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2.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마13.천국비유8 :마음밭4_선악공생판별[가라지-그물]_성장[겨자씨-누룩]_궁극가치[밭의보화-진주]_말씀지기제자..고향의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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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 = 하늘의 왕국[천국] = 그리스도의 신부 교회(가시적 교회는 이 땅에서 뿌려져, 자라나서 열매맺은 바, JC빼어닮은 밀알, 알곡임), ....

## 이세상, 세상나라 :: 온우주만물,천지의 창조주Q이 창조하신 Q나라의 [땅에 속한 부분], 하나님의 농토...[광범한 의미의]가시적 교회에 속함

## 성도는 각각 외적 모습은 달라도 그안에 JC를 빼어닮은 Q의 참생명을 가진 바,한 알의 밀알로서 [땅에 떨어져 죽음 통해 똑같은 생명열매를 풍성히 맺기 위해 세상에 임한]참생명JC를 빼어닮은 옥토에 뿌려진 씨앗임.

.....[JC께서는 그자신이 친히, 또한 그의 사역자/종들을 통해 100, 60, 30배의 결실을 얻기 위한 분명한 목적으로, 듣고 믿어 구원 얻는, 또한 그로 인해 생명열매 맺는 복음진리생명말씀을 성도들의 마음 밭에 뿌려 공급하시는 바, 성도는 그의 말씀으로 살며 열매 맺도록도록 되어 있다] .. 

.....참생명씨앗이요 한알의 밀알인 JC, 당신을 온전히 빼어닮은, 온전한 성장성숙에 이르른, 참생명열매들인 성도들...주께서 뜻하셔서 세상에 보내심 받은 이들임을 자각하는 성도들마다 또하나의 생명씨앗인 바, 땅에 뿌려져 맺는, 질적 양적 풍성한 배가 산출은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 드림이 됨[ .....지고지선-진복의 하나님의 영예를 드높임이요 + Q은 바로 이것을 충성된 섬김으로 여기심 ], 

## JC의 뜻하신 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날마다, JC로부터 친히, 또는 위임받은  말씀사역자를 통해 받는 바, 하나님 말씀[=복음의 생명진리말씀]인 생명 양식[씨가 자라고 열매맺는데 필요한 모든 영양분이 충만함], 그 말씀에 비추어 보아 자복-회개함과 보혈로 씻김[깨끗게 하심과 치유-회복능력]받음, 그 말씀을 실제적으로 적용하시는 보혜사성령의 지속적 돌보심아래 주님의지하여 지도하시는 영생의 말씀따라 연습-실행으로 하나됨을 기뻐하는 영적 신진대사 활동이 꼭 필요함.....

## [복음적 초대에 대한 청취자의 마음 상태나 복음을 믿고 고백한 바 이미 믿은 성도이거나 간에 공통적으로 적용, 동일한 모델로 설명이 가능함] 

뿌리와 줄기, 가지를 가진 곡식, 열매맺기에 합당한 식물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자라는 동안, 주님이 공급하시는 바 생명양식[곧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때, 열매맺음에 가장 중요한 조건은 생명말씀을 처음 듣는 자, 또는 각 성도이거나 간에 오로지 마음밭의 어떠함 그 자체임....성도의 [주바라기의 삶 통해 항상 깨어 예비한 바] 마음밭 상태(4가지중에 하나이지만 생명열매 맺기에 합당한 옥토로 생각할 수 있음...나머지 3가지는 각각 싹도 트지 못하거나, 자라지도 못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마음 상태들임) 있는데, 그 마음밭상태에 따라 하나님의 뜻하신 바대로 그분께 합당한 영예과 순종의 섬김(봉사)드림의 어떠함이 결정됨


개역개정]마13장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비유를 설명하시다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겨자씨와 누룩 비유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비유로 말씀하신 까닭

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시다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세 가지 비유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새것과 옛것

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시다

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

마태복음 13장 (개요)

본 장(章)을 내용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Ⅰ. 그리스도께서 하늘 나라를 전하실 때 그의 동족들에게 베푸신 호의(1, 2). 

그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을 전파하셨으며, 또한 여기에서 그가 어떻게 이러한 교수법을 택하셨는가를 설명하고 있다(10-17). 

또한 복음서 기자는 다른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34, 35). 

이 장에는 8종류의 비유가 기록되었는데, 그 목적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묘사하고 또한 이 세상에 복음적인 나라를 심는 방법과 그 성장과 성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나라의 위대한 진리와 법은 다른 성경에 비유 없이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다(밝혀져 있다). 

그러나 그 시작과 과정의 어떤 상황은 여기에서 비유로 분명히 밝혀져 있다.

1. 여기에는 사람들이 복음 말씀에 의해 유익을 얻는 데 있어서 큰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이며, 또한 그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그 마지막이 얼마나 짧게 되는가를 보여 주는 하나의 비유가 있다. ...그것은 4종류의 밭에 대한 비유로서 3-9절에 서론적으로 언급되었으며 18-23절에 상술되었다.

2. 여기에는 복음적 교회에 선과 악이 혼합되어 있을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한 두 가지 비유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선과 악은 심판날에 그들 사이가 구분되기까지는 함께 공존할 것이다. ...가라지에 대한 비유가 선포되었고(24-30), 제자들의 요구로 이 비유를 상술하셨다(36-43). 또한 바다에 그물치는 비유를 말씀하셨다(47-50).

3. 여기에는 복음적인 교회가 처음에는 매우 작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눈에 뜨일 만한 완성체(body)로 되어질 것임을 보여주기 위한 두 가지 비유가 기록되어 있다. ....즉 겨자씨의 비유(31, 32)와 누룩의 비유(33).

4. 여기에는 복음에 의해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자들은 기꺼이 모든 일을 감행해야 하며 그것을 예상하며 모든 것을 그만 두어야 하며 또한 그들은 계약에 의해 상을 잃는 자가 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한 두 가지 비유가 기록되어 있다. ...즉 밭에 숨긴 보화의 비유(22)와 매우 가치 있는 진주의 비유(45, 46).

5. 여기에는 그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교훈을 사용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지시하기 위한 하나의 비유가 있다. 

그것은 곧 선한 집주인에 대한 비유이다(51. 52).

Ⅱ. 고향 사람들은 그의 가문이 초라하였기 때문에 그를 멸시하였다(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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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 13:1-23)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이 살펴 볼 수 있다.

1. "언제" 그리스도는 이 설교를 행하셨는가? 

이 설교는 그가 앞장(12장)에서 행하셨던 설교와 똑 같은 날에 행해졌다. 

그는 선을 행하는데 있어서나 그를 보내신 자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피곤해 하시지 않았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JC는 두가지로 다 마지막 때에 대하여 설교하셨으며, 또한 실례를 들어 그의 교회에 대해 실천할 것을 권고하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아야"한다(전 11:6). 

귀담아 잘 들은 오후 설교로 인해 아침에 들었던 설교가 잊혀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 설교(아침 설교)를 꽉 붙잡도록 하는 것이 되게 하여, 또한 확실한 장소에 고정시키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비록 아침에 그의 원수들에 의해 반대와 비난을 받으셨고, 그의 친구들에 의해 혼란과 방해를 받으셨지만, 여전히 그는 자신의 과업을 계속 수행하셨다. 한편, 오후에는 그가 이러한 방해를 받았다는 사실을 찾아 볼 수 없다. 

하나님을 봉사하는 데 있어서 부딪치는 모든 난관들을 [그 때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을 의지함으로써] 늘 새로운 용기와 열심을 가지고 극복하는 자는 아마도 그 난관들이 그들이 두려워했던 것만큼 그렇게 회복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들을 [JC이름을 선포함으로써 꾸짖고] 대항하라. 그러면 그것들은 도망갈 것이다.

2. "누구에게" 그는 전파하셨는가?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몰려들었으며," 그들은 모두 청중들이었다. 거기에 어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있었다는 기사는 찾아 볼 수 없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그들은 그가 회당에서 설교하실 때는 기꺼이 들었지만(마 12:9, 14),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시더라도 바닷가에서 설교를 듣는 것은 자기들을 저속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참으로 그리스도는 그들이 있는 것보다는 없는 편이 나았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이 없기 때문에 그는 조용하게 또한 아무런 방해 없이 설교를 진행하실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종종 종교의 "허식"이 없는 곳에 종교의 "힘"이 발휘된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자가 복음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 "해변"에 가셨을 때 "많은 무리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왕이 있는 곳에 궁전이 있다.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 ...비록 그것이 해변가라고 할지라도..

여기에서 유의할 것.... 말씀으로 좋은 것을 얻으려는 자는 그 말씀이 옮기는 곳은 어디든지 기꺼이 따라가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법궤가 옮겨지면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야비한 중상과 제안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따라가지 못하도록 애써 수고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전만큼 여전히 그를 따랐다. 그리스도는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화롭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유의하라. 그는 항상 추종을 받으실 것이다.

3. "어디에서" 그는 이 설교를 행하셨는가?

(1) 그의 집회 장소는 바닷가였다. 

그는 집을 떠나(왜냐하면 거기에는 청중을 수용할 만한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야외로 나가셨다. 이러한 설교자를 마땅히 로마 극장과 같이 설교하기에 편리하며 또한 웅대하고 값진 장소를 가져야 했지만 그것 하나 가지지 못한 것은 서글픈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겸손(비천)의 신분에 머무셨으며 또한 이 일에서도 다른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친히 그에게 합당한 영예를 거절하셨다. 

그는 자신이 살집을 가지지 못했던 것처럼, 또한 그가 설교할 예배당 하나도 가지지 못하였다. 

그는 이를 통하여 [오늘까지도]우리에게, 예배의 외적 환경에 있어서 [편리나]웅장한 것을 탐내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 가운데 우리에게 허락하신 장소를 최선의 편리한 장소로 만들 것을 가르치고 계시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마굿간으로 몰려들었으며, 지금 바닷가로 모든 사람들은 마음대로 올 수 있었다(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바닷가에 계셨다). 

진리 그 자체이셨던 그리스도는 이교의 신비주의자들이 했던 것처럼 구석진 곳(adyta)을 찾지 않으셨다. "지혜는 길거리에서 부른다"(잠 1:20; 요 13:20).

(2) 그의 강단은 배였다. 

"특별히 지은"(느 8:4) 에스라의 강단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곳을 더욱 유용하게 사용하셨다. 

이렇게 위대하신 설교가(a Preacher)가 있는 곳은 반드시 위엄이 있고 성별 되기 마련이다.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이 비록 설교하기에 불편하고 초라한 장소를 가졌을지라도 그들로 하여금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어떤 사람은 관찰하기를, 사람들이 마르고 견고한 땅에 서 있었을 때 설교자이신 주님은 위험하게 물위에 계셨다고 하였다. 

사역자들은 누구보다도 고통을 받게 되는 법이다(고통에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다). 이것이 참된 설교단, 즉 배의 강단(a ship pulpit)이었다.

4. "무엇을, 어떻게" 설교하셨는가?

(1) "그는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셨다." 

아마도 여기에 기록된 것들보다 더 많이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기록된 것은 무엇보다도 탁월하고 필수적인 말씀, 즉 우리의 평화에 속하며 하늘 나라에 속한 말씀들이었다. 

그것들은 쓸모 없는 시시한 말씀들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 영원한 결과에 대한 말씀들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많은 말씀들을 우리에게 하셨을 때 우리는 그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함이 없이 주의를 집중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2) 그는 비유로 말씀하셨다. 

비유는 종종 교훈을 주는 어떤 지혜스럽고 무거운 말씀들을 전해 준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복음에서는 이 비유가 일반적으로 계속된 비사나 비교를 전달해 주고 있는데, 영적이며 하늘에 속한 것들은 이 비유에 의해 이 세상의 것들로부터 차용된 언어로 기술되었다. 

이 교수법은 유대인 랍비뿐만 아니라 아라비아인들, 그 밖의 동양의 현자(賢者)에 의해 매우 많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비유는 매우 유익하며 또한 재미도 있다. 

우리 주님은 그것을 많이 사용하셨으며, 또한 그것으로 백성들을 이해하기 쉽게 요약하셨으며, 그들 자신의 말로 바꾸어 말씀하셨다(의역).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선지자들을 빙자하여 비유를 베푸셨으며"(호 12:10) 또한 지금은 그의 아들에 의해 비유를 사용하시고 있다. 

정녕 그들은 하늘로부터, 하늘에 속한 일들을 말씀하시고 그러면서도 세상적인 일들로부터, 차용한 표현들로 그들에게 돌려주시는(옷 입혀 주시는) 그를 존경할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2절을 보라.

Ⅰ. 여기에는 그리스도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비유를 사용하시는 데 약간 놀랐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는 설교하실 때 비유를 많이 사용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라고 물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참으로 그 백성들이 이해력을 가지고 듣기를 원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어찌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나이까?라고 말하지 않고(그들은 비유를 설명하는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하였다), 오히려 "저희"에게라고 말하였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는 전파된 말씀에 의해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교화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강하다면, "연약한 자의 연약성을 감당할 수"있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그리스도는 광범위하게 대답하시고 있다(11-17절). 

이곳에서 그는 그들에게, 자신이 비유를 쓰는 것은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들이 즐거움으로 가르침을 받으려고 했던 자들에게는 보다 명백하고 쉽게 되며 동시에 고의적으로 [생명과 관계된 것으로 여겨서, 단 마음, 열린 마음으로 집중하여 참되게 들어 깨닫고 배우기를 거절함으로써, 대충대충 흘려듣는바 ]무지하였던 자들에게는 어렵고 애매모호한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다.

이와 같이 복음은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맛(향기)"이 될 것이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의 맛"이 될 것이다. 

비유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과 같이 애굽 사람들을 향해서는 그들을 혼란케 하는 어둠이 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서는 그들을 위로하는 광명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비유는 이중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동일한 빛이 어떤 사람의 눈을 지시해 주고. 또 어떤 사람의 눈을 부시게 해 준다.

1. 이 이유는 설명되어 있다(11절).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다시 말하면,

(1) 제자들은 지식을 가졌으나, 백성들은 가지지 못하였다. 

너희는 이미 이러한 비밀들에 대해 알았으므로 이러한 쉬운 방법으로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백성들은 무지하며, 아직도 어린 아기이며 또한 다른 방법으로는 가르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분명한 비유에 의해 가르침을 받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록 눈을 가지기는 했지만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는,

(2) 제자들은 복음의 신비에 대한 지식 얻기를 열망하였고, 비유를 탐구하려고 하였다. 

또한 그것들로 말미암아 그러한 신비에 대하여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헛되이 들으며 또 더욱 찾으려고 애쓰지 않으며, 비유의 의미를 물으려고도 하지 않는 육적인 청중들은 결코 지혜롭게 될 수 없으며 따라서 그들의 나태함에 해당되는 고통을 당연히 받을 것이다. 

비유는, 부지런한 자를 위하여는 좋은 과일을 보존하지만, 나태한 자에게서는 닫아 버리는 조개(shell)와 같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천국에는 신비들이 많이 있으며, "상충됨이 없이 경건의 비밀은 크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속죄, 칭의, 중보, JC와 연합에 의한 성화, 영화, 그리고 그 속의 모든 사역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들"이며, 이 신비는 신적 계시가 없이는 결코 발견될 수 없다.(고전 15:51), 

또한 이 때에도 제자들에게만 부분적으로 발견되었으며, 장막이 찢어지기 전에는 완전하게 발견될 수 없다. 

그러나 복음 진리의 신비성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찾고 탐구하는데, 실망을 주지 않고 오히려 격려할 것이다.

① 이 비유는 이러한 신비들을 잘 알도록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은혜스럽게 주어졌다. 

지식은 하나님의 첫 번째 은사이며, 또한 두드러진 선물(잠 2:6)이다. 

그것이 사도들에게 주어진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항구적인 제자들이며 수종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점점 더 가까이 나가면 나갈수록 또한, 그와 더불어 대화하면 할수록, 우리는 복음의 신비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② 영적 지식의 은사,그것은 복음의 신비에 대한 체험적인 지식을 가진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진다. 

또한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최고의 지식이다. 

마음속에 있는 은혜의 원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에 대한 경외"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나 비유의 의미를 빨리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선생인 니고데모는 색맹자와 같이 "중생"에 대하여 물었던 것이다.

③ "이 지식이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은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요 3:27). 또한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빚진 자가 아니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Q의 은혜는 그분 자신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주기도 하시고 거두시기도 하신다(롬 11:35). 

그 차이는 앞에서와 같이(마 11:25, 26)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 결정되어야만 한다.

2. 이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선물들을 분배함에 있어서 준수하시는 규칙에 의해 더욱 설명되고 있다. 

즉 그는 그러한 선물들을 보람있게 활용하는 자에게는, 그것들을 부여하시지만, 그것들을 파묻어 버리는 자에게서는 빼앗아가 버린다. 

게으름으로 자기들의 재산을 축내는 자들에게보다는 근면하게 재산을 증가시키는 자들에게 돈을 맡기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규칙이기도 하다.

(1) 여기에는 은혜의 선택을 따라 참된 은혜를 소유한 자, 즉 그것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것을 사용하는 자에게 대한 약속이 있다. 

그는 더욱 풍성하게 가질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많은 은혜의 보증(earnests)이시다. 그는 여기에 기초를 두시며, 그 위에 건축하신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들이 지금 가졌던 지식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성령의 부으심이 있을 때 더욱 풍성한 것을 가질 것이다(행 2장). 

은혜의 "진리"를 가진 자는 원만한 영광에 이르는(잠 4:18) 은혜의 "증가"(the increase)를 가지게 될 것이다. 

"요셉"이란 말은 "그가 더할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창 30:24).

(2) 여기에는 은혜를 바라지 않는 자, 그가 가진 은사와 은혜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자들에게 대한 경고(위협)가 있다. 

그들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견고한 원리도 가지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은 가지고 있지만 가진 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그가 가진 것 또는 가졌다고 보여지는 것을 "빼앗길 것이다." 그의 입들은 시들 것이며, 그의 은사들은 쇠할 것이다. 

은혜의 방편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자는 빼앗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곧 파산자가 될 것 같은 자들에게서 그의 달란트를 "회수하실 것이다."

3. 이 이유는 그리스도와 관련을 가진 두 가지 사람들이 언급됨으로써 특별하게 설명되고 있다.

(1) 어떤 사람들은 자진해서(willingly) 무지하였다.

이러한 사람들은 비유를 듣고 재미있어 하였다(13절). "저희가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명백한 설교의 분명한 빛에 대하여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러므로 지금은 어두움 속에 버려져 있다. 

그리스도의 인물을 보지만, 그들은 그의 영광을 보지 못하며, 그와 다른 사람과의 차이점을 보지 못한다. 

그의 이적을 보고 그의 설교를 듣지만 어떤 관련이나 적용을 가지면서 보고나 듣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① 복음의 빛을 보고 복음의 소리를 듣지만, 그것이 마음에 이르거나 그 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② 빛에 대하여 눈을 감아 버리는 사람에게서 빛을 가져가 버리는 것은 하나님에게 당연하다. 무지한 자도 그와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와 같이 취급하시는 것은 그의 제자들에 대한 자신의 두드러진 은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제 이러한 사실에서 성경 말씀은 성취될 것이다(14, 15절). 이 말씀은 이사야 6장 9, 10절에서 인용된 것이다.  

가장 명백하게 복음적인 은혜에 대해 말했던 복음적인 선지자(이사야)는 복음에 대한 멸시와 그 멸시의 결과에 대하여 예언하였다. 

이 말씀은 신약 성서에서 6번이나 인용되었으며, 그 의미하는 바는 즉, 복음시대에는 영적인 심판이 가장 일반적이 될 것인데, 이 심판은 거의 소리(소음)가 없지만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것이다. 

이사야 시대에 있었던 죄인에 대하여 언급되었던 것이 그리스도 당시에 있던 죄인에게서 성취되었다. 

또한 여전히 매일 성취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완악한 마음이 동일한 죄를 보존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의로우신 손은 동일한 형벌을 부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첫째, 죄인들의 고의적인 맹목(소경이 됨)과 강퍅에 대한 묘사가 있다.

그러한 것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바 죄이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졌다." 그것이 "커지면" 그 말씀도 커진다(역주:말씀의 성취를 가리킴). 

즉 이 말씀은  고의적으로 소경된 이들의 육욕성과 무감각성을 폭로한다(시 119:70). 

하나님의 말씀과 지팡이 아래에 있으면서도 "살찌고 부패하였던"(신 32:15), 여수룬과 같이 멸시를 받게 된다. 

마음이 이와 같이 무거울 때 귀는 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그들은 성령의 속삭임을 전혀 듣지 못한다. 

크게 부르는 소리를, 비록 그 말이 가까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또한 그 말에 하등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귀를 막고 있다"(시 58:4, 5).

또한 그들은 무지하려고 작정하였으므로 지식의 판단력을 닫아 버렸다. 

또한 그들은 눈을 감았기 때문에 의의 태양이 떠올랐을 때 세상에 오신 빛을 보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의 창문을 닫아 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다(요 3:19; 벧후 3:16).

둘째, 이러한 것(소경)에 대한 공평한 형벌인 재판상의(judicial) 소경에 대한 묘사.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결국)  너희가 가진 은혜의 방편이 너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너희가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행할지라도 그들이 계속적으로 너희를 (비아냥 거리며) 판단한다면 그들에게 대한 축복은 거두어 질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지옥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처참한 상태란,  메마르고(죽고) 어리석고 강팍한 마음을 가지고 가장 생명력 있는 말씀의 규율 아래 앉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섭리를 보면서도 어느 것에서든지 그의 뜻을 이해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것은 가장 큰 죄요 심판이다. 

다음 사실에 유의하라. 즉, "깨닫는 마음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는 종종 의로우신 심판의 방법으로 그가 들을 귀와 보는 눈을 주셨던 사람들에게 그것을 무위(無爲), in vain)로 돌리신다는(거절하신다) 사실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죄인들 스스로가 [완고하여  미혹됨, 곧 육신과 세상의]  유혹을 택하여(사 6:4), 그들을 자신의 마음의 정욕에 내버려둠으로써(시 81:11, 12) 그들을 큰 파멸로 넘기시는 것이다. 

"그들을 버려 두라"(호 4:17).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라"(창 6:3).

셋째, 이것에 대한 무서운 결과와 결말. 즉 "그들이 볼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돌이키지 않기 때문에 보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돌이키지 않기 때문에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들이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다음과 같은 사실에 유의하라.

1. 보고 듣고 깨닫는 것은 회개(돌이키는데)에 필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은혜의 사역에 있어서 사람을 이성적인 행위자로 취급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을 끈(또는 속박, cords)으로 이끄시며, 눈을 여심으로 마음을 바꾸시며, 언제 "어두움에서 광명"(행 26:18)으로 돌이키심으로써 "사탄의 능력에서 하나님에게로" 돌이키신다.

2. 참으로 하나님께 돌이킨 자들은 [주님 말씀 따르기로 결단하고  명심하고 주의하며 영을 따라 실행하는 자들은]확실히 그에게서 고침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돌이킨다면, 나는 그들을 고칠 것이며, 구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죄인들이 멸망당한다면, 그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돌이킴이 없이 구원받게 되기를 기대하였다.

3.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그리고 종종 그의 은혜의 제안을 거부하고 그 능력을 거절한 자들에게 그의 은혜 베풀기를 거절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로는 한동안 자신의 마음을 강퍅케 하였으며(출 8:15, 32), 그 후에는 하나님이 그를 (징계하시기 위해 손수) 강퍅케 하셨다(마 9:12; 10:20). 

그러므로 우리는 신적인 은혜를 거스려 범죄함으로써 그것을 잃지 않도록 두려워하자.[은혜의 때를 따라 회개하고 돌이키라!!]

(2) 또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또한 참으로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이러한 비유들에 의해 특별히 그것들이 설명되었을 때 지식을 많이 얻게 되었다. 

비유들에 의해 하나님의 일들은 더욱 분명하고 쉽게 되었으며, 또한 더욱 이해하기 쉽고, 친근하게, 기억하기가 더욱 쉽게 되었다(16, 17절).

"너희 눈은 보고, 너희 귀는 듣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격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훈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들었다. 

그들은 많이 보았고, 더 많이 듣기는 열망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보다 더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날마다 청종함으로써 이러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들은 그것을 날마다 가져야만 하며 그것을 은혜스럽게 지녀야만 하였다. 이제 그리스도는 이것을,

① 축복으로 말씀하고 계시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그것은 너희의 행복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에 대해 빚진 것은 행복한 일이다." 

메시야의 날에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않을 것이라"(사 32:3)는 사실은 약속된 축복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적으로 아는 초라한 신자의 눈은 하나님을 모르는 위대한 학자나 경험 철학의 대가의 눈보다 더 복이 있다. 

다른 신들을 섬기기 좋아하는 자들은 "눈을 가졌으나, 보지 못한다." "너희의 눈은 복이 있도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참된 축복은 올바른 [주님말씀 신뢰하며 오로지 의지하며 따르려 하는] [영적]이해와 천국의 신비에 대한 [부드럽고 열린 마음의]적절한 향상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은 성화된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역사(지으신 것, work)이다. 그것들은 그의 은혜의 역사(잠 20:12)이다. 

그것들은 축복된 역사로써 "지금 거울을 통하여 희미하게 보는 자들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될" 때 능력으로 성취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무지 속에 내버려진 사람들의 불행에 대하여 그렇게 많이 말씀하신 것은 이러한 축복을 설명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눈을 가졌으나 보지 못한다." 그러나 보는 바 "너희의 눈은 복이 있도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그것을 소유한 자에게 두드러진 은혜이며, 또한 이 때문에 그 지식은 큰 의무 아래 놓여있다. 

요한복음 14장 22절을 보라. 

사도들은 다른 사람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맏들어 주셨던 바] 그들 자신이 신적인 진리의 분명한 발견에 의해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파숫군의 눈은 마주 보게 될 것이다"(사 52:8).

② 많은 선지자와 의인들에 의해 열망되었으나 주어지지 않은 탁월한 축복으로 말씀하고 계시다(17절). 

복음의 빛을 희미하게 보았던 구약의 성도들은 더욱 더 찾으려고 열심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것들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와 예언들만을 가졌으며, 오히려 그 실체(Substance), 즉 그들이 확고하게 들여다 볼 수 없는 것들의 영광스러운 끝을 보기를 고대하였다. 

그들은 큰 구원, 즉 이스라엘의 위로자를 보기를 원하였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때의 완성이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첫째, 그리스도에 대해 어떤 것을 알고 있는 자들은 더욱 알려고 열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둘째, 신적인 은혜는 선지자와 의인에게서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처해 있던 세대에 따라 발견되었다. 

비록 그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가진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이었지만 그들이 보기를 열망하였던 것들을 보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아직 빛에로 데려오기를 작정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스러움이 하나님의 계획(주권적 섭리의 때와 시기)을 변경시키시리라 기대할 수는 없으리라. 

그 때에도 [물론] 지금과 같이 "계시된 영광은 있었다.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될"(히 11:40) 어떤 것이 보존되어 있었다.

셋째, 우리의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근면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특별히 속죄에 대한 계시에 있어서 구약 시대에 살았던 자들이 가졌고 즐겼던 것에 비하여, 복음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즐기고 있는 방편들과 주어진 발견(계시들)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좋은 일이다. 

구약에 비하여 신약의 유익(특권)은 무엇인가를 살펴 보라(고후 3:7; 히 12:18). 또한 우리의 향상이 우리의 특권에 조화가 되는지를 살펴 보라.

Ⅱ. 여기에는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비유들 중의 하나가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씨뿌리는 자"에 대한 비유이다. 또한 그 비유와 그것에 대한 설명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비유들은 철학적인 개념이나 사색들, 또는 특수한 자연 현상에서 인용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평범한 것들에서 인용되고 있다. 

그것은 손쉽게 주위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 매우 분명한 것들로부터 인용된 것으로써 매일 관찰할 수 있고 누구도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들 중 많은 것이 씨뿌리는 자나 가라지의 비유와 같이 농부들의 직업(명칭)에서 유래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이와 같이 하신 것은,

1. 이로 말미암아 영적인 일들이 보다 분명하게 되고 또한 잘 아는 비유들에 의해 더욱 이해하기가 쉽게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2. 이로 말미암아 일반적인 행동들이 영적인 의미로 해석되고(spiritualize), 또한 우리들이 종종 우리들의 시야에 들어오는 그러한 일들에서 하나님의 일들에 대하여 즐거움으로 묵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따라서 세상일에 우리의 일손이 바빠질 때 우리는 그러한 것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인도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와 더불어 이야기할 것이며, 우리와 더불어 친근하게 대화할 것이다(잠 6:22).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매우 명백하다(3-9절). 그 해석은 그 뜻을 가장 잘 아셨던 그리스도 자신이 하셨다. 

제자들이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10절) 물은 것은 백성들을 위하여 그 비유를 설명해 주시기를 소원한 것임을 나타낸다. 

그것은 그들 자신이 그것을 알기 위해 자신들의 지식에 대해 경시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친절하게 그 요지를 파악하시고 그 의미를 알려 주셨으며, 또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도 많은 무리들이 듣는 데서 그 비유를 알게 하셨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가 36절까지 그들을 잊어 버리셨다는 기사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즉 너희는 씨뿌리는 비유를 들으라(18절). 너희는 그것을 들었으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가 들은 것을 다시 듣는 것은 말씀을 이해하고 그것에 의해 유익을 얻는 데 쓸모가 있고 도움을 줄 것이라는 사실이다(빌 3:1). 

"너희는 그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에 대한 해석을 들어라." 

우리가 들은 것을 이해할 때에만 그 말씀을 올바르게, 또한 유효하게, 듣게 된다. 

만일 들은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들은 것이 전혀 아니다(느 8:2). 

이해심을 주시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것을 이해하려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그러면 그 비유와 설명을 비교해 보기로 하자.

(1) 뿌려진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여기에서는 "왕국의 말씀"으로 불리워지고 있다(19절). 

하늘의 왕국(천국)은 세상의 왕국[=세상왕국]들의 왕국이다. 세상의 왕국들은 천국과 비교하면 결코 왕국이라고 불리워질 수조차 없다. 

복음은 [하늘의]왕국"에서"(from) 오며 그 왕국"을"(to) [그 실행을] 가르친다(역주:전자는 천국, 후자는 이 세상 왕국들). 

복음의 말씀은 [하늘의]왕국(천국)의 말씀이다. 그것은 왕의 말씀이며, 그안에는 "능력"이 있다. 그것은 법이며, 우리가 지배를 받으며 다스림 받아야 되는 법칙이다. 

이 말씀은 [언뜻 보기에는]죽은 것 같이, 마른 것같이 보이는 뿌려진 씨이다. 그러나 모든 소산물이 실제로 그 속에 있다. 

그것은 "썩지 아니할 씨"(벧전 1:23), 마음[혼]속에 "열매를 맺는"(골 1:5, 6) 복음이다.

(2) 씨를 흩뿌리는 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친히 그 자신이, 또는 그의 사역자들을 통해 씨를 뿌리신다(37절). 

백성들은 하나님의 밭[농토(husbandary)]요, 말씀이 있는 경작지(tillage)요, 사역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고전 3:9). 

대중들에게 전파하는 것은 씨를 뿌리는 것인데, 그 씨가 어디에 뿌려지고 있는 지를 우리는 모른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그 땅은 좋고 깨끗하며 씨를 뿌리기에 알맞다는 것뿐이다. 

말씀의 씨를 뿌리는 것은 하나님의 들밭(기경, 개간하여 준비된 농토, field)에 백성, 즉 "그의 타작 마당의 곡식"을 뿌리는 것이다(사 21:10).

(3) 이 씨가 뿌려진 땅은 사람들의 마음으로써, 그 자격이나 성품이 각각 다르며 따라서 그 말씀의 성공도 각각 다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사람의 마음은 향상될 수 있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토양과 같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묵혀지거나 게으른 자의 밭과 같이 되는 것(잠 24:30)은 서글픈 일이다.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고 역사하고 지배기에 적합한 장소이다. 그 작용은 양심 위에 근거하며, 주님의 촛불을 밝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말씀도 우리에게 임한다. 즉 영접을 받아들이는 사람, 바로 그에게 달려 있다.[[그러므로 묵은 땅을 개간하라!!]}

그것은 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종류의 땅은 많은 수고를 들여 좋은 씨를 심었지만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좋은 땅은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다. 

여기에 네 종류의 땅(즉, "셋"은 나쁘지만, "하나"는 좋다)에 의해 묘사된 서로 상이한 특징을 가진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가 자신의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열매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누가 우리의 전한 것을 믿었느뇨?" 

넷 중에 겨우 하나만이 완전한 열매를 맺었다는 것은 전파된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비유가 주는 서글픈 전망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인 소명에 의해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만이 이 부르심의 효력에 의하여 영원히 선택함을 받았음이 입증되고 있다(마 20:16).

이제부터 이 4종류의 땅의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① 길가의 땅(4-19절). 

그들은 밀밭 사이로 지나갔다(마 12:1 역주:사잇길이 곧 "길가"를 말한다). 

그곳에 떨어진 씨는 땅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므로 새들이 그것을 쪼아 먹어버렸다. 

그리스도의 청중들이 지금 서 있는 장소는 그들 대부분의 특징들을 잘 나타내는 곳, 즉 바닷가 모래 위다. 

그것은 길가와 같은 곳이었다. 씨였다. 다음의 사실을 살펴보자.

첫째,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길가"에 비유되었는가? 

그것은 즉,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과 같다. 

그들이 듣고도 깨닫지 못한 것은 그들 자신의 잘못이다. 

그들은 [전심전력을 기울여 올인하며 감동받아 깨닫기로 작정함 통해] 그것을 유의하지도 않으며, 붙잡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길가가 씨를 심기우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좋은 것을 [반드시]얻으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 [그냥 심심풀이로 한번 와봤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그에게 나오며, 그의 백성이 앉는 것처럼 그 앞에 앉는다." 

그러나 그것은 보이고 보여지려는 과시에 불과하다. 

그들은 말해진 것에 유의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한쪽 귀로 와서는 다른 쪽 귀로 나가 버린다. 또한 감명을 받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둘째, 그들은 얼마나 무익한 청중이 되었는가? 

"악한자," 즉 마귀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아가 버린다"-

이와 같이 부주의하고 경솔하며 경박한 청중들은 사탄에게 쉽사리 먹이가 되어버린다. 마귀는 마음의 큰 살인자이며, 설교의 큰 도적이다. 

만일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서 말씀을 빼앗아가 버릴 것이다. 

마치 새가 땅을 갈기 전에나 써레질한 후에 떨어진 곡식을 쪼아먹듯이 만일 우리가 말씀을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그것에 대해 겸손하며 우리의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묵은 땅을 갈지 않는다면, 만일 우리가 명상과 기도에 의해 씨를 덮지 않는다면," 우리는 길가와 같은 자들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익을 얻는데 있어서 극악무도한 원수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평화에 속한 일들에 대해 생각해야만 할 때 그 밖의 것에 대해 생각하는 부주의한 청중이야말로 마귀의 계획에 동조하는 자들이다(의역).

(2) "돌밭,"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졌다"(5, 6절). 

이 돌밭은 전자보다는 조금 나은 청중들로서, 말씀에 대해 좋은 인상은 받았지만 오래 계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10, 21절). 

여기에서 유의할 것....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매우 나을 수는 있으나 우리가 되어야만 할 사람에까지는 썩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우리는 이웃보다 탁월하지만 하늘 나라에는 미치지 못할 수가 있다. 이제부터 돌밭으로 묘사된 이러한 청중들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그들은 어디까지 갔는가?

1. 그들은 "말씀을 듣는다." 

그들은 말씀에 대하여 등을 돌리거나 귀머거리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매우 자주, 그리고 엄숙하게 말씀을 듣는다 할지라도, 만일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기만 한다면 우리를 결코 천국으로 데려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2. 그들은 "말씀을 듣고 즉시(eujquv") 그것을 받되," 즉 말씀을 받는 데는 빠르며, 그것을 받을 준비를 한다. 

"곧 싹이 나오나"(5절), 즉 좋은 밭에 심기워진 것보다 더 빨리 땅에 나타난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위선자들은 종종 신앙 고백을 보임으로써 참된 기독자의 출발을 한다. 그러나 너무 성급하여 이를 감당치 못하는 때가 많다. 

그는 말씀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고 "그것을 곧장 받는다." 그들은 씹지도 않고 삼켜 버리기 때문에, 그 말씀을 좋게 소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기독자들은 "범사에 헤아려 (잘 분별해 보고) 좋은 것을 취해야만"(살전 5:21)한다.

3. 그들은 그 씨를 "기쁨으로" 받는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좋은 설교 듣기를 기뻐하면서도 그것에 의해 유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말씀을 즐거워할지 모르나 그것에 의해 변화되고 지배받지는 않는다. 그 마음이 말씀 아래 녹아질지 모르나 말씀에 의해 녹아지지 않는다. 

더욱이 옥토에 묻히는 것 같이 말씀에 묻혀지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맛보며"(히 6:5), 그 말씀 안에서 고상함을 발견했다고 말하지만, 어떤 애지중지하는 정욕이 "혀 밑에서 굴려진다"(역주 자신의 정욕을 혀가 놀리는 것 같이 반복하여 사용한다는 뜻).

이것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그 말씀에 대하여 또 다시 침을 뱉았는다.

4. 그들은 힘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계속되지만 그것이 다 없어졌을 때는 멈추고 마는 맹렬한 동작과 같이 "잠시 견딘다." 

많은 사람이 잠시 견디기는 하지만 오래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견디는 자에게만 약속된 행복에 못 미친다(마 10:22)는 사실에 유의하라. 

그들은 잘 달렸지만 어떤 것이 그들을 방해하였다(갈 5:7).

둘째, 그들은 어떻게 시들어 버렸는가? 

그들은 시들어 버렸기 때문에 완전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었다. 

습기를 흡수할 수 있도록 땅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는 곡식은 태양열에 의해 시들고 말라버린다. 또한 그 이유는,

1. 그들은 "뿌리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판단에 있어서 안정되고 고정된 원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며, 그들의 의지에 있어서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그들의 애정에 있어서 뿌리를 내린 습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들의 신앙 고백의 활기나 힘이 될 견고한 것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1) 은혜의 뿌리가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신앙 고백의 푸른 잎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그들은 마음이 강퍅하며, 표면에만 이 흙이 있고 부드럽다. 내적으로는 돌(stone....치워져야 할 나름대로의 제한선)의 영향을 받는다. 

그들은 뿌리를 가지지 못하였으며, 신앙에 의하여 우리의 뿌리이신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지 못하였다. 

그들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알며 사랑하며 섬김의 신뢰로부터 나오지 않으며 결국 그 말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

(2) 원리(principle)가 없는 곳에는 비록 신앙 고백이 있다고 할지라도 인내를 기대할 수 없다. 

뿌리를 가지지 못한 자들은 잠시 동안만 견딜 수 있다. 밸러스트(ballast, 역주:배의 바닥 짐)가 없는 배는 비록 처음 항해는 순조로울지 모르지만 날씨가 사나우면 파선되어 결코 입항할 수가 없을 것이다.

환란의 때가 오면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말씀을 인하여 환란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진다." 

환란이나 핍박은 그가 견딜 수 없는 길가의 장해물이며, 따라서 그는 도망가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신앙 고백이 다달은 막바지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1) 생명의 복음말씀을 기쁨으로 받음의 기회라고 하는 고요한 미풍이 지나간 다음에는 대개 그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이나 안 받아들인 사람, 양자를 시험하기 위하여 환란의 폭풍이 뒤따른다. 

그리스도의 왕국의 말씀이 진정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이 될 때란(계 3:10), 그때가 바로 그 말씀을 지키는 자와 지키지 않는 자에게 시련의 때를 거쳐야 분별되는 것이다(계 1:9). 이러한 날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 지혜이다.

(2) 시련의 때가 올 때, 뿌리를 가지지 못한 자들은 곧 넘어진다. 

그들은 [대개 편안과 안일을 추구하는 기복적인 믿음에 국한되어 있었음이 드러나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신앙 고백에 이의(異議)를 제기하다가 그것을 포기해 버린다. 처음에는 그것의 결점을 잡다가 아예 팽개쳐 버린다. 

우리는 여기에서 "십자가의 거치는 것"에 대해 읽을 수 있다(갈 5:11). 핍박은 "시들게 하는 해"(6절)로 비유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동일한 해(태양)이 떠 오르면 뿌리가  [시냇가의 물근원까지 깊이 내려서] 잘 뻗어있는 것은 따뜻하게 잘 키워 성장하여 열매 맺게 하지만,  뿌리가 물근원까지 내리지 못한 것은 곧 시들어  태워짐 당한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향기"가 된다. 

어떤 사람을 배신과 파멸로 몰아 넣는 동일한 환란이 어떤 사람에게는 "영광의 심히 크고 중한 것"이 되게 한다. 

어떤 사람을 흔드는 시련이 어떤 사람은 견고케 한다(빌 1:12). 

그들은 얼마나 빨리 시들어 버렸는가를 살펴 보라. 그들은 익자마자 곧 썩어버렸다. 

심사숙고함이 없이 취해진 신앙 고백은 흔히 심사숙고함이 없이 시들이 버린다. "쉽게 와서는 쉽게 가버린다."

③ 가시떨기의 밭.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가시 떨기는 울타리에 있을 때는 곡식을 잘 보호해 준다. 그러나 그것들이 들판에 있을 때는 장애물이 된다), 

"가시가 자라서"란 말은 가시가 곡식이 심기웠을 때는 보이지 않거나 약간 보이다가 그 후에 꽉 차게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7절). 

이것은 전자의 경우보다는 훨씬 낫다. 왜냐하면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신앙 고백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에 의해 구원받는 특권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나타낸다. 

말씀에 의해 얻은 좋은 것이 이 세상의 것들에 의해 서서히 압도되고 눌리워진다. 

번영(부귀 영화)은 핍박이나 박해 그 이상으로 마음에 있는 말씀을 파괴해 버린다. 

이 가시떨기는 더욱 조용히 왕성하게 자라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위험스러운 것이다. 돌들은 뿌리를 못쓰게 하지만 가시나무는 열매를 못쓰게 한다.

그러면 이 막아버리는 가시떨기는 무엇인가?

첫째, "이 세상의 염려"이다. 

저 세상(천국)에 대한 염려는 이러한  생명말씀씨앗의 발아를 촉진시키고 뿌리내리고 줄기가 자라고 가지가 무성하도록 뻗고 장성하여 꽃 피고 열매 맺게 하지만, 이 세상에 대한 염려는 오히려 그것을 막아버린다. 

세상의 염려들은 가시떨기와 적절하게 비교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죄와 더불어 세상에 들어 왔으며 또한 저주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제나름대로 부족한 곳을 메꾸는 데는 좋을지 모르나 그것들을 많이 다루는 자는 잘 무장되어야만 한다(삼하 23:6, 7). 

그것들은  자라나는 생명체에 얽혀 성장을 막고, 괴로움을 주며, 할퀸다.. 그러나 "그들의 나중은 태워지는 것이다"(히 6:8). 

이러한 가시 떨기는 좋은 씨를 막아 버린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세상적인 염려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유익을 얻거나 또한 경건의 연습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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