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4.1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행21.밀레도의작별_고스/로도/바다라_두로(7일체류)_돌레마이(1일체류)_가이사랴(빌립_수일체류, 아가보의 예언)_예루살렘도착[야고보와장로들, 정결례, 성전에서체포됨, 천부장의 구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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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1장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다...다시는 보지 못할 바, 주 앞에서 (원수-->하나된 형제로) 관계 회복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가고 있다...영적 상상력 동원할 필요가 있는 부위!!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아포스파오..강제로 떼어놓다..(언약궤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 향해 가는 어미소가 새끼를 버려두고 울며 떠나는 장면처럼!!] 배를 타고 바로 고스(작은섬, 아스클레피우스 신전 위치, 히포크라테스의 고향, 경치-기후-온천-와인, 의료-의학연구지로 유명..밀레도 남방68km)로 가서 이튿날 로도(큰섬, 휴양지,  예술-수사학-웅변, 재판-법학 연구지로 유명, 고스 남방75km)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도에서 동편으로 85km 떨어진, 밤빌리아에속한 루기아 지방의 항구도시..수륙운송/해상무역 중계항, 애굽-로마간 곡물 운반 선박 계류-휴양지, 바다라에서 두로까지는 640km /대개 5일간 걸렸음)로 (그냥 바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찾아 발견하다]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베니게의 큰 두 도시는 시돈과 두로, 그 중에서]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예루살렘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이 위치한, 베니게-구브로-사마리아에 대한 사도 바울의 회심전의 지난날 우행으로 인해 사화 필요성 느껴 눌림 있던 중(특별한 배려/방문으로) 빚진 마음 갚기 -- 믿는이 사이에 "합당하게 겸손함으로의 지난날의 과오를 솔직담백하게 + 애통함으로써 인정하고 참되게/진정성 가지고 사화함 통한 화목/화평/평안/평강의 하나됨이 그토록 중요했다!! -그때 성령 감동 충만이 바로 그곳을 뒤덮었다@@... [행11:19-21..*19.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행15:1-3.. *1.(1차전도여행후)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제자들을 찾아[=아뉴리스코. :: 일부러 탐문하여 하나하나 다 찾아내다]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두로의]그 제자들이 [상호간에 화해/화목의 서로 하나됨의 교제 중에 충만히 임하신 바]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계속해서 말리며 강권(이는 인간적 감정따름인 것임을 분명히 그의 영으로 분별함으로써!! 주께서 예비하신 그의 길을 과감히 나아간다!!)]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진심에서 우러난 용서 구함의 사과 + 진정한 용서 통한 화목/화평 이룸 있는 바로 거기서!!...여기에 [다음세대를 포함한 온세대 예배의 회복]이 처음 나타나고 있다!!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예배하는 가정 + 다음세대 회복] 돌아가니라 .. [두로에서는]바울의 calling도, 또한 동행 자원자도 없었음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프톨레마이오스=악고]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최초의 이방인 전도자...행8장 기록 이후 30년 지난시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마지막 만남이라 여기고 (스데반의 일에 대해) 진신에서 우러난 용서 구함의 사화-하나됨의 교제 위해]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초기 교회시대 때는-결혼했을지라도, [남편과 각방 쓰기로 약속하고] 주께 정절드리기로 서약한 여인도 처녀로 여겨졌음)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유대땅의 임할 기근 예언했었음]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빌립과 네 딸들+아가보)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파라칼레오 :::그런데, 그 내용은 실상 "주 뜻 =십자가의 길" 거역함을 권함이었다)...주 뜻 이루려 "예루살렘" 동행을 자청하여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함 아니라!!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각오 覺悟(깨달을 각, 깨달을 오) --1.해야 할 일이나 닥쳐올 일에 대하여 단단히 마음을 작정하는 것. "∼를 다지다" 2.도리를 깨쳐 아는 것. = 각오하다/지상명령 삼아 일심으로 경주(명심+감수+작정)하다=헤토이모스에코 = 헤토이모스(기꺼이/이미)+에코(가지다/소유하다/작정하다/보지하다) ...[주가보이신생명의길나주님과함께]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바울은 이미 고린도에서 [기근 닥친 예루살렘교회에 마게도냐교회들의 구제 연보 전달할 겸 선교 보고할 겸 방문예정이었던바] 성령께서 보여 알게 해 주신 감동으로"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로마도 봐야 하리라" 지시 받은바 말하고 있었고, 드로아-앗소 사이를 홀로 도보로 걸으며 주께 여쭈어 확인받은 터였다고 봐야 하리라...**Q 뜻하심에 대해(=코끼리 전체를 파악함), 여기 저기 방문하는곳마다 성령 감동 받은 이들은 ((환난/투옥/매임-형고/태장-처형 당할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주고 있으나(이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함이다), 이미 주로부터 받은바 사명 완수 위해!! (Q의 예비하신 바 경륜 = 지고지선-최상의 뜻 이룸 위해..하늘소망 가지고) 결코 흔들리지 않고 뚜벅뚜벅 걷고 있음을 보라..

......▶ 행19:21-22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에베소에서의 선교 사역을 언급하고 있는 중간 부분에 삽입된 기사로 바울의 앞으로의 선교 계획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바울은 3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 약 3년간 머물면서 궁극적 선교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21절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이 일’이란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던 일을 말합니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자신이 작정한 시간이 다 되었음을 언급하면서, 앞으로의 선교 계획을 말합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고, 그 이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계획을 세웁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는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한 곳으로 마게도냐에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교회가 있고, 아가야에는 ‘고린도, 아덴’교회가 있는 곳입니다. 그 곳에 세워진 교회들을 순회하며 그 곳 성도들을 믿음으로 굳건하게 하는 것이 바울의 3차 선교여행의 목적입니다.

그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서 약 3년의 시간을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며, 특별히 두란노 서원에서 제자들을 따로 세워 2년간 가르치게 됩니다. 그 사이에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들이 나타나 에베소에서 마술하는 사람들이 은 오만에 해당하는 책을 다 태우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고, 그 일로 복음이 더욱 확장 되어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복음을 듣게 되고, 우리가 잘 아는 골로새, 히에라볼리, 라오디게아,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지역에 교회들이 세워지게 됩니다.

이런 일련의 선교 여행 과정을 거쳐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고자 하는데, 1, 2차 선교여행 후에도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선교 보고를 한 것처럼, 3차 선교여행 보고 하려는 의도와 더불어 또 한 가지 예루살렘에 가고자 하는 것은 바울이 3차 선교여행 할 당시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기근이 심하여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교회를 순회하면서 다시 한 번 말씀으로 믿음으로 굳건하게 세울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연보를 모아서 가려는 계획을 가진 것입니다. [로마서15:25-26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그리고 궁극적으로 바울이 가고자 하는 곳이 로마입니다.

●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바울은 왜 로마를 보아야 한다고 했을까요? 로마서 15장을 보면 바울은 로마를 넘어 가고자 하는 곳이 있는데 오늘날 스페인인 ‘서바나’입니다. [로마서15: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로마서15: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바울은 왜 서바나로 가려고 했을까요?

로마는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바울이 선교 여행을 한 곳을 살펴보면 사방팔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드는 항구 도시나 상업적 중심 도시가 대부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가 그랬고, 데살로니가가 그랬고, 고린도가 그랬고, 아덴이 그랬고, 에베소가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중심 도시에만 갔는가? 아닙니다. 이고니온 같은 산악 지대에도 복음을 들고 갔습니다. 그런 바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곳은 당시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였을 겁니다.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면 세계 각국에서 오는 사람들을 통하여 복음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갈 것을 꿈꾸었을 겁니다. 그리고 바울이 마지막까지 가고자 한 곳이 서바나였는데, 서바나는 당시 지리적 세계관으로는 땅 끝입니다.

▶ 15세기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 스페인 동전에 새겨진 글귀가 ‘네 플루스 울트라’, 이 말은 ‘저 너머에는 없다.’라는 뜻으로 대서양 너머에는 땅이 없다는 뜻입니다. 15세기에도 이런 지리적 세계관이었는데, 바울이 살던 1세기 때의 지리적 세계관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당시의 땅 끝은 서바나 곧 스페인이었고, 주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기에 바울은 궁극적으로 로마를 거쳐 서바나로 가려는 선교의 궁극적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자신의 선교 계획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실행의 일부분으로 오늘 본문 22절이 말합니다.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먼저 마게도냐로 보내고, 바울은 에베소에 얼마 동안 더 머물러 있습니다. 그 이유를 고린도전서 16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고전16:8-9)] 에베소에서는 5월에 아데미(Artemis) 대축제와 올림픽과 같은 경기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이 축제로 인해 많은 에베소가 있는 이오니아 지역의 사람들이 에베소로 몰려왔었습니다. 바울은 5월 말까지 에베소에 머물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에베소에서의 선교사역을 마무리 하려던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이후의 데메드리오 사건(행19:23-41)으로 인해 에베소를 떠납니다.

●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주님

우리는 본문에서 바울의 선교 비전을 봅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고 그 후에 로마도 보리라.’ 그러나 우리가 사도행전을 계속 읽어 가다보면 바울이 로마를 향하여 가는 발걸음은 1, 2, 3차 선교여행의 모습처럼 자유로운 신분이 아닌,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으러 가는 죄인의 신분으로 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인 사도행전 28장은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 연금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행28:30-31)] 

분명한 것은 바울은 그러한 모습을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바울의 현실은 로마에서 가택 연금 상태에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그렇게 꿈꾸던 서바나에는 갔을까? 바울은 로마에서 AD 61-63년 1차 투옥과 AD 66-67년 2차 투옥 사이에 서바나를 방문했을 것으로 신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남아 있는 기록들은 없습니다. 바울은 네로 황제 시대에 참수형으로 생애를 마감합니다.

▶ 바울의 선교사역을 보면 모든 것들이 자신이 꿈꾸고 계획하던 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1차 선교여행도 그랬고, 2차 선교여행도 그랬고, 3차 선교여행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로마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바울이 생각하고,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목표하는 선교여행의 방법이 바울이 생각하는 방법이 아닌 주님의 계획하신 방법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보면 떠오르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시편 37:23 ‘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예레미야 10: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 이러한 우리의 인생의 모습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펼쳐 주시는 인생의 모습에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야고보서5:13의 말씀처럼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하며, ‘즐거워하는 자는 찬송’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전도서 7장에서 [‘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3-14)]고 말씀하므로 하나님을 더욱 더 믿음으로 붙들고 살 것을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속의 바울의 모습을 우리에게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펼쳐 주시는 일들에 믿음으로 반응하고, 순종함으로 나아가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일들이 항상 이루어지길 늘 기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나지금은비록 땅을 벗하며 살지라도]

15.  ○(일심으로 주 바라며 예루살렘행에 동행-자원-동반자 나오기를 기대하며 기다려주는바)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헬라파유대인..예루살렘교회 초기에 영접한 제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바울이 야고보를 방문하다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나손의 집 식구+바울이 복음에 호의적인 예루살렘교회 형제들)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무엇보다도 Q이 하신 일(겉보기에는 그 자신에게 순경이든 역경이든간에)  참되게 증거함에 있어서!! 증거하는 이의 [죄/고난 상황에 대한]무용담/자화자찬 늘어놓음 아니라 자기로 깨닫게 하신바 살아계신 Q, 그분의 열심이 친히 행하셨음/행하고 계심 말해야 하기에!!, 그 자신은 십자가로 넘김의 겸손-친절-온유가 중요)

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들은 바울에 대해 그동안 추궁코자 별렀던바일 수도 있고-한편으로는 바울을 보호하려 함이겠으나, 바울로서는 "주 안에서 하나됨 위해" 양보하는 마음으로 순종함!!]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율법의 열심당원들이 예루살렘교회를 주도하고 있다)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바울의 복음 전파 반대하는, [(Q경륜 모르기에!!, 성전제사를 그토록 열심으로 준수해 왔던 조상들이 겪어야 헸던 바벨론유수에 대해 이해/해석/해결 안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방인들에 대한 적대감 충만 + 절대적 율법 조문 준수를 강조함으로써 성전과 율법조문 준수를 자기도 모르게 Q의 복음보다 더 중요시 함으로써 우상시 해 왔던바, 바울이 제시한 복음 전파로 갑자기 이방인에게도 Q 나라에 들어갈 길이 열렸다 함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곁길로 나아간 율법 열심당이 주장하며 씌우고 있는 바 그 거짓 프레임 !!) 

.......**불안감 느끼는 사람은 정보를 더 많이 얻어서 정말 그러한가/어떤 해결책이 있는가 판단하려 하나, **[고정관념과 거짓된 프레임에 호도됨 인해] 분노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럴듯한 가짜/가상뉴스를 그냥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며 이를 검증해 보지도 않고 즉각 다른이들에게 전파함으로써 (충동적/집단적 행동을 하게 함)

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소동을 일으킬지 모르니, 그 예방책으로서]

23.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나실인의 서원..그 기한 끝나면 만기 신고하고 정결례 행하고 머리깎게 하였음]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세상적인 열심당원들의 눈치 보며 "그들 앞에서 ~체 연기하자" 제안하고 있음]

......여기에 드려지는 희생 제물로는, 번제물로 일년 된 수양 하나, 속죄 제물로 일년 된 어린 암양 하나, 화목제로 수양 하나, 그 외에 무교병 과자 등(제3일, 제7일 두번 드리게 함)

......비록 (바울에게 계시해 주신 Q의 경륜으로 볼 때는) 율법의 제의법은 분명히 폐하여진 것이기는 분명하였지만, 아직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는 율법을 따른 제의법 자체가 크게 중시되고 있었던 바!!... 믿음의 분량이 각각 다름으로 인한 것으로 여기며(이 부분에 대한 깨우치심을 주께 맡겨드리고)!! 불필요한 분쟁 발생가능성을 고려해서 (그들과의 하나됨 중시함 나타내려!! 그들을 얻기 위해, 그들의 요구대로) 존중해서 따라 결례를 행하고 있다!! --하나이신 주 앞에서 행하라!! 단, 비본질적인 것이라면!! (유연하게 행동하라) 질서 존중해주라!!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이미 다 아는 사실을!!, 마치 선심 쓴 것처럼!! 육을 따라 생색내고 있다!!-->깨끗케 하시려는 성령의 열심으로 인해 크나큰 대가지불케 됨 명심하라)

26.  [(고정관념 아직 바뀌지 못한 상대방의 입장에서서 숙고함 = 역지사지!!, 그러려면 다소 큰 비용이 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 없이 모교회 장로들의 요청을 그대로 순순이 따라 행하고 있는바]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이 결례를 행한 것은 과연 옳은 선택이었나?(행21:17~26)

1. 다메섹 체험 이후 바울의 생애 가운데 최대의 흠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은 무엇인가?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 전파에 힘쓰게 된다. 그런데 그의 생애에 흠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두 번은 흠이 보인다. 첫 번째는 2차 전도여행을 출발하기 직전 마가 요한을 동행자로 데려가는 문제로 바나바와 피차 싸웠다는 것이다(행15:39). 양보해 줄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끝내 바나바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혈기 분노의 영이 아직도 남아 있었던 것이다. 둘째는 3차 전도여행 후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유대인들 앞에서 결례를 행했다는 것이다(행21:26). 이것은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바울이 다시 정결법을 지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 바울은 왜 결례(정결예식)를 행한 것인가?

  바울은 왜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예루살렘교회의 수장이요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고보를 만나 선교 보고를 한 후에 왜 결례를 행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야고보의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행21:23~24). 왜냐하면 바울에 대해서 유대인들에게는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울이 이방 지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첫째, 모세의 율법을 반대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둘째, 그들의 자식들에게 할례를 받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셋째, 유대인의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행21:21).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는 약간 다르다. 첫째, 바울은 율법을 배반(배교, 변절)하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바울은 율법의 한계를 지적했고 율법의 기능을 지적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율법이 가리키고 있는 그리스도께로 모두 나오라고 한 것이다. 둘째, 디아스포라 헬라파 유대인들의 자식에게 할례를 받지 말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알려진 기록에 의하면,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편지만 남겼을 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편지를 남긴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과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지침을 내렸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유대인의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했는지도 사실 정확히 알 수 없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고보는 들은 소문을 가지고 바울을 우려하여 바울로 하여금 율법 폐기론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달라고 한 것이다. 

3. 바울이 결례를 행한 것은 그동안 바울이 전했던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베드로가 할례자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것처럼,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 그런데 그렇게 복음을 전할 때에도 먼저는 디아스포라(흩어진)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먼저 전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가 오셨고 그분이 예수님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율법을 더 이상 지키지 말라고 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가 이방인들에게는 율법 가운데 도덕법은 폐기되지 않았어도 의식법들(할례법, 안식일법, 절기법, 제사법, 음식법, 정결법)은 폐기된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은 더 이상 의식법들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는 야고보의 말을 듣고 정결법을 시행한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그가 전해 온 것과는 다른 방향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다시 의식법을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4. 바울이 정결례를 행한 것은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그렇다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야고보의 제안을 따라 정결례를 행하고 그것도 다른 네 명의 사람들 정결례 비용도 대주면서 정결의식을 행한 것은 과연 옳은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는가? 얼핏 보기에는 율법과 복음의 경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미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복음 안으로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정결례를 행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정결례를 행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왜 정결예식을 행한 그 이유를 다 들여다볼 수는 없겠지만 그의 복음 전파 원칙에 따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3가지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는 교회의 권위를 존중하기 위해 정결예식을 행한 것이다. 

사실 예루살렘교회에는 이방인 그리스도들인이 없었다. 전부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뿐이었다. 그런데 이들도 또한 주님의 백성이요 구원받은 자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복음 전파 노선과는 약간 달랐지만 그들을 형제로 생각하고 그들의 제안을 수용했던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교회의 대표자들이었던 70명의 장로들의 결의를 겸손히 수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는 최소한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오해와 의심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정결예식을 행한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진짜 문제는 오리지널 유대인들이다. 그런데 유대인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예루살렘에 수만 명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바울이 율법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오해와 의심을 종식시키기 위해 바울은 기꺼이 정결예식을 행한 것이다. 

  셋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것은 바울이 한 사람이라도 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은 모양이 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정결예식을 행한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을 사랑했다. 차라리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들을 구원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율법 수호자들로서, 율법을 최고의 권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자신이 율법 파기론자처럼 보인다면 아무도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라도 마음의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유자였지만 기꺼이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결례를 행한 것이다. 그가 자신의 복음 전파의 원칙을 고린도전서에 기록해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고전9:20~22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  바울이 정결의식을 행한 것은 바울이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 의를 이루어 자신을 구원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또한 유대교로 회귀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것에 어떤 효험이 있다고 믿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단지 유대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그렇게 행한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라도 더 복음을 증거하여,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행한 것이다. 

====유대인의 정결례=== 유월절2주전에 붉은 암송아지 도살한 그 위에 백향목-홍색실-우슬초를 함께 태워 재를 만들고 실로암에서 길어온 물을 섞어서 잿물 만듬....(정결례 행하는 7일동안은 성전에 머물러야함)..결례 필요함을 신고한지 제3일, 제7일에 우슬초 묶음으로 그 잿물을 찍어서 정결함 받을 자 위에 뿌림-- (그러면 심지어 시체와 접촉하게 되어 부정해짐으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던 자들도 다시 정결을 회복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는[예물 드릴] 자격을 얻게 되어) 유월절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것.(민 19장) ...

===바울이 잡히다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오순절 지키러]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31.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34.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35.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36.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환난과 결박 예언 = 성령의 예방주사!!(담대하고 침착하게 맞이하고 통과할 수 있음) :: 감람산의 JC-->성전 바깥뜰에서 (열린 하늘의, 서 계신 JC 바라보며)돌에 맞아 죽어간 스데반, 바로 그 장소인 성전 바깥뜰에서 폭행당하고 두 쇠사슬로 매인 바울을 하나로 묶고 있음!!

===바울이 백성에게 말하다

37.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9.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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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21 Amplified Bible

===Paul Sails from Miletus

1 When we had torn ourselves away from them and set sail, we ran a straight course and came to Cos, and on the next day to Rhodes, and from there to Patara; 

2 and after finding a ship crossing over to Phoenicia, we went on board and set sail. 

3 After we came in sight of Cyprus, leaving it on our left (port side), we sailed on to Syria and put in at Tyre; for there the ship was to unload her cargo. 

4 After looking up the disciples [in Tyre], we stayed there [with them] seven days; and they kept telling Paul through the [Holy] Spirit [a]not to set foot in Jerusalem. 

5 When our days there came to an end, we left and proceeded on our journey, while all of the disciples, with their wives and children, escorted us on our way until we were outside the city. After kneeling down on the beach and praying, we told one another goodbye. 

6 Then we boarded the ship, and they returned to their homes.

7 When we had completed the voyage from Tyre, we landed [twenty miles to the south] at Ptolemais, and after greeting the [b]believers, we stayed with them for one day. 

8 On the next day we left and came to Caesarea, and we went to the house of Philip the evangelist, who was one of the seven [deacons], and stayed with him. 

9 He had four virgin daughters who had the gift of prophecy. 

10 As we were staying there for some time, a prophet named Agabus came down from Judea. 

11 And coming to [see] us, he took Paul’s [wide] [c]band (belt, sash) and bound his own feet and hands, and said, “This is what the Holy Spirit says: ‘In this same way the Jews in Jerusalem will bind the man who owns this band, and they will hand him over to the Gentiles (pagans).’” 

12 Now when we had heard this, both we and the local residents began pleading with Paul trying to persuade him not to go up to Jerusalem. 

13 Then Paul replied, “What are you doing, weeping and breaking my heart [like this]? For I am ready not only to be bound and imprisoned, but even to die at Jerusalem for the name of the Lord Jesus.” 

14 And since he would not be dissuaded, we stopped pleading and fell silent, saying, “The Lord’s will be done!”

===Paul at Jerusalem

15 After this we got ready and started on our way up to Jerusalem. 

16 Some of the disciples from Caesarea also came with us, taking us to [the house of] Mnason, a man from Cyprus, a disciple of long standing with whom we were to lodge.

17 When we arrived in Jerusalem, the [d]brothers and sisters welcomed us gladly. 

18 On the next day Paul went with us to [see] [e]James, and all the elders of the church were present. 

19 After greeting them, Paul began to give a detailed account of the things that God had done among the Gentiles through his ministry. 

20 And when they heard it, they began glorifying and praising God; and they said to him, “You see, brother, how many thousands of believers there are among the Jews, and they are all enthusiastic supporters of the Law [of Moses]. 

21 Now they have been told about you, that you are teaching all the Jews who are living among the Gentiles to turn away from [the Law of] Moses, advising them not to circumcise their children or to live according to the [Mosaic] customs. 

22 What then should be done? They will certainly hear that you have arrived. 

23 Therefore do just what we tell you. We have four men who have taken a vow; 

24 take these men and purify yourself along with them, and pay their expenses [for the temple offerings] so that they may shave their heads. Then everyone will know that there is nothing to the things they have been told about you, but that you yourself also follow and keep the Law. 

25 But with regard to the Gentiles who have believed [in Christ], we have sent them a letter with our decision that they should abstain from meat sacrificed to idols and from [consuming] blood and from [the meat of] what has been strangled and from sexual immorality.” 

26 Then Paul took the [four] men, and the next day he purified himself along with them [by submitting to the ritual]. He went into the temple to give notice of [the time] when the days of purification [ending each vow] would be fulfilled and the usual offering could be presented on behalf of each one.

===Paul Seized in the Temple

27 When the seven days [required to complete the ritual] were almost over, [some] Jews from [the province of] Asia [Minor], caught sight of him in the temple, and began to stir up the crowd, and they seized him, 

28 shouting, “Men of Israel, help us! This is the man who teaches all men everywhere against our people and the Law and this place. And besides, he has brought Greeks into the temple and has defiled this holy place.” 

29 For they had previously seen Trophimus the Ephesian in the city with Paul, and they assumed that he had brought the man into the temple [beyond the court of the Gentiles]. 

30 Then the whole city was provoked and confused, and the people rushed together. They seized Paul and dragged him out of the temple, and immediately the gates were closed. 

31 Now while they were trying to kill him, word came to the commander of the [Roman] garrison that all Jerusalem was in a state of upheaval. 

32 So he immediately took soldiers and centurions and ran down among them. When the people saw the commander and the soldiers, they stopped beating Paul. 

33 Then the commander came up and arrested Paul, and ordered that he be bound with two chains. Then he asked who he was and what he had done. 

34 But some in the crowd were shouting one thing and others something else; and since he could not determine the facts because of the uproar, he ordered that Paul be taken to the barracks [in the tower of Antonia]. 

35 When Paul got to the steps, he was carried by the soldiers because of the violence of the mob; 

36 for the majority of the people kept following them, shouting, “Away with him! [Kill him!]”

37 Just as Paul was about to be taken into the barracks, he asked the commander, “May I say something to you?” And the man replied, “Do you know Greek? 

38 Then you are not [as I assumed] the Egyptian who [f]some time ago stirred up a rebellion and led those 4,000 men of the Assassins out into the wilderness?” 

39 Paul said, “I am a Jew from [g]Tarsus in Cilicia (Mersin Province, Turkey), a citizen of no insignificant city; and I beg you, allow me to speak to the people.” 

40 When the commander had given him permission, Paul, standing on the steps, gestured with his hand to the people; and when there was a great hush, he spoke to them in the Hebrew dialect (Jewish Aramaic), saying,

===Footnotes

Acts 21:4 Clearly the disciples felt prompted by the Holy Spirit to tell Paul not to go to Jerusalem. But a question remains as to whether the Spirit was actually forbidding Paul to go, or only preparing him for what he would have to suffer in Jerusalem (cf v 11). Either explanation is possible, but many Bible scholars prefer the latter.

Acts 21:7 Lit brethren.

Acts 21:11 This was not a belt like men wear today, but a band (sash, girdle), about six inches wide, usually made of leather, worn on top of the outer garment. It was fastened around the midsection of the body and served as a kind of pocket or pouch to carry personal items such as a dagger, money or other necessary things.

Acts 21:17 Lit brethren.

Acts 21:18 The half brother of Jesus, author of the Letter of James and leader of the church in Jerusalem, not to be confused with James the Apostle (John’s brother).

Acts 21:38 Lit before these days.

 

Acts 21:39 A major city located at the crossing of several ancient trade routes, Tarsus (Tarsos, Tarsisi) was also known for its literary schools which rivaled those located in Athens and Alexand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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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장 (개요)

우리는 지금까지 기쁜 마음으로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온 이방 나라들을 여행한 사실과 그리고 그로 인하여 많은 영혼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된 수확을 고찰하여 왔다. 

또한 바울이 극심한 박해를 당한 사실과 그럼에도 주님께서 이 모든 박해에서 그를 즉시 구출한 사실을 고찰하였다(딤후 3:11). 

이제 우리는 그가 예루살렘으로 간 사실과 거기서 마지막으로 구속된 사실을 고찰하고자 한다. 

바울의 섬김의 날은 이제 끝나고 남은 것은 이제 고통과 어두움의 날들만 남은 것같이 보인다. 

이같이 위대한 일꾼의 활동할 수 없게 된 것은 천만 유감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의 동료들이 하였던 것처럼 "주의 뜻대로 이루워지이다"라는 말로써 묵묵히 그 사실을 시인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바울이 감옥에 갇히고, 공개 법정에 서고 하는 것이 바울이 설교단에 서 있는 것과 같이 진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이익을 위하여 섬기는 행위라는 사실을 믿고 또 믿어야 할 정당한 근거를 찾아야 한다. 이 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다.

Ⅰ. 바울의 에베소로터 예루살렘에 인접한 항구인 가이사랴까지의 항해 여행과 도중에 그가 경유한 여러 곳에 대하여 기록되고 있다(1-7).

Ⅱ. 바울과 가이사랴의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난 의견 대립. 

그의 친구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였으나 결국 그를 막을 수 없었다(8-14).

Ⅲ. 가이사랴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의 바울의 여행. 

예루살렘에 살고 있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그에 대한 친절한 환영(15-17).

Ⅳ. 그곳에 있는 형제들의 설득에 대한 바울의 순종. 

그들은 바울에게 할 수 있는 한 유대인들의 비위를 맞추어 그도 유대교에 대하여 서원한 사람인 것처럼 성전에 가서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제물을 드리라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 그에 대하여 얘기되는 것과는 달리 바울이 모세의 의식이나 율례에 대한 적대자는 아니라는 것을 표시하라고 그들은 말하였다(18-26).

Ⅴ. 바울이 그들의 말대로 행한 것이 오히려 유대인들이 바울을 적대하는 구실로 변하고 만다. 

그들은 성전에서 범죄 행위를 하였다고 바울을 그곳에서 체포한다.

Ⅵ. 폭도들에 의해 끌려 가서 죽임을 당하게 된 위기를 바울은 천부장의 도움으로 간신히 모면함. 

천부장에 의하여 바울은 공정하고 법적인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천부장은 바울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자신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를 허락했다(31-40). 

그 후 바울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본서가 끝날 때까지 바울은 석방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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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다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바울의 가이사랴에로의 항해(행 21:1-7)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고찰하여 보자.

Ⅰ. 바울과 에베소 교인들의 작별이 얼마나 애석한 것이었던가.

"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라는 이 장 첫마디 속에서 암시되고 있다. 이 말은 그들이 마지 못해 헤어진 것을 뜻하고 있다. 작별이란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다. 

바울은 그들을 떠나기를 싫어하였고, 그들도 바울과 헤어지기를 싫어하였다.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었으므로 그들은 헤어져야만 했다. 

선한 사람이라도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가능하면 그를 조금이라도 더 살아있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그의 친구들과도 작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Ⅱ. 목적지까지의 순조로운 항해.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직행하여" 희랍의 유명한 섬인 "고스"에 고착했다. 

그 다음날 그들은 콜러서스 즉 아폴로 신의 거상(巨像) 때문에 유명해진 로도에 도착했으며, 그 다음에는 리시아(Lysia)의 수도요 유명한 항구인 "바다라"에 도착했다(1절). 그곳에서 그들은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가려는 곳으로 항해 중인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갔다"(2절). 

일이 순조로이 진행될 때 또는 우연한 사건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계획에 기여할 때 우리는 거기서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어야 하며, "우리의 갈 길을 잘 마치게 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다"고 감사함으로 말해야 한다. 

그들이 탄 배는 베니게(즉 두로)로 향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그 배의 편의를 제공받아 "배를 타고 두로에로 갔다." 

이 항해 도중에 그들은 "구브로" 섬을 "바라보았다." 이 섬은 바나바가 태어나고 자라난 곳이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곳을 방문하지 않고,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마침내 두로에 상륙했다." 

두로는 그 나라의 유명한 상업 중심지였었으나 바울이 상륙했던 당시에는 침체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아직 약간의 거래가 거기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거기서 배가 짐을 풀려 하였다"는 것과 또 짐을 푼 사실을 보아서 그렇다.

Ⅲ. 바울은 두로에 잠시 머물렀다. 

바울이 그곳에 상륙하였다는 것은 그가 이스라엘에 거의 다다른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가 예정했던 기간 안에 그의 나머지 여행을 바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1. "두로에서 바울은 제자들을 찾았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이었다.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끼리 서로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거기 제자들이 살고 있는가를 물었고, 그들을 찾아 내어 그들과 사귀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그리스도가 세상에 계실 때 그가 두로의 해안에 자주 가시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시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두로와 시돈이 고라신과 벳세다가 누린 것과 같은 혜택을 맛보기에는 적당치 않다고 생각하였다. 

비록 만일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면 그들이 고라신과 벳세다보다는 더 나아지리라는 것을 알기는 하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눅 10:13, 14). 

그러나 후에 복음을 전할 사람들이 많아지자 그리스도가 두로에까지 전파되었다. 그곳에도 제자들이 있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이 사실에 대하여 예언자들이 두로에 관하여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라고 예언한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사 23:18).

2. 바울은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렀다." 

그들은 바울에게 할 수 있는 그리하여 그들과 함께 있어 주기를 간청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칠 일을 체류하였고(20:6) 이곳 두로에서도 그렇게 많은 날을 머물렀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그들과 함께 "주일"을 지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 가운데서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갖기 위해서였다. 

선한 사람들은 어느 곳을 간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유익한 일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어느 곳에서 제자들과 만나더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유익을 끼치든지 혹은 그들에게 도움을 받든지 하게 되는 것이다.

3. 두로의 제자들은 은사를 받았으므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당하게 될 고난을 성령에 의하여 예언하였다. 

"성령이 각 성에서 결박한 환란이 그를 기다린다"고 증거하였다(20:23). 

어떤 사건이 발생하려고 하면, 그 사건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제기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건 전에 많은 예언을 하도록 함이 적합하다고 여기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넞에 예언하심으로써 주님은 사람들의 신앙을 해치는 대신에 그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하고자 하셨다. 

두로의 제자들, 그들이 바울의 고난을 예견하고 그러한 은총을 부여받은 것과 동시에 그들은 그에 대한 사랑과 교회, 특별히 이방인 교회를 위한 관심 때문에 바울에게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지 말라"고 간청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변경되게 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만일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면, 그곳에서 그가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을 알았다. 그들은 다윗에게(만일 네가 그일라 사람들과 거한다면) "그들이 너를 붙이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바울에게 어려움이 닥칠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도록 하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울이 계속 자유의 몸으로 있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생각하고 또 그 결론에 따라 바울을 설득시켜 단념하게 하려고 한 것은 그들의 과오(fault)는 전혀 아니었으나, 그것은 실수(mistake)였다. 

왜냐하면 그가 시련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의 확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바울로 인해 성도들과 제자들로 집중적으로 기도하게 하신 바 그의 예루살렘 방문여행의 안전을 위한 집요한 간구가 계속되었고 그것은 결국 바울의 경건과 진정한 영웅적 결단을 더욱 빛내 주는 결과를 낳았다.

4. 두로의 제자들은 비록 그들이 바울의 영향을 받은 개종자들은 아니었지만 많은 존경을 바울에게 표했다. 

그 이유는 그가 두로를 떠나려 할 때쯤 해서 그들의 교회 안에서의 바울의 유용함에 대하여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비록 바울을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바울이 어떤 위대한 사람이기나 한 것처럼 "처자"를 데리고 함께 와서 경건하게 그를 전송하고, 그의 축복을 간청하고, 뱃터까지 따라와서 그를 전송하였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우리들은 주님 안에서 우리를 치리하고 우리를 경계하는 우리의 사역자들을 존경해야 하고 "사랑으로 그들을 귀히 여길" 뿐 아니라 기회가 주어질 때는 모든 그리스도의 신실한 사역자들에게 우리의 사랑과 존경을 표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위하여 수고하는 바, 주님 때문에 그리해야 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그들의 수고를 인하여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2) 우리들은 하나님이 특별히 존귀하게 쓰시는 자들을 특별히 존경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나님이 그들이 처한 세대 가운데서 특별히 들어 쓰시는 사람들이 있다.

(3) 훌륭한 인물들과 사역자들을 존경하도록 어린이들을 훈육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습은 두로에서 두드러지게 보여지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을 바울에게 데려다가 그의 말을 듣게 하였고 그에게 존경을 포하고 또 그의 가르침과 기도에 의해 유익을 받게 하고자 하였다. 

예언자를 조롱한 벧엘의 우상 숭배자들의 자녀들에게는 분노의 저주가 주어졌었다. 그러나 사도를 존귀히 여긴 두로에 사는 제자들의 자녀들에게는 틀림 없이 축복이 주어졌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어린이들의 호산나 찬양을 기뻐 받으셨다.

(4) 우리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으로 선용하여 우리를 영혼을 유익하게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바울을 멀리까지 따라가서 전송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이 바울과 좀 더 같이 있기 위하여 또한 그의 기도를 받기 위해서였다. 어떤 사람은 시편 45편 12절의 "두로의 딸이 예물을 드리고"라는 구절을 본문의 사실에 대한 예언이라고 간주한다. 

아마 우리 친구들이 해외 여행을 할 때 선물을 하듯이 그들도 헤어지면서 바울에게 선물을 준 것같이 보인다(28:10).

5. 그들은 바울과 에베소의 장로들이 그랬던 것처럼(20:36) 기도로 헤어졌다. 

이로써 바울은 우리들에게 언제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본을 보여 주었고 또한 기도의 삶을 우리에게 규칙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본문에 보면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였다"고 하였다. 바울은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또한 모든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다. 바울은 많이 기도한 동시에 대단히 능력있는 기도를 하였다. 

그들은 바닷가에서 기도했다. 그것은 기도로 그들의 마지막 작별을 성별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였다. 

바다로 여행을 하고자 하는 자들은 그들이 해안을 떠날 때 하나님에게 기도로 자신들을 위탁하고 또한 그의 보호 아래 자신들을 맡겨야만 한다. 

또한 육지 여행을 떠나게 될 때에도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에 그들의 신앙을 굳건히 세워야 한다. 

그들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아마도 그들이 무릎 꿇고 기도한 곳에 돌이 많고 지저분한 곳일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였다. 

바울은 "사람들이 어디서나 기도하기를" 바랐다. 또 자신이 그렇게 하였다. 그리고 그가 기도할 때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버트(Mr. George Herbert)씨는 "무릎을 꿇는 것은 결코 비단 양말이 헤어지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6. 드디어 그들은 헤어졌다(6절). 

본문에 보면 우리가 뜨거운 포옹으로 서로 사랑과 슬픔을 나누면서 "작별한 후에 우리는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니라"고 하였다. 

그들은 만나면 헤어져야만 한다는 이 세상에 법칙을 진정 안타까와하였다. 즉 본문을 쉽게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여로를 앞에 두고 있는 우리들은 우리를 운반해 줄 배를 갖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승선하였다. 그리고 배를 탈 필요가 없는 자들은 그들이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 사실은 "스블론은 나다님을 좋게 여기며 잇사갈은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긴다"(창 49:13-15)는 말씀과 상응됨을 볼 수 있다. 바울은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축복하면서 떠났고 그리고 그곳에 남은 사람들은 떠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Ⅳ. 그들의 돌레마이 도착. 

그곳은 두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7절). 본문에 보면 "우리가 돌레마이에 도착했다"고 하였다. 

혹자는 그곳이 아셀 지파의 경내로 소개되고  있는 "악고"와 같은 장소라고 생각한다(삿 1:31). 바울은 그곳에 상륙하기를 간청하였다. 

이는 그곳에서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의 상황을 알아 보며 그리고 그들을 향한 그의 선의를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비록 바울은 그들과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그는 그들에게 아무런 존경도 표하지 않고 그곳을 지나갈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었다" 아마 그날이 주일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같이 비록 잠깐 체류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방문을 안하는 것보다 좋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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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아가보의 예언(행 21:8-14)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마침내 가이사랴에 도착하였다. 바울이 여기서 며칠 머물기로 작정하였다. 

그런데 이곳은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맨 처음 전파되었던 장소였고 또한 "성령이 이방인들에게 내린 곳이기도 하였다"(10:1, 44).

Ⅰ. "가이사랴에서"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영접한 사람에 대한 고찰. 

바울은 거의 여인숙에서 머무는 일이 없었다. 그가 가는 곳에는 어느 곳에나 그를 맞아 환영하는 친구들이나 또는 그러한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항해하였던 사람들은 그 항해가 끝나자 각자의 임무에 따라서 헤어졌다. "화물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배가 짐을 부리는 곳에 머물러 있었다(3절). 또 어떤 사람들은 돌레마이에서 그들이 임무에 따라 하선하여 각자 흩어졌다. 그러나 바울의 동료들은 그를 따라 가이사랴에 도착하였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이 세상에 함께 여행하던 사람들은 죽음으로 서로 작별하게 된다. 그 때에 누가 바울의 동료였는지 아니었는지가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이제 가이사랴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를 살펴 보자.

1. 그들은 전도자 빌립에 의하여 영접을 받았다. 

우리는 그가 수년 전에 이디오피아의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고 가이사랴에 이르렀다는 사실까지를 전에 고찰하였었다(8:40). 

그리고 이제 이곳에서 다시 그를 발견하게 된다.

(1) 그는 원래 집사로서 구제를 위하여 뽑힌 일곱 중의 한 사람이었다(6:5).

(2) 그는 오랫 동안 복음 전도자로 일해 왔다. 

그 때에는 집사였지만 그는 사도들이 하였던 것과 같이 여기 저기를 다니며 교회들을 개척하고 또 물을 주어 가꾸었다. 

그리고 사도들과 같이 그 자신이 직접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는다"(딤전 3:13), "적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는 많은 것를 맡기신다"고 하였는데 바로 빌립이 그러하였다.

(3) 그는 가이사랴에 집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 집은 바울과 그의 모든 동료들을 맞이할 수 있을 만한 규모의 집이었다. 

그는 바울과 동료들을 자기 집에 영접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보면 그들이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였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의 능력에 따라서 평신도가 되기도 하고 사역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해야 한다"(벧전 4:9).

2. 이 빌립이라는 사람에게는 "예언을 하는 네 딸이 있었다"(9절). 

이 사실은 그들도 다른 사람들이 하였던 것처럼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당할 고난을 예언하였고 또 그에게 그곳에 가지 못하게 말렸으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그들은 바울 앞에 놓인 어려움을 얘기하면서 그에게 위안과 격려의 말을 예언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어쨌든 이곳에서의 예언의 사실들은 요엘 2장 28절에 기록된 예언 즉 성령이 모든 육체에 부어져서 그들의 "아들과 딸들이 예언을 할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된 것을 보여 준다.

Ⅱ. 저명한 선지자에 의하여 바울의 고난이 명백하고 완벽하게 예언됨(10, 11절).

1.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가이사랴에서 여러 날 체류하였다. 

아마 고넬료도 그 때까지 그 곳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빌립이 그들을 유숙시켰지만) 그는 그들에게 많은 친절을 베풀었을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그곳에 머물러 있기를 권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여행 초기에는 그렇게 갈 길을 서둘렀던 그가 여행이 끝날 즈음에 이르러서는 서둘지를 않았고 또 가이사랴에 어째서 그렇게 오래 머무르게 되었는가를 알 도리는 없다. 그러나 게으름을 피우기 위하여 그가 그곳에서는 혹은 다른 곳에서 체류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바울은 하루도 허비치 않고 날마다 계획에 의해 생활하였다.

2. "선지자 아가보가 유대로부터 가이사랴로 왔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우리가 전에도 고찰하였는데 그 때 그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안디옥으로 와서" "전파가 크게 흉년들 것"을 예언한 사람이었다(11:27, 28).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그의 은사를 얼마나 다양하게 베푸시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바울에게는 사도로서의 말씀의 지혜와 지식을 주었으며 병고침의 은사를 주셨다. 

그리고 아가보와 빌립의 딸들에게는 바울에게 은사를 준 것 같은 성령을 통하여 예언의 은사를 주었다. 

그들은 장차의 일을 예언하였고 예언대로 모든 일은 이루어졌다(고전 12:8, 10 참조). 

구약 시대에는 가장 뛰어난 성령의 은사였던 선지자의 미래의 사건을 예언하는 은사가 신약 성서 시대에서는 다른 은사들에 의해서 차선의 은사로 여겨졌고 교회 안에서는 예언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한 인물들로 여겨지지 않았다. 

아마도 아가보가 가이사랴에 온 목적은 이러한 예언의 정보를 바울에게 제공하고자 그를 만나러 온 것같이 보인다.

3. 아가보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속박될 것을 예언하였다.

(1) 그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행하였던 것과 같이 상징으로써 예언한다. 

이러한 예언은 이사야(20:3)나 예레미야(13:1; 27:2), 에스겔(4:1; 12:3) 그리고 그 외 많은 예언자들이 그러한 상징으로 예언하였다. 

"아가보는 바울의 띠를 가져갔다." 그는 바울이 풀어 놓았던 것을 가져갔거나 아니면 바울로부터 풀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띠로 먼저 "자신의 손을 묶고 그 다음 그의 발을 묶었다." 아니면 아마도 손과 발을 함께 묶었을 것이다. 이것은 예언을 확증하고 (즉 이미 보여진 것처럼 그 일은 확실히 실현될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행위를 통하여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시도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듣기만 하는 것보다 우리가 직접 보는 것이 일반적으로 더 깊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2) 그는 그 상징을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여 예언한다. 

"성령이 말씀하시되" 즉 예언의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의 임자를 결박하여" 그들이 바울이 섬기던 주님에게 하였듯이(마 20:18, 19) 또한 다른 곳의 유대인들이 로마의 통치자에게 그를 고소해서 그를 결박하려고 하였듯이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에게 주어진 이 급박한 고난에 대한 경고를 자기로 그 고난에 대비하게 하고 또 그 고난이 닥쳤을 때 그 고난이 그를 놀라게 하거나 떨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련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우리들에게 주신 일반적 경고를 우리는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받아들어야 하겠다.

Ⅲ.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설득하여 포기하게 하기 위한 친구들의 간절한 만류(12절). 

본문은 다음과 같이 이 사실을 전해 준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러한 경고가 자주 말해진 것을 듣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행하고자 하는 바울의 결심을 알고 있던 바울의 동료들과 나(누가)까지도 바울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고 그의 여정을 바꾸도록 눈물로 간청했다."

1. 본문에 바울에 대한 본받을 만한 애정과 교회 안에서의 바울의 커다란 유용성에서 비롯된 그를 존귀히 여기는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때로 매우 활동적인 위대한 사람들에게 과로하지 말도록 설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때로 용감한 훌륭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너무 위험에 노출시키지 말도록 설득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 주는 우리의 몸을 위하여 오셨다." 그러기에 우리도 우리의 몸을 잘 간수해야 한다.

2. 그러나 이러한 사랑에서 비롯된 만류 가운데는 분명히 결함도 섞여 있을 수 있다. 

그들의 그러한 결점이 우리 모두에게서도 흔히 일어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특별히 바울의 동료들에게 이러한 결점이 있었다. 그들은 바울이 성령의 지시에 의하여 이 여행을 착수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울이 어떠한 결심으로 전에도 이 같은 반대를 극복해 왔는가를 알고 있었다. 

대체로 고난이 멀리 있을 때 혹은 단지 그것에 대해 일반적인 경고만을 받았을 때에는 그 고난을 가볍게 볼 수 있지만 그 고난이 가까이 다가올 때는 몸을 도사리고 후퇴해 버리기 쉽다. 성경에 이르기를 "이제 이 일이 네게 임하매 네가 답답하여 하고 이 일이 네게 당하매 네가 놀라는구나"(욥 4:5)라고 하였다.

Ⅳ. 바울의 거룩한 용기와 두려움 없는 태도. 그는 그러한 태도로 자기의 결심을 고수했다(13절).

1. 바울은 그를 설복하려는 사람들을 나무란다. 

본문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함의 동기가 유발하는 분란을 대하게 된다. 각자의 서로에 대한 매우 진실되고 강한 애정이 본문에서 서로 맞부딪치고 있다. 

그들은 바울을 진정으로 사랑했으므로 그러기에 바울의 결심을 반대했다. 바울 또한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였다. 

그러기에 그의 여행을 반대하는 그들을 꾸짖는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그들은 베드로가 그와 같은 경우를 당했을 때 "주님 그리하지 마소서"라는 말로 그리스도를 만류해서 죄를 범하였듯이 바울을 만류하는 죄를 범하였다. 

그들의 그에 대한 눈물의 호소는 "바울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1) 그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유혹이었다. 

그들의 호소는 바울을 동요시켰고 그의 결심을 나약하게 하고 이완되게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호소는 바울로 하여금 그의 방침을 바꿀까 하는 생각을 하게끔 하였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고난을 받도록 정해진 것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너희는 나를 북돋우고 격려해야 하며, 내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너희의 눈물로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나를 낙망시키고 있구나. 너희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는가?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자의 십자가를 지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나더러 내 십자가를 피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냐?".

(2) 그들의 간곡한 만류는 그에게 괴로움을 주었다. 

자신의 양심에 대해 거리낌 없음이 그들을 만족하게 할 수 없었다. 바울은 매우 부드러운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 자신이 눈물의 사람이었고 또한 그의 친구들의 눈물에 대해서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하였다. 그 눈물들은 그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다. 그 눈물 때문에 바울은 어떠한 일이라도 그들 말대로 따르고 싶은 심정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제 주님의 뜻 이룸위해 그의 눈물로 호소하는 친구들의 요구를 부인해야만 할 입장이었기에 그 눈물은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 

그들의 친절은 부담스러운 친절이었으며 그들의 동정은 고통을 주는 동정이었다. 그는 그들의 설복 때문에 괴로워하였으며 그들의 설복은 그의 슬픔에 고통까지 더하였다. 

우리의 친구들이 고난에로 부름을 받았을 때 그들을 위하여 슬퍼하는 것보다 [지고지선의 주님 앙망함 통해 주께 위탁하며]그들을 위로함으로써 그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한다. 

물론 이 가이사랴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건의 세밀한 진행까지 미리 예측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현재 그토록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인 바울의 고난에 대한 윤곽만의 예고 때문에 그토록 슬퍼하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보라, 오히려 그의 예루살렘에서의 결박은 그들을 위해서는 유익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자 그는 그가 지금 있는 곳인 가이사랴로 보내졌다(23:33).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적어도 2년이나 머물러 있게 되었다(24:27). 

그는 죄수로서 잡혀 있기는 하였으나 24장 23절에서 나타나는 바대로 그의 친구들에게 자유로이 갈 수 있었고 그의 친구들도 그에게 올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또한, 가이사랴 교회는 더욱 그와 오래 사귈 수 있게 되었고 그가 자유로왔을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이상의 도움을 그가 갇혀 있기 때문에 그에게 줄 수 있었다. 어떤 일이 겉보기에 우리에게 불리하게 진행된다고 느껴지고 염려하는 일조차도 우리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인도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신뢰하는 하나님의 지고지선의 섭리를 따르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2. 바울은 그러한 모든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계속하겠다는 그의 결단을 되풀이하여 말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느냐? 나는 나에게 어떠한 고난이 준비되어 있든 그 고난을 당할 각오가 되어 있다. 나는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가기로 확고하게 결정을 내렸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것을 반대한다고 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기꺼이 고난을 받으련다. 내가 기꺼이 고난을 받으려는데 너희는 왜 내가 고난을 받으려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냐? 내가 내 자신을 가장 잘 알고, 또 내 자신의 일을 결정하는 데 가장 정확하지 않겠는가? 만일 예고없이 고난이 닥친다면 그 고난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난이 될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는 너희가 울 만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이 미리 예고되어 있지 않는가! 그러기에 나는 그 고난을 기꺼이 환영한다. 따라서 나의 고난을 너희가 두려운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나로서는 "이미 각오가 되어 있다" 

전쟁에 참전하는 병사와 같이 "나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나는 고난을 예상하며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것은 나에게 놀라운 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사도가 되던 때 이미 내가 얼마나 고통을 당해야만 할 것인가에 대하여 계시를 받았노라"(9:16). 

"나는 떳떳한 양심과 하나님에 대한 굳은 신뢰와 또한 이 세상과 육신에 대한 거룩한 멸시와 그리스도에 대한 생동력 있는 믿음과 영생에 대한 기꺼운 희망에 의해 나는 그러한 고난을 맞을 각오를 하였다. 나는 우리가 음식을 장만하여 기다리던 친구들을 맞이하듯이 고난을 맞이할 뿐 아니라 그 속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1) 그의 결심이 얼마나 굳건했는가를 생각해 보자. 

"너희는 내가 예루살렘에서는 속박을 받아야만 할 것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이 고난을 내가 받는 것이 두려워 나로 하여금 그 고난을 피하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건데 만일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그의 뜻이라면 나의 자유뿐 아니라 나의 생명도 잃어버릴 각오를 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들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 온전히 설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 지혜있는 태도이다.

(2)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고난과 죽음까지 기꺼이 맞이할 수 있게 하였는가를 살펴 보자. 

그것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였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섬기고 또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고자 하였다.

Ⅴ. 바울의 결심에 대한 그의 친구들의 복종(14절).

1. 그들은 훌륭한 사람의 지혜에 복종했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저기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저희는 저희의 집요한 요구를 그쳤다." 

바울은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었고, 그가 어떠한 일을 할 것인가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저희는 그 일을 바울이 하고자 하는 대로 맡겼다. 

그들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비난하지 않았고 그가 경솔하다거나 외고집장이이고 괴퍅스럽고 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비난하지도 않았다. 

사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이 바라는 대로 상대방이 행동하지 않으면 그를 쉽사리 정죄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바울이 그렇게 결심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고히 알게 하시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설득당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강압하지 않는 것이 예의있는 태도이다.

2. 그들은 선한 하나님의 뜻에 복종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고 그들은 말하였다. 

그들은 바울의 결정을 단지 그의 고집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바울의 고난을 받으려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또한 그가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였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은 우리의 기도와 행동의 규범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우리로 인내하게 하는 좌우명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그의 결심대로 따랐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을 보여 준다.

(1) 바울의 결심의 확고함을 보여 준다. 

그는 요지부동이었으며, 설복당하지 않았다. 이 사실 속에서 그들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바울에게 확고한 신념을 주신 분은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일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친구들이나 사역자들의 마음을 이렇게 또는 저렇게 변경케 하고자 하다가(그들이 우리가 원했던 것과는 전혀 다를 길로 갈 때에)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거기에 복종해야 한다.

(2) 바울이 고난에 대한 도전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들은 말한다. "만일 아무런 구출의 길이 없다고 할지라도 주 예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바울은 그 속박 속으로 뛰어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막기 위하여 우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하였다. 이제 우리는 그 일을 하나님에게 맡기자, 또한 이 일을 그리스도에게 맡기자. 아버지께서 모든 심판을 그리스도께 맡기셨듯이 우리도 우리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맡기자." 

우리가 고난이 다가오는 것을 볼 때 그리고 그 고난이 특별히 우리들의 사역자들을 침묵시키거나 그 고난이 그들을 우리들로부터 빼앗아 갈 때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우리는 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지혜의 하나님이시므로 어떻게 하면 일이 유익하게 될 수 있는가를 알고 계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의 거룩한 뜻을 기꺼이 따라야 한다." 

"주님의 뜻은 틀림 없이 이루어지고 만다. 거기에는 예외가 없다." 

말뿐만 아니라 우리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뜻은 그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요 그리고 그는 모든 일들을 그의 경륜에 따라서 행하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로 하여금 우리들에게 또 우리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그가 보시기에 좋은 대로 행하시게 하자." 

고난이 다가올 때, 주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우리들의 비탄을 감소시킬 것이다. 

고난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을 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들의 두려움을 멈추게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고난에 대하여 "아멘 뜻대로 이루소서"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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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바울이 야고보를 방문하다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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