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개정]렘제7장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신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곳에 행하겠고
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여호와를 순종하지 아니하는 백성
16.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17.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18.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여왕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일으키느니라
1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나를 격노하게 함이냐 자기 얼굴에 부끄러움을 자취함이 아니냐
20.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나의 진노와 분노를 이 곳과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 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제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아울러 먹으라
22.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23.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24.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으며
25.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26.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지라도 그들이 너에게 순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니
28.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민족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지니라
도벳 사당을 건축
29. ○너의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벗은 산 위에서 통곡할지어다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 버리셨음이라
3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눈 앞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
31.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면 이 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말하지 아니하고 죽임의 골짜기라 말하리니 이는 도벳에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했기 때문이니라
33.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34. 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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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렘제7장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
1. 주께서 예레미야에게,
2. 주의 성전 문에 서서, 주를 경배하려고 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유다 사람에게 주의 말씀을 큰소리로 일러주라고 하셨다.
3.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의 모든 생활과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이 곳에서 너희와 함께 머물러 살겠다.
4. '이것이 주의 성전이다, 주의 성전이다, 주의 성전이다' 하고 속이는 말을, 너희는 의지하지 말아라.
5. 너희가, 모든 생활과 행실을 참으로 바르게 고치고, 참으로 이웃끼리 서로 정직하게 살면서,
6.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지 않고, 이 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겨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으면,
7. 내가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 하도록 준 이 땅, 바로 이 곳에서 너희가 머물러 살도록 하겠다.
8. 그런데도 너희는 지금 전혀 무익한 거짓말을 의지하고 있다.
9. 너희는 모두 도둑질을 하고, 사람을 죽이고, 음행을 하고, 거짓으로 맹세를 하고,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섬긴다.
10. 너희는 이처럼 내가 미워하는 일만 저지르고서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성전으로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우리는 안전하다' 하고 말한다. 너희는 그런 역겨운 모든 일들을 또 되풀이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다.
11. 그래,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성전이, 너희의 눈에는 도둑들이 숨는 곳으로 보이느냐? 여기에서 벌어진 온갖 악을 나도 똑똑히 다 보았다. 나 주의 말이다.
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두었던 실로에 있는 내 처소로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에, 내가 그 곳을 어떻게 하였는지 보아라.
13. 너희가 온갖 죄를 지었으므로, 내가 너희에게 서둘러서 경고하였으나, 너희는 듣지 않았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 주의 말이다.
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서 한 것과 똑같이, 내 이름으로 불리며 너희가 의지하는 이 성전, 곧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에게 준 이 장소에, 내가 똑같이 하겠다.
15. 내가 너희의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자손 모두를 내 앞에서 쫓아 버렸던 것과 똑같이, 너희도 내 앞에서 멀리 쫓아 버리겠다."
백성의 불순종
16. ○"그러므로 너 예레미야는 이 백성을 보살펴 달라고 기도하지 말아라. 너는 그들을 도와달라고 나에게 호소하거나 간구하지도 말고, 나에게 조르지도 말아라. 나는 이제 너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17. 너는 지금 그들이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의 모든 거리에서 하는 일들을 보고 있지 않느냐?
18. 자식들은 땔감을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고, 어머니들은 하늘 여신에게 줄 빵을 만들려고 가루로 반죽을 하고 있다. 또 그들은 나의 노를 격동시키려고, 다른 신들에게 술을 부어 바친다.
19.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 나를 격노하게 하는 것으로 그치느냐?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낯뜨거운 수치를 당하는 것이 아니냐? 나 주의 말이다.
20.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의 무서운 분노가 바로 이 땅으로 쏟아져서, 사람과 짐승과 들의 나무와 땅의 열매 위로 쏟아져서, 꺼지지 않고 탈 것이다."
21.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는 번제물은 다 태워서 나에게 바치지만, 다른 희생제물은 너희가 먹는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번제든 무슨 제사든, 고기는 너희가 다 먹으라는 것이다.
22.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왔을 때에, 나는 그들에게 번제물이나 다른 어떤 희생제물에 대하여, 전혀 말하지도 않고, 명하지도 않았다.
23. 오직 내가 명한 것은 '너희는 나에게 순종하여라. 그러면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그 길로만 걸어가면, 너희는 잘 될 것이다' 하는 것뿐이었다.
24.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도 않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기들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온갖 계획과 어리석은 고집대로 살고, 얼굴을 나에게로 돌리지 않고, 오히려 등을 나에게서 돌렸다.
25. 너희 조상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로부터 오늘까지, 내가 나의 종 예언자들을 너희에게 보내고 또 보냈지만,
26. 나에게 순종하지도 않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조상보다도 더 고집이 세고 악하였다."
27. ○"그래서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전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듣지 않을 것이다. 또 네가 그들에게 외치더라도, 그들이 너에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28.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인 나 주의 말에 순종하지도 않고, 어떤 교훈도 받아들이지 않는 백성이다. 진실이 아주 없어졌다. 그들의 입에서 진실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여라.
29. '예루살렘아, 너는 긴 머리채를 잘라서 던지고, 메마른 언덕 위에 올라가서 슬피 울어라. 주께서는 이 세대를 보시고 진노하셔서, 이 세대를 물리쳐 버리셨다.'"
힌놈 골짜기에서 저지른 죄
30. ○"나 주의 말이다. 참으로 유다 백성은, 내가 보기에 악한 일들을 하였다. 그들은, 나의 이름을 찬양하려고 세운 성전 안에다가, 자기들이 섬기는 역겨운 것들을 세워 놓아서 성전을 더럽혔다.
31. 또 그들은 자기들의 아들과 딸들을 불태워 제물로 바치려고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이라는 산당을 쌓아 놓았는데, 그런 것은 내가 명하지도 않았고, 상상조차도 하여 본 적이 없다.
32. ○그러므로 보아라, 그 날이 오면, 다시는 이 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 골짜기' 라고 부르지 않고, 오히려 '살육의 골짜기'라고 부를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그 때에는 매장할 자리가 더 이상 없어서, 사람들이 도벳에 와서 시체를 묻을 것이다.
33. 그 때에는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에 사는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 아무도 그것을 쫓아 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
34. 그 때에는 내가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의 모든 거리에서, 흥겨워하는 소리와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신랑 신부의 목소리를 사라지게 하겠다. 온 나라가 황무지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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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iah 7 Amplified Bible Message at the Temple Gate
7 The word that came to Jeremiah from the Lord, saying,
2 “Stand in the gate of the Lord’s house and proclaim there this word and say, ‘Hear the word of the Lord, all you of Judah who enter by these gates to worship the Lord.’”
3 Thus says the Lord of hosts, the God of Israel, “Change your ways and your behavior, and I will let you live in this place.
4 Do not trust in the deceptive and lying words [of the false prophets who claim that Jerusalem will be protected by God because of the temple], saying, ‘This is the temple of the Lord, the temple of the Lord, the temple of the Lord.’
5 For if you thoroughly change your ways and your behavior, if you thoroughly and honestly practice justice between a man and his neighbor,
6 if you do not oppress the transient and the foreigner, the orphan, or the widow, and do not shed innocent blood [by oppression and by unjust judicial murders] in Jerusalem, nor follow after other gods to your own ruin,
7 then I will let you live in this place, in the land that I gave to your fathers [to live in] forever and ever.
8 “Behold, you are trusting in deceptive and useless words that bring no benefit.
9 Will you steal, murder, commit adultery, swear [oaths] falsely, offer sacrifices or burn incense to Baal, and follow after other gods that you have not known,
10 and [then dare to] come and stand before Me in this house, which is called by My [a]Name, and say, ‘We are protected and set free [by this act of religious ritual]!’—only to go on with this wickedness and these disgusting and loathsome things?
11 Has this house, which is called by My Name, become a den of robbers in your eyes [a place of retreat for you between acts of violence]? Behold, I Myself have seen it,” says the Lord.
12 “But go now to My place which was in Shiloh [in Ephraim], where I first set My Name, and see what I did to it because of the wickedness of My people Israel.
13 And now, because you have done all these things,” says the Lord, “and I spoke [persistently] to you, even rising up early and speaking, but you did not listen, and I called you but you did not answer,
14 therefore, I will do to this house (the temple) which is called by My Name, in which you trust, and to the place which I gave you and your fathers, just as I did to Shiloh.
15 I will cast you out of My sight, as I have cast out all your brothers (relatives through Jacob), all the descendants of Ephraim.
16 “Therefore, do not pray for this people [of Judah] or lift up a cry or entreaty for them or make intercession to Me, for I do not hear you.
17 Do you not see what they are doing in the cities of Judah and in the streets of Jerusalem?
18 The children gather wood, the fathers kindle the fire, and the women knead the dough to make cakes for the [b]queen of heaven; and they pour out drink offerings to other gods that they may offend and provoke Me to anger.
19 Do they offend and provoke Me to anger?” says the Lord. “Is it not themselves [they offend], to their own shame?”
20 Therefore thus says the Lord God, “Behold, My anger and My wrath will be poured out on this place, on man and beast, on the trees of the field and the fruit of the ground; and it will burn and [the fire will] not be quenched.”
21 Thus says the Lord of hosts, the God of Israel, “Add your burnt offerings to your sacrifices and eat the meat.
22 For in the day that I brought them out of the land of Egypt, I did not speak to your fathers or command them concerning burnt offerings or sacrifices.
23 But this thing I did command them: ‘Listen to and obey My voice, and I will be your God, and you shall be My people; and you will walk in all the way which I command you, so that it may be well with you.’
24 But they did not obey Me or bend their ear [to hear Me], but followed the counsels and the stubbornness of their [own] evil heart (mind), and [they turned and] went backward instead of forward.
25 Since the day that your fathers came out of the land of Egypt until this day, I have [persistently] sent you all My servants the prophets, sending them daily, early [and late].
26 Yet they did not listen to Me and obey Me or bend their ear [to hear Me], but stiffened their neck; they did more evil and behaved worse than their fathers.
27 “You shall speak all these words to them, but they will not listen to you; and you shall [also] call to them, but they will not answer you.
28 You shall say to them, ‘This is the nation that did not obey the voice of the Lord their God or accept correction and warning; truth and faithfulness have perished and have completely vanished from their mouths.
29 ‘Cut off your hair [your crown, O Jerusalem] and throw it away, And take up a mournful cry on the barren heights, For the Lord has rejected and abandoned The generation of His wrath.’
30 For the children of Judah have done evil in My sight,” says the Lord; “they have set their disgusting and shamefully vile things in the house which is called by My Name, to defile it.
31 They have built the high places of Topheth, which is in the Valley of Ben-hinnom (son of Hinnom), to burn their sons and their daughters in the fire [to honor Molech, the fire god]—which I did not command, nor did it come into My heart (mind).
32 “Therefore, behold, the days are coming,” declares the Lord, “when it will no longer be called Topheth or the Valley of Ben-hinnom, but the Valley of the Slaughter, for [in bloody warfare] they will bury [the dead] in Topheth until there is no more room.
33 And the dead bodies of this people will be food for the birds of the air and for the beasts of the earth and no one will frighten them away.
34 Then I will cause the voices of joy and gladness, and the voices of the bridegroom and the bride to vanish from the cities of Judah and from the streets of Jerusalem; for the land will become a ruin—a wast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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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유대 백성이 그토록 의지하던 구실, 즉 하나님의 성전을 소유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그 성전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는 항변이 무효임을 나타내 주시고 외적인 특권과 행위에 대한 그들의 신뢰를 불식시키시려고 노력하고 계신다(1-11).
2. 그는 실로의 황폐화에 대해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시면서 예루살렘의 파멸도 그러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12-16).
3. 그는 예레미야 선지에게 그들의 가증스런 우상 숭배를 묘사하시는 데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격분하셨던 것이다(17-20).
4. 하나님께서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 5:22)고 하는 신앙의 기본적 원리와 불순종을 완강하게 고집하는 자들의 제사는 열납치 않으신다고 하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제시하신다(21-28).
5.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우상 숭배와 불경건으로 말미암아 그 땅을 황폐케 하시며 저희가 죄를 많이 짓듯 당신께서도 그들의 살륙을 증가시키시겠다고 위협하신다(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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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된 예배와 결과 예고(렘 7:1-15)
또 다른 설교가 여기서 시작되고 있는데 그것은 본장과 다음 두장에까지 계속되는 것으로 앞에 나온 말씀과 대동소이한 취지를 지닌다. 곧 그들을 설득하여 회개시키기 위한 설교인 것이다. 다음 사실들을 관찰하자.
Ⅰ. 이 설교를 선포하라고 선지자에게 내려진 명령. 예레미야 선지는 전체적인 위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증거한 모든 메시지조차 세부적 지시와 훈례를 받아 전달하였었다. 이것은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었다(1절)이 설교를 언제 선포해야 하는지 그 시기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다음 사실을 명시되어 있다.
1. 그 말씀을 선포해야 할 장소는 여호와의 집 문이었다. 이 문은 성전의 바깥뜰이나 백성의 뜰로 나가기 위해서는 통과해야 할 장소였다. 이런 곳에서, 즉 제사장들의 경내에서 이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제사장들에게 모욕감을 주어 그들의 격분을 살 터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인간의 낯을 두려워해서는 아니 되었다. 만일 두려워한다면 그는 자기 하나님께 신실할 수가 없는 것이다.
2. 선포해야 할 대상은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이었다. 아마 이 시기는 삼 대 절기 중 하나였을 것이다. 절기때는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남자들이 하나님의 집뜰로 와서 여호와 앞에 현신하도록 되어 있었고 빈손으로 나타나지 않게끔 되어 있었던 때문이다. 이런 때라면 그가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청중이 운집하기 때문에 자기들의 특권을 의지하지 말라는 훈계를 하기에 제일 적당한 시기가 되었을 것이다.
(1) 신앙을 보백하는 자들이라 하더라도 불신자와 마찬가지로 설교해 줄 필요가 있다.
(2) 설교이 기회로서 바람직한 것은 많은 자가 함께 모였을 때이다. 지혜자는 "거리와," 본문의 예레미야처럼, "문어귀" 즉 성전문에서 소리 높여 부르기를 원한다.
(3) 우리가 하나님께 경배하러 갈 때는 "영으로 그를 예배" 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말라" 는 권면을 받을 필요가 있다(빌 3:3).
Ⅱ. 설교 자체의 내용과 범위. 이 말씀은 세계를 지배하시면서도 자기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를 존중할 의무가 있으며,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을 받으러 온 자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고 한 말씀과 마찬가지이다. 선지자가 본문에서 그들에게 하는 말씀은 다음과 같다.
1.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은 무엇이었던가?
요컨대 그들이 회개하여 생활 태도를 개선함으로써 의무의 길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평안을 회복시키시고 그 평화를 공고히 하사 그러므로 그들의 원통함을 교정시키심으로써 자비의 길로 그들에게 돌아오시리라는 것을 믿어도 좋았다(3절).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이것은 그들의 길과 행위에 많은 과실, 많은 오류와 실수가 존재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개과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시고 어디를 어떻게 수정해야하는지 가리켜주시며, 그 오류를 고치면 그들을 열납하시겠다고 약속하심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큰 본보기이다. "내가 너희로 이곳에서 안온하고 평화롭게 거하도록 해 줄 것이며 너희의 축출을 위협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겠노라." 개혁은 파멸을 방지하는 유일한 길이요 확실한 길이다. 그는 그들에게 친히 설명하시고(5-7절) 세부적으로 말씀해 주신다.
(1) 그들이 시정하도록 기대하신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선을 이루는 데 있어서 그들은 자기들의 길과 행위를 성취해야만 되었다. 그들은 결단심을 가지고 잘못을 고쳐 나가야 했으며 그 개선은 보편적으로 불변적인 인내의 산물이어야만 했다. 부분적인 시정이 아니라 완전한 개선이어야 했으며 가식적이 아니라 진지한 것이어야 했고 동요되는 게 아니라 항구적인 것이어야 했다. 나무가 좋아야만 열매도 좋은 것을 맺을 수 있으며,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시정해야 길과 행위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세부적으로 그들은 다음 두 사실을 겨냥해야만 했다.
① 그들은 모든 처사에 있어서 정직하고 공정해야 했다. 권세를 쥐고 있던 자들은 치우침이 없이 나타난 송사의 시비곡직대로 이웃들 사이의 편결을 참으로 공평히 해야 하였다. 그들은 심판이나 계약에 있어서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해서는 아니 되었고 억압하는 자들을 묵인하거나 비호해서도 안 되었으며 이런 자들이 공의를 구할 때 공의롭게 행하기를 거부해서도 안 되었다. 그들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서 자기들이 거하는 "이곳" 과 그 땅을 더렵혀서는 안 되었다.
② 그들은 오직 참 하나님의 경배에만 전념해야 하였다. "다른 신들을 좇지 말라. 그 잡신들을 동경하지 말며 너를 우상 숭배자의 희중으로 끌어들이려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너희 스스로 너희를 해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네 하나님께 정직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슬기로우라. 너희를 도울 힘이 없는 것들에게 경배를 함으로써 너희를 멸하실 능력이 있으신 분을 노엽게 할 정도로 미련하지 말라." 이상의 말씀이 곧 하나님께서 역설하시는 전부이다.
(2) 그는 그들이 이런 시정을 하면 자기에게서 어떤 안정을 기대할 수 있는지 그들에게 말씀해 주신다(7절). "이와 같은 개혁 작업을 화급히 착수하여 완료하고, 계속 고수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이 성전에 거하게 하리라. 성전은 계속하여 너희 휴양지와 피난처가 될 것이며 하나님과 너희 상혼가에 만나는 즐거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히 준 이 땅에서 거하게 할 터이니 하나님의 집이나 너희 자신의 집에서 결코 쫓아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세속의 특권과 아울러 신성한 혜택도 향유하게 될 것이며 그나마 평안히 누리게 되리라고 약속받고 있다. "내가 너희로 여기에 거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정착을 허용해 주시는 자들은 편안하게 거주할 수 있다. 그들은 언약에 의하여 즉 그들의 조상에게 베푸신 허락에 의하여 거주의 자유를 누릴 것이며, 섭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약속에 의하여 그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들은 강제 퇴거당하거나 훼방을 받는 일이 없이 계속 그것은 점유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침범을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물며 탈취당하는 일이랴! 그곳은 영원무궁히 주신 땅이었다. 죄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그들을 추방할 수가 없었다. 경건하고 정직한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은 누구나 하늘 나라의 가나안을 영원한 유업으로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불가타 라틴어 성서에서는 보다 진일보한 특권을 기록하고 있다(3,7절). habitabo vobiscum-즉 내가 너희와 함께 이곳에 거하리라. 가나안 복지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 거하시지 않으신다면 살기가 편안하지 못한 곳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겠다.
2. 그들이 의뢰해서는 아니 될 심중의 거짓말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자기 기만에 대해 그들에게 경고하신다(4절).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는 어떤 길과 무슨 조건에서 편안하고 안전하며 행복할 수 있는지 어떤 길과 무슨 조건에서 편안하고 안전하며 행복할 수 있는지 익히 들었다. 그러니 딴 조건이나 딴 길도 그렇게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품지 말아라." 그럼에도 이 자기 기만이 헛되이 움터옴을 보시고 그들을 질책하신다(8절). "보라. 너희가 내 말을 듣고서도 거짓말을 의뢰하는 게 분명하구나. 너희는 유익을 줄수 없는 말을 신뢰하며 너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못할 청원을 의지하는구나!" 유익할 진리의 말씀을 경시하는 자들은 무익할 수밖에 없는 허위의 말을 도피처로 삼는다. 이제 그들이 한 거짓말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것은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이 건물들, 성전의 뜰, 성소와 지성조는 여호와의 영광을 위해 그의 명대로 건축된 여호와의 전이다. 여기에 그는 거하시고 여기에서 경배 받으시며 우리는 궁궐에 계신 우리의 왕께 백성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일 년에 세 차례나 여기에 모인다" 는 것이 그들의 말이었다. 그들은 이것이 하나님과 그의 은총을 가지들에게서 떠나지 못하게 막고 하나님과 그의 심판이 자기들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기에 충분한 보장으로 생각하였다. 선지자들이 그들의 죄악상과 장차 입을 큰 불행을 누차 갈파했을 때도 그들은 여전히 성전만을 들먹이며 거기 의존했던 것이다. 즉 "저 복되고 거룩한 처소를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이상, 어떻게 이러저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겠는가?" 선지자는 그들이 모든 경우에 그말만 되풀이하였기 때문에 같은 말씀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말은 시대의 유행어가 되었고 모든 경우에 그들의 입은 이 상투적인 말을 담고 있었다. 각성을 촉구하는 설교가 들리거나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들어오더라도 그들은 "우리는 괜챦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여호와의 전이 우리에게 있으니까!" 란 말로 다시 스스로를 잠재우곤 하였다.
경건의 능력에 생소하고 대적하는 자들이 흔히는 경건의 모양에 따르는 특권을 자랑삼고 의뢰하는 법이다. 하나님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이 교회에 가장 가깝다고 스스로 뽐내는 일은 항상 있을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가 자기들을 너무나 꽁꽁감고 있어서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해도 상관없기라도 한 듯이 "성산 때문에 교만" 하였다(습 3:11). 이제 그런 주장이 얼마나 경박한 것이며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가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신다.
(1) 그 주장 자체의 지독한 불합리성. 그들이 만약 여호와의 전이나 전의 여호와께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었다면 자기 죄에 대한 변명에서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우려에서든 이렇게 주장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그리고 히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일로 생각해야만 되었다.
①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주장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죄악 즉 삼척동자도 알고 염호할 극악한 죄의 후견자로 전락시켜 버렸다(8,9절). 하나님은 이렇게 힐난하신다. "너희는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 따위의 극히 부도덕한 짓까지 범하려느냐? 그런 악행은 인류의 양식(양식)과 공동 이해에 어긋나는 짓이 아니냐? 너희는 만국 백성이 항상 두려워하던 범죄 곧 거짓 맹세도 자행하려느냐? 모든 사람들은 신에게 대한 믿음을 갖고서 맹세라면 경의의 념을 품는다. 또 너희는 쓰레기 같은 신 바알에게 분향하려느냐? 그는 크신 여호와의 경쟁자로 자처하지만 똥두더미에 지나지 않는다. 너희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도 좇으려 하느냐? 이런 범죄로써 너희는 감히 만군의 여호와요 이스라엘이 하나님된 나를 모욕하는도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하심과 선하심을 아주 오래도록 체험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들을 도와 줄 능력과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잡신과 하나님을 맞바꾸려 했다. 하나님께 대해 최대의 파렴치한 행위를 저지르고서도 그들은 그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그 집에 들어와서 그 앞에 설 만큼 후안무치한 자들이었다.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칭해지는 집이었고 그 안에서는 하나님이 이름을 부르는 곳이었다. 그들은 그 집에 들어와서 그의 명령을 청종하는 종이나 그의 은총을 기대하는 청탁자 모양 서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공공연하게 배밥하는 행동을 예사로 하면서도 그의 신하 중 하나로, 더욱이 가장 선한 신하의 일원으로 끼여들려고 하는 짓은 정말 얼굴 두꺼운 노릇이었다. "이로써 보건대 너희는 하나님이 너희의 악한 행위를 발견치 못하신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너희의 악행을 싫어하시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행위 중 어느 것이 하나님께 대한 최대의 모욕이 되지 않는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 너희는 우리가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기 위해 구원을 얻었나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들은 totidem verbis-즉 아주 많은 말로 위와 같은 표현을 할 만큼 뻔뻔스럽지는 못 했더라도 그들의 행동은 이를 웅변으로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꼭 멸망할 수밖에 없었을 때 하나님 곧 자기들의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고 안성마춤의 구조자가 되어 주신 적이 한 두 번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면서 그들이 자기에게로 돌아오도록 원하셨고 자신의 인자하심으로써 그들을 회개에 이르도록 하시고자 원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가증한 행위를 계속 고수하려고 작정하였다. 그들은 구원을 받자 마자 또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사사 시절과 같은 옛적부터). 이것은 사실상 그들을 보호한 섭리의 참 의도와 뜻을 직접적으로 반박하여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것은 자기들로 하여금 다시 반역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은혜가 풍성하거나 또는 은혜를 풍성히 받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계속 죄를 범하는 자들은 사실상 그리스도를 죄의 사역자로 만드는 자들이다. 흑자는 이 말씀을 이렇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즉 "저희는 희생 제불과 속죄제로 하나님께 나아와서는 우리는 구원을 얻었다. 우리는 우리 죄에서 해방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죄로 인해서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지 사람의 눈을 가리고 양심을 입막음하려는 데 불과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너희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보다 용이하게 그리고 남들에게는 보다 그럴 듯하게 행하려 한다."
② 하나님의 전은 거룩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주장을 함으로써 성전을 극히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의 보호물로 삼았다(11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영구적 표정이 되며 죄와 사탄의 나라에 대항하여 사람들 중에 세워진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너희는 이 성전이 흉악한 범죄자들의 회합처인 동시에 그들의 피난처와 은신처가 되라고 건축한 줄로 아느냐?" 아니다. 성소가 비록 부지 중에 살인한 자에게는 피신처가 되었지만 고의적인 살인자나 무엇인가 참람된 일을 행한자에게그런데 그렇지 못하였던 것이다(출 21:14; 왕상 2:29). 속죄자가 있다고 하여 더욱 대담하게 태연자약하게 범죄하며 그리스도인 이름을 가지고 비그리스도인적 행위를 하는 것은 괜찮을 줄로 생각하는 자는 실제롤 그리스도 당시의 제사장들같이 하나님의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자이다(마 21:13). 그러나 그들은 이같이 하여 하나님을 기만할 수 있었는가? 아니다. "보라! 내가 그것을 보았느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위선적이고 허울 좋은 경건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의의 모습을 간파하셨다. 비록 인간들끼리는 헌신하는 체하여 속일 수 있을는지 모르나 하나님은 절대로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그는 이런 주장의 불충분성은 이미 오래 전에 실로의 경우에서 판정이 난 것이라고 그들에게 설명하신다.
① 실로에는 하나님의 지성소가 있었지만 이스라엘이 악으로써 그 지성소를 모독하자 실로가 파멸을 당하였다는 사실을 확실하다(12절). "너희는 지금 실로에 있던 내 처소로 가라." 한때 번성하던 성읍의 옛 모습이 폐허 속에서 편편히 선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적어도 그 실로의 내력을 책 속에서 나마 살필 수 있었을 것이고 마치 그 장소를 보기라도 한 듯이 감명을 불렀어야 마땅했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당신의 이름을 두신 곳도 실로였으며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가나안을 소유하여 희막을 친 곳도 거기였고 지파들은 그리로 올라갔던 것이다(수 18:1). 그러나 거기서 희막 예배에 참석한 자들은 자타를 막론하고 다 부패하였으며 이들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이스라엘의 악이 발생하였다. 그 샘은 독천(독천)이 되어서 악한 물줄기를 흘려 보내게 되었다. 그것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행하셨는지 가서 보라. 희막이 거기 있다고 해서 실로는 무사하였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버리셨고(시 78:60) 그의 법궤를 약탈당하게 하셨으며 그곳에 거하던 엘리의 가문을 멸절시키셨던 것이다. 그 도성이 완전히 파괴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악인을 포용하였다가 하나님의 복수를 당한 기념물로서밖에 달리는 이 성지가 기록상에 나타나지 않는 때문이다. 하나님께 친근하다는 것을 계속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를 반역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면 울는 그것을 경종으로 삼아 거짓말을 의뢰하지 말아야 한다. 선례를 거울로 삼고 전철을 활용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실로와 아시아의 일복교회를 기억하고 법궤와 촛대는 옮길 수 있는 것임을 알라(계 2:5; 마 21:43).
② 만약 신속하고 성실한 회개로 예방하지 않는다면 예루살렘의 운명도 실로의 꼴이 될 것은 확실하다.
첫째, 예루살렘은 과거 실로가 그러했던 것에 못지 않게 죄악이 관영하였다. 이것은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 자신의 정확한 증언에 의하여 입증되었다(13절). "너희는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너희는 그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하여 자기 죄 중에서 완악하였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자들의 증언에 의해 증명되었다. 그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돌아 와 회개하라" 고 그들에게 말씀하셨고 염려하는 자로서, 간절히 바라는 자로서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씀하셨으며 그들과의 교제에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자로서 아침 일찌기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른 아침 시간에는 정신이 맑고 사고가 자유로우며 명석하리라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시도가 허사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아니하였고 주의하지 않았으며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들을 부르셨으나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도 응하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이 사실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우리의 행위는 더욱 크게 처벌된다.
둘째, 예루살렘은 멀지 아니하며 실로처럼 처참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같이 이 집에 행하리라" (14절). 이 말씀은 예루살렘의 파멸과 황폐를 의미한다. 앞서 간 자들의 악한 전철을 밟는 자들은 그와 꼭 같은 심판에 떨어질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들은 그들에게 본보기로서 임하였던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무리 견고하게 건축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악이 발견되면 실로의 희막처럼 하나님이 복수하시는 날이 이르렀을 때는 그 기반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며 쉽사리
정복당하고 말 터였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이 집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이기에 너희는 내가 보호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 집은 너희가 의뢰하는 집이어서 너희는 이 집이 너희를 보호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 땅, 이 도성은 내가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곳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곳은 안전히 보존되리라고 굳게 믿고 앉아서 어떠한 것도 너희를 이 곳에서 쫓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렇지만 실로의 사람들도 너희처럼 안심하고 있다가 스스로 속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전례를 인용하신다(15절). 열 지파의 나라가 멸망당한 일이 곧 그것이다. 그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었고 할례의 언약을 받았으며 하나님이 그들과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상 숭배로 인하여 그들은 그 땅에서 쫓겨났으며 멸절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악한 길이 너희에게 치명적으로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 그들도 열 지파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 심판 절차에 있어 한결 같으시며 시종일관하시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건에는 동일한 판결을 내린다는 것(ut pariun par sit ratib)은 사법상의 규칙이다. "너희는 너희 형제 에브라임 자손처럼 부패하여 불의에 있어서도 에브라임 자손의 형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쫓아냄같이 너희도 내 앞에서 쫓아내리라" 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본문의 심판은 실로 두려운 것이라고 해석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신다는 것은 그들을 당신의 안중에서 추방하신다는 것을 의미했고 다시는 그들을 눈여겨 보지 않으시며 결코 더 이상 돌보지 않으실 듯한 여운이 풍기는 때문이다. 우리가 어디로 내동댕이 쳐지더라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포용되고 있다면 아무 일도 없지만 하나님의 은총 밖으로 추방된다면 비록 우리 자신의 땅에 안주하고 있더라도 우리의 상황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집을 실로와 같이 만드실 것이라는 위협적 경고를 예레미야가 재언급하고 있음을 읽게 된다(렘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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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렘 7:16-20)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그들이 의뢰하고 자랑하던 성전과 성전 예배가 그 경고된 심판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명시하셨다. 그러나 그들에게 다소 도움이 될 일이 또 있었지만 그들이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니 그것은 곧 그들을 위한 선지자의 중재 기도였다. 예레미야 선지의 기도는 그들 자신의 탄원보다 더욱 효과가 있을 것이었다. 이제 본문에서 그들은 바로 그 후원마저 박탈당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역자들과 백성의 기도마저 빼앗기게 되는 자는 참으로 그 형편이 비참하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Ⅰ.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금지시키신다(16절). "칙령이 발효되었고 그들의 파멸은 결정되었으니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즉 경고된 이 심판을 막으려고 기도하지 말라. 저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였으므로 저희 생명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저희 영혼의 생명을 위해 기도하라(요일 5:16)." 다음 사실을 살피자.
1.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예레미야 선지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였지만 그 명령이 절대적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고 저들의 보존을 위해 기도를 하였다. 우리가 예루살렘의 평강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가 저주로 죄인들을 위협할 때조차 그들이 돌이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 그들의 구원을 바라는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레미야가 미움을 받고 박해와 치욕을 당한 것은 바로 자기 백성의 자녀들로부터였다. 그럼에도 그는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였던 것이다. 선으로 악을 갚는 것은 우리에게 합당한 일이다.
2. 기도하는 선지자들은 비록 땅에서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을지 모르나 하늘에서는 큰 힘을 가진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시자 예레미야 선지에게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그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때문이었다. 선지자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도 "나대로 하게 하라" (출 32:10)고 말씀하셨다.
3.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역자나 신자의 영을 억제하여 어떤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형편이 너무 절망적이라는 것을 보게 하셔서 그들을 위해 변호할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시게 되면 그것은 나쁜 징조이다.
4. 선한 목사들의 설교를 존중하려 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기도에서 오는 어떤 유익도 기대할 수도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너희에게 전할 때 너희가 우리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너희를 위해 하나님께 아뢰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말을 듣지 않으실 것이다.
Ⅱ.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 같은 도고의 금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신다. 기도란 것은 죄 중에서 완악하여 멸망시키기로 작정된 백성에게 소모하고 남발하기에는 너무 소중한 것이다.
1.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을 고수하기로 결심하고 선지자의 설교에도 불구하고 돌이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선지자가 직접 조사하고 관찰해 볼 것을 호소하신다(17절).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그들의 행위는 노골적이고 공공연하여 수치감이나 공포감이 없지 않느냐?" 이 말씀은 죄가 명백하여 부인될 수 없어도 죄인은 뻔뻔스러워서 개과천선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들은 심지어 선지자의 면전에서 그리고 그의 목전에서 악자행하였다. 그는 그들이 행하는 일들을 보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악행을 행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그의 선지자된 직분에 대한 모욕이었고 그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여기에서 그들을 책하고 있는 죄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상 숭배였다(18절). 그들은 형상으로든, 자연 그대로는 하늘 황후 곧 달을 숭배하였다. 그들은 아마 달의 운행을 보고 그 교교(皎皎)한 월광에 혹하여 달의 자비로운 힘 때문에 덕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악한 영향력을 두려워해서(욥 31:26) 아스다롯이나 딴 여신의 이름으로 달을 숭배했던 것 같다. 달 숭배는 이방 나라에서 상당히 성행하고 있었다(44:17, 19). 흑자는 그것을 "하늘의 틀" 이나 "솜씨" 로 해석한다. 그들은 하늘의 군대를 섬겼다(행 7:42). 그들은 왕궁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는 동상에게 표현 경의를 왕 자신께 돌려야 마땅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 피조물들을 지으신 분을 경배하지 않고 그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경배했으며 종들을 부리는 분대신 종들을 섬겼으며 선물을 주신 분대신에 선물을 숭배하였다. 그들은 하늘 황후 말고도 딴 신들을 섬겼다. 그들이 섬긴 것은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의 형상뿐만이 아니고 아래로 땅에 있는 것과 땅 밑 물속에 있는 것의 형상까지도 있었다. 참 하나님을 버리는 자들은 거짓된 신들을 좇아서 끊임없이 방황을 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신에게 소제물로 과자를 만들어 바치며 마치 그것들이 받아먹고 마시며 자기들에게 치사를 돌리지 않고는 못배기는 산 생명이 되기라도 하븐 듯이 전제를 붓는다. 이들이 얼마나 분주한지 살펴 보라! 가사에 종사하던 습관 그대로 각자의 손은 자기들의 우상에게 봉사하기 위해 분주히 일하고 있다. 자식들은 나무를 주으려 보내고 아비들은 화덕을 덥히기 위해 불을 피웠다. 종을 거느릴 만한 여유가 없는 가난한 족속이어서 남에게 시키지는 못하니까 우상 숭배를 망치느니 차라리 손수 이런 잡역이라도 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부녀들도 손수 가루를 반죽하였는데 아마 이 일을 시킬 종이 있었다 하더라도 직접 반죽함으로써 그들의 우상에 대한 열의를 나타내는 데 자부심을 가졌을 것이다. 이런 악한 사례를 통해서도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 대한 봉사를 돌이켜 보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①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생계를 보장받기 때문에 우리의 물질로써도 그를 영화로우시게 하며 우리에게 먹을 양식과 마실 음료수를 주시는 분께 영광이 되도록 먹고 마시자.
② 우리는 아무리 고된 봉사도 마다하지 말며 극히 천한 일도 멸시하지 말자. 이런 일로써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 하나님의 제단에 불을 피우는 자는 누구라도 그것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님을 위한 일에 종사하게 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자.
③ 우리는 헌신하는 행위 속에서 자녀를 양육하자. 자녀는 능력대로 경건한 훈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에 투입해야 한다.
(2) 이 죄의 직접적인 추세는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노를 격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와 같이 우상 숭배를 함으로써 딴 효과는 전혀 노릴 수 없다. 이런결과는 하나님이 웃음을 모르거나 쉽사리 격노하는 분이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 아니다(19절). 하나님이 분개하신것은 그의 책임이 아니며 바로 그들 자신의 소행인 것이다. 그들 탓에 하나님이 격노하신 것이며 책임은 그들만이 져야 할 문제이다. 그들이 격노케 한 것은 하나님께 실질적 피해를 입혔느냐? 아니다. 그 얼굴에 수욕을 자취한 것은 바로 그들이 아니냐?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께 대한 악의에서 나온것이지만 그것은 무능한 악의였다. 그것은 하나님을 헤칠 수가 없을 뿐더러 어리석은 악의여서 자신만 해칠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원한을 표시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앙갚음을 할 뿐이다. 이토록 자기의 멸망을 지독하게 탐내는 백성은 포기하는 도리밖에 더 있겠는냐?
2.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한 심판을 진행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선지자의 기도로도 돌이키려 하지 않으신다(29절). "그러므로 주 여화와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는즉 그는 자기가 하시는 말씀을 철회하시지 않으실 것이며 온세상으로도 그 말씀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말씀을 듣고 전율하라." "보라! 홍수가 옛 세계을 멸망시켰고 소돔에는 불과 유황이 쏟아져 내렸듯이 내가 나의 진노와 분함을 이 곳에 부으리라. 그들이 나를 격노케하였은 즉 내가 그들로 그 결과가 어떤지 보게 하리라" 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들은 곧 다음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었다.
(1) 날개가 있어 날아 가거나 담을 쌓아 막는다 하더라도 이 불 바다를 피하지 못하리라는 것. 이곳이 거룩한 곳, 여호와의 전이라 하더라도 이 불 세례는 쏟아질 것이다. 이 불은 애굽의 역병처럼 사람과 짐승에게 이를 것이며 바로에게 내린 재앙처럼 돌나무와 땅의 소산을 멸할 것이다. 그들은 들의 나무로 바알을 위해 신상을 만들겠다고 예비해 두었으며 땅의 소산으로 하늘 황후를 위해 과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2) 이 불은 꿀 수도 없다는 것. "불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눈물과 기도도 이때에는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노가 조금밖에 불타오르지 않을 때에도 끌 수가 없는데 하물며 이 정도로 타오를 때에야 말해 무엇하랴.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꺼지지 않는 불이어서 영겁의 시간으로도 그 진화를 보지 못할 정도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영영한 불로 들어가라!(마 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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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없는 민족(렘 7:21-28)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악으로 성전을 오염시키고 있는 이상 성전도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제까지 말씀하셨는데 여기에서는 그들이 불순종의 길로 행하는 동안 그들의 제사가 그들을 속죄시켜 주지도 않을 것이며 그 제사가 열납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언명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의식적 예배에 대해 얼마나 경멸감을 품고 말씀하시는지 여기서 살펴보자(21절). "네 희생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즉 "너희가 하고 싶다면 계속 제사를 드려라. 이런 제사에 저런 제사를 보태라. 너희가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너희 번제(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번제물은 완전히 태우도록 되어있었다)를 화목제 (화목제물을 드리는 자도 상당한 몫을 받았다)로 변질시키라. 너희가 제사에서 얻을 수 잇는 이익을 좋은 고기 한 두 가지가 전부일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렇게 방정하지 못한 태도로 살아가는 한, 제사에서 딴 혜택을 바랄 수는 없다. 너희 희생 제물은 너희가 간직하라(흑자는 이렇게 해독한다). 하나님의 제단에서는 너희 희생이 열납될 길이 없으므로 너희 식탁에나 올려라." 이런 사실을 설명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제시하신다.
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오직 순종뿐이었다는 것을 그들에게 언명하심(22, 23절).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구출되어 처음으로 한 민족을 형성하게 된 것은 계약에 의해서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원래의 언약을 들어 그들에게 호소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바치는 희생 제물을 즐기시려고 그들을 당신의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 것이 아니었다. 이방인들이 섬기던 마귀들은 희생의 고기로 를 맛있게 먹고 전제의 술을 즐겨 마시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신 32:38). "하나님께서 수소의 고기를 먹으시겠느냐?" (시 50:13) "나는 너희 열조에게 처음에는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였노라." 도덕법의 계율가 의식 규례에 우선하여 주어졌었다. 제사 규례는 그들의 순종을 시험하고 회개와 신앙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나중에 나왔던 것이다. 레위기의 율볍은 이렇게 시작한다. "너희중에 누구든지 예물을 드리려거든 이러 이러하게 행할지니라" (레 1:2; 2:1). 그래서 제사법의 의도가 마치 제사를 요구하는 것보다 희생을 규제하는 것같이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시고 당신의 지고하신 위엄으로 그들에게 의무를 부여하신 것은 "내 목소리를 들으라" 는 것이었고 이것은 그가 언약의 전제 조거으로 주장하신 것이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을 보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시는 데 사용하신 법도와 율례가 되어 있다.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라." 그들이 하나님의 특유한 백성으로 되는 조건도 "너희가 내 말을 잘 들으면" (출 18:5)이란 이 말씀이었다. 이것은 신앙의 여러 의무를 본분으로 삼고 명확한 율례를 순종의 원리로 준수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대의 명예요 행복이요 만족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행위를 규칙적으로 하며 매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부응하는 행동을 하라고 명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정해 준 범위 안에서 행하고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복을 받으리라고 확실히 믿을 수 있다." 이 요구는 매우 타당하다. 우리는 무한하신 지혜자에게서 적합한 일을 지시 받는게 당연하며, 우리를 지으신 자에게서 명령을 받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우리의 존재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까지 제공해 주시는 분에게서 법을 받는다는 것은 타당한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너희의 규칙으로 삼으라. 그리하여 그의 은총으로 지복을 누리게 되리라" 는 이 약속은 매우 고무적이다.
Ⅱ.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그들과 쟁점으로 삼고 있는 유일한 문제는 그들의 불순종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명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희생 때문에, 희생 제물을 바치지 않는다고 그들을 책망하려 하신 것은 아니었다. 제물은 항상 하나님 앞에 있었다(시 50:8). 그들은 제물을 하나님께 대한 뇌물로 삼기를 희망하였고 제사로써 계속 범죄할 수 있는 면허를 사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줄곧 그들에게 책음을 추궁하고 계신 것은 그들이 종교적 헌신의 길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하는 경우가 다소 있었으나 실생활의 행위에 있어서는 그의 계명을 어기고 있었다는 점이다(24,25절 이하).
1. 그들은 하나님의 의사에 대해 경쟁하려는 듯이 자기들의 의지를 내세웠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율법을 청종치 않았고 결코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법이 결코 주어진 적도 없거나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듯하였다. 그들은 말씀알았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하물며 말씀을 응락하기 위해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들은 제멋대로 하기를 원하였으며 명받은 대로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려고 하였다. 그들의 안내자는 그들 자신의 꾀였으며 신적 지혜의 명령이 아니었다. 설사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배치되는 일이라도 그들의 생각에 맞으면 그들에게는 합법적이고 선한 일이 되었다. 자기의 악한 마음의 강퍅성과 정욕 그리고 혈기가 그들에게는 율법이었다. 그들은 그런 악한 마음의 길로 행하려 하였고 정욕의 눈길을 행하려 하였다.
2. 그들이 출발은 잘하였다손치더라도 계속 나아가지는 않았으며 곧 꽁무니를 빼버렸다. 그들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후퇴해 버렸다. 그들은 두목을 세워 애굽으로 다시 돌아 갈 것을 논의하였고 하나님의 인도 하에 앞으로 진군하기를 원히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약속은 그럴 듯하여 "여호와께서 명하시는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라고 했으며 그들이 그 말을 잘 유념했던들 만사는 쾌조를 보였을 터였다. 그러나 의무의 길로 속행하기는커녕 그들은 죄악의 길로 후퇴하여 전보다 더 악하게 되었던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입을 통해 그들에게 기록된 말씀을 상기시키셨다. 이것은 선지자의 본분이었다.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서 그들에게 가서 증거했지만 매 한가지였다. 그들은 여전히 불순종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모든 시대마다 자기 종들을 보내셨다. 이런 저런 종들을 보내셔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의무를 상기시켜 주셨다. 사람이 일찍 일어나 종을 불러 일을 시키듯 하나님께서는 일찍 일어나 종을 보내셨다(13절 처럼).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 대해서 그러했던 것처럼 선지자들의 말에도 마이동풍이었다(26절). 청종치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그들의 변함없는 태도요 버릇이었다. 그들은 앞서간 선조와 똑같이 완고하고 말을 잘 듣지 않는 기질을 지녔다. 그들에게 끊임없이 맴돈 것은 바로 이 국민성이었고 그들은 이 악한 천성 때문에 결국 파멸을 입었다.
4. 그들의 행위와 특성은 여전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열조보다 더 악하면 악했지 더 나을 것이 없었다.
(1) 예레미야는 그들이 불순종의 백성이었다는 것을 그들에게 직접 증거할 수 있었거나 아니면 그런 사실을 곧 깨닫게 할 것이다(27절). "너는 이 모든 말을 그들에게 할지며 특히 그들의 불순종과 고집을 책망할지니라. 그러나 그런 것조차 그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너를 청종치 않을 것이요 네게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을 것이다. 너는 가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분명하게 열심을 다하여 그들을 부르라. 그러나 그들은 네게 대답치 아니 하리라. 그들은 네게 전혀 대답하지 않거나 대답한다 해도 그것은 순종의 대답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네가 불러도 오지 않을 것이다."
(2) 그는 그들이 파멸이 임박한 불순종의 백성이란 평판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가서 그 면전에다 대고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28절).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는 국민이라고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은 고집으로 악명이 높다.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으로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지만 하나님되신 그에게 지배 받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이나 그 채찍의 징계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교훈이나 징계를 해도 그들은 개심하지 않으며 교화되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서는 진실이 없어졌다. 진실이 인멸되어 그들은 진리를 받을 수가 없다. 그들은 진리의 승복하려 들지 않으며 그 지배를 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을 수가 없다. 진실이 그들의 입에서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에는 거짓말이 대신 들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다 거짓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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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통곡 예고(렘 7:29-34)
Ⅰ. 여기에는 체읍하고 애곡하라는 큰 절규가 나오고 있다. 한때는 희락의 도성이었고 온 땅의 기쁨이 되었던 예루살렘도 이제는 높은 곳에서 호곡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산은 그들이 우상을 섬기던 높은 곳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곳에서 자기들의 불행을 슬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슬픔과 예속의 표시로 예루살렘은 그 머리털을 베어서 내던져야만 한다. 이 말씀은 특히 나실인의 머리털을 가리킨다. 머리털은 나실인에게 있어서 자기들을 하나님께 봉헌했다는 견장이요 표징이어서 나실인의 면류관이라고 불리웠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나실인된 도성이었으나 이제는 그 머리털을 밀어야 하며 모독을 받고 전락되어야 하며 이전에 하나님께 구별되었던 것처럼 상실한 자들에게 자기들의 기쁨을 방치해야 할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Ⅱ. 이렇게 큰 애곡을 해야 마땅할 이유가 기록되고 있다.
1. 본문에서는 예루살렘의 죄가 매우 중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보다 악하고 죄많은 곳도 없었다(30절). 유다 자손은 유다의 근원에서 나왔으며(사 48:1)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의 목전에서, 하나님이 보시고 계시는 데서 악을 행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을 가증시키는 짓이었다. 또는 그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것이며 그에게 최고의 모욕을 가하는 짓인 줄 알면서도 악을 행하였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딴 이면 죄보다 악한 죄였다. 여기에서 그들의 우상 숭배를 힐책하는 것은 두 가지인데 그것은 매우 도발적인 것들이었다.
(1) 그들은 우상을 숭배함에 있어서 하나님께 매우 무례하였고 하나님을 무시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바로 성전의 뜰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었다. 가증한 우상과 제단을 세워서 그 집을 더럽혔다(므낫세도 그러하였다. 왕하 21:7; 23:12).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묵인하신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이 자기들의 행위를 아무리 노여워 하시더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과 바알, 천국과 지옥을 화해시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이 일을 행하였다. 마음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기 위해 택하신 장소이다. 죄가 가장 깊고 높은 그 곳을 장악하고 있다면 우리는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히는 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마음속에 우상을 세우는 일보다 더 분개하시는 것은 없다(겔 14:4).
(2) 그들은 우상 숭배로 자기 자녀들에게도 몹쓸 짓을 하였다(31절). 그들은 특히 예루살렘에 인접한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거기에 몰록 상을 세웠다. 그리고는 거기서 자녀를 불에 살랐다. 신이 아니고 마귀인 우상들을 영화롭게 하거나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자녀를 산 채로 태워 죽이고 상상할 수 없으리 만치 흉악한 방법으로 자식을 살해하였다. 이것은 실로 불순종의 자녀에게 대한 사탄의 세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 주며 인간성의 부패와 타락에 대한 최대의 실례이다. 누구나 이렇게 야만적인 우상 숭배의 예는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싶겠지만 이런 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해도 놀라운 일이다. 인간이 순진무구한 어린 것, 그나마 자기 자식을 불태워 죽일 정도로 부모의 타고난 정이 완전히 결여되며 비인도적일 수 있을까! 그들이 이런 행위를 합법적으로 생각하며, 나아가서는 기뻐 용납받는 일로 생각할 만큼 선척적 신앙심이 전혀 부재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짐승의 영광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사 그토록 악한 일에 애착을 갖도록 하신 것은 일면 확실히 의로우신 심판이었다. 그들은 그런 악한 애착 때문에 짐승보다 더 악하게 도어 버렸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대하여 자기가 그들에게 명하신것도 아니요 그 마음에 생각지도 않은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물록을 숭배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령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하나님은 분명히 금지하셨다-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데 그런 비용을 들여야 한다고 명령하신 일이 없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녀를 자기에게 바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않으셨는데 이런 명령으로써 실로 인류의 원수임을 증명한 잡신의 숭배를 위해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포기하였던 것이다.
2. 본문에서는 예루살렘의 파멸이 아주 염려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버리셨음이니라" 는 29절 말씀만 하여도 전체적인 불행을 충분히 나타내 준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세대도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의 노하심을 입은 세대가 된다. 이와 같이 회개치 아니함으로써 자신을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이 되게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배척하시고 아주 끊어버리실 것이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고 자기 소유됨을 부인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자신의 죄의 두려움 속에 버려 두실 것이며 죄악의 잔혹한 손길에 방치해 두실 것이다.
(1) 죽음이 그들을 유린하게 될 것이다(32.33절). 죄가 왕 노릇하면 사망에 이르게 할 것이니 사망은 죄의 삯이요 그 종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근교의 골짜기 도벳이 살륙의 골짜기라고 불리워질 것은 농성군의 출격이나 도주를 시도하다가 포위군의 수중에 떨어져 거기서 무수히 살륙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딴 모든 매장지는 초만원을 이루어 달리 매장할 곳이 없으므로 살륙된 시체는 그리로 운반될 것이며 무덤을 만들 자리가 없도록 그들을 매장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곳은 살륙당한 자의 골짜기라고 불리울 것이다. 이것은 무수한 자들의 칼과 전염병과 기근으로 쓰러질 것을 암시한다. 죽음은 순조롭게 진군할 것이며 두려운 허장성세와 권능으로 이기며 또 이기기 위하여 군림할 것이다. 여호와께 살륙되는 자들이 많을 것이다.
도벳이란 골짜기는 예루살렘 성민들이 바람을 쏘이러 나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구실을 못하게 될 것이니 무덤에 꽉 들어차서 산책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묘지에 접촉한다는 것은 의식법상의 오염을 뜻하기 때문에 그런 곳을 거닐다가는 의식적 불결을 당할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자녀를 몰록에게 제물로 바치고 딴 것들을 봉납한 곳도 거기였었다. 따라서 그들은 거기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희생물로 쓰러져야만 된다. 도벳은 옛적 앗수르의 군대가 천사에게 궤멸되었을 때에 공격군들의 시체를 매장하거나 소각하는 곳이었다. 도벳은 이미 이를 위해 옛날에 설립되어 있었다(사 30:33). 그러나 그들이 이런 자비를 망각하고 그곳을 범죄의 장소로 삼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포위당한 자의 매장지로 변화시키실 것이다. 신약에서는 이곳을 넌지시 가리켜서 지옥, 게헨나 즉 힌놈의 골짜기로 칭하고 있는데 그것은 앗수르의 침략자 뿐만 아니라 반역하는 유대인도 거기에 묻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지옥도 이방인과 의식하는 자의 주검을 다 수용하는 그릇이며 하나님의 교회를 공공연히 대적하는 자뿐만 아니라 교회의 식구이면서도 반역하는 자들까지 담는 용기이다. 그곳은 망자의 희중이며 하나님이 노하신 세대를 위해 예비된 곳이다. 살륙이 너무나 클 것이므로 도벳의 광활한 계곡도 그 시체를 다 수용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살아 남는 자는 죽은 자를 매장하기에도 부족할 것이다. 백성의 시체는 새와 야수의 밥이 될 것이다. 까마귀 같이 그것들은 시체를 파먹을 것이지만 아무도 그것을 쫓을 만한 관심과 용기를 갖지 않을 것이다. 리스바는 사울의 아들들의 시체로부터 새와 짐승을 쫓았었다(삼하 21:10). 이것은 율법에 나온 경고와 저주 그대로였다(신 28:26).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 줄 자가 없을 것이라." 이처럼 율법이 경고했고 선지자들은 거기에 일치하는 선포를 한다. 집행은 이 양자와 더불어 시행되는 것이다. 죽은 몸이 이성 있는 영혼의 장막이었음을 기억하고 죽은자를 예의 바르게 정사함은 인간성의 한 단면이다. 아니 죽은 몸이 부활시에 어떻게 될지를 생각한다면 정중하게 매장한다는 것은 신성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중한 장례가 결여되어 사람들이 하나님의 중인에게 분노를 터뜨린 예가 가끔 있었다(계 11:9). 본문에서 짐승의 밥이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에 대한 진노하심의 한 예로 경고되는 말씀이며 사후에까지 재앙이 죄인을 따라 온다는 시사이기도 하다.
(2) 희락이 그들에게서 떠나 갈 것이다(34절). "그 때에 내가 기뻐하는 소리가 끊쳐지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선지자를 통하여 그리고 보다 작은 심판으로써 그들을 부르시며 슬퍼하고 애곡하라고 촉구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말씀에 역행하여 다만 기쁘고 즐거운 것만 들으려고 하였다(사 22:12, 13 참조).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애곡하라고 촉구하셨는데(29절)이제는 그 요구를 실체화시키셔서 그들에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이유도 마음도 허용치 않으신다. 슬퍼하려 하지 않는 자들은 필경 슬퍼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도 자기들의 헛된 환락을 버리려 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의하여 모든 희락을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는 이기실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기뻐할 일이 하나도 없게 될 것이라는 위협적 경고가 나온다. 혼인의 즐거움도 전혀 없게 될 것이다. 즐거워서 떠드는 소리가 조금도 들리지 않을 것은 결혼하는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의 위안을 포기하게 될 것이며 땅 위에 인류를 존속시키려는 보살핌은 전부 끊어지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없어질 것이며 음악소리도 없고 혼례의 축가도 없게 될 것이다. 수확의 기쁨도 더 이상 없을 것은 땅이 황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땅은 경작하지 못하고 이용하지 못하게 되어 황량하게 될 것이다.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도 이와 같이 음울하게 보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들의 주위를 둘러보고 기뻐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침잠하여 즐거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해도 그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극히 쾌활한 자의 희열도 곧 망쳐서 사라지게 만드실 수 있으시다. 이것은 우리가 언제나 떨면서 즐거워하고 유쾌하며 지혜로와야 할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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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9:23-24]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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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Thus says the Lord, “Let not the one who is wise and skillful boast in his insight; let not the one who is mighty and powerful boast in his strength; let not the one who is rich boast in his [temporal satisfactions and earthly] abundance;
24 but let the one who boasts boast in this, that he understands and knows Me [and acknowledges Me and honors Me as God and recognizes without any doubt], that I am the Lord who practices lovingkindness, justice and righteousness on the earth, for in these things I delight,” says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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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미련함(렘 9:23-26)
선지자는 이 백성이 하나님과 그의 심판에 대한 경외심에 사로잡히도록 하며 죄와 진노하심을 깨닫도록 하려고 노력해 왔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여전히 이런저런 구실에 의지하였다. 그들은 뉘우치고 확신을 얻는 일에서 피신하기 위해 이 구실 아래로 모여들었고 이 구실로써 자기들의 완고함과 태만함을 변명하려 들었다. 그러므로 그는 여기에서 이들 거짓된 피난처에서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며 그 도피처의 불충분성을 납득시켜 주려 한다.
Ⅰ. 그들은 심판이 불가피하리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자기들의 책략과 힘에 의한 자위를 주장하였다. 재물과 보화를 수단으로 하여 자기들의 성읍이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믿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선지자는 그들에게 지주가 될 언약의 하나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이상 이런 모든 지주를 신뢰하고 자랑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있다(23,24절). 여기서 그가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환난 날에 의지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지혜의 도움으로 원수의 모략을 능가하고 대항책을 강구하거나 궁지에 다달았을 때 이모 저모의 돌파구를 안출해낼 수 있을 듯이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사람이 지혜가 극히 필요할 때 그의 지혜는 성공을 가져다 주지 못할 것이며 그는 자기 꾀에 넘어가게 될 수도 있다. 아히도벨은 놀림감이 되었고 모사들도 때로는 꾐에 빠져 그르치게 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이 계략에는 실패하더라도 힘과 용맹으로 확실히 승리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본문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강하다고 해서 싸움에 늘 이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애숭이 다윗은 누가 보아도 거인 골리앗의 상대는 아니었다. 하나님이 없이는 인간의 모든 힘도 초개에 지나지 않으며 없는 것보다 못하다.
그러나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 될 수 있지 않느냐?(돈이면 무슨 일이든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다.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재물이 부자를 보호해 준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망상이다. 부자는 바로 그 재물 때문에 위험이 노출되며 더 선명한 과녁이 될 수 있다.
백성들은 자기들 중에 있는 자혜로운 자와 용사와 부자를 자랑해서는 안 되었다. 지혜로운 자가 있어서 전략을 베풀며 용사는 전장에 나가 싸우고 부자는 전비를 부담하기 때문에 갈대아 군을 물리칠 수 있기라도 하듯 그것들을 믿어서는 아니 되었다. 또 각 개인은 자기 지혜나 힘이나 돈으로써 이 공동의 재난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안전을 가져다주기에는 헛된 것으로 판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2. 환난 날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어려운 일을 당하여 우리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다했다는 점일 것이다.
하나님을 알기를 싫어한 자들(6절)은 자기의 지혜와 재물을 사랑하지만 그것은 공연한 자랑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명철하여 하나님을 알고 그가 여호와이시라는 것을 올바로 깨달으며 그의 본질과 속성,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를 바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영향을 받아들이고 보지하는 자들은 그것이 저 악한 재앙의 날에 자기들의 기쁨이 되리라는 것을 자랑할 수 있다.
(2) 환난 시에 우리의 유일한 신뢰가 되는 것은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아 다소라도 의무를 이행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는 전능의 신으로 나타나심을 보게 될 것이란 점이다.
우리가 어디 있든지간에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사하시는 신을 잘 알고 있으며 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란 것을 우리는 자랑할 수 있다. 우리와 친분이 두터운 신은 자기의 모든 피조물에게 공의로우셔서 어느 누구에게도 악을 행치 않으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자기의 모든 자녀에게 인자하셔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부양하시는 분이다.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인자를 베풀고 공평하게 시행하는 것을 즐거워하시고 귀여운 자녀로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영화로우심을 알되 그와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며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기까지 아는 자들은 그것이 곧 자기들의 영광이요 거룩함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신실하게 하나님과 일치하려고 할 때 그들은 최대의 곤경에서도 즐거이 그를 신뢰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선지자는 백성의 대부분이 이런 것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그들에게는 자기의 지혜와 용맹과 재물이 기쁨과 소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과 절망으로 끝날 기쁨이요 소망이었다. 개 중에는 극소수일 망정 하나님께 대한 자식을 소유하고 그것을 기뻐하며 자랑하던 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는 그것이 수천 개의 금은 보다 더 쓸모가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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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12:5-6]
1.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2.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구별하옵소서
4.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주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나중 일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5.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6. 네 형제와 아버지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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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님, 내가 주님과 변론할 때마다, 언제나 주님이 옳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께 공정성 문제 한 가지를 여쭙겠습니다. 어찌하여 악인들이 형통하며, 배신자들이 모두 잘 되기만 합니까?
2. 주께서 그들을, 나무를 심듯이 심으셨으므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열매도 맺으나, 말로만 주님과 가까울 뿐, 속으로는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3. 그러나 주님, 주께서는 나를 아십니다. 주님은 나의 속을 들여다보시고, 나의 마음이 주님과 함께 있음을 감찰하여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도살할 양처럼 끌어내시고, 죽일 날을 정하셔서 따로 갈라내 두십시오.
4. 이 땅이 언제까지 슬퍼하며, 들녘의 모든 풀이 말라 죽어야 합니까? 이 땅에 사는 사람의 죄악 때문에, 짐승과 새도 씨가 마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시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5. "네가 사람과 달리기를 해도 피곤하면, 어떻게 말과 달리기를 하겠느냐? 네가 조용한 땅에서만 안전하게 살 수 있다면, 요단 강의 창일한 물 속에서는 어찌하겠느냐?
6. 그렇다. 바로 네 친척, 네 집안 식구가 너를 배신하고, 바로 그들이 네 뒤에서 소리를 질러 너를 욕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와도, 너는 그들을 믿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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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You, O Lord are [uncompromisingly] righteous and consistently just when I plead my case with You; Yet let me discuss issues of justice with You: Why has the way of the wicked prospered? Why are those who deal in treachery (deceit) at ease and thriving?
2 You have planted them, they have also taken root; They grow, they have even produced fruit. You are [a]honored by their [hypocritical] lips But [You are] far from their heart and mind.
3 But You, O Lord, know me [and understand my devotion to You]; You see me; And You examine the attitude of my heart toward You. Drag out the faithless like sheep for the slaughter [O Lord] And set them apart for the day of slaughter.
4 How long must the land mourn And the grass of the countryside wither? Because of the wickedness and hypocrisy of those who live in it, The beasts and the birds are consumed and are swept away [by the drought], Because men [mocking me] have said, “He will not [live long enough to] see [what happens at] our final end.”
5 [The Lord rebukes Jeremiah for his impatience, saying] “If you have raced with men on foot and they have tired you out, Then how can you compete with horses? If you fall down in a land of peace [where you feel secure], Then how will you do [among the lions] in the [flooded] thicket beside the Jordan?
6 “For even your [tribal] brothers and the household of your father, Even they have dealt treacherously (unfaithfully) with you; Indeed they are [like a pack of hounds] howling after you. Do not believe them, although they may say kind words and promise you good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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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고난을 각오하라(렘 12:1-6)
예레미야 선지는 하나님과 자기 영혼 사이에 있었던 일이 무엇이며 자기를 공격해 온 시험은 무엇이며 또 자기가 그 시험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를 남에게 알리는 것이 유익하리라고 믿어마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에게 다음 사실을 고하고 있다.
Ⅰ. 겸손한 어조로라도 하나님의 공평하신 판결에 대하여 변론하려 든다는 것은 매우 방자한 짓이 아닐 수 없는데 은혜롭게도 그는 그 허락을 얻었다(1절).
그가 하나님과 쟁변하려는 것은 언쟁하거나 그의 처사를 힐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가 하시는 일의 의미를 해집고 들어가 봄으로써 흡족하게 여길 만한 이유를 더욱 더 많이 발견하며 자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처사에 대한 반대를 답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여호와의 행사와 그 이치는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까지도 다 연구한다(시 111:2).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으신 자와 다툴 수는 없지만(사 45:9) 그와 변론할 수는 있다.
선지자는 명명백백하고도 확실한 진리를 여기에 제시하는데 그는 이 토론을 전개하면서도 이 진리는 꼭 고수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 주는 외로우시니이다." 이와 같이 그는 악인의 형통에 대한 담판에 들어가기에 앞서 악인의 변영을 부러워하게 하려는 유혹에 대하여 스스로를 무장시키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의미에 대하여 전혀 알 길이 없을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생각을 여전히 유지하도록 마음을 다지지 않으면 안 되며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어떤 피조물에게도 털끝만치의 부당한 일을 행하지 않으셨고 언제까지든 그런 일은 행하지 않으실 것이란 점만은 믿어야 한다는 데에 유의하자.
하나님의 판단이 큰 바다와 같아서 헤아릴 길이 없고 전혀 설명할 수가 없을 때에라도 그의 의는 태산과 같이 확연하고 움직일 수 없다(시 36:6). 때로 구름과 흑암이 그 주위에 둘려 있더라도 의와 공평은 그 보좌의 기초이다(시 97:2).
우리가 개개의 섭리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깨달을 때에도 우리는 우리의 제일 원리가 되는 일반적 진리에 의지해야 하며 그것을 고수해야 한다. 섭리가 아무리 불분명하더라도 여호와는 의로우시다(시 73:1 이하 참조).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나오는 예레미야 선지처럼 하나님과 쟁변할 때조차 이 사실을 그에게 고백해야 한다. 논쟁할 생각을 품은 자로서가 아니라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의로우실 것이란 점을(시 41:4), 완전히 믿고 무언가 배울 생각을 하는 자로서 그의 의로우심을 시인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 정보로 하나님과 변론할 만한 명분이 아무리 뚜렷하다고 하더라도 그가 무슨 말씀과 어떤 행동을 하시든지 간에 그는 정당하시다고 인정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을 유의하자.
Ⅱ. 그에게 거침이 되고 그가 토론을 벌이려고 생각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 중 어떤 것이었는가? 많은 현인과 선한 자들이 시험을 당하고 그 시험의 극복을 어렵게 하는 것도 바로 악인의 길이 형통하며 악한 자의 도모와 계획이 성사됨을 목격하는 일이다.
악인이 악의에 찬 계획을 성취하며 그 목적을 이룬다는 것은 알지 못할 일이었다. 그들은 악인의 형편과 관심사가 양호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악인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패역하게, 매우 패역하게 행하는 데도 그들은 다 안락하며 이 세상에서 행복할 수 있는 데까지 행복하게 지낸다. 여기서 뜻하는 것은 주로 위선자(2절에 나오듯)이다. 외식하는 자는 훌륭한 신앙을 고백하는 가운데 위장하고 있으며 선한 출발과 선한 약속을 중단한다. 이로써 그들은 아주 패역한 자이다. 그 행동이 부당하고 부정직한 자들은 번영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해왔는데도 그들은 다 안락하다. 선지자는 그들의 형통과 형통에 대한 남용을 설명하고 있다(2절).
1. 하나님은 그들에게 매우 관대하셨고 그들은 세상에서 누구보다 유리하였다. 그들은 좋은 땅에 식민되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주께서 그들을 심으셨나이다. 아니,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기 위하여 이방인들을 몰아 내셨나이다" (시 44:2; 80:8). 또 심어도 자라지 않고 아무 것도 되지 못하는 나무가 많은데 그들은 뿌리가 박혔다. 그들의 번영은 확고하게 되고 정립되는 듯이 보였다. 그들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 정착하며 모든 민족의 수액을 빨아올린다. 뿌리를 내리는 나무라 하더라도 자라지 못하는 나무가 적지 않은데 이들은 장성할 뿐만 아니라 열매도 맺었다. 그들의 가정은 확고하게 세워졌고 그들은 호화롭게 생활하며 씀씀이도 넉넉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이 그들에게 미소를 던진 하나님의 자애로우신 섭리의 덕분이었다(시 73:7 참조).
2. 그들이 비록 하나님께 패역한 행동을 하였으나 하나님은 이토록 그들을 총애하셨다.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 이 말씀은 무자비한 혹평이 아니었다. 그는 예언의 영에 의지하여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외모가 그럴 듯한 사람들을 위선자로 질책하였다가는 무슨 화를 입을지 모를 터였다.
(1) 그들은 하나님께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에게 대해 진지한 애정을 품고 있지도 않았으나 하나님께 대한 말을 수시로 입에 올리고 진실한 표정을 애써 지으려고 하였다. 외부의 치아로부터 나오는 경건한 말은 어려운 게 아니다. 참 이스라엘인이 아니면서 이스라엘의 언어를 구사하는 자들이 많다.
(2)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성호를 즉시 부를 수 있고 경건의 냄새가 나는 언어 양식에 익숙해져 있으나 심중에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유지할 만한 신념을 없었다. 경건의 모양은 우리로 하여금 경건의 능력을 유지하도록 보증 해 주는데,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Ⅲ. 자기의 순전성에 대해 호소하는 가운데 그는 어떤 위로를 받았는가?(3절).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나이다." 그가 호소하고 있는 악인들은 아마 서슴치 않고 그를 비난하며 혹평하였을 것이다(18:18). 이에 대해 그의 위로가 된 것은 하나님이 그의 성실성에 대한 증인이시라는 사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입은 가까우나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과는 다르며 그들이 인식하고 있던 그런 부류의 사람도 아니고 그들이 묘사하는 대로 사기 예언자, 거짓선지가 아니라는 것을 아셨다. 오히려 그를 이렇게 흑평하는 그들이야말로 그를 알고 있지 못하였다(고전 2:8). "그들은 비록 내가 자기들의 주목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자라고 생각할지라도 여호와여! 당신께서는 나를 아십니다" 고 그는 외친다.
1. 그가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은 무엇에 관해서인가를 살피자. "주께서는 주를 향한 나의 마음을 아시나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선악에 따라 선인도 되고 악인도 되며 우리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선하냐 않느냐에 따라 선악이 정해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가 하나님께 시인을 받기 위해서는 이 점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며 우리 마음을 살펴야 한다.
2. 그가 호소하는 인식 범위를 살펴보자. "주께서는 내가 나 자신을 알고 있는 것 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소문이나 보고에 의해 나를 아시는 게 아님을 주께서 나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지나가는 시선으로 흘낏 보신 게 아니라 나의 마음이 어떠함을 감찰하셨읍니다."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지식은 마치 그가 우리를 극히 엄밀하게 조사하시기라도 한듯 분명하고 정확하며 확실하다.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은 자신을 향한 우리 마음이 어떠한지 완전히 아시는 분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는 위선자의 간사와 정직자의 성실을 다 아신다.
Ⅳ. 그는 하나님께서 이 악한 백성에 대한 방침을 철회하셔서 그들이 비록 오랫동안 번영을 누려 왔으나 항상 형통하게 허락하지 마시기를 기도 드린다.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모종의 심판을 내리셔서 그들을 이 기름진 초장에서 끌어내소서. 그리하여 그들의 오랜 번영도 결국 죽일 날을 위하여 넓은 장소에서 먹이며 예비해 둔양과 같다는 사실이 들어나게 하옵소서" (호 4:16).
하나님께서는 저들 악인이 자기들의 교만과 사치로 불의의 양을 채우며 그래서 그들의 멸망이 무르익기까지 그들을 통하도록 내버려두셨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 스스로가 화를 당해야 옳으며 그것은 꼭 필요한 공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남에게 너무나 많은 화를 입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땅에서 끌어냄을 당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들은 그 땅에다 파멸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세대의 염병과도 같아서 그 땅에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더욱 더 많은 해를 끼쳤던 것이다(4절). "이 땅 거민의 악을 인하여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리이까?(그 땅에 내린 하나님의 심판 때문에) 여호와여,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자들을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까?"
1. 그 땅이 심판을 받아 음하도록 한 것은 무엇인지 여기서 살펴보자.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며(풀은 타버리고 땅의 모든 소산은 흉작이 된다)따라서 짐승과 새들도 물론 멸절하게 된다(왕상 18:5). 이것은 오랜 한발이나 부족한 강우량의 결과였는데 요시야 왕의 통치 말기와 여호야김 치세 초기에 있었던 일로 보인다. 이것은 3장 3절, 8장 13절, 9장 10,12절에도 언급되며 뒤에 14장에서는 한층 완전하게 나온다.
그들이 이 자그만 심판으로 회개에 이르게 되었더라면 보다 큰 심판은 방지되었을 것이었다. 그 거민의 악이 아니었다면 어찌 이 옥토가 염밭으로 화했겠는가?(시 107:34) 그러므로 선지자는 이 악인들이 그들 자신의 죄로 인해 죽게 하시며 온 민족의 그들의 악때문에 수난을 당하지 않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2. 그 악인들의 악한 언어는 무엇이었는지 여기서 살피자. "그들은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고 말하였다.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가 된다.
(1) 하나님 자신이 이 결과를 보시지 못하리라는 말.
무신론은 외식의 밑뿌리가 된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알랴?" 하고 말하기 때문에 입으로는 하나님께 가깝지만 그 마음은 멀리 있다(시 73:11; 22:13). 우리가 취하는 길이 무엇이며 그 길의 종점은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가? 그가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위선자이다.
(2) "예레미야는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는 말.
"그가 결국이 어떻게 될지 우리에게 묻고 어떤 주장을 하든지 간에 그는 우리의 결국을 예견할리가 없다." 즉 그들은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로 간주하는 셈이다. 또는 "그의 주장이 어떻든 간에 그는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그를 살해할테니까" (11:21)이란 말도 된다. 다음 사실을 주목해 보자.
① 사람들은 온갖 악의 근저에는 자기들의 종말을 아주 멀리 설정해두거나 불확실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이 존재하고 있다(애 1:9).
② 전 피조 세계는 인간의 죄짐아래서 신음하고 있다(롬 8:22). 땅이 슬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땅은 너로 인해 저주를 받았느니라(창 3:17).
Ⅴ. 그는 자신의 이런 원망에 대해 하나님께서 내리신 응답을 우리에게 주지시켜 주고 있다(5, 6절).
선지자의 직무는 남에게 훈계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선지자가 훈계받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사 8:11). 목사들은 가르칠 교훈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한테는 스스로 배워야 할 교훈도 있다. 목사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하며 자기 자신에게도 설교를 해야 한다. 예레미야는 아나돗 사람들의 악에 대해 매우 많은 불평을 하였다. 그들은 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형통했던 것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사실이 그 불평에 대한 해답인 것같이 보여진다.
1. 그는 불평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용인되고 있다(6절).
아나돗의 제사장들은 그의 형제였으며 그 아비의 집에 속하였기에 그를 보호하려고 팔을 걷어부쳐야 마땅하였다. 그런 자들이 그에게 패역한 행동을 하였으며 그를 속이고 우호를 표방하면서 계획적으로 그에게 온갖 해를 가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많은 무리를 불러 그의 뒤를 따르게 하며 뒤에서 크게 외치게 하였다. 그들은 폭도를 모아 그를 덮치게 하여 일반 백성을 선동하여 그를 치게 하였다. 온갖 가능한 방법과 기술을 다 동원하여 그를 보잘 것 없고 밉살스런 존재로 보이게 하려 하면서도 그들은 박해하거나 자유를 박탈한 의도가 전혀 없는 것처럼 가장하였다. 그들은 좋은 말을 할지라도 실로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못되었다. 그들은 친구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원수였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은 원수가 자기 집안식구이며 친절을 기대하였던 자들이 신뢰하지 못할 자로 판명되더라도 절대로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마 10:36; 미 7:5).
2. 그러나 그는 문제를 너무 과장했다는 말씀을 듣는다.
(1) 그는 동향인들의 불친절을 지나칠 정도로 마음 깊이 새겼다. 그들은 그를 피곤하게 하였다. 그나마도 그 땅은 평안한 땅이었고 그가 무사하리라고 신뢰하던 곳이었다(5절).
자신의 혈족에게 이처럼 증오박고 학대받는다는 것은 그에게 여간 슬픈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 일로 마음에 혼란을 일으켰고 그이 심령은 이 때문에 침체되었으며 위축되었다. 그는 큰 동요를 느꼈고 큰 곤란을 당하였다. 아니, 그는 이로써 자기 일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를 잃어버렸으며 예언하는 일에 대해 피로를 느끼기 시작하였고 예언을 포기하려고까지 생각하였다.
(2) 그는 이 일이 자기 근심의 시초에 불과하며 그 앞에는 보다 더 쓰라린 시련이 가로 놓여있다는 사실을 살피지 못하였다.
이 어려움을 끈기있게 참아 냄으로써 보다 큰 환란에 대비하려고 노력해야 할텐데 그는 불안감으로 말미암아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일을 감당할 자격도 갖추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며 숨이 아주 턱에까지 차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아나돗 사람이 입힌 훼손에 그처럼 심한 충격을 닫는다면 예루살렘의 관원과 대제사장들이 권세로 맹공격해 올 때는 어떻게 할려고 하는가?(그들은 후에 그렇게 하였다. 20:2; 32:2) 그가 소요도 위험도 거의 없는 평안의 땅에서 그토록 쉽사리 녹초가 되었다면 범람하여 숲속에 있는 사자들조차 겁에 질리는 때에는 어찌하겠느냐?(49:19 참조)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① 이 세상에 있는 한 우리는 환란과 고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삶은 경주이며 전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달리다가 거꾸러질 위험 속에 있는 것이다.
② 보다 작은 시련으로 시작하시는 게 하나님의 통상적인 방법이기에 우리가 여지껏 만난 어떤 시련 보다 더 큰 시험을 예상하는 것은 우리의 지혜이다. 우리는 만탄 자와 싸우라고 소집될지도 모르며 아낙 자손들이 최후의 대회전을 위해 예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③ 그런 시련에 대비하고 환난 중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두는 것도 우리에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다. 우리가 요단의 창일한 중에 당도하게 될 때에는 우리의 완전성과 평안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④ 앞으로 있을 보다 큰 시련에 대비하기 위하여 우리는 현재의 보다 작은 어려움들을 소화시키고 우리의 기백을 유지하며 약속을 굳게 붙잡으며 상을 바라보고 우리의 길을 계속 달려가서 그상을 얻을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어떤 훌륭한 해석자들은 이 말씀에 백성에게 하신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백성들은 심판을 경고받고도 매우 안심하고 있었으며 겁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보다 작은 여러 재난으로 굴욕을 당하였고 가난하게 되었으며 앗시리아 인들로 인해서 피페케 되었었다. 암몬 인과 모압 인들은 그들의 형제국이었고 그들과 동맹을 맺은 자들이었지만 그들을 속였다는 게 입증되었다(물론 이스라엘 자신도 속이려고 하였기에 그랬겠지만). 그렇다고 할 것 같으면 그들이 갈대아와 같이 강대한 대적은 어떻게 당할 수 있겠는가? 요단의 창일함처럼 밀려오는 침략에 그들이 어떻게 꼿꼿이 쳐들고 버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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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15 : 15-21]
15.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17.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18.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1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20.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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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주님, 주께서는 저를 아시니, 저를 잊지 말고 돌보아 주십시오. 저를 핍박하는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주께서 진노를 오래 참으시다가 그만, 저를 잡혀 죽게 하시는 일은 없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주님 때문에 이렇게 수모를 당하는 줄을, 주께서 알아 주십시오.
16. 만군의 주 하나님, 저는 주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주께서 저에게 말씀을 주셨을 때에, 저는 그 말씀을 받아먹었습니다. 주의 말씀은 저에게 기쁨이 되었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17. 저는, 웃으며 떠들어대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즐거워하지도 않습니다. 주께서 채우신 분노를 가득 안은 채로, 주의 손에 붙들려 외롭게 앉아 있습니다.
18. 어찌하여 저의 고통은 그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저의 상처는 낫지 않습니까? 주께서는, 흐르다가도 마르고 마르다가도 흐르는 여름철의 시냇물처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분이 되셨습니다.
19. "나 주가 말한다. 네가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맞아들여 나를 섬기게 하겠다. 또 네가 천박한 것을 말하지 않고, 귀한 말을 선포하면, 너는 다시 나의 대변자가 될 것이다. 너에게로 돌아와야 할 사람들은 그들이다.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20. 내가 너를 튼튼한 놋쇠 성벽으로 만들어서 이 백성과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에게 맞서서 덤벼들겠지만, 너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어서, 너를 도와주고, 너를 구원하여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21. 내가 너를 악인들의 손에서도 건져내고, 잔악한 사람들의 손에서도 구하여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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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iah’s Prayer and God’s Answer
15 O Lord, You know and understand; Remember me [thoughtfully], take notice of me, take vengeance for me on my persecutors. Do not, in view of Your patience, take me away; Know that for Your sake I endure [continual] rebuke and dishonor.
16 Your words were found and I ate them, And Your words became a joy to me and the delight of my heart; For I have been called by Your name, O Lord God of hosts.
17 I did not sit with the group of those who celebrate, Nor did I rejoice; I sat alone because Your [powerful] hand was upon me, For You had filled me with indignation [at their sin].
18 Why has my pain been perpetual And my wound incurable, refusing to be healed? Will you indeed be to me like a deceptive brook With water that is unreliable?
19 Therefore, thus says the Lord [to Jeremiah], “If you repent [and give up this mistaken attitude of despair and self-pity], then I will restore you [to a state of inner peace] So that you may stand before Me [as My obedient representative]; And if you separate the precious from the worthless [examining yourself and cleansing your heart from unwarranted doubt Concerning My faithfulness], You will become My spokesman. Let the people turn to you [and learn to value My values]—But you, you must not turn to them [with regard for their idolatry and wickedness].
20 “And I will make you to this people A fortified wall of bronze; They will fight against you, But they will not prevail over you, For I am with you [always] to save you And [b]protect you,” says the Lord.
21 “So I will rescue you out of the hand of the wicked, And I will redeem you from the [grasping] palm of the terrible and ruthless [ty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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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대한 선지지의 겸손한 호소(렘 15:15-21)
우리는 전처럼 다음과 같은 내용을 대하게 된다.
Ⅰ. 예레미야 선지는 하나님께 겸손한 말씀을 여쭙는다. 그 말씀에는 선지자 자신의 순진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당한 고생에 대한 의견 제시가 들어 있다.
우리를 괴롭히는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에게서 가서 호소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위로가 된다.
우리는 그 앞에 우리 사정을 늘어놓을 수 있으며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한 이 선지자처럼 그의 전능하심에다 호소할 수 있다. 그의 호소는 이렇다. "주께서는 나의 성실함을 아십니다. 사람들은 나의 성실성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사람들이 눈여겨보기를 경멸하는 나의 고통을 아십니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선지자는 간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15절)
(1) 그는 하나님이 자기의 사정을 살피시고 자기를 유의하시도록 기도한다.
"여호와여! 나를 기억하소서. 나를 영원히 생각하소서."
(2) 그는 하나님께서 힘과 위로를 자기에게 전달해 주시도록 기도한다.
"나를 권고하소서. 나를 기억하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신다는 것을 나로 알게 하시며 주께서 내게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알리소서."
(3)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학대자를 대적하사 자기 편을 들어주시도록 기도한다. "주께서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소서. 아니,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서 나를 변호하소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소서. 나를 해명하기에 필요한 만큼만 심판을 실시하시며 그들이 내게 잘못 행했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필요한 정도로만 심판하소서."
이 선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 이상 복수해 주시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참소자가 아무리 반대되는 말을 하더라도). 예레미야는 의인이며 그가 섬기는 하나님도 의로우시다는 두 가지 사실을 세상 사람에게 납득시킬 모종의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4)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려 주시고 산 자의 땅에 계속 남아 있도록 해 주기를 기도한다. "돌연히 치심을 인하여 나로 멸망치 말게 하옵시며 주의 오래 참으심을 인하여 내 날을 장구하게 하소서."
극히 선한 자라도 자기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입기 쉬운 존재여서 생명을 부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내하시는 덕분이라고 고백한다. 또는 "주께서 나의 박해자들에게 오랜 고난을 내리사 그들로 나를 멸망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라고 읽을 수도 있다.
그는 격정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출생을 불평했지만(10절) 여기에서는 죽음의 재촉을 원하지 않는다. 생명은 자연의 아름다움이며 유용한 자의 생명은 은혜 세계의 아름다움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사에서 데려 가시기를 위함이 아니니이다" (요 17:15).
2. 그가 자기 원수들과 박해자들과 중상자들에게 대항해서 하나님께 자비와 구원을 요청한 근거는 무엇인가?
(1) 이 일에는 하나님의 명예가 걸려 있다. "주를 위하여 내가 치욕당하는 줄을 아시옵고 또 그 일을 알리소서."
자기 자신의 잘못과 어리석음 때문에 남에게 비난받는 자들은 그 비난을 참을성 있게 들어야 할 만한 큰 이유가 있으나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변호하시리라고 기대할 만한 이유는 전혀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선행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의로운 연고로 온갖 욕설을 먹는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명예와 함께 우리 명예를 변호하실 것으로 소망해도 좋다. 16절 말씀도 같은 취지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그의 원수들이 그를 미워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고 또 이 때문에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인정해 주시고 편들어 주시기를 즐겨 기다렸던 것이다.
(2)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요구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종사하였다. 그는 자신의 영혼 가운데 역사하는 말씀의 능력과 즐거움을 체험하였다. 따라서 그가 성령의 은혜도 받았고 이로 인해 은사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격을 생겼다.
우리는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나이다" (마 7:22)라고 말할 수 있던 자가 하나님께 배척받는 것을 보게 되는데 예레미야는 이보다 더한 말을 할 수 있었다(16절).
"내가 주의 말씀을 얻었고 찾았나이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성경을 뒤졌고 율법을 부지런히 연구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부흥시키는 요소를 그 안에서 얻었다. 우리는 구하면 얻게 될 것이다.
"그 말씀을 나에게 주셨다" 고 그는 말한다. 그는 말씀을 남에게 전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말씀은 그가 얻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고 영감으로 그에게 전달되었다. "내가 주의 말씀을 맛볼 뿐만 아니라 먹기도 했나이다. 나는 그 말씀을 완전히 받았고 그 말씀과 친하게 교제하였나이다. 나는 굶주린자가 음식 대하듯 그 말씀을 환영했나이다. 나는 말씀을 즐겼고 소화했으며 in succum et sanguinem-즉 피가 되고 영이 되게 했나이다. 나 자신은 남에게 전하기로 되어 있는 진리의 모형으로 되었나이다" 라고 그는 말한다.
에스겔 선지는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말씀을 들었다(겔 2:8; 계 10:9 참조). 그는 "내가 주의 말씀을 먹었더니 그것이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되었나이다.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즐거울 수가 없었나이다" 라고 말한다. 다음 것을 잘 이해하자.
① 그가 전해야 할 말씀 자체.
그는 자기에게 소중한 조국의 파멸을 예언해야 했다. 그는 조국의 패망에서 깊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조국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에 삼켜 버린 바 되었으며 이런 진노의 말씀조차 하나님의 메세지였기에 그를 만족시키는 것이 되었다. 그는 또한 처음에 백성이 그 경고를 받아 들여서 심판을 예방할 것이란 소망으로 즐거워하였다.
② 이 메시지를 전하라고 그가 위탁받은 임무.
그가 부르심을 받아 맡게 된 일은 세속적 이익이 따르는 일이 아니라 정반대로 경멸과 핍박을 받기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하나님을 섬기고 선을 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이 일을 즐거워하였고 이 일에 종사하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 자기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것은 그의 양식이었다(요 4:34).
③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
하나님께서는 그를 도우시며 그의 일에서 그를 인정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렘 1:8). 그는 하나님의 그 약속을 만족히 여겼고 그것에 의존했으며 따라서 그 약속이 어긋나지 않기를 소망했다.
(3) 나중에는 거의 만곡을 느끼지 못했을 망정 그는 가능한대로 온갖 진중함과 성실함과 자기 부인으로써 직무에 전심전력하였다(17절).
① 자신을 전적으로 직무에 바치며 자기 일에 어긋나는 것은 하나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위안이 되었다. 그는 기분 전환을 위해 그 직분에서 떠나는 일이나 그 일에 부적합한 일은 전혀 행하지 않았다. 그는 어울리지 않는 교우 관계를 맺은 일도 없었고 심지어 합법적 오락까지 거부하였으며 경박하게 보이는 일이면 무엇이든 금하였다. 이것은 그런 일 때문에 자신이 보잘것없이 되거나 존중을 덜 받게 될까봐 우려해서 한 일이었다. 그는 주의 손을 인하여 홀로 앉았으며 골방에서 매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여호와의 손은 힘있게 그를 붙잡아 계속 그의 일을 수행하게 하셨다(겔 3:14 참조).
"이는 주께서 본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라." 그것은 곧 분노의 말 때문이었다. 이 백성에게 대한 진노의 말씀은 언제나 그를 수심에 잠기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멸시하더라도 자기 양심의 증언이 자기를 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에게 위안이 될 것이란 점을 잊지 말자. 즉 이것은 헛되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자신의 모습을 볼품없이 만든 적이 없었으며 이 선지자가 그랬던 것 같이(10절) 이 세상 재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쾌락에 대해서도 자기를 죽였다는 양심의 증언을 말한다.
② 그의 불평은 자기 일에 즐거움이라곤 거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마음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으므로 그는 기뻐하는 자의 회에 앉을 마음이 없었다. 그는 친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참으로 어떤 사람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던 때문이다.
그는 백성의 완고함과 백성에게 대한 자기의 수고가 거의 빛을 보지 못함에 안달을 내면서 앉아 있었다. 이 일은 그를 거룩한 분노로 채웠다. 선한 자들이라도 성질상 초조함과 불안함이 있다. 그들이 만약 그런 성질을 억누르긴 커녕 그런 기질에 맞장구를 치고 거기 빠져 들어감으로써 신앙의 즐거움을 많이 잃어 버린다면 약하고 어리석은 자가 아닐 수 없다.
(4) 그는 사뭇 격정적 충간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약속에다 자신을 내어 던진다(18절).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그것을 완화시킬 조처가 취해지지 않음은 어찜이니까? 나의 대적이 나의 평화와 명성에 대해 끊임없이 가하는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않으며 나의 위안이나 명예를 회복시킬 어떤 일도 행해지지 않음은 어찜이니이까? 나는 이토록 소홀히 취급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나이다. 내게 임재를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대하여 속이는 자 같으시리이까?" 우리는 이 말씀을 기꺼운 마음으로 최대한 선용하고 다음 두 가지에 대한 호소로 받아들인다.
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호소. "나는 하나님께서 자기 종의 고통이 계속되지 않게 하시며 그 고통을 덜어 주실 것이고 그의 상처를 고칠 수 없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고치실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낙심하지 않겠노라" 라는 말이다.
② 그의 신실하심에 대한 호소. "주께서 내게 대해 속이는 자 같으시리이까? 아닙니다. 나는 주께서 그렇지 않으실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해야 하는 인간이 아니십니다. 생명의 샘되신 주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대해 결코 마르는 물같지 않으실 것입니다."
Ⅱ. 이 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응답(19-21절). 선지자의 말속에서 여러 가지의 인간적나약성이 많이 노출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선하신 말씀과 위로의 말씀으로 응답해 주신다. 이는 그가 우리 체질을 아시기 때문이다(시 103:14). 다음을 관찰하자.
1. 하나님이 여기서 그에게 내세우시는 조건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앞으로 은혜를 주시는 데 대한 조건을 요구하신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위해 많은 것을 행했고 또 하나님 때문에 수난도 많이 당하였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인정해 주실 것이다.
(1) 그는 냉정을 회복하여 자기 일에 만족하고 다시 화해해야 하며 전처럼 불평해서는 안 되었다. 그는 돌아와야 했고 이 신뢰치 않고 만족치 않는 생각과 혈기를 떨쳐 버려야 했으며 그런 것에 굴복해서는 안 되었다. 그는 다시금 자기 자신을 평화롭게 소유하고 향유해야 했으며 편안하도록 결심해야 했다.
우리가 어쩌다 불쾌한 기분과 흥분에 빠지면 돌아오는 일 곧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스스로 도울려고 노력하는 뒤에라야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2) 그는 자기 일에 신실해야겠다고 결심해야 했다. 그는 스스로의 신실성을 인정할 수 없는 한 하나님의 보호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를 부실하다고 비난할 이유도 전혀 없었고 하나님도 그의 마음이 성실하다는 것을 아셨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이런 경고를 내리시는 것이 적당하다고 판단하셨다.
의무를 행하는자들은 자기 의무에 대해 말듣는 것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두 가지 일로 그는 신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① 그는 자기 설교를 듣는 자들 중 이런 자와 저런 자를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너는 천한 것에서 천한 것을 취해야 한다." 의인은 아무리 비천하고 가난하다 하더라도 귀한 자이다. 악인은 아무리 돈이 많고 권세가 당당하더라도 천한 자이다. 우리의 회중에는 이런 자들이 뒤섞여 있으며 마루에는 밀과 겨가 함께 널려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이름으로 구별하지 말고 그 인품으로 구별해야 한다. 우리는 각자에게 제 몫은 주어야 한다. 귀한 성도에게는 위로의 말을 함으로써 응분의 대우를 해야 하고 죄인에게는 두려움의 말을 함으로써 응분의 대우를 해야 한다. 의인의 마음을 슬프게 하지 말며 악인의 손을 굳게 하지 말고(겔 13:22)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해야 한다(딤후 2:15).
목회자들은 자기에게 소중히 여겨지는 자들을 마음속에 받아들여야 하며 예레미야처럼 홀로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유익을 줄 수도 얻을 수도 있는 자들과의 교제를 지속해야 한다.
② 그는 자기 자신의 훈계를 고수해야 하며 그 교훈을 조금도 바꾸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네게로 돌아 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즉 그는 백성들을 하나님의 의사대로 양육하기 위해 자기 설교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하나님의 뜻에 부응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그에게서 도망쳤고 하나님께서 은총을 내리시마고 하신 조건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자들은 "네게로 돌아올 것이며 생각을 다시 하여 조건에 응하고 계약을 맺도록 하라" 는 것이다.
"너는 그들에게 돌아가지 말지니라." 이 말씀은 규정한 것 이상으로 그들의 일을 편하게 해 주려고 생각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나 생활이 하나님의 율법한테로 나아와야 하는 것이며 그 율법에 순응해야 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율법이 인간의 마음이나 삶에게로 내려와서 순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 이런 조건을 이행할 때는 어떤 것을 주시겠다고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하시는가? 그가 이를 선히 실증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실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진정시키실 것이며 현재 소용돌이치는 그의 심령을 평온하게 해 주실 것이다.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네 영혼을 소생시킬 것이다" (시 23:3 참조).
어느 때든지 정도에서 곁길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로 결심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아무리 선하고 강한 성도라고 해도 다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2) 하나님께서는 그를 선지자로서 봉사하게 하실 것이다. 선지자는 그토록 악한 시절에도 자기 삯이 되기에 충분한 위로와 명예를 자기 일 속에서 얻었었다. "내가 너를 내 앞에 세울 것이며 종이 자기 주인에게 하명을 받듯 내 교훈을 받게 할 것이다. 너는 사자가 자기를 보내는 임금의 입이듯이 백성에게 내 메시지를 전하는 입같이 될 것이라."
신실한 목사는 하나님의 입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교역자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입으로 간주해야 하며 하나님의 의사를 말로 전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해야 한다(벧전 4:11).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그런 자로 간주해야 하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어야 한다. "만일 네가 네 교훈을 굳게 지키면 너는 내 입같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입같이 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을 잘 살피자.
하나님께서 그런데 교역자들이 기록된 말씀에 의거하는 만큼만 그들의 편에 서실 것이다. "너는 내 입같이 될 것이라" 는 말은 "네가 하는 말은 나 자신이 말한 것처럼 실행될 것이라" 는 뜻이다(사 44:26; 삼상 3:19).
(3) 그는 직무 수행 중 부닥치는 많은 어려움을 능히 감당할만한 용기와 힘을 얻게 될 것이며 그의 심령도 다시는 지금처럼 약해지지 않게 될 것이다(20절).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라. 폭풍이 맹렬히 몰아치고 휘갈기나 끄덕도 하지 않는 놋 성벽이 될 것이다. 너는 어떤 죄스런 굴종으로도 그들에게 돌아가지 말 것이며 은혜로 무장시켜 주시는 네 하나님을 경건한 결심으로 신뢰할지니라. 겁쟁이가 되지 말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로 담대하게 하시리라."
그는 자기가 다툼의 사람으로 났다고 불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각오하라" 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너를 칠 것이며" 적대 행위를 계속할 것이지만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며 너를 네 일에서 쫓아내지 못할 것이고 너를 산 자의 땅에서 끊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나님은 그에게 이르신다.
(4) 하나님은 그의 보호자와 강력한 구조자가 될실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질 것이라."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자들은 구주를 모시고 있는 자들이다. 그 구주는 극히 흉맹한 원수라도 너끈이 요리할 만한 지혜와 힘을 소유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와 함께하여 자기에게 충실한 자들을 환난으로부터나 환난을 통하여 구원하실 것이다(21절). 그들은 악한 자의 손아귀에 떨어질지도 모르며 악인은 그들에게 두려운 존재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악인의 손에서 구조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이다(딤후 4:18). 그것은 충분한 구원이다. 보기에는 매우 두려운 것 같으나 결국 선한 사람에게 털끌만치의 해도 입히지 못하는 일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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