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역개정]제3장 ...150)갈보리산 위에 412)내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455)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338)내주를가까이 하게함은
[[<십자가에서 옛자아가 죽고 새 생명 받아 부활한, 주와 합한 참자아,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그분의 어떠하심의 패러다임으로 사는 자의 깨달음> 교통하시는 생명의 성령따라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로 보혈말씀-성령으로 살기(알며-사랑하며-섬기기-살아내기 : 주JC를 생각하라-올인하라/항기쉬기범감!!)....기만당한 사탄의 노예인 옛사람의 패러다임을 벗어버림]]
---***참고 : [벧전3: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By which also he went and preached unto the spirits in prison /엔 호스 카이 호 엔 퓔라케 프뉴마 포류오 케륏소]...벧전3:19의 <옥>은 <무저갱, 케륏소..계18:2>을 <사도 베드로가>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 또한, 접속사 <카이,,,또..전환적 의미>를 쓰고 있고, <영혼>이 아니라 <영들>이라 했다는 것은 <범죄한 천사들>, 곧 <사탄과 함께 반역한 천사들>의 <갇혀 있는 곳>을 뜻함이 옳을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서> 전파/선포/고지하셨다 함은, <그분의 승리를 공공연히 나타내셨다> 함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본다. ejn (1722 엔) ejn 전치사 여격, 으로 / o{" (3739 호스) w|/ 관계대명사 여격 중성 단수, 영 / kaiv (2532 카이) 부사, 또한 / oJ (3588 호) 관사 여격 중성 복수 / ejn (1722 엔) 전치사 여격, 에 있는 / fulakhv (5438 퓔라케) 명사 여격 여성 단수, 옥 / pneu'ma (4151 프뉴마) 명사 여격 중성 복수, 영들에게 /poreuvw (4198 포류오) 동분사 과거 수동디포 주격 남성 단수, (가서) /khruvssw (2784 케륏소) 동직설 과거 능동 3인 단수, 저가-전파 하시니라 ===아내와 남편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각사람안에 새로이 창조해 두신 영을 지칭)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선을 위한 고난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 표준새번역]제3장 ===아내와 남편 1. 아내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비록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아내의 말없이 행하는 행실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2. 그들은 여러분의 경건하고 순결한 행실을 지켜 보고 있습니다. 3. 여러분은 머리를 치장하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4.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던 거룩한 여인들도 이와 같이 자기를 단장하고, 자기의 남편에게 순종하였습니다. 6. 마치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인이라고 부르면서, 그에게 순종한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도 선을 행하고, 아무리 놀랄 만한 일에도 무서워하지 않으면, 사라의 딸들이 될 것입니다. 7. ○남편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아내가 여성으로서 자기보다 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으로 알고 존중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입니다. ===의를 위한 고난 8.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한 마음을 품으며, 서로 동정하며, 서로 사랑하며, 자비를 베풀며, 겸손하십시오. 9.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비십시오. 여러분으로 하여금 복을 이어받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10.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혀를 다스려서 악한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며, 입술을 다물어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하여라.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며, 평화를 추구하여, 그것을 좇아라. 12.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 보시고, 주님의 귀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신다. 그러나 주님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서는 얼굴을 돌리신다." 13. ○여러분이 뜨거운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하면, 누가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 14. 그러나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마십시오." 15. 다만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하게 높이며, 여러분이 가진 소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하십시오. 16. 그러나 온유와 두려움으로 답변하십시오.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비방한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17.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18.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결정적으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19. 그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20. 그 영들은, 옛적에 노아가 방주를 짓고 있는 동안에, 곧 하나님께서 아직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하지 않던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방주에 들어감으로써 물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21. 그것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 선한 양심을 가지려고, 하나님께 드리는 호소입니다. 22.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고 있습니다. ---------- KJV]제3장 1. Likewise, ye wives, be in subjection to your own husbands; that, if any obey not the word, they also may without the word be won by the conversation of the wives; 2. While they behold your chaste conversation coupled with fear. 3. Whose adorning let it not be that outward adorning of plaiting the hair, and of wearing of gold, or of putting on of apparel; 4. But let it be the hidden man of the heart, in that which is not corruptible, even the ornament of a meek and quiet spirit, which is in the sight of God of great price. 5. For after this manner in the old time the holy women also, who trusted in God, adorned themselves, being in subjection unto their own husbands: 6. Even as Sara obeyed Abraham, calling him lord: whose daughters ye are, as long as ye do well, and are not afraid with any amazement. 7. Likewise, ye husbands, dwell with them according to knowledge, giving honour unto the wife, as unto the weaker vessel, and as being heirs together of the grace of life; that your prayers be not hindered. 8. Finally, be ye all of one mind, having compassion one of another, love as brethren, be pitiful, be courteous: 9. Not rendering evil for evil, or railing for railing: but contrariwise blessing; knowing that ye are thereunto called, that ye should inherit a blessing. 10. For he that will love life, and see good days, let him refrain his tongue from evil, and his lips that they speak no guile: 11. Let him eschew evil, and do good; let him seek peace, and ensue it. 12. For the eyes of the Lord are over the righteous, and his ears are open unto their prayers: but the face of the Lord is against them that do evil. 13. And who is he that will harm you, if ye be followers of that which is good? 14. But and if ye suffer for righteousness' sake, happy are ye: and be not afraid of their terror, neither be troubled; 15. But sanctify the Lord God in your hearts: and be ready always to give an answer to every man that asketh you a reason of the hope that is in you with meekness and fear: 16. Having a good conscience; that, whereas they speak evil of you, as of evildoers, they may be ashamed that falsely accuse your good conversation in Christ. 17. For it is better, if the will of God be so, that ye suffer for well doing, than for evil doing. 18. For Christ also hath once suffered for sins, the just for the unjust, that he might bring us to God, being put to death in the flesh, but quickened by the Spirit: 19. By which also he went and preached unto the spirits in prison; 20. Which sometime were disobedient, when once the longsuffering of God waited in the days of Noah, while the ark was a preparing, wherein few, that is, eight souls were saved by water. 21. The like figure whereunto even baptism doth also now save us (not the putting away of the filth of the flesh, but the answer of a good conscience toward God,) by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22. Who is gone into heaven, and is on the right hand of God; angels and authorities and powers being made subject unto him. -------- 1 Peter 3 Amplified Bible ===Godly Living 1 In the same way, you wives, be [a]submissive to your own husbands [subordinate, not as inferior, but out of respect for the responsibilities entrusted to husbands and their accountability to God, and so partnering with them] so that even if some do not obey the word [of God], they may be won over [to Christ] without discussion by the godly lives of their wives, 2 when they see your modest and respectful behavior [together with your devotion and appreciation—love your husband, encourage him, and enjoy him as a blessing from God]. 3 Your adornment must not be merely external—with interweaving and elaborate knotting of the hair, and wearing gold jewelry, or [being superficially preoccupied with] dressing in expensive clothes; 4 but let it be [the inner beauty of] the hidden person of the heart, with the imperishable quality and unfading charm of a gentle and peaceful spirit, [one that is calm and self-controlled, not overanxious, but serene and spiritually mature] which is very precious in the sight of God. 5 For in this way in former times the holy women, who hoped in God, used to adorn themselves, being submissive to their own husbands and adapting themselves to them; 6 just as Sarah obeyed Abraham [following him and having regard for him as head of their house], calling him [b]lord. And you have become her daughters if you do what is right without being frightened by any fear [that is, being respectful toward your husband but not giving in to intimidation, nor allowing yourself to be led into sin, nor to be harmed]. 7 In the same way, you husbands, live with your wives in an understanding way [with great gentleness and tact, and with an intelligent regard for the marriage relationship], as with [c]someone physically weaker, since she is a woman. Show her honor and respect as a fellow heir of the grace of life, so that your prayers will not be hindered or ineffective. 8 Finally, all of you be like-minded [united in spirit], sympathetic, brotherly, kindhearted [courteous and compassionate toward each other as members of one household], and humble in spirit; 9 and never return evil for evil or insult for insult [avoid scolding, berating, and any kind of abuse], but on the contrary, give a blessing [pray for one another’s well-being, contentment, and protection]; for you have been called for this very purpose, that you might inherit a blessing [from God that brings well-being, happiness, and protection]. 10 For, “The one who wants to enjoy life and see good days [good—whether apparent or not], Must keep his tongue free from evil and his lips from speaking guile (treachery, deceit). 11 “He must turn away from wickedness and do what is right. He must search for peace [with God, with self, with others] and pursue it eagerly [actively—not merely desiring it]. 12 “For the eyes of the Lord are [looking favorably] upon the righteous (the upright), And His ears are attentive to their prayer (eager to answer), But the face of the Lord is against those who practice evil.” 13 Now who is there to hurt you if you become enthusiastic for what is good? 14 But even if you should suffer for the sake of righteousness [though it is not certain that you will], you are still blessed [happy, to be admired and favored by God]. Do not be afraid of their intimidating threats, nor be troubled or disturbed [by their opposition]. 15 But in your hearts set Christ apart [as holy—acknowledging Him, giving Him first place in your lives] as Lord. Always be ready to give a [logical] defense to anyone who asks you to account for the hope and confident assurance [elicited by faith] that is within you, yet [do it] with gentleness and respect. 16 And see to it that your conscience is entirely clear, so that every time you are slandered or falsely accused, those who attack or disparage your good behavior in Christ will be shamed [by their own words]. 17 For it is better that you suffer [unjustly] for doing what is right, if that should be God’s will, than [to suffer justly] for doing wrong. 18 For indeed Christ died for sins once for all, the Just and Righteous for the unjust and unrighteous [the Innocent for the guilty] so that He might bring us to God, having been put to death in the flesh, but made alive in the Spirit; 19 in which He also went and preached to the spirits now in prison, 20 who once were disobedient, when the great patience of God was waiting in the days of Noah, during the building of the ark, in which a few, that is, eight persons [Noah’s family], were brought safely through the water. 21 Corresponding to that [rescue through the flood], baptism [which is an expression of a believer’s new life in Christ] now [d]saves you, not by removing dirt from the body, but by an appeal to God for a good (clear) conscience, [demonstrating what you believe to be yours] through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22 who has gone into heaven and is at the right hand of God [that is, the place of honor and authority], with [all] angels and authorities and powers made subservient to Him. ==Footnotes 1 Peter 3:1 There are both military and sporting analogies associated with the meaning of the word “submit.” It can refer to the act of “falling in line,” i.e. each soldier reporting to his proper place; or each team member respecting how the team works, i.e. acknowledging and participating in his assigned position. 1 Peter 3:6 In ancient times a common title of honor and respect. 1 Peter 3:7 Lit a weaker vessel, the feminine. 1 Peter 3:21 Baptism is a public representation of that which actually saves the believer—one’s personal faith in the death, burial and resurrection of Jesus the Messiah. ========= 사도 베드로는 남편과 아내가 피차간 행해야 할 의무를 서술하는 중에 먼저 아내의 의무부터 시작하고 있다(1-7). 그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고난 가운데 단합하고 사랑하며 동정하고 화목하며 그리고 인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축복으로 그들의 원수들의 비방에 대처할 것과 그들의 믿음과 소망에 대한 합당한 설명과 선한 양심을 소유함으로 원수들의 비방에 맞서도록 하고 있다(8-17). 그들에게 이 점을 권고하기 위하여 고난받은 그리스도의 본을 제의하고 있다. 그는 불의한 자에게 의로 대하셨으며,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옛 세대를 심판하시고 노아 시대의 몇 명의 신실한 자들을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있다(18). ===== 남편과 아내들의 직분(벧전 3:1-7) 사도 베드로는 그들의 군주에게와 그들의 주인에게 사환들이 순복해야 할 의무를 다룬 다음 남편과 아내들의 의무를 계속 설명하고 있다. Ⅰ. 그리스도에게 돌아온 그리스도인 부인들의 귀의와 모든 그리스도인의 특권에 대한 그들의 관심 때문에 그들이 이교도에게나 혹은 유대인 남편들에게 복종하는 의무에서는 제외된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사도 베드로는 여기에서 그들에게 말하고 있다. 1. 아내들의 의무에 속하는 것은 아래와 같다. (1) 그들의 "남편"의 뜻에 애정을 가지고 순복하는 것과 정당한 권위에 대해 복종하는 것이다. 복종의 행위는 말씀을 거역하며, 그들의 아내들의 조심성 있고 온화한 행실을 보는 것외에는 달리 진리의 확실성은 찾아보려 하지 않는, 순종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남편들을 구원하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몇 가지 점은 이러하다. ① 각기 다른 관계는 그 관계에 상응하는 특유의 의무가 있다. 예컨대 목사는 설교를 해야 하며 청중들은 그 설교를 이해해야만 한다. ② 남편에 대한 그리스도인 부인의 자원하는, 기쁨으로 하는 "순복"과 자비-경건한 존경은 남편이 선하든 악하든 간에 상관없이 남편에 대해 가져야 할 의무이다. 이러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타락 이전의 이브로부터 아담에 이르기까지 합당한 것이었으며(창 3:10), 그들이 이전보다 더욱 곤란해진 지금도 아직 요구되고 있는 바이다(딤전 2:11). ③ 복음의 말씀의 계획은 그리스도에게 영혼을 인도함 통해 구원하는 일이지만, 아직도 너무나 마음의 완고함 때문에 "말씀에 의하여" 구원을 얻지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④ 선한 행위와 상호적인 의무의 진정어린 이행보다 하나님의 말씀 다음으로 사람들을 구원시키는데 더 큰 능력은 없다. ⑤ 비신앙과 불성실로 행하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의무수행(속박)을 해태할 수는 없으며 시민적 상호 관계의 의무를 폐하지 못한다. ...즉,남편이 "그의 말을 듣지 않더라도" 아내는 그의 "남편에 대한 의무를 수행해야만 한다." (2) 아내들은 "두려움으로" 그들의 남편을 공경해야 한다(엡 5:33). (3) 믿는 아내의 "정결한 행실"은 그들의 믿지 않는 남편들이 신랄하게 주시하며 엿보기를 즐기는 바임을 명심하라. ① 악한 사람들은 대체로 신앙 고백자들의 행실을 엄격하게 주시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호기심과 시기, 질투는 선한 사람들의 길과 생활을 면밀히 살피게 한다. ② 합당하며 타당한 존경을 수반한 "정결한 행실"은 복음의 믿음으로 그들을 구원하며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우수한 수단이 된다. (4) 몸단장에 비한 마음의 단장을 언급하고 있다. ① 사도 베드로는 신앙있는 여인들의 옷치장에 대한 규례를 정하고 있다(3절). 여기에 금지된 세 가지 종류의 단장이 있다. "머리의 꾸밈을" 금했다. 이는 그 당시에 음탕한 여인들에게 유행되었던 것이다. "금을 차는 것"도 금하였다. 혹은 "금"으로 만든 장신구를 금했다. 이것은 리브가와 에스더와 다른 신앙있는 여인들에 의해서 행하여진 바가 있었지만, 후에 창녀들과 간악한 여인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을 금했다. 이는 절대적으로 금해진 것은 아니며 지나치게 사치하며 값비싼 옷에 한해서 금해진 것이다.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첫째, 신앙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외적인 행위가 그들의 기독교 신앙 고백에 합치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행실에 있어서 거룩해야 한다." 둘째, 몸의 외부 단장은 자주 음란과 음탕을 야기하며 과도한 것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말한다면 그 몸단장이 분수에 맞지않고 세상에서 자신의 생활 수준 이상의 것일 경우, 그 옷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우쭐댈 때 계획적으로 그 옷을 입음으로 다른 사람을 유혹하거나 시험하려 한다든가 그 옷이 지나치게 사치하거나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이거나 지나친 것일 경우, 그 옷차림이 죄악의 사람들과 경솔과 허영심을 모방한 것으로 기묘한 것일 때와 몸치장이 주제넘고 변덕스러운 것일 때를 말한다. 창녀의 옷이 결코 정결한 그리스도인 여성의 것이 될 수 없다. ② 몸의 외부 단장 대신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아내들에게 좀더 우월하고 아름다운 단장을 하라고 지시한다(4절). 여기에서 기록하기를 첫째, 단장되어야 할 부분은 "마음에 숨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는 영혼 곧 숨겨있는 내적 인간을 이름이다. 여러분의 몸보다 여러분의 영혼을 단장하고 미화하는데 주의를 기울이라. 둘째, 장신구에 대해 지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영혼을 미화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은총과 덕성으로 이룩된 "썩지 아니할 것"이다. 몸의 장신구는 좀으로 인하여 파괴되며 사용 중에 없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더 오래 지린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더욱 더 빛나고 훌륭한 것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인 여인의 가장 아름다운 장식은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이며 평온한 마음의 감정, 교만과 지나친 격분을 피하고 그들의 남편과 식구들에게 온화한 순종의 행위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만일 남편이 거칠고 종교에 대해 반대하는 자라면(사도 베드로가 이 지시를 하고 있는 선량한 아내의 경우) 신중하고 온유한 행실 외에 다른 것으로 그의 남편을 구원할 만한 길이 없다. 적어도 안정된 심령은 선량한 은인으로 하여금 평안하게 하며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눈으로 볼 때에 사랑스러운 단장이 되는 것이다. 셋째, 단장의 우수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심령의 온유함과 안정됨은 하나님의 측면에서 볼 때에 큰 가치가 있는 것이며, 인간들 편에서는 온유한 것이며, 하나님께는 보배로운 것이다. 이러한 점을 배우고 넘어가자. 2. 참된 그리스도인의 주된 관심은 자신의 심령에 대한 올바른 명령과 지시에 있다. 위선자의 일이 끝나는 곳에 참된 그리스도인의 일은 시작된다. 3.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재산은 그리스도인의 주요한 장식물이다. 특별히 고요하고 안정된 심령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 아름다움과 자비로움을 부여한다. 4. 그리스도인 아내들의 임무가 본래 어려운 것이므로 실례를 들어 그 임무를 강조하고 있다. (1)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옛날 거룩한 부녀들의 예를 들고 있다(5절). "여러분들은 여자라고 하는 약점으로 인하여 그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반면 옛날의 부녀자들은 그렇지 아니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옛날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을 깨우쳐 줄 지식도 없었으며 그들을 격려해 줄 본보기도 심히 적었다. 그러나 모든 연령층의 여성들이 이 의무를 수행했다. 그들은 거룩한 부녀들이었고 그러므로 그들의 본은 의무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으나 인간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아니했다. 여러분들에게 부과된 안정된 심령과 여러분의 남편에게 순복할 의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부녀들에 의하여 시행되었던 바다." (2) 사라의 예를 강조한다. 사라는 그의 남편에게 순종하였으며, 그는 그의 남편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도 그를 주라 부르며" 그의 남편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그를 좇았다. 그는 이로써 그의 남편에게 존경과 그 남편 자신이 그에 비해 우월함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그녀는 하나님으로부터 여왕으로 선포되었고, 이 사실은 그의 이름이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여러분들이 믿음과 선한 행실에 있어서 그녀를 모방하며, 여러분의 남편들을 두려워함으로 여러분이 고백한 진실을 저버리거나 남편들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양심과 남편들에 대한 의무감을 가지고 그 임무를 충실히 이행한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딸들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두자. ①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모든 남녀들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며, 하나하나 정확히 기록하신다. ② 그들의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복은 지난 모든 세대에 경건한 부녀들에 의하여 전적으로 실현된 바 있는 의무이다. ③ 모든 남녀의 가장 큰 존귀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설정하신 관계와 조건 가운데 있는 그들의 겸손하고 성실한 행동에 있다. ④ 하나님은 그들의 존귀와 이익을 위해 그의 종들 안에 있는 선함에 주의를 기울이신다. 그러나 그들의 실수도 감싸주신다. 사라의 불성실과 비웃음도 그의 덕성이 높이 평가되어질 때 관대히 보아졌다. ⑤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움이나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서로서로 그들의 임무를 다 하도록 해야 한다. 아내들은 두려움이나 놀라움으로가 아니라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의욕으로 그들의 믿는 남편들에게 순복해야만 한다. Ⅱ. 아내에 대한 남편들의 의무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1. 특별히 언급되어지고 있는 것은 아래와 같다. (1) "동거하라"는 것인데, 이는 불필요한 별거를 금지하는 것이며 기쁨과 조화 가운데 가지게 되는 상호간의 물질적이며 인격적인 교류를 의미한다. (2)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라"는 말씀은 짐승들과 같이 정욕에 따라서가 아니고, 마귀와 같이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임무를 아는 현명하고 온순한 남자처럼 지식을 따라 동거해야 함을 의미한다. (3) 아내를 "귀히 여기라." 즉 아내에게 합당한 존경을 베풀고 그의 권위를 유지시켜 주며, 그의 인권을 보호해 주고, 그의 행실을 기뻐하며, 그에게 충분한 생계비를 지급하며 아내를 신뢰하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2. 아내가 지식을 따라 보호를 받아야 할 이유는 그녀가 본성적으로나 신체 구조면으로 볼 때 연약한 그릇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내는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좀더 높고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볼 때 아내는 그의 남편과 동등한 존재다. 그들은 현세와 내세의 모든 축복을 포함한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화목하며 유순하게 피차간 살아가야만 한다. 만일 그렇게 지내지 못한다고 하면 서로를 위한 그들의 기도가 지장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여러분들은 기도를 전혀 하지 않게 될 것이며 만일 한다해도 안정되지 못한 마음으로 하게 되므로 아무런 기도의 응답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1) 여성의 연약함은 구별이나 경멸을 위한 적합한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여성의 연약함은 존귀와 존경의 이유가 된다. 곧 "더 연약한 그릇으로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2) 여기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받을 자들에게 합당한 영광이 있다. (3) 모든 기혼자들은 피차간 사랑스럽고 화목한 관계를 유지함으로 가정불화로 인하여 그들의 성공적인 기도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 친구와 원수들에 대한 의무(벧전 3:8-15) 사도 베드로는 특별한 권고로부터 떠나서 보다 보편적인 권고로 그 방향을 돌리고 있다. Ⅰ. 사도 베드로는 먼저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인들과 동료들이 서로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 마음을 같이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곧 동일한 믿음의 신앙에 있어서와 신앙의 동일한 의무를 실행함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동시에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의 대부분이 고통스러운 환경 가운데 있었으므로 서로서로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행 가운데 있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며 모두에게 겸손하기를 권면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배우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1.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큰 목적에서와 실제적인 애정과 그리스도인의 실제적 행실에 있어서 모두 하나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곧 "하나님이 너희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신 바대로" 인간의 쾌락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들은 한 마음을 이루어야 한다(롬 15:5). 2.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꼭 같은 마음을 이룰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각자가 독특하게 지음받았으며 자라난 환경이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간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서로 인정하고 품어주고 축복하며 사랑해야 한다. 즉 그들은 서로서로 괴롭히거나 미워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보편적 애정 이상의 것으로 서로 사랑해야하되 형제같이 사랑해야 한다. 3. 기독교는 고난 당하는 자에게 대한 동정 베풀것을 요청하며 모든 사람에 대한 온유와 겸손을 요청한다. 대페로 그런 사람은 악명 높은 죄인이거나 또는 악랄한 배도자임에 틀림없을 것이며, 그런 사람에게는 정중한 인사를 차릴 필요조차 없다고(고전 5:11; 요이 1:11) 세인들은 느낄지 모르나 우리 구주하나님은 그들에게조차 마음 쓰고 계심을 기억하라....찾아 돌보아 주라..그 때가 복음전파의 기회가 될 수 있다!! Ⅱ. 사도 베드로는 우리들에게 원수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멸시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아래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1. 사도 베드로는 그들에게 "악은 악으로 욕은 욕으로" 갚지 말라고 경고한다. 오히려 반대로 이렇게 교훈한다. "그들이 너희들을 욕할 때 너희들은 그들을 축복하며, 그들이 너희에게 악한 말을 할 때에 좋은 말을 하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말씀과 본으로써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비록 너희가 가치가 없을지라도 너희에게 영원한 기업으로 축복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악한 것을 참고 너희들의 원수들을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악을 악으로 갚고 욕을 욕으로 갚는 것"은 사악한 비기독교적 행실이다. 치안 판사가 "악을 행하는 자"를 처벌할 것이다. 일반 서민은 부당한 취급을 받았을 때 법적인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투, 면책, 혹은 숨겨진 악으로써 복수를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잠 20:22; 눅 6:27; 롬 12:17; 살전 5:15). 욕을 하는 것은 사람에게 좀더 혹독하고 강렬하게 복수에 가득 찬 말로 욕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목사에게 있어서 신랄하게 꾸짖고 사악한 세대를 향한 열심있는 설교는 욕이 아니다.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이전 일을 행했던 사람들이다(사 56:10; 습 3:3; 행 20:29). (2) 그리스도의 계명은 우리로 하여금 욕을 축복으로 바꾸도록 강권한다.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에게 선을 행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여러분들은 죄중에 있는 그들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의가 요구하며 자비가 요구하는 바 모든 것을 여러분들의 원수들에게 행해야 한다.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욕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위하여 기도하고 사랑해야 한다. (3) 그리스도인의 소명이 그에게 영광스러운 특권을 부여하는 것과 같이 그 소명은 그에게 어려운 의무를 강요한다. (4) 하나님의 진실한 모든 종들은 온전히 축복을 위엄으로 받게 될 것이다. 이미 그들은 현세에서 많은 것을 받았으며 내세를 위하여 충만한 축복이 예비되어 있다. 2. 사도 베드로는 시끄럽고 말썽 많은 이 세상에서 만족할 만한 행복에 대해 탁월한 설명을 가하고 있다(1절). 여기에 있는 말씀은 시편 34편 12-14절로부터 인용된 말씀이다.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이웃에 대해 어떠한 손해와 상처를 입히는 일을 피하며, 선을 행하도록 힘쓰며, 선으로써 악을 이기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며 그 평화가 떠났을지라도 그 평화를 계속 추구하라.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들에게 선한 말을 하도록 하며 여러분들과 함께 화목하게 살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아래 사항을 기억하자. (1) 구약과 신약의 선한 사람들은 동일한 도덕적 의무를 지니고 있다. 즉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 하신 말씀은 다윗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지켜야할 의무로 남아 있다. (2) 현세의 이익을 신앙에 대한 동기와 격려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합당하다. (3) 신앙의 실천, 특별히 혀의 올바른 관리는 그의 삶을 평탄하게 하며 번창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진중하고 공격적이 아니며 현명한 혀는 이 세상을 우리로 하여금 평화롭게,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4)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일은 현세와 내세에 만족과 행복의 길이 된다. (5) 평화가 주어질 때에 그것을 부여잡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평화가 거부되어질 때 이를 찾고 추구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의무다. 즉 분열과 논쟁으로 반목 상태에 있는 집단간의 평화와 아울러, 특수한 개인들간의 평화가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다. 3. 이미 기술한 이러한 끈덕진 비공격적 행위가 그들의 원수의 잔인성을 불러들이며 촉진케 되리라는 걱정을 그리스도인들은 할 필요가 없음을 사도 베드로는 보여 주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의 편에 계셔서 도우시기 때문이다. 즉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있기" 때문이다(12절). 하나님은 그들을 주시하시며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영구한 통치를 시행하시며,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신다. "그의 귀는 그들의 간구에 기울이신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처가 그들에게 주어진대도 그들은 치료를 받을 수가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귀가 항상 고난 가운데 있는 그의 종들에게 집중하고 있으며 불의한 원수들에 대해 그들을 확실히 도와주시게 될 하늘의 아버지에게 불평을 말하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외면하신다." 즉 그의 분노와 불쾌 그리고 복수는 늘 그들을 뒤좇게 된다. 이는 주님이 인간들에게 있어서 보다 사악한 박해자들에게 더 큰 대적자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몇 가지를 주시해 보자. (1) 우리들은 성서에 나타난 말을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대로 고집하지 말고 그 말씀의 의미와 뜻을 연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은 불경한 과오와 모호성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성경의 표현이 이렇게 나타나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눈과 귀와 얼굴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상상해서는 아니 된다. (2) 하나님은 그의 모든 의로운 백성들을 향해 특별한 관심과 아버지로서의 애정을 가지고 계신다. (3)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기도를 항상 듣고 계신다(요 4:31; 요일 5:14; 히 4:16). (4) 하나님은 무한히 선하실지라도 그는 회개할 줄 모르는 죄인들을 증오하시며 그의 진노는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퍼부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의를 행하시게 될 것이며, 온 세상을 의롭게 하실 것이다. 그의 선하심은 이러한 의를 행하시는데 장해물이 되지 않는다. 4. 그리스도인들의 이러한 끈기 있고 겸손한 행동은 두 가지의 생각으로부터 충고되고 촉구되고 있다. (1) 이런 끈기 있고 겸손한 행동은 고난을 방지하는 가장 훌륭하며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다. 13절에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라고 기록되었다. 이는 일반적인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이지, 박해가 극심한 때의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추측이 된다. "보통 여러분들과 같이 결백하고 의미있게 살고 있는 모든 자들을 해하는 매우 극악무도하며 사악한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다." (2) 이것이 고난을 개선하는 길이 된다. 즉 "만일 여러분들이 선을 추구하다가 고난을 받는다면" 이는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 된다(14절). 여러분은 이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게 되며 여러분의 영광과 행복이 될 것이다(마 5:10). ① "여러분들을 때리는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여러분들의 원수들의 걱정이나 힘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또한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것을 알아두자. 첫째, 선한 것을 좇는 일은 해로운 길로 들어서지 않는 최선의 길잡이가 된다. 둘째, 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영광이며 행복이 된다. 진리의 목적을 위하여 선한 양심과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고난을 받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큰 영광이다. 고난의 기쁨은 슬픔보다 더욱 크며 영광은 치욕보다 더욱 큰 것이요 획득은 상실보다 더욱 큰 것이 된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원수들의 어떤 위협이나 분노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들의 원수들이 하나님의 원수들이요, 그의 얼굴은 그들을 향하고 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며 원수들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여러분들에게 아무 것도 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원수들로 인하여 격동하지 말라." ② 사람들의 무서움을 두려워하는 대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15절).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사 8:12, 13).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을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눅 12:4, 5). 우리들이 성실과 열심히 하나님을 경외할 때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두려움과 존경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그의 능력을 의지하고 그의 성실하심을 신뢰하며 그의 지혜에 순복하고 그의 거룩하심을 모방하며 그의 최상의 놀라운 완전하심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 때에 우리는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된다.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존귀하게 하도록 다른 이들을 인도하고 격려하는 것 같은 일은 하나님을 거룩하게 한다. 즉 예레미야 10장 3절에 있는 말씀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는 두 가지 일이 요구된다. 이 원리가 여러분의 마음 속 깊이 자리를 잡고 있을 때 사람들에 대해 부차적인 일들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즉 여러분들이 고백하는 믿음에 관해 답변을 하거나 방어하기 위하여 준비를 갖추되 세상에서 어려운 고난을 당하나 여러분들이 그 중에도 모종의 소망을 가지게 되는 이유를 묻는 자에 그리고 대답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두자. 첫째,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대한 경외심은 고난에 대한 공포심을 해결하는 최선의 해독제가 된다. 곧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함으로 우리는 분명히 인간들을 덜 두려워 할 수 있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소망과 믿음은 온 세상을 방어하는 무기가 된다. 여기에 신앙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성립된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라 불쌍한 죄인들의 모든 필요에 타당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 중에 온전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며, 하늘로부터 계시된 합리적 계책안이다. 셋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의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한 답변과 변호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기독교에 대해 언급할 준비된 답변이 서 있어야 한다. 이는 그들이 어리석음이나 환상에 의해 충동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러한 변호는 한 두 번만이 아니라 여러 번 필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만일 변호를 요구한다면 행정 관리들에게나 혹은 진지한 그리스도인이 그의 지식과 진보를 위해 알기를 원한다면 그들에게도 변호를 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 해야만 한다. 넷째, 우리의 신앙에 대한 고백은 "온유한 두려움으로" 해야 한다. 우리의 소망에 대한 변명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우리 자신에 대한 경계심과 우리들의 윗 사람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겸손과 온유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 선행과 고난(벧전 3:16-17) 그리스도인의 고백은 여기에서 상세히 설명되어진 두 가지 수단 즉 "선한 양심"과 "선한 행실"이 아니고서는 반드시 지지를 받을 수가 없다. 양심은 그의 임무를 수행할 때에 순결하고 부패치 않았으며, 죄악으로부터 깨끗이 보전되어 있을 때에 선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여러분들을 비난할지라도 선한 양심은 여러분들을 정당화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한 행실"은 그리스도의 교훈과 보이신 본을 따라 사는 거룩한 생활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양심과 행실을 잘 살피라.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욕하고 거짓으로 악을 행하는 자라고 비방을 할지라도 여러분은 자신의 정결함을 나타내어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선한 양심과 행실을 지킴으로써 당하는 고난이 어려운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는 아무리 여러분의 원수가 악할지라도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1. 가장 양심적인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의 모략과 중상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은 선한 사람들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욕하며, 그들의 심령의 범죄를 그들의 책임으로 전가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도 이렇게 취급을 당했다. 2. 선한 양심과 선한 행실은 훌륭한 명성을 얻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이러한 선한 양심과 선한 행실은 견실하고 영원한 명성을 부여한다. 3. 결국은 비난자들의 무분별, 부정, 거짓과 몰인정이 드러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거짓된 비방은 비난하는 자의 부끄러움을 초래케 한다. 4. 선한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함으로, 또한 그들이 정직과 믿음으로 인해 고난을 받는 것이 때로는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있다. 5. 선한 행동은 선한 사람에게 고난을 부여하는 것처럼, 악한 행동은 악한 사람에게 악을 면할 수 없게 한다. 사람은 두 가지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사도는 생각한다. 선을 함으로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이 가혹하다면 악한 사람들이 악을 행함으로써 당하는 고난을 어떠할 것인가? 죄와 고난이 동시에 함께 임하는 사람은 매우 불행한 처지에 있다. 죄는 고난을 극심하게, 무익하게, 불쾌하게 그리고 파괴적인 것으로 만든다. --------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벧전 3:18-20) Ⅰ. 그리스도의 본은 고난을 참는 것과 만일 우리들이 말씀에 내포되어 있는 몇 가지 점을 상고할 경우 인식될 수 있는 그의 인내하는 능력에 대한 논의로써 제기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몇 가지 점을 생각해 보자. 1.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죄가 없음에도, 또한 만일 원하기만 한다면 모든 고난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고난에서부터 면제되지 아니했다. 2.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의 이유와 명예로운 원인은 인간들의 죄이다. 곧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위해 고난을 당하셨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참되고 타당한 처벌이었다. 이러한 처벌은 속죄를 위해, 그리고 죄를 보상키 위해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속죄는 모든 죄에 대해 효과를 미친다. 3. 우리 주님의 당하신 고난의 경우에 있어서, 불의한 자를 위해 고통을 당하신 이는 의인이었다. 곧 그리스도는 그 자신을 우리와 대치시켰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죄를 모르는 그가 의를 모르는 자들을 대신해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4. 그리스도의 희생의 공로와 안전함은 그가 한 번 고난을 당하심으로 충분한 것이었다. 율법적인 희생 제물은 매일, 또는, 매년 반복되어졌으나 그리스도의 희생은 단 한 번 드려짐으로 모든 죄를 깨끗이 하셨다(히 7:27; 9:26, 28; 10:10, 12, 14). 5. 우리 주님의 고난의 축복 목적과 계획은 우리를 하나님께 이끌어 하나님과 화목케 하며, 우리를 아버지께 가까이 하고, 우리와 우리의 예배를 합당케 하며 영원한 영광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엡 2:13; 3:12; 히 10:21, 22). 6. 그리스도의 고난의 문제와 사건을 살펴보자. 그는 무죄하셨고, 인간의 죄로 인해 대신 영단번의 죽음을 당했으나 영으로서 다시 살아 일어나셨다. 자, 만일 그리스도가 고난을 면치 아니하셨다면 왜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면케 되기를 기대하는가? 만일 그가 죄를 속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셨다면 우리는 우리의 고난이 속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연단과 훈련, 바르게 함을 위한 것인데, 왜 우리는 만족하며 감사치 아니하는가? 온전히 의로우심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고난 중에도 감사하셨다면, 그 고통이 잠시적이요, 그 후엔 영광의 주님을 참되게 따르게 된다면 우리들은 어찌 고통을 참지 못하겠는가? 만일 그가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해 "고난을 받으셨다면" 우리의 당하는 바 고난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귀의하도록 하며 그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수행하도록 촉진하는데 유익이 되는 이상 우리들이 어찌 어려움을 감수하지 않겠는가? Ⅱ.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본으로부터 옛 세대의 본에 이르기까지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서신을 받는 유대인들 앞에 그들은 같은 형벌 아래 있었음을 암시하면서 불순종과 불신앙을 계속하던 유대인들로부터 노아로 말미암아 전파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던 자들의 색다른 사건을 그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은 당시 그들에 대해 더 오래 참으실 수는 없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긍휼을 베푸는 자를 지금 맞이했다. 그 긍휼을 수락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으나 그리스도와 복음을 거부하는 자는 노아 시대에 있던 불순종하던 자들과 같이 분명히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 1.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1) 전도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담과 맨 처음으로 언약하신 이후로 교회와 세상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창 3:15). 그리고 하나님이 자주 이동하라고 명하신 것처럼(창 11:5; 호 5:15; 미 1:3) 그리스도는 편협한 목적지가 아니라 각별한 동기로써 "나아가셨다." 그는 나아가서 두루"전파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과 분투하며 백성들에게 탄원하도록 에녹과 노아에게 능력을 주었고 그들에게 의를 전파했다(벧후 2:5). (2) 듣는 자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죽고 육체와 영이 분리되었으므로 사도는 그들을 적당히 감옥에 있는 영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저속한 라틴어 번역이나 카톨릭 교회 해석자들의 주장과 같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전파할 때 그들이 지상의 감옥에 갇혀 있던 것은 아니다. (3) 이 백성들의 죄는 이러하다. 그들은 그 말이 의미하는 대로 "반역하며" 따르지 않는 불순종이며 또한 믿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죄는 하나님의 참으심과 고통으로 인해서 더욱 악화되었다(노아가 방주를 준비하고 그들에게 전도를 통하여 그들에게 임할 바를 명확히 경고하는 동안 하나님은 120년 동안 그들을 기다리셨다). (4) 그 사건의 전모는 이러하다. 그들의 육체는 몰락되었고 그들의 영은 지옥에 던져졌다. 이를 가리켜 사도는 감옥이라 불렀다(마 5:25; 벧후 2:4, 5). 그러나 믿고 순종한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 안에서 구원을 얻었다. 2. 이러한 이야기 전체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이러하다. (1) 하나님은 사람들이 모든 세대에 그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기 위해 지니고 있었던 모든 수단과 유리한 형편을 정확히 주시하고 계신다. 즉 그리스도께서 그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의 성령을 보냈으며 노아를 통해 밝히 경고했으며, 그들의 회개를 오랫동안 기다리신 옛 시대의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2) 하나님의 인내가 죄인들을 오래 기다린다 하더라도 결국 하나님의 인내는 사라진다. 즉 그것은 헛되이 인간들을 항상 기다리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주권에 미치지 못한다. (3) 불순종하는 죄인들의 영은 곧 그들의 육체에서 벗어나와 구원이 있는 지옥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4) 가장 많이 가는 길이 결코 가장 좋고 지혜로운 것이나 따르기에 안전한 길이 되지는 못한다. 홍수에 빠져 지옥의 저주를 받은 팔백만보다 방주 안에 있는 여덟 명을 따르는 일이 더욱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구원의 표증인 세례(벧전 3:21-22) 물 위에 있는 방주 안에서의 노아의 구원은 세례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을 예시하는 것이었다. 방주에 의한 일시적 구원은 하나의 예표이었다. 그 대형(對型)은 세례에 의한 신도들의 영원무궁한 구원이며, 또한 사도 베드로가 아래에서 말하고 있는 것에 관한 잘못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Ⅰ. 사도 베드로는 구원의 세례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표명하고 있다. 세례란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 이상의 아무것도 아닌 물로 씻는 외적 의식이 아니다. 세례에는 성실한 대답, 혹은 결정적인 선한 양심의 응답이 있으며, 믿음의 서약과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 전적인 헌신을 약속하며, 동시에 육신과 세상, 그리고 마귀를 포기함을 의미한다. 이루어지고 보존되어진 세례의 언약은 확실히 우리를 구원한다. 씻음은 볼 수 있는 상징이다. 이것은 중대한 사건이다. Ⅱ. 구원에 대한 세례의 효력은 어떤 공로가 아니라, 죽음을 상기케 하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존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기초가 된다. 우리들의 죄에 대하여 죽고 거룩함과 새 생명에 대해 다시 사는 것으로 위로를 받는다. 아래의 두 가지 점을 기억하자. 1. 옳게 받아들여진 세례 예식은 구원의 수단과 약속이 된다. "세례는 지금 우리를 구원한다." 하나님은 그의 의식 안에서 또는 의식에 의하여 우리들에게 축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행 2:38; 22:16). 2. 세례의 형식적인 참예는 응답적인 선한 양심과 행실을 갖추지 못한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하나님께 대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 있어야만 한다. 어린아이들은 이러한 응답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당장]세례를 받을 수가 없다. 참된 할례는 마음과 영의 응답에 있었다(롬 2:29). 유아들이 이 대답을 지금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대답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팔일이 되면 할례가 허락되었다. 기독교의 유아들도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나타난 어떤 금지명령에 의하여 할례를 금지당하지 않았다면 유대의 유아들처럼 세례가 허락될지도 모른다.((부모는 아이들의 영혼에 대해 서약한 바 합당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 Ⅲ.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언급한 다음 그의 승천과 동시에 고난 가운데 있는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 신자들에 의해 주제라고 생각되어지는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22절). 그리스도의 증진된 삶이 그의 깊은 겸손 다음에 이룩된 큰 영광이라면 성도들도 그와 함께 놀라운 기쁨과 영광에 이를 것이다. 여기에서 배울 수 있는 세 가지 점을 생각해 보자. 1.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서의 그의 수고와 고난을 마친 후에 의기양양하게 하늘로 들리우셨다(행 1:9-11; 막 16:19). 그는 자신이 획득한 면류관과 영광을 받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셨다(요 17:5). 그리스도는 이 땅 위에서 이룩하지 못한 그의 중보적 역사의 일부를 완성하기 위함과 그리고 그의 백성을 위해 중보를 이룩하며 당신의 만족이 충만함을 드러내고 그의 백성들을 위해 천국을 소유하고 그들을 위해 집을 예비하며 그리고 그의 중보의 첫 열매이었던 보혜사를 보내 주시기 위해 승천하셨다(요 16:7). 2. 그가 하늘로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는 아버지 우편의 왕좌를 얻으셨다.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앉아 계시다고 함은 모든 수고와 고난에서의 완전한 휴식과 단절을 그리고 가장 존엄하신 인격의 권위와 군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3.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복하게 되어 있다. 지시하고 율법을 주며, 명령을 발포하고 최후의 선고를 하기 위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하나님이며, 동시에 인간인 예수에게 위탁되었다. 이로 인해 그의 원수들은 영원한 슬픔과 혼란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종들은 영원한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된다.
=== === 베드로전서 제 3장 =====3:1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 '이와 같이'(*, 호모이오스)는 2:13을 가리킨다(Blum). 그러므로 아내 된 자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지위에 있어서 열등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른 가정 생활의 기능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아내들이 노예와 같은 지위에서 남편들에게 맹종을 할 수는 없으나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 가장인 남편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고 아내는 그 결정에 따라야 한다(Stibbs). 따라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협력자의 관계이다.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 본문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 하는 목적을 나타낸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하고 믿지 않는 남편이 구원을 얻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도를 순종치 않는 자'는 그리스도인 여자들이 믿지 않는 남자들과 결혼한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인 여자들을 비방하는자들을 가리킨다(9절; 2:12,15,Balch, Michaels). 그리스도인 여자들이 비그리스도인 남편들과 결혼했을 경우 그여자는 남편의 사회적인 배경에 따른 여러 가지 습관과 종교적인 의식들을 이해해야 한다. 만약 순종치 아니한다면 그 사회는 그리스도인의 자질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여자들은 비그리스도인 남편을 자신들의 말로써 회심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복종하는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해야 한다. '말로 말미암지 않고'는 기독교 진리에 대해서 전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만 지나친 말싸움이나 유창한 말을 가지고 입씨름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한편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에서 '얻게 하려함이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르데데손타이'(*)는 '이익'을 의미하는 '케르도스'(* )에서 유래된 말로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이익이 되게 하다'라는 뜻이다. =====3:2 @너희의...봄이라 - '봄이라'의 헬라어 '에포프튜산테스'(*)는 '주의 깊게 관찰하다'의 뜻으로 비그리스도인 남편이 그리스도인 아내의 삶을 자세히 관찰함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됨을 암시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인 아내의 행위는 두 가지로 묘사된다. @두려워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앤 포보'(* )는 남편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의 모습이다(Blum, Robertson). 비그리스도인 남편은 그리스도인 아내가 하나님을 늘 인식하고 경외하는 가운데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정결한 행위 - 이것은 흠이 없고 깨끗한 '순결한 삶'을 의미한다. 비록 이교도처럼 이교신을 숭배하는 예배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 아내는 당시 사회의 정숙한 아내상에 맞는 삶을 살아감으로 비그리스도인 남편으로 하여금 아내를 인정케 하고 그 아내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Michaels). =====3:3 @너희 단장은...외모로 하지 말고 - 본문은 외모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의미보다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행동할 것을 시사한다. 여자들의 단장은 마땅한 것이나 인위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려고 단장하는 것은 금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록 사람은 의모를 보고 판단할지라도 하나님은 마음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삼상 16:7). '단장'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스모스'(* )는 질서를 가진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쓰인 장식을 나타낸다(Robertson). 당시 전반적으로 사치를 즐길 수 있는 계층의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일부 계층에서 머리를 땋고, 금장식을 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3:4 @오직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 )은 앞절과 본절이 대조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외모,'단장'과 '숨은 사람', '머리, 금, 옷'과 '심령'을 대조시켜서 그리스도인 여인이 갖추어야 할 것에 대해서 강조한다(Selwyn). @마음에 숨은 사람을 - '숨은 사람'은 앞절의 '외모'와 대조 개념으로 '속 사람'을 의미한다(롬 7:22; 고후 4:16; 골 3:9, Michaels). 속 사람의 '마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진 생명이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는 마음으로서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두며, 그와 연합하여 깨끗하고 신실하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리킨다(15절;1:22).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 '썩지 아니할 것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앤 토 아프다르토'(*)는 본서의 독특한 용어로 구속함 받은 그리스도인 여인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표현이다(1:4,18,23, Michaels). 이것은 두 가지 마음으로 정의된다. (1) 온유하고. 이것은 마음의 동요를 일키지 않는 것으로(Bengel) 남편의 태도나 요구를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기질을 나타낸다(Stibbs) (2) 안정한 - 이것은 타인에 의해서 일어나는 동요에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으로(Bengel) 틀림없이 남편을 보필하는 것을 나타낸다(Stibbs) 이런 마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인정할 만하며 가치있는 덕목이다. 한편 '심령'의 헬라어 '프뉴마토스'(* )는 '성령'을 의미하지 않고 그리스도인 여인이 지니는 어떤 '기질'을 나타낸다(Lenski, Michaels). 이러한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 - 여기서는 구체적인 구약 시대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거룩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기아이'(* )는 '거룩한 선지자'를 칭할 때 사용되었으며(눅 1:70; 행 3:21) '사도'(엡 3:5)와 '천사'를 호칭할 때(막 8:38)도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의 여인들에게 사용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사용된 것으로(1:15; 2:5,9)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소망을 둔 것처럼 구약 시대의 '부녀들'도 이미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로서 '거룩한 자들'이었다(Michaels). 하나님에게 둔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 한편 '부녀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귀나이케스'(* )는 다음 절에서 예로 '사라' 혼자만이 언급된 반면에 복수로 나타나고 있다. 유대 전승에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아내인 사라, 리브가, 라헬과 레아가 족장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본절의 '부녀들'은 이들을 가리키는 듯하다(Michaels). 이들은 그들의 뜻이 하나님 앞에 고정된 자들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메시야를 갈망했던 그들은(5절; 1:3,13; 히 11:13) 내면의 아름다움을 단장했던 자들이었다(Bengel, Blum).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 저자는 '거룩한 부녀들'이 갖춘 내면의 아름다움을 '순종'으로 소개하고 있다. '단장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코스문'(* )은 습관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로서 '단장하곤 했다'라는 의미이다. 여인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내적인 단장이며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되는 장식이었다.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 저자는 본절에서 순종을 통해서 내면적인 아름다움으로 단장한 '거룩한 부녀들' 중 '사라'를 실례로 들고 있다.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고 부름으로 그에게 복종했다(창 18:12). 비록 자기 남편을 주라 칭했던 것이 당시의 풍습이라 할지라도 베드로는 본문에서 '주'라는 호칭이 아브라함에 대한 사라의 순종의 표시임을 강조한다. 이는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고 복종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Stibbs). 한편 '딸'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크나'(* )는 문자적으로 '자녀'를 의미한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의 믿음의 아버지인 것처럼(롬 4:11; 갈 3:7) 아브라함에게 순종한 아내 사라 역시 모든 믿는 자의 어머니가 되며(갈 4:22-31) 아브라함과 사라는 모든 믿는 자의 부모가 된다. 실제로 사 51:2에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동일하게 유다의 부모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의심할 것 없이 신약에서도 동일하게 부모로 간주할수 있다(Goppelt).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 이 부분은 본절에 대한 삽입구로 볼 필요가 없다. 하나의 독립된 구절로 보아서 '너희가 선을 행하면',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의 분사구로 해석함이 탸당하다. 그러나 이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딸이 될 수 있다'라는 조건적 분사로서가 아니라 이 현재 분사를 부정과거로 연결시켜 이미 '사라의 딸이 되었으므로 선을 행하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해석되어야 타당하다(Lenski). 한편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는 잠 3:25의 인용이다. 이 말은 너희가 딸이 되었으므로 이교도 남편들이 선을 행하는 것을 방해하고 난폭하게 취급하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두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침착하고 용기를 가지라는 권면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딸이 되었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3:7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한 것처럼 남편들도 아내들에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와같이'는 1절과 동일한 분사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결혼의 관계를 세상의 제도적인 것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로 인식해야 함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남편 된 자들이 마땅히 아내들에게 결혼 생활 속에서 감당해야 할 의무는 연약한 아내를 보살펴 주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부부 관계에 있어서는 마땅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 '지식'에 대한 헬라어 '그노신'(* )는 하나님께서 의도하고 있는 결혼 관계에 대한 인식 즉 결혼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는 통찰력을 의미한다(Vincent). 한편 '동거하다'의 헬라어 '쉬노이쿤테스(* )는 '함께 살다'의 '쉬노이케오'(* )에서 나온 말이다. 이것은 특히 성교와 관련된 말이나(Kelly) 본문에서는 단순히 남편이 아내와 갖는 성적인 관계만이 아니라 여자의 육체적인 연약함을 돌보는 전체적인 관계를 나타낸다(Reicke). @저는...귀히여기라 - 베드로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남편들이 아내들을 귀하게 대할 것을 권면한다. @더 연약한 그릇이요 - 이것은 지적이나 도덕적인 연약성이 아닌 육체적인 연약성을 가리킨다(Blum).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 - 아내가 남편에게 귀히 여김을 받을 또 다른 이유는 영적인 면에서 남편과 동등하게 영생의 은총을 공유한 자이며 그것을 상속받을 동등한 동반자이기 때문이다(Stibbs, blum, Michaels).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 남편과 아내가 꾸미는 가정은 교회의 축소판이다(Clement).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협력하며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였을 경우 두 세사람과 함께 계신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 이다(마 18:20;고전 7:5). 그러나 서로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기도 생활에서(4:7-11; 마5:23-24; 6:12,14; 18:15-20; 막 11:25) 남편이 악하게 아내를 대하거나 서로가 불화하는 경우에는 기도의 효력이 발생하기 어렵다. =====3: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 베드로는 본절에서 2:18-3:7에 있는 명령을 마무리하면서 5개의 형용사를 사용함으로 완곡한 권면을 하고 있다. 본절에 사용된 5개의 형용사는 동일하게 분사적인 용법을 취하고 있다. 이는 특별한 계층으로 부터 신자의 특성으로 관심을 옮긴 것으로(Goppelt, Selwyn) 신자의 상호 관계에 대한 언급이다. @마음을 같이하여(* , 호모프로네스) - 이것은 '같은'을 뜻하는 '호모스'(* )와 '마음'을 의미하는 '프렌'(* )의 합성어로서 '한 가지 일에 뜻을 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동일한 의견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각자가 서로에 대한 동일한 관심을 가지며 영적인 끈으로 연합되어야 함을 시사한다(행 4:32, Michaels). @체휼하며(* , 쉼파데이스) - 이것은 '함께'를 뜻하는 '쉰'(*)과 '고통을 받다'에 해당하는 '파스코'(* )의 합성어이다. '쉼파데이스'의 직접적인 의미는 '동정심을 갖다'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참여하여 고난 받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동정하는 것을 나타낸다(히 10:34). @형제를 사랑하며(* , 필라델포이) - 신약성경에서 본절에만 나오는 '필라델포이'는 '사랑'에 해당하는 '필로스'(* )와 '형제'에 해당하는 '아델포스'(* )의 합성어이다. 이는 단순한 형제애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결속시키는 형제애로서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윤리적 덕목이다(롬 12:10; 살전 4:9,10; 히 13:1; 벧후 1:7). @불쌍히 여기며(* , 유스플랑크노이) - 이것은 '좋은'의 뜻을 가진 '유'(* )와 '마음'을 뜻하는 '스플랑크논'(* )의 합성어이다. '유스플랑크노이'는 히포크라테스 당대에 '내장이 강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의미가 변화되어 '용기 있는'이나 '인정 많은'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Selwyn). 신약성경에서는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이나 동정심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고후7:15; 몬 1:7, Bigg). @'겸손하며'(* , 타페이노프로네스) - 이것은 '겸손한'의 의미를 가진 '타페이노스'(* )와 '마음','생각'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렌'(* )의 합성어이다. 이는 예수께서 가지셨던 마음으로(잠 29:23;빌 2:6-9) 낮은 마음을 나타낸다.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 베드로는 본절에서 일반적인 불신자와의 관계를 말함으로써 결론을 맺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 뿐만 아니라 자기를 해치고 욕하는 자에게도 보복하는 일이 없이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셨던 교훈이다(눅 6:27-29; 23:34). '갚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디돈테스'(*)는 당연히 갚아야 하는 것을 가리키는 '아포디도미'(*,'지불하다')에서 유래한 단어이며, '복을 빌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군테스'(*)는 저주의 반대말로 '좋게 말하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악이나 욕으로 갚아도 될 만한 상황 속에서라도 저주나 앙갚음을 하지말고 도리어 축복하고 중보 기도해야 함을 시사한다(Blum).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