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4.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행9.사울의 회심_치유._복음증거.베드로(룻다애니아의중풍치유_욥바도르가의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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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9장


@@@ 입성하시던 바, 예루살렘 바라보시며 통곡하며 우셨던 분 

--->이제, 부활 승천하사 보좌에 앉으셨고, 동시에 아직도 일하며 행하고 계시는 분...

.....부활의 날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사 부활생명의 성령을 [끊임없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근원으로서 각자의 영생의 생명샘을 (당신의 숨을 내쉼으로써] 친히 분배 내재케 하여주사 영접케 하셨고(람바노)

.....더 나아가 위로부터 아래로 아버지의 뜻(이 땅의 하나님의 영원히 거하실 처소 = 그리스도의 재생산, 그분의 몸인 교회, 그 확장-증대-온전/완전한 건축, 그 경륜의 갈망) 이룸 위해 친히 살아내며 증거케 하시는 성령으로 부어지심

.....오직 사랑과 기쁨의 아들 됨의 자각...(보혈로 씻긴 눈과 귀, 마음으로) 일심/일편단심으로 앙망함 안에서 동행함[말씀-찬양-기도로 하나...항기쉬기범감...그분의 믿음-소망-사랑으로]


@@@거듭난 제자들마다 TUQ과 하나 만드신 분, 곧 아버지 안으로 들어가 하나됨의 길과 문이 되어주신 분이 또한 보내시는 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에 합당한 삶, 곧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살며 전파하는 증인된 날마다 새로운 삶[JC의 영이신 생명의 성령 영접(=람바노)-내주하심 +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께 붙잡힘(카타람바노)/사로잡힘/적셔짐-점유됨-충만/넘침-전적인(존재의 생명과 본성) 변화 = 나는 죽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심] = 하늘 왕국에 속한 자의 삶으로 빛-소금-영원한 참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친밀히 알고 사랑하며 섬겨 누리며, 맡기신 사명 곧 복음을 전파 공급하여 구원받기로 예정된 영혼마다 주께 돌이키고, 그분께 합당하도록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써, 이 땅끝까지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시러 오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함 = Devine Destiny-Original Design@@@


[((람바노-텔레이오오 = 즉 푯대를 향하여 부단히 전진하는 , 매일 매순간 그리스도를 사는 삶, 카타람바노-디오코))....빌3: 7-16....*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람바노...취하다, 받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텔레이오오..완수-완성-성취-완결하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카탈람바노 :: 카타(아래로, -에 대해, -에따라 = 지향 그대로) + 람바노]  된 그것을 잡으려고[=카탈람바노...나사그(따라잡아-도달하여-미치다)+라카드(포획하다-붙잡다)] 달려가노라[=디오코(라다프::  뒤쫓다-추구하다-박해/핍박하다-상호 하나 되다)]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성령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람바노-ἔλαβον>했기에 누리는 축복!

[요20:19-23...*19.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마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눅9:48...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 [마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데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는 시작된다

.......영접하다의 헬라어는 <람바노ἔλαβον>....온 마음을 다해서 취하다 받아들이다의 의미.... 받아 들이고 꼭 붙잡다의 뜻.

......입술로만의 영접이 아닌 온 마음과 뜻을 다해서 받아 들이는 인격적인 영접을 의미....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 그 가치를 알기에 그 손을 놓지 않는 것

.......<람바노ἔλαβον>는 받아 들일 때 그 진정한 가치를 이미 알고 있는 것....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을 믿는 것....절대자를 주변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중심에 두는 것... <람바노ἔλαβον>는 <내>힘으로 살 수 없는 것을 깊이 깨달을 때에라야 전적으로 가능......자신의 깊은 모습을 보면서 가장 처절한 좌절 인생의 모든 것이<내>힘으로 안되는 것을 깊이 깨달으면서 마음을 열게 될 것....성령께서 그 마음에 빛을 비춰 주실 것..... 마음에 따뜻함과 확신, 진정한 안정감과 평강을 느끼게 될 것.... <내>가 아닌 <내>게 손을 내미시는 절대자를 깊이 만나기 때문.....

.........<람바노ἔλαβον>로 그리스도와 하나로서 접붙임 받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자는 입술의 고백부터 달라지기 시작할 것.... 절대자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 끊이지 않고 삶의 중심에 구주와 하나님, 주님-주인-남편-머리로 모시려고 할 것

....... 이 모든 것이 성령 하나님의 은혜, 이러한 영혼은 마음이 열려 있을 것, <나>보다 주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살펴 보려고 할 것, 이것이 진정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는 참살이 삶임을 깨닫고 감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시게 할 것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에페르코마이-ἐπέρχομαι>...

[행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눅17:20-21...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임하다를 뜻하는 헬라어는 <에페르코마이ἐπέρχομαι>..... 위에 앞에의 뜻을 지닌 <에피 ἐπί> +  갑자기 덮다 덮치다의 뜻을 가진 <에르코마이 ἔρχομαι>가 합쳐진 단어.... 갑자기 순식간에, 부지불식간에 눈깜짝할 사이에 임하는/급습하여/부어져 덮어 휩쓸어버림으로써 전혀 새로운 상황으로 변화시켜버리는 것....그러므로 모름지기 겸손해야 할지니,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기 때문이요 큰 소리를 치며 자신 할 수 있는 인생은 없기때문이라... 바람같이 지나가는 인생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모습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바람처럼 벌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임하시는 <에페르코마이ἐπέρχομαι>는 모든 상황과 환경을 새롭게 만드시며....심령의 변화를 일으키시며....사람을 변화시키시며.....새롭게 된 영혼들, 하나님의 자녀 됨의 엑수시아, 곧 권위-권세-자격-명분으로 인침 받고 하나님의 말씀-성령-보혈 적용을 따라 그리스도를 살아내며 살아낸 그리스도를 성령이 말하게 하심따라 (어쩔 수 없이!!) 말하는자, 복음전파자로서 분연히 일어나게 하사 권능(=뒤나미스 = 살아낸 복음을 전파하여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냄, 곧 살아계신 그리스도, 그분의 성육신-고난-죽으심-장사지냄-부활 승천-참 회개를 통해 구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이마다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 주심과 그것이 가능케 되도록 성령을 선물로 부어주고 계심)으로 복음전파를 친히 이루고 계신다...... 그 때와 시간은 하나님만이 아시는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니, 부어주시는 바 하나님의 영으로 그냥 순식간에 덮어 버리시는 것을 뜻한다..

........보라, 승천하시기전에 주께서 말씀하심따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면서 참된 사명자요 소명자의 기름부으심, 곧  권능을 받음((람바노)) 위해  전혀 기도에 힘썼던 사도들을 떠 올려보라.

.......((모세가 시내산 정상에서 주님 부르심따라 올라갔을 그 때, 금식하는 40일간 주님은 그분의 영광으로 적셔버리셨으며, 그에게 친히 그분의 거처하실 바 성막 양식을 계시해주셨었다...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눈 앞에 그려보도록 하라..이 열심과 집중을 오늘 누구에게 주시려 하심인가!!)). 

.......그리고 오늘, 그분의 증인으로서!! 오직 날마다 새로이 위로부터 부어주실[=이는 곧 JC와 하나인 JC의 전사로서, JC자신으로 옷입고 마땅한 이미 이긴 JC의 영적 전쟁 수행을 위함이라]....영광 받으신 그리스도, 내 구주 하나님의 영광이신 분, 성령 하나님의 임하심과 그 임재 충만을 깊이 사모할지니.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명샘 JC으로 살기에...날마다 더 새로운 오순절에로(예루살렘-유대-사마리아-땅끝까지 JC 복음 살며 증거함) + 더 새로운 회심에로, 확대-열려짐(형제자매간에, 부부간에 부모자식간에 참된 회복) -- 이로써 참 초막절 재림주JC 맞이하기까지!!


■모략<חצע-에차> ! 하나님의 전략에 대해서...

[사46:9-10...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모략을 히브리어로 <חצע-에차>.... 히브리어 <חצע-에차>는 모략 방책 꾀 계락 조언상담 계획 등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영어로는 counsel로 번역되고 있다.

...... 때때로 <חצע-에차>는 하나님의 계획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하나님의 <모략>에는 하나님의 완전하고 치밀한 계획이 담겨 있다..... 주님의 모략은 한치 오차도 없는 하나님의 완전무구한 완벽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거듭난 참 믿는이마다에게는, 그가 주님의 지혜를 구할 때마다!! 그 구하는대로 주시는바 하나님의 지혜가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 모략 <חצע-에차>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혼들에게 영감으로 부어 주고 계신다.. 곧 하나님의 지혜가 구체적인 방법과 단계별 전략으로 전환되는 것이 <חצע-에차>이다 

.......지혜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서도 <חצע-에차>를 가지고 일하고 계심을 볼 수 있는데, 그분의 모략 계획을 가지고 그분의 시간에 역사하시는 섭리로 나타나기에, 그 모략의 깊이는 사람은 감히 알 수 없다.... 너무 깊고 오묘하기에…많은 선지자들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그 모략과 계획에 대해서 수 없는 질문을 했으나 사람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게 된다.....그분은 모든 역사와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에 무한하신 전능하나님의 섭리를 사람이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다만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약속하신 것을 믿는 것이 인생이 해야 할 본분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경배와 경외의 대상이시며 찬양과 믿음의 근원이시니....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할 뿐이요, 유한자인 사람이란 감히 하나님 앞에 따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기억하자. 

......, 비록 지금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분명히 일하고 계시며 지금도 인도하고 계시는바,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혼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이끌고 계심이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음을 깨닫고 찬양하게 되리라..


■<다바크דבק <결코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그 손

**다바르(하마님 말씀, 하나님, 말씀)-->다바크(붙듬, 붙좇음..하나됨)--미드바르(안생광야 = 말씀으로 걷기)---드비르(데베르 =주님 계신 거처, 성소)--도베르(목장)**

.......히브리어 <다바크-דבק<는 “연합”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달라 붙어서 결코 뗄 수 없는 관계” “쫓아가다” “따르다” "추적하여 바싹붙어 하나되다"의 의미 = 거하다(헬>메노).. 하나님의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를 의미하며, 그 약속이 결코 깨어 질 수 없는 그런 하나됨의 관계....하나님과 <나>의 관계… 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 안에서 연합한 관계. 하나님께서 꼭 붙드셔서 결코 놓지 않는 그러한 관계가 <다바크>입니다. 서로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친밀함을 의미....“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사람의 손은 하나님을 놓을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붙잡으신 그 손을 결코 놓지 않으시다....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그리스도께 달라붙어 (그분의 운행-움직임-일하심-행하심과 하나 됨의 평생 목표를, already-but not yet 계속 추구+유지함으로써) 떨어지지 않는 자===

신명기 4장 4절은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고 말한다. 

신명기 4장 4절의 배경은 민수기 25장 1절에서 18절까지이다. 

민수기 33장에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라암셋에서부터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마지막 진을 쳤던 모압 평지까지 42개의 진을 친 지명이 나온다. 

민수기 22장 1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또 길을 떠나 모압 평지에 진을 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더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한 후 광야 생활을 포함하여 40년 동안의 출애굽 여정의 마지막인 모압 평지에 도착하여 진을 쳤다.

 민수기 33장 49절은 「요단 강 가 모압 평지의 진영이 벧여시못에서부터 아벨싯딤에 이르렀더라」고 말한다. 

민수기 33장 49절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벧여시못에서부터 아벨싯딤에 이르기 까지 진을 쳤다. 그들이 진을 친 지역 안에 여리고 바로 맞은편 지명이 싯딤이다(민22:1). 

이 싯딤은 모세의 후계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의 정탐꾼을 여리고에 보내어 기생 라합의 도움으로 살아 돌아온 후(수2:1),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삼일 동안 유숙한 후(수3:1-2),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곳이다. 

민수기 25장은 바로 이 싯딤에서 이스라엘이 음행과 우상숭배에 빠져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고(민25:1), 그들의 신 바알브올을 숭배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백성의 수령들을 목매달아 죽이고(민25:4), 염병을 보내 이만 사천 명이 죽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1세대가 실패로 대부분이 죽고, 이제 다음 세대가 좋은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려고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에 1세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연로한 아버지가 자녀에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해서 들려주듯, 신명기 시작 부분에서 출애굽으로부터 그 때까지의 여정을 회고한다. 

신명기 4장 4절은 민수기 25장의 바알브올 사건으로 많은 그들의 선조들이 죽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라고 말한다. ....여기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에서 【붙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붙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 [ ק ב ד (다베크)]는 동사 [ ק ב ד (다바크)]의 형용사로서 붙은, 달라 붙은, 붙드는, 닿은, 친밀한, 밀착하는, 매달리는, 집착하는, 가까이 붙어서 좇는, 지키는, 부종하는, 결합하는, 연합하는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신명기 4장 4절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순종하지 않고 음행과 우상숭배로 인하여 죽음을 당한 1세대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말고, 음행과 우상숭배로부터 돌이켜, 신중의 신이신 유일한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말라는 경고를 한 것이다.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는))이라고 말할 때 여기에는 선택의 문제가 함축되어 있다. 

여호와께 붙어 있느냐 아니면 여호와를 저버리고 떠나느냐의 문제이다. 선택이 운명을 좌우한다. 여호와를 붙들면 살고, 여호와를 떠나면 죽음이다.

룻기는 선택으로 운명이 갈린 두 여인이 나온다. 두 여인은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의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이다. 그들은 모압 여인들이었다. 모압은 롯이 근친상간을 통하여 낳은 후손의 나라였다(창19:30-38). 그들 조상의 근친상간뿐 아니라 그들이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잘못 대우(민22장-24장)했기 때문에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는 것이 영원히 허락되지 않은 백성의 나라였다(신23:3-4). 유다 베들레헴 출신이었던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이 죽자, 나오미 자신은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나섰고, 두 며느리에게는 그들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강권하면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새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축원했다. 오르바는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입맞추고 떠나갔으나, 룻은 나오미를 【붙좇았다】. 그러자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다(룻1:15-19).

룻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인 나오미를 선택했을 뿐 아니라, 그를 【붙좇았다】. 그 선택으로 인하여 여호와로부터 영원한 저주를 받은 모압 여인 룻은 유다 지파의 보아스를 남편으로 얻었고,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았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어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다.

룻이 나오미를 【붙좇았다】고 할 때 【붙좇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 ק ב ד (다바크)] 로서 붙좇다, 쫓아가다, 따라가다, 바싹 따르다, 촉급히 따르다, 추격하다, 속하다, 붙들다, 붙다, 달라붙다, 단단히 붙다, 밀착하다, 친근히 하다, 매달리다, 의지하다, 집착하다, 합하다, 결합하다, 연합하다, 혼인하다, 지키다, 부종(附從)하다, 가까이에 붙어서 좇다, 매이어 복종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룻기는 족보의 기록으로 끝난다. 이것은 룻의 탁월한 선택과 하나님의 선민을 【붙좇은】 결과 여호와의 영원한 저주를 받은 모압 족속의 가난한 과부였던 룻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예언적 계시로서 족보의 기록으로 끝나는 것이다. 탁월한 선택과 하나님의 선민을 【붙좇은】 결과 그의 운명이 바뀐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서도 탁월한 선택과 【붙좇음】의 추구로 신약 성경 27권 중 절반의 기자(記者)로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롬1:1, 빌1:1)로 부름 받은 사도 바울이다. 바울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것으로 생각하여)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서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였다(빌3:5-6).

빌립보서 3장 7절부터 9절까지에서 바울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간증한다. 

이것은 그가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길리기아 다소 출생(행22:3_)으로서 로마 시민권을 가졌고(행22:5, 6, 7, 9), 가말리엘 문하생(행22:3)으로서 최고의 학문을 익혔고,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 당시 공용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로도 장비된 최고의 사람이었지만, 그는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는 목표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선택홤으로써, 이 전에 그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겼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고(빌3:10-11), 그는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고 생각하거나,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조금도 자만하지 않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 곧 오직 그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앞만 보고 【달렸다】(빌3:12-14).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의하여 붙잡힌 바 된(빌3:12) 그것을 붙잡으려고(빌3:13), 달리고(빌3:12) 달렸다(빌3:14).

빌립보서 3장 12절과 13절에서 【잡으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2638 καταλαμβανω(카탈람바노)는 잡다, 붙잡다, 체포하다, 얻다, 얻다, 획득하다, 빼앗다, 소유하다, 취하다, 가지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빌립보서 3장 12절과 14절에서 【달렸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διωκω (디오코)] 좇다, 좇아가다, 따르다, 뒤따르다, 추구하다, 추격하다(pursue), 박해하다(persecute), 핍박하다, 구박하다, 갈망하다, 힘쓰다 / 빌3:12 추구하다, 빌3:14 좇아가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주 예수님은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1-5).

요한복음 15장 2절과 4절 중에, 개역개정, 개역한글, 공동번역, 표준새번역에서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또는 【거하다】 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동일한 단어로서 μενω(메노)라는 단어인데, 거하다(abide), 머물다(stay), 남아있다, 잔존하다(remain), 계속하다, 붙다, 붙어 있다, 견디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위 몇 구절들에서 【붙다】라는 단어들의 공통점은 일시적이고 느슨하고 적당하게 붙잡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이고 필사적으로, 상대방이 싫어해도 상대방을 박해하고 핍박하는 정도까지 집착하여, 바짝 붙어서 쫓아가 굳게 붙들고 놓아주지 않고 절대로 떨어지거나 분리되지 않고, 달라붙어 하나가 될 때까지 연합하는 것이다. 

문득 「붙잡고 놓지 않으리. 예수! 예수! 예수! 예수! 나는 그를 붙잡았네. 다시는 놓지 않으리!」라는 어느 찬송 가사가 생각이 났다. 

그렇다! 만주의 주(계17:14), 만왕의 왕(계17:14, 19:16), 생명의 주(골3:4), 영광의 소망(골1:27)이시며, 신랑이신 주님을 향해, 아가서에서 솔로몬으로 예표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연인으로서 달려가고, 추구하고, 붙잡고, 놓지 않고, 떨어지지 않고, 하나로 연합될 때까지 붙어 떨어지지 않을 때 운명이 바뀔 것이다.


===사울이 회개하다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사울이 다메섹에서 전도하다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sufficient==>always refreshing/renewing, energetic-vibrant, springing-overflowing, exuberant joy!!

......[눅4:18.19...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사61장..*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5.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8.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9.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시리라]

.......[사11;1-5...*1.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사울이 피신하다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그의 제자들"이란 표현!?, 거듭난 사울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그리스도!!!, 바로 부활하신 그 안에서 친히 역사하고 계심 인식한, 그래서 배우고 영향받고 함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까지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 같이하는 동지들을  제자로 표현하고 있을뿐이다, .그대는 누구의?! 제자인가!??..진정한 의미에서  본다면  "거듭난" "믿는" 이,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하는 자라야 참으로 그리스도의(예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되며, (내주하는 부활생명의 성령) 그 영- 그 진리께서 자유케 하시는 바 그로 인해 그리스도를 살아낼 수 있는 법이다(요8:31, 32)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다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베드로가 중풍병자를 고치다

.....룻다(32절) :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40km

32.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베드로가 도르가를 살리다..

....욥바 :::오늘날 텔아비브 인근, 고대로부터 지중해에서 이스라엘 자역 접근 입구에 해당하는 주요 항구..예루살렘기준 서북방 65km ..룻다 북방 16km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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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9 Amplified Bible

===The Conversion of Saul

1 Now [a]Saul, still breathing threats and murder against the disciples of the Lord [and relentless in his search for believers], went to the [b]high priest, 

2 and he asked for letters [of authority] from him to the synagogues at Damascus, so that if he found any men or women there belonging to [c]the Way [believers, followers of Jesus the Messiah], men and women alike, he could arrest them and bring them bound [with chains] to Jerusalem. 

3 As he traveled he approached Damascus, and suddenly a light from heaven flashed around him [displaying the glory and majesty of Christ]; 

4 and he fell to the ground and heard a voice [from heaven] saying to him, “Saul, Saul, why are you persecuting and oppressing Me?” 

5 And Saul said, “Who are You, Lord?” And He answered, “I am Jesus whom you are persecuting, 

6 now get up and go into the city, and you will be told what you must do.” 

7 The men who were traveling with him [were terrified and] stood speechless, hearing the voice but seeing no one. 

8 Saul got up from the ground, but though his eyes were open, he could see nothing; so they led him by the hand and brought him into Damascus. 9 

And he was unable to see for three days, and he neither ate nor drank.

10 Now in Damascus there was a disciple named Ananias; and the Lord said to him in a vision, “Ananias.” And he answered, “Here I am, Lord.” 

11 And the Lord said to him, “Get up and go to the street called [d]Straight, and ask at the house of Judas for a man from Tarsus named Saul; for he is praying [there], 

12 and in a vision he has seen a man named Ananias come in and place his hands on him, so that he may regain his sight.” 

13 But Ananias answered, “Lord, I have heard from many people about this man, especially how much suffering and evil he has brought on Your saints (God’s people) at Jerusalem; 

14 and here [in Damascus] he has authority from the high priests to put in chains all who call on Your name [confessing You as Savior].” 

15 But the Lord said to him, “Go, for this man is a [deliberately] chosen instrument of Mine, to bear My name before the Gentiles and kings and the sons of Israel; 

16 for I will make clear to him how much he must suffer and endure for My name’s sake.” 

17 So Ananias left and entered the house, and he laid his hands on Saul and said, “Brother Saul, the Lord Jesus, who appeared to you on the road as you came [to Damascus], has sent me so that you may regain your sight and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in order to proclaim Christ to both Jews and Gentiles].” 

18 Immediately something like scales fell from Saul’s eyes, and he regained his sight. Then he got up and was baptized; 

19 and he took some food and was strengthened.

===Saul Begins to Preach Christ

For several days [afterward] Saul remained with the disciples who were at Damascus. 

20 And immediately he began proclaiming Jesus in the synagogues, saying, “This Man is the Son of God [the promised Messiah]!” 

21 All those who heard him continued to be amazed and said, “Is this not the man who in Jerusalem attacked those who called on this name [of Jesus], and had come here [to Damascus] for the express purpose of bringing them bound [with chains] before the chief priests?” 

22 But Saul increased in strength more and more, and continued to perplex the Jews who lived in Damascus by examining [theological evidence] and proving [with Scripture] that this Jesus is the Christ (the Messiah, the Anointed).

23 After considerable time had passed [about three years or so], the Jews plotted together to kill him, 

24 but their plot became known to Saul. They were also watching the city’s gates day and night so they could kill him; 

25 but his disciples took him at night and let him down through an opening in the wall, lowering him in a large basket.

26 When he arrived in Jerusalem, he tried to join the disciples; but they were all afraid of him, not believing that he really was a disciple. 

27 However, [e]Barnabas took him and brought him to the apostles, and described to them how Saul had seen the Lord on the road [to Damascus], and how He had spoken to him, and how at Damascus Saul had preached openly and spoken confidently in the name of Jesus. 

28 So he was with them, moving around freely [as one among them] in Jerusalem, speaking out boldly in the name of the Lord. 

29 He was talking and arguing with the [f]Hellenists (Greek-speaking Jews); but they were attempting to kill him. 

30 When the brothers found out [about the plot], they brought him down to [g]Caesarea [Maritima] and sent him off to Tarsus [his home town].

31 So the church throughout Judea and Galilee and Samaria enjoyed peace [without persecution], being built up [in wisdom, virtue, and faith]; and walking in the fear of the Lord and in the comfort and encouragement of the Holy Spirit, it continued to grow [in numbers].

===Peter’s Ministry

32 Now as Peter was traveling throughout the land, he went down to [visit] the [h]saints (God’s people) who lived at Lydda. 

33 There he found a man named Aeneas, who had been bedridden for eight years and was paralyzed. 

34 Peter said to him, “Aeneas, Jesus Christ heals you. Get up and make your bed.” Immediately Aeneas got up. 

35 Then all who lived at Lydda and the plain of Sharon saw [what had happened to] him, and they turned to the Lord.

36 Now in [i]Joppa there was a disciple named Tabitha, (which translated into Greek means Dorcas). She was rich in acts of kindness and charity which she continually did. 

37 During that time it happened that she became sick and died; and when they had washed her body, they laid it in an upstairs room. 

38 Since Lydda was near Joppa, the disciples, hearing that Peter was there, sent two men to him, urging him, “Come to us without delay.” 

39 So Peter got up [at once] and went with them. When he arrived, they brought him into the upstairs room; and all the widows stood beside him, weeping and showing [him] all the [j]tunics and robes that Dorcas used to make while she was with them. 

40 But Peter sent them all out [of the room] and knelt down and prayed; then turning to the body he said, “Tabitha, arise!” And she opened her eyes, and when she saw Peter, she sat up. 

41 And he gave her his hand and helped her up; and then he called in the [k]saints (God’s people) and the widows, and he presented her [to them] alive. 

42 This became known all over Joppa, and many came to believe in the Lord [that is, to adhere to and trust in and rely on Jesus as Christ and Savior]. 

43 And so it was that Peter stayed in Joppa for many days with Simon, [l]a tanner.

===Footnotes

Acts 9:1 Later known as Paul the Apostle.

Acts 9:1 Probably Caiaphas, the son-in-law of Annas. See note 4:6.

Acts 9:2 This term for Christianity may have originated from Jesus’ own words, “I am the Way...,” John 14:6.

Acts 9:11 Latin Via Recta, a long, straight street built by the Romans that ran through the city from east to west.

Acts 9:27 This name means Son of Encouragement.

Acts 9:29 See note 6:1.

Acts 9:30 See note 8:40.

Acts 9:32 I.e. believers. All Christians are saints, set apart for God’s purpose.

Acts 9:36 A coastal suburb of Tel Aviv, known today as Jaffa.

Acts 9:39 Or inner garments.

Acts 9:41 Or holy ones.

 

Acts 9:43 The Jews considered this occupation “uncl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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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개요)

본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Ⅰ.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복음에 대한 무서운 박해자에서 뛰어난 복음의 고백자요 전도자로 회심하는 유명한 내용이 수록되고 있다.

1. 그가 다메섹으로 박해의 소임을 맡고 갈 때 그리스도께서 직접 그에게 나타나심으로 그가 어떻게 깨우침을 받아 변화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잠시 어떤 조건 아래서 이 확신과 두려움의 능력 아래 사로잡혀 있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1-9).

2. 그가 하늘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아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음에 대하여(10-19).

3. 그가 즉시 어떻게 복음의 사자가 되어 그리스도 신앙을 전하였고 그가 전한 것을 어떻게 입증하였는가에 대하여(20-22).

4. 그가 박해를 받고 겨우 도망친 사건에 대하여(23-25).

5. 그가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에게 어떻게 인정을 받고 복음을 전하였으며 거기서도 박해를 받았는가에 대하여(26-30).

6. 이후 얼마 동안 교회에 찾아온 평온함(31).

Ⅱ. 베드로가 중풍병으로 오래 누워있던 애니아를 고침(32-35).

Ⅲ. 다비다가 베드로의 기도를 받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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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회개하다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사울의 회심(행 9:1-9)

우리는 스데반에 대한 기사 가운데서 두 세 번 사울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는 성서 기자가 사울에 대하여 빨리 논하고자하는 열망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는 사울에 대하여 논하게 되는데 그는 베드로 대신 활약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그대로 유대인의 사도로 활약하듯이 바울은 주로 이방인의 사도로 택함을 받는다. 

히브리어로 그의 이름은 사울 즉 "묻다, 구하다"는 뜻이었다. 

그와 이름이 같은 사울 왕이 키가 크고 당당한 데 비해 그는 체구가 두드러지게 작았다. 

어떤 고대인은 그를 불러 키가  4.5 피트(137.2센티미터)에 불과한 자라 하였다. 

그러나 로마 시민으로서의 그의 이름은, 바울 즉 "작다"는 뜻이었다. 

그는 로마의 자유시인 길리기아 지방의 도시 다소에서 출생하였고 그 자신은 로마시민, 자유민이었으며 그의 부모는 모두 토박이 유대인들이었기에 자기를 가리켜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다소에 있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또 아덴에서 잠깐 교육을 받았는데, 거기서 그는 희랍의 철학과 시를 숙달하게 되었으며, 그후  예루살렘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저명한 바리새인 가말리엘 수하에서 신학과 유대 율법을 연구하였다. 

그는 비범한 재질이 있었고 배움에 깊이 몰두하였다. 그는 또한 수공업을 배웠는데)천막 제조업 기술을 습득함) 이것은 유대인들 가운데 학자로 육성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흔히 있는 일이었다[라이트푸트 박사(Dr. Lightfoot)도 이같이 말한다]. 그리고 직업을 갖는 것은 생계 유지를 위하고 게으르지 않으려는 뜻에서였다.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 본문에 기록된 대로 놀라운 변화를 일으켜 놓은 젊은이이다. 때는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후 1년 또는 그보다 약간 경과하였을 시기였다. 본문을 통하여 다음 같은 내용을 고찰해 볼 수 있다.

Ⅰ. 그가 회심하기 전에 매우 사악하였으며 얼마 전까지 그는 기독교에 대한 철저한 원수였고 이 신앙을 품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박해함으로써 최선을 다하여 기독교를 근절시키려 하였다. 

다른 점에 있어서 그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 즉 [613가지 율법의 규례를 힘써 행하며]겉보기에 도덕적 결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해와 착각, 편견으로인해 영적 맹인상태로서]그리스도를 비난하는 사람이요, 기독교인들의 박해자로서 각각 많은 피해를 끼쳤다(딤전 1:13). **흔한 기독교인들이 받는 오해란.. 백성들의 마음을 분산-분열-자중지란을 야기시켜서 다른나라의 침략에 무방비상태로 만들어서 외부침략에 아무런 힘도 못쓰고 그냥 나라를 송두리째 넘겨 멸망에 이르게 하려 하는 무리[매국노, 난동자]라는 등등.. 이와 같이 잘못된 선입견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적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였기에(26:9).  이렇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욥기 16장 2절에 예언된 바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 여겼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고 있다.

1. 기독교 신앙에 대한 그의 일반적인 적개심과 분노(1절). ..[먼저 영적인 눈, 곧 마음의 눈이 열려져 주님을 알아보는 영적 개안의 회심과 회개가 있은 후에 세례를 받고 있음을 보라!]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박해받은 사람들은 주님의 제자들이었다.  바로 사울이 미워하는 인물 밑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들을 미워하고 박해하였다. 박해하는 일은 위협하고 또 죽이는 것을 말한다. 

위협하는 박해가 있다(4:17, 21). 그들은 영혼을 공포에 떨게 하고 무찌르려고 한다. 사람들은 협박을 당하고도 오래 산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사울이 그들을 위협하여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게 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설득되지 않았다면 그는 자기가 위협한 자들을 살해하고 죽을 때까지 박해하였을 것이다(22:4). 

그가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다는 말은 박해하는 것이 그에게는 당연지사요 계속 해야 할 일로 여겨졌다는 말이다. 그는 이 일이 자기에게 필연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열렬히 원한에 가득 차서 날뛰었다. 

그의 숨결은 독을 지닌 동물들이 독을 뿜어내는 것처럼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는 그가 가는 곳마다 기독교인들에게 죽음을 뿜어댔고 교만에 가득 차 그들을 비웃고(시 12:4, 5) 노하여 그들에게 독을 뱉았다. 사울이 아직도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다는 말은 다음과 같은 뜻을 의미한다.

(1) 그가 아직도 박해하려는 마음 가운데 살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는 그가 살해한 자들의 피에 만족하지 않고 아직도 "내게 피를! 내게 피를 달라"고 부르짖는다.

(2) 그가 곧 다른 마음이 될 것을 뜻한다. 

아직 그가 위협과 살기를 숨쉬며 살고 있지만 그가 이러한 생활을 오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호흡은 곧 끊기어지는 것이므로 살기를 호흡하던 것도 멈춰지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2.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사울이 특별한 계획을 함. 

거기에도 스데반의 죽음으로 시작된 박해를 피하려 도망간 자들에 의해 최근에 전하여진 복음이 있었으며,  이들은 거기는 안전하고 조용하리라 생각하였다.  거기서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과의 사이에 묵계가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사울은 기독교인이 한 명이라도 편히 있음을 알고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따라서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편케 지낸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을 방해할 결심을 한다. 

이 일을 수행하려고 그는 대제사장에게 다메섹에 가는 것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한다(1, 2절). 대제사장에게 기독교인 박해를 허용해 달라고 떼를 쓰지 않아도 실상 대제사장이 앞장 서서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젊은 사울이 나이 많은 대제사장 보다 박해하는 일에 더욱 열성적이었다. 

죄를 짓게 하는 자들이 가장 사악한 죄인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교화된 사람들은 서기관 바리새인들보다 칠 배나 더한 지옥의 자녀 노릇하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사울은(22:5) 그가 임명받은 것이 장로회의에서 인준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 광분하는 고집쟁이에게 있어서 대산헤드린이 인준하고 직접 그에게 지시한 임명장은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이 임명장으로 말미암아 그에게는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이 회당과 모임에서 그들 가운데 이 새로운 이단인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있는지 여부를 심문할 수 있는 권력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을 발견하면 남녀 무론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교도소로 끌어다가 거기 대회의에 의해 결정된 율법을 따라 고소할 수 있다.

다음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1) 본문에 기독교인을 가리켜 "이 도를 좇는 사람들"이라고 기록되고 있다. 

"이 도를 좇는 사람들"이란 이들이 철저한 신앙인들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리스도가 길이시므로 때로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을 이렇게 불렀던 것 같다. 또는 이들이 자기들의 고향에 아직 당도하지 못하고 길에서 있을 뿐이란 뜻에서 불리워졌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기독교의 박해자들이 이 길이란 말을 빗대어 곁길, 파벌, 당파로 간주하는 뜻에서 사용한 것도 같다.

(2) 대제사장과 산헤드린은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회당이 유대 국가라는 행정적인 통치 기구에 속하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모든 회당들을 통하여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다른 의무금을 지불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주권 행사에 대하여 로마 총독들은 이 사실을 강력히 입증하지는 못하였지만 이를 유대총독의 행위라고 주장한다.

(3) 이 위임을 통하여 유대교 지도자들이 이단이라고 부르는 그들 이외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은 실상 이들이야말로 본래의 유대교 정통이었지만 남녀무론하고 기소받게 되었다. 

이러한 경우에 사면을 받거나 적어도 동정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는 예외가 되지 못하였다. 

이같이 천주교에 속한 박해자들도 약한 여성에게 잔인하여던 것이다.

(4) 그는 기독교인들을 가장 중대한 범죄인들처럼 예루살렘에 묶어 압송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들은 중죄인으로 취급함으로 기독교인들에게 공포감을 주려고 하였고 따라서 이 권한을 쥔 사울을 더욱 위엄있게 하게 되었다. 

그는 그들을 압송하기 위하여 군대의 지휘권을 가졌으며 마음대로 위협하고 죽을 수 있는 기회도 허용되었다.

이와 같이 사울이 박해에 착수하려 할 때 하나님의 은총이 그를 완전히 변화시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무리 흉악한 죄인들도 회개시키시어 다시 새롭게 하시는 은총에 대하여 낙심치 말자. 

또한 아무리 큰 죄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의심치 말자. 왜냐하면 바울 자신도 은총을 입어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딤전 1:13).

Ⅱ. 그에게 이 변화가 주어진 것은 갑작스럽고도 이상한 일이었다. 

어떤 평범한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 일은 기적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바울의 회심은 교회의 기적 중 하나라 하겠다. 본문에는 다음의 사실이 기록되고 있다.

1. 이 일이 일어난 장소와 시기.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거기서 그는 그리스도를 만났다.

(1) 그는 여행하는 중이었다. 

성전이나 회당 또는 기독교인들의 집회에 참여했던 것도 아니요 노상에 있었다. 

교회가 일반적으로 공적인 치리가 이루어지는 곳이지만 회개의 역사는 교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잠자다가 새로워지기도 한다(욥 33:15-17). 또 어떤 이는 홀로 노상에서 여행하던 중 변화된다.

 사색이라는 것은 어디서나 자유로우므로 침상에서와 마찬가지로 길 위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열어 교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는 있는 법이다. 

거기서도 성령은 역사하신다. 성령의 바람은 뜻하는 대로 불어온다. 어떤 이들은 사울이 야외에서 소리를 들었으므로 그가 이 사건을 조작했다든지 사기하였다는 혐의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2) 그는 다메섹 가까이 당도하여 여행을 끝내고 시리아의 중요 도시로 막 들어가려고 하던 중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가 이방인의 사도로 불리움을 받았으므로 이방인의 나라에서 그리스도 신앙으로 회심하였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다메섹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일로 악명의 높았었다. 그들은 철 탈곡기로 탈곡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다(암 1:3). 그리고 이제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 순간이었다.

(3) 그는 악랄한 방법으로 다메섹의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려는 계획을 추구하였고 또 거기 새로이 탄생한 기독교인들을 멸절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스스로 만족하였다. 

때때로 하나님의 은총은 죄인들이 가장 완악하여졌을 때 또 그들이 치명적인 악한 목적을 열렬히 추구할 때 그들에게 역사하심을 기억하자.

 이러므로 하나님의 긍휼과 그의 능력이 더욱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

(4) 그가 행한 잔인한 포고령이 집행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이 일이 효율적으로 저지되고 있다. 이 문제를 생각하여 보자.

① 이 사건은 다메섹에 있는 불쌍한 성도들에게는 대단히 고마운 일이었다. 

아나니아의 말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이들은 그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13, 14절) 그들이 받을 위험에 대하여도 깨닫고 굶주린 늑대 앞에 어린 양처럼 떨고 있었다. 

사울의 회심은 우선 그들에게 안전을 주었다. 그리스도는 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건지시는 여러 방법을 알고 계신다. 

때로 이 일은 그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이 변화됨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즉 그들의 격노한 심정이 제어되거나(시 76:10) 한동안 가라앉게 된다. 

구약의 사울이 그와 같은 사람으로 그는 한 번 이상 다윗에 대하여 뉘우쳤다(삼상 24:16; 26:21). 또는 본문의 신약의 사울과 같이 박해자들의 영혼이 새롭게 되어 지속적인 효과를 거두는 경우도 있다.

② 사울이 그의 악한 계획을 실현에 옮기지 못한 것은 자신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길로 계속 나아갔다면 그의 불법을 채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만일 하나님께서 내적인 은총으로 임하시든가 외적인 섭리로 임하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앙한 목적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것을 막으신다면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로 알고 귀하게 여겨야 함을 기억하자(삼상 25:32).

2.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그에게 나타나심. 

본문에는 다만 "하늘로써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7절을 보면 주 예수께서 빛 가운데 계시사 길 위에 있는 그에게 나타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바로 의로운 분을 보았다(22:14). 26장 13절을 참조하라. 

그가 스데반처럼 멀리 즉 하늘에 있는 그를 보았는지 더 가까이 공중에 나타나신 것을 보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세상 끝날까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신다는 말씀이 있다고 그 분이 이 같은 특별한 경우에 개인적으로 찾아오시어 잠간 동안이라도 이 세상에 오셨다는 가정과는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3:21). 

사울이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그가 주님을 뵈옵는 일이 필요했고 또한 사실 그는 주님을 뵈었다(고전 9:11; 5:8).

(1) 빛이 "홀연히" 그에게 비추었다. (

이것을 바울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고 사전의 그러한 경고도 없었다. 

가난한 영혼들에게 그리스도가 자신을 나타내실 때는 대개 갑작스럽고 경이로운 때가 많다. 그는 아름다운 축복을 준비하시고 그들을 기다리신다.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제자들에게서 우리는 이 사실을 발견한다. 또는 "나 같은 자라도 아신 바 되었노라"는 말씀과 같다.

(2) 그것은 빛의 근원인 하늘에서 비추인 빛으로 빛의 아버지이신 하늘 아버지로부터 온 빛이었다.

 그것은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었다(26:13). 왜냐하면 그 빛이 대낮에도 보이었고 태양의 절정에 이른 강열한 비추임을 가능하였다(24:23).

(3) 빛이 "저를 둘러 비추었다." 

즉 그의 얼굴뿐 아니라 그의 사방을 두루 비추었다. 만일 그가 주위를 둘러 보았다면 그가 빛에 휩싸인 것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빛이 비추인 것은 그로 하여금 놀라게 하여 주위를 집중케 하려는 뜻이 있었을 뿐 아니라(그가 이렇게 기이한 일을 보게 되었을 때 또한 무언가 들리기를 바라 귀를 기울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지식으로 그의 이해를 밝게 하심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악마는 어둠 속에서 영혼에게 찾아온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빛 가운데 찾아오신다. 그 자신이 세상의 빛으로 스스로 밝고 은혜롭게 빛을 발하시며 빛처럼 우리에게 은혜롭고 유익하게 임하시기 때문이다. 

새로운 창조에서도 제일 처음 있는 것은 세상이 창조될 때 그러하셨던 것처럼 빛이다(고후 4:6). 그러므로 모든 기독교인들은 "빛과 낮의 자녀들이라" 일컬어진다(엡 5:8).

3. 그리스도께서 사울을 사로잡으시고 구별하심. 

"그가 땅에 엎드려졌다"(4절). 어떤 이들은 그가 걷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에 이 빛이 아마 천둥 소리를 수반하고서 비추어 그를 두렵게 하였으므로 그는 더 이상 서 있지 못하고 보통 때는 찬탄의 표시로 고개를 숙이지만 지금은 너무 놀라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마도 그는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갔을 때처럼 말을 탔을 것이며 발람보다 더 당당하게 행하였을 것이다. 

이제 사울이 공적인 지위에 있었고 갈 길이 바빴고 여로가 멀었으므로 그가 도보로 여행하였을 것 같지는 않다. 

갑작스러운 빛이 그가 탄 짐승을 놀라게 하여 사울이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가 떨어져서도 몸에 상처가 없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의 덕택이었다. 

이는 천사들이 그를 특별히 책임지고 있었으므로 뼈 하나 상함이 없이 몸이 보존될 수가 있었다. 26장 14절에 보면 그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이 사울처럼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에게는 섭리가 있었다. 그에게 섭리가 있음은 다음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1)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타나심과 그를 둘러 비춘 빛을 보아 사울에 대한 특별한 섭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영혼들에게 자신을 겸손하게 나타내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그리스도 앞에 있는 자들은 자신을 천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복종한다는 표시로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러므로 욥은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나이다"라고 말하였고 (욥 42:5) 이사야 선지자는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하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이는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를 뵈었음이로다"(사 6:5)(한글 개역과는 다소 틀림 - 역자 주)라고 말하였다.

(2) 그가 무릎을 꿇게 된 것은 더 큰 일을 맡기려는 계획 때문이었다. 

그는 기독교인이 되도록 예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의 종이요 위대한 사도로서 예정되어 있었고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땅에 내침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가장 영예로운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계획하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처음에는 겸비한 자리에 있게 됨을 기억하자. 

지식이나 은총에 있어서 남을 능가하도록 계획된 사람들은 처음에는 일반적으로 그들 자신의 무지와 죄에 대한 인식 때문에 겸손히 처신한다. 

하나님께서 쓰고자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쓰여지기에는 부족함을 깊이 의식할 수 있어야 한다.

4. 사울에 대한 책망. 

그가 땅에 떨어진 것은 구금당한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이렇게 갈 길을 저지당한 채로 그는 한 목소리를 들었다[이 소리는 오직 그만이 분별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으나(7절)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였다(22:9)]. 그 소리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책망이었다.

(1) 사울은 하늘로부터 빛을 보았을 뿐 아니라 하늘로부터 음성도 들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 나타났고 그의 말씀이 하늘로부터 들리어졌다(출 20:18). 이 현상은 모세에게도(민 7:89) 예언자들에게도 있었던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는 결코 모습만 나타내시지는 않는다. 그는 언제나 말씀하시며 나타나시는데 이는 그가 말씀을 자신의 칭호보다 더 귀히 여기시기 때문이요 나타난 바 되어진 것은 언제나 후에 말씀하실 것을 위한 준비로써 계획된 것이었다. 

사울은 음성을 들었다. 믿음은 들음으로 나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것은 듣고 믿음으로 된 것이라고 갈라디아 3장 2절에 기록되었다. 

그가 들은 음성은 그리스도의 음성이었다. 이는 "저의 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행 22:14)하는 말씀과 같다. 

우리가 음성을 들을 때 그것을 그리스도의 음성으로 듣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함을 기억하자(살전 2:13). "그것은 내 사랑하는 자의 음성이라." 

오직 그의 목소리만이 마음을 울릴 수 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은 배우는 두 개의 감각기관이다. 그리스도는 본문에서 이 두 관문을 통하여 사울의 마음에 찾아오셨다.

(2)그가 들은 것은 매우 자극적인 것이었다.

① 그의 이름이 두 번씩이나 연이어 불리워졌다. 

바로 "사울아 사울아"라는 부름이었다. 어떤 이는 그가 이렇게 불리워진 것은 그의 이름과 같은 다윗을 크게 핍박한 자를 암시하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그는 제2의 사울이었다. 앞의 사울이 다윗의 적이 되었던 것같이 뒤의 사울은 다윗의 아들에게 원수가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은 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었다. 이사야 45장 4절에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는 말씀과 같다. 출애굽기 33장 12절을 참조하라. 

그를 이름으로 부른 것은 그의 신념을 다시 할 수 없도록 막으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일반을 향하여 말씀하신 것도 우리가 그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면 우리에게 유익하다. 

또 하나님이 우리 이름을 부르신 것처럼 일반에게 말씀하신 교훈과 약속에도 자신의 이름을 삽입하여 듣는 것이 유익하다. 

그가 "오, 너희 모든 사람들이여"라고 부르실 때 그것은 "사무엘아, 사무엘아" 또는 "사울아, 사울아" 부르신 것처럼 구체적인 부름을 뜻하는 것이다. 

사울의 이름을 두 법이나 부른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첫째, 사울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 

그는 필요하실 때 부르시고 또 부르신다. 예레미야 22장 29절에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라고 부르신 것이 그 한 예이다. 

둘째, 복되신 예수께서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과 그가 새롭기를 바라시는 따뜻한 배려를 가지고 계심을 의미한다. 

그는 진지하게 말씀하신다. 이 부름은 "마르다야, 마르다야"(눅 10:41) 또는 "시몬아, 시몬아"(눅 22:31) 또 "오 예루살렘이여, 예루살렘이여"(마 23:37)라는 부름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사울이 절박한 위기에 직면한 것처럼 부르신다. 그는 사울이 낭떨어지에서 막 떨어지려는 사람을 부르듯 부르신다. 즉 이런 말이다. 

"사울아, 사울아, 너는 지금 네가 어디로 가는지 또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② 사울에 대한 책망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는 책망이었다. 

이 말씀을 생각하여 보자.

첫째, 사울은 성자가 되기 전에 그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큰 죄를 지은 죄인임을 알아야 했다. 이제 그는 전에는 그가 결코 보지 못하였던 자기 속에 있는 악을 보게 되었다. 즉 죄는 살고 그는 죽었던 것이다. 죄에 대한 겸손한 인식은 죄를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는 첫 걸음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둘째, 그가 알아야 할 특별한 한 죄가 있었다. 

이 죄는 가장 가책을 느껴야 할 죄로서 이 죄를 스스로 정당화시켰으므로 다른 모든 죄도 합법화되었다.

셋째, 그가 지운 죄는 그리스도를 그가 박해한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이 충고는 돌과 같은 마음도 녹일 수 있는 열렬한 충고였다.

1. 죄를 지은 사람. 

"네가 박해를 하였다. 너는 무지하고 거칠고 무사려한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었다. 군중들은 그들이 들은 것은 무엇이고 악평을 한다지만 너는 개방적인 학문을 배웠고 훌륭한 임무와 소양을 갖추지 않았는가! 또한 성서에 대한 지식도 있으니 그것을 충분히 연구하면 자신의 어리석음도 깨닫게 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대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악한 것이다."

2. 그가 죄를 저지른 대상. 

"네가 미워한 것이 바로 나였다. 나는 너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고 네게 선을 베풀기 위하여 하늘에서 왔으며 얼마전에는 너를 십자가의 처형도 받았었다. 이만하면 또 무엇이 부족한가? 내가 다시 너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야 할까."

3. 죄의 종류와 계속 죄를 지음에 대하여. 

그의 죄는 박해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는 이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너는 박해를 하였으되 가장 열심히 하였고 또 그 일을 계속하였도다." 

이번에는 그가 아직 아무도 옥에 가두거나 살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에 온 것은 바로 이 사명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 그 일을 계획하고 있었고 그 일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기뻐하였다. 악을 계획하는 사람들도 하나님 편에서는 악을 행한 것으로 간주됨을 기억하자.

4. 그에게 주어진 질문에 대하여.

 "왜 네가 그 일을 행하는가."

(1) 그것은 호소하는 듯한 어조였다. 

"왜 네가 나의 제자들을 이같이 부당하게 다루며 불친절히 대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핍박당하셨을 때도 본문에서 그의 제자들을 핍박하였을 때처럼 그렇게 호소하시지는 않았다. 그는 박해가 사울의 죄였음을 말하신다. 

"어찌하여 네가 자신과 하나님을 향하여 원수맺는 일을 행하는가?" 

죄인들의 죄는 주 예수에게 대단히 근심스러운 짐이 됨을 기억하자. 저는 그들의 완악함을 근심하셨고(막 3:5) 그 죄를 짊어지셨다(암 2:13).

(2) 또 확신어린 어조였다. 

"왜 이렇게 하였는가? 무슨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우리는 자주 우리가 왜 그렇게 행하였는지 이유를 스스로 묻는 것이 유익하다. 그러므로 죄란 것이 얼마나 모순된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죄 중에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죄처럼 모순되고도 그 이유를 댈 수 없는 죄도 없다. 특히 그리스도를 박해난 일이 그대로 들어나면 어찌 변명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백성을 먹으려는 사람들은 무지한 자들이다(시 14:4).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그가 가난하고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 중의 하나를 핍박한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핍박한 사람은 바리새인들에게 눈의 가시오, 모독적인 존재였다. 계속해서 멸시만을 당해왔던 그가 하늘에 계신 분이었다는 것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였다. 

사울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는 확실히 영광의 주님을 박해하지 않았을 것이리라.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곧 그리스도 자신을 핍박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그가 성도들에게 행한 짓은 곧 그리스도에게 행한 잘못이요 따라서 큰 환란의 란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5. 사울의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답변(5절).

(1) "주여 뉘시오니이까?" 라고 그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질문을 한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받고 스스로 죄됨을 알았으므로 그를 향하여 제기된 고소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회피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추궁하시면 우리는 그 천의 하나도 답변하지 못하리라. 특히 박해를 한 죄이랴, 어떻게 답변하겠는가? 죄가 강력한 세력으로 인해 양심에 비추어질 때 죄에 대한 확신이 생겨 모든 변명과 자기 정당화를 침묵케 한다.

 "내가 의롭다 할지라도 내가 변명할 수 없나이다"란 말씀과 같다. 

그러나 사울은 그를 심판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알기를 바란다. 그가 "주여"라고 부른 일은 잘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욕하였던 그가 그리스도를 그의 주님이라고 말한다.

 "주여 뉘시오니이까"라는 질문을 적절한 것이다. 

이 사실은 그가 아직도 그리스도를 몰랐음을 뜻한다. 그는 주님의 양떼들이 주님의 음성을 알 듯 그의 음성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사울은 주님과 사귀기를 원하였다. 

그는 그를 둘러싼 빛을 보고 그에게 말하는 음성이 하늘에서 오는 것임을 확신하였다. 또 그는 하늘로부터 나타난 모든 것을 경외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주여 뉘시오니이까?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라고 묻는다(사 13:17; 창 32:29). 예수 그리스도와 대화가 오갈 때 그 사람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2) 그리스도께서는 즉시 그에게 답변하신다. 

이 답변을 통하여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그리스도께서 사울에게 은혜스럽게 나타나심. 그는 언제나 그와 사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진지한 질문에 답변하고자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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