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란 무엇인가3 / 원죄자범죄 개념의 문제점 / 전가교리 의의전가 죄의전가 / 죄와 사망의 왕노릇 / 은혜가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죄란 무엇인가3
구속에 있어서 전가교리만으로는 부족하다. 통치한다는 개념이 덧붙여야 한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이 세상에 들어온 죄와 사망의 통치 - 우주적이고 영적인 권세로 인간과 만물을 파괴적이고 폭력적으로 지배한다
보통 칭의를 말할 때 아담으로부터 <원죄> 의 유전, 그리스도로부터 의의 전가, 나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 등의 용어를 쓰면서, 법정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무한히 죄를 지어도 회개만 하면 무한히 용서> 라고 주장하지만 로마서를 보면 바울이 <전가> 라는 개념에 더해서 왕노릇(바실류오, 통치하다, 다스리다 reign)에서 볼 수 있듯이<지배, 통치>의 개념으로 설명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노릇(바실류오, 통치하다, 다스리다 reign)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왕노릇 = 바실류오 = 통치하다, 다스리다
사망이 왕노릇 = 아담의 범죄로 세상에 죄와 사망이 침투해 들어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을 지배,통치한다
바울의 설명은 롬 5:12에서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에이스 톤 코스몬 에이셀덴)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원죄와 원죄의 유전] 개념과 달리 아담의 범죄로 죄와 사망이 세상에 침략해 들어와 세상을 정복하여 왕노릇하여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들을 죄와 사망 안에 가두고 노예로 만들어 <지배하고 통치> 한다는 개념이다.
아담의 원죄의 유전????..... 원죄의 전가가 아니라 아담의 범죄로 죄와 사망이 이 세상에 들어와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 각개인마다 사로잡힌 노예로 만들어 지배하고 통치하여 모든 인간이 사망을 당하게 한다.
원래 세상에 대한 통치권은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는 위임을 받은 아담에게 있었으나 아담의 범죄와 불순종으로 아담이 사탄에게 종속된 이후로 세상의 통치권은 아담으로부터 사탄에게로 옮겨져 사탄에게 귀속되었고, 사탄은 세상의 임금(요 6:11)이 되어 죄와 사망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다.
옛 언약의 대표자인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은 독재자처럼 세상을 침략하여 들어와 <왕노릇>하고 모든 사람을 포로로 잡아 자기의 종과 노예로 삼았다. 그 결과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죄와 사망의 감옥 에 갇혀서, 죄 아래 <휘포 하마르티아>에 놓여 하는 짓마다, 생각하는 것마다 죄를 양산할 수 밖에 없는 [죄의 종]으로 살다가 사망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전적타락, 전적무능한 존재가 되었다.
아담의 범죄로 이 세상에 죄와 사망이 들어와 모든 인간이 죄와 사망의 감옥에 갇혀서 죄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 >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죄의 종으로 살아가면서 죄의 열매를 맺고 사망을 당한다.
......롬 3: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휘포 하마르티아)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에이스 톤 코스몬 에이셀덴)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인간은 이 세상의 임금이 사탄이고 자신이 죄와 사망의 포로요, 그 지배 아래 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마치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요, 인생의 미래는 자신의 계획대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주체적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죄와 사망의 포로요 노예인 것을 알 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죄와 사망의 매트릭스 안에 갇혀 사탄에게 조종당하면서 인생의 목적과 꿈을 꿈꾸지만 인생의 목적과 꿈이란 모두 죄와 사망의 매트릭스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뚫고 들어온 죄와 사망의 통치와 지배는 우주적이며 영적인 죄의 권세이고 너무나 나무나 강력하고 파괴적이기 때문에 어떠한 인간의 행위 즉 <율법의 행위와 종교행위와 선한행위> 로 절대로 죄와 사망의 감옥 안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가 없다. 즉 자력구원은 불가능하다.
이 세상은 죄와 사망의 폭력적인 지배에 갇혀 있으며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누구하나 열외없이 모두 죄와 사망의 폭력적인 지배에 갇혀 포로가 되어 있다. 죄와 사망의 지배와 통치 아래에 놓이게 된 모든 인간은 자동적으로 죄를 양산한다. 하는 짓마다, 생각하는 것마다 죄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롬 5:12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와 모든 인간은 죄의 노예로 살고 사망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원죄의 유전, 전가를 주장하는 자들에 의하면 롬 5:12의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를 모든 인류가 아담의 허리 안에 있어서 아담의 죄에 함께 동참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 죄를 지었으므로의 [헤마르톤] 이 과거시제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러나 과거시제는 꼭 과거만이 아니라 완료시제로 해석할 수도 있다.
[KJV] Wherefore, as by one man sin entered into the world, and death by sin; and so death passed upon all men, for that all have sinned: 또는
[NRS] Therefore, just as sin came into the world through one man, and death came through sin, and so death spread to all because all have sinned--
그래서 원죄의 유전개념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이 이 세상에 들어와 인간을 속박하여 폭력적인 힘으로 통치하고 있고, 그래서 모든 인류가 죄의 종이 되어 죄를 지어왔기 때문에 죄로 말미암은 사망이 모든 인류에게 이르렀다]의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때문에 롬 5:14의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의 의미를 [아담처럼 직접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려 범죄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사망이 지배(왕노릇)하였다] 로 해석할 수가 있는 것이다.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노릇(바실류오, 다스리다,통치하다)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이러한 죄와 사망의 통치는 모든 인간을 죄의 종, 죄의 포로로 만들뿐 만 아니라, 죄와 사망이 이 세상에 들어와 모든 개개인을 폭력적으로 지배할 뿐만 아니라 인간 전체 사회에 [구조악]을 만들고 모든 피조물들까지 악하고 파괴적인 힘으로 지배한다 는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죄와 사망의 지배 = 죄의 종
^^세상에 대한 죄와 사망의 지배 = 구조악 = 피조물도 허무한데 굴복당한 상태
롬 8:20에서 아담의 불순종 때문에 저 피조물들도 죄와 사망 안에 갇혀 허무한데(마타이오테스, 텅빔, 공허 emptiness, 무익 futility, 무가치 worth lessness) 굴복당한 상태에 있고 따라서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소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바울이 말하는 죄와 사망의 통치는 개개인의 죄로 그치는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과 하나님이 창조한 창조세계에 까지 확대되어 나간다. 그 만큼 인간과 세상에 대한 죄와 사망의 지배는 너무나 강력하며 치명적이고 절망적이며 파괴적이다.
그리하여 인간을 포함하여 피조물들과 온 세상이 죄의 사망의 폭력적인 통치 아래 갇혀 있으며 죄에 왜곡되어 있다.
.....롬 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마타이오테스, 텅빔, 공허 emptiness, 무익 futility, 무가치 worth lessness)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결론 : 원죄와 원죄의 유전,전가개념으로는 인간과 피조물을 포함하여 온 세상이 죄의 사망의 폭력적인 통치 아래 갇혀 있으며 죄에 복속되어 있음을 설명하지 못한다.
^^새하늘과 새땅은 구속의 범위가 우주적이란 증거
이처럼 피조물과 만물이 죄와 사망의 통치 아래서 탄식하고 신음하고 있기 때문에
골 1:20에서 십자가의 구속의 범위는 인간의 죄뿐만 아니라 만물까지 범위가 미치며,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신다. 그로 말미암아 만물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권이 회복되어 에덴에서의 하나님의 샬롬과 의가 온 세상에 이루어진다.
변질된 세대주의의 신학의 한계는 십자가의 구속을 인간의 죄에만 한정하여 한 명이라도 더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시인하여 죽은 이후에 영혼이 천당에 가는 것만을 구원이라고 갈망하지, 세상의 구조악과 모든 피조물과 만물에까지 미치는 십자가의 구속을 보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변질된 근본주의 신학의 한계는 교회만이 하나님 나라요,저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기 때문에 전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이원론적 신앙관, 내세주의적 신앙관을 갖는다.
그러나 저 창조세계를 보라! 저들도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을 갈망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원하며 모든 만물들이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복종할 때가 오기를 탄식하며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효력은 만물이 죄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와 화목되는 곳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고전 15: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엡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고전 15: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 만물과 화평
따라서 칭의의 은혜를 통해 죄와 사망의 통치에서 해방되어 의와 생명의 통치 아래 사는 신자들은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여 왕같은 제사장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 대한 통치권을 회복한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여 이 세상에 대한 통치권을 회복하여 왕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회복한 자이다.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따라서 진정한 복음은 인간을 포함해 이 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전 영역과 하나님이 창조한 전 피조세계에 관심을 갖는다. 왜냐하면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과 모든 피조세계가 죄와 사망의 통치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시작된 의와 생명의 통치를 받아 그리스도의 발 앞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 천당-불신지옥] 처럼 영혼구원만을 전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시작된 의와 생명과 은혜가 통치하고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천국(바실레이아 투 데우)으로 옮겨가는 것이 구원의 본질임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 세상의 수 많은 문제점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며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세계가 인간의 무모한 개발로 파괴되지 않고 정상적인 모습을 갖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보통 주장하듯이 아담으로 인한 원죄와 원죄의 유전으로 그친다면 계21장에서 최종적인 구원의 완성에 왜 새하늘과 새땅이 포함되어야 하는가? 사11장에서는 왜 미래에 회복될 하나님 나라의 모습에 이리, 어린양, 표범, 염소, 송아지, 사자, 소, 곰, 독사와 같은 짐승을 포함시키는가? 인간만 죽어서 영혼이 천당가면 되지 왜 궂이 만물과 애꿎은 자연계까지 구속의 범위에 포함시키는가?.
.....사 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기에게 끌리며
.....사 11: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사 11:8 젖 먹는 아기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기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사 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것은 이러한 죄와 사망의 폭력적인 지배는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이고 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피조물들도 죄와 사망의 지배에 갇혀 있게 되어 탄식하면서 신음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예를 들면 땅이 저주를 받아 엉겅퀴와 가시를 내는 것) 현재까지 죄와 사망의 통치와 지배에 따른 허무함에 <굴복>된 상태에 있으며, 따라서 모든 피조물이 원하는 것은 이러한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 벗어나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소망한다(롬8:20,21).
.....롬 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마타이오테스, 텅빔, 공허 emptiness, 무익 futility, 무가치 worth lessness)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이것은 구원이 내세구원이나 영혼구원만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지배와 통치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시작된 의와 생명의 통치와 다스림 아래로 옮겨간다는 통치의 개념이기 때문에, 칭의의 효력은 [의의 전가나 죄의 전가의 전가교리] 처럼 개개인의 영혼의 구원만을 의미하지 않고 죄에 굴복된 만물을 회복하는 우주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칭의의 효력은 만물을 회복하는 우주적인 성격도 포함한다
칭의의 효력은 단지 죽어서 가는 천당이나 영혼의 구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의와 생명의 지배를 받는 원래의 에덴과 하나님의 샬롬으로의 회복,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이 세상 전체와 창조세계의 회복과 완성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구원의 결과는 창조-타락-구속-회복-완성이라는 구조를 지향하고 있으며, 이는 원죄개념이나 [전가교리]로는 설명이 되지 않고, 오로지 [의와 생명의 통치, 의와 생명과 은혜의 지배] 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새 하늘 새 땅=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던 하늘과 땅(온 세상)이 사탄과 죄와 사망이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 심판을 받고 나서 그리스도께서 통치를 회복한 세상. 재창조가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질서로 회복한다는 개념이다..
처음 하늘, 처음 땅과 바다=사탄이 활동하며 죄와 사망의 통치를 받았던 온 세상. 하나님을 대적하던 무대. 그러나 이제 그 무대는 사라졌다
<새>의 의미는 <카이논>으로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질서의 창조를 뜻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하늘과 땅을 완전히 파괴하여 전혀 다른 새로운 하늘과 땅으로 재창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하늘과 땅에 뿌리박혀 있는 사탄의 잔재들, 죄와 사망의 통치, 죄악들을 잡초처럼 완전히 솎아내어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이 처음 창조한 원래의 순전한 하늘과 땅으로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이 회복은 새로움(renewal)의 개념이다. 이것은 사탄과 죄가 들어오기 전의 원래의 순전한 에덴의 샬롬으로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2장에는 다시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와 생명수 강이 등장한다.
>> 새 하늘과 새 땅의 의미는?
요한계시록의 해석방법/ 계21:1 새하늘과 새땅/ 새예루살렘성 신부 어린양의 아내/ 하나님의 장막 / 생명나무 생명수 강 /처음하늘 처음땅 바다 / 창조 타락 구속 회복 완성
새 하늘과 새 땅은 무엇인가?
.....계 21:1 또 내가 새<카이논> 하늘과 새<카이논> 땅을 보니
구원은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 벗어나 의와 생명의 지배로 옮겨감이다
전가교리에서는 보통 칭의를 그리스도로부터 <의의 전가, 나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의 의의전가> 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무한히 죄를 지어도 회개만 하면 무한히 용서, 죄를 지어도 구원을 얻는대는 전혀 지장이 없다. 거룩의 열매와 순종의 행위와 같은 성화는 상급의 문제이지 구원의 문제가 아니다. 벌거벗은 구원, 개털모자 구원을 얻을 수도 있다>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구원을 <죄와 사망의 통치에서 해방되어 의와 생명의 통치로 옮겨감> 이라고 설명한다. 구원의 반대 개념은 심판과 정죄다. 죄와 사망의 지배 안에서는 심판과 정죄 밖에 없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시작된 의와 생명의 통치 안에서는, 은혜가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는 곳에서는 구원, 은혜, 하나님의 샬롬, 치유, 회복, 용서, 의, 평강, 희락이 있다.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롬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이러한 개념은 요한복음에도 등장한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 거듭남, 칭의를 얻어 죄와 사망의 통치에서 해방되어 의와 생명의 통치 안으로 들어간 신자는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을 죽이고, 순종의 종, 의의 종,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의 열매를 맺어 의(디카이오쉬네)를 얻어야 한다. 바울은 이것을 행위구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의와 생명의 통치 안에서 순종의 종, 의의 종으로 살아가는 삶 자체가 구원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죽어서 영혼이 피안의 세계인 천당으로 쏙 하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임한 의와 생명의 통치 안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에 복종하여 사는 삶 자체를 말한다.
이렇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여 살면 죽은 들 하나님의 존전 앞에 거하지 않겠는가? 바울은 믿음과 그리스도의 주권에 복종하는 믿음의 행위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전가교리에서는 이것을 행위구원이라고 말한다.
.....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디카이오쉬네)에 이르느니라
보통 주장하는 [의의 전가] 라는 개념은 정적인 개념이다. 반면 [의의 통치]의 개념은 역동적이다. 칭의는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 천당에 간다는 개념이 아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땅에 도래한 의와 생명의 통치 안에 들어가 생명의 지배를 받으며 열매맺는 삶을 살면서 세상을 향해 왕노릇하며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삶 전체를 아우른다.
바울의 칭의 개념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시작과 성장, 또는 언약관계로의 시작과 성장,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옮겨가서 열매맺는 삶이며 통치 안에서 살아가는 삶 전체를 아우른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뿐 아니라 은혜, 의, 생명의 통치를 말하고 있다
구원은 죄와 사망로부터 해방되어 의와 생명에게 종이 되어, 의의 종으로 살아가는 삶 전체다. 때문에 즉각적 칭의와 점진적 칭의라는 말을 쓸 수 있다. 즉각적 칭의란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 거듭남, 의롭다 함을 얻어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음이며, 점진적 칭의란 하나님께 대하여 언약적 신실함으로 행하여 의와 생명의 통치 안에서 내 안의 죄의 본성을 죽이고, 순종의 종, 의의 종,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의 열매를 맺는 삶 전체다. 칭의의 범위는 삶 전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종의 종으로 의(디카이오쉬네)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바울의 입장에서는 칭의와 성화는 특별히 구별되지 않으며 하나로 결합되어 즉각적 구원과 점진적 구원이라는 하나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지, 믿음은 구원, 성화는 상급으로 분리하고, 믿음만 있으면 상급이 없어도 벌거벗은 구원, 부끄러운 구원, 개털모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다.
.....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디카이오쉬네)에 이르느니라
마찬가지로 즉각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라는 표현을 쓸 수가 있다. 칭의를 얻어 거듭나고 죄사함을 받은 자는 이미 거룩한 자, 새 사람, 새로운 피조물이기에 즉각적 성화이며, 평생동안 삶 전반에 걸쳐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의 양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점진적 성화이다.
반면 전가교리에서는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여 칭의 다음에 성화가 오는 것처럼 각각 시간의 순서로 보고 칭의는 구원론, 성화는 상급론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입장은 바울의 견해가 아니다. 바울에게 있어 칭의는 의와 생명의 통치 아래 사는 삶 전체며 구원론과 상급론은 결합되어 구분하거나 나눌 수가 없다.
상급이 없는 벌거벗은 구원이나 개털모자 구원은 없으며, 상이 없는 것은 구원이 없는 것과 같다. 반대로 구원은 상이며 상은 구원처럼 은혜와 선물이지 노력에 대한 댓가가 아니다.
구원과 상은 결합되어 하늘의 유업, 기업, 상속이란 단어로 표현한다. 때문에 교회를 다닌다 할지라도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
......엡 5: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불의한 신자 = 죄의 본성의 지배를 받는 신자 =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바울이 고전 6:9에서 사용한 [불의한 자] 라는 용어는 불신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신자 가운데 죄의 종으로 살고 죄의 본성대로 행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를 칭한다.
그가 아무리 교회에 잘 출석하고 헌금을 잘 내고 목사말을 잘 듣는 최고의 신자라 할지라도, [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습니다] 라고 아무리 자기의 믿음을 주장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불의한 자] 라고 판단을 받는 자 즉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바울은 경고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고전 6:9 불의한 자(아디코스, 부정한,사악한)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고전 6: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의와 생명의 통치를 받는 삶 자체가 구원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이 세상에 들어온 죄와 사망의 통치는 너무나 강력해서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사람의 <종교행위, 율법의 행위, 선한행위>로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새 언약의 대표자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의로운 행위)과 부활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지배와 통치는 붕괴되었고, 치명상을 입어 힘을 상실하였으며, 이 세상에 성령의 권능으로 임하는 의와 생명의 통치가 오게 되었다. 은혜는 의를 통하여 통치하며 신자는 생명안에서 왕노릇한다.
이제 사람들은 <오직 믿음, 오직 은혜> 를 통하여 칭의를 얻어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 탈출하여 은혜가 <왕노릇>하는, 의와 생명의 지배와 통치로 옮겨가, 의의 종, 의의 무기, 순종의 종, 하나님께 종이 되어 의(디카이오쉬네)에 이르고 거룩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고 칭의를 얻은 신자는 자신을 불의의 무기로 죄에 내주지 말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의의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자신을 부정과 불법에 내주지 말고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야 한다. 롬 6:22에서 그 결과는 <영생>이다.
......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디카이오쉬네)에 이르느니라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입술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어요,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어요, 나는 죽어면 천당가요] 라고 확신할지라도 그가 자신을 죄의 종으로 드려서 살아가는 자는 사망이다. 자신의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어주면 사망이다. [뭐라구요? 믿기만 하면 구원인데 안그런가요? 행위를 강조하면 행위구원이예요!!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적당히 죄를 지을 수도 있는 것이지! 회개만하면 무제한 용서, 죄가 뭐 그리 대수라고.....] 따라서 하나님께 대하여 언약적 신실함으로 반응하여 의와 생명의 통치를 받는 삶 자체가 [의]고 구원이기 때문에, 따라서 자신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는 자들만이 종말론적 심판에서 제외된다.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그렇다고 해서 신자가 100% 완벽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누가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단 말인가? 신자는 넘어지고 실패할 수도 있다. 여기서의 핵심은 하나님께 신실하게 반응하고자 하는 신자의 마음과 생각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신자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고 가장 귀하게 여겨 주시면서 하나님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다. 이러한 믿음의 행위가 어찌 행위구원이란 말인가?
의와 생명이 <왕노릇>하며 지배하는 그리스도의 왕국은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뚫고 들어와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초대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자를 모두 차별없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하나님께 굴복하여 회개하고 믿음으로 화답하는 자들은 의와 생명의 능력이 넘치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로 옮겨가며 죄와 사망의 포로가 된 자들을 해방시키고 상처와 분열을 치료한다. 더 이상 죄와 사망의 권세가 이신칭의를 얻은 자를 지배할 수 없다. 이러한 의와 생명의 통치는 영생으로 이르게 한다.
이제 이신칭의를 얻은 자들은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의와 생명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하나님의 종은 성령으로 자기의 죄성을 죽이고 철저히 하나님게 순복하여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자이다. 의와 생명의 지배를 받은 자들은 의의 열매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혀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에 영생을 약속받는다.
.....롬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영생은 칭의와 열매맺는 삶과 분리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타락한 복음은 이신칭의와 열매맺는 삶을 분리시켜 이신칭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믿기만 하면 천당이야! 열매를 맺으면 좋고 안맺으면 어쩔 수 없고! 구원받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어! 죄를 지어도 회개만 하면 무제한 용서받으니까 죄를 지으면 어때?
어떻게 살든 구원은 떼어놓은 당상이야! 행위는 상급이니까 상급이 없더도 개털모자 구원만 받으면 되지? 행위를 강조하면 행위구원이야! 이 얼마나 바울이 로마서에서 극토록 강조한 것과 차이가 많이 나는 거짓복음이란 말인가? 현대 교회의 세속화와 타락의 원인 중의 하나가 이러한 구원파와 같은 복음을 믿기 때문이다.
....롬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바울의 의와 생명의 통치와 지배의 개념은 공관복음서의 천국, 하나님나라의 개념과 일치한다
바울은 직접적으로 천국, 하나님나라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생명의 성령의 법의 통치를 받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강조함으로써 공관복음의 천국, 하나님나라의 개념과 그 맥락이 상통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천국의 핵심은 죄와 사망의 통치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지배 아래에 있는 삶이다.
이 세상에 현재해있는 천국안에서는 성령으로 기도하며, 성령으로 봉사하고, 성령으로 예배하며, 성령으로 육신의 정욕을 죽이고, 성령으로 거룩한 열매를 맺는다. 바울에게 있어 성령의 지배를 받고, 육신의 정욕을 죽이며, 성령의 열매를 맺히며, 성령의 소망을 따라 사는 삶이 구원의 삶이다. 바울이 죽어서 가는 내세-천당만을 구원이라 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주님이 공관복음에서 그렇게 외치던 천국,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이며, 구원은 회개하고 믿음을 가져 죄와 사망의 통치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 안에 들어가 하늘의 은혜를 향유하면서 이 세상에서 생명안에서 왕노릇하며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나라의 가치와 목적을 실현하는 삶 전체를 의미한다.
주님은 죄와 사망, 그리고 사탄의 세력을 결박하였고 믿는 자들에게 은혜,신유,기적을 베풀어 하나님 나라가 성령을 통해 능력으로 이 세상에 임하여 우리들 가운데 거함을 증거하셨다.
따라서 구원은 이러한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이 세상에서 성령으로 내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을 죽이고 정복하며, 성령을 좇아 행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성령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원의 개념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데 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는 죽어서도 저 세상에 간들 하나님과 분리되지 않는다. 저 세상의 천국도 하나님의 통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정한 구원의 확신이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자들이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시인만 하면 구원을 얻어] 라고 거짓 구원의 확신을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갖는데 있다. 이들은 그냥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헌금을 잘 내고 믿습니다 하면 죽어서도 자동으로 하나님의 존전에 설 수 있을 것으로 착각을 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신자는 열매를 양산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단절되어 있기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열매를 맺음은 그 언제,어디서나 언약적 의무에 충실함이 전제가 됨을 기억하라. 하여 언약관계를 결코 [경홀히 여겨 미혹되어 타협하거나 자의적으로] 깨뜨리지 않는다.
.....마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결론
원죄와 자범죄 개념에서 문제점은 원죄는 영원히 용서받았고, 자범죄는 그냥 매일 회개하면 되지? 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여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죄에 대해서 관대하다. 죄를 지으면 어때? 회개하면 그만이지! 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죄를 죽이고 죄와 싸우고 죄와 일체의 타협이 없음을 강조한다. 성경은 단 한 방울의 죄도 용납하지 않는다.
전가교리로는 피조물의 썩어짐의 종노릇, 만물의 회복 등의 개념을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바울은 통치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