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1.19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벧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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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2장    [263. 이 세상 험하고] [267.주의확실한약속의말씀듣고] [353. 내주예수 주신은혜] ...전능하신 주 나의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
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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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제2장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교사들
1.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난 것과 같이, 여러분 가운데서도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파멸로 이끄는 이단을 몰래 끌어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을 값 주고 사신 주님을 부인하고, 자기들이 받을 파멸을 재촉할 것입니다.
2.  많은 사람이 그들을 본받아서 방탕하게 될 것이니, 그들 때문에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을 것입니다.
3.  또 그들은 탐욕을 품고, 그럴 듯한 말로 여러분의 호주머니를 털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파멸이 반드시 그들에게 닥치고 말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천사들을 아까워하지 않으시고, 지옥에 던져서, 그들을 사슬에 묶어 심판 때까지 어둠 속에 있게 하셨습니다.
5.  그분은 또 옛 세계를 아까워하지 않으시고,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세계를 홍수로 덮으셨습니다. 그 때에 그분께서는 정의를 부르짖던 사람 노아와 그의 가족 일곱 사람만을 살려 주셨습니다.
6.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두 성을 잿더미로 만들고 멸망시키셔서, 후세에 경건하지 않을 자들에게 본보기로 삼으셨습니다.
7.  그러나 무법한 자들의 방탕한 행동 때문에 괴로움을 겪던 의로운 롯은 구해 내셨습니다.
8.  그것은 의인인 그가 그들 가운데 살면서 보고 듣는 그들의 무법한 행실 때문에, 날마다 그의 의로운 영혼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9.  주께서는 경건한 사람을 시련에서 건져 내시고, 불의한 사람을 벌하셔서, 심판 날까지 가두어 두실 것입니다.
10.  특히 더러운 정욕에 빠져서 육체를 따라 사는 자들과, 권위를 멸시하는 자들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대담하고 거만해서, 하늘에 있는 영광스러운 이들을 모욕하면서도, 두려운 줄 모릅니다.
11.  천사들은 그들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님 앞에서 그들을 헐뜯어 고발하지 않습니다.
12.  그러나 그들은 본래 잡혀서 죽으려고 태어난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아서,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비방합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그 짐승들이 멸망하는 것같이,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13.  그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불의의 값으로 해를 당합니다. 그들은 대낮에 흥청대면서 먹고 마시는 것을 낙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티와 흠 투성이입니다. 그들은 여러분과 연회를 가질 때에도, 자기들의 속임수를 즐깁니다.
14.  그들의 눈에는 음녀만 보입니다. 그들은 죄짓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들뜬 영혼들을 유혹하며, 그들의 마음은 탐욕을 채우는 데 익숙합니다. 그들은 저주의 자식들입니다.
15.  그들은 바른 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로 갔습니다. 불의의 삯을 사랑한 보솔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16.  그러나 발람은 자기가 지은 죄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음성으로 말해서, 이 예언자의 미친 행동을 막은 것입니다.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폭풍에 밀려 가는 안개입니다. 그들에게는 캄캄한 어둠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18.  그들은 허무맹랑하게 큰소리를 칩니다. 그들은 그릇된 생활을 하는 자들로부터 가까스로 빠져 나온 사람들을 육체의 방종한 정욕으로 유혹합니다.
19.  그들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약속하지만, 자기들은 부패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의 종노릇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20.  사람들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세상의 더러운 것들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거기에 말려들어서 정복을 당하면, 그런 사람들의 형편은 마지막에 더 나빠질 것입니다.
21.  그들이 의의 길을 알고도 자기들이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그 길을 알지 못한 편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22.  "개는 자기가 토한 것을 도로 먹는다" 그리고 "돼지는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진탕에 뒹군다" 하는 속담이 그들에게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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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Peter 2  Amplified Bible

==The Rise of False Prophets

1 But [in those days] false prophets arose among the people, just as there will be false teachers among you, who will subtly introduce destructive heresies, even denying the Master who bought them, bringing swift destruction on themselves. 

2 Many will follow their shameful ways, and because of them the way of truth will be maligned. 

3 And in their greed they will exploit you with false arguments and twisted doctrine. Their sentence [of condemnation which God has decreed] from a time long ago is not idle [but is still in force], and their destruction and deepening misery is not asleep [but is on its way].

4 [a]For if God did not [even] spare angels that sinned, but threw them into [b]hell and sent them to pits of gloom to be kept [there] for judgment; 

5 and if He did not spare the ancient world, but protected Noah, a preacher of righteousness, with seven others, when He brought [the judgment of] a flood upon the world of the ungodly; 

6 and if He condemned the cities of Sodom and Gomorrah to destruction by reducing them to ashes, having made them an example to those who would live ungodly lives thereafter; 

7 and if He rescued righteous [c]Lot, who was tormented by the immoral conduct of unprincipled and ungodly men 

8 (for that just man, while living among them, felt his righteous soul tormented day after day by what he saw and heard of their lawless acts), 

9 then [in light of the fact that all this is true, be sure that] the Lord knows how to rescue the godly from trial, and how to keep the unrighteous under punishment until the day of judgment, 

10 and especially [d]those who indulge in the corrupt passions of the sin nature, and despise authority. Presumptuous and reckless, self-willed and arrogant [creatures, despising the majesty of the Lord], they do not tremble when they revile angelic majesties, 

11 whereas even angels who are superior in might and power do not bring a reviling (defaming) accusation against them before the Lord. 

12 But these [false teachers], like unreasoning animals, [mere] creatures of instinct, born to be captured and destroyed, reviling things they do not understand, will also perish in their own corruption [in their destroying they will be destroyed], 

13 suffering wrong [destined for punishment] as the wages of doing wrong. They count it a delight to revel in the daytime [living luxuriously]. They are stains and blemishes [on mankind], reveling in their [e]deceptions even as they feast with you. 

14 They have eyes full of adultery, constantly looking for sin, enticing and luring away unstable souls. Having hearts trained in greed, [they are] children of a curse. 

15 Abandoning the straight road [that is, the right way to live], they have gone astray; they have followed the way of [the false teacher] Balaam the son of Beor, who loved the reward of wickedness; 

16 but he was rebuked for his own transgression: a mute donkey spoke with a man’s voice and restrained the prophet’s madness.

17 These [false teachers] are springs without water and mists driven by a tempest, for whom is reserved the gloom of black darkness. 

18 For uttering arrogant words of vanity [pompous words disguised to sound scholarly or profound, but meaning nothing and containing no spiritual truth], they beguile and lure using lustful desires, by sensuality, those who barely escape from the ones who live in error. 

19 They promise them liberty, when they themselves are the slaves of depravity—for by whatever anyone is defeated and overcome, to that [person, thing, philosophy, or concept] he is continually enslaved. 

20 For if, after they have escaped the pollutions of the world by [personal] knowledge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they are again entangled in them and are overcome, their last condition has become worse for them than the first. 

21 For it would have been better for them not to have [personally] known the way of righteousness, than to have known it and then to have turned back from the holy commandment [verbally] handed on to them. 

22 The thing spoken of in the true proverb has happened to them, “The dog returns to his own vomit,” and, “A sow is washed only to wallow [again] in the mire.”

==Footnotes

2 Peter 2:4 This verse begins one of the longest sentences in the NT. The sentence concludes in v 10a.

2 Peter 2:4 For emphasis Peter uses a word (tartarus) from Greek mythology describing a hell reserved for the most horrendous of people to emphasize the terrible doom awaiting false prophets and teachers who manipulate and twist the truth of the gospel message.

2 Peter 2:7 Lot was the nephew of Abraham and the son of Haran. He traveled with his uncle to Canaan and eventually settled in Sodom because of its proximity to good grazing land for his flocks. Peter presents a side of Lot not easily inferred from the OT account.

2 Peter 2:10 In the descriptions that follow, Peter may specifically have in mind the false teachers of whom he spoke in vv 1-3.

2 Peter 2:13 One early ms reads love fea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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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2장
1.  But there were false prophets also among the people, even as there shall be false teachers among you, who privily shall bring in damnable heresies, even denying the Lord that bought them, and bring upon themselves swift destruction.
2.  And many shall follow their pernicious ways; by reason of whom the way of truth shall be evil spoken of.
3.  And through covetousness shall they with feigned words make merchandise of you: whose judgment now of a long time lingereth not, and their damnation slumbereth not.
4.  For if God spared not the angels that sinned, but cast them down to hell, and delivered them into chains of darkness, to be reserved unto judgment;
5.  And spared not the old world, but saved Noah the eighth person, a preacher of righteousness, bringing in the flood upon the world of the ungodly;
6.  And turning the cities of Sodom and Gomorrha into ashes condemned them with an overthrow, making them an ensample unto those that after should live ungodly;
7.  And delivered just Lot, vexed with the filthy conversation of the wicked:
8.  (For that righteous man dwelling among them, in seeing and hearing, vexed his righteous soul from day to day with their unlawful deeds;)
9.  The Lord knoweth how to deliver the godly out of temptations, and to reserve the unjust unto the day of judgment to be punished:
10.  But chiefly them that walk after the flesh in the lust of uncleanness, and despise government. Presumptuous are they, selfwilled, they are not afraid to speak evil of dignities.
11.  Whereas angels, which are greater in power and might, bring not railing accusation against them before the Lord.
12.  But these, as natural brute beasts, made to be taken and destroyed, speak evil of the things that they understand not; and shall utterly perish in their own corruption;
13.  And shall receive the reward of unrighteousness, as they that count it pleasure to riot in the day time. Spots they are and blemishes, sporting themselves with their own deceivings while they feast with you;
14.  Having eyes full of adultery, and that cannot cease from sin; beguiling unstable souls: an heart they have exercised with covetous practices; cursed children:
15.  Which have forsaken the right way, and are gone astray, following the way of Balaam the son of Bosor, who loved the wages of unrighteousness;
16.  But was rebuked for his iniquity: the dumb ass speaking with man's voice forbad the madness of the prophet.
17.  These are wells without water, clouds that are carried with a tempest; to whom the mist of darkness is reserved for ever.
18.  For when they speak great swelling words of vanity, they allure through the lusts of the flesh, through much wantonness, those that were clean escaped from them who live in error.
19.  While they promise them liberty, they themselves are the servants of corruption: for of whom a man is overcome, of the same is he brought in bondage.
20.  For if after they have escaped the pollutions of the world through the knowledge of the Lord and Saviour Jesus Christ, they are again entangled therein, and overcome, the latter end is worse with them than the beginning.
21.  For it had been better for them not to have known the way of righteousness, than, after they have known it, to turn from the holy commandment delivered unto them.
22.  But it is happened unto them according to the true proverb, The dog is turned to his own vomit again; and the sow that was washed to her wallowing in the m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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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2장 (개요)
 제 1장에서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독자들이 그들의 행로에 커다란 진전이 있도록 권면했는데, 이어서 제 2장에서는 그러한 그의 권면을 따르고자 하는 그들의 결심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을지 몰라서 그러한 방해를 제거시켜 주고자 하고 있다. 따라서 베드로는 그들이 거짓 선생들의 유혹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거짓 선생들에 대해 분명히 경고한다. 그들이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아래와 같은 주의를 주고 있다.
Ⅰ. 베드로는 그러한 유혹자들이 스스로에 대해서는 경건치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해를 끼친다고 하였다(1-3).
Ⅱ.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에게 형벌이 내릴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었다(4-6).
Ⅲ. 베드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하나님이 선대하신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7-9)
Ⅳ. 베드로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경계해야 할 유혹자들에 대해 말해 주었다(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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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선생들(1)(벧후 2:1-3)
Ⅰ. 제 1장의 후반부에서 사도 베드로는 구약 성서의 시대에 살았으며,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데 있어서 성령의 도구로 사용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 제 2장의 서두에서는 그 당시의 교회 안에 실재하였던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참된 선지자를 보낼 때, 악마는 미혹하고 속이는 자를 보내는데, 구약 성서의 시대는 거짓 선지자들이며, 신약 성서의 시대에는 거짓 그리스도요, 거짓 사도 그리고 거짓 선생들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서 다음의 사실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이 보내신 교사들의 임무는 진리의 도와 나아가서 영생에 이르는 참된 길을 보여 주는 것인데 반해서 거짓 사도와 거짓 선생들의 하는 일은 파괴적인 악과 나아가서 "멸망케 할 이단'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멸망케 할 악행과 함께 멸망케 할 이단 사상이 있다. 그리고 거짓 선생들은 호색적인 죄악을 만연시키고자 애쓰고 있다.
2. 멸망케 할 이단 사상들은 대개 진리의 탈을 쓰고 은근히 들어온다.
3. 파괴적인 이단 사상을 전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한다."

그들은 큰 인류의 유일하신 구세주요 구속자이시며, 온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전부 다 구속하실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위대한 선생의 말씀을 듣거나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4. 다른 사람들에게 멸망을 가져다주는 악행자들은(틀림없이)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다."

자신을 파괴하는 자들은 곧 멸망에 이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악행을 퍼뜨릴 만큼 마음이 굳어진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분명히 그리고 신속히 멸망당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개선될 길이 없다.
Ⅱ. 사도 베드로는 2절에서, 앞 절에 이어 그런 거짓 선생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배울 수 있다.
1. 악한 지도자들은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을 쉽사리 놓치지 않는다.

죄악의 길이 악독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쉽사리 그런 길에 빠져 들어간다. 사람들은 죄악을 물 마시듯하며 죄악 가운데 살기를 즐거워하고 있다. "선지자가 거짓 것을 예언하면 백성들은 그런 거짓 예언을 따르기를 좋아한다."
2. 죄악의 번창은 진리의 길에 대해 그릇된 소문을 퍼뜨린다.

다시 말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길에 대해 그릇된 소문을 퍼뜨린다.

기독교의 신앙은 진리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으로 비롯된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진실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운데 참된 행복으로 인도하며,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게 하는 수단으로써 우리 안에 진리를 이룩하게 하여 준다.

하지만 이러한 진리의 도는 파괴적인 죄를 품고 있으며 이를 키워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비방을 받는다.

이러한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사도 베드로는 예언했다. 오늘날 이와 같은 것 때문에 우리 마음이 상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거룩한 이름이 원수들에게 비방을 받지 않으며,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소망에 대해 저들이 악담을 할 수 없게 만들도록 힘써야 한다.
Ⅲ. 다음에 우리가 주목할 점은 미혹하는 자들이 그들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가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지은 말"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과 통제에 자신들을 팔아 넘기도록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아첨하는 말과 달콤한 말과 허울 좋은 화술로 단순하고도 어리석은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고 있다.

거짓 선생들은 사람들이 그들을 섬기도록 촉구하면서, 그들의 추종자로 만들어서 이득을 보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더 많은 재산과 신용 또는 추종자들을 더 많이 만들어서 칭찬을 받고자 하는 생각과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목회자들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도를 보여 주며, 그들의 추종자들이 구원을 얻도록, 그들의 유익과 진보를 기원하고 있으나, 이 거짓 선생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일시적인 이익과 세속적인 영광만을 바라고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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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벧후 2:4-6)
사람들은 흔히 집행 유예는 용서의 전조이며, 더구나 심판이 신속히 집행되지 않을 경우에는 틀림없이 그 심판이 파기되었거나 혹은 파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아무리 거짓 선생들이 얼마 동안은 성공적이며 번창해 보일지라도 그들에게 내릴 "심판은 지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오래 전에 이미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까지 결정하셨다.

다른 사람들을 믿음에서 떠나게 한 이런 불신자들은 이미 정죄를 받았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 위에 임했다.

의로우신 재판장은 속히 보복을 감행할 것이다. 그들의 재난의 날은 가까이 왔으며 그들에게 임할 모든 링들은 속히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증거하기 위하여 베드로는 여기에서, 죄인들에게 보복을 내림으로써 우리의 생각을 심각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대한 예를 몇 가지 들고 있다.
Ⅰ.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들을 어떻게 하셨는가 보자.
1.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진 자라도 형벌을 면제받을 수 없다.

능력과 지혜의 면에서 아무리 우리보다 월등히 높은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만일하나님의 법을 어긴다면, 법의 심판은 그들에게 선고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별도로 취급하지 않으심으로 해서 어떤 자비를 베풀거나 죄를 경감시켜 주지 않고 무서운 형벌을 내릴 것이다.
2. 범죄자들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들이 받을 형벌도 또한 엄중하고 가혹하다.

본성이 인간보다 월등한 이 천사들은 신속한 처벌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잠시 동안의 유예도 그리고 자비도 베풀어지지 않았다.
3. 죄는 그만큼 죄를 범한 자의 지위를 비천하게 떨어뜨린다.

하늘의 천사들은 그들의 높은 지위에서 떨어지며, 그들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을 빼앗긴다.

하나님을 거슬리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자기 자신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힌다.
4.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들은 모두 지옥의 나락으로 던짐을 당하게 된다.

영광의 극치와 불행의 심연 사이에는 그런자들이 쉴 만한 장소나 상태가 없다.

만일 피조물이 하늘에서 범죄하면 그는 지옥에서 형벌을 받아야 한다.
5. 죄는 어두움의 소산이며, 어두움은 죄의 삯이다.

비참과 고난의 어두움은 죄의 어두움에 뒤따라 일어난다.

하나님의 법이 보여 주는 빛과 지시에 따라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비치는 빛과 그의 임재하심 으로부터 오는 위로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6. 죄가 사람들을 형벌에 묶어두는 것과 같이 비참과 고통이 사람들을 형벌 아래 가두어 둔다.

비참이라는 어두움이 그들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고통으로부터 헤어나지를 못한다.
7. 가장 심한 고통은 마지막 심판 때에 이루어진다.

이미 지옥에 떨어져 있는 천사들에게는 아직 최후의 심판은 내려지지 않고 있다.
Ⅱ. 하나님이 천사들을 다루셨던 것과 같은 동일한 방법으로 옛 세상을 어떻게 다루셨는가를 살펴보자.

하나님은 옛 세상을 용서치 않으셨다.
1. 범죄자의 질과 마찬가지로 그 수도 자비를 얻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만일 그 범죄가 우주적이면 그 형벌도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게 된다.
2. 그러나 비록 적은 수의 의인이라도 있으면 그들은 보호를 받게 된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악인들과 함께 멸망시키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서 자비를 기억하신다.
3. 부패와 타락이 우주적으로 만연된 시대일지라도 모범적인 언행으로 "생명의 말씀을 간직하고 있는 의로운 전도자들"은 그런 우주적인 파멸로부터 보호함을 받게 될 것이다.
4.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사람들을 섬기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목적으로 창조한 피조물이지만, 죄인들을 심판하시는데 그런 피조물들을 도구로 이용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물을 가지고 온 세상을 심판하셨다.
5.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그런 심판을 내리셨을까? "그것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경건치 못하게 될 때 인간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고, 철저한 멸망을 받도록 내버림을 당하게 된다.
Ⅲ.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어떻게 하셨는가 살펴보자.

그것들이 비록 여호와의 동산과 같은 땅에 위치했었다 해도, 그 열매가 풍성한 땅을 사람들이 죄로 물들게 할 때, 하나님은 쉽사리 그 땅을 벌거숭이의 땅으로 전락시키고, 물댄 동산과 같던 땅을 먼지와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1. 어떤 정치적 결속이나 동맹도 죄많은 백성들에게 내릴 심판을 막아 주지 못한다.

소돔과 그 이웃 도성들이 그들의 정치적인 세력으로도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은 마치 천사들이 본성적인 위엄으로도 그리고 옛 세상이 많은 숫자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것과 같다.
2. 하나님은 돌이킬 수 없는 죄인들을 심판하시는데 뿐은 피조물들을 역이용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옛 세상을 물로," 소돔은 불로 심판하셨다.

물과 불이 그의 백성을 해하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은(사 43:2) 그것들을 가지고 그의 원수들을 전멸시킬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결코 안전하지가 못하다.
3. 가장 흉악한 죄는 가장 비참한 심판을 초래한다.

지독한 악독을 행하는 자들은 질병을 통해 그 악독이 기억된다. 여호와 앞에 범죄하는 자는 가장 무서운 보복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이전 시대에 있어서 죄인들에게 내려진 형벌은 후에 오는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나중 사람들은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뒤를 따르는 것이 다만 그들의 세월만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람들의 삶의 과정과 방법까지 따르는 것이다." 경건치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들이 여전히 불경건한 상황을 계속하면 그들이 어떤 대가를 치루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보복의 예들을 통해서 크게 각성해야만 한다.

그러한 보복의 예들은 우리를 권고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비록 죄 가운데 살고 있을지라도, 이미 약속된 바 죄의 용서를 얻도록 이끌어 주기 위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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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의 구원(벧후 2:7-9)
하나님께서 경건치 못한 자들에게는 멸망을 내리실지라도, 의로운 구원을 명령하신다.

하나님이 불과 유황을 사악한 자들의 머리 위에 내리실 때에도, 그는 의로운 자들의 머리를 싸 주실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그들을 숨겨 주실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하나님께서 솔을 보호해 준 경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 롯의 인품을 살펴보자. 그는 "의인"이라고 일컬어졌다.

이는 대체로 그의 생각이 바르고 언행이 착실하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결코 어떤 단순한  하나의 행동을 보시고 그 사람을 의인이라든가 또는 불의한 자라고 판단치 않으시고 , 그의 삶 전체 과정을 보시고 판단하신다.

그런데 여기 온갖 선에서 떠난 부패하고 타락한 세대 중에 한 사람의 의인이 있다.

그는 악을 행하는 많은 사람들을 따르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불의한 도시 가운데서도 의로운 걸음을 걸었다.
2. 다른 사람들의 죄가 이 의로운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죄인들은 그들의 죄악 가운데서 즐기지만, 의로운 사람들은 그 때문에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악인들과 함께 하면 우리는 죄 의식과 비탄에서 피할 길이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죄일지라도 이를 괴로워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자신을 정결하게 지킬 수가 있다.
3. 이 선량한 사람의 슬픔과 고통의 기간 및 그 고민의 원인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있다. 그것은 "날마다"의 일이었다.

그는 그들의 악행을 흔히 듣고 보았어도 결코 만성이 되지 않았으며, 거기에 따라서 일어나는 공포심을 무디게 하지도 않았다.

이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파멸시키는 무서운 심판에서도 보호를 받는 의인이다.

이러한 예증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백성을 구해 주시고, 그의 원수를 벌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의인이라 할지라도 유혹과 시련을 이겨야 한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마귀와 그 수족들은 의인들을 타락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고통을 퍼부을 것이며, 의인들은 이 때문에 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늘에 가기까지는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예상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준비해야만 한다.
(1) "하나님은 그의 사람들을 알고 계신다. "

하나님은 경건한 자들을 따로 세우신다. 그리고 다섯 성읍 중에 단 한 사람의 의인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아신다.

또 비록 그 숫자가 많아도 하나님은 그 중의 하나라도 모르고 넘기거나 무시하지 않으신다.
(2)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길과 방법을 모르시지 않으신다.

그들은 때로 어찌할 바를 모르며 그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 주신다.
(3) 경건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고 하시는 일이시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들을 "시험에서" 건져내며, 그들이 죄 가운데 떨어지는 것과 그리고 환란으로 인해 멸망당하는 것을 막는 길을 찾아내고, 하나님의 능력은 이를 실천에 옮기게 하신다.

우리를 시험에서 건져내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러한 시련이 필요 없는 것이라고 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막아 주실 수도 있을 것이다.
(4) 하나님은 경건한 자와 사악한 자들을 크게 차별을 두고 대하신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멸망에서 구원하실 때에도 그의 그 원수들은 멸망하도록 만들어 주신다.

불의한 자들은 의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에 참예할 길이 없다. 불의한 자들은 "심판날까지 지키심을 받는다. "
① 심판의 날이 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실 날을 정해 놓으셨다. "
② 하나님께서 돌이킬 수 없는 죄인들을 보존시키고 계신 것은 다만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내려질 때까지 그들을 붙잡아 두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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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선생들(2)(벧후 2:10-22)
Ⅰ. 사도 베드로의 의도는 미혹자들에 대해서 우리를 경고하며, 또 우리를 무장시키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사도는 이제 보다 각별하게 그들에 대해서 언급하며, 그들의 성격과 행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화제를 돌리고 있다.

이러한 설명은 마치 가인이 무서운 복수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에서도 각별한 보도를 받은 것과 같이, 가장 가혹하며 과중한 최후의 심판을 내리기 위해 한동안 무법한 자들을 보전해 두시는 이 세상의 공의로우신 심판자에 대해 유감없이 바르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찌하여 이런 거짓 선생들을 이같이 다루시는 것일까? 이점에 대해서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Ⅱ. "거짓 선생들은 육체를 따라 살기 때문이다. "

그들은 자기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생각과 욕망에 따라서 산다.

그들의 이성을 하나님의 계시에 굴복시키거나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기를" 거부하면서, 그들 자신의 정욕적인 마음에 자신을 내맡긴다. 그들은 그들의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교훈에 정반대 되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행하며, 타락된 본성의 요구에만 응하며 산다.

악한 생각은 종종 악한 행위를 수반한다. 또 죄를 퍼뜨리는 자는 불법을 증진시킨다.

그들은 자신이 현재 처하고 있는 더러운 것에 만족하지 않고 또 그들이 이미 저지른 불법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도 만족치 않고 "육신을 따라 행하며" 그들의 죄악의 길을 계속 걸어가며, 불신앙적인 것과 불결하고 부정한 것을 더 한층 증대시키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권위있게 세우시고 그들에게 존경하기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다.

우리는 그러한 것에 대해 놀랄 필요가 없다. 이는 그들이 대담하고 용감하며, 완고하기 때문이며, 마음속에 저주를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혀를 가지고서 그들을 다스리는 자들에 대해 비방하며 비난하는 말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Ⅲ. 사도 베드로는 보다 탁월한 피조물들, 비록 "천사들"일지라도 그들의 매우 특별한 상태에 대해 진술함으로 그들의 죄가 더욱 가중된 것임을 보여 준다.
1. 그들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권위와 힘으로 옷입히운 자들보다 월등하다. 더욱이 그들은 다스리는 이들을 비방하는 거짓 선생들보다는 더욱 월등하다. 선한 천사들은 모든 본성적인 것과 도덕적인 우월성에 있어서 힘과 이해 그리고 거룩함이 우리들보다 훨씬 우월하다.
2. 선한  천사들은 그들 자신들이나 우리 또는 그 양편 모두에게 대해서, 죄를 지은 피조물들에 대한 고발자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의 왕좌 앞에 설 수 있도록 허락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열심이며 따라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자들의 잘못을 꾸짖고 나선다.
3. 천사들은 죄를 지은 피조물들을 "주 앞에서 송사한다. "

천사들은 그들의 잘못을 판단하지 않으며, 더욱이 그들의 죄과를 그들의 동료들 앞에서 공공연히 어떨 수 방하고 비난하지 않는다.

오직 이러한 송사는 심판자이시며 모든 불신앙과 불의에 대해 보복하실 주님 앞에서만 행해진다.
4. 선한 천사들은 아무리 악한 불법과 범죄들을 송사 할지라도 가혹한 욕설과 천박한 훼방을 말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우리들이 천사들의 본을 받아야 한다.

만일 불법한 자들에게 불평할 만한 일이 있으면 이를 하나님께 돌려야 하겠다. 그것도 걱정과 욕설을 통해서가 아니라, 동정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야 우리는 자비하시고 긍휼히 넘치시는 분에게 우리가 속해 있다고 것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Ⅲ. 미혹하는 선생들이 탁월한 피조물들과 어떻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11절)

베드로 사도는 계속해서(12절) 그들이 제일 미천한 피조물들과 같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은 지각이 없는 말과 노새와 같다. "

그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없는 짐승과 같다.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알지 못하므로 이성을 활용하거나 또는 그 이성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보는 것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행하지 못한다. "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감각에 의해서만 사물을 판단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감각이 사물을 즐겁고 유쾌한 것으로만 나타내 줌으로 그들은 그렇게 인정하고 귀하게 여긴다.

짐승들이 자기들의 감각적인 기호의 본능을 따르는 것처럼, 죄된 인간의 부패한 마음의 성향을 따른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지각과 이성을 사용하기를 거부한다. 따라서 그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일들에 대해서 무지하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살펴 볼 수 있다.
1. 무지는 훼방의 원인이 된다.
2. 멸망은 무지의 결과에서 올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부패로 말미암아 멸망당한다. 그들의 악함은 내세에 가서 하나님의 진노 앞에 그들 자신들을 들어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있어서도 종종 불행과 파멸을 초래한다.

확신컨대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으며" 죄의 폭로가 죄에 대한 매력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생각하는 교만한 범죄자들은 마땅히 이 세상에서도 곤욕을 치르며 마지막 심판의 날에도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떤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불의에 대한 마땅한 대가"일 뿐이다.

이러한 죄인들은 도박군이 스스로를 속이듯이 불행 중에 자기들 스스로를 속이며, 그들이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의 품위를 떨어뜨린다.

왜냐하면 그들이 범하는 하나의 죄는 또 다른 죄를 유발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치스러운 축제와 먹고 마시는 데 있어서의 무절제함은 그들로 하여금 갖은 양상의 음탕한 죄를 저지르게 한다.

그만큼 그들의 "눈은 음심으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의 방탕한 모습은 자신의 불순한 정욕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에게도 이와 유사한 것을 유발케 하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다. 이것은 그들이 범죄하기를 중단할 수 없는 것이다.

색욕을 갈망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마음은 만족을 모르며, 그들의 눈은 부정한 욕망을 만족을 시킬 수 있는 것을 끝없이 찾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죄를 짓는데 뻔뻔스러우며 또 끊임없는 범죄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같은 범죄로 이끌어 들이기 위해 열심히 유혹하며 때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리고 "불안정한" 가운데 죄와 불경으로 이끌려 갈 위험에 놓여 있는 자들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여 보자.

혜가 충만치 못한 마음의 소유자는 쉽사리 죄의 길에 들어서게 되거나, 아니면 그런 음탕한 사람들을 쉽사리 설복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방탕하며 음란할 뿐만 아니라 또한 탐욕스럽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이러한 간계에 의해 움직여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요를 갈망하고 있으며, 그들의 영혼의 욕구는 이 세상의 재물을 향하고 있다.

그들의 하는 일의 대부분은 이 세상의 재산을 모아들이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일에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쏟고 있으며, 온갖 계획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그런 온갖 욕심에 자기 자신들을 내어 맡긴다면,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그들을 향해 "저주의 자식"이라고 하였다고 해서 조금도 놀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께서 그러한 "불경하고 불의한" 자들에게 내리신 저주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만 그러한 저주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에게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한다.
Ⅳ.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들어가면서(15,16절),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탐심 많은 자들까지도 "저주의 자식"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1. "그들은 바른 길을 떠났다. "

이렇게 자기를 추구하는 자들은 자기를 부정해야 하는 바른 길을 떠났다고 할 수밖에 없다.
2. 그들은 잘못된 길에 빠졌다.

그들은 잘못을 범했으며, 생명의 길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에 들어섰으며, 종당에는 지옥에 빠질 것이다.

베드로는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이 곧 그러한 길임을 보여 주었다.
(1) 그 길은 사람들의 불의의 삯으로 말미암아 이끌려 가는 불의한 길이다.
(2)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사물들은 죄인들이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약속하는 삯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주 실망한다.
(3) 이 세상의 것들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자들은 저 세상의 더 좋은 것을 바라보지 못한다.

이 세상의 재물과 명예를 사랑한 발람은 그가 가는 길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길인 줄 알면서도, 그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길을 벗어나서 다른 길을 걸어가게 만들었다.
(4) 동일한 원리에 따라 악명 높은 죄인들과 함께 동일한 죄된 행실을 범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사악한 범죄자들의 추종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종국에는 어디로 가게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 모방하고 있는 자들과 함께 내세에는 "마땅히 차지하게 될 자리"에 이르게 된다.
(5) 사악하고 마음이 굳어진 죄인들은 때때로 그들의 죄에 대한 책망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들이 가는 길을 중단시키며, 양심의 입을 열어 주시기도 하시며, 놀라운 섭리를 통해 그들을 놀라게도 하고 공포심을 느끼게도 하신다.
(6) 비록 흔하지 않고 특별한 책망이 잠시 동안 사람들의 용기를 좌절시키며, 죄의 길로 향한 그들의 빠른 발걸음을 저지시킨다고는 할지라도 그들로 하여금 죄의 길을 완전히 버리고 거룩한 길로 들어서도록 하지는 못한다.

만일 죄를 책망하는 것으로써 한 인간을 그의 본연의 임무로 돌이키게 할 수 있다면, 사실 여기에 나타난 발람에 대한 책망은 그 효과를 나타냈었어야만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놀라운 기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인지 사람으로서는 증명할 수 없지만, 하여간 "말 못하는 나귀"가 인간의 목소리로 그의 주인에게 말을 했던 것이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바가 있기 때문에 그를 여기서는 선지자라고 일컫고 있다(민 22:23, 24). 

하지만 가룟유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들어 있었던 것처럼, 그도 여호와의 선지자들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하여간 나귀는 선지자의 광적인 행동을 폭로하며, 그가 악한 길로 빠져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으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일반적인 책망의 방식으로 돌이키게 할 수 없는 자들은 아무리 기적적인 방식을 통해 책망하더라도 그들을 죄악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발람은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지 못하도록 제지를 받았으나 세상의 명예와 재물에 대한 강한 욕심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그러한 제지를 벗어나 보려고 애썼다.
Ⅴ. 사도 베드로는 미혹하는 선생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계속하고 있다(17절). 그는 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그들은 "물 없는 샘" 또는 우물과 같다.
(1) 목회자들은 마땅히 사람들이 교훈과 지도와 그리고 위로를 찾을 수 있는 "샘" 또는 우물이 되어야 한다.
(2) 거짓 선생들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구하는 이런 것들을 줄 것이 없다.

진리의 말씀은 생명의 물인데, 그것은 마시는 자에게 영혼의 새로움을 가져다준다.

이들 미혹하는 선생들은 죄를 퍼뜨리며, 증진시키는데 힘 쓸 뿐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 속에 진리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텅빈 상태로 있게 마련이다.

그들 자신이 무지하고 공허한 사람들로부터 우리들이 지식과 이해력을 얻어보려고 하면 그런 우리들의 기대는 허사로 끝날 수밖에 없다.
2. 그들은 "광풍에 밀려가는 구름"과 같다.

우리는 구름에게서 우리를 시원하게 하는 비가 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구름은 비를 부어 주지 못하는 구름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람에 밀려가는 구름이기 때문인데, 그 바람은 성령의 바람이 아니라, 자기들의 욕망과 탐욕을 추구하는 바람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인기와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주장을 내세우고 이를 퍼뜨리는 자들이다.

그리고 구름이 햇빛을 가리우고, 하늘을 흐리게 하는 것과 같이, 그들은 지식이 없고 진리가 들어 있지 않은 말로 교훈을 어둡게 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이 사람들이 어두움을 증진시키는 것을 볼 때, 다음 세상에서 그들은 반드시 어둠 속에 거한 것이 틀림없다.

위세가 당당한 미혹자인 마귀와 마귀가 사람들을 진리로부터 떠나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그 추종자들을 위해서는 지독한 어두움이 마련되어 있다. 더욱이 그것은 영원히 마련되어 있다. 지옥의 불은 영원하며, 밑없는 심연에서 나오는 연기는 영원히 영원히 솟아오르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이렇게 다루시는 것은 정당한 것이며 거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1) 그들은 그들이 대하는 사람들을 미혹하며, 사람들이 고기를 잡듯이 그들을 올무 속에 가두어 넣기 때문이다.
(2) 소리는 크나 의미는 없는 허탄한 자랑의 말과 그럴 듯한 표현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기 때문이다.
(3) 그들은 그것이 그들에게 매우 고마운 일이라고 하면서, "타락한 애정"과 그들의 "육체적인 정욕"에 따라 행하기 때문이다.
(4) 그들은 해롭고도 파괴적인 죄를 퍼뜨리고, 또한 이러한 죄를 지니고 있는 자들을 피하고 그들과 멀리 한 사람들을 유혹했기 때문이다.
① 그들은 적응력과 근면으로 죄와 허물을 증진시키는 기술과 재주를 터득하고 있다.

그들은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고 있는 어부와 같이 이 방면의 기법이 훌륭하며, 매우 성공적이다.

이 사람들의 하는 일은 그들을 자기들의 뒤를 이을 제자들로 삼는 일이다.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그들이 포섭하고자 하는 자들에 대해 미끼를 적중시키는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 그들의 방법과 술책을 살펴 볼 가치가 있다.
② 미혹하는 선생들은 그들을 이끌어 들이기 위한 관능적인 쾌락을 소유하기 때문에, 그들을 포섭하는데 특별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은 그들에게 자기를 부정하며 나갈 것을 요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만족해하는 정욕적인 것을 억제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진리가 더 이상 번창해 나가지 못하며, 반면에 죄가 그토록 많이 번져나가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못된다.
③ 한동안 진리를 고수하며 죄에서 멀리 하던 자들이 미혹하는 자들의 교활함과 근면 때문에 그들에게 속게 되면 그들은 한동안 깨끗이 피할 수 있었던 죄에 다시금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 경계하라. 여러분의 신앙적인 경계를 항상 유지하며, 성경을 상고하고, 성령께서 여러분을 진리 가운데 이끄시도록 기도하고 하나님과 함께 겸손히 동행하며 그리고 여러분을 타락한 심령으로 내버리도록 유발할지도 모르는 모든 것을 경계하라. 그것은 여러분이 아름답고 허울좋은 거짓 선생들의 가식으로 인해 목숨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거짓 선생들은 자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약속하고 있지마는,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그들 자신의 악과 욕망을 따르는 죄의 방탕을 허락하는 것이다. "
이러한 사람들에게 붙잡혀 배도자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베드로는 그들의 자유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들은 죄의 종이기 때문에 가장 악한 노예임을 말해 주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욕은 그들을 완전히 정복해 버렸고, 그들은 육신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육신의 지시에 순응하고, 그의 명령에 따르기 위해 육신을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춤으로 전적으로 정욕에 매여 있다.

그들의 생각과 마음은 매우 부패하고 타락하였기에, 그들에게 부과되는 일을 거절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의지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영적인 원수들에 의해 정복당하고, 포위되었으며, 불의한 종들에게 항복하고 만다.

"자신들이 죄의 종이요, 자신이 정욕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들"에게 정복당하고, 그들에게 이끌려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인가! 이러한 생각이 우리로 하여금 미혹자들에게 이끌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사도 베드로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첨가하고 있다(20절). 그 자신이 죄의 노예인 자들에게 속으며, 쾌락으로 말미암아 마귀에게 이끌린다는 것은 부끄럽고 명예롭지 못한 일일뿐만 아니라,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자들로부터 깨끗이 떨어져 살고 있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매우 큰 손해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나중 형편이 처음 시작할 때의 형편보다 훨씬 못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몇 가지를 알아보자.
첫째, 사람들이 완전히 중생되고 구원받을 만큼 변화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더 크고 이름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세상적인 타락에 빠지지 않도록 피하는 것은 이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로써 참으로 신실한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일이나, 공공연히 죄를 행하는 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일이 없겠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들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이 방탕의 생활을 영위하며, 악한 세대에 우리 자신을 내맡겨 버린다면, 이는 복음을 따라 살려고 힘쓰는 자들을 괴롭히고 또한 그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되며, 자존자이신 하나님께 대해 이미 반기를 들고 있는 자들의 손을 강하게 하며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멀게 하며, 또한 하나님에 대해 우리의 마음을 경화시키는 것이 되고 만다.
둘째, 어떤 사람들은 한 동안 "그리스도께 대한 지식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더러움으로부터 지킴을 받는다."

그들은 그들의 심령이 구원받을 만큼 중상되어 있지 못했던 자들이다. 종교 교육은 하나님의 은혜로도 새롭게 하지 못했던 자들을 제지시키고 있다. 우리가 만일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머리 속에 그리스도께 대한 추상적인 지식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얼마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속에 받아 간직하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성화되지도 못하고 구원받지도 못한다.
셋째, 세상의 타락으로부터 한동안 피해 있는 사람들은 복음의 진리에 대해 그럴 듯한 이론(異論)으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거짓 선생들에 의해 우선 유혹을 받는다. 그리고 더욱이 무지하고 안정되지 못한 자들은 이로 인하여 마음이 흔들리게 되며, 이미 소유하고 있는 교훈의 진리에 대해 의혹을 품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거니와, 이러한 미혹자들에 의해 언급되어지는 모든 이론(異論)에 대해 답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넷째, 사람들이 올무에 한 번 걸리기만 하면 그들은 쉽사리 넘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만 하며, 그들을 당황하게 하고 길을 잃어버리게 하고자 하는 자들을 경계해야만 한다. 이는 "한 번 피했던 사람이 또 다시 올무에 걸리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훨씬 나빠지기" 때문이다.
Ⅵ. 사도 베드로는 이 제 2장의 마지막 두 절에서 비교하는 상태는 무지한 상태보다 더 악한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義)의 길"에 대한 지식을 얻은 후에도 그것을 저주하며 그 비슷한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교란 의의 길에서 그들이 어떤 부정과 그리고 진리의 말씀에서 어떤 거짓을 발견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도에 대해 이렇게 악의적인 평판을 가하며, 진리의 길에 대해 거짓된 비판을 가하는 것은 신랄한 비판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저버리는 자들의 불행은 어떤 다른 범죄자들이 당하는 불행보다 더욱 비참하고 또 필할 수 없는 것이다.
1.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불순종하며, 하나님과 그의 은혜에 대해 비난과 조롱을 퍼붓는 자들에 대해서도 분노하시지만, 그들의 행위로 복음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해 더욱 분노하시기 때문이다.
2. 그 마귀는 한때 그를 떠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겠다고 고백하였다가, 다시 그의 손아귀에 들어 온 사람들을 더욱 면밀하게 주시며, 더욱 가까이에서 감시한다(마 12:45). 그들은 더 심한 경계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토한 것을 다시 핥아먹으며, 그들이 한 때 멀리 했던, 그리고 그들이 한 때 증오했던 것과 같은 피와 불경건으로 돌아가며, 그리고 그들이 한 때 죄씻음을 받았던 것으로 보였던 종전의 더러움에 다시 빠지게 될 경우, 그들이 더 심한 경계를 받게 되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자! 만일 이 마지막 두 절에서 성서가 나타내고 있는 바와 같이 `한편으로는 기독교에 대한 것을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죄에 대한 것을 설명하고 있다면, 우리는 전자 즉 기독교를 입증하고, 그 속에 간직된 것을 지키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만이 의의 길이요, 거룩한 계명이기 때문이다.

또 한편 우리는 후자 다시 말해서 죄를 미워하고, 동시에 그 죄로부터 멀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죄는 가장 공격적이며 증오해야 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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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제 2장

=====2: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 '민간에'의 헬라어 '엔 토 라오'(* )는 문자적으로 '사람들 사이에'라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롬 15:11;유 1:5). 

한편 '거짓 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과는 달리(1:21),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지 않고 자신들의 말을 하는 자들로서(신 18:20;렘 14:14;23:21,32;겔 13:2-7) 하나님의 계시적인 뜻보다는 백성들의 기대에 맞게 거짓 예언을 일삼는 자들을 시사한다(렘 4:10;6:14;14:13, 15;23:17;27:9,16-8; 겔 13:10,Bauckham). 

베드로는 수신자들 사이에 '거짓교사'들이 있음을 논증하기 위해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거짓 교사'와 같은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일어났었나니'의 헬라어 '에게논토'(*)는 부정과거로 거짓 선지자들이 생겨난 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나타내고 있다(Lenski).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 '선생'은 '교육자'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일반적인 '지도자'를 가리킨다.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이 백성들을 미혹케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과 비교함으로 백성들을 미혹하는 그들의 특성을 밝히며 경계시키고 있다(Bauckham, Green). 

한편 '있으리라'의 헬라어 '에손타이'(* )는 미래 시제로 '거짓 교사들'이 '거짓 선지자들'을 계승하여 분명히 일어날 것임을 암시한다(Lenski, Robertson, Cranfield, Green).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다른 가르침]을 가만히 끌어들여 - '이단'의 '단'은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으로 '멸망케 할 이단'이라는 말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사람들로 하여금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함을 나타낸다. '가만히 끌어들여'는 함께 들여와 비밀리에 퍼뜨린다는 의미로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이 직접 미혹하는 것과는 달리 거짓 교사들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미혹할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의 특징 중 하나이다(고후 11:13-15;갈 2:4;유 1:4, Blum, Lenski, Green, Reicke).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 '사신'의 헬라어 '아고라산타'(*)는 '아고라조'(* , '구속하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주권적인 인도'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출된 것과 관련이 있는 단어로(삼하 7:23), '거짓 교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 하나님을 부인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구속 사역을 행하셨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의도적(意圖的)으로 부인하려는 자세를 가리킨다(3:5;막 10:45;딤전 2:6;계 5:9, Blum,Green, Alford).

=====2:2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 '호색하는 것'은 온갖 종류의 반복되는 성적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이방 종교들이 갖는 특성을 잘 나타내 준다. 

거짓 교사들은 이방 종교에서 우상 숭배를 하며 성적 방탕에 빠지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들도 미혹하여 집단적으로 타락한다.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 '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호도스'(* )는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삶의 태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 말로(행 :2;19:9,23; 24:14,22) '진리의 도'는 교리가 아니라 윤리적인 삶의 양태를 나타낸다(Grundmann, Bauckhan, Blum). 거짓 교사들의 부도덕하고 성적으로 방탕한 생활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롬3:23,24;딤전 6:1).

=====2:3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 '지은'의 헬라어 '플라스토이스'(* )는 신약성경에서 본문에서만 언급되는 표현으로 '목적 성취를 위해 조작한다'는 의미이다(Bigg, Mayor).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그릇된 교리나 논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미혹된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경제적 욕구와 이익을 채우려 한다(딛 1:11;딤전 6:6;유 1:16)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 '심판'과 '멸망'은 하나님을 거스리고 자신의 배만 위해서 사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판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거짓 교사들에게 내려질 심판의 명확성을 시사한다(Lenski). 

또한 '지체하지 아니하며'와 '자지 아니하느니라' 역시 하나님께서 깨어 계시사 거짓 교사들의 죄악을 간과하지 않으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거짓 교사들의 죄악된 행위를 내버려두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심판하여 멸망시키실 것이다.

=====2:4

본절부터 10절까지는 의롭고 공평한 심판에 대한 예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거역하고 범죄하는 것을 간과하지 아니하시고 심판하신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수신자들을 미혹하고 있는 거짓 교사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 호 데오스...우크 에페이사토'(* ... )는 가정문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히 시행되었음을 뜻한다. '범죄한 천사'는 아담의 타락 이전에 하나님께 반역한 천사들을 가리킨다(창 6:1-4;유 1:6;계 12:7;20:1-3).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 '지옥'의 헬라어 '타르타로사스'(* )는 헬라 신화에서는 반역하는 신들이 형벌을 받는 곳이었으나 베드로는 악한 천사들이 마지막 심판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특정한 장소로 언급한다(유 1:6;에녹서 10:4;54:4,5). 

한편 '어두운 구덩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조푸(* )는 문자적으로 '흑암의 쇠사슬' 혹은 '어두움의 결박'(유1:6)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범죄한 자들이 결박당한 모습을 나타낸다(Green, Cranfield, Lensk, Gibson).

악한 천사들이 마지막 최후 심판을 기다리면서 고통중에 기다린다는 종말 사상은 구약성경과(사 24:21, 22) 다른 사도들에 의해 이미 언급되었다(요 16:13;고전6:3;계 20:7-10).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들을 지옥에 결박하여 두시고 마지막 심판 때가 되면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이다.

=====2:5

헬라어 본문에는 본절은 물론 6,7절에도 '카이'(* ,'그리고')가 나타난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실례가 계속됨을 나타낸다(유 1:5-7, Cranfield,Lenski).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는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심판을 의미하나(Bauckham), 문맥상 노아 시대의 악인에 대한 심판을 시사한다. 

베드로는 노아시대의 홍수를 언급함으로 하나님께서 현재나 미래의 악한 것들을 남김없이 심판하실 것임을 강조한다.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 '의를 전파하는'은 바울이 말하는 법정적 개념에서의 의가 아니라 불의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달하는 전달자의 역할을 나타낸다(1:1).

한편 '노아와 그 일곱식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오그도온 노에'(* )이다. '오그도온'은 문자적으로 '여덟째'를 가리키는 것으로 노아가 여덟번째라는 의미가 아니라 노아와 그 아내, 세 아들과 며느리를 포함한 여덟 식구를 나타낸다. 실제로 노아는 여덟번째가 아닌 첫번째로 방주에 들어갔다(창 6:9;8:18, Bauckham, Lenski). 베드로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구원받은 수가 적음과 심판의 명확성을 나타내고자 한다(Gibson, Bauckham, Reicke).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스모 아세본'(* )은 무관사 여격으로 노아 식구를 제외한 당시의 모든 세상이 죄로 가득 차있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본문은 노아 당시 죄악의 보편성(普遍性)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확실성을 나타낸다(Green).

=====2: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 베드로는 계속해서 창 19장의 소돔과 고모라 성의 예를 들어 불심판에 대해 언급한다(3:6,7;유 1:7). '성'에 해당하는 헬라어 '폴레이스'(* , '도시들')는 단지 '성' 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유황과 불로 심판하셨음을 나타낸다(창 19:24-28;유 1:7). 한편 '멸망하기로 정하여'라는 어구는 오직 70인역에만 언급되는 것으로(LXX 창 19:29) 후세에 불의한 자들을 위해 미리 보여주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시사한다(Blum). 소돔과 고모라 성은 마치 화산이 폭발하여 주변이 온통 재로 덮인 것과 같이 실제로 온 성이 재로 덮였다.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 '경건치 아니할 자들'은 '경건치 않는 일을 행하는 자들' 곧 '배도자나 거짓 교사들'과 같은 자들을 가리킨다.

소돔과 고모라 성은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패역한 거짓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경고의 본이었다.

'본'은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에 대한 그의 진노가 모든 세대에 알려지기를 원하셨음을 암시한다.

=====2: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 '무법한 자'의 헬라어 '아데스몬'(* )은 부정 접두어 '아'(* )와 '본성' 혹은 '자연적 양심의 법'을 의미하는 '데스모스'(* )의 합성어로 인간의 본성적인 양심의 법조차 무시하는 부도덕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음란한 행실'은 변태적 성욕으로 인한 반복되는 호색적 행위를 가리킨다(2절;창 19:4-11;벧전 4:3, Lenski, Robertson).

한편 구약성경에서 '롯'은 세상적인 죄악에 빠져 있었던 인물로 언급된다(창 13:10-14;19:6,8,16,33-35).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롯을 '의로운 자'로 언급하는 것은 외경의 전승을 따른 것으로(지혜서 10:6, Blum, Green, Bauckhan) 아브라함에 비해(창 13:1-13) 의롭다는 것이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에 비해 의로웠음을 의미한다. 

또한 롯을 의인이라고 부른 이유는 소돔과 고모라의 호색적이고 변태적인 성욕의 죄악에 빠져들지 않고 심령에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 때 구원을 받았다. 베드로는 롯의 구원을 언급함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로 인한 구원을 강조하며 수신자들로 하여금 낙심치않고 이단들에 대해 인내할 것을 격려하고 있다(Green, Reicke).

=====2:8

헬라어 본문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 , '왜냐하면')가 있어 롯이 불심판에서 구원받은 원인을 상술한다.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 '상하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바사니젠'(*)은 '바사니조'(* , '괴롭히다', '고통을 당하다')의 미완료 능동태로 지속적으로 내적 고통을 당함을 나타낸다(마 8:6,29;계 9:5, Robertson, Gibson,Bauckhan, Calvin). 

롯은 날마다 죄악된 생활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 성의 백성들을 대하면서 스스로의 내적 고민 때문에 고통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Bigg).

이것은 롯의 의로움을 나타내며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합당한 근거가 된다. 즉 하나님께서는 불법한 자들 가운데 거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여 고통하는 롯의 모습을 의로 여기시고 구원하신 것이다(창 19:4-11;전 7:20).

=====2: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 본절은 4절에서시작된 심판과 구원의 실례에 대한 결론이다. '시험'의 헬라어 '페이라스무'(* )는 죄악의 상태에 빠지는 유혹이 아니라, 악한 세상에서 의로운 자가 당하는 시련을 의미한다(눅8:13;행 20:19;벧전 1:6, Chaine, Kuhn).

당시의 사람들이 죄의 유혹과 대항해 싸웠으니(Bauckham)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유혹에 대항하여 싸우는 경건한 자를 시련속에서 연단하시며 보존하신다(고전 3:13;10:13, Green, Clark).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 '형벌 아래 두어'의 헬라어 '콜라조메누스'(* )는 '콜라조'(* , '형벌을 내리다')의 현재 수동태 분사로 (행 4:21) 형벌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Bigg,Green, Lenski, Robertson).

이것은 사악한 자들이 현재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비적 심판을 받고 있으며 최종적(最終的)인 심판이 아직 남아 있음을 암시한다(계20:11-15, Bauckham, Calvin, Blum, Spitta, Mayer, Kelly, Boobyer).

베드로는 본절에서 구원과 심판을 분명하게 대조하여 의인에 대한 구원과 사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을 강조한다(Cranfield, Bauckham).

=====2:10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 '육체를 따라'의 헬라어 '오피소 사르코스'(* )는 관사가 붙지 않았으므로 '육체가 갖는 속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신령한 속성을 따르지 않고 윤리적 죄악을 행하는 것을 나타낸다(Lenski, Blum).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 '주관하는 이'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혹자는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eyer, Bigg, Weiss, Wiesinger, Lensi). (2)혹자는 악한 천사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engel, Schott). (3)혹자는 제도화된 교회의 장로들이 갖는 권위 즉 '교권'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Zahn). (4)혹자는 '정치 권력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alvin,Clark,Hofmann). 이러한 견해 중 첫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주관하는 이'의 헬라어 '퀴리오테토스'(* )는 무관사로서 '주권의 속성'을 나타내어(골 1:16;엡 21) 온 주주와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멸시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며 반드시 심판하셔서 멸망시키신다.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 '담대하고'는 '당돌함'을 의미하며(Lenski, Robertson) '고집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우다데이스'( )는 '아우토스'(* , '스스로')와 '헤도마이'(*, '즐겁게 하다')의 합성어로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거만한 행동을 가리킨다.

한편 '영광있는 자'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제국적이고 행정적인 세력이라고 주장한다(Calvin). (2)혹자는 교회 통치자들이라고 주장한다(Bigg). (3)혹자는 하늘의 천사들이라고 주장한다(Spitta, Kuhl, Alford, Blum, Green). 이 세 가지 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유 1:8). 

거짓 교사들은 당돌하고 교만하여서 하나님의 수종을 드는 하늘의 천사들마저도 무시하고 업신여겼다.

=====2:11

개역성경에는 비교 접속사 '호푸'(* , '이에 반하여')가 생략되어 있다. '호푸'는 앞절의 거짓 선생들의 행위와 천사들의 행위를 비교하여 거짓 교사들의 교만함을 드러내고 있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고 주 앞에서 저희를 거스려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아니하느니라 - 본문은 더 큰 힘과 능력을 소유하였으나 송사하지 않은 천사들과 힘과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적하고 훼방하는 거짓 교사들을 비교하여 거짓 교사들의 교만을 강하게 드러낸다(유 1:9;계 12:9, Alford, Chase, Gibson). 

한편 본문의 '천사들'은 '미가엘'을 가리킨다(Cranfield, Bauckham). 이들은 다른 천사들과 악한 천사들보다 강하다(계 12:9). 이렇게 강한 미가엘조차도 자신이 직접 훼방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모든 심판권을 하나님께 돌린다(유 1:9).

=====2: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필연적인 멸망을, 잡혀서 도살(屠殺)당할 짐승에 비유한다(계12:11-13). 

거짓 선생들의 무례하고 거역하는 행위는 천사의 행동에 비하면(유 1:10) 아무런 생각이 없는 동물과 같은 것이다.

거짓 교사들을 비롯한 죄인들은 마땅히 추구해야 할 영적 진리를 잊은 채 다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간다(롬1:24,25).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 거짓 교사들의 행동은 동물과 같이 근본적으로 이성 없는 무지의 소치이다. 

사도 바울도 믿기 전에 행한 자신의 행동을 무지의 탓이라고 밝혔다(딤전 1:13).

이렇게 거짓교사들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불법을 행하며 대적하여 멸망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딤전 1:7, Clarke).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의 헬라어 '엔 테 프도라 아우톤 카이 프다레손타이'(*)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멸망 안에서 그들은 파괴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저희 멸망 가운데서'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거짓 교사들을 유혹하는 사악한 부패로'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Reicke). (2)혹자는 문자 그대로 저들의 멸망을 의미하여 멸망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주장한다(Plumptre,Lenski). (3)혹자는 '저들 자신의 부패스런 행위로 말미암아'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Wand). 세 가지 견해 중 두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멸망 가운데서'가 '카이'(* , '그리고')라는 접속사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거짓교사들은 무지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 결과 반드시 멸망할 것임을 시사한다.

=====2: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 본문은 거짓 교사들이 남들에게 불의하게 행한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들도 속임을 당하고 보응을 받음을 의미한다(Cranfield, Green,Blum, Mayer). 이러한 예는 불의하게 예언하려다 멸망한 발람에게서 찾을 수 있다(민24:11).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 '낮에'에 대해서 혹자는 '날마다'(Meyer,Alford, Auther)로 이해하고, 혹자는 '매일'(Oecumenius)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나 '낮 시간에'(Zahn, Bigg, Strachan, Blum)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연락'의 헬라어 '트뤼펜'(* )은 사치스럽고 자유 분방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눅7:25, Gibson). 

취하고 방탕한 생활은 일반적으로 밤에 이루어지나 거짓 교사들은 이들보다 더 악한 자들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한다.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 '점과 흠'은 어떤 모양을 손상시키는 오점을 말하는 것으로(엡 5:27;벧전 1:19) 거짓 선생들의 불의한 행동을 가리킨다. 또한 '간사'는 '어리석음' 혹은 '속임'을 뜻한다(Robertson,Green, Lenski).

본절은 거짓교사들이 낮에도 밤처럼 향락(享樂)에 빠진 생활을 즐길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모임에서도 역시 자신들의 술 취하고 음행하는 방탕한 행위로써 불의를 드러냄을 시사한다.

=====2: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마음속에 있는 음란한 생각을 시각적으로 묘사한다.

'음심'의 헬라어 '모이칼리도스'(* )는 문자적으로 '음녀' 혹은 '간음하는 여인'을 의미한다(마12:39;16:4;롬 7:3;약 4:4). 

본문은 음탕한 생각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거짓교사들의 방탕한 생활은 전혀 만족이 없으며 그들은 지칠줄 모르는 육적인 정욕의 노예가 되어 죄악된 삶에 빠져 지내게 된다.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 '굳세지 못한 영혼들'은 본서의 수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3:16) 베드로 자신의 연약했던 과거를 암시한다.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네가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 하라'(눅 22:32)는 명령을 들었기 때문에 거짓 선생들의 미혹 가운데 있는 수신자들과 자신을 비교했음이 틀림없다(Green, Gibson). 

'유혹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델레아조'(* , '꾀다', '미끼를 달다')에서 유래된 말로 (18절, 약 1:4) 거짓 교사들의 전형적인 속성을 시사한다(Gibson,Green, Lenski, Blum).

거짓 교사들은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자신들의 거짓된 가르침으로 꾀어 그들의 방탕한 생활에 동참하게 한다.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 '연단된'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귐나스메넨'(* )은 완료형 분사로 '체육으로 몸을 단련하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의 탐욕적인 생활이 이미 습성화 되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저주의 자식이라'는 것은 전형적인 히브리식 표현으로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 위에 있도다'라는 의미이다(눅 10:6;엡 2:8; 5:8;살후 2:3;벧전 1:14, Blum,Lenski, Clark). 이것은 그들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암시한다.

=====2:15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탐욕을 '발람'의 예를 들어 책망한다.

'바른 길'은 구약에서 흔히 사용되는 비유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진리의 도'(2절)를 가리킨다. 그리고 '발람의 길'이란 돈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거짓 예언을 하고(민 22:5-24:25) 부도덕한 것을 교훈한 역사적 사실(민 31:16;계 2:14)을 가리킨다.

본절에서 베드로가 거짓 교사들의 탐욕과 불의에 대해 발람의 교훈을 예로 언급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훈을 함과 동시에 거짓 교사들에게 멸망의 경고를 하기 위함이다(Blum, Reicke).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미스돈 아디키아스 에 가페센'(* )은 문자적으로 '불의의 행위로 말미암는 삯을 사랑한 사람'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자신의 탐욕을 위하여(민22:22-24)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도덕한 행동을 하도록 미혹하였던 구약의 발람의 예를 통해서(민 31:16;유 1:11) 불의한 삯으로 거짓된 모든 욕망을 소유하려는 거짓 교사들의 모습을 지적한다(Calvin, Reicke, Green, Lenski).

=====2:16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 발람에게 있어서 '자기의 불법'은 발락이 주는 불의의 삯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거짓으로 저주함으로 하나님의 법을 고의로 어긴 사실이다.

베드로는 발람이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나 거짓으로 책망한 위선자였음을 나타내어 발람이 표리 부동한 거짓교훈을 전하는 죄를 범했음을 시사하고 있다(민 25:1-3;31:16;신 23:4;수 24:9;느13:1,2;계 2:14). 

거짓 교사들의 죄는 이처럼 발람이 책망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책망을 받을 것이다.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것을 금지하였느니라 - 본문은 발람이 책망받는 사건을 나타낸다.

본래 선지자의 직무는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해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발람이 자신의 소욕(所欲)으로 인해 거짓예언을 함으로 선지자의 직무를 외면하였고 그 결과 짐승 곧 나귀에게 책망을 받았다.

베드로는 나귀에게 책망받는 발람의 예를 거짓 교사의 경우와 비교하여 거짓 교사들의 교훈과 행위가 짐승에게 책망받을 만큼 사악한 행위이며 '미친자의 행위'와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은 행동임을 강조한다(Gibson, Clark)

=====2: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 '물 없는 샘'은 거짓 교사들의 교훈이 무익함을 시사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땅에는 물 없는 샘이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물 없는 샘'(창 37:24;렘 14:3)은 물이 갈한자들에게 실망만 가져다 줄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짓 선생들의 교훈이 샘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만족을 줄 수 없는 물 없는 샘에 불과하다(마 12:43;눅 11:24;요 4:13,14).

한편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사상적 교훈을 '안개'로 표현한다(Green, Lenski). '안개'는 마치 세상을 소유한 것처럼 세상을 자욱하게 덮고 있지만 광풍이 불면 한 순간에 걷힌다.

이와 같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영적인 생명력을 주지 못하고(Bauckham) 일시적이며 견고치 못하다(막 4:37;눅 8:23;유 1:12, Blum, Green, Lenski).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 '캄캄한 어두움'의 헬라어'호조포스 투 스코투스'(* )는 '지옥'이나(Blum) 사악한 자들의 종말적 운명을(Calvin, Green)나타낸다. 왜냐하면 '조포스'(*)는 특별히 '땅 속의 어두움'을 말하기 때문이다(Bag, Bauckham). 한편 '예비되어있나니'의 헬라어 '테테레타이'(* )는 '테레오'(* ,'유지하다')의 완료 수동태 분사로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를 나타낸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의 영원한 심판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계획되었음을 시사한다. 이 '테테레타이'는 그리스도인들의 기업이 하늘에 예비되었음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마 22:13;벧전 1:7,Gibson, Robertson).

=====2:18

개역 성경에는 '가르'(*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절이 앞절의 이유임을 시사한다.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 '허탄한 자랑의 말'이란 허풍으로 부풀린 헛된 말을 의미하는 것으로(엡 4:17) 거짓 교사들의 사상적 속임수의 속성을 잘 나타낸다(Kelly, Gibson, Green). 그들은 사람들을 교묘하게 유혹하여 범죄하도록 유도한다.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이란 거짓 교사들은 물론 그들에 의해 미혹당한 이교도들을 가리킨다(Gibson). 이들은 이성없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들이다(12절).

한편 '겨우 피한 자들'의 헬라어 '투스 올리고스 아포퓨곤타스'(* )는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서 겨우 벗어난 자들로서 초보 단계의 신앙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Bauckam, Green, Blum).

거짓 교사들의 계략은 집요하여서 신앙의 뿌리가 깊지 않아 굳게 서지 못한자들을 여지없이 유혹하여 넘어지게 한다(Calvin,Reicke).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 '음란으로써'의 헬라어 '아셀게이아이스'(* )는 수단을 나타내는 복수 여격으로 '음란한 행위들로'를 의미한다. 

이는 곧 '음란'이 이방인과 거짓 교사들의 대표적 속성일 뿐만 아니라 신자들을 넘어뜨리는 수단임을 뜻한다.

또한 '아셀게이아이스'가 복수로 표현된 것으로 보아 단순한 음란의 범위를 벗어나 육체를 이용한 온갖 종류의 음탕한 행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Lenski, Robertson, Gibson, Reicke).

한편 '정욕 중에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에피뒤미아이스'(* )에서 전치사 '엔'( , '안에')은 '습성'이나 '환경'을 나타내는 것으로 (Gibson) 거짓 교사들과 저들의 유혹에 빠져 있는 이방인들의 삶이 정욕의 노예가 된 상태임을 시사한다(2절, 고전 6:12-20,Reicke).

=====2:19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 본문은 거짓 교사들이나 이들에게 미혹당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영광의 자유(롬 8:21) 혹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고전 8:9;10:23;고후 3:17)를 오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와(갈 5:1;요 8:32) 자신들이 허탄한 가운데서 행하는 방종을 혼돈한다(3:15,16)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말대로 하면 온갖 율법과 육체에서 해방되어 윤리 생활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자가 될 수 있다고 하며 신앙이 깊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였다(18절).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 '종들이니'의 헬라어 '둘로이휘파르콘테스'(*)는 분사 구문으로 거짓 교사들이나 배교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를 처음부터 오해하여 멸망의 종의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비록 거짓 교사들이 입으로 자유를 준다고 떠벌려 미혹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율법하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망당할 수 밖에 없다(Gibson, Bauckham, Green, Blum).

@누구든지 진자는 이기는 자의 종이 됨이니라 - 본문은 당시 흔히 있었던 상황을 묘사하여 거짓 교사들의 종말을 암시한다.

당시 전쟁에서 패한 국가의 백성들은 무조건 승리한 국가의 종으로 끌려 갔었다.

이와 같이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인해 죄의 정복을 당하여 죄의 노예가 되었다(요 8:34). '

종이 됨이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둘로타이'(* )는 '둘로오'(* , '노예로삼다')의 완료 수동태로 이미 '종이 되어온 자'를 의미한다(롬 6:16;8:21). 이것은 거짓 교사들이 '자유'를 준다고 말하기 이전부터 범죄로 인해 죄의 종이 된 상태였음을 시사한다.

=====2:20

@만일 저희가 - '저희'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거짓 선생들에게 미혹된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Bengel, Muller, Strachan).(2) 혹자는 본서의 수신자들로서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한다(Zahn). (3)혹자는 거짓 교사들이라고 주장한다(Cranfield, Meyer, Alford). 이 세 가지 견해 중 첫번째와 마지막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즉 거짓 교사들과 그들에게 미혹된 배교자들을 의미하는 듯하다.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언급하는 것은(1:1-3,8) 거짓 교사들과는 달리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지식의 원천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Lenski).

한편 '피한'의 헬라어 '아포퓌곤테스'(* )는 부정과거 능동태 분사로 과거에 이미 완전히 피하였음을 나타낸다.

또 이것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진정한 지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이방인 시절에 즐겨했던 죄악에서 돌아섰음을 시사한다.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 '다시...얽매이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팔린 엠플라켄테스'(* )는 수동태 분사로 또다시 더러움에 속박되어 죄에 정복당하는 것을 의미한다(14,18,Gibson, Robertson, Lenski).

이방인이었다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이 거짓 교사의 미혹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도를 버리면 그리스도를 믿지않던 이방인이었을 때보다 훨씬 더 악하여진다(마 12:45;눅 11:26;히 10:26)

=====2: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 '의의 도'는 '진리의 도'(2절) 혹은 '바른 길'과 같은 개념으로 '기독교의 복음'을 의미하며(마 21:32) '거룩한 명령'은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윤리적 규범이다(2절;막 5:1-7:29, Blum, Green,Lenski).

한편 '저버리는 것'의 헬라어 '휘포스트렙사이'(* )는 '되돌아 오다'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의 도를 받아들인 자가 그 도에서 돌이켜 배도한 것을 시사하며 '알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진리의 도를 접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배교자가 자신들의 과거 경험을 내세워 더욱 패역(悖逆)해지며 고집스러워져 다시금 회개할 소망조차 잃어버리게 됨을 나타내고 있다(2:20;3:18;히3:12-14;4:6;10:26,38,39, Cranfield, Blum, Green).

=====2:22

@참 속담에 이르기를 - 베드로는 거짓 교사와 배교자에 대한 경고를 하나의 속담으로 결론짓고 있다.

'참 속담'은 '진실한 속담'이란 뜻으로 속담의 내용이 저들에게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 이는 잠 26:11의 인용이다. 또한 사 56:10에도 유사한 비유가 언급되어 있다.

본절은 개가 자신이 토하여 놓은 것을 조금 후에 다시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짓 교사들이 다시금 원래의 본성대로 즉 죄악의 길로 되돌아 감으로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했음을 가리킨다.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 거짓 교사를 돼지에 비유하는 두번째 비유는 헬라의 유대인들의 속담집 '아히칼'(Ahikar)에 나오는 격언으로(Bauckham) '개'의 격언에서와 같이 과거로 되돌아 간 배교자들을 강조한다.

돼지가 씻어서 깨끗하여졌으나 곧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 가서 뒹굴어서 더러워지는 것과 같이 본문은 거짓 교사들이 한번 옛 생활을 잠시 떠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 할지라도 과거를 잊지 못하여 결국은 죄악의 쾌락으로 빠지게 됨을 시사한다.

한편 '개와 돼지'는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동물로 간주되었고, 주님도 진리의 말씀에 대적하는 자들을 비유할 때 사용하셨다(마 7:6).

베드로는 이러한 비유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가 배교하는 자들이 얼마나 죄악에 탐닉하기 쉬운가를 드러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경계토록 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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