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9.1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73.지고지선진복의Q의선대하심.우매무지한 근시안 하마같은 악인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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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73장  아삽의 시

****[[사도됨...사도신경!!]]구태여 표현하자면 모든 성도 개개인마다, Q으로부터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었으나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속량하여 사로잡으사, 그리스도의 승천과 함께 보좌로 승귀하여 아버지께 보이신 후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이땅에)보냄받은/파견된 사신, 곧 사도임을 절대 잊지말자.....使徒. 사도라는 말 자체는 '(누구에게) 사용되는 무리', 또는 '파견된 무리'라는 뜻이다. 영단어 Apostle은 그리스어 ἀπόστολος(apostolos)가 라틴어(apostolus)를 거쳐 들어온 것인데, 어원을 따지면 '(어딘가로) 파견된 자, 전령'이라는 라는 의미가 있다. '사도'는 나름대로 어원의 의미를 반영한 번역어이다.......지존자, 전지전능하신Q이 깨닫게 하신 바 구체적인 삶의 어떤 영역에서 어떻게 섬기기를 원하시는지 보이시고, HS을 부으시고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지혜-지식-총명-분별-재능/기술/권능을 지니게 하심을 기억하여 바로 그렇게 주앝에서 능한 자로 자신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함을 잊지말라..


**[338내주를가까이하게함은]주없이살수없네292.나의영원하신기업435.나의갈길다가도록384.내맘의주여소망되소서484....내인생여정끝내어.완전하신나의주.하늘위엔주님밖에.내손을주께높이.주께가까이.주품에품으소서.주여나의참소망을.때로는너의앞에.


**악인의 특성......<일반인들의 느낌> [고통/환난_재난 :: 유비무환]을 사전에 잘 대처해 요리조리 잘 피해나가고, [재산_부귀영화 :: 만사형통]평소 하는 일마다 기대보다 더 많이 거두어 재산은 늘어만 가고 자손대대로 물려주며, [건강_장수]잘먹고 잘살아 건강하고 신세가 편하고 얼굴에 살이 올라 윤기가 흐르며, [임종 :: 근심걱정염려 없음]죽을때에조차 고통없이 편히 죽는 것처럼 보임..[신앙 :: 불신앙 ]Q을 우습게 여겨 비방-조롱하며 함부로 말하고 Q의 백성을 먹이로 삼아 교만과 폭력, 악행-폭언-탈취를 일삼으며, <믿는이들의 느낌> 그들의 [세상 분복 영광과 지혜]을 부러워 시샘하며 Q이 불공평하시다고 느끼게 함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롬8:28-30 ::: Q을 보며, 알며 사랑하며 섬기며 동행하는자...integrity-humility-simplicity[비-단-온]..창세전에 택정함 입은 그대로 부르심(청함) 받아, 오직 은혜로 JC를 나의주, 나의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하여, 은혜로 [회복된 인생의 참의미]를 깨닫게 하심따라 영광에 참여하기까지 [열어주시는 말씀 통해] JC를 따라감, 이땅에서 고난 통해 JC빼어닮아가며 JC의 성결과 의로 섬기며 사는자..선하신Q의 소유요, 구원받은 자로서 합당하게, Q이 친히 예비-공급하신 일용양식을 먹으며, 곧 남에게 줄 것(구원) 있게 하기 위해 항상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품고 주 섬김의 길로 행하며 바로 그렇게 누리는 바 참생명Q을 공급하는 자...Q과 Q의 모든 영광의 풍성-부요-충만이 이땅에서부터 내세, 곧 영원까지 그의 것임...롬5:1-11).

2.  나는 거의 (걸려)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요동하는 심지)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악인-죄인-오만한자 의 형통을 일견해 보고 질투)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성도의 정체성..날마다 죄/육신에 대해 죽고 HS따라 그리스도로 사는 성결과 의의 사람)

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매일 온종일, 세상적 측면에서 보면 외면당하고 때로는 오히려 정체되어 보임)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영적후사)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아이러니처럼 느껴짐)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한치앞도 못보는 하마같은 근시안/어리석음..HS께서 일깨워 열어주심!!)

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생생한 Q영광 경험...이제, Q말씀안에서 HS따름의 균형-조화-중용의 분별력 상실한 탐재-탐욕-탐닉은 찰나적 허상-안개-한바탕 꿈일뿐 깨달음-감사)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참된 회개...우매무지한 근시안, 탐욕스런 하마에 지나지 않음을 고백함)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오직 말씀안에 머물러, 열어주시는 HS따라 통찰-분별-선택-행함 이루라)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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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제73장 (아삽의 노래) 

1.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2.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3.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5.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6.  그들에게는 오만이 목걸이요, 폭력이 그들의 나들이옷이다.

7.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 뜨고 다니며, 마음에 기대한 것보다 더 얻으며,

8.  언제나 남을 비웃으며, 악의에 찬 말을 쏘아붙이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하기를 즐긴다.

9.  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닌다.

10.  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물을 들이키듯,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11.  덩달아 말한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 하고 말한다.

12.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13.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14.  하나님, 주께서는 온종일 나를 괴롭히셨으며, 아침마다 나를 벌하셨습니다.

15.  "나도 그들처럼 말하면서 살아야지" 하고 말했다면, 나도 주의 백성 가운데 한 사람처럼 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16.  내가 이 얽힌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17.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8.  주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시며, 거기에서 넘어져서 멸망에 이르게 하십니다.

19.  그들이 갑자기 놀라운 일을 당하고, 공포에 떨면서 자취를 감추며, 마침내 끝장을 맞이합니다.

20.  아침이 되어서 일어나면 악몽이 다 사라져 없어지듯이, 주님, 주께서 깨어나실 때에, 그들은 한낱 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21.  나의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찔린 듯이 아파도,

22.  나는 우둔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다만, 주님 앞에 있는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23.  그러나 나는 늘 주님과 함께 있으므로,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해 주시고, 마침내 나를 주의 영광에 참여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25.  내가 주님과 함께 하니, 하늘로 가더라도, 내게 주님 밖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 땅에서라도,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26.  내 몸과 마음이 다 사그라져도,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에 든든한 반석이시요, 내가 받을 몫의 전부이십니다.

27.  주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망할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정절을 버리는 사람은, 주께서 멸하실 것입니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 내가 주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주께서 이루신 일들을 전파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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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V]제73장


1.  Psalm 73 A psalm of Asaph. Surely God is good to Israel, to those who are pure in heart.

2.  But as for me, my feet had almost slipped; I had nearly lost my foothold.

3.  For I envied the arrogant when I saw the prosperity of the wicked.

4.  They have no struggles; their bodies are healthy and strong.

5.  They are free from the burdens common to man; they are not plagued by human ills.

6.  Therefore pride is their necklace; they clothe themselves with violence.

7.  From their callous hearts comes iniquity; the evil conceits of their minds know no limits.

8.  They scoff, and speak with malice; in their arrogance they threaten oppression.

9.  Their mouths lay claim to heaven, and their tongues take possession of the earth.

10.  Therefore their people turn to them and drink up waters in abundance.

11.  They say, "How can God know? Does the Most High have knowledge?"

12.  This is what the wicked are like -- always carefree, they increase in wealth.

13.  Surely in vain have I kept my heart pure; in vain have I washed my hands in innocence.

14.  All day long I have been plagued; I have been punished every morning.

15.  If I had said, "I will speak thus," I would have betrayed your children.

16.  When I tried to understand all this, it was oppressive to me

17.  till I entered the sanctuary of God; then I understood their final destiny.

18.  Surely you place them on slippery ground; you cast them down to ruin.

19.  How suddenly are they destroyed, completely swept away by terrors!

20.  As a dream when one awakes, so when you arise, O Lord, you will despise them as fantasies.

21.  When my heart was grieved and my spirit embittered,

22.  I was senseless and ignorant; I was a brute beast before you.

23.  Yet I am always with you; you hold me by my right hand.

24.  You guide me with your counsel, and afterward you will take me into glory.

25.  Whom have I in heaven but you? And earth has nothing I desire besides you.

26.  My flesh and my heart may fail, but God is the strength of my heart and my portion forever.

27.  Those who are far from you will perish; you destroy all who are unfaithful to you.

28.  But as for me, it is good to be near God. I have made the Sovereign LORD my refuge; I will tell of all your d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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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Three

The End of the Wicked Contrasted with That of the Righteous.

A Psalm of Asaph.73 

1 Truly God is good to Israel, To those who are pure in heart.

2 But as for me, my feet came close to stumbling, My steps had almost slipped.

3 For I was envious of the arrogant As I saw the prosperity of the wicked.

4 For there are no pains in their death, Their body is fat and pampered.

5 They are not in trouble as other men, Nor are they plagued like mankind.

6 Therefore pride is their necklace; Violence covers them like a garment [like a long, luxurious robe].

7 Their eye bulges from fatness [they have more than the heart desires]; The imaginations of their mind run riot [with foolishness].

8 They mock and wickedly speak of oppression; They speak loftily [with malice].

9 They set their mouth against the heavens, And their tongue swaggers through the earth.

10 Therefore his people return to this place, And waters of abundance [offered by the irreverent] are [blindly] drunk by them.

11 They say, “How does God know? Is there knowledge [of us] with the Most High?”

12 Behold, these are the ungodly, Who always prosper and are at ease [in the world]; they have increased in wealth.

13 Surely then in vain I have cleansed my heart And washed my hands in innocence.

14 For all the day long have I been stricken, And punished every morning.

15 If I had said, “I will say this,” [and expressed my feelings], I would have betrayed the generation of Your children.

16 When I considered how to understand this, It was too great an effort for me and too painful

17 Until I came into the sanctuary of God; Then I understood [for I considered] their end.

18 Surely You set the wicked-minded and immoral on slippery places; You cast them down to destruction.

19 How they are destroyed in a moment! They are completely swept away by sudden terrors!

20 Like a dream [which seems real] until one awakens, O Lord, when stirred, [You observe the wicked], You will despise their image.

21 When my heart was embittered And I was pierced within [as with the fang of an adder],

22 Then I was senseless and ignorant; I was like a beast before You.

23 Nevertheless I am continually with You; You have taken hold of my right hand.

24 You will guide me with Your counsel, And afterward receive me to honor and glory.

25 Whom have I in heaven [but You]? And besides You, I desire nothing on earth.

26 My flesh and my heart may fail, But God is the rock and strength of my heart and my portion forever.

27 For behold, those who are far from You will perish; You have destroyed all those who are unfaithful and have abandoned You.

28 But as for me, it is good for me to draw near to God; I have made the Lord God my refuge and placed my trust in Him, That I may tell of all Your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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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3장 (개요)

이 시편과 그 뒤 이어지는 열 개의 시편에는 표제에 아삽의 이름이 들어 있다. 

만일 그가 (많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그 시편들의 저자라면, 우리는 이를 아삽의 시라 부름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 시편을 받아서 노래한 악장에 불과했다면(KJV의 난외 해석처럼) “아삽을 위한 시”라 부르는 것이 옳다. 

그가 이 시들을 지었으리라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히스기야 시대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데에 사용되었던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에 대해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대하 29:30). 

비록 신성한 노래에 의해 예언의 성령이 주로 다윗에게 임했다 할지라도(그러므로 다윗은 이스라엘의 매혹적인 시편 저자라는 칭함을 받고 있다) 하나님은 성령의 일부를 그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도 내리셨다. 

이 시편은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이에서 시편 저자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는 강한 유혹에 대한 스스로의 투쟁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는 자기가 굳게 지켜왔고, 또 그 때문에 도움을 받아 자기의 위치와 목적을 이루었던, 그런 신성한 원리로써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1). 

그러고 나서 그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1. 그가 어떻게 그 유혹 속에 빠졌는가?(2-14).

2. 그는 어떻게 그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었는가?(15-20).

3. 그는 그 시험에서 무엇을 얻었고, 어떻게 나아졌는가?(21-28).

---이 시편을 노래하는 가운데, 우리가 이와 비슷한 시험에 대해 우리 자신을 방어한다면, 우리가 이 시편을 사용함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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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시 73:1-14)

....성의진선의 하나님이심, 하나님의 백성들이 시험을 통과함에 유용한, 인정하고 붙드는 원칙

이 시편은 약간 갑작스럽게 시작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선을 행하시도다”(난외에는 이렇게 되어왔다). 

그는 악인의 형통함에 대해 생각해 왔다. 그가 타오른 불꽃을 이처럼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마침내 자기의 이제까지의 생각을 뒤엎고 말을 시작했다. 

“그러할지라도, 하나님은 선하시도다.” 

비록 악한 사람들이 그의 섭리의 하사품에서 나온 선물을 많이 받을지라도 우리는 그가 특별히 이스라엘에 선하시다고 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은총을 그에게서 받았다.

시편 저자는 그가 강하게 기습당했던 시험, 즉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는 것, 많은 성도들의 은혜를 시험해 온 일반적인 유혹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이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내용을 살펴보자.

Ⅰ. 그는 제일 첫 번째로, 그가 이 시험과 담판하는 동안 꼭 붙잡고 놓지 않기로 결심한 그 중대한 원칙(전지전능하신Q의 어떠하심, 성품, 이름ㅡ 곧 Q의 영광!!)을 제시하고 있다(1절). 

욥은 자기의 원칙을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두었다. “전능자가 시기를 정하지 아니하셨다”(욥 24:1). 

예레미야의 원칙은 하나님의 의에 기초했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렘 12:1). 

하박국의 원칙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보지 못하시나이다”(합 1:13). 

시편 저자의 원칙은 하나님의 선하심이다

이러한 것들은 흔들릴 수 없고, 우리가 이에 의해 살기로 결심해야 하는 진리들이다. 

비록 우리에게 하나님 섭리의 모든 시여(베풀어 주심)를 그 원칙과 조화시킬 능력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것들이 조화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선한 생각은 사단의 많은 시험에 대해 우리를 강하게 해줄 것이다.

“하나님이 참으로 선하시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많은 생각들을 그의 마음속에 갖고 있었으나, 드디어 이 말이 그를 안정시켰다. 

“이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은 선을 행하신다.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 다음을 명심하자.

1.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되고, 죄의 더러움에서 깨끗해지며, 완전히 하나님의 영광에 바쳐진 정결한 마음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 

정결함은 내면에 있는 진실이다.(타인은 몰라도 본인만은 안다...나는 오늘 어떠한가..JC이름으로 Q께 나아가 떠오르는 모든 죄악 토설하여 보혈의지하여 죄사함받아 참된 자유함 얻고 Q영광에 참되고 온전하게 자신을 드려 사랑으로 하나됨의 순복 이루고 있는지...오 그 놀라운 자유함과 기쁨이여!!)

2. 모두에게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옛 이스라엘에게 그러하셨던 것과 같이 특별히 그의 교회와 백성들에게 선을 행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속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그와의 언약 속에 들어오게 하시며, 그들에게 그의 율법과 법령을 주신 일 속에서, 그리고 그들에게 관련된 여러 가지 섭리 속에서 이스라엘에게 선을 행하셨다. 

그는, 마찬가지로 마음이 정결한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신다. 따라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는 달리 생각해서는 안 된다.

Ⅱ. 그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 했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다른 백성들보다 더 행복하지 않고,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에게보다 그들에게 더 친절하시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강한 시험에 의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두드러진 선하심에 대해 갖고 있는 그의 믿음이 받았던 충격을 이제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1. 그는 이 시험에 완전히 패배당해 정복되지 않은 것을 매우 아슬아슬한 탈출로서 말하고 있다(2절)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매우 만족하였을지라도,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유혹자가 거의 발꿈치를 걸 뻔했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나는 거의 내 신앙을 포기하고 그 혜택에 대한 내 모든 기대를 단념할 뻔했으니), 이는 내가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아무리 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 믿음이 때로 몹시 흔들려 곧 그들을 쓰러지게 만들 수도 있다. 가장 견고한 닻을 시험하려는 폭풍이 있다.

(2) 결코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을 자들도 때로는 완전히 멸망에 매우 가까이 다가가며, 또한 파멸한 자처럼 느끼게 된다. 

영원히 살게 될, 많은 귀한 영혼은 그 생애 동안 한 번은 매우 급박한 전환기를 겪었다. 

즉, 거의 파멸할 뻔하고 파멸에 매우 근접했으며, 그것과 치명적인 변절 사이에는 단지 한 발짝의 간격만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에 타기 직전에 꺼내어진 나무토막처럼 간신히 구출되었다. 

이러한 일은 구원받은 자의 민족 가운데서 거룩한 은혜의 풍요함이 영원히 찬미되게 할 것이다.

2. 이제 우리는 시편 저자가 시험당한 과정, 즉 그가 시험당하고 또 하려 했던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1) 그는 [깨닫지 못하거나 깨달아도 선택을 거부한 바]어리석고 악한 사람들이 때로 외적인 형통함에 대해 매우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을 관찰했다. 

그는 “악인의 형통함을” 슬프게 “보았다”(3절). 악한 사람들은 정말로 어리석은 자로서 이성과 그들의 참된 유익을 거슬러서 행한다. 

그러나 [악인들을 구경하는]구경꾼들마다 그들의 형통함을 본다.

① 그들은 이 인생의 고난과 재난을 거의 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5절). 

“저희는 타인과 같은”, 심지어 지혜롭고 선한 자와 같은 “고난도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오직 어떤 특권에 의해 슬픔의 공동적인 삶을 면제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어떤 작은 고난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죄를 적게 범하고서도 더 큰 고난을 당하는 자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② 그들은 이 인생의 즐거움에서 가장 큰 몫을 지니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들은 편하게 살아가며 즐거움으로 목욕한다. 

그러므로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난다”(7절). 

과도한 즐거움이 어떠한가를 보라. 

즐거움을 절제 있게 사용하면 눈을 빛나게 하나, 관능적인 즐거움에 지나치게 빠져버린 자들의 눈은 곧 머리에서 튀어나올 것처럼 된다. 

향락주의자들은 본능을 만족시키는 척하는 동안에도, 본능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사실상 그들 자신을 고문하는 자들이다. 

또한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는” 자들, 즉 그들이 평소에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거나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많이 가진 자들은 당연히 그들의 배를 꽉 채운다. 

적어도 그들은 겸손하고 평온하고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원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많이 갖지만, 그들 자신이 원하는 것만큼 갖지는 못한다. 

자기 손에 이 세상에 대한 것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 마음에 저 세상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경건치 못하며,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경배함이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에서 형통하고 번영하며 부유할 뿐만 아니라, “재물을 더한다”(12절). 그들은 성공하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것을 지키기에 급급할 동안, 그들의 영예, 권세, 즐거움은 재물이 더함에 따라 더욱더 불어난다. 

“그들은 그 세대의 형통하는 자이다”(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③ 그들의 마지막은 평온한 듯이 보인다. 

이는 무엇보다도 가장 이상한 일로서 제일 처음에 언급되어 있다. 

왜냐하면 평온하게 죽는 것은 일반적으로 경건한 자의 고유한 특권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37:37). 

그런데 겉모양만을 보아서는, 조용히 죽는 것이 흔히 경건치 못한 자의 분깃이 되고 있다(4절).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다.” 

그들은 급사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리석으나, 어리석은 자들이 죽는 것처럼 죽지 않는다. 

“저희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며 저희 발이 차꼬에 채이지 아니하기” 때문이다(삼하 3:33-34).

그들은 익기 전에 나무에서 떨어지는 과일처럼 때맞지 않은 죽음에 의해 사라지지 않고, 늙어서 자연스럽게 떨어질 때까지 매달려 있다. 

그들은 심히 고통스러운 병으로 죽지 않는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번민이 “없고”, 마지막까지 “그 힘이 건강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이 죽는 것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평강하고 안일한” 자들 중에 속하고, “죽도록 마음에 고통하고 복을 맛보지 못하는” 자들 중에는 속하지 않는다(욥 21:23, 25). 아니, 그들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양심의 두려움을 모른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회고하거나, 자기들의 비참함을 내다봄으로써 오는 두려움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죽는다. 

우리는 죽는 모습이나 죽어가는 그 영혼의 상태에 의해 죽음 저편에 있는 사람의 상태를 판단할 수 없다. 

사람들은 양들처럼 죽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자리를 염소들과 함께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2) 그는 그들이 자기들의 외적 형통함을 매우 악용했으며, 그것으로 인해 더욱 사악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시편 저자로 하여금 안달을 느끼게 할 뻔했다. 

만일 그들의 물질적 번영이 그들에게 어떤 유익을 주었다면, 만일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덜 격노케 하거나 사람들을 덜 압제하게 했다면, 그것은 결코 시편 저자를 화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완전히 반대의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① 그것은 그들을 매우 교만하고 무례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편안하게 살기 때문에, “교만이 저희 목걸이”가 된다(6절).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의 장신구를 보이듯이, 자기들의 형통함으로 우쭐댄다. 

즉,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가 된다”(호 5:5; 사 3:9). 

“강포가 저희의 사슬”, 곧 목걸이에다 “묶인다”(하몬드 박사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사슬이나 목걸이를 하는 것은 해롭지 않다. 

그러나 강포가 그것에 묶일 때, 그것이 허탄한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 채워졌을 때, 그것은 장신구의 역할을 벗어나게 된다. 

옷이나 외양은(비록 우리가 그에 대한 규율을 갖고 있긴 하지만. 딤전 2:9)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어떤 원칙이나 그것에 입혀져 있는 정신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그리고 죄인들의 교만이 그 옷에 나타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그들의 이야기에도 나타나 있다. 

“저희는 거만히 말한다”(8절). 

그들은 그들 자신을 자랑하고,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멸시하면서, “허탄한 말을 토하기를 좋아한다”(벧후 2:18). 

그들은 마음속에 많은 교만이 들어 있기 때문에 과장되게 말한다.

②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불쌍한 이웃들을 강포하게 대하도록 만든다(6절).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다.” 

그들은 속임수와 압제로써 얻은 것을 그와 같은 악한 방법에 의해 지키고 불어나게 하며, 다른 사람을 해한 것이나 강포를 사용한 것에는 개의치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직 그들 자신을 부유케 하고, 확대될 수 있도록 한다. 

“저희는, 강포가 땅에 충만했을” 때, 옛 세상의 죄인들, 장대한 자들처럼(창 6:11, 13) “능욕한다.” 

그들은 악 자체를 위해서나 그들의 이득을 위해서 죄악을 행하기를 개의치 않는다. 

“저희는 악하게 압제하여 말한다.” 

즉, 그들은 압제하며, 그런 일을 행하는 자신들을 정당화한다. 

죄를 좋게 이야기하는 자들은, 그에 대해 악하게 말한다. 

“저희는 능욕한다.” 즉, 사치스러운(일부의 견해처럼) 즐거움에 빠져들어, 그 다음 그들은 비웃고 앙심 깊게 말한다. 

그들은 비방의 독이 묻은 창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상처입히기를 개의치 않는다. 즉, 높는 데서 저희는 압제를 말한다.

③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그들의 행실을 매우 무례하게 만들었다(9절). 

“그들은” 하나님 자신과 그의 존엄을 경멸하고, 그에 대해 그리고 그의 능력과 의에 도전하면서, “저희 입을 하늘에 둔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기 위해 그들의 손을 하늘에 닿게 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입으로 하늘을 대적함으로써 그들의 악의를 나타낸다. 

“저희 혀는” 또한 “땅에 두루 다니며”, 저희는 저희 길을 방해하는 모든 사람들을 욕할 자유를 갖는다. 

사람이 지위가 높거나 선량하다 해서, 그것이 독살스러운 혀의 채찍에서 그를 안전케 할 수 없다. 

그들은 모든 인류를 조롱하는 일에서 긍지와 즐거움을 취한다. 그들은 그 나라의 독충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람을 존중하지도 않는다.

④ 이 모든 일에서 그들은 매우 무신론적이며 불경스럽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11절) 하고 말하는 것을 배우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이 이처럼 사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유익한 것들을 주셨고, 또 그 사용법을 가르쳐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을 도무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온갖 사악함을 다 알고 계시며, 그들을 문책하려 하신다 함을 기꺼이 믿으려 하지 않는다. 

마치 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이므로, 그가 그들을 볼 수 없거나 보려 하시지 않는 것처럼 여긴다(욥 22:12-13). 

그러나 오히려 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이므로, 그는 모든 인생들과 그들이 행하거나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인지하실 수 있으며, 또 인지하시고자 한다. 

모든 지식이 나오는 무한한 지식의 하나님께, “그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고 묻는 것은 얼마나 모욕적인 일인가? 

그는 당연히,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12절)고 말씀하실 수 있을 것이다.

(3) 그는 사악한 자가 이처럼 불경함 속에서 형통하며, 그 형통함에 의해 더 불경스럽게 되는 반면에 선한 사람들은 큰 환난에 처하는 것을, 그리고 특히 그 자신도 섭리와 싸우는 매우 강한 시험 가운데 있음을 주목했다.

① 그는 외부로 눈을 돌렸고, 하나님의 많은 백성들이 크게 당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10절). 

“악인은 매우 대담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그 백성이 이리로[주께로] 돌아오나이다. 그들은 내가 처해 있는 것과 똑같은 주저함 속에, 똑같은 몰입 속에 있습니다. 그들은 내가 말하는 것 이상으로 말할 줄을 모르는데, 그것은 오히려 저희가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고통의 쓴 잔을 깊이 들이마셔야 할 뿐만 아니라, 다 들이마셔야 합니다. 그들은 그 불쾌한 몫의 한 방울도 흘리지 못하도록 감시받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그들이[주님의 백성들이] 그 잔의 찌꺼기를 먹도록 그들에게 물을 억지로 짜서 줍니다. 그들은 악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불경스럽게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많은 눈물을 쏟습니다.” 

다윗도 그러했다(119:136). 이 눈물은 그들에 의해 억지로 짜낸 물이다.

② 그는 내부로 눈을 돌렸고, 악인들이 섭리자의 미소 속에 자기들의 발을 담그고 있는 반면에, 그 자신은 계속되는 곤경 아래 있음을 느꼈다(14절). 

“나에 관해서는”, 그는 말하고 있다.

“나는 어떤 고통으로 인해 종일 재앙을 당하여, 아침이 오는 것처럼 일정하게,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그의 고통은 컸다─그는 재앙을 당하고 징책받았다. 

그것은 아침과 더불어 “아침마다” 일정하게 돌아왔고, 휴식기간도 없이 “종일” 계속되었다. 

하나님을 모독한 자들이 형통하는 반면에, 하나님을 섬기는 그가 이처럼 큰 환난 아래 있다는 생각은 그를 몹시 괴롭혔다. 

그는 그 자신의 환난에 대해 언급할 때 매우 절실했다. 믿음에 의하지 않고서는 지각에 대항할 수 없다.

(4) 이 모든 것으로 인해 시편 저자에게는 믿음을 버리려는 강한 유혹이 일어났다.

① 악인의 형통함을 관찰하고, 특히 그것을 의인의 환난과 비교해 본 사람들은 섭리를 부인하고, 하나님께서 땅을 버리셨다고 생각하고 싶은 시험을 당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이러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11절). 

하나님을 고백하는 백성들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어찌 알랴! 분명히 모든 일들은 눈먼 행복의 여신에게 맡겨져 있으며,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에 의해 처리되고 있지는 않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어떤 이교도들은 이러한 의견에 대해 “신이 있다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하고 물었다.

② 비록 시편 저자의 발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의심할 정도에까지 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는 믿음의 유익을 의심하고,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라고 말한다. 그는 아무 소용 없다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신앙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여기에서 보라. 그것은 회개와 개심으로써 먼저 우리 마음을 정히 한 다음, 우리 생활의 전반적인 면에 우리 손을 보혈로 씻어 무죄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행하는 것은 헛되지 않다. 

그러나 선한 사람들은 때로 “그것은 헛되다”, 그리고 “신앙은 유익함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받아왔으며, 이는 악인들이 형통하는 것을 그들이 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일이 현재에는 어떻게 나타날지라도 마음이 청결한 자, 복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보게 될 때(마 5:8),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정히 함이 헛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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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종말(시 73:15-20)

우리는 시편 저자가 불경한 자들의 번영을 질투하고 싶은 유혹을 얼마나 강하게 받았는가를 보았다. 

이제 여기에서는 그가 어떻게 그의 입장을 지속하며 승리를 얻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Ⅰ.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존경을 지켰으며, 그것으로써 그는 그가 잘못 생각했던 것은 [함부로]말하지 않도록 그 자신을 통제했다(15절). 

그는 점차 승리했으며, 이는 그가 얻은 첫 번째 요점이었다. 

그는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하고 곧 말하려 했고, 그렇게 말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생각으로 자기 입을 막았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반항하고 신앙을 저버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라.

1. 그는 비록 잘못 생각했지만, 그가 품은 그 악한 생각을 발설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쁘다. 그러나 그 잘못된 생각을 말하는 것은 더욱 나쁘다. 

그렇게 함으로써 악한 생각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은, 그 생각을 허용하고, 승낙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도 물들도록 퍼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생각을 억압하고 그 실수를 우리 자신에게만 국한시킨다면, 그것은 우리가 마음의 악한 생각을 후회한다는 좋은 표지다. 

그러므로 당신이 악한 생각을 할 만큼 어리석었다면, “당신 손으로 입을 막고”(잠 30:32), 그것이 더 퍼지지 않도록 지혜로우라.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른다면, 이렇게 말하리라.”

그의 부패한 마음이 악인의 형통함으로부터 이러한 추론을 해냈다 할지라도 그후부터 그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입 밖에 내는 것이 합당한가 아닌가를 곰곰이 따져보기 전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언급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말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해야 한다. 

맨 처음은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기 위해서며, 이어 두 번째의 생각이 첫 번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2. 그가 그것을 말하려 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로 인정하신 자들에 대해 궤휼 행함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이 세상에는 하나님 아들들의 시대에 속한 사람, 즉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사랑하고 그 말씀을 듣는 일련의 사람들이 있다.

(2) 우리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마 18:6) 할 수 있는, 특히 그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그들의 손을 약하게 하며 그들의 유익을 흔들리게 하는 어떤 것을 말하거나 행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3) 우리가 우리 마음을 정히 한 것이 실로 헛되다고 말하거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욱 하나님의 아들들을 일반적으로 실족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Q이 이처럼 비방당하심을 듣기보다 더욱 그들의 보편적인 감정과 경험을 거역하는 것은 없으며, 그보다 더 그들을 상심케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4) 악인의 상태를 동경하는 자들은 실상 하나님의 아들들의 장막을 떠나가는 것이다.

Ⅱ. 그는 악인의 멸망을 예견하고 있다. 

앞에서 그 유혹을 어느 정도 저지시켰던 그는, 이제는 유혹을 물리쳤다. 

궤휼을 행할까봐 생각한 것을 감히 말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의 그러한 생각이 타당한가를 깊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16절). 

“나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 섭리의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나 그것은 내게 심히 곤란하였다. 나는 내 자신의 추리력으로써 그것을 정복할 수 없었다.” 

이것은 자연의 단순한 빛에 의해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다. 

왜냐하면 이후에 또 다른 생이 없다면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을 하나님의 의에 완전히 조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다”(17절). 

즉, 그는 예배에 전념했으며 하나님의 특성을 묵상했는데, 그때에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한 일들이 드러났다.” 

그는 성경에 의논했고, 성소에서 시중 들고 있는 제사장들의 입술에 의논했다. 

그는 이 문제를 그에게 분명하게 밝혀주시고 그로 하여금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악인의 비참한 결국을 깨달았다. 

즉, 그는 그들의 형통함이 절정에 달했을지라도, 그들은 멸망하기 위해 무르익는 것에 불과하므로, 그들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예견했다. 

알려질 필요가 매우 많지만,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지 않고는, 말씀과 기도에 의하지 아니하고서는 알려지지 않을 것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성소는 시험당하는 자들의 휴식처임에 틀림없다. 

더 나아가, 우리는 거룩한 계시의 빛에 드러난 대로 사람과 일들을 판단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의로운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특히 우리는 종말적 심판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 

좋게 끝나는 것, 영원히 좋게 끝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나쁘게 끝나는 것은, 영원히 나쁘게 끝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좋지 않다. 

의로운 자의 고통은 평화롭게 끝나므로 그는 행복하나, 악인의 즐거움은 멸망으로 끝나므로 비참하다.

1. 악인의 형통함은 짧고 불확실하다. 

섭리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높은 자리는 “미끄러운 곳”이다(18절). 따라서 그들은 그곳에 오래 발붙일 수 없다. 

그들이 더 높이 오르려 꾀할 때 바로 그 시도는 그들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계기가 된다. 

그들의 형통함은 견고한 바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나 그의 약속 위에 세워져 있지 않다. 

그 결과 그들은 그것이 견고한 바닥 위에 있다는 느낌이나 만족감을 갖지 못한다.

2. 그들의 파멸은 확실하고 갑작스러우며 매우 크다. 이는 어떤 일시적인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생을 풍족함으로 보낸다”고 생각되며, 그들의 죽음 자체가 그것을 제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희가 졸지에 음부로 내려간다.” 

따라서 그것조차도 저희의 파멸이라고는 거의 일컬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죽음 저편에 있는 영원한 멸망─지옥과 멸망─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얼마동안 융성하나 영원히 파멸한다.

(1) 그들의 멸망은 확실하며 불가피하다. 

그는 그것을 이미 행해진 일로서 말하고 있다─“저희는 파멸에 던져졌다.” 왜냐하면 그들의 파멸은 이미 이행된 일처럼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행하심으로, 그러므로 그에 항거할 수 없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주께서 저희를 파멸에 던지셨다.” 

그것은 “전능자에게로서 이른”(욜 1:15) “그의 힘의 영광에서” 나온(살후 1:9) 멸망이다. 

하나님께서 던지시려는 자들, 하나님께서 그 위에 짐을 지우시려는 자들을 누가 부축할 수 있겠는가?

(2) 그것은 빠르며 갑작스럽다. 

그들에 대한 저주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19절) 

그것은 쉽게 이루어지고 그들 자신과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한다.

(3) 그것은 냉혹하며 매우 무섭다. 전체적이고 최종적인 파멸이다. 

“저희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그들의 원수로 만들었던 전능자의 두려움이 가책을 느끼는 양심 위에 머무르는 것이 저주받은 자에게 내리는 비참함이다. 

양심은 그들을 그 두려움에서 안전케 해주거나 그 아래에 있는 그들을 강하게 해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행복은 그것에 의해 완전히 전멸될 수밖에 없다. 아무런 위로나 소망도 그들에게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이 그 형통함 속에서 높이 들릴수록, 그들이 “파멸”에 던져져 갑자기 “황폐케” 되었을 때, 그들의 몰락은 더욱 극심해진다.

3. 그러므로 그들의 형통함은 전혀 부러워할 만한 것이 못되며, 오히려 경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20절). 

이것이 “설정되어야 할 요지였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또는(어떤 사람들의 해석처럼) 그들이 깬 후에 “저의 영상”, 곧 저희 그림자를 “멸시하시리이다.” 

그리고 그것을 “격파하시리이다.” 

“큰 심판의 날에”(갈대아역은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그들이 음부에서 깨어날 때 주께서 진노로 그 영상을 멸시하실 것이다. 

즉, “그들은 수치와 영원한 멸시를 당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1) 현재의 그들의 형통함은 무엇인가? 그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헛된 모양, 사라질 세상의 모습에 불과하다. 그것은 실재가 아닌 허구며, 그것을 행복으로 만드는 것은 부패한 상상력일 뿐이다. 

그것은 실체가 아닌 단순한 그림자다. 그것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약속했던 것이 아님이 증명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잠들었을 동안 우리를 잠시 즐겁게 할 수도 있으나, 심지어 그때에도 우리의 휴식을 방해하는 꿈과도 같다. 

얼마간 즐겁게 할지라도 그것은 속임수, 모두 거짓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깨어났을 때, 우리는 그것이 그렇다는 실상을 발견한다.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빈다”(사 29:8). 사람은 자기가 꿈꾸는 것보다 결코 더 부유하거나 존귀하지 않다. 

그러므로 누가 꿈꾸는 즐거움을 부러워하겠는가?

(2)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은 깨어 심판하신다. 그 자신과 그의 백성들이 해를 당한 사정을 변호해 주신다. 

그들은 그들의 현세적인 방심의 잠에서 깨어나게 될 것이며, 그때 하나님은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이 얼마나 경멸스러운가를 온 세상에 드러내실 것이다. 그리하여 의인이 그들을 비웃을 것이다(52:6-7). 

하나님께서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는 얼마나 그의 상상을 멸시하신 것인가!(눅 12:19-20)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과 같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심판은 진리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멸시하고 계심을, 멸시하실 것을 경탄하거나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조만간 그는 온 세상이 그의 마음과 같게 만드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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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확신(시 73:21-28)

삼손의 수수께끼가 다시 풀린 것을 보라.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즉, 우리는 여기에서 시편 저자가 공격당해 거의 압도된 그 극심한 시험을 훌륭히 이용한 것을 읽을 수 있다. 

비틀거리지만 넘어지지 않는 자는 자기 자신을 회복시킴으로써 훨씬 더 큰 발걸음을 앞으로 낸다. 여기에서 시편 저자의 경우도 그러했다. 

그는 그의 시험으로부터, 즉 그것과의 투쟁과 그것에 대한 승리로부터 좋은 교훈을 많이 배웠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은혜가 그의 백성들을 해로움에서 구원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의해 그들을 유익을 얻는 자로 만들기에 충분치 않다면, 그들을 시험당하도록 내버려두시지도 않을 것이다. 즉, 이 역시 선을 위해 역사된다.

Ⅰ.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 자신에 대해 매우 겸손히 생각하고, 그 자신을 낮추며 고발하는 것을 배웠다(21-22절). 

그는 그가 처해 있는 혼돈과 위험을, 그리고 그 유혹을 즐기고 그것과 타협함으로써 그 자신을 괴롭힌 것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하고 있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 심장 부위를 예리한 돌에 찔려 괴로워하는 자로서,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어느 때, 악한 생각이 어떤 선한 사람의 마음속에 시험의 형태로 슬며시 들어왔다면, 그것을 달콤한 음식처럼 그의 혀 아래 두고 굴리지 않는 끼닭은. 그것자체가 그에게 근심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이 되기때문이다. 시험은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였다(고후 12:7). 

이 특별한 시험, 즉 시기와 불만의 일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다. 그것이 끊임없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뼈가 썩게” 된다(잠 14:30). 

아니 그것이 이따금씩 오기만 해도 심장을 찌른다. 불평은 그 자체가 징계가 되는 부패함이다.

이제 반성하는 가운데 그는 크게 깨닫는다.

1. 그는 이처럼 그 자신을 괴롭힌 것은 그의 어리석음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내가 이같이 우매하여 내 자신을 괴롭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역정을 내는 백성들은 이처럼 자기 자신을 책망하고, 자기의 불만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자.

“까닭 없이 나 자신을 마음 편치 못하게 하는 나는 얼마나 우매한가?”

2. 그는 이에 대해 그 자신을 괴롭힌 것은 무지였음을 시인하고 있다.

“나는 내가 알 수도 있었던, 그리고 내가 올바로 알았더라면 나의 투덜거림을 충분히 잠잠케 했을 것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내가 주 앞에 짐승(behemoth─큰 짐승)이었나이다. 짐승은 오직 현재 일만을 생각하며, 장차 올 것은 결코 내다보지 못합니다. 나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내가 큰 바보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처럼 나를 크게 이겨버릴 만한 지각없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형통한다는 이유 때문에 악인을 부러워하다니! 내 자신이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그들과 상황을 바꾸려고까지 생각할 뻔했구나! 

“내가 이처럼 우매하나이다.” 

놀라운 유혹과 그 힘으로 인해 선한 사람들이 어느 때에 잘못된 것을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했다면,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볼 때, 슬픔과 부끄러움을 품고서 반성할 것이며, 자기 혐오감을 갖고, 그들 자신을 “우매자”라 부를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잠 30:2; 욥 42:5-6). 다윗도 그렇게 말했다(삼하 24:10).

Ⅱ.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그가 의지하고 있으며, 그것의 덕을 입고 있음을 인정할 기회를 잡고 있다(23절). 

“내가” 우매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주와 함께하니”, 그리고 주의 은총과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1. 이는 하나님께서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를 돌보셨음과 그에게 친절을 베푸셨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14절).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는 그가 격렬히 불평한 것을 바로잡고 있다.

“비록 하나님이 나를 징책하셨을지라도, 나를 버리셨을지라도, 내 인생의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였도다. 나는 주의 임재를 얻었고, 주께서는 내가 주께 요청하는 모든 일에서 내게 가까이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황할망정 절망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내게 대해 비통한 일들을 기록하셨을지라도, 주는 항상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그리하여 내가 그를 버리거나 그에게서 도망하지 않도록 나를 지키셨고, 내가 내 집 밑에 쓰러져 기절하거나 내가 걸어가고 있는 광야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해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지켜왔다면, 우리의 의무를 철저히 지키고 우리의 순전함을 유지해 왔다면, 우리는 우리의 보존에 대해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 빚지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도움을 얻었으므로 내가 여태까지 살아왔도다.” 

그리고 만일 그가 이처럼 영적인 생명을, 영원한 생명의 증거를 지키셨다면 우리는 지금 현재 어떠한 재난을 당해도 불평해서는 안 된다.

2. 그로 하여금 이 강한 시험을 겪은 후 정복자가 되게 하신 일에서, 거룩한 은혜의 능력을, 그가 최근에 경험한 것을 언급함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우매무지하였으나 주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셨고 나를 가르치셨나이다(히 5:2). 그리고 나를 주의 보호 아래 두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무가치함이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 대해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시험에서 안전하고 그 시험에 이기는 것을 우리의 지혜 덕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매무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은혜롭게 임재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효과적으로 중보하시는 덕택으로 여겨야 한다. “내가 거의 실족할 뻔하였도다(2절). 그리고 내 발이 완전히 상하여 회복될 수 없는 것 같았도다. 그러나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시어 나를 쓰러지지 않도록 지켜주셨도다.”

Ⅲ. 그는 사도 바울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딤후 4:18), 그를 이 악한 일에서 건져내신 바로 그 하나님이 “그를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라”는 것을 바라도록 스스로를 격려하고 있다. 

“나는 지금 주의 부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여지껏 행하셨던 것같이 여기 어려운 걸음을 인도하시면서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리이다. 그리고 내가 이제 항상 주와 함께하므로 주께서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이다”(24절). 

이것은 성도들의 행복을 완전케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죄인들의 세상적인 형통함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다음 사실들을 명심하자.

1.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한 모든 사람들은 그의 교훈으로, 가장 훌륭한 조언자인 그의 성령과 그의 말씀의 교훈으로 인도받을 것이다

시편 저자는 이러한 시험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의 지혜를 따랐으므로, 몹시 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는 앞으로는 하나님의 권유를 받기로 결심하고 있다. 

하나님의 권유는 그것을 따르려는 결심을 가지고 올바르게 구하는 자들에게 결코 부족됨이 없다.

2.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교훈으로 인도받는 모든 사람들은 저 세상에서 그의 영광에 영접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뜻하는 목적으로 삼는다면, 그는 그와 함께 있는 우리의 영광을 우리가 영원히 행복하게 될 목적으로 만드실 것이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죄인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 자신의 축복으로 우리를 축복하도록 하자.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땅한 의무의 길로 우리를 지도하시고, 우리가 곁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신다면, 그는 후에 우리의 시련을 거쳐 준비가 끝났을 때 우리를 그의 나라와 영광으로 이끄실 것, 지금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당황하게 만드는 모든 모호한 섭리를 우리로 하여금 참된 진상과 그 실체를 깨닫게 하시고, 어떤 위협적인 시험에 의해 우리가 당해 온 고통에서 우리를 편케 하리라는 그 믿음의 소망과 전망으로 영접하실 것이다.

Ⅳ. 그는 이것에 의해 하나님께 더욱 철저히 매달리도록 자극받았고, 그가 하나님을 택한 일에 매우 확고했으며, 그 속에서 위로를 받았다(25-26절). 

여기에서 그의 생각은 이 세상에서 형통한 불경건한 자의 행복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서, 하나님 안에 있는 그의 행복에 덧붙여 즐거움과 함께 거하고 있다. 

그는 그가 창조주 안에서 얻고 있는 즐거움이 얼마나 크며 좋은가, 얼마나 확실하고 달콤한가를, 그리고 이러한 면에서 그 자신을 축하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했을 때 저들이 창조물 가운데에서 얻고 있는 것에 대해 그들을 부러워할 이유가 거의 없음을 알았다. 

그는 그의 환난을 불평했었다. 그러나 이는 그러한 것을 매우 가볍고 쉽게 만들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편이면 만사가 잘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로 향한 성별된 영혼의 호홉과 하나님 안에서의 휴식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세상적인 사람의 형통함은 경건한 자에게는 기만과 허위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시편 전체 중에서 하나님께 대한 한 영혼의 경건함과 믿음이 깊은 감정을 이 구절보다 더 잘 표현한 구절은 없다. 

여기에서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 치솟고 있으며, 그를 열심히 뒤쫓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만족감과 평온함을 지니고 있다.

1. 하나님만이 사람의 지복이며 주요 선이라는 사실이 여기에 가정되어 있다. 

하나님, 영혼을 만드신 하나님만이 그것을 행복하게 하실 수 있다. 그렇게 하는 척할 수 있는 자는 하늘이나 땅에 아무도 없다.

2. 따라서 여기에 하나님께로 향하는 영혼의 작용과 호흡이 표현돼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지복이시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우리는 그를 섬겨야 하며(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그를 택해야 하고, 그를 통해서 오는 우리의 이득을 확신해야 한다. 

만일 그가 우리 영혼의 지복이 아니시라면, 살아 있는 믿음으로써, 즉 영원한 언약 안에서 우리 자신이 그에게 연합되게 함으로써 그를 우리의 것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가 영혼의 지복이시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2) 우리의 소망은 그를 향해야 하며, 우리의 기쁨은 그 안에 있어야 한다(이 단어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의미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기뻐해야 하며, 우리가 아직도 더 바라는 것을 간구해야 한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바쳐져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이외의 것은 원하지 않고 계속 그를 바라면서,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종결시켜야 한다.

“주여,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주옵소서”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기도를 포함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리라”는 것은 모든 약속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 영혼의 소망은 주의 이름에 있사옵니다.”

(3) 우리는 그 무엇보다 그를 택해야 하며, 그를 원해야 한다.

①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주 외에는 내가 구하거나 의지할 만한 이가 없으며, 사귀려고 애쓰거나 청할 만한 자가 없습니다. 그는 궁창에서 어느 것보다 더욱 영화로우시도다”(89:6). 

그리고 그는 우리가 보기에 무한히 바람직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하늘에는 뛰어난 자들이 있으나, 하나님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주시는 바 하나님의 은총은 하늘 이슬의 신선함이나 하늘에 있는 별들의 온화한 감응력보다도, 또 하늘 성도들의 우정이나 거기에 있는 천사들의 선한 직책보다도 더욱 무한하다.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가 없나이다.”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는 먼 곳, 하늘에도 아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많은 친구들을 갖고 있으며, 우리 현재의 관심과 흥미가 많이 놓여 있는 땅에도 아무도 없다. 

“땅이 대부분 사람들의 소망으로 차지되어 버리지만, 땅 위에서는 주밖에 또는 주와 함께, 주와 비교되거나 경쟁될 만큼, 나의 사모할 사람이나 일이나 소유물이나 기쁨이 없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구하는 경우가 아니고는 하나님 외에 다른 아무것도 구하지 말아야 한다.

(주를 위해서가 아니고는 아무것도 주 외에 다른 것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

(4) 그때에 우리는 완전한 만족감을 가지고 하나님 안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26절). 여기에서 다음을 관찰하자.

큰 환난과 고통이 예상되고 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이다.” 

어떤 사람들은 육체와 마음이 쇠잔하는 것을 경험했고, 우리도 그것을 각오해야 한다. 

육체는 병과 나이와 죽음에 의해 쇠잔할 것이다. 그리고 뼈와 육신을 건드리는 것은 우리가 애지중지하던 우리 자신의 일부분을 건드리는 일이다. 

즉, 육체가 쇠잔할 때, 마음 역시 곧 쇠잔해진다. 그리고 거동과 용기와 위로도 쇠잔해진다.

이 환난 속에서도 최상의 위로가 나온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은혜로운 영혼들은, 큰 환난 속에서도 그들의 영적인 힘과 영원한 분깃으로서 하나님을 의지한다.

a. “주는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내 마음의 힘이시요, 내 무게를 지탱하고 그 밑에 깔리지 않게 할 견고한 토대이시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나는 그가 그러하심을 발견했다. 나는 지금도 발견하며, 그가 그러하시기를 항상 바란다.” 

앞으로 닥칠 환난 속에서 그는 “육체와 마음이 쇠잔하는” 이중적인 낭패가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위안 가운데에서 그는 유일한 토대를 굳게 붙들고 있다. 

그는 육체를 무시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그의 마음의 반석”이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육신에는 무관심한 자로서(그것은 쇠잔하게 버려두라. 아무 대책이 없다) 영혼에 관심을 가진다. 

“속사람을 강건케” 하려는 자로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b. “주는 내 영원한 분깃이시라. 그는 내가 여기에 있는 동안 나를 부축해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죽을 때에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실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의 분깃으로 선택한다. 그들은 그를 분깃으로 삼는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의 소득이 되시리라는 것, 불멸의 영혼이 지속되듯이 오래 지속될 소득이 되시리라는 것은 그들의 행복이다.

Ⅴ. 그는 모든 악인의 비참한 상태를 충분히 깨달았다. 그는 이러한 경우에 성소에서 그것을 배웠고, 결코 잊으려 하지 않았다(27절). 

“대저, 소외와 분리 속에서 주를 멀리하는 자, 즉 전능자가 자기에게서 떠나기를 원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리라. 그들의 운명은 그러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하기를 택하고,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멀어질 것이다.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즉 하나님과 약혼한 것을 고백하였으나, 그를 버리고 그에 대한 의무와 교제를 버리고, 이방인의 품으로 간 모든 변절자들을 주께서 다 멸하셨다.” 

그 운명은 가혹하게 망하고 파멸당할 것이다. 그 운명은 보편적이다. 

“그들은 예외 없이 파멸당할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다. 

“주께서 멸하셨나이다. 그것은 이미 행해진 일처럼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불경건한 자들의 멸망은 모두에 대한 파멸의 전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것을 수행하시며, 그의 손에 떨어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주는 비록 무한히 선하시지만, 주의 손상당한 영예와 모욕당한 인내를 계산에 넣으실 것이며,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멸하실 것입니다.”

Ⅵ. 그는 하나님께 매달리고, 그를 신뢰하도록 크게 격려받았다(28절).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가 망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1. 이것으로써 우리를 통제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면서 살도록 하자. 

만일 그를 멀리 떠나 사는 사람들이 실패를 한다면 그것은 복, 훌륭한 복이다. 

곧, 이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지복으로 여겨 이것을 가장 열심히 추구하고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하고, 또 하나님이 내 가까이에 오시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복이다. 원어는 이 두 가지로 다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내게는(나는 이렇게 읽고 싶다) 하나님께서 접근하시는 것이 내게 복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하시는 것에서 생기며, 그것은 복을 만드는 행복한 만남이다. 

여기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이라는 큰 진리가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 진리의 생명은 “그것이 내게 복이라”는 해석 속에 있다. 

자기에게 복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자들은 지혜로운 자들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그리고 선한 사람마다 이러한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것은 내 의무이며 내 관심이다.”

2.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항상 의지하면서 살도록 하자.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고 음녀같이 주를 떠나 어떤 피조물을 결코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악인이 온갖 형통함에도 불구하고 망하고 파멸할 것이라면, 우리는 주 하나님을, 그들이 아니라(149:3-5 참조), 그리고 우리의 세상적인 형통함이 아니라, 그를 의지하도록 하자.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자. 그들을 의지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그들의 것보다도 더 나은 분깃을 위해 우리는 그를 의지하도록 하자.

3. 우리가 그렇게 행하는 동안, 우리는 그의 이름을 찬미할 기회를 가지리라는 것만큼은 의심하지 않도록 하자. 

우리가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할 수 있도록 주를 의지하도록 하자.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결코 그에게 감사드릴 소재가 부족하지는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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