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C께서 찾으시는 그 사람...성육신하여 오신, 대속의 십자가 죽음-부활-승천을 통해 <신성과 함께 참 인성을 얻으신> 만인의 구주-Q-대제사장이시요 차원의 제약 받지 않으신ㄴ 그영이 되사, 영접하는 이 곧, JC를 개인적인 구주와 Q로 진정 영접하여 하나됨으로 붙좇는 믿음과 그의 주님-주인-왕-머리로 삼고 친밀한 영적 교통과 직관으로 주님의 움직임과 운행하신-행하심따라 한걸음씩 동행하는 자 그의 도드 삼으신 분...구주의 부활 승천 후에도 (하늘에서 하나님 곁에서, <몸소 사람으로서 이 땅을 사시면서 인간의 연약함을 겪어 아시고 모든 시험 받고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이기셨기에> 그토록 많은 눈물과 부르짖음으로 여전히 유일무이한 중보,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중보하고 계시는 분을 바라볼지니.. <오직 모든 세대의 그 어느 한 사람도 멸망당하지 않도록, 회개하고 돌이켜 주 이름 불러 영접하여 믿어들어감으로써 아버지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Q이 사람을 지으신 이후로 그토록 오래 참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영적 병듦, 곧 무지무각-연약함에처해 있어서 그들이 스스로 무엇 하고 있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자각이 없어 전혀 모르고 있음에 대해 긍휼히 여기사 모든 자비하심으로써] 더 참아주시도록 간구하고 계심>으로 인해(공의의 Q, 그분의 쌓여진 진노 쏟아냄을 아드님의 십자가 대속의 보혈 흘림의 공로를 보사 보류하시고 Q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더 오래참아주시도록..그리고 땅끝까지 모든 이들이 주님의 복음 듣도록 번파되기까지 기다려부시도록...이것이 주의 재림 지연의 유일한 ), 바로 그분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어린양의 아내-반쪽으로서 JC의 마음=곧 생각과 심정을 알아드리며 날마다 눈물 범벅이 되어 계신 사랑하는 분 구주 JC의 마음을 찢는 애통의 중보에 전존재 기울여 동참하는자, 바로 그분의 사랑하심과 포기할 수 없는 열정을 그 자신이 경험하였고, 그분의 모든 것을 그 자체로 사랑하기에, 모든 것 내려놓고 내어 비워드려 그분으로 채워지기를 갈망하며, 막힘없이 교통하며 순종하며, 그분의 은혜에 동참함의 친밀한, 다함없는 기쁨으로 넘치며, 상황-환경-형편-처지에 괘념치 않고 일편단심 주와 하나됨으로 붙좇는자.....[마16: 24-28...*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이 때 바로 그 주님이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바대로...그분의 긍휼어린 마음으로 한반도, 대한민국과 북한의 영적 실상과 [악이 악을 대하여 서로 권력투쟁하는 가운데 공멸에 빠져들기를 꾀하는] 사탄마귀의 궤계로 인한 영적 착시와 혼돈-염증을 불러 일으키는 현 실상에 대한 참된 이해를 가지고 중보/중재하도록 분별하며 합당하게 부르짖도록 하고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기도는 결코 사라지지않음.. ##기억하라...그리스도의 통치영역을 의미하는 좋은 땅 가나안의 서쪽과 동쪽 경계로서 대해와 요단강, 북쪽 경계 이루는 유브라데 강들은 이제 주님의 부활 능력 안에서 이미 이겼음을 의미한다...그러나, 남쪽 경계를 이루는 지역들인 애굽-에돔-염해는 인본주의(사탄체계인 세상을 의미하는 애굽)-물질주의(육신의 정욕을 의미하는 에돔)-쾌락주의(소돔과 고모라)를 의미하며 가나안 땅 안에조차도 멸절되어야 할 온갖 중독과 사로잡힘의 영적 질병이 만연한 상태임... 이교숭배(우상숭배)-사신숭배(초혼-영매-무당)-기복신앙(몰렉숭배-점쟁이-복술사-주술사)으로 물들어 있는 바, 이제는 주님의 기도 안에서 깨어나서 기도와 금식으로 영적 무장을 강화해야 한다...지금 모든 나라 족속 백성 방언, 곧 열방의 영적 상황이 그러하다.
[[믿는 이의 완전, 온전, 순전의 선순환, 그 시너지에 대한 느낌]]..주 안에 거함(요15:4-17)은 접붙임/붙좇음의 교통 살기..곧 주 이름 불러 앙망하며 먼저 Q, 말씀 청종, 주님 순종-동행함, 주님이 행함으로 보여주신 사랑 같이 (자기를 내어줌에 이르기까지) 서로 형제 사랑함 이룸, 이것이 JC 사랑함이니, 이로써 아버지께 사랑 받고, 주님 사랑 받음 되며, (아버지-아들-성령이 함께 오사) 그분의 형상의 실제 나타내심(요14:21,24-26) 이룸 살아 생동하는, 발휘하는 산 믿음<진리를 믿고 붙들어 하나되고, 이제 주 이름 불러 주께 여쭈어 그 다음 행보를 인도받아 그분 임재 안에서 그대로 따라가기>을 실행함으로 그리스도를 경험함의 선순환 안으로 들어감 -->순전<보혈로 씻김>에서 <주님 알고 사랑함으로 부어주신 사랑 통해 역사하는 믿음으로 사랑하며 반응함의>온전으로, 이제 더 나아가 <무시로 하나님 임재 앞에서 행함의> 완전의 선순환 시너지 이룸. ...CORAM DEO SOLA FIDE, SOLA SCRIPTURA, SOLA Christos, SOLI DEO GLORIA ....완전 = 주님 말씀 전적 순복(청종...몸의 활동 돕게 하신 섬김이 역할 기능, 직분자의 구비 조건과 태도 완비 : 나는 죽고 구주 사심으로 살기..주가 준비하신 바로 그것을, 복음과 그분의 풍성을 그대로 살아내며 공급함)- ---온전 = (친히 내주하사 도우시며 위로-격려-세우시는 HS따라) 고난의 섭리 통해 연단된 JC 인격 그대로 닮는 성화--- ---순전 = 날마다 회개/보혈에 씻긴, 자기 십자가 감당하며 주와 동행 이룸의 필수 요건
***인간의 연약함 = 영적 무지무각 + 미혹/오도됨 --> 인간의 절대무력함으로 인해 그 연약함의 당연한 귀결은 영적 사망(하나님으로부터 전존재적 단절...사탄의 손쉬운 먹이감으로 전락...하나님을 비웃고 조롱하는 수단으로 전락함) -->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화해를 위해 하나님이 인정-지명하여 세운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우신 성품을 그대로 반영하면서(즉, 중보의 제사장은 하나님의 임재-현존 동시에 죄를 속하기에 합당한 희생과 예물을 하나님께 드려 중재하는 제사장이 필요함..
***우리 주 하나님, 말씀속에 계시며 말씀하시며 구원의 말씀을 부탁하신 아버지, 모든 인생과 피조세계의 창조주-주권자-통치자-모든 공급근원, 유일무이한 절대 필요충분-모든 풍성부요충만과 참 능력근원<절체절명에서조차> 그 자체이신 아버지여 ...사모하며 앙망하오니, 더이상 제 마음으로 주님을 제한함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소서 ((무한하신, 본래 제한 받지 않는 분이지만 우리의 무지함과 주관적 제한 안예서 제한 받으시는, 기꺼이 갈망하여 기다리면서 마음 문 열어 달라 노크하고 계시는, gentle하신 분이심)) 참되게 기도하신 그리스도의 <기도의 영>을, <고난 통해 순종함 배우시고 온전케 되신 순종의 영을> 부어주소서... <하나님 경외함>이루신 그리스도의 <일향 미쁘신, 일편단심, 경건의 영을> 부어 주소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말씀하시는 주 임재 앞에서 <완전한 경외함을 끝까지 견지하심으로> 경건함의 모본 보이신 JC 주님이시여,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아버지께 드리신 바 열정적인, 전존재 쏟아붓는 통곡과 눈물, 부르짖는 간구와 소원 기도(결코 포기함 없이 구하고 찾고 두드림의 열정 공급하사)의 영, 바로 그 영을 오늘이라는 (각자에게 허락하신) 시간동안 주님 얼굴 구하며 주 이름 부르는 나와 모든 형제자매 성도들에게 부어주사 참되게 회복시켜 주소서, 하여, 그 안에 머무름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뜻 온전히 이루게 하여 주소서. 주 이름 부르는 모든 성도마다에게, 고난통해 순종함 배우셔서 온전케 되시고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며, 얻고, [단체적 그리스도] 그 가운데에서 발견되도록 도우소서. 오 주여, [진정한 참된 영광, 그리스도 빼어닮음, 그리스도의 형상 온전히 이룸, 이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리스도께 자원하여 구하는> 성도 각자의 몸에 채우게 하소서].
**[[누가 하나님괴 같으랴!! ..하나님은 믿는, 절대긍정-절대신뢰-절대기쁨으로 하나됨을 사는 내게 절대 만족-절대진리-절대진복이요 영생이심 ]] ^^피상적인 허망한 색성향미촉의 오감 중독/상대적 일시적 만족감을 초월한 근원적 절대만족(무한 풍성-부요-충만-능력) * 열납하시며 열어주사 누리게 하시는 바 절대기쁨/절대긍정/절대신뢰의 유일무이한 초월적 근원적 진리 샘(길-진리-생명) * 지고지선의 진복=요동없는 초월적 절대 평강의 하나됨/거함/누림/의지-빼어닮음/행복
고린도전서(서론) 고린도는 아가야라고 불려지는 지역에 있는 그리스의 주요한 도시이다. 그것은 펠로포네소스 지방과 그리스의 다른 지방을 연결하는 지협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인접한 두 항구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고린도만 하단에 있는 레키움(레기움)이며 고린도와 가까이 있고 그 곳에서 이탈리아와 서방으로 무역을 하였다. 다른 하나는 조금 떨어진 켄크리아(겐그레아)라 불려지는 곳으로 시누스 사로니쿠스 하단에 있고, 아세아로 무역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고린도가 무역과 부의 장소임은 당연하다. 그리고 부는 모든 종류의 사치를 조성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와 예술로 유명한 장소가 악으로 유명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 고린도는 특별히 음란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고린도 여자”는 매춘부라는 별명이 붙었고 “고린도 사람과 즐긴다”(!)라는 말은 매춘부와 즐긴다, 음욕을 채운다는 의미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음란한 도시에 바울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고 자라게 하였다. 사도행전 28장(1-18절)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그리고 고린도전서 12장 2절의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대로 끌려 갔느니라”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 주로 이방인들 사이에 고린도 교회를 세웠다고 볼 수 있다. 사도행전 18장 8절의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의 말씀과 같이 고린도 교인 중에는 개종한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사도행전 18장 11절과 18절의 말씀에서 분명한 것처럼 바울은 이 도시에서 거의 2년 동안 머물렀고 사도행전 18장 9, 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는 말씀으로 바울을 확신시키시며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으로 격려를 받아 큰 성공을 거두며 사역을 하였다. 바울은 그의 사역이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한 곳에 오래 머물지도 않았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떠난 얼마 후에 (3차전도여행중 에베소에 머물러 있던 시기에)이 서신을 그들에게 보냈다. 목적은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떠나 거기에 있지 못한 그 동안에 거짓 교사들이 일으킨 선하지 못한 영향력과 고린도 교인들이 믿기전에 받았던 (아직은 미처 기독교 진리로 철저하게 정화되어 사랑으로 역사하는 굳센 믿음, 소망의 인내안에 머물러 성령따라 동행하며 자라가고 있지는 못한 상태였다) 옛 교훈과 관습의 누룩으로 생기게 된 교회내 혼란을 바로잡고 그가 심은 것에 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바울이 그들을 책망한 몇 가지 잘못을 본다면 그들의 부요가 그들의 행동을 얼마나 타락시켰는가를 볼 수가 있다. 교만한 탐욕과 사치와 정욕(육적이고 타락한 마음의 자연적 소산임)이 외부적인 풍부에 의하여 조장되었다. 그들의 교만은 당파나 분당에서 나타나고 심한 혼란은 그들의 영적 은사를 사용하는 일에서 일으키고 있다. 이 악은 그들의 부함으로만 생긴 것이 아니고 희랍의 학문과 철학의 통찰력에서 생기기도 했다. (고린도시는 수사학자와 철학자가 많다고 옛날의 학자들은 말한다.) 이들은 허망하고 자만으로 가득차 있고 복음의 단순한 교리를 경멸하기 쉬운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복음은 질문하고 논쟁하는 성질의 호기심을 채워 주지도 않았고 재치있는 연설과 유수같은 말로써 귀를 즐겁게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탐욕은 이방인의 재판장 앞에서 내 것 네 것에 대한 소송 사건을 일으키는 데 분명히 나타난다. 그들의 사치는 여러 일에 나타났는데 부자들은 교만하고 가난한 자들을 경멸하였다. 그들의 정욕은 가장 심하였는데 이방인들 사이에도 말할 수 없는 가증스러운 일들이었다. 한 남자가 자기의 아내로 만들거나 간음하기 위하여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이 일은 특별한 어떤 [교회내 지위가 높은]사람의 비행인 것 같다. 그러나 전 교회가 그런 그의 죄를 혐오하지도 않았고 용인했기 때문에 교회 전체가 책망을 받았다. 옛 학자들이 언급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이 사람들의 높은 학문과 웅변을 자랑하였으므로 그들의 죄는 더욱 컸다. 여러 절에서 보면 엄한 경고와 음란에 대한 책망을 듣지 않아도 될 만큼 이전의 호색적인 경향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6:9-20). 그들의 학문적인 교만이 부활의 교리를 불신하고 논박하도록 많은 사람들을 미혹시켰다. 그들은 부활 문제를 철학에서 행하듯이 따지고 찬반을 위해서 모든 기술을 동원했던 것같이 보인다. 이런 상태로 보아서 이 교회는 책망을 많이 받을 만하고 시정이 필요했다. 바울은 성령의 지도와 영향으로 모든 지혜와 성실로써 그리고 그 교회에서 그처럼 높고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답게 온유와 권위를 적당히 가지고 일에 착수한다. 서신 서두에서 간단한 소개를 한 후에 바울은 먼저 그들의 분열과 분당을 책망하고 그것의 원인을 규명하고 거짓 교사들이 나타내는 교만과 허영과 학문의 자랑과 웅변이 얼마나 많이 나쁜 분열을 조장시키는가를 보여 준다. 그리고 겸손과 신령한 교훈에 순종함과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가르침이 외부적인 계시나 내부적인 깨달음을 통하여서 그들 가운데 있는 많은 악의 치료제임을 가르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뽐내는 학문과 웅변의 허영을 보여 주고 있다. 제4장까지 이 문제를 다룬다. 제5장에서 음행한 사람의 경우를 취급하고 그들 중에서 추방하도록 지시한다. (옛 학자들의 말과 같이 이 음행한 사람은 크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고 적어도 어느 당수임에 가깝다.) 사도는 그들이 그자 때문에 교만하여짐을 책망한다(5:2). 제6장에서 이방인 재판관들 앞에서 행하는 소송 사건을 책망한다. 왜냐하면 재산에 대한 분규는 그들 사이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만 했었다. 이 장 끝 부분에서 음란 죄에 대하여 경고하고 여러 가지 말로 권면한다. 제7장에서 양심의 문제를 취급한다. 이것은 그들 중의 누가 결혼에 대하여 편지로 물었던 것이며 결혼은 음란에 대한 치료제로써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며 남편이나 아내가 이방인으로 계속해 있고 그 하나가 기독교인이 되어도 결혼의 줄은 끊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간단히 말하면 기독교는 인간이 시민으로서의 상태와 관계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또한, 아마 고린도 사람이 질문하였을 법한데, 처녀로 시집가지 않는 일에 대해서도 더불어 지도한다. 제8장에서는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에 대하여 지도하고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남용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 제9장에서 자유에 대한 바울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자기가 사역하던 교회로부터 부양을 받아도 좋았지만 이 요구를 포기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었다.” 다른 일들에 있어서도 그가 함께 노력하는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들의 형편에 조화를 시키었다. 제10장에서는 그들이 주의 상과 귀신의 상을 동시에 참예하지 못하므로 제물을 먹음으로 우상 숭배자들과 교제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였다. 물론 고린도 사람들이 시장에서 팔리는 고기나 불신자의 연회석에서 주어지는 고기에 대하여 물어보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제11장에서 그들의 공중 예배에 대하여 지도한다. 그리고 주의 성찬을 받을 때에 불규칙적인 일과 혼란을 책망하고 그렇게나 거룩한 제도의 남용을 엄하게 경고한다. 제12장에서 영적 은사를 생각하는데 이 은사들은 고린도 교회에 풍족히 임하였고 이것을 자랑하였다. 이 장에서 바울은 모든 은사가 같은 근원에서 나왔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은사들은 한 성령에서 나왔으며 교회의 유익을 위함, 이 목표를 위하지 않을 때에 남용되었다. 이 장의 끝부분에 이르면 이들의 은사가 참으로 가치가 있으나 이보다 훨씬 더 좋은 은사를 추천하는데, 이는 제13장에서 사랑의 권면으로 나타난다. 제14장에서 영적 은사를 사용함에 있어서 질서와 품위를 지키도록 지도한다. 그들은 은사를 자랑하고 그것을 나타내는 허영심 때문에 아주 혼란하였던 것 같다. 제15장은 위대한 부활 교리의 설명과 확신으로 차 있고 마지막 장은 특별한 충고와 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리하여 이 서신이 끝을 맺게 된다. =========== 1. 고린도전서 표제 매우 초기로부터 이 편지서는 “고린도인들에게 Ⅰ”(헬, Pros Korinthious A)라는 표제를 갖고 있었다. 이 짤막한 표제는 이 편지서의 현존하는 최고의 사본인 체스터 베티 성경 파피루스에서 이미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이 파피루스는 3세기 경에 기록된 것이다. 바울이 기록한 원문에는 이 표제가 포함되지 않았다. 2. 저자 바울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안했는지를 의심하기까지 멀리 빗나간 초극단주의적인 비평가들을 제외하고는 이 편지서의 저자가 바울이라는 사실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고린도후서, 로마서, 갈라디아서와 함께 이 편지서는 사실에 있어서 바울의 모든 편지들 가운데 그 저자가 가장 뚜렷하게 밝혀진 것으로 믿어진다. 저자의 이름이 이 편지서의 처음과 끝에 나타나 있다(고전 1:1, 2; 16:21). 바울이 “친필로”(고전 16:21) 문안한다고 기록한 끝부분의 인사말을 제외하고 이 편지서는 한 사람의 필생(畢生), 또는 서기가 바울의 말을 받아서 기록하였다. 바울이 서기들을 사용한 데 대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관례적인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롬 16:22; 골 4:18; 살후 3:17). 그 이유로서 한가지 추측되는 것은 그 사도가 시력이 나빴기 때문일 것이다(갈 6:11). 3. 역사적 배경 고린도전서는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고전 16:8). 이 도시는 바울이 “3년이나”(행 20:31) 머무르며 일하던 곳이요, 그의 제3차 선교 여행 동안에 활동의 중심지였던 곳이다(행 19장; 20:1). 이 편지서가 다 기록될 무렵 바울은 이제 막 헬라와 마게도냐를 향하여 출발하려 하였으나,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물기를 희망했다(고전 16:5-8). 그러나 사태는 변하여 바울의 출발을 재촉하게 되었다(행 19:21-20:3).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때, 이 편지서의 기록 연대가 A.D. 57년 봄일 것으로 짐작된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제2차 선교 여행 동안에 세워졌다. 사도는 그곳에서 적어도 18개월을 유하면서 일하였다. 그곳에서의 활동은 퍽 어려웠으나 성공적이었으며 하나의 힘있는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행 18:1-11). 고대 도시 고린도는 펠로폰네수스와 헬라 본토를 연결하는 지협(地峽)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린도는 그 지협의 남단에 그리고 아크로-코린투스라고 알려진 산의 북쪽 기슭에 있는 나즈막한 고원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크로-코린투스 산의 꼭대기에는 성루와 신전이 서 있었다. 그 도시는 펠로폰네수스와 앗티카를 잇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따라서 전략적으로 요충의 위치에 있었다. 또한 동쪽에는 사로스만 서쪽에는 고린도만을 끼고 있는 위치상의 잇점 때문에 고린도는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거래되는 많은 상품들의 시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다수의 페니키아인들이 그 도시에 거주하면서, 인근 바다에서 나는 조개류로부터 자주 물감을 만들어 장사를 하였다. 그들은 또한 다른 기술들도 고린도에 도입함과 아울러 페니키아의 신들을 섬기는 불순한 예배 의식을 도입하였다. 상업의 중심 도시요 바다들을 잇는 길목에 위치한 고린도는 도덕적으로 방탕이 극심하여 마침내 그 도시 이름은 음란의 대명사가 되기까지 하였다. “고린도화하다”(to Corint-hianize)는 표현은 쾌락적이고 사치성이 있는 방탕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들은 고린도에서 사는 것처럼 산다”와 같은 격언은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고린도의 종교적 형편을 이해하는 것은 그 악명 높은 도시에서 악의 세력을 극복하는 일과 성도들을 거듭나게 하여 교회를 굳게 세우는 일에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밝히 깨닫는 데 도움을 준다. 그 도시의 부요와 사치와 상업과 잡다한 인구 등으로 인하여 고린도는 반즈(Barnes)가 칭한 바 있는 “고대의 빠리”(The Paris of antiquity)라는 칭호가 썩 합당한 도시였다. 그곳의 주된 신은 가장 저열한 형식과 방탕한 열정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였다. 이 종교는 관능적인 호색을 신성시하는 것으로서, 그 결과가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능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아폴로의 신전이 아크로-코린투스 산의 북쪽 언덕에 세워져 있었다. 당시의 법적 요구에 의하여 그 사랑의 여신 앞에는 천명의 젊은 여성들이 고급 매춘부 또는 공적인 매춘부로서 그 직무를 이행하고 있었다. 이들을 찾는 손님들은 주로 외국인들이었으며 그들의 악행의 결과로 그 도시는 지속적인 수입을 얻고 있었다. 고대 도시 고린도에서 복음의 사자가 당면했던 과업은 다음과 같은 말 가운데 잘 묘사되어 있다. “복음이 고린도에서 개선할 수 있었다면 그 복음은 어떠한 여건 하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W. D. Chamberlain). 약 3년 전에 그곳에 교회를 세운 후 바울이 거기에 없는 동안, 여러가지 문제들이 야기되었으며 이 문제들은 사도의 주의를 이끌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 편지서 자체에서 알 수 있다. 우선 그 문제들 중의 하나는 당파들이 조직되어 교회를 분열시킨 것이다. 아볼로는 그의 웅변과 학식으로 말미암아 많은 교인들에 의하여 바울보다 더 높이 받들림을 받았다(고전 1:12; 3:4; 행 18:24-19:1 참조). 다른 이들은 또한 바울도 아볼로도 아닌 베드로, 곧 예수님의 직접적인 사도의 추종자임을 뽐내고 있었다(고전 1:12). 또 다른 이들은 어떠한 인간적 지도자에게 속하는 것을 거절하고 바로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무리라고 공언했다(고전 1:12). 그 밖의 다른 문제들로서는 일단 교회에 들어와서 신자가 되었다가 다시 옛날의 악습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문제(고전 5장), 교회 내에서 교인들 사이에 벌어진 문제들을 세상의 재판정으로 가져가는 이른바 소송에 관한 문제, 성만찬 예식을 잔치의 기회로 삼는 문제(고전 11:17-34), 그리고 결혼 생활과 그에 관계된 사회적 문제들(고전 7장),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던 음식물을 먹는 문제(고전 8장), 공중 예배에 있어서의 여인들의 합당한 행동(고전 11:2-16) 등등이었다. 또한 고린도 교회 내에서 영적 은사들의 적절한 기능에 관한 오해가 있었으며(고전 12-14장) 또 어떤 이들은 부활의 사실과 방법에 관하여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고전 15장).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에 분쟁이 생겼을 때 그곳을 떠나 온 아볼로에게서 고린도 교회의 상태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아볼로는 에베소에서 바울과 함께 있었다. 바울은 그가 고린도로 돌아갈 것을 강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전 1:12). 다른 소식은 “글로에의 집 편으로”(고전 1:11) 들었으며, 또한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고전 16:17)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에 의하여 들었을 것이다. 고린도 교회의 형편은 바울의 심한 염려거리가 되었으며, 그는 이미 한통의 편지를 그 교회에 보낸 적이 있었다(고전 5:9). 그리고 그가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에 고린도를 짧게나마 일차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후 13:1 참고). 그는 또한 디모데(고전 4:17; 16:10)와 디도(고후 2:13)를 고린도에 보냈었다. 이 모든 일에 다시 덧붙여서 바울은 여기 “고린도 전서”로 알려진 편지를 그곳에 보내면서 그 안에서 야기되었던 여러가지 문제들을 다루었던 것이다. 4. 주제 이 편지서의 주요 골자는 두 가지로서, 첫째는 복음의 가르침을 부패시킨 행습을 교회 내에 도입하게 한 타락한 교인들을 꾸짖는 것이요, 둘째는 신자들이 명백히 알기를 원한 몇가지 신앙과 실제의 문제들에 관하여 가르치고 설명하는 것이다. 바울은 죄에 대한 방종을 간과하거나 두둔하지 않았다. 그는 죄를 정죄함에 있어서 공평무사하였으며, 범죄를 어떤 방법으로든지 조장하거나 덮어주는 일이 없었다. 그는 옳은 길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단호하고도 가혹할 정도로 단죄하였다. 교회 내의 무질서를 지적하고 점차로 확대되어 가는 불법들을 질타하는 일과 함께 이 편지서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참된 동역자의 심중에서 언제나 우러나는 동정적인 긍휼과 알뜰한 자비, 곧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고 방황하는 자를 불러들이며 상처입은 영혼을 감싸주는 한결같은 사랑이 나타나 있다. 바울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정복하는 능력은 강제나 완력이 아니라 사랑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고린도 교회의 영적인 수술로 인한 아픔을 부드러운 사랑의 향유로써 진정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제13장에 기록된 바 그리스도인 사랑을 묘사한 탁월한 걸작품 가운데 특별히 잘 나타나 있다. 교훈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 편지서는 결혼 관계,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던 음식물의 사용, 교회 예배시의 행동, 성만찬, 영적 은사들의 적절한 행동 등과 같은 여러가지 실제적인 문제들을 취급하고 있다. 이 책은 바울의 모든 편지들 가운데서 “가장 풍부하고 가장 교훈적이며 가장 힘있는” 편지로 일컬어져 왔다. 5. 개요 Ⅰ. 서론 1:1-9 1. 서두의 인사 1:1-3 (1) 기자와 그의 동료들의 신원 1:1 (2) 편지의 수신처 1:2 (3) 서두의 축복 1:3 2. 영적 성장에 대한 칭찬 1:4-9 Ⅱ. 무질서에 대한 책망 1:10-6:20 1. 교회 내의 분파 1:10-4:21 (1) 분파 정신을 책망함 1:10-13 (2) 그의 봉사와 복음에 대한 바울의 변호 1:14-2:16 (3) 당파 정신의 부조화 3:1-23 (4)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합당한 태도 4:1-21 2. 근친 상간의 경우 5:1-13 3. 세상 법정에서의 소송을 비난함 6:1-20 Ⅲ. 고린도 신자들에 의해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대답 7:1-11:1 1. 결혼에 관한 교훈 7:1-40 (1) 부부간의 권리에 대한 상호 존중 7:1-6 (2) 특수 상황 하에서 독신이 권장됨 7:7-11 (3) 불신자와의 결혼 문제 7:12-16 (4)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이 사회적인 지위를 바꾸지 않음 7:17-24 (5) 처녀에 대한 교훈 7:25-40 2. 우상에게 드려진 음식에 관한 교훈 8:1-11:1 (1) 연약한 형제를 위해 삼갈 것을 권함 8:1-13 (2) 그리스도인 자유의 사용에 대한 설명 9:1-27 (3)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 10:1-22 (4) 그리스도인 자유의 정당한 사용 10:23-11:1 Ⅳ. 기독교 예배에서의 합당한 행동 11:2-14:40 1. 여인들과 얼굴 가리움 11:2-16 2. 성만찬 예식의 합당한 준수 11:17-34 3. 영적 은사들의 위치와 기능 12:1-14:40 (1) 은사들의 근원과 다양성 12:1-31 (2) 제일 큰 은사인 사랑 13:1-13 (3) 방언과 예언의 은사에 대한 논의 14:1-40 Ⅴ. 부활의 교리 15:1-58 1. 부활의 확실성 15:1-34 2. 부활의 실제적 성질 15:35-50 3. 부활의 소망이 재림시에 실현됨 15:51-58 Ⅵ. 결론 16:1-24 1. 가난한 자들을 위한 연보에 대한 교훈 16:1-4 2. 고린도 방문 계획을 밝힘 16:5-9 3. 디모데를 받아들일 것을 요청함 16:10, 11 4. 에베소에 머물기로 한 아볼로의 결정 16:12 5. 마지막 권고 16:13-18 6. 마지막 인사 16:19-24 =========[149주달려죽은십자가] [315.내주되신주를 참사랑하고] [304그크신하나님의사랑] [310아하나님의은혜로] 1 Corinthians 1 Amplified Bible ==Appeal to Unity 1 Paul, called as an apostle (special messenger, personally chosen representative) of Jesus Christ by the will of God, and our brother [a]Sosthenes, 2 To the church of God in Corinth, to those sanctified (set apart, made holy) in Christ Jesus, who are selected and called as saints (God’s people), together with all those who in every place call on and honor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their Lord and ours: 3 Grace to you and peace [inner calm and spiritual well-being]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4 I thank my God always for you because of the grace of God which was given you in Christ Jesus, 5 so that in everything you were [exceedingly] enriched in Him, in all speech [empowered by the spiritual gifts] and in all knowledge [with insight into the faith]. 6 In this way our testimony about Christ was confirmed and established in you, 7 so that you are not lacking in any spiritual gift [which comes from the Holy Spirit], as you eagerly wait [with confident trust] for the revelation of our Lord Jesus Christ [when He returns]. 8 And He will also confirm you to the end [keeping you strong and free of any accusation, so that you will be] blameless and beyond reproach in the day [of the return] of our Lord Jesus Christ. 9 God is faithful [He is reliable, trustworthy and ever true to His promise—He can be depended on], and through Him you were called into fellowship with His Son, Jesus Christ our Lord. 10 But I urge you, believers, by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that all of you be in full agreement in what you say, and that there be no divisions or factions among you, but that you be perfectly united in your way of thinking and in your judgment [about matters of the faith]. 11 For I have been informed about you, my brothers and sisters, by those of Chloe’s household, that there are quarrels and factions among you. 12 Now I mean this, that each one of you says, “I am [a disciple] of Paul,” or “I am [a disciple] of Apollos,” or “I am [a disciple] of Cephas (Peter),” or “I am [a disciple] of Christ.” 13 Has Christ been divided [into different parts]? Was Paul crucified for you? Or were you baptized into the name of Paul? [Certainly not!] 14 I thank God that I did not baptize any of you except Crispus and Gaius, 15 so that no one would say that you were baptized into my name. 16 Now I also baptized the household of Stephanas; beyond that, I do not know if I baptized anyone else. 17 For Christ did not send me [as an apostle] to baptize, but [commissioned and empowered me] to preach the good news [of salvation]—not with clever and eloquent speech [as an orator], so that the cross of Christ would not be [b]made ineffective [deprived of its saving power]. ==The Wisdom of God 18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absurd and illogical] to those who are perishing and spiritually dead [because they reject it],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by God’s grace] it is [the manifestation of] the power of God. 19 For it is written and forever remains written, “I will destroy the wisdom of the wise [the philosophy of the philosophers], And the cleverness of the clever [who do not know Me] I will nullify.” 20 Where is the wise man (philosopher)? Where is the scribe (scholar)? Where is the debater (logician, orator) of this age? Has God not exposed the foolishness of this world’s wisdom? 21 For since the world through all its [earthly] wisdom failed to recognize God, God in His wisdom was well-pleased through the [c]foolishness of the message preached [regarding salvation] to save those who believe [in Christ and welcome Him as Savior]. 22 For Jews demand signs (attesting miracles), and Greeks pursue [worldly] wisdom and philosophy, 23 but we preach Christ crucified, [a message which is] to Jews a stumbling block [that provokes their opposition], and to Gentiles foolishness [just utter nonsense], 24 but to those who are the called, both Jews and Greeks (Gentiles), Christ is the power of God and the wisdom of God. 25 [This is] because the foolishness of God [is not foolishness at all and] is wiser than men [far beyond human comprehension], and the weakness of God is stronger than men [far beyond the limits of human effort]. 26 Just look at your own calling, believers; not many [of you were considered] wise according to human standards, not many powerful or influential, not many of high and noble birth. 27 But God has selected [for His purpose] the foolish things of the world to shame the wise [revealing their ignorance], and God has selected [for His purpose] the weak things of the world to shame the things which are strong [revealing their frailty]. 28 God has selected [for His purpose] the insignificant (base) things of the world, and the things that are despised and treated with contempt, [even] the things that are nothing, so that He might reduce to nothing the things that are, 29 so that no one may [be able to] boast in the presence of God. 30 But it is from Him that you are in Christ Jesus, who became to us wisdom from God [revealing His plan of salvation], and righteousness [making us acceptable to God], and sanctification [making us holy and setting us apart for God], and redemption [providing our ransom from the penalty for sin], 31 so then, as it is written [in Scripture], “He who boasts and glories, let him boast and glory in the Lord.” ==Footnotes 1 Corinthians 1:1 This man may have served as secretary to Paul to record his dictation, and may be the synagogue leader mentioned in Acts 18:17. 1 Corinthians 1:17 Paul may be referring to the danger that convincing people to become Christians by the use of clever rhetoric would result in false conversions (cf 2:5). 1 Corinthians 1:21 The straightforward message of salvation seemed foolish to unbelievers. --------- 개역개정]제1장 인사와 감사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고전1:1-3)===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은 제일 먼저 갈라디아교회에 편지를 했고, 두 번째로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했고, 세 번째가 바로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하였습니다. 때는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에 성령의 이끄심으로 유럽으로 방향을 바꿔 마게도냐로 건너갔을 때 빌립보교회를 세우고 그 다음에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웠으나 박해로 인해 남쪽 지역인 아가야로 옮겨서 제주도처럼 섬 지역이었던 곳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 고린도에서 교회가 세워지고 왕성하게 성장을 했습니다. 바울은 3차 선교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집중 선교를 하여 2년 동안 두란노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쳐 큰 성장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 앞으로 고린도를 방문할 계획을 밝히면서 자신의 선교 비전인 로마를 걸쳐 땅 끝인 서바냐(스페인)까지 선교를 할 것과 협력을 당부한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행19:21) [그러나 이 편지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회신이 왔는데 고린도교회가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편지로 문제를 해결도록 여러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내게 두 번째로 되었는데 그 편지가 지금의 고린도 전서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의 내용은 파벌이 있다는 것에 대해 책망하며 도덕적인 혼란에 대해서도 책망하고 있는데 성문제, 소송문제, 방종 문제 등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또 교리적인 문제인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 예배 질서, 은사, 부활 등에 대해 깊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인사말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짚어 주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개인적인 정체성과 공동체적인 정체성, 그리고 지도자적인 정체성을 가르쳐 주므로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을 정리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 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고 했습니다. 2하-3절 그리스도인으로써 개인적인 정체성을 먼저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 그리스도인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인이란 우리 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여기서 “이름”은 “오노마”인데 이는 “오노마조”에서 유래했는데 “그의 권위 앞에 고백하다.” 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구원자로 고백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부르다”는 “에피칼레오”인데 에피(..대해)와 칼레오(부르다 또는 초청하다, 영접하다)의 합성어입니다. 그렇다면 정리하면 “예수님을 그리스도 구원자로 고백하면서 영접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주라는 분명한 고백과 마음에 영접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1:12-13에서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고후5:17에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 영생할 수 있는 새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3절에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잘 성장하도록 신령한 영양소인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것입니다. 2.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라고 했습니다. 2상반절 여기서는 그리스도인으로써 공동체적인 정체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도(聖徒성스러울성,무리도)란 “하기오스”인데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敎會가르칠교,모일회)인데 “에클레시아”입니다. 이는 에크(..로부터)와 칼레오(부르다)의 합성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인 무리 즉 공동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하여 진다는 “하기아조”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통해 죄를 씻어 성결해진 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한 성결 체험이 있어야만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엡1:6-7절에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했고, 또 13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라고 했습니다. 1절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써 지도자적인 정체성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사역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뜻”은 “델레마”인데 “결정하다, 의도하다”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섭리를 통해 지도자를 결정하시고, 의도를 가지고 사용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使徒부릴사,무리도)는 “아포스톨로스”인데 아포(..로부터)와 스텔로(불러모으다)의 합성어입니다. 이를 소명(召命부를소,목숨명)을 받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사역하는 것을 사명(使命부릴사목숨명)이라고 말하는데 사명은 두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오이코노미아”로 “청지기직”을 의미하고, 고전9:17에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했습니다. 또 하나는 “디아코니아”로 “섬김”을 의미하는 것으로, 행20:24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했습니다. 바울은 행9장에서 특별하게 부르셔서 일하게 하셨고, 소스데네는 고린도 유대인 회당장이었습니다. 바울이 1년 6개월 동안 선교하면서 강력하게 교회가 부흥하자 골수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법정에 고발하였으나 뜻을 못 이루자 대신 회당장 소스데네에게 분풀이를 하여 폭행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 후 그는 바울의 동역자가 된 것을 볼 때 이미 회당장으로 있을 때 바울을 선대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당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오묘한 섭리를 통해 부르시고 사역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구주를 분명하게 고백하고 영접하며, 분명한 죄씻음과 거듭남으로 공동체의 일원 되고, 예수님을 위해 섬김과 청지기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 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 NASB]제1장 1. Paul, called [as] an apostle of Jesus Christ by the will of God, and Sosthenes our brother, 2. to the church of God which is at Corinth, to those who have been sanctified in Christ Jesus, saints by calling, with all who in every place call upon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their [Lord] and ours: 3. Grace to you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4. I thank my God always concerning you, for the grace of God which was given you in Christ Jesus, 5. that in everything you were enriched in Him, in all speech and all knowledge, 6. even as the testimony concerning Christ was confirmed in you, 7. so that you are not lacking in any gift, awaiting eagerly the revelation of our Lord Jesus Christ, 8. who shall also confirm you to the end, blameless in the day of our Lord Jesus Christ. 9. God is faithful, through whom you were called into fellowship with His Son, Jesus Christ our Lord. =====
서문과 소개(고전 1:1-9) 전체 서신에 대한 사도의 서문을 살펴 보자. Ⅰ. 편지의 기명(inscription). 그 때의 편지를 쓰는 관습에 의하면 편지를 쓴 사람과 편지를 받는 사람의 이름이 기입되었다. 1. 이 서신은 그가 손수 세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이방인들의 사도인 바울의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그의 사도직을 문제시한 사람들도 있었고(9:1, 2), 그의 인격 과 사역을 비방한 지들도 있었다(고후 10:10). 가장 성실하고 유용한 목사도 이런 경멸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사도의 자격을 요구하면서 편지를 시작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 그는 이 명예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그것에 대한 신령한 사명을 가졌었다. 거짓 교사들이 바울을 비방하고 경솔하고 미혹된 추종자들이 거짓교사들과 바울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이 때에 바울의 자격을 주장하고 자기의 직책을 강조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그의 사도적인 자격과 권위를 주장한 것은 바울 안에 있는 교만이 아니고 그의 사명에 대한 성실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더 분명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지위가 낮은 사역자인 소스데네를 언급한다. 바울의 형제로 칭한 소스데네는 동료적인 사도가 아니라 동료적인 사역자이며 한때 유대인 회당의 지도자였으나 그 후에 기독교로 개종했고 아마 고린도에서 탄생한 사람이며 그리고 고린도 사람들에게 친근한 소스데네를 함께 말함은 고린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함이었다. 소스데네가 사도적인 영감을 받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전 서신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만 말하고 있다. ((바울이 고린도에 체재할 당시 그 곳 회당장. 아마도 그리스보의 개종 후에 그리스보의 후임이 되었던 듯함(행 18:8). 갈리오총독이 바울의 기독교 설교에 대해 분개하여 제기한, 성난 유대인들의 고소를 기각하였을 때(행 18:12-행 18:16), 그 중들은 소스데네를 붙잡아 재판 자리 앞에서 때렸었는데, 바로 이사람으로 보임.)) 바울은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그의 사도적 권위를 약화시키지는 않았으나 자기가 사역하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친절하고도 겸손한 일을 할 준비는 항상되어 있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처럼 성화되었으므로(참되게 믿는 바로 그순간부터 주께서 그렇게 여겨주시며 신실하게 변화시켜 가신다!!..다만 끝까지 따라가야함을 잊지말라!!) 세례를 받을 때 그에게 헌신되고 그리고 거룩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성화를 고백하는 것이다. 만약 고린도의 믿는 사람들이 진실로 거룩하지 않다면 그것은 (단지, 진정)그들의 잘못이요 수치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그리스도 안에서(!!!..연합한 하나됨으로 그리스도를 살아갈 때 그리스도를 빼어닮게 하심으로) 우리를 성화시키는 것은 기독교의 설계이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4). 고린도에 있는 교회와 함께 바울은 이 서신을 "또 각 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의 주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보낸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적이고 무신론자와 다른 점은 [주 하나님, 참생명 JC 공급받고 누림, 살아냄을 가능케 하는!!] "기도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이며,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이로써 그분의 임재하심안에서 동행한다"는 점에서 유대인과 이교도들과 구별된다. 예수는 그들의 공통의 주님이시요 머리이다. 다음을 관찰하자. 기독교 세계의 모든 곳에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장소에 남은자(remnamt)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고, 주님의 교통하심따라!!]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생각하고 그들과 교제를 나눠야 한다. Ⅱ. 사도적인 축복.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왕의 사도는 평화의 전파자와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 복음은 이 축복을 지닌, 복음 설교자가 충심으로 원하고 기도하는 이 축복이 그가 사역하는 자들의 상태가 되기를 빈다. 은혜와 평화는 하나님의 은총이요, 화해이다. 그것은 실로 모든 축복의 요약이다.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6)는 것은 구약의 축복 형식이었다. 그러나 복음에서 우리가 가지는 잇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하나님의 평화를 어떻게 얻는가를 지도받는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서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도 없고 어떤 유익을 얻을 수도 없다. 2. 무엇이 우리가 이 평화를 누리도록 자격을 부여하나를 듣는다. 즉 은혜이다. 첫째는 은혜요, 그 다음이 평화다. 하나님께서 평화를 죄인들에게 부여하시기 전에 죄인들을 그에게 화해시키신다. Ⅲ. 고린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드리는 바울의 감사. 바울은 그의 서신을 친구를 위한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기도로 시작한다. 아래 사항을 주목하자. 우리의 친구들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은 그들을 위한 기도와 감사로 가장 잘 나타난다. 우리가 받은 은사와 은혜와 위로 때문에 서로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것은 성도의 교제의 마땅한 일이다. 바울은 감사를 드린다. 1. 예수를 믿는 그들의 믿음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4절) 예수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하며 취급하시는 분이다. 믿음으로 예수와 연합되고 그의 성령과 공로에 참여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총의 대상이 된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충심의 선의를 베푸시며 아버지 같은 웃음과 축복을 부여해 주신다. 2. 그들의 영적 은사의 풍요함 때문에 고린도 교회가 유명한 것이었다. 그 어떤 은사에 있어서도 그 어떤 교회보다 뒤지지 않았다(7절). 먼저, 구변과 지식을 자세히 논한다(5절). 하나님께서 이 두 은사를 주실 때 사용할 능력도 주셨다. 지식의 뿌리가 없는 사람들이 꽃 같은 구변은 가지고 있을 수 있으나, 그들의 말은 내용이 없을 수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사용할 구변이 없을 수 있다. 그것은 수건에 싸둔 것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두 은사를 주실 때 그 사람은 잘 사용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고린도 교회가 구변과 지식의 풍족한 은사를 받았을 때 많은 찬양을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이 합당하다. 이 두 은사가 기독교 진리에 대한 증거, 그리스도의 증거가 될 때 더욱 그렇다(6절). 그들은 "성령의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히 2:4)이었다. 이것들로써 하나님은 그들의 사명과 교리를 증거해 주셨다. 그래서 어떤 교회에 더 많은 은사가 주어지면 더 많은 사도들이 전한 진리에 대한 증거, 그들의 사명에 대한 증거가 있게 된다. 고린도 교인들이 진리에 대한 그와 같은 터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기대를 가지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7절).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다. 우리의 신앙은 이 점에 집착되어 있다.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재림을 믿고, 기다리고 그리고 그 재림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기독교 신앙에 우리가 확고히 서면 설수록 더욱 더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믿고 더욱더 열렬하게 재림을 고대한다. Ⅳ.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리스도의 능력과 사랑에 기초한 앞으로 고린도 교인들이 가질 소망에 관하여(8,9절). 그들에게 선한 일을 시작하시고 지금까지 그 일을 계속하신 하나님은 그것을 미완성으로 남겨두시지 않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은 하나님에 의하여 보호되고 끝까지 견고히 지켜진다. 이런 사람들은 "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게 된다." 이것은 엄한 정의의 원리에 의함이 아니고 은혜로운 사면에 의하여, 엄한 율법 안에서가 아니고 풍부하고도 값없는 은혜로 되는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그리스도에 의하여 보호되고 굳게 지켜지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우리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특권을 소망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고! 심판날에 우리가 흠없이 나타나도록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하여 우리들 자신의 타락이나 사탄의 유골에서 해방되어 보존되는 이 일이 어떠한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 소망을 지탱해 주는 이 영광스러운 대망이여!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접근시키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신 이는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신뢰 할 수 있다. 그의 부르심을 듣고 오는 사람들은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에게 진실하다면 그는 결코 성실치 못한 일이 없다. "그는 그의 성실함을 폐하지 아니한다 "(시 89:33). ------------- ===고린도 교회의 분쟁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 분열의 원인(고전 1:10-13) 이제 바울은 그의 주제에 언급한다. Ⅰ. 바울은 그들이 하나가 되고 형제애를 가지도록 권면한다. 그리고 분리를 책망한다. 그들의 불행한 분리상태에서 벗어나 잘 되기를 바라는 어떤 이로부터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분열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을 어떤 이가 전함은 교회에 대한 악의도 아니고 사역자에 대한 반감도 아니고 바울의 중재로 분리된 과열을 식히고저 함이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아주 상냥한 태도로 쓴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을 권하노니" 만약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그 귀하고 가치있는 이름을 생각한다면 하나가 되어라. "다 같은 말을 하고 분열을 피하라(원문대로)." "즉 피차의 사랑에서 멀어진 것을 피하라. 할 수 있는 한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신앙의 큰 일들에 있어서 한 마음을 품고 감정으로 하나가 될 수 없으면 사랑으로 하나가 되라. 큰 일에 있어서 하나가 되면 작 은 일에 대한 분리나 분쟁을 없앨 수 있다." Ⅱ. 바울은 분쟁의 근원을 암시한다. 교만이 밑에 놓여 있었다. 이것이 그들을 갈라놓았다. "교만에서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잠 13:10). 그들은 그들의 사역자에 대항하여 싸웠다. 바울과 아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사역자였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과 기쁨을 도와 주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당을 짓고 고상하고 영적인 선생으로 불렀고, 다른 이들은 아볼로를 아마 가장 열렬한 웅변가로 불렀고, 또 어떤 이들은 게바를 혹은 베드로를 그때의 가장 권위있는 사람으로 불렀다. 왜냐하면 그는 할례받은 사도였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랐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도 타락하기 쉬운 것같이 복음과 그의 제도가 차이와 불화와 분쟁의 도구가 되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잘못이 아니고 인성의 타락과 부패의 증거이다. 교만이 기독교인들을 얼마나 서로 적대하게 만드는가를 명심하라. 그리스도와 그의 종들을 분리시키고 그들을 서로 경쟁하는 자들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Ⅲ. 바울은 그들의 불화와 싸움에 대하여 충고한다. "그리스도가 나뉘었느뇨?" 아니다. 오직 한 분의 그리스도가 계실 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느냐? 혹은 그를 사역자 외에 다른 이로 여기었느냐? 혹은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냐?" 신성한 예배시에 나를 경배하거나 나의 제자가 되었느냐? 그런 권리를 너희에게서 요구하였느냐. 이것은 너의 구속자 하나님의 고유한 권리이다. 사역자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 할 수는 없다.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가져오는 어떤 일도 주장하지 못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요, 희생이요, 우리의 주님이요, 지도자다. 그리스도가 나뉠 수 없는 것같이 그들 사이에 여러 이름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 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 바울이 준 세례(고전 1:14-16) 여기서 바울은 그의 사역을 설명한다. 바울은 몇 사람만 세례 준 것을 하나님에게 감사한다. 고린도에 있는 회당장이었던 그리스보와(행 18:8) 가이오와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만 세례 주고 그 외는 기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어찌 감사의 일이 될 수 있나. 모든 민족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사도의 임무가 아니였던가? 바울은 그의 의무의 태만을 하나님에게 감사하였나? 전연 세례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자기의 제자를 만들고 그들의 머리가 되는 그런 일로 세례를 주지 않았음을 하나님에게 감사한다. 세례 주는 일은 다른 사역자에게 맡기고 바울은 더 유용한 복음 전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이것이 더 중요하며 바울은 이것을 그의 사명이라 생각했다. 세례 주는 일은 조수들에게 맡기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복음 전하는 일을 바울이 했다. 이런 뜻으로 바울은 말한다. "세례를 베풀기 위함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를 보냈다." 다음 사항을 주목하자. 사역자들은 그들의 임무의 어떤 부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그리스도의 영광과 영혼구원에 가장 기여하는 일을 위하여 특별히 보냄을 받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행한 주요한 일은 "복음과(17절) 십자가와(18절)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23절)를" 전하는 것이었다.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군인들로서 십자가의 군기를 세우고 나타내야 한다. 그는 자기의 상상이 아니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즉 십자가에서 못박힌 구속자를 통하여 평화의 기쁜 소식과 하나님과의 화평을 전해야 한다. 십자가에서 못박힌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희망과 기쁨의 원천이다. 그의 죽음에 의하여 우리가 산다. 이것이 바울이 설교한 내용이고 모든 사역자들이 설교한 내용이고 모든 성도가 살아야 할 기초이다. ------------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의 전도 방법과 그 성공(고전 1:17-31) Ⅰ. 바울이 복음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방법.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며 "(17절)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2:4) 웅변의 유창함과 헬라인이 자랑하고 사도를 반대하는 자들이 전하는 철학적인 섬세한 말로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아니하며 진리의 힘이 아닌 예술의 힘으로 성공이 이루워지지 않도록, 십자가에서 못박힌 그리스도의 소박한 교리가 아니고 강한 웅변으로 복음이 전하여져서 십자가의 명예가 감소되지 않도록 바울은 복음을 전했다.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유대의 학문을 배웠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함에 있어서는 가진 바 그의 학문을 버렸다. 그는 소박한 언어로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를 전했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간의 구주이며 구원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의 통치와 율법을 복종해야 함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진리는 기교적인 옷이 필요 없다. 그것은 자체의 빛으로 빛나며 신령한 권위로 세상에 퍼지며 인간의 도움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로 전파된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소박한 전도가 이방인의 웅변과 철학보다 더 능력이 있었다. Ⅱ. 이런 전도의 여러 효과들. 멸망하는 자에게는 그것은 미련한 것이나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18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23,24절). 1.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 거리낌이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넘어갈 수 가 없었다. 그들은 대망하는 메시야가 현세의 위대한 왕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하기에 그렇게 볼 모양이 없고 그렇게나 저주스러운 죽음을 한 사람을 그들의 왕이나 구속자로 고백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를 경멸하고 저주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고 십자가에서 죽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 하였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22절)(마 12:28). 2.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를 비웃고 사도의 말을 경멸하였다. 그들은 지혜를 찾았다. 그들은 지혜와 독서를 한 사람이고 예술과 학문을 연마하고 여러세기 동안 지식과 학문의 근원이 되어왔다. 십자가의 소박한 진리가 그들의 구미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허영을 채우지 못하고 호기심과 변론을 만족 시키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십자가를 경멸하였다.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는 자에 의하여 구원을 받으라고! 저주를 받고 비천하며 천한 생활을 하고 모욕적인 죽음을 당한 사람을 믿으라니 어처구니 없구나! 이것은 인간의 이성과 학문의 교만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교리를 받아들이고 그런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우매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교만과 고집 가운데서 멸망하도록 되어 있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십자가의 교리에 적용되고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신비를 알게 된 사람들임을 명심하자. Ⅲ. 구약의 예언과 같이 인간의 지혜를 이긴 십자가의 승리를 볼 수 있다(사 19:14). "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지혜있는 자가 어디 있으며 선비가 어디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 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19,20절). 이 세상의 가치있는 학문이 그리스도교의 계시와 십자가의 영광스러운 승리에 의하여 부끄럽게 되고 무색케 되었다. 이방인의 정치가와 철학자, 유대인의 랍비와 박사들, 자연의 비밀을 탐구하는 자들, 이들이 모두 난처하게 되었다. 이 진리는 가장 훌륭한 정치가와 철학자와 유대인이나 헬라인 의 현학자들을 초월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할 때 그의 고유한 길을 택하셨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21절). 세상의 뽐내는 학문이 이 세상을 하나님께 접근시키지 못한다. 그들의 지혜에도 불구하고 무지가 넘치고 있으며 불의가 차 있다. 인간은 자기의 지식으로 뽐내나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세상적인 판단으로 보면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 하신다. 1. 전도의 내용이 세상적으로 현명한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우리가 살고 그의 저주를 통해서 우리가 축복을 받고 그의 정죄를 받아 우리가 의롭게 되는 생활이 자만으로 눈이 어둡고 편견과 이성과 철학의 교만으로 차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일이었다. 2.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그들에게는 역시 어리석은 일이었다. 지혜와 웅변으로 유명한 사람이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데 채용되지 않았다. 몇 사람의 어부들이 부름을 받고 이 사명을 위하여 보내졌다. 이들은 세계 만민을 제자로 삼도록 위임을 받았다. 이들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식을 세상에 전파할 그릇이었다. 이들은 첫눈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 같은 장엄함과 숭고함을 찾을 수가 없다. 학문과 지혜로 뽐내는 자들은 전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보고 복음을 경멸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롭다"(25절). 허영의 사람들이 비난하는 신령한 행동의 방법이 그 들의 모든 학문과 지혜보다 더 진실하고 확고하며 성공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다. "형제들아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26절). 기독교의 형편을 주시하라. 학문과 권력과 명예로운 가문의 사람들을 부르지 않았다. 우리의 종교는 외부적으로 볼 때 비천하고 연약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