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2.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마15.생명에이르는참경건.가나안여인의일사각오로생동하는산믿음_예수기도.광야의식탁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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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하나님의 진리말씀과 하나되어...assuredly and, most solemnly)...영(심령, 내적 자아로)과 진리로(하나님의 말씀 바로 그대로) ...really and truely 

##전파된 복음, 곧 믿음의 말씀<the word of faith :: 그리스도께서 구주시며(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으로서의 권능, 주권, 위엄을 가지신 분임을 깨달아 인식하고 시인함) 하나님이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선포된 말씀>을 귀기울여 들음으로써(hear) 바로 그대로 마음에 믿고(believe and trust in : ) <그리스도 예수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구주되심과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곧 마음에 믿고 구주로 영접한 바 입으로 고백하여 시인하면> 구원을<영생에 이르는 구원>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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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의 믿음의 상승, 증강 단계 :: 1>[도우시는] 주님을 신뢰, 앙망, 의지하는 믿음 :: belief [ :: believe (trust) in, rely on, cling(adhere) to God]...하나님을 앙망하며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주 이름 불러 하나됨 그 안으로 믿어들어감의 신뢰/앙망하는 믿음 ==>2>[산을 옮기는, 발휘되는] 하나님의 전능한 믿음 :: faith, 내주하시는 하나님이 친히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믿음(하나님의 전능한 믿음 = Faith....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신자안에서 찾으시는 믿음이요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산을 옮기는 믿음 faith이다) :: 이를 위해 기도와 금식 통해 <전존재, 목숨 걸고> 주님을 추구하라 하심!!

-----------[관련 성구..개역개정/AMP]-------

[마17:20]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 20 He answered, “Because of your little faith [your lack of trust and confidence in the power of God]; for I assure you and most solemnly say to you, [c]if you have [living] faith the size of a mustard seed, you will say to this mountain, ‘Move from here to there,’ and [if it is God’s will] it will move; and nothing will be impossible for you. 

[요4:23-24]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3. But a time is coming and is already her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from the heart, the inner self] and in truth; for the Father seeks such people to be His worshipers. *24.  God is spirit [the Source of life, yet invisible to mankind], and those who worship Him must worship in spirit and truth.” 

[요5:24, 25]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4 “I assure you and most solemnly say to you, the person who hears My word [the one who heeds My message], and believes and trusts in Him who sent Me, has (possesses now) eternal life [that is, eternal life actually begins—the believer is transformed], and does not come into judgment and condemnation, but has passed [over] from death into life.  *25.  I assure you and most solemnly say to you, a time is coming and is [here] now, when the dead will hear 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those who hear it will live.

[롬10:8-15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8 But what does it say? “The word is near you, in your mouth and in your heart”—that is, the word [the message, the basis] of faith which we preach—  *9.  because if you acknowledge and confess with your mouth that Jesus is Lord [recognizing His power, authority, and majesty as God], and believe in your heart tha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you will be saved. *10.  For with the heart a person believes [in Christ as Savior] resulting in his justification [that is, being made righteous—being freed of the guilt of sin and made acceptable to God]; and with the mouth he acknowledges and confesses [his faith openly], resulting in and confirming [his] salvation. *11.  For the Scripture says, “Whoever believes in Him [whoever adheres to, trusts in, and relies on Him] will not be disappointed [in his expectations].” *12. For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Jew and Gentile; for the same Lord is Lord over all [of us], and [He is] abounding in riches (blessings) for all who call on Him [in faith and prayer]. *13.  For “whoever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in prayer] will be saved.” *14.  But how will people call on Him in whom they have not believed? And how will they believe in Him of whom they have not heard? And how will they hear without a preacher (messenger)? *15. And how will they preach unless they are commissioned and sent [for that purpose]? Just as it is written and forever remains written, “How beautiful are the feet of those who bring good news of good things!”



개역개정]마15장

===장로들의 전통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가나안 여자의 믿음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다

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사천 명을 먹이시다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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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마15:1~20 막7:1~23 막3:22

*2.마9:11 히11:2 갈1:14 골2:8 눅11:38

**4.출20:12 출21:17

**6.갈3:17 롬2:23

*7.마23:13

*8.사29:13 겔33:31

*9.골2:22 딛1:14

*10.마13:51

*11.행10:14,15

*12.마5:29

*13.사60:21 사61:3 요15:1,2 고전3:9 유1:12

*14.마23:16 마23:24 사56:10 말2:8 눅6:39

*15.마13:36

*16.마16:9

*17.고전6:13

*18.마12:34 약3:6

*19.약2:4 마9:4 창6:5 시56:5 마5:22 마5:28 출20:13~16 엡4:31 골3:8 딤전6:4

*20.고전6:9,10 막7:2 막7:5

*21.마15:21~28 막7:24~30

*22.창10:15 창10:19 삿1:30~33 막7:26 마9:27

*23.마14:15

*24.롬15:8 마10:5,6

*25.마8:2

*26.마7:6

*27.눅16:21

*28.마9:2 마8:13 마9:22 마17:18 요4:52,53

*29.마15:29~31 막7:31~37 마4:18 요6:1 마5:1

*30.마11:5

*31.마18:8 막9:43 마9:33 사29:23 눅1:68 행13:17 마9:8

*32.마15:32~39 막8:1~10 마14:14~21 마9:36

**34.마16:10

**36.마26:27 막14:23 눅22:17 눅22:19 요6:11 요6:23 행27:35 롬14:6 고전10:30 고전11:24 고전14:16 딤전4:3,4

*37.왕하4:42~4 

**39.수19:38 막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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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5장 (개요)

이 장(章)에서 우리는 우리 주님이 가르치시는 위대한 선지자요, 치유하시는 위대한 의사요, 양을 돌보시는 위대한 목자요, 또한 영들을 가르치시는 아버지시요, 사탄을 추방시키시는 정복자요, 그의 백성들의 몸을 돌보시며 준비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내용별로 보면,

Ⅰ.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유전과 전통에 관하여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더불어 이야기하심(1-9).

Ⅱ.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에 관하여 무리들과 또한 제자들과 더불어 이야기하심(10-20).

Ⅲ. 그리스도께서 가나안 여자의 딸에게서 귀신을 내어쫓으심(21-28).

Ⅳ.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데려온 모든 병자를 고쳐 주심(29-30).

Ⅴ. 그리스도께서 일곱 개의 떡과 두세 마리의 물고기를 가지고 사천여 명을 먹이심(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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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과 전통에 관한 논쟁(마 15:1-9)

악한 관례들(manners)이 [끼치는 그 폐해와 해악을 참되게 인지-성찰-분별 통해 도출한 대책_결단은]좋은 법칙들을 생기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유대인 교사들이 그들의 성직제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뿜은 과도한 [육적]열기(熱氣)는 우리 주님으로 하여금 여기에 있는 것과 같이 진리를 설명하기 위한 탁월한 많은 대화들을 하시도록 동기를 유발시켰다.

Ⅰ. 여기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을 들어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트집을 잡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유대 교회의 [자칭] 위대한 사람들이었으며(그들중 대다수는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있는 외식자이면서 경건을 사익의 재료로 삼았다 !! 조심하라),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는 대원수였다.  

실상 그들은 사람의 양심에 대해 그들의 폭력을 행사하려고 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사악한 마음에서 나온] 반대를 모세 율법에 대한 거짓된 열심으로 가장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학식이 있었고 또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여기에서 소개된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심판의 보좌가 놓여 있고, 서기관들이 올라갔던" 예루살렘에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았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나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외적인 특권들은 만일 그것들이 [참되고]정당하게 활용되지 못한다면 사람들을 교만과 사악으로 더욱 부풀게 한다는 사실이다.

예루살렘은 순수한 샘이 되었어야만 했지만 지금은 독이 있는 웅덩이가 되고 말았다. "신실한 도성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이 [자칭] 위대한 사람들이 고소자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대해 그리스도에게 제시한 제자들의 죄목이 무엇이었는가? [사람의 교훈으로 덧씌운 바 그들만의 유대] 교회의 표준에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진리의 보편타당함과 그 적용됨을 도용하여]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비난할 수가 있겠는가?(2절) 즉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라고 그들이 특별히 그 제자들을 고소한 실례는,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한다"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가증스런 비행인가! 

그것은 이러한 관습이 그들이 고소할 수 있는 최대의 악행이었는데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것을 범하는 행동을 하였다는 표식이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1. "장로들의 유전"이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사람들이 종종 손을 씻어야 하며, 식사할 때는 언제나 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불결한 손으로 만진 음식이 그들을 더럽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므로 손 씻는 것을 최대의 의무로 간주하였다. 

바리새인들은 그들 자신이 이것을 실천하였으며, 이는 양심의 문제로서 위반하면 공적인 형벌을 받는다는 단서를 붙임으로써 이 규율을 다른 사람들에게 엄격히 부과하였다. 

(*랍비 요세(Joses)는 "불결한 손으로 먹는 것은 간음한 것만큼 큰 죄이다"라고 정하였다. 랍비 아키바(Akiba)는 그가 투옥되어 있을 때 손 씻을 물과 식사와 곁들어 마실 물을 받았는데, 그 물들이 우연히 쏟아지고 말았다. 그 때에 그는 마실 물은 하나도 남기지 않은 채 그 나머지 물로 손을 씻으면서 말하기를 장로의 유전을 범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하였다. )

아니, 그들은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은 자와 더불어 식사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교회 억압자들은 대개 그들 나름대로 제정한 법칙들을 실천하게 하며 그들 자신의 부과물들을 열심히 짐 지우려고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지 못하였다면, 그들이 이렇게 적은 일에 광분하는 것이 매우 새삼스럽게 보일 것이다.

2. 제자들은 이 유전과 계율 중에서 어떤 것을 범하였는가? 

아마도 제자들은 식사할 때 그들의 손을 씻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을 몹시 불쾌하게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일들에서 엄격하고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관습은 해롭지 않은 것이었으며, 또한 공공연하게 쓰일 때 예의가 바르고 고상한 것이 되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참석하셨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보듯이  정결케 하는 물(요 2:6)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것을 포도주로 바꿈으로써 쓸모 없이 해버리셨다. ((상대화 하셨다!!...생명과 사랑의 HS의 생각이야말로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리라!!))

손을 씻는 것이 [[ 그 안에 있는 영적 의미에 대한 고찰과 깨달음 없이]] 종교적인 의식과 예식으로 [상황과 환경에 따라 최선이 아닐수도 있음을 도외시 한 채, 강제적으로 옥죔이 되고] 꼭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  [모든 이에게] 부과되었을 때 또한 그것에 대해 이와 같이 강조되었을 때 제자들은 비록 지식에 있어서 빈약하기는 했지만 그것에 순응하거나 준수하지 않도록 잘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다. 

[따라서]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은 결코 그러한 의식을 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사도 바울의 교훈, 즉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는 말씀을 터득하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 강제적 규범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영혼더러 우리가 지나가도록 머리를 숙이라"고 말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굴복하지도 수긍하지도 않을 것이다(고전 6:12).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에 대하여 어떠한 불평을 하였는가? 

그들은 그리스도가 틀림없이 그 자신이 먼저 모본을 보이셨기 때문에 (역주:  절대적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으셨기에!!....절대적 중요성을 절감하고 동의하셨다면  실제로 그는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그 제자들이 그렇게 하게 되었고 또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고 추측하면서 그 문제에 관해 그리스도와 논쟁하였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교회의 규범을 범하나이까?   어찌하여 당신을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라고 하시나이까?" 

그 불평을 그리스도에게 [직접] 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제자들은 비록 이런 경우에 처했을 때 자신들이 각자마다 대답ㅎ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마도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하여 마땅한 합리적 이유를 [적절하고도 충분히] 제시하지는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Ⅱ. 여기에는 이 트집에 대한 그리스도의 답변과 또한 법을 어겼다고 고발당한 제자들의 정당성을 변호하신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그리스도께서 자유롭게 해 주신 자유안에 견고히 서 있을 동안에는, JC는 확실히 우리들을 변호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는 두 가지 방법으로 그들에게 답변하고 계시다.

1. 반소(反訴, 오히려 상대방을 도로 고소하는 것)의 방법에 의해(3-6) .

그들은 그의 제자들의 눈에 있는 티를 엿보고 있었지만, 그리스도는 그들 자신 눈안의 들보를 내보이고 계신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고소(告訴)하신 것은 진짜로 반소(反訴) 하신 것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비난하는 자를 정죄하는 것 자체는 스스로에 대한 변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비난은 불복하는 것이 마땅한 것(사리에 맞지 않는 것)을  오히려 권위를 내세워 짓눌러 억지로 정당하다고 우기고 규범화하여, 그 규범을 어겼다고 정죄하는 것을 의무로 삼는 그들의 유전에 대한 비난인 것이다(그들은 그 권위를 들어 고소를 제기하였다). 

신적인 권위와 충돌되는 인간의 권위를 추종할 필요는 없다.

(1) 주께서 반소하심으로써, 그들을 고소한  내용은  대충 보면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이다. 

그들은 그것을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부름으로써, 그 관례의 고전성(古典性)과 또한 로마 교회가 주교들과 공의회에 대해 하는 것처럼 그것을 부과한 자들의 권위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것을 더 명확하게 정의하시는 바 "그들의" 유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비합법적인 부과물들은 그것을 고안하고 명한 사람들의 책임일 뿐만 아니라  무심코 (영적 합리적 검증없이) 그것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사람들의 책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막 6:16 참조).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였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자신의 부과물에 대해 매우 열심인 자는 대개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 매우 소홀하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러한  사람이 억지로 지우는 부과물에 대해 반대한 이유는 그것들이 처음에는 단지 기독자들의 자유를 침범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권위를 대항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 자신은 [그들이 규정한 바] 식사 전에 손씻는 계명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침범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다른 계명은 [경시하고 상대화시킴으로써]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상대화 함으로써, 겉보기에 ]불순종한 그의 제자들의 행위를 변명하셨던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제 5계명을 범하고 있다는 특별한 예를 들어 이 고소를 입증하고 계시다.

① 하나님의 계명(4절)이 무엇인가. 즉 명령하는 것과 또 허락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보자.  

[Q경외하며 그분의 형언못할 충만한 사랑과 선하심을 공급하심을 그대로 거리낌없는 평강안에서 제대로 누리기 위해 절대 지켜야 할 준수명령으로서]그 율례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기억하라,,모든 사람마다 그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시며, 참된 기도는 나무의 뿌리요 줄기이신 분께로 받아들여지고, 그 받으신 바 효능을 을 통해 나무전체에 재분배 해주시고 계시다!!...이것이 HS안에서 HS따라 드리는 바 중보기도의 유익함이다!!))

이것은 인류의 공통된 아버지(Father)에 의해 분부되었으며, 또한 우리는 섭리자께서 우리를 존재케 하는 도구로 삼으셨던 자들(부모)에게 존경을 드림으로써 그들 부모에게 자신의 형상을 부여하셨던 창조자(Author)=근원자이신 그분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부모들에 대한 자녀들의 모든 의무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명령에 다 들어 있다. 이것은 나머지 모든 율례들의 근원이며 원천이다. 

"내가 만일 부모라면 내 영광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님은 여기에서 만일 기회가 있고 또한 부모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들을 부양하고 그들의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과부를 경대하라." 즉 그들을 부양하라(딤전 5:3).

제 5계명에 있는 이 율법의 허락은 "너희가 장수하리라"는 약속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누구든지 이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고 유익한 일이라고 추측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이러한 장수에 대한 말씀을 하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 의무가 생명누림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임을 나타내는 성경 구절, 즉 "부모를 훼방[=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출 21:17 에도 있음)에서 이 계명을 어겼을 때에 수반되는 형벌에 대해 강조하고 계시다. [진실로] 부모를 저주하는 죄는 그를 공경하는 의무와는 정반대가 된다. 

부모에게 악담을 하거나 잘못되기를 바라는 것, 그들을 비웃거나 욕설을 퍼붓고 무례한 말을 하는 자들은 이 율법을 깨뜨리는 자이다. 

형제에게 "라가"라고만 하여도 그렇게 중한 형벌을 받게 된다면 하물며 부모에게 그러한 욕설을 하는 것은 그 죄가 얼마나 클 것인가? 

주님이 말씀하신 이 율법의 적용에서 나타난 것은 부모를 섬기거나 편안히 해드리기를 거절하는 것도 그들을 저주하는 것에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비록 말로는 존경을 하고 또 저주를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행위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아버지여,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한 아들"과 다를 바 없다(마 21:30).

② 장로들의 유전이 이 계명에 대해 범하였던 모순이 어떤 것이었는가? 

장로들의 유전, 그 시작은 직접적, 노골적인 [절대적 계명으로서가] 아니라 다만 암시적, 상대적인 것이었는데, 그들 궤변가들은 이 계명의 의무에서 쉽게 도피할 수 있도록 만든 이러한 예외적 규칙들을 그들에게 제시하였던 것이다(5, 6절). [그러나, 분명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러나 너는 ~라고 말한다"고 [명백히 예외없이 계명을 준수하도록]말씀하셨음을 듣고 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위대한 사람이나 학식 있는 사람, 권세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사람들이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비추어 면밀히 검사(조사)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만일 그것이 [조금이라도 명백한 계명 말씀에]모순되거나 일치되지 않는 점이 발견된다면 분명히 거절되어야만 한다(행 4:19). 

다음과 같은 사실에 유의하라.

첫째, 그들의 [정해서 내려오는] 유전은 무엇이었는가? 

사람이 그의 세상적인 재산을 가장 보람있게 쓰는 길은 그것을 제사장에서 바쳐서 성전을 위해 쓰도록 하는 일이 [최우선]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어떤 것이 그와 같이 [제사장에게, 곧 성전에] 바쳐질 때 조차도 그것을 [임의로] 매각(또는 양도)하여 얻은 것으로 드림은 부당한 일일뿐만 아니라, 그 밖의 [부모공양까지 포함하여] 다른 책임들은(비록 그것이 의롭고 성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이로 말미암아 폐기가 되며 따라서 사람들은 그것을 행하는 것에서 면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그들의 의식과 성전에 대한 미신적인 관심에서 비롯되었으며 또한 한편으로는 그들의 탐욕과 돈을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성전에 드려진 것을 자기들의 것으로 삼았다. 전자는 하나의 구실이며 후자가 이 유전의 밑바닥에 있는 참된 의도였다.

둘째, 그들은 이 유전을 [확대해서] 그들이 자녀의 경우에는 어떻게 적용시켰는가? 

그들의 부모들이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때 그들은 자신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서 떼어 둔 모든 것을 성전 금고에 드렸다고 변명하였다.  

고르반, 즉 "그것은 내가 드려 당신을 유익하게 할 물건이 [성전, 곧 주께 드린바 되었다] "라고 선언해 버렸다... 

그러므로 [고르반]이라고 선언해 버리는 경우에는, 그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서 봉양받을 그 아무 것도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아예 정해버렸다. 

그들은 더욱이 그렇게 바쳐진 것들로 인한 영적인 유익은 그러한 분위기에서 살아야 하는 부모들에게 되돌려질 것이라고 명시하였다. 

그들이 가르쳤던 이 유전은 타당하고 유효한 변명의 구실이 되었으며, 많은 불효자식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자신들을 정당화하였으며,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이와 같이 그 의미를 보충설명해 볼 수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고르반]의 의미를 더 보충하여 말하기를, "그는 만사가 형통하며, 땅에서 장수하게 될 것이다. 그는 제 5계명을 정당하게 준수한 자로 간주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렇듯 종교적 위선은 부모를 공경하기를 거절하는 행동을 당연하고 그럴 듯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유전의 어리석음과 불경건은 매우 명백하였다. 

왜냐하면 계시된 종교의 목적은 자연적인 종교를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향상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근본적인 법칙은 우리의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그들이 "내가 제사를 원하지 않고 공의와 자비를 원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더라면 가장 필수적인 도덕을 파괴하는 이와 같은 임의적인 의식들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였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불순종으로 인도하거나 장려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결과적으로 말씀을 폐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려고 그런 것을 취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설명에 따르면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다.

율법을 깨뜨리는 것도 나쁘지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그와 같이  [ 본질적 핵심사상을 업수히 여기고 왜곡된 의도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더욱 나쁘다"(마 5:19). 

[그 주어진 본래적 의미=곧 생명과 사랑, 참 경건]을 따라  계명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만일 우리가 법칙에 의해 지배를 받지 않는다면 그 법은 우리들에게 아무 효과도 없게 된다. "주여, 지금은 당신이 일하실 때입니다." 

즉 위대하신 개혁자, 위대하신 정련사(Refiner)이신 당신이 나타나실 절호의 때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당신의 법을 폐하였기 때문입니다"(시 119:126). 

그들은 계명을 "적대"할 뿐만 아니라 그 계명을 "폐하여 버리는" 죄를 범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그들과 그들의 유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계명은 완전한 능력과 힘, 그리고 덕에 있어서 견고하다는 사실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심으로써 답변하시고 있다. 

그가 그들을 들어 책망하신 것은 그들의 외식이었다. "외식하는 자들아"(7절). 

여기에서 유의할 것... 외식자라고 선포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살피시며 사람 안에 있는 것을 아시는 자의 특권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의 눈은 겉에 드러나 보이는 모독(profaneness)만을 볼 수 있지만, 외식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눈뿐이다.(눅 16:15). 

또한 외식은 그가 발견하는 죄일 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이 무엇보다도 미워하는 죄이다

이제 그리스도는 이사야 29장 13절을 들어 그들을 비난하고 계시다.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이사야는 그가 예언하였던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말씀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하는 죄와 죄인들에 대한 책망은 세상 끝 날에 동일한 사람들과 행동들에 대해 책망하기 위해 의도되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사사로이 해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벧후 1:20). 

후일의 죄인들에 대해 예언되어 있다(딤전 4:1; 딤후 3:1; 벧후 3:3). 

우리가 동일한 죄를 짓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향했던 위협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이사야는 그들에 대해 예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로 책망을 받았으나 계속적으로 버티고 있는 외식가들에 대해 예언하였다. 

성경의 예언들은 매일 성취되고 있다.

이 예언은 정확하게 외식적인 국가들을 묘사하고 있다(사 9:17; 10:6). 여기에서 보면,

(1) 두 가지 일들에서 외식에 대해 묘사함.

① 그들 자신의 종교 예배의 수행에 있어서(8절).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외식가들은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는가?(어느 정도인가?) 

외식함으로써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며 또한 그를 존경한다. 그는 신앙을 고백하는 점에서 하나님의 예배자이다. 

"바리새인은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에 올라갔다." 

그는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처럼 하나님께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명성을 얻는다. 

사람들은 그를 존경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존경하는 자들을 존경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외식가들이 세상에서 경건의 모양과 형식을 유지하는 일을 할 때는 그들의 봉사에서도 어떤 존경을 받으시기는 하신다. 

하나님은 비록 본인들은 의도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로부터 스스로 존경을 받으신다. 

하나님의 원수들이 거짓으로 복종할 때, 즉 그들이 "거짓말을 할 때에"(시편 66편 3절은 그런 뜻이다), 그것은 오히려 그의 명예에 도움을 주며, 그는 "존귀를 얻게 되는 것이다."

둘째, 외식가의 거처는 어디인가? 

그는 그의 입과 입술로만 행동을 한다. 그것은 입술에서 나오는 외적인 경건에 불과하다. 

그는 많은 사랑을 나타내지만 그것이 전부이며, 그의 마음속에는 참된 사랑이 없다. 

"그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상달케 하려고 하며"(사 58:4),  바로 그러한 자처럼 주님의 이름을 언급한다(사 48:1). 

외식가들이란 단지 입술로만 예배하려고 하는 자들이다. 최악의 외식가들은 말고 혀로 최선의 성도들처럼 행할 수 있으며, 야곱의 목소리와 같이 아름답게 말할 수 있다.

셋째, 외식가의 결점은 무엇인가? 

그 결점은 주요한 문제 속에 있다. 즉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습관적으로  주님을  늘 떠나 있으며(엡 4:18), 실제적으로 방황하고 그 밖의 것에 머물러 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가지지 않았으며, 그를 향한 경건한 사랑이나 영혼과 영원에 관한 관심, 그 봉사에 합당한 생각들을 전혀 가지지 않았다.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렘 12:2; 겔 33:31). 

"어리석은 눈"을 가진 마음은 "세상 끝날"(직역하면 "땅 끝")에 있다. 

마음이 없는 비둘기가 어리석은 비둘기이듯, 그것 "어리석은 일(의무)"(호 7:11)이다. 외식가는 한가지  일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일을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살피시며 참되게 집중하기를 요구하신다(잠 23:26). 

만일 그 마음이 그에게서 멀리 된다면, 그것은 합리적인 봉사가 아니며, 따라서 "합당한 것"이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제사이다(전 5:1).

②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명령에 있어서. 

"그들이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는 것"은 그들의 외식의 본보기이다. 

그때의 유대인들은 그 이후의 교황 숭배자(papists)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그들이 행하였던 것과 같이 구전(口傳)에 대하여도 똑 같은 존경을 하였으며, 그것을 ─즉 동일하게 경건한 사랑과 존경으로 받아들였다(Conc. Trident. Sess. 4. Decrl). 

사람들의 창작물이 하나님의 제도에 덧붙여지고, 따라서 [말씀에 더하여]부과될 때에 이것은 외식이며 순전히 인간적인 종교이다. 

사람의 계명은 사람들의 일들과 적절히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신의 법에 의해 행해진 그 자신의 일을 소유하실 것이며, 또한 그 자신이 지시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받지 않으신다. 

그에게서 나온 것만이 그에게로 돌아간다.

(2) 외식가들의 운명. 

그것은 간결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즉 "그들은 헛되이 나를 경배하는도다"이다 

그들의 예배는 지시된 목적에 이르지 못한다. 그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들도 유익을 얻지 못한다. 

만일 그것이 "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진리"는 되지 못하며, 따라서 그것은 전혀 무익한 것이다.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경건은 [외식에 지나지 않는 바 생명, 곧 영과 진리가 없기에] "헛된 것이다"(약 1:26). 

만일 우리의 경건이 [영과 진리, 곧 Q의 참생명 JC가 없는] 헛된 경건으로 드러난다면 "그 헛됨은 얼마나 클 것인가!" 기도와 설교, 안식과 성례전의 시대에 사는 것은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이 모든 것들에서 "허공을 치는 것"은 헛된 일이다. 

만일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것은 헛된 일이다. 입술로 수고하는 것은 헛된 수고이다(사 1:11). 외식가들은 바람을 심고 회오리바람을 거둔다. 그들은 헛것을 믿으며, 또한 헛 것을 보상으로 받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번거롭게 옥죄는 바, 제한적 창작에 지나지 않는] 장로들의 유전에 불순종한 것을 거꾸로 정당화하고 계신다. 이 말씀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트집에 의해 행해졌다. 

우리는 그들이 어떤 답변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은 이 말씀에 만족 할 수 없었지만, 잠잠하게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던 능력에 감히 저항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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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에 대한 말씀(마 15:10-20)

앞서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이 장로들의 유전과 계율을 범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입증셨었다.

이제, 여기에서는 그들이 그 자체가 악이었던 어떤 일을 행한 것으로 비난을 받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계신다. 

그의 이야기의 전반부에서 그는 율법의 권위를 전복시키셨으며, 이곳에서는 그 추론을 전복시키고 계신다. 여기에서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Ⅰ. 이 이야기에 대한 엄숙한 서론(10절). 

"그는 무리를 부르셨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더불어 대화하셨을 때 물러나 있었다. 

아마도 그 거만한 사람들은 무리들이 듣는 곳에서 그리스도와 대화를 나누기를 원치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물러가라고 명령하였던 것 같다. 

JC께서는 그들이 좋아하는 대로 사사로이 이야기하도록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셨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 JC는 무리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셨다. 

그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신속히 처리하시고 곧장 그들에게서 돌이키셨으며, 그리고 대중들, 즉 그의 청중들을 초청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복음은 가난한 자들에게 전파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 멸시받는 것들을 선택하셨다. 

겸손하신 예수님은 거만한 바리새인들이 멸시하는 자들을 영접하셨으며, 또한 주님은 그들이 그러한 굴욕을 당하는 것을 의식하였다. 

그는 사악하고 가르치기 어려운 그들로부터 돌이키셨으며, 그리고 비록 약하기는 하지만 겸손하고 가르침 받기를 좋아하는 무리들에게로 향하시고 계시다. 그는 무리들에게 "듣고 깨달으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는 그리스도의 입에서 들은 바를 열심히 깨달으려고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학자들뿐만 아니라 무리들이나 서민들까지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전심 전력을 다해야만 한다.

그가 그들에게 이해할 것을 종용하시고 계신 이유는 그가 무리들에게 지금 가르치시려고 하는 교훈이 그 무리들이 그들 선생님들에게서 젖으로 먹었던 생각들과는 정반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교훈은 강조되고 주장되었던 많은 관례들과 관습들을 뒤집어엎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오랫동안 훈육하고 익숙해진 부패한 원칙들과 행위들로부터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에 대하여는 마음을 기울이고 이해를 돋우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경우에 있어서 흔히 편견에 의해 잘못되거나 비뚤어진 이해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Ⅱ. 진리 그 자체가 두 가지 명제에서 규정되었는데(11절), 이 명제들은 그 당시의 통속적인 오류(역주:일반에게 잘못 인식되어 있는 일)에 정반대가 되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그것들은 매우 놀라운 것들이었다. 

1.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을 도덕적으로 썩게 하고 더럽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음식의 종류나 품질 또는 우리의 손의 상태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다"(롬 14:17).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거나 그분앞에서 무례한 것, 그와 관계를 맺기에 부당한 것 등이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것(만일 우리가 부당하고 무절제하게 먹지만 않는다면)은 사람을 결코 더럽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기"(딛 1:15)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이 의도했던 바 생명은 도외시한 채] 부당하게 무절제하게 음식을 먹음으로써 의식적인 타락을 범하였을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주님께서 반증하신 바대로 그들 자신의 것을 첨가함으로써 그 죄를 더욱 무겁게 하였.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이러한 의식적인 법을 폐지하려고 하셨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아무 것이나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고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만일 베드로가 환상가운데서 "잡아 먹으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이 말씀을 기억했더라면, 그는 "주여, 그렇게 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대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행 10:13-15, 28).

2.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더럽게 되는 것은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깨끗지 못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에 의해서이다. 

"육체로 하여금 범죄케 하는 것은 입술이다"(전 5:6). 

그리스도께서는 앞서 말씀하실 때에 우리의 "말들"(마 12:36, 37)에 대하여 매우 강조하셨다. 

그렇게 하신 목적은 그를 비난하는 자들을 책망하시고 경고하시기 위함이었으나, 여기에서는 제자들에게 시비를 걸고 그들을 비난하였던 자들을 책망하시고 경고하시기 위함이었다. 

제자들은 그들 자신이 먹는 것으로 더러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악의적이고도 비판적으로 헐뜯음으로써 자신을 더럽힌 자는 바리새인들이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사람의 계명을 범한다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자들이 오히려 더욱 종종 경솔한 판단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김으로써 범죄 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가장 불결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불결함을 비난하는 데 앞장을 서는 법이다.

Ⅲ. 바리새인들은 이 진리에 걸림이 되었으며, 제자들이 이 사실을 그리스도에게 고함(12절).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그리고 그들이 이 말씀에 대해 그렇게 하리라는 것과 이 일로 당신과 당신의 교리에 대해 나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당신에 대해 분노하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지 못하셨나이까?"

1. 바리새인들이 이 명백한 진리에 대해 불쾌하게 될 것임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류와 반감, 잘못과 악의로 점철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성하지 못한 눈은 밝은 빛을 볼 수 없다. 교만한 사기꾼을 몹시 화내게 하는 일은 그들이 먼저 눈을 가리고 노예로 만든 자를 일깨워 주는 일이다. 

아마 장로들의 유전을 엄격하게 준수하였던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가르치는 교사들이었던 서기관들보다 오히려 더욱 걸림이 되었던 것 같이 보인다. 

또한 아마도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손을 씻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음을 가르치셨던 전반부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혀를 엄격하게 제어해야 할 것을 가르치셨던 그의 교훈의 후반부 때문에 성을 내게 되었던 것 같다. 

종교의 형식을 위해 크게 논쟁하는 자는 대개 그 본질에 대해 가장 멸시하는 자들이다.

2. 제자들은 그들의 선생님이 그러한 걸림이 될 줄 아시면서도 그렇게 말씀하신 사실을 이상스럽게 생각하였다. 

이전에는 그가 그렇게 하시지는 않으셨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그의 그러한 말씀이 그들을 분노케 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면 그는 차마 그것을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가 말씀하시는 내용과 그 말씀을 하신 대상과, 그 결과는 무엇일 것인가에 대하여 아시고 계셨다. 

그리고 그는 우리들에게 사소한 일들에 있어서는 거침이 되게 하는 것을 제어해야 하지만, 사람이 두렵기 때문에 진리나 의무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려고 하셨다. 

진리는 소유(인정)되어야 하고 의무는 행해져야만 한다. 

사람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바르게 옳게 판단하여 말하고 행한 바 그것이 마음에 걸림이 되는 것은 그 자신의 잘못이다. 그것은 누구에 의해서 주어진 추문(scandal)이 아니라 스스로 취한 추문이다.

아마도 제자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걸림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그 말씀이 매우 대담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미리 규정된 바이기는 하지만  "깨끗한" 음식과 "불결한" 음식 사이의 차이점을  실제로는 거의 구별할 수는 없겠다고 (당연히)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이의를 제기한 것은 (아마도 좀 더 엄밀한 의미에서) 그들 자신이 이 일에 대해 보다 정확히 알게 되기를 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께서) 바리새인들과 논쟁하는 바를 듣기는 했지만, (아마도) 그들과 동일한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들에게, (설령) 우리를 핍박하고 중상하며 원수된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용서하고 또한 그들의 영적인 유익을 추구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던 것에 분개하면서 돌아가 버리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므로 비록 그리스도에게 그것을 철회하기를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설명하시고 수정하시며 (가능하다면) 변경해 주실 것을(?) 소망하였다. 

연약한 청중들은 종종 그들이 악한 청취자들에게 걸림이 되지나 않을까 염려할 때가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진리를 은폐하는 사람들을 기뻐하거나 그들의 오류와 타락함으로 빠져 들어가기를 즐거워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Ⅳ.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부패한 유전에 대해 닥치게 될 운명. 

그러나, 이로 인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거침없이 공격하셨으나 유의하지는(염두에 두지는) 않으셨으며, 제자들도 이와 마찬가지였다(역주:그리스도는 그들을 "그냥 두어라"고 명하셨다). 즉, 그들은 개조되기를 싫어하였던 자들의 후손이었으며, 또 멸망을 받게 되어 있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 대하여 두 가지 일을 예언하고 계시다.

1. 그들과 그들의 유전을 뽑아 버림(13절).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바리새인들의 타락한 견해들과 미신적인 행위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종파나 방법, 제도 등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것이 아니다. 

그들의 신앙 고백의 규칙들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교만과 형식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유대 백성들은 "좋은 포도나무"로 심기워졌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알지 못하는 나쁜 포도나무가 되어 버렸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신이 심지 않은 나무라고 부인하셨다.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것...

(1) 가시적(visible)인 교회에서 우리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식물들을 찾아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바는 교회에서 좋은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심으신 것(사 41:19)이라는 사실이다. 

농부가 아무리 유의한다고 할지라도, 잡초는 많든 적든지 간에 땅에서 돋아날 것이다. 가라지를 심기에 바쁜 원수는 분명히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썩는 것을 허용하시기는 하지만 그것을 심지는 않으신다. 그는 "밭에 좋은 씨"만 뿌리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의로워야만 하며 또한 아버지의 정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식물들은, 모두가 의로운 사람들과 사물들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말자. "모든 영을 믿지 말고, 그 영들을 시험하라"(렘 19:5; 23:31, 32).

(2) 바리새인들의 영, 

교만하고 형식적이고 속이는 영에 속한 자들은 그들이 아무리 꾸민다 할지라도, 그들이 어느 파에 속하였는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가 친히 심으신 식물들로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3) 하나님께서 심지 않은 그러한 식물들은 그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뽑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은 견고하지 못할 것이다(행 5:38). 비성경적인 것들은 스스로 시들어져 죽게 되거나 교회에 의해 당연히 추방될 것이다. 

어쨌든 큰 심판 날에 거치게 하였던 이러한 가라지들은 단에 묶여 불에 던지움을 받을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유전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것들은 오래 전부터 내버림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진리의 복음은 위대하며 또한 존속될 것이다. 복음은 결코 뽑혀질 수 없다.

2. 그들과 또한 그들의 인격과 원리들을 찬양하였던 추종자들의 멸망(14절). 여기에서,

(1)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냥 두어라"고 명하시고 있다. 

"그들과 대화하거나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말라.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도 말고 그들의 불쾌함에 대해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들이 걸림이 되더라도 염려하지 말라. 그들은 스스로의 길을 갈 것이다. 그들이 논쟁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어라. 그들은 그 자신들의 환상에 몰두하고 있으며 모든 일을 그 나름대로 해나갈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으면서(살전 2:15) 오직 너희 양심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기를 바라는 자들을 즐겁게 하려고 노력하지 말라. 그들은 에브라임과 같이(호 4:17) 우상들, 즉 그들 자신들의 환상의 우상들과 연합되어 있다.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라.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게 내버려 두라"(계 22:11).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역자들에게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명하신 죄인들의 처지는 실로 슬프기 짝이 없다.

(2) 그는 "그냥 두어라"고 하는 말씀의 이유를 두 가지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① 그들은 교만하고 무지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어리석음을 고칠 수 없도록 만드는 나쁜 본질들이다(잠 26:12). "그들은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매우 무지하였으며, 신적인 법의 영적 본질에 대해 매우 낯선 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매우 교만하였기 때문에 자신들은 누구보다도 더 잘 깨달으며, 그렇게 때문에 자신들은 천국에 이르는 방법을 전혀 모르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 주려고 그들의 지도자를 자처하고 나섰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으며, 자기들을 따르지 않으려는 자들을 배척하였다. 

비록 그들이 소경이기는 하였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안약을 바르기 위해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왔다면, 그들은 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일에 대한 암시를 묵살하고 말았다. 즉 "우리도 소경인가"(요 9:40)라고 반박하고 있는 바, 그들은 "스스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롬 2:19, 20)로서, 그렇게 하도록 임명을 받았으며, 그렇게 하기에 적합하다고 확신하였다. 

그들이 말했던 모든 일은 신탁(神託)과 법이었다. 

"그러므로 그냥 두어라. 그들의 처지는 절망적이다. 그들과 더불어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라. 너희는 그들을 즉시 화나게 할 수는 있지만, 그들을 확신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유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우맹이었고 거만한 행동을 하는 자존심이 강한 바보들이었으며, 한편 백성들은 바보스럽게 맹목적인 신앙과 순종을 함으로써 그들을 따라가며 "명령 쫓기를 좋아하였으니"(호 5:11) 그 당시의 유대교회의 처지는 얼마나 처참한 것이었겠는가! 

이제 이사야 29장 10, 14절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될 것인가?"(렘 5:31)에 대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② 그들은 멸망을 자초하는 자들이며, 머지 않아 그곳에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만일 둘이 소경이면서도 무모하게 앞으로 나가려고 하며, 위험릉 깨닫지 못한다고 하면 결국은 둘이 함께 구덩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둘 다 유대인들에게 닥치게 될 일반적인 파멸 속에 빠지게 될 것이며, 또한 둘 다 영원한 파멸과 멸망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소경된 인도자와 소경된 추종자는 함께 멸망하게 될 것이다. 지옥은 "거짓말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의 분깃(몫)이 될 것이다(계 22:15). "속임을 당한 자"와 속이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에 속한다(욥 12:16 , 모두 심판을 받게 된다─역주). 

여기에서 유의할 것...,

첫째, 간교하게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죄와 오류를 범하게 하는 자들은 그들의 교활함과 간교함을 모두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들 자신의 파멸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면," 소경된 인도자는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며, 그 상태는 심히 처참할 것이다. 

예레미야 14장 15, 16절을 보라. "예언자(역주 :거짓 예언자)들은 먼저 멸망될 것"이며 그후에 "그들이 예언했던 자들(역주:예언을 했던 대상자들)"이 멸망하게 될 것이다(렘 20:6; 28:15, 16).

둘째, 속이는 자들의 죄와 멸망은 그들에 의해 속임을 당한 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게 할 것이다(역주:직역하면, 그들을 안심케 하지는 않을 것이다). 

"백성들을 그릇되게 만들었던 자"는 그들의 지도자이지만, "그들에 의해 인도"된 자도 함께 "멸망을 받게 된다"(사 9:16).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시정해 주려고 하는 빛에 대하여 눈을 감아버렸기 때문이다. 

세네카(Seneca)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반적(통속적)인 견해와 행위들에 의해 인도되는 것을 불평하면서(─ 즉, 사물들을 믿기만 하고 시험하지는 않는다) 결론지어 말하기를  "그러므로 큰 혼잡을 이루면서 무리들은 무리 위에 엎드려진다"라고 하였다(De Vita Beata). 

둘이 함께 떨어지는 것은 그 떨어짐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서로 간에 상대방의 죄를 증가시킨 자들은 서로의 파멸을 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Ⅴ. 그리스도께서 진술하셨던(10절) 진리에 관하여 제자들에게 주어진 교훈. 

JC께서는 가르침을 받지 않으려고 고의적으로 무지한 자를 거절하시지만, 기꺼이 배우려고 하는 무지한 자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가지신다(히 5:2). 

만일 율법을 헛되게 만든 바리새인들에게 걸림이 되었다면 그냥 두어라.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 119:165).

여기에서 보면,

1. 이 주제에 대해 더 가르침을 받으려는 제자들의 소망(15절)이 있다. 

이 요구는, 그 밖의 여러 경우에도 그랬지만 베드로에 의해 말해졌다. 아마도 그 밖의 제자들은 그로 하여금 말하게 하거나 그들의 의견이 일치됨을 나타내었을 것이다.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분명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생각과는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그것에 대해 반대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것을 비유라고 불렀으며, 이해할 수가 없었다.

(1) 빈약한 이해(이해심이 결여된 것)는 분명한 진리를 비유로 돌려버리기 쉬우며, 쓸모 없는 데서 골자를 발견해 내려고 애쓴다. 

제자들은 종종 그렇게 하였다(요 16:17). 메뚜기는 약한 위에 부담이 되며,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어린아이는 단단한 음식을 견디거나 소화시킬 수 없다.

(2) 빈약한 머리(hcads, 지식)는 하나님의 말씀의 어떤 부분에 대해 의심하지만, 올바르고 자발적인 마음은 교훈을 찾을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마음에 걸림이 되었지만,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개조 받기를 싫어하였으므로 가르침 받기를 싫어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걸림이 되기는 했지만, 그 걸림이 가르쳐진 교훈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인정하면서 만족하게 이해하게 되기를 갈망하였다.

2.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연약함과 무지함을 나무라심(16절).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사랑하시고 가르치시는 것만큼 이와 같이 책망하신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도덕적인 타락이 의식적인(외양의) 타락보다 더 나쁘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실로 무지한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두 가지 사실이 그들의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더욱 심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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