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2:14-23(19-20)]].....
@@하나님이 친히 세우시는 성전과 성벽 ... 한 백성을 감찰 심판하여 비틀어진 것을 재건하고 수축하려 오실 때에는 공평(정의...미슈파트)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평가의 기초가 되는 무게 중심/기본 가치.....베푼 다림줄에서 바로 기초석에 다림추의 방향이 일치하고 추에 수직방향으로 모퉁이돌위로, 그리고 모퉁이돌을 기점으로 서로 수직의 횡방향으로 돌을 쌓아가게 될 때 흔들림없고 무너짐없는 벽을 쌓을 수 있게 됨..즉, 모퉁이돌이자 기초석을 향하는 다림줄의 다림추는 정의실현의 확고부동한 근거....그 근거에 입각해서 수직줄을 베풀고 그에따라 벽을 다 쌓은 후에 재점검할 때에도 동일하게 다림줄을 베풀어 점검하게 된다 )를 삼아 다림줄을 베푸신다(사 28:17). 왜냐하면 그가 판결하시고 집행하실 때에는 정확하게 하시는 때문이다(아모스서의 다림줄 이해!!) ....두 벽이 만나는 곳, 즉, 서로 직각인 두 벽이 직각방향으로 뻗어가게 하고 그 위에 수직으로 쌓아가는 바 건물벽이 시작되는 건물 모퉁이 머릿돌/건물기둥뿌리 주춧돌Poststone은 건물의 가장 근간이 되는 주초석/정초석이라 불리며 그것을 기준으로 벽이 쌓이며 그것을 기점으로 기초석(계21:16-21..foundation..하늘예루살렘성에는 12기초석으로 구성)들이 놓이게 됨(시118:22, 벧전2:7..cornerstone=head of corner..건물 약력을 기록 = 머릿돌)...다림줄의 추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이 머릿돌임 ------ [사28:16-17...기촛돌과 다림줄] *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에벤 보한)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17 나는 정의(미슈파트)를 측량줄(다림줄)로 삼고 공의(체데크)를 저울추(다림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16. 그러므로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시온에 주춧돌을 놓는다. 얼마나 견고한지 시험하여 본 돌이다. 이 귀한 돌을 모퉁이에 놓아서, 기초를 튼튼히 세울 것이니, 이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17. 내가 공평으로 줄자를 삼고, 공의로 저울을 삼을 것이니,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한 사람은 우박이 휩쓸어 가고, 속임수로 몸을 감춘 사람은 물에 떠내려 갈 것이다..) @j'Bo(976, 보한) 시험, 입증 보한(명남)은 바한(@j"B; , 974)에서 유래했으며 '시험' trial, testing, '입증' proof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사 28:16에 한번 나오며 에벤(@b,a, , 68: 돌)과 함께 형용사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시험을 통과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에벤 보한'은 '시험을 통과한, 입증된 돌'이다. 신약성경(벧전 2:4-6, 롬 9:33)에서 이 돌은 그리스도, 곧 하나님 나라의 주춧돌로 해석되었다. (참조: Gesenius; J. N. Oswalt). ============ hN:Pi(6438, 핀나) 모퉁이, 구석 corner 핀나(명여)는 어원이 불분명하며 '모퉁이, 구석 corner'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8회 나온다. (a)핀나는 구약성경에서 "모퉁이" corner로 번역된 두 단어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페아(ha;Pe , 6285)이며 "측면, 끝"의 개념을 함축하며, 핀나는 "모퉁이"라는 의미가 더욱 강하다. 핀나는 집이나(욥 1:19), 제단(출 27:2, 출 38:2), 성벽(느 3:24, 느 3:31), 거리(잠 7:8, 잠 7:12), 지붕(잠 21:9, 잠 25:24), 벽에 딸린 탑(왕하 14:13, 렘 31:8) 등의 모퉁이를 말한다....핀나의 가장 흥미로운 용법은 세계의 모퉁이 돌에 관한 것이다(욥 38:6에서). 두 구절에서는 모퉁이 돌이 비유적으로 쓰였으며 메시야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① 사 28:16(롬 9:33). ② 시 118:22(그리고 이 구절을 인용한 마 21:42, 막 12:10, 눅 20:17, 행 4:11, 벧전 2:7을 참조하라)....문제는 성경의 모퉁이 돌에 대한 두가지 견해가 있다는 것...모퉁이돌(Cornerstone)이 건물 맨 밑에서 받치는 기초석(Foundationstone)인가 아니면 건물 꼭대기에 놓이는 관석(Capstone)인가 하는 것이다. 사 28:16은 전자(에벤 핀나)를 언급한 듯하나 시 118:22(로쉬 핀나)은 후자를 말하는 것 같다. ...확대해 보건대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세워진 초석이 되실 뿐만 아니라 또한 교회의 꼭대기를 덮는 관석 또는 요석이 되신다. (b) 핀나는 비유적으로 모퉁이, 지지와 방어로서 '우두머리, 통치자'를 의미한다(삿 20:2, 삼상 14:38, 사 19:13, 슥 10:4).(참조: V. P. HAMILTON; BDB). ------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파타 allure...고칠 개.부드러울 유..개유하다[중심으로 회개하는 마음을 용서하여 받아주며 품고 어루만져 설득함으로써 부드럽고 열린 마음으로 교훈을 잘 배우고 깨닫게 함]) 부드럽게 거친 들로(미드바르...황무지...다바르[말씀]이 들려지는 곳)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나함...위로하여 편케하다. 안위하다=샤마르)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쉬...아내가 있을 때 그 남편 지칭....친밀함과 유일성 강조...뼈 중의 뼈, 살중의 살...남자에게 나왔은즉 여자라 칭하리라)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주인)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아라스...betroth 약혼/정혼하다) 영원히 살되 공의(체데크...Q의 어떠하심 바로 그자체)와 정의(미슈파트...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와 은총(헤세드...인자/자비/자애/친절)과 긍휼히 여김(라함...자비와 동정, 곧 불쌍히여김..이는 은혜[헨]로 나타남)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 진실함으로[에무나...확고부동-견고함, 신실-성실-충실-정직-신뢰 ::: 헤세드-공의-정의로 대표되는 Q의 어떠하심과 그 밀씀의 항구여일, 진실성의 증명)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야다....어떤 존재의 그 본질을 생생하게 경험하여 참되게 앎)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표준새번역------- 백성을 향한 주의 사랑 14. "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를 꾀어서, 빈 들로 데리고 가겠다. 거기에서 내가 그를 다정한 말로 달래 주겠다. 15. 그런 다음에, 내가 거기에서 포도원을 그에게 되돌려 주고, 아골 평원이 희망의 문이 되게 하면, 그는 젊을 때처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올 때처럼, 거기에서 나를 기쁘게 대할 것이다. 16. 그 날에 너는 나를 '나의 남편'이라고 부르고, 다시는 '나의 주인'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17. 그 때에 나는 그의 입에서 바알 신들의 이름을 모두 없애고, 바알 신들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 18. 그 날에는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고,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벌레와 언약을 맺고, 활과 칼을 꺾어버리며 땅에서 전쟁을 없애어,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하겠다. 19. 그 때에 내가 너를 영원히 아내로 맞아들이고, 너에게 정의와 공평으로 대하고, 너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긍휼을 보여 주고, 너를 아내로 삼겠다. 20. 내가 너에게 성실한 마음으로 너와 결혼하겠다. 그러면 너는 나 주를 바로 알 것이다. 21. 그 날에 내가 응답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올리브 기름에 응답하고, 이 먹을거리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을 이 땅에 심어서 나의 백성으로 키우고, 로루하마를 사랑하여 루하마가 되게 할 것이다. 로암미에게 '이제 너는 암미다!' 하고 내가 말하면, 그가 나에게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AMP--------- Restoration of Israel 14 “Therefore, behold, I will allure Israel And bring her into the wilderness, And I will speak tenderly to her [to reconcile her to Me]. 15 “Then I will give her her vineyards from there, And make the Valley of Achor a door of hope and expectation [anticipating the time when I will restore My favor on her]. And she will sing there and respond as in the days of her youth As in the day when she came up from the land of Egypt. 16 “It shall come about in that day,” says the Lord, “That you will call Me Ishi (my husband) And will no longer call Me Baali (my [a]Baal). 17 “For I will remove the names of the Baals from her mouth, So that they will no longer be mentioned or remembered by their names. 18 “And in that day I will make a covenant for Israel With the animals of the open country And with the birds of the heavens And with the creeping things of the ground.And I will abolish the bow and the sword and [banish] war from the land And will make them lie down in safety. 19 “And I will betroth you (Israel) to Me forever; Yes, I will betroth you to Me in righteousness and in justice, In lovingkindness and loyalty, and in compassion. 20 “I will betroth you to Me in stability and in faithfulness. Then you will know (recognize, appreciate) the Lord [and respond with loving faithfulness]. 21 “It will come about in that day that I will respond,” says the Lord. “I will respond to the heavens [which ask for rain to pour on the earth], and they will respond to the earth [which begs for the rain], 22 And the earth shall respond to the grain and the new wine and the oil [which beg it to bring them forth], And they will respond to Jezreel [My Israel, who will now be restored]. 23 “I will sow her for Myself in the land. I will also have mercy on her who had not obtained mercy; And I will say to those who were not My people, ‘You are My people,’ And they will say, ‘You are my God!’” Footnotes Hosea 2:16 This was a loaded term meaning “owner,” “lord,” or “husband,” and as “lord” it also became a word for pagan gods. Some or perhaps most of the idolatry in which Israel engaged probably were attempts to represent the true God as an idol, such as a Baal ----NKJV---------- God’s Mercy on His People 14 “Therefore, behold, I will allure her, Will bring her into the wilderness, And speak [g]comfort to her. 15 I will give her her vineyards from there, And the Valley of Achor as a door of hope; She shall sing there, As in the days of her youth, As in the day when she came up from the land of Egypt. 16 “And it shall be, in that day,” Says the Lord, “That you will call Me [h]‘My Husband,’ And no longer call Me [i]‘My Master,’ 17 For I will take from her mouth the names of the Baals, And they shall be remembered by their name no more. 18 In that day I will make a covenant for them With the beasts of the field, With the birds of the air, And with the creeping things of the ground. Bow and sword of battle I will shatter from the earth, To make them lie down safely. 19 “I will betroth you to Me forever; Yes, I will betroth you to Me In righteousness and justice, In lovingkindness and mercy; 20 I will betroth you to Me in faithfulness, And you shall know the Lord. 21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That I will answer,” says the Lord; “I will answer the heavens, And they shall answer the earth. 22 The earth shall answer With grain, With new wine, And with oil; They shall answer [j]Jezreel. 23 Then I will sow her for Myself in the earth, And I will have mercy on her who had [k]not obtained mercy; Then I will say to those who were [l]not My people, ‘You are [m]My people!’ And they shall say, ‘You are my God!’ ” ============= 자비의 약속(호 2:14-23) 본장 전반부에서는 자신의 죄로 파산한 이스라엘의 상태가 암담하고 음울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 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견제된 이스라엘의 상태가 밝고 즐겁게 나타난다. 이같이 경고에 바싹 뒤쫓아서 약속들이 나오는 것은 더욱 놀랍다. 아니!! 파멸의 경고가 근거한 죄의 선언에 이어서 곧바로 이런 약속이 나오고 약속이 연결 부호로써 경고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오히려 매우 이상하게 보인다. "저가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렸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리라." 그러므로 연결부호인 "그러므로" 다음에 감탄 부호가 곧 잇달아 나온다는 것은 적절하다. "보라! 내가 저를 개유하리라" (원문은 그렇다: 역주). "저가 나를 잊어버렸다" 고 말할 때는 누구나 "그러므로 내가 저를 포기하고 잊어버리며 더 이상 돌보지 않겠다" 는 말이 나올 줄로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겠노라." 하나님의 생각과 자비의 길은 우리 인간의 생각과 길보다 무한히 높다는 데 주의하자. 하나님의 이치는 전부 하나님 자신 안에서 인출되는 것이지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니, 하나님의 선하심은 인간의 악함을 이용하여 훨씬 더 훌륭하게 나타나도록 하신다(사 57:17, 18). 그녀는 진노의 위협에도 제지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자비의 제안에 감화를 받을지 안 받을지 시험하실 것이다. 혹자는 "나중에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저를 개유하리라" 고 번역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매 한가지다. 목적은 하나님께서 순전히 자비를 위해 긍휼히 여기실 자들에게 자유로운 은혜를 확대시킨다는 데 있다. 이제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Ⅰ. 비록 그 때 그들이 쓸쓸하고 거의 절망 상태에 있었지만 다시 위로와 소망으로 소생하게 될 것이다(14, 15절). 여기에 나오는 묘사는 출애굽시의 하나님의 행위를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시고 광야를 경유하여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포로기의 고독하고 비탄스런 상태는 그들이 나던 날 애굽에서의 상태에 비유되었다(3절). 그들은 처음 형성될 때처럼 사랑과 자비의 기적으로 재형성될 것이다. 그들은 그때와 같은 희열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이 일이 십 지파의 왕국에서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주로 지목하는 것은 틀림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교회 인도와 구출일 것이다. 또 이것은 각기 영혼의 하나님께로의 전향에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이 본문의 의도라고 생각할 만하다. 1.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로운 방법을 취하실 것이다. (2) 그는 맨 처음 출애굽 때와 같이 그들을 거친 들로 데리고 가실 것이다. 출애굽 때 그는 거친 들에서 그들을 교훈하시며 자기와 언약을 맺으셨다. 이제 그들이 포로된 땅은 그때의 광야와 같이 그들에게 환난의 풀무가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기서 택하실 것이다.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열국 광야에 이르러 거기서 너희를 국문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야같이 되게 하셨다고 하셨다(3절). 그것은 위협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들을 거친 들로 데리고 가시겠다는 것이 약속의 일부가 되고 있는데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자기 은혜로 그들의 마음을 광야의 상태가 되게 하신다는 것일 수 있다. "그들을 겸손하게 만드는 섭리 아래서 겸손한 마음을 지니게 될 것이다. 가난하기에 그들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될 것이며 자기들의 불의에 대한 징벌을 기뻐 받게 될 것이고 자기들에게 들려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셨을 때 광야로 인도하셨으니 이는 그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셨을 때 광야로 인도하셨으니 이는 그들을 낮추시며 시험하여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서였다(신 8:2, 3, 15, 16).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렇게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예비하시는 대상자들은 먼저 거친 들로 데려감을 당한다는 데 주목하자. 그들은 고독하고 한적한 데로 불려간다. 이것은 이 세상의 번잡에서 나와 하나님과 보다 자유로이 사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죄악감과 진노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의 고통 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영혼으로 하여금 아주 어쩔 줄 모르게 하며 그 자체로는 혼란에 빠지게 만든다. 그는 이런 각성에 의해 위로받을 준비를 시키시며 때로는 외부적 고생과 고통에 빠지게 하여 교훈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신다. (2) 그는 그들을 개유하여 말로 위로하실 것이며 그들을 설득하여 그 마음에다 말씀하실 것이다. 즉 그는 자기 말씀과 성령에 의해 자기에게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실 것이며, 그들을 격려하여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그는 이전에 진노의 위협으로 그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셨듯이 이제는 은총의 약속으로 개유하실 것이다. 전에는 거칠게 말씀하셨지만 이제는 자기 선지자와 섭리를 통해 그들에게 우호적으로 말씀하실 것이다(사 40:1, 2).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의 손을 통해 저의 마음에 위로를 말할 것이다" (갈데아 주석은 그렇게 읽는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복음 안에서 제안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킨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개유 받았다. 이것은 각성한 죄인의 마음에다 대고 어느 모로 보나 그의 처지에 적합한 것을 말해 주며 죄 때문에 근심하고 주를 따라 애곡하는 자들에게 풍성한 위로의 말씀을 해 준다. 그리고 이것이 성령을 통해 참으로 효과적인 말을 마음에 하며 양심에 이르게 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특권이다) 얼마나 복된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 방황하는 영혼을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최선의 길은 아름다운 회유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 안식의 약속으로써 그의 멍에를 지라는 초대를 받는다. 그리고 회심의 작업은 유죄 선고뿐만 아니라 위로의 말씀에 의해서도 촉진될 수 있다. (3) "그는 거기서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실 것이다." 그녀를 괴롭히고 그녀로 하여금 자기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며 겸손하게 만드신 바로 그 때와 장소로부터 그는 그녀에게 복을 베푸실 것이다. 그녀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실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좋은 일을 베풀며 이전의 대적 행위를 취소하실 것이다. 그는 그녀의 포도원을 거칠게 하였으나(12절) 이제는 그녀에게 전체 포도원을 통째로 주실 것이다. 마치 거칠게 되어 못 쓰게 된 모든 포도나무에 대해 포도원을 복구받고 이자까지 지급받아야 하기라도 하듯 그녀는 포도원(복수형에 주의: 원주)을 받을 것이다. 그녀는 생계를 위한 곡식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위한 포도원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자기들의 사랑하는 자로서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자들(아 8:5)에게 예비된 복음의 특권과 위로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기한테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 수여하실 포도원을 준비하고 계신다. 그는 거친 들에서 포도원을 주실 수 있으시다. 피곤한 자가 휴식을 반기듯 거친 들에서는 다른 어느 것보다 포도원이 가장 인정을 받는다. (4) 그는 그녀에게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실 것이다. 아골 골짜기는 [여리고근처, 유다의 북쪽경계]아간이 돌에 맞아 죽은 곳이었다. 아골은 괴로움의 골짜기란 뜻이다. 왜냐하면 아간은 이스라엘을 괴롭혔고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그를 괴롭히신 때문이다. 이곳은 가나안 전쟁이 시작된 곳이었다. 역설적으로 아골골짜기에 저주받은 물건을 내다버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계속 함께 하신다는 것과 그들의 승리를 완성시키신다는 것을 소망할 근거가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비로 자기 백성에게 돌아오시고 그들이 의무로 하나님께 돌아갈 때는 그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복된 전조가 될 것이다. 그들이 자기들 중에서 저주받은 물건을 제거하며 죄를 억제함으로써 진중을 괴롭힌 아간을 돌로 친다면 그들 내부의 적의 제압은 가나안의 열왕에 대한 승리의 증거가 된다. 또는 이것이 그 이름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죄에 대한 진정한 괴로움은 소망의 문을 여는 열쇠임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우리를 진정으로 괴롭히는 죄는 우리를 파멸시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골 골짜기는 매우 비옥하고 즐거운 골짜기여서 혹자는 포도밭으로 유명한 엔게디와 동일시한다(아 1:4 참조). 하나님께서는 이곳을 온 가나안 땅의 모형과 보증으로써 주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복음으로써 모든 신자에게 은사와 은혜와 이 생의 위로물을 주실 것이며 그것은 천국의 보다 완전한 좋은 것들을 맛보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때가 되면 그 좋은 것들을 완전히 소유하게 되리라는 확실한 소망을 심어 줄 것이다(박식한 포코크 박사는 그렇게 해석한다). 그리고 전체의 문맥은 이와 동일한 취지를 갖는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귀환을 큰 기쁨으로 맞을 것이다.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노래하기를: 흠정역) 어렸을 때와 같이 하리라." 이것은 명백히 모세와 이스라엘이 홍해에서 부른 예언적 개선가를 가리킨다(출 15:1). 그들이 포로 생활에서 구출받을 때는 그 노래를 되풀이할 것이며 그것이 그들에게는 새 노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노래는 새로운 시기에 불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 노래는 이전 노래보다 열등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희락을 폐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11절) 이제는 그 모든 희락을 재생시키실 것이다. 그녀는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노래 부를 것이다. 하나님이 이전의 자비를 되풀이하실 때 우리도 이전의 찬미를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는 모세의 노래가 신약에서도 되풀이됨을 볼 수 있다(계 15:3). 이스라엘의 노래에 대한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그 성취를 보았다. 복음은 우리에게 풍성한 찬송 제목과 기쁨의 자료를 제공해 주며 그것이 어디서 받아들여지든 간에 그 능력으로 기쁨의 마음과 찬미의 마음을 확대시킨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아골 골짜기가 소망의 문을 열어주는 땅이다. 우리는 환난 중에 즐거워한다. Ⅱ. 이제까지 그들은 비록 무척이나 바알 숭배에 탐닉해 왔지만 이제는 완전히 그 일에서 손을 뗄 것이며 온갖 모양의 우상과 우상 참배를 포기할 것이고 오직 하나님께만 집착할 것이며 그가 지정하는대로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다(16, 17절). 어느 백성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가장 확실히 보증하고 표징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죄 사이를 갈라놓으신다는 사실이다. 바알 숭배는 이스라엘 백성을 극히 쉽사리 얽매던 죄였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 자신의 불의였고 그들을 지배하던 지였다. 그러나 이제 그 우상 숭배는 완전히 폐지될 것이며 그들 사이에는 그 잔재가 조금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1. 바알 우상들은 일컬음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바알들의 날에 그토록 시끄러운 소리를 야기시켰던 바알 중 어느 하나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 것이다. "오!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왕상 18:26)하였던 바알들의 이름이 그들의 입에서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너무나 사용되지 않아서 마치 이스라엘에 알려지지도 않았던 이름인 양 완전히 망각될 것이다. 그 이름들은 너무나 혐오스러워서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조차 싫어하며 듣는 것도 역겨워할 것이다. 그래서 후손들은 그런 게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바알에게 대한 이전의 사랑을 부끄러워하여 바알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려 할 것이다. 그들은 우상 숭배 금지 율법을 문자 그대로 극히 엄격하게 지킬 것이다(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말지니라. 출 23:13; 시 16:4). 이와 같이 사도는 모든 육신의 정욕에 대해 마땅히 품어야 할 혐오감을 표현하고 있다(엡 5:3). 그렇지만 구스인의 피부가 어찌 변하겠는가? 그 대답은 하나님의 권능이 이 일을 행하실 수 있으며 행하시리라는 것이다.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제할 것이며(17절) 우상의 이름을 끊으리라(슥 13:2)." 마음속에서 작용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사랑받던 죄악을 미워할 것으로 만듦으로써 언어를 변화시킬 것이다. "그 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할 것이다" (습 3:9). 랍비 중 한 사람은 이 약속이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인과도 관련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이방인의 전향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전에 결합하고 있던 우상 숭배에서 돌이켰던 것이다(살전 1:9). 2. 바알이란 말 자체도 그 순수한 의미에서조차 파기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를 내 남편(Ishi)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Baali)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두 단어는 다 내 남편이란 뜻이며 신에게 대해 사용되어 왔다.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며(사 54:5), 네 바알이시며, 네 소유주와 후원자요, 보호자시다." 따라서 많은 선한 백성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내 바알(Baali)이란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들의 악한 이웃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바알이란데서 긍지를 느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나 네가 다시는 그 이름으로 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니 내가 내 바알이란 이름을 제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 자체는 매우 결백한 것이라도 우상 숭배에 오용될 때는 철폐해야 하며 그 사용도 제거해야 한다는 데 주목하자. 이것은 아무 것도 우상을 기억케 하는데 이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물며 우상을 유명하게 하는 일이랴! 하나님을 내 남편(Ishi)이라고 부르는 것이 내 바알이라고 부르는 것만큼 좋고 그 의미도 같다면 그 말을 택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내 바알이라고 부르면 타인들이 자기들의 옛 바알(guondam Baal)을 상기할까봐서이다. 혹자는 하나님께서 왜 이쉬(Ishi)란 말로 불리시기를 원하고 "내 바알"이란 말로 불리기를 원치 않으시는지 그 이유가 여기 암시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는 다 "내 남편" 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쉬'(Ishi)는 사랑과 감미로움과 친밀성을 띤 명칭이고 '내 바알'은 경외와 복종의 호칭이다. 이쉬는 Vir meus - 즉 내 남자이고 'Baali'는 dominus meus - 즉 내 주인이다. 복음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셨는데 이 때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오며 그 앞에서 거룩하고 겸손한 자유를 행사하라고 권면하는 분으로 나타난다. 참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주님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교훈받는 경우가 더 많다. 이쉬(Ishi)는 주인이신 남자(인간이란 말과 병용: 역주)란 말이다. 이것은 복음시대에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남편이 되시고 자기 동포(형제: 원의)와 같이 되실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내 바알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쉬" 라고 부를 것이다. Ⅲ. 그들은 비록 전 피조물이 자기들과 전쟁 상태에 있기라도 하듯 끊임없는 환난 중에 있었지만 이제는 마치 전 피조물과 우호 동맹이라도 한 듯 완전한 화평과 평온을 누리게 될 것이다(18절). "그들이 자기들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보호 아래 들어오는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언약을 세우리라." 1. 그들은 재앙에서 보호를 받을 것이다. 아무 것도 그들을 해치거나 화를 입히지 못할 것이다. Tranquillus Deus ranquillat omnia - 즉 하나님이 우리와 화평하실 때는 모든 피조물로도 우리와 화평케 하신다. 하등 피조물들은 들짐승이 그들의 포도밭을 먹어치우거나(12절) 사나운 짐승이 하나님의 쓰라린 심판의 하나로 행하던 것처럼(겔 14:15) 그렇게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 공중의 새와 기는 곤충도 이 언약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공의의 도구로 사용하실 때는 그들도 매우 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그러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 언약을 통해 그것들은 그들에게 유용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이익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등 피조물도 지배하시며 자기가 원하시는대로 그것들을 언약 속으로 끌어들이신다는 데 주목하자. 그는 들짐승으로 하여금 자기를 존경하게 하실 수 있으시며(그렇게 약속하셨다. 사 43:20) 자기 백성의 안락에 기여하도록 하실 수 있다. 하등 동물이 이처럼 우리에게 대한 봉사의 약속 아래 놓이게 된다면 우리측의 언약 이행 태도는 그들을 학대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혹자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뱀을 집을 수 있는 기적적 능력을 부여했을 때(막 16:17, 18) 이것이 성취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특별히 포로 귀환시의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 내가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라," 겔 34:25)과 일치하며 모든 성도에게 대한 보다 일반적 약속과 일치한다. "들짐승이 너와 화친할 것이요(욥 5:22, 2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을 것이라(시 91:13)."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야수보다 인간 서로가 더 위험하다. 그러므로 나아가서 하나님은 전쟁을 그치게 하시며 원수를 무장해제 시키겠다는 약속이 나온다. "내가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리라." 하나님은 자기가 원하시면 이 일을 행하실 수 있으시며(시 46:9) "그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 을 위해 이 일을 행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원수라도 그들과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기 때문이다(잠 16:7). 이것은 복음 시대에 칼이 보습으로 될 것이란(사 2:4) 약속과 일치한다. 2. 그들은 재앙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침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평안히 지키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하늘의 보호 아래 있는 줄 알기에 음부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처럼 평안히 눕게도 하실 것이다. Ⅳ. 하나님께서는 비록 그들의 음행을 인하여 이혼장을 그들에게 주셨지만 그들이 회개할 때에는 그들을 언약 속으로, 혼인 언약 속으로 불러들이실 것이다(19, 20절).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하등 동물과 언약을 세우신 것은 크나큰 은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에게 선을 베풀겠다고 약속하신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이 언약의 성질. 그것은 사랑과 선택에 의해 성립되고 최근친을 형성하는 혼인 언약이었다. "내가 네게 장가들리라" (이 말은 세 번 나온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과 혼인한 자들이란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는 상상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신성하고 불가침의 안전을 그들에게 부여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을 사랑하실 것이며, 보호하실 것이며 부양하실 것이다. 그는 남편된 도리를 다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과 결합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자기에게 쏠리도록 하실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을 은혜로이 열납하실 것이다. 믿는 영혼은 그리스도와 혼약맺은 자이다(고후 11:2). 복음 교회는 어린 양의 신부요 아내이다. 그가 만약 자기 은혜의 능력을 통해 그들에게 장가들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결코 그와의 결혼 관계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분리는 우리편에서 시작되며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자기 자신을 소외시킨다. 이에 반해 연합은 하나님 편에서 시작되며 하나님은 스스로 우리에게 장가드신다. 2. 이 언약의 기간.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리라. 언약 자체는 위반이 불가할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도 이 언약을 깨뜨리지 않을 것이며 네 편에서도 깨뜨리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언약의 축복은 영원할 것이다." 유대 랍비 중 한 사람은 이것이 그녀가 절대적으로 영원한 장차 올 세상의 삶에 도달하리라는 약속이라고 말한다. 3. 이 언약이 세워질 방법. (1) 의와 공변됨으로, 즉 하나님은 그들과 언약을 체결하심에 있어 진실하고 의롭게 다루실 것이다. 그들은 언약을 위반했고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하나님은 "그렇지만 내가 의로 그 언약을 갱신하겠노라" 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배역하는 자녀들을 다시 자기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일이 조정될 것이다. 그는 자기 공의를 생각하시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의 공의를 생각하시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의 공의는 이 언약의 중보자에 의해 충족될 것이며 이것은 언약의 명예를 훨씬 더 높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토록 자주 배반하던 백성과 언약을 맺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지혜에 오명을 입히지 않을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아니다. 내가 이 일을 판단(한글 개역: 공변됨)으로 행하리라. 경솔히 행치 않고 적당히 숙고하여 행하리라. 나로 하여금 혼자 이 일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게 하며 나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시키게 하라." (2) 은총과 긍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과의 언약 체결에서 인자하고 은혜롭게 그들을 다루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말씀처럼 선하실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훌륭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과의 언약을 지키시는 데 공정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언약 안에 보존하심으로 자비로우실 것이다. 그들은 유혹에 넘어가기 쉬울 정도로 약점이 많은 존재이다. 하나님이 만약 그들의 그릇된 행동을 극단적으로 주목하신다면 그들은 곧 그 언약의 혜택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이 그들의 연약함을 긍휼히 고려함으로써 성립되는 은혜의 언약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래서 언약 안에서의 모든 범죄도 그들을 밖으로 쫓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영원한 인자로 모으실 것이다. (3) 진실함으로, 언약의 각 조항은 꼭 그대로 수행될 것이다. 그들을 부르신 분은 진실하시니 그가 이 일을 이룰 것이다. 그는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으시다. 4. 그들이 자기들 편에서 이 언약을 굳세고 신실하게 고수하게 될 수단. "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느 때보다 완전히 그리고 명백히 자신을 계시하리라는 약속인 동시에 하나님을 알려는 마음을 그들을 주시리라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그를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타락은 하나님이 자기들의 은인인 줄을 모르는 데 기초했다(8절). 그러므로 그와 같은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대해 가르침을 받아 그를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훌륭한 이해력과 올바른 지식을 주심으로써 인간의 영혼에 대한 자기 세력을 유지하신다는 데 주목하자(히 8:11 참조). Ⅴ. 그들에게는 하늘이 놋과 같고 땅은 철과 같았지만 이제는 하늘이 이슬을 내게 될 것이며 따라서 땅은 소산을 내게 될 것이다(21, 22절). 하나님께서는 복음 교회에 장가드시고 그 교회 안에서 모든 신자들과 혼인하셨는데 어찌 만물을 그들에게 거저 주시지 않겠는가? 그는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거저 주셨을 뿐만 아니라 생명과 경건에 속하는 모든 것, 그들이 필요로 하고 원할 수 있는 모든 것도 주셨다. 모든 것은 그들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께 혼인한 자들인 까닭이다. 그들이 먼저 구하는 하나님 나라의 의와 더불어 모든 것이 그들에게 추가될 것이다. 그런데 이 곡식과 포도주의 약속은 영적 의미로도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박식한 포코크 박사는 그렇게 생각한다). 여기에서는 땅의 기름짐과 하늘의 이슬 따위를 은유로 한 현세적 축복이 약속되고 있는데(이것은 야곱의 축복에서도 먼저 나온다. 창 27:28). 이것은 영혼과 관계 있는 축복과 은혜의 유출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곡식과 포도주를 도로 찾으시겠다고 경고하셨다(9절). 그러나 이제 그는 일상적 자연의 경로와 질서로 그것들을 회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들은 기근의 심판 아래 있는 동안 그들 자신과 그들의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땅에게 곡식과 포도주를 요구하였다. 땅은 기꺼이 그들에게 그런 산물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땅은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되지 않으면 곡식과 포도주를 산출할 수 없으며, 받지 않으면 줄 수가 없다(시 5:9 참조). 그러므로 땅은 하늘에게 비를 내려 달라고 부르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제때에 달라고 입을 벌리고, 비가 거절될 때에는 우울한 모습으로 비를 탄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구름의 열쇠를 가진 분이 그 자물쇠를 열고 병뚜껑을 열지 않으면 비를 내려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돕지 않으시면 행할 수 없다" 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친히 언약을 세우실 때는 자연의 수레바퀴가 그들에게 유리하게 가동할 것이며 자비의 시냇물이 보통의 경로를 따라 흐르게 될 것이다. 그 때는 "내가 응하리라(들으리라)" 고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네 기도를 받아들이리라(맨 처음에 나오는 "응하리라" 를 갈데아 주석은 이렇게 해석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대한 그들의 말을 은혜로이 주목하실 것이다. "그러면 내가 하늘을 듣겠노라(응하리라). 내가 하늘에게 응답하겠노라. 그러면 하늘은 땅을 듣고 응답하여 땅에 적절한 비를 쏟을 것이다. 그러면 땅은 곡식과 포도주를 들고 습기를 공급할 것이며,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을 듣고 이스르엘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영양을 공급할 것이며 원기를 회복시켜 줄 것이다." 여기서 피조물(제 2원인) 상호 연관성을 살펴보자. 그것들이 사슬처럼 서로 관련을 맺고 있다. 또 제 1원인에 대한 피조물의 필수적 의존성을 주목하자. 우리는 통정상 방법과 정해진 수단을 따라 우리의 모든 위안을 하나님께로부터 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하더라도 그들에게서 실망할 때에는 작은 산과 산보다 높으신 하나님을 쳐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기에 얼마나 적극적이며 그 명예를 얼마나 갈구하는지 주목하자. 곡식은 땅에게 부르짖고 땅은 하늘에게, 하늘은 하나님께 부르짖는데 이 모든 것은 자연이 그들에게 공급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얼마나 즉각적으로 구원을 베푸려고 하시는지 주목하라. "내가 응하리라. 아무렴, 응하고 말고" 라고 여호와는 말씀하신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하늘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면 하물며 하늘보다 높으신 자기 아들의 중보 기도를 들으시지 않겠는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는 자들이 피조물의 위안에서 독특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오는 것임을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시냇물의 물 근원까지 추적할 수 있으며 일반 자비에서 언약의 사상을 맛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그들을 배나 즐겁게 한다. Ⅵ.그들이 비록 이산되고 시몬과 레위처럼 야곱 중에 나뉘고 이스라엘 중에 흩어졌을 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나뉘고 흩어지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저주를 축복으로 변화시키실 것이다. "내가 저를 위하여 땅에 물을 댈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으리라. 저의 흩어짐은 타작 마당에서 바람에 날리는 겨 같지 않고 보다 소출을 크게 하기 위해 밭에 뿌려지는 씨앗 같을 것이다. 그들은 어디에 뿌려지든지 밑으로 뿌리를 내려 위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좋은 씨앗은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심으리라." 이것은 이스르엘이란 이름을 암시한다. 이스르엘은 하나님께로서 또는 하나님을 위해 파종되었다는 뜻이다. 그녀는 하나님께로부터 흩어짐을 당했듯이(이것은 그 단어들의 한가지 의미이다), 하나님께로부터 파종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심는 것을 증가시킬 것이며, 소출이 많아지게 하실 것이다. 세계 도처에서 기독교가 뿌리를 박고 신앙 고백자가 모든 곳에 생겼을 때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으리라" 는 약속은 성취되었다. 이 땅의 최대 축복은 하나님께서 거기에 교회를 두시고 그로부터 온갖 영광의 공물이 나오며 그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심으신 것이며 따라서 그는 그것을 자신에게 확보하실 것이다. Ⅶ. 그들이 과거에 로암미(-백성이 아니라-)와 로루하마(-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였음에 반해 이제는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받을 것이며 다시 그와 언약을 맺게 될 것이다(23절). "그들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했고 버림받은 것 같았다." 그들은 "내 백성이 아니었고, 내 백성이 아니었고, 내 백성으로서" 각광을 받지 못하고 그렇게 취급되지 않았다. 그들은 열방과 공통적으로 방임되었다. 배척받은 유대인의 경우가 그랬다. 이방인의 경우도 이와 같았거나 더 비참하였다(사도는 이것을 말한다, 롬 9:24, 25). 그들의 소망을 갖지 못했고 세상에서 하나님이 없이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과 이방인의 큰 무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기독교회로 연합되었을 때는 어떻게 되었는가? 1.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던 자들을 긍휼히 여기셨다. 오랫동안 은총밖에 있으면서 진노의 자녀였던 자들이 하나님께 은총을 얻고 그의 사랑의 자녀로 되었다. 만일 무한하신 자비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영원히 그대로 남아 있었을 터였다. 지옥 이쪽에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비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2. 하나님은 이방인과 나그네 되었던 자들을 자기와의 언약 관계에 두셨다. 그는 그들에게 "너는 네 백성이라 내가 너를 내 백성으로 인정하며 축복하며 부양하리라" 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들은 "주는 내 하나님이라. 내가 주를 섬기며 예배하고 주의 명예에 전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헌신하리이다" 라고 말할 것이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신자가 받는 행복의 총계는 그들과 하나님간의 상호 관계이다. 즉 하나님은 그들의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것이다. 이것은 모든 약속의 관절(冠絶)이다. (2) 이 관계는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 근거한다. 우리가 그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택하셨다. 하나님이 먼저 "저들은 내 백성이라" 고 말씀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그의 권능의 날에 기꺼이 자기 백성이 되게 하신다. 그런 뒤에야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의 하나님이라고 공언한다. (3)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이 없기 때문에 그 이상 달리 바라지 말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그런 행복을 확신시켜 주는 것보다 더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하시며, "너는 내 백성이라" 고 성령을 통해 증거하신다. (4)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기쁘게 받아들인 자는 그렇게 고백하고 공언해야 하며 기도로 그에게 나아가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고 말해야 하고 사람들 앞에서도 고백해야 한다. (5) 언약 안에 성도의 교제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맺은 우리 언약의 위로를 더해 준다. 성도의 수는 많으나 여기서는 단수로 표현되고 있다. 본문에는 "내가 저희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라 하지 않고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라" 고 되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 전체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간주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또 그 안에서 하나된 자로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그런 자로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다. 그리고 그들 역시 "주는 우리 하나님이라" 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를 한 몸으로 간주하고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는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고 말한다. 아니면 이것은 언약의 구체성과 개별성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옛적에 자기 백성 이스라엘 전체와 언약을 맺으셨다. 그런데 이제는 복음 아래서 개개의 신자들과 그런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 각자에게 "너는 내 백성이라" 고 말씀하신다. 옛적 수만의 이스라엘인에게 하실 때처럼 극히 보잘 것 없는 자에게도 기쁨으로써 "너는 내 백성이라" 고 말씀하시며 그들 각자를 초대하고 격려하여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고 말하게 하시며 모세와 온 이스라엘이 그랬듯 이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만드신다. "그는 내 하나님이시오,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로다" (출 15:2). =========== !j'n:(5162, 나함) 후회하다, 위로하다.....환난당한 이의 괴롭고 슬픈 마음을 공감하며 부드럽고 편안케 하는 말과 행실로 진정시키며 산 소망을 불러 일으킴 나함(동사)은 기본어근이며, '후회하다 repent, 위로하다 comfort'를 의미하며, '회개하다, 애석해 하다, 유감으로 생각하다'라는 의미도 함축한다. 이 어근의 기원은 '깊이 숨쉼' 따라서 사람의 감정, 주로 슬픔, 동정, 위로의 육체적 표출이라는 개념을 반영하는 것 같다. 이 어근은 우가릿어(UT 19: no 1230의 '위로하다'를 보라)에서 나타나며 느헤미야, 나훔, 므나헴과 같은 구약성경에 언급된 고유명에서 발견된다. 70인역본은 나함을 메타노에오와 메타멜로마이로 번역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이상 나오며, 니팔, 피엘, 푸알,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가 '후회하다'라는 의미로 약 40회, '위로하다'라는 의미로 약 60회 이상 사용되었다. (a) 나함은 '후회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니팔형으로 38회). 학자들은 이 단어를 성질의 변화, 마음의 변화, 목적의 변화, 또는 행위의 변화에 대한 강조와 연관시킴으로 말미암아 나함의 의미를 확인하려 한다. '후회하다'라는 의미에서 대부분의 실례가 인간의 후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후회를 언급한다. 인간의 후회나 회개를 나타내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단어는 (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키다(to turn)'를 뜻하는 슈브(bWv , 7725)이다. 죄를 자각하여 진정한 후회와 비애를 느끼는 인간과 달리, 하나님은 죄에서 자유하신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는 것(창 6:6-7, 출 32:14, 삿 2:18, 삼상 15:11 등), 즉 그는 자신의 주권적 목적에 따라서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거나 사람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말해준다. 표면상으로 볼 때 이런 언어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단언하는 어떤 구절들과 상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화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인다(참조: 삼상 15:11, 시 110:4). 그러나 나함이 하나님께 사용될 때 그 표현은 신인동형론적인 것이며 궁극적 긴장은 없다. 단지 인간의 제한되고 세상적이고 휴한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뜻이 변화한 것 같이 보일 뿐이다. 그리하여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행하기로 작정하셨던 심판이나 재앙을 내리시기를 '후회하셨다', 즉 '돌이키셨다'고 말한다(대상 21:15, 렘 18:8, 렘 26:3, 렘 26:19, 암 7:3, 암 7:6, 욘 3:10). 확실히 렘 18:7-10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예언이 인간의 반응에 따라 조건부적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상기시켜 준다. 이와 관련하여 헤셀(A. J. Heschel)은 '어떠한 말씀도 하나님의 최종적인 말씀이 아니다. 인간의 행동이 변화하면 하나님의 심판도 변한다'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후회에 대해 좀더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창 6:6에서 하나님은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다. 이 구절에서 '후회하다'는 마음을 바꾸거나 뜻을 돌이키는 것을 함축한다. 하나님은 그가 이미 행한 일에 대해 사람처럼 후회하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는 변화된 그 상황과 조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셨다. 인간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변경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할 때 하나님은 교제의 관계를 징계의 관계로 바꾸신다. 인간이 죄로부터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은 교제의 관계를 회복시키신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인간과의 관계를 완전히 심판의 관계로 바꾸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후회하심, 곧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후회하시거나 뜻을 돌이키지만 인간과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는 신실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마찬가지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repented, NASB는 'changed his mind'로 번역함)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때로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관련하여 시행하려고 계획했던 방침을 '돌이키신다'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repent)"(렘 18:8).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repent)"(렘 18:10).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repent) 재앙을 내리지 아니 하시나니"(욜 2:13). 다른 실례들에서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변경하신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분명히 인간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마음을 바꿀 때 하나님께서도 마음을 바꾸신다. 그러나 인간이 악한 행위를 계속할 경우 악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바뀔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행위는 변하지만 그 자신의 의로우심에 대한 신실하심은 영원 불변하다. 어떤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기'(repenting)에 실증을 내시는데(렘 15:6),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규정을 수행해야 할 점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행위의 실례로 사울에게 전한 사무엘의 말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사무엘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의 왕권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repent)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 15:29).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악한 행위에 대한 참회와 중재의 기도로 말미암아 자신의 마음을 바라고 자신의 행위를 '돌이키신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한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간청하였다.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repent)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출 32:12). 이 기원의 응답은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출 32:14)는 말씀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니느웨에 전한 말씀에서도 이 용례를 볼 수 있다.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turned)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repented of)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욘 3:10). 이러한 실례에서 하나님은 후회하시거나(repent) 그의 뜻을 돌이켜서(change his mind) 자신의 계획을 변경시키신다. 그러나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는 신실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다른 구절들에서 인간들의 태도의 변화(혹은 이 변화의 부족)를 뜻하는 말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사악함을 회개하지 않을 때에 반역을 선택하여 벌하신다(렘 8:6). 종말론적인 의미에서 에브라임(이스라엘 북쪽 지파의 대표자) 지파가 회개(repent) 한다면(렘 31:19)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렘 31:20). 사람도 타인에게 회개를 표명할 수 있다. 베냐민은 부도덕한 죄를 범함으로써 심한 고통을 받았다(삿 19-20장).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repented) 가로되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쳤도다"(삿 21:6, 삿 21:15 참조). (b) 나함은 '위로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피엘형에서 '위로하다', 니팔, 푸알, 히트파엘형에서 '위로 받다'를 의미한다. ① 나함은 바벨론 유수에서 살아남은 모든 경건한 유대인에게 잘 알려져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이사야의 '위로의 책'의 서언인 '나하무 나하무 암미'(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0:1)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함'은 또한 '위로하다' (comfort)를 의미하기도 한다. 바벨론으로 망명한 자들은 생존자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도착했을 때 '위안을 받았다'(겔 14:23). 여기서 '위로하다'라는 말과 '후회하다(회개)'라는 말의 관계는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서 예루살렘에 내린 재난에서 결과된 것이다. 동일한 단어가 시 23:4에도 나오는데, 여기에서 다윗은 그의 하늘의 목자에 대하여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말한다. ② 다윗은 밧세바의 죄 중에서 태어난 아이가 죽은 후에 그녀를 '위로하였다'(삼하 12:24). 이것은 그들의 부주의로 생긴 일에 대한 다윗의 후회를 지적하는 것 같다. 많은 구절들은 죽은 자들을 인하여 위로 받는 것("조상하다")을 다룬다(삼하 10:2, 대상 19:2, 사 61:2, 램 16:7, 렘 31:15). 사람들은 유아(삼하 12:24), 10대의 아들(창 37:35), 어머니(창 24:67), 아내(창 38:12) 등으로 인하여 위로받았다. 어머니는 자기 자녀를 위로함 같이(사 66:13)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로하신다(시 71:21, 시 86:17, 시 119:82, 사 12:1, 사 49:13, 사 52:9).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나훔, 나함의 파생어)이 따뜻하고 포근하게 된다'(호 11:8). ③ 다른 한편 이 단어는 인도적인 감정에 나온 '위로'에 대해 사용되었다. 욥은 세 친구들에게 물었다 - "이러한 즉 너희의 위로가 헛되지 아니하냐 너희의 대답은 거짓 뿐이니라"(욥 21:34, 욥이 뜻한 것은 그들의 태도는 잔인하고 무감각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위로'(comfort)를 간구했다.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시 71:21). ④ 나함은 '애석해하다, 유감으로 생각하다, 동정하다'라는 의미도 나타난다(신 32:36 = 시 135: 14).(참조: M. R. WILSON; NEDOT;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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