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15장 [310.아하나님의은혜로] 455주님의마음을본받는자
=== === @@[부활증인들] ....아마도 (사랑 충만한) 막달라마리아가 (가장 먼저 무덤을 홀로 찾아와...무덤 안치되었음을 확인한 후 이제 무덤을 찾아와서 향품 바르기로 셋 또는 네사람이 의견 일치를 보았고, 그런데 누가 돌문 열어줄꼬 걱정하며 향품 준비하였으리라) 돌문 열린 것 확인 -->일단 제자들에게 알림(베드로와 요한이 이를 확인하고 돌아감)-->한편, 막달라 마리아는<요안나, 살로메,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막16:1, 눅24:10..로 보이는> 여인들과 함께 <향품 바르려>무덤을 다시 방문 --->[무덤 속에서 천사를 만남] 세(두) 여인 먼저 돌아가고, <슬픔에 싸여>뒤에 처진 막달라 마리아는 비밀히 <홀로> 무덤안에서 두 천사와 부활예수를 함께 만남/갈릴리에서 보자는 구주의 전언을 받아 제자들에게로 돌아가면서 세(두) 여인을 만나서 힙류.-->이 사실을 돌아가고 있는 (반신반의하면서?) 세여인들에게 전언(그랬을 것으로 추측!!), 함께 제자들에게 구주 말씀<갈릴리에서 만나자>을 전하러 가는 도중에 구주를 (그들과 함께 막달라마리아는 다시 만났으며, 또 구주 말씀을 재차 들은 것임!!) 만나 경배하고 구주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함께 전함 ::: <눅24:10...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막16:1에서는 살로메로 지칭됨-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엠마오 도상에서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교제하심<눅24:13-35> 구주이심 깨닫고 돌아와 다락방에 합류하여 증언--->안식후 첫날<부활의날>저녁, <문이 닫힌> 마가 다락방에 나타나심<먼저 10제자>, 7일이 지난 두번째주일, <문이 닫힌 마가다락방에> 도마 포함 11제자에게 다시 나타나심.....::따로 추가<고전15:5-8>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부활의 날, 태어난 지 제8일 할례의 말, 안식일 다음날, 추수한 첫 곡식 한단을 요제로 드리는 날 <<요제의 날>>레23:10, 11, 15-[안식일 다음날...안식일은 제 7일째였기에 안식일 다음날은 이제 그 주간의 첫날이며, 동시에 새로운 부활 주님 안에서의 첫날이기도 함...이것이 요20에서 성취된 예언임]에, 수확물의 첫 열매 한 단을 요제(앞뒤로 흔듦..부활을 의미)로 드렸는데, 첫열매의 그 단은 부활 안에 첫 열매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였음(고잔15:20, 23) [--이에 반해, 거제란 위아레로 흔드는 동작으로서 승천하시는그리스도를 예표함] <<할례의 날...창17:12>>...남아마다 태어난지 8일째에 할례를 행하도록 하셨음 :: 의미--천연적 출생의 옛창조를 끝내고 부활한 생명과 그 합당한 본성으로 살아야 함을 의미...골2:11, 12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우리는 모두 그분의 십자가로 할례받았음을 선언하고 있음.. 부활은 전적으로 새 창조 안에 새로운 세대를 위한 새로운 시작임을 공포하시려 의도하신 바임..
===그리스도의 부활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죽은 사람의 부활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몸의 부활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 1 Corinthians 15 Amplified Bible ==The Fact of Christ’s Resurrection 1 Now brothers and sisters, let me remind you [once again] of the good news [of salvation] which I preached to you, which you welcomed and accepted and on which you stand [by faith]. 2 By this faith you are saved [reborn from above—spiritually transformed, renewed, and set apart for His purpose], if you hold firmly to the word which I preached to you, unless you believed in vain [just superficially and without complete commitment]. 3 For I passed on to you as of first importance what I also received, that Christ died for our sins according to [that which] the Scriptures [foretold], 4 and that He was buried, and that He was [bodily] raised on the third day according to [that which] the Scriptures [foretold], 5 and that He appeared to Cephas (Peter), then to the [a]Twelve. 6 After that He appeared to more than five hundred brothers and sisters at one time, the majority of whom are still alive, but some have fallen asleep [in death]. 7 Then He was seen by James, then by all the apostles, 8 and last of all, as to one [b]untimely (prematurely, traumatically) born, He appeared to me also. 9 For I am the least [worthy] of the apostles, and not fit to be called an apostle, because I [at one time] fiercely oppressed and violently persecuted the church of God. 10 But by the [remarkabl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and His grace toward me was not without effect. In fact, I worked harder than all of the apostles, though it was not I, but the grace of God [His unmerited favor and blessing which was] with me. 11 So whether it was I or they, this is what we preach, and this is what you believed and trusted in and relied on with confidence. 12 Now if Christ is preached as raised from the dead, how is it that [c]some among you say that there is no resurrection of the dead? 13 But if there is no resurrection of the dead, then not even Christ has been raised; 14 and if Christ has not been raised, then our preaching is vain [useless, amounting to nothing], and your faith is also vain [imaginary, unfounded, devoid of value and benefit—not based on truth]. 15 We are even discovered to be false witnesses [misrepresenting] God, because we testified concerning Him that He raised Christ, whom He did not raise, if in fact the dead are not raised. 16 For if the dead are not raised, then Christ has not been raised, either; 17 and if Christ has not been raised, your faith is worthless and powerless [mere delusion]; you are still in your sins [and under the control and penalty of sin]. 18 Then those also who have fallen asleep in Christ are lost. 19 If we who are [abiding] in Christ have hoped only in this life [and this is all there is], then we are of all people most miserable and to be pitied. ==The Order of Resurrection 20 But now [as things really are] Christ has in fact been raised from the dead, [and He became] the first fruits [that is, the first to be resurrected with an incorruptible, immortal body, foreshadowing the resurrection] of those who have fallen asleep [in death]. 21 For since [it was] by a man that death came [into the world], it is also by a Man that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has come. 22 For just as [d]in Adam all die, so also [e]in Christ all will be made alive. 23 But each in his own order: Christ the first fruits, then those who are Christ’s [own will be resurrected with incorruptible, immortal bodies] at His coming. 24 After that comes the end (completion), when He hands over the kingdom to God the Father, after He has made inoperative and abolished every ruler and every authority and power. 25 For Christ must reign [as King] until He has put all His enemies under His feet. 26 The last enemy to be abolished and put to an end is death. 27 For He (the Father) has put all things in subjection under His (Christ’s) feet. But when He says, “All things have been put in subjection [under Christ],” it is clear that He (the Father) who put all things in subjection to Him (Christ) is excepted [since the Father is not in subjection to His own Son]. 28 However, when all things are subjected to Him (Christ), then the Son Himself will also be subjected to the One (the Father) who put all things under Him, so that God may be all in all [manifesting His glory without any opposition, the supreme indwelling and controlling factor of life]. 29 Otherwise, what will those do who are being [f]baptized for the dead? If the dead are not raised at all, why are people even baptized for them? 30 [For that matter] why are we [running such risks and putting ourselves] [g]in danger [nearly] every hour [if there is no resurrection]? 31 I assure you, believers, by the pride which I have in you in [your union with] Christ Jesus our Lord, I die daily [I face death and die to self]. 32 What good has it done me if, [merely] from a human point of view, I [h]fought with wild animals at Ephesus? If the dead are not raised [at all], let us eat and drink [enjoying ourselves now], for tomorrow we die. 33 Do not be deceived: [i]“Bad company corrupts good morals.” 34 Be sober-minded [be sensible, wake up from your spiritual stupor] as you ought, and stop sinning; for some [of you] have no knowledge of God [you are disgracefully ignorant of Him, and ignore His truths]. I say this to your shame. 35 But someone will say, “How are the dead raised? And with what kind of body will they come?” 36 You fool! Every time you plant seed you sow something that does not come to life [germinating, springing up and growing] unless it first dies. 37 The seed you sow is not the body (the plant) which it is going to become, but it is a bare seed, perhaps of wheat or some other grain. 38 But God gives it a body just as He planned, and to each kind of seed a body of its own [is given]. 39 All flesh is not the same. There is one kind for humans, another for animals, another for birds, and another for fish. 40 There are also heavenly bodies [sun, moon and stars] and earthly bodies [humans, animals, and plants], but the glory and beauty of the heavenly is one kind, and the glory of the earthly is another. 41 There is a glory and beauty of the sun, another glory of the moon, and yet another [distinctive] glory of the stars; and one star differs from another in glory and brilliance. 42 So it is with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The [human] body that is sown is perishable and mortal, it is raised imperishable and immortal. 43 It is sown in dishonor, it is raised in glory; it is sown in weakness, it is raised in strength; 44 it is sown a natural body [mortal, suited to earth], it is raised a spiritual body [immortal, suited to heaven]. As surely as there is a physical body, there is also a spiritual body. 45 So it is written [in Scripture],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soul (an individual);” the last Adam (Christ) became a life-giving spirit [restoring the dead to life]. 46 However, the spiritual [the immortal life] is not first, but the physical [the mortal life]; then the spiritual. 47 The first man [Adam] is from the earth, earthy [made of dust]; the second Man [Christ, the Lord] is from heaven. 48 As is the earthly man [the man of dust], so are those who are of earth; and as is the heavenly [Man], so are those who are of heaven. 49 Just as we have borne the image of the earthly [the man of dust], [j]we will also bear the image of the heavenly [the Man of heaven]. ==The Mystery of Resurrection 50 Now I say this, believers, that flesh and blood cannot inherit nor be part of the kingdom of God; nor does the perishable (mortal) inherit the imperishable (immortal). 51 Listen very carefully, I tell you a mystery [a secret truth decreed by God and previously hidden, but now revealed]; we will not all sleep [in death], but we will all be [completely] changed [wondrously transformed], 52 in a moment, in the twinkling of an eye, at [the sound of] the last trumpet call. For a trumpet will sound, and the dead [who believed in Christ] will be raised imperishable, and we will be [completely] changed [wondrously transformed]. 53 For this perishable [part of us] must put on the imperishable [nature], and this mortal [part of us that is capable of dying] must put on immortality [which is freedom from death]. 54 And when this perishable puts on the imperishable, and this mortal puts on immortality, then the Scripture will be fulfilled that says, “Death is swallowed up in victory (vanquished forever). 55 O death, where is your victory? O death, where is your sting?” 56 The sting of death is sin, and the power of sin [by which it brings death] is the law; 57 but thanks be to God, who gives us the victory [as conquerors]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58 Therefore, my beloved brothers and sisters, be steadfast, immovable, always excelling in the work of the Lord [always doing your best and doing more than is needed], being continually aware that your labor [even to the point of exhaustion] in the Lord is not futile nor wasted [it is never without purpose]. ==Footnotes 1 Corinthians 15:5 A title referring to the original disciples chosen by Jesus (including Judas). A few hours after betraying Jesus, Judas committed suicide (Matt 27:5) leaving only the eleven (Matt 28:16; Mark 16:14; Luke 24:9, 33). 1 Corinthians 15:8 Paul’s life-changing encounter with the resurrected Christ occurred on the road to Damascus (Acts 9). 1 Corinthians 15:12 Perhaps these were converted Sadducees, who as a sect denied the possibility of a resurrection (Acts 23:8). 1 Corinthians 15:22 Because of our physical nature as descendants of Adam. 1 Corinthians 15:22 Because of our spiritual nature as born-again believers in Christ. 1 Corinthians 15:29 This has nothing to do with Christian baptism or salvation. Paul may be referring to the practices of a pagan religion that required a ritual washing to enter an afterlife. 1 Corinthians 15:30 Paul’s life was continuously threatened because of his public commitment to Christ. 1 Corinthians 15:32 This may refer figuratively to the furious crowd that rose up against Paul in Ephesus, rather than to literal animals (Acts 19:23-41). 1 Corinthians 15:33 Paul quotes this one verse maxim from the writings of the Greek dramatist Menander (342-291 b.c.). “Bad company” in this case undoubtedly refers to the teachers who were denying the truth of the resurrection. 1 Corinthians 15:49 Two early mss read “let us also.” ========== 고린도전서 15장 (개요) 본장에서 바울은 기독교의 중대한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즉 죽은 자의 부활이다. Ⅰ. 우리 구주의 부활의 확실성(1-11). Ⅱ.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는 주장을 논박함(12-19). Ⅲ. 우리 구주의 부활로부터 시작하여 죽은 자의 부활을 확립하고 다른 사고 전개로써 고린도 교인들에게 확신시킴(20-34). Ⅳ. 부활의 반대론자에 대한 답변, 부활 때에 성도의 변화에 대하여(35-50). Ⅴ. 마지막 나팔 소리에 일어날 변화와 의인이 사망과 무덤을 극복하고 획득할 완전한 승리(51-57). Ⅵ. 기독교인들의 충성을 권면한다. 영광스러운 상을 받기 때문이다(58). =========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고전 15:1-11) 바울은 이 장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얼마가 완전히 부인한 죽은 자의 부활의 교리를 주장하고 확립시킨다(12절). 그들이 후메네오와 빌레도와 같이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여 부활의 교리를 은유로써 해석했거나 혹은 부활은 생명의 다른 과정에 불과하다고 말하거나 혹은 이성과 과학에 모순되어 불합리하다고 버렸거나 아뭏든 부활을 부인하였다. 그들은 미래의 보상을 부인하였다. 이방인이나 불경건한 사람들이 이 부활의 진리를 부정하는 것은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나 계시에 의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나 분명하게 발견된 진리를 부인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우기 이 교리는 너무나 중요한 교리인 것이다. 바울이 이 진리에 대하여 확신시킬 때가 되었다. 왜냐하면 부활의 진리가 흔들리면 기독교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바울은 복음의 총체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시작한다. 이 터전 위에 죽은 자의 부활이 되어있다. 다음을 주목하자. 신령한 진리는 상호의 연관에서 관찰될 때에 증거가 분명하게 확립된다. 기초가 튼튼하면 위의 건물이 안정된다. 복음에 대하여 관찰하여 보자. Ⅰ. 바울은 복음을 강조한다(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하며 강조한다. 1. 그것은 그가 계속적으로 일관되게 전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yes)이고 아니요(no)가 아니다. 바울은 같은 복음을 전하였고 같은 진리를 가르쳤다. 이 점에 대하여 그는 그들에게 호소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는 무흠한 교사들은 자가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모순된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바울이 지금까지 가르친 교리를 계속 가르치는 것이다. 2. 그것은 그들이 받고, 믿고, 전한 것이다. 그들은 복음의 신앙을 확신하고 마음으로 믿었고 입으로 증거했던 것이다. 그것은 낯선 교리가 아니다. 복음은 그들이 지금까지 굳게 서고 계속 서야 할 터전이다. 이 진리를 버리면 서야 할 땅이 없고 신앙의 근거가 없어진다. 다음을 주목하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기독교의 기초이다. 이 기초를 제거하면 전체의 구조가 무너지고 영원에 대한 소망이 떨어진다. 그리스도인들이 환란 날에 굳게 서고 하나님에게 충성할 수 있는 것은 이 진리를 고수함에 있다. 3. 그들이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복음때문이다(2절). 왜냐하면 "다른 이름으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으니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 구원을 받을 다른 이름이 천하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과 부활에 입각하지 않고는(!!) 그의 이름에 구원이 없다. 이것들이 우리의 거룩한 신앙을 구원하는 진리이다. 우리 구속자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사망에 대한 그의 정복이 우리의 영적 생활과 소망의 근원이다. 이제 구원의 진리에 대하여 관찰하여 보자. (1) 이 진리들은 마음에 간직하고 고수해야 한다(히 10:23).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자." 다음을 주목하자. 만약 우리가 구원되려면 복음의 진리를 우리 마음에 고정시키고 생각에 결단하고 끝까지 지탱하며 굳게 잡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진리에 주의하지 않고 그 능력에 순종하지 아니하며 최후까지 견디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 (2) 우리가 만일 [하나님이 이루시고 베푸사 깨닫게 하신, 복음에 계시된 교회, 믿는 이 각자의 인생 가치, 목적과 목표로서]목적을 믿음에 있어서 끝까지 계속적으로 (살아 생동하는, 발휘되는 능력 충만함의 믿음, 부어주신 아가페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안에서 그리스도를 누리고 전파하며 굳게 섬으로써) 인내하지 않으면 헛되게 믿는 것이다. 일시적인 믿음은 유익하지 못하다. 불신으로 떨어져 더 큰 악을 범하게 된다. 그리고 부활을 부인하면 기독교를 헛되게 고백하는 것이다. 부활을 부인하면 기독교를 이해할 수 없고 믿음과 소망의 여지가 없게 된다. Ⅱ. 이 복음이 무엇인지 관찰하자. 바울은 이것을 그렇게나 강조한다. 그가 받고 무엇보다 먼저(엔 프로토이스, 15:3) 즉 "첫째로 그리고 주로" 전한 것이 복음의 진리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다시 사셨다는 것이 첫째이며 가장 필요한 진리의 교리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즉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사람들, 특히 그를 믿는] 우리의 죄를 없이 하기 위하여 희생제물로 내어 줌이 되고 그들을 위하여 용서를 얻어 하나님에 의하여 용납되었음을 보이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 다음을 주목하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복음의 진리의 총합이며 실체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영적 생활이 일어나고 여기에 우리의 영생의 기초를 두어야 한다. Ⅲ. 이 진리가 어떻게 확립되는가 관찰하자. 1. 구약의 예언에 의하여서이다. 그는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성경에 의하여 성경의 예언대로 그리고 성경의 예표(type)대로 장사되고 죽은 자에서 살아나셨다. 그러한 예언은 다음과 같다. 시편 16장 10절, 이사야 53장 4-6절, 다니엘 9장 26,27절, 호세아 6장 2절이다. 그러한 예표는 요나(마 12:4)와 이삭이며 이삭은 바울에 의하여 대표로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을 받았느니라(히 11:19). 다음을 주목하자. 구약의 예언과 예표가 어떻게 응하였는지를 아는 것은 복음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립하는 좋은 증거이다. 2. 많은 실제로 본 자들의 증거에 의함이다. 이들은 그리스도가 부활한 후에 그를 보았다. 바울은 자신의 것을 제외하고 다섯 경우를 듣다. "그리스도는 게바 또는 베드로에게 보이시고 그 후에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다." 비록 유다는 그들 중에 없었지만 열 둘이라고 불리어진 것은 이것이 그들이 늘 사용하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다." 바울이 이 서신을 쓸때에는 얼마는 이미 잠을 자고 있었으나 그들 중에 많은 사람이 살아 있었다. 이것은 갈릴리에서 있었던 일이다(마 28:10). 그 후에 야고보 혼자에게 보이시고 그리고 승천하실 때에 열두 사도에게 보이셨다. 이것은 감람산에서 있었다(눅 24:50). 사도행전 2장 2절과 5-7절을 비교하라. 다음을 주목하자. 그렇게나 많은 눈이 그렇게나 많은 다른 시간에 보았으며 한 제자의 연약함을 기쁘게 받아 주어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만져보도록 허락한 것을 보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얼마나 분명한 일인가! 이 진리를 확신시키고 전하기 위하여 귀한 모든 것을 희생하고 굳게 선 성도들을 믿기 위해서 다른 이유를 구해야 하겠는가! 바울 자신도 그리스도를 본 은혜를 입었다. 구주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은 사도의 한 직책이었다(눅 24:48). 바울이 사도직을 받았을 때에도 이 증거를 맡게 되었다고 주 예수께서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나타나셨다. 사도행전 9장 17절에 기록되어 있다. 이 은혜를 언급하면서 바울은 자신에 대해 겸손한 언급을 한다. 바울은 하나님에 의하여 크게 은혜를 입었으나 항상 자기를 낮추고 그렇게 표현하기에 노력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그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였다(8절). 유산된 자이며 때에 맞지 않게 죽어서 태어난 자(에크트로마, 1626)였다. 바울은 다른 사도들이 개인적인 교제를 가진 것과 같은 성숙한 사도직을 가지지 못하고 마치 갑자기 새로 탄생한 새로운 탄생을 닮은 것 같다.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교제를 가질 수 없을 때에 사도직를 받았다. 그는 주님을 알지도 따르지도 못했다. 이것이 바울이 겸손한 자리에 서야 할 이유였다. (2) 자기 자신이 다른 사도보다 열등하다고 자백한다.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다." 가장 적은 자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서 맨 나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직이나 사도의 칭함을 받을 자격이 없다"(9절). 다른 곳에서 바울은 진정으로 "가장 큰 사도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다고"(고후 11:5) 우리에게 말한다. 은사나 은혜나 봉사나 고통 그 무엇에 있어서 어떠한 사정이 그를 비천하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다음을 주목하자. 높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정신은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다. 그의 장점을 더욱 나타나게 만든다. 바울을 겸손하게 만든 것은 그리스도와 신자들을 핍박한 그의 악함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최대의 악에서부터 최대의 선을 얼마나 쉽게 만들어 내는가! 죄인들이 성자들로 될 때에 그들의 과거의 죄가 유용하도록 만들어진다. 즉 그를 겸손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만든다. (3) 바울은 그에게 가치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린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10절) "나는 스스로 있는 자로다"라고 말하심은 하나님의 특권이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바요 그의 은혜로 만들어진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좋은 것은 이 원천에서 나왔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항상 겸손하고 감사하였다. 우리도 그와 같이 하여야 한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말할 정도로 바울은 그의 근면과 열심과 봉사를 알았으나 더욱 더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로 생각했다. 다음을 주목하자. 하나님의 은혜를 부여 받은 사람들은 그것이 헛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신령한 본질을 사랑하고 연단하고 사용해야 한다. 바울은 그러했다. 그러므로 그렇게 노력하고 그렇게나 성공했다. 그러나 노력하면 할수록 더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의 한없고 과분한 은총을 찬양했다. 겸손한 심령은 은혜로운 심령이다. 교만이 정복된 곳에 은혜가 넘침은 당연하다. 이와 같이 말한 후에 바울은 그의 본론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한다(11절). 바울이 같은 복음을 모든 때에 모든 장소에서 전한 것은 물론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 였다. "그러므로 내가 저희가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베드로나 바울이나 어떤 다른 사도가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더라도 모두가 같은 진리를 주장하고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같은 교리를 전파하고 같은 증거로 확신시켰다. 모두가 이 점에 있어서 같다. 즉 십자가에 죽으시고 살아나신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총합이며 본질이다. 모든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믿는 데 한 마음이다. 이 믿음으로 살고 이 믿음에 의하여 그들은 죽는다. ---------- 죽은 자의 부활(고전 15:12-19) 우리 구주의 부활 진리를 확립한 후에 바울은 부활이 없다고 교인들에게 논박을 가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12절). 이 절과 논술의 과정으로 보아 부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은 이방인들의 공통적인 감정이었다. 이에 반대하여 바울은 반대할 수 없는 사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을 제시한다. 바울은 그들의 주장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들어 논박하기 시작한다. Ⅰ.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였으리라"(13절). 그리고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다시 생명으로 회복될 수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을 것이요(16절). 그러나 그리스도가 부활할 것이 구약 예언에서 예언되고 그가 부활한 것을 많은 눈이 보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예언하고 지금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을 있을 수 없다고 너희 중에 어떤 사람들이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Ⅱ. 그렇게 되면 복음의 전파와 믿음이 헛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 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 것이며"(14) 이 가정이 인정된다면 기독교의 주요한 증거를 파괴할 것이다. 그래서 1. 전도를 헛되게 한다. "우리 사도들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는 이 진리에 대하여 하나님의 증인으로 자처하고 이 진리의 확립을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나 그러나 속이는 자요 거짓말하는 사람이 된다. 왜냐하면 사실에 있어서 거짓된 것을 주장하며 공포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신앙이 건전한 터전 위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무슨 목적을 위하여 이 어렵고도 모험적인 봉사를 수행하겠는가? 무엇을 위하여 전도하며, 우리의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 생의 기대도 저 생의 소망도 가지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일어나시지 않았다면 복음은 껍질이며 공허이다." 2. 이 가정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목사들의 노력을 헛 것으로 만든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17절), 죄와 죄의 정죄 아래에 있다. 왜냐하면 용서가 주어짐은 그의 죽음과 죄에 대한 희생의 댓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 1:7) 그리스도의 피 흘림이 없이는 결코 죄 사함이 있을 수 없다. 또한 다시 살아나심이 없이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시고 생명을 잃어버린 채로 그냥 있다면 그를 통해서 우리가 의롭게 되고 영생을 얻었다는 진리말씀에 대해 무슨 증거가 있겠는가? 그가 여전히 사망 권세 아래 있다면 그 무엇이 어떻게 우리를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겠는가? 이와 같이 가정한다면 그를 믿는 신앙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겠는가! 그러기에 우리의 의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그가 반드시 살아나셔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의도 구원도 없었을 것이다. 만일 그가 아직 죽은 자 가운데 있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헛 것이 된다. Ⅲ. 이 가정에서 발생하는 또 하나의 모순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다"는 것이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를 믿고 잠든 그들은 결코 일어날 수 없고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위하여 죽었던 자라도 잃어버린 바 된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부활을 부정하는 고린도 교인들은 육체의 부활/재생은 물론 미래의 심판도 부인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사망으로 인해 육체의 생명뿐만 아니라 인간이 영원히 파멸되고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바울은 그들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며 죽은 후에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없다는 가정에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맏든 자들의 완전한 상실을 추론하지 않았을 것이다. 육체가 일어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초월적 소망은 이땅에만 국한시키게 된다. "너희의 생각대로 부활이 없다면, 내생이 없다면 죽은 그리스도인은 완전히 상실한 자가 되고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얼마나 공허하게 될 것인가!" Ⅳ.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목사나 종들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사람이 될 것이다"(19절). 이것이 또한 부활이 없는 또 다른 모순이 된다.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상태가 더욱 다른 사람보다 나쁠 것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그에게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를 구속자로 믿는 사람은 그에 의한 구원과 구속을 희망한다. 그러나 부활이 없고 고린도에서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에 의하여 주장되는 장래의 보상이 없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소망은 이생에 제한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이생에 제한된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욱 비참하다. 왜냐하면 바울이 이 서신은 쓰던 그 때의 환경에서는 세상의 지배자들의 보호도 지지도 받지 못했다. 다만 모든 사람들에 의하여 핍박을 받을 뿐이었다. 전도자들과 기독교인들이 이생에 있어서만 그리스도에게 소망이 있었다면 그들의 생은 고난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는 그들이 미움을 받고 추격을 받고 비난을 받으며 모든 세상의 안락을 박탈당하고 모든 형태의 고난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세상의 누구보다 더 어려운 길로 다녀야 하고 그러면서 밝은 소망도 없다. 이보다 더 모순된 일이 있겠는가? 원수들보다 더 나쁜 상태에 영원히 버려 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겠는가? 부활이 없거나 내세를 부인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큰 모순일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 너머에는 소망이 없고 기독교인을 가장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참으로 기독교인은 이 세상에 대하여 죽고 다른 세상을 소망하며 살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육체의 쾌락은 무의미한 것이며 영적이며 하늘의 기쁨이 그가 열망하는 것들이다. 이 세상의 쾌락도 없고 더 좋은 세상을 소망하지 못하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 부활의 순서와 상태(고전 15:20-34) 이 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죽은 자들의 부활의 진리를 확립한다. Ⅰ.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1. 그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었다"(20절). 그리스도는 자신을 일으키셨고 바로 이런 면에서 그 안에서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로 일어나셨다. 유대의 추수가 첫열매를 바침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처럼 그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날 확실성이 있다. 첫 열매가 거룩한 즉 떡 전체가 거룩하게 된다(롬 11:16).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그리스도의 전 몸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보장된다. 그리스도가 일어났던 것처럼 그들이 일어날 것이다. 첫 열매가 거룩하여 전체의 떡이 거룩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는 자기만을 위하여 부활하심이 아니요 몸인 교회의 머리로써 부활하셨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4). 다음을 주목하자.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보증이요 약속이다. 왜냐하면 그가 일어나심으로 우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룩한 덩어리의 한부분이며 첫 열매의 용납과 은총에 참여한다. 이것이 부활의 진리에 대한 바울의 첫 논술이다. 2.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의 병행으로 설명한다. 사람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므로 사람으로부터 구원이 오는 것은 타당한 일이다. 즉 모든 사람이 부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21절).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첫째 아담의 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죽게 되고 같은 죄의 성질을 가졌던 것같이 그리스도의 공로(공적merit)과 부활(resurrection)을 통하여 성령에 참여하고(partake of the Spirit) 영적 본성(the spiritual nature), 재생(revive)하여 불멸(immortal)에 있게 된다. 죽는 모든 사람은 아담의 죄로 죽는다. 바로 그렇게 살아나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공로(공적merit)과 부활(resurrection)을 통하여 일어난다. 그러나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외 없이 다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바울의 논지는 일반적 의미에 제한한다. 그리스도는 첫 열매로 일어나셨다. 그러므로 "그에게 붙은 자"가 일어나게 된다(23절).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일어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어나는 사람은 모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사망이 첫째 아담 때문일 것같이 부활은 그리스도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통하여 사망이 왔고 사람을 통하여 구원이 왔다. 첫째 아담이 그의 후손을 파멸시킨 것같이 둘째 아담이 그의 씨를 영광의 영생으로 회복한 것이 하나님의 지혜인 것 같다. 3. 바울은 논술을 그만 두기 전에 부활에는 질서가 있을 것임을 천명한다. 정확하게 어떻게 될 것인가는 말하여지지 않으나 다만 질서가 있음을 말한다. 아마 가장 높은 지위와 가장 훌륭한 봉사와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장 무서운 악과 죽음을 당한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부활 때에도, 그분의 부활능력으로 인해 자던 성도들 중 몇몇이 일어나서 예루살렘 성중에 자신을 드러냈었다는 기록이 복음서에 기술되어 있지만, 그들은 다시 죽었거나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가시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 즉, 꼭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비가시적으로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승천했을 수도 있다!]... 부활순서는 (그리스도안에서 자는 자들인) 첫째 열매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에 그의 붙은 사람들이 다음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의 사람의 부활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그리스도는 영생 하나님의 참생명, 부활생명 그 자체이시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산 사람들은 전체의 떡덩이가 거룩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예루살렘에 (직접)올라가서 첫 열매들을 바쳐야 하는 것이 아니었고 오순절과 봉헌제에 바칠 때까지 (따로)구별하여 드었다가 그 절기에 올라가서 바치도록 하였었다. 민수기 26장 2절에 대한 패트릭 주교(Bishop patrick)의 말을 참고하라. 첫 열매들의 헌납은 전체의 떡덩이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추수하기 전에 시행하는 것이 아니고 바치기 위하여 구별하였다가 그 후에 바치더라도 그런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도가 그리스도 부활승천에 앞서서 부활있었더라도(혹시 그리하였었더라도 다시 죽었거나 승천하였었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들의 부활보다 앞서는 것이다. 그들이 부활하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참생명으로서, 그들의 부활의 기초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부활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부활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기 때문임을 주목하자. Ⅱ. 바울은 그리스도의 모든 원수가 파멸되고 마지막 사망이 파멸될 때까지 중보적 왕국의 계속에서부터 논한다(24-26절). 그리스도는 부활하시고 부활 때에 왕국이 부여되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그의 손에 주어졌다"(마 28:18).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다(빌 2:9-11). 이 왕국의 통치는 모든 적대하는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모든 원수를 발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하시리라"(24,25절). "맨 나중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26절) 1.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특별한 점이 있다. (1) 우리의 구주는 모든 권세를 손에 넣고 중보자로서 왕국을 소유하고 다스리시기 위하여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셨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롬 14:9). (2) 이 중보적 왕국은 끝이 있다. 하나님이 백성을 완전하게 보호하고 모든 원수를 정복할 때까지이다. "그 때에 끝이 오리니"(24절) . (3) 모든 적대하는 원수들이 완전히 정복하고 굴복시킬 때까지는 끝이 오지 않는다(24, 25절). (4) 다른 원수 중에서 사망이 파멸되고 버려져야 한다(26절). 모든 사람에 대한 사망의 능력이 취소되어야 한다. 여기까지 바울은 밝히 말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일어나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망과 무덤이 그들을 지배하고 우리의 구주인 왕의 권능이 그 백성의 마지막 원수를 지배하여 그 힘을 파멸시키지 못할 것이다. 성도들이 다시 일어날 때까지 사망은 취소되지 않는다. 때가 차서 중보적 왕국이 바쳐질 때에 일어난다. 성도들은 다시 일어나서 죽지 않는다. 이것이 논지의 범위이다. 2. 바울은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암시를 주고 있다. (1)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로서 우리 구주는 위임된 왕국을 가진다. "만물을 저의 발 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27절).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권세는 위임된다. 비록 그의 중보가 하나님의 성격을 가정하지만 중보자로서 하나님의 성격을 밝히 유지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인간의 중간 사람으로 인간과 하나님의 성질을 가지고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하며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위탁과 권능을 받는다. 아버지는 전체의 섭리 중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낸다. 인간이 된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의 대리자로 나타난다. 하나님으로서 그에게 속한 피조물에 대한 영원한 지배가 아니고 하나님이며 사람이신 중보자로서 그에게 위탁된 왕국이다. 그리고 그의 부활 후에 아버지와 함께 왕위에 앉으셨다(계 3:21). 그래서 예언이 이루어졌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 2:6). 이 의미는 신약에서 여러 번 나타났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고"(막 16:19; 롬 8:34; 골 3:1), 권능자의 우편에 앉으시다(막 14:62; 눅 22:69).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다(히 12:2).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히 8:1). 이 자리에 앉으심은 중보적 권능과 왕국을 가지는 것으로 그의 승천 때에 이뤄졌다(막 16:19). 이것은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겸손과 낮아짐과 인간이 되심과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한 댓가라고 말하여진다(빌 2:6-12). 승천하실 때에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를 다스리고 보호할 능력을 가지시고 모든 원수를 파멸하고 구원을 완성하실 때까지 수행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에게 속한 근원적이고 무한한 권력이 아니다. 특별한 목표를 위하여 제한된 권력이다. 권력을 가지신 그가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으로 행동하시지 않고 중보자로서 행하며 거역을 받은 하나님으로서가 아니고 거역한 피조물을 위한 중재로서 행동하신다. 하나님으로서 지배하실 수 있으나 중보자로서 위임된 권력을 사용하신다. (2) 위임된 왕국은 마침내 아버지께 바쳐진다(24절). 왜냐하면 그것은 특별한 표를 위하여 받은 권력이며 교회의 모든 원수가 영원히 멸망될 때까지 교회의 성도를 다스리고 보호할 권력이기 때문이다(25,26절). 이 목표가 달성되면 그 권력과 권위가 필요없게 된다. 구속자는 교회의 원수가 멸망하고 교회의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지배하신다. 이 목적이 달성되면 이 목적으로 받은 권력을 돌리신다. 그러나 그는 하늘에서 영광된 교회를 영원히 다스리신다.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라"(계 11:15).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로다"(눅 1:33).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라"(단 7:14)(막 4:7 참조). (3) 구속자는 그의 성도의 마지막 원수가 멸망하고 사망이 없어지고 성도가 재생하여 완전한 생명을 얻어 다시 죽을 위험이 없을 때까지 다스리신다. 그때까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신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으신 그가" 우리와 관계를 가지시고 우리를 생각하시는 그가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다. 즉었던 그가 영원히 사시고 통치하신다. (4)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28절). 이 의미는 그의 왕국에서 그러한 권위로써 통치하시던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국을 바칠 때에 아버지께 복종하신다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인간성은 영광스러운 피조물이 끝나는 것이다. 이것은 왕국이 바쳐질 때에 나타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모든 것이며 우리 구원의 완성은 전연 하나님에 속한 것이며 하나님만 명예롭게 되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인간이 사용되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 "그것은 주님의 행위이며 우리의 눈에 기적임을" 주목하자. Ⅲ.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들의 경우에서 부활을 증거한다(29절). [[그리스도를 믿었으되 세례없이 (갑자기)죽은 자들로 이해함이 가장 타당하다...이들의 부활을 고대하면서 산 자들이 (죽은자들을 위해 대신) 세례받았던 일을 의미하는 것 같다]] "만일 죽은자들이 도무지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죽은 자들이 살지 못한다면 그들이 (대신 세례받는 그 일은 도대체) 무엇을 위함인가? 그들의 (대신 받은 바) 그 세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일까! 세례를 지지해야 하느냐 버려야 하느냐? 만일 죽은 자들이 살지 못하면 어찌 그들이 세례를 받겠는가?(휘페르 톤 네크론) 죽은 자들을 위한 이 세례가 무엇일까? 바울의 논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보편적인 결론인가, 혹은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특수한 사람에 대한 것인가? 관사를 제외하면 세 단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주석가들에 의하여 세 가지의 세 곱보다 더 많은 의미가 부여되는 이 모호한 귀절을 누가 해석할 수 있겠는가? 세례의 뜻이 무엇인지 혹은 그것이 본래의 의미로 쓰였는지 비유적으로 사용하였는지 일치하지 않는다. 만약 그것이 본래의 의미로 쓰여졌다면 그리스도인의 고유의 세례인지 혹은 다른 세례식인지도 모른다. 죽은 자가 누구인지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무슨 의미로 ‘휘페르’ 이라는 전치사가 사용되었는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죽은 자가 우리의 주님 자신이라고 이해한다. 앞에서 언급한 휘트비(Whitby)를 참고하라. 만일 죽은 자가 살아나지 않으면 죽은 자 가운데에 남아있는 죽은 구주의 이름으로 누가 세례를 받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톤 네크론’ 가 한 사람의 죽은 자를 의미한다는 유일한 예이다. 그것은 그 말들이 다른 곳에서는 가지지 않는 한 의미이다. 세례받은 자들(호이 밥티조메노이)은 그대로 두고, [만일 '죽은자들(호이 네크로이)'이란 단어가 우리 구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정하면] 그들이 위하여 댜신 세례받는다 함은 일반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점은 순교자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왜 순교자들은 그들의 신앙을 위하여 순교하는가? 이것은 때때로 옛 사람들에 의하여 피의 세례라 불리어졌고 우리 주님에 의하여는 막연한 세례라 말하여졌다(마 20:22; 눅 12:50). 그러나 무슨 뜻으로 순교당하여 죽은 자를 위하여 세례를 받는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초대 교회 시대에 세례없이 죽는 자들의 이름으로 어떠한 사람을 세례 주는 한 관습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관습이 그 당시에 다소간에 행해지고 있었으며, 바울도 이를 혐오하지 않았기에 그것을 언급했으리라고도 본다. 어떤 이들은 그 당시에 지켜오던 습속중 하나로서 죽은 자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들의 부활을 소망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바울의 말하는 의미에 가깝다고 보기는 하나 그러한 행위가 사도 시대에 흔히 용인된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이들은 신앙을 위하여 죽은 자들의 이름이나 정절을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들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확실히 어떤 이들이 이것을 지킴으로써 기독교인으로 개종되었다. 만약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이 그 대상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살아나지 못하면 이런 동기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헛 것이 된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이 당시에 많은 핍박을 받지 않았고 순교의 일들이나 순교자들의 확고한 신앙에 의하여 개종하는 자들도 보지 못했다. ‘호이 네크노이’는 너무나 일반적인 표현이므로 순교자들만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더 확대시켜 보자면 ‘호이 네크노이’ 는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갑자기, 돌연하게] 옮기어진 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예를 들자면, "너희중에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11:30) 주의 식탁에서 무질서하게 행했기 때문이다. [주의 식탁에서 무절제하게 행함으로써 죽은 자들 발생한] 이 일은 그들 중 얼마를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그 효과는 흡사 기적적인 지진이 간수를 개종시킨 일과 같다. 행 16장 29, 30절을 참고하라. 그 어떤 경우라도, 죽은자를 위해 [대신]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죽은 자를 위하여(동시에 자기를 위하여) 세례를 받았다고(또한 참 기독교인으로서) 말하여질 수 있다. 죽은 자들과 세례를 받았다고 여겨지는 자들은 서로 부합한다. 우리는 이런 다양한 가정 위에서 추측할 따름이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의미를 오해하지 않는다.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들이 무엇을 하며 어찌하여 세례를 받았겠는가?" 이들이 현명하고 옳게 행하였다고 너희들은 생각한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빨리 죽은 그들이 저편의 소망을 가지지 않겠는가? 이 의미가 옳은지 혹은 다른 의미인지 모르나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전혀 지장없이 이해되었던 것 같다. Ⅳ. 바울은 이 가정에 대하여 자신의 행위와 다른 그리스도인의 행위에서 오는 모순으로 주장한다. 1.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많은 위험을 당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30절).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릎쓰리요. 왜 우리가 계속적인 위험을 당하겠는가 더욱 더 사도들인 우리가 그러할까?"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위험하며 더욱 더 전도자와 사도가 되는 것은 그 당시에는 위험한 일이었다. 사도는 말한다. "이제 우리가 죽은 뒤에 소망이 없고 우리가 온전히 죽고 재생하지 못하면 이 위험을 당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는가?" 다음을 주목하자. 기독교를 처음 증거할 때에 따를 위험 때문에 이생의 저 너머에 소망이 없음은 어리석은 고백일 것이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이생의 모든 복과 안락을 다 바치고 모든 악을 당하며 장래의 보장도 가지지 못하는 일이 된다. 이것이 모든 것을 인내해야 하는 기독교인에게 적당한 신앙의 성격이겠는가? 바울은 주장을 밝힌다. "내가 날마다 죽는 것을 그리스도안에 있는 너희의 기쁨과 기독교의 모든 위로와 거룩한 믿음의 도움으로 증거하노라"(31절). 바울은 죽음의 계속적인 위험 가운데 있었고 그의 손에 목숨을 들고 다녔다. 이 생명 뒤에 소망이 없다면 어찌하여 이렇게 자신을 내어 놓을까? 죽음을 바라보면서 소망 없이 사는 것은 낙담스럽고 위로가 없으며 우울한 삶임에 틀림 없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을 확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극단적인 약함을 당하게 된다. 바울을 큰 어려움과 사나운 원수들을 당하였다.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32절). 사나운 무리들에 의하여 찢기고 데메드리오와 다른 직공들의 소동을 당할 위험에 있었다(행 19:24). 어떤 이들은 이것을 문자 그대로 짐승들과 싸웠다고 해석한다.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 당한 일로 이해한다. 니케포러스(Nicephorus)는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말하고 짐승들이 바울에게 접근했을 때에 유순한 기적을 말한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나 특별한 시험과 환경을 누군가 빼놓고 바울 자신이 그의 고난을 상세히 말할 때에 간과할 이가 없다(고후 11:24 참고). 그가 유대인들에 의하여 다섯 번 매맞고 세 번 막대기로 맞고 한 번 돌로 침을 당하고 세 번 풍랑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 짐승과 싸웠다고 언급하지 않았음은 이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짐승들과 싸움은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의 짐승은 사나운 야생과 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바울은 말한다. "죽은 자들이 다시 살지 않으면 이러한 싸움에서 내가 무슨 유익을 가지겠는가? 죽은 자가 일어나지 않으면 어찌하여 내가 매일 죽으며 난폭한 손에 의하여 죽을 위험을 당하는가? 그리고 죽은 후에 멸망한다면(post mortem nihi), 그 후에 아무 것도 기대하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불쌍한 일이 있겠는가?" 바울이 그렇게나 무식했을까? 바울에 대하여 그렇게 생각하도록 고린도 교인들에게 어떤 여지를 주었던가? 죽는 것이 그에게 큰 유익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다면 바울이 그의 생명을 던졌을까? 죽은 후에 보다 더좋은 생이 있다는 생각 외에 그 무엇이 이생의 사랑을 버리게 하겠는가? "죽은 자가 일어나지 않으면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을까?" 나에게 무엇을 약속하겠는가? 다음을 주목하자. 하나님께 충성함으로 그리스도인에게 유익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울이 그러하였고 우리의 주님이 그러했다(히 12:2). 우리들도 그들의 본을 받도록 명령을 받고 우리의 열매를 거룩하게 바쳐 우리의 목표가 영생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표요 우리 영혼의 구원이다(벧전 1:9). 이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2. 둘째의 모순은 이생의 안락을 취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 되는 것이다.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32절). 식도락자가 되자. 선지자 이사야의 22장 13절에 그렇게 나타난다. 짐승같이 죽으면 짐승같이 살도록 하자. 이것이 죽은 후에 부활이 없다면 생의 쾌락을 포기하고 생의 모든 비참함을 당하여 잔인하게 죽는 것보다 현명한 일일 것이다. 이 귀절은 분명히 내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린도 교인 중에서 부활을 부인한 사람은 사두개인이며 그들의 주장은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이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행 23:8). 이다. 즉 인간은 육체이며 육의 것을 살릴 아무것도 없으며 죽으면 다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러한 사두개인들에 대하여 반대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주장이 아무런 힘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가 다시 살지 못하더라도 마음을 살리면 유익하기 때문이다. 아니 마음이 천국의 영광과 행복의 주된자리이며 주체이다. 만일 사후의 소망이 없다면 현명한 사람은 바울이 산 비참한 생애보다 안락한 생애를 더 좋아하지 않겠는가? 아니요 가능한 한 이 생애를 즐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생애는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생후의 소망보다 아무 것도 이 생애의 안위와 쾌락을 무시할 수 없게 하고 가난과 경멸과 비참과 죽음을 사랑할 수 없게 한다. 사도들과 초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살았다. 만일 그들이 자기를 속이고 허망하고 헛된 소망으로 세상을 버렸다면 그들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하고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가! Ⅴ. 바울은 주의와 격려와 책망으로 그의 주장을 끝맺는다. 1. 나쁜 사람과 타락한 생활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의 위험한 교제를 피하도록 주의한다. 바울은 말한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33절), 아마도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문란한 생활을 한 사람들이었고 타락한 원리로써 그들의 악한 행위를 지지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들의 입에는 이런 말이 늘 있었다. "먹고 마시자. 왜냐하면 내일 우리가 죽기 때문이다." 만일 장래의 세계가 없다면 그들의 말이 적절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신념을 논박한 후에 그들과의 교제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경고한다. 만일 그들이 저들의 신념에 동조하면 그들에 의하여 타락하고 그들의 생활을 따를 것이라 하였다. 다음을 주목하자. 나쁜 친구와의 교제는 나쁜 사람을 만들기 쉽다. 잘못과 악은 전염된다. 감염을 피하려면 그들과 멀리해야 한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 13:20). 2. 여기에서 저들의 죄에서 떠나 일어나서 보다 거룩하고 의로운 생활을 하도록 권면한다(34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혹은 의롭게 깨어서(에크넵사테 디카이오스) 더 죄를 짓지 말라. "스스로 일어나서 회개하여 죄를 버리고 악한 길을 버리고 잘못을 고쳐 나태와 어리석음으로 기독교인의 소망을 삼키고 그 행위를 타락시킬 그러한 교제와 원리를 버리라." 내세에 대한 불신은 모든 덕과 경건을 말살시킨다. 그 진리에 대한 가장 어떤 개선은 죄를 그만두고 열심으로 신앙에 정진하는 일이다. 만일 부활과 장래의 생활이 있다면 그것을 믿는 사람답게 살고 행해야 한다. 우리의 도덕을 문란하게 하고 우리를 타락시키며 음란하게 만드는 주정뱅이와 같이 행하면 안 된다. 3. 그들 중에 얼마에게 주는 엄한 책망이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다음을 주목하자.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하나님에 대하여 그의 성질과 은혜와 통치에 대하여 모든 지식을 다 제공한다. 이 신앙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모르고 있음은 자신을 책망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나태와 하나님을 경시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경시하며 하나님에 대하여 그렇게나 무지하고 하나님에 관한 일에 그렇게나 무관심한 일이 무서운 수치가 아니겠는가? 부활과 장래의 생애에 대한 불신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의 신실한 종들을 버리지 않으며 그들이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렇게나 어려운 고통에 처하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노력과 인내를 잊을 만큼 불성실하며 불친절하시지 않음을 안다. 나는 이 표현이 보다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 중에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의 일만 인정하는 무신론자가 있었다. 이들은 기독교 교회의 중상이며 수치이다. 마치 무신은 내세를 불신하는 근저에 있다. 하나님과 섭리와 이 세상의 생활이 얼마나 불공평하며 선한 사람이 얼마나 고난을 당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모든 일이 바로 판단을 받을 내세를 의심할 수가 없다. ---------- 심는 것과 다시 사는 것(고전 15:35-50) [NKJV]고전 15:45 --And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being." The last Adam became a life-giving spirit. [AMP] 45 So it is written [in Scripture],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soul (an individual);” the last Adam (Christ) became a life-giving spirit [restoring the dead to life].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에 반대하는 그럴싸한 주된 반대논거들에 대하여 답변한다. 반대의 제안을 관찰하자.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35절). 그들이 어떻게 일어날까? 무슨 능력으로 일어날까? [결론적으로 부활은 없다]는 그것이 이방인들 중에서 유행하던 사상이며 사두개인들의 사상이었다. 죽은 인간을 영생시키며 죽은 자를 재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의 범위 내에 있지 않다고 믿는 것 같다. 죽은 자의 부활을 반대하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그들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전연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반대하는 논거중의 또다른 하나는 부활할 몸의 성질이다.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같은 몸으로, 같은 모양으로, 같은 크기와 지체로, 같은 성질로 오느냐 여러 성질로 오느냐?" 먼저 반대는 교리를 반대하는 자들의 것이고, 후자는 호기심의 의심하는 자들의 것이다. Ⅰ. 전자의 반대에 대하여 바울은 매년 씨가 죽고 다시 살아나는 신령한 능력과 같이 죽은 자도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은 자의 부활이 그와 같은 능력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의심하는 것은 너무나 연약하고 어리석은 것이라는 투이다.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고"(36절) 다시 살아나기 전에 썩어야 한다. 죽은 후에 싹이 돋아날 뿐 아니라 살기 위하여 죽어야 한다. ((실상을 좀더 깊이 들어가 보자..씨를 뿌렸어도 그 중에 싹이 자라지 못하는 씨도 분명히 있다..그것은 겉보기에는 좋아보이는 씨들 중에서도 씨 자체(실은 씨 속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