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역개정]제3장..이스라엘-유다-에돔의 모압 원정 전쟁...전투 장소 : 세렛골짜기.. 요람/여호람 יוהורם, יורם으로도 사용 [491.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399.어린양들아 두려워말아라] [400.험한시험물속에서] [401.주의곁애있을때] [386. 만세 반석 열린곳에] [390. 예수가 거느리시니] .....길르앗 라못 전쟁 발발 시점에서 3년 이내 즈음에, 아합과 여호사밧은 (여호람과 아달랴를 맺어주는) 혼인동맹을 맺었고 아합은 아람 벤하닷2세에 대한 길르앗 라못 탈환 전쟁에 함께 나서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는게 자연스러울듯... .....여호사밧은 아합과 함께 원정 나간 길르앗 라못에서의 패전 후 돌아와서 내치와 여호와 신앙 중흥에 힘쓰던 중에, 사해를 건너 남유다를 침범한 모압(길르앗 라못 탈환전쟁 중 아합 전사 직후 독립)-암몬-에돔(세일산)의 마온족속 연합군에 대해 주님께서 친히 이뤄주신 브라가 골짜기의 승리를 경험한 바 있음(아마 이때, 에돔은 이스라엘 치하에 있었다가 모압 원정전쟁 후에는 유다로 넘어와 귀속되었고 그후 여호사밧이 섭정왕을 두었던것으로 보임) [아합전사 당시-아하시야 죽음 전후에까지 엘리야는 엘리사와 함께 갈멜산에 머무르고 있었음.....아하시야 등극2년째에 사마리아에서 사역, 아하시야의 즉음으로 아우 여호람이 등극하게 됨...이때 엘리야의 승천 사건이 있었을 것..그후 엘리사는 갈멜산 거쳐 사마리아로 돌아와 있었다], 아하시야의 뒤를 이어 등극한 여호람은 여호사밧에게 모압 원정 전쟁을 제안하였고[=적어도 브라가골짜기 승리후 최소 3년여 경과 시점일듯]..여호사밧은 또!! 주께 여쭈어보지 않고 함께 원정전쟁 벌이기로 언약해버리고 있음....이스라엘-유다-에돔 연합군이 모압정벌 전쟁 출정, [방비가 엄중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압 북쪽경계가 아니라] 에돔광야길을 통하여 모압 남쪽경계쪽으로 향하여 나아간지 7일만에 ((와디이기는 하지만 매년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강이었던 세렛골짜기였기에..바짝 마름은 전혀 예상치 못한바)) 전군의 기갈상태에 빠짐..어쩐일인지 에돔을 거치는 우회로를 택한 행군은 목표대로 직행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예정보다 도착 일정이 지연되었고, 게다가 행군 목표지점인, 에돔과 모압의 경계가 되는 '아시'(Ashi)의 바위 [세렛 골짜기에 속함] 그곳에 이르러서는 연합군은 ((비록 세렛골짜기는 와디지역이지만, 그곳에는 사시사철 물이 흐르고 있었기에.. 물 걱정은 전혀 없으리라고 여겼던)) 강이 바짝 말라버린 것을 직면하고 있었다...((여호람은 이 사정을 보고 낙심하여 여호와를 원망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지만, 여호사밧은 주께 여쭙기로 마음을 정하고, 근처에 주의 선지자가 없느냐 묻고 있다..이때, 이미 은밀하게 정체를 숨기고 종군 중이었던 엘리사, 그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었던 군사에게 보고받아 알고 있었던, 왕의 신하가 근심하고 있는 세 왕들에게 나아가 엘리사가 종군하고 있음을 보고하는바, 그를 찾아감)) ....[주님께서는 주를 경외하며 사랑하는 여호사밧 바로 그 한 사람을 눈여겨 보고 끝까지 친히 임재로 동행하고 계심으로써 그 군대 전체를 구원하고 계심을 분명히 일러주고 계신다!!...즉.여호사밧 때문에 주께서 구원의 오른손 펴심을 일러주시고 예언의 말씀을 베푸신다!!] 엘리사는 (주께서 이르시기를, 골짜기에 참호/구덩이/개천들을 많이 파라,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군대와 짐승-가축들이 풍족히 마시게 될것 + 모압에 대해 승리 거두고 너희들로 인해 모압 전역이 황폐케 될것이라 하신대로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게 되리라 = 다 이루게 하실것)을 예언함 ==>세렛 시내, 곧 오늘날 와디 엘 하사(Wadi el-Hasa)....세렛 시내는 55km의 길이에 그 넓이는 5.5-6.5km에 달하고 사해 남동쪽으로 물을 배출한다.....그러나, 모압왕은 그의 군대가 패전했음을 보고 궁여지책으로, 왕도인 길하레셋 성문 위에서 왕위계승자인 자기아들을 불살라 그모스에게 공개적으로 제사하였고...이를 목도한 연합군은 기가질려서 주춤거리며 더 진행하기를 멈추었고, 그 직후에 군사들을 물려 귀국길에 오르고 있었다.
1. 유다의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2년간 왕위에 있었던, 엘리야에게 죽게될 것을 면전에서 통고 받고 죽은, 형 아하시야의 뒤를 이어 등극]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리니라 2.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3. 그러나 [일시적이었을뿐 후에는]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바알우상숭배 허용-치워버렸던 우상들도 원위치시킴)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5.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6. 그 때에 여호람 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 온 이스라엘을 둘러보고[--이미 모압 원정 전쟁 위한 모병을 완료하였다] 7. 또 가서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사신을 보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냐 하니 [서슴없이 -주께 묻지 않고!!-제 소견에 좋아보이는대로!!]그가 이르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는지라 8. 여호람이 이르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하니 그가 대답하되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 하니라 9.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과 에돔 왕이 가더니 길을 둘러 간 지 칠 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가축을 먹일 물이 없는지라((예기치못한 상황 직면!!)) .....대개 전쟁 시기는 가을 걷이 끝나고 비 내린 후인, 해가 돌아오는 시기, 즉 믈 공급이 상대적으로 충분할 때에 벌였다. 10. 이스라엘 왕이 이르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 하니 11. 여호사밧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2. 여호사밧이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 하는지라 이에 이스라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하니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 하니라 14.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 16. 그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18.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19.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20.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사업 구상에 있어서!! 실상황에 대한 세심/세밀한 사전 조사--탐색/정찰 , 환경/제반 조건/시기는 어떠한지 + 무엇버다도 Q 앙망하여 여쭐때 평강 있는가 + 사업 구상/진행 동기의 근본적 배경/바탕, 함께 하는 파트너의 신실성은 어떠한지 등 다시 주 앞에서 돌아볼 것] 이러한 빛 비췸 따른 신중함 없이 탐욕/오도됨만 따르게 되면 :: (좁은 소견+기대)로 치우침 :: 오해-착각/오도됨으로 틈 내줌이 됨:: ((주님께 확인-재차 확인-최종 확인 없이 게으름 피움...마땅한 최종 확인 없이 서두르면)) :: 오도됨 ==>공멸의 함정에 빠질 수 있음 ::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짐 21. ○모압의 모든 사람은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서 있더라 22.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23. 이르되 이는 피라 틀림없이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24.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25. 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26.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이는 도우시는 Q이 강하심 때문이다] 칼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YHWH께 돌이킴 없음...끝까지 고집 부림...오히려 "그모스가 참신이다--너희들 가짜들은 엿먹어라"고 증거하려는듯 함 ==>"그렇다면 나는??, 정말 Q말씀 그대로 믿고 끝까지 서는자인가...회개하고 이끄심 끝까지 따라야 할 터인데!!] 27.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통분함....히브리어 '케체프'.. קֶצֶף ..카프-체데-카프....(빛 비춤으로 어둠을 밝히시고 불사르고 빛 비추며 생명말씀으로 가득 채워 새롭게하심으로써 십자가의 처리/부활생명의 발아 통해 참소망 구주의 증거자 됨 위해 찌르시며-베어내시며-깨뜨려 부수시며 산산조각 감수하리이다....사랑 충만이시라 주님의 공의로 마음판 새기소서..근본동기의 정결함, 그 새롭게 하시기 원하사 이리 행하심을, 그 모든 시간을 아프더라도 감수하며 기다리게 하소서!!) '부수다', '파열하다', '갈라지다', '격노-통분- 분노하다'란 뜻의 카차프(*)에서 유래 --- ...길하레셋의 돌들은 왜 그대로 두었는가...문제만 해결되면 끝!!...마치 Q도움 없이 스스로 이기고 있는 것처럼..."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내일 하지, 뭐.."의 여유만만해진 여호람(동행 여호사밧도 마찬가지였다!!), 주님의 열심/열망대로까지 순종하지 않는/순종의 가져오는 임마누엘 주님의 두르심의 능력이라고는 한번도 경험-체득해 보지 못한, 신앙의 신출내기 이스라엘 여호람/(여기에, 그의 그릇됨을 절실히 깨달은 여호사밧은...더 이상 조언하기를 그만두었다....)유다 여호사밧에 대해서도(!!....신앙의 선배인 여호사밧, 너라도 내게 여쭙고 어찌 진행할지 앞장서서 묻고 말씀 이루시도록 구하여야 할 것 아니냐!!) 정말 아프고 슬픈 심정을 나타내고 계심....--[인내하여 끝까지 말씀 이룸 목표삼아 달려가지 않고, 여기까지만..하고 스톱]... 그 문제.. ---[히12:1-13... *1.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 [NASB]제3장
1. Now Jehoram the son of Ahab became king over Israel at Samaria in the eighteenth year of Jehoshaphat king of Judah, and reigned twelve years. 2. And he did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though not like his father and his mother; for he put away the [sacred] pillar of Baal which his father had made. 3. Nevertheless, he clung to the sins of Jeroboam the son of Nebat, which he made Israel sin; he did not depart from them. 4. Now Mesha king of Moab was a sheep breeder, and used to pay the king of Israel 1000000 lambs and the wool of 1000000 rams. 5. But it came about, when Ahab died, the king of Moab rebelled against the king of Israel. 6. And King Jehoram went out of Samaria at that time and mustered all Israel. 7. Then he went and sent [word] to Jehoshaphat the king of Judah, saying, "The king of Moab has rebelled against me. Will you go with me to fight against Moab?" And he said, "I will go up; I am as you are, my people as your people, my horses as your horses." 8. And he said, "Which way shall we go up?" And he answered, "The way of the wilderness of Edom." 9. So the king of Israel went with the king of Judah and the king of Edom; and they made a circuit of seven days' journey, and there was no water for the army or for the cattle that followed them. 10. Then the king of Israel said, "Alas! For the LORD has called these three kings to give them into the hand of Moab." 11. But Jehoshaphat said, "Is there not a prophet of the LORD here, that we may inquire of the LORD by him?" And one of the king of Israel's servants answered and said, "Elisha the son of Shaphat is here, who used to pour water on the hands of Elijah." 12. And Jehoshaphat said, "The word of the LORD is with him." So the king of Israel and Jehoshaphat and the king of Edom went down to him. 13. Now Elisha said to the king of Israel, "What do I have to do with you? Go to the prophets of your father and to the prophets of your mother." And the king of Israel said to him, "No, for the LORD has called these three kings [together] to give them into the hand of Moab." 14. And Elisha said, "As the LORD of hosts lives, before whom I stand, were it not that I regard the presence of Jehoshaphat the king of Judah, I would not look at you nor see you. 15. "But now bring me a minstrel." And it came about, when the minstrel played, that the hand of the LORD came upon him. 16. And he said, "Thus says the LORD, 'Make this valley full of trenches.' 17. "For thus says the LORD, 'You shall not see wind nor shall you see rain; yet that valley shall be filled with water, so that you shall drink, both you and your cattle and your beasts. 18. 'And this is but a slight thing in the sight of the LORD; He shall also give the Moabites into your hand. 19. 'Then you shall strike every fortified city and every choice city, and fell every good tree and stop all springs of water, and mar every good piece of land with stones.' " 20. And it happened in the morning about the time of offering the sacrifice, that behold, water came by the way of Edom, and the country was filled with water. 21. Now all the Moabites heard that the kings had come up to fight against them. And all who were able to put on armor and older were summoned, and stood on the border. 22. And they rose early in the morning, and the sun shone on the water, and the Moabites saw the water opposite [them] as red as blood. 23. Then they said, "This is blood; the kings have surely fought together, and they have slain one another. Now therefore, Moab, to the spoil!" 24. But when they came to the camp of Israel, the Israelites arose and struck the Moabites, so that they fled before them; and they went forward into the land, slaughtering the Moabites. 25. Thus they destroyed the cities; and each one threw a stone on every piece of good land and filled it. So they stopped all the springs of water and felled all the good trees, until in Kir-hareseth [only] they left its stones; however, the slingers went about [it] and struck it. 26. When the king of Moab saw that the battle was too fierce for him, he took with him 700 men who drew swords, to break through to the king of Edom; but they could not. 27. Then he took his oldest son who was to reign in his place, and offered him as a burnt offering on the wall. And there came great wrath against Israel, and they departed from him and returned to their own land. ============== 이제 엘리사가 관계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공적(公的) 일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1.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의 일반적 성격(1-3). 2. 여호람과 그의 연합군이 개입하게 되는 모압과의 전쟁(4-8). 3. 동맹군이 모압 원정에서 처한 곤경과, 곤경 속에서 저들은 엘리사와 상의하고, 엘리사는 그들에게 평화의 응답을 줌(9-19). 4. 이 전쟁의 영광스러운 결과(20-25)와 동맹을 퇴각시키기 위해 모압 왕이 취한 야만적 방법(26, 27). 아합 왕가가 멸망의 운명에 처하게 된다. 또한 본 장에서 보면, 앞에서 보다 이스라엘의 성격과 조건이 나아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고된 파멸은 그리 멀지 않다. =========== 여호람의 통치(왕하 3:1-5) 아합의 아들이며, 아하시야의 동생인 여호람이 이스라엘의 왕좌에 올랐다. 또한 그는 나쁜 사람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에 관한 두 가지의 존경할 만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Ⅰ. 그는 자기 아비의 우상을 제거했다. 그는 여러 가지 일에서 악을 행했으나, 자기의 아버지인 아합이나 그의 어미 이세벨과 같지는 않았다(2절). 비록 그가 악했지만, 솔로몬이 전도서 7장 17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악하거나 “극도로 사악하지는” 않았다. 여호사밧은 아합가와의 제휴로 말미암아 자기 가계를 개악(改惡)시켰지만, 아합가를 개선하는 데는 어떤 역할을 했으리라. 여호람은 자기 아버지와 형제가 바알을 숭배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았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현명하게 교훈 삼았다. 또한 “바알의 우상을 제거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 섬기기로 하고, 그의 선지자들과 상의했다. 지금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 사실이 아합가의 멸망을 예방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멸망은 “그의 시대에” 닥쳤고, 그는 그 가족 가운데서도 가장 나은 자였지만, 그 멸망은 바로 그 위에 닥쳤던 것이다(9:24). 왜냐하면 죄악의 그릇이 바로 그 때에 다 찼기 때문이다. 여호람의 종교 개혁은 없었던 것과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1.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 우상을 제거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일은 여호사밧에 대한 답례로 행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호사밧은 여호람의 형과 제휴하지 않았듯이 그와도 제휴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왕상 22:49). 그러나 그는 백성 가운데 있는 바알 숭배를 없애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후에 예후는 바알 숭배가 만연한 것을 발견했다(10:19). 그의 집안을 개혁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그는 당연히 자기의 권력을 자기 국가의 개혁을 위해 사용해야 했을 것이다. 2. 그는 우상을 제거하고도, 바로 여로보암의 정책적인 죄(3절)인 송아지 숭배를 계속 고수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떠나지 않았다.” 이것은 바로 두 지파(유다 왕국) 사이의 경계를 지탱해 주는 국가적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참으로 기꺼이 죄를 뉘우치거나 개혁하지 않고, 다만 저들에게 손해를 주는 죄만 버렸고, 이득이 되는 죄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애착을 가졌던 것이다. 3. 그는 단지 바알 우상을 “제거했을” 뿐이며,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대로, 그 우상을 산산이 파괴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당분간만 치워 두면, 또 다른 때에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세벨은 국가를 이유로 내밀히 그녀의 바알을 섬기는 일에 만족했던 것이다. Ⅱ. 그는 자기 형의 실점을 만회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그가 이스라엘인의 종교에 대해 아버지보다도 나은 견식을 지니고 있었듯이, 그의 형보다도 왕의 정신의 더 좋은 면을 소유했던 것이다. 모압은 아합의 사망 직후(1:1) 이스라엘에 대해 반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그들을 징계하거나, 복원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못했다. 그는 다만 대책을 강구하고, 그들과의 싸움의 수고와 위험을 감수하여 모험을 감행하기보다는 나약하게 자기의 이권을 그들에게 달려 보냈다. 여기서 그의 어리석음과 비겁과 공익에 대한 무관심은 더욱 나쁜 일이었다. 왜냐하면 모압 왕이 주는 공물은 이스라엘 궁정의 상당한 수입원, 곧 “10만 마리의 양과 10만 마리의 거세된 양”이었기 때문이다(4절). 당시 왕의 부는 돈보다 가축에 있었으며, 솔로몬이 통찰한 것처럼 “왕위는 영원히 계속되지 못하는” 것이므로(잠 27:23, 24), 저들이 “양떼의 형편을 아는 것”도 그들에 못지 않은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세금을 돈으로 지불하기보다는 그 땅의 특산물로 지불했는데, 이것이 군주에게 유익이 되었든지 아니든지 간에, 신하들에게는 용이한 것이었다. 모압의 반항은 이스라엘에게 큰 손실이었음에도 아하시야는 나태와 안이 속에 있었다. 그의 집 다락이 그에게 치명상을 주었듯이(1:2), 그들의 높은 곳(신당)도 그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었다. 궁정의 난간이 무너진 사건은 아하시야의 왕좌에 보다 활동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을 앉혀 놓았고, 그는 적어도 자기 영토를 보존하기 위한 일침을 가해 보지도 않고서 고스란히 모압 통치권을 잃고 싶어하지 않았다. ------------ 모압 원정(왕하 3:6-19) 여호람은 권세를 손에 잡자마자, 모압을 진압하기 위해 칼을 잡았다. 왕관은 그 왕관을 쓰는 자들의 머리에 큰 염려와 위험을 가져오는 법이다. 명예를 얻자마자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Ⅰ.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과 유다 왕 여호사밧은 이 원정에 협조했다. 여호람은 군대를 징집했다(6절). 그리고 유다의 경건한 왕에게 다음과 같은 의견을 보냈다. 1. 그는 여호사밧을 설득하여 동맹자로 삼았다.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겠느뇨?” 그리하여 그는 여호사밧을 얻었다. “나는 올라가리라. 나도 당신과 한가지라”(7절). 유다와 이스라엘은 비록 불행히도 서로 분열되기는 했지만 아직은 공동의 적인 모압에 대응하여 단결할 수 있었다.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이 다윗가에서 반동해 나간 것을 책하지 않았다. 비록 그들의 충성을 요구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기도 했지만, 자기들에게 다시 복종하라는 조건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자매국으로 대우했다. 자기들 마음속에서 옛날의 상해를 결코 용서할 수 없고, 잊을 수도 없고, 예전에 자기들의 권리를 침해했던 사람들과 화합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평화와 힘을 위한 어떤 친구도 가질 수 없다. “처음에는 권위가 없던 것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권위를 얻게 된다”(Quod initio non vubuit tractu temporis invalescit). 2. 그는 여호사밧을 극진한 친구처럼 대하고 의논했다(8절). 그는 어떻게 모압 땅을 공략하는가에 대해 자신보다 지혜와 경험이 많은 여호사밧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에게 가장 가까운 길로 요단을 건너서 그들에게로 가면 안 되며, “에돔 광야를 통하여” 돌아서(에돔은 유다에게 공물을 바치는 나라다) 에돔 왕과 그의 군대를 대동하자고 했다. 둘이 하나보다 낫다면, 하물며 “삼겹 줄이 쉽게 끊어질 수” 있으랴! 여호사밧은 예전에 이미 아합과 연합하여 값비싼 대가를 지불할 뻔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또!! 아합의 아들과 연합했다. 또한 이 원정도 그에게 손상을 줄 뻔했다.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하여 얻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Ⅱ. 이 원정에서 동맹군이 처하게 된 큰 곤경. 그들은 적군의 낯을 보기도 전에, 물 부족으로 말미암아 멸망의 위험 속에 빠졌다(9절). 그 곳은 자기들의 선조들이 물이 모자랐던 바로 그 광야이므로(민 20:2), 이 광야를 행군하기 전에 그러한 점을 고려해야만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 스스로의 몰지각으로 인해 곤경에 빠지도록 버려두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섭리의 지혜와 권능과 자비로 구원받게 될 때, 하나님께서 더 큰 영광을 받으실 수 있게 되었다. 물보다 싸고 흔한 것이 어디 있는가? 그것은 “들의 모든 짐승도 마시는” 것이다(시 104:11). 그러나 바로 그러한 물이 없어서 왕들과 군대들이 곤욕을 당하고 죽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왕은 현재의 곤경과 곧 닥칠 위험을 몹시 슬퍼했다. 그것은 그들이 곧 그들의 원수 모압 족속의 손에 떨어지게 되고, 기갈로 인해 병력이 약화되면 보다 쉽게 희생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10절). “이 왕들을 불러 모은” 것은 바로 이스라엘 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한 것은 바로 섭리자 하나님 자신이라고 빈정대고, 그것을 불친절로 생각하고 있다. 즉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았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한다”(잠 19:3). Ⅲ. 여호사밧은 이 긴급사태에서 하나님의 조언을 구하자는 좋은 제안을 했다(11절).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자기들의 선조들이 자기들에게 말해 주던 그 기사(奇事)”를 일깨워 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곧 이스라엘인들에게 때맞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바위로부터 물이 나왔던 장소다. 아마 그러한 회상이 여호사밧으로 하여금, 모세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없는가?” 하고 물어보게끔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아마 이것에 대해서는 그가 더욱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저들을 이 광야를 거쳐서 원정길에 나서게 한 것은 바로 그의 충고였기 때문이다(8절). 그 때 여호사밧이 여호와를 찾은 것은 잘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리로 오기 전에 그렇게 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곤경은 예방될 수 있었을 것이다. 능숙한 사람들도 때로는 태만하고 망각하는 수가 있으며, 심지어 필요한 곤경이 자기들을 역경 속으로 몰아넣을 때까지 자기들의 본분을 잊는 것이다. Ⅳ. 엘리사가 그들과 합의할 수 있는 적절한 인물로 추천되어 있음을 발견했다(11절).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은 의아스럽게 생각된다. 1. 엘리사가 이와 같은 지루한 원정에 하나의 지원자로서, 또 아무런 감시도 받지 않고, 그리고 또 전혀 어떤 영예로운 지위를 가지지도 않은 채 참가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의 제사장”(신 20:2)이라거나 작전 참모로서 그 전쟁에 따라간 것이 아니었다. 또 왕들 중 아무도 자기의 대열 속에 그와 같은 보석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들의 수행원 가운데 그렇게 좋은 전우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그런 애매한 처지에 엘리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추측건대, 엘리사는 그 전쟁에 가담하여 “이스라엘의 수레와 그 마부”로서, 하늘로부터의 특별한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미리 축복을 베풀어 주시고, 그들에게 그의 말씀을 주신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들 자신의 어떤 공로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염려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과 영을 더욱 더 염려해 주신다. 그렇지 않다면, 만사는 더욱 악화되는 수가 많다. 2. 이스라엘 왕의 종―그 자신은 알지도 못했지만―은 엘리사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종은, 오바댜가 여호람의 아버지 아합 왕 때 그러했듯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였을 것이다. 엘리사는 열왕에게 알리지 않았으나, 그렇게 경건한 자들에게는 자기를 알렸던 것이다. 그 종이 엘리사에 대해 한 이야기는, 그 사람이야말로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람”, 곧 엘리야의 종이었다는 사실이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가 손을 씻을 때에 그에게 수종을 들던 자라는 점이었다.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섬기는 것을 배워야 한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먼저 낮아지라. Ⅴ. 엘리사에게 탄원한 왕들의 간청을 살펴보자. 그들이 직접 엘리사의 숙소로 내려갔다.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말씀과 함께 사는 선지자에 대해 존경심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자기를 낮추어 그 선지자를 직접 방문했다. 즉 다른 부하들을 시켜서 물어오게 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두 왕도 자기들이 당한 곤경 때문에 그 선지자에게 간청을 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었다. 자기 자신을 낮추는 자는 이처럼 높아졌다. 그리하여 그 세 왕은 이 선지자의 방 문을 두드리고 그의 협조를 빌게 되었다(계 3:9 참조). Ⅵ. 엘리사가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1. 사악한 왕, 이스라엘 왕에 대해서는(13절) 아주 냉담했다.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로부터 당신이 어떻게 화평의 대답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평안할 때 위해 주고 지원해 주던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선지자에게로 가시오. 그들에게 당신의 곤경을 도와달라고 하시오.” 엘리사는 여호사밧과는 달리 이스라엘 왕의 부분적이고 형식적인 개혁에 속지 않았다. 그가 바알 상들을 치워 버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에게 바알의 선지자들이 있었고, 아마 그들 중 몇몇은 이 전쟁에 참가했을 것이다. “가라. 그들에게로 가라. 세상과 육체가 당신을 다스렸으니, 그것들이 당신을 도우리라. 당신이 섬기는 신들에게로 가라(삿 10:14). 어찌하여 당신이 하나님을 구하는가?”(14:3) 엘리사는 그의 면전에서 그의 악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토로했다. 즉 그는 진심으로 “그를 향하거나 보고도” 싶지 않다고 했다(14절). 왕으로서의 여호람은 존경을 받아야 하나, 악한 인간으로서의 그는 너무도 극악무도했으므로 정죄를 받아야 했다(사 15:4). 엘리사는 신하로서 그를 존경하고 싶었으나, 선지자로서는 왕에게도 그 자신의 악을 알게끔 해야 했다. 이와 같이 특별한 직임을 맡은 사람들에게는 (일반인들과는 달리) “너는 악하다”(욥 34:18)라고 왕에게 말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여호람은 이 냉담한 대우를 인내성 있게 받아들이는 큰 자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바알 선지자들에게서 말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현재의 상황을 매우 개탄하면서, 또 그 선지자가 이 사실에 동정 어린 배려를 해 주기를 바라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선지자에게 겸손한 탄원을 보내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기가 하나님께 합당치 못한 자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다른 왕들이 자기로 말미암아 죽게 되는 것을 바랄 수는 없었다. 2. 믿음이 깊은 유다 왕은 엘리사의 존경을 받았다. 엘리사는 “그의 낯을 보아서”, 바로 그 왕 때문에, 그 모두를 위해 “여호와께 간구”하고 싶어했다. 하나님의 은총과 그 선지자들의 호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악한 사람들도 때로는 그들이 신실한 사람들의 단체의 일원이거나 그들과 우의를 맺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좋은 대접을 받을 수가 있다. 3.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렸다. 여호람을 보았을 때는 다소 착잡하고 분개해 있었다. 엘리사는 범죄에 이를 정도로 화를 내지도 않았고 충고를 못 할 만큼 성을 내지도 않았다. 이제 당면한 문제에 대한 거룩한 열성 때문에 성령의 역사와 기도를 준비하기 위해서 그의 마음은 진정되었다. 기도는 아주 침착하고 안정된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거문고를 뜯으며, 시를 노래하는 경건한 한 악사를 불러왔다. 다윗이 명령했던 바와 같이, 하나님의 찬송이 아름답게 들려지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안정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또 기도하는 데에 적합한 정신 상태를 되찾는 계기가 된다. 선지자 무리가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나왔던 기사를 우리는 볼 수 있다(삼상 10:5). 하나님과의 교제를 원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마음을 조용하고 냉철하게 보존해야 한다. 엘리사는 이제 거룩한 음악이 준 감동을 받아 새 기운을 얻어서 “여호와의 손이 그 위에 임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찾아오는 것은 왕 세 사람이 찾아오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이다. 4.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그들의 현재의 곤경은 잘 해결될 것이요, 영광스럽게 되리라는 확신을 주셨다. (1) 그들에게 즉시 물이 공급될 것이라 했다(16, 17절). 엘리사는 그들의 신앙과 복종심을 시험하기 위해 “개천에 골짜기를 많이 파서” 물을 받을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는 자들은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마치 저들이 바가의 골짜기에서 행한 것처럼, 또한 샘까지 만들었던 것처럼, 비를 채울 수 있는 “못을 파야” 했다(시 84:6). 또 엘리사는 아직 “바람도 비도 없는데도, 물이 충분히 공급될 것”이라고 말하여 그들의 경이감을 더하게 했다. 엘리야는 기도로써 구름에서 물을 얻었으나, 엘리사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물을 끌어 내오는 것이다. 이 물의 시원(始原)은 나일 강의 근원처럼 비밀한 곳에 있었다. 하나님은 제2의 원인(자연)에 구애받지 않으신다. 대체로 하나님은 풍성한 비를 통해 “그(하나님)의 산업을 견고케 한다”(시 68:9). 그러나 여기서는 비 없이, 적어도 그 지역에는 비를 내리지 않고서 그 산업을 견고케 하셨다. 아마 이 때 “큰 깊음의 근원이 터졌을” 것이다. 그 기적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그 골짜기에만”(그런 것 같다) “물이 가득했다.” 그 밖의 다른 어느 곳에도 물은 고이지 않았다. (2) 이 물 공급 사건은 승리의 전조가 되리라 했다(18절). “이것은 여호와의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 네가 멸망에서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승리하여 돌아갈 것이니라.” 하나님은 무자격자에게 값없이 주시듯,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또한 풍성히 주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요구와 기대를 능가하신다. 하나님의 은총의 이슬을 신실하게 구하는 이들은 그것을 얻을 것이며, 그것으로써 “정복자 이상”이 될 것이다. 저들에게는 그 반역국의 지배자가 될 것이 약속되었으며, 그 땅을 황무하게 할 것이요, 파멸시키라는 허락이 내렸다(19절). 율법은, 피점령지의 과일나무는 베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리고 있다(신 20:19). 그러나 “공세를 바쳐야 할 자에게 공세를 바치지”(롬 13:7) 않는 자들을 굶어 죽게 하기 위해서, 그 땅의 과일을 빼앗는 것이 정당하고 필요한 지금으로서는, 과실나무를 찍어 버리는 것이 허락되고 있다. ------------- 모압군 섬멸(왕하 3:20-27) Ⅰ.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엘리사로 말미암아 약속한 것들, 곧 물과 승리가 하나님의 선물로 내려지는 사건을 보게 된다. 전자 곧 물 공급은 후자의 한 공약이었을 뿐 아니라, 그 방편이 되는 것이었다. 모든 물, 궁창 아래 있거나 위에 있는 모든 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일시에 풍부한 물을 보내셨다. 그런데 그 물은 그들에게 두 가지 역할을 다 했다. 1. 그 물은 죽음 일보 직전에 있던 그 동맹군들을 살려 냈다(20절). 그리고 괄목할 만한 일은, 이 구원이 명백한 시기에, 곧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시기, 예루살렘 제단 위에서는 “아침 소제가 드려지는 그 때”에 맞춰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엘리사는 그 때를 자기의 “기도 시간”으로 정했다(아마 “성전을 향해서” 기도했을 것이다. 그들이 “전장에 나가” 있든, 먼 곳에 나가 있든 그렇게 기도해야 되었다. 왕상 8:44). 이것은 그가 성전 예배와 교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위대한 제사의 공로로 인해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표시다. 오늘 우리로서는 특별히 기도하기에 좋은 어떤 시간을 정할 수 없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항상 우리 곁에 있고, 항상 그의 제사를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인들이 무시하고 있던 날마다의 제사 시각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그 때를 자기의 시간으로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도 바로 “아침 소제 때”에 응답하셨다(단 9:21). 하나님은 당신이 세우신 제도들을 인정하시기 때문이다. 2. 그 물은 적을 속였다. 적들은 이스라엘이 파멸하고 곧 승리할 줄로 알고 있었다. 모압군은 동맹군이 공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변방 지역에 배치했다. 거기서 그들은 에돔 광야를 거쳐 오는 동안 지칠 대로 지친 이스라엘 군대야 쉽사리 해치울 수 있다고 자만하면서, 그들에게 멋진 환영을 해 줄 작정이었다(21절). 그러나 보자. (1) 그들은 자기들의 망상에 완전히 속고 말았다. 그들의 자기 기만의 단계를 살펴보자. ① 그들은 이스라엘군이 주둔해 있는 골짜기에 물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는 그것이 피라고 착각했다(22절). 이유는 그 계곡은 마른 골짜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비가 온 일도 없으므로) 도저히 그것이 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가 그 위에 비치었다. 아마 “하늘이 붉고 흐려 있어서” “그 날은 비가 올 듯한” 날씨였던 것 같다(마 16:3).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알았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그 물이 붉게 보였고, 그 환상은 “이것은 피로다” 하는 생각을 확신하게끔 만들어 버렸다. 이토록 하나님은 그들이 스스로 속도록 버려두셨다. ② 그들의 진영에 이렇게 피가 가득하다면, “그 왕들은 필경 쓰러졌을 것이며(이해 관계가 다른 동맹군들은 흔히 그럴 수 있다) 그들이 서로 쳐 죽였을 것이다(23절).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그들을 죽였겠느냐”라고 결론을 내렸다. ③ 그리고 “군사들이 서로 쳐 죽였다면, 이제 노획물을 나눠 가지는 것밖에는 우리로서는 할 일이 없도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라고 했다. 아마 그들 중 어떤 다혈질적인 사람들이 이러한 제안을 연속적으로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들이 남들보다 더 현명하고 좋은 생각을 내었다고 자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렇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사실로 믿어 버리고 만 것이다. “우리는 흔히 소망을 현실로 믿기 쉽다”(Quod volumus facile credimus). 이와 같이 멸망을 당할 자들은 먼저 속임을 당하는 법이다(계 20:8). 그리고 스스로 속는 자들만큼 실제로 잘 속는 자들도 또 없다. (2) 그리하여 그들은 기를 쓰고 자기들의 멸망을 재촉했다. 그들은 무작정 이스라엘 진영으로 나아갔다. 약탈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너무 늦은 후에야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스라엘군들은 엘리사에게서 승리를 확신케 해 주는 용기를 얻어 맹렬히 나아가 그들을 치고 본국으로 쫓았다(24절). 그러고는 그 땅까지도 황무하게 하고(25절), 도성들은 파괴하며, 전답을 못 쓰게 했고, 우물을 막고, 나무를 베어 넘겼다. 단지 왕성만은 남겨 두었다. 그러나 그 주위의 성곽은 크게 손상시켰다. 이것은 모압이 이스라엘을 거역하여 얻은 것이다. “하나님을 대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서도 잘 되기를 기대할 자가 있겠는가?” Ⅱ. 본장 말미에는, 그 극한 상황을 보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1. 그는 대담하고 용맹스러운 일을 시도했다. 그는 7백 명을 뽑아서, 그들과 함께 에돔 왕의 참호 속으로 돌격하려 했다. 그는, 에돔 왕은 고용된 용병이니 자기가 맹공격을 하면 크게 저항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 곳을 탈주로로 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에돔 왕은 그에게는 견딜 수 없는 적수였다. 할 수 없이 모압 왕은 물러나게 되었다(26절). 2. 이 시도가 실패하자, 그는 잔인하고 야만스러운 짓을 했다. 그는 자기의 아들, 그것도 왕위를 물려받을 장자―그 아들은 그를 위해서나 그 백성들에게 가장 귀중한 존재였다―를 취하여 “성 위에서 그를 번제로 드렸다”(27절). 그가 의도한 것은 이런 것이었다. (1) 자기의 신 그모스의 은총을 빈 것이다. 그 신은 마귀라, 피와 살인을 기뻐했고, 인류의 망발을 즐거워했다. 우상 숭배자들은 자기들에게 보다 귀중한 것이 그 신들에게도 더 잘 열납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제사를 드릴 때는 그 신들을 위해서 자녀들을 불살라 드렸던 것이다. (2) 공격군을 공포에 걸리게 하여 퇴각시키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성 위에서” 그 짓을 한 것이다. 공격군들이 이것을 보고 모압 왕이 항복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온갖 발악을 다 불사한다는 결심을 알게 하며, 자기의 성과 생명을 얼마나 값비싸게 팔려고 하는지를 보여 주려는 심산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자기 부하들이 적군을 극도로 미워하고, 그들에게 분노하도록 만들려 했다. 실로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결국 그가 비상수단을 다하여,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부드럽고 관대한 사람은,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남을 극도로 괴롭게 하거나 절망케 하는 짓은 행치 않는다. ===호크마=== 열왕기하 3장 1 유다 왕 여호사밧의 십팔년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이년을 치리하니라 ㅇ본절에서도 1:17에서와 같은 연대기상의 문제가 있다.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왕이 된 것은 유다 왕 여호사밧의 제 17년이었으며 2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다고 했다(왕상22:51). 그러면 아하시야의 동생 여호람이 왕이 된것은 유다 왕 여호사밧의 제 19년이어야 하는데 본절에서는 18년이라고 기록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2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저가 그 아비의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하였음이라 ㅇ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 여호람은 이전의 이스라엘 다른 대부분의 왕들(왕상 14:16; 15:25,34; 16:13,19,25,30; 22:52)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많은 왕들(8:27; 10:31; 13:2,11; 14:24; 15:9,18,24,28; 17:2)과 같이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 했으며 여호와의 율법을 준수하지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살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 또한 여호람과 같은 이런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생활 하듯이 행동해야 할 것이다(살전 1:3;3:9). ㅇ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 여호람은 부친 아합이나 모친 이세벨처럼 우상을 섬기지 않고 바알상을 제거함으로써 어느 정도 새로운 신앙의 개혁 운동을 이루었다. 그 뿐만 아니라 여호람은 부모에게서와 형인 아하시야에게서 생활과 신앙에 대한 교훈을 얻어 통치 초기에는 각성을 했던 것 같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일관성 있게 개혁 운동을 주도해 나가지 못하고 단지 바알 신상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멈추었기 때문에 개혁에는 별로 큰 성과가 없었다. 더욱이 그 자신도 통치 후기에는 아합 왕가의 죄악을 답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9:24). 한편 여호람 왕이 이같이 완전하게 악에서 떠나지 못했던 것은 열렬한 바알의 숭배자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에서 악녀로 손 꼽히는 이세벨이 딸 아달랴와 함께 그의 전 통치 기간 동안 살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9:30,Keil & Delitzsch, Vol. , p. 301). ㅇ바알의 주상(柱像)을 제하였음리라 - 여호람이 비록 사마리아에서 바알의 주상들을 제하기는 했지만 그가 북이스라엘 전역에서 바알 숭배의 풍속을 금지시킨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다음 왕인 예후가 바알의 목상 뿐 아니라 바알의 선지자까지 철저히 제거했다는 사실이 뒤에 나오기 때문이다(10:19-28). 물론 여호람이 그 아비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함으로 아합과 이세벨의 길을 따르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은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지 못했다는 사실은 엘리사 선지자의 책망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다(14절). 3 그러나 저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ㅇ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 1대 왕인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죽은 후 어리석은 르호보암의 정책을 이용해 북방 열 지파의 지지를 얻어 왕위에 오른 자이다. 이제 그러한 그의 행정을 기록해 보면 다음과 같다. (1)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둘을 세움(왕상 12:29,30), (2)레위 지파가 아닌 일반사람을 마음대로 제사장에 임명함(왕상 12:31), (3)제사의 절기를 바꾸어 버림(왕상12:32,33), (4)백성의 종교심을 묶어 놓기 위해 우상 정책을 씀(왕상 12:25-33), 이중에서도 여호람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고수해 나간 범죄는 금송아지를 숭배하는것이었다. 여호람이 이와 같이 금송아지 숭배를 고집한 것은 정치적인 이유로써 예루살렘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유다로 넘어가는 백성들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Matthew Henry, Vol. , p. 719, Pulpit Commentary). 이와같이 자기의 정치적 유익을 위하는 이기심도 일종의 우상 숭배인 것이다(출 20:4,5). 좀더 구체적인 여로보암의 악행에 대해서는 왕상 12:26-33; 13:33;왕하 10:29를 참조하라. 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ㅇ모압 왕 메사 - '메사'(Mesha)라는 이름은 모압 비문(Moabite stone)의 기록에 나타나 있는데 그는 B.C. 9C 중반 모압의 한 도시인 디본(Dibon)을 병합했다. 또한 그는 약 40년동안 예속 되었던 이스라엘에 대해 항거해 반란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Gibson,Syrian Semitic Inscriptions, 1:71-83). 또 디본에서 발견된 이 비문을 보면 모압은 그모스 신의 진노로 인해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로부터 큰 고난을 당했으나 메사 왕 시대에 와서야 다시 그모스 신이 영광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다(Smith). 이는 북이스라엘에 대해 반란을 일으켜서 성공한 것을 자축적으로 언급한 듯하다. ㅇ양을 치는 자 - 이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노케드'로서 암1:1에서는 복수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표를 찍다'라는 뜻의 '나카드'에서 파생된 단어로 '소유주', '관리자'를 가리킨다. 또한 이 용어는 아마 양가죽에 주인의 표식을 찍던 목축업자의 습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사16:1을 보면 모압은 매년 정규적으로 이스라엘의 치리자에게 양을 조공으로 바쳐온 것으로 보이는데(Keil & Delitzsch) 모압이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쳐 온 것은 다윗 왕 때부터이다(삼하 8:2). 그리고 메사 왕도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양을 기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합 왕이 죽은 후 모압은 자체의 힘을 규합해서 이스라엘을 배반한 것이다(1:1). 5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ㅇ모압의 메사 왕이 이스라엘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시기는 아합 왕이 죽고 오므리 왕조가 급격히 쇠퇴하고 있던 때였다. 성경에서는 모압이 배반한 사실에 대해 단지 '아합이 죽은 후에'(1:1)라고 일축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이 때는 아합 왕이 죽고 여호람과 여호사밧이 통치하던 시기, 즉 약 B.C.850년 경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T. R. Hobbs). 또한 이 시기는 메사가 영토 확장에 힘을 쓰던 모압의 전승기였다. 한편 본문의 모압 반역 사건은 1868년 독일 선교사에 의해 아르논 강 근처에서 발견된 모압의 비석 위에 기록되어 있다. 이 비석에서 모압의 메사는 오므리가 부과한 공세를 거절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모압 왕 메사에 대한 업적을 남기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6 그 때에 여호람 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서 온 이스라엘을 점고하고 ㅇ그 때에...온 이스라엘을 점고하고 - 여기서 '그 때'는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때를 가리킨다. 그리고 '점고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파카드'로서 '방문하다', '보살피다', '헤아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이 단어가 가리키는 의미는 기존의 군대를 정비하는 것(Wycliffe) 뿐만 아니라 군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모아 큰 군대를 조직하는 것을 말한다(Matthew Henry, Lange Commentary). 그래서 여호람 왕은 정규 군대와 지방에 있는 군대까지 모두 소집하여 메사 왕에 대한 보복을 꾀했던 것이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을 소집할 정도로 여호람의 보복 행위는 강력했으며 또한 이것은 상대적으로 메사 왕의 위력이 상당했음을 암시해 준다. 7 또 가서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보내어 이르되 모압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뇨 저가 가로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니이다 ㅇ또 가서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보내어 이르되 - 여호람은 모압 원정을 위해 전 이스라엘 군대를 소집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도 전갈을 보내어 원조를 요청했다. 왜냐하면 여호사밧이 아합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장자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를 정략적으로 결혼시키는 관계였기 때문이다(8:18;대하 18:1). 그런데 이것은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고 유다의 병거와 말을 신뢰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때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은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셨다(대하 19:2). 한편 여호람이 여호사밧과의 협조 관계를 추구했다는 것은 모압을 격파하기 위해 유대 땅을 지나야 할 필요가 있었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당시 유다의 속국이던 에돔의 긍정적 영향을 원했던 것으로 이해 된다(Wycliffe Bible Commentary, p. 343). ㅇ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 여호람의 요청에 여호사밧이 이렇듯 쉽게 응락한 것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한민족이라는 사실에 기인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여호사밧이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에 의해 침공을 당해 큰 위기를 겪은 경험 때문인 것(대하 20:1-37)으로 추측된다(Matthew Henry). 8 여호람이 가로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저가 대답하되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 ㅇ에돔 광야 길 - 당시 북이스라엘에서 모압을 침공할 수 있는 길은 둘이었다. 하나는 사해 동북쪽을 통해 요단 강을 지나 모압 북쪽으로 가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해 남단을 돌아서 에돔 북쪽을 지나 모압 남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중 후자의 길은 아주 멀 뿐만 아니라 험하고 위험한 길이었지만 여호사밧은 이 길로 갈 것을 권했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이와 같이 여호사밧이 모압의 남쪽 노선을 권고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전자의 북쪽 노선으로 가게 되면 길르앗 라못 부근에 있는 아람을 건드릴까 하는 염려에서이며 2)모압이 남방의 불가침성을 굳게 믿고 있어서 남쪽 방어가 허술했기 때문이고 3) 당시까지도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과 합세할 수 있으므로 더욱 강력한 공격을 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Keil, Lange). 그러나 이러한 철저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그 계획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10절) 이것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이심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잠 16:9). 다음 지도는 연합군이 모압을 침공한 경로를 나타낸 것이다. 9 이스라엘 왕이 유다왕과 에돔왕으로 더불어 행하더니 길을 둘러 행한지 칠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생축을 먹일 물이 없는지라 ㅇ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 모압의 메사(Mesha)를 치러가는 연합군의 행렬을 기술한 것으로 이스라엘 왕이 원정의 지휘자로서 역할을 했고 그 중요성 정도에 따라 유다 왕과 에돔 왕이 기술된 듯하다(Pulpit Commentary). 한편 왕상22:47에서는 에돔에 왕이 없고 섭정왕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본절에 왕이 명기된 것은 에돔의 일시적인 배반(대하 20:22)때 세운 듯하다. ㅇ길을 둘러 행한지 칠 일에 - 본절에서는 세 나라의 동맹군이 광야를 칠 일 동안이나 방황하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본절에서 '둘러 행하다'(surround)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사바브'인데 이 단어는 '어떤 장소를 배회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세 나라가 동맹한 연합군이 지나치게 숫적으로 과다하여 예상 외로 긴거리를 우회하게 된 것이다(Word Biblical Commentary). 그런데 이 단어는 삿 11:18에서도 동일한 의미로 사용 되었다. 한편 이러한 방황은 여호와의 뜻에 순종하지 않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인한 결과였다(T. R. Hobbs). 그래서 카일(Keil)도 이것이 하나님의 징벌이었음을 암시적으로 다음과 같이 시사하고 있다. 즉, 연합군이 7일 동안 방황하며 지나간 곳은 에돔과 모압의 경계가 되는 '아시'(Ashi)의 바위 골짜기였다. 이 골짜기에는 로빈슨(Robinson)에 의하면 사시 사철 계속 물이 흐르는 강이 있었고 그 강에 이르기만 하면 병사나 육축을 위한 충분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그 곳에 도착했을 때는 가뭄이 한창이어서 이 강이 말라 있었는데 예기치 않은 이러한 상황, 즉 물의 고갈은 바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생각했다(Keil &Delitzsch). ㅇ먹일 물이 없는지라 - 연합군은 광야의 길로 진군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물이었다. 그런데 광야에 있는 시내는 비가 올 때만 흐르는 건천(wady)이기 때문에 건기, 즉 비가 오지 않는 시기에는 물을 얻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10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 ㅇ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프다 - 본절은 환난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인식하는 여호람의 어리석음을 보여 준다. 모압 원정을 준비할 때는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독단적인 생각에 의해 무력으로 일을 꾀하던 그가 이제 환난에 닥친 뒤에야 비로소 이러한 상황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깨닫고 후회한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일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은 곤경에 직면할 때만이 믿음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기 십상이고 남에게 그 원망을 돌리기 일수이다. 한편 이러한 태도는 믿음없는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출 14:10-13; 15:24; 16:2; 17:2;민 11:1; 14:1-3; 21:5등). 11 여호사밧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이스라엘 왕의 신복 중에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있나이다 ㅇ여호사밧이 가로되...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 왕상 22:5-7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여호사밧은 거짓 선지자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참선지자의 말을 듣기 원했다. 그래서 지금도 여호사밧은 여호람의 의견을 배척함과 동시에(Wycliffe) 신앙과 소망을 갖고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은 것이다. 또한 본절은 한 사람의 신실된 믿음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가를 실증해 주고 있다. 즉, 유다 왕 여호사밧의 믿음으로 이스라엘과 유다, 그리고 에돔의 모든 병사들까지도 기적적으로 승리할수 있었기 때문이다(24-26절;사 62:11;롬 10:13). ㅇ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 엘리야 선지자의 종으로서 엘리야와 함께 생활했으며, 그의 능력을 이어받아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고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자(Keil &Delitxsch), 혹은 엘리야로부터 가장 신임을 받던 자(Thenius)라는 의미로써 엘리야의 뜻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섬겼기 때문에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전가받은 자라는 뜻이다. 한편 '물을 붓던'이란 표현은 '수종드는 것'을 말하는데 손을 씻으려 할때에 그 옆에서 물을 부어주며 심부름하는 제자의 위치를 나타낸 것이다. ㅇ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 엘리사가 모압 원정군을 따라 여기 모압의 경계 지역인 '아사' 골짜기까지 오게 된 경위에 대해서 성경은 아무런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본절을 근거로 해서 엘리사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수 있다. (1)믿음의 사람 유다 왕 여호사밧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즉 여호사밧이 이스라엘과 동맹 맺은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지만(대하 19:2) 하나님은 그의 신앙을 익히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를 끝까지 지키셨던 것이다. (2) 여호람에게 이스라엘의 참 보호자는 여호와 한 분 뿐이심을 보이시기 위해 엘리사를 성령의 감동으로 이곳까지 인도하신 것이다(Keil). (3)유다왕 여호사밧에 대한 엘리사의 염려에 기인한 것이다(14절에 의거). 한편 본절의 의미로 볼때 여호람은 엘리사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한 것 같다(Wycliffe). 12 여호사밧이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이에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ㅇ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 문자적으로 이것은 '그는 참 선지자이므로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잘 알려줄 수 있다'라는 의미이다(Pulipit Commentary). 여호사밧이 엘리사의 명성에 대해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가 엘리사를 참 선지자요, 하나님의 진정한 사역자로 인정하고 그 권위를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엘리사에 대한 명성이 북이스라엘을 넘어 유다까지 알려졌음이 이 표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Lange). ㅇ이에 이스라엘 왕이...더불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 여기서 엘리사에게로 내려가는 세 왕 중에 이스라엘 왕이 맨 선두에 있음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왕이 (1)동맹군의 대표였고 (2)자국의 선지자였고 (3)여호와의 심판에 대한 자각 때문에 제일 먼저 서두른 것이다. 그러나 14절에 있는 엘리사의 말에 비추어 볼 때 그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혹은 큰 믿음이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한편, 흔히 선지자들이 왕 앞에 불리어 갔던 사례들과 비교해 볼 때 세 왕이 직접 엘리사에게로 간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며 (G.Rawlinson) (2)이러한 곤경으로 인해 세 왕이 겸손해졌기 때문이다(Keil,Wycliffe, Pulpit Commentary). 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나이다 ㅇ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 '당신은 왜 그러한 것을 내게 묻습니까?' 혹은 '당신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버렸기 때문에 선지자와는 상관을 안하지 않습니까?'라는 뜻을 반영한 말이다(Lange). 본절에서 엘리사가 자기를 찾아 온 여호람 왕에게 이와 같이 꾸짖은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비록 여호람이 바알 신상을 제거하기는 했으나 당시 바알의 제사장들이 여전히 아무 제재를 받지 않고 활동하고 있었기때문이다(10:19). 이에 대한 근거는 바알 종교를 이스라엘 전역에 퍼뜨린 장본인인 그의 어머니 이세벨이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9:30, Pulpit Commentnary). (2)개혁운동을 전개시킴에 있어서 너무도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여호람에게 자신의 이기적인 사욕을 버리고 진정한 개혁 의지를 갖고 일을 추진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만일 엘리사의 이러한 책망을 여호람 왕이 충심으로 받아 들이고 진실로 여호와께로 돌아왔다면 그는 피살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오므리 왕가가 그렇게 비참하게 멸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9:6-9) ㅇ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 이것은 여호람과 그 부모의 우상 숭배를 꾸짖는 엘리사의 대담한 말이다. 즉 엘리사는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는 일에 조언을 해준 아합의 사백 명의 선지자들(왕상 22:6)과 이세벨이 섬기는 바알 선지자들(10:19)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래서 본절은 곧 '그 선지자들에게는 당신이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나에게는 없습니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한편 본절은 왕 앞에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를 책망하는 선지자의 의연한 모습이 돋보인다. 즉 엘리사는 여호람 왕의 면전에서 악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발했던 것이다(Matthew Henry, Vol. , p.721). 14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ㅇ내가 섬기는 - 히브리어 '아마드티 레파나우'를 번역한 말로서 '내가...의 얼굴을 향해 서다'란 뜻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서서 예배 드리며 봉사하던 사실에서 연유한 용어로서 엘리사가 하나님의 종이자 대사(大使)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왕상 17:1;18:15). ㅇ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 이 말은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이 행한 선한 일을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에 도와준다는 말이다(Keil & Delitzsch). 참으로 여호사밧이 산당과 우상을 제거하고 선지자들과 레위인들을 세워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친 선행이 있기 때문에(대하 17:3-9) 그것을 주께서 기억하고 계셔서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에게도 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즉 길르앗 라못에서 악한 왕 아합을 도운 일이나(대하 19:2), 오빌로 가는 배들을 건조하기 위해 아하시야와 결탁한 일(대하 20:36;왕상 22:48), 그리고 본장에도 나타나 있듯이 하나님의 허락이 없는 모압 원정에 참예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여호람과 에돔 왕과 동맹하는 일 등은 결코 선한 일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행한 여호사밧의 선행을 기억하시고 끝까지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다(대하 19:1-3). 한편 엘리사의 이러한 태도는 12절 말씀과 더불어 파숫꾼이 행해야 하는 바른 모습을 보인 것으로 모든 사역자에게 있어서 귀감이 된다(겔 2:7). 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ㅇ거문고 탈 자 - 이 말은 정확하게 번역하기는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제반 현악기를 연주하는 자'로 옮기는 것이 적합하다. 이러한 번역상의 어려움은 이 말을 '수금 뜯는 사람'(공동 번역), '악사'(KJV, RSV), '하프 연주가'(NIV)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 역본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ㅇ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 본절에서 거문고 소리를 통해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시킨 사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엘리사가 여호람으로 인해 흥분했던 자신의 마음을 진정 시키며 신적 감응을 잘 받기 위한 상태인 무아경에 잠기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G. Rawilnson, Pulpit Commetary, Keil & Delitzsch). 둘째는 고대 선지자들 뿐만 아니라 아라비아에서도 (The Interpreter's Bible, Vol. , p. 200) 예언을 할 때 운율을 맞추기 위해 악기를 사용했는데(Bleek), 엘리사의 경우도 이와 동일하다는 것이다(Bahr). 전자의 해석을 지지하는 근거로는 사울을 위해 다윗이 수금을 탔을때 악신이 떠나갔던 일(삼상16:23)과 사울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블레셋 성읍으로 들어갈 때 비파와 소고와 수금을 앞세운 선지자의 무리를 만난 후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였던 사건(삼상10:5) 등을 그 예로 든다. 그리고 후자와 같은 해석은 성경 다른 곳에서는 전혀 언급한 일이 없다. 따라서 전자의 해석이 더 타당한 것 같다. 더욱이 거문고를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 선지자 엘리사 뿐만 아니라 세 왕과 곤경에 시달린 병사들의 시선이 한 데로 집중되었기 때문에 신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아주 용이하였을 것이다. 한편 '선지자의 생도들' 사이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일이 신적 감응을 잘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중요했다는 사실이 다시 증명되었다(삼상 10:5;대상25:1-3). 거문고의 소리는 선지자들의 동요를 잠잠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엘리사는 전형적인 '예언자의 아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언을 준비하는 방법으로 거문고와 피리 소리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 엘리사는 그의 선생 엘리야와 다르다. 왜냐하면 엘리야는 돌발적이고 직접적인 예언을 했으며, 금욕적이며 독자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6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ㅇ골짜기 - 본절의 골짜기는 모압 남쪽에 있는 제렛(Zered), 즉 지금의 와디 엘 헤사 (Wadi el Hesa)라고 하는데(Wycliffe) 그곳은 붉은 사석(沙石)이 깔려 있어서 때로는 온 골짜기가 붉게 보인다고 한다. ㅇ개천 - 히브리어 '게빔'을 번역한 말로 이는 '물을 모아 두는 웅덩이'를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골짜기로 물이 흘러 내려 이 웅덩이들에 가득 고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일은 있는 것을 없게 하시고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롬 4:17) 하나님의 능력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ㅇ바람도...비도 보지 못하되...물이 가득하여 - 근동 지역에서 비는 대개 바람과 함께 동반한다. 더욱이 본절의 바람이란 강한 폭풍우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런데 바람도, 비도 없이 골짜기의 물을 채운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수행하는 전쟁은 오직 배후에 역사하시는 여호와의 권능이 임할 때만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성도들의 영적인 투쟁 역시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엡 6:10-20). 한편 본절의 육축은 군대의 식량용 동물을, 짐승은 사람 및 군수품 운반용을 말한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그리고 16, 17절과 18절에서 엘리사가 받은 예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는 것, (2)바람이나 비를 보지 않고도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리라는 것, (3)모압 원정이 성공을 하게 된다는 것(18,19절)등이다. 실로 첫째, 둘째 예언은 다음날 아침 소제를 드릴때에 성취되었다(20절). 이때에 가득한 물은 에돔 동편 산악 지대에 내린 비로써 이스라엘 진영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Keil). 셋째 예언은 모압의 공격에 대해 이스라엘군이 반격할 때에 이루어졌다(24, 25절).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먼 곳의 기상 조건과 지형 조건을 다 아실 뿐만 아니라 이를 초월하시고 주장하시는 것이다. 18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붙이시리니 19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과 모든 아름다운 성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ㅇ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 좋은 나무를 베라는 명령은 과실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한 신 20:19,20에서의 규례와 서로 상충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다. 여기에 대해서 카일(Keil)은 모압인들이 이스라엘 땅을 침범하여 으례껏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엘리사는 의도적으로 신명기에서와 같은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예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명기의 과실수 벌목 금지에 대한 명령을 여기에 적용시킬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신명기의 율법은 당시, 아직까지 가나안 땅의 첫소산을 거두기 이전이므로 병사들의 양식을 위한 필요성에 의해 명령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T. R. Hobbs). 한편 침범한 적의 땅에서 과목(果木)을 베어버리는 일은 당시 전쟁 후에 행해지는 보편적인 일인데, 특히 앗수르나 애굽에 의해 이런 일이 널리 행해졌었다(Pulpit Commentary). ㅇ모든 샘을 메우고 - 샘이나 우물을 메우는 것은 고대 근동 지방의 전쟁시에는 으례껏 보복조치로 행해졌다(창 26:18), 흔히 마을이 샘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던 당시에 '샘을 메운다'는 사실은 그 마을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본절에 언급된 샘은 히브리어 '아인'의 번역으로서 연못이나 우물과는 달리 산에서부터 천연적으로 흘러 들어오는 샘물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샘은 생활 용수의 근원이 되었다. ㅇ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 문자적으로는 '좋은 땅 모두를 비탄에 잠기게 하라'는 말인데 이 문맥은 70인역(LXX)에서 농사에 큰 타격을 주기 위해 '밭에 돌을 던지다'는 뜻으로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 '헐리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케이브'로서 때때로 심적으로나 육적으로 '고통을 주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Word Biblical Commentary). 또한 이것은 땅을 황폐케 한다는 뜻의 시적인 표현으로서 땅에 대한 의인화인데(Keil & Delitzsch) 렘 23:10과 욜 1:10등에서 유사한 용례를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요단 강 주변에서 개간할 때는 돌이 많기 때문에 돌을 한 쪽으로 치워놓는다. 그래서 땅을 망칠 때는 다시 밭 주변에 있는 돌무더기를 헤쳐 놓으면 되었던것이다(Pulpit Commentnary). 20 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ㅇ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 '소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민하'로 소제뿐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종류의 제물'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이 다른 역본들에 의해서는 '제사'(공동 번역), '제물'(RSV, NIV, Living Bible)로 번역되었다. 한편 유대 전승에 따르면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 두 번 씩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고 한다(대하 8:13). 이렇게 규칙적으로 제사를 드리던 습관이 포로 시대나 신약 시대에는 기도하는 습관으로 이어진 것 같다(단 6:10;행3:1). 그래서 예수께서도 주로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다(막 1:35). 한편 아침 제사 드리는 시간과 에돔 서편에서 부터 물이 흘러 내려오기 시작한 시간이 일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구원이 매일 드리는 제사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Keil). 21 모압 모든 사람이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섰더라 ㅇ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 연합군의 공격에 대한 모압의 방어 준비는 대단히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갑옷을 입을 수 있는 최소한의 어린 병사들까지 온 군대가 소집되었다. 혹자는 이때에 입은 갑옷이 정규 복장이 아니라 간편한 복장인데 이 전쟁에 어린 병사들까지도 참여했다고 한다(T. R. Hobbs). ㅇ그 경계에 섰더라 - 모압은 연합군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군대를 소집하고 그 군대로 하여금 자신의 영토를 방어하게 하려고 모압의 최전방, 즉 와디 엘 아시의 북쪽에 진영을 정비했다(Pulpit Commentary, Wycliffe). 22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찌기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취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ㅇ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 북쪽 600m 높이의 절벽 위에 진을 치고 있는 모압 사람들은 해 뜰 무렵 동쪽 골짜기, 연합군의 진지 근처가 벌겋게 반사됨을 보았다. 이처럼 물이 붉은 피와 같이 보인 것은 아침에 떠오른 해의 강렬한 붉은 색조가 물에 비췸으로 인한 것이었다. 한편 에발드(Ewald)에 의하면 비가 내릴때 에돔 땅의 붉은색 흙덩이들이 빗물에 실려온 것이 햇빛에 반사된 때문이라고 하며, 카일(Keil)은 이 현상은 자연적인 방법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것은 엘리사의 명령에 의해서 판 구덩이의 흙이 붉은 색을 띠었을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하여 모압군들은 속임을 당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예언하신 바에 대한 (17,18절) 성취로서 여호와의 이적적인 방법의 결과였다(Lange). 23 가로되 이는 피라 필연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ㅇ필연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 이와 같이 모압이 물을 피로 잘못 알고 착각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즉, 유다와 이스라엘은 서로 적대적이었다는 사실을 모압이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은 틈만 있으면 반란을 꾀하려고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모압은 이스라엘 진중에 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식수 부족으로 서로 분쟁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생각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연합해서 침공하는 이스라엘 동맹군에 대한 증오와 아울러 이것이 약탈의 좋은 기회라고 조급히 판단했기 때문에(Wycliffe) 서둘러 진격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인간들로 하여금 스스로 착각하게 하여 함정에 빠지게도 하신다(에 5:11,12). 24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25 그 성읍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라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맷군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ㅇ모압 땅이 황폐케 된 것은 엘리사가 예언한 그대로였다(18,19절). 그런데 이런 파괴는 그 당시에 전쟁의 승자가 취하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지금의 '초토화 전법'(scorched earth)과 같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길하레셋(Kir Haresheth)이 모압 비문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사해 남단에 위치한 지금의 '엘케락'(El Kerak)과 동일한 성으로 보고 있다(Hobbs). 이곳은 홍해를 잇는 중요한 관문으로서 모압 남방의 최후보루이며 군사상 전략적 요새였던 것이다. 그래서 중세의 십자군 전쟁때 십자군들은 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하여 영웅적인 싸움을 반복했던 것이다. 한편 성경에 나타난 '길헤레스'(렘 48:31,36), '모압 길'(사 15:1) 등은 모두 이 고장을 말한다. ㅇ물맷군 - 히브리어 '켈라임'을 번역한 말로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물맷꾼(Lange)뿐만 아니라 석궁이나 그와 비슷한 공격용 기계를 작동시켰던 사람까지도 의미한다고 추측된다(Pulpit Commentary). 26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 찬 군사 칠백을 거느리고 충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능히 못하고 ㅇ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 본절에서는 한 가지 의문점이 제기되는데 왜 모압 왕이 이스라엘의 동맹국인(12절)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했느냐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1)에돔 왕은 이스라엘 및 유다와 마지 못해 동맹을 맺었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압왕과 동맹을 맺고 있었으므로(대하 20:10,22) 모압 왕이 에돔 왕의 우호적 입장을 기대했을 것이다(Keil,Skinner). (2)'에돔 왕에게로'가 아니라 '에돔 왕의 반대편으로'라고 해석하는 견해이다(Kittel). 그러나 이 학설은 왜 모압왕이 에돔 왕의 반대편으로 향했는지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3) '에돔 왕에게로'가 아니라 '아람 왕에게로'라는 견해도 있다. 즉, '에돔'과 '아람'이 자음에 있어서는 거의 유사하지만 '에돔'에는 반자음 '와우'가 첨가 되어 있다. 따라서 필사자들이 잘못을 범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4) 에돔을 연합군의 배반자로 보고 모압이 그 쪽으로 향했다는 것이다(G. Rawlinson). 그러나 이 견해도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만약 에돔 왕이 배반했을 경우에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그냥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1)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한편, 모압의 성읍이 완전하게 공략되었으며(25절), 모압 왕이 필사적으로 이스라엘과 유다 및 에돔 동맹군의 포위망을 뚫으려고 한 점(26절)을 미루어 보아 이 전쟁은 엘리사의 예언대로(18,19절) 동맹군의 대승리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대승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했다(10, 13절).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신들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며 인내해야 할 것이다(롬 8:25;고전 9:12;골 1:11;딤후 2:12;약 1:12). 27 이에 자기 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취하여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 저희가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ㅇ맏아들을 취하여...번제를 드린지라 - 정예병 칠백 군사를 거느리고 에돔을 향해 가려고 했으나 실패한 모압 왕은 자신의 왕위를 이를 맏아들을 취하여 모압 신 그모스에게 번제물로 드렸다. 이는 이방인들이 역경이나 환란을 자신들의 신이 노함에 의한 결과로 이해했기 때문인데 모압 왕이 장자를 번제로 드린것은 신의 노여움을 풀고 신에게 호의를 얻기 위한 방법이었다(Wycliffe). 한편 사람을 희생제물로 삼는 이방인의 이러한 우상 숭배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며 정죄받을 행위였다(레18:21;20:1-5). ㅇ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 -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우상 숭배의 특징은 인간의 감정을 격분케 한다. 그래서 모압 병사들은 왕이 자기 맏아들을 그들의 신에게 번제물로 바치는 광경을 보고 격분하여 이스라엘의 동맹군을 공격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압군의 결사적인 모습에 겁에 질린 이스라엘군은 포위망을 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Pulpit Commentary)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하나님의 분노로 이해한다. 즉 "크게 통분함"이란 '큰 진노'라는 뜻으로 그모스 신의 격렬한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닥쳐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 여호와가 있는 것같이 모압에는 그모스 신이 있다는 것이 당시 모압의 일반적인 신앙이었는데 모압 땅에서의 이러한 광경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사기가 크게 흔들렸을 뿐만 아니라 어떤 신적 공포감에서 철수하고 말았다는 사실은 미신을 하나님과 동일시 하는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심으로 심판을 내리셨다는 것이다(Keil & Delitzsch). 이때에 이스라엘이 패전한 기록은 모압 왕 메사의 비문의 기록과 서로 통하는 바 많으며 결국 엘리사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에게 유리했던 전세가 불리해진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는 것은 확실하나 열왕기 저자는 여기에 대해서 침묵하였다고 한다(Lange). 또다른 학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압의 수도를 포위한 연고로 모압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악을 행하였으므로, 이제 이스라엘에 여호와의 진노가 내려 재앙을 당할 것으로 생각하고 심히 놀라 철수했다고 한다. ㅇ저희가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 연합군은 무력으로 더이상의 공격이나 정복을 포기하고 즉 모압을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만들고자 했던 원정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고 철수했던 것이다(Keil & Delitzsch, Lange, Pulpit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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