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1.0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91..주를아는자.나는주께구했다.둘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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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1편 [개역개정]


...달고오묘한그말씀200.내맘의주여소망되소서484.오놀라운구세주예수내주391.주예수님내맘에오사286.내맘이낙심되며300.내모든시험무거운짐을337.내주여뜻대로549.너근심걱정말아라382.주음성외에는446.

....감동감화감탄감격황홀매료됨..일치된 사랑-생명-빛-진리말씀의 파동감각, 늘 믿고 원하고 바라며 의지하기!!

---나의마음을정금과같이-주님의성령-보혈을지나-주께 가까이-주 내소망은-주나의 피난처-내모습이대로-기뻐하며승리의노래-원하고바라고기도합니다-나는믿음으로주얼굴보리니-모든시선을주님께돌리고--


****선지자-제사장-왕의 기름부음으로 살아가신 JC는 먼저 [Q말씀으로 복음전파-가르침-고치심의]선지자의 직무를 마치신 후 [자신을 대속제물로 드리심의] 제사장의 직무를 완성하신 다음, [부활승천하사] 왕의 직무로 들어가신다!! ****


@@[오늘, 매순간, 모든 만남에서]

내맘, 내눈과 귀를 열어주소서, 앙망하오니, 주여

나아온 이들 위해 무엇을 주시리이까, 지고지선의 진복, 오직 주님자신! 복음진리생명말씀!

구하오니 성령이시여, 오늘 매순간마다 일깨워 영혼몸 늘 새로이 채우소서 

주님마음, 오직 사랑의 감동, 충만한 기쁨, 합치되어 하나된 주님평강, 바로 그 말씀 JC!

나아오는 사람마다 눈 들어 바라볼 때 모든 몸짓마다 친히 만나주소서, 감싸 주소서  

새롭게 JC를 발견하고 믿어 영접함과 전적으로 의지함, 그 구원과 동행함안으로 이끄소서 @@


@@허물[말씀안의 생명과 성령, 사랑의 뜻을 벗어나 자행자제-치우침]--.죄[말씀안의 주뜻에부합하지 못함 = 말씀안의 참생명과 성령 순종-연합-누림 없음]--악[주님의 말씀을 거부/거절하기에 말씀이 없음]@@


**[[누가 하나님괴 같으랴!! ..하나님은 믿는, 절대긍정-절대신뢰-절대기쁨으로 하나됨을 사는 내게 절대 만족-절대진리-절대진복이요 영생이심 ]] 

^^피상적인 허망한 색성향미촉의 오감 중독/상대적 일시적 만족감을 초월한 근원적 절대만족(무한 풍성-부요-충만-능력) * 열납하시며 열어주사 누리게 하시는 바 절대기쁨/절대긍정/절대신뢰의 유일무이한 초월적 근원적 진리 샘(길-진리-생명) * 지고지선의 진복=요동없는 초월적 절대 평강의 하나됨/거함/누림/의지-빼어닮음/행복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일시적/파괴적/자멸의 허망함으로 귀결됨  ::: Q불신/배역함의 미혹 도구 :=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 = 5욕(식성수물명)추구 + 5감만족중독(색성향미촉) << Q 말씀안에는 원하는 바, 이 모든 것에 대한 근원적 만족-기쁨-누림의 무한 풍성충만-영원한 공급, 더 나아가 영생이 있음


1.지존자(엘엘룐)의 은밀한 곳(세테르...은신처, 침소)에 거주하며(야사브...살다/거하다) 전능자(엘샤다이)의 그늘 아래에 사는(룬...투숙하다/묵다) 자여,((성도와 교회!!...마땅히 고백한 그대로 [주변상황을 개의치 말고 <14-16의 약속 암송-묵상-찬양-붙듦안에 거하며> 시선을 주께 고정하라..주안에 거하라..오직 절대 믿음<신뢰-의지-기대-앙망>, 절대긍정, 절대기쁨!!))

2.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마하세...피난처/은신처...하사:도피하다/피난하다) 나의 요새요(메추다...고지대 바위산 성채/요새)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창조주 삼위일체 하나님..엘로힘)이라 하리니

3.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나찰...뺏어 구하다)

4.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사카크...덮어 가리우다)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하사)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5.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파하드..두려움/공포)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헤츠...화살/노궁)

6.어두울 때(오펠...어둠/흑암...재난/불행/영적 어둠) 퍼지는 전염병과(데베르...역병/페스트) 밝을 때(초하르..한낮) 닥쳐오는 재앙을(케테브...파멸/파괴)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야레..두려워하다/무서워하다)

7.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나팔...넘어지다/엎드러지다)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나가쉬...접근하다)

8.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나바트...목도하다..주시/관찰/통찰/감찰/숙고하다) 악인들의 보응을(쉴루마..보응/응보/보수) 네가 보리로다(라아...보다/바라보다)

9.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마하세)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마온...거처/거주지) 삼았으므로..((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마음을 지키라.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10.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아나...접근하다/미치다/나타나다)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카라브...접근하여 침노/압박하다)

11.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샤마르...감시하다/주의하다/준수하다/지키고 보존하다)

12.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나사...들어올리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가나프...치다/때리다/강타하다/부딪혀 쳐부수다)

13.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다라크...밟다/행진하다)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라마스...짖밟다)

14.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하샤크...애착/포기할줄 모르는 집착하는 사랑) 내가 그를 건지리라(팔라트..도피시켜 보전하다) 그가 내 이름을 안즉(야다..알다/이해하다....철저히/남김없이)내가 그를 높이리라(사가브...[아무도 미치지못할 높은곳에 두어] 방호-보호-안전케 하다)

15.그가 내게 간구하리니(카라..부르짖다)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아나...대답/증거하다...즉각적인 말씀!!)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임..) 그를 건지고(할라츠, 끌어내 구원하다) 영화롭게 하리라(카바드...존귀케하다)

16.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사바...충족/편안케 함) 하며 나의 구원을(예슈아) 그에게 보이리라(라아...바라보다/조사하다) 하시도다

-----[새번역]----------------------

1.가장 높으신 분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는 너는,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아래 머무를 것이다.

2.나는 주님께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내가 의지할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다.

3.정녕, 주님은 너를, 사냥꾼의 덫에서 빼내 주시고, 죽을 병에서 너를 건져 주실 것이다.

4.주님이 그의 깃으로 너를 덮어 주시고 너도 그의 날개 아래로 피할 것이니, 주님의 진실하심이 너를 지켜 주는 방패와 갑옷이 될 것이다.

5.그러므로 너는 밤에 찾아드는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고, 낮에 날아드는 화살을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6.흑암을 틈타서 퍼지는 염병과 백주에 덮치는 재앙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7.네 왼쪽에서 천 명이 넘어지고, 네 오른쪽에서 만 명이 쓰러져도, 네게는 재앙이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다.

8.오직 너는 너의 눈으로 자세히 볼 것이니, 악인들이 보응을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9.네가 주님을 네 피난처로 삼았으니, 가장 높으신 분을 너의 거처로 삼았으니,

10.네게는 어떤 불행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네 장막에는, 어떤 재앙도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다.

11.그가 천사들에게 명하셔서 네가 가는 길마다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니,

12.너의 발이 돌부리에 부딪히지 않게 천사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줄 것이다.

13.네가 사자와 독사를 짓밟고 다니며, 사자 새끼와 살모사를 짓이기고 다닐 것이다.

14.(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가 나를 간절히 사랑하니, 내가 그를 건져 주겠다. 그가 나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내가 그를 높여 주겠다.

15.그가 나를 부를 때에, 내가 응답하고, 그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내가 그와 함께 있겠다. 내가 그를 건져 주고, 그를 영화롭게 하겠다.

16.내가 그를 만족할 만큼 오래 살도록 하고 내 구원을 그에게 보여 주겠다."


--------[NASB]---------

1.He who dwells in the shelter of the Most High Will abide in the shadow of the Almighty.

2.I will say to the LORD, "My refuge and my fortress, My God, in whom I trust!"

3.For it is He who delivers you from the snare of the trapper(fowler) And from the deadly(calamitous, wasting, destructive,perilous,noisome) pestilence.

4.He will cover you with His pinions, And under His wings you may seek refuge; His faithfulness is a shield and bulwark.

5.You will not be afraid of the terror by night, Or of the arrow that flies by day; 

6.Of the pestilence that stalks in darkness, Or of the destruction that lays waste at noon.

7.A thousand may fall at your side And ten thousand at your right hand, But it shall not approach you.

8.You will only look on with your eyes And see the recompense of the wicked.

9.For you have made the LORD, my refuge, Even the Most High, your dwelling place.

10.No evil will befall you, Nor will any plague come near your tent.

11.For He will give His angels charge concerning you, To guard you in all your ways.

12.They will bear you up in their hands, That you do not strike your foot against a stone.

13.You will tread upon the lion and cobra, The young lion and the serpent you will trample down.

14."Because he has loved Me, therefore I will deliver him; I will set him securely on high, because he has known My name.

15."He will call upon Me, and I will answer him; I will be with him in trouble; I will rescue him and honor him. 

16."With a long life I will satisfy him And let him see My salvation."

===[시91 개요]====

=고대의 어떤 사람들은 명백하게 모세의 것이라고 한 앞의 90편뿐만 아니라, 그 다음의 연속되는 8편(91~98) 또한 모세의 기록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시편 95편은 다윗이 기록한 것이라고 명백히 말하고 있다. 

다윗은 모세보다 오랜 후의 사람으로, 아마도 이 시편 91편 또한 다윗이 기록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 시는 왕 다윗이 아니라, 왕 중 왕의 이름 밑에 있는 모든 진실한 신자들의 보호에 관한 글이다.

1. 하나님을 자기의 보호자로 삼겠다는 시인의 결심(1), 그리고 이로부터 그는 다른 사람들을 고무하며, 지시한다(9).

2. 진실하게 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약속.

   (1)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을 것이다(1, 4).

   (2) 그들은 어둠의 권세의 악의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다(3, 5-6). 더욱이 구별해 보존됨으로써 구원받을 것이다(7-8)

   (3) 그런 일은 거룩한 천사의 사명이 될 것이다(10-12).

   (4) 그들은 적들에게 승리할 것이다(13).

   (5)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자가 될 것이다(14-16).

---이를 노래함에 았어서, 믿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보호 아래 두고, 그 안에서 위로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 약속들은 중재자인 그리스도께 속한다고 생각한다(사 49:2). 

---마귀가 이 약속들 중 하나를 그에게 적용했기 때문(마 4:6)이 아니라, 이 약속들이 그리스도에게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라면, 그것들은 모든 신자에게 은혜로운 확신을 준다.

===

피난처되신 하나님(시 91:1-8)

Ⅰ.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삶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보호 아래서 안전하다.((오늘을 사는 모든 성도와 교회마다 이 교통-동행-동거-동주의 비밀과 신비를 오늘 체험케 하여 주셔서 영원토록 한영됨안에서 주님자신의 어떠함 생생하게 체득하고 믿음-소망-사랑-거룩함 이루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의 안정과 거룩한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위대한 진리가 일반적인 말로 주장되고 있다(1절).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자기 보호자로 선택한 사람은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서 발견하며, 또 요구할 수 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것은” 참된 신자의 특성이다.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그를 휴식처로 삼고, 거기서 쉰다. 그는 내적인 교통을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자기 마음의 임무로 삼아 하나님과 더불어 있는 것을 좋아하며, 하나님과 대화한다.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것”이 그렇게 하는 자의 특권이며 위로다. 

하나님은 그들을 숨기시고, 그들과 그들을 방해하는 자(그것이 폭풍이거나 햇빛이거나 간에)의 중간에 서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집을 가진다. 하나님은 영원히 그들의 피난처와 안식처가 될 것이다.

Ⅱ. 시인은 이것을 즐거이 그 자신에게 적용한다(2절). 

다른 사람은 무엇이라고 하든, “나는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라고 하리라.” 이렇게 선택하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은 우상을 그들의 피난처로 삼지만, 그는 진실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해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라고 한다. 

다른 것은 그 어떤 것이나 거짓된 피난처이지만, 그는 실망시키지 아니할 피난처이시다. “그는 나의 요새”요, “산성”이시기 때문이다. 

우상 숭배자들은 그들의 신을 “마후심”, 곧 “크고 견고한 산성”이라고 부른다(단 11:39).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서 속는다. 

여호와를 자기의 하나님으로, 자기의 요새로 삼는 사람들만이 안전하다. 

그의 능력을 의심할 이유가 없으므로 당연히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는 말이 뒤따른다. 

만일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요, 우리의 피난처요, 우리의 요새가 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바랄 수 있다. 

그는 변덕스럽지 않으시며, 거짓되지도 아니하시고, 약하지도 죽지도 아니하신다. 

그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시다. 그러므로 그를 믿어서 실망될 위험이 없다. “우리는 우리가 신뢰하는 이가 누구인지를 안다.”

Ⅲ. 그는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행하게 하기 위해 그들을 크게 고무한다. 

그것은 자기가 위로를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자기 경험 안에는 잘못된 생각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떤 속임수도 없으며, 또 있을 수도 없는 진실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크게 고무한다. “확실히 저가 너를 건지실 것임이로다.” 

하나님을 자기들의 피난처로 삼아서 위로를 얻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원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그 약속이 있다.

1. 신자들은 그들이 현재 처해 있으며, 또한 그들에게 치명적인 긴급한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이다(3절).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그것은 보이지 않게 놓여서 부주의한 먹이를 갑자기 잡는다― 

“극한 염병에서”―그것은 불의의 사람에게 엄습한다. 거기에는 방호물이 없다. 이 약속은 다음 것을 보호한다.

(1) 육체의 생명이다. 그것은 때때로 심하고, 대단히 가까이에 있는 위험으로부터의 구출에서 실현된다.

(2) 영적 생명이다. 이것은 새 사냥꾼의 올무와 같은 사단의 유혹으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보호를 받는다. 

또 “극한 염병”인 죄의 감염으로부터 보호받는다. 영혼을 영광스럽게 하려고 은혜를 주신 하나님은 그 영혼의 모든 영광을 방위하실 것이다.

2.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보호자가 되실 것이다(4절). 

“저가 너를 덮으실 것이다.” 그리고 “은밀히 감추실 것이다”(31:20). 그렇게 너를 안전히 지키신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보호하심에 다음과 같이 하신다.

(1) 가장 큰 포근함과 애정으로 보호하신다. 이는 다음 구절에서 암시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라.” “그 날개 아래 병아리를 모으는 암탉”은 이를 암시한다(마 23:37). 

암탉은 본능적으로 병아리를 보호하는데, 병아리들이 위험할 때 자기의 보호 아래로 부른다. 병아리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뿐 아니라, 소중히 여겨 따뜻하게 감싼다. 위대하신 하나님은 그의 백성 돌보심을, 이에 비교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들은 병아리와 같이 도움 없이 쉽게 먹이가 되지만,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의 그늘 아래 위탁되어야 한다. 이것은 참된 신앙으로 개종한 사람들에 관해 넌지시 말한 것이다(룻 2:12).

(2) 가장 큰 능력과 효력으로 보호하신다. 

날개와 깃털은 가장 부드럽고 크게 펼쳐지기는 하지만, 약하고 뚫어지기 쉽다. 그러므로 다음 말씀이 추가된다. 

“그의 진실하심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시느니라.” 이는 강한 방어물이다. 

하나님은 암탉이 병아리를 지키는 것같이 그의 백성 지키기를 원하시고, 갑옷 입은 군인과 같이 능력이 있으시다.((엘 깁보르-아비르-트수르!!..야웨 사바오트!!))

3. 하나님은 그들을 악으로부터 보호할 뿐만 아니라, 악에 대한 공포로부터도 보호하신다(5-6절).

(1) 여기에서는 큰 위험이 가정되어 있다. 

그에 대한 언급은 우리를 두려워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밤낮으로 우리는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 

마음이 약해지기 쉬운 사람은 어느 시기에나 자기들이 안전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사실(私室)로, 우리의 잠자리로 물러나 할 수 있는 데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만든다 할지라도, 밤에는 도둑과 강도와 바람으로 인한 공포가 있는 외에 공상과 상상으로 인한 공포가 있다. 그것은 때때로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 

우리는 “밤의 공포”에 대해 읽는다(아 3:8). 

또한 애굽인의 장자와 앗수르군을 죽인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이 있다. 우리가 우리의 몸으로 그 병균을 옮기는 한, 자물쇠도 빗장도 병을 막을 수는 없다. 확실히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낮에는 그렇게 크게 위험하지는 않다. 

그러나 “낮에도” 또한 흐르는 “살”이 있는데, 그것은 보이지 않게 날아다닌다. 

우리가 깨어 있고 주위에 모든 친구들이 있는 “백주에도 황폐케 하는 파멸”이 있다. 이렇듯 낮에라도 우리는 안전할 수 없고, 친구들이 우리를 안전하게 할 수도 없다. 다윗이 백성을 계수한 때문에 징벌하기 위해 염병이 보내졌는데, 그 염병이 황폐케 한 때는 낮이었다. 때때로 어떤 사람은 이 시편은 그때 씌어졌다고 생각한다.

(2)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한 가운데도 신자들에게는 위대한 안전이 약속되어 있다. “너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은 그의 은혜로 가장 큰 위험 중에서 동요하는 의심스러운 공포로부터(그 공포는 고통을 가져온다) 너를 지키실 것이다. 

지혜는 너를 우발적인 두려움에서 지킬 것이며, 믿음은 너를 과도한((적당치 않은)) 두려움에서 지킬 것이다. 

"너는, 화살이 너를 맞출 수는 있지만 너를 상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육체의 생명을 가져간다고 할지라도 영적 생명의 침해로부터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것은 영을 완전하게 함이 될 것이다.” 

신자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어떤 “화살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그 끝은 빗나가며, 그 독은 제거된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것은 또한 지명하신 곳을 맞추며, 다른 곳은 맞추지 아니한다. 

모든 탄알은 명령을 받는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뜻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그대로 된다.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4. 그들은 총괄적인 재앙 속에서도 특별한 방법으로 보호를 받는다(7절). 

죽음이 승리하고 다닐 때, 질병이 분노해 병으로 천만 사람이 엎드러질 때, 또는 전쟁에서 칼날로 엎드러질 때, “네 곁에서, 네 우편에서” 엎드러질 그때에라도, 그들의 엎드러지는 모습이 너를 두려워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할지라도, 만일 그들이 염병으로 엎드러진다면 그 엎드러짐이 네게 너무도 가까워 네가 감염될 수 있을지라도, 죽음은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며”, “죽음의 공포가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한다.” 

보편적으로 타락한 때 순결을 지키는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황폐시키는 경우에도 그들의 안전을 하나님께 위탁할 수 있다. 

대중이 우리 주변에서 죽을 때, 그로 인해 우리도 죽음을 준비하도록 일깨워질 수밖에 없는 때에라도, 우리는 “놀라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죽기를 무서워해” 일생을 종노릇하는 것처럼, 죽음의 공포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된다(히 2:15).....영생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보내심받은 사명자에게 주신 바, 이땅에서부터 적용되는 임마누엘의 그 누림은 부활의 약속까지 포함한다!!

피 뿌림으로 애굽의 장자 1천,1만 사람이 엎드러질 때에도 이스라엘의 장자는 안전하게 했다.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루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경고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을 만족하게 보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준 약속이다(8절).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이는 아마도 염병으로 말미암은 애굽 장자들의 멸망에 대한 언급일 것이다. 그것은 압박하는 자들에 대한 벌이자 압박 받는 자들의 방면(放免)이었다. 

이때 이스라엘은 그들이 상하지도 아니하고 손상되지도 아니함을 보았다. 죄인에 대한 저주가 심화될 때에 죄인들은 직접 의인에 대한 보상을 볼 것이다(눅 13:28). 

그와 같이 성도들이 그들의 눈으로 악한 자의 멸망을 보는 것은 성도들의 구원을 더욱 귀중하게 하는 것이 된다(59:10; 사 6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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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복(시 91:9-16)

여기서는 앞의 약속들과 같은 취지를 가진 약속들이 계속된다. 이 약속들은 특별히 크고 귀중하다.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확실하다.

Ⅰ. 시인은 그 자신의 경험으로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보호를 보증한다. 

그리고 그가 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우리가 그것을 의존할 수 있다. 다음을 관찰하자.

1. 이 약속들로부터 유익과 위로를 받을 사람들의 특성. 

그 내용은 1절과 거의 같다. 그들은 “지존자”를 “거처”로 삼는 자들이다(9절). 

그들은 계속 하나님과 같이 있으며, 그 안에서 안식하는 사람들, 그의 이름을 성전과 강한 망루로 삼는 사람들이며, 사랑 안에,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다. 

__우리가 그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 거주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__우리의 거처로서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을 살며, 그와 더불어 대화하고, 그를 기뻐하며, 그에게 의존하는 것도 우리의 의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안에 거주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 된다. 

__우리는 법의 억류나 양심의 부르짖음, 장애나 간섭함 없이 우리 거처에 받아들여지며 그에게도 환영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안에서 완전한 평강으로 지켜질 것이다

(사 26:3...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우리로 여호와를 우리의 거처로 삼도록 고무하기 위해, 시인은 그가 그렇게 행함으로써 얻은 위로를 암시한다. 

“네가 너의 거처로 삼은 그분은 나의 피난처이시다. 나는 그가 견고하고 믿음직스러움을 발견했다. 그의 안에는 너와 나 두 사람 모두를 위한 충분한 방이 있으며, 충분한 은신처가 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아서”, 사람들이 서로 밀칠 필요가 없다.

그 지존자를 거처로 삼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확실한 약속이 있다.

(1) 그들에게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나 그들을 상하지 아니한다.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__근심이나 고통이 네게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 안에는 진정한 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오며, 너를 성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를 상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고, 너를 유익하게 하려고 오는 것이다. 

__“현재는” 그것이 “기쁘지 않고 슬퍼 보이지만”, 결국은 네가 좋게 되어 나옴으로 너 자신이 “화가 네게 미치지” 않았다고 고백할 것이다. 

__그것은 그 화가 단순한 화가 아니고 그 안에 선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선이 생산된다. 아니, 너의 인격뿐만 아니라 너의 거처까지도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을 것이다. 

“재앙이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너를 해하거나 또는 어떤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 “선인에게는 어떠한 화도 미치지 못한다”(철학자 세네카).

(2) 빛의 천사가 그들을 섬기게 될 것이다(11-12절). 

이것은 귀중한 약속이며, 성도들의 위로요, 명예를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험한 마귀가 인용하여 남용했다고 해서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마 4:6).

① 성도들에 관해 천사들에게 주어진 명령을 보자. 

천사들의 주이신 하나님은 그들을 존재하게 하고, 그들에게 법을 주셨다. 그들의 소유자시며, 자기에게 봉사하게 하기 위해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은, 교회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모든 각각의 신자들을 위해, “그 사자(천사)들을 명하실 것이다.” 

그 천사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킨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그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돌보심을 표시한다. 그 명령은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되어 있다. 

__여기에 그 약속의 제한이 있다. 그들은 “너의 길에 너를 지킬 것이다.” 그것은 “네가 너의 본분의 길을 지키는 한”이다. 

그 길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보호 밖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마귀는 이 말씀이 크게 자기를 반대하는 말씀임을 알기 때문에 유혹을 강요하기 위해 이 말씀을 인용할 때 이 부분을 빠뜨렸다. 

__그러나 그 약속의 범위를 보라.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는” 것이다. 분명한 위험이 없는 곳에서까지도 우리는 그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위급한 위험이 있는 곳에서도 그들은 우리의 길을 지킬 것이다. 

__성도들이 가는 곳은 어디나 천사들이 그들과 함께 있도록 명령을 받는다. 종들이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도록 명령을 받는 것과 같다.

② 이 명령에 따라서 천사들이 성도들에 관해 행하는 돌봄을 보자.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큰 능력과 큰 사랑을 표시한다. 그들은 위험에서 성도들을 돌볼 수 있다. 그들은 간호사들이 자기 품속에서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과 같이 모든 친절과 사랑으로 성도들을 붙든다. 이것은 우리의 무력함과 그들은 우리에게 도움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천사들은 그들의 섬김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겸손하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도록”, 죄와 고난에 걸려 성도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성도들의 발을 지킨다.

③ 그들에게 정복될 어두움의 권세(13절)가 있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리라.” 

악마는 우는 사자, 옛 뱀, 붉은 용으로 불린다. 그러므로 사도는 이 약속을 언급한 것같이 보인다(롬 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__그리스도는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고, 영적 원수들을 결딴내셨다(골 2:15). 그를 통해 우리는 정복자보다도 더 나은 자가 된다. 

왜냐하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족장들을 불렀듯이, 그리스도가 정복당한 원수들의 목에 우리의 발을 올려놓으라고 초청하시기 때문이다.

__어떤 사람들은 이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고 특별히 뱀을 집을 수 있도록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 모든 기적적인 능력 안에서 충분히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막 16:18). 

__또 이것은 굶주린 짐승으로부터 우리가 보존되는 하나님의 섭리에 적용될 수도 있다(“들짐승이 너와 화친할 것임이라.” 욥 5:23).

Ⅱ. 그는 하나님께서 친히 성도들을 향해 위로의 말씀을 하시게 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저장하신 자비를 선포하시게 한다(14-16절). 

어떤 사람들은, 성도들과 관련해 천사들에게 주어진 명령으로서 시인이 천사들에게 이것을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보호하라. 그들은 나를 사랑하며, 나는 그들에게 애정에 찬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이 약속들이 해당된다. 그들은 세 가지 성격으로써 묘사된다.

(1)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을 충분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 자신을 알리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이름을 친숙하게 알지 않으면 안 된다.

(2)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가 사랑할 유일하고 적합한 대상으로 알아, 하나님에게 그의 사랑을 두며, 그의 사랑을 어느 다른 경쟁자에게로 결단코 옮기지 아니할 결심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그들의 사랑을 고정시킨다.

(3)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들이다. 

기도로써 하나님과 계속 교통을 유지하며, 어려운 경우에는 직접 하나님께 문의한다.

2.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하신 약속들을 보자. 

....[고난중에서 <함께하며, 보호하며>건지리라] [<임마누엘로서> 함께 하리라] [응답하리라<교통>[ [높이리라..영화롭게 하리라<존귀케 함>] [<뜻하신 바 이룸>장수함으로 만족하게 하리라] [구원 완성..구주를 보이리라]

(1) 하나님은 머지 않아 그들을 고난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내가 저를 건지리라”(14-15절). 

이는 이중의 구원을 표시한다. 삶과 죽음에서의 구원, 즉 고난 가운데서 구원하는 것과 고난에 들지 않게 구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능력과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정도를 조화시킨다면, 즉 하나님이 고난 중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키신다면, 그리고 고난으로 인한 우리의 죽음을 면제하신다면, 그때 이 약속은 성취된다(34:19; 딤후 3:11, 4:18을 보라).

(2) 그러는 동안에 그는 “환난 때” 성도들과 “함께”하실 것이다(15절). 

하나님이 그들의 고난을 즉시 끝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는 은혜를 받는다. 

하나님은 그들의 슬픔에 유의하시고, 그들의 영혼이 역경 중에 있음을 아신다. 그의 말씀과 영으로 그들을 은혜로 방문하실 것이고, 그들과 대화하실 것이며, 그들이 하는 일에 참여할 것이고, 그들을 지지하고 위로하실 것이며,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신성하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고난 중에서도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 현존의 증거를 확실하게 한다.

(3)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나는 기도의 영을 그에게 부을 것이다. 그리고는 약속들에 따라서 내가 [참되게!!]응답하리라 (85:8). 때에 적합한 구원을 가지고 오는 섭리/안배에 따른 응답(때와 기한이 주께 있음!!), 그들의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는 은혜에 따른 (즉각적인!!)응답(138:3)을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충만한 은혜로 하나님은 바울에게 응답하셨다(고후 12:9)...여호와께 부르짖는 자를 향한 약속말씀, 렘33:3이하를 보라!!

(4) 하나님은 그들을 높이시고, 고귀하게 하실 것이다. 

환난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폭풍우가 없는 지역으로, 파도 위에 솟은 바위로, “내가 저를 높이리라”(사 33:16).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한 경멸과 무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내려다보며, 또한 거룩한 야망과 관심을 가지고 저 세상에 있는 것들을 올려다본다. 그러면 그들은 높여질 것이다. 

“내가 그를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고 교통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영화를 두시는 그런 사람들은, 그리고 그들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쓰려고 의도하시는 그런 사람들은 참으로 영화롭다(요 12:26).

(5) 그들은 이 세상에서 충만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16절).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리라.”

① 그들은 충분히 오래 살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 보냄 받은 목적에 따른 일을 끝마치기까지, 그리고 하늘나라를 위한 준비가 갖추어지기까지 이 세상에서 삶을 계속할 것이다. 그것은 충분히 길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또는 자기에 대해 하실 일이 없으신데, 누가 하루인들 더 살기를 원할 것인가?

② 그들은 그것을 충분히 길게 생각한다. 

하나님은 그의 은혜로 그들을 이 세상에서 떠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원하도록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젊어서 죽을지도 모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이 차서 죽는다. 즉, “삶이 충족하다”. 

악하고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아니, 긴 생애로도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더 주시오, 더더 주시오!” 하며 부르짖는다. 

그러나 그의 보물과 마음이 저 세상에 있는 사람은 충족하다. 그는 항상 (이 땅에 머물러) 살기만을 원하지는 않는다.

(6) 그들은 저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질 것이다. 이것이 행운의 면류관이다.

“나의 구원을 보이리라. 그에게 메시야(어떤 사람이 말하듯)를 보이리라.” 

__착하고 늙은 시므온은 그때 오래 살아서 만족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나이다.” 

__구약의 성도들에게는 비록 멀리 있으나 그리스도의 날을 보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었다. 그 말씀은 더 좋은 나라, 하늘에 있는 조상들이 원하고 찾은 나라에 관해 더욱 언급한 것인 듯싶다. 

__하나님은 그에게 그가 축복 받은 상태(천국의 삶)가 되는 것을 보이실 것이다. 

그 상태는 우리가 여기서 희미한 거울을 통해 보는 것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듯이 보게 되는, 최고의 행복한 상태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그로 하여금 그것을 기대하게 하실 것이다.

--- 어떤 사람들은 이 모든 약속들이 근원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적용되며, 그리고 그의 부활과 승천에서 성취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믿음과 HS은 JC안에 사는 모든 자들에게도 바로 그러하다고 주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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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탁했다]]..I asked to God. -  작자 미상 (미국 뉴욕의 신체장애자 회관에 적힌 시)

나는 신에게 나를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도록/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네.... 내 야망 모두 이룰 수 있는 강함을 구했더니....

하지만 신은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나를 약하게 하셔서 겸손으로 사는 것을 배우게 하셨고

나는 신에게 건강을 부택했다. 더 큰 일을 할 수있도록./... 나를 통해 주께서 더 큰 일-위대한 일 이루시도록 건강 주시기를 구했더니

하지만 신은 내게 허약함을 주었다. 더 의미있는 일을 하도록./...육체의 연약함 가운데서도 더 의미있는 일을 하게 하셨고

나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행복 위해 부유케 하시기를 구했더니

하지만 난 가난을 선물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가난을 통해 지혜로 사는 자 되게 하셨고

나는 재능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찬사 받는 자 되도록 재능을 달라 구했더니

하지만 난 열등감을 선물받았다. 신의 필요성을 느끼도록./...나의 부족함의 자각 통해 전능하신 주님 의지하며 살게 하셨고

나는 신에게 모든 것을 부탁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주께서 나를 통해 누리실 바 인생에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을 구했더니

하지만 신은 내게 삶을 선물했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그 모든 것을 참되게 누릴 수 있는 생명 자체를 내게 주셨다네.

나는 내가 부탁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걸 선물받았다./...구한 것 그대로 받은 것은 없으나 내 모든 참된 필요를 다 받았다네

나는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 주셨다./..미약한 나로되, 내 모든 기도를 다 들어 주셨으니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자이다./... 나는 모든 이들 중에서 가장 복된 자가 아니겠는가.

I asked God to make me stronger. So that I can do everything I want.

But God made me weak. Learn to be humble.

I set my health on God. So that you can do something bigger

But God gave me weakness. To do something more meaningful.

I asked to be rich. To be happy 

But I received poverty. To be a wise person

I asked for talent. So that people can be praised.

But I received a sense of inferiority. I feel the need of God.

I asked God everything. So that you can enjoy life

But God gave me life. So that you can enjoy everything

I did not receive anything I asked for I received everything I needed.

I am a small person God has listened to all my prayers. 

Of all people I am the most blessed.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의무>을 한 것뿐이라..눅17:10]]=====

약한 나로 강하게, 난 지극히 작은 자, 천부여 의지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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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장 ]]

1.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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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족케 함에 대하여(눅 17:1-10)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받는다.

Ⅰ. "실족케 함"은 "큰 죄"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이것을 피하고 조심스럽게 주의해야 한다(1, 2절). 사람의 왜곡됨과 비꼬인 성미를 생각할 때 우리는 실족케 하는 것이 필연적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실족케 하는 일에서까지도 그의 선한 사업을 수행하시며, 악에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현명하신 계획과 목적을 기대할 수는 있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다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것을 적절하게 대비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실족케 하는 자에게는 큰 화가 있으리라"(12절). 그의 운명은 어두워질 것이다. 그의 운명은 중죄를 지어 바다에 던지워질 운명에 처한 죄인의 비참함보다 더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연자맷돌보다 더 무거운 죄책의 짐 아래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주는 다음과 같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1. 박해자에게, 그들은 그리스도의 "작은 자들 중"의 하나에게라도 말이나 행동으로라도 해를 끼치며, 그것 때문에 해받은 이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에 낙심하고, 그 의무를 다함에 용기를 잃는다. 즉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를 떠나 표류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한다.

2. 유혹자에게. 그들은 그리스도의 진리와 그 의식을 타락시키고 그래서 "제자들의 마음을 괴롭게 한다." 그들이야말로, "실족케 함을 가져오는" 자들이다.

3. 말로만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달고 추잡한 생활을 하며,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고, 마음을 슬프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통해 실족이 온다. 그것은 그들의 죄책과 벌을 조금도 감하거나 경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Ⅱ. "남이 자기에게 저지른 죄를 용서하는 것"은 하나의 "큰 의무"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그러한 죄를 짓지나 않을까를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한다(3절). 본문의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이 가장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으로 앞의 구절에서 언급한 자들을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확실히 교역자들은 교인들을 낙심하게 할 언행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그들은 주의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고 혹 교인들을 낙심시키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늘 깊이 생각한 후에 말하고 행동해야만 한다.

둘째는 후에 나오는 자신에게 잘못을 범한 형제에게 같이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고 경고로 볼 수 있다. 즉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곧 어떤 해를 입혔거나 재산의 손해를 입혔거든 격노하여 말을 함부로 내뱉거나 거칠게 복수를 선언하지 말라. 이런 때는 특히 혹 실언을 하지나 않을까 하여 조심하라"는 말씀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좀 더 상세히 고찰해 보자.

1. 사람이 너에게 잘못했을 때에는 그를 경계할 만한 처지라면 경계하라는 말씀이다. 분노는 억지로 참을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나타낼 것이다. 그에게 잘못된 점을 말해 주되 어떤 점에서 그가 잘못했으며 너에게 잘못한 일이 무엇임을 말해 줄 것이다. 아무도 네가 그를 오해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너는 할 수 있는 대로 이해하려고 힘 쓸 것이다), 네가 그를 오해했다거나 그가 고의로 한 짓이 아니고 단지 실수였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그를 오해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용서를 빌게 될지도 모른다(수 22:30, 31 참조).

2. 그가 잘못을 뉘우쳤을 때는 그를 용서할 것이며, 그와 완전히 화해하라는 말이다.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손상 받은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는 생각하지 말며, 그것으로 너무 책망하지 말지어다. 

그가 뉘우치지 않더라도, 그에게 원한을 품지 말 것이며,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적어도 내가 회개하노라고도 말하지 않으면, 전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친숙하게 지내야만 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만일 그가 큰 죄를 범했으면 그가 속해 있는 그리스도교 사회에 대한 범죄자로서 엄숙하면서도 온순하게 훈계하고, 그가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 다시 우정으로 친교를 맺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용서라고 말했다(고후 2:7).

3. 사람이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면 그 때마다 몇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이다(4절). 사람이 너무도 조심성이 없거나 너무도 염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더라도 하루에 일곱 번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와서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더라도 그러한 죄를 다시 안 짓겠노라는 약속을 받고, 다시 "너는 용서하라." 잘못을 범하는 것이 인간이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관용의 정신을 가져서 모든 사람을 가장 좋은 사람으로 만들기에 힘쓰며, 모든 사람을 안심하고 대하기에 힘쓰며, 사람들의 잘못을 가볍게 보며 사람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용서하는 본을 보이기에 힘쓰도록 할 것이다.

Ⅲ. 우리 모두에게 요긴한 것은 믿음이 더 강해지는 것이다. 이 은혜가 자라면 다른 모든 은사도 더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훈을 굳게 믿을수록, 또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안심하고 의지할수록 모든 일을 믿음으로 더욱 잘해나갈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1. 제자들이 그리스도께 말씀드린 것이 자기들의 믿음을 굳세게 해 줌을 시사한 것이다(5절). 제자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왕국의 국무총리라도 된 듯 했지만 자기들의 믿음이 약하고 부족함을 깨닫고, 그 믿음을 보다 좋게 해 주실 그리스도의 은혜의 필요성을 느끼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고 여쭈며, 믿음의 부족함을 완전케하여 줍시라고 간청했다. 곧 미음을 갈망함이 더 강하고, 믿음을 의지함이 더 견고하고 변치 않으며, 믿음의 헌신이 보다 온전하고 확고하며 믿음의 기쁨을 더 누릴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간청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가 간절히 원할 바는 우리의 믿음이 더해질 것이며 이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될 일이다. 어떤 사람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과실을 용서하는 의무를 강조하셨을 때에 제자들이 주님께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이런 어려운 의무를 감당할 수 없겠나이다" 하고 기도를 드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자비심을 믿으면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는 가장 큰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이 기도를 드린 것은 다른 경우, 곧 제자들이 이적을 행하는 중에 어려움을 당했을 때로써, 그 간구함을 들으시고 제자들의 믿음이 약함을 꾸짖으셨다고 생각한다(마 17:16 이하 참조). 주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신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을 고치기보다는 먼저 그들 자신이 고침을 받는 은혜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부르짖기를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였다.

2.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참 믿음의 놀라운 능력을 가르쳐 주셨다(6절).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겨자씨처럼 아주 작은 믿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좋았을 것이나 너희 믿음을 도저히 있다고 말할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혹은 너희가 동물의 정신을 바짝 들게 만드는 겨자처럼 그렇게 다른 모든 은혜에 대해서도 예민하고 적극성을 띠어, 겨자씨와 같은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었다면" (겨자씨는 그래서 중풍병에 약으로 쓰인다) "너희는 지금 너희가 하고 있는 일 이상의 놀라운 일을 능히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너희가 전파하는 말씀을 위하여 하는 일이라면 못할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설사 그것이 "나무를" 땅에서 뽑아 "바다에 옮기우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마 17:20 참조). "하나님과 함께라면 불가능한 일이 없으며" 또한 "그것을 믿는 자에게도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다."

Ⅳ. 그리스도의 사업에 있어서 무슨 일을 하든지 아주 겸손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총애를 받을 만하다든지 또는 주님께 빚을 지우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제자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많은 일을 했지만 그것으로써 주님을 자기들의 빚장이로 생각하지 않았다.

1.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종이다(사도들과 성직자들은 특별한 종임). 그러므로 주님의 존귀를 위해서는 우리의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 우리의 모든 정력과 시간을 주님을 위하여 써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뜻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종인 우리는 모든 시간이 맡겨 주신 의무를 감당하는 일로 채워져 있으며,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의 종류가 서로 다르므로 우리는 맡겨진 일을 끝을 내고, 다른 일을 맡겨 주시기를 기다릴 것이다. 들에서 밭을 갈거나 가축을 먹이던 종이 밤에 집에 오더라도 역시 할 일이 있다. 식탁에서 수종 들어야한다(7, 8절). 우리가 종교적 대화의 임무를 띠고 있을 때에 헌신을 하는 일은 면제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업을 하고 있을 때에는 역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실 일을 기다리며 계속해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3. 여기에서 우리의 주요한 관심사는 우리에게 관련된 의무를 이행하는 일이며, 그것을 우리 주님께 맡겨서 주님께서 언제 또한 어떻게 적당하다고 생각하실 때에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도록 할 것이다. 종은 주인이 "와 앉아서 먹으라"고 말할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 날에 할 일을 다 끝내면 그 시간이 바로 먹을 때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완수하는데 정신을 쓰자. 그리고 그 일을 잘하도록 하자. 그러면 적당한 시간이 되면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4. 우리보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섬김을 받으심이 마땅하다.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그 후에 너는 먹고 마시라." 그리스도인들은 의심해서 말하기를 자기들이 마땅히 드려야 할 그리스도의 사랑의 영광을 주님께 드릴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직도 그 즐거움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이다. 그리스도께서 그 영광을 가지시도록 하고, 주님께 찬양을 돌릴 것이다. 그 다음에 사랑의 위로 중에 먹고 마신다. 이러는 중에 잔치가 벌어진다.

5. 그리스도의 종은 주님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 "띠를 띠고," 헝클어지고 거치장스러운 일을 떠나서 오직 자기의 할 일에만 계속하여 밀고 나가야 한다. 곧 마음의 띠를 띠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잔치를 준비할 때 곧 주님께서 잡수실 것을 예비할 때에는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띠를 띠어야 한다. 이것은 종이 할 일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강요하시지는 않는다. 주님은 섬기는 자로서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다른 주인들처럼 나라를 취하러 오시지 않았고,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당신의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을 보여 주려고 오셨다.

6. 그리스도의 종들이 주님을 위하여 한 봉사를 주님의 사례를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주님께서 그 일로 인하여 신세를 지셨다고 생각하실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아무리 선한 일을 우리가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공을 세운 것이 못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는 것은 우리가 봉사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의 빚진 자되게 한 까닭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친히 빚진 자가 되시겠다고 언약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할 일이지 우리의 공로를 내세워서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7. 어떤 일을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든지, 혹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한 일보다 더 많다하더라도 우리가 의무를 이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주님께서 명하신 일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일에 있어서 부족한 것뿐이며 의무 이상으로 한 것이 없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신 첫째 되는 큰 계명을 지키는 것뿐이다. 이 계명에 가장 중요한 것이 다 들어 있다. 

8. 그리스도의 가장 충성된 종은 (세상사람들이 볼 때) 가장 훌륭한 봉사를 하고 있을 때라도 (스스로 섬겨 일하시는 하나님의 눈에 비추어 볼 때 여전히)자기는 무익한 종이라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자신의 무익함 인정함을 벗어나서, 자화자찬함으로써 원수마귀가 빠진 그 함정에 스스로 빠지지 말지니...그 어떤 교회나 성도, 사역자들도 하나님의 절대적 관점에서 본다면 여전히 무익한 종인 것이다!!....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사랑이요 섬김을 받는 자 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을 묻어버리고 아주 흑암 속으로 빠져버리는 그런 무익한 종은 아니지만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보자!!)) 그리스도께 대한 (최선을 다 할지라도) 자신의 봉사가 특별한 이익을 드리는 것이 결코 못됨을 생각할 때는 (단지) 무익한 종이라 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선함이 하나님 그분께 미칠 수는 없는 것이며, 또한 우리의 의로움도 하나님 그분께 도움이 될 수 없다(시 16:2; 욥 22:2; 35:7). 그러므로 우리의 봉사가 (하나님을) 빚진 자를 만들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엄밀히 보자면 우리의 봉사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며, 우리의 봉사가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무엇하나도) 보탬을 드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무익한 종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유익한 일이라 함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없이도 즐거워하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없이는 즐거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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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lo"(1401, 둘로스) 노예, 종 slav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둘로스는 데오(devw: 묶다)에서, 아니면 델로(delw: 올가미에 걸다, 생포하다)에서 유래했으며(참조: Vanicek p.322), '노예, 종'을 의미한다. 둘로스에는 자기 자신이 자율을 파기하고 다른 사람의 뜻에 자기의 뜻을 복종시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둘로스는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의지에 내맡긴 자로서, 자기 자신에 속해 있지 아니하고 어떤 다른 사람에 속해 있는 것이다. 대체로 노예의 삶은 집안일이나 공무에서 노동과 봉사가 강요되는 삶이었다.

헬라인들은 자유에 대한 의식이 강하다. 개인의 존엄이 자유로 되어 있다. 따라서 속박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국가에 봉사할 수 있지만,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것이다. 노예 상태는 경멸 받고 거부당한다. 이것은 왜 헬라인들이 정치적인 독립을 얻기 위해 그토록 격렬하게 싸웠는지를 설명해 준다.

플라톤에 의하면 자유라는 이상은 궤변가들의 제멋대로의 결정에 반작용하는 것이라고 규정되었다: 그는 자주 도시 국가의 유지를 보증하기 위해서 노모스(율법)를 제창하였다. 둘류에인 토이스 노모이스("법에 복종하다")라는 구절에서만 둘로스 어군은 호의적이고도 명예로운 의미로 나타난다. 법은 인류의 목적을 나타내므로 법에 예속한다는 것은 결코 인격을 손상시키는 일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노예 상태에 대해 마찬가지로 경멸하였다. 그에게 있어 노예는 국가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거나 국가에 참된 봉사를 하지 못한다.

스토아 학파는 봉사에 대해 광범위한 견해를 가진다. 스토아 학파의 현자는 공동체를 섬기는 모든 의미가 면제되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이웃을 섬기는 자유로운 종이 되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대해 자유하면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매여있다. 그렇지만 스토아 학파는 결코 자신을 둘로스 데우(하나님의 종)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는 둘로스의 정반대인 바실류스(왕) 및 데스포테스(노예의 주인)로서 세상을 살아간다. 이것은 현자의 특징이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의 속박의 형태가 무엇이든지 간에 노예들이다(참조: 에픽테투스, 플루타르크, 그리고 필로).

헬라 종교에서 신들과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제우스(Zeus)를 신과 인간의 아버지로 삼는 가족적 관계이다. 헬라인들에게 있어서 무릎 꿇는 것은 지하에 사는 신들 앞에서 무릎 꿇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종교적인 의식의 여하한 역할도 하지 못하며 여기에서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만 그렇게 한다. 예배자들은 둘로스라기 보다는 오히려 필로스(친구)이다. 따라서 신들을 섬기는 것이나 신들 앞에서의 삶을 둘레이아(douleiva, 1397: 노예 상태)로 묘사한다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신들에 대한 예배의 목적도 사실 모든 내적이고도 외적인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 이 둘로스 어군이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종교적 의미를 얻은 것은 근동의 종교들이 새로운 신봉자들을 얻고, 그래서 하나님 및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헬라인의 견해가 변화됨으로 인한 것이다. 유일하게 분명한 예외들은 유리피데스(Euripides)의 작품에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디오니소스(Dionysus)에게 복종gkf 필요성, 혹은 오레스테스(Orestes)가 신들의 노예가 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는 것과 같은 특별한 경우들이다.

2. 70인역본의 용법. 

70인역본에서 둘로스 어군은 대부분 어근 아바드와 그 파생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이 관계를 통해서 둘로스는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a)  둘로스 어군은 노예와 노예 상태를 강조적으로 의미한다. 이 단어는 노예의 일인 섬김, 곧 윗 사람의 철저한 통제 아래에서 억압적이고 강제적이거나 혹은 적어도 예속적인 모습을 띤 섬김의 자세를 강조한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종살이(출13:3; 14:5; 레26:45 등)를 나타낸다. 야곱은 라반에 대한 둘로스의 상태를 수락한다(창 29:18).

노예법에는 태어날 때부터 유대인인 노예의 처우와 석방 문제가 규정되어 있다. 그 종의 주인만이 이 일에 대한 권한을 지니고 있었고, 그에 속해 있는 자는 이를 거역할 수 없었다(출 21:1-11; 레 25:35 이하; 신 15:12 이하). 다른 한편 유대인이 아닌 가나안인 노예는(레 25:44 이하) 주인의 나머지 가재 도구와 같은 가치를 지녔고 또한 그렇게 대우를 받았다.

(b)  둘로스 어군은 왕에 대한 신하의 관계 및 제한적인 섬김을 의미한다. 이 어군은 세력에 의해서, 때때로 자발적으로 의존하고 섬기지만 항상 종속과 구속을 겪는 관계를 나타낸다. 왕은 항상 그의 신하들의 절대적 통치자이며, 그들은 그 아래서 노예와 같은 것이다. 사울의 신하들은 그의 종들이다(삼상18 :5). 요압은 다윗의 둘로스이며 (삼하14:9 -10), 전 백성은 왕의 종이다(왕상12:7). 흥미로운 점은 예속된 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이 용어들을 사용하는데 반해, 통치자들은 이 어군으로 그 관계를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c)  이 어군은 하나님에 대한 종속과 섬김의 관계를 의미한다. 이 어군이 이 관계에 대해 사용될 때, 발전의 정점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은 또한 헬라 및 헬레니즘 개념과 가장 날카롭게 대립된다. 70인역본에서 종은 개별적인 행동에서 뿐만 아니라 총체적인 위임 임무에서 하나님에 대한 봉사를 뜻하는 가장 일반적인 용어이다. 이 단어는 또한 바알이나 다른 신들에 대한 봉사에 대해서도 사용되었지만(삿 10:6, 3), 선민들에게 있어서 옳은 유일한 것은 오로지 여호와만을 섬기는 것이다(삿 10:16; 시 2:11 등).  이런 이유로 종들이 모세(수 14:7), 여호수아(삿 2:8), 아브라함(시 106:42), 다윗(시 89:3), 그리고 야곱(이스라엘을 대표함,사48:20)과 같은 유명한 인물들에게 사용될 때, 명예의 칭호로 사용되었다. 둘류에인(예속하는 것)의 반대는 불순종이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둘로스는 신약성경에서 124회 나오며, 그 중에 30회는 바울 서신에, 30회는 마태복음에, 그리고 26회는 누가복음에 나온다.

(a)  일반적인 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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