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8.29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67.땅끝모든열방까지.주안에하나인교회.은혜구원영생복락누림경외함.무한풍성번영생명.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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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67.시 곧 노래, 영장으로 현악에 맞춘 것==


*주님의 길(도), 그 임재 = 얼굴 빛 = 성의진선 = 주님 말씀 빛 [[오직 회개-->회복--지고지선의 진복-영생-영광참여,누림, 사랑희락화평]]...시105:4, 엡5:8,9 , 갈5:22

[세계선교..만민/열방들에게까지 두루 미치는 구원영생, 만복의 근원 은혜의 주, 지존하신 하나님, 그분을 알며 사랑하며 섬김으로써 찬양하고 경외하기를 강권하는 축복의 노래]==TUQ을 신자의 모든것으로 누림/빼어닮고 동행함의 은혜(자복과 통회가 선결요건)...영광에서영광으로..삶의 목적!!


*영광의왕께다경배하며67..오만세반석이신주우리하나님74..주여우리무리를75......은혜로만들어가네.내생애가장큰것주알고파.세상모든민족이.

주안에 우린하나. 주는우리의기쁨.축복하고지키며.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도와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은혜<하난- ן !

[사33:2...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시119 :132..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시51:1....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히브리어 <하난 ן<은 YHWH의 인자, 곧 언약적 아가페 사랑(은혜와 긍휼)의 적극적인 행동, 즉 과정 거치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내주하사(임마누엘로) 함께 하며 도와 일으켜 주심 통해 주 뜻 그대로 회복시킴(JC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도록[생명-본성-성품의 거룩함이] 성장성숙한 Q의 아들들인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만들어 얻으심)!!을 의미한다 --- 불쌍하고 마음이 아파서 공감하는 것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돕는 은혜를 의미.....실제적인 도움이 따르는 은혜를 뜻하는데, 조건없는 사랑의 실천적인 모습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긍휼과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 가장 낮고 낮은 이 땅으로 [무력한 점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친히 오셔서 모든 인류의 죄 담당하사 죽으시고 장사되고 부활승천하시고, 성령으로 오셔서 내주하시는 모습이 <하난 ן<인것이다 ... 하늘 보좌에서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하나님의 실제적인 긍휼함으로 나타나시는 것을 말씀하고 계심이다 

----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 - <하난 ן<은 그 영혼을 돕기 위해서 똑같은 처지가 되어 주는 것으로,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함께 계셔 주는 것이다...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서 아무런 자격도 없는 영혼들을 위해서 그 연약한 육신의 몸을 덧입고 오신 이유 그 자체이다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서 죽으셨던 그 사랑이 하나님의 최고의 <하난 ן<....오늘도 하나님의 적극적으로 도우시는 <하난 ן<의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본래, <하난 ן<은 사막에서 생활하는 유목민들이 함께 생활하는 사랑의 공동체의 Tent를 의미했으니.... 서로 사랑하고 아껴 주는 포근한 사랑의 처소가 <하난 ן<인 것이다 --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하난 ן<으로 달려 가면 보호 받을 수 있다 : : : <하난 ן<에 머물면 하나님의 큰 도우심을 깊이 경험할 수 있다 ---사랑하는 영혼을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1.하나님은 우리에게(주님의 택자마다에게!!) 은혜(=하난, 긍휼히 여김/임마누엘 JC의 구원/목양->몸의 지체됨 완성/평강)를 베푸사 복(=바라크베라카!!..참된 복은 TUQ자신!, 하나되신 JC임재의 모든 풍성부요충만영광누림+수고에 합당한 열매맺음!!)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파님]을 우리에게 비추사(=오르, JC빼어닮음 + JC말씀 공급 통로, 증인, 반사경됨!!)(셀라)

*2.주의 도(=데레크...의로움/참됨..모든 진실함과 의로움)를 땅 위에, 주의 구원(=예슈아...선하심-인자하심-진실하심 누림 회복)[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된 우리를 주 뜻대로 보내어,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쓰심 통해]모든 나라에게 [선포하고]알리소서[=야다]

*3.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야다..찬송하다, 고백하다]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야다..찬송하다, 고백하다] 하소서

*4.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샤마흐] 노래할지니[=라난]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미쇼르, 올곧음/정직-공정/공평] 심판하시며[=샤파트, 재판/판결/판단하다-다스리다]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나하..치리하다=이끌다/인도하다/안내하다] (셀라)

*5.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6.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나탄, (선선히-즐거이) 내어주다 :: 땅의 참된 회복!!)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7.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야레=참되게 알고 합당하게 사랑하며 섬김...야다+아가페+바라크..베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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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e gracious to us and bless us, And cause His face to shine upon us-- Selah.

That Your way may be known on the earth, Your salvation among all nations.

Let the peoples praise You, O God; Let all the peoples praise You.

Let the nations be glad and sing for joy; For You will judge the peoples with uprightness And guide the nations on the earth. Selah.

Let the peoples praise You, O God; Let all the peoples praise You.

The earth has yielded its produce; God, our God, blesses us.

God blesses us, That all the ends of the earth may fear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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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tions Exhorted to Praise God.

To the Chief Musician; on stringed instruments. A Psalm. A Song.67 

1 God be gracious and kind-hearted to us and bless us, And make His face shine [with favor] on us— Selah.

2 That Your way may be known on earth, Your salvation and deliverance among all nations.

3 Let the [a]peoples praise You, O God; Let all the peoples praise You.

4 Let the nations be glad and sing for joy, For You will judge the people fairly And guide the nations on earth. Selah.

5 Let the peoples praise You, O God; Let all the peoples praise You.

6 The earth has yielded its harvest [as evidence of His approval]; God, our God, blesses us.

7 God blesses us, And all the ends of the earth shall fear Him [with awe-inspired reverence and submissive wonder].

=====시67편======

이 시편은 교회와 관련되어 있으며 공중(公衆)을 위해 계획된 것이다. 이 시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 교회의 번영을 위한 기도(1).

2. 이방인들이 개종해 교회로 오도록 하려는 기도(2-5).

3. 하나님께서 이것을 행하시게 되는 그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때에 대한 전망(6-7).

이처럼 시편 저자는 예언의 영에게 이끌리어 그리스도 교회의 영광스러운 상태를 예고하고 있는데, 그 속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한무리로 연합될 것이다. 따라서 이 시편을 노래하는 가운데 이 복된 사업의 시작을 우리의 기쁨과 찬송의 주제로 삼아야 하며, 그 완성은 우리의 기도와 소망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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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장래를 노래한 시(시 67:1-7)

이 시편은 그 내용으로 보아 시편 저자의 감정이 매우 따뜻하고 생기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헌신의 영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예언하는 예언의 영을 받게끔 되었다.

Ⅰ. 그는 교회의 번영과 형통함을 위한 기도로써 시작하고 있는데, 교회의 번영을 필경 함께 누릴 것이요, 그 속에서 스스로를 행복하게 여길 것이다(1절). 

우리 구주는 우리에게 “우리 아버지”라고 말할 것을 가르치시는 가운데, 우리가 다른 사람과 함께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함을 시사하셨다. 

마찬가지로 시편 저자는 여기에서, “하나님은 나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라고 기도하지 않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라고 기도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모든 성도들을 위해 간구해야 하며, 그들과 함께 우리의 분깃을 차지하는 것을 원하고 기뻐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1. 우리의 모든 행복은 하나님의 긍휼에서 오며, 그 속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할 첫 번째 말은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우리는 죄인이로소이다. 우리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눅 18:13), 우리 비참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비참함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소서” 하는 것이다.

2.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에 의해 전달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사실 안에서 확실케 된다. 즉, 하나님은 죄사함 받은 우리에게 그의 복된 약속에 대한 권한을 주시며,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선을 우리에게 부여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한 말씀을 하신 것은 사실상 그가 우리를 위해 유익하게 행하신 것과 같다.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복을 주소서” 하는 것은 포괄적인 기도다. 이처럼 뛰어난 말씀이 때로 경솔하고 부주의하게, 그리고 농담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딱한 일이다.

3. 그것은 하나님의 얼굴빛 안에서 완성된다. 

“하나님이여, 주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소서.” 즉, “하나님이여, 주의 은혜로써 우리에게 은총을 받을 권한을 주시고, 그 다음 우리에게 은총에 대한 표적을 주소서”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에게 비취게 하는 이외에, 또 하나님으로 우리를 사랑하게 하고 그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로 알게 하는 이외에는 다른 무엇이 필요치 않다. “우리와 함께 비추소서”(난외에는 이렇게 풀이되어 있다). 곧, “주의 얼굴빛이 우리로 우리의 전력을 다하게 하시고, 그 노력이 성공으로 끝나게 하소서.” 우리가 믿음으로써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다면 우리는 그의 얼굴이 우리와 함께 빛나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Ⅱ. 그는 이러한 기도에서 이방인들의 개종을 위한 기도로 옮겨가고 있다(2절). “주의 도를 땅 위에서 알리소서.” 즉, “주여,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온 인류를 긍휼히 여기사, 주의 도를 땅에 알게 하실 것을 기도합니다”이다. 

우리도 기도할 때 이처럼 공적 정신을 가진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소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은총을 나눠 가진다 해서 결코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과 축복과 은총을 덜 갖게 되지는 않는다. 또는 이 말을 이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 유대인을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주의 도가 땅 위에 알려지게 하소서. 우리에게 주의 은총의 표적을 특별히 내려주심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고 말하면서 와서 우리와 연합하게 하소서”(슥 8:23).

1. 이방인들의 개종을 지적하는 이 대목은 이렇게 볼 수 있다.

(1) 기도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구약시대 성도들의 열망을 말해 주고 있다. 

그들은 교회의 특권 독점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그 담을 헐고 그 유익을 개방하는 이외에는 그 어느 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 시대의 유대인들의 마음이 그들 열조들의 마음과 얼마나 다른가를 보라. 

옛 시대의 참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사이에 알려질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사이비 유대인들은 이방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분히 여겼다. 기독교의 그 어느 것도 이(이방인에 대한 선교)처럼 그들을 격분시켰던 것은 없을 정도였다.

(2) 여기에서 그가 기도하고 있는 것처럼 되리라는 예언으로 간주될 수 있다. 많은 성경의 예언과 약속들은 기도 속에 싸여 있어, 교회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행되는 것처럼 확실함을 시사하고 있다.

2. 여기에는 이방인들에 관련된 것 세 가지가 기도되고 있다.

(1) 거룩한 계시가 그들 가운데 보내어질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2절). 그가 유대 민족에게만이 아니라 땅 위에, 심지어 모든 열방에게까지 알려지기를 원하는 그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의 도, 곧 의무의 규정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로 하여금 선이 무엇이며,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를 알게 하소서. 우리 민족이 그처럼 찬미하고 모든 이웃 민족들이 부러워하는 그 의로운 규례와 법도를 그들이 송축하고 영화롭게 하도록 하소서”(신 4:8).

② 그의 구원하는 건강, 곧 그의 구원이다. 전자의 것은 그의 율법 속에 싸여 있으나, 이것은 복음 속에 싸여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도를 알리실 때 우리가 그 길로 행한다면, 그는 우리에게 그의 구원을 보이실 것이다(50:23). 

하나님의 도의 기쁨과 그의 구원의 위로를 경험적으로 안 자들은 그것들이 다른 사람에게, 심지어 만방에 알려지기를 원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다.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 안에서 행할 의무가 있고, 모두에게 그의 구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속에는 만민을 위한 것이 충분히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자와 후자의 것이 모두에게 알려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2) 거룩한 예배가 거룩한 계시를 용납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곳에서 이루어지리라는 것과 같이, 그것이 그들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3절).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그들로 찬송할 일들을 찾게 하시고 찬송할 마음을 갖게 하소서. 몇몇 사람들뿐만 아니라 온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능력이 있는 모든 민족으로, 모든 민족 중에서 주를 찬송케 하소서.

이는 시편 저자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았던 것으로서, 다시 반복되어 있다(5절).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스스로 기뻐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도 그를 찬송하게 되기를, 하나님이 그것으로 영화롭게 되고 그들이 그 혜택을 얻게 되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① 그것은 복음이 그들에게 전해진 다음, 길고 어두운 밤이 지난 후 동이 터올 때 하나님을 찬송할 충분한 이유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다. “해가 떠올랐다”(행 8:8).

② 그들이 개종해 교회로 올 수 있게 되고, 또 그들이 이제껏 섬겼던 벙어리와 쓰레기 신들이 아니라, 살아 계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다(단 5:4). 그때에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완악한 생각은 조용해질 것이며, 그들은 복음의 거울 속에서 그가 사랑 그 자체이시고, 찬미의 합당한 대상임을 알게 될 것이다.

③ 그들이 경건한 모임에 연합되어 한덩어리로서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되고, 한 마음 한 입이 되어 모두 함께 그를 찬송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다. 이처럼 신앙의 얼굴은 하나님께서 공개적으로 인정받고 경건한 예배의식이 종교적 모임으로 합당하게 거행될 때 땅 위에 나타난다.

(3)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고, 이방인들은 기꺼이 복종하기를 기도하고 있다(4절). “열방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라.” 거룩한 기쁨, 하나님과 그의 이름에 대한 기쁨은 감사 찬송의 핵심이다.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할 수 있도록 “열방을 기쁘게 하소서.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는” 자들은 “범사에 감사할 것이다.” 

시편 저자가 열방에게서 바라고 있는 기쁨은 거룩한 기쁨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기뻐하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신 것”을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개종하지 않은 자들은 이를 분노의 주제로 삼는다(계 11:17-18). 그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것을 기뻐하게 하라.

① “나라가 여호와의 것이라”는 사실(22:28). 그는 절대적 주권자로서 땅 위에 있는 열방들을 다스리실 것이다. 비록 그들이 그를 알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그의 섭리의 왕국에 의해, 그는 자기 뜻대로 나라의 제반사를 지배하실 것이다. 그리고 합당한 때에 그는 자기 복음을 가르치심으로써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을 것이며(마 28:19), 마귀의 왕국이 망했을 때 그들 가운데 자기의 은혜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그는 그의 권능의 날을 위해 그들을 백성으로 준비하실 것이고, 심지어 “이 세상 나라들은 여호와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

② “각 사람의 판단이 여호와에게서 나온다”는 사실. 즉, “그들로 하여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판단하신다는 것을, 주께서 판단의 의로운 법칙이 될 율법과 복음을 주실 것이며, 사람의 자손들 위에 그 법칙대로 오류 없는 형을 언도하시고 거기에서 어떤 예외도 없으리라는 것을 기뻐하게 하소서”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판단해서는 안 되며, 우리를 판단하시는 자는 주이시고, 그의 판단은 진실에 의한 것임을 기뻐하자.

Ⅲ. 그는 하나님께 이를 행하실 때, 곧 열방이 개종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때는,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기쁜 전망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1. 하늘 아래 세상은 그들에게 미소할 것이며, 그들은 그 열매를 얻을 것이다(6절). “그때에 땅이 그 소산물을 내리로다.” 열방들이 “어두움 속에” 있었을 때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늘에서 비를 내리며 결실기를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행 14:17). 그러나 그들이 개종했을 때, 땅이 하나님을 위해 자기 소산을 내었다. 그때에 음식과 음료는 “주 우리 하나님께 소제와 전제”가 되었다(욜 2:14). 그리고 그때 땅은 소기의 선한 목적을 풍성히 이루었다. 그때 땅은 이전보다 더 많은 소산을 내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소산에 대한 언약의 자격을 획득해 성별케 된 사용권을 얻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복음의 성공은 때로 외적인 긍휼을 동반한다. 의로움은 민족을 빛나게 한다(사 4:2, 62:9 참조).

2. 윗세상도 그들에게 미소할 것이고, 그들은 그로부터 훨씬 더 좋은 은택을 얻는다.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6절). 그리고 다시(7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고 했다. 다음을 명심하자.

(1) 이 세상에는 훌륭한 근거에서 하나님을 자기들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2)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관계와, 그들이 그에게서 얻고 있는 이권을 자랑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그것이 당당하게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라고 했다.

(3) 은혜로 인해 하나님을 자기들의 하나님이라 부르는 자들은 겸손한 확신을 갖고, 그로부터 복을 기대할 수 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면, 그는 우리에게 특별한 축복들로 복 주실 것이다.

(4) 언약 속에 있는 우리의 것으로서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에게 모든 의식주를 윤택하게 하고, 그것이 참된 즐거움이 되게 한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그것으로써 우리에게 축복하실 때, 참된 긍휼로써 땅의 소산을 얻는다. 

3. 이리하여 온 세상이 그들처럼 행하게 될 것이다.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즉, “경외감으로써 그에게 경배를 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사하시는 축복은, 우리에게 그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를 두려워해 그에 대한 높은 생각을 품고 그를 불쾌하게 해드리는 것을 두려워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복음은 전파되기 시작할 때부터 점점 영역을 차지할 것이며, 마침내 땅 끝까지 이를 것이다. 떡 속에 숨겨져 있는 누룩은 저절로 퍼져 마침내 그 전체가 누룩이 될 것이다. 교회로 들어오는 자들은 자기들이 받은 많은 축복들을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동참케 하기 위해서 받은 것임을 시인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축복을 받은 자들과 우리의 분깃을 함께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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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시67편

==67:1...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 본절은 다음 절과 함께 복을 간구하는 기원문의 형태이다. 시인은 하나님이 만복의 근원이 되심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는 축복의 근거요, 그 백성들에게 과분하기까지 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인생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즐거음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VanGemeren). 

한편, '긍휼히 여기사'(* , 예하네누)는 '하난'(* )의 미완료 시제로서 앞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기원의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하난'은 원래 '구부리다', '아랫 사람에게 호의로 몸을 굽히다'는 뜻으로서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어야겠다고 진심으로 느끼는 반응을 나타낸다(Edwin Yamauchi). 이처럼 인간들은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영적,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그 얼굴빛으로 우리에게 비치사 - '그 얼굴빛'(* , 파나이우)은 문자적으로 '그분의 얼굴'이다. 그런데 '얼굴'(* ,파님)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 적용될 때는 하나님의 임재를 뜻한다(창 4:16;27:7). 그리고 얼굴이 빛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쁨과 즐거움의 표현이며 상대방에 대한 호의의 표현이자(잠 16:15 참조, Anderson) 관계 회복의 표현이기도 하다(Eichrodt). 따라서 본 문구는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하사 은택을 베풀어 주시기를 함께 바라는 기도이다.

==67:2...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본절의 내용은, 1절과 갈은 기도가 응답될 때에 성취될 수 있다. 즉, 제사장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출 19:6)이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 아래 있을 때에, 이방인들도 그들을 통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주의 도를 땅위에...알리소서 - 이것은 억지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간구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에 충만하고 넘침으로써, 그 결과 그 은혜가 이방인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를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하나님의 축복이 이스라엘에 충만하게 됨으로써 이를 목도한 이방 민족들마저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주권을 인정함과 아울러 동일한 구원의 축복에 동참하기를 갈망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민족적 이기심이나 배타주의적 편견으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가 온 세계에 편만하게 되기를 바라는 탁월한 신앙적 통찰을 보여준다(VanGemerern). 

한편, '주의 도'(* ,데레크)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다루시는 방식, 보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호의 넘치는 섭리(Alexander)혹은 권능이나 통치(Anderson)를 뜻한다.

==67:3...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하나님이여 - 이 표현은 위급한 상황에서 구출받기 원할 때, 혹은 간절한 소원을 아뢸때 사용된다(51:1;60:1). 그런 점에서 본 시편 기자는 이방인들의 구원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하겠다(VanGemeren).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 이방 민족들도 이스라엘과 동일하게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되면 동일한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될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는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구원받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특히 저자는 거의 동일한 문구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이방인 구원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67:4...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셀라)

앞절에 이어 여기서도 이방인 구원에 대한 비전이 소개된다. 여호와의 왕권을 주제로 삼은 시편들(93-99편 등)에서는 의와 평강과 즐거움으로 특징지워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우주적인 통치가 노래되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는 궁극적으로 이방 민족들을 배제하지 않으며 그들 또한 하나님의 계시와 뜻을 받아들일 것을 요청한다. 물론 이러한 비전은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비로소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을 통해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임하셨고 예수는 하나님의 길과 뜻이 무엇인지를 세계 만방에 밝혀 드러내셨던 것이다(행 4:12;롬 9:5).

==67:5...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3절과 동일하다. 이러한 반복은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저자의 기도가 지극히 간절함을 보여준다. 또한, 3절과 본절을 예언으로 볼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예언 성취의 확실성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67:6...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땅이 그 소산(所産)을 내었도다 - 과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해주사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셨다는 의미로서, 모든 것이 주로 말미암았다는 고백과 일맥 상통한다. 특히 이는 씨를 뿌림으로써 얻은 결과였으며 지극히 풍성한 축복이었다. 또한 이것은, 앞으로 더욱 큰 축복이 있을 것을 보여주는 표징이다. 

그러면 여기서 본 시편 저자가 바라보고 있는 축복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방인들 까지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연적인 큰 소산을 얻게 되는 것이다. 믈론 이방인들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간 때에도 일반 은총 가운데 있었다. 그들도 자연의 혜택을 받아 결실을 얻었다(행 14:17). 

그러나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경우 그분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있게되며 만물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올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욜 2:14). 

우리 하나님이...복을 주시리로다 - 전반절이 과거 사실에 대한 언급이 라고 하면, 후반절인 본문은 장래에 베푸어 주실 축복에 대한 기대라 할 수 있다. 7절 상반절에서도 반복되는 본문 내용은 시인의 강한 확신을 저변에 깔고 있다. 시인이 이러한 고백을 담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에 대한 굳은 믿음 때문이었다(Kinder). 물론 여기서도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부여되는 배타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는 결코보고 있지 않다.

==67:7...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방인들이 깨닫고 신앙을 갖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신 통치에 기쁨으로 복종하는 것을 가리킨다(Calvin). 여기서 '땅의 모든 끝'은 2절의 '만방'과 동의어로 사용되었으며(2:8;22:27, 28;렘 16:19), 또한 '경외하리로다'는 2절의 '알리소서'와 동일한 의미를 전달한다(VanGe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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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민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열국에게도  높임을 받기를 기원하는 '감사와 경배의 시'이다. 

이 시편의 저자와 작시 연대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나 추수 감사의 노래로 혹은 7일간의 장막절을 지킬 때 사용되었다는견해가 있다.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는 1절 내용으로 볼 때, 이 시가 이미 받은 축복에 대해 감사하는 감사의 노래, 더구나 추수 감사의 노래라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장막절의 경우 과거의 축복과 은혜를 돌아볼  뿐만  아니라 장래의 축복을 기원하는 측면도 내포한다는 점을 유의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본시에서 추수의 축복에 대해 강조점을 두지 않은 것은, 아마 풍요제에  들떠  있었던 가나안 족속의 전래 풍습에 대한 역반응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연의 조화나 그 산물보다는 이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성품에 강조점을 두어 왔던 것이다. 예컨대, 수확의 만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과정에서도 그 수확물  자체보다는  구속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에   치중하였다(신26:1-11).

  아울러 본시는 이스라엘의 중보적 위치와 역할로 인해 하나님의 축복이 온 땅에  확산될 것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예언시'로 평가되기도 한다. 즉, 본 시편은 신약  시댕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이방인들에 대한 복음 전파(행 1:8)와 그들의 복음 수납(행 10:34, 35)을 예언적으로 보여주는 시(詩)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구속의 계획과 섭리에 따라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 들일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성숙시키셨고, 그 같은 때(갈 4:4)가 되면 이방인에게 본격적으로 복음이  전파되게끔  만반의준비를 하셨던 것이다. 

아무튼 본시편의 저자는 복음 확장에 대한 열정적 소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열정적 소원은, 그 자신이 구원의 감격을 소유했었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관련하여 성령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본시는 구성상 4절을 축으로 하여 대칭을 이루고 있다. 즉 1, 2절과 6, 7절은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는 기도이며, 3절과 5절은 이방 민족들이 구원 반열에  편입되기를기도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4절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염두에 두고서 본문에 나타나 있는 세 가지 주제를 하나씩 고찰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시인은 이 시의 서두(序頭)와 말미(末尾)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고 잇다(1, 2, 6, 7절). 이 서두 부분은 하나님의 호의(好意) 곧 넓은  의미에서의  은혜와 축복을 포괄적으로 간구하는 내용인가 하면, 말미 부분은 '땅의 소산' 곧  구체적이고현실적인 축복을 간구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간구 형식은 모든  가시적이고    현실적인 축복들도 궁극적으로는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자애로우신 관심과  배려가  전제될 때 비로소 주어진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시사한다.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서두와 말미 부분에서 공히 이방 만민들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2, 7절).

 2절의 '만방'은 7절의 '땅의 모든 끝'과 동의어적 표현으로 사용되어  하나님  나라의 우주적 확장을 강조한다. 비록 본문에는 메시야에 관한 직접적 언급은 없지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존전(尊前)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복락을 누리는 메시야  시대를 대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사 축복하신 것도 궁극적으로는 세계 만방에 그 복음이 증거되어 그들도 또한 동일한  은택을 누리게 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로부터는 , 유대인과 이방인의 역할이 뒤바뀌어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섭리를  깨달아 회개한 이방인들로 주로 채워져 갔던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받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동일한 희락과 만족을 충만하게 누리게 되었다(마 6:25-34). 그리고 이제는 역(逆)으로 이방인 성도들이 불신 상태에 빠져 있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수를 메시야로 믿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될 그날에는 메시야 왕국의 목표가 달성 되어질 것이다.

  둘째로, 시인은 하나님의 통치가 세계 만방에 편만(遍滿)해지기를 염원하고  있다(4절).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왕권(Kingship)에로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관적이며 우주적인 통치의 특성을 '공평'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는  메시야  왕국이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충만하다는 사실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하겠다(롬 14:17).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멀리 떨어져 방관만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주  만물과 민족과 개인의 역사에 일일히 그리고 철저히 개입하사 당신의 공의와 사랑을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먼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말씀을  계시하셨고(롬3:2;9:4,5) 당신의 최종적인 계시로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의 혈통을 통해 이  땅에 보내 주셨다(행 4:12;9:2;롬 9:5). 또한 세계 만민들은 하나님을 우주 만물과 모든선한 것들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신령한 구원의 섭리와 방도(方途)를 먼저  이스라엘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이 세계 만방으로 전파되어감에  따라 이방인들도 아들을 통해 아버지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뜻이다.

  셋째로, 시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계 만장에 편만하게 되기를 거듭  소망한다(3, 5절). 

이는 앞에서 상고한 내용과도 일맥 상통하며, 사실상 시인의 주관심사요 본 시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겠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선민 의식에 너무  편향된 나머지 이방 민족들에게 철저한 배타주의 태도를 드러내기 일쑤였다.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신 목적이 그들로 하여금 제사장 나라로 삼기  위함이었음에도  불구하고(출19:6),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심원한 뜻을 좀처럼 헤아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본 시편 기자의 영적인 무게와 그 통찰력의 깊이는 실로 놀랄만 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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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1870, 데레크) 길, 도로, 여행, 태도, 방식 [[주의 도]]

데레크(명남)는 다라크(&r'D; , 1869)에서 유래했으며, '길 way, 도로 road, 여행 journey, 태도 manner, 습관 habit, 인생행로, 행위, 일, 일의 방식'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700회 나온다.

(a)  동사 다라크(&r'D; , 1869: 밟다, 걷다)와 관계되어 있는 데레크는 처음으로 계속적 걸어다님에 의하여 닦인 길을 언급한다. 

창 3:24은 "생명나무의 길"을 언급하는데, 인간의 타락 후 그 길은 차단되었다. 

하갈은 천사가 자신을 만났을 때 술로 가는 길에 있었다(창 16:7). 이것은 또한 "술로 가는 도중에"로 번역되어 질 수 있다(참조: 창 38:21, 출 4:24). 

가끔 데레크(der다)는 트랜스 요르단(Trans-jordan)의 남북으로 뻗은 왕의 대로(데레크 함멜레크)처럼 주요 대로를 언급한다(민 20:17, 민 21:22). 후에 비와 마리스(Via Maris)로 알려진 '해변 길'(사 9:1)은 가사로부터 다메섹까지 뻗쳐 있었다. 출 13:17은 애굽으로부터 블레셋을 경유하는 해안 길을 언급한다.

(b)  데레크는 "여행"을 의미하며, 주로 수일 동안의 여행을 언급한다. 

요셉은 그의 아버지의 애굽 여행을 위하여 여행에 필요한 물자를 준비하였으며(창 45:23), 기브온 족속들은 완전히 "여행이 심히 길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여호수아를 속였다(수 9:13). 

엘리야는 그들의 바알신이 "길을 행하는" 중에 있을 것이라고 시사함으로써 바알의 선지자들을 조롱했다(왕상 18:27). 

창 24:21에서 아브라함의 종은 메소포타미아에까지 자신의 여행(혹은 임무)을 성공적으로 하게 해주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c)  데레크는 은유적 용법으로 가끔 사람의 활동과 행위를 묘사한다. 

사람은 의인의 길 혹은 악인의 길을 따른다(시 1:6). 의인의 길은 "여호와의 길"과 밀접하게 관계된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여호와의 도를 지키라"고 명령하게 되는데(창 18:19, 잠 22:6), 이것은 하나님 율법의 규례와 계명에서 발견된다(왕상 2:3). 하나님의 도는 인간의 도보다 훨씬 더 높으며 사악한 자들은 자신들의 범죄의 길을 버리도록 촉구받고 있다(사 55:7-9).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길(행위)이 패괴하였기" 때문에 홍수를 내리셨으며(창 6:12), 심지어 율법을 주신 후에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들의 길이 형통치 못하리라는(신 28:29) 것을 확인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곧 바로 여호와의 도를 이탈하였다(신 9:16). 분열 왕국 시대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일관성 있게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으며, 하나님을 무시하였다(왕상 16:26). 그들은 옳다고 여기는 길을 택하였으나 그러나 결국은 그 길은 죽음으로 인도하였다(잠 14:12).

(d)  잠 30:19에서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행위)는 공중을 나르는 독수리, 반석 위를 기어다니는 뱀, 그리고 바다의 배의 기이한 움직임들에 비교된다: "곧 공중에 날아 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e)  데레크는 '태도 manner' 혹은 '습관 custom'을 의미한다. 

롯의 딸들은 자신들의 아버지와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돔성이 멸망한 후 결혼의 정상적 '관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창 19:31). 창세기에서 라헬은 여인의 습관(경수)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가 나타났을 때 일어설 수 없다고 스스로 변명하였다(창 31:35).

(f)  욥기에서 2회, 잠언에서 1회, 데레크는 창조의 문맥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언급한다.

욥 40:19에서 거대한 하마는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으로 불리운다. 잠 8:22에서 동일한 관용구(레쉬트데레크)는 또한 하나님의 창조물 중 으뜸인 것으로 의인화된 지혜를 언급한다. 

욥 26:14에서 창조와 역사에서 하나님의 권능의 증거는 '그의 행사의 술 장식'(NASB) 혹은 '하나님 역사의 외적 술 장식'으로 불리운다(NIV).

(g)  '도'(ways)는 렘 3:13과 잠 31:3에서 성격적 편애에 대한 희귀한 의미를 지닌다. 

(h)  도로 road와 '지배' 간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으나 이 단어는 고든(Gordon)에 의해 인용된 '행진하다'라는 의미로 드러나는 것 같다(UT id.). '밟다 tread'의 개념은 권세로 억누르다 혹은 도로나 길을 밟다로 확대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지배, 능력, 힘, 권세'라는 번역에 의하여 명료하게 되는 구약성경의 성구들이 있다. 포프(Pope)는 욥 17:9과 욥 26:14에서 두 경우를 발견하였다("욥" AB, in loc). 다후드(Dahood)는 시편과 그 외의 많은 성구에서 그러한 의미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Bib 38:306-20). 그가 자신의 '시편' AB에서 제시하는 성구는 다음과 같다, 시 1:1, 시 1:6, 시 67:2, 시 77:13, 시 90:16, 시 101:2, 시 102:23, 시 119:37, 시 138:5, 시 146:9. 이들 중 어떤 성구들은 설득력이 있으나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다. 그 의미는 HCHL에서 허용되며 의심할 여지 없이 몇몇 구약성경 문맥에서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참조: Wolf;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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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고지선, 완전한 아가페사랑의 3가지 측면===

@@은혜(십자가로 이루신  구속/회복의 사랑, 곧 은총)를 통하여 주님과 화목함(하나됨..하나님의 소유된 영광의 반사, 영광 공급의 통로 삼으심)의 문을 여시고 하나님자신의 모든 것을 (믿음을 통해) 누리도록 하심으로 평강안으로 이끄심.....

@@긍휼을 통하여 체휼하시는 사랑(환난과 고난, 역경 중, 특히 죄인괴수의 자각가운데 전적으로 무력한 피조물로서 주의 도움없이 살 수 없음 호소할 때, 불쌍히 여겨 친히 아파하며 동감/동정/공감하사 동행/인도하며 일으켜 세우심으로 은총 누림안에 머물도록 하심)으로 평강안으로 이끄심.....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은 자비mercy와 긍휼compassion로 나타남]자비는 십자가대속사건으로 꽃을 피우고 주님말씀 믿고 영접함 통해 자기를 열어드린 이마다 새로운 창조안의 자녀로 삼으심의 은혜를 베푸심!!....은혜를 온전히 이루는 사랑은 하나님의 체휼하시는=오래참으시며 용서하시고 도와 일으키시는 사랑, 인자/긍휼임) 

@@평강(임마누엘하나님이 반석-방패-산성/요새-목자 되심 믿고 붙듦으로 인해 조성된 생명의 번성번영창대케 됨, 그것을 통해 생육-번성-충만-정복/다스림의 근원이신 주님 발견하고 그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여 동행하며, 주뜻 안에 하나되어 살아감)....이 평강으로 인해 참된 형통, 곧 하나님의 지고지선의 진복의 실제의 어떠함이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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