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인도 받기(RECEIVING GUIDANCE FROM GOD) ===릭 워렌 - 합 2:1-2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해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합 2:1-2) 하나님께서 주로 무엇을 통해 말씀하시는지는 네 가지입니다. 성경, 은사를 받은 교사들, 성령이 주시는 인상(impression), 그리고 고통입니다. 이 가운데서 ‘성령이 주시는 인상’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많은 혼동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 할까요?”, “직장을 바꿀까요?”, “이 투자를 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여러분은 이런 문제를 놓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문제를 다루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먼저 하나님께 채널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이제 하박국이 하나님께 채널을 고정시켰던 다섯 가지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I. 하나님의 인도를 요청하라 1.하나님은 내 삶의 세세한 부분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1~32절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먹을 것과 입는 것을 보살피신다니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 삶의 세세한 부분들에 여러분보다 더 관심이 많습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아버지시며 여러분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기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나아가 삶의 세세한 부분들에 대해 질문 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여러분의 삶 구석구석까지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구체적으로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구할 때는 구체적으로 질문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질문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대답하실 것이 더 많아집니다. “하나님, 말씀하실 게 있나요?”라고 질문하지 말고, “하나님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질문하십시오.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스무 번도 넘게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고보 사도는 구하지 않기에 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조언을 구하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인간관계, 직업, 건강, 재정, 무엇이든 조언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이 응답하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야고보서 1장 5~6절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보다 더 여러분과 대화하고자 하십니다. 사무엘을 주목시키려고 하나님이 네 번이나 시도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진정으로 기도하면 응답을 반드시 받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기를 원하시는지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십시오. 하박국 1장에서 하박국은 하나님께 6가지 구체적인 질문을 드립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응답에 귀 기울이고 그가 듣는 것을 기록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님께 어떤 인상을 받는 다섯 단계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1. 물러남 2. 기다림 3. 바라봄 watch 4. 기록함 5. 예배함-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 1. 물러남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할 때 해야 할 우선적인 일은 물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용한 장소에서 혼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박국은 “내 파수하는 곳”, “성루”에 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외적 산만함을 벗어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기 위해 홀로 있겠다는 것을 뜻하는 히브리식 표현입니다. 오늘날 때로 이것은 매우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는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최근에 열여덟 명의 자녀를 두었던 수잔나 웨슬리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그녀는 당대 영국의 영적 지각 변동을 일으켰던 찰스 웨슬리와 존 웨슬리의 어머니입니다. 찰스 웨슬리는 수많은 찬송들을 작사 작곡했으며 교회는 아직도 그것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존 웨슬리는 감리교의 창설자입니다. 열여덟 명이나 되는 자녀를 돌보면서 수잔나 웨슬리는 어떻게 기도할 조용할 장소를 찾았을까요? 그 비결을 살펴봅시다. 매일 오후 그녀는 거실에 앉아 앞치마를 머리 위에 뒤집어썼습니다. 앞치마를 뒤집어쓰고 흔들의자에 앉은 어머니를 볼 때마다 아이들은 엄마가 방해받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바로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귀 기울일 수 있는 조용한 곳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소음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TV가 켜져 있고, 라디오가 켜져 있고, 팩스기가 켜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휴대폰을 늘 지니고 다니며, 걸을 때도 워크맨을 듣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밀한 작은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먼저 물러나서 모든 일을 멈추고 홀로 있으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5:16은 “예수는 물러가사(often withdrew)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고 말합니다. 자주(often)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몹시 활동적인 생활을 하셨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주 물러나셨습니다. 그것을 습관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럴 필요가 있으셨다면 당연히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을 산만하게 만드는 것들을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휴대폰을 꺼두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기도중에 전화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해야 할 전부라면 이것은 너무도 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용한 장소를 찾은 다음에 여러분은 스스로를, 여러분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잠잠케 해야 합니다. 그러면 두 번째 단계로 인도받습니다. 2. 기다림 기다림이란 여러분의 생각과 감정을 고요하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박국이 말하는 두 번째 일은 “기다리고”입니다. 이것은 움직임을 멈추고 조용히 있는 것입니다. 무엇인가가 일어날 때까지 한동안 그곳에 꼼짝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우리가 너무나 분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30초밖에 시간이 없어요. 빨리 말씀하세요!” 서두름은 기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위해서는 조용한 장소에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자신을 진정시켜야 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응답받지 못하는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일을 멈추고 기도하려 합니다. 조용한 장소도 찾았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려는 순간 여러분의 마음엔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이 이것저것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이것들을 잊어버릴까봐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앉았지만 마음은 달음박질치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을 갖고 스스로를 고요하게 만들지 않으면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사탄이 끝나지 않은 과제들과 여러분이 책임을 진 여러 일들을 생각나게 만들면서 여러분 마음을 분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무시하려 해봐도 그런 생각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제 경험입니다. 나중에 생각하자고 꾹꾹 눌러놓아도 다시 그것들은 아우성을 쳐댑니다. 그래서 저는 한 가지 해법을 찾아냈습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 포스트 잇 같은 메모지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무언가가 떠오르면 기도를 잠시 멈추고 “잊지 말 것...”하고 그것을 메모해둡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로 돌아갑니다. 좀 기도하다가 다시 무언가가 생각나면 또 멈추어서 그것을 적어둡니다. 적어두는 사항이 15~20가지 정도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것을 잊어버릴까봐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정신적 혼란 단계를 결코 넘어설(go past) 수 없습니다. 운 좋게 그것을 지나쳤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 다시 또 다른 두 번째 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바로 부정적 감정입니다. 여러분이 언제나 듣게 되는 두 번째 음성은 여러분의 의식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의 의식을 갖고 장난치기 좋아합니다. 사탄은 크리스천의 비난자입니다. 여러분은 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 죄책감을 느끼는 일들, 여러 죄, 여러분의 결점, 약점들이 자꾸 생각납니다. 사탄은 소리쳐댑니다. “유죄!” “유죄!” 이렇게 되면 기도는 영 즐겁지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 얘기하려고 자리에 앉을 때마다 그가 당신을 비난한다면, 여러분은 곧 그 사람과 전혀 얘기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려고 자리에 앉을 때마다 갑자기 여러분이 얼마나 나쁜지 느껴지고, 여러분 삶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생각난다면, 기도하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의 음성이며 언제나 여러분을 침체되게 만드려는 여러분 자의식의 음성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탄은 비난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과 대화하기 원하시는 사랑 많으신 아버지입니다. 당신 곁에 앉아서 비난하는 분이 아닙니다. 이런 단계를 극복하려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잘못에 주목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에 주목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격려하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정신적으로 고양시키기 원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까요? 어떻게 하면 생각과 감정을 고요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 주의를 고정시킬 수 있는 성경적인 방법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이것은 나 자신의 묵상이나 자습서 같은 데서 얻어낸 기술이 아닙니다. 바로 성경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정신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두 가지를 한다고 고백합니다. 1) 몸을 편안하게 만드십시오. 시편 46:10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여러분의 몸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편안하게 몸을 두십시오. 긴장된 근육들이 풀리게 하십시오. 몸은 태도에 영향을 줍니다. 신체적으로 편안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감정과 기분도 편안하지 않습니다. 몸을 편안하게 만든 뒤 가만히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엔 2) 침묵 가운데서 기다리십시오. 시편 62:5은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쁜 가운데서 잠잠해지기는 어렵습니다. 잠잠해지는 것은 재빨리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억지로 잠잠해지려는 것은 억지로 잠이 들려는 것과도 같습니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만 합니다. 분주한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잠잠하게 만드는 것은 때로 한참 동안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귀 기울일 시간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열왕기하 3장 15절은 엘리야가 하나님께 드린 질문의 답을 듣기 위해서 하나님께 주의를 모으는 동안 부드러운 음악을 연주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씀합니다.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제 자신이 찾아낸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찬양 테잎이나 느린 곡조의 크리스천 음악을 듣는 방법입니다. 그것을 듣기 시작하면 내 몸과 정신과 감정은 낮은 기어로 변환되어서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이 움직이지 않고 여러분의 마음이 잠잠해지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민감해집니다. 내적 고요함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이것이 TM 즉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처럼 들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한 말은 정확하게 초월명상과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초월명상이나 인본주의적 명상은 여러분의 마음을 완전히 비우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목표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하나님께 주의를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께 말하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물러나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3. 바라봄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속에 그림을 주시도록 하십시오. 하박국이 세 번째로 말한 것은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바라보며”입니다. 얼핏 하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실지 귀 기울이겠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있어 중요한 열쇠 한 가지는 하나님의 음성은 종종 시각적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자주 마음속에 주시는 그림을 통해 말씀하기 원하십니다. 성경에서는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마음속 그림이나 환상을 주신 예가 수없이 많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들과 접촉하는 주된 방법입니다. 바로 여러분 마음에 떠오르는 인상(impression) 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마음속 그림이나 이미지 또는 환상을 주십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제가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이해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해하기만 하면, 여러분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장이 열릴 것입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시각적 영상을 강조하면 뉴 에이지라 생각했는데요”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위조품으로서 그런 것입니다. 사탄은 결코 원형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는 창조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이미 한 일을 모방하고, 왜곡하고, 위조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사탄은 위조해내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은사를 받은 신령한 교사와 설교자들을 주시자, 사탄은 거짓 교사와 설교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하나님은 참된 기적을 창조합니다. 사탄도 따라서 가짜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분이 기적을 본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참된 교제를 창조하셨습니다. 교회가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고 돕도록 그것을 만드셨습니다. 사탄도 따라서 거짓된 교제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하는 맥주 광고 같은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맥주 광고는 맥주를 팔지 않고 친교를 팝니다. 사람들은 맥주를 마시면 멋진 시간을 보낼 것이라 믿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믿는다면, 갈 길이 아직 멀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탄도 위조해내려 합니다. 하나님은 시편에서 성경적 묵상과 시각적 영상을 통해서 하나님께 주의를 모으는 법들을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사탄이 그것을 위조했습니다. 죽은 사람이나 다른 별들로부터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 뉴 에이지 신자들은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 방법을 위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에 위조품이 있다는 것은 진짜가 있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3달러짜리 위조지폐는 없습니다. 진자 3달러짜리 지폐가 없기 때문입니다. 위조품 비닐 봉투는 어떻습니까? 없습니다. 비닐 봉투는 귀중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조품이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이 정말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귀중한 것이라는 증거입니다. 저는 사탄이 사람들에게 명상이나 시각적 영상은 모두 뉴 에이지라 믿게 만들어서 우리가 개인적인으로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몹시 속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먼저 생각해내셨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마귀가 그것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에베소서 1장 18절은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마음 눈을 밝히사”라고 말합니다. 이 눈은 얼굴에 있는 눈을 말합니까? 바울은 육체적인 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눈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 감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육체적으로 탄생했을 때 여러 육체적인 감각들을 부여받았습니다. 듣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영적으로 탄생했을 때, 거듭났을 때는 영적 감각들을 받았습니다. 영적 눈, 영적 귀를 받았습니다. 성경을 읽어보셨습니까? 열 번도 넘게 읽었던 어떤 구절이 어느 날 갑자기 여러분에게 불쑥 다가오지 않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의 영적 눈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요한복음 3장에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고 오직 영적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실제의 어떤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아무도 여기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지만 그분은 우리가 여기서 보는 이 건물보다 더 분명하게 존재하십니다. 이 건물은 어느 날 결국 무너질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들은 자연적으로 시각적인 사고를 합니다. 시각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있고 디지털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디지털적 사고를 하는 사람에 속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영상을 통해 사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시각적 사고를 하는데 그것이 더 보편적입니다. 연구에 의하면 50~75%의 사람들이 영상을 통해 사고합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을 때 단지 스토리만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그 스토리를 바라봅니다. 그렇다면 디지털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히브리서 5:14은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개발시킬 수 있습니다. 연습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그렇게 하시도록 함으로써 말입니다. 여러분은 훈련할 수 있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자신을 고요하게 만들고, 모든 산만함을 제거한 뒤, 그저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제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까? 제게 어떤 착상, 어떤 인상을 주시기 원하십니까?” 4. 기록함 여러분이 받은 생각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하박국이 한 일을 주목하십시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1장에서 하박국은 하나님께 자신이 드린 질문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 하박국은 그에게 돌아온 하나님의 답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생활은 언제나 쳇바퀴를 돌고 있습니다. 지루합니다. 기도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 항상 같은 것만 죽어라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쳇바퀴를 부수어버릴 해법이 있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여러분의 기도를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바인드 노트 같은 곳에다 기도를 모두 적어두십시오. 이것을 영적 습관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크리스천들은 대부분 다 이렇게 기도 일기를 썼습니다. 기도와 하나님께 하고 싶은 말들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면서 하나님이 어떤 영적 이미지를 주신다고 느낄 때마다, 응답을 주실 때마다 그것을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유익이 있는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궁금하실 겁니다. 기도하면서 뭘 적어도 괜찮나요? 물론입니다. 성경에서도 경건한 사람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예를 알고 싶다면 시편을 보십시오. 거의 모든 시편들이 그렇습니다. 다윗을 살펴봅시다. 원수들이 형통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하는데 어째서 형통하지 못합니까? 하고 다윗은 질문합니다. 그런 다음 기다리면서 바라보고 하나님의 대답을 기록합니다. 그런 기록들을 우리가 시편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기도 일기를 쓰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우선 여러분은 집중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동안 여러분의 몸은 무언가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려고 애쓰는 것들을 적고 있으면, 여러분 마음은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기도일기는 여러분이 하나님께 한 말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대답한 말들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여러분은 한 가지 교훈을 거듭해서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기록해놓았기 때문에 되돌아가 다시 한 번 살펴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유익은 그 인상들을 나중에 시험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여러분이 받은 착상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마귀로부터 온 것일 수도, 여러분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기록해두면 나중에 다시 살펴보고 시험해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중에 받은 것을 시험하거나 검토해보기 원치 않는다면 여러분은 영성은 망쳐지고 말 것입니다. 5. 예배드림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박국 3장 2절은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I worship you in owe)”라고 말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제게 대답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제 사랑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하나님께 드린 질문의 응답을 듣고 그것을 기록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기도는 독백에서 대화로 바뀌게 됩니다. 이 사실을 배우기 전까지 저는 기도가 얼마나 지루했는지 모릅니다.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았습니다. 응답 같은 것은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결코 생각해보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혼자서 이야기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와 대화하기 원한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고 나자 하나님과 대화가 가능해졌습니다. 대화 없이는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혼자서 말하는 것은 관계가 아닙니다. 때로 저는 하나님께 질문을 하고, 기다리다가,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엔 말할 게 없구나”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최선인지 잘 아십니다. 제가 아내에게 “당신, 내게 할 말 있어요?”하고 물어볼 때, 아내는 때로 “아뇨. 모든 게 만족스러워요” 하고 대답합니다. 때로 제가 하나님께 “하나님, 제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하고 물어보는데, 하나님께서 “아니다, 모든 게 잘 돼가고 있구나”하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드린 것과 같은 기도 생활을 연습하고 발전시켜 나가면, 하나님은 자주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삶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맺는 관계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관계의 가장 낮은 단계입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과 아는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어진 관계입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는 관계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 부르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로 교제하고 토론하고 대화하고 서로를 잘 아는 친구 말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말씀드린 성경적 단계들을 실천하기 시작하면 여러분에겐 영적 삶의 새로운 차원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크나큰 모험이 될 것입니다.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개인적 체험을 통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의를 모으게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아주 주요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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