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1.2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갈4_아들의 영( 생명의 그 영) 내주하심 통해 거듭난 Q 아들의 명분 가짐-그리스도 형상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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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갈4장  [주와같이길가는것430][주날개밑419][아버지여 나의맘을424]


##갈라디아서 서론(1:1-5) ==>##복음에 대한 계시 (갈1:6-4:31) ==>##Q자녀들의 생활(5:1-6:17) 

#복음에 대한 계시 (갈1:6-4:31) : *1) Q 아들이 인간 종교에 반대됨(1:6-2:10)  *2)그리스도가 율법을 대치함(2:11-21) *3)믿음에 의한 그 영이 율법에 의한 육체와 받대됨(3:1-4:31) [3:1-14] 그 영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인한 약속의 축복임 [3:15-29] 율법은 약속을 이어받은 상속자들의 몽학선생임 (((갈3장에서 두 가지 요점 1)그 영이 복음의 축복임 2)율법은 Q의 자녀들을 돌보는 몽학선생임))) ....[4:1-7] 아들의 명분이 율법의 후견을 대치함 [4:8-20]  유업을 이어받는 상속자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뤄져야 될 필요성 [4:21-31] 그 영에 따른 자녀들이 육체에 따른 자녀들과 반대됨


((중생 --- Q 아들들의 명분(=아들 권리 행사 자격..sonship), 유업 잇는 상속자의 특권))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영, 그 영께서 일하시는 바, 복음 듣고 자기가 진정 죄인 됨을 인정하며 동시에 오직 JC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만 구원 받고 나날이 완전하고도 새로운 삶을 선물로 받는 유일한 길임을 인정하고 회개/회심/주께 돌이킴, 즉  주 이름 불러 JC를 나의 주와 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함의 새 창조- 중생- 거듭남을 통해 [오직 그 영 따라 살며 JC의 장성한 분량의 중만에 이르게 되는, Q의 가족(권속)이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하나님 나라 백성이요, 이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부-어린양의 아내-TUQ의 거처 삼음을 이루고 계심 

.....Q께서 당신의 참생명으로 친히 낳으셨으니 당연히 Q은 아버지시다...그러기에 예수님은 부활의 날에 만난 여인들에게 "형제들에게 가서, 나의 Q-너희 Q, 내 아버지-너희 아버지께로 올라간다 하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언행심사를 주의하라)...여기<중생(거듭남) 과 독생자 예수 외의 친히 낳은 아들이란 개념으로 "양자 됨 the adoption of sons"를, 즉 정관사 the를 쓰고 있다!!... Q의 독생한 아들 예수님 말고, 그분의 영적 부활 생명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시고 그분의 생명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심으로써 영원히 그분과 함께 살게 하신바 그분의 영으로 낳은 참 아들들, 그들의 아들 명분>개념은 ...사람 사는 세상의 입양/양자 개념(자기가 낳지 않아도 양자 삼을 수 있다) 으로는 다 설명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갈4:5의, that we might receive the adoption of sons :: that we [who believe] might be adopted as sons [as God’s children with all rights as fully grown members of a family]. 이 부분을 각 사람마다 주께 깊이 여쭈어보도록하라 ...다른 이들에게 설명함에 있어서 조심할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그 영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써 곧 아들의 명분을 주셨고, 부활 승천 안에 하늘에 계신 CJ의 모든 성취와 이름-권세를 가진 자로서 누리게 하시며 그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성장 성숙함을, 즉 영-->혼-->몸의 완전한 구속을 이루어 가고 계심을 완전히 이해하여야 가능하다..

 

.....[갈4:4-7....(개개)..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표새).4. 그러나 기한이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여인에게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5.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녀의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리고 또 여러분은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 각자는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입니다....(우성) 4. 그러나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 5.  이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6.  러분이 아들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속에 보내셔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은 더 이상 종이 아니고 아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들이면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상속자입니다.....(AMP) 4 But when [in God’s plan] the proper time had fully come, God sent His Son, born of a woman, born under the [regulations of the] Law, 5 so that He might redeem and liberate those who were under the Law, that we [who believe] might be adopted as sons [as God’s children with all rights as fully grown members of a family]. 6 And because you [really] are [His] sons, God has sent the Spirit of His Son into our hearts, crying out, [a]“Abba! Father!” 7 Therefore you are no longer a slave (bond-servant), but a son; and if a son, then also an heir through [the gracious act of] God [through Christ].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아들의 영을 주심은)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의 명분 (생명 + 성숙+지위+권리를 그 안에 포함): 아버지의 생명 받음-합당한 성숙에 이르름 ==>아버지께 속한 지위에 따라 오는 권리와 특권을 포함한 개념.. 부활 안에서 독생자 그리스도는 맏아들 되시고 믿는이들을 아들(양자가 아니다) 삼으셨음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TUQ의영, 그리스도의 영, 생명 주는  그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염려하다.

....바울의 복음 전파 목표는 갈라디아인들의 거듭남 거쳐 단체적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곧 온전하게 된 Q의 아들들을 산출코자 함에 있었음.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사신 우상들 및 율법의 도덕률과 의례 규정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상호 참된 앎 =거함 통해 이루셨음)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율법 준수와 전파를 위해 추종자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목숨 걸 정도로, 생사의 문제로 여기는) 유대교도들은 갈라디아의 믿는이들이 [바울이 보기에는]  기꺼이 종 노릇할 정도로까지 미혹했고 기만했다..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구주의 긍휼을 온전히 받기 위해 율법과 유대교를 [분토처럼]버리고 성령을 따라 행함)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JC 따라 그분의 몸의 지체로서 성장성숙과 영화, 즉 그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도달함 추구)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복음 진리를 위해 유대교를 벗어버리고 그 자신이 갈라디아인들처럼 되려고 최선을 다해 왔듯이, 이제는 그들도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하는 자기처럼 되기를 원한다.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육체의 병약함 인해 갈라디아에 체류하게 된 그 기간동안]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갈라디아인들은 복음 듣고 믿음으로써 얻은구원을 진정한 축복이자 행복으로 여겼었는데)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고후12:7-9에서 보듯이 그의 육체의 약함, 즉 육체의 가시는  아마도 눈병이었던 것 같다)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바울을 심지어는 원수처럼 여기는 이들도 있었음을 인지함

17.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갈라디아 신자들에게 열심히 비위를 맞추며 마음 얻어 자기들에게 열심내는 추종자 삼으려고 부지런히 쫓아다님)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18.  (Q 뜻 구하며 참 생명 진리 따라 전심으로  추구토록  하기 위해, 바울이 지금 그리하듯이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 전파의 궁극 목표는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 이룸 즉, 살아계신 인격 그리스도가 믿는이들 각자 안에서 산출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로 적셔지고 채워짐의, 바로 그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양수겸장의 추구가 필요하다. 주께 자신을 드린,  선주자의 경험과 일절 정결함으로 다정하고도 친밀한 방식으로 그리스도께 적셔짐 따라 인도함, 여기에 그를 신뢰함 안에서 후주자의 주 안에서 구주 추구함의 합당한 따름과 실행이 어우러져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인데, 자기 연민이나 머뭇거림의 느슨함은 더 이상 작동될 여지가 없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낳고 기르는 참된 영적 아비-어미의 마땅한 수고와 친밀함 안에서 세심한 관심과 함께 전심 전력 쏟아붓는 헌신적 열정적 사랑이 있느냐의 문제임

....[그리스도의 형상 이룸....교회 안에서나 사역 안에서 우리의 섬김의 목표는 오로지  다른이들 안으로 그리스도를 공급함이어야 한다] (품으심-양육하심-깨끗케 하심-거룩케 하심)을 위해 그 영으로 (영과 혼[생각감정의지]을 완전히 소유하시고, 그리스도가 믿는이의 사고-결정-사랑 그 자체가 되고,  몸의 구속에 이르기까지 각 부분이 완전히) 적셔짐 - Q의 성분과 요소로 주입받음-점유되고 충만케 됨-변화받고 달구어지고 사랑으로 빛나는  Q을 반사/반영하며 공급하는, Q의 갈망 이루는, 충만히 자란 Q의 아들들로 나타남을 이룸.....그리스도께서 실지로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되시도록까지, 우리의 사고-결정-사랑이 되시도록 까지 허락해 드리라...그리스도께서 우리 자신을 완전히 점유/점령하시도록, 그분 외의 모든 것은 감소하고, 오직 그분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게 함.

....그리스도는 오늘 복음의 축복, 즉 Q에 의해 약속된 축복, 곧 생명 주는 영이시다. 이 축복을 완전히 누리는 것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신약의 축복을 완전히 누리기 원한다면 그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아직 그렇지는 않다면 그 누구든지 신약의 축복에 대한 누림이 있다고 해도 아직 완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정녕 그렇다면  이제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전체를 점령하시고 주권을 잡으시고 우리의 각부분을 완전히 적시도록 해 드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갈라디아의 믿는이들에게 편지한 목적이었다. 이것은 내주하시는, TUQ이자 그리스도의 영, Q께서 친히 우리의 기업 이심에 대한, 인침과 보증으로 주셔서 미리 맛보고 누림 통해 확신 갖게 하신 생명 주는 영을 통해 이루어 주고 계신데, 인침이란 복합적 관유로 예표된 그 영으로 적셔짐인 반복적 덧칠을 통해 그 성분이 확고히 전 존재에 스며듦이라 할 수 있으며  그때마다 보증되심, 즉 그리스도가 얼마나  달콤하고 홍홀하며 아름다운 분이신지  미리 맛보아 알아가게 된다.

.... 길라디아 신자들은 바울의 복음전파를 통해 거듭났을 때 이미 (삶의 목적- 방향-가치-의미-보람) 에 있어서의 대전환이란  큰 고통 통해 그들 안에 그리스도가 출생한 바 되었지만, 아직 그리스도의 충만한 자람,  즉 그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형상은 이뤄지지 않았음을 바울은  알아차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축복을 물려받는 상속자 되도록, 거룩한 아들의 명분 안에서 성숙됨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부가적인 수고와 고통, 즉 끊임없는 기도와 간구-일절 오래 참음의 인내-죽기까지 자신을 내어주는 영적 아비와 어미의 사랑 어린 두 번째의 산고가 있어야 했다. 이 또한 간교한 대적과의 치열한 영적 전쟁이자 투쟁이다.

.... [전도자]복음을 전하여 교회들을 세우는 것과 [교사와 목자]성도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 이룸 위해 그분을 공급하는 부담을 지는 것은 별개의 것이기는 하다. 거듭난 이마다 그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륵 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큰 영적 부담을 갖지 않은 채 그리스도를 위해 열심히 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로지 그리스도를 향하게 함, 그리스도를 얻고 그 가운데서 발견되도록 함에는 못미칠 수 있음을, 즉 주님  마음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깊은 갈망은 도외시 한 채 일종의 자기 만족에 그칠  위험성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갈라디아 신자들은 바울의 복음 전파로 주께 왔었고, 바울에게는 그들을 돌보려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 즉, 바울의 마음에 여전히 남아있었던 큰 부담은 기독교의 일을 이루려 함이 아니라 믿는이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여 그들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뤄지도록까지 수고하는 것이었다.((이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줄 수 있을 정도로!!))...진정,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서 Q을 알며, 게다가 마음 눈을 밝히셔서 부르심의 소망과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믿는이마다에게 부여하신 믿음의 능력을 참되게 알고 실행하며,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고 그리스도의 신장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생명의 성장성숙의 선순환 안으로 들어가도록 수고함  그대는 정녕 어떠한가...정녕 주 앞에서 그대의 부르심이 어떤지 봐야 하리라....심각한 질문 없이, 그저 혹시 전도 연습생이거나 목회 연습생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닌가??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하갈과 사라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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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갈4장

1.  내가 또 말합니다. 유업을 이을 사람은 모든 것의 주인이지만, 어릴 때에는 종과 다름이 없고,

2.  아버지가 정해 놓은 그 때까지는 보호자나 관리인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릴 때에는, 세상의 유치한 교훈 아래서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4.  그러나 기한이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여인에게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5.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녀의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리고 또 여러분은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 각자는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염려하다

8.  ○그런데 전에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본디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을 하였지만,

9.  지금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알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무력하고 천하고 유치한 교훈으로 되돌아가서, 또다시 그것들에게 종노릇 하려고 합니까?

10.  여러분이 날과 달과 계절과 해를 지키고 있으니,

11.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염려됩니다.

12.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과 같이 되었으니,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내게 해를 입힌 일은 없습니다.

13.  그리고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가 병든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14.  그리고 내 몸에는 여러분에게 시험이 될 만한 것이 있는데도, 여러분은 나를 멸시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해 주었습니다.

15.  그런데 여러분의 그 감격이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여러분에게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할 수만 있었다면, 여러분의 눈이라도 빼어서, 내게 주었을 것입니다.

16.  그런데 내가 여러분에게 진리를 전하였으므로, 여러분의 원수가 되었습니까?

17.  위에서 내가 말한 자들이 여러분에게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뜻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내게서 떼어놓아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들을 열심히 따르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8.  그런데 그들이 좋은 뜻으로 여러분에게 열심을 낸다면, 그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좋은 일입니다.

19.  나의 자녀 여러분, 나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20.  이제라도 내가 여러분을 만나 어조를 바꾸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당황하고 있습니다.

===하갈과 사라

21.  ○율법 아래 있기를 바라는 여러분, 내게 말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율법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합니까?

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태어나고 하나는 종이 아닌 본처에게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3.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신을 따라 태어나고, 본처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을 따라 태어났습니다.

24.  이것은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두 여자는 두 가지 언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내 산에서 나와서 종이 될 사람을 낳은 하갈입니다.

25.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을 뜻하는데,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합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은 그 주민과 함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종이 아닌 여자이며,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7.  성경에 기록하기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여, 즐거워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여자여, 소리를 높여서 외쳐라. 홀로 사는 여자의 자녀가 남편을 둔 여자의 자녀보다 더 많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28.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29.  그러나 그 때에 육신을 따라 난 사람이 성령을 따라 난 사람을 박해한 것과 같이, 지금도 그러합니다.

30.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아라. 여종의 아들은 절대로, 종이 아닌 본처의 아들과 함께 유업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31.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한 여자의 자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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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atians 4 Amplified Bible

==Sonship in Christ

*1. Now what I mean [when I talk about children and their guardians] is this: as long as the heir is a child, he does not differ at all from a slave even though he is the [future owner and] master of all [the estate]; 

*2. but he is under [the authority of] guardians and household administrators or managers until the date set by his father [when he is of legal age]. 

*3. So also we [whether Jews or Gentiles], when we were children (spiritually immature), were kept like slaves under the elementary [man-made religious or philosophical] teachings of the world. 

*4. But when [in God’s plan] the proper time had fully come, God sent His Son, born of a woman, born under the [regulations of the] Law, 

*5. so that He might redeem and liberate those who were under the Law, that we [who believe] might be adopted as sons [as God’s children with all rights as fully grown members of a family]. 

*6. And because you [really] are [His] sons, God has sent the Spirit of His Son into our hearts, crying out, [a]“Abba! Father!” 

*7. Therefore you are no longer a slave (bond-servant), but a son; and if a son, then also an heir through [the gracious act of] God [through Christ].

*8. But at that time, when you did not know [the true] God and were unacquainted with Him, you [Gentiles] were slaves to those [pagan] things which by [their very] nature were not and could not be gods at all. 

*9. Now, however, since you have come to know [the true] God [through personal experience], or rather to be known by God, how is it that you are turning back again to the weak and worthless elemental principles [of religions and philosophies], to which you want to be enslaved all over again? 

*10. [For example,] you observe [particular] days and months and seasons and years. 

*11. I fear for you, that perhaps I have labored [to the point of exhaustion] over you in vain.

*12. Believers, I beg of you, become as I am [free from the bondage of Jewish ritualism and ordinances], for I have become as you are [a Gentile]. You did me no wrong [when I first came to you; do not do it now]. 

*13. On the contrary, you know that it was because of a physical illness that I [remained and] preached the gospel to you the first time; 

*14. and even though my physical condition was a trial to you, you did not regard it with contempt, or scorn and reject me; but you received me as an angel of God, even as Christ Jesus Himself. 

*15. What then has become of that sense of blessing and the joy that you once had [from your salvation and your relationship with Christ]? For I testify of you that, if possible, you would have torn out your own eyes and given them to me [[b]to replace mine]. 

*16. So have I become your enemy by telling you the truth? 

*17. These men [the Judaizers] eagerly seek you [to entrap you with honeyed words and attention, to win you over to their philosophy], not honorably [for their purpose is not honorable or worthy of consideration]. They want to isolate you [from us who oppose them] so that you will seek them. 

*18. Now it is always pleasant to be eagerly sought after [provided that it is] for a good purpose, and not just when I am with you [seeking you myself—but beware of the others doing it]. 

*19. My little children, for whom I am again in [the pains of] labor until Christ is [completely and permanently] formed within you— 

*20. how I wish that I were with you now and could change my tone, because I am perplexed in regard to you.

==Bond and Free

*21. Tell me, you who are bent on being under the Law, do you not listen to [what] the Law [really says]? 

*22. For it is written that Abraham had two sons, one by the slave woman [Hagar] and one by the free woman [Sarah]. 

*23. But the child of the slave woman was born according to the flesh and had an ordinary birth, while the son of the free woman was born in fulfillment of the promise. 

*24. Now these facts are about to be used [by me] as an allegory [that is, I will illustrate by using them]: for these women can represent two covenants: one [covenant originated] from Mount Sinai [where the Law was given] that bears children [destined] for slavery; she is Hagar. 

*25. Now Hagar is (represents) Mount Sinai in Arabia and she corresponds to the present Jerusalem, for she is in slavery with her children. 

*26. But the Jerusalem above [that is, the way of faith, represented by Sarah] is free; she is our mother. 

*27. For it is written [in the Scriptures], “Rejoice, o barren woman who has not given birth; Break forth into a [joyful] shout, you who are not in labor; For the desolate woman has many more children Than she who has a husband.”

*28. And we, [believing] brothers and sisters, like Isaac, are children [not merely of physical descent, like Ishmael, but are children born] of promise [born miraculously]. 

*219. But as at that time the child [of ordinary birth] born according to the flesh persecuted the son who was born according to [the promise and working of] the Spirit, so it is now also. 

*30. But what does the Scripture say? “Cast out the bondwoman [Hagar] and her son [Ishmael], For never shall the son of the bondwoman be heir and share the inheritance with the son of the free woman.”  

*31. So then, believers, we [who are born again—reborn from above—spiritually transformed, renewed, and set apart for His purpose] are not children of a slave woman [the natural], but of the free woman [the superna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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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4장 (개요)

사도는 본장에서도 전 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목적 아래 서신을 기록한다. 

즉 유대적 경향을 띤 교사들에 의하여 잘못 심겨진 생각들을 제거하여 갈라디아 교인들을 정상적으로의 회복시키고 복음의 의인의 교리에서 벗어나고 모세의 율법의 멍에를 짐으로 그들의 자유를 상실당한 그들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목적을 위하여서 그는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Ⅰ. 율법보다 복음이 지니고 있는 우위성(1-7).

Ⅱ. 그들의 회심으로 그들 속에 일어난 내적 변화(8-11).

Ⅲ. 그들이 그와 그의 사역에 대하여 품었던 사랑(12-16).

Ⅳ. 그들을 돌아서게 한 거짓 교사들의 특징(17,18).

Ⅴ. 이삭과 이스마엘의 역사. 

--이 양자를 비교함으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는 것과 율법을 신뢰하는 것의 차이를 설명한다. 

이 모든 글에 있어서 그는 그들에게 분명하고 신실한 태도로 일관하였으며 동시에 그는 그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한다(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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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구속(갈 4:1-7)

본장에서 사도는 유대적 경향이 짙은 교사들의 말을 듣는 자들에게 문제점을 분명히 제시해 준다. 

이 유대적 경향이 짙은 교사들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대립하여 모세의 율법을 옹호하였고 율법의 멍에 아래 갈라디아인들을 끌어 넣으려고 애를 썼다.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고 이로써 그들의 과오를 시정해 주기 위하여 본문에서 사도는 전 장에서 취급하였던 율법을 미성년인 아이에 비교하여 그들에게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서 있을 때보다 우리가 복음 아래서 얼마나 큰 유익을 누리고 있는가를 제시한다.

Ⅰ. 그는 우리에게 구약 교회의 정황을 알려 준다. 

그것은 미성년의 아이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구약 교회는 우리가 복음 아래서 즐기고 있는 더 큰 빛과 자유에 비교하여 볼 때 어둠과 예속 상태에 매여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구약 교회에도 은혜의 통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적 흑암의 통치였었다. 

그것은 "유업을 이을 자가" 어린 상태에 있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리기때문에 [**구주를 믿고 영접하며 말씀에서 구주를 찾아 발견케 하시는 내주하시는 구주JC의 HS, 그분의 영적 지혜와 총명-이해-명철-분별-스스로 결단 실행하는 의지 발휘함 : 곧 율법의 존재 의미를 깨닫게 하는 영원이성인 누스NOUS를 아직 모르기에 연습-숙련-체득되지 못함 :: 깨닫고 난 후에는 그에게 대단히 유익할 것이지만] 현재는 이들 후견인과 청지기로부터 [그 의미를 거의 깨닫지 못하는 사항들..후견인가 청지기들도 그러하였다!!]에 대하여 교육을 받고 지시를 받아 그대로 적용한다. 

구약 교회가 꼭 이 아이와 같은 처지에 있었는 바, 일종의 모자이크 같은 경륜의 의미를 그들은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사항들은 사도가 말한 것처럼 "장차 없어질 것(당시로서는 최선의 경륜이지만)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고후 3:13). 

그러나 교회가 복음의 시대를 맞아 완전히 성숙할 때까지는 대단히 유용한 것이었다. 

율법은 흑암의 통치였던 동시에 예속의 통치였는데, 구약교회는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담스러운 수많은 의식과 규정에 얽매여 있었고 한편 이 초보적인 것들에 의하여 그들은 가르침을 받고 훈육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린 아이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듯이 예속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구약 교회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든 것을 이루어질 수 있게 하려고 뚜렷한 이유도 깨닫지 못하고서 종의 멍에를 사람들에게 계속 메어 주었다. 

그러나 복음 아래서의 섬김은 이러한 것보다는 더 합리적인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정한 때가 이르고 교회는 성년에 이르게 되었고 전에는 그 아래 매인 바 되었던 흑암과 구속이 그들에게서 옮겨지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더 큰 빛과 자유의 통치 아래 거하게 된 것이다.

Ⅱ. 그는 신약의 믿는 우리에게 복음의 통치 아래 있는 기독교인들이 [최상지복상태는 현새를 떠나 구주와 함께 하늘나라에 거함이다!!]훨씬 행복한 상태에 있음을 알려 준다(4-7절).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가 차매" 그는 율법의 통치를 종식시키는 대신 다른 보다 좋은 것을 세우시기 위하여 그는 "그 아들을 보내셨다." 

이 새로운 통치를 전하기 위하여 채택된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하나님 자신의 아들 곧 아버지의 독생자였다. 

이 아들은 태초부터 예언되었었고 약속되었던 분이었는데, 때가 이르렀으므로 이 목적을 위하여 나타내진 바 되신 것이다. 

그는 그가 착수하신 크신 뜻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는 그가 착수하신 "여자에게 나게 하심"에 복종하셨고(그의 성육신을 말한다) "율법 아래 나게 하심"에 복종하셨다(그의 매인 바 되심을 말한다). 이같이 참으로 하나님이신 그 분이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리고 만유의 주님이신 그분이 예속 상태에 처해 있기를 허락하시고 자신에게 종의 형체가 입혀짐을 승낙하였다. 

이 모든 일의 큰 하나의 목적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즉 조금도 관용이 없는 멍에로부터 우리를 구하시고 보다 합리적이고 용이한 복음의 규례를 베푸시기 위한 것이었다. 

참으로 그는 세상에 오심으로 단순히 우리를 의식적인 율법의 멍에에서 구원하시는 것 이상의 크고 원대한 뜻을 갖고 계셨다. 

즉 그가 인성을 입으시고 우리를 위한 고난과 죽음을 감수 하신 것은 이로써 그가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와 도덕법의 저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며 우리는 죄인으로 그 아래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하는 것은 그의 목적의 일부였고 또 다른 자비가(이는 우리에게 양자의 자격을 주시기 위한 것인데) 그의 나타나실 때에 수여되기 위하여 보존되고 있었다. 

그가 오시기 전에 한 동안 구약 교회는 더욱 비참한 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참혹성을 더 좋은 교리로 하여금 구약 교회를 대신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보냄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즉 우리를 더 이상 종으로 취급되지 않고 성장한 아들로서 대우하시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것이었다. 

그들이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었던 때보다 더 큰 자유가 주어지고 더욱 폭 넓은 특권이 그들에게 주어지게 하시기 위하여 그는 보냄을 받으실 것이다.

사도의 모든 논리의 전개는 우리로 하여금 이 양자됨의 특권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물론 바울이 말하고자 한 양자의 특권은 복음서가 자주 그리스도를 믿은 자들에게 주어질 특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라고] 말씀한 은혜로운 양자의 영이신 성령을 주심으로 양자로 선택받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 곧 그의 장남이었다(롬 9:4). 그러나 이제 복음 아래서 믿는 각 개인마다 양자됨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성령은 그들에게 기도의 사명을 인식하게 하며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바라 볼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이시다(6절). 

그러므로 본문에 이르기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고 하였다. 

더 나아가 이에 근거하여 사도는(7절)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는 말로 그의 논거를 종결짓는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지금 복음시대에서는 더 이상 율법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고, 

이 까닭에 [그리스도를 영접함의 믿음은 실지로 그리스도를 영접함,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영을 영접함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마땅히 우리는 아들의 영을 영접해야 하며 또 그에 의하여 양자로 선택됨안으로 믿어 들어가서 실지로 살며 누려야 하는 것]이다. 

아들들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들이 되었고, 하늘의 유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주어졌다.

(롬 8:17 에서 그는 같은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서 율법의 행위에 의하여 의롭다함을 얻으려 하는 것은 가장 큰 연약함과 우매함, 그 안으로 퇴축되어 되돌아가려함을 나타내는 것과 다름 없는 일이었다. 본문에서 사도가 말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1.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아가페)과 자비(긍휼). 

그것은 우리를 속량하고 구속하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자비-은혜-긍휼-일절오래참으심-미쁘심]하나님 아버지에게서 특별히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 대신 그토록 낮아지시고 그토록 많은 고통을 참으신 [겸손과 온유의 극치!!]아들에게서 또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이 [회복과 안식의] 은혜로운 목적을 위하여 강림하사 믿는 자들의 마음에 거하시는 성령에게서 이 사랑과 자비는 또한 나타난다.

2. 복음으로 인하여 기독교인들이 누리게 될 고귀하고 가치 있는 사실들.

(1) 우리가 양자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이다.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한 특권이다. 

본래 진노와 불순종의 자녀들이었던 우리가 은혜로 사랑을 입은 자녀들이 될 것이다.

(2) 우리가 "양자의 영"(이는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이신 성령, 성령하나님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양자된 자들에게 부여되는 것이다)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① 양자의 특권을 소유한 사람은 모두 양자의 영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어짐을 받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영을 받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그의 자녀들이 그와 닮기를(판박이 ..conformity) 바라시기 때문이다.

② 양자의 영은 언제나 기도의 영이시며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로서 바라볼 수 있도록 가르치셨다...[내주하여 계신 성령, 곧 주 영께서 기도-찬송-말씀하시게 하라..그분은 바로 여호와의 영, 지혜와 총명의 영, 경략(경세지략.>모략)과 재능/권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영이시다..지혜와 계시의 영이시다.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묵상하라.. 총명은 이해력, 곧understanding=영원이성 NOUS누스..인 바 하나님에 대한 분별지요 하나님을 합당하게 경외함과 경건안에서 그리스도 빼어닮기-예언-영분별-권능의 기름부음을 가능케 한다..모략의 영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모략, 실상 초월적인 경륜과 섭리로 뜻하신 목적대로 하나님나라를 경영하심이기에 경략, 경세지략...지식은 먼저 하나님< 전지전능의 권능/능력, 기념이름들과 계시하신 성품, 창조주-주재의 풍성부요충만, 주권적인 뜻과 섭리 곧 그분의 모든 영광>, 사람, 사물에 대한 초월적-완전한- 참된 지식인데, 온갖 참되고 완전한 지식과 지혜의 모든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하나님을 경외함의 영이신 성령하나님이 바로 또한 양자의 영이시다!!]

③ 만일 우리가 그의 아들이면 또한 그의 상속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인간 세계에서는 장남만이 상속자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상속자가 된다. 

아들의 성품을 받은 자들은 아들의 유업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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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구원(갈 4:8-11)

본문에서 사도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회심하기 이전의 상태가 어떠하였는가를 상기시킨다. 

또한 회심으로 그들에게 어떠한 복된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상기시킨다. 

그런 다음 이제 본격적으로 그들이 그들을 모세의 율법의 멍에 아래 매어 놓으려고 하는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이며 부당하고 연약한 것인가 하는 점을 그들에게 설득한다.

Ⅰ.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지난 날의 처지와 행위를 상기시키고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전의 그들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었다." 

그들은 참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무지하였었고 그를 섬기는 방법에 대하여서도 무지하였었다. 당시에 그들은 최악의 노예 상태에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곧 하나님이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우상에게] 종노릇 하였기"때문이었다. 

그들은[후견인과 청지기 역할을 맡은 자들...나름의 완벽을 추구하기에 조항을 자꾸 더하여 더욱 매이게 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그들 스스로는 신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영적 실상은] 참 신이 아니요, 단순한 피조물, 즉 어쩌면 그들이 만든 것으로써 그들의 말을 듣지도 또 전해 배울 수도 없는 무수한 우상과 미신을 섬기는 일에 종사하였었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참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한 사람들은 거짓 신들에게 마음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한 사람들은 신들 없이 지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든 것을 신으로 숭배한다.

2. 신앙적 예배는 본질상 참 하나님이신 그분 이외의 누구에게도 드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사도는 본질상 신일 수 없는 것들에게 예배드리는 행위를 책망하면서 본질상 유일무이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신 그분만이 유일하고 또 타당한 우리의 신앙적 숭배의 대상임을 명백히 제시해 주고 있다.

Ⅱ. 그는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영접하고 믿음으로 이루어진 복된 변화에 대하여 생각해 볼 것을 그들에게 촉구한다. 

이제 그들은 "[양자의 영, HS의 하나님을 , 하나님 음성을 깨닫는 영원지성 NOUS를 열어주심따라 참되게]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다." 

(그들은 참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에로 옮기어졌다. 이로써 그들은 그들이 전에 처해 있었던 무지와 예속의 상태에서 벗어났다)  

이러한 복된 변화가 있게 될 것, 곧 우상에 대한 숭배에서 돌아서 사신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되었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양자됨의 특권을 얻은 것은 그들 자신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 승천, 성령부어주심의]은총의 덕분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자유롭고 풍부한 은총의 결과였고, 또 그들이 그렇게 마땅히 여겨야 했던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가 그들을 자유롭게 하신 그 자유를 추종할 더 큰 의무를 수여받은 것( 더 나아가 Q의 복음을 은혜에 빚진 자로서 마땅히 전파하여 영혼구원하시는 하나님과 <겸손히>동행해야 할 책무가 있음]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모든 사귐은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가 하나님에게 알려진 바 되었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Ⅲ. 그는 갈라디아인들이 다시 예속의 상태에 매이려고 하는 불합리하고도 미친 것과 같은 행위에 대하여 논한다. 

그는 그들이 그렇게 하려고 하는 사실에 대하여 놀라움과 깊은 우려를 품고서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어찌하여 돌아가려 하느냐"고 말한다(9절). 

"복음이 제시해 주는 방법대로 하나님에게 예배하는 것을 가르침 받은 너희가 이제 형식적인 예배의 방법을 좇으라는 자들에게 어째서 설득당하고 있는가? 

복음의 가르침대로 빛과 자유와 사랑의 통치에 친숙해 왔던 너희가 율법이 지시하는 흑암과 예속과 공포의 통치에 어찌하여 복종하려 하는가?" 

그들은 유대인들처럼 결코 모세의 율법 아래 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율법을 좇을 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들은 유대인들보다 더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들 가운데 그토록 오랫 동안 지켜져 왔던 율법의 관습에 대하여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참고 기다려주심) 

게다가 이방인 신자, 그들이 지금 스스로 예속되고자 하는 것은 그 속에 영혼을 정결케 하는 능력도 없고, 마음에 확실한 만족감도 주지 못하며 다만 미성년 상태의 규약 교회를 위해 계획된 것으로 이제 복음의 시대에는 종언을 고하게 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에 불과한 것에 스스로 얽매이려 함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유대적 교사들에게 복종하고 유대인들의 각종 절기 즉 본문에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킴으로 유대인들과 동일화하려는 것이 더욱 그들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들추어 내는 것에 지나지 않음[허공을 치는 것임!!]을 말한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신앙을 훌륭히 고백한 자들이 후에 신앙의 순결과 순박함에서 떠나 이탈해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갈라디아의 교인들이 그러한 경우였다.

2. 그들을 이끌어 복음을 알게 하고 복음의 자유와 특권을 알게 한 그 하나님의 자비가 크면 클수록 이 모든 권리를 가만히 빼앗겨 버리는 자들의 죄와 어리석음은 더욱 가중된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하여 사도는 특별히 강조한다. 

즉,그들이 하나님을 알았고 또는 이미 그분에게 알려진 바 된 후에 약하고 천한 율법이라는 초등 학문에 매이기를 바라는 것의 어리석음을 대단히 강조한다.

Ⅳ. 그는 그들에 대한 자신의 염려를 표현한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한다"고 말씀한다. 

그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복음에 대한 믿음과 복음이 주는 자유로 확신하게 하려고 많은 고난을 당하였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버림으로 그들 가운데서 행한 그의 수고를 헛된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기억하자.

1. 신실한 사역자들의 많은 수고가 헛되게 되고 마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다. 

사태가 그렇게 전개될 때 영혼들의 구원을 염원하는 자들에게 큰 슬픔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사역자들의 수고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으로 끝맺는 자들로 인하여 헛된 것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잘 출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후에는 복음의 길에서 벗어난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사역자들로 헛되어 수고를 하게 한 자들(그의 말에서 떠남으로)은 그 막중한 책벌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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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불타는 충고(1)(갈 4:12-16)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가 전해 주었던 복음의 진리를 버린 사실을 그들이 부끄럽게 여겨야 될 것을 촉구한 후 바울은 그들이 전에 그들이 전에 자기와 그의 사역에 대하여 가졌였던 큰 사랑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들이 당시에 고백하던 것에 대하여 현재와 같이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 것인가도 상기시킨다. 

여기서 다음 사실들을 생각하여 보자.

Ⅰ. 바울의 그들을 향한 열정적인 호소. 

그는 그들의 마음이 자기에게서 상당히 멀어진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형제라고 부른다. 

그는 모든 원망과 시비가 사라지고 그가 그들을 향해 품은 것과 같은 온화한 심정을 저희도 그를 향해 품게 되기를 바란다. 

그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라노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서 그는 그들에게 "그들이 그에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음을" 말한다. 그는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그들과 변론한 적이 없었다. 

그들의 행위를 책망할 경우에라도 그는 온화함과 깊은 관심을 갖게 하였고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적대하기 위한 심정으로 그런 것이 아니고(그들은 그를 그렇게 생각할 여지가 있었다), 오로지 복음의 진리와 순결을 위한 또한 그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열심히 그렇게 하였음을 말한다. 

이같이 그는 그를 향한 그들의 심정을 달램으로 그들이 그가 그들에게 준 경고로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려고 애를 쓴다. 

여기서 그는 우리에게 우리가 다른 사람을 견책할 때 우리의 책망이 사적인 불쾌감이나 원한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신앙의 영예와 그들의 참다운 안녕을 위한 진지한 관심에서 나온 것임을 상대방이 인식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책망이 가장 공평성을 띨 때만이 성공적으로 먹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Ⅱ. 그는 그에 대한 그들의 이전의 사랑을 높이 평가한다. 

그에 대한 이전의 사랑 때문에 그를 향한 현재의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그들은 더욱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이었다.

1. 이러한 목적으로 그는 자기가 그들 가운데 처음 왔을 때 그가 당한 곤경을 그들에게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안다"고 말하였다. 

그의 "육체의 연약함"은 "내 육체에 있는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란 말로 보충되어 표현되고 있으나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물론 그의 편지를 받는 교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그가 복음으로 인하여 겪었던 박해일 것이라고 본다. 

또 어떤 이는 고린도후서 10장 10절과 12장 7-10절의 내용을 들어 그것은 그의 사역에 대하여 감사한 생각을 품지 못하게 하고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것이 그들에게 그를 나쁘게 생각하게 하는 요인이 된 것 같지는 않다.

2. 그들이 그를 경멸치 아니하였다는 이유는 그의 이러한 연약함에도 불구하고(어떤 이들은 이것 때문에 그를 업신여겼을 것이다), 그들은 그를 경멸하거나 거절하지 아니하였음을 그가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다."  

그들은 그에게 대단한 경의를 표하였고 마치 그를 하나님의 천사나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전파하러 오기나 한 것처럼 그들은 위한 메신저로 그를 환영하였다. 

그에 대한 그들의 존경이 이와 같았으므로 그들은 그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그들의 눈이라도 빼서 그를 줄 수 있을 정도였다." 

백성들의 존경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확실하게 또 얼마나 그들의 마음은 표현하기 쉬우며 한때는 그들이 최대의 존경과 사랑을 바치던 대상에 대하여 쉽게 경멸을 가할 수 있는가 하는 사실을 기억하자. 

여기 한때는 위하여 눈까지 뽑아 주려고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들의 눈을 주려고 한 사람의 눈을 오히려 뽑으려하고 있음을 보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기 위하여 애를 써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판단을 받는 것은 작은 일이기 때문이다"(고전 4:3).

Ⅲ. 갈라디아인들을 향한 바울의 진지한 충고, 

본문에 보면 그는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고 말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뜻의 말이다. 

"너희가 복음의 기쁜소식을 듣고 대단한 만족과 기쁨을 못이겨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너희들은 너희의 기쁨을 마치 내가 만들어 내기나 한 것처럼 나를 향하여 감사를 퍼부었었다. 그런데 이제 나에 대한 경의나 복음에 대한 흥미가 쇠퇴된 지금 너희는 얼마나 변모되었는가? 한때 너희는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였었다. 그러나 지금 이 모든 것을 버리다니 무슨 그럴 만한 이유라도 있는가?" 

그들의 처음 사랑을 버린 자들은 다음의 사실들을 숙고한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들이 한 때 말했었던 축복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하나님과 사귀고 또한 그의 종들과 동무로 지내던 때의 맛보았던 즐거움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로 물어 보아야 한다. 

그는 그들의 현재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다시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함으로 원수가 되었느냐? 지금까지 너희의 사랑을 받던 내가 어찌하여 너희 원수로 여김을 받아야 하는가? 내가 죄가 있다면 너희에게 진리를 말하고 너희로 진리를 깨닫게 하려 하였으며 너희로 복음의 진리를 확신케 하려는 것 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사람들은 그들의 가장 훌륭하고 진실한 친구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작지 않게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주로 본문에서 사도와 갈라디아 교인들 사이의 경우처럼 그 대상이 사역자들이든 또는 다른 누구든 간에 저희에게 진리를 말해 주며, 저희의 영원한 구원의 문제를 자유롭게 또한 성실하게 말해 주는 사람들을 원수로 여긴다.

2. 때때로 사역자들은 그들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려 하기 때문에 적을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바울의 경우와 그러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진리를 말했으므로 그들의 원수로 취급되었다.

3. 그럼에도 사역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화를 내거나 그들로 인하여 저희가 불쾌하게 느낄 것을 염려하여 진리를 말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4. 사역자들은 그들이 저희에게 오직 진리를 말하였기 때문에 어떤 이들의 적의를 산 것이라고 여겨질 때 마음의 평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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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불타는 충고(2)(갈 4:17-18)

사도는 앞의 구절들에서 추구하였던 같은 목적을 본문에서도 계속 추구한다. 

저 갈라디아인들로 하여금 복음의 진리로부터 떠난 그들의 죄와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고자 한다. 

복음 안에서 세우려고 애를 쓴 그를 향한 그들의 태도 변화에 대하여 훈계한 바울은 그들을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거짓 교사들의 특징을 본문에서 말한다. 

만일 그들이 이들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 조금만 주의를 했더라면 이들 거짓 교사들에게 귀를 기울일 이유가 거의 전무함을 곧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들이 이들에 대하여 어떤 의견을 갖고 있었든지 간에 그는 그들이 음모꾼들임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알린다. 

그들은 자기들을 세우려고 도모하는 자들이며 그들의 허울 좋은 가식 속에는 갈라디아인들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의 이기적 이해가 더 많이 얽혀 있었다. 

그는 저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을 내고 있다. 또한 저희는 너희를 진실로 존경하는 것처럼 하며 너희에게 대단한 사랑을 가장하고 있으나 좋은 뜻에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떳떳하지 않은 의도를 갖고 그렇게 하는 것이요, 이 일에 있어서 그들은 신실하지도 정직하지도 않다. 이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내게 하려 함이다. 그들의 주된 목표는 너희로 그들을 사랑하게 하려는 것으로 이 목적을 이루려고 그들은 나와 진리에 대한 너희의 열심을 방해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한다. 그러므로 저희는 너희를 독점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저희의 의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갈라디아 교인들도 하여금 저희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임을 확신있게 바울은 말한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진실과 성실함은 거의 없으면서 대단한 열의는 지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2. 백성들을 교사하여 결국 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려고 하는 것이 유혹자들의 일상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교묘한 [이기적]꾀임과 간교한 수단에 의하여 그들은 사람들을 저희와 같은 견해를 갖게 하려고 한다.

3. 유혹자들이 아무리 가식을 한다고 해도 결국 그들은 타인의 이익보다 자기의 이익에 더 관심이 있으며 자기들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명예를 파괴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이에 대하여 사도는 "그들이 좋은 동기로 여러분에게 열심을 보인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정말 우리가 어느 길을 취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준다(18절 공동 번역 인용). 

[번역자들 관점]공동 번역에서 "좋은 동기"(개역은 "좋은 일")로 번역한 내용을 어떤 이들은 "좋은 사람"을 뜻한다고 보고(선한 사람은 좋고 선한 근본 동기로 선행을 하는 법!!) 따라서 이 말은 사도가 자신을 가리켜 한 말이라고 한다. 그들은 앞의 사정을 참작할 때, 또한 뒤에 곧 나오는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뿐만 아니라"는 말씀을 보아서도 이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즉, 본문을 다음과 같은 말로 본다. "너희가 나를 향하여 열심히 사랑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너희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여겼다. 그리고 지금도 너희가 나를 달리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너희가 내게 하였듯이 내가 없는 지금에도 전과 같이 나를 존경해야 될 것이 아니냐?"는 말씀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좋은 일"이라는 번역을 고수할 때 사도는 우리가 어떤 일에 열심을 품어야 하는지의 좋은 규정을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점을 우리의 열심의 목적으로 삼으라고 제의한다.

(1) 좋은 일에만 열심을 내도록 하라는 제의이다. 

왜냐하면 열심은 좋은 일을 수행함을 주어질 때만이 훌륭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악한 것만을 열심히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열심은 해로운 것이 된다.

(2) 좋은 일에 대한 열심을 계속적이고 꾸준해야 한다는 제의이다. 

좋은 일에 언제나 열심을 품는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한 번만 열심을 내거나 또는 학질걸린 사람처럼 간헐적으로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체온처럼 늘 지속적이어야 한다. 

이 규정이 기독교인들 가운데 보다 잘 지켜진다면 그리스도의 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워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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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불타는 충고(3)(갈 4:19-20)

사도는 그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줄 수밖에 없었던 책망을 그들이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한 후 그는 본문에서 그들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어떠하며 또 그들의 안녕에 대한 그의 관심이 얼마나 세심한가를 표현한다. 

그는 그들처럼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이랬다가 그들이 없을 때는 저렇게 한 적은 없었다. 

그들이 그를 싫어한다고 그들에 대한 그의 사랑이 그에게서도 식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전에 그가 품었던 것과 같은 사랑을 지금도 품고 있었다. 

또한 그는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면서 그들을 대단히 사랑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저희의 거짓 교사들과 같지 아니하였다. 

다만 그는 그들의 참된 유익에 대하여 진지한 관심을 품고 있었다. 그가 그들에게 구한 것은 그들에게 무엇을 얻고자 함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그들을 사랑하였다. 그들은 너무 쉽게 그를 자기들의 적으로 여기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자기가 그들의 친구임을 확언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들을 향하여 부모와 같은 심정을 갖고 있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을 "나의 자녀들"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자기가 그들의 기독교 신앙으로의 회심의 도구 노릇을 하였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그는 그들을 "나의 어린 자녀들"이라고 한다. 

이 말은 그들에 대한 그의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말해 주는 동시에 그들의 현재의 행동에 대한 풍자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즉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계교와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는 것을 보아 그들이 아직 어린 자녀들과 같다는 말로도 볼 수 있겠다. 

그는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에 비유하여 자신의 그들에 대한 관심과 그들의 안녕 및 영혼의 번영에 대한 진지한 소망을 표현한다. 

"그는 그들을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였다." 

그리고 그가 이같이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 그들에게 진지하게 바란 가장 큰 소망은 그들이 그의 감화를 받아 "그리스도의 형상이 그들 안에서 이루어진 것"과 그들이 참된 기독교인들이 되면 복음에 대한 신앙에 보다 확고하게 서는 일 이외에는 없었다. 

우리는 바울의 이러한 심정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것을 배우게 된다.

1. 신실한 사역자들은 그들이 위하여 고용된 대상들을 향하여 부드러운 사랑을 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사랑은 어린 자녀를 대하는 모의 열렬한 사랑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2. 사역자들이 바라고 또 위하여 해산의 수고까지 아끼지 말며 바라야 할 주요 관심사는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들의 사랑을 받으려고 지나치게 애쓰지 말아야 하며 그들을 자기들의 먹이로 여겨서는 더구나 안된다. 

사역자들은 교인들의 심령이 새로워지고 그들이 완전히 정착되고 확고해지기를 바라야 한다. 

이러한 사역자들을 배신하거나 싫어하므로 자기들이 그 위에 거하려고 하는 무리들의 행위야말로 얼마나 모순에 찬 행위인가!

3. 성도들이 자신의 의를 믿는 데서 벗어나서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의만을 의지하도록 되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사람들속에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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