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개정]시125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InChristAlone...[주와같이길가는것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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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구속자, 구속하시는 여호와====@구속[무름(속량)/자유]회복---속전(지속적으로 정결케 하는 보혈의 능력)--보수./보응/심판
la'G:(1350, 가알) 되 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근친의 역할을 행하다 [구속자 redeemer..근친/근족/혈연자 =고엘]
가알(동사)은 기본어근이며, '되사다, 도로 찾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redeem, 근친 역할(권리, 의무)을 행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어근은 '자기 친족을 어려움이나 위험에서 구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어근과 매우 유사한 어근 파다([d"P; , 6308): 구속하다 redeem) 사이의 한 가지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가알(la'G: , 1350)의 강조점이 구속자의 자격과 행함에 있는데, 반드시 근친이어야 하며, 근친의 특권이나 의무는 다름아닌 속량에 있다는 것이다.((JC가 바로 그러하시다..그는 태초이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신 아들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이미 예고된 대로, 참사람으로서 성육신하셨고 인성을 가지셨기에 [죄로 인해 자기의 모든 것을 사탄에게 넘겨주고 파산한 자들인]우리의 피를 나눈 근친/근족으로서 모든 면에서 참된 자격과 능력을 갖추신 유일무이한 고엘이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으로만 사용되었다.
가알은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자기의 친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포함하는 4개의 기본적인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a) 첫째로, 가알은 오경의 법령에서 궁핍한 때에 판 밭을 되사는 것이나 가난할 때 자신을 판 이스라엘인 노예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되사서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로 그대로 각 사람에게 배정/배분된 대로 모든 것을 돌려주고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지고지선의 진복 누림의 바탕을 제공하여 주는 구속의 일]로서 이런 매입과 무르는 일은 근친의 의무였다(레 25:25-54).
레 25:25에서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하였다.
물론, 만약에 자신이 부유하게 되면 그 사람 자신이 그것을 '무를' 것이다(레 25:26).
한편, 가난한 자는 기업만이아니라 자기 자신을 동족 이스라엘인에게나(레 25:39)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타국인(레 25:47)에게 팔기도 하였다.
그를 속량할 책임은 가장 가까운 친척 - 형제, 삼촌, 사촌들, 가족의 혈족 - 에게 있었다(레 25:25, 레 25:48, 레 25:49).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친척을 속량한 redeemed 자(혈연자)는 '근족 - 구속자'로 알려져 있었다. (참조: EDBW).
---가난한 자의 구제에 관한 가장 유명한 실례는 수혼법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거가 가장 광범위하게 미치는 룻기에 있는 것 같다.
신 25:5-10에 의하면, 남편의 형제는 후사 없는 과부를 취하여서 씨를 영속시키고, 남자 후손과 결부되어 있는 땅의 계승을 보증해야 했다.
여기 [수혼법의 실행 의무]에서 그것을 실행하는 근친은 야밤이라고 불리어지며, 어근 가알은 사용되지 않는다.
....룻의 상황에서는 두 가지 것들, 즉 밭을 되사는 것과 수혼이 언급된다. 근친은 밭을 사는 것을 기꺼워했지만, 룻과 결혼하는 것은 기꺼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의 요지는 나오미가 가난하여 밭을 팔 수 밖에 없었을 때, 근친은 그녀를 위해 그 밭을 되사야 했다는 데 있다. 그는 후사 없는 형제의 과부를 위해서 이 일을 기꺼이 하려 했지만,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 근본을 모르는] 룻과 결혼하여 그들의 기업을 지속시킬 자손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는 거부하였으며 여기에 보아스가 개입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것, 즉 친족과 수혼은 구별되어야 한다. 고엘(구속자)이란 단어는 후자의 제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레게트(Leggett)는 룻기에 구속적이고 메시야적인 유형론의 주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고엘(goel)로서의 보아스의 행동들에서 우리는 보아스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예시되어 있음을 보았다. 보아스가 구속의 권리를 소유하였으면서도 분명히 룻을 위하여 개입할 의무(까지)는 없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보라...룻은 나오미의 견해를 따라서 겸손하게 자신을 신부로 취하여 후사를 낳도록 해 달라는 뜻으로 보아스의 이불을 들추고 눕는다!!...겸손과 순종의 극치이다!!))
....보아스가 이 가난한 과부들의 곤경을 보았을 때 그의 생애가 여호와와 여호와의 율법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구원하러 왔던 것과 같이 메시야의 경우도 그의 생애가 하나님의 법에 의해 지배되고 또한 그가 가난한 자들과 억압 받는 자들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었다(시 72:2, 시 72:4, 시 72:12, 시 72:13, 사 11:4).
(b) 둘째로, 가알은 재산이나 여호와께 바쳐진 희생제물 아닌 짐승들을 무르는 것, 혹은 부정한 짐승들의 첫 소산을 무르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레 27:11-33).
이 [속전!!]사상은 인간이 교환물로 그에 상응하는 것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전은 부정직한 교환을 피하기 위해 약간의 추가 몫이 제공되었다. 이런 경우에 무르는 자는 친족이 아니라 재산의 주인이었다.
(c) 셋째로, 가알은 살해당한 사람을 대신하여 "피의 보수자"(RSV '보복자' revenger)가 되는 가장 가까운 친족을 언급하는데 사용되며, 칼 분사 고엘로 나타난다.
고엘은 구속자이며, 이 구속자는 '피의 보수자'로 불리우는데, 그의 임무는 자신의 친척을 살해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다(신 19:6).
이 사상은 가까운 친족이 생명에는 생명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임에 틀림없다.
돈을 지불함으로서 집을 재매입하거나 노예를 속량할 수 있는 것처럼, 친족의 잃어버린 생명은 마땅히 살인자의 그에 상응하는 생명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친족은 피의 보수자이다. 이런 사형 제도는 피비린내 나는 숙원과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엘은 죄없는 사형 집행인이었으며 따라서 살해되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보수자'라는 의미로 12회 나온다(민 35:12, 민 35:19, 민 35:21, 민 35:24, 민 35:25, 민 35:27, 신 19:6, 신 19:12, 수 20:3, 수 20:5, 수 20:9).(참조: R. L. Harris).
(d) 넷째로, 가알은 하나님께서 '구속자'로서 '구속하시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출 6:6에서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라고 약속하신다(출 6:6, 참조: 시 77:15).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출 15:13).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시 78:35).
....이사야서에는 '구속자'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지칭하여 13회 나오는데 모두 사 41- 63장에서 사용되었다. 가알은 하나님에 대해 9회 사용되었으며, 사 43:1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가알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사 51:10, 사 63:9)과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의 구원(사 48:20, 사 52:3, 사 52:9, 사 62:12)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사 41:14)이며 '너희의 왕 이스라엘의 창조주'(사 43:14, 사 43:15)이며 '만군의 여호와'(사 44:6)이며 '야곱의 전능자'(사 49:26)이다. 그의 구원에 참예하는 자는 '구속 받은 자'이다(사 35:9).
....시편에는 종종 영적인 구원이 육적인 구원과 병행되어 나온다. 예를 들면 시 69:18.,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시 103:2, 시 103: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윤택을 잊지 말찌어다...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이 그러하다(참조: EDBW).
[욥19:25,26,27]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25. "And as for me,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And at the last He will take His stand on the earth. *26. "Even after my skin is destroyed, Yet from my flesh I shall see God; *27.Whom I myself shall behold, And whom my eyes shall see and not another.
....유명한 구절, 욥 19:25에서 고엘이란 단어는 흠정역성경에서 '구속자' redeemer로 번역되며 어떤 이들은 이 단어가 속죄의 사역을 하러 오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히브리어 "파다"에 의해 더욱 특징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제 욥 19:25에 나오는 이 단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욥을 죽음의 먼지에서 구속할 친구이자 친족으로서의 하나님의 사역과 더욱 정확하게 관련된다. 욥 19:26의 난해한 어구, "이 가죽을 벗은 후에"는 다른 모음들과 함께 "내가 깨어난 후에"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NIV 각주와 욥 14:12-14을 참조하라. 욥 14:12-14에서 부활에 관한 욥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를 돌아보시며 욥은 나무처럼 제 2의 성장을 할 것이라는 그의 소망에 의해 절정에 달하게 된다 - 욥 14:14의 할리파는 욥 14:7의 할랍에 대한 응답이다). 어쨌든 욥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눈으로 자기의 고엘이신 하나님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참조: R. L. Harris).
..[[사59:20,21]]..*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9:24]] *2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하페츠 = 진정으로 바라기에 기뻐하고 즐거워함) 여호와의 말이니라
..[[미가6:8...의인신]]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헤세드)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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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20] *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2.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3.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4.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5.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그러하기에-----
[시121]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그러하기에----
[시122편]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고하리라---
[시123편] *1.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3.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4.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고백할찌어다---
[시124]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그러므로 송축하나이다---
1. 여호와를 의지하는(바타흐..[의지/신뢰/앙망하다]..카와[바라보다] ::(오직 앙망함의 산 소망<엘피스>+ 산 믿음<피스토스>로 하나됨 이루라, 주를 알고 붙들어 동행하라!! 사51 사40:31..사26:1-4..여쭈라)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모트)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야샤브..[거하다]) 같도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3.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영혼몸+모든소유)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이것은 Q의 불변하는 약속과 보장!!,,JC이름으로!!...non-touch AREA)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내 백성이여, 그 죄악됨 가운데서 네마음에 내주하는 바 나 주를 앙망하라, 나의 인도따라 걸으며 거기에서 나오라!!)
4.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in tune with : 말씀안에 거함으로써 전존재로 주 빼어닮기 + 연합-일치-조화 통한 동행)
5. 자기의 굽은 길로(주님이 정하신 바 열어 보이시고 인도하시는 정로 아닌 곁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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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시125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1.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시온 산과 같아서, 흔들리는 일이 없이 영원히 서 있다.
2. 산이 예루살렘을 감싸고 있듯이, 주께서도 당신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토록 감싸 주신다.
3. 의인이 불의한 일에 손을 대지 않도록 하려면, 의인이 그의 몫으로 분배받은 그 땅 위에서는, 악인이 그 권세를 언제까지나 휘두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
4. 주님, 선한 사람과 그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5. 주님, 비틀거리면서 굽은 길을 가는 자를 벌하실 때에, 악한 일을 하는 자도 함께 벌받게 해주십시오. 이스라엘에 평화가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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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시125
1. They that trust in the LORD shall be as mount Zion, which cannot be removed, but abideth for ever.
2. As the mountains are round about Jerusalem, so the LORD is round about his people from henceforth even for ever.
3. For the rod of the wicked shall not rest upon the lot of the righteous; lest the righteous put forth their hands unto iniquity.
4. Do good, O LORD, unto those that be good, and to them that are upright in their hearts.
5. As for such as turn aside unto their crooked ways, the LORD shall lead them forth with the workers of iniquity: but peace shall be upon Israel.
===시125개요===
이 짧은 시편은 선지자의 말 가운데서 요약한 것처럼 보인다(사 3:10-11).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이와 같이 이 시편에서는 우리 앞의 율법서와 예언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 축복과 저주가 자주 제시된다.
1. 하나님의 백성에게 확실히 복이 있을 것이다.
(1) 그들이 요동치 않으며(1), 안전하며(2), 항상 영락(榮落)한 상태에 있지 않을(3) 것이라는 선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선한 자의 기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저희에게 응답된다(4).
2. 악인에게는 반드시 화가 있을 것이다. 특히 배교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5).
---유대 랍비들 중 몇몇 사람들은 이것이 메시야의 날에 대한 언급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실히 복음교회의 일원으로서 이 시편을 노래할 때 이러한 약속들의 위로를 받는다. 우리가 위협에 놀라는 입장에 선다면 더욱 위로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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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으로부터의 해방(시 125:1-3)
여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세 가지 매우 진귀한 약속들이 나타나 있다.
약속들은 교회 일반의 복지를 회복하기 위해 의도되었지만, 이러한 성경의 다른 약속들과 같이 특정한 신앙인들에 의해 자신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관찰해 보자.
Ⅰ. 이러한 약속들이 주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격.
이 약속에 있어 분깃이나 몫이 전혀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약속의 은택을 받고 그 위로를 취하게 될 자들은 다음과 같은 자들이다.
1. “의로운” 자들(3절).
하나님 앞에서 의로우며, 하나님에 대해서 의롭고, 모든 사람들에게 의로운 자들이다. 그리고 그에게서 의롭다고 인정받고 성화된 자들이다.
2.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들.”
그의 돌보심에 의지하며, 그 자신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대하는 모든 사람은 신뢰로써 대해야 하며, 그는 그에게 신뢰를 두는 자들에게, 그리고 다른 신뢰를 떠나 하나님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감으로써 그렇게 행함을 명백히 드러내는 자들에게 위로를 주신다.
우리의 기대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한정되면 될수록, 우리의 기대는 그에게서 더욱 높이 올라간다.
Ⅱ. 약속의 내용을 보자.
1. 그들의 마음은 신앙에 의해 확립된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의 마음은 진실로 안정될 것이다. “그들은 시온 산과 같이 될 것이다.”
교회 일반은 “시온 산”(히 12:22)이라고 불리었다. 교회는 반석 위에 세워질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교회는 “시온 산”과 같이 된다.
그 관심이 매우 잘 확정되어 “지옥의 문(권세)이 교회를 이길 수 없게 될 것이다.”
교회의 견고성은 모든 교회가 잘 되기를 원하는 자들의 만족이 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특별한 사람들은 안정될 것이다(112:7).
그들의 신앙은 그들의 굳게 섬이 될 것이다(사 7:9). “그들은 시온 산과 같이 될 것이다.”
시온 산은 섭리에 의해 지탱되는 산과 같이 굳게 서 있다. 그리고 더욱 약속에 의해 지탱되는 거룩한 산과 같이 굳게 서 있다.
(1) 그들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나 그의 교활성 및 권능에 의해서도 “요동치 아니한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뢰는 물론 그들의 정직에서 떠날 수 없다.
(2) 그들은 영광으로 영원히 지속되는 표징이 되는 은총에서 “영원히 있음 같다.”
2. 그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을 맡겼기 때문에 안전하며, 그의 보호하심으로 그들의 적의 모든 모욕으로부터 안전하게 된다.
예루살렘은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자연적인 안정성과 요새를 갖고 있다(2절).
그 산들은 바람과 폭풍으로부터 예루살렘을 보호하고, 그 세력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적들이 접근하기 어렵도록 해준다.
그러한 방어가 그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다.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1) 그 범위.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사방에서 “두르실 것이다.”
원수가 그들을 해하기 위해 입구를 찾으려고 돌아다니지만, 그가 그의 백성을 두르신 보호의 울타리에는 전혀 틈이 없다(욥 1:10).
(2) 그 지속성. “지금부터 영원까지.”
산들은 무너질 수 있고, “흩어지며,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가지만”(욥 14:18), 하나님의 백성과의 언약은 “떠나지 아니할 것이다”(사 54:10).
그리고 그들을 돌보심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영원까지” 굳게 서리라고 말한 것과 여기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 백성의 견고성과 안전에 대한 약속이 영원한 상태에서 완전히 성취되리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하늘에서 그들은 “영원히 굳게 설 것이며”,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어 결코 다시 나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계 3:12).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은 스스로 그의 영광과 은총으로 “그들을 영원까지 두르실 것이다.”
3. 그들의 고난은 저희의 힘이 그 고난을 참을 수 있는 한도 이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3절).
(1) “악인의 홀이 의인의 업에” 이르며, 떨어질 것이 예상된다.
그들 권세의 홀이 그들을 압박할 수 있다. 그들의 분노의 홀이 그들을 성가시게 하며 괴롭힐 수 있다.
그것이 저희의 인격과 지위와 자유와 가족과 이름과 저희의 업에 미치리라. 그러나 그것은 저희의 영혼에는 미치지 못한다.
(2) 악인의 권세가 저희의 업에 미칠지라도 거기 머물러 있지 못한다고 약속되었다.
적들이 계획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의로써 그 일을 단촉케 하사 “시험 가운데서도 그들을 위해 피할 길을 예비하실 것이다.”
(3) 이러한 약속을 준 이유는 고난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의인들이 시험에 빠져 “죄악에 손을 댈 수도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악인들의 사악한 행실에 가담하고, 그들이 말하는 대로 말하며, 그들이 행하는 대로 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저희의 신앙 때문에 오랫동안 박해를 받을 때, 결국 그들이 신앙에 점점 싫증을 내 포기하기를 원하는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약속된 자비를 오랫동안 기다렸기 때문에 약속을 불신하기 시작하고 하나님께서 저희를 버렸다고 생각해 하나님을 저버릴 위험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73:13-14 참조).
다음과 같은 것을 주목하자.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심경을 아시고, 그의 섭리의 돌보심으로써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을 할당해 주시며, 그의 은총의 권능으로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이다. “억압은 지혜로운 자를 미치게 만든다.”
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선택받은 자를 위해서” 심판날을 임박하게 하실 것이며, 이 세상에서의 저희의 업이 어떻게 될지라도, 그들은 선택받은 자들 중에서 저희의 업을 잃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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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자의 평화(시 125:4-5)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Ⅰ. 시편 저자가 정직하고 곧은 자의 복을 위해서 간구한 기도(4절)가 있다. “여호와여 선인에게 선을 행하소서.”
이것은 우리에게 모든 선한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 간구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선을 행하는 자들이 확실히 선대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그들을 위해서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마음이 정직한 자”들이며, 보이는 것처럼 실제로 선한 자들이라면, 그들이 선한 것처럼 선대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들에게 정직을 나타내실 것이다.”
그는 “여호와여, 완전하고 죄 없고 흠이 없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소서!”라고 말하지 않고, 정직하고 선한 자들에게 선을 행하시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우리의 기도를 불러일으킨다.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시는 자들이 잘 되기를 원하는 것은 위로가 된다.
Ⅱ. 위선자와 탈선자의 파멸을 전망함.
그는 그런 내용으로 기도하지는 않았으나(“내가 재앙의 날을 사모하지 않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것을 예언하고 있다.
의의 길을 알면서도 악인들의 권세를 두려워하여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고난을 막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데 바르지 않은 길을 사용한다.
개혁하지 않고 점점 더 악해지며, 불경건으로 완고하고 교만해지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쫓아내시고, 던지시므로” 저희로 “죄악을 짓는 자와 함께 다니게 하실 것이다.” 즉 하나님은 그들의 분깃을 가장 악한 죄인들의 것으로 정하신다.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주목해 보자.
1. 죄의 길은 “굽은 길”이다. 죄는 옳은 것을 굽게 한다.
2. 옳은 길로부터 굽은 길로 전향하는 자들의 운명은 굽은 길을 계속 걸은 자와 같게 된다. 아니, 더욱 비통하게 될 것이다. 만일 지옥에 다른 곳보다 더 뜨거운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위선자와 탈선자의 분깃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처형되기 위해 끌려가는 것처럼, 그들로 “다니게 하실 것이다.” “가라, 너 저주받은 자여, 영원히 타오르는 불 속으로.” 그러면 “그들은 사라질 것이다.” 그들에 대해서는 이전의 의로움이 언급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는 마지막 말씀은 하나의 기도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이스라엘을 평강으로 보존하시며, 그때 그의 심판은 행악자들에게 널리 알려질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약속으로 읽는다. “평강이 이스라엘에게 있으리로다.”
(1) 하나님의 법도를 배반하여 버린 자들이 파멸에 봉착하게 될 때, 하나님의 법도를 신실하게 고수한 자들은 그 길에서 고난을 받을지라도 결국에 가서는 평화를 얻게 된다.
(2) 굽은 길을 걷는 자들의 멸망은 교회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한다.
헤롯이 죽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였다”(행 12:23-24).
(3)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평화와 행복은 악한 행실로 멸망하는 자들의 속상함이 되며, 거기에 많은 고통이 첨가된다(눅 13:28; 사 65:13).
“나의 종들은 기뻐할 것이로되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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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f'B;(982, 바타흐) 믿다, 신뢰하다, 의지하다, 안심하다, 안전하다...
바타흐(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믿다, 신뢰하다, 의지하다, 확신하다', 여기서 '안심하다, 염려 없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의 기본적인 개념은 [영원한 반석..사26:4]처럼 '확고부동' firmness이나 '견고함' solidity과 관련있는 것 같다.
어쨌든 히브리어에서 바타흐는 신뢰할 만한 것이나 사람이 있다는데서 오는 행복감과 안도감을 나타낸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20회 나오며, 칼형과 히필형으로만 사용되었다.
70인역본이 바타흐를 결코 피스튜오(4100: ~을 믿다 believe in)로 번역하지 않고 엘피조(1679: 소망하다, 기대하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다), 엘피스(1680: 소망, 기대), 아스팔레이아(803: 견고함, 안전함, 확실성....아는 바라도 주 말씀따라 적용하여 고찰하고 검증하고 분별함의 신중함 가운데 주님 인도하심따라 걸어감)으로 번역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바타흐가 "믿음"에 포함된 계시에 대한 완전히 지적이고 의지적인 반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거나 확실하다고 느끼는 감정을 강조하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 같다.
따라서 바타흐 어군은 '안전감'이나 '염려 없는 평온'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바타흐는 인간 관계에 사용될 때는 (이것이 없을 때에는 부정적 의미를 가지기에)불안정이란 의미를 내포한다.
이웃과 함께 "마음 편히 사는(어리석은 안심으로 안일한...깊이 생각하지 않고 주님말씀따라 발휘되는 분별력 없이 쉽게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쉽게 믿고 쉽게 속는 것으로 인하여 상처 받는 한편, 그들의 무방비한 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또한 역시 비난 받았을을 유의하라(참조: 세겜인들의 거짓된 안전대, 레위와 시므온의 잔인성, 창 34:25, 이스라엘의 거짓된 안전대, 곡의 잔인성, 겔 38:10-11). 잠 3:29은 믿고 있는 이웃을 속이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은 하나님을 의뢰한데서 오는 이런 확신감의 타당성을 다른 어떤 종류의 어리석은 안심과 대조 시킨다.
이런 모든 신뢰가 치욕과 수치로 끝날 것인데 반해(시 31:14, H15),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사람들은 원수에게서 구출되며(시 22:4, H5),
그들의 기도가 분명히, 확실히 응답 받으며(대상 5:20), 그들이 똑바른 길로 가며(잠 3:5),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시 16:9, 시 33:21), 마음의 평안을 깨닫고 공포가 없어질 것임(시 4:8, H9, 사 26:3)은 분명하다.
그래서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거듭 권고하고 있다(잠 16:20, 사 30:15, 렘 17:7).
바타흐는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시편들(전부 181회 중 50회 사용)에서 대부분 일관성 있게 하나님을 믿는 것의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이 구절들은 또한 소망의 근거가 [영생하시는]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의 공적이나 일종의 "오는 말에 가는 말"(tit-for-tat)과 같은 그러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헤세드와 그의 확고한 신실하심과, 그의 자비로우신 애정에 있음을 지적해 준다.
겔 33:13은 어느 누구도 감히 생명의 소망을 자기 자신의 의로움에 기반을 둘 수 없음을 분명하게 말해주며, 렘 7:4, 렘 7:8, 렘 7:14은 신성한 문구(신근)와 건물을 믿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영생의 선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있다고 선포하는 신약성경을 예시해 준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소망은 일종의 불평하는 바람이 아니라 확신하는 기대이다.
그칠새 없는 근심이 통례였던 이방 종교들과는 달리 히브리 종교는 신뢰성과 확실성이 주된 성품이신 한 분 하나님을 알았다(신 33:28, 삼상 12:11, 시 27:3).
근심과 확신 사이의 이런 대조는, 이교도가 기교 없이는 결코 남아있지 못하고 이것을 통해서 자기가 스스로의 운명을 어느 정도 지배했다고 느낀데 반해, 경건한 히브리인은 개인적인 수단 없이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알았다(너 자신을 알라!!...더 나아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의뢰하라!!)는 사실을 우리가 상기할 때, 훨씬 두드러진다.
변덕스러운 신들, 복수심에 불타는 악마, 그리고 불가사의한 마력의 바다에 자신을 그대로 방치하여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마땅히 마음의 눈을 돌려 인자하고 믿을 만한 하나님께 철저하게 의존하는 것이 더 낫다.
인간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다스림과 전지전능하신 지고지선의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하심에 대한 신뢰성을 고려해 볼 때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어떤 다른 것을 신뢰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며 전혀 신뢰할 수 있는 근거한 하나도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렇지만 잊지말라, 각 개인마다 지고지선의 진복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부여하실 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따른 인도하심을 !!!...오직 주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를 따라가도록 하라.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든 해악으로부터 믿는 이가 자동적으로 보호되는 것은 아니며 또한 하나님을 믿기를 거부한다고 해서 반드시 가난과 박탈의 길로 들어서는 것도 아니다.
욥은 위로자들의 부드러운 확신에 대해, 어느 정도 통렬하게 비꼬면서 이런 분명한 모순을 지적하였다(욥 12:6, 욥 24:23).
그렇지만 욥도 고통가운데서 다른 어떤 안전의 근원도 결국에는 무가치해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욥 31:24, 욥 39:11, 사 50:10).
구약성경은 이런 거짓 안전의 근원을 어느 정도 상세하게 고찰하여, 하나님게 대한 소망의 탁월함과 대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짓된 안전의 근원에는 인간(시 118:8, 시 146:3, 잠 25:19, 렘 17:5), 악(사 47:10), 폭력과 압제(시 55:23, H24, 시 62:10, H11, 사 30:12), 부(시 49:6, H7, 시 52:7, H9, 잠 11:28), 우상(시 31:6, H7, 시 115:8, 사 42:17, 합 2:18), 군사력(신 28:52, 시 44:6, H7 사 31:1, 렘 5:17, 호 10:13), 종교(렘 7:4, 렘 7:8, 렘 7:14), 자기 자신의 의로움(겔 33:13, 호 10:13), 이방인들과의 동맹(사 36:4 이하, 겔 29:16)이 포함된다.
특별히 성경은, 그런 만족의 보잘것없는 근거를 결코 평가하지 않고서 이런 만족(안일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경멸한다(사 32:9-11, 겔 30:9, 암 6:1).
아마도 바타흐를 둘러싼 핵심 문제가 짧은 범위 안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곳은 왕하 18장 왕하 19장일 것이다.
여기에서 앗수르왕 랍사게는 하나님을 믿는 히스기야의 믿음의 가치에 도전하는데 이 믿음은 충분히 입증된다.
이 단어는 이 곳과 병행구절들에 20회 나온다(사 36-37장, 대하 32장).
인간관계에서는 단 하나의 믿음의 영역만이 권고된다. 즉 현숙한 성품을 가진 아내를 믿는 남편(잠 31:11, NIV)에 대해서이다. (참조: J. N. Oswalt; BDB).
##Q의뢰함은 피상적일 수 있는 [피스튜오...believe in]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생한 산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주님 말씀 바로 그대로 그러하심의 체험적 확인의] 증거인 바, 살아계신 주님이 친히 말씀하신 바는 유일무이하게 절대 신뢰할만 하며, 결코 홀로 있게 내버려두지도,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시며 끝까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영원한반석-피난처-요새이심을 실지로 체득함 통해 확고부동의, 견고한, 안정-안도-상호희락 누림의 행복감을 그 바탕에 함축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임.
....believe in에서 더 나아가 attach to/cling to -->confide in, trust in..생생한 산 경험 통한, 즉, 주님안으로 믿어들어가서 하나되신/내주하시는 주님을 내 생명삼아 하나됨의 동행이루며 생명의 교통/교제안에 머무름의 흔들림없는 평강 누리며 맛봄-빼어닮음-주님 뜻 이룸/파루시아의 기쁨을 현재의 삶의 영역에서 누림/맛봄까지(말씀의 육화!!..이것이 평강과 형통의 실제경험의 선순환이다!!) 나아감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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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v'y:(3427, 야샤브) 앉다, 머무르다, 살다, 거주하다
야샤브(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앉다, 머무르다, 살다, 거주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080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필,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1. 칼형에서
(a) '앉다, 내려 앉다'(창 27:19, 욥 2:13, 시 9:5, 창 21:16).
사사나 왕(시 9:5, 사 10:13), 매복한 자(욥 38:40, 렘 3:2), 적(삼상 13:16), 애곡자(욥 2:13, 사 47:5), 게으른 자(사 30:7, 렘 8:14)에 대해 사용되었다.
(b) '머무르다, 체류하다'(창 24:55, 출 24:14, 삿 19:4, 삼상 16:8 등).
(c) '거주하다, 살다, 거처를 정하다'(창 4:10, 창 4:20, 시 107:10 등, 분사로, '거주자, 거주민이나 주민' 창 19:25, 삿 1:21).
2. 니팔형에서
'거주하다'(출 16:35, 렘 6:8, 렘 22:6, 겔 12:20, 겔 26:19 등).
3. 피엘형에서
(a) '두다, 정하다, 치다' (겔 25:4).
4. 히필형에서
(a) '앉게하다'(왕상 2:24, 대하 23:20, 욥 36:7, 왕상 21:10 등).
(b) '살게하다'(삼상 30:21),
(c) '거하게 하다'(창 47:6, 창 47:11, 레 23:43, 삼상 12:8, 왕하 17:6, 호 12:10, 사 54:3, 겔 36:33).
4. 호팔형에서
(a) '살게되다, 거하게 되다'(사 5:8, 사 44:26, 겔 35:9)
(참조: BDB; Gesenius).
----[내안에거하라 나도 너희안에 거하리라(요15:4]-------
mevnw(3306, 메노) 머무르다 remain.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메노(Homer 이래에 이미 발견됨)는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a) 메노는 '떠나는 것'의 반대로 '어떤 장소에 머무르다, 체재하다, 살다, 존재하다, 남아있다', 비유적으로 '어떤 영역에 남아있거나 머무르다'를 의미한다.
(b) 메노는 '흔들리거나 달아나는'(도피)에 반대로, '반대에 맞서다, 굴하지 않다, 견디다, 굳게 서다, 굳게 지키다'를 의미한다. 법적 논쟁 또는 협정에 사용되었다.
(c) 메노는 '이동이나 변화되는 것'의 반대로, '변함없이나 여전히(…의 상태로) 있다, 그대로 지속하다, 계속 머무르다'를 의미한다. 고정된 별들, 영원한 하나님, 불변하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사용되었다.
(d) 메노는 파멸, 파괴되거나 소멸되는 것의 반대로, '남아있다, 존속하다, 계속 살아가다', 특히 '법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남아있다'를 의미한다. 법적 협정, 유언장에 대해 사용되었다. 종교적 언어에서 메노는 계속 존재하는 것, 곧 신들, 혹은 신들에 영감을 받는 것(예: 마음, 사상)에 관하여 사용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메노는 70인역본에서 약 90회 나오며, 16개의 히브리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메노는 가장 많이 아마드(서다, 남아있다, 머무르다, 지속하다, 견디다, 살아남다)와 그 다음으로 쿰(일어서다, 일어나다), 야샵(앉아있다, 거하다, 남아있다), 하카(지연하다, 기디리다), 카와(기다리다) 등의 순으로 번역하고 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메노는 신약성경에서 118회 나오며, 고전 헬라어와 70인역본의 용법과 거의 같이 사용되었다.
(a) ① 메노는 문자적으로 '머무르다' 즉 한곳에(눅 19:5), 혹은 누구와 함께 머물다(눅 24:29; 마 26:38); 특정한 때를 위해 계속 존재하다(마 11:23); 살다(요 1:38)를 의미한다.
② 은유적으로 '꼭 붙잡다, 확고부동하게 머물다'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교훈에(딤후 3:14; 요이 1:9), 친교에(요 14:10),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고전 7:40) 머무는 것에 사용되었다. '견고히 서다, 시험에 견디다(합격하다)'를 의미하며, 예를 들면 공력이 심판 받을 때(고전 3:14)에 대해 사용되었다.
(b) 메노는 행 20:5에서 '기다리다'를 의미한다: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c) 신약은 구약의 사상을 이어서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바 하나님은 자기의 말씀을 유지하시고(벧전 1:23; 참조: 단 6:26; 벧전 1:25; 사 40:8의 인용) 자기의 모사를 유지하신다.
그는 인간의 역사에서 그의 선택한 계획을 끝까지 계속하여 이행하신다(롬 9:11).
하나님의 불변성은 영속하시는 메시야 예수님을 보내심과 그의 생애에서 보게 되었다(히 7:24).
하나님의 영속하시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난 자들은(벧전 1:23) 성령으로부터 시시때때로 황홀한 체험 뿐만 아니라, 그들 속에 계속하여 거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받는다(요일 2:27).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니, 곧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그에게 결속되었다(요일 4:14이하).
그는 여기 이땅에서 영속하는 도성을 찾지 못하나(히 13:14), 하늘에 영속하는 소유를 갖고 있다(히 10:34).
바울은 모세로 말미암아 드린 일시적인 예배와 대조하여, 성령과 의의 예배는 영구적이며(고후 3:7-고후 3:11), 또한 그것과 더불어 믿음, 소망과 사랑이(고전 13:13), 그 중에서도 그 자신이 통제를 받는 것으로 안(참조: 고후 5:14) 사랑이 영구적임을 지적하였다(참조: 고전 13:8).
(d) 메노는 요 14:10에서 성부와 성자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낸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그리스도는 선지자처럼 어떤 특정한 사명이나 어떤 제한된 기간을 위하여 부르심받지 않았으며, 그의 전 인격이 성부와, 영속적이고도 독특한 밀접성 하에 머무른다(요 1:32). 마치 아들이, 노예와는 달리, 언제까지나 아버지의 집에서 계속 거하는 것과 같다(요 8:35).
'만약 그가 성령을 받은 자로서 성부와 하나되어 행동하지 않으셨다면 인간들과의 그의 친교는 무력하며 무가치하였을 것이다'(A.Schlatter; 요 1:32).
(e) 메노는 하나님 및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표현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이 친교 안에 머무르도록 부르시며, 그도 그 안에 머무르실 것을 신자를 위하여 보장하신다(요 15:4이하).
여기서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있는 것(요 15:4이하)과 그의 사망과 부활 후에 그들 안에 있는 것(요 15:4이하)이 구별된다.
신자 안의 예수님의 이 거하심이, 성령께서 그들 안에 거하시리라는 약속에서 선포되었다(요 14:17; 요일 2:27).
그리스도가 신자 안에 거하신다는 진술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신비적 요소가 있다. 그것이 내적 단일성, 즉 신비적 단일성을 조성한다.
이것은 신자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심은 그들 안에 그의 말씀이 거하심과 불가분리의 관계이며(요 15:7; 요일 2:24; 요 8:31 참조). 예수님의 죽으심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화해의 권능을 계속적으로 받아들임과 불가분리의 관계이다.
이것이 요한복음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 6:56)라고 표현되었다.
이 개념이 요한에게 있어서의 주의 만찬의 참 의미를 표현한다.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의 이 내적 친교에서 "요구되는 충성[살아 생동하는, 발휘되는 믿음, 신뢰]은 일차적으로, '위한'(for) 계속적인 존재가 아니라, '~으로부터 온'(from) 존재이며, 그것은 어떤 지위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유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 관계는 상호적인 것이 될 수 있고, 실로 '되어야만 한다'(must)"(요 15:4에 대한 R.Bultmann의 해석).
(f)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깊은 곳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소유물로 만든다.
그것은 영적 관계 혹은 영적 일치에 제한되지 않고, 구원의 체험의 현존을 의미한다. 그런 까닭에, 그것은 생명(요 6:57)이다.
그러므로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는, 혹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생명은, 그의 영과 본성에 순응하는 생명을 요구하시고 형성하시며, 성화를 원하시고 또 성취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열매를 맺는 것과 동일하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만일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이미 친교가 방해받고 있다는 징조이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 15:6; 요일 3:6).
이러한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신자에게 임한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관계는 결국, 그가 예수님의 말씀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A.Schlatter).
요 15:1-요 15:8과 병행하는 요 15:9-요 15:17에서 이것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한다.
"제자에게 요구되는 바인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가 받은 사랑 안에서 즉, 사랑을 받는 상태에서 머무름을 뜻하며, 요 15:4에 이미 진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것은 계시자(Revealer)의 섬김 즉, 세족(洗足) 행위에서 상징적으로 이미 명백하게 보여 주신, 바로 그와 같은 섬김에, 그의 존재가 전적으로 의존해야 함을 의미한다."(R. Bultmann, 요 15:9; 요 13:1-요 13:20참조).
사랑 안에 거함은 행위를 통하여(요 15:10), 즉 계속적으로 과실을 맺음으로써 사실이 되며(요 15:16), 이러한 행위는 예컨대 형제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서 가시적이 된다(요일 2:10; 요일 3:14이하). (참조: F.Hauck; K.Mun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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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4131, 모트) 비틀거리다, 흔들리다, 미끄러지다
모트(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비틀거리다, 흔들리다, 미끄러지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38회 나온다.
(a) 칼형에서
① '비틀거리다, 미끄러지다': 불안정에 대한 비유로 이 단어가 레겔(발)과 함께 사용될 때에 발이 미끄러지거나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을 나타내 준다(신 32:35, 시 38:16[17], 시 94:18).
레발(발)없이 살육당하게 되어 '비틀거리는 자'(잠 24:11)와 의인이 악인 앞에 휘청거리는 것(잠 25:26)에 대해 언급한다.
② '흔들리다': 레 25:35, 사 54:10, 시 46:6.
다윗은 땅이 갈라져서 떨고 요동하므로 하나님의 치료를 필요로 한다고 시적으로 언급한다(시 60:2[43]). 그러나 이것은 비록 땅이 높아지고 (무르) 산들이 바다 한 가운데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시인하는 시 46:2[3]과 같은 부류에 속할 것이다.
(b) 니팔형에서.
'흔들리다, 요동하다, 전복되다': 시 82:5에서 이 동사는 땅의 일반적인 무질서를 묘사한다: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이 단어는 또한 정복자에 의해 쉽게 쓰러지거나 뽑히고 제거되는, 단위에 설치된 죽은 우상들의 불안정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사용되었다. 이사야서에는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신들이 제거되지 않도록 확고히 하라고 권고하는 조롱의 말들이 많이 나온다(사 40:20, 사 41:7).
천년 왕국에 관한 두 개의 시편들은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그러므로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테벨)은 요동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시 93:1, 대상 16:30, 시 96:10). 여호와께서 또한 이땅의 기초를 놓으셨으므로, 이 땅은 언제까지나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시 104:5).
의로운 사람들은 확고하고 안전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반석이요 구원이 되시는 여호와가 계시기 때문이다(시 62:2, 시 62:6, 시 112:6, 시 15:5, 시 16:8, 시 21:7, 시 30:6). 하나님은 삶의 과정에서 그들을 붙잡아 주시므로 그들의 발이 미끄러지지 않는다(시 17:5). 의인의 원수는 그가 동요하는 것을 보고 기뻐할 근거를 갖지 못할 것이다(시 13:4[5]).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c) 히필형에서.
'제거하다, 이동시키다, 떨어지게 하다, 빠지게 하다' (시 55:3, 시 140:10).
(d) 히트파엘형에서.
'크게 흔들리게 되다', 심판에서(사 24:19).
(참조: BDB; W. C. Kai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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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metakivnhto"(277, 아메타키네토스) 움직이지 않는.요동치않는.흔들림없는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형용사 아메타키네토스(Pla., Dionys. 등)는 부정 접두사 a와 메타키네오(metakinevw, 3334: 떠나다, 이동하다)에서 유래했으며,
(a) '그 장소로부터 이동하지 않는, 움직이지 않는'을 의미한다.
(b) 비유적으로, '굳게 지속하는'이란 의미를 가진다.
2. 신약성경의 용법.
형용사 아메타키네토스는 신약성경에서 고전 15:58에서 한번 나오며, '움직이지 않는'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바울은 부활로 인하여 우리가 행하는 그 무엇도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어떤 결과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선을 행하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늘의 시각을 계속 지닐 수 있다면 우리는 종종 우리의 노력에서 비롯된 선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만약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궁극적인 승리를 얻으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바로 지금 살아가는 방식에 영향을 미침에 틀림없다. 외견상 성과 없음으로 인한 낙담이 당신이 일하는 것을 막도록 하지 말라. 기회 있을 때마다 선을 행하라 그러면 당신의 행함은 영원한 결과를 얻게 됨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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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hrivzw(4741, 스테리조) 지지하다, 고정시키다, 강하게 하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스테리조(Homer 이래)는,
(a) '지지하다, 고정시키다, 강하게 하다, 확고하게 하다, 단단하게 하다',
(b) 비유적 용법으로 '확정하다', 정치적으로 '평화를 회복하다', 언어학적으로 '크게 발언하다', 우주론적으로 '고정시키다, 안전하게 하다', 해부학적으로 '병을 포착하다', 의학적으로 약을 사용하여 '강(건강)하게 하다'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스테리조는 70인역본에서 약 50회 나오며, '지탱하다'(창 28:12; 출 17:12), '눈을 고정시키다'(암 9:4; 렘 24:6; 렘 21:10; 겔 6:2; 겔 13:17 등), '계획하다, 강하게 하다'(시 50:14; 마카베오일서 14:14)를 의미한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스테리조는 신약성경에서 13회 나오며, 누가복음에 3회, 바울 서신에 6회, 공동 서신(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서, 유다서)에 3회 계 3:2에 1회 나온다.
(a) 눅 9:51에서 "예루살렘을 행한 여행 이야기"가 시작될 때에 구약의 표현(렘 3:12; 렘 21:10; 겔 6:2과 다른 곳)과 유사한 언어를 상기시키는 의미심장한 진술을 한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스테리조는 여기서 예수님의 "변경할 수 없는 결심"(Harder 656)을 나타낸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의 실현에 단호히 복종하신다(참조: 눅 9:22).
눅 16:26도 스테리조를 문자적으로 사용한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눅 22:32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그의 형제들을 굳게 하는(strengthening) 일을 부여하신다. 이것은 믿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강하게 하는 일로 부활 이후에 베드로의 직무를 고정시킨다(참조: 눅 24:32 이하).
(b) 바울의 전집은 스테리조를 '강하게 하다'(strengthen), '굳게 정하다'(establish firmly), '견고하게 하다'(make firm)라는 라는 의미로 오직 비유적으로만 사용된다. 이 동사는 대격 목적어들과 함께 사용된다: 휘마스(롬 16:25; 살전 3:2; 살후 3:3), 휘몬 타스 카르디아스(살전 3:13; 살후 2:17).
롬 1:11에서 단어는 바울이 "너희를 견고케 하기 위해" 수신인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기를 원한다고 한 표현에서 수동태로 사용되었다. 이 모든 절수들은 교회들을 강하게 하는 것과 관계 된다-디모데(살전 3:2)를 통해서 또는 하나님을 통해서(롬 1:11; 롬 16:25; 살전 3:1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통하여, 살후 2:17; 살후 3:3).
(c) 벧후 1:12(수동태)에 따르면 그러한 교회를 강하게 하고 안전하게 함은 진리 위에 세워진다(참조: 벧후 1:10; 벧후 2:14; 벧후 3:16; 벧후 3:17).
(d) 약 5:8은 재림과 관련된 인내를 권한다: "마음을 굳게 하라".
벧전 5:10은 수신자들을 강하게 하는 것을 하나님께 돌린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계 3:2은 사데 교회를 간곡히 권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참조: G. Schneider;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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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Jmoqumadovn(3661, 호모뒤마돈) 마음을 같이하여, 다같이, 일심으로.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부사 호모뒤마돈(Aristoph. 이래로)은 '함께'를 뜻하는 호모(oJmo) 또는 호무(oJmou', 3674)와 '격노, 욕정'을 뜻하는 뒤모스(qumov", 2372)의 합성어이며, '생활의 원리, 감정과 사고'를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호모뒤마돈은 모임이나 집회에서 통일성을 나타내며, '마음 같이 하여, 다같이, 일심으로, 만장일치'를 의미한다.
그러나 후에는 '함께'라는 약화된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정치적 차원에서는 특히 공동 의무 또는 위험에 직면한 한 집단의 눈에 보이는 내적 결합에 대해 사용되었다. 만장일치는 공통적인 개인적 감정들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보다는 더 큰 원인에 근거하는 것이다.
2. 70인역본의 용법
호모뒤마돈은 70인역본에서 약 36회 나오며 '함께, 모두 함께'라는 뜻을 나타내는 야하드(예: 욥 3:18; 6:2)와 야다우(출 19:8; 욥 2:11; 렘 5:5; 렘 46:21; 애2:8)의 역어로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호모뒤마돈은 찬양과 비탄의 문맥들에서 원래 의미로 나오며(예: 삿 4:12; 지혜서 10:20; 마카베오삼서 4:6; 세속적인 의미로 삿 15:9), 또한 '함께'라는 일반적인 의미로도 나온다(예: 삿 15:2, 삿 15:5; 지혜서 18:5; 마카베오삼서 4:4).
3. 신약성경의 용법
호모뒤마돈은 11회 나오며 사도행전에 10회, 로마서에 1회 사용되었다.
(a) 행 12:20에서 호모뒤마돈은 두로와 시돈이 사절을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보냄에 있어서 연합하였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b) 다른 경우들에서 호모뒤마돈은 '만장일치로'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행 1:14에서 호모뒤마돈은 열 한 사도들이 여인들과 또한 마리아와 함께 하는 기도에 나타난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행 2:1에 호모뒤마돈들은 장소를 나타내는 단어와 함께 사용된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46이하에서 호모뒤마돈 성전에서 모이고 떡을 떼는 일에 나타난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5:12에서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행 4:24에서 호모뒤마돈은 베드로와 요한의 석방 후의 기도에 나타난다: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행 15:25에서 호모뒤마돈은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들을 유다와 실라에게 지참시켜 그들을 파송하는 결정에 나타난다: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이와 동등하게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높이심을 받은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와 직면하였을 때 빌립의 말을 듣는 적절한 태도(행 8:6)와 유대인들의 증오(행 7:57; 행 18:12 이하)에서 까지도 일치가 나타난다.
롬 15:5이하에서 하나님에 대해 일치하여 드리는 찬송, 동일한 목표가 바울에 의하여서도 직시되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발생하며 또한 지각과 지식에 있어서의 모든 차이들을 극복하는 예배의 일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경우이다.(참조: Walter Bauer ; H. W. Heidland ; E. D. Schm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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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4:23 :: 무릇 지킬만한 것중에 더욱 네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8:17 ::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시105:4 ::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
**렘33:3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시91:14-16 :: *14.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15.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빌 4: 4-9 ::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성의진선의 말씀 따름+회개+순사모)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빼어남-기념)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AMP)) *4. Rejoice in the Lord always [delight, take pleasure in Him]; again I will say, rejoice! *5. Let your gentle spirit [your graciousness, unselfishness, mercy, tolerance, and patience] be known to all people. The Lord is near. *6. Do not be anxious or worried about anything, but in everything [every circumstance and situation] by prayer and petition with thanksgiving, continue to make your [specific] requests known to God. *7. And the peace of God [that peace which reassures the heart, that peace] which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that peace which] stands guard over your hearts and your minds in Christ Jesus [is yours]. *8. Finally, [b]believers, whatever is true, whatever is honorable and worthy of respect, whatever is right and confirmed by God’s word, whatever is pure and wholesome, whatever is lovely and brings peace, whatever is admirable and of good repute; if there is any excellence, if there is anything worthy of praise, think continually on these things [center your mind on them, and implant them in your heart]. *9. The things which you have learned and received and heard and seen in me, practice these things [in daily life], and the God [who is the source] of peace and well-being will be with you.
**고전10:13 ::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사26:1-4 :: ^1.그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2.너희는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 오게 할 지어다 ^3.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4.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 ((AMP)) *1. In that day this song will be sung in the land of Judah: “We have a strong city; He sets up salvation as walls and ramparts. *2. “Open the gates, that the righteous nation may enter, The one that [a]remains faithful and trustworthy. *3. “You will keep in [b]perfect and constant peace the one whose mind is steadfast [that is, committed and focused on You—in both [c]inclination and character], Because he trusts and takes refuge in You [with hope and confident expectation]. *4. “Trust [confidently] in the Lord forever [He is your fortress, your shield, your banner], For the Lord God is an everlasting Rock [the Rock of Ag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