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면 충분합니다..
..임 위해 나를 내신 주님, 뜻하신 바 그대로 주님을 살기 원합니다. 모든 순간마다 그 임재 영광의 친밀, 그 은혜 놓치지 않기 원합니다.
..지고지선의 진복, 그 참된 사랑, 유익을 위하여, 나를 정결케 하여 주소서..
..때로 아프고 죽을 것 같더라도 나를 깨뜨리소서, 합당치 못한 모든 완악함, 연약함과 걸림돌 제거하사 새로이 빚어 주소서,...
..사랑안에 연합과 일치, 극락의 기쁨, 영원하신 주님을 그냥 알아차리며, 날 완전히 아시듯 참되게 주님의 어떠하심 알아가며 빼어 닮아가며 그렇게 살기 원합니다.
..살가우신 참사랑, 내 모든 것, 내 의미, 내 전부이신 분, 나를 안으시며 호흡보다 의식보다 가까우시고 내 안에 녹아 살아계심 알게 하소서..
..주 오심, 임하시며 안아주심, 일하시며 일하고 계심 ...깨닫게 하소서 깨우쳐 주소서 늘 일깨우시고 이끄소서...
..내안에 주님 충만, 그 친밀한 하나됨, 주님이 친히 부어 채워주시는 바로 그 사랑의 충만 없이는 서로 사랑을 이룰 수 없으니....
..나머지 모든 것은 주님 뜻대로 하소서...오직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무궁한 인자, 찢어지는 긍휼의 마음따라 성육신하사 죄로 인해 비참과 사망에 처해 있던 나와 세상을 구원하시려 자신의 몸을 대속제물로 죽음에 내어주신 구주JC, 창조주 하나님...
..바로 그 마음따라, 오늘 그리스도와 한 영되어 영생 누리며 사랑하기를 배운 나를 일깨우소서
..부활생명 주와 하나된 나를 드리나이다. 주님의 중보를 배워 화목케 하는 자 삼으소서
..세상과 다른 영혼이 회개하며 주께 돌아올수만 있다면 비록 곤고, 질병, 재앙, 죽음이 닥쳐 온다 해도 주예수님처럼 제단위의 대속제물, 주께 부어드리는 전제로 삼으소서...오직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
레위기 19장 [개역개정]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카도쉬...하나님 한분만으로 충분, 그분을 믿고 앙망하며 HS을 따라 살 때 저절로 이루어가시는 바 그분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분의 사랑안에 거하여 살며 그분을 누리며 알아가며 사랑하며, 그분의 어떠하심을 빼어닮아가며, 합당하게 섬기며 동행하는 가운데 그분의 뜻을 이룸)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3.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야레..공경/존경/존귀/순종..기쁘게/영화롭게 함=카바드)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4.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5.너희는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고
6.그 제물은 드리는 날과 이튿날에 먹고 셋째 날까지 남았거든 불사르라
7.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가증한 것이 되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하고
8.그것을 먹는 자는 여호와의 성물을 더럽힘으로 말미암아 죄를 담당하리니 그가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9.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11.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12.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3.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14.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5.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16.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7.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18.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9.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20.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정혼한 여종 곧 아직 속량되거나 해방되지 못한 여인과 동침하여 설정하면 그것은 책망을 받을 일이니라 그러나 그들은 죽임을 당하지는 아니하리니 그 여인이 해방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21.그 남자는 그 속건제물 곧 속건제 숫양을 회막 문 여호와께로 끌고 올 것이요
22.제사장은 그가 범한 죄를 위하여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여호와 앞에 속죄할 것이요 그리하면 그가 범한 죄를 사함 받으리라
23.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 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 것이요
24.넷째 해에는 그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25.다섯째 해에는 그 열매를 먹을지니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 소산이 풍성하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26.너희는 무엇이든지 피째 먹지 말며 점을 치지 말며 술법을 행하지 말며
27.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하지 말며
28.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29.네 딸을 더럽혀 창녀가 되게 하지 말라 음행이 전국에 퍼져 죄악이 가득할까 하노라
30.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히 여기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31.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32.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33.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34.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35.너희는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 불의를 행하지 말고
36.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37.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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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dq;(6918, 카도쉬) 거룩한, 신성한
카도쉬(형용사)는 '거룩한 holy, 신성한 sacred'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나오며, '분리'나 '구별'이라는 개념이 강조되어 있다. 카도쉬는 본질적으로 거룩한 것, 또는 신적 의식이나 제의 행위에 의해 거룩한 영역에 속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구약에서 거룩한 것들은 도덕적 순결보다 범속한 것으로부터 분리, 곧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보통 사용으로부터 분리하여 놓거나 따로 떼어 놓은 것들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거룩하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거룩하라"고 요구하면서 거룩함을 유지시킬 수 있는 순종의 표준을 제시하신다(레 19:26).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에게는 인간이 공유한 도덕적 불완전성과 약점이 없으며(호 11:9), 자기 약속에 신실하심을 믿을 수 있다(시 22:3-5).
하나님의 속성이 가지는 이러한 양상이, 그의 백성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하박국의 소망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선지가 가로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를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나이다"(합 1:12).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는 많은 표현은 이스라엘 사회의 죄악을 하나님의 도덕적 완전과 대조 시키는 역할을 하며(사 30:11), 모든 것, 특히 악한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절대적 분리성을 표현한다: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겠으며 그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바라보겠고"(사 17:7).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이 다른 민족들로부터 분리, 구별하여 자기의 소유물로 삼았다는 사실에 근거하며 그들의 소명 또한 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레 20:26, 신 7:6, 신 14:2, 신 26:19).
하나님은 거룩하신 까닭에 거룩한 백성인 이스라엘 족속들이 우상숭배 행위에 빠져 있을 때는 그들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었다(수 24:19이하). 그들은 거룩하지 않은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야 한다(레 11:44-45, 신 14:21). 그들에게는 다른 민족들이 공유한 행위에 빠져들면 안 된다는 규정이 부과되었다(레 19:2, 레 20:7, 민 15:40).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를 묵인하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관념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혼합을 의미하며 성결의 본질을 파괴하는 것이다. 거룩하라는 부름은 일정한 규정의 부과를 수반하며, 이러한 규정은 믿는 자들의 지속적 성결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레 11:44-45, 레 19:2이하, 신 14:2, 신 14:21, 민 15:40).
예배 의식에 속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거룩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 예배를 위해 따로 떼어(분리, 구별)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영역에 속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희생제사의 여러 부분(레 6:16, 레 7:6), 성전과 그 구성 요소(시 65:4, 레 6:16 등), 제사장(레 21:6, 레 21:8), 레위인(대하 35:3), 안식일(사 58:14)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같은 맥락에서 '예배하기 위해 모인 회중, 이스라엘 백성'을 '성도들'이라고 부른다(출 19:6, 신 7:6, 신 33:3, 시 16:3, 시 34:9, 시 89:5, 시 89:7).
성소의 제사장들은 소제물과 속죄제물 가운데 정해진 몫을 받아 거룩한 곳에서 먹는다(레 6:16, 레 6:26, 레 7:6).
하나님의 임재는 그 임재하는 곳을 거룩한 영역으로 만든다(신 23:14). "거룩한" 것은 속된 것으로부터 구별될 뿐만 아니라 그것과 정반대를 이룬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형벌하신다(수 24:19, 사 5:16, 사 5:24).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에 비추어 자기 자신과 자기 백성을 죄인들로 보았다: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 그러므로 '거룩한 것'이라는 개념은 윤리 이전의 개념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또한 윤리적 가치를 지향하는 개념이기도 하다(참조: 출 31:13, 시편과 선지서).(참조: T. E. Mccomiskey; BDB; HE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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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y:(3372, 야레) 두려워하다, 무서워하다, 경외하다
야레(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두려워하다, 무서워하다, 경외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330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형으로 사용되었다.
야레의 성경적 용법은 다섯 가지 의미의 영역을 가진다.
(1) 두려움의 감정,
(2) 감정적인 반응에 강조점을 두지 않는, 악에 대한 지적인 예상,
(3) 존경이나 경외,
(4) 의로운 행동이나 경건,
(5) 형식적인 종교적 예배.
(a) 칼형에서 감정적인 반응으로서의 두려움에 관한 전형적인 예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시내산의 불을 보고 유대인들이 두려워 한 것(신 5:5), 유대인들이 블레셋인들의 동원 소식을 듣고서 미스바에서 두려워한 것이다(삼상 7:7).
다른 예들은 반드시 감정적 반응을 지적할 필요가 없는 악에 대한 예상을 더 강조한다. 다윗이 아기스 궁전에서, 그의 명성이 그에게 위험이 되었다고 생각한 그 인식은(삼상 21:13, "그들의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 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자기 가족이 자기 자신에게서 빼앗겨질지도 모른다는 야곱의 예상과 부합하는 하나의 실례이다: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말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창 31:31).
이 두 용법은 위로의 어구나 인사말로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부정 명령을 사용할 때 고려된다(예: 창 50:19, 창 50:20). 이런 경우에 야레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이 동의어들과 병행하여 자주 사용된다(예: 하타트: 타락하다, 아라츠: 놀라다). 이와 비슷한 주제는 안전을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이다(예: 시 56:4).
앞에 기록되어 있는 세 번째 용법의 예들은 많이 있다. 이런 존경은 어떤 사람의 부모(레 19:3), 거룩한 곳(레 26:2), 하나님(시 112:1),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시 86:11)에 기인한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하박국의 "두려움"(합 3:2)과 욥의 고난을 바라보는 그의 친구들의 두려움은(욥 6:21) 이런 종류의 두려움으로 간주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몇몇 구절들에서, "두려움"과 그에 상응하는 삶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실제의 동의어 개념들이다(레 19:14, 레 25:17, 왕하 17:34, 신 17:19). "두려워하다"를 의로운 삶을 뜻하는 실제적인 동의어로 보는 이 용법이 - 앞에 나오는 어떤 의미로든지 간에 - 의로운 삶을 산출해 내는 동기로서의 "두려움"을 고찰하는 데에 생겼다는 사실은 그럴듯하다. 이런 실제적이고 능동적인 두려움은 애굽 산파들이 그들의 두려워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을 받은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다(출 1:17, 출 1:21). 이런 종류의 두려움은 율법을 읽음으로써 가장 적절하게 알게 되었다(신 31:11-12). 되풀이하여, 강조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관련된 인간의 의로운 행동은 나그네나 체류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예: 신 10:18-20, 참조: 신 25:18).
형식적인 종교적 예배로서의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가장 분명한 예는, 제사 예배에 대해서는 여호와를 "두려워" 하지만(참조: 왕하 17:32-34), 그의 율법에 의로운 순종을 하였는가의 측면에서는 여호와를 "두려워" 하지 않은 북 왕국의 종교 혼합주의자들을 묘사하는 데에 나온다. 신 14:22, 신 14:23에 언급된 형식적 제사 요소들은, 이것이 배워지는 그런 종류의 두려움임을 이 문맥에서 시사해 준다. 앞의 논의와 수 22장의 문맥에 비춰볼 때, RSV가 이 구절에서 '두려움' fear을 '예배' worship로 번역한 것은 아마도 옳을 것이다(신 22:25).
'두려워하는 것'이 '열성가나 추종자임'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는 몇몇 구절들이 있다. 이 용법은 앞의 네 번째 용법이나 다섯번째 용법을 반영해주는 것 같다. 추정되는 동사의 예들은 욥 1:9과 대하 6:33에서 발견된다.
여러 종류의 두려움이 여러가지 인간의 행위(삼상 7:7, 삼상 15:24)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행동(출 14:31, 수 4:23, 수 4:24, 삼상 4:7, 삼상 4:9), 심판(사 59:18, 사 59:19),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신 4:10)에 의해 야기될 수 있다.
(b) 니팔형에서 이 단어는 수동적으로 '두려워하게 되다, 경외하게 되다'를 의미한다(시 130:4).
니팔 분사형은 '무서운' terrible, '두려운, 경외하는 awesome, 혹은 '무서워하게 하는' terrifying과 같은 것들을 묘사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다. 이것은 '두렵게 되다'의 니팔분사형의 동명사적 특성의 좋은 예이다(GKC, 116e). 이것은 장소(창 28:17), 하나님(출 15:11), 하나님의 이름(신 28:58), 하나님의 행위(출 34:10), 백성(사 18:2), 그리고 주의 날(욜 2:31, H3:4)을 묘사한다.
(c) 피엘형에서 이 단어는 '두려워하게 하다, 무섭게 하다'를 의미한다(삼하 14:15, 느 6:9, 느 6:14, 느 6:19, 대하 32:18).(참조: A. BOWLING;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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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K;(3513, 카바드) 무겁다, 힘겹다, 짐이 되다, 존경하다, 영화롭다, 존귀하다
카바드 또는 카베드(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무겁다, 힘겹다, 짐(부담)이 되다, 영화롭다, 존귀하다, 견고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15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필, 푸알,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의 기본의미는 '무겁다' be heavy, '중량 있다' be weighty이며, 이 단어의 의미는 거의 문자적 의미로 쓰이지 않고, 비유적 의미(예: "죄가 무거운")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비유적 용법으로부터 사회적 유명인사 즉 영예롭고 인상적이며 존경할 만한 저명인사에 대한 개념의 단계에 쉽게 이른다. 이러한 후자(비유적인 의미)의 용법은 출현 횟수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카바드의 문자적 의미는 다음 구절에서만 사용된다. 삼상 4:18, "엘리가...비둔한 연고라", 삼하 14:26, "압살롬...그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카바드는 세가지 비유적 용법을 나타낸다.
첫번째의 용법은 대부분 바로와 관계하여 발견되며 일곱 구절에서 쓰인다(출 7:14, 출 8:15, H11, 출 8:28, H32, 출 9:7, 출 9:34, 출 10:1, 삼상 6:6). 그 상황 혹은 히브리 백성의 청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 바로의 거부는 마음의 완악함 혹은 강퍅함으로 간주된다(참조: Gildlestone의 주장, SOT, pp. 66-67). 마찬가지로 귀(사 6:10, 사 59:1, 슥 7:11), 눈(창 48:10)은 둔하고 무디게 될 수 있다.
가혹함에 대한 비유로서 무거움은 노역(출 5:9 등), 멍에(왕상 12:10 등), 전쟁(삿 20:34 등)을 말해준다. 이러한 가혹한 재난은 3회에 걸쳐서 재앙으로 무섭게 내리치시는 하나님의 손으로 표현되고 있다(삼상 5:6, 삼상 5:11, 시 32:4).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람의 손은 다른 어떤 사람을 무겁게 누를 수 있다(삿 1:35, 욥 33:7).
또한 어떤 사람은 반드시 고의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다른 어떤 사람에게 짐이 될 수 있다(삼하 13:25, 대하 10:10, 대하 10:14, 대하 25:19, 느 5:15).
혹독한 속박이 비유적 의미, 즉 "무거운 멍에"에 의하여 표현된다는 사실(참조: 왕상 12:4, 대하 10:4, 대하 10:11)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인 "내 멍에는 쉽고"(마 11:30)라고 말씀하시도록 하였다.
가혹함에서 큼이란 의미가 되는 것은 단순한 단계이며, 여러 경우에서 함축적인 의미를 고려하여 완전히 명백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심히 중했다는 진술이 그것이다(창 18:20). 이러한 것은 죄가 컸다는 말인가, 아니면 죄가 심각했다는 말인가? 또한 사 24:20, 시 38:4, 욥 6:3 등도 그러하다. 어쨌든 죄는 그것을 지는 자로 하여금 무겁고 둔하게 하는 짐이라는 것이 분명하다(참조: 사 1:4, 잠 27:3).
합 2:6은 볼모 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를 공격할 때 이러한 방법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참조: 나 3:15).
한 경우에 아브라함은 재물이 풍부한 자로 언급되며(창 13:2), 그 문맥은 그의 재물의 풍성함이 언급된다는 것을 명백하게 한다. 이것은 잇따른 용법에 대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두 번째의 주요한 부류는 이 단어의 비유적 용법의 확대이다. 이 경우에 이 단어의 개념은 가치 있거나 혹은 인상적이라는 의미에서 무게가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번역은 "영예로운, 존경 받는, 영광스러운, 영화로운" 등과 같다. 니팔형과 피엘형의 어간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의미들을 지닌다.
개인의 평판은 이러한 용법의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고위층에 속하며 부유한 자는 자연적으로 사회에서 존경 받고 저명한 인사가 되었다(민 22:15 등). 이러한 지위와 부와 장수는 일반적으로 의로운 삶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생각되었다(참조: 왕상 29:28 등). 사람이 이와 같은 위치에 이르게 되면 자연적으로 존경을 받게 되는 반면에, 또한 그러한 존경과 영광을 받을 만하다고 기대되는 것이 분명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책임과 권한을 지닌 위치에 있는 자는 존경 받을 만하였다(출 20:12, 말 1:6). 존경 혹은 영예를 표하는 것이, 어떤 사람이 존경, 관심, 순종을 받을만하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으로 상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존경할만한 말을 뒷받침 못하는 생활은 지고한 형태의 위선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면서 행동으로는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는 죄를 거듭 거듭하여 저질렀다(사 29:13).
셋째 용법은 '크기, 숫자, 무게'에 대해 사용되었다(삼하 14:26, 시 8:24, 나 3:10).
(참조: J. N. OSWALT;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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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계명 규례 율례의 구별
◎ 규례(規例, Ordinance): 일정한 규칙과 정해진 관례(관습이 된 전례).
[히]qjo(choq), jQ;ju(chuqqah), fP;v]mi(mi shpat).
[그] dikaivwma(dikaioma), kanwvn(kanon)
[영] Ordinance, Statute규칙과 정례.
규례는 [규례와 법도]라는 말로 구약에 수없이 보여 지고, 신명기에 있어서만도 17회나 나온다(신 4:1,5,8,14,45,5:1,31, 6:1, 20, 7:11, 8:11, 11:1, 32, 12:1, 26:16,17, 30:16).
특히 신 4:1에서 [규례]로 역된 히브리어는 명사 [호-크]로서, [새겨 넣는다], [조각한다]의 파생어이고, [영속적인 성문율(成文律:문서로 작성된 법률. 성문율. ↔불문법), 법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율례와 비슷함.[법도]로 역된 히브리어는 명사 [미슈파-트]인데, [판단한다] [판결한다]의 파생어로서, 권위 있는 자에 의해, 혹은 옛 부터 관습에 기초하여 내려진 법적인 결정이 [법도]로 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규례]와 [법도]는, 특히 신 5:31,6:1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키라 명하시고 있는 모든 명령의 내용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모든 것을 [규례와 법도]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구약에 있어서, 이들 용어법이 반드시 통일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규례와 법도]는 신명기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시려는 일체를 포함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모든 것을 가리켜 말하는, 가장 표준적, 일반적인 표현으로 여겨진다.
[규례]로 역된 원어는 17이나 되고, 각각의 역어도 여러 가지로 되어 있다.
이들 명사(名辭)를 신성한 규례와 세속의 규례로 구별하는 시도도 행해지지만, 엄격한 구별을 하기는 곤란하다.
히브리인 및 기타의 고대인은 현대인처럼 양자의 구별을 세우지 않았다.
생활의 전부가 신성하고, 모든 규례는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규례와 법도]도 한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모든 것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율례(State)
[히] qjo(choq), hQ;j(chuqqah)
[영] State 볍률의 정례(定例 일정한 규례. 정해 놓은 사례), 율법. →규례와 →법도.
◎율법
[히] hr/T (torah) [아] tD(dath) [그] novmo"(nomos)
[영] Law모세의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백성의 생활과 행위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
[율법]이라는 말은, 구약의 율법 및 [율법책]을 가리키는 일도 있고, 구약성서 전체를 뜻하는 일도 있다.
단순한 법률만이 아니고, 히브리원어는 [토-라-]가 원래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듯,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의 계시인 동시에, 그 여러 가지 규정의 배후에 절대적인 하나님의 요구가 있는 것으로 되고 있다.
그 내용에는 제의적 규정이라든가, 사회적 규범도 포함 되어 있지만, 그 뼈대를 이루고 있는 것은 윤리적인 것으로서, [십계명](출 20:1-17,신5:6-21)은 물론이고,
[언약서](계약서, 출 20:23-23:19) 및 [율법](신 12-26장), 또는 제의적 규정이 거의 전부인 레위기에 있어서도, 한가지로 그렇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율법의 중심은 하나님의 의이다.
율법을 따라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생명이 주어지고, 악을 행하는 자의 죽음으로써 벌해지는 것이 의의 원칙이다(신 4:1,8:19,20,겔 18:18,19).
유대교인의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이 행해질 수 있다고 하지만, 원래 이스라엘에 율법이 주어진 것은, 출애굽의 구원이 행해진 후이고, 특히 홍해를 건넘에 있어서 하나님의 이적적인 은혜의 능력이 보여 지고 나서, 그 후 시내산에서 언약의 구체화로서 십계명이 주어진 것이다.
먼저 은혜의 선택이 행해진 후에 계약이 체결되고, 그 구체화로서 하나님의 백성의 생활규정으로서의 율법이 주어진 것이다.
율법의 행위에 의해 구원을 획득하려는 바리새주의는 이 순서를 역행하는 일인 것이다.
율법의 요구를 앞에 두고서의 인간의 죄, 율법을 자력으로 행할 수 없음의 죄를 자각한 것은 선지자이고, 특히 예레미야였다.
인간에게 거룩하게 사는 일을 명하는 율법은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약속을 내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레미야가 말한[새 언약](렘 31:31-34)을, 친히 자기의 십자가의 피로 성취하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였다(막 14:24).
예수는 모세의 율법을 폐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 왔다고 선언하시고(마 5:17), 율법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다(막 7:13).
예수께서 공격하신 것은 바리새인의 왜곡된 율법주의이고, 율법의 본래의 의도를 회복하고 성취하려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를 믿는 자는, 자력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율법주의의 멍에에서 해방되는데, 동시에 그 자유로써 서로 봉사하는 [그리스도의 율법(사랑) 아래로 부르심을 입는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율법의 완성 이다(갈 5장,롬13:8-10).
1. [율법]으로 역된 히브리어 명사 [토-라-]의 개념은,
유대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 본성, 성격, 목적]에 대해 알려 주신 것,
또 인간의 존재와 행동에 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알려주신 것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G.F. Moore).
이 [토-라-]를 구미에 있어서는 모두 [법률]을 의미하는 말로 역되어 있다.
이것은 최고의 그리어역 구약성서(칠십인역)가 [노모스]로 역하고, 여기서 라틴어역의 레쿠스를 거쳐 [로-]로 된 것이다.
한글개역에서 이것을 [율법]으로 역한 것은, 세속적 의미의 법률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같이 [토-라-]는 보통 법률이라든가 율법으로 역되어 있는데, 원래는 지시한다든가 교시한다를 의미하고, 특히 하나님께서 제사장이나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것을 말했다.
그러나 이들 [토-라-]가 이스라엘의 생활 규칙으로서 법전화된 것에 의해, [토-라-]는 [교시]라는 의미도 새로이 취득하기에 이른 것이다.
2. [다-트]는 아람어 명사로서, 바사어(페르샤어)[다-타 data]에서 온 외래어인데, 바사시대의 법률에 한하여 인용되고,
[율법](스 7:12,14,21,25,단 6:5), [율법](에 1:19,3:8,8)로 역되어 있다.
3. [노모스]는 법 일반을 가리키는 외에, 개개의 법, 모세의 5서, 구약전체, 하나님의 요구를 가리켜 씌어진 헬라어 명사인데, 다만, 이 말이 사용되지 않고서도, 주제로서, 율법의 문제가 논해진 경우도 적지않다.
◎계명(誡命,Commandments)
[히] hj;x]mi(mitswah) [그] ejntolhv(entole)
[영] Commandments권위 있는 자에 의해 말해진 권위의 말씀, 또는 명령.
따라서 이것은 의례 하나님에 대해서 씌어지고, 특히 하나님의 명령이나 율법을 가리킨다.
[명령을 준다, 지정한다, 위임한다]는 의미를 어원(語源)으로 가진 히브리어의 [미츠와-], 헬라어의 [엔톨레-]가 대표적인 용어이다.
구약에서는 모세 5경에 보여 지는 하나님의 율법 및 십계명을 일반적으로 가리키고,
신약에서는 예수에 의해 요약된 두 가지의 계명,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마22:35-40,막 12:28-34,눅 10:25-28→신 6:5, 레 19:18)는 것이 현저하다.
그러므로 예수의계명은 [사랑하는 일]이다(요 13:34,14:15,21).
이 밖에 신약에서는 인간의 명함이나 교훈에 대해서는 [훈계], [권한]등의 용어가 씌어져 있다(행 20:31,롬 15:14,고전 4:14등).
원어는 수종의 것이 [계명]으로 역되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은 다음 2어이다.
1. [미츠와-]-구약에 181회 인용되고, [계명](창 26:5기타, 출 15:26,20:6기타), [명령](신 4:2기타), [규례](느10:32)등으로 역되어 있다.
이것은 동사 [차-와- hj;x,(tsawah), piel.]에서 온 말로서, 이 동사는 485회 인용되고, [명하다](command)로 주로 역되어 있다.
2. [엔톨레-ejntolhv(entole)]-헬라어 명사로, [졔명], [명령](막 10:5기타_으로 주로 역되고 71회 씌어져 있다.
이것은 동사 [엔텔로-ejntevllw(entello)][명령한다, 당부한다, 가르친다](to command, giveorders, instruct)에서 온 말로서, 칠십인역이 히브리어 [미츠와-]의 역어로 쓴 말이다.
계명과 율례와 법도 그리고 율법
구약 성경의 용어들 중에서 서로 간에 명확한 구분 없이 혼용 번역됨으로써 의미 파악에 혼동을 야기하고 있는 경우는, 계명(誡命), 명령(命令), 금령(禁令), 율례(律例), 규례(規例), 규정(規定), 정규(定規), 법도(法度), 법(法), 법령(法令), 공도(公度) 등의 단어들을 혼역(混譯)한 것이다.
계명은 히브리어로 ‘미츠와’인데 이 말은 원 뜻인 '계명', '명령', '금령'으로 번역 된 외에 '정규', '규례' 등으로도 번역하였다.
또한 율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호크’ 또는 ‘후카’인데 이것은 '율례', '규례'이외에 '법', '법도', '명령', '규정' 등으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법도는 히브리어로 ‘미쉬파트’인데 원 뜻은 '법도' 혹은 '판결', '심판'이다.
그러나 미쉬파트의 번역된 용례를 보면 원 뜻인 '법도'나 '판결', '심판', '재판'이외에도 '규례', '율례', '공도', '방식'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하였다.
이상에서처럼 세 가지 용어가 서로 간에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개역 성경에서 이와 같이 세 종류의 히브리어 단어를 혼역(混譯)하고 있는 것은 다양한 표현력을 구사함이 아니라, 원어에 대한 정확한 지식의 결여와 함께 이스라엘 법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o 계명
- 히브리어 : '명령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차와’에서 파생된 ‘미츠와’
- 헬라어 : ‘엔톨레’(Commandment)
- 의미 : '명령', '금령'
o 율례
- 히브리어 : '자르다'라는 의미의 ‘하카’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호크’ 또는 ‘후카’
- 헬라어 : ‘카논’(Canon)
- 의미 : '규례', '풍속', '관습'
o 법도
- 히비르어 :는 '다스리다' 또는 '재판하다'라는 의미의 ‘솨파트’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미쉬파트’
- 헬라어 : ‘크리시스’(심판의 뜻) 또는 ‘노모스’(율법 혹은 법률의 뜻)
- 의미 : '판결', '심판'인데 개념이 확대되어 '법'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됨.
여기서 이스라엘의 세 종류의 법체계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상에서 세 단어가 원어로써 구별되어질 뿐 아니라 법체계 상으로도 명확히 구별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법체계는 도덕법과 종교법 그리고 사회법이라는 세 종류의 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명' 즉 미츠와는 도덕법(Moral Law)의 핵심이 되고 있는데,
도덕법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및 인간들 서로간의 관계를 규명한 것으로서 사실상 법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명령(Commandments)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출 20:3-17과 신 5:7-21의 십계명(The Ten Commandments)에서 명확히 도출되어짐을 알 수 있다.
십계명은 율법(토라, )의 대표적인 내용으로서 인간 행위의 옳고 그름을 인간 스스로 판별할 수 있게 하는 기준으로 계시되었으며(롬 7:7)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를 따름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고 생명을 얻을 길이 열리게 되었으나(롬 7:10), 인간 내부의 부패성은 도리어 계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사망으로 가게하고 말았다고 했다.(롬 7:11)
구약의 십계명이 신약에 와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십계명은 내용상 하나님에 대한 것과 사람들간의 것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를 주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가지 큰 계명으로 집약하여 주셨다.
십계명은 또한 '하라'라고 하는 적극적 명령과 '하지 말라'라고 하는 소극적 명령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라'라는 명령은 우리의 속 사람 곧 영이 마음으로 섬기고자 하는 '하나님의 법'을 말하며 '하지 말라'라고 하는 명령은, 육신의 정욕이 좇고자 하므로 금지해야 하는 '죄의 법'을 뜻하는 것이다.
십계명을 포함해서 성경에 나타나는 계명은 모두 613개(個)이다.
이 중 '하지 말라'고 하는 계명은 일 년의 날수와 같은 365개이며 '하라'라고 하는 계명은 사람의 지체의 숫자와 같은 248개이다.
이는 다시 말해 우리가 일년 내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지체를 가지고 열심히 해야 할 것들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신약에서 계명의 의미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칭의된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을 좇아 삶으로써, 점차 그리스도를 닮아 가기 위해 필요한 하나님의 요구사항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율례'를 뜻하는 호크 또는 후카는 이스라엘의 종교법(Religious Law)
즉 성막, 제사, 절기 등을 규정한 것으로 십계명 중에서 처음 네 가지의 하나님께 대한 것을 세부적으로 규정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출 13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를 지킬 것을 명하셨다.
절기는 히브리어로는 ‘하그’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헤오르테’라고 하는데 둘 다 축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 뒤에 십계명을 주신 후에는 ‘미쉬칸’이라고 부르는 성막을 짓고 제사를 지내는 방법 등을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제사는 히브리어로는 ‘자바흐’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뛰시아’라고 하는데 이것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지켜야 할 종교 법규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법도'라는 뜻의 미쉬파트는 사회법(Social Law)을 이름인데
십계명 중에서 특히 인간들 상호간의 도덕적 규범을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하기 위한 세부적인 법의 적용이라고 볼 수 있다.
미츠와와 호크 또는 후카가 이스라엘에만 적용되는 특수한 성격을 가졌다면,
미쉬파트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고대의 국가들이 국가 존립을 위해 스스로 형성한 함무라비 법전 등과 같은 일반적 법체계와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이 있다.
계명에 대하여 연구한 김에 율법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율법(토라)은 협의적 개념과 광의적 개념의 두 종류가 있는데, 협의적으로는 율법 또는 율법서라고 하며 헬라어로 ‘노모스’라고 한다.
그러나 광의적으로는 성경 말씀 전체를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구약으로만 이루어진 성경을 그냥 토라라고 부른다. 이를 헬라어로는 ‘그라페’라고 한다.
협의적 개념의 율법 즉, 노모스는 앞에서 살펴 보았던 계명(미츠와)과 율례(호크 또는 후카) 그리고 법도(미쉬파트) 등으로 구성되고, 이는 다시 광의적 개념의 율법인 그라페 안에 포함된다.
그라페는 협의적 율법인 노모스를 비롯해서 예언서인 ‘네비임’과 성문서인 ‘케투빔’으로 구성된다.
케투빔에는 역사서와 시가서 등이 포함된다.
한편 유대인들은 성문화되지 않은 방대한 량의 구전 율법을 가지고 있었는데 약 AD 200년 경 이를 집대성하여 ‘미쉬나’라고 하는 구전 율법 모음집을 탄생시켰다.
미쉬나는 농경법, 절기법, 여자에 관한 법, 손해에 관한 법, 성물(聖物)에 관한 법, 정결 의식법의 여섯 가지 내용으로 분류되어 있다.
미쉬나란 '반복'이라는 뜻이다.
AD 3 ~ 5 세기에는 미쉬나의 주석으로 '학자'라는 뜻의 ‘탈무드’가 만들어졌다.
미쉬나가 본문이라면 주해 부분을 특히 게마라( , 완성)라고 하는데 탈무드는 미쉬나와 게마라를 총칭하여 일컫는 말이 되기도 하였다.
탈무드는 예루살렘 탈무드와 바벨론 탈무드의 두 종류가 있는데 예루살렘 탈무드가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반면 바벨론 탈무드는 섬세하기는 하나 지루하게 편집되었다.
한편 탈무드가 만들어진 것과 같은 시기에 토라와 미쉬나에 대한 해석과 많은 설교 내용이 담긴 ‘미드라쉬’(탐구)도 만들어져서 함께 전해져 내려왔는데, 이는 곧 율법 해석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율례와 규례, 또는 법도
1. 구약 성경에서 율례와 규례, 또는 법도는 모두 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과 교훈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러한 단어들은 하나씩 따로 나오기도 하지만, 종종 두 단어나 세 단어가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약 성경에는 "율례와 규례", "율례와 법도", 그리고 "규례와 법도"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율법과 교훈)을 강조하는 중언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2. 율례와 규례
(시 147:19)을 보며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여기에서 율례와 규례는 "후카 우미쉬파타"를 번역한 말인데, 이는 직역하면 '법령과 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율례와 규례를 굳이 구분하면, 율례는 "제정된 법률", 즉 입법화되거나 성문화된 법을 의미하고, 규례는 "판례나 구속력 있는 법을 근거로 해서 내린 판결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대상 22:13)에서는 율례와 규례가 하나님의 모든 율법과 교훈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든 율례와 규례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찌어다(대상 22:13)."
3. 율례와 법도
(출 18:20)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여기에서 율례(호크)와 법도(토라)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 주신 모든 종교법과 시민법을 의미합니다.
보통 율례는 성문화된 율법을 의미하고, 법도는 훈령(각종 교훈)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출 18:20)여기에서 '율례'(호크)는 종교적인 법을, 그리고 '법도'(토라)는 시민 생활에 관계된 일반법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율례와 법도는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강조하는 중언법적(重言法的)인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신 5:1).
(겔 44:24)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 내 모든 정한 절기에는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이며 또 내 안식일을 거룩케 하며..." 여기에서 규례는 재판할 때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는 절기법, 즉 절기를 지키는 데 필요한 각종 의식법과 절차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4. 법도와 율례, 또는 법도와 규례
(겔 43:11)을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전의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여기에서 법도와 율례, 그리고 법도와 규례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 가르쳐 주신 각종 종교법과 규례들을 의미합니다. 이 종교법과 규례들은 장차 완성될 새로운 성전 시대에 적용될 새로운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계명과 법도와 율례
"대하 34:31)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
여기에서는 계명과 법도와 율례라는 말이 함께 사용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모든 법과 교훈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계명은 분명하고 절대적인 명령(십계명처럼)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도는 각종 훈령과 교훈, 율례는 제정된 법률을 의합니다.
6. 참고로 구약 성경에서 가장 긴 시편 119편을 보면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의 유익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10개에 가까운 동의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등장하는 10개의 단어들은 시 119편에서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 "(율)법"(토라;25번 사용)..."지시", 또는 "훈령". 이 말은 "교훈의 핵심"을 의미하며, 때로는 레위기나 신명기, 또는 모세 오경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예) (요 10:34)-"계명"이란 말이 구약 전체를 의미함.
2) "말씀"(다바르: 20번 사용)..."하나님의 계시".
3) "말씀"(이므라;19번 사용)..."말씀"(다바르)의 '동의어".
4) "계명"(미츠와; 복수형 21번, 단수집합명사 1번)...."분명하고 절대적인 명령", 종종 "율례"와 "규례"라는 말과 함께 사용됨.
5) "율례"(후킴: 21번)..."제정된 법률". 시 119편에서 이 말은 항상 복수로 사용됨.
6) "규례(미슈포트: 단수형으로 4번)..."전례나 구속력 있는 법을 근거로 해서 내린 판결", 또는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7) "법도"(피쿠딤: 21번)..."훈령". 시편에서만 복수형으로 사용됨.
8) "증거"(에다: 복수형으로 22번, 단수형으로 1번)..."하나님의 뜻에 대한 선포"나 "엄숙한 증거".
이 말은 "하나님의 행동 기준이 되는 법령"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용어임.
9) "도"(데레크: 복수형으로 5번, 단수로 6번)..."하나님의 율법에 규정된 삶의 형태"를 가리키는 말.
10) "길"(오라흐: 시편에서 5번 사용됨)...."도"와 같은 의미로 사용됨.
시 11편에서 이 모든 단어들은 약간씩 그 강조점이 다르지만, 그 의미는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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