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2.12.14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24반차.약속믿고 주장함,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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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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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23장 1-11절

주요 요점
다윗이 24반차로 조직하여 봉사하게 한 것처럼 능력을 받으면 자기의 소명과 달란트 등의 모든 영의 조직이 나타난다.

이 시간에는 24반차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4반차란 나눌반(班) 다음차(次) 성전의 일을 24반으로 나누어서 순서대로 일을 하도록 한 제도를 가리킵니다. 반열이라는 말도 있는데 나눌반(班) 차례열(列)로 각 반을 반열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24반차에서 약 세 가지 즉 사명과 질서와 신앙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사명의 원리입니다.
본문 4-5을 보면 “그 중에 이만 사천은 여호와의 전 사무를 보살피는 자요 육천은 유사와 재판관이요 사천은 문지기요 사천은 다윗의 찬송하기 위하여 지은 악기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라” 했습니다. 또 대상24:1 이하에 “아론의 반차가 이러하니라” 고했습니다.
여기에 약 6가지의 직분이 나타납니다. 그 직분은 아론의 후예들인 대제사장들, 여호와의 전을 살피는 레위의 제사장들, 유사, 재판관, 문지기, 찬양대 등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다 레위지파입니다. 그런데 각자의 직분이 따로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에게도 각자의 사명들이 있습니다. 이 사명은 각자 다릅니다. 이 사명을 깨닫는 것처럼 천금보화는 없습니다.
롬12:3-8을 보면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상의 말씀들이 바로 자기 달란트적인 사명을 가리킵니다. 그럼 어떻게 자기의 달란트와 은사를 압니까? 그것을 알려면 이런 24반으로 조직된 종교적인 조직체제가 언제 나타났는가를 알면 됩니다. 다윗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보좌가 영원하리라 하신대로 다윗은 영권의 상징입니다. 즉 우리가 이 영권을 받으면 이러한 달란트와 사명은 뚜렸하게 나타납니다. 영권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편성해 놓으신 몸된 지체가 뚜렸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자신의 영적인 특성을 분석해 보면 대략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영의 성장도에 따라 그 현상이 더 뚜렸이 나타납니다. 혹은 이 사명은 변이된 이상한 형태로도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무엇을 비판합니다. 찬양대를 비판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찬양의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육기관을 비판합니다. 그 사람 역시 교육의 은사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남의 설교에 은혜를 못받는 사람은 신학교에 가야 할 사명자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확히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혹은 영적인 상담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역자가 될 사람은 교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역자라면 신학자인가 목회자인가 선교사인가 부흥사인가 혹은 치유사역자인가 아니면 특수사역자인가 좀 더 세부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평신도들도 마찬기지 입니다. 자세히 알수록 더 좋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영적 레위지파이기 때문에 각자가 자신의 소명과 달란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우리는 24반차에서 질서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이 질서의 요소에는 먼저, 통솔의 질서가 있었습니다. 이 반차를 기록한 말씀을 연구해 보면 각 반차마다 통솔자가 있습니다. 왕도 나오고 대상23:9에 족장도 나오고 특별히 이름을 지명한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들이 통솔자입니다. 교회생활도 이렇게 통솔의 질서 속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또 주의 일을 하는데 언제나 제비를 뽑아서 했습니다. 대상24:5, 7, 31, 25:8, 9, 26:13, 14, 등 여러 곳에서 제비를 뽑음이 나타납니다. 제비를 뽑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다는 표시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면 혼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무질서로 가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구약에서나 신약에 사도 보선 때도 적임자를 사람이 먼저 추천한 후에 기도하고 제비로 뽑았습니다. 이 때 신기한 경험은 신기하게도 꼭 뽑혀야 할 사람들이 뽑힌답니다. 즉 사람이 제비를 뽑지만 결정하시는 분은 여호와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주의 일은 철저한 질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3.우리는 본문에서 신앙의 원리들을 발견합니다.
먼저, 대제사장을 통해서는 믿음을 교훈합니다.
대상24:1-19에 보면 대제사장도 24반으로 조직되어 운영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7월 10일 대속죄일에 온 백성을 위해서 제사하는 일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일년 일차씩 지성소에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제사를 드립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의 예표입니다. 이것은 믿어야 할 요소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지은 죄과에서 용서를 받습니다. 즉 신앙생활이란 예수를 믿는 요소가 첫째입니다.
다음에, 레위제사장들을 통해서는 예배와 회개를 교훈합니다.
대상23:3의 이만 사천은 여호와의 전 사무를 보살피는 자요 했는데 이 이만 사천명이 바로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입니다. 이 들도 24반으로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대상23:28-32의 기록대로 뜰에서 양 잡고 소 잡아 번제드리는 임무, 골방에서 섬기고 대접함으로 봉사하는 임무, 성물을 청소하고 기름발라 정결케 하는 임무, 진설병, 고운가루, 무교전병을 준비하는 임무, 남비에 지지고 반죽하는 임무, 저울과 자를 맡아 봉사하는임무, 새벽과 저녁마다 축사하고 찬송하는 임무, 안식일과 초하루와 각종 절기를 준비하는 임무, 기타의 직무를 맡거나 수종드는 임무 등이 있었습니다. 이 제사장들의 사역을 하나로 요약한다면 속죄의 제사를 집행하고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도 제사장으로서 날마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날마다 주님 앞에서 회개하여 심령을 정결케 하고 날마다 예배해야 합니다. 대제사장의 사역은 일년 일차 였지만 레위의 제사장들의 사역은 일년 365일 계속됩니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구약의 동물제사는 그쳤지만 그 신앙의 요소만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아주신 이유는 예배하고 죄악을 씻는 일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으므로 죄과는 해결되었지만 이제는 죄악의 잔재를 씻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죄가 있는 동안에는 제사장의 사역이 멈출 수 없습니다. 제사장이 매일 같이 일했듯이 우리는 날마다 천국갈 때까지 늘 씻어야 합니다.
다음에, 유사를 통해서는 마음 관리를 보여줍니다.
대상23:4에 유사의 수효가 나오고 대상26:29-를 보면 그들의 임무가 나옵니다. 이들은 모두 6,000명이요, 성전 밖에서 일하되 감독 사무 통치 등을 담당한 사람으로 관리자입니다. 우리의 심령 성전에도 이 유사가 있어야 합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이 유사는 우리의 마음을 관리함입니다. 관리자는 관리물을 잊거나 훼손되거나 방치해선 안됩니다. 이처럼 철저히 마음 관리를 잘하여 생명의 보화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음에, 재판관이 있는데 말씀을 상징합니다.
재판관이 필요한 것은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법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정확히 판단하여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것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영적인 것이고 무엇이 육적인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획을 그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재판관은 누구보다 공부를 많이 해야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드보라가 말씀의 종을 상징하는데 그가 재판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다음에, 찬양대를 통하여는 찬양과 전도의 신앙을 보여줍니다.
대상25:1에 찬양대장들과 악기들이 나오고, 대상23:4-5에서는 찬양하는 자가 4,000이라는 수효가 나옵니다. 대상 25장에는 찬양대도 24반열임을 보여주고, 각 반차에 12명씩 모두 288명을 임명하여 각 파트별로 찬양대를 인도하게 함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막은 찬양소리는 없고 짐승을 제사하는 소리만 났습니다. 그러나 성전에서는 찬양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이 찬양대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예배하고 찬양하고 전도하는 삶임을 보여줍니다. 나팔을 잘 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팔 부는 것이 예배요, 사람에게 나팔 부는 것이 전도입니다.
5.문지기를 통하여는 자기를 단속하는 신앙을 보여줍니다.
대상23:5에 문지기가 4,000이었습니다. 이 문지기도 대상 26장을 보면 24반차였습니다. 그들의 임무는 대하23:19을 보면 아무든지 부정한 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함이었고, 대상26:20-32을 보면 이들은 보물을 지키는 일을 했습니다. 또 느13:22을 보면 안식일에 성문을 지켜 철저히 안식하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마음 문단속을 잘해야 합니다. 즉 마음문에 죄가 못들어오게 지켜야 합니다. 또 받은 바 신령한 은사들을 사단에게서 지켜야 합니다.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이 문지기 신앙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다윗시대에 종교적인 조직이 정비된 것처럼 영권을 받으십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예비하신 조직 안에 우리가 나타나는 놀라운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영적으로 더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자의 사명을 깨닫고 24반차 처럼 질서와 활기 있게 신앙생활하며 주의 일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탄절의 기원에 대한 분별 :http://boazpark.blog.me/100118579005  동방박사이야기 :http://holytime5925.blog.me/150092107537  두 바빌론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laveofjesus&logNo=50078133137&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

 

<<<약속을 믿고 약속을 주장하라>>>

 

 @@@고후1:20-22
 ==(20)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약속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구약(old testament)과 신약(new testament)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 “testament”는 “계약” 혹은 “약속” 또는 “유언”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계약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안에는 구원과 천국의 약속, 보호와 견인(이끄심. 인도하여 성취하심)의 약속,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케 하는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누군가 성경 속에 있는 약속들을 다 새어보았더니 약 32500가지 약속으로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담에서부터 출발하는데.. 창12장에 보면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기던 살던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명령하시고 약속하심을 보는데 구체적인 약속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창12:1-3) 


아브라함이 이 약속을 받고 출발했으나 약속을 잊어버릴 만할 때마다 또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길 3차례나 했습니다. 그 약속은 이삭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고 그 아들 야곱에게도 똑같이 주어졌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대를 이어가면서 계속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시길 기뻐하셨고 우리가 그 약속을 꼭 받아 누리길 원하고 계십니다.
히6:13-15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셨다고 했습니다.
히6:17에 보면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약속을 할 때에 약속을 꼭 지킨다는 맹세로 손가락 걸고 도장 찍고 복사하고 거기다가 코팅까지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약속을 맹세하는 모습이죠. 사람도 약속을 하면 이렇게 지키려고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맹세하면서 까지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시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민23:19에 “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요, 인류의 역사는 말씀성취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정확합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창3:15에 보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다고 하셨는데 과연 남자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셨고, 창22:18에 보면 “네 씨로 말미암아...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메시야가 오셔서 그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다고 했는데 그대로 되었고, 창49:10에서는 유다지파 중에 보내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그대로 유다지파에 오셨고, 다윗의 가문에 보내신다고 하셨는데 과연 다윗의 가문에 오셨으며,  사7:14절에 동정녀의 몸에 잉태되어 오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오셨고,  미5:2절에 베들레헴에 탄생하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고, 사61:1-3절에 그가 기름부음을 받고 마귀에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고, 죄를 사하고, 병을 고치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그런 사역을 하셨고, 슥9:9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그렇게 입성하셨고,  시22편이나 사53장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실 것이라고 예언되었는데 과연 그대로 죽으셨고, 시16:10절에 썩지 않고 부활하실 것이라고 예언 된 그대로 부활하시었습니다.
메시야에 대한 약속 외에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과 약속하실 때 당신의 이름으로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믿고 행하면 됩니다. 약속은 믿는 자가 누리는 것입니다. 약속을 받는 자는 많지만 내 것으로 누리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의심하는 자에게는 아무리 좋은 약속이라도 무용지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실 때에도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기억하셔서 인도하셨고... 계속 약속을 주어 가나안으로 향하게 했지만 그들은 너무 쉽게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렸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약속을 받았으나 약속을 누리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고 했습니다.(히4:1)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구두의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잊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고통스러워 할 때에 하나님이 그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습니다.(출2:24-25)
창세기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리라. 그들이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겠는데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심판할 것이고 그 후에 네 자손들은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창15: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후손들은 종살이 하느라고 약속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사는데 하나님은 그 말씀을 기억하시고 때가 차매 정확하게 모세를 통해 그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십니다.
애굽의 바로 앞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은 “내 백성이다. 내 소유다” 라고 소유권을 주장하시고 애굽에서 이끌어내십니다.
그리고 출19장에 보면 시내산에서 정식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구두 언약을 명문화하십니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를 어떻게 인도했느냐.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서 이곳까지 인도했는데 앞으로도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 
하나님은 약혼한 자와 이제 정식적으로 결혼하듯이 약속을 구체화시킵니다. 십계명, 성막,, 섬길 제사장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모두 조건부 약속입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내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 ”
만일 안 지키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죠. 하나님의 약속은 항상 “그리하면”이라는 단어가 따라옵니다.
신28장에도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얼마나 많은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는데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은 실로 엄청납니다. 가는 곳마다 복이 임하고 자식들과 우양의 새끼들, 떡반죽 그릇까지 복을 받습니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씀에 불순종하면 불순종한 나 때문에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이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신28:15) 하나님과 나는 약속의 관계인데.. 그 약속을 지키면 내가 복을 받고 내가 축복의 통로가 되지만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나도 망하고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의 문이 닫혀버립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약속은 지켜질 때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언약을 어기시거나 깨시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언약을 깨는 것입니다. 약속의 하나님께서 약속을 깨뜨린 경우는 사람들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민14장에 보면 그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고 통곡을 했습니다. 이때 주님은 그들을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약속은 믿지 않을 때 저절로 파기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약속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하는데, 그것은 믿음과 순종입니다. 믿음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약속은 저절로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이행의 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은 믿는 자들이 누리도록 이미 성취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때 그것은 이미 이룬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수1:3에 보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다고 하십니다. 이미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허락과 결재는 떨어졌으니 우리는 올라가서 믿음으로 취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편에서는 모두 이루셨는데 내편에서 불순종하면 안 이루어집니다.
약속은 지식으로 알아도 내 것이라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약속을 믿고 약속을 주장하십시오. 약속의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인줄 믿어지면 약속을 들고 나가 하나님께 청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청구하십시오. 청구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니까 때가 되면 주시겠지 생각하고 기도하라고 했는데 기도도 안하고.... 순종하라고 했는데 순종하지도 않고 전혀 움직이지 않으면서 믿습니다만 연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짜로 믿는 것은 행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약속을 받았습니다.

반응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믿느냐 마느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지금도 순종하는 자에게는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실행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약속을 아는 전문가로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내 것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모든 말씀이 다 우리를 위한 약속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약속을 믿고 약속의 이루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감람산에 500여명이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눅 24:49에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
그러나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한 사람은 120명뿐이었습니다.

500명 중에 380명은 어디로 갔습니까? 주님의 약속을 내 것으로 갖지 못하고 자기들의 일에 매여 다 각처로 간 것입니다. 그러나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던 120명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을 하면 반드시 복이 옵니다. 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내가 안 지켰기 때문에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삽니다.

듣고 아는데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들은 바 말씀이 그러한가 상고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사십시다.
주님께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하셨으니 주님께 부르짖어 보십시다.
두려워하지 말고 근심 걱정을 내게 맡기라고 하셨으니 문제를 주님께 맡겨보십시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했었으니 마음으로 사랑하기 어려워도 사랑할 능력을 달라고 몸부림 쳐 보십시다.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도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으니 감사해 보십시다.


주님의 말씀은 살았고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합니다.
우리는 허망한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는 변해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며... 그 순종의 결과로 주어지는 말씀의 성취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완벽한 약속이 있습니다. 약속의 내용은 다 내 것입니다.
내가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요1:12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권리를 행사하십시오. 기도를 통해 청구하십시오.
약속어음을 가지고 있는 자가 약속된 날에 은행에다 청구하면 청구한 사람에게 돈이 지불이 됩니다. 줄까 안줄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거래에는 부도가 날 수 있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은 부도가 없습니다.  요14:13-14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약속을 누릴 자격자가 되십시오.

약속을 누릴 자격자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인치심을 입은 자라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받을만한 자에게 지켜지는 것입니다. 거룩한 약속을 누리려면 내가 거룩해져야 하고.. 의의 약속을 누리려면 내가 의로워야 합니다. 무자격자가 생떼를 쓴다고 응답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주님 보시기에 내가 자격미달자라면... 믿음의 분량이 작다면 우리를 약속을 받아 누릴 자격자로 만들어야 가야 합니다.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알고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라고 하는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또한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주님은 인정하지 않는데 나 혼자서 말로만 믿는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예가 되니 때문에 우리는 그 약속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아멘 아멘.. 네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고백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우리를 위해 얼마든지 주고 싶어 하시는 마음입니다.
롬8:32을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가장 소중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전부를 주신 것과 같은데..  다른 것은 무엇을 안 주시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발 순종해라.. 순종하면 마음껏 ,, 공의롭게 축복하고자 하리라.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우리와 약속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와 수준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분과 나를 비교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에게 약속하신 것은 믿는 자에게는 절대적으로 역사하시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어떤 사람하고 약속을 했는데 그가 나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절대약자이에요. 그와 약속한 것이라면 꼭 지키려고 합니다. 안 지키면 내 자존심이 상해서 못 견딥니다. 나를 위해서라도 그 약속을 이루어 주고 싶어 하듯이 우리 주님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약속을 주장하며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세요.
"주님, 여기 주님이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내 것으로 믿고 순종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응답해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끈질기게 재촉하면 하나님께서 귀찮게 여기실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 밤낮 부르짖는 것을 절대로 귀찮아하시지 않습니다. 왜 성경에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쉬지 못하도록 하라고 했을까요?(사62:6-7) 계속만나고 싶고 계속 복을 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태양이 그 빛을 비추는데 권태를 느끼지 않고 샘은 그 흐름을 번거롭게 생각지 않듯이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십니다. 순종하기만 하면 기꺼이, 흔쾌히.. 기쁨으로 응답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구원의 약속, 성령 충만의 약속, 물질 축복의 약속, 기도 응답의 약속, 병 고침의 약속 등... 얼마나 많은 약속들이 있습니까? 무려 32500가지라고 하지 않습니까?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말씀으로 듣고 계속 묵상하며 구하는 것입니다.

*약속성취는 인내를 통해서
여러분, 약속이 성취되려면 약속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한두 번 시험 삼아 해보다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집어던지고 마는 사람은 아예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약1:6-7)
약속을 믿되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히6:15에 보면 아브라함도 약속을 받고 나서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가 75세에 약속을 받고 떠난 후 100세에 아들을 얻었으니 장장 25년이 걸려서 성취된 것입니다. 그간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끝까지 믿음으로 순종하고 나갔더니 하나님의 때에 정확하게 응답하신 것입니다.


수6:2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성을 돌라는 말씀을 하실 때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여리고 성들이 언제 무너졌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13바퀴를 돌았는데 10바퀴를 돌 때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고 12바퀴를 돌때에는 흔들흔들 거리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12바퀴 반을 돌았어도 아무런 일도 없이 여전히 견고하게 서 있던 것이 마지막 까지 순종하고 외치니 즉시로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순종하기는 쉽되 끝까지 순종하기는 어렵습니다.

눈에는 아무런 증거도 보이지 않는데 계속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의 다 순종하다가 마지막까지 순종하지 못해 얻지 못한 것들은 없습니까? 믿음은 끝까지 포기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 두 바퀴만 돌고 포기했더라면 그들에 주신 약속이 성취되었을까요?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담그면 나을 것이라고 했는데 다섯 번 정도 담그다가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고 물에서 나왔더라면 그의 문둥병은 치유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그 약속이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이요 성령의 감동으로 주신 말씀이라면 믿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성과 논리, 설명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붙잡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가치를 제발 깨달으십시오.
약속을 받은 자는 많으나 누리는 자는 자격을 갖춘 자, 믿음으로 의심치 않고 행하는 자만이 누립니다.
내게 있는 예수의 이름으로 허락한 가치를 인정하십시오. 주님은 약속을 당신의 피로 보증하셨습니다. 피를 걸고 약속하셨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십니다.


어느 가난한 농부 가정의 벽에 붙여 놓은 종이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종이를 보고 우리나라 돈으로 2억여원 상당의 유언서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은행 통장에 있는 돈 전체를 아무개에게 기증한다는 내용의 유언이 적혀 있고 사인이 되었고 지문이 찍혀 있었습니다.그런데 그 농부는 빚에 쪼들려 가난에 빠져 있었습니다.

농부가 유언서를 소지하게 된 사정은 이렇습니다. 전쟁 때에 어느 병사가 중상을 입고서 들에 쓰러져 거의 의식불명인 것을 그 농부가 집에 데려다가 며칠 동안 간호를 해주었는데 그 병사가 너무 고마운 나머지..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장에 자기가 사인을 다 해 놓고는 돈의 액수가 얼마라는 말을 하지 않고  ‘이것을 기념으로 드립니다.’하고 죽었던 것입니다.
농부는 그 병사를 부근에다 묻어주고 그 병사가 준 것을 자기 자손에게 자랑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벽에다 딱 붙여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보증수표와 같은 유언서임이 밝혀져서 2억여원을 찾아 썼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 병사가 농부에게 2억원 상당의 돈을 주었어도 유언장에 기록된대로 은행에서 돈을 찾아쓰지 않았다면 그 농부는 늘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보증수표와 같은 유언장을 은행에 들고가서 돈을 찾아 쓴다면 농부의 삶은 달라질 것이고 행복해 질 것입니다.
여러분, 이같이 보증수표나 유언서, testament 를 현금으로 바꾸지 못하는 비극이 우리에게는 없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 주님의 이름의 가치를 몰라 사용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한 인간의 장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만큼 형통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이루어지라고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 약속들을 축복이라는 현금으로 바꾸어 주님의 영광을 위해 마음껏 사용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http://www.subkorea.com/bible/study/bibles/history/history02.html 성경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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