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9.1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72.Q의로운말씀따라,HS의지혜총명분별로다스리는,의와평강구현자/실로-샬롬-참솔로몬-메시야를바라는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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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72장 솔로몬의 시....[마음에가득한257].놀랍다주님의큰은혜251.예수십자가에흘린피로써259


[[선택을 앞둔 자의 지혜와 총명, 서로 배우기...맹자]]....가져도 좋고 가지지 않아도 좋을때는 가지지 않음(청렴)..줘도 좋고 주지 않아도 좋을 때는 주지말라(은혜의 깊이)...죽어도 좋고 죽지 않아도 좋을 때는 죽지 말라(용기)..한아기가우리에게났고.주여호와의신이


.....영광을받으신만유의주여331......MyPeaceIgiveUntoYou.내맘속에있는 참된이평화는.


1.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에게 주소서..(참된 공의와 공법의 기준되는 바, Q의 의의 말씀따라 인도하시는 HS의 지혜/총명-분별력)(거룩하신 Q의말씀-성품 알며 Q을 사랑하여 섬기며, 참되고 진실하게 경외함/하나됨..성결과 의로 섬기는 자, 모든 상황마다 깊고 세밀히 살펴 통찰하는 Q으로부터 Q의 원하시는 바를 알고 시행하는 분별력 주심,)

2.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Q의말씀-성품따라 행하시는 Q앞에서 올바름=Q의 성의진선)

3.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의의 공효는 평안과 안전! 산과 작은산은 군왕과 관원,모든 위정자/공직자)

4.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구주Q의 행사하심 그대로 따름),

5.  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6.  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내리리니...(죄벌로 인해 끊겨 죽은것 같았던 만유위에 생명과 은혜/은총의 HS 이슬/소낙비 같이 부으사 생기 공급),

7.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의-평강-참된 지고지선의 진복:: 지상의 Q나라 번성/번영)

8.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

9.  광야에 사는 자는 그 앞에 굽히며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10.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11.  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12.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13.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14.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15.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고난 거쳐 합당한 회개 통해 주를 빼어닮아 이루는 거룩함의 영광과 존귀)

16.  산 꼭대기의 땅에도(황무한 곳이라도!!) 곡식이 풍성하고 그것의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 같이 왕성하리로다

17.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JC이름으로 누리는 지고지선의 진복Q)

18.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19.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말씀하신 그대로 친히 행하시며 이루시는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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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V]제72장

1.  Psalm 72 Of Solomon. Endow the king with your justice, O God, the royal son with your righteousness.

2.  He will judge your people in righteousness, your afflicted ones with justice.

3.  The mountains will bring prosperity to the people, the hills the fruit of righteousness.

4.  He will defend the afflicted among the people and save the children of the needy; he will crush the oppressor.

5.  He will endure as long as the sun, as long as the moon, through all generations.

6.  He will be like rain falling on a mown field, like showers watering the earth.

7.  In his days the righteous will flourish; prosperity will abound till the moon is no more.

8.  He will rule from sea to sea and from the River to the ends of the earth.

9.  The desert tribes will bow before him and his enemies will lick the dust.

10.  The kings of Tarshish and of distant shores will bring tribute to him; the kings of Sheba and Seba will present him gifts.

11.  All kings will bow down to him and all nations will serve him.

12.  For he will deliver the needy who cry out, the afflicted who have no one to help.

13.  He will take pity on the weak and the needy and save the needy from death.

14.  He will rescue them from oppression and violence, for precious is their blood in his sight.

15.  Long may he live! May gold from Sheba be given him. May people ever pray for him and bless him all day long.

16.  Let grain abound throughout the land; on the tops of the hills may it sway. Let its fruit flourish like Lebanon; let it thrive like the grass of the field.

17.  May his name endure forever; may it continue as long as the sun. All nations will be blessed through him, and they will call him blessed.

18.  Praise be to the LORD God, the God of Israel, who alone does marvelous deeds.

19.  Praise be to his glorious name forever; may the whole earth be filled with his glory. Amen and Amen.

20.  This concludes the prayers of David son of J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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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ign of the Righteous King.

A Psalm of Solomon.72 

1 Give the king [knowledge of] Your judgments, O God, And [the spirit of] Your righteousness to the king’s son [to guide all his ways].

2 May he judge Your people with righteousness, And Your afflicted with justice.

3 The mountains will bring peace and prosperity to the people, And the hills, in [the establishment of] righteousness.

4 May he bring justice to the poor among the people, Save the children of the needy And crush the oppressor,

5 Let them fear You [with awe-inspired reverence and worship You with obedience] while the sun endures, And as long as the moon [reflects light], throughout all generations.

6 May he come down like rain on the mown grass, Like showers that water the earth.

7 In his days may the righteous flourish, And peace abound until the moon is no more.

8 May he also rule from sea to sea And from the River [Euphrates] to the ends of the earth.

9 The nomads of the desert will bow before him, And his enemies will [a]lick the dust.

10 The kings of Tarshish and of the islands will bring offerings; The kings of Sheba and Seba will offer gifts.

11 Yes, all kings will bow down before him, All nations will serve him.

12 For he will rescue the needy when he cries for help, The afflicted and abused also, and him who has no helper.

13 He will have compassion on the poor and needy, And he will save the lives of the needy.

14 He will redeem their life from oppression and fraud and violence, And their blood will be precious in His sight.

15 So may he live, and may the gold of Sheba be given to him; And let them pray for him continually; Let them bless and praise him all day long.

16 There will be an abundance of grain in the soil on the top of the [b]mountains; Its fruit will wave like [the cedars of] Lebanon, And those of the city will flourish like grass of the earth.

17 May his name endure forever; May his name continue as long as the sun; And let men bless themselves by him; Let all nations call him blessed.

18 Blessed be the Lord God, the God of Israel, Who alone does wonderful things.

19 Blessed be His glorious name forever; And may the whole earth be filled with His glory. Amen and Amen.

20 The prayers of David son of Jesse are en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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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시편은 다윗이 늙었을 때에 지은 것이며, 이 역시 그런 것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솔로몬은 이제 왕관을 향해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앞의 시편은 다윗 자신을 위한 그의 기도였고, 이는 그의 아들과 후계자를 위한 기도다. 

그리고 이 두 가지로써,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는─이 시편 끝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끝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다음에 올 자들이─우리가 하늘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때─ 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리라는 훌륭한 소망을 지닐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기에는 “솔로몬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아마도 다윗은 자기가 죽기 조금 전에,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자기 후계자를 세우고 솔로몬이 왕임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왕상 1:30 이하), 누구에게 이 시를 불러주었던가, 아니면 성령의 지시로 그가 받아썼을 것이다. 

솔로몬의 이름이 여기에 사용되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나라가 솔로몬 왕국의 모형과 상징으로서 예언되어 있다. 

다윗은 그 거룩한 신탁의 내용, 즉 “육신을 따라 그의 태의 열매에서 그가 그리스도를 그 위에 앉게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행 2:30). 

그는 여기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으며, 그의 나라의 영광에 대한 전망을 하면서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자기의 집이 하나님께 대해 자기가 바라던 대로 그처럼 위대하고 훌륭하지는 않으리라 함을 예견했다. 

다윗은 영에 의해 다음과 같이 한다.

1. 그의 후계자를 위한 짧은 기도로써 시작하고 있다(1).

2. 그는 곧 그의 통치의 영광에 대한 긴 예언으로 들어가고 있다(2-17).

3.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써 끝맺고 있다(18-20).

이 시편을 노래하는 가운데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목하면서 그를 왕으로서 찬양해야 하며, 그의 신하로서 우리의 행복을 즐거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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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을 위한 기도(시 72:1)

이 구절은 왕, 곧 왕의 아들을 위한 기도다.

Ⅰ. 우리는 이를 솔로몬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과 주의 의를 그에게 주소서.” 즉, “그를 사람, 곧 훌륭한 왕으로 만드소서. 그를 훌륭한 사람, 훌륭한 왕으로 만드소서.”

1. 이것은 족장들이 그 자손들에게 유언으로 남긴 말과 같이, 한 아버지가 그 아들을 위해 한 기도, 죽으면서 한 축복이다. 

우리가 우리 자손을 위해 하나님께 청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알고 행할 수 있는 지혜와 은총을 주십사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금보다 낫다. 

솔로몬은 아버지가 그를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에게 재물과 존귀가 아니라 지혜와 총명을 주십사 하고, 그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배웠다.

자기 아들이 후계자가 된다는 사실, 또 그 후계자는 현명하고 의로운 자라는 사실은 다윗에게 위안을 주었다. 

다윗은 그에게 훌륭한 교훈을 주었고(잠 4:3), “훌륭한 판단력과 의”를 가르쳤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판단력을 주시지 않았다면, 아무 소용도 없었을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은혜를 줄 수 없으나, 기도로써 그들을 은혜의 하나님께 데리고 갈 수 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헛되지 않다. 그들의 기도는 응답되거나, 그들의 가슴에 위로를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2. 이것은 한 왕이 자기 후계자를 위해 드린 기도일 수도 있다. 

다윗은 그의 임기 동안 판단력과 의를 수행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의 아들도 또한 그렇게 행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뒤에 오는 자들이 우리가 행했던 것보다 더욱 많이 그리고 더 훌륭히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를 원하고 노력하면서,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 이러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기가 죽었을 때 세상과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염려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이나 사람에 대해 거의 사랑을 갖고 있지 않으며, 매우 편협하고 이기적인 마음의 소유자들이다.

3. 이것은 왕을 위한 신하들의 기도다. 

다윗은 그 백성들이 노래하면서 솔로몬을 위해 기도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이 시편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려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왕들과 모든 권세자들에게 그의 공의와 법도를 주지시키기를 기도해야 한다.

Ⅱ. 우리는 이것을 그리스도께 적용시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중재하신 그에게도 우리의 중재함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1. 그것은 교회의 왕으로서, “거룩한 산 시온”의 왕으로서의 메시야를 보내달라는 구약시대 교회의 기도다. 

그에 대해 왕 중 왕께서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다(2:6-7). “모든 심판을 맡으실 자를 속히 보내소서.”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 즉 그가 “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를 이처럼 재촉해야 한다.

2. 그것은 모든 신자들이 주 예수께서 그 아버지로부터 받으신 권세로 인해 얻는 속죄에 대한 표현이다. 

“그로 하여금 그의 것인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질 거룩한 은혜의 위대한 보관자가 되어 우리에게 그것을 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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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왕국(시 72:2-17)

Ⅰ. 이는 솔로몬의 통치라는 그림자를 통해서 그리스도 왕국의 번영과 영존을 예언한 것이다.

1. 그것은 그 기도를 강력히 뒷받침해 주는 탄원으로서 제시되어 있다. 

“주여, 주의 판단력과 의를 저에게 주소서. 그러면 저가 주의 백성을 의로 판단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존귀에 이바지할 것입니다(2절). 그에게 주의 은혜를 주소서. 그러면 그에게 맡겨진 주의 백성은 그 혜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당신을 세워 저희 왕을 삼아 공과 의를 행하게 하셨도다”(대하 9:8).

우리는 교회의 공동 유익에 속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은혜를 위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씨름할 수 있다.

2. 그 기도에 대한 평화의 응답으로서 제시되어 있다. 

믿음의 기도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의 약속에 응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긍휼의 약속으로써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이 예언이 메시야 왕국에 귀착되어야 함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속에는 솔로몬의 통치에는 적용될 수 없는 많은 구절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초기의 솔로몬 행정에는 많은 의와 화평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통치 말엽 즈음에는 재난과 불의가 많이 있었다.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왕국은 해처럼 오래 지속되기로 되어 있으나, 솔로몬 왕국은 곧 꺼져버렸다. 

그러므로 유대인 해설자들도 이를 메시야 왕국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있는 크고 귀한 많은 약속들을 살펴보자. 그것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나라 안에서만 완전히 이루어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부는 솔로몬의 통치 속에서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Ⅱ. 그것은 “의로운 통치”가 된다.

“저가 주의 백성을 의로 판단하리이다”(사 11:4와 비교). 

그리스도 나라의 모든 법은 영원한 공의의 법도와 일치한다. 

가혹하게 침해당한 법을 구제하기 위해 그것이 세운 재판소는 진정한 공의의 법정이 된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심판 때에 내릴 언도에는 결코 예외가 없을 것이다. 

그의 나라의 평강은 의에 의해 지탱될 것이다(3절). 

“공의가 바닷물처럼 흐를” 때만이 강물 같은 평강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 세상은 공의로 심판될 것이다(행 17:31).

Ⅲ. 그것은 평화로운 통치가 될 것이다.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3절). 

즉, 하몬드 박사의 말대로 솔로몬 왕국의 최고 법원과 최하 법원이 그렇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거기에는 곧 평강이 있을 것이다(7절). 

솔로몬의 이름은 “평강”을 뜻하고 있다. 그의 통치도 그러했다. 

그때 이스라엘은 앞의 왕대에서 얻은 승리를 즐겼고, 그 왕대의 평정과 안온함을 보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평강은 특별한 면에서 그리스도 나라의 영광이다. 

번영하는 한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그들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를 화목하게 만들며, 모든 적대감을 죽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우리의 평강이시다.

Ⅳ.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은 특별히 이 정부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저가 가난한 자를 판단하리라”(2절). 

선한 양심을 지킴으로써 가난하게 된 자들은 하나님의 가난한 자들이며, 그들은 특별한 배려로써 부양될 것이다. 

그들은 심판으로써 그들의 사정을 특별히 인지받고, 그들이 해를 당함을 특별히 보상받게 됨으로써 판단받을 것이다. 

“백성의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의 자손”을 그가 틀림없이 판단하실 뿐만 아니라, 구원하실 것이다(4절). 

그리스도께서 피해를 당한 가난한 자의 편이 되시어, 틀림없이 그의 호소를 들어주시리라 함을 시사하면서, 이러한 사실이 다시 강조되어 있다(12-13절). 

“저는” 압제하는 자의 수중에 있는 “궁핍한 자”와 “가난한 자를 건지실 것이다.” 

그런 자들은 돕는 자가 없다. 그런데 그런 자들을 돕는 것은 그의 영예다. 

그리고 그들이 그에게 부르짖을 때, 그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돕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기도로써 “주를 의지한다”(10:14). 

“저는” 그의 긍휼에 매달리는 “궁핍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그들에게 가혹하거나 냉정하게 대하시지는 않는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그리스도는 가난한 사람들의 왕이시다.

Ⅴ. 교만한 압제자들은 문책당할 것이다. 

“저가 그들을 꺾으리로다”(4절). 

해치는 그들의 힘을 제거하시고, 그들이 행한 죄악에 대해 그들을 벌하실 것이다. 

“패배한 자를 긍휼히 여기고, 교만한 자를 꺾는 것”─이는 훌륭한 왕의 임무다. 

마귀는 큰 압제자다. 그리스도는 그를 꺾으실 것이고, 그의 나라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가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사 11:4), 그의 백성의 영혼을 “압박과 공포에서” 건지실 것이다(14절). 

그는 압박으로써 그들을 유혹하는 옛 뱀으로서의, 그리고 광포함으로써 그들을 위협하고 삼키는 성난 사자로서의 사단의 권세에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저희 피가 그 목전에 매우 귀하므로” 한 방울의 피도 기억됨이 없이 사단의 압박이나 광포 또는 그의 도구에 의해 흘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비록 그가 때로 그의 신하들을 불러 그를 위해 피에 대항하도록 명하시지만, 그는 그들의 피를 낭비하시지 않는다. 

또한 그와 그들의 영광에 가치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한, 그리고 그들 원수의 죄악이 가득 차도록까지 기다리시는 일이 아닌 한 결코 그들로 하여금 피를 흘리게 하시지 않는다.

Ⅵ. 신앙은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서 번성할 것이다(5절). 

“저희가 해가 있을 동안에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 그러하리로다.” 

솔로몬은 실제로 성전을 지었고, 그의 통치 아래서 얼마 동안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배가 있었으나,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는, 그리스도의 나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그를 존속시키는 그 모든 신하들을 가리키는 것이라야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자연스런 신앙을 지지하고 발전시키는 직접적인 성향을 갖고 있고, 그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세울 것이며, 지속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를 경배하라”(계 14:7)고 가르치는 영원한 복음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통치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촉진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공의와 자선을 촉진시킨다(7절).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리라.” 

의가 실행될 것이며, 의를 행하는 자들은 발탁될 것이다. 의가 풍성해 신용을 얻을 것이고, 명령해 권세를 얻을 것이다.

마음속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직하고 의로워지고 싶도록, 그리고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고 싶도록 만든다. 

그것은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 속에서 살고 싶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그것은 풍성한 평강을 내며, 칼을 쳐서 보습이 되게 한다. 

거룩함과 사랑은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영원하며, 결코 쇠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의 신하들은 “해가 있을 동안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 그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신앙고백을 통해 이 세상에 발붙이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때까지 그 터전을 보존할 것이다. 

또 권능으로써 사람들의 심령 속에 발붙이고 있기 때문에, 죽음에 의해 해와 달과 별들이 어두워질 때까지(이것이 그 실제적 의미다) 인간의 심령 속에서 계속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변화와 생명의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나라는 스스로 지탱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해와 달만큼이나 오래 계속된다면, 풍성한 평강이 있을 것이다. 

교회의 평강, 영혼의 평강은 그 순수함과 경건함에 병행되며, 이것이 지속되는 만큼 지속될 것이다.

Ⅶ. 그리스도의 통치는 그의 충성되고 사랑하는 모든 신하들에게 매우 편한 것이다(6절). 

“저는” 그 성령의 은혜와 위로에 의해 “벤 풀에 내리는 비 같으리라.” 

완전히 잘라진 것이 아니라, 비록 베어졌을지라도 다시 돋아날 수 있도록 남겨진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딱딱한 땅을 부드럽게 하고, 메마른 땅을 촉촉하게 해 푸르고 기름지게 만드는 비같이(사 55:10) 방울져 떨어진다. 

우리의 마음으로 “비를 흡수하도록”(히 6:7) 하자.

Ⅷ. 그리스도의 나라는 아주 멀리까지 확장된다. 다음과 같은 것을 깊이 생각해 보자.

1. 그의 영역의 범위(3절). 

“저가 바다에서 바다까지(남해에서 북해까지, 또는 홍해에서 지중해까지)와 강에서부터 구스까지 또는 나일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라.” 

솔로몬의 지배권은 그 약속대로(창 15:18) 매우 넓었다(왕상 4:21). 

그러나 이 잘 알려진 표현에 의해 그것이 주 예수의 세계적인 주권을 시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바다나 강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그의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 왔고, 앞으로도 전파될 것이다(마 24:14). 

그리고 이방인들이 가득 들어왔을 때,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계 11:15). 그의 영역은 다음과 같은 곳에까지 미칠 것이다.

(1) 그를 모르는 자들에게까지 미칠 것이다. 

“광야에 거하는, 모든 도로에서 벗어나 거의 소식을 들을 수 없는 곳에 거하는 자도” 구속자의 기쁜 소식과 그에 의한 속량을 들을 것이며, “저의 앞에 굽히며” 믿고, 영접하며 경배하고, 그리고 그의 멍에를 멜 것이다. 

주 예수 앞에서 우리 모두 허리를 굽혀야 한다. 아니면 꺾이게 된다. 우리는 꺾이면 멸망한다─우리가 굽히면, 우리는 분명 영원하게 될 것이다.

(2) 그에게 원수 되었던, 그리고 그에 대항해 싸웠던 자들에게까지 미칠 것이다.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다.” 

그들은 패해 티끌 속에 묻힐 것이며, 화가 나서 땅을 물어뜯을 것이다. 

그리고 매우 배가 고파서 씹는 것이므로, 티끌, 곧 뱀의 먹이(창 3:15)를 즐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뱀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원수들이 꺾여 비천하게 될 때, 그가 그들을 지배하지 않으시겠는가?

2. 그의 속국들의 권위. 

그는 광야에 거하는 자들, 즉 농군과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궁에 거하는 자들도 다스리신다(10절).

“다시스”와 이스라엘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이방인들의 섬”에 있는(창 10:5) “섬의 왕들이” 자기들의 최고 군주인 그에게 “예물을 드리리로다.” 

그들은 그에 의해, 그리고 그 아래에서 자기들의 왕관과 모든 왕실 소유지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의 은총을 구할 것이며, 그의 지혜를 들을 수 있도록 그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솔로몬에게서 이루어졌다(왜냐하면 “천하 열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구해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나라의 제일인자에 속했던 동방박사가 그리스도께 경배하러 와서 “예물을 드렸을” 때(마 2:11), 

이 예언은 그리스도에게서도 또한 이루어졌다. 그들은 그에게 그들 자신을 예물로 드릴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예물이며, 그것 없이는 어떤 예물로도 그를 기쁘시게 할 수 없다(롬 12:1). 

그들은 “선물을 드릴 것이다.” 

기도와 찬미의 영적 제물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께, 또 모든 선물을 거룩하게 하는 그들의 제단으로서의 그리스도 위에 드릴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께로 전향하는 것은 “이방인의 봉헌물”, 곧 “제물”이라 불리고 있다(롬 15:16).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헌신은 사실이 그러하다(히 13:15-16). 

그렇다. 모든 왕들은 조만간 그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행하기 위해, 또는 그로부터 저주를 받기 위해 “그 앞에 부복할” 것이다(11절). 

그들은 그의 자발적인 신하로서, 또는 그에게 잡힌 포로로서, 그의 긍휼을 구하는 탄원자로서, 또는 그의 심판을 받을 예정자로서 그 앞에 부복할 것이다. 

그리고 왕들이 복종할 때 백성들도 물론 올 것이다. “열방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라고 했다. 모두가 그의 봉사에 초대받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 중에서 사람들이 거기에 올 것이며, 각처에서 “그의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릴 것이다”(말 1:11; 계 17:9).

Ⅸ. 그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을 것이다(15절). 

“저가 생존하리로다”라고 했다. 

그의 신하들은 그의 생명을 기원할 것이며(“왕이여, 영원히 생존하소서”), 거기에는 훌륭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사노니, 너희도 또한 살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항상 살아서 간구하신다고 하는 증거를 얻었다”(히 7:8, 25). 그는 사실 것이다. 형통함 속에서 사실 것이다.

1. 그리고 예물이 그에게 바쳐질 것이다. 

그는 어떤 선물이나 봉사가 필요치 않기 때문에, 그것들 없이도 사실 수 있을지라도, 저희가 그에게 “스바의 금을 드릴 것이다.” 

금, 가장 훌륭한 금속, 아마도 가장 훌륭한 금이었던 스바의 금을 드릴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훌륭한 그는 가장 훌륭한 것으로 섬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재물을 풍성히 지닌 자들, 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들은 그것으로써 그를 섬겨야 하며, 그것으로써 선을 행해야 한다. 

“너의 물질로 주를 영화롭게 하라.”

2. 기도가 그를 위해 올려질 것이며,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백성들은 솔로몬을 위해 기도했고, 그것은 그와 그의 통치가 자기들에게 매우 큰 축복이 되도록 만드는 것을 도왔다. 

흔히 행해지는 것처럼 왕들과 모든 권세자에게 듣기 좋은 말로써가 아니라, 공공의 번영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중재하고 감사드리는 것은 신하의 의무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께 어떻게 적용되는가? 

그는 우리의 기도가 필요 없으며, 우리의 기도에 의해 어떤 이득을 얻지도 않으신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그의 강림을 위해 기도했다. 그것을 위해 꾸준히 기도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를 “오실 자”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가 오셨으니, 우리는 복음의 성공과 그의 나라의 발전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는 이에 대해 그를 위해(다윗 자손의 호산나와 그의 다스리심의 번영을 위해) 기도하도록 요청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재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본문은 “기도가 그로 말미암아”, 또는 그를 위해 “이루어질 것이다”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그의 이름에, 그리고 그의 중보에 의존해 있다.

3. 찬미가 그에 대해 나올 것이며, 그의 지혜와 의와 선하심에 대해 높은 찬사가 주어질 것이다. 

“저희가 저를 종일 찬송하리로다.” 

그의 이름으로 매일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그를 영화롭게 한다. 신하들은 그들에게 축복인 그 나라를 찬미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보다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해야 한다. 그를 날마다 찬송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것을 그에게 은혜입고 있으며, 그에게 가장 큰 의무를 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Ⅹ. 그의 통치 아래에서 양식과 입, 즉 그 나라에서 나오는 땅의 열매와 성읍에 거하는 백성들이 놀랍게 불어날 것이다(16절).

1. 그 나라는 부유해질 것이다. 

거의 수확을 기대할 수 없는 산꼭대기의 땅에 화곡 한 줌만 심어보라. 그러면 “그 열매가 레바논같이 흔들리리라.” 

그것은 나무처럼 자랄 것이며,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매우 굵고 크고 강할 것이다. 산꼭대기에서도 땅은 한 줌의 씨로 열매를 낼 것이다.

이 말은 지붕 위의 잡초가 손에 쥘 수 없을 만큼 많다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처럼 매우 풍성함에 대한 표현이다(4:7). 

이것은 메시야의 날에 복음의 후손이 놀라운 소산을 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산과 이방나라의 불모지에 뿌려진 한 줌의 씨가 놀라운 수확, 즉 레바논처럼 흔들리는 열매를 내어 그리스도께로 거둬들여질 것이다. 

밭은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요 4:35; 마 9:37).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로 자랄 것이다.

2. 마을은 점점 사람 수가 불어날 것이다.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같이”, 수효와 융성함에서 “왕성하리로다.” 

복음 교회, 곧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성읍은 모든 번영의 표적을 가질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은 그 속에서 행복할 것이다.

ⅩⅠ. 그의 통치는 영존하며, 그의 영예가 되고, 그의 신하들의 행복이 될 것이다. 

주 예수는 영원히 군림하신다. 이것은 그에 관한 것으로만 해석되어야 하며, 결코 솔로몬에 관한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대대로”(5절), 그리고 “해와 달이 다할 때까지”(7절)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자는 오직 그리스도이시다.

1. 왕의 존귀는 불멸하며, 결코 더럽혀지지 않을 것이다(17절). 

“그 이름이” 그 광채를 가리고 그 진로를 끊어버리려는 흑암 권세의 모든 사악한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구함이여!” 보존될 것이다. 불멸할 것이다. 

널리 퍼질 것이다. 세상 왕들의 이름이 그 형통함 중에 지속되듯이, 그리스도의 이름도 그 자신 안에 지속된다. 

“그의 이름은 후손에게 전해지리라.” 

세상이 존재하는 한, 만방이 그를 축복되다 일컬을 것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을 축복할 것이고, 그에 대해 끊임없이 찬미하며, 그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여길 것이다. 

마지막 때까지, 그리고 영원까지 그의 이름은 찬양될 것이며, 사용될 것이다. 모든 혀가 그것을 고백하고, 모든 무릎이 그 앞에 부복할 것이다.

2. 백성들의 행복도 역시 보편적이다. 

완전하며 영원하다. “사람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진실로 그리고 영원히 복을 받으리라. 명백하게, 메시야로 인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는, 열조에게 한 그 약속을 언급하고 있다(창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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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기도(시 72:18-19)

메시아와 그의 나라에 의해 앞에 나왔던 이 유명한 예언이, 여기에서처럼 진실된 감사와 찬미로써 끝맺어짐은 합당하다.

Ⅰ. 시편 저자는 여기에서 예언과 약속에 대한 감사를 드리고 있다(18-19절).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가 신뢰하기에 확실하고, 매우 만족스러우므로, 우리는 그가 말씀하신 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충분히 감사드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가 세상을 위해, 교회를 위해, 인생들을 위해, 섭리의 왕국 속에서 은혜의 왕국 속에서 그의 자손들을 위해, 그리고 구속자의 손에 맡겨진 모든 권세와 신용을 위해 행하신 것으로 인해 하나님이 찬미받을 만하심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하여금 가장 훌륭한 태도로 그를 찬양하도록 선동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원해야 한다.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즉, 그 영화로운 이름을 찬송할지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의 영광과 축복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이름으로 인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모든 축복과 찬미보다 뛰어나다.” 그것이 영원히 찬송되도록 하라. 그것은 영원히 찬송되며, 영원히 찬송받을 만하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그것을 찬송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에 의해 행하신 모든 것에 대해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송하도록,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가르침받고 있다. 우리는 그를 어떻게 찬송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1. 여호와 하나님으로서, 스스로 존재하며 스스로 충족하는 자, 그리고 우리 최고의 주로서 찬송해야 한다.

2. 그 백성과 언약하시고, 그들에 의해 경배되는, 그리고 야곱에게 진리를 이행하시고, 아브라함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가운데 이를 행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찬송해야 한다.

3. 창조와 섭리 속에서, 그리고 특히 모든 것보다 뛰어난 이 구속의 사업 속에서 홀로 기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찬송해야 한다. 

사람의 행적은 보잘것없고,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이며, 이러한 일들마저도 그들은 하나님 없이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행하신다. 그리고 그가 행하시는 것은 기사로서 성도들과 천사들의 영원한 경탄의 대상이 된다.

Ⅱ. 그는 이 예언과 약속이 이행되기를 간곡히 기도하고 있다. 

“온 땅에,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예물을 드릴 때” 그러한 것처럼, “그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하나님의 영광에 비하면 이 땅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를, 그가 이처럼 관대하신 은인인 데 비해 그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봉사와 존귀는 얼마나 보잘것없는가를 생각하면 슬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귀와 인류의 번영이 승하기를 바라는 자들은, 땅이 그의 영광을 충분히 깨닫게 되고, 그의 영광을 감사하게 인정하는 일이 있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마음과 모든 입과 모든 집회가 하나님께 대한 높은 찬양으로 채워지게 하자.

우리는 이 기도에서 다윗이 얼마나 진지한가를, 또 그의 마음이 얼마나 그 속에 기울어 있는가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다.

1. 그는 이중의 인을 침으로써 그 기도를 마감하고 있다. 

“아멘, 아멘. 거듭거듭 나는 그것을 말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될지어다 하고 말하도록 하자. 내 기도에 아멘 하라.” 

“이러한 취지─주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소서─를 갖고 있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에 아멘 하라.”

2. 그는 이 기도로써 그의 인생을 닫고 있다(19절). 

이 시가 비록 이 성경에서 맨 끝에 배치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가 생전에 지은 마지막 시편이다. 

그는 그의 임종시의 침상에 누워 이것을 지었고, 그와 함께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 메시야 왕국이 세상에서 세워져 지속되게 하라.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며, 더이상은 원하지 않는다.” 

이것으로써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필하게 하라. 반드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오시옵소서.”


===[보좌, 주권, 정사, 권세, 능력]====골1:15-17, 엡1:20-21
[골1:15, 16, 17]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보좌] 주권들이나 [주관들] 통치자들이나[=정사]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권세==
ejxousiva(1849, 엑수시아) = [국가, 인간사회안에서의]법적 명령의 제정-집행 + 법에 따른 재판 및 처벌권을 부여받은 가진 통치권력/권세....::::  선택의 자유, 권리, 통치력, 권력자. [공직자/공무원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엑수시아(Soph., Thu. 이래)는 엑세스티(e[xesti, 1832: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용인이나 허용되어 왔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a)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어떤 행동을 행할 수 있는 '능력' ability을 의미한다.
(b)  그 다음 이 단어는 보다 높은 사법기관이 허락한 '권리' right, '권세' authority, '승인' permission.
① 정부가 허용해 준 가능성.
② 여러 가지 사회 관계에서의 권리를 의미한다.
(c)  엑수시아는 어떤 잠재적 힘이 타고난 육체적, 정신적, 혹은 자연적인 힘들에 의거하며, 무의식적 행동들, 강한 행위들 그리고 자연 현상들 안에서 드러나는 뒤나미스라는 말과는 대조적으로, 법률, 정치, 사회, 혹은 도덕적 사건들의 영역 안에서 발휘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Plato, Definitiones 415b). 
예를 들면 이 말은 늘 특별한 지위나 명령과 함께 사용되므로, 그 말은 마음대로 처분하는 왕권이나 부권 혹은 소작권(P. Qxy. 11, 273)이나, 관리들 혹은 사자들의 권한을 의미한다(Diod. Sic. 13, 36, 2; 14, 81, 6). 
그 외에도 그 말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받아들이거나 행하는데 필요한 도덕적 자유를 의미한다(Plato, Definitiones 412d). 
따라서 그 말은 사람에게만 적용될 뿐이지, 자연적인 힘이라는 의미로는 사용될 수 없다.
(d)  또한 이 단어는 율법에 맞서는 주제넘은 자유나 변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경우 그 문맥은 대개 법적인 명령이다.
(e)  이 단어는 파생된 의미들로 '권력있는 지위', 복수로 '집권자들이나 권력자들, 공무원, 찬미의 말, 군중' crowd, 그리고 '화려한 것' pomp을 뜻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엑수시아는 70인역본에서 약 80회 나오며, 메스샬라, 살레탄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엑수시아는 70인역본에서 법적인 의미에서 '권리, 권력'을 나타내며, 율법에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다니엘과 마카베오서에서 이 단어는 왕이나 하나님의 힘을 가리킨다. 
70인역본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엑수시아를 사용함으로써, 이 용어를 하나님의 무제한적인 주권의 개념과 바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능력인 하나님의 개념을 우수하게 표현해주는 용어로 소개하고 있다(참조: 단 4:14).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엑수시아는 신약성경에서 108회 나오며, 요한계시록, 누가복음, 고린도전서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엑수시아는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명령권' the power to give orders(마 8:9, 병행구 눅 7:8; 눅 19:17; 눅 20:20)을, 그리고 실제적인 의미에서는 '재판권' jurisdiction(눅 23:7)을, 그리고 복수로서는 '공직자' officials, '당국자' authorities(눅 12:11; 딛 3:1)를 의미한다. 롬
 13:3의 "관원들(아르콘테스[archontes])"와 마찬가지로 1절의 "위에 있는 권세들(엑수시아이스 히페레쿠사이스)"은 (누군가 언급한 것처럼) 천사의 권세들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국가의 공직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외의 것은 블랙의 저술(M. Black)을 참조하라.
신약성경 기자들이 엑수시아와 뒤나미스(duvnami", 1411)를 모두 그리스도의 사역, 우주적인 힘의 구조에 따르는 새로운 질서, 그리고 신자들에게 부여된 권능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눅 9:1에는 두 단어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엑수시아는 성령의 은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뒤나미스(duvnami", 1411)는 기름부음 받은 그의 본질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의 엑수시아는 파송받은 그의 본질에 기초하는 것이다. 
(1) 하나님 자신에게; (2) 마지막 날의 위임자에게; (3)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기독교인에게 속해있는 능력, 권세 그리고 행동의 자유가 바로 엑수시아이다.
(a)  하나님의 엑수시아.
① 하나님의 종말론적 권위는 세계사의 지배자이자 세계의 심판자로서의 그의 역할과 결부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권위로 마지막 날과 때를 결정하며, 역사의 종말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계신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행 1:7). ==하나님은 인간들을 영원한 파멸로 이끌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5). 
우리는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자유한 분이심을 그의 예정 속에서 실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즉 바울은 하나님을 흙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토기장이에 비유한다(롬 9:1; 참조: 사 29:16; 사 45:9; 렘 18:6; 지혜서 15:7; 집회서 36[33]:12이하).
② 하나님은 종말론적 권세를 위임하실 수 있다. 
예를 들어 천사들에게는 심판날에 처벌할 권세가 위임될 수 있고(계 6:8); 다른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받을 수 있다(계 9:3, 계 9:10, 계 9:19). :::   이와는 대조적으로, 천상의 권세(엑수시아이)들은 이러한 종말론적 사건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천상의 권능들이란 말은 아르카이라는 말과 함께 언급되었고, 그 말은 뒤나메이스라는 말과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엡 1:21; 엡 3:10; 골 1:16; 골 2:10). 
그리스도의 높아 지심은 그 권세들이 그에게 복종함을 의미한다(엡 1:21; 벧전 3:22). 그러나 아직 적대 세력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 즉 이 말은 메시야의 통치가 당분간 계속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4).
쿰란 문서들에도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자연인은 흑암의 권세와 악마의 주권하에 있다(골 1:13; 참조: 행 16:18). 그 반대편에 빛의 영역과 성자의 왕국과 하나님 자신이 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악마도 다른 사람들, 예를 들어 적그리스도에게 세상의 통치권을 위임할 수 있다(계 13:2, 계 13:4, 계 13:12). 심지어 악마는 세상 지배권을 주겠다는 말로 예수님을 유혹하였다: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6). 
그러나 이것을 이원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악마의 권세도 하나님에 의해 부여된 것이며 그의 활동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며, 따라서 그의 활동 범위는 제한된다: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눅 22:53). 
악마의 권세에 관한 언급은 세상에 관한 비관적인 견해에서 부여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대한 기쁜 소식에서 부여된 것이다. 악마를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부른 바로 그 대목에서 예수님은 악마의 파멸을 선언하신다.
(b)  예수님의 엑수시아.
①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은 악마와 귀신들이 그들이 권세를 박탈 당했다는 것을 선언한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 분은 악마의 활동을 파괴하고 악마의 지배로부터 인간들을 구해낼 권세를 갖고 계신다. 따라서 귀신 축출은 예수님의 권능에 의거한 것이며(눅 4:36), 예수님의 파송을 받은 제자들도 그 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마 10:1, 병행구 막 3:15; 눅 9:1; 막 6:7; 눅 10:19). 
예수님께서 치유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죄를 사해주시고, 자신의 말씀에 권능이 있음을 확증하셨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권위에 따라 행하신 것이다(마 9:2-8, 병행구 막 2:3-12; 눅 5:18-26; 참조: 시 103:3). 
예수님은 자신의 종말론적 사명, 즉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려는 목적 때문에 결국 → 바리새인들 Pharisees이 이해한 것으로서의 → 율법 Law과 충돌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주장하였던 랍비 할라카(Halachah)의 주장에 의거하여 율법의 축자적인 이해를 거부하였다(참조: 마 12:10, 마 12:12; 막 3:4; 눅 14;3; 요 5:10). 예
수님의 권위는 뭇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이 가르침에서 드러날 수 있었다(막 1:22, 막 1:27; 마 7:29; 눅 4:32). 왜냐하면 그의 가르침은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달랐기 때문이다.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그들의 전통에 따른 것이었는데 반해(마 7:29), 예수님, 즉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은 모세나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 아버지 Father를 아시고 그분을 드러내실 수 있는 아들의 유일한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셨다(마 28:18; 참조: 마 11:27; 눅 10:22; 요 3:35; 요 13:3; 요 10:15; 요 17:25). 
성전 정화에도(참조: 마 21:12이하; 막 11:11-17; 눅 19:45이하; 요 2:13-17; 출 30:13; 레 1:14; 사 56:7; 렘 7:11) 메시야적 권위에 대한 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②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절대적인 권위는 예수님께서 아들이시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 17:2). 
그는 마지막 날의 심판권도 부여받았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 5:27). 
그러나 공관복음에서과 마찬가지로 요한의 기록에서 예수님은 인간들을 심판하고자 하는 분이라기보다는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분으로 묘사된다. 
그의 능력은 강제적인 지배에 있지 않고 세상을 위해 종이 되신 절대적인 자유에 있다. 
예수님은 목숨을 버릴 엑수시아도 갖고 계시며 그것을 다시 취할 권세도 갖고 계신다(요 10:18). 그를 영접하고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엑수시아를 부여받았다(요 1:12).
③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권위의 표상은 부활 사건을 예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부활절 이후 들어 올리우심으로써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예수님은 인자가 나라의 보좌에 오를 것이며 그에게 권능이 부여되리라는 다니엘의 환상을 성취하셨다(참조: 단 7:14). 그러나 지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도들"과 함께 계신다. 
게다가 하나님의 권능은 강압적으로 국가들을 정복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 복음 Gospel 전파로, 즉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세상을 정복함으로써 실현된다. 
외견상 지상에서의 메시야 통치로 여겨지는 것은 교회이지, → 이스라엘 Israel의 주권적인 통치가 아니다(행 1:6-8). 왜냐하면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높이 올리우심은 악한 자의 멸망과 심판과 시대의 전환점에 대한 전조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좋은 소식으로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따라서 승귀하신 주님은 사자들을 파송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권세를 부여하신다(마 28:18-20). 
지상에서 행해진 예수님의 사역과 비슷한 임무를 띠고 있으며, 부활절 메시지의 취지에 따라 활약하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성령을 수여할 권세를 부여 받았는데(행 8:19; 행 2:38; 행 19:6; 행 10:44-48), 그 권세는 인간을 파하는 권세가 아니라 오히려 세우는 권세이다(고후 10:8; 고후 13:10). 
사도는 교회에서 종으로서의 영적인 사역을 행하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육신의 양식을 구할 권리가 있다(고전 9:4-6; 살후 3:9). 이 성구들에서 엑수시아는 '권리'나 '특권'을 의미한다.
(참조: O. Betz; W. Foerster; Walter Bauer; J. H. Thayer). 
==정사==
ajrchv(746, 아르케) 태초, 시작 beginning, 원인 cause. = 머리/머릿돌, 시초/근원/근본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아르케(Homer 이래)는 호머 이래로 헬라 철학에서 중요한 용어이다.
(a)  아르케는 '시작, 출발'을 의미한다. 
시간에 있어서 아르케는 시간의 연속에서 새로운 시작의 시점(기점)을 나타낸다. 시작(아르케)에 대해 말할 때 그 종말(텔로스)도 고려되었다. 시작부터 그 일의 종말을 볼 수 있다. 시작은 무한(the infinite)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 종말도 무한 안에 존재할 것이다.
(b)  아르케는 출발점, 원인, 모든 존재의 제일 원인, 모든 것의 기본 원리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탈레스(Tales)에게 있어서 이것은 물(water)이며, 아낙시만데르(Anaximander)에게 있어서는 무한대(infinity)이며, 아낙시메네스(Anaximenes)에게 있어서는 공기(air)였다. 점차적으로 아르케(arche)는 근원적인 원인으로부터 근원적 법칙들로 그 의미가 발전되었다. 이 근원적 법칙들이란 우주의 발전과 진보를 결정하는 것이다. 
스토아 학파에서는 신(데오스)과 질료(質料)(휠레)가 아르카이(archai)였다.
(c)  아르케는 지위에 있어서 ① '통치권', ② '통치 영역', ③ '권세, 통치'를 의미한다(참조: D.Muller; G.Oelling).
2. 70인역본의 용법 
(a)  아르케는 70인역본에서 약 230회 이상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로쉬 어군의 역어로, '명령, 부대 명령'(삿 9:34; 삼상 11:11), '꼭대기'(렘 22:6), 명수(민 1:2), 근원(창 2:10), 열국 중 '우수함'(암 6:1), (달의) '시작'(왕상 21:9, 왕상 21:11)을 나타낸다.
(b)  아르케는 올람(먼 시간), 또는 케뎀(고대, 옛날의; 예를 들어 합 1:12; 시74:2; 미 5:2)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이렇게 사용될 때 시간에 있어서 먼 과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상태, 민족, 또는 세계의 시초까지도 의미한다. 
이런 의미로 사용될 때 아르케의 의미는, 원초적 상태를 넘어, 기억될 수 있는 그 이전의 상태로부터, 시간 이전의 과거에까지 이르른다(사 37:26).
(c)  아르케는 단 9:21, 단 9:23 등에서 과정의 시작(히브리어 테힐라)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d)  아르케는 멤샬라(지배, 통치)의 역어로 사용되어 '다스림'이라는 요소가 특별히 명백하게 나타난다(창 1:16; 렘 34:1; 미 4:8).
(e)  아르케는 비교적 자주 '통치권, 권세, 권세의 위치'에 대해 사용되었다(창 40:13, 창 40:20이하; 대상 26:10; 마카베오사서 4:17; 느 9:17; 단 7장 등).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아르케는 신약성경에서 55회 나오며, 다음의 의미를 나타낸다.
(a)  아르케는 '시작, 개시'를 의미한다.
① 막 1:1에서 복음의 시작, 막 13:8에서 말세의 재난의 시작, 히 3:14에서 확신, 또는 믿음의 시작, 행 10:11에서 보자기의 시작 즉 귀퉁이를 나타낸다.
② 그리스도는 시간을 초월하여 계신다. 
따라서 시작도 끝도 없다. 그리스도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히 1:10).
③ 아르케는 전치사(아프, 에스)와 함께 시간에 있어서 첫 시점을 나타내는데, 문맥으로 결정된다: 아르케는 예수님의 활동의 "처음"(눅 1:2; 요 15:27; 요 16:4)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믿음의 여부를 알고 계셨다(요 6:64); "
처음부터" 바울의 생활은 그 자신의 민족 중에서 영위되었다(행 26:4). 
요한은 교회가 "처음부터" 소유하였던 것, 곧 동일한 복음, 하나님의 동일한 말씀을 지적하며 그것이 새 계명이 아님을 지적한다(요일 2:7). 처음부터 들은 것을 그들 안에 거하게 하라고 했다(요일 2:24); 이것은 사랑의 메시지이며(요일 3:11; 요이 1:5)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함으로써 유효하게 되는 것이다(요이 1:6).
④ 일부일처제는 창조 시초부터 정해진 것이다(마 19:4, 마 19:8; 막 10:6; 참조: 창 1:27). 
막 13:19("이는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과 벧후 3:4("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에서는 세상의 시초를 뒤돌아보고 있다.
행 11:15에서 '처음'은 예루살렘에서의 교회가 시작된 초기 시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빌 4:15에서 '시초에'는 바울의 선교 활동의 초기를 말하고 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⑤ 살후 2:13의 해석은 상당히 불확실하다. 이 구절은 독자들의 선택이 그들의 탄생 순간부터였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영원부터였다는 의미일까? 
(살후 2:13 )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거짓말장이였으며 진리와는 관계가 없다. 따라서 마귀의 자녀는 단지 그 아비의 욕망만을 실행할 수 밖에 없다(요 8:44) 요일 3:8에 의하면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하였다.
(b)  아르케는 절대적 시초를 의미한다. 
요 1:1은 시간 이전의 어떤 것을 암시한다. 곧 시간 내에서의 시작이 아닌 절대적 시작으로서, 하나님과 결부시켜서만이 언급될 수 있는 시작이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어떠한 시간적 범주로도 진술할 수 없는 까닭이다. 
로고스(Logos)는 엄밀한 의미에서 세상 이전에 선재하신 분이다. 따라서 세상과 함께 시작한 시간보다 먼저 존재하셨다.
요한일서에는 '태초(처음)부터 있는 것'(요일 1:1), '태초(처음)부터 계신 이'(요일 2:13 - 요일 2:14)라는 어구가 나오는데, 이는 영원토록 선재하시고 제자들이 지각할 수 있는 로고스(Logos)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기에서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보여주시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c)  그리스도 자신은 그밖의 모든 것 '이전에' 나신 모든 창조물의 장자이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아르케이다(골 1:18). 
아르케이신 그는 만물의 기준으로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그를 위하여 지음받았다(참조: 골 1:16b). 그는 또한 죽은 자로부터 맨 먼저 부활한 아르케이다.
계 3:14은 이와 매우 비슷한 의미로 그리스도를 아르케라고 칭한다(계 21:6; 계 22:13). 역사를 상대화시키는 종말론은 철학적인 용법과 어느 정도 관계를 가진다: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는 시간 이전과 이후에 존재하신다.
(d)  아르케 '권세, 지배력'에 대해 사용되었다.
① 눅 12:11에서 아르케는 세속적 또는 영적인 권세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눅 20:20에서 아르케는 로마의 행정 관리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딛 3:1에서 아르케, 곧 세속적 능력과 일반적 권세들에 대한 순종을 요구한다: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② 아르케는 초지상적 세력을 나타낸다. 
엡 1:21에서 이들은 하나님께 대적하고, 최고 주권자를 가지고 있으며(참조: 엡 2:2), 다른 영역들, 예를들면, 종교적(참조: 고전 8:5), 성적(참조: 고전 6:15이하), 생명(참조: 고전 15:26), 사회적인 영역(엡 6:12; 참조: 엡 6장)을 지배하고, 천사들과 관련되어 있다(롬 8:38).
골 1:16은 이 절에 있어서 중요한 구절이다. 초자연적인 하늘의 존재들과 권능들(그중 일부는 아르카이[archai]이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화해의 행위는 전 우주를 포괄한다(골 1:20). 
현재에도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아르케와 엑수시아(exousia)의 머리이시다(골 2:10; 참조: 빌 2:10이하). 
그리스도께서는 자연과 역사 모두를 포함하는 세계의 통치자이시며 전 우주의 주님이시며 머리이시다. 
이 관원들과 권세들은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전 2:8).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권세들의 무장을 해제시켰고 그들에게서 힘을 뺏으셨다(골 2:14이하). 
그리스도는 부활로 말미암아 만주(萬主)와 정사들(아르카이, archai)과 권세들과, 지칭될 수 있는 모든 이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승귀하셨다.
이방인을 기독교 신앙으로 부름의 비밀이, 교회를 통하여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에게 알려진 것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인 사상이다(엡 3:10). 
이방인의 부름의 비밀은 영적 세계까지 뻗어나가는 우주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교회의 선포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엡 6:12에서 아르카이(archai)는 기독교인들이 싸워야 하는, 마귀에 의해 지배되는 악령 세계의 일부이다. 
롬 8:38에서 천사와 능력과 함께 나오는 아르카이(복수; 한글 개역에 권세들)는 현재 역사하고 있으나 신자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하늘의 또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특별한 부류를 뜻한다. 
하나님의 나라의 확립을 가져오는 말세의 사건이 일어날 때,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아르케와 뒤나미스와 엑수시아(ejxousiva, 1849)를 멸하실 것이다(고전 15:24).
아르케는 유 1:6을 제외하고는 항상 엑수시아(ejxousiva, 1849)와 함께 사용되었다.
(참조: Walter Bauer; J.H.Thayer; G.Oelling; H.Bietenhard). 
==주관/주권==
kuvrio"(2962, 퀴리오스) 주님 Lord, 주인 lord.
1. 고전 헬라어의 용법. 
퀴리오스는 퀴로스(ku'ro": 힘, 권위)에서 유래했으며,
(a)  형용사로는
① '힘이 있는, 권세(력)을 가진, 권한을 부여 받은, 권위 있는, 유효한'을 뜻한다. 여기서 힘이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지배력을 뜻하며, 법의 경우에는 유효하다를 뜻하며, 사람에게 사용될 때는 권위 있거나 자격이 있다는 뜻이며, 통치자의 경우에는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다를 의미한다.
② '중요한, 결정적인, 주요한'을 의미한다.
(b)  명사로 초기에 드물게 사용되었으나 두가지 고정된 의미
① 종, 집, 시민의 주인,
② 아내나 여자 아이의 법적 보호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두 의미 모두 합법성과 권위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아테네에서는 데스포테스(despovth", 1203: 주, 주인, 소유자)라는 단어가 더 흔하게 사용되었다. 
코이네 헬라어에서 퀴리오스가 법률적인 의미를 더 강하게 지니고, 소유권보다 처분권에 더 강조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두 단어는 거의 서로 교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신약시대에 가까워질수록 법률적인 요소가 더 강조되게 되었고 데스포테스가 퀴리오스로 점점 대체되는 경향이 있었다.
(c)  처음에 공직자들은 퀴리오이(복수)라고 불리지 않았지만 점점 그 칭호를 붙이는 관습으로 발전 되었고, 나중에는 퀴리오스가 철학자, 의사, 청중들, 남편(아내가 부를 때), 아버지(자식이 부를 때)에 사용되었으며, 그리고 지위가 높은 사람은 누구든 아주 일반적으로 퀴리오스로 일컬어지고 퀴리에(여성형), 퀴리아(Kuriva, 2959)라고 불리워졌다.
(d)  초기 시대에는 퀴리오스가 왕들이나 신들의 칭호로 사용되지 않았다.
 헬라 시대에 퀴리오스라는 칭호를 왕들(통치자들)이나 신들에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주전 1세기에 이르러서 였다(참조: W. Foerster).
퀴리오스 바실류스(주, 왕)는 주전 64년과 50년 사이에 자주 사용되었다. 주전 12년에 이집트에서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데오스 카이 퀴리오스(하나님과 주)라고 일컬어졌다(BGU, 1197, I, 15). 
상부 이집트에서 여왕 간다게(참조: 행 8:27)는 헤 퀴리아 바실릿사(여주인, 여왕)으로 불리워 졌다. 
퀴리오스라는 명칭은 헤롯 대왕(약 73 ~ 4 B.C), 아그립바 1세(약 10 B.C ~ A.D 44), 아그립바 2세(A.D 27 ~ 약 100)에게도 사용되었다. 
통치자들 외에, 고관들도 이 칭호를 받았으며, 예를 들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총독이 이 칭호를 받았다. 시리아에서도 사정은 이집트에서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주전 1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동양에서도 군주를 퀴리오스라고 불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퀴리오스 데오스(주와 통치자)와 같은 칭호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퀴리오스는 신들에게 사용되어 그 시대에 유행했던 사상과 언어에서도 신들을 주(lord)라고 불렀다. 이 경우에 퀴리오스는 기초가 되는 셈어의 상당어구(예: 아돈, 마라, 여성형 랍바트)를 번역한 것이다. 이런 용어들에는 항상 인칭 대명사(나의, 우리의 등)가 첨가되어 신의 이름 앞에 붙여졌다. 
퀴리오스를 신에게 사용했을 경우, 이 말을 사용한 종은 그 신에 대한 인격적인 책임 관계에 있게 되며 이때 신은 개인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의 아돈이 권력을 가진 주를 의미할 때,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상당어는 당연히 퀴리오스이다. 각 신들은 그들에게 제사하는 공동체의 주(lord)로써, 그리고 그 공동체에 속한 각 구성원들의 주 lord로써 숭배 받았다. 다른 주 lord(신)들을 숭배하는 것이 배제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신들 중 어느 하나도 우주적인 주로서 형성화되거나 숭배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e)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B.C. 31 ~ A.D. 14)와 티베리우스(Tiberius, A.D. 14 ~ 37)는 로마인들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동방 형태의 군주정치를 거부했으며, 그와 더불어 퀴리오스라는 칭호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칼리굴라(Caligula, A.D 37 ~ 41)는 퀴리오스라는 칭호가 매력적인 칭호임을 인식하였다. 
네로의 비문에는 호 투 판토스 코스무 퀴리오스(세상 모든 사람들의 주, SIG 814, 31)가 묘사되어 있는데 네로(Nero, A.D 54 ~ 68) 이후에 퀴리오스라는 칭호는 더욱 더 자주 사용되었다. 가장 오래된 예문 중의 하나가 사도행전 25:26이다.
 퀴리오스라는 칭호는 도미티안(Domitian, A.D 81 ~ 96)에 의해서 다시 평판이 나빠졌는데, 이는 그가 공식적인 서한에서 자기 자신을 도미누스 엣 데우스 노스테르(우리의 주와 하나님)라고 불렀기 때문이다(Suetonius, De Vita Caesarum, 13, 2). 도미티안의 사후에 이 칭호는 그에 대한 기억(담나티오 메모리아에)과 더불어 혐오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는 나중에 다시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 
본래부터 저절로 퀴리오스라는 칭호가 황제를 신이라고 부르지 아니하였다. 그가 신으로 숭배될 때 주라는 칭호도 신의 속성으로 간주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국가의 전체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거부한 것은 곧 지나치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이런 종교적 주장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처음으로 퀴리오스라고 부르는 용법은 70인역본에서 나타난다(참조: H. Bietenhard).
2. 구약 및 70인역본의 용법. 
퀴리오스는 70인역본에서 약 9000회 이상 나오며, 24개의 히브리어 단어 및 어군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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