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0.22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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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호제5장  우상 숭배를 경고하다
1.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
2.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
3.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4.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5.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6.  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7.  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
8.  ○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9.  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폐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반드시 있을 일을 보였노라
10.  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11.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도다
12.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13.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14.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15.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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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ople’s Apostasy Rebuked 5
1 Hear this and pay close attention, O priests! Give heed, O house of Israel! Listen, O house of the king! For the [pronounced] judgment pertains to you and is meant for you to hear, Because you have been a snare at Mizpah And a net spread out over Tabor (military strongholds on either side of the Jordan River).
2 The revolters have gone deep into depravity, But I [the Lord God] will chastise them all.
3 I know Ephraim, and Israel is not hidden from Me; For now, O Ephraim, you have played the prostitute and have worshiped idols; Israel has defiled itself.
4 Their [immoral] practices will not permit them To return to their God, For the spirit of prostitution is within them And they do not know the Lord [they do not recognize, appreciate, heed or cherish Him].
5 But the pride and self-reliance of Israel testifies against him. Therefore Israel,  and [especially] [a]Ephraim, stumble and fall in their wickedness and guilt; [b]Judah also has stumbled with them.
6 They will go with their flocks and with their herds To seek the Lord [diligently searching for Him], but they will not find Him; He has withdrawn from them [refusing to hear the prayers of the unrepentant].
7 They have dealt treacherously against the Lord, For they have borne illegitimate (pagan) children. Now the [c]New Moon will devour them along  with their land [bringing judgment and captivity].
8 Blow the horn in Gibeah, The trumpet in Ramah [the lofty hills on Benjamin’s northern border]. Sound the alarm at Beth-aven: “Behind you and coming after you [is the enemy], O Benjamin [be on guard]!”
9 Ephraim will become a desolation in the day of rebuke; Among the tribes of Israel I declare what is certain.
10 The princes of Judah are like those who [d]move a boundary marker; I will pour out My wrath on them like [an unrestrained flood of] water.
11 Ephraim is oppressed; he is broken and crushed by [divine] judgment, Because he was determined to follow man’s command [e](vanities, filth, secular precepts).
12 Therefore I am like a moth to Ephraim And like dry rot to the house of Judah [in My judgment against them].
13 When Ephraim saw his sickness, And Judah his wound, Then Ephraim went to Assyria [instead of the Lord] And sent to [Assyria’s] great King Jareb [for help]. But he cannot heal you Nor will he cure you of your wound [received in judgment].
14 For I will be like a lion to Ephraim And like a young lion to the house of Judah. I, even I, will tear to pieces and go on [tearing]; I will carry off [the prey] and there will be no one to rescue them.
15 I will go away and return to My place [on high] Until they acknowledge their offense and bear their guilt and seek My face; In their distress they will earnestly seek Me, saying,
Footnotes
Hosea 5:5 Ephraim was the most dominant of the ten tribes in the Kingdom of Israel, and this and other economic factors led to Ephraim becoming a synonym for the entire Northern Kingdom.
Hosea 5:5 The Southern Kingdom or Kingdom of Judah consisted primarily of the tribes of Judah and Benjamin. After the united kingdom divided, Judah continued to be ruled by the kings of the Davidic line. Jerusalem was the capital city of Judah.
Hosea 5:7 Instead of a celebration, judgment would occur at the time of the New Moon Festival; 2:11.
Hosea 5:10 I.e. like an official changing the laws of what is right and what is wrong by changing the legal standards.
Hosea 5:11 “Vanities” is the rendering of The Septuagint (Greek translation of the Old Testament); “filth,” the rendering of the D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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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드러내고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는 것이다.
1. 그들은 책망에 귀를 기울이라는 요청을 받는다(1, 8).
2. 그들은 여러 가지 죄로 기소를 당하는데 그들의 죄를 가중시키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핍박(1, 2).
(2) 영적 간음(3, 4).
(3) 교만(5)
(4) 하나님께로부터의 배반(7).
(5) 군주의 독재와 백성의 순응(10, 11).
3. 그들은 하나님이 그 죄에 대해 노여움을 품으신다는 경고를 받는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악을 알고 계시며 그로 인한 진노를 알리신다(9).
(1) 그들은 자기들의 죄 가운데서 넘어질 것이다(5).
(2)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신 것이다(6).
(3) 그들의 분깃을 삼킬 것이다. (7).
(4)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실 것이며 자기 노를 그들 위에 쏟으실 것이다(9, 10).
(5) 그들은 압제를 당할 것이다(11).
(6)  하나님께서는 은밀하신 심판으로 그들에게 좀 같으실 것이며(12) 공적인 심판으로는 그들에게 사자 같으실 것이다(14).
4. 그들은 환난 중에서 취한 그릇된 경로로 비난을 받는다(13).
5. 그들은 결국 정당한 경로를 취하게 되리라는 것이 암시되고 있다(15). 이런 일들이 보다 광범위하게 표현되면 될수록 우리의 학습 특히 우리에게 대한 권면으로서의 용도는 더욱 광범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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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유다에게 대한 책망(호 5:1-7)
Ⅰ. 온갖 계급과 부류의 사람들이 소환을 받고 있는데 이것은 책망받을 일에 응하게 하기 위함이다(1절). "제사장들아 들으라." 이것은 거룩한 반차에 몸담은 제사장을 가리킨다. 유다에는 제사장들이 있었고 이스라엘에도 아마 많이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십지파 중에는 제사장과 레위족의 성이 여럿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레위인들은 십지파의 반역 이후에도 자기 지역에 머물러 자기 직분의 대부분을 이행했을 것이다(비록 성전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또는 이것은 금송아지의 제사장(거룩한 반차에 몸담은 걸로 자처하는)을 가리킬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그들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너희 이스라엘 족속아(일반 백성) 깨달으라. 왕족들아 들으라." 그들은 모두 주목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민족적 범죄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민족의 심판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성스러운 제사장이나 존귀한 왕족이 죄를 멀리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진노를 멀리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는 것도 기대할 수가 없다는 데 주목하자. 제사장과 왕족은 무척 고귀한 성품을 지니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만일 그들이 남들처럼 죄를 짓는다면 그들의 고귀한 성품도 그들에게 구실이 되지 못할 것이며 그들도 다른 사람처럼 쓰라림을 당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족속도 자기들이 제사장과 통치자에게 오도되었다고 탄원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며 그들과 공동의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보잘 것 없는 평민이라거나 수효가 많다는 것도 그들의 형벌을 면제시키지 못할 것이다.
Ⅱ. 일천 명 대신 단 한 증인이 그들을 쳐서 증거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이다(3절).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한다."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4절).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아셨다. 여호와는 그들이 아무리 교묘히 위장하더라도 그들의 진정한 특성을 아시며 그들이 아무리 숨기더라도 그들은 은밀한 악을 아신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의 지식을 거부해 봐야 하나님의 아심으로 부터 자신을 안전히 위장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과 쟁변하실 때에는 하나님 자신의 인지로써 그들의 죄를 증명하실 것이다. 그래서 죄없다고 변론해봐야 헛 수고일 것이다.
Ⅲ. 그들은 매우 나쁜 일들로 추궁을 받는다.
1. 그들은 백성들을 죄나 곤란으로 끌어들이기에 몹시 재간을 부리며 몹시 부지런했었다. "너희가 미스바에서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서 친 그물이 됨이라" (1절). 그들은 사냥꾼이 사냥감을 잡으려고 산 위에 놓는 덫이나 그물과 같았다. 이스라엘에서 금송아지 숭배가 확립되었을 때 이 우상 숭배의 후원자들과 주창자들은 온갖 기술과 수단을 다 안출해 내가지고 백성들을 금송아지 숭배에 끌어들였고 처음에는 송아지 숭배를 두려워하던 자들이 그 관습에 동화되도록 했다. 우정과 호의를 가장하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꾀어서 범죄케 하는 자들은 올무와 그물로 간주될 것이며 그들의 손은 포승으로 묶여질 것이다(전 7:26). 그러나 그들의 죄에 꾀어들이지 못한 자들에게도 그들은 곤란에 빠뜨리는 올무나 그물 같았다. 혹자는 예루살렘에 엄숙한 절기가 있을 무렵이면 길에 특히 미스바와 다볼 산 위에 첩자를 깔아놓는 것이 이스라엘의 관습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경건한 신앙의 소유자라도 있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지 감시하고 만약 있다면 그를 고발하여 기소당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마귀의 일을 한다. 악마는 자기가 타락시킬 수 없는 자들은 동요시키며 편지 못하게 만든다.
2. 그들은 자기들의 계획을 수행함에 있어 매우 간교하고 잔인했다(2절). "패역자가 살륙죄에 깊이 빠졌다." 하나님의 진리에서 이탈하고 반역하는 자들은 왕왕 아직도 하나님의 진리를 고수하는 자들을 극히 간교하고 무자비하게 박해하는 법이다. 그들에게는 살륙하는 것밖에 안중에 없다. 그들이 목마르게 추구하는 것은 성도의 피다. 그들은 뱀의 머리 뿐만 아니라 뱀의 독아도 갖고 있다. 그들은 살륙하는 일에 깊이 빠져있다. 오! 사탄의 깊음이여! 그 사자들의 악의 깊음이여! 심히 (원의:깊이) 거역하던 자들(사 31:6)의 깊음이여! 더욱이 이것을 악화시킨 것은 그들이 많은 책망과 경고를 받았다는 점이었다. "내가 저희를 다 징책했다" (한글 개역:징책하노라). 선지자는 직분상 징책자였다. 선지자는 그들의 길과 행사의 악함을 그들에게 누차 말했고 그들을 다 따끔히 꾸짖었다. 그는 제사장이나 왕족이라 해서 예외로 돌리지 않았다. 또한 하나님도 그들의 양심과 자신의 섭리에 의해 그들을 다 징책하셨다. 책망하는데도 죄를 짓는 것은 이중의 범죄라는 데 주목하자(잠 29:1).
3. 그들은 행음했다. 그들은 육신의 정욕으로 자신의 신체를 더럽혔고 우상 숭배로 자신의 영혼을 더럽혔다(3절). 그들은 비록 은밀히 이런 죄를 지었고 교묘하게 오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일의 증인이셨다. 아니, 하나님의 꿰뚫으시는 눈은 그들의 속에 있던 음란한 마음(원의:영)을 보셨다. 하나님이 보신 것은 그들의 은밀한 성향과 죄스러운 기질과 죄악에 대한 애착심 그리고 그들에게 대한 죄의 지배력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얼마나 음란한 영(마음)의 세력 하에 있으며 이 모든 쑥과 인진을 내는 쓴 뿌리의 세력 하에 있는지를 보셨다. 그는 그들이 썩고 독이 있는 샘의 세력하에 있는 것을 보셨다.
4. 그들은 하나님과 알고 교제하려는 성향을 전혀 갖지 않았다. 음란한 영(마음)은 그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미혹케 하여 끊임없이 방황하게 만든다(4절).
(1)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고 알기를 원치도 않았다. 아니, 그들은 하나님께 대해 알기를 거절했고 알기를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많은 길을 가고 있는 그들에게 혼란만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러므로 그들의 행위는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로써 그들이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 나타난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의 배반을 완고하게 고집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는 자기들의 하나님이었고 언약상 그들의 것이었다. 그들은 그의 이름으로 불렀고 그를 섬겨야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 숭배에서 이탈했는데 그 숭배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길(행위)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고 진지한 성품을 갖추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할 일에 대해 생각을 쏟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기능과 성령의 도움을 적당히 활용함으로써 우리의 행위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할 수 있다. 이 일을 행하려 하지 않고 마음을 오로지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려 하지 않는(대하 12:14) 자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전부 자기 탓이다. 그들은 죽는다. 그들은 죽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행하려 하는 자들에게는 은혜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3) 그들은 악명 높은 교만죄와 무례죄를 범했다(5절).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가 된다." 그들의 교만은 그들이 하나님과 그의 통치에 대한 반역자라는 것을 쳐서 증거한다. 그 속에 있던 음란한 마음은 창기가 그 옷차림으로써 알려지듯 (잠 7:10) 그들의 번지레하고 흥겨운 예배로 나타났다. 음녀의 경박한 옷은 그녀가 정숙한 여인이 아니라는 것을 그 얼굴에 증명한다. 또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과 그 선지자들이 가져온 증언을 대적한 그들의 교만 그리고 자기들의 형제와 수하 사람들에게 대한 그들의 거만하고 냉소적 태도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란 것을 증거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들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모든 심판으로도 하나님은 의롭다고 인정되셨다. 그의 교만은 그의 얼굴에서 증거가 된다(혹자는 그렇게 읽는다). 이것은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한다" (사 3:9)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교만한 표정을 갖는다.
(4)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로 갔고 그 자녀를 우상 숭배로 양육했다(7절). "저희가 혼인 언약을 무시하여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간음하며 지내는 아내처럼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였다. 이와 같이 돈으로 자기 하나님을 삼는 자나 배로 하나님을 삼으면서 영적" 간음을 범하는 자들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약속을 어기며 그의 기대를 좌절시킨다. 고의적 죄인은 정조를 지키지 않는 자라는 데 주목하자. 그들은 사생아를 낳았다. 즉 그들이 낳은 자녀는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되었고 거짓된 예배 방법으로 양육되었다. 그들은 음란한 데서 난 자녀였고 사생아였다(요 8:41).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 자녀로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을 좇는 데서 돌이킬 뿐 아니라 악한 길로 그 자녀를 훈육하는 자들은 참으로 하나님께 정조를 지키지 않는 자들이다.
Ⅳ. 매우 슬픈 일들이 그들의 운명을 기다린다(1절). "너희에게 심판이 있다. 하나님이 너희와 쟁변하러 나오시고 너희 죄에 대한 그의 노여우심을 증명하신다." "심판이 우리를 향할" 때(원의는 그렇다)는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1. 그들은 "그 죄악을 인하여 넘어질 것이다." 이것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되는 교만" 을 따라 나온다(5절). 그러므로 그 죄악을 인하여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질 것이다. 교만은 몰락을 가져온다는 데 주의하자. 교만은 파멸의 확실한 전조이며 예고자이다.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춤을 당할 것이다. 교만이 증거가 되는 얼굴은 당혹감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들은 넘어질 뿐만 아니라 "그 죄악 중에서 넘어질" 것이다(흠정역). 죄악 중에서 망한다는 것은 모든 파멸 중 가장 슬픈 파멸이다. 그들의 교만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 죄악을 회개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죄악을 인하여, 그 죄악 가운데서 넘어질 것이다. 자기 죄악을 인하여 겸비치 않는 자들은 영원히 자기 죄 중에서 망하기 쉽다는 것을 주의하자. 여기에 유다도 그 죄악을 인하여 그들과 한가지로 넘어지리라는 말씀이 추가되고 있다. 열 지파가 우상 숭배로 인하여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갔듯이 두 지파도 그들의 악한 전례를 따랐기 때문에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것이다. 그러나 전자가 넘어져서 완전히 망한 데 반해 후자는 넘어졌다가 다시 일으킴을 받았던 것이다. 유다에는 성전과 제사장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유다가 만일 이스라엘이나 에브라임과 함께 범죄한다면 그들과 한가지로 넘어질 것이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구한다고 고백할 때 그 은총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6절).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은 주로 유다에게 하신 것 같다. 그들은 자기 죄악 속으로 빠졌고 그 죄악을 인하여 넘어졌기 때문이다.
(1) 그들은 죄악 속으로 빠졌을 때 여호와를 찾았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만을 찾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에게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섬기면서도 참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허울과 잔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이나 다름없이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엄숙한 절기에 나갔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정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적으로 그를 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용납하려 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하나님과 바울 사이에서 나뉘지 않고 전심으로 그를 찾을 때에만 그를 만나게 될 것이다(겔 14:3 참조).
(2) 그들은 자기 죄중에서 넘어지거나 자기 죄악을 인하여 넘어진다고 깨닫자 여호와를 찾았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를 간절히(또는 새벽에, 잠 8:17; 호 5:15) 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발견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은 파멸이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그때에는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피신하게 될 것이고 번제물과 희생 제물로써 그와 화친하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명을 내리신 때에는 그의 진노를 돌이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왕하 23:25, 26). 양떼와 소떼만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가며 자기 심령과 영혼으로 나아가지 않는 자들은 그를 만난 줄로 기대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총은 수양 일천 마리로도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날만한 때에 여호와를 찾지 않는 자들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를 만나지 못할 시간도 있는 까닭이다. 그들은 그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물러 나셨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의 문의를 받지 않고 그들의 기도에 귀를 막으시며 그들의 제물을 고려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가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은 일찍이 그리고 만날 만한 때에 그리고 구원의 날에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3. 그들과 그들의 분깃이 다 삼키울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않았고 이방 자손과 연합함으로써 패역한 가운데 있는 자신을 굳게 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새 달이 그들과 그들의 기업을 다 삼킬 것이다. 즉 그들의 재산과 유업과 그들이 자기 몫으로 취한 모든 것들을 삼킬 것이다. 또는 그들의 기업이란 것은 그들이 하나님 대신 자기들의 분깃으로 선택한 우상을 의미한다. 세상을 자기들의 기업으로 취함으로써 우상으로 삼는 자들은 그 세상과 더불어 멸망할 것이다. 한 달이 그들을 삼킬 것이며 먹어치울 것이다. 이 기간은 일정한 기간이며 짧은 시간이다.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될 때는 곧 끝장을 낼 것이다. 한 달이면 그들의 일을 끝낼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한 달간의 질병으로 얼마나 많이 쇠약해지며 나라는 한 달 간의 전쟁으로 얼마나 피폐하는가! 하나님께서는 "내가 한 달 동안에 그 세 목자를 끓으리라" (슥 11:8)고 말씀하신다. 때때로 하나님의 심판은 죄많은 백성과의 일을 속히 처리하신다는 데 주목하자. 한 달은 여러 해 동안 복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 더 많은 기업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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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위협(호 5:8-15)
Ⅰ. 여기에는 심판의 임박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경보가 울리고 있다(8절). 기브아와 라마는 유다국과 이스라엘국의 경계에 있는 인접 도시들이다. 기브아는 유다국의 전진 기지였고 라마는 이스라엘 왕국의 전진 기지였다. 따라서 이 경보는 양국에 대해 보내는 것이다. 벧아웬 또는 벧엘은 이미 적군의 내습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곳에서는 나팔 소리가 울리지 않고 점령하기 위해 소리치는 공격군의 함성이 피점령민의 울부짖음과 뒤섞여 들린다. 그들로 하여금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적군이 온다. 에브라임 지파는 이미 함몰했다. 베냐민아! 얼마 안 있으면 적군이 네 배후를 습격할 것이다. 다음에는 네 차례가 온다. 떨림의 잔이 돌아갈 것이다" 라고 크게 소리치게 하라. 선지자는 하나님의 쟁변을 율법의 재판으로 묘사했었는데(4:1) 여기서는 전쟁의 재판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 심판하실 때는 이기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는 자기 하나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하나님은 앞에서 심판을 확실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여기서는 심판을 가까운 것으로 말씀하신다. 심판이 바로 문밖에 왔다고 할 때 그들은 매우 놀라고 깨우침을 얻는다. 이 나팔 소리는 9절에서 설명된다.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 필연 있을 일 곧 참되거나 확실한 일(말뜻은 그렇다)을 보였노라." 참회치 않는 죄인의 멸망은 확실히 있을 일이란 데 주목하자. 이것은 단지 그들을 놀라게 할 말이 아니라 취소 불가능한 판결이다. 그 일이 우리에게 보여지며 우리가 시기 적절한 경고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대한 자비이며 이는 우리로 하여금 장차 올 진노를 피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신탁을 통해 의무를 들을 뿐만 아니라 위험도 경고받는 것은 이스라엘 지파의 특권이다.
Ⅱ. 하나님이 그들과 쟁변하시는 근거가 나온다.
1. 하나님께서는 유다 방백들과 쟁논하시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겁없이 죄짓는 지도자였기 때문이다(10절). 그들은 경계표 즉 옛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기 율법을 주셔 자기 재산의 울타리가 되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무엄하게도 그 울타리를 뚫고 들어와서 그것을 치워버렸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리조차 침해했으며 선악간의 구별을 짓밟았고 방백이라 해서 무엇이든지 행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이성과 공평의 지극히 신성한 의무도 유린했다. 그들에게는 Quicquid libet, licet-즉 그들의 의지가 곧 법이었다. 또는 이것은 전권의 횡포로 백성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한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것은 옛 지계표를 옮기는 것과 같았다. 혹자는 유다 방백들이 이스라엘 방백보다 전체적이고 더 전단적 권력을 소유했다고 말한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대해서 그들과 쟁변하신다. "내가 나의 진노를 저희에게 물같이 부으리라." 하나님의 진노는 물밀 듯이 몰려 오는 홍수와 같을 것이다. 그것은 땅을 가득 채운 강포로 인하여 옛 세계의 거인들에게 쏟아진 홍수와 같을 것이다(창 6:13). 방백(군주들)조차 옮겨서는 안 될 경계가 있다는 것을 주목하자. 그것은 곧 종교와 정의의 경계이다. 군주들이라도 이 두 가지의 제한을 받는다. 만약 이들을 침해하며 파괴한다면 그들은 자기들 위에 책임을 요구하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2. 하나님은 에브라임 백성이 남몰래 죄를 좇으므로 그들과 쟁변하신다(11절). "에브라임은 명령 좇기를 좋아한다." 즉 그들은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그 다음 왕들의 명령을 즐겨 좇았다. 이스라엘 왕들은 모든 백성에게 단과 벧엘의 송아지를 숭배하도록 법으로서 강제하였다. 그들은 백성에게 예루살렘으로 예배드리러 가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것이 명령이었다. 그것은 그 땅의 법이었고 국가적 이유에서 지원을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권세에 대한 맹목적 복종심에서 그 명령을 좇았을 뿐만 아니라 즐겨 좇기도 했다. 이것은 암암리에 하나님 예배에 대한 냉담과 우상 숭배에 대한 강력한 편견이 작용한 결과였다. 하나님의 명령과 상치되는 인간의 명령에 쉽사리 순응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한 백성의 멸망을 성숙시킨다. 그리고 순순히 복종하는 불복종(그렇게 부를 수 있으면)에 대한 형벌은 죄와 상응한다. 에브라임이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으며 시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가 유린당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인 까닭이다.
(1) 일을 그렇게 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하나님의 재산을 배신하는 자는 자기 자신의 재산을 상실해 마땅하며 자신의 양심을 무모한 재판관과 그 절대적 권력에 복종시키는 자는 그 두 가지를 다 충분히 소유하게 될 것이다.
(2) 그 일 자체에는 자연스런 경향이 있다. "하나님의 명령과 상반될 때에도 사람의 명령좇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그 명령이 침해한다는 것과 많은 권력이 주어지면 질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맹렬하고 사나운 불독개 같은 폭군에게는 웅크리고 앉아 아양떠는 스파니엘 개 같은 순종보다 더 큰 유익을 주는 것도 없다는 데 주목하자. 이와 같이 에브라임은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당한다. 즉 에브라임은 정의의 기치와 구실 아래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정의를 행한다는 구실 하에 압제하고 학대한다는 것은 슬프고도 쓰라린 심판이라는 데 주목하자. 위협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9절). "견책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무하리라." 대담한 죄인은 견책하는 날이 이를 것을 각오해야 하며 그 견책의 날은 그들을 황무하게 할 것이며 그들의 소유하고 희망하는 모든 위로를 빼앗아 갈 것이다.
Ⅲ.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에브라임에게 상이한 방법을 사용하실 것이다. 때로는 이런 방법을, 또 때로는 저런 방법을 사용하실 것이며 어떤 때에는 두 가지 방법을 다 취하실 것이다. 또는 먼저 유다에게는 이런 방법을 사용하시고 그 다음 에브라임에게는 저런 방법을 사용하셔서 그들의 완전한 멸망을 향해 진행하실 것이다.
1. 하나님은 보다 작은 심판으로 시작하려고 하셨다. 작은 심판은 때때로 조용히 부지불식간에 작용한다(12절). "내가(즉 나의 섭리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을 것이다. 아니, 그들이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다. 왜냐하면 에브라임은 현재 그것을 병으로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13절)." 하나님의 심판은 때때로 죄많은 백성에게 좀 같고 썩이는 것 또는 벌레 같다는 점을 주목하자. 전자는 옷에서 번식하는 작은 생물을 의미하며 후자는 나무에 기생하는 곤충을 의미한다. 이들이 옷과 나무를 좀먹듯 하나님의 심판도 그들을 좀먹을 것이다.
(1) 이 심판은 세상이 떠들썩하지 않도록 조용하게 올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심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번영하고 안전한 줄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나라를 보다 엄밀히 보게 될 때 자기들의 피폐와 쇠잔을 깨닫게 될 것이다.
(2) 이 심판은 천천히 올 것이다. 그 심판은 오래 지체되고 간격이 길 것이다. 이는 그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여유를 주시기 위해서이다. 많은 개인과 마찬가지로 많은 국가도 그 전성시기에 만성병으로 사멸한다.
(3) 이 심판은 점차로 올 것이다. 하나님은 보다 큰 심판을 방지하시기 위해 보다 작은 심판으로 죄인들에게 임하신다. 그들이 지혜롭게도 그것을 경고로 받아들이려고만 한다는 보다 큰 심판을 예방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가 죄인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리시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씩 죄인들에게 임하신다.
(4) 좀은 옷에 쓸고, 벌레나 썩게 하는 것은 나무에 쓴다. 그와 같이 죄인은 그들 스스로 사르는 불에 타죽는 셈이다.
2. 작은 심판이 자기 업무를 성취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면 하나님께서는 보다 큰 심판으로 그들에게 임하실 것이다(14절).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리라." 유다 자신도 야곱의 축복에서 사자요 사자 새끼였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약화된 것으로 생각할 자가 있을까하여 하나님은 이제 그들에게 사자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사자는 포효소리로 그들을 놀라게 할 뿐만 아니라 갈갈이 찢기도 하는 동물이다. 보다 작은 심판이 제 일을 끝마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보다 큰 심판을 보내시리라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데 주목하자.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의 사자가 되시는 적도 있으나 여기서는 유다 지파를 대적하는 사자가 되신다. 죄악 중에서 태평스럽게 지나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시는지 유의하자. "나 곧 내가 움켜갈지라." 하나님은 오직 단 한 분의 입법자로서(약 4:12) 멸할 능력이 있으신 것을 자기 특권으로 자랑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나 곧 내가 그 일을 내 수중에 장악하리라. 그 일이 그렇게 되리라고 내가 말한다." 어떤 심판에는 다른 것보다 더 다급한 하나님의 일이 있다. 내가 찢을 것이며(원의는 그렇다) 갈 것이다. 하나님이 가시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1) 그들을 두려워하시지 않기에. 그는 사자가 그 먹이를 떠나듯 당당히 그리고 위엄있는 얼굴로 가실 것이다.
(2) 그들을 도우지 않으시기에. 하나님이 만일 고난의 섭리로 우리를 움키시면서도 그의 은혜와 위로로써 우리와 함께 하시면 아주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움켜 가시며 우리의 위로물을 박탈하시고도 우리에게서 떠나가신다면 우리의 형편은 참으로 비참하다. 하나님이 떠나가실 때는 소중하고 귀중한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실 때는 모든 선한 것도 그와 함께 가버리기 때문이다. 그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사자에게서 먹이를 구해낼 자가 없는 것과 같다(미 5:8). 하나님의 은혜의 수중으로 구출받는 자 이외에는 그의 공의의 수중에서 수출해 낼 수 있는 자는 없다.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와 다툰다는 것은 무익하다.
Ⅳ. 상이한 방법의 상이한 효과.
1. 하나님이 보다 작은 심판으로 그들과 다투셨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피조물에게서 구원을 찾았지만 소용이 없었다(13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좀 같고 썩이는 것 같으셨을 때 그들은 자기들의 병과 상처를 깨달았다. 얼마 후 그들은 스스로 언덕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깨달았고 저희 사업이 부진하며 재산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는 것을 의식했다. 그러자 그들은 앗수르 왕에게 도우러 와 달라고 사람을 보내고 야렙왕에게 원조를 청했다. 혹자는 야렙이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이나 불(Pul) 의 이름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곤경에 빠질 때면 앗수르왕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며 쓰러져 가는 국운을 바로 잡고 재흥시키기 위해 앗수르와 제휴하기를 희망했었다. 세상적 마음은 환난의 때에 자기 병과 상처는 보면서도 그 원인이 되는 자기 죄는 보지 못하고 또 그 점을 인식하지도 못하며 하나님의 손 곧 그의 강한 손을 깨닫지도 못한다는 데 주목하자. 하물며 그들의 환난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신 손길을 깨닫는 일이랴!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을 구원하실 수 있으신 창조주께 곧장 가긴 커녕 자기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피조물에게 가기 위해 무진 애를 써가며 우회한다. 죄악으로 하나님께 범죄했다는 것을 회개치 않는 자들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 은혜입기를 싫어하며 오히려 그 이외에 다른 곳에서 구원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면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러나 저가 능히 저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줄이게 하지 못하리라." 하나님을 무시하고 피조물에게 구조를 요구하는 자들은 반드시 실망하게 될 것이다. 피조물에게 후원을 의존하는 자들은 그것들이 기초가 아니라 상한 갈대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피조물에게 공급을 의존하는 자들은 그것들이 근원이 아니라 터진 웅덩이란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피조물에게 위로와 치료를 의존하는 자들은 그것들이 번뇌케 하는 안위자이며 쓸데없는 의원이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욥 13:4; 16:2 참조). 유다와 이스라엘이 도움을 구했던 앗수르왕들은 도리어 그들을 군핍하고 돕지 않았다(대하 28:16). 어떤 이는 아렙왕이 크고 유력하거나 훌륭한 왕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그들이 그의 힘에 많이 의지한 까닭이다. 또 다른 이들은 야렙이 변론해 줄 왕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데 이는 그들이 그의 지혜와 변설에 크게 의존했고 자기들의 일에 개입해 주기를 원한 때문이다. 그들은 야렙에게 예물을 보냈고 후한 사례금을 지불했다(10:6). 그들은 자기들을 위한 그의 권면을 의뢰했기에 그의 충실성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혈육의 팔이 자기를 의뢰하는 자를 속이듯이(렘 15:5, 6) 그들을 기만했다.
2. 하나님께서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보다 큰 심판을 보내실 때 그들은 결국 그에게 의뢰치 않을 수 없게 된다(15절).
(1)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자처럼 움키신 뒤 그들을 떠나실 것이다.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의 곳은 하늘 또는 은혜의 보좌인 속죄소를 말한다. 은혜의 보좌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벌하실 때는 자기 장소에서 나오신다(사 26:21). 그러나 그가 그들에게 은총을 주시려고 작정하실 때에는 그의 곳으로 돌아가신다. 거기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순종하면 은혜를 베풀기 위해 기다리신다(사 30:18). 또는 그는 그들을 징계하시고 난 뒤 그의 곳으로 돌아가실 것이다. 이는 그들을 돌아보시지 않고 그들에게서 그 얼굴을 숨기시며 그들의 고난이나 기도를 주목하지 않으심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을 더 이상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그들로 하여금 그의 은총의 돌아오심에 다소 자격을 구비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2) 하나님께서 사자처럼 그들을 움키신 뒤에는 드디어 그들에게 작용하셔서 고난으로 그들로 제 정신을 차리게 하실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일이다. 그러면 그는 더 이상 그들에게서 물러나시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들이 돌아오는 사례로서 두 가지 일이 언급된다.
[1] 자기 죄에 대한 참외의 고백.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칠 때까지 즉 자기 죄를 깨닫고 인정하게 되며 그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게 될 때까지" 사람들이 자기들의 고난보다 자기 죄에 대해 더 많이 호소하게 될 때에라야 비로소 그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데 주목하자.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손아래 있을 때는 우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또 징계 당해 마땅하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2]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겸손한 청원. "저희가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그들이 최후의 궁지까지 이르게 되어 다른 구조자들을 청해 보나 헛되게 될 때 하나님의 얼굴을 찾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들은 고난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간절히(또는 이른 때에) 그리고 부지런히 찾을 것이며 몹시 애타게 조를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이와 같이 하나님을 찾으며 그 태도가 신실하면 너무 늦진 않을 것이다.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들이 찾게 되어 늦게 찾는다는 평을 듣더라도 그들의 하나님 탐구는 너무 늦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일찍이 찾는 자들을 기뻐하신다. 마찬가지로 그는 자기에게 돌아오는 진정한 회개자를 최대한 활용하시려고 하신다. 우리가 죄를 깨닫고 징계의 채찍을 느끼게 될 때 우리의 본분은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일이라는 데 주목하자.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그와의 친숙을 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하나님은 우리와 화해하신다는 표시로 우리를 위해 또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수 있다. 고난은 오랫동안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던 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결코 무리한 일이 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일시적으로 우리에게서 돌이키신다. 이는 그가 우리를 자신에게로 돌이키셔서 우리에게로 돌아오시기 위함이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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