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쓴 뿌리 다루기 ---"마음의 쓴뿌리를 찾고 뿌리 채 뽑아라” : <시드니 샤일로 여성각성운동 두번째 세미나 [2009-04-16 14:07]>에서 발췌..추가함. <히 12장>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분에 넘치는 호의-관대하심, 영적 축복, 사실상 은혜는 성육신-인생-십자가-부활을 거쳐서 생명주는 영 되시고 믿는 이의 영에 <생명주는 영>인 자신을 분배하여 내주하사, 베풀어 주신 하늘과 땅의 모든 풍성과 부요를 누리게 하시며 또한 하나님의 지혜로서 (한영됨으로 동행하는 믿는 이들에게 지혜를 주시며) 믿는이에게 매일매일 의로움, 거룩케 함, 구속의 누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곧 성삼위하나님 자신임)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용서못함-격정-공격적 분노, 즉 은혜로 이끄는 믿음과 겸손의 마음을 소멸시키고, 사업-결혼-우정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관계를 파괴하는, 갈등-속상함-하나님과 이웃을 탓하고 정죄/비난/비판의 느낌들을 유발하고 문제를 일으켜 마침내 버려짐에 이르게 하는 앙심-원한-분노-증오감들인 잡초들의 뿌리)가 나서 (문제를 일으켜 자신을)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마치 미처 제거되지 않은 정원의 엉겅퀴 하나가 얼마되지않아 정원전체에 퍼져 황폐하게 하듯 오염시켜)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16 (절제함 없이 충동적 성욕따라 음행하듯, 내주하시는 유일한 남편이신-성령- 주를 경히 여기고 오히려 천연적생명-마귀적, 육신적, 세상적-이 끄는대로, 세상- 그 가치와 유행, 곧 마귀체계-을 곁눈질하여 추종함의)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한순간의 식욕충족을 위해, 평생에 걸쳐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된 선물인)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말씀하시며 동행하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발휘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에서 떠나 스스로 행함으로써 내주하시는 하나님 이름을 모독하는) 자가 없도록 (하나님과 친밀하게 연합한 영으로서 각자의 마음을 지켜 )살피라 신앙생활의 연륜이 쌓이면서 교회에서의 직분은 평신도에서 집사로, 집사에서 권사로, 장로로 높아진다. 하지만 왜 우리의 인격과 삶의 공허감은 변하지 않는가. 교회 안과 밖에서의 행동과 모습이 전혀 다른, 스스로 느끼기에 또는 타인이 느끼기에 때론 이중인격으로까지 보여지는 우리들의 모습들이 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마땅한 우리들이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봉사하지만, 우리 내부에는 아직도 고아와 같은 아픔과 자괴감의 텅 빈 구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은 과연 계시는가’ - ‘하나님은 과연 나에게 관심이 있으신가’- ‘하나님은 큰 일만 보시고 사소한 내 마음의 아픔은 돌아보지 않으시는가’ - '왜 내게만 이런 고난이 왔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미 배워 알고 있듯이 영존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영에 내주하시는 임마누엘로서 우리의 의식이나 호흡보다도 더 가까이 계시며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고 필요로 하시며 모든 이의 개인적인 주님으로서 체휼하시는 분이며 각 성도의 모든 상황을 세밀히 감찰하시면서 각 성도의 지고지선의 유익을 위해 <다루심>의 고난에 참여하시며 그 가운데서 피하고 극복할 길을 내시며 도우시며 인도하사 각인의 영적체력을 단련시키시며 영생명을 성장성숙케 하시어 JC의 어떠함에 이르게 하시며 각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Destiny를 온전히 이룰 수 있게 하신다. 내 영은 감지할 수 있는 바, 겉다르고 속다른 이중인격적인 모습이 왜 우리 안에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첫번째, 속사람, 즉 마음의 변화는 채 이루어지지 않고 겉사람 단장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임을 내 영 스스로는 확실히 알고 있으며 동시에 남들 보기에는 믿음 좋은 사람으로 비쳐지나, 정작 남이 보지 못하는 속사람에 있어서 중심으로부터 넘쳐나야 할 약속 말씀 이루실 주께 대한 기대감-사랑-기쁨-평강-너그러움/배려/동정-자족함- 굳센 믿음의 위지-소망의 인내심은 어느새 고갈되어 버리고 그 대신에 내 안에 울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어서 조급증-답답함-공허감-무기력감과 함께 거절감-결핍감-열등감-외로움-두려움-분노/원망/과민반응/완벽주의/무정함/이기적 교만의 느낌이 오히려 많이 느껴지고 신앙생활이 단조롭게 되고 전혀 변화가 없다. 사실 겉사람의 변화를 추구하기 전에, 먼저 속사람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속사람, 즉 마음(양심-생각-감정-의지)부터 새롭게 되어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겉사람의 변화(구속의 몸 입음으로의)가 뒤따라야 한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하셨다. ‘변화를 받아’는 현재시제, 수동태, 명령문이다. 현재시제로는 ‘계속적으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수동태로는 ‘변화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명령문으로는 ‘변화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의미이다. ‘변화를 받아’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성품)으로 짜여지고 조성됨, 다른 말로 하면 ‘온전/완전한 구원을 받아’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변화를 받되 계속적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구원을 받되 계속적으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구원을 계속 받아야 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구원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구원은 세가지로 나뉘어진다. -칭의의 구원(Justification)-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순간적(요1:12) -성화의 구원(Santification)-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평생 계속되는 과정 -영화의 구원(Glorification)-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영광과 특권-영원 칭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을 믿고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남을 말한다. 성화의 구원은 구원 받은 성도가 평생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영화의 구원은 구원받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은혜시대의 교회는 천국의 실재적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천국은 이미 믿는 우리안에 와 있다. 이제 이 천국은 장차 도래할 천년왕국시대에는 외형으로도 출현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의 지금 최대의 관심은 성화의 구원이어야 한다. 칭의의 구원은 이미 이루어졌고 영화의 구원은 성화의 구원 후에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 이르기를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라고 했다. 성도의 삶이란 구원받은 사람이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성화의 구원은 평생에 거쳐 이루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느린 변화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라. 안 넘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린 아이가 걷고 뛰기까지 얼마나 많이 넘어져야 했던가. 어린 아이가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 일어서는 것을 포기해 버린다면 어떻게 그 아이가 걷고 달릴 수 있겠는가. 이 성화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오늘 우리는 성화의 삶을 방해하는 요소들로는 생각의 견고한 진과 함께 쓴뿌리를 들 수 있는데 먼저 가장 중요한 걸림돌 중의 하나인, 성도를 괴롭게 하고 더럽게 하는 마음의 쓴뿌리에 대해 이해하고 그것을 찾아내어 뿌리 채 뽑아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마음의 쓴뿌리란 무엇인가. 단적으로 말하자면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치유되지 못한 마음의 상처들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건들 속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들은 ‘좋다’ ‘나쁘다’ ‘기쁘다’ ‘슬프다’ ‘분하다’ ‘억울하다’ 등의 감정과 함께 의식에서 무의식(잠재의식)으로 내려가서 저장된다. 우리가 경험한 사건들이 의식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그 상처들이 잊어버리고 없어진 것 같지만 한번 경험된 사건과 이에 대한 반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대로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어떤 계기가 되면 그대로 혹은 변형된 모습으로 떠올라와서 현재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무의식에 저장된 기억 중에서 상처로 남아 있는 것들은 다른 상처들과 함께 더 크고 깊은 상처를 만들어 가는데 이 마음의 상처가 바로 쓴뿌리인 것이다. 내 마음의 쓴뿌리는 어떻게 찾을 수 있나. 첫째, 성경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우리 마음의 쓴뿌리가 드러난다. 둘째, 마음의 쓴뿌리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기도할 때 쓴뿌리가 나타난다. 셋째, 상담이나 대화를 통해서 마음의 쓴뿌리를 알 수 있다. 넷째, 다른 사람의 간증이나 책을 통해서 마음의 쓴뿌리를 찾을 수 있다. 다섯째, 설교, 강의, 이와 같은 세미나를 통해서 마음의 쓴뿌리를 찾을 수 있다. 마음의 쓴뿌리를 뽑아야 한다!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명심해야 할 점은, 그 문제는 무의식 속의 쓴뿌리에서 올라온 가지일 뿐이라는 것이다. 뿌리를 남겨 둔 채 땅 위로 솟아오른 줄기만 자르면 잠깐은 그 문제가 해결된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그 뿌리에서 다시 싹이 올라온다. 그러므로 마음의 쓴뿌리를 찾고 그 쓴뿌리를 뿌리 채 뽑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의식 속에 있는 쓴뿌리를 뿌리 채 뽑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마음의 쓴뿌리를 뿌리 채 뽑는 길은 스스로 그 치유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모든 증상의 원인들을 깨닫게 해주시고 상처를 받은 그 때와 장소로 이끌어가셔서 치유하실 수 있는 성령님과 보혈의 능력에 동의하여 내어맡김이다. 또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스스로의 양심을 괴롭히며 타인을 악하게 대하는, 부정적이고 부적절하게 느껴지는 마음에서 나온 모든 행동의 동기를 말씀 앞에서 잘 살펴보아 돌이키고 교정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려는 우리의 노력과 그 노력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마음의 쓴뿌리를 찾고 그 쓴뿌리를 뿌리 채 뽑아내는 일은 단순간에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그 쓴뿌리의 느낌에서 완전히 자유해지는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조급하지 말라. 성화의 구원은 우리가 죽는 날까지 이루어가야 할 과정이라고 했지 않는가. 그러나 쓴 뿌리의 그 느낌이 때때로 올라올 때에는 (점점 그 강도가 약해질 것이지만) 그 때마다 그 근원이 이미 처리되었음에 대해 믿고 의심하지 말고 그 느낌을 대적하라.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일은 시간이 필요하다. 설사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의 쓴뿌리를 찾고 뽑았다 할지라도, 당장 모든 쓴뿌리가 죽어버리고 모든 느낌이 새로이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나약한 잡초라도 뿌리 채 뽑아 놓아도 일주일이 넘도록 말라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말라. 자기 자신은 물론이지만 다른 사람의 변화에 조급하지 말라. 인내하며 기다리라. 때가 이르면 거둘 것이다. ##쓴뿌리의 정의 http://cafe.daum.net/agapestar 살아오면서 거절당한 경험이나 내적상처와 그 뿌리가 성령의 조명하심과 십자가 사랑과 보혈능력을 의지하여 용서함을 통해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고 그냥 방치함으로써 무의식에까지 숨어들어가서 마음그릇이 손상된 쓰라림과 아픔 상태에서 솟구쳐 나오는 <실락원의 원감정 중>실망/죄책-반항/원한/적대감/원수맺기 등이 바탕이 되어 표출되어 나오는 사랑과 긍휼상실의 부정적-파괴적 감정과 행동으로 발현됨(종종 정죄-과민반응을 보이는 이중인격적 성향으로 인식됨) ---> 내적 불신과 불신앙(겸손과 믿음으로 얻는 은혜를 가림) 유발. <딤후3장> : 쓴뿌리에 취약한 마음의 실례들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쓴뿌리에 취약한 마음 유형 === 사람이나 일에 대한 편향된 사랑과 집착을 보임, 어떤 일을 처리하게 될 때 불안-조급해지고, 잘되지 않을 때는 분노-안정감 상실-주변인에 대한 원망-저주의 감정, 거친말-행동을 빈번하게 표출하는 특성을 가짐.. @자기사랑함, 자랑함, 쾌락 사랑 --자기중심주의자 : 자기집착 @감사치 아니함, 무정함, 원통함 풀지 않음,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희생자 : 실패한 과거 집착 @교만함, 배신함, --투쟁가 : 승리에만 집착 @비방, 경건의 모양 있으나 경건 능력 부인 -- 완벽주의자 : 완전주의신화에 매달림 @돈을 사랑함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음, 모함함 --이용자 : 탐욕 집착 @여러가지 욕심에 이끌림, 조급함 -- 유약한 자 : 인정받는 것에 집착 @부모 거역, 마음이 부패, 믿음 버림 --회피주의자 : 자신의 안일과 편리에만 집착 @자만함, 사나움, -- 권력추구자 : 권력 추구 @거룩하지 아니함, 무절제함, --충동주의자 : 충동적 욕구따라 행함 ## 성도들에게 괴로움과 더러움을 야기하는 쓴뿌리를 낳는 마음의 상처의 근원을 들여다 봄 <영적여정에서 행복추구를 위한 정서 프로그램 모델을 통해서 고찰해 봄> 보통 4세이후-8세의 시기를 사회화 과정 곧, 자아실현추구가 시작되는 시기로 봄.. 아브라함 매슬로우의 <5대욕구 가설>에 따르면, 매슬로우는 생리적(식욕/수면욕/성욕)욕구-안전(피보호/확실성/예측성)욕구-사회(애정/소속)욕구-자기존중(존경/인정-권력/명예)욕구-자아실현(창의성/존재가치가치 실현)욕구의 5가지 욕구로 나누었음. 이를 심리적 모델과 함께 고찰할 때 1-3세 사이의 마음의 정상적 성장과정으로서 자라나오는(욕구Need-->요구Demand-->당위Should의 과정 거침) 생존/안정 욕구(1세까지). 사랑/인정/자기존중 욕구(2세까지), 권력(힘)/통제 욕구(3세부터)들 모두는 인간으로서 바른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때문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나 이 충족되어야 할 단계별 욕구들이 외부환경에 의해 눌림받아 충족되지 못할 때,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정서가 거기에 고착되고 그 채워지지 못한 욕구와 그에 따라 오도된 부정적 정서반응들은 오도된 <행복추구 위한 정서반응>들로서 그 욕구가 채워지기까지 삶의 에너지중심과 주된 정서로 작용하게 되는데 생존/안정욕구의 강제적 눌림은 결핍감-거절감-고독감-슬픔-질투-분노를, 사랑/존중/인정 욕구의 눌림은 수치감-두려움을, 권력/통제 욕구의 눌림은 적대감-시기-경쟁의 감정을 유발시킨다고 한다. 한편, 거절감-부족감-고독감-수치감-두려움-분노 등의 감정들을 세심하게 살펴볼 때 이것들은 <모태로부터 분리되어 나옴으로써 생긴 원감정> 또는 <죄로 인해 생겨난 실락원의 원감정>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2차감정들을 속발시킨다. **물론 임신상태에서 엄마의 불안정한 심리와 스트레스 들로 인해 태아가 안전에 위협을 느끼는 부적당감-거절감 등의 느낌들도 또한 중요하다 이들 2차감정반응들을 정리해 보면, 곧 부족감/결핍감에서 유래한 시기-경쟁-과민반응-완벽주의-탐욕, 고독감/고립감/외로움에서 유래한 무가치감-슬픔, 수치감에서 유래한 열등감-죄책감-실패-실망-좌절감-무기력-자기연민-우울, 두려움에서 유래한 의심-염려-불안-초조-안달-불신, 거절감/결핍감의 뿌리로 부터 자란 분노에서 유래한 원망/앙심-증오/적대-교만들이다. 위의 원감정과 2차 감정반응들이 사회적 초자아(권위자들)에 의해 용인되지 않고 눌려지게 되면 무의식 속으로 숨게 되어 쓴 뿌리의 근원이 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들이 발생하면 이 무의식으로부터 올라오는 감정들은 또 다른 다양한 심신반응들과 이 부정적에너지를 사회적 초자아가 용인하는 수준으로 조절해서 통제하기 위한 방어기제들을 유발하게 된다. 한편, 마음 상함의 기제를 살펴 볼 때 고독감-수치감-두려움 등을 내향성의 부정적 감정들이라 말할 수 있고 거절감-결핍(귦주림)-분노의 감정을 부정적 외향성 감정들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 외향성과 내향성의 충돌은(예-고독감과 결핍감의 에너지의 충돌) 성경에서 말하는 마음의 병든 상태 모델 중(사 61장1-3절의 마음이 상한자, 포로된자, 갇힌자 모델) 마음의 상함(Broken-hearted)을 유발시켜서 <내 마음 나도 모른다>는 이중성의 마음(Double-minded, 아름답고 사랑스런 아내를 두고 외도하는 행위, 주님떠나서 세상과 짝하는 우상숭배 또는 양다리 걸치기)반응과 이중인격적인 행위를 유발킨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 단계에서, 상한 마음 자체로 치료하며 회복시켜주실 주님 신뢰하며 나아오는 것이다. 시편51편 17절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편34편 18절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 이를 방치하면(사탄의 참소와 거짓말을 추종함으로써 더 악화됨) 마음은 점점 더 곤비해 가며 통회-자복-회개 않고 고집부려 근본적인 해결없이 방치하면 더 악화되어 썩어들어가서 이윽고 그로기 상태가 되어 하나님께 앙심 품고 손가락질하며 대드는 전사의 모습을 취하거나(Why Me? 20%) 아니면 두려워 숨음(80%), 곧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눈 감아버리는 일종의 포로됨(중독은 포로됨의 일종으로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현실도피적 상태)으로 진행되고, 이 도피 성향이 더 악화되면 마침내 갇힘(자기변명과 그럴듯한 세상적 가치-마귀적 이론과 마귀가 넣어 준 거짓된 생각들인 견고한 진으로 둘러쌓인 벽 안에 자신을 가두어 놓음)의 상태가 나타난다. 실상, 이들 원감정과 2차 감정들은 현재의 은혜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미 십자가의 보혈로 그 권세가 뿌리째 상실된 상태이다. 이것이 자범죄로 말미암아 올라온 것이라 해도 주보혈앞에 나아가 자복하고 용서함 받을 때 그 권세는 깨지고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잘 몰라서(우매무지함) 그리고 대적하며 주장하고 선포하지 않음으로써 마귀의 속임수와 참소에 속아넘어가 자신의 마음을 내주는 것(오도됨)일 수 있다. 또한, 살아가면서 성령 가운데 깨어 있음에서 벗어남 곧 육신적-세상적-마귀적 생각 대신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생각으로 적셔져 있지 못할 때, 또는 자범죄로 인해 자책감-죄의식 가운데에 있어서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은 마음에 상처를 일으키고 이윽고 이미 죽어버린 <실락원의 모든 감정들과 방어기제- 마음의 옛 오솔길>을 자극하여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하며 이 불편한 감정을 주님께 가져가서 성령의 조명아래 그 정체를 뿌리까지 드러내어 보혈과 성령의 능력 아래 예수이름으로 대적하고, 십자가 사랑으로 상처준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때는 무의식 속으로까지 뿌리내려 마음 그릇을 황폐케 하고 깨어지게 하며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하며 동시에 자신을 괴롭게 하며 주변사람들을 오염시켜 더럽게 하는 쓴 뿌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깨뜨리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에 상관없이 그 상태 그대로 주께 나아가서 마음을 열어드려 그분께 불편한 나의 마음 상태의 근원을 보여주시기를 청하고 내 마음 상태에 대해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 알게 해 달라고 구함으로써, 자신의 우매무지함을 깨달아 고백하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회개하는 Vulnerability에로 자신을 전환하는 것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 23) 위의 말씀에서 Guardian인 우리가 지켜야 할 진정한 우리의 마음이란 <어느 누구도 침범 못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내밀함, 완전한 하나됩의 친밀한 알아감의 관계>의 마음으로서 이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버림받아 죽는 십가자의 극단적 상황속에서도 끝까지 견지한 바로 그 절대적인 사랑과 절대적 신뢰의 옷<제복>인 Vulnerability( 상처받기 쉬움)의 마음 곧, 나를 완전히 아시고 책임지시는 살아계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흔들림없이 전적으로 신뢰하는 가운데 조건없는 항복의 의지적 결단으로 깨어지고 상처받을 각오의 완전한 수용성으로 자신의 방어벽과 무장을 제거함을 통해 열어놓음의 마음으로서, 자기를 부인하며 내려놓고 발가벗고, 비우고 내어드림으로의 전환을 통해서 거짓자아를 파쇄하심에 동의해 드리고 믿는 나의 영에 오사 한 영 되어 내주하여 계시면서 동시에 함께 계셔서 나를 품어 보호해주시는 주님께 시시로 마음을 토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어 이해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뜻한다. ###우리안의 견고한 진 다루기 --David Wilkerson **고린도 후서 10:3-6절 “3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육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살고 있으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사람들이 서로 전쟁하듯 이 영적전쟁을 치르지 않나니)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것이 아니요(=세상의 무기들이 아니라) 오직 어떤 견고한 진(고후3:14, 고후4:4 - 그리스도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막는, 사탄이 구축한 마음속의 요새, 곧 세상의 가치, 생각과 사상으로 불신자의 마음을 점유하여 혼미케 하거나, 믿는이의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깊이 이해하지 못하도록 영적직관이 차단되게 하거나,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도록 거짓과 하나님에 대한 참소의 마귀적 세상적 생각을 집어넣어 진리의 말씀을 자신의 생각으로 비판-판단-조롱-제한하여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절하게 하는, 오염된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완고한 마음의 모든 태도)도 무너뜨리는(=세상의 그 어느것도 이길 수 없는 하나님의 강력한 무기인) 하나님의 능력(믿는이의 영에 한영되어 내주하시는 부활생명이신 성령, 곧 어느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살아계신 하나님 자신의 나타남과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또하나의 우상숭배로서의 모든 인간 이성/이론/사조들과 세상적 가치와 함께, 더불어 마귀가 넣어주는 생각-상상-거짓말들-잘못되고 거짓된 논쟁들처럼 하나님 알기를 방해하고 대적하는 모든 종류의 견고한 진들을 분쇄하며 파쇄하고) 모든 생각을(= 종교적 생각들을 포함한 모든 생각들을) 사로잡아(십자가보혈로 씻김받아 정결케 하며 성령 인도따라 깨닫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가르치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너희가 내주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말씀에 온전히 복종하게 된 후에) 모든(=모든 사람들의)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견고한 진이라는 말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죄 중에서 최악 1,2위를 다투는 음행이나, 마약 중독, 알콜 중독 등과 같이 사람을 옭매는 굴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우리 인간들이 죄라고 헤아리는 범주를 넘는 훨씬 더 나쁜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는 귀신 들린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견해로는, 마귀는 마귀를 적극적으로 대적하며 극복하고자 하는, 보혈로 덮여진 크리스천의 마음속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비유적으로 사용한 ‘견고한 진’의 희랍어 원어 뜻은 ‘논쟁거리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짐’ 입니다. 견고한 진이란 다름 아닌 당신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은 참소 -거짓말과 참소하는 생각들과, 하나님이 넣어주지 않으신 부정적인 모든 생각들-입니다. 로마서 8장6-7절에 가록되기를, "*육신(마귀가 타락한 사람에게 넣어 준 죄된본성)의 생각은 사망(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요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생명에 이르게 하고 평안을 가져다 주는 것)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들 마음 안에 그것을 대적하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주장함으로써 그 자신의 거짓말, 허위, 그릇된 관념 등, 특별히 하나님의 성품에 관하여 거짓을 심어놓음으로써 견고한 진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원수는 당신의 마음속에 당신이 영적이 아니기에 전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거짓말을 심어 놓습니다. 그리고 귀에 못이 박히게 속삭여 댑니다. “네 안에 뿌리박힌 죄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할 거야. 그 정도 노력으로는 아직도 멀었어. 너는 하나도 안변했잖아. 하나님도 네가 계속 일진일퇴 하니까 더 이상은 안 참으신다.“ 또는, 마귀는 당신이 피해를 입은 사람이기 때문에 쓴 뿌리를 품고 있을 권리가 있다고 당신을 확신시키고자 할지도 모릅니다. 만일 당신이 그의 거짓말을 계속 듣고 있으면 얼마 안가서 당신은 그 거짓말을 믿게 될 것 입니다. 사탄은 형제를 참소하는 자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그의 참소하는 군대를 이끌고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 마음속에 마귀가 하는 거짓말들을 심어놓습니다. 이 거짓말들이 그의 견고한 진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지 않으면 이것들은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마귀가 무서워하는 유일한 무기는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 그를 쫓아버린 바로 그것입니다. 그 무기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의 진리입니다. 미가 선지자에 따르면 이것이 우리가 붙들어야할 약속의 말씀입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미가 7:18-19)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밟아 항복시킬 수 없는 것이죠. 바로 그렇게 올바로 피악하여, 우리가 그 생각-마귀의 거짓된 생각과 참소-에 동조하였음에 대해 회개를 하고, 믿음을 통하여 예수 이름으로 그 생각을 대적 할 때 그분이 친히 밟으십니다. ###생각의 견고한 진 (잔 오스틴) = 사탄의 생각 기억하십시오. 전쟁터는 마음입니다. 사탄은 생각을 당신의 마음에 주입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이러한 사실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더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사도행전 8장에서, 우리는 위대한 부흥을 위해서 사마리아로 내려가는 빌립의 이야기를 볼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치유받고, 사탄의 권세에서 자유케 되고, 물 세례를 받고 또 성령 세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시몬이라는 마법사를 보게 됩니다. 어리석게도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을 주고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안수의 은사를 사려고 합니다. 베드로는 그를 꾸짓고 악독이 가득하고 불의에 매인 바 되었다고 나무랐습니다. 베드로는 " 너의 마음에 심령 (Thought of Thine Heart)이 용서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 고 말했습니다 (행8 : 22) 마법사 시몬은 한 생각(Thought)에 의하여 동기부여를 받았습니다. 그 생각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탄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 사탄이 너의 심령 속에 한 생각을 집어넣었다. 너는 그것을 네 자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였고, 그 생각에 따라 행동했다. 이제 하나님이 사탄의 그 생각을 따른 너를 용서하시도록 기도해라." 베드로는 ' 생각들' 이라고 말하지 않고, '생각' 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잘못된 행동으로 이끈 그 한 생각(One Thought)에 대하여 용서하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을 배신함에 대하여 생각해 볼 때 성경은 " 마귀가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 (요13 : 2)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유다의 마음과 심령에 그 생각을 떨어뜨렸습니다. 보십시오. 원수의 최초의 접근은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Thought)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그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 생각에 따라 행동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심령(Heart)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심령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과 훼방입니다. ( 마 15 : 18,19) 누가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은 '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였다'고 말합니다. (37절).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고 말씀하셨습니다. "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너의 심령(heart)에 생각들 (Thoughts)이 일어나느냐? " (눅 24 : 38) 그들은 무서워하였습니다. 어디로부터 이 두려움이 온 것일까요? 그 두려움은 그들이 심령에 들어오도록 허락한 생각(Thoughts)에서부터 왔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고통스러운 두려움(Fear)을 창조하고 그 두려움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그 두려움은 사탄이 그들의 마음속에 집어넣은 생각으로부터 왔습니다. 사람들은 그 생각을 받아들였고, 그 생각이 생산해내는 고통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상상들을 파하십시오 ! (Cast Down Those Imaginations! ) 그와 같은 견고한 진들을 무너뜨리십시오 ! (Pull Down Those Strongholds! )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십시오! 생각은 견고한 진이 될 수 있습니다. 거짓된 생각은 견고한 진(Strongholds)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탄의 거짓된 생각은 당신에게 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거나 혹은 당신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나는 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떨어져 있는 도시에 있었습니다. 예배 후에, 20대로 보이는 청년이 나와 악수를 하기 위하여 강단으로 나왔습니다. 내가 그 손을 잡는 순간, 성령님은 나에게 그에 관한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 계시는 ' 동성애 귀신' 이 그의 마음속에 그는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그의 마음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 청년 , 형제 뒤에 동성애의 귀신이 있네. 그가 자네에게 비정상이라고 말해왔던 것이라네. " 항상 자신을 쫓아 다니는 이 생각으로 인하여 두려움으로 가득 찬 그의 눈을 보며 나는 말했습니다. " 자네는 동성애자가 아니야. 자네는 비정상이 아니야. 그 생각은 사탄으로부터 왔고, 사탄이 자네가 그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생각에 따라 행동하도록 수작을 부려온 것이지. 하나님은 자네를 정상으로 창조하셨네." 우리는 마귀를 꾸짖고 사탄이 준 그 생각을 추방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자유해 졌습니다. 나는 결코 내가 그의 눈에서 목격한 그 고통이 사라지던 장면을 잊을 수 없을것입니다. 이 귀중한 청년은 마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는 원수로부터 온 생각을 받아들였고 그 생각은 견고한 진이 되었습니다! 그가 받아들인 생각은 강한 요새가 되어 그를 붙잡았습니다. 그 견고한 진은 그의 마음에 상상들을 생산해내었습니다. 그는 만약 그가 정말 비정상이 된다면, 그의 삶에 일어 날수 있는 모든 슬픔들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상들은 두려움을 생산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감사한 하나님이신지요! 하나님은 그와 같은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셨고, 그와 같은 상상들을 파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사탄의 거짓말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생각은 당신을 꼭 붙들어서 당신이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없게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둥지를 튼 사탄으로부터 온 강력한 거짓말 하나가 당신을 병들고, 괴롭고,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신은 묻습니다. " 얼마나 오랫동안이나요?" " 당신이 그 생각을 허락하고 있는 동안입니다. 당신이 그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동안입니다." 오늘 , 어떤 생각이 당신을 강하게 사로잡고 있습니까? 원수의 속임수를 향해 깨어있으십시오! 성경은 "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2 : 11) 그러므로 사탄의 덫에 빠지지 마십시오. 성경은 "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라 " 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준 거짓된 생각을 당신이 되풀이하여 말할 때, 당신은 두려움 가운데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약속들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드는 가운데 큰 소리로 되풀이하면 그 약속의 말씀들은 당신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 올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들로 가득합니다. 마귀가 당신에게 강요하려고 시도하는 모든 생각들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대체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정복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마귀는 거짓말쟁이이며, 모든 거짓의 아비입니다. 그는 진실을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마귀가 당신에게 한 말을 반대로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진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마음에 한 생각을 넣었습니다. " 이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 ." 예수님은 그 생각을 거절하시고 그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대체하신 후 고백하셨습니다. " 기록되었으되 (It Is Written ) " (마태복음 4 : 1-10) 당신도 예수님처럼 " 기록되었으되" 라는 말씀을 고백함으로써 매 순간 마귀의 일을 멸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그 뒤에 쓰여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된 약속들을 고백하십시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십시오! 이 말의 의미는 모든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생각이 오류 없는 하나님 의 말씀앞에 무릎 끓게 만드십시오. 하나님의 약속들로 마귀가 주는 생각들을 추방하십시오. "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원합니다) ! " 이라고 말하며 그것들을 무너뜨리십시오. 이사야서 54장 17절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무릇 일어나 너를 대적하며 송사하는 혀는 제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는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무엇이 병기입니까? 누구의 혀입니까? 사탄으로부터 온 원수의 참소하는 생각이 바로 병기이고, 이것이 바로 원수의 송사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당신을 대적하여 송사하는 어떤 무기나 혀도 정죄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과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도움을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제게 정죄를 당하리니 "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바로 그 혀를 정죄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바로 사탄과 그의 거짓말을 꾸짖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바로 그 생각을 정죄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그것을 해달라고 간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그것을 해주실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당신에게 그것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을 대적해서 패배, 고통, 두려움. 정죄를 가져오는 모든 혀와 생각은 당신의 (You)정죄를 받고 추방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 네가 정죄를 하리니 (Thou Shalt Condemn) "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하여 사탄을 정복하셨고, 마귀의 패배를 증명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의 권세를 당신에게 주셨습니다. "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다." (눅 10 : 19) " 내 이름으로 너희가 (You)귀신을 쫓아낼 것이다 " (막 16 : 17)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생각이 삶이 바로 전쟁터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생각을 경계하십시오. 당신이 읽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당신이 보는 것을 삼가십시오. 당신의 마음속으로 무엇이 들어가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잘못된 생각이 마음에 머물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 : 1,2) 우리가 어떻게 변화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입니다. 말씀 안에서 사십시오. 날마다 아브라함, 이삭, 요셉,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베드로 , 바울 그리고 그 외에 믿음의 조상들과 늘 동행하십시오. 예수님의 손을 잡고 그분과 함께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산책하십시오. 날마다 하나님의 생각을 묵상하십시오! 당신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구원, 용서 , 긍휼, 치유, 사랑, 선하심과 그 외의 성경에 있는 아름다운 일들에 관하여 하나님처럼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십시오. 다윗은 자신이 축복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떻게 축복 받았다고 했지요? 그의 고백이 담긴 시편 1편을 보십시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에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 시 1 : 1-3) 주목하십시오. 그는 고백합니다. 그의 기쁨은 여호와의 법에 있으며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가 묵상하는 시간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합니다. :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그 사람이 바로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고 악한 상상을 파쇄할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의 핵심 구절을 다시 살펴봅시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나니 " 라고 했습니다 .( 고후 10 : 4-5) 이 구절은 생각에 대하여 말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견고한 진입니다. 그것들은 상상을 생산해냅니다. 그러면 두려움 , 고통, 질병, 패배가 따라 들오옵니다. 전쟁터는 바로 생각의 삶 (Thought Life)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스러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위하여 신령한 탄약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분은 "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은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성경에 있는 약속들로부터 하나님의 생각을 취하여 거짓된 생각과 대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을 패배시켜왔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고 악한 상상들을 파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원수가 떨어뜨리는 생각을 가볍게 여기거나 그 생각을 가지고 놀아서는 안됩니다. 원수의 생각이 집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 집을 무너뜨리고 없애버려야 합니다. 당신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 마음밭 모델을 살펴봄 마귀는 아들하나님(성자그리스도)이 인자(성육신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나약함과 연약함을 가진 완전한 인성을 입은 그리스도)로 세상에 임했음을 결코 스스로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철저히 완패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편, <마음 밭 모델을 통해서> 마귀의 궤계를 살펴 볼 때 불신자들에게 있어서 마귀는 예수(=그 이름의 뜻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세상 끝날까지 결코 떠나지 않으시는<임마누엘>이요 구원하시는 하나님, 모든 인생길을 아시는 모든인생의 참 주님), 바로 그분이 마귀의 손으로부터 세상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아버지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드님인 아들하나님(성자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도록 또한 고집부려 인정하지 않도록,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거짓말로 설득되어 오도된 자연의지>에 따라 자행자제함의 교만(이는 결국 마귀에 사로잡힘의 인생이기에 전적으로 착각임), 세상의 모든 쾌락적 가치들과 허무한 이론과 사상들로 이루어진 견고한 진안에 가두어 둡니다. 누가복음의 말씀대로 이는 길가로 묘사되는 바 곧,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마음에서 빼앗아버림이라 하겠습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은혜(겸손과 믿음으로 얻는)의 말씀이 풍성한 열매맺음의 천국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도록 자범죄를 통해 들어오는 틈과 성령안에서 깨어 전신갑주를 취함, 곧 하나님께 적셔져서 말씀과 기도로 철저히 대적함의 경계를 풀어 느슨하게 된 성도의 마음가짐의 틈 가운데에, 그 가운데 쉼이 있는 단순한 생활보다, 보다 더 나은 생계와 목표달성을 위해 필요이상으로 애쓰는 고단하고 분주한 세상 생활을 통해서 심신이 지쳐버린 상태에서 마귀는 반복되는 그럴 듯한 거짓말- 솔깃하고도 끈질기게 설득하는 자신이 지어낸 거짓말과 참소, 곧 자신의 생각과 상상을 성도의 마음에 넣어주어 마침내 성도가 참된 것으로 착각하여 받아들이게 함을 통해 그것에 길들여짐과 성찰없이 그것을 고집함의, 곧 첫사랑(믿음으로 말미암는 죄사함의 용서-->감사하며 사랑하며 섬김-->평안가운데 살아감)의 상실로 인한 냉냉함과 무감동으로 특징 지어지는 견고한 진(마귀의 둥지-요새, 길가밭 또는 길가로 묘사됨)을 성도의 마음에 만듭니다. 한편 쓴뿌리(앙심/증오/원한-용서못함/정죄함-과민반응/분노/원망/적대/원수맺기-비판하며 탓하기/완벽주의-이기적 교만으로 나타남)의 경우는 (바위투성이인 돌밭에 떨어진 말씀씨앗처럼) 말씀 들은 즉시 즉각적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싹은 나지만 그 말씀을 존재중심에 새겨 묵상하며 깨달아 결단하여 요동없는 굳센의지로 붙들고 그 말씀이룸을 대망하며 기다림의 믿음 뿌리를 내리지 못함으로 인해 지극히 크시고(Big Enough) 지극히 선하신(Good Enough)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용서-용납-공급-보호-사랑-돌봄-능력 공급하심을 친히 경험하고 알아감으로 이끄는, 믿음 뿌리를 견고히 내리게 함과 동시에 그 공력을 시험하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곤고함과 어려움의 상황속에서 그 상황을 직시하고 범사에 감사함과 인내와 끈기로 하나님 신뢰함으로 용감하게 나아가며 주님의 이루시는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바위돌로 상징된 믿음뿌리내림의 장애물들인 숨은죄-개인 욕심-자기 추구-자기연민에 빠져서 무한히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여 머뭇거리고 의심하며 회피하며 결국 배반하여 돌아서서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함으로써, 결국 화평함과 거룩함에서 떠나 살아계신 주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찰나적인 성욕의 충동따라 음행하거나 충동적으로 한그릇 죽을 위해 영적 장자권을 팔아버린 망령된 <에서>처럼 되어 감사와 겸손, 믿음-견인으로 말씀을 존재중심으로 받아들여 주님의 때에 그 말씀이 뿌리 내려 풍성한 열매맺음을 맛볼 수 있는 은혜에 도달케 됨이 결국 방해받습니다. 이와 함께 가시밭으로 표현된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기타 욕심과 향락의 경우 그 근본 정서들은 <자기사랑-자기연민>의 동기이며 수치감/실패감/열등감, 두려움/불안, 결핍감/탐욕으로서 세상적 자의적 부요함-성공-명성-인기를 추구하며 자행자제함의 교만과 물신숭배와 결합되어, 하나님의 공급-사랑-능력을 신뢰하지 않음의 불신앙으로 귀결되며, 싹 나고 뿌리내린 바 그 말씀이 전지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 성장과 열매맺음에 필요한 영양분과 능력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게 생장하는 기운을 빼앗아버립니다. 한편, 좋은 땅이란 단순함과 자족함의 생활 속에 장애물이나 가시가 없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귀기울여 새겨 듣고 말씀하신 하나님과 그 말씀을 굳게 붙들고 인내로 지키어 주님이 정하신 때에 마침내 30-60-100배로 결실하는 자입니다. #오욕칠정칠악 7정 : 희(기쁨), 노(분노<=결핍), 애(슬픔), 락(즐거움<=만족), 애(사랑), 오(미움), 욕(바램) 5욕 : 식욕, 성욕, 수면욕, 재물욕, 명예욕 7악 : 분노, 투기, 폭식(식), 색정(성), 나태(수), 탐욕(물), 교만(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