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1.06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115.절대긍정_절대신뢰_절대.기쁨의 화살기도-찬양.사랑과믿음으로.오직공의정의따라정직온전평강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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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시115..


**[주날불러이르소서329]..영광을받으신만유의주여331..크고놀라운평화가335..주를앙모하는자354..주여복을주시기를362..내기도하는그시간364..어두운내눈밝히사366......주내맘에오신후에..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찬송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영원하신 주권적 뜻 이룸안으로 초대하사 영광안에서 예비하신 바 우리의 절대 필요-지족함의 기업-소유-누림-거함의 처소되시다니요!!

우리가 무엇이기에 주님 자신을 누림, 보고 들으며 먹고 마시며 향기 맡으며 입맞추며 품에 안기며 교통하시며 깨닫게 하시며 마음과 심정 생각 알아드리며 절절하게 하나되어 동행하십니까.

...오늘 [나를 향해 베푸시며 이루시기 원하는] 주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뜻 그대로 이루시도록 내려놓고 내어 비워드립니다.

...오직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섬기며 경외함의 궁극을 이루시되, 성령 인도 따라 주신 말씀을 이해하는 총명-명철-통찰 통해 오직 주님의 말씀안의 참생명으로 우리를 충만-변화-성장성숙-넘침으로 신진대사적 변화를 이루신 바 신령한 산돌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하소서

...사랑하리이다, 찬양하리이다, 주 이름 부르오니, 주님 말씀 갈망하는 이웃들의 그 마음을 준비시키신 주님 뜻대로, 주님 주시는 말씀 말하며 주님을 말하며 주님에 대해 말하리이다...주님은 말씀이시며 그 씨앗의 생명이시며 열매를 맺게 하시는 전능자이십니다..주님 이름 영광 나타내소서.


**@불의와 타협말라.

..말씀의 파수꾼으로서 네게 주신 바 주의 말씀을 먹고 성령의 일깨워 깨닫게 하심따라 말하고 행하며 살게 하신 너는 회개하고 네마음을 새롭게 하라

..화살기도를 통해 범사에 헤아려 주 보시기에 옳은 것을 전적으로 추구하라(오직 너만은 일깨우신바 당신의 어떠하심으로 세우신 생명 율례를 순종하여, 주님말씀의 정의따라 주앞에서 정직/온전하게(Q어떠하심의 말씀 그대로 비추어보아 그릇됨을 찾아내어 자인자복/회개-교정...Q이 친히 사시도록 함), 모든이웃마다 공정하게 편벽없이(공변/공평+무사..차별없음...공의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의 영광, 곧 그 말씀하신 바로 그대로 최고최상의 선함을 [남녀노소, 빈부귀천, 선악친소고하를 막론하여 ]차별없이 베풀고 적용함이다!!) 선대하되 사려분별판단하여[마음준비 되지 않은 돼지에게 아무때나 던지지말라] 한결같이 행하라.

..주님마음의 판단따라 일치된 연합의  동행, 이것을 기억하고 유념하라.

..마음중심에 결단하고 일심으로 행하라..오직 그리스도의 평강을 따르라.

..말씀으로 친히 일깨우신 주님은 직접 말씀으로 다시 일깨우사 깨닫게 하시리라.

..그럴듯한 간교한 유혹의 말에 결코 넘어가지 말라!!.

**네마음.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추호의, 바늘만한 틈조차 허용말라 ..사려분별따라 마음의 댐을 JC이름과 보혈로 완전하게 관리하라..


1.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2.  어찌하여 뭇 나라가 그들의 하나님이 이제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사탄은 기독자의 넘어짐, 그것을 고소해 한다는 것을 유의하라.

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4.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8.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9.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0.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2.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13.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곧 너희와 너희의 자손을 더욱 번창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5.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16.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17.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18.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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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시115

1.  주님,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돌리지 마시고, 오직 주님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십시오. 그 영광은 다만 주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에 돌리십시오.

2.  어찌하여 뭇 나라가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말하게 하겠습니까?

3.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하시고자 하시면 어떤 일이든지 하실 수 있으시다.

4.  이방 나라의 우상은 금과 은으로 된 것이며,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다.

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볼 수 없으며,

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고,

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고, 목구멍이 있어도 소리를 내지 못한다.

8.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나 우상을 의지하는 사람은 모두 우상과 같이 되고 만다.

9.  이스라엘아, 주님을 의지하여라. 주님은, 도움이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신다.

10.  아론의 집이여, 주님을 의지하여라. 주님은 도움이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신다.

11.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주님을 의지하여라. 주님은, 도움이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신다.

12.  주께서 우리를 기억하여 주셔서 복을 주시고,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며,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신다.

13.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니, 낮은 사람, 높은 사람, 구별하지 않고 복을 주신다.

14.  주께서 너희를 번창하게 하여 주시고, 너희의 자손을 번창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15.  너희는 하늘과 땅을 지으신 주님에게서 복을 받은 사람이다.

16.  하늘은 주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다.

17.  죽은 사람은 주님을 찬양하지 못한다. 침묵의 세계로 내려간 사람은 어느 누구도 주님을 찬양하지 못한다.

18.  그러나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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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시115

1.  Not unto us, O LORD, not unto us, but unto thy name give glory, for thy mercy, and for thy truth's sake.

2.  Wherefore should the heathen say, Where is now their God?

3.  But our God is in the heavens: he hath done whatsoever he hath pleased.

4.  Their idols are silver and gold, the work of men's hands.

5.  They have mouths, but they speak not: eyes have they, but they see not:

6.  They have ears, but they hear not: noses have they, but they smell not:

7.  They have hands, but they handle not: feet have they, but they walk not: neither speak they through their throat.

8.  They that make them are like unto them; so is every one that trusteth in them.

9.  O Israel, trust thou in the LORD: he is their help and their shield.

10.  O house of Aaron, trust in the LORD: he is their help and their shield.

11.  Ye that fear the LORD, trust in the LORD: he is their help and their shield.

12.  The LORD hath been mindful of us: he will bless us; he will bless the house of Israel; he will bless the house of Aaron.

13.  He will bless them that fear the LORD, both small and great.

14.  The LORD shall increase you more and more, you and your children.

15.  Ye are blessed of the LORD which made heaven and earth.

16.  The heaven, even the heavens, are the LORD's: but the earth hath he given to the children of men.

17.  The dead praise not the LORD, neither any that go down into silence.

18.  But we will bless the LORD from this time forth and for evermore. Praise the LORD.

=====시115 개요======

1 우리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1).

2. 우상들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2-8).

   (1) 그를 신뢰하고 그의 약속과 축복을 신뢰함으로써 그렇게 해야 한다(9-15).

   (2) 그를 송축함으로써이다(16-18).

어떤 사람들은 이 시편이 하나님의 교회가 큰 환난과 고통에 처한 상황에서 기록되었다고 생각한다. 

적대자들이 오만하고 위협적인 대상이 될 때, 교회는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 신뢰를 두며, 그렇게 함으로써 승리의 개가를 올려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거룩한 승리로써 이 시편을 노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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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숭배의 허구성(시 115:1-8)

여기에 자기 자랑과 우상 숭배자들의 비난에 답하기에 충분한 배려가 나타나 있다.

Ⅰ. 자랑하는 것은 여기에서 영원히 배제하고 있다(1절). : 자기 의/자기주장, 자기자랑/자기자산 자기연민/자기애착...이것이야말로 자기숭배[우상숭배]이니 십자가에 못박아야 함..

우리의 기도와 찬양에는 우리의 업적에 대한 견해가 어떤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게 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중심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1. 우리는 어떤 자비를 받았고, 어떤 예배를 경험했으며, 어떤 성공을 얻었는가? 

우리는 그 영광을 우리들 자신에게 돌리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깊이 생각하라..내 영혼아,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안타까움/겸비(성육신의 섬김과 십자가희생대속)-존귀히여겨 사랑-기쁨으로 선대하시며 임마누엘 HS통해 상호누림-상호거함-상호소유-상호기업됨을 그 언약하심대로 허락하사 이루심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위해 어떤 것을 한다고 생각지 말아야 하며, 우리 자신의 의로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것을 받을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한 것은 그의 은총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지며, 우리가 갖는 모든 선한 것은 그의 전적인 자비의 은사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크신 찬양을 받으실 분이다.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신 8:17)고 말하지 말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내게 이렇게 크고 친절한 일을 베푸셨다고 말하지 말라(신 9:4). 

아니다. 우리의 모든 노래는 다음과 같은 겸손한 가사로 불려야 한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리고 반복해서 “여호와여,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시고,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모든 영광이 주의 이름에 주어지게 하소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향해 행해진 선한 것은 무엇이든지 그의 자비와 그의 진리를 위해 이루어졌다. 

그는 그의 자비를 영화롭게 하시며, 그의 약속을 성취하신다. 

우리에게 씌워진 모든 면류관은 “보좌에 앉으신 그”의 발 앞에 던져져야 한다. 그곳이 그 마땅한 위치다.

2. 우리는 (우리를 살게 하시는 여호와의 자비-긍휼-은혜-평강!!) 자비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하나님과 씨름하고 있는가? 

우리는 기도로써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위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의 이익보다 그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한다. 

“여호와여, 그리 하소서. 우리에게 그리 행하소서. 우리가 그 신뢰나 위로를 갖는 것보다 주의 자비와 진리가 그 영광을 받으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에서 있어야 할 가장 고상하고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주기도문에서 최초의 간구를 이루고 있으며, 나머지 모두를 안내하고 있다. 즉,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이다. 

그 이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간구가 나온다. (주님 예비하심의 약속 그대로 공급하시리라..주님의 신실하심 바로 그대로 믿고 HS안에서 힘써 부지런히 궁구하며 일하며 섬기라, 주께 하듯 하라..일상의 모든 일이 주님의 행하심이요, 주님의 영광따라 섬김이니!!)

우리의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 또한 우리를 만족케 한다. 

우리는 어떻게 될지라도 오직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요 12:37-28 참조) 해야 한다.

Ⅱ. 열방의 비난이 여기에서 침묵 당하며, 정당하게 반박되고 있다.

1. 시편 저자는 열방의 비난을 탄식한다(2절). 

“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1) “어찌하여 저희가 그렇게 말하는가? 저희는 하나님이 그의 섭리로 어느 곳에나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며, 그의 약속과 은총으로 항상 우리에게 가까이 하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가?”..호흡보다, 의식(의식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무의식에서부터 피부까지 남김없이) 주 영은 완전히 초월적으로 상호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믿는 이와 하나되어 계시다..매호흡마다 중심으로 주이름 부르라!!...영혼이란 산 혼, 곧 내주하시는 루아흐(HS)를 따라 한영되어 HS을 호흡하는 자가 참생명따라 사는 네페쉬(중생한/거듭난) 영적 참자아이니.. 

(2) “어찌하여 하나님은 그들이 그렇게 말하도록 허용하시는가? 아니, 왜 이스라엘을 낮추셔서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취향을 허용하시는가? 여호와여, 우리의 소생-회복을 위해 친히 나타나소서. 주는 주의 정당성을 입증하시며,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2. 그는 저희의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을 주신다(3절). 

“저희가 우리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가? 우리는 그가 계신 곳을 말할 수 있다”고.

(1) “천상의 세계에 그의 영광과 현존이 있다.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다. 이방의 신들이 있지 않은 하늘에 계신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시야 밖에 계신다. 그의 위엄이 접근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존재가 의심스럽다고 말할 수 없다.”

(2) “낮은 세계에 그의 권능의 산물이 있다. 

그는 그의 계획에 따라 언제어디서나 친히 제한없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다. 

그는 주권적인 지배와 무제약적인 우주적 영향력을 행사하신다. 

너희는 그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가? 그는 모든 것의 처음과 나중에 계시며, 우리 중에 있는 어떤 자에게서도 멀리 계시지 아니한다.”

3. 그는 저희의 물음을 그들에게 되돌리신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시는 하나님은 실상 그들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열방의 신들은 무엇이냐?”고 되물으신다.

(1) 하나님은 저희의 신들이 비록 형체가 없지는 않으나, 무의미한 것임을 보여준다. 

처음에 우상 숭배자들은 해와 달을 숭배했다(욥 31:26).

그러한 숭배는 악한 것이었지만, 그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것보다는 덜 악한 것이었다(악인들은 점점 더 악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신상들을 예배하는 일이었다(4절). 그 우상의 재료는 땅에서 파낸 “은과 금이요”(“인간은 그것들을 광산에서 비천하고 더러운 것으로 발견했다”―허버트), 그것은 돈을 만들기에 적절할 뿐 신을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것을 신상으로 만든 것은 기술공이었다. 그 우상들은 인간의 헛된 상상의 피조물이며 “사람의 수공물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 어떠한 신성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이 하나님의 손으로 지어졌다면(확실히 그렇게 지으셨으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음이 영광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은 터무니없으며, 인간의 형상으로 하나님을 만드는 것보다 하나님께 대한 더 큰 불명예는 없다.

그 주장은 논박될 수 없다. 이것은 “공장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다”(호 8:6). 여기에서 이러한 우상들은 가장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미천한 조롱거리로 나타나 있다. 

그 우상들은 어떤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성전보다도 장난감 상점에 더 적합하며, 어른들이 갖고 놀기보다는 어린애들의 노리개로서 적당하다.

화가와 조각가와 조형가는 그들이 맡은 부분을 아주 잘 만들었다. 그들은 우상에다가 “입과 눈과 귀와 코와 손과 발”을 만들어 넣었지만, 그 안에는 아무런 생명도 없고, 감정도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가질 수도 없는 우상보다 차라리 죽은 시체를 예배하는 편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시체는 전에 그 안에 생명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상들은 그들을 모욕하는 자들에게 응해 “말하지 못한다.” 능란한 제사장도 그들에 대해 말해야 한다. 바알의 신상에는 “아무런 음성도 없으며, 누구에게도 응답해 주지 아니했다.” 바알 신상들은 그들 앞에서 예배하는 자들이 엎드리는 것을 “보지 못하며”, 더욱이 저희의 짐과 결핍된 상황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저희의 기도소리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듣지 못한다.” 그들은 분향의 향기가 아무리 강하고 좋다고 할지라도 “맡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선물을 “만지지 못하며”, 더욱이 저희에게 예배하는 자들에게 어떠한 은사도 베풀 수 없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저희의 손을 미칠 수 없다.” 그들은 그들에게 애원하는 자들의 소생을 위해 “걷지 못하며”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다. 아니, 그들은 저희의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한다.” 그들은 생명의 가장 작은 표징이나 징후도 갖고 있지 못하며,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우상의 사제들은 그들이 앞에 있는 것처럼 제사하는 척하며 그들을 신으로 부른다.

(2) 이로부터 하나님은 그 숭배자들의 어리석음을 추론해 낸다(8절).

“우상을 만드는 자”는 저희의 재간을 보여주며, 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재치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신으로 “의지하는 자”는 저희의 우둔함과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감정 없는 목석과 같을 뿐이다.

우상섬김이, 그들은 창조의 역사에서 진실 되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존재하심을 “보지 못한다.” 모든 말과 언어에서 그의 영광을 선포하는(19:2-3) 밤과 낮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들은 이렇듯 어리석은 꼭두각시를 예배함으로써 점점 더 자신들을 어리석게 한다. 

영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먼 곳에 떨어질 뿐만 아니라, 육욕의 수렁으로 그들 자신들을 침식시키게 된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셨다”(롬 1:28). 

“그것을 의지하는 자”는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고, 불합리한 일을 행하며, 그것들과 같이 무력하고 쓸모 없는 자들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혼동 속에 빠지게 됨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알아야 하며, 그리하여 저희의 신들이 모두 사라질 때 저희가 혼이 나서 정신을 차리도록, 그들 우상의 허구성과 우리 하나님의 실존을 밝혀야 한다(렘 10:3-11; 사 44:9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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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격려됨(시 115:9-18)

이 대목에서는 다음 교훈을 듣는다.

Ⅰ. 하나님께 신뢰를 두도록 집요하게 우리 모두를 권유하고 있다. 

우리의 현재의 고통을 야기시키는 열방의 모욕 때문에 그에 대한 우리의 신뢰가 흔들릴 만큼 시험받지 말아야 한다. 

죽은 우상을 신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그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그는 “도움이시요 방패”이시기 때문이다.

1.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의지해야 한다. 

한 집단인 이스라엘 국민이 그 공적 이해관계를 위해서나, 이스라엘인 각 개인이 그 사적 이해관계를 위해, 모든 것을 해결하시는 하나님께 의탁해야 한다. 

하나님은 가장 좋도록 모든 일을 해결하시며, “저희의 도움이요 방패”가 되심을 믿어야 한다.

2. 제사장들과 여호와의 방백들과 “아론의 집”의 모든 후손들은 “여호와를 의지하라”(10절). 

그들은 대부분 비방을 받고 적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특별히 돌보신다. 

그들은 최악의 때에도 하나님을 기꺼이 신뢰하며, 그에게 충실한 복종을 한 사실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고 있다.

3. 이스라엘 후손은 아니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며” 예배하고, 그에게 의무를 양심껏 지키는 개종자들도 “여호와를 의지”하게 하라. 

그는 저희를 파멸에 이르게 하거나 저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이다(11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곳에는 그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그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들은 그것을 의뢰할 것이다.

Ⅱ.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크게 격려하고 있다. 

그리고 왜 우리가 안전한 만족 속에서 우리를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이유가 나와 있다.

1. 우리가<지난> 경험한 것을 생각해 보자(12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끊임없이 그리고 특별한 경우에 따라 현저하게 우리를 돌보셨다. 그는 결코 우리를 기억하지 않으신 적이 없다. 

그는 항상 우리의 처지와 부족한 상황과 죄의 짐을 기억하시며, 그에게 드리는 우리의 기도를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그의 약속과 그와 우리 사이에 있는 언약관계를 기억하신다. 

모든 우리의 위로는 “우리에게로 향하시는 하나님의 생각”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비록 그를 잊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우리를 생각하신다.” 

우리가 그를 신뢰하는 일에 전념한다면, 그가 신실하심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우리가 <지금과 향후> 기대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우리를 위해 그가 행하신 것으로부터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라”는 고백을 할 수 있다. 

우리의 “도움과 방패”가 되어주신 그는 장차도 또한 그렇게 해주실 것이다. 

전에 “우리의 천한 상황에서도 우리를 기억하셨던” 그는 장차도 우리를 잊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전과 같은 분이시며, 그의 권능과 인자하심도 시종 같으며, 그의 약속도 손상되지 않는다.[영원자존불변무궁무한,성의진선, 자은노인진, 사희화오자양충온절]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에 구원하셨던 그가 지금도 구원을 행하시며, 또 앞으로도 행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는 자기의 모든 백성에게 축복을 선포하셨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에게 선한 것을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더욱 좋은 것을 행하신다. 

그가 축복하는 자들은 실제로 축복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집에도 복을 주시리라”고 한 것은 특별한 약속이다. 

즉, 그는 국가를 축복하신다. 즉 시정적(市政的) 측면에서 백성에게는 복을 주신다. 

또 “아론의 집에 복을 주시리라.” 즉, 교회와 목회가 그의 백성들에게 신앙적인 측면에서 복을 줄 것이다. 

제사장들은 백성을 축복해 주는 자들이었다. 그것이 저희의 직능이었다(민 6:23).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제사장들을 축복하셨다. 그래서 저희의 축복이 복을 받았다. 

아니! 그는 저희가 이스라엘의 집이나 아론의 집에 속해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13절).

베드로가 깨닫기 전부터 이것은 사실이었다. 즉,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하나님은 젊거나 늙거나 “대소(남녀노소, 빈부귀천강약)를 무론하고 저희에게 복을 주신다.” 

하나님은 선한 자들을 위해 곧 축복을 준비하시며, 세상에서 한 초라한 자들에게나 두각을 나타내는 자들에게 축복을 마련하신다. 

가장 큰 자도 그의 축복은 필요하며, 그를 경외하는 가장 미천한 자에게도 축복은 거부되지 아니한다. 

약한 자와 강한 자는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어린양과 양떼가 된다. 그것은 약속되었다(14절).

여호와께서 너희를 더욱 번창케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축복하는 자는 번창하게 된다. 최초의 그리고 가장 고대의 축복 중의 하나는 이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나님의 축복은 번창케 하신다. 

가족을 형성하는 수적인 증가와 재산과 명예를 더하는 부유함의 증가는 물론이요, 특히 하나님의 축복은 영적인 축복도 가져온다. 

그는 너희에게 지식과 지혜의 증가는 물론 은혜와 거룩함과 기쁨을 번창케 함으로써 축복해 주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번창케 하시는 축복을 받은 자들은 실로 점점 더 지혜롭고 선해지며, 하나님과 하늘에 더욱 적합하게 된다.

(1) 부단하고 영속적인 증가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되었다. 

그는 너희를 더욱 번창케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살아 있는 한, 너희는 계속 번창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너희는 비추이는 광명처럼 완전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잠 4:18).

(2) 상속상의 증가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되었다. 

너희와 또 너희 자손을 더욱 번창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부모가 저희 자녀들이 지혜와 강건함에서 번창함을 보는 것은 하나의 위로가 된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자손에게 돌아갈 축복이 있다. “너희는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15절). 

너희의 자손도 그러하리라. “그것들을 보는 모든 자는 인정하게 될 것이요, 저희는 여호와께서 축복한 자로다”(사 59:9).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들은 “여호와를 의지하며”, 그를 저희의 “도움과 방패”로서 의지하기에 충분한 격려를 얻는다. 바로 그가 “천지를 지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의 축복은 아낌없다. 그는 그 자신에게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저희는 부요하다. 

우리가 그를 경외하고 신뢰할 때는, 모든 것을 명하사 우리를 위해 작용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지를 지으신” 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며, 또 그렇게 행하실 것이다.

Ⅲ.  끊임없는 찬양을 보전하리라는 결심으로 시편을 결론짓는 시편 저자의 모범을 보며, 우리도 [전존재, 무의식에까지점유하도록]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1.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실 분이다(16절). 그는 크게 찬양 받으실 분이다.

(1) 그의 영광이 높으시기 때문이다. 

그가 하늘에 예비하신 그의 보좌와 궁성이 얼마나 장엄한가를 보라. “하늘은, 모든 하늘들은 여호와의 하늘이라.” 

그는 하늘에 있는 더 좋은 세상에서의 모든 빛과 희열과 보화의 정당한 주권자이시다.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완전히 소유하시는 분이다. 

그는 무한하게 밝고 행복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2) 그의 인자하심이 크기 때문이다. 

그가 “땅을 인생에게 주셨도다.” 그가 땅을 창조하실 때 저희의 필요를 위해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거할 곳을 마련하셨다. 

그는 단지 그 소유장(所有長)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땅은 여호와의 땅이며, 그로부터 충만한 것이 나온다.” 

그는 감사할 줄 모르는 하인들을 포도원으로부터 내어쫓으며, 그들로부터 세금과 봉사를 기대한다

그가 저희에게 땅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눈은 저희에게서 떠나지 않으며, 저희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그에 대한 의무 수행과 책임추궁을 반드시 저희에게 요청하시며 결산하신다.

칼빈은 세속적인 사악한 사람들이 그 당시 이 성경을 곡해해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탄식한다. 

실로 우리 세대에도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면서, 하나님이 땅을 인간의 자녀들에게 주었기 때문에 더이상 돌보지 않으며 관심하지 아니하므로, 마음대로 하고 그 가장 좋은 것을 자기들의 몫으로 해도 괜찮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말하자면, 마치 저희에게 먹이처럼 던져진 것이라고 본다. 가능한 한 그것을 포획하라고 한다. 

인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관대하심과 그로부터 제기되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의무가 이와 같이 남용됨은 슬픈 일이다. 

가장 높은 하늘로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자들을 살피신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가 그들에게 땅을 주셨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늘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은 더욱 명백하다.

2. 죽은 자는 그를 찬양할 수 없다(17절). “적막한 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 

실제로 영혼은 육체로부터 분리된 상태에서 살아 있을 수 있으며, 그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된다. 

신실한 자의 영혼은 저희가 육에 속한 죄의 짐으로부터 구원받은 후하나님을 찬양하며, 끊임없이 찬양한다. 

그들은 안전한 빛의 세계에까지 올라가며, 끊임없는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몸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 

죽음은 시련과 갈등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끝나게 하며, 땅에서의 우리의 모든 예배에 대한 종말을 고한다. 

무덤은 어둠과 침묵의 땅이며, 거기에는 아무런 일도 봉사도 없다. 그들은 저희의 적들의 손으로부터 구출해 줄 것을 하나님께 탄원한다. 

“여호와여, 저희가 우리를 멸하면 우상들이 들어오고, 당신을 찬양하며 주의 이름을 간직할 자가 없고, 우상 숭배자들에 대해 증거를 담당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죽은 자는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우리는 열심히 이생의 위로를 위해 찬양해야 한다(30:9 참조).

3.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찬양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18절)...찬양이 거듭난 너의 제2의 천성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바로 그것이 네 영혼에 새겨져 자연스럽게 넘치게 하라. 

“그러나 우리는, 살아 있는 우리는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우리와 우리 뒤에 올 자들은 모두 이제부터 영원까지, 종말까지 그것을 하리로다. 우리와 우리가 전할 모든 자가 지금부터 영원까지 행할 것이로다. 죽은 자는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우리가 그것을 더욱 부지런하게 할 것이로다.”

(1) 다른 사람들은 죽었고, 그래서 저희의 예배에는 종말이 임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 더욱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나의 종 모세는 죽었다. 그러므로 이제 [새로운 찬양의 세대!!]여호수아는 일어나라!”

(2) 우리 자신들도 곧 머지 않아 침묵의 땅에 내려가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항기쉬기범감으로]우리는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그의 업적을, 밤이 오기 전에 그를 찬양하기 위해 우리의 시간과 업무를 증진시켜야 한다. “밤이 오면 아무도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12절). 그는 우리를 선대하실 것이므로, 우리는 그를 “송축하며”, 찬양해야 한다. 

우리가 받는 것에 비하면, 너무 빈약하게 보답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우리는 우리 자신들만 그렇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우리 함께 그를 찬송하자. 우리가 우리의 처소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의 처소에서 그를 찬양하라. 

우리가 잘 때에도[무의식중에라도, 그 어디에서나, 늘 항상, 합당하게] 그를 찬양하자

그는 “영원까지 찬송 받으실 분이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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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7:6)]]
[마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해석하기 어렵고 곤란한 본문
함께 읽은 마태복음 7장 6절은 여러 관점에서 해석하기 어렵고 곤란한 본문입니다. 
그 내용이 기독교의 사랑과 긍휼, 은혜와 자비의 관점과 상반될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7장의 문맥과 연결 짓기가 매우 어렵고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분명한 의도와 목적으로 하셨을 것이고, 마태는 복음에 필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말씀을 보충적으로 설명해줄 자료가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 부분 말고 정경화된 복음서(4복음서)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서 교육적 가르침을 위해 기록된 “바실리데스의 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있고, 그 출처가 불분명한 “도마 복음서”에서 약간 수정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교리책으로 사용된 “디다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거기서는 “거룩한 것”이 성만찬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거룩한 것에 대한 여러 주석가들의 견해 
이 난해한 구절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상반절의 은유적인 표현들 속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욕설에 사용되곤 하던 이 단어들, “개”와 “돼지”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가? 그리고 “거룩한” 것과 “진주”는 여기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입니다. 
거룩한 것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로 설명되었습니다. 본 절에 대한 주석가들의 해석을 살펴보고, 성경신학적인 측면에서 분석, 비판한 후 본문의 진의를 해석하도록 하겠습니다.
----거룩한 제물 
첫째로, 거룩한 것의 헬라어인 “하기오스”가 성전 예식(출22:31, 레22:14, 렘11:15, 학2:12)때에 제공되는 거룩한 음식을 의미한다는 주장입니다. 
“트렌취”의 주석에 의하면 “제사 음식”은 개들이 먹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 그것을 개들에게 던질 경우 속된 일로 여겨졌고, 따라서 그 음식물은 더 이상 거룩한 성격을 지니지 못하고 마치 배설물처럼 여겨졌다고 합니다.(출22:31)
----돼지 코의 금 고리 
둘째로, 어떤 주석가는 “거룩한 것”의 히브리어 “카도쉬”는 잠언11:22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의 고리(네젬)를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잠11:22]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
따라서 본 절 전체는 금 귀고리를 개에게,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라고 하는 의미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의 진리 
셋째로 복음전도자 웨슬리에 의하면 거룩한 것은 천국 복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를 이단자들에게 결코 전파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개는 대게 썩은 음식을 먹고, 토했던 것을 도로 먹으며(잠26:11, 벧후2:22) 심지어는 사람의 살까지도 먹는다고 설명합니다.(왕상14:11, 렘15:3) 
한편 개가 인간에게 적용될 때는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개와 돼지에 대한 견해 
돼지는 파멸의 상징으로, 잠언 11:22에서는 분별력이 없는 아름다운 여인을 돼지의 코에 달린 금 고리로 표현하였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에 의하면 개들과 돼지들이 의미하는 바는 도덕적으로 불결한 자들이나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없는 자들이라든지 또는 참 신앙이 없는 이방인들을 모두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고의로 모욕하는 삶을 삶으로써 그들의 영적 어두움이 더 이상 치료 불가능한 것임을 보여주는 악한 자녀들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복음이 전해질 때 끝까지 거절하는 자요 따라서 분명히 버림받은 자이고 스스로 정죄 받은 자들입니다.
[딛3:10] *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11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이처럼 개란 도덕적, 영적으로 부정하고 불결한 사람을 상징하며, 돼지란 완고한 고집과 악의를 지닌 자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개를 적대적 박해자로, 돼지는 악의 영향을 받아 선에 대해 무능해진 부정한 자를 가리킨다고 하였습니다.
===진주에 대한 견해 
진주는 마태복음 13장 45절에서는 “천국 복음”을 상징하기도 하였습니다. 
“로젠뮐러”에 의하면 이 진주는 가장 귀한 것을 상징하는 팔레스타인의 특유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진주란 [복음진리를 살아낸 바]가장 거룩한 윤리적 소유물이라고 합니다.   
===발로 밟고..... 찢어 상하게 한다는 것은.. 
칼빈에 의하면 진주나 거룩한 것을 발로 밟는 행위는 [거룩한 진리, 곧 복음의 가치에 대해 아직 인식하지 못한 상태의] 우둔한 무감각을 의미하는 말로 돼지가 행하는 행동으로서, 찢어 상하게 하는 행위는 [박해하고 잔멸하려는] 일종의 광기를 의미한다 하였습니다. 
이렇게 발로 밟는 행위는 천국 복음의 진리를 듣고서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쾌락을 추구하는 것으로 찢어 상하게 하는 행위는 순수한 가르침과 그 사역자들을 온갖 모독적인 발언으로 헐뜯어 사람들로 하여금 선행에 대한 열심과 구원에 대한 모든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행위는 모두 제자들의 단체를 분열시키고 파괴하는 악의적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평가와 비판 
여러분 종교개혁자들과 성경 주석가들의 해석을 읽어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전체적으로 보면 이런 원리입니다. 
거룩한 것, 진주는 기독교 진리를 가지고 있는 제자들과 교회를 가리키고, 개와 돼지는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고 대적하는 이방인과 이교도들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어떤 어려움에 직면 하냐면 우리는 복음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 편, 이방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이나, 마귀, 혹은 불쌍한 자들 이라는 이상한 이원론이 생기게 됩니다. 
사실 이러한 이원론적인 이해가 완전히 틀렸다고 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견해가 전부 다 옳다고 하기에도 뭔가 부족한 듯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거역하는 자들
본문을 원문을 근거로 직역을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 거룩함을 그 개들에게 넘겨주지(디도미) 말라
너희의 그 진주들을 그 돼지들 앞에 던지지(발로)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짓밟는다. (카타파테오)
그것들을(그들을) 그들의 그 발로
그리고 변심하여(스트레포) 너희를 무너뜨릴 것(레그뉘미)이다
----개와 돼지는 
복음(산상수훈의 말씀)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칼빈이 지적하듯이] 선택 받지 못한 유기된 자들, 혹은 복음전도를 받았지만 [지금 당장] 받아들이지 않는 강퍅한 영혼을 가리킨다고 [섣불리] 단정 지을 수는 결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류는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수긍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돌아봅시다. 오히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개와 돼지의 존재로 있었고, 지금은 그 짐승과 같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주님의 때에 주님 은혜를 통해서 믿음안으로 들어오게 되었고]들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을 짐승으로 많이 표현합니다.
[시49:12-15]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3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 (셀라) 14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15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
----성경이 말하는 “개” 
개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퀴온(퀴나리온)”인데 신약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습니다.
[마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 15:26-27] *26.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알토스)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눅 16:21]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빌 3: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벧후 2:22]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계 22:14-15] *14. 자기 두루마기(스톨레)를 빠는(플뤼노)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술객들과(팔마코스) 행음자들과(포르노스) 살인자들과(포뉴스) 우상 숭배자들과(에이돌롤라트레스) 및 거짓말을(프슈도스)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복음서에서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말하는 개는 하나님의 언약적 선택에서 제외된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단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는 유대인들의 신학적 선민의식을 부수고 개와 같은 취급을 받았던 이방인들도 JC의 복음(알토스, 양식, 진리)을 통해서 주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서신서와 계시록에서 
서신서에서는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여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온 자들 중에 여전히 옛 생활(유대교적 율법주의)에 갇혀 있는 자들을 향한 질책과 경계의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계시록에서는 구원의 궁극적 상태인 생명나무로 나아가지 못하는 자들을 일예로 “개”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은 성경의 진술을 종합하면 웨슬리나, 칼빈, 그리고 어거스틴이 지적했던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 그들이 교회 안에서 거룩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위장을 하든, 교회 밖에서 기독교는 비난하고 박해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그들의 전존재적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끝까지] 거부하는 자들을 지칭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어디에서 구원을 받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생명의 양식을 먹은 우리들의 근본이 무엇이며, 어떤 위치와 처지에서 구원을 받았는지 돌이켜 보고 앞으로 나아갈 바를 바르게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이방인이고 복음에서 유기된 자이며,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은 자라는 이원론적인 이분법으로만 우리 자신과 이웃과 역사를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고집스럽고 왜곡된 종교적 신념에 갇혀있는 종교인으로 기독교를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기심에 가득한 [복음적 사랑을 떠난]자가 됩니다.
----성도와 불신자의 차이 
거룩한 진리의 복음을 귀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개와 같은 우리가 그 거룩한 복음의 진리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진주와 같은 소중한 은혜의 양식을 먹지 못했다면 우리 역시 이 역사 속에서 내 배의 욕망만을 위하여 살 수 밖에 없는 돼지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만 성도와 불신자의 차이는 이 복음의 진리를 받아먹어 그 양식과 그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앞에 개였고, 돼지였는데,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정하신 바로 그때에] 그 복음씨앗이 떨어져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도로 회복한 것입니다. 
바로 짐승의 밥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의 내주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복음을 거역하는 자들의 실존 
그러니까 이 말씀은 거룩하고 진주와 같은 복음의 진리를 개와 돼지들에게 전하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발로 밟고, 그 진리를 전하는 전도자를 공격하고 살해하는 자들의 실존이 개와 돼지가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눅 2:7] *7.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마8:28-32]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눅 15:15-16]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요6:48-58]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세상이 복음을 거역하는 이유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심지어 교회 다닌다고 하는 자들이 그 많은 종교생활을 통해서 예수의 살과 예수를 피를 마시지 않고 있을까요? 
그들의 현재적 실존이 개와 돼지와 같은 짐승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먹는 자는 그 양식 때문에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예수의 살과 피를 먹은 짐승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선포된 JC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여 자신이 귀신이며(악한 말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돼지인 것을 인정 않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심판의 근거 
더욱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교사들을 거부하고 죽여 심판의 근거가 되는 것(막12:1-12)을 알지 못한 채[그래서 거의 발악하고 박해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룩하고 진주와 같은 이 복음의 진리가 자신의 마음이 된 자는 이 역사 속에서 그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 발로 짓밟히며 찢겨짐을 당하게 됩니다.
[마5:10-12]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복음이 전달되는 원리 
거룩하고 진주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개와 돼지인 우리에게 먹혀서 우리가 그 진리를 마음에 담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마땅히 당할 바]성도의 고난과 박해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담지한 성도는 세상을 위한 양식으로 그들에게 잡아 먹혀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달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선대하며, 기도하며 주님음성듣고 사울에게 나아간 아나니아처럼 주님을 따르며, 세심한, 깨어 있는 영성, 찬양과 기도로 주안에 머무름의 영성으로 중보하며 주께서 저들에게 복음 듣는 마음을 준비시켜 주시기를 기다립시다))
개와 돼지인 이 세상의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길은 복음의 진리를 마음에 가지고 있는 성도가 그들에게 잡아먹힘을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가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듯이 말입니다. (고전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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