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모든 증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계명-율례-법도-판단, 곧 근원적 사랑과 생명 충만한 Q의 모든 것인 명령과 규례...JC십자가부활승천-HS내주하심으로 온전/완전/순전케 하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기록된 말씀 + 즉각적인 말씀들.. ....하나님의 뜻과 어떠하심(성품)-능력-기념이름 그대로 반영하는 (지혜의) 모든 약속/언약말씀의 총체].. ....추구(사모/사랑/간구)함. = 기쁨과 즐거움 삼음, + 믿음-소망-인내, 붙들고-묵상-가르침 깨닫고, 기억/새김/충만/변화(노래-찬송), + 주이름부름-누림-인도하심 순복[예비/공급/구원-도움-인도-보호-돌파-이김과 극복, 지족, 평강] @@@HS과 하나되라 ... Q말씀[완전한 방어/공격 겸용의 영적 무장, 동시에 영원한 참생명 하나님의 모든 것]으로 사는 소명과 사명의 영적참자아를 대적하는 모든 극악무도 인식분별대적, 극복하라 == 육신(죄성)-세상(악인)-사탄마귀 == 공격들 [미혹(오해착각)/참소...유혹/조롱/비아냥...핍박/박해/침노/탈취/살해]...선악진위 혼동케 하며 하나님 배역을 부추기기 위해기 위해 주어지는 고통환난역경들임을 자각하라, 회개하고 주와 하나됨으로써 끝까지 주안에 거하고 동행하며 머물라...하나님 말씀따라 JC이름으로 대적하라
개역개정]시119...선하심-인자하심-진실하심 그대로 자비-긍휼-은혜-오래참으심-죄를자복회개하는자사유하시기를 기뻐하심-위로평강-영복주시기를 기뻐하사 그분의 모든 영광 그대로를 베푸신 바 인생-십가가대속-부활의 생명말씀으로 자신을 온통 주시는 구주예수,YHWH와 함께 하는 단독자..올인하시는 사랑에 감동되고 주님 어떠하심에 바로 그렇게 반응하며 모든 걸음마다 주님께 합당한 사랑 겨운 순종과 헌신, 동행과 교통을 이루는자..주하나님을 살며 그분의 통로됨, 그분의 영광과 증거의 삶 살게 되리니!!
..주하나님 성품의 어떠하심의 그 영광 나타냄이 의로움 righteousness, 체데크[Q의 성품은 선하심-인자하심-진실하심<영원한 사랑의 언약안에서 자비긍휼은혜, 오래참으심, 죄를 미워하심...이를 모든 사람들에게 끄들 각자의 지고지선의 진복누림 위해 틀림없이 공평히 적용하심>이요 ...이에따라 사람에게 베푸신 진복누림과 생명을 위한 말씀의 기록이 율법[토라]Law...곧 계명(미츠와. Commandments ..실행 또는 금지명령)--율례(호크.Statues..계명의 상세의미 설명) + 법도(픽쿠드/파카드. Precepts.. 새로운 피조물/주의자녀들의 참생명안에서의 성숙/성장을 위한 교훈/깨우침). ...계명<미츠와>에 따른 율례<호크>+법도<픽쿠드>+판결/판단/분별(<쉐페트>Judgement...샤파트<판결하다>...엘 쇼페트)의 총합 = 규례/법규Ordinance (이 모든 말씀따라 위임받은 자가 Q앞에서 [사람에 따라]편벽됨없이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러함이 정직임] 공정/공평하게 적용, 판결 실행함이 미슈파트 = 정의 justice)
...선하심--인자하심(자비-긍휼-은혜-오래참으심의 영원한 언약적 사랑)-진실하심 :: 지고지선의 진복(사랑-희락-화평 충만의 영생구원복락)누림 위한 교훈과 징계로서 참회개하는 자 사유하기를 기뻐하시고 그의 미워하시는 바 죄를 보응하시되 진노중에도 긍휼로 함께 하시며 인자를 천대까지 베푸시는 분.. ...율법의 정신 [의(공의/체데크와 정의/미슈파트...righteousness+justice)-인(헤세드...lovingkindness-mercy/compassion/grace)-신(에무나...faithfuness-truthfulness) ..[[사59:20,21]]..*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9:24]] *2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미가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1.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2.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4. 주께서 명령하사 주의 법도를 잘 지키게 하셨나이다 5.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6.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7.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8.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Aleph. 1 How blessed and favored by God are those whose way is blameless [those with personal integrity, the upright, the guileless], Who walk in the law [and who are guided by the precepts and revealed will] of the Lord. 2 Blessed and favored by God are those who keep His testimonies, And who [consistently] seek Him and long for Him with all their heart. 3 They do no unrighteousness; They walk in His ways. 4 You have ordained Your precepts, That we should follow them with [careful] diligence. 5 Oh, that my ways may be established To observe and keep Your statutes [obediently accepting and honoring them]! 6 Then I will not be ashamed When I look [with respect] to all Your commandments [as my guide]. 7 I will give thanks to You with an upright heart, When I learn [through discipline] Your righteous judgments [for my transgressions]. 8 I shall keep Your statutes; Do not utterly abandon me [when I fail].
******* 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10.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2.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13. 주의 입의 모든 규례들을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14.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15.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16.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Beth. 9 How can a young man keep his way pure? By keeping watch [on himself] according to Your word [conforming his life to Your precepts]. 10 With all my heart I have sought You, [inquiring of You and longing for You]; Do not let me wander from Your commandments [neither through ignorance nor by willful disobedience]. 11 Your word I have treasured and stored in my heart, That I may not sin against You. 12 Blessed and reverently praised are You, O Lord; Teach me Your statutes. 13 With my lips I have told of All the ordinances of Your mouth. 14 I have rejoiced in the way of Your testimonies, As much as in all riches. 15 I will meditate on Your precepts And [thoughtfully] regard Your ways [the path of life established by Your precepts]. 16 I will delight in Your statutes; I will not forget Your word.
********* 17.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19.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20.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21.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들에서 떠나는 자들을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22.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켰사오니 비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23. 고관들도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24.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 Gimel. 17 Deal bountifully with Your servant, That I may live and keep Your word [treasuring it and being guided by it day by day]. 18 Open my eyes [to spiritual truth] so that I may behold Wonderful things from Your law. 19 I am a stranger on the earth; Do not hide Your commandments from me. 20 My soul is crushed with longing For Your ordinances at all times. 21 You rebuke the presumptuous and arrogant, the cursed ones, Who wander from Your commandments. 22 Take reproach and contempt away from me, For I observe Your testimonies. 23 Even though princes sit and talk to one another against me, Your servant meditates on Your statutes. 24 Your testimonies also are my delight And my counselors.
********* 25.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26. 내가 나의 행위를 아뢰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사오니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27.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28.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29.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30.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들을 내 앞에 두었나이다 31. 내가 주의 증거들에 매달렸사오니 여호와여 내가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하소서 32.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Daleth. 25 My earthly life clings to the dust; Revive and refresh me according to Your word. 26 I have told of my ways, and You have answered me; Teach me Your statutes. 27 Make me understand the way of Your precepts, So that I will meditate (focus my thoughts) on Your wonderful works. 28 My soul dissolves because of grief; Renew and strengthen me according to [the promises of] Your word. 29 Remove from me the way of falsehood and unfaithfulness, And graciously grant me Your law. 30 I have chosen the faithful way; I have placed Your ordinances before me. 31 I cling tightly to Your testimonies; O Lord, do not put me to shame! 32 I will run the way of Your commandments [with purpose], For You will give me a heart that is willing. >>>>>>나이제주님의새생명얻은몸436.주와같이길가는것430...완전하신나의주.온맘다해.주께가오니.ILoveYouLord.나주님의기쁨되기원하네 ===시119 개요==== 이 시편은 나머지 다른 시편과는 달리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립된 시편을 이루고 있으며, 모든 시편 중 가장 탁월해, 일련의 성좌들 가운데서 가장 찬란하게 빛난다. 이 시편은 다른 시편보다 무려 두 배 이상 더 길게 되어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책망하신 것과 같은 기나긴 기도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고, 유익하고 가치 있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이 시편은 다윗의 경건하고 열심 있는 절규와 하나님께로 향하는 그의 영혼의 긴박한 호흡과 고양의 총합인 듯하다. 다윗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무렵에 일어난 사건을, 흩어져 있던 당시의 책을 모아, 많은 유사한 말을 첨가하며, 이 시편으로 집약시켰다. 이 시편에서는 각 구절의 연속성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솔로몬의 잠언과 같이, 이 시편은 금반지 상자이지 결코 금고리 상자는 아니다. 우리는 시편 저자의 본보기에 의해 하나님과 부단한 교제를 유지하며, 경건의 장엄한 훈련을 위해 마음을 뜨겁게 하는 우수한 수단인 이러한 경건한 절규에 익숙해짐을 배워야 한다. 또한 우리는 시편 저자의 언어들을 우리의 경건한 정열로 표현하고 암송하는 데에 잘 사용해야 한다. 어떤 이들이 “묵상하여 주의 깊게 읽을 수 있는 자에게 이 시편은 그를 따뜻하게 해주거나 부끄럽게 해준다”고 했는데, 참으로 그러하다. 이 시편의 구성은 단순하며 매우 정확하다. 히브리어 알파벳 수대로 22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각 부분은 8절로 구성되어 있고, 처음 부분의 모든 구절들은 알레프(히브리 알파벳 첫 글자─역주)로 시작하고, 두 번째 문단의 모든 구절들은 베트(알파벳 둘째 글자)로 시작된다. 그밖의 것도 그러하다. 그 점에서는 전체 시편에 걸쳐 어떠한 결점도 찾아볼 수 없다. 대주교 틸로츤(Tillotson)은, “이 시편은 우리가 가까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상의 시적인 기교와 운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성도들의 알파벳이라고 부른다. 즉, 알파벳의 철자와 같이, 언제나 사용할 수 있도록 기억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시편 저자는 이 방법이 자신에게도 유익함을 안 것 같다. 그는 모든 부분의 몫을 채우기 위해 생각을 깊이 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가 시작하고자 한 철자는 아름다운 문장을 암시해 주는 말로 그를 인도해 주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 마음의 불모의 토양에서 모든 아름다운 것을 불러일으키는 데 충분하다. 이 시편은 배우는 자들에게도, 기억하고 필요한 경우 회상해 찬송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철자에 따라서 처음 말이 나오면, 나머지는 저절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젊은 사람들은 더 쉽게 기억할 수 있으며, 늙은 사람보다 더 잘 암송할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각 행 첫 글자를 맞추면 어구가 되는 시가 유행에 뒤떨어졌다고, 유치하고 하찮은 것으로 경시한다면, 으뜸가는 시편 저자는 그들의 비난을 경멸하리라는 점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그는 유아들의 교사다. 이러한 방법이 그들에게 유익하다면 그는 쉽게 이용하며, 유치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는 더더욱 유치해지려 할 것이다. 이 시편의 일반적인 내용과 의도는 율법을 크게 전파하고 영화롭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 계시의 초월성과 유효성을 제시하고, 우리에게 영접하도록 추천하며, 그로 우리를 다스리도록 하려 한다. 다윗은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경험을 통해 은혜를 말하며, 아름다운 표현을 했다. 그는 그와 함께한 하나님 은총의 지속성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열심히 기도한다. 그것은 그의 의무를 더욱 바르고 빠르게 해주었다. 이 시편은 열 가지의 다른 말로 하나님의 계시를 표현했다. 그것들은 동의어이며, 각기 전체를 함축하는 표현이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그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계시에 근거하며, 또 계시에 의해 인도되는 신앙적 제도에 관한 표현도 있다. 성서에 포함된 것들, 거기에서 나타난 것들은 여기서 다음 열 가지로 나타난다. 1.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에 의해 우리를 다스리는 것으로 주어졌다. 2. 하나님의 법도. 그의 섭리와 우리의 복종을 지배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약속. 장엄하게 세상에 선포되었고, 모순 없이 증거되었다. 4. 하나님의 계명. 권위로 주어졌고(문자의 뜻대로), 우리에게 신뢰로서 거한다. 5. 하나님의 계율. 우리에게 지시되었다. 그러나 무관심하게 버려둔 것은 아니다. 6. 하나님의 말씀. 그의 마음의 선포이며, 무엇보다도 본질적으로 영원한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거기에 포함된다. 7. 하나님의 심판. 무한한 지혜 가운데 작렬하며, 우리는 그것에 의거해 심판하고 또 심판 받는다. 8. 하나님의 의. 완전히 거룩하고 공평하며 선하고 의를 다스리는 표준이 된다. 9. 하나님의 규례. 그것들은 영원한 의무로 정해지고 결정되었다. 10. 하나님의 진리, 또는 진실하심. 하나님의 법이 세워진 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이 긴 시편 중 이 10개의 단어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구절은 단지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122절). 단지 서너 절에서만 그 단어들이 다윗의 실행에 대해 사용되었다(75, 84, 121절). 그리고 132절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라 불리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다윗이 가졌던 커다란 존중과 애정을 비교해 볼 때, 우리의 것이 얼마나 약하고 적은가를 생각하면서 더욱 경탄하게 된다. 다윗 당시는 아마 겨우 모세오경 정도가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 시대는 성서 기록의 여명기에 불과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 계시의 완전한 책을 지니고 있으나 별로 말씀에 대한 사랑이 없다. 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우리는 성화된 영혼의 열성에 대한 노작을 발견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지배자시며 보호자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함을 깨닫게 되며,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권고해야 함을 발견한다. 또 여기에서 경건한 생활에 관한 많은 교훈들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한 삶을 살았던 자의 행복한 경험이 무수히 노출되어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처지에 합당한 어떤 것들이 나타나 있다. 고난을 당하는 자가 있는가? 기쁨을 갖는 자가 있는가? 모든 사람은 이 시편에서 그에게 적당한 것을 찾게 되리라. 이 시편을 진지하게 묵상한다면, 거의 모든 구절에서 새로운 사상과 그 안에 게재된 생동적인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되리라. 이 시편은 주의 깊게 관찰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같은 것의 진부한 반복이 아니다. 그리고 이 시편은 다윗의 다른 많은 시편들처럼, 사적이든 공적이든, 예배에서는 간결해야 함을 가르쳐준다. 통속적인 감정, 특히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의 감정은 길고 힘에 겨운 악절보다 간결한 표현, 즉 적은 음역에서 더욱 증가되고 유지될 수 있는 것 같다. ======= 하나님의 백성의 축복(시 119:1-3) 시편 저자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행복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실제로 복이 있으며, 복을 받게 될 것이다. 행복은 우리가 모두 지향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 표현된 것은 우리가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데 충분하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나, 바른 길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나님은 올바른 길을 우리 앞에 제시하셨다. 우리는 그 길이 좁고 협착하지만, 행복에 이른다고 확신한다. 축복은 의로운 자들에게 있다. 이제 행복한 사람들의 성격을 연구해 보자. Ⅰ. 하나님의 뜻을 모든 행동의 규범으로 삼고, 그 규칙에 따라 모든 생활을 다스리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은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들이다(1절). 하나님의 말씀은 일부의 어떤 일에 대해서만 아니라 저들 생활의 모든 과정에서 하나의 법이다. 그들은 파괴할 수 없는 그러한 법의 울타리 안에서 행한다. 그들은 그 법의 길을 따라 행하며, 그것을 경시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의 증거를 지킨다.” 규범에 따라 걸으며, 결코 함부로 걷지 아니한다. 이것이 “주의 도를 행하는 것”(3절)이다. 그는 우리가 걸어갈 길을 표시해주고 우리에게 가리켜주었다. 신앙은 결코 토론의 주제로 준 것이 아니다. 우리 행위의 규범이 되게 하려고 준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도, 혹은 우리 마음의 도를 행하지 말고, “주의 도”를 행해야 한다(욥 23:10-11, 31:7). Ⅱ. 자기들의 신앙에 바르고 성실한 자들은 복이 있다. 실제적인 죄의 오염들로부터 자신을 순수하게 지키며, “그 길에 순결하여 세상에 물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습관적으로 저희의 의도에 진지하고 “그 정신 안에 교활한 것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그들은 실제로 보이는 그대로 선해야 하며, 보이는 그대로 순수해야 한다. Ⅲ. 하나님을 고백하는 백성들에게 놓인 신뢰에 진실한 자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신탁이 수여된” 사실이 유대인들의 영광이었다. 신탁을 순수하게 보존하며, “그의 증거”를 헤아릴 수 없이 가치 있는 보화로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 신탁을 눈동자로 삼고 세상에서 위로를 받기 위해, 그리고 이 세상에서 그들 뒤에 올 자들에게 그에 관한 지식과 고백을 남겨두기 위해 그 신탁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 “주의 도를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증거”, 곧 그의 진리를 지켜야 한다. 선한 규범을 고수하지 않는 자들은 선한 행실을 오래 지킬 수 없게 될 것이다. 또는 “여호와의 증거”는 그의 언약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언약궤는 “증거의 궤”라고 불렸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다. Ⅳ. 신앙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을 지고선과 최상의 목표로 여기는 자들은 복이 있다. 저희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한다”(2절). 그들은 하나님 이외에는 그들 자신이나, 그들 자신의 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들이 지향하는 바다. 하나님은 그들의 복종에서 영광 받으시며, 그들은 하나님의 용납하심에서 행복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부지런히 그를 찾으며 전심으로 그를 구하는 자”들의 응답자로, 그 응답이 된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며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마음이 하나님과 세상으로 나뉘어 있다면, 그것은 그릇된 것이다. Ⅴ. 모든 죄를 조심스럽게 피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3절). “그들은 불의를 행치 아니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죄 가운데 빠짐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죄의 종이 된 자들처럼 죄를 범하지 않는다. 그들은 죄를 행하지도 않고, 타협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불의가 하나님의 법을 방해하며, 불의는 결코 하나님의 법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이와 같이 “허물을 피하는 양심을 항상 갖도록” 훈련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다. ---- 주의 율법에 대한 결단(시 119:4-6) Ⅰ.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행하는 가장 높은 의무 아래 두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유혹하는 사단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규범으로 삼든지 말든지 자유로 하라는 생각과 그것이 비록 선하다 할지라도 믿을 필요는 없다는 [상대화 시키려 한다!!]의견으로 인간을 홀린다. 그는 우리의 처음 조상에게 계명을 의심하도록 가르쳤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점에서 든든히 서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신앙을 우리의 규범으로 삼도록 하기 위해, 그것을 “근실히 지키게” 하기 위해, 신앙을 우리의 일과로 하고 주의 깊고도 부단하게 상기하게 하기 위해, “주께서 주의 법도를 우리에게 명하셨다”(4절).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걸고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Ⅱ. 그렇게 행할 수 있는 지혜와 은총을 위해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가르침 받고 있다(5절). “내 길을 굳이 정하소서!” 그리하여 우리에게 관련된 모든 사건들이 어떤 장애물도 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처리될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감동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어떠한 일도 없게 하려 한다. 그리고 우리의 눈이 하나님의 법도를 바로 향하게 된다. 선한 사람의 갈망과 기도가 인자하신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정확하게 일치함을 보라. “주께서 나로 하여금 주의 법도를 지키게 하셨으므로, 여호와여, 내가 기쁘게 율례를 지키겠나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의 성화의 길도 된다.” Ⅲ. 우리가 발견하게 될 위로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의무를 지키라고 가르쳐주고 있다(6절). 다음을 명심하자. (1)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하는 것이, 모든 선한 사람의 명백한 성격이다. 그는 계명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며, 그것을 그 본으로 삼아 [오직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영, 곧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겸비하심의 그 모든 것이 기록된 성경과 성령님을]따르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그리하여 지키지 못할 때에는 부끄러워하며 회개하며 상한 마음을 기억한다.((구주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열납하시는 (당신의 모든 것 기울여 내어주시는) 사랑, 곧 극진-끔찍히 아껴주시며 기뻐하시며 흐믓해 하시며 즐거워 하시는 선대-후대하심, 인자하심-진실하심으로 대함에 대해 결코 합당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며 아파하고, 조금이라도 부족함 없이 그분안에 거했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했음...또한 바로 그렇게 이웃들에게 내어주는 사랑의 통로로 자원-동행 이루지 못했음을 고백하고, 다시 그 모든 영광의 구주께서 인도-주장하시도록 요청드림!! )) 그는 계명에 견실한 주의를 기울여 경건을 행한다. 그것이 그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계명에 주의한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권위를 지니고 주어졌기 때문이며(약 2:10-11), 같은 목적,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이 우리의 행복이라는 데에서 평준화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계명에도 진지한 주의를 기울이는 자들은 모든 계명에 보편적인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즉, 약속과 법전, 금지와 율례의 모든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 그들은 속사람과 겉사람에 관심을 두는 자들이며, 머리와 마음에 관심을 두는 자들이다. 아무리 즐겁고 소득 있는 일이라도 죄를 금하며, 가장 어렵고 위험한 일이라도 의무를 찾는 자들이다. (2)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주의하는” 자들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그들은 자기들의 수치가 될 일을 행하기를 삼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확신과 그의 은총의 보좌에 접근할 담대성을 가지게 된다(요일 3:21).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신용을 얻게 된다. 그들의 정직은 그들의 명예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저희들의 영혼 안에 깨끗함과 용기를 가지게 된다. 그들은 세상을 등지도록 수치를 당하지 않으며, 자기를 성찰하도록 수치를 당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마음이 그들을 정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것을 자신에게 적용해 말한다. 정직한 자들은 그들의 정직함의 위로를 가지게 된다. “내가 사악하다면 내게 괴로움이 닥치듯이, 내가 진실하다면 내게 만족이 올 것이다.” ------ 율법을 배우고 지키기를 감사함(시 119:7-8) Ⅰ. 다윗이 그의 신앙에서 자신을 완전케 하려는 노력과 자기 사업을 잘 경영하려는 노력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을 배우기”를 소망한다. 그는 많은 것을 알았지만,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을 알고서, 앞으로 나아가 더욱더 알기를 갈망했다. 완전함이 이 생애 가운데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그는 그것에 도달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간단히 붙잡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일생 동안,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워야 하며,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학자가 되기를 목표해야 하며, 가장 높은 형태로 올라가기를 계획해야 한다. 하나님의 판단은 모두 의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성서 안에 있는 능력”을 배우게 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Ⅱ. 그가 하나님을 배우기로 한 결심이 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배우기를 몹시 바랐다. 자신의 이름을 날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사람들에게서 어떤 이익을 보자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즐거운 명상으로 그 자신의 머리를 채우고자 함도 아니었다. 1. 그는 하나님께 그의 배움에 대해 영광 돌리고자 했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주께 감사하리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쳐주시지 않으면 그가 배울 수 없음을 뜻하며, 하나님의 지도가 특별한 축복임을 뜻한다. 우리는 이에 대해 감사해야 할 이유를 갖는다. 즉, 그리스도는 무상 학교를 경영하시면서 돈 없이, 대가 없이 가르치시지만, 그는 그의 학도들이 그에게 그의 말씀과 그의 성령에 대해 감사 드릴 것을 기대한다. 확실히 신앙과 같이 유익한 천직을 배우는 것은 감사할 가치가 있는 자비다.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배운 사람들은 좋은 과목을 배운 자들이다. 그것이야말로 천사들의 과목이요, 하늘의 과목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언어와 혀로 찬양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정직한 마음으로” 그를 찬양하기를 배운 자들만이 이러한 신비를 잘 배운 자들이다. 그를 마음속에 모시고 신실한 예배의 실행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생활에서도 그의 영광을 목표로 삼는 자들 역시 그러한 자들이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들의 찬양만을 받으신다. 2. 그는 자신을 그러한 배움의 지배 아래 두고자 했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오리다.” 우리는 그것들을 배우지 않는 한 지킬 수 없다. 그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결심을 하고 지키는 자들은 하나님의 율례를 배울 수 있다. Ⅲ. 자기를 떠나지 말아달라고 하나님께 드리는 그의 기도가 있다.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내게서 떠나지 마옵시고, 주의 성령과 은총을 내게서 떠나게 하지 마옵소서. 그리하면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킬 수 없나이다.”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린다면 파멸이 온다는 것을 안다. 유혹하는 사단이 그들을 곤경에 몰아넣기 때문이다. “주께서 나를 버리시며, 나를 버리려고 위협하고 잠시 내게서 떠나신다고 하더라도, 그 버리심이 완전하고 결정적인 것이 되지 않게 하소서. 그것은 지옥입니다.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나를 멀리하시면 내게 화가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따르는 청년의 행실(시 119:9) Ⅰ. 중요한 질문이 여기에서 제기되었다. 다음 세대가 어떤 방법으로 이 세대보다 더 나아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깨끗케 한다는 것은 오염되어 있음을 암시해 준다. 우리 모두가 날 때부터 세상에 지니고 온 원죄 이외에도(오늘날까지 우리가 깨끗케 되지 못했지만) 젊은이들이 물들어 있는 많은 특수한 죄들이 있다. 그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행실을 더럽히고 있다. 그것이 바로 “청년의 정욕”(딤후 2:22)이라 하겠다. 이것들은 그들의 행실을 하나님께 대적케 하며, 그들 자신들에게도 불명예가 되게 한다. 청년들은 그들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그들의 생명이 개혁되며, “정욕으로 가득 찬 세상에 있는 부패함”으로부터 깨끗하게 되고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선한 양심과 좋은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아주 극소수의 청년들이 그들의 순결을 회복하고 보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들을 찾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들을 위해 질문하고 있다. Ⅱ. 이 질문에 대해 만족할 만한 대답이 주어졌다. 젊은이들은 효과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삼가 그 행실을 깨끗케 할 수 있다.” 젊음의 덕분으로 행복을 누리는 특정한 개인이나 공동체 모두에게 사용될 수 있는 권능을 가졌음이 하나님의 말씀의 영광이다. (1) 청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규범으로 삼아야 하고, 거기에 친숙해야 하며, 그것을 따르려는 굳은 결심을 가져야 한다. 방백들의 법이나 철학자들의 도덕보다 그것이 더 젊은이들을 깨끗케 하는 데로 향하게 한다. (2) 그들은 주의 깊게 그 규칙들을 적용하며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과 시금석으로 삼아 행실을 삼가고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행실 가운데 틀린 것은 원칙과 표준에 의해, 범례와 범주에 의해 교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무관심으로 행해지지 않는다. 주의 말씀에 대한 끊임없는 주목과 우리의 행실에 대한 관찰을 함께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청년들의 파멸은 목표 없는 삶이나(또는 전혀 규범이 없는 생활), 거짓된 규범을 스스로 선택하는 데서 비롯된다. 저희의 발자취[와 근본동기]를 골몰히 생각하고 성서의 규칙에 따라 [주님 말씀의 빛과 깨우치심따라, 판단분별회개결단함 통해]행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저희의 행실이 깨끗하게 되며, 그들은 이 세상에서와 영원토록 위로와 신뢰를 갖게 될 것이다. --------- 계명에서 주를 찾는 마음(시 119:10) 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행하신 선한 역사에 대한 그의 경험이 나타나 있다. 그는 하나님과 더불어 위로를 취하고, 그에게 간구한다. “내가 주를 [주께서만이 나의 지고지선의 진복이자 참 영광이요 삶의 목적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셨기에 주님자신을 추구하며]찾았나이다. 내가 주를 나의 신탁으로서 찾았고, 주를 나의 행복으로, 나의 하나님으로서 찾았나이다. 백성들은 저희의 하나님을 (이직) 찾지 아니하였나이까? 내가 아직 주를 (주님 영광 어떠하심의 충만 그대로를 합당하게 제대로) 찾지 못하였다면, 내가 [여전히 이생 끝나는 시간까지]주를 찾겠나이다. 주는 주를 찾는 것이 쓸데없다고 내게 말씀하지 않으셨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나이다. 오직 주만을 찾았고, 부지런히 주를 찾았나이다.” Ⅱ. 그 선한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그의 기도가 있다. “나로 하여금 주의 율례를 찾도록 하신 주여, 내가 그 율례를 떠나 방황하지 않게 하소서.” 가장 선한 자들은 방탕하기 쉬운 (제멋대로 자행자제하려 하는, 자유분방하고 혈기방장한]성격을 [절절하게, 아파하며]인식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데에 기쁨이 있음을 발견하면 할수록 그 계명을 떠나 방황하게 됨을 더욱 두려워하며, 우리의 방황을 막아주는 그의 은총을 하나님께 더욱 진지하게 기도하게 된다. ----------- 마음에 율법을 정함(시 119:11) Ⅰ. 다윗이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한 마지막 본보기가 제시되어 있다.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거기에 쌓아둔 것은 언제라도 사용하게 될 경우를 위해 준비함이다. 그는 매우 가치 있게 여기는 것으로 그것을 쌓아두었으며,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잃거나 도난 당할 두려움을 배제하고자 한다. 단지 우리의 집과 손에만 둔다면, 적들은 그것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갈 수 있다. 만일 우리의 머리에만 둔다면 우리의 기억이 잊게 하리라.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 두고, 그에 대한 인상을 우리의 영혼 속에 남겨둔다면 그것은 안전하다. Ⅱ. 그가 선한 목적으로 사용하려 계획한 것이 나타나 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함이라.” 선한 사람들은 죄를 두려워하며, 죄를 막기 위해 관심을 기울인다. 범죄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행하신 바와 같이 모든 시험에 “성경에 기록된 바”라는 말로 대답할 수 있다. 죄의 지배에 대한 하나님의 율례를 제시하며, 그 유혹에 대한 그의 약속과 위협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을 말할 수 있다. ----------- 주의 율례를 찬양함(시 119:12) Ⅰ. 다윗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는 스스로 무한하게 기쁨 가운데서 행복하시며, 나와 나의 예배가 필요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주는 저희에 의해 주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을 알고 기뻐하시나이다. 그러므로 나를 도와주소서. 그리고 나를 용납해 주소서.” 우리는 모든 기도 가운데 찬양을 곁들여야 한다. Ⅱ.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총을 간구한다.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그리하면 내가 주를 찬송할 방법을 알게 되고, 주가 찬양 받으실 분임을 알게 되며, 나는 주 안에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의 법도를 즐거워함(시 119:13-16) Ⅰ. 다윗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표한 존경에서 얻은 위로를 회고한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그의 양심의 증거를 갖고 있었다. 1.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배운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교화했다(13절).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명령을 내리고 심판하는 왕으로서만, 또는 그의 시편에 의한 예언으로서만이 아니라, 그의 일상 담화에서도 그렇게 행했다. 그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 있으며, 그것에 익숙함으로써 취하는 거룩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입증해 준다. “입이 말하는 것은 마음의 충만한 것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는 지식으로 선을 행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막지 않고, 그들을 위해 두었다. 주인이 그의 창고에서 “새 것과 낡은 것”을 꺼내오듯이 “그의 마음의 좋은 보화”로부터 “선한 것을 가져온다.” 생명의 떡으로 마음이 배불리 먹여진 자들은 그들의 입술로도 많은 것을 먹으리라. 그는 하나님이 가르쳐주실 것을 간구한다(12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지식을 선하게 사용하고자 노력하오니 지식을 더하소서.” 그러므로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된다.” 2. 그는 주의 율례와 더불어 기뻐한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나는 주의 율례를 알고 행하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음을 깨닫고 구하나이다(14절). 내가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말씀의 명상과 역사에서만이 아니라, 그 교훈에서도, 그리고 그들이 조롱하는 진정한 경건의 길에서도 주께 부단한 복종을 통해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같이 이것을 즐거워하였나이다. 부요함을 증가시키는 세상적인 기쁨보다 더욱더 즐거워하였나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도에서 나는 진실로 말할 수 있다. “내 영혼아, 편히 쉬라.” 참된 신앙에 무한한 풍부가 있고,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이 있다. Ⅱ. 거룩한 열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애정이 결코 식지 않기를 결심하고 있다. “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라”(고후 11:12). 하나님의 도에서 기쁨을 발견한 자들은 그 가운데서 나아가며, 그 도를 지킬 것이다. 1. 다윗은 하나님의 도를 생각하기를 원한다(15절).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라.” 그는 법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해야 하는 내용을 그 자신의 생각에 소화시키는 고통을 감수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지식과 권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렇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사상의 주제여야 한다. 2. 그는 하나님의 도를 항상 그의 안중에 두기를 원한다. “내가 주의 도를 주의하리이다.” 마치 여행자처럼 실수하지 않고 항상 목표를 향해 노력하려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례를 우리의 규범과 선한 생각으로서, 그리고 선한 행실과 의도를 산출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주의하지 않는 한 선한 목적으로 하나님의 법도를 묵상할 수 없다. 3. 다윗은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에게 복종하는 데서 영원한 기쁨을 취하기를 원한다. 그는 이러한 빛 가운데 잠시만 기뻐할 뿐만 아니라, “내가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되, 영원히 즐거워할 것이라. 생각하고 즐거워할 뿐 아니라, 기쁨으로 행하기를 원한다”(16절). 다윗은 하나님의 율례를 그의 궁정이나 그의 진영의 명예의 기쁨보다, 그의 칼이나 수금보다 더욱 즐거워했다. 율법이 마음에 씌어지면 의무는 즐거움이 된다. 4. 그는 하나님의 것에 대해 배운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잊지 않을 뿐 아니라, 사용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상기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쁨을 누리는 자들은 그것을 잃어버릴 위험이 없다. ---------- >>>>>>하나님의 관대하심(시 119:17) Ⅰ.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의 자비에 맡기라는 것을 배운다. 다윗은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하고 기도한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이러한 삶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관대하심으로 말미암아서다. 그리고 생명을 지속시키며 모든 부양물을 주고 그 위로를 얻게 하는 것 역시 관대함이다. 이러한 것들이 보류된다면 우리는 죽게 되거나 그와 유사하게 되어 우리 생명은 몹시 지쳐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엄하게 정의로 대하신다면 우리는 죽게 된다. 아니, 우리 모두는 멸망하게 된다. 이렇게 박탈당한 생명이 보존되고 연장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그의 자비를 따라서 우리에게 관대하게 대하시기 때문이다. 가장 가치 있는 삶의 지속은 하나님의 관대하심에 달려 있으며, 우리는 그 관대하심에 끊임없이 의존해야 한다. Ⅱ. 우리의 일생을 하나님 섬기는 데에 바쳐야 함을 배운다. “그러므로” 인생은 선택된 자비이다. 이는, 그를 영화롭게 하는 자가 거의 없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복종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 사실을 그의 안중에 두고 있다. “살게 하소서.” 부자가 되어 살며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그것을 나 자신이 지키고, 오고 오는 자들에게도 전수하리이다. 그리고 내가 오래 살면 살수록 더욱더 잘 지키리이다.” ------------ 하나님의 기이한 것을 간구함(시 119:18) Ⅰ. 하나님의 “법” 속에 있는 “기이한 것”을 관찰해 보자. 매우 놀랍고 예기치 않았던 일, 높이 평가되고 가치 있으며, 오랫동안 지혜로운 자에게는 감추어져 왔으나”, 이제 “유아에게도 계시된” 그것을 우리는 모두 보고 싶어한다. 복음에는 물론이요, 율법 안에 놀라운 것이 있다면 바로 그리스도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이다. 천사들도 보기를 원했으니(벧전 1:12), 우리가 그렇게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Ⅱ. 하나님의 율법과 복음의 기이한 것을 보기를 원하는 자들은 “내 눈을 열어달라”고, 그리고 이해하게 해달라고 그에게 간청해야 한다. 우리는 그의 은총이 우리 눈에서 비늘을 벗길 때까지는 본질상 하나님의 일에 맹목적이라 하겠다. 하나님께서 마음속에다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자들도 여전히 더욱 밝아질 필요가 있으므로, 저희의 눈을 열어줄 것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그러면 처음에는 사람들을 나무가 걸어가는 것으로 보았던 자들도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면 주실수록 우리는 하나님 가운데서 우리가 전에 보지 못했던 기이한 것들을 더욱 많이 보게 된다. --------- 나그네 같은 인생의 고백(시 119:19) Ⅰ. 우리는 다윗이 자신의 여건을 인식함을 본다.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나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며, 모든 선한 사람들도 그렇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하늘이 그들의 본향이며, 세상은 그들이 잠깐 기거하는 주막집이나 순례지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세상에 관한 많은 것을 알았던 사람,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그 사실을 깊이 인식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집을 지어주셨고, 보좌를 설정하셨다. 이방인들이 그에게 복종했고, 그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를 섬겼다. 그가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그는 자신을 객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세상에서 모두 객이며, 우리 자신도 그렇게 불러야 한다. Ⅱ. 그가 하나님께 드린 요청이 나타나 있다.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그는 더욱더 나타내려고 한다. “여호와여, 내게 주의 계명을 보여주소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의 결핍을 알지 않게 하시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가 그것과 친숙하게 성장하도록 해주소서. 나는 객입니다. 그러므로 안내자와 지도자와 동료와 위로자가 필요함을 항상 느끼게 됩니다. 주의 계명을 내 시야 가운데 두소서. 내게는 이것들이 전부이며, 가련한 객이 갈구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나는 객입니다. 이땅에서 곧 사라질 것입니다. 주의 계명에 의해 내가 곧 이사 갈(죽을) 준비를 하게 하소서.” ---------- 상한 마음(시 119:20) 다윗은 자기 눈을 열어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했고(18절), 율법을 열어줄 것을 간구했다. 이제 여기에 지식과 은총에 대한 그의 갈망의 진지한 모습이 나와 있다. 그것은 상당히 뜨거운 기도이다. Ⅰ. 그의 간구는 조르는 것이었다.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하므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또는 (어떤 사람들이 해석하는 바와 같이)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하므로 내 마음이 사로잡히고, 완전히 진하였나이다. 그 갈망의 전체적인 흐름은 이 통로로 흘러내립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방향과 변화와 위로를 원한다면, 나 자신이 완전히 깨어지고 파멸되어야 할 것입니다.” Ⅱ. 그것은 끊임없었다. “항상” 사모하는 것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은 좋은 생각으로 잠깐 동안 있을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일용할 양식처럼 바람은, 모든 성화된 영혼의 습관적 기질이다. ------------- 사악한 자들의 마음(시 119:21) Ⅰ. 사악한 자들의 야비한 성격이 나타나 있다. 저희 마음의 기질은 악하다. 그들은 “교만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항해 자신들을 자랑하며, 마치 그들의 마음과 혀와 모든 것이 그들 자신의 것인 양 하나님의 뜻에 반대함을 설정한다. 모든 의도적인 죄의 밑바닥에는 교만한 어떤 것이 있다. 그들의 삶의 방침도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항상 저희의 마음에 잘못을 행한 것”처럼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들이다.” 그들은 판단을 그르치고, 주의 계명에 반대되는 원칙들을 채택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실제로 그르치며, 선한 행실에서 고의적으로 멀리 떨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것이 그들의 교만의 결과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한다. “우리가 섬겨야 할 전능자가 무엇이냐?” 바로와 같이, “여호와가 누구냐?”고 말한다. Ⅱ. 여기에 그런 자들의 불행한 경우가 있다. 그들은 확실히 저주를 받는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기” 때문이다. 율법의 명령을 던져버리는 자들은 자신들을 저주 아래 두게 된다(갈 3:10). 하나님은 이제 “그들이 멀리 떨어진 것을 보면서”, 그들에게 간단하게 말한다. “가라, 너희는 저주받았다.” 교만한 죄인들은 자신들을 찬양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저주하신다. 이러한 저주의 가장 무서운 결과는 저 세상에서 나타날 것이지만, 그들은 종종 이 세상에서 혹독한 책망을 받기도 한다. 섭리는 그들을 방해하며 괴롭게 한다. 그들이 교만하게 대하는 곳에서 하나님은 그들 위에 나타나신다. 그리고 이러한 질책은 더욱 악화될 징조다. 다윗은 질책이 교만한 자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계명에서 떠나지” 않도록 진지하게 기도하게끔 만들어주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더욱 선해진다. ----------- 악에서 떠날 것을 간구함(시 119:22) Ⅰ. 다윗은 인간의 비난과 멸시가 “그에게서 떠나가게”, 또는 “물러가고 지나가게” 되기를 기도한다. 이는 그들이 다윗을 공격함을 암시한다. 그의 위대함도 그의 선함도 그가 모욕을 받고 비방 받는 데서 그를 구제할 수 없음을 나타내준다. 어떤 사람들은 다윗을 경멸했고, 그를 비천하게 만들려고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를 훼방했으며, 그를 증오거리로 만들려고 했다. 선을 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종종 비방되어 왔음은 사실이다. 또 이것은 그들이 그를 무섭게 공격함을 의미한다. 무섭고 더러운 언어들이 어떠한 뼈도 부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드럽고 슬기로운 정신을 크게 침해한다. 그런고로 다윗은 기도한다. “여호와여, 그들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의 의무와 그것에 대한 용기를 멀리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마음과 혀를 그의 안에 두시며, 거짓을 말하는 입술을 침묵하게 하실 수 있고, 굴욕 속에 짓밟힌 선한 이름을 들어올리신다. 우리는 그에게 정의의 옹호자로서, 악의 심판자로서 임하실 것을 호소해야 한다. 그러면 그의 약속에 의거해 그는 “우리의 의를 빛같이”(37:6) 분명하게 드러내실 것이다. 훼방과 멸시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우리에게 유익을 끼치며, 그리고는 결국 떠나게 될 것이다. Ⅱ.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에 대한 끊임없는 고수(固守)를 호소한다.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옵나이다.” 그는 자기의 무죄를 호소할 뿐만 아니라, 부당하게 비난받았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러고 나서 다시 호소한다. (1) 선한 행실로 인해 조롱받았다고 호소한다. 그는 그의 신앙에 대한 철저성과 정열 때문에 경멸과 모욕을 받았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을 받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주실 것을 더욱 큰 확신으로 간청할 수 있다. 하나님 백성의 훼방은―그것이 아직 떠나가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갑자기 큰 영광으로 변하게 된다. (2) 또한 그는 선한 행실에도 불구하고 조롱받았다고 탄식한다. “여호와여, 그것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옵나이다.” 우리가 심판 날에 우리의 성실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면, 우리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확신한다. ----------- 높은 자들이 주는 비난(시 119:23)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Ⅰ. 다윗의 성격과 처지를 잘 알고, 더 관대했어야 했을 높은 사람들에게서까지 다윗은 비방 받았음을 보여준다. “방백들도 앉아”, 의회에 앉아, 심판대에 앉아 “나를 훼방하였사옵니다.” 비록 방백들이 말하지만,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심판이 이렇게 고민으로 변하고, 무죄한 자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 자들이 저희의 반역자가 될 때 세상은 슬프다. 이러한 점에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들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고”(고전 2:8), 비방한 이 세상의 방백들이기 때문이다. Ⅱ. 그가 어떤 방법으로 이러한 조롱 아래 자신을 편하게 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는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고”, 그의 의무를 계속 수행했으며, 그들을 주시하지 않았다. 마치 귀 먹은 사람처럼 그는 전혀 듣지 않았다. 그들이 비방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자신에게 말할 것과 자신을 위로할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 중 아무것도 그를 요동치 못했다.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기쁨을 갖는 자들은 쉽게 사람들의 훼방을―심지어는 방백들의 훼방일지라도― 쉽게 경시할 수 있다. --------- 하나님의 율례를 즐거이 묵상함(시 119:24) 다윗은 방백들이 앉아서 그를 비방할 때 자신에게 사용한 하나님의 율례에 대한 그의 묵상(23절)을 설명해 주고 있다. Ⅰ. 그 고난이 그를 슬프게 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그를 위로했고, 그것이 그의 “즐거움”이었다. 그것은 그의 궁성이나 진영, 도성이나 나라 안에서 얻을 수 있었던 그 어떤 기쁨보다도 더 큰 그의 기쁨이었다. 때때로 그것은, 다른 위로들이 마음을 상하게 할 때, 하나님 말씀의 위로가 은혜로운 영혼에게 가장 즐거운 것이 됨을 입증해 준다. Ⅱ. 그 고난이 그를 당황케 했는가? 방백들이 그를 비방할 때,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는가? 하나님의 율례가 그의 “모사”였다. 모사들은 그가 그러한 역경을 인내로써 참을 것을 조언해 주었으며, 그의 모든 분을 하나님께 맡길 것을 가르쳐주었다. 하나님의 “증거”는 방백에게나 개인 모두에게 가장 좋은 모사가 된다. 원문의 뜻은 “그것들은 나의 조언자들이다”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많은 모사에게 의논하는 것보다 율례에 맡기고 뜻을 묻는 것에서 더욱 좋은 안정감과 만족을 찾게 된다. 하나님의 증거를 기쁨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은 모든 문제를 그들의 모사에게 가지고 가서 충고 받아야 한다. 문제들을 가지고 모사에게 가는 자들은 위로를 찾는 걸음으로 저희의 기쁨을 찾기 위해 그들에게 가야 할 것이다. ------------------ ------------- 구원을 향한 다윗의 탄식(시 119:25) Ⅰ. 여기에 다윗의 탄식이 있다. 우리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그의 영혼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을 일컬어 “내 영혼이” 진토에 구를 뿐만 아니라, “진토에 붙었사옵나이다”라고 탄식한다. 1. 그것은 그의 타락에 대한 탄식이다. 그의 세상과 육체에 대한 경향(세상과 육체는 진토다)이 거룩한 의무들에 대해 죽는 결과를 가져왔다. “선을 행하고 싶었으나 악이 그에게 있었다.”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라”(창 3:19)고 말씀했을 때, 그것은 아담이 죽을 존재일 뿐만 아니라, 죄로 가득 찬 존재임을 나타냈다. 여기에 나타난 다윗의 탄식은 바울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죽음의 몸에 대한 탄식과 유사하다. 안에 거하는 타락의 잔재들은 은혜로운 영혼을 크게 해치는 짐이 된다. 2. 아니면, 마음의 고난 또는 외적 고난임을 가릴 것 없이 그의 곤고한 상태에 대한 탄식이다. “투쟁이” 없는 곳에는 공포가 있다. 그 공포는 그를 심지어 “사망의 진토”(22:15)에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거기에 꽉 붙게 되었다. Ⅱ. 여기에는 또한 소생을 위한 그의 간구와 그 간구를 강하게 하는 그의 호소가 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주의 섭리로 나의 역경에 생명을 주시고, 주의 은총으로 나의 고난에 생명을 주소서. 나를 영적인 죽음으로부터 치료하시며, 나로 하여금 생동력 있게 예배에 참예케 하소서.” 우리 스스로 미련함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 우리를 소생케 해달라고 간청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생의 수단으로(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주의 말씀을 영접한 자들에게 “그들은 영이요, 그들은 생명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소생시켜 줄 소망의 격려로 보았다. 그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은총과 위로를 약속 받고, 특히 그에게 주신 은총과 위로를 스스로 취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안내자며, 일상 기도에서 간구할 바가 되어야 한다. --------- 주의 율례와 법도를 배움(시 119:26-27) Ⅰ.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과 그의 하나님 사이에 있었던 커다란 친밀성과 자유를 본다. 다윗은 그의 처지를 드러내놓고 하나님께 그의 진실한 마음을 열어놓았다. “나의 행위를 고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주께 감사했고, 나의 모든 계획과 기도(企圖) 가운데서 내가 행한 것을 주께 고했다.” 이와 같이 “입다는 그의 말을 모두 고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그의 편지를 “여호와 앞에서” 펴고 이렇게 선포했다. “내가 나의 행위를, 나의 행위에서 당하는 무거운 짐과 고난을, 나의 소원을, 또는 나의 죄들을, 나의 곁길을 고하였다”(나는 그것들에 대한 진실한 고백을 했다). 그래서 “주께서 응답하셨다.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참고 들으시며, 내 처지를 인식하셨다.” 모든 탄식이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용납된다는 그 인자를 생각하는 것은 은혜로운 영혼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요일 5:14-15). Ⅱ. 우리는 여기에서 또한 하늘로부터의 환상이나 음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방법으로 주어진 말씀과 성령에 의해 그러한 친밀성이 계속되기를 원하는 다윗의 진지한 간구를 본다.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즉, “나로 하여금 주의 교훈의 법도를 이해하게 하소서.” 그가 하나님께서 그의 행실에 대한 그의 선포를 들으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여호와여, 내게 나의 운명을 말하소서. 나로 하여금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알게 하소서”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여, 내게 나의 의무를 말하소서. 나로 하여금 내가 처한 자리에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모든 행위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들은 그가 올바른 행실로 그 길을 가게 인도해 달라고 믿음 가운데 간구하게 된다.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를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의 율례를 배우고, “주의 법도의 길”을 지속적으로 따라가는 길밖에 없다(요일 1:6-7 참조). Ⅲ.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교화를 위해 좋은 방법으로 이것을 사용했다. “나로 하여금 주의 법도의 길을 잘 이해하게 하소서. 내게 하나님의 일들을 분명하고 명백하며 방법적인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확실한 증거로 보다 더 적절하게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의 은총과 섭리의 기적, 특히 구속하시는 사랑의 기적을 묵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의 길을 이해하며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 다윗의 슬픈 탄식(시 119:28-29) Ⅰ. 다윗의 슬픔의 표현이 나타나 있다. 25절의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옵니다”라는 고백과 같은 의미로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옵니다”라고 탄식한다. 인간의 마음의 눌림은 마음을 녹여, 소모되는 양초처럼 녹여 없앤다. 회개하는 영혼은 죄로 인한 슬픔을 녹이며, 인내하는 영혼은 고난의 감정을 녹일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탄원을 토로함은 그러한 관심에서 되는 것이다. Ⅱ. 또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그의 요청이 있다. (1) 하나님께, 그를 그의 고난에서 잘 참아낼 수 있게 하고, 고난 중에서도 자기를 지탱할 수 있게 힘 주실 것을 간청한다. 나의 영혼에 힘을 주시어 “주의 말씀대로 내게 힘을 주소서. 생명의 떡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시련으로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견딜 수 있도록 강하게 하소서. 내게 힘을 주시어 의무들을 행하게 하시며, 유혹에 항거하게 하시고, 고난의 상태에서 주어지는 짐들을 견디게 하시어 영혼이 파멸에 이르지 않게 하시옵소서.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신 33:25)라는 말씀을 따라서 나를 강하게 하소서.” (2) 그가 자기의 고난에서 벗어나려고 비합법적인 옳지 못한 수단을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막아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청하고 있다(29절).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옵소서.” 다윗은 자기가 이러한 죄를 범하기 쉬운 경향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곤궁에 빠졌을 때 아히멜렉(삼상 21:2)을 속였고, 아기스를 두 번씩이나 속였다(삼상 2:13, 27:10). 중대한 곤란은 경건한 기만과 필요한 자기방어라는 핑계로써 거짓을 정당화해 주는 유혹을 준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러한 죄에 더이상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 줄 것을 간구한다. 그가 그러한 행실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거짓과 기만과 위장하는 일은 모든 선한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의 은총으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을 간구하는 데에 전념해야 한다. (3) 그는 항상 하나님 지배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아래 있기를 위해 간구한다.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거짓 행위에서 나를 은혜로이 지켜주소서.” 다윗은 그 자신의 손으로 쓴 율법책을 가지고 있었다. 왕은 자기가 사용할 목적으로 그 사본을 베껴두어야 했다(신 17:18). 그러나 그는 그것이 그의 마음에 씌어지기를 간구했다. 율법책을 정말로 마음에 새겨두고 있을 그때에만 우리는 좋은 목적으로 그것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을 내게 더욱더 베푸소서.” 하나님의 법을 알고 사랑하는 자들은 그것을 알면 알수록 더 사랑하기를 갈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총의 특별한 징표로서 간청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하나의 베푸심으로, 선물로, 그 가치를 말로 다 할 수 없는 선물로 인식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 간구하고, 따라서 그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제도와 율례에 관한 하나님의 법전은 실로 특권의 헌장이다. 진실로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은혜롭게 만드신 자들에게 은혜로우시다. ------------ 진리의 길을 택함(시 119:30-32)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주목해 보자. Ⅰ. 자신들의 신앙적 목적에 관한 어떤 것을 하려고 하는 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진지하고도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 다윗은 그렇게 했다. “내가 성실한 길을 택했다.” 1. 거룩한 길은 진리의 길이다. 그것이 기초한 원칙들은 영원한 원칙들이며, 유일하게 행복으로 이르는 진실이다. 2. 우리는 다른 길을 모르기 때문에 이 길을 걷기로 택해야 한다. 아니, 우리는 그밖에 다른 어떤 선하고 안전한 길을 알지 못한다. 그 길이 비록 좁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걸어야 할 우리의 길을 위해 그 길을 선택하도록 하자. Ⅱ. 성실한 길을 택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 행실의 규범으로 삼고, 부단히 주시해야 한다.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글쓰기를 배우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