절]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값[핏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치 않게 하므로 그가 범죄치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의인의 경우에, 의인이 과거에 많은 의를 행했다 하더라도 파수꾼이 그를 경고하고 깨우치지 않으므로 그 의에서 떠나 악을 행하면 이미 행한 의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그는 죽을 것이다. 죄는 작은 죄라도 영혼을 멸망시킬 만하다. 야고보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라고 말했다(약 2:10). 비록 우리의 선행이 질적으로 부족하고 시간적으로도 영속적이지 못하여 구원의 공로가 될 수 없고 우리의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지만, 그러나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가 계속 죄를 지어서는 안 되고 예수님의 의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의를 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의인이 파수꾼의 경고와 깨우침이 없어서 범죄하여 멸망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 핏값을 파수꾼에게서 찾으실 것이다. 그 파수꾼이 자기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파수꾼이 그 의인을 경고하고 깨우쳐 그가 범죄치 않으면 그 의인은 살 것이며 그 파수꾼도 그 영혼을 보존할 것이다. 그는 그의 사명을 다했기 때문이다.
[22-23절]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 하시기로 내가 일어나 들로 나아가니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 머물렀는데 내가 전에 그발 강가에 서 보던 영광과 같은지라. 내가 곧 엎드리니.
하나님께서는 권능으로 에스겔에게 임하시고 일어나 들로 나가게 하셔서 거기서 그와 말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주의 종들을 조용한 곳으로 부르신다. 예수께서는 시시때때로 산이나 들판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곤 하셨다(막 1:35; 14:23). 에스겔은 일어나 들로 나갔는데 거기서 그는 전에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여호와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과 대면하며 그 앞에 엎드렸다.
[24-25절] 주의 신[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인자야, 무리가 줄로 너를 동여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이것은 에스겔이 무리들의 억압과 방해와 배척과 핍박으로 인해 자기 집에 은둔하게 될 것을 보이신 것 같다. 에스겔은 공적인 설교 사역을 잠시 중단하고 그의 집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통의 시간을 가지며 그에게 찾아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적 설교 사역을 어느 기간 동안 할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26-27절] 내가 네 혀로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너로 벙어리 되어 그들의 책망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하나님께서 에스겔로 하여금 책망의 설교자가 되지 못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징벌이었다. 설교자의 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스가랴를 벙어리 되게 하셨던 것처럼 그가 입을 닫으시면 설교자는 벙어리나 더듬거리는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지 않으실 때 바른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할 수 없다(요 3: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스겔과 더불어 말씀하실 때 에스겔의 입은 열릴 것이다(겔 24:27; 33:21-22).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의 입을 지으신 자가 하나님이시며(출 4:11-12), 그가 입을 여시면 선지자의 입이 열릴 것이다. 그때 그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겔이 입을 열어 말씀을 전할 때에도 듣는 자는 들을 것이지만, 듣기 싫어하는 자는 듣지 않을 것이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파수꾼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하나님을 대신해 전하는 것이다. 파수꾼은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잘 들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전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먼저 성경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고 성경을 배우고 연구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모든 성도는 다 파수꾼과 같다. 우리는 성경을 잘 읽고 듣고 배워 우리 주위의 믿지 않는 자들에게 파수꾼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둘째로, 파수꾼의 사명은 악인을 경고하고 깨우쳐 그 죄악에서 떠나 게 하며 의인도 경고하고 깨우쳐 범죄치 않도록 하는 것이다. 파수꾼이 죄를 경고하고 깨우치는 일을 바르게 하면, 듣는 자들이 비록 거역하여 멸망한다 할지라도 그의 책임은 없지만, 만일 경고하고 깨우치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책임이 파수꾼에게로 돌아가고 하나님께서는 그 멸망하는 자의 핏값을 파수꾼에게 찾으실 것이다. 이것은 두려운 말씀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한다. 그래야 성도에게 주신 전도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전도의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물으실 것이다.
셋째로, 파수꾼의 입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파수꾼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의 입을 닫기도 하시고 열기도 하신다. 그가 그의 입을 여실 때 그는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입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시기를 구하며 또 담대히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