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15장 ===예루살렘 회의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이방인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26. (상동)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30.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33.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34. (없음) 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서다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 Acts 15 Amplified Bible ===The Council at Jerusalem 1 Some men came down from Judea and began teaching the brothers, “Unless you are circumcised in accordance with the custom of Moses, you cannot be saved.” 2 Paul and Barnabas disagreed greatly and debated with them, so it was determined that Paul and Barnabas and some of the others from their group would go up to Jerusalem to the apostles and the elders [and confer with them] concerning this issue. 3 So, after being supplied and sent on their way by the church, they went through both Phoenicia and Samaria telling in detail the conversion of the Gentiles, and they brought great joy to all the [a]believers. 4 When they arrived in Jerusalem, they were received warmly by the church and the apostles and the elders, and they reported to them all the things that God had accomplished through them. 5 But some from the sect of the Pharisees who had believed [in Jesus as the Messiah] stood up and said, “It is necessary to circumcise the Gentile converts and to direct them to observe the Law of Moses.” 6 The apostles and the elders came together to consider this matter. 7 After a long debate, Peter got up and said to them, “Brothers, you know that in the early days God made a choice among you, that by my mouth the Gentiles would hear the message of the gospel and believe. 8 And God, who knows and understands the heart, testified to them, giving them the Holy Spirit, just as He also did to us; 9 and He made no distinction between us and them, cleansing their hearts by faith [in Jesus]. 10 Now then, why are you testing God by placing a yoke on the neck of the disciples which neither our fathers nor we have been able to endure? 11 But we believe that we are saved through the [precious, undeserved] grace of the Lord Jesus [which makes us free of the guilt of sin and grants us eternal life], in just the same way as they are.” 12 All the people remained silent, and they listened [attentively] to Barnabas and Paul as they described all the signs and wonders (attesting miracles) that God had done through them among the Gentiles. ===James’ Judgment 13 When they had finished speaking, [b]James replied, “Brothers, listen to me. 14 [c]Simeon (Simon Peter) has described how God first concerned Himself about taking from among the Gentiles a people for His name [to honor Him and be identified with Him]. 15 The words of the Prophets agree with this, just as it is written [in Scripture], 16 ‘After these things I will return, And I will rebuild the tent of David which has fallen; I will rebuild its ruins, And I will restore it, 17 So that the rest of mankind may seek the Lord, And all the Gentiles upon whom My name has been invoked,’ 18 Says the Lord, Who has been making these things known from long ago. 19 Therefore it is my judgment that we do not trouble and make it difficult for those who are turning to God among the Gentiles [by putting obstacles in their way], 20 but that we write to them that they are to abstain from [d]anything that has been contaminated by [being offered to] idols and from sexual impurity and from [eating the meat of] what has been strangled and from [the consumption of] [e]blood. 21 For from ancient generations [the writing of] Moses has been preached in every city, since [f]he is read aloud in the synagogues every Sabbath.” 22 Then the apostles and the elders, together with the whole church, decided to select some of their men to go to Antioch with Paul and Barnabas—Judas, who was called Barsabbas, and Silas [also called Silvanus, both], leading men among the brothers. 23 With them they sent the following letter: “The apostles and the brothers who are the elders, to the brothers and sisters who are from the Gentiles in Antioch, Syria, and Cilicia, Greetings. 24 Since we have heard that some of our men have troubled you with their teachings, causing distress and confusion—men to whom we gave no such orders or instructions— 25 it has been decided by us, having met together, to select men and send them to you with our beloved Barnabas and Paul, 26 men who have risked their lives for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27 So we have sent Judas and Silas, who will report by word of mouth the same things [that we decided in our meeting]. 28 For it seemed good to the Holy Spirit and to us not to place on you any greater burden than these essentials: 29 that you abstain from things sacrificed to idols, and from [consuming] blood, and from [eating the meat of] things that have been strangled, and from sexual impurity. If you keep yourselves from these things, you will do well. Farewell.” 30 So when they were sent off, they went down to Antioch; and after assembling the congregation, they delivered the letter. 31 And when they had read it, the people rejoiced greatly at the encouragement and comfort [it brought them]. 32 Judas and Silas, who were themselves prophets (divinely inspired spokesmen), encouraged and strengthened the [g]believers with many words. 33 After spending some time there, they were sent back by the brothers with [the greeting of] peace to those who had sent them. 34 [h][However, Silas decided to stay there.] 35 But Paul and Barnabas remained in Antioch, and with many others also continued teaching and proclaiming the good news, the word of the Lord [concerning eternal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Paul’s Second Missionary Journey 36 After some time Paul said to Barnabas, “Let us go back and visit the brothers and sisters (believers) in every city where we preached the message of the Lord, and see how they are doing.” 37 Now Barnabas wanted to take [his cousin] John, who was called Mark, along with them. 38 But Paul kept insisting that they should not take along with them the one who had quit and deserted them in Pamphylia and had not gone on with them to the work. 39 And it became such a sharp disagreement that they separated from one another, and Barnabas took [John] Mark with him and sailed away to Cyprus. 40 But Paul chose Silas [who was again in Antioch] and set out [on his second journey], commended by the brothers to the grace and favor of the Lord. 41 And he traveled through Syria and Cilicia, strengthening the churches. ===Footnotes Acts 15:3 Lit brethren. Acts 15:13 Jesus’ half brother, James, was leader of the church in Jerusalem. Acts 15:14 This Greek transliteration of Peter’s Hebrew name is also used in 2 Pet 1:1. Acts 15:20 Lit the pollutions of idols. Acts 15:20 For the OT prohibition against eating blood, and the reasons for it, see Lev 17:10-14. There, in v 13, hunters are instructed to pour out the blood of an animal before eating it. Acts 15:21 I.e. the first five books of the OT, Gen through Deut. Acts 15:32 Lit brethren. Acts 15:34 Early mss do not contain this v. ====== 사도행전 15장 (개요) 지금까지 사도들이 이방 각처로 복음을 전하는 영광된 여행을 한 사실을 고찰하여 보았고 또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교회가 확장된 사실을 기쁨으로 살펴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로 언제나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우리는 전 장의 끝부분에서 사도들이 안디옥에서 휴식을 가지면서 그들의 경험을 교우들에게 다시 들려 줌으로 믿음을 더하게 한 사실을 또한 고찰하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들이 복음 전하는 이외의 문제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본장에서 우리는 그들의 복음 전하는 일을 중단하게 한(유쾌하지 못한) 다른 일이 일어난 것을 보게 된다. 여기 보면 그리스도인들과 사역자들이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교회의 범위를 확대하는 데 시간을 써야 할 그들이 교회의 분열을 무마하기 위하여 진력을 하게 된다. 그들이 악마의 왕국과 싸움을 시작해야 만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 왕국 안에서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의 발생과 이것에 대한 기록은 교회에 매우 유용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그러한 불행한 알력이나 내분이 있을 수 있다는 각오를 갖도록 우리들에게 경고가 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분쟁을 화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지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의 내용는 다음과 같다. Ⅰ. 안디옥에서 유대교적인 교사들에 의해 논쟁이 야기되는데, 그들은 모든 믿는 이방인들을 할례와 제의적(祭儀的) 법의 멍에 밑에 두려고 하였다(1, 2). Ⅱ. 이 일에 관해 예루살렘 교회에서 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리하여 그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대표를 파견하게 되었는데 그 논쟁은 예루살렘에서도 같은 문제를 야기시키게 되었다(3-5). Ⅲ. 이러한 문제로 열리게 된 교회 회의 진행 과정에 대한 설명(6). 베드로의 발언 내용(7-11). 바울과 바나바의 연설(12). 그리고 야고보가 마지막으로 이 논쟁의 결정을 제안했다(12). Ⅳ. 이 토론의 결과와 유대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그들이 처신할 것인가를 지시하는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쓰여진 회람장(22-29). Ⅴ. 안디옥 교회에 대한 이 결정의 통보 및 그 결정에 대한 그들의 만족(30-35). Ⅵ.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기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의 제 2 차 전도 여행 계획 도중 그들의 수행원 문제에 대하여 언쟁이 일어나 서로 갈라지게 되었고 결국 각각 다른 방향으로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된다(36-41). ======== ===예루살렘 회의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안디옥에서 야기된 논쟁(행 15:1-5) 국가나 교회에서 어떠한 일들이 매우 순조롭고 유쾌하게 잘 되어간다고 하여서 [이제는] 완전하다고 생각하거나 산처럼 굳건히 서있기 때문에 움직여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님 보시기에] 어리석은 일이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나 인간의 힘으로서는 방어할 수 없는 불행 혹은 다른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것에 대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아마도 당시의 안디옥 교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으리라.. 은혜를 받은 바울도 그들 중 한 사람이지만 사실 그 곳에는 많은 사람의 뛰어난 사역자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가장 거룩한 신앙의 교회로 그 교회를 이룩했다. 그러나 바로 이곳에서조차 그들의 평화가 파괴되었고 분열이 야기되었다. Ⅰ. 새로운 기독교회의 태동-발생-흥왕하게 된 결과 이러한 분열이 초래 되었는데 그것은 먼저 유대교신앙에 귀의하였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신자들이 이방인들로 하여금 강제적으로 할례와 제의법(祭儀法) 아래에서 개종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1절). 이방인들중 먼저 유대교로 개종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신앙으로 개종하였었다. 1. 이러한 것을 주장한 사람들은 "유대로부터 내려 온 어떤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이 바리새파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생각하며(5절), 혹은 "그리스도 신앙에 복종한" 제사장들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행 6:7). 그들은 유대로부터 왔는데 예루살렘의 사도들로부터 보내진 것처럼 또는 적어도 그들에 의해 후원을 받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전파할 것을 계획하고 안디옥으로 내려왔는데, 안디옥이 이방인들에게 전도하는 자들의 총본부요 이방의 개종자들의 중심적 모임처였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들이 여기서 거점을 확보하기만 한다면 그들의 생각과 사상이 모든 이방인 교회에 퍼지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들은 형제됨을 내세워서 친숙해지면서 이방인신자들에게 교묘히 환심을 샀으며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인 것을 매우 기뻐하는 척하였고 또한 이방인들의 개종을 축하하였다. 그러나, "[그 믿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아직도 그들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하였다. [영분별이 진실로 중요하다] 지금까지 잘 교육받아 온 사람들도 그들이 다시 교육받아서는 안 되는 것, 혹은 잘못된 가르침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2. 그들이 주장하는 입장이나 그들의 논제는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고" 그 의식적 율법의 모든 구례들을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알 수가 있다. (1) 그리스도 신앙으로 전향한 많은 유대인들은 아직도 계속해서 "율법에 대하여 매우 열성적이었다"(행 21:20)는 사실이다. 그들은 율법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그 권위는 거룩한 것임을 알았고, 그들은 그것이 전통있는 것이라는 점 때문에 귀하게 여겼으며, 또한 그들은 율법을 준수하는 가운데 자라왔고 또 이러한 율법을 준수하는 것에 대단한 열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례에 의하여 그리스도 교회 안에 용납되어진 후에도 그러한 것들을 준수했으며 금지된 고기를 먹지 않았고, 그들은 제의적으로 규정된 불결을 면하기 위하여 제의가 규정하는 순결의 규례를 지켰을 뿐 아니라 성전 예배에 참석하거나 유대 민족의 절기를 경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묵인을 받고 있었다. 왜냐하면 교육에 의한 편견은 일시적으로 극복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또한 몇 해 내에 그러한 잘못은 성전의 파멸에 의해서 혹은 유대교의 전체적인 붕괴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수정되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성전 파멸에 의하여 모세가 정한 의식적 규례들은 전혀 수행될 수 없도록 되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된 것은 이들 유대의 개종자들이 자신들이 유대 율법을 지키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방 개종자들에게도 같은 의무를 부과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인간들에게는 자신의 의견이나 행위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규례나 법칙이 되게 하려는 경향과 또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우리의 표준에 의하여 판단하고 또한 우리는 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처럼 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결정지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오직 생명과 사랑, 살리는 성령따름으로써, 영을 분별하라!!] (2) 이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메시야라고 믿고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율법에 대한 애착을 깨끗이 제거할 수 없었다. 또한 그들 나름대로의 메시야에 대한 전래적 기대, 즉 메시야가 유대 민족을 위하여 지상의 왕국을 세우고 이 나라를 뛰어나고 승리로운 국가로 만드실 것이라는 식의 메시야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으나 그런 기대대로는 아직 아무 것도 이루워지지 않고 있었기에 그들은 실망하였었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이방인들 사이에 받아들여지고 있음과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그의 왕국이 세워지기 시작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제 그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들로 모세의 법을 받아들이게 한다면 다른 의미에서 그들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희망을 가졌던 바, 그들의 관점에서 희망함으로써 그 자신들을 납득시키려 하였다. 비록 다른 방법으로 이루워지더라도 유대 민족이 기들이 소망하는 대로 뛰어난 민족이 될 것이라는 소망 가운데서 그들은 스스로 이렇게 중얼거렸으리라.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형제들을 강제로 설득하여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게 하자. 그러면 우리들의 신앙과 함께 우리의 지배권이 확장될 것이고, 머지 않아 로마의 멍에를 떨쳐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이웃 국가들의 목에다 이러한 멍에를 씌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로써 우리들이 바라던대로 메시야의 왕국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 왕국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이 그 왕국을 임하게 하기 위하여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려 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한 생각들은 사실 그리스도 왕국을 파괴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3) 이방인 개종자들에 대한 할례 시행 여부에 관한 논쟁은 이보다 오래 전부터 유대인들 가운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휘트비(Dr. Whitby) 박사가 요세푸스의 글에서 밝혀낸 것이었다(Antiquit lib. XX. Cap. 2).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전해 준다. "아디아벤(Adiabene)의 여왕 헬렌(H디두)dml 아들 이자테스(Izates)가 유대인들의 신앙을 받아들였을 때 아나니아(Ananias)는 할례를 받지 않고 그가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엘르아살(Elezar)은 할례를 시행하지 않은 것은 매우 불신앙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저명한 이방인 두 사람이 요세푸스에게로 도망해 왔을 때(이 사실을 그는 자신의 자서전 속에서 전해 주고 있다)의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전해 준다. "유대인들 중 열심당원들은 이 두 사람에게 할례를 강요하였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할례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설득하여 단념케 하였다." 그러한 차이는 편협한 부류와 중도적인 부류 사이에 어느 시대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4) 그들이 할례에 대하여 얼마나 강조를 하였는가 하는 사실은 생각할 만한 문제다. 그들은 "여러분들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 여러분이 만일 할례를 받는다면 메시야 왕국을 위하여 진정 값있는 봉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여러분과 유대 개종자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의 도움이 될 것이며, 여러분이 그렇게 하신다면 우리는 그것을 매우 고맙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전보다 더욱 여러분과 가깝고 친절하게 사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 말로 그치지 않고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만일 여러분이 할례를 받지 않는다면 결코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이 우리들의 방법이나 생각을 따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며, 따라서 물론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거만한 협잡군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저주의 협박을 가하여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만약 자신들이 그들에게 믿으라고 한 대로 똑같이 믿지 않거나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행하지 않으면 그들은 구원받을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경우가 예측 불가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절망적이었으므로 격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이같이 유대인들은 그들의 형제들에게 그들이 자기들의 교회에 일원이 되고 그들과 사귐을 나누며 또는 그가 비록 선한 사람이거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일지라도 그들과 같은 예배 의식에 순응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즉 구원 자체만으로써는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하는 범주, 곧 그들의 경내로 들어와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너 자신이 그와 같이 행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구원이 보증되어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Ⅱ. [분열의 원인, 유대인에게만 구원이 있다]는 개념에 바울과 바나바가 반대함. 그들은 이제 그리스도가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놓게 되었음을 주장한다(2절). 이로 인하여 "저희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이러한 가르침에 굴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가르침에 반대해서 공공연하게 항의했고 또한 이의를 제기했다. 1. 그리스도의 충실한 종들로서 그들은 그의 진리가 무시되고 있는 것을 좌시할 수만은 없었다. [갈라디아서를 다시읽어보라!!] 그들은 JC께서 오셔서 율법의 멍에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주신 것을 밝히 알았다.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의 간막이 벽을 허물어뜨리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서로 결합시켜 주심도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받는 것만으로써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때에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묵과할 수는 없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자기들의 의식을 일체 준행함으로써만이 그들이 자기들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이방인형제들중 그 누구라도 만약 자기들이 주장하는 바로 그런방식을 수용하지 않으면 이방인들을 형제로 간주하지도 않으려 했고 특별히 감사할 이유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결합시키려고 계획하신 바가 결코 아니었다. 그러기에 그것은 용납되어질 수 없었다. 2. 이방인 개종자들의 영적인 어버이로서 그들은 그들의 자유가 침식되어 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들은 성령께서 계시하고 열어주신 바로 그대로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틀림 없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포헸었는데 이제 그것만으로는 구원을 받기에 충분하지 못하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모세의 법을 지켜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는 소리가 한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소리는 이제 갓 출발한 이방인 개종자들을 매우 실망시키는 소리였으며, 그들의 신앙의 생활에 거침돌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요구는 그들로 하여금 다시 에집트로 되돌아 갈까 하는 유혹을 일으키게 하는 견해였기에 사도들은 이러한 주장을 반대하고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Ⅲ. 이러한 위험스러운 주장에서 발생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또 그것에 관여된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복음에 구멍을 뚫으려고 하는 그러한 무리들을 침묵케 하기 위해서 응급조치가 강구되었다. 안디옥 교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 및 안디옥 교회 교인 중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자"고(3절) 결정하였다. 그들이 그렇게 결정한 것은 안디옥 교회가 그러한 문제에 관하여 동요되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자유롭게 하신 그 자유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 문제를 확정짓기위해 사람을 예루살렘에 보냈다. 1. 왜냐하면 이러한 교리를 가르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왔고 그들은 이곳에서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받도록 하라고 사도들로부터 지시를 받은 것처럼 가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살렘 교회의 사도들로부터 그러한 지시가 있었는지 알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사람들을 파견한다는 사실은 매우 타당한 일이었다. 이로써 그때까지 사도적 권리로 가장해 오던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말게 되었다. 그들이 "예루살렘 사도들로부터 보내진 것은"(24절)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들에게 결코 그러한 명령을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2. 또 다른 이유는 유대인들로부터 이러한 교리 가르침 받은 사람들이 만약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예루살렘 교회는 그 어느 교회들보다 모세의 율법에 대해 강한 애착을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 교회였다) 할례를 그들에게 앵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면 그러한 교리에 반대하는 그들의 입장을 더욱 확실히 할 수 있으며 또한 그러한 교리에 의해 충격을 받거나 혼동을 일으킬 위험이 적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 사도들의 입장을 확실히 파악한다면 예루살렘으로부터 이러한 명령을 받아가지고 온 것처럼 가장하는 선동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또 침묵시키는 데 최선의 방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3. 또 하나의 이유는 예루살렘의 사도에게 아직까지 완전히 결정되지 못한 그러한 사항을 의논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였기 때문이었다. 사도들이 안디옥 교인들에게는 특별한 사람들로, 또 과오가 조금도 없는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들로 간주되었기에 사도들의 결정이 논쟁을 종결시킬 수 있는 것으로 그들은 간주하였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사도들의 결정이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지닐 수 없었던 것은 교회의 평화를 해치려는 대단한 적수의 간교함과 악랄함 때문이었다(이러한 적에 대하여 바울은 자주 "유대의 교사" "거짓 사도" "속이는 일군들" 혹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적"이라고 비난하였다). Ⅳ. 그들의 예루살렘 여행은 이러한 사명을 띠고 있었다(3절). 우리들은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그들이 떠날 때 그들은 우의에 넘치는 전송을 받았다. 그러므로 본문에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았다"(3절)고 하였다. 이러한 전송은 당시 유익한 인물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써 많이 사용되었다. 또한 요한 3서 6절에는 경건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존경어린 전송을 하라고 지시되고 있다. 이같이 교회는 이방인 개종자들의 자유에 대한 이러한 침해에 대항해서 증거하고 또 그러한 사람들과 맞서서 싸우는 이들(바울과 바나바)에게 호의를 표시하였다. 2. 그들은 그들의 여정에서도 선한 일들을 행하였다. 그들은 결코 시간을 헛되어 낭비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도중에 여러 교회를 방문하였다. 그들은 베니게와 사마리아를 지나가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였고" 또한 복음이 그들 사이에서 이룩한 놀라운 성공에 관해 말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였다." 즉 복음의 전파는 커다란 기쁨이 되며 또한 기쁨이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모든 형제들" 곧 그리스도의 가족 안에 있는 믿음이 깊은 형제들은 그들의 가족 안에 식구가 더 많이 탄생했을 때 기뻐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가족이란 그 성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늘어난 사람들의 먹을 것 때문에 걱정해야 하는 그러한 가족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와 하늘 나라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한 식량이 있고 또한 거주처가 있는 것이다. Ⅴ. 예루살렘에서 그들이 받은 진심어린 환영(4절). 1. 그들의 친구들은 그들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그들은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았고" 형제로 받아들여졌으며 안디옥 교회의 사신(使信)들로 접견되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모든 사람과 우정의 표시로써 그들을 영접했다. 2. 그들 또한 예루살렘의 그들의 친구들을 기쁨으로 만났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였고" 또한 이방인들 사이에서의 그들의 사역의 성공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성공을 자신들이 이루었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서 이룩하셨다"고 하였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그들 안에 역사하셨으므로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그들의 청중 가운데 계셔서 그들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셨으므로 그러한 성과가 있었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가서 씨를 뿌렸고 또 오면 서는 물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을 자라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라고 여겼다. 하나님을 위해서 쓰여진다는 것 또한 그를 위한 사역자가 된다는 것은 커다란 영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을 통해 하나님으로 일하실 수 있게 하며 또 그로 하여금 모든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Ⅵ. 예루살렘에 있는 일부 같은 할례주장자들로부터 그들이 직면한 반대(5절). 바나바와 바울이 많은 이방인들의 개종에 대하여 또한 그곳에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거둔 커다란 영혼의 결실을 설명하고 그러한 사실에 대하여 그들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축하했을 때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보고를 냉정한 태도로 받아들였다. 이들 바리새인들도 그리스도를 믿었다. 그렇지만 이들 이방인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이들에게 할례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복음에 대하여 많은 이의를 지니고 있는 그러한 사람들은 아직도 복음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복음을 거스려 쌓여진 강한 요새는 하나님을 통해서 무너져야만 한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계실 때 통치자들이나 바리새인들 중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바리새파들 중에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실지로 그들이 신실한 신앙인들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2. 인간들에게 있어서 갑자기 그들의 편견을 모두 제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바리새파에 속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옛 누룩을 소유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그러하였다고 바울은 증언한다. 그들은 제의법에 대하여 매우 열심이었고 또 이방인들을 잃어하였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는다면 또한 이로써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게 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들의 공동체에 이방인들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각으로써는 이것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그들의 주장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그들 편에서는 결코 이방인들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예루살렘 회의(행 15:6-21) 본문에서 우리는 회의가 소집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경우는 문서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두로 동의를 얻어서 소집되어졌다. 본문에 보면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였다"(6절)고 전해준다. 사도와 장로들은 각각 별도로 재판을 주재하지 않고 그것을 위해 함께 모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의 견해를 듣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논의자들의 수가 많으므로 안전하고 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겠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은 이 일에 대한 판결을 성급히 내리지 않고 신중하게 검토하였다. 그들은 그 문제에 관하여 이미 입장이 분명히 서 있었지만 그것에 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였고, 반대하는 무리들이 무엇을 말하는가 듣고자 하였다. 사도들은 그것에 관한 그들의 결정을 지위가 보다 낮은 사역자들이었던 장로들을 제외하고 무슨 일을 결정지으려 하지 않았다. 이같이 그들은 장로들에 대하여 자신을 낮추었고 그러므로 또한 장로들은 사도들을 공경하였다. 은사와 은혜로 아무리 유명하며 또 교회 안에서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그들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나 지위가 얕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나타내야만 한다. 왜냐하면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현명하지 않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욥 32:7, 8). 여기서 우리는 어려운 일이 발생했을 때 교회의 목회자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데 대한 가르침을 얻게 된다. 즉 그들은 회의를 소집하여 서로 조언하고 격려하며 그러므로써 서로의 마음을 알고 상대방을 더욱 굳건하게 하며 또한 일치하여 행동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 볼 수 있다. Ⅰ. 회의석상에서의 베드로의 연설. 그는 이 회의에서 자신이 어떤 우선권이나 지휘권을 가진 것처럼 조금도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베드로는 이 경우에 이 집회의 주인공도 아니었으며 의장이나 또한 어떤 중재인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가 회의가 개최되자 처음으로 발언한 사실도 찾아 볼 수 없으며 "많은 논쟁이 진행된 다음에 베드로가 일어섰다." 또한 그가 여러 가지 의견을 수집하여 마지막으로 말한 사실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이 회의의 신실하고 신중하며 열심인 일원일 뿐이었다. 그는 적절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시하였다. 그 의견은 다른 사람의 의견보다 더 우수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람이었었기 때문이었다. 찬성과 반대 두 갈래 사이의 이 문제에 관하여 "많은 변론이 있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의사를 표시할 자유가 주어졌다. 그들 가운데는 바리새파 사람도 참석하고 있었고 그들은 발언권을 얻어 안디옥에서의 그들 자신과 같은 견해를 가진 자기편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이들 견해에 대하여 아마도 장로들 중 몇 사람이 답변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그러한 문제들은 결정하기 이전에 충분히 검토되고 토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찬성과 반대 두 편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그 회의에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한다. 그는 후에 야고보가 그렇게 하였듯이(13절) "형제들아"하고 말을 시작하였다. 1. 베드로는 자신이 얼마 전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부르심과 위탁을 받은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켰다. 그는 이미 결정된 지 오랜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는데 대하여 이상히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이 시작된 그날부터 (아프 헤메론 아르카이온, 15:7) 오래 전에 하나님이 우리 사도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택하셔서 그로 하여금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는데 내가 바로 그때 택함을 받은 사람이었노라. 이는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그리하신 것이라(7절). 여러분들은 내가 그 문제에 대하여 질문을 받고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도록 해명을 하였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이 참 생명에로 회개하는 것을 승낙하시는 데 대하여 기뻐하였고 어느 누구도 그러한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또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도 없었다(11:18 참조). 그렇다면 왜 바울의 입으로 전해진 복음의 말씀을 들은 이방인들은 강제로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말인가? 내 입으로 전해진 복음을 들은 이방인들과 그들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아니면 이방인들의 신앙에의 허입 조건이 먼저 허락된 사람들 보다 어째서 이제 와서 더욱 어려워져야 한다는 말인가?"라고 하였다. 2. 베드로는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베드로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설교하는 데 얼마나 놀랍게 하나님이 그를 붙들어 주셨는가하는 점과 그리고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 들이는 데 얼마나 진지하였는가를 그들에게 상기시켰다(8절). 그러므로 그는 "마음을 아시며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데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령을 내려 주시므로 그들도 그의 백성임을 증명하셨도다. 그는 우리 사도들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은총과 위안뿐만 아니라 특별한 성령의 기적의 은사까지도 선물로 주신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다(11:15-17 참조). "주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하자."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성령을 주신다." 그리고 그것에 의하여 그들이 그의 백성임을 증거하신다. 따라서 우리들은 약속의 성령의 안치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자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그와 교제를 나눌 특권을 얻은 자들로서 환영할 것을 분부하셨다. 그것은 물론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고 율법을 지키라는 요구 없이 받아들이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그러한 조건 없이 우리와 결합하도록 허락해야만 하는 것이다"고 그는 말한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저희나 우리를 분간치 아니하셨도다(9절). 그러기에 그들이 비록 이방인일지라도 유대인들과 동등하게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리고 은혜의 보좌에 환영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가 마치 그들보다 더 거룩한 것처럼 그들을 멀리하려고 하는 것인가?"라고 말한다(사 65:5).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받아들이는 데 하나님이 정하신 조건 외에 우리들 자신의 어떤 조건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롬 14:3). 이제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믿음으로 저희의 마음을 깨끗이 하셨으므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데 적합한 자들이 되었다. 이 믿음은 하나님 자신이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여 일으키신 것이요 그러므로 그는 말한다. "그들 안에 믿음으로 역사하신 것이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어째서 율법에 의해 우리에게 부과된 의식적 성결에 그들이 순복하지 않는 한 우리와 교제를 나눌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믿음에 의해서만 기억이 깨끗해진다는 사실이다." 믿음에 의해서만 우리는 의롭다함을 얻으며 양심이 깨끗하여지고, 뿐만 아니라 믿음에 의해 성결의 역사로 시작되고 추진되는 것이다. (2) 믿음으로 저희의 마음이 깨끗해진 사람들은 마음이 서로 닮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설혹 그들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들의 신앙은 동일하게 보배로우며 똑같이 귀중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벧후 1:1). 그리고 이 믿음에 의해서 그리스도와 결합된 사람들은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결합된 자로 여겨야 한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구별일지라도 신앙 안에서 삼키워져 구별이 없어지는 것이다. 3. 베드로는 이방인들을 모세의 율법의 의무 아래 굴종시키려고 하는 그러한 교사들(사실 그러한 사람 중 몇 사람이 그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을 날카롭게 꾸짖는다(10절). 이 문제는 너무나 분명한 것이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온건한 말로써 참을성있게 얘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의 백성들로 택하셨는데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제자들 곧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과 그들의 자녀의 목에 멍에를 메어 두려느냐? 그 멍에는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가 아니냐?"고 말한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말함으로써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려고 한다. (1) 그들은 하나님께 대적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려고 하였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지시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은 성령의 은혜로운 선물에 의해 하나님께서 이미 결정하신 문제를 야기시킴으로써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다. 너희들은 사실 다음과 같은 것을 하나님께 대하여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가 무엇을 하셨는지 알고 있는가? 그러한 일을 하나님이 진심으로 하신 것인가? 하나님이 제 정신으로 그러한 행위를 하신 것인가?"라고 말이다. "너희들은 하나님께서 다만 유대인만을 위하여 계획한 율법을 이제와서 그 율법의 마지막 때에 이방인들을 율법의 의무 아래 굴복시킴으로 너희들을 기쁘게 하고 이로써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결코 정하시지 않은 규칙을 마음대로 정하며 그러한 규정을 따르지 않으면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구원이 그들 자신들의 척도에 의하여 규정될 수 있듯이 여기는 자들이다. (2) 그들은 제자들에게 대하여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한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한 사람들을 다시 노예로 만들려고 하고있는 것이다. 느헤미야 5장 8절을 참조하라. 제의법은 무거운 멍에였다. 그들과 그의 조상들도 그 율법을 견디기에 매우 힘들어 하였다. 그것은 그 제도가 너무 많으며 너무 다양하고 너무 과장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기를 가려서 먹어야 하는 것만 해도 무거운 멍에였다. 그것이 생활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은 끝없는 의구심으로 양심을 괴롭혔다. 그러한 문제는 피치 못하게 무덤이나 시체를 만져야 하는 경우에도 야기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을 불결하게 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는 수많은 규칙들이 또한 무거운 짐이 되었다. 바로 이러한 멍에로부터 우리를 쉬게 하려고 그리스도가 온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러한 멍에 아래에서 근심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의 가볍고 쉬운 멍에를 메게 한 것이다. 이제 이러한 교사들이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에게서 조차 벗겨 주신 멍에를 이방인들의 목에 씌우려고 한 것은 이방인들에게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해독을 끼치는 것이었다. 4. 유대 교사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할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데 대하여 베드로는 구원은 전혀 이런 것과 상관이 없는 것으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순전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11절). 그는 본문에서 ‘피스튜오멘 소데나이’ - 즉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고 말한다. 또 그는 [할례받은] 우리가 [할례받지않은] 저희와 동일한 방법으로 구원받을 것을 믿는다. ‘카드 혼 트로폰 카케이노이’ - 즉 우리들 할례받은 사람들이 구원을 믿듯이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도 구원을 믿는다. 우리들이 받은 할례가 우리들에게 어떤 특권이 되지 않듯이 그들의 할례받지 않음 또한 그들에게 어떤 불리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은혜에만 의지해야 하며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믿음에 의한 은혜만을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는 길이 있고 또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다른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다"(갈 5:6). 그렇다면 어째서 그 사실이 그렇지도 않은데 이방인들에게 그들의 구원에 필요하다고 모세의 법을 짐지워야 하는 것인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우리들의 구원이나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Ⅱ. 바나바와 바울이 이 본문에 회의에서 발언한 사실이 소개됨. 그들의 얘기를 본문에 상술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만 전 장에서 기록된 사실들. 즉 "하나님이 그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를" 상술하였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12절). 이것은 그들이 안디옥 교회에서도 말한 것으로(14:27) 예루살렘으로 오는 도중에 그들의 형제들에게도 말하였으며(15:3) 그리고 다시 회의에서도 말하였다. 사실 이 회의에서 그러한 것을 전한 사실은 매우 적절했다. 원래 문제를 일으킨 자들의 의도는 이방인들이 모세의 율법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이러한 사실에 반대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일어났던 일들을 명백하게 말함으로 하나님이 율법 없이 순수한 복음만을 그들에게 설교할 것을 인정하셨다는 것과 그러므로 이제 이방인들을 율법 아래 억압하려는 것은 하나님이 이룩한 일을 파괴시키는 것임을 보여 주려 하였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1. 그들이 설명한 내용.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더불어 이방인들 사이에서 이룩하신 영광스러운 기적과 기사와 이적"을 그들에게 선포했고 자연계에 기적을 보이심으로 그들의 설교를 하나님께서 확증해 주신 것과 또한 은혜의 세계 안에서 하나님이 이룩하신 기적적인 사실들에 의하여 그들의 복음전파에 놀라운 성과가 있게 한 사실을 단계적으로 설명하였다. 이같이 하여 유대 교사들이 저주한 사도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셨고 그들이 비난한 이방인들을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정당한 이유를 변호해 주시는데 또 다른 어떤 옹호가 필요하단 말인가? 전후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이방인들의 개종은 기적 못지 않은 하나의 놀라운 일이었다. 이제 이방인들이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다면 그들이 어찌하여 율법의 행위로 인하여 곤란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인가? (갈 3:2 참조). 2. 회의 참석자들이 그들의 말에 대한 주의 깊은 경청. "온 무리가" (비록 투표권은 없으나 회의의 진행 결과를 들으려고 모였던 모든 사람을 포함하여) "조용히 하고 바울과 바나바의 말을 경청했다." 그들은 그곳에 제출된 모든 쟁점들에 대하여서 보다 바울과 바나바의 말을 더 주의 깊이 들은 것같이 보인다. 자연 과학이나 의학에서 실험이 제일 신빙성 있는 것이며 법률에서는 판례가 가장 신빙성 있는 것이듯이 하나님의 일들 가운데서 가장 은혜롭게 여겨지는 것은 성령의 역사에 대한 설명인 것이다. 이 성령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군중들은 조용히 하고 들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무엇을 행하셨는가를 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시 66:16). Ⅲ. 회의에서 행한 야고보의 연설. 야고보는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으나 바울과 바나바를 저지하지 않고 연설을 하게 하였다. 그것은 그곳에 모인 무리들을 교화시키기 위해서였으며 그러한 것을 일선에서 일하는 훌륭한 사역자들로부터 직접 들어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말을 미치매" 야고보가 일어났다. 그들이 차례로 일어나 말한 것은 "너희가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에 일치하는 것이었다(고전 14:31).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야고보는 바울과 바나바로 하여금 그들이 말해야 할 것들을 말하게 하고 그리고 나서 자신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신청했다. 여러 사역자들의 말을 듣는 것은 하나의 진실이 배척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진리를 고수하기 위해서도 유용한 것이다. 1. 야고보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연설을 시작한다.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당신들은 인간이다. 그러므로 듣고 이치에 맞는 판단을 내릴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또한 여러분들은 나의 형제들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가식없는 것으로 믿고 들어 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모두 다 형제들로서 이 일로 그리스도를 불명예스럽게 하거나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2. 야고보는 이방인들의 개종에 관하여 행한 베드로의 이야기를 언급한다(14절). "시몬(즉 시몬 베드로)이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고하고 또 너희에게 상세히 말하였도다. 그들은 바로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로서 이방인 가운데 첫 열매이다. 그리고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을 때 어떻게 이방인들도 즉시 와서 그 혜택을 나누도록 초대되었는지를 고하였도다." 야고보는 본문에서 다음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1) 그러한 이방인 개종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이다. " 이방인들을 방문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친절이 넘치는 방문이었다. 그들은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결코 하나님을 찾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부터 먼저 그들을 깨우치셨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방문하고 속죄하였을 뿐만 아니라" loammi - 즉 그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찾아가서 그들을 속죄해 주셨다. (2) 하나님의 영광이 그러한 모든 일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를 영광스럽게 하고 그에 의하여 영화롭게 될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 하신 것이었다. 옛날에는 유대인을 택하셨으나 이제는 이방인들을 택하셔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칭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다"(렘 13:11). 그러므로 모든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여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존귀하게 되고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영화롭게 되시도록 하자. 3. 야고보는 이방 전도의 정당성을 규약에서 인용함으로써 확증한다. 그는 이방인들의 부르심을 베드로처럼 환상에 이하여 증명할 수 없었으며 바울과 바나바가 증언한 것처럼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기적적인 사실로써 증명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규약에 이미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것이 성취되어야만 한다고 증명하고자 하였다(15절).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구약 예언자들이 많든 적든 이방인들의 부르심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모세조차도 이것에 대하여 언급하였다(롬 10:19). 또한 메시야는 "이방을 비추는 빛"(눅 2:32)이어야 한다는 것을 경건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기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야고보는 이 사실에 대한 좀 더 분명한 예언을 포기하고 좀 애매하게 보이는 것을 선정한다. 그는 아모스 9장 11, 12에 기록을 인용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메시야 왕국의 건설(16절). 이에 대하여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라고 말해 준다. 그 계약은 다윗과 그의 자손들에게 맺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윗의 집과 가족들을 그의 장막이라고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다윗은 처음에는 양치기로 시작하였기에 천막에서 살았으며 이제 나라가 망한 지금 당당한 왕궁이었었던 그의 집은 초라하고 더러운 장막이 되어 그 초기의 시작하던 때의 초라함으로 환원되었던 것이다. 이 장막은 무너지고 "황폐해졌다." 다윗가에서 왕위가 여러 세대 동안 계속된 것은 아니었다. "왕홀은 유대로부터 떠났고" 왕족은 영사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결국 그 흔적을 찾을 수조차 없게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돌아와서 그것을 다시 세우시겠다고 한 것이다. 황폐된 그것으로부터, 그 잿더미로부터 불사조로 불러 일으키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것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즉 주 예수께서 다윗의 가족 가운데서 일어나시고 "그가 영원히 야곱이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다"는 약속에 따라 "그에게 주어진 조상 다윗의 왕좌에 앉으신 것이다"(눅 1:32, 33).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윗의 장막이 다시 일으켜 세워질 때, 오래지 않아 그 나머지 모든 것들은 멸절되고 뿌리 뽑힐 것이다. 유대인들의 나라도 마찬가지이며 그들의 모든 족보도 파괴될 것이다. 이후로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다윗의 장막으로 불리울 것이다. 이 장막(교회)이 때로는 낮아지고 아주 황폐해진 것으로 보일 때도 있겠으나 그것은 다시 세워질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 대해 쇠퇴해진 관심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것은 "내던져진다고 하여도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 메마른 해골들일지라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2) 유대의 멸망의 결과로 이방인들이 불리움을 받을 것이다(17절). 그러므로 본문에 "이는 그 남은 사람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다윗의 장막의 독점권을 가지고있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보이는 교회의 경계 밖에 지금까지 남아 있던 그러한 사람들에게도 주를 찾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다윗 장막의 재정리에 따라 "주님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가 물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다윗의 장막이 이룩될 때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할 것이다"(호 3:5; 렘 30:9) 하였다. 아모스서를 보면 "그때 이스라엘로 에돔의 남은 자들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모든 이방인들을 "에돔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70인 역에서는 "에돔"이라는 특별한 언급을 삭제하고 그냥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 "남은 사람들로 찾게 하며"(야고보 기자가 여기서 70인 역에 없는 "주"를 덧붙이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은 모든 이방인들 혹은 이교도들로 하여금 찾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이 수많은 세대 동안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어서 그 남은 사람들은 무시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졌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들에게 눈을 돌리시고 이방인들에 의해서도 그의 이름이 불리워지게 하시었다. 그들 가운데 그의 이름이 선포되고 그들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을 부르게 될 것이다. 이방인들이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 일컬을 것이며 하나님도 그들을 그렇게 부를 것이다. 양쪽이 모두 일치하여 하나가 되었으므로 "그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은 자들"이라고 본문에 기록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약속이 때가 되면 성취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기대하였다. 그런데 지금 이 약속의 성취가 시작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일을 행하시고 또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사도는 구약 본문과는 달리 "이 일을 알게 하시는"을 덧붙여 "이 일을 알게 하시는 주가 말씀하였다"고 기록하였다. 그 뜻은 "그가 그 일을 하시기를 작정하셨기 때문"에 말씀하셨고 또 그가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행하시리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말과 행동이 각각 다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같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으로 결합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전에 행하여진 모든 것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행하여진 것이었다. ① 이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임이 말씀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는 여호와의 행하심이라" 하였다(암 9:12). 하나님이 어떠한 도구를 들어 그의 뜻을 이루시든지 그 행하심의 장본인은 도구가 아닌 바로 하나님이신 것이다. ② 이방인이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며 매우 즐거워하시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유대인의 하나님인 것과 같이 이방인의 하나님이며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풍성한 자비를 베푸시는 것"을 명예로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4. 야고보는 당면 문제를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로 귀착시킨다(18절).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이 모든 일은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였다(역주:본문을 역자가 사역한 것임). "하나님은 여러 세대 이전에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방인들을 부르실 것을 예언했을 뿐만 아니라(그러므로 이것이 우리들에게 어떤 놀라운 일이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의 영원한 계획 속에서 그것을 미리 아시고 정하고 계셨었다. 그 섭리는 물론 현명한 것이며 뒤바뀔 수 없이 확고한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태초부터 그가 정하신 것"이라는 말씀은 육의 세상이나 영적인 나라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의 모든 역사에 대한 우수한 금언이다. 즉 이 말씀은 그가 이 모든 일을 아신 것이 그가 일을 시작하신 처음 또는(다른 성경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땅의 기초를 놓기 전," 그러므로 영원부터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어떠한 일을 하시든 간에 그는 미리 그 일을 계획하시고 하시기로 결정하신 후에 착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시는 데 그의 뜻대로 하실 뿐만 아니라 "깊은 생각에 따라" 행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결정한 일을 할 뿐만 아니라(시 135:6) (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상의 일을 하신다. 인간들의 목적이나 의도는 자주 좌절되며 척도도 또한 파괴된다.) 그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미리 결정하신다. 그가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무슨 말을 할지라도 "그 자신은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를 아신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의 전망을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그때 그때의 형편에 따라" 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삼상 10:7). 우리는 이러 이러한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일이 완결되기 전까지는 그 일에 대하여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모든 일을 알고 계신다." 이 모든 사실은("진리의 책"이라 불리우는) 그의 책 속에 차례로 기록되어 있는데 수정되거나 삽입할 것이 없는 완벽한 것이다(시 40:7). 그리고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어떠한 착오나 변경됨도 없이 그의 섭리가 정확히 일치되었음이 입증될 것이다. 우리들은 가련하게도 근시안적인 피조물들이다.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예견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사소한 부분적인 것이며 그것마저도 전혀 확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들이 아무리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고 해도 신의 선견 속에는 무모한 확실성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일을 미리 알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5. 야고보는 이방인들과 상관되어서 야기되고 있는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해결되어야 할지 그의 의견을 말한다(19절). 그는 본문에서 나의 판단으로는, 내 견해나 판단으로는 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어떤 권위를 가진 것으로써가 아니라 조언하는 자의 입장에 서서 말한다. (1)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나 제의법의 준수가 결코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그들에게 권유를 할 필요조차도 없는 것이다. "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어지기를 희망한다. 나는 이제 그들을 대함에 있어서 가능한 한 최선의 친절로 할 것이며 그들에게 어떤 어려움을 겪게 하거나 실망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즉 그들에게 어떤 괴로움을 주거나 어려움을 주지 않겠고 또한 그들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게 하거나 거리낌이 되거나 그들을 당황하게 할 아무 것도 제시하지 않겠다. 불확실한 문제에 대한 논쟁 때문에 초심자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거나 그들을 동요시키지 않도록 깊은 배려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수용 태세가 되어 있는 일깨워진 양심에게 신앙의 본질을 깊이 심어 주도록 하자. 이러한 진리는 그들을 만족하게 하고 평안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낯선 것들이나 우연한 것들이 그들에게 어떤 압박을 가하지 못하도록 하자. 그러한 것들은 그들을 괴롭힐 뿐일 것이다. 그곳에 가기 위하여 그들이 훈련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곳도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그들을 괴롭힐 뿐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정의와 평화이며 성령 안에서의 기쁨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나라가 어떠한 사람에게도 괴로움을 주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가장 자극시킬 수 있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서는 이방인들이 양보를 하는 것이 좋다고 그는 보았다. 왜냐하면 할례를 받고 모든 율법을 지키라고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요구하지 않는 한 유대인들의 비위를 거슬려서 그들로 하여금 이방인들을 충동하는 행동을 하게 하고 그들을 격분케 할 수단을 강구하도록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작은 것을 그들이 양보해서 유대인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공연히 그것까지 어기어 그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야고보는 이방인 개종자들이 다음의 것만을 조심하면 유대인들이 만족스러워할 것이라고 보았다. ①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을 이방인 개종자들이 금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두 가지 다 나쁜 행위로 언제나 그것들은 금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특별하고 명백하게 구 두 악행을 금하라고 써보내는 것은 유대인들을 매우 흡족하게 할 것이었다(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이러한 문제 때문에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방인 개종자들이 이러한 죄악을 범하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사도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방인들에게 편지로나 설교로써 다음과 같은 것에 대한 경고를 조심스럽게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첫째, "우상의 더러운 것"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그들은 우상 숭배 예식에 참여하여 우상 숭배자들과 사귀지 말 것과 특별히 그들의 희생을 드리는 축제에 참여하여 그들과 교제하지 말 것이 경고되었다(고전 10:14; 고후 6:14). 둘째,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에 대하여 경고하였다(고전 6:9-15; 엡 5:3 참조). 그러나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나쁜 점만 들추어 내려던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개종을 한 후에도 그들 사이에 이러한 일들이 자행된다고 지적하였고, 이방인의 사도들이 그것을 묵인하고 있다고 공격하였다. 이제 이러한 제안과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또한 그러한 중상모략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 야보고는 이들 이방인들이 그들의 사역자들로부터 개별적으로 충고를 받았음을 알면서도 이방인들이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에 대하여" 공적으로 경고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일에 있어서 그들은 신중하여야만 하였고 이 두 가지 악의 모든 모양도 피해야만 하였다. 또한 그것은 특별히 유대인들을 선동시키는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② "목을 졸라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는 것을" 이방인들이 지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는 전자와 같이 그 자체로써는 악한 것은 아니고 언제나 금하도록 계획되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 법은 모세의 율법 이전에 노아에게 주어진 계율에 의하여 금해진 것이었었다(창 9:4). 유대인들은 그러한 것들을 굉장히 싫어하였으며 그러한 것들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자들을 모두 싫어하였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을 자극시키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이방인 개종자들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절제하라고 하였다(고전 8:9, 13). 이같이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6. 야고보는 그의 조언의 이유를 말한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의무적으로 감당해야만 하는 제의법의 거룩한 명령에 오랫 동안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금방 그러한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21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었기 때문이었다(모세의 율법의 상당량은 제의법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말한다. 당신들은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매우 존경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신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1) 모세가 계속해서 그들에게 가르쳐졌고 또한 그들에게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을 기억하라"(말 4:4)는 것이 요청되었다. 우리에게 기록으로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선포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성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말씀들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그들에게 도움을 줄 사역자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2) "모세의 글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그들이 모이는 장소인 회당과 그 시간인 안식일에 엄숙한 신앙적 절차를 따라 읽혀졌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모세의 법을 존경하도록 훈련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 법의 준수는 그들 신앙의 한 부분인 것이다." (3) "이것은 예전부터 행하여져 오던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 조상들로부터 모세에 대해 존경할 것을 물려 받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역사 깊은 것이었다." (4) "이것은 유대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느 성에서나 행해져 왔었다. 그러므로 그들 중에 누구나 부과된 율법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따라서 복음이 우리들을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유하게 하였지만 그럼에도 아직 그들이 그 의식법을 결별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과 그들 앞서 있었던 그들의 조상들이 이것을 신앙함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아왔었고 또 가르친 것들을 갑자기 그것은 필요없고 중요치 않은 것이라고 설득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그러므로 그들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 하며 그들에게 절충할 방법을 모색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잠시 그러한 의식법을 견디어야 하며 점차 거기서 빠져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유리는 우리들의 복음이 자유를 배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그들과 조화를 유지해야만 한다." 이같이 야고보는 중재의 정신을 보여 준다. 중재의 정신이란 유대인과 이방인 각자에게 어떤 거스림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하는 것이며 가능한 한 양자를 다 즐겁게 하며 격분하지 않게 노력하는 태도를 말한다. 우리들은 만일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그들에게 전승되어 왔고 또 그것들을 신성한 것이라고 그들이 교육을 받아 온 관습에 깊이 젖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이상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러한 경우에는 엄격함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너그럽게 이해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 ===이방인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26. (상동)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30.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33.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34. (없음) 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의 내용(행 15:22-35) 우리는 본문에서 이방인들에게 제의법을 부과하는 것에 관하여 예루살렘에서 개최되었던 회의의 결과를 보게된다. 그러나 사실은 여기에 기록된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언급되었음이 틀림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결국 이 문제로 그 회의의 의장격인 야고보가 얘기하게 되었고 야고보는 조언은 널리 받아들여져 "만장일치로"(nemine contradicente) 통과되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결정 사항을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그들의 사역자들에 의해 편지가 발송되었다. 이 서신은 이방인 개종자들도 거짓 교사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Ⅰ. 이 사명을 띠고 파송될 대표자들의 선택.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가기로 결정되었다. 그들이 대표자들 외에 바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