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65.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내평생에가는길413 너근심걱정말아라382.나의기쁨나의소망되시며95. theGreatestThingInAllMyLife. 예수사랑하심은 ---대속의 십자가사랑의크기>>>죄악의 크기!!!---
*1.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2.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3.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허물과 죄악마다 참되게 자복하며 회개하는)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4.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극치 :거룩함)으로 만족하리이다 *5.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엄위]엄정하고 권위있음...합당한 경외함으로 동행 필요....[자비-은혜-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무궁하신 Q의 선하심+사랑 그 자체인 주님의 성품의 어떠하심, 그 이름, 거룩한 아름다움의 영광, 지존-유일-영원불변하시며 영생자존하시는 Q, 그분의 기묘하고 놀라운 초자연적인 권위있는 모든 행하심, 불의하고 합당치 못한 것을 정하신 때에 심판하사 여지없이 끊어내어버리시는 엄정하심까지 바로 그대로 참되게 인정/전심으로 합당하게 경외함이 마땅함...엄위한 =majestic, awesome and wonderful, 그 행하심이 두려울 정도로 초자연적으로 기묘하며 뛰어나 놀라울 뿐 아니라, 불의한 것은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고 정하신 때에 가혹할 정도로 엄정하게 심판하사 끊어내어버림)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6.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7.바다의 설렘과 물결의 흔들림과 만민의 소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8.땅 끝에 사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9.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10.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11.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12.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13.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 There will be silence before You, and praise in Zion, O God, And to You the vow will be performed. O You who hear prayer, To You all men come. Iniquities prevail against me; As for our transgressions, You forgive them. How blessed is the one whom You choose and bring near to You To dwell in Your courts We will be satisfied with the goodness of Your house, Your holy temple. By awesome deeds You answer us in righteousness, O God of our salvation, You who are the trust of all the ends of the earth and of the farthest sea; Who establishes the mountains by His strength, Being girded with might; Who stills the roaring of the seas, The roaring of their waves, And the tumult of the peoples. They who dwell in the ends of the earth stand in awe of Your signs; You make the dawn and the sunset shout for joy. You visit the earth and cause it to overflow; You greatly enrich it; The stream of God is full of water; You prepare their grain, for thus You prepare the earth. You water its furrows abundantly, You settle its ridges, You soften it with showers, You bless its growth. You have crowned the year with Your bounty, And Your paths drip with fatness. The pastures of the wilderness drip, And the hills gird themselves with rejoicing. The meadows are clothed with flocks And the valleys are covered with grain; They shout for joy, yes, they sing. ------------------ God’s Abundant Favor to Earth and Man. To the Chief Musician. A Psalm of David. A Song.65 1 To You belongs silence [the submissive wonder of reverence], and [it bursts into] praise in Zion, O God; And to You the vow shall be performed. 2 O You who hear prayer, To You all mankind comes. 3 Wickedness and guilt prevail against me; Yet as for our transgressions, You forgive them [removing them from Your sight]. 4 Blessed is the one whom You choose and bring near To dwell in Your courts. We will be filled with the goodness of Your house, Your holy temple. 5 By awesome and wondrous things You answer us in righteousness, O God of our salvation, You who are the trust and hope of all the ends of the earth and of the farthest sea; 6 Who creates the mountains by His strength, Being clothed with power, 7 Who stills the roaring of the seas, The roaring of their waves, And the tumult of the peoples, 8 So they who dwell at the ends of the earth stand in awe of Your signs [the evidence of Your presence]. You make the dawn and the sunset shout for joy. 9 You visit the earth and make it overflow [with water]; You greatly enrich it; The stream of God is full of water; You provide their grain, when You have prepared the earth. 10 You water its furrows abundantly, You smooth its ridges; You soften it with showers, You bless its growth. 11 You crown the year with Your bounty, And Your paths overflow. 12 The pastures of the wilderness drip [with dew], And the hills are encircled with joy. 13 The meadows are clothed with flocks And the valleys are covered with grain; They shout for joy and they sing. ================ 하나님의 권능과 인자하심에 대한 찬양으로 인도되는데, 그 권능과 인자하심은 이렇게 나타난다. 1. 은총의 나라에서(1), 기도를 들어주심으로써(2), 죄를 용서하심으로써(3), 백성을 만족케 해주시고(4), 보호해 주심 속에서(5). 2. 섭리의 나라에서 산들을 고정시키고(6),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7), 밤낮의 일정한 주기를 지속시키고(8), 땅에 열매를 내심으로써(9-13). 이 모든 것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빚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편을 부름으로써 우리 자신도 쉽사리 그를 찬양할 수 있다. ================= 시온의 찬송(시 65:1-5) 시편 저자는 여기에서 아름다운 보좌에 있는 그 자신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으나, 집회의 주인으로서 그리고 회중의 대언자로서 하나님께 아뢰는 것으로 시작하는 일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음을 살펴보자. Ⅰ. 그는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1절) 1. 겸손한 감사로써.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나이다.” 즉, 원하는 긍휼을 기대하면서, 또 그 긍휼이 올 때까지 기다림으로써, 그 긍휼이 도착하자마자 감사드리기 위해 찬양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고 계실 때, 우리는 찬양을 가지고 맞으러 나가야 하며, 새벽녘까지 기다려야 한다. “찬송이 주의 거룩한 뜻에 완전히 만족하면서, 또 주의 긍휼에 신뢰하면서 기다리나이다.” ---우리가 매사에 감사드릴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것이 찬미가 하나님을 기다림이다. “찬미가 주의 열납을 기다리나이다.”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던” 모든 레위인들은 지정된 시간에 찬송을 부를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134:1-2), 따라서 그들의 찬미가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오히려 “찬송이(단어 그대로) 주께 잠잠하나이다.” ---마치 주의 위대한 선하심을 표현하기에는 단어가 부족하고, 그에 대한 조용한 경이감으로써 충격을 받았으므로 잠잠한 것 같다. ---입 밖에 낼 수 없는 거룩한 번민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표현할 수 없는 거룩한 경탄이 있으나, 그 침묵은 “마음을 감찰하시며 영의 마음을 아시는” 그에 의해 열납된다. ---그 능력에서 우리들보다 뛰어난 거룩한 천사들의 찬송이 들리게 하기 위해, 우리의 찬송은 침묵을 지킨다. ---네가 말하는 것이 그에게 들리지 않게 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말을” 입 밖에 낸다면, “반드시 그는 삼키울 것이기 때문이다”(욥 37:20). “주 앞에서는 찬송도 침묵으로 여겨집니다”(갈대아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즉, 그 정도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축복과 찬양 위에 높이 계신다. ---찬송은 온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보내져야 하나, 오직 시온에서만 그의 교회, 그의 백성 가운데서 기다리고 있다. 그의 모든 일들이 그를 찬양하나(그들은 찬양을 위한 소재에 공헌하고 있다), 그의 성도들만이 실제적인 경배로써 그를 송축한다. ---구속함을 얻은 교회는 시온산에서 새 노래를 부른다(계 14:1, 3). 시온에는 하나님의 처소가 있다(76:2). 거기에서 그와 함께 거하는 자들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그를 찬양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참된 성실로써.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즉, 서원된 제물이 바쳐질 것이다. 우리가 긍휼을 추구할 때 했던 서원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받은 긍휼에 대해 우리가 감사드림은 하나님께 용납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서원하고서 갚지 않는 것보다 서원하지 않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Ⅱ. 그는 무엇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는가? 1. 기도를 들으신 것 때문에 영광 돌리고 있다(2절). “찬송이 주를 기다린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1) 주께서 우리의 탄원을 허락하실 준비를 하시기 때문이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주는 각 기도마다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능히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엡 3:20). 그리고 주는 친절하게, 또는 친절로써 믿음의 각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시며 그가 그렇게 하심은 그의 영예로운 권한 가운데 두셨다는 사실로써 우리의 기도를 장려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느 경우에나 그에게 그의 권한을 드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매우 궁핍해진다. (2) 그 까닭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에게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므로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마땅히 각 사람의 찬송이 주를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은, 다른 때에는 어떻게 행하든지간에, 궁핍이나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는 그들의 기도가 주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만이, 그리고 그들의 신앙으로 개종한 자들이 주께로 나아옵니다. 그러나 주의 집이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을 때, 그때에 모든 사람이 주께로 나아와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롬 10:12-13). .....그에게로 나아가자. 담대히 나아가자. 그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2. 죄를 사해 주심에 대해 영광 돌리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까?”(미 7:18) 이로써 그는 그의 이름을 선포하셨다(출 34:7). 그러므로 이러한 면에서 찬송이 주를 기다리고 있다(3절). “우리 죄가 하늘에까지 닿았고, 죄악이 우리를 이겼고, 또 매우 그 수효가 많게 그리고 극악해 보이므로, 그것을 우리 앞에 나열해 놓을 때 우리는 매우 부끄러워하며, 곧 낙심할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그것이 이처럼 우리를 이기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떤 의로움으로써 우리의 악과 균형을 이루는 척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 우리 자신의 양심이 우리를 고소하며, 우리는 답변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주의 후한 자비로, 그리고 주께서 친히 마련해 주시는 의로움을 인해 사하시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죄받지 않을 것입니다.” ---죄로 인해 우리의 위험이 커질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사유하시는 긍휼의 능력과 그 풍성함을 더욱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은총은 우리의 여러 가지 범죄와 큰 죄에 대한 위협적인 압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3. 하나님께서 자기를 섬기던 자들을 호의로써 대우하시고, 그들에게 자기와 교제하는 즐거움을 갖게 해주심에 영광 돌리고 있다. ---먼저 죄책이 씻겨야 하며(3절), 그러고 나서야 우리는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갈 수 있다(4절).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 들어오는 자들은 그 교제 속에서 분명히 참된 행복과 충만한 만족을 발견할 것이다. (1) 그들은 복이 있다. 그 나라가 복이 있을 뿐만 아니라(33:12),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아무리 비천한 자일지라도 그 개인이 “복이 있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 거룩한 은총에 대한 가장 확실한 표적과 영원한 축복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담보와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① 이 축복을 위해 하나님과의 교제 안으로 들어옴은 이러한 것이다. a. 그것은 그의 언약을 신뢰함으로써, 그에게 우리의 가장 훌륭한 감정을 쏟고, 우리의 멸망을 그에게로 향하게 함으로써 그에게 접근함이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는 자로서 그와 대화를 함이다. b. 그것은 하나님의 집에 있었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처럼 그의 뜰에 거함이다. .....그것은 또 우리가 거주하는 곳의 일에 대해 우리가 열심이듯이 믿음의 일에 꾸준하고 거기에 우리의 온힘을 기울임이다. ②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 들어오는가! .....우리의 어떤 공로에 의해 추천을 받거나 우리 자신의 수완에 의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 선택에 의해 들어온다. “주께서 택하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남겨진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선택에 따른 하나님의 실제적인 특별 은총에 의해서다. 즉, 하나님은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자기에게 접근하도록 만드신다. 그들로 하여금 가까이 나오도록 초대하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을 주시며,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그는 그들을 이끄신다(요 6:44). (2)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여기에서 시편 저자는 인칭을 바꾸고 있다. “그가”(주께서 택하신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만족할 것이다. 이는 그 약속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적극적인 믿음으로써 우리의 이름을 거기에 두도록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다음을 명심하자. 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은 그의 집이다. 거기에 그가 거하신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의 의식이 집행된다. ② 하나님은 훌륭한 집을 가지고 계신다. 그의 집에는 선함과 의로움과 은혜, 영원한 언약에 대한 모든 위로가 가득 들어 있다. 모두에게 풍족할 만큼, 각자에게 풍족할 만큼 있다. 그것은 준비되어 있다.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무료다. 돈 없이, 대가 없이 주는 것이다. ③ 이러한 것들 안에는 영혼을 만족케 함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로써 모든 은혜로운 영혼은 만족케 된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교제의 즐거움을 갖게 하자. 그러면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그로써 그들은 충족히 지니고 있어서, 더이상 다른 것을 원하지 않는다. 4.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위해서 영광스럽게 작용해 주시는 것에 대해 영광 돌리고 있다(5절).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주께서 의를 좇아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 속에서 때로 그의 백성들을 꾸짖으시는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그는 흔히 그들을 깨우치고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엄위하신 일로 그들에게 응답하시나, 그의 섭리는 항상 의롭다. 그는 그들에게 잘못 행하시지 않으며, 그들을 해할 의도를 지니고 계시지도 않다. 심지어 그들을 해칠 때라도 그는 그들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다(사 45:15 참조). ---한편, 오히려 이 구절은 그들의 대적들에 대한 그의 심판으로 풀이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 원수를 갚으시는 하나님으로서, 그리고 그의 백성들을 위해 이방 나라들을 멸하시고, 그 교만한 제자들에게 보복하심으로써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기묘한” 일로써(“엄위하신”을 이렇게 풀이하기도 한다), 매우 놀랍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던 일로써 응답하신다(사 64:3). 또는 “우리에게 충격을 주시는 일로써, 주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도록 허락받은 그 거룩한 자유가 그에 대한 우리의 경외감과 경건한 두려움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성소에서 엄위하신(무서운)” 분이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백성들이 어떠한 환난 속에 빠졌을지라도, 그리고 어디로 흩어졌을지라도, 그들을 돌보심에 대해 영광 돌리고 있다. ---그는 “땅의 모든 끝에 있는 자의 의지”(신뢰처)이시다. 즉, 이스라엘 자손들만의 의지처가 아니라,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의지처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하나님, 그의 성전과 그 뜰에서 “멀리 있는”, 즉 이방인들의 섬에 거하거나 “바다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자의 의지처”이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지각이 혼돈될 때 주를 의지하고 주께 부르짖는다(107:27-28). ---우리는 믿음과 기도로써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킬 수 있으며, 우리가 그의 백성들의 엄숙한 집회에 참예해 있을 때뿐만 아니라, 먼 바다에 있을 때에도 그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시 65:6-13) 하나님을 자연의 하나님으로서 살펴보는 일, 곧 섭리에 의한 세계의 풍요함과 부요함으로써의 그의 권능과 주권을 살펴보는 일은 유용하다. 또한 그로 인해 은총의 하나님의 놀라우신 겸비를 더욱 깨닫게도 된다. Ⅰ. 그가 땅을 세우셨고, 그래서 땅은 계속 있다(119:90). 주는 “주 자신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6절), ---비록 때로는 지진에 의해 흔들리지만, 처음에는 산들을 확고하게 세우셨고, 지금까지도 든든히 붙들고 계신다. 번개는 가장 높은 산들을 친다─ 이런 까닭으로 산들은 “영원한 산”이라 불린다(합 3:6). 그러나 그의 백성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그보다 더욱 견고히 서 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사 54:10). Ⅱ. 그는 바다를 잔잔케 하시며, 그래서 그것은 조용해진다(7절). ---폭풍 속의 바다는 흉용하며, 그것은 더욱 무서움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가 원하실 때, 파도와 물결에 고요를 명하신다. 그러면 그것들은 잠을 자고, 광풍은 빨리 평정해진다(107:29). 그리고 바다의 이러한 변화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불변에 대한 산들의 사례에 의해, 하나님은 자기의 바다와 그 마른 땅을 권능으로 두르신다는 사실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는 “바람과 물결을 명하시고, 그것들이 순종하는” 것으로써 자기의 거룩한 능력을 증명하셨다. 바다를 잔잔케 하는 이런 일례에다 예수께서는 이와 비슷한 성질의 것으로서 “만민의 곧, 일반” 백성들의 “훤화까지도” 진정시키신 사례를 덧붙이고 있다. 폭도들의 반란, 천민들의 모욕보다 제어하기 힘들고 불쾌한 것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까지도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은밀한 방법으로 평정시킬 수 있다. 또는 이 구절은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백성들이 분노함을 의미할 수도 있다(2:1). 하나님은 그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가지고 계시며, 영원히 그들의 훤화를 잠잠케 하실 것이다. Ⅲ. 그는 아침과 저녁을 새롭게 하신다. 그래서 그 주기가 일정하다(8절). 이처럼 낮과 밤이 일정하게 연결되는 것에 대해서 다음을 살펴보도록 하자. 1. 그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의 일례로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을 두려움으로 위압한다. “땅 끝에 거하는 자가 주의 표적, 곧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그들은 그것에 의해, 자기들이 그 앞에서 두려워하고 떨어야 하는 지고의 신, 최고의 주권자가 있음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이 속에 하나님에 대한 가시적인 일들이 분명히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은 “징조를 이루기” 위함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창 1:14). 멀고 후미진 구석땅에 거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징조를 너무나 두려워했으므로 그것이 하나님의 징조라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하나님을 경배할 수밖에 없었다(신 4:19). 2. (밤낮의 일정한 순환은) 하나님의 위대한 선하심에 대한 일례로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두에게 위안을 가져다준다. “주께서” 해가 떠오르기 전에 “아침 되는 것과” 해가 지기 전에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시나이다.” ---아침의 빛을 뿌리시고 저녁의 휘장을 치시는 것이 하나님이시듯, 그는 사람에게 은총으로 행하시고 즐거워하게 만드심으로써, 우리에게 이 모두를 즐거워할 기회를 주신다. 그러므로 아무리 빛과 어두움이 서로 상반될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그 사이에 있는 칸막이를 치울 수 없더라도(창 1:4), 이것들은 모두 각자의 때에 세상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환영받는다. 낮의 일을 돕는 아침의 빛과 밤의 안식을 돕는 저녁의 황혼 중 어느 것이 우리에게 더 반가울지 말하기는 어렵다. 파수꾼은 아침을 기다리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피고용인은 간절히 황혼을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조석 제사로 해석하고 있다. 선한 백성들은 조석 제사를 크게 즐거워했고, 하나님은 그것으로 언제나 영화롭게 되셨다. 주께서 그것을(단어 그대로) “찬송”하게 만드셨다. 왜냐하면 매일 아침과 매일 저녁 찬미의 노래가 레위인들에 의해 불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매일 요구되는 의무였다. ---우리는 홀로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갖는 매일 예배를 우리 매일의 업무 중 가장 요긴한 것으로, 그리고 우리 매일의 즐거움 중 가장 기쁜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시킨다면,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우리는 진실로 즐거워하게 된다. Ⅳ. 그는 땅에 물을 대어 비옥하게 만드신다.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에 대한 이 실례에 대해 다윗은 매우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이 시편이 여느 때보다 더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던 때에 지어졌거나 또는 오랜 가뭄 후 단비가 내렸던 때 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의 이 아래 지역의 비옥함이 얼마나 위 지역의 영향력(감응력)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가는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하늘이 놋과 같다면 땅은 쇠와 같은데, 이는 모든 훌륭하고 완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온다는─“모든 것은 위로부터”라는 사실을 어리석은 세상 사람에게 잘 알 수 있도록 암시한 것이다. ---우리는 언덕 너머로 눈을 들어야 한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곳에 모든 축복의 원천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땅의 첫 번째 소산이 하늘에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방법으로써, 하늘을 향해 제물로 들어올림과 같이, 그곳에 우리의 찬미를 돌려보내야 한다. 모든 하나님의 축복, 심지어 영적인 축복은 우리 위에 의로움의 비를 내리시는 것으로써 표현된다. 이제 하늘로부터 비가 내리고 풍성한 수확을 맺는 그 일반적인 축복이 여기에서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를 살펴보자. 1. 그 속에는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에 대한 것이 많이 있는데, 여기에서 생생한 표현으로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다. (1) 땅을 만드신 하나님은 이렇게 해 땅을 찾아오시고, 비를 보내시며, 땅에 대한 그의 관심을 입증하신다(9절). 그것은 자비의 방문이니, 땅의 거민들은 이에 대한 찬미를 드려야 한다. (2) 하나님은 메마른 땅이 되게 하신 후, 비옥하게 하기 위해 그곳에 물을 대신다. 하나님 앞에서 꽃 피어난 땅의 산물이 내리게 하지만, 본래의 의도에 따라 그 지면을 적셨던 안개가 있다(창 2:5-6).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슬같이 되어 우리들을 적셔주시지 않는다면 메마르고 열매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는 심은 나무들을 물 주시며, 그들로 번성케 하실 것이다. (3) 비는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한다. 구름은 이 강의 근원이며, 강은 아무렇게나 흐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강을 위해 잘라낸 수로 속으로 흐른다. 하나님은 빗줄기도 강줄기처럼 자기가 원하시는 방향으로 돌리신다. (4) 하나님의 강은 땅을 윤택하게 한다. 비가 없다면 땅은 곧 보잘것없는 것이 된다. 지표의 소산물인 땅의 재물들은 그 내부에 감추어져 있는 것들보다 사람들에게 훨씬 더 유용하며 실용적이다. 우리는 금과 은 없이는 충분히 잘 살 수 있지만, 곡식과 초목 없이는 살 수 없다. 2. 비로부터 땅과 그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유익이 왔는가! (1) 땅 자체에 온 유익. 적절한 시기에 오는 비는 땅에 새로운 모습을 부여한다. “벤 풀 위에 내리는 비”보다(72:6) 더욱 생기있고 갱신력 있는 것은 없다. 비가 미끄러져 나가는 것같이 보이는 밭“고랑”에도 물이 “넉넉히” 대어진다. 왜냐하면, 그 고랑은 자주 그 위에 내리는 비를 마시기 때문이다. 씨뿌리기 위해 쟁기로 파헤쳐진 그 “이랑”은 비에 의해 평평하게 되어 씨를 받아들이기에 적합하게 된다(10절). 마음의 토양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 마음을 평평하게 한다. 왜냐하면 마음은 그 은혜로써 견고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해의 봄은 복되다. 그리고 봄, 곧 그해의 처음 4분의 1이 복되다면 그것은 그해 전체가 복되다는 전조다. 그러므로 그것을 일컬어 “하나님이 주의 은택으로 관 씌우신다”(11절)고 했다. 즉, 머리가 면류관으로 둘러싸이듯이, 1년 내내 자비로 둘러싸며, 어떤 일의 끝을 그 일의 면류관이라 하듯 그 한 해의 위로를 완성시킨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진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소산을 잉태하고 있는 땅 속에 있는 온갖 기름진 것은 하나님의 자비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가시는 곳마다 그 뒤에 그의 자비의 표적을 남기시며(욜 2:13-14), 그의 길을 이처럼 그 뒤에서 빛나게 하신다. 낮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 이같은 교통은 매우 광범위하고 파급력이 크다(12절). 하나님의 자비의 “빗방울”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초장에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들의 초장에도 떨어진다.” 사막은 사람들이 돌보지 않으며, 거기에서 어떤 이득도 얻지 못하나, 역시 거룩한 섭리의 돌보심 아래 있다. 그리고 사막이 비록 사람들에게는 직접적으로 혜택을 주지 못할지라도 온 창조물의 위대하신 은인으로서의 하나님 영광에 이바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유용한 것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창조의 어떤 부분에 유용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창조주를 영화롭게 한다. 광야는 경작된 밭과 같은 답례를 하지 못하지만, 가장 비옥한 토양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비를 담뿍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악한 자와 감사할 줄 모르는 자에게도 선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사하시는 선물은 매우 광범위하므로 그것으로 인해 “작은 산들이”, 심지어 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북방에 있는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다.” 작은 산들도 하나님 섭리의 필요성을 초월해 있지 않고, 섭리의 인지 밖에 있지도 않다. 그러나 그가 원하실 때, 그것들로 하여금 떨게 만드실 수 있음과 마찬가지로(114:6), 그가 원하실 때, 그것들로 하여금 기뻐하게 만드실 수도 있다. (2) 땅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온 유익. 하나님은 땅에 비를 예비하심으로써 사람들에게 곡식을 주신다(9절). “지면은 식물을 낸다”(욥 28:5). 왜냐하면 곡식은 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땅에서 나오는 모든 곡식은 하나님 자신이 예비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땅에 비를 마련하심으로써, 사람들을 위해 곡식을 마련하셨다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나머지 모든 피조물을 사람들의 발 아래 두셨고,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적합하도록 만드셨다. 매년의 농산물은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바로 그 능력의 작용일 뿐만 아니라, 그것과 과히 다르지 않는(우리 구세주 능력에 의해 나타난 것과 같이. 요 12:24) 그 능력의 일례임을 우리가 알게 되고, 우리가 항상 땅에서 얻고 있는 소득은 영원히 지속되는 하나님의 선하심의 일례임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에게 곡식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곡식과 가축은 두 가지의 주요 필수품이며, 땅의 과실을 직접 다루는 농부들은 그것들로 인해 윤택해진다. 그리고 이 모두는 땅에 물을 대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인하고 있다(13절). 초장에 양떼가 놀 수 있는 것은 이 덕택이다(13절). 목초가 가축들로 가득하므로, 마치 그 안에 누워 있는 가축들로 목초가 뒤덮여 있는 듯 보이나, 목초는 아직도 포화상태가 되어 있지는 않다. 가축들이 매우 살졌으므로, 그 가축들은 그들이 뜯어먹는 초장의 장식품이며 영광이다. 골짜기에는 열매가 풍성하므로 추수 때에는 “곡식이” 골짜기에 “덮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땅은 가장 낮은 부분이 일반적으로 가장 비옥하므로, 낮은 골짜기 땅은 고산에 비해 다섯 배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창조의 목적에 응답하고 있는 곡식 밭과 초장은 모두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한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들이나 산지가 모두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즐거움에 유용하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즐거움과 찬미의 소재를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추수의 기쁨보다 더한 세상적인 기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들 사이에 “수장절보다” 더욱 감사를 표하면서 지낸 절기는 없다(출 23:16). 우리가 해마다 그리고 날마다 그 은덕을 입고 있는, 이 거룩한 일반 은사 때문에 우리는 존재들 중 가장 훌륭하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더욱 증가시키고, 그가 이처럼 잘 위해 주시는 우리의 몸으로써 그를 영화롭게 해야 한다. =============== ###가인의 표(다시 은혜). ...가인이 아벨을 쳐죽이니라 가인은 여호와의 경고를 듣지 않고 잘못된 분노를 어거하지 못하고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만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וַיֹּ֥אמֶר 와오메르 와우계속법 완료형) 들에 있을 때에( בִּהְיוֹתָ֣ם בַּשָּׂדֶ֔ה 비흐요탐 바싸데 when they were in the field )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창4:8) 가인은 여호와의 경고를 듣고 아벨을 가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유대설화에서는 가인과 아벨이 여자문제로 다투다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본다. 여호와의 경고를 들은 가인은 아벨에게 가서 경고를 했을 것이다. 가인이 아벨이 들에 있을 때 쳐죽인 것을 보니 일단 한번 경고(완료형)를 하고 아벨이 말을 듣지 않자 들판에서 둘이 있을 때 쳐죽인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성경에 나와있지 않지만 가인이 아벨과 대화를 한 후에 심한 충돌이 있었음에 분명하다. 가인의 성격이나 서열을 보면 아벨과 대화를 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경고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가인은 자신이 장남이고 서열상 아담의 계보를 이어받을 사람이고 그런데 아벨의 제사때문에 여호와에게 위신이 깍이고 장남의 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하며 그래서 아벨에게 양의 제물을 여호와께 바치지 말라고 경고를 했을 것이라고 본다. 아벨은 아담의 교훈을 받고 목동이 되었고 그 목적은 피흘림의 죄사함을 통해 가죽옷(생명)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아무리 가인이 형이라고 해도 아벨입장에서는 아담의 교훈을 어길 수 없기 때문에 가인의 강요를 거절했던 것 아닐까.. 힘으로 혹은 서열로 억누르려 했던 가인이 아벨의 반발로 그 분노는 극에 달했고 곧 바로 들판에서 양을 지킬 때 가인이 아벨을 쳐죽인 것이다. .....쳐죽였다( וַיַּהַרְגֵֽהוּ 와야하르게후 and he slew him 와우계속법 미완료 해석은 완료형으로 הָרַג 하라그 to smite with deadly intent)는 말은 순식간에 죽일 목적으로 강타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가인은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고 아벨은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11:4) 아벨이 죽음으로 지킨 그 믿음은 무엇일까? 여호와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만들어주신 가죽옷이며 그 옷을 얻기위해 양의 피를 흘려야하는 여호와께서 제시하신 속죄의 방식에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죄사함을 얻고 다시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아벨은 여호와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방식을 믿음으로 받고 지킨 것이다. 그러나 가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제시하신 구원방식을 거부하고 힘으로 아벨을 꺾어버렸다. ....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여호와 하나님은 가인이 들판에서 아벨을 죽일 것을 아셨고 그 죄의 욕망을 어거하라고 경고하셨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것을 이미 아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보고만 계셨을까? 여호와는 아벨의 죽음을 통해 무엇을 보셨을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신것같이 이전에 그리스도의 구속을 사모하는 의인들의 죽음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구원이 성취되기까지 수많은 의인들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다. 이제 아벨의 죽음은 그 시작이었고 뿐아니라 하나님의 심판때에 믿음의 희생은 악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된다. 하나님은 아벨의 죽음을 통해 가인에게 다시 한번 구원의 기회를 주신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창4:9 )( אֵ֖י הֶ֣בֶל אָחִ֑יךָ 에이 헤벨 아히카 Where is Abel thy brother?) ----이 물음은 여호와께서 선악과를 먹은 후에 아담을 찾는 소리와 같다. 여호와는 아담이 죄를 고백하기를 바라셨던 것이고 역시 가인이 아벨을 죽인 죄를 고백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은 모른다고 발뺌을 했을뿐 아니라 오히려 화를 내면서 왜 자기한테 와서 아벨을 찾느냐고 되묻는다. 아담의 변명을 가인이 닮은 것이다. 그런데 가인의 말속에 가시가 담겨져 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 הֲשֹׁמֵ֥ר 하쇼메르 the keeper )입니까? 여기서 가인이 말하는 지키는 자라는 단어에 가인의 원망이 담겨져 있다. 아벨은 양을 지키는 자( רֹ֣עֵה a keeper )인데 여기서 지키는 자 로에( רֹ֣עֵה tend rule)는 돌보고 다스린다는 뜻이다. 아벨은 양을 돌보고 이끄는 사람인데 가인은 아벨을 찾는 여호와를 향해 내가 아벨을 먹이고 살리고 관리하는 사람이냐고 되묻는다. 이는 아벨의 양을 지키는 일(keeping)에 대한 가인의 돌발적인 화법이다. 여호와는 아벨의 양을 지키는 직업을 인정해주셨다고 가인은 생각한 것 아닐까. 가인은 죄사함과 구원과 생명의 원리를 양의 피와 가죽옷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벨을 편들어주었다고 우긴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아벨이 어디있느냐고 물을 때 내가 아벨과 그의 양들까지 지키고 먹여살려( שָׁמַר 샤마르 protect, attend )야 하느냐고 대답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벨과 같이 양이나 돌보는 일따위는 하지 않을뿐아니라 그런 놈을 위해 양식도 주지 않겠다는 가인의 말이다. 여호와는 아담에게 하셨던 것처럼 가인의 죄를 드러내신다. ......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여호와는 아담이 범죄했을 때와 같은 순서로 가인을 추궁하신다. 그러나 가인은 여전히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시인하지 않는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창4:11) 여호와는 가인의 살인의 벌을 땅에다가 내리신다. 가인이 죄를 범했는데 땅이 저주를 받는다. 왜그럴까? 가인의 직업에 대해 여호와께서 저주를 내리신 것이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עֹבֵ֥ד אֲדָמָֽה 오베드 아다마 a tiller of the ground) 땅을 통해 먹고사는 자였다. 땅을 의지하고 사는 자에게 땅이 저주를 받는다면 그의 삶은 얼마나 고달프고 괴로울까? ----여호와는 아담에게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고 하셨다. ----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어쩌면 아담에게 내린 땅의 저주보다 더 배나 되는 저주를 땅에 여호와께서 내리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가인이 땅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고달프고 허망하고 수고로운가를 알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땅을 의지하지 말고 하늘을 의지하며 땅의 소산으로 힘을 키우지 말고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하늘의 것으로 생명을 얻으라는 뜻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가인의 후예에게도 여전히 복을 주셨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128:2) 여호와는 정직한 노동에 복을 주셨다. 세상의 악한 자들은 독점 매점매석을 통해 폭리를 취해 큰 재물을 모은다. 그러나 손으로 정직하게 노동하지 않은 불로소득이나 동산 부동산투기 혹은 도박이나 경매등으로 큰 돈을 번 자들을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이다. 정직한 노동으로 얻은 수입은 적어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하늘의 상급으로 쌓이지만 불의한 방법으로 얻은 소득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그냥 땅에서 썩어질 것이고 하늘에 상급으로 남지 않는다. 요즈음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매스컴에 나와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투기로 얻은 불로소득인데 이것은 절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가인은 그 당시 독점 大農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힘을 키워서 죄악의 땅에 에덴동산을 만들려고 하는 불의한 자의 대표였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러한 가인에게 아담보다 배나 되는 땅의 저주를 내리셨다. 그런데 인간은 얼마나 모질고 악질인지 가인은 그 척박한 땅을 경작하여 가인의 성인 에녹을 쌓고 대대로 하나님없는 피흘림과 가죽옷없는 낙원을 만들어 갔고 죄와 상관없이 쾌락과 부와 권력과 폭력을 즐기는 세대를 만들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주신 표 가인은 여호와께서 내린 벌이 너무 무겁다고 말한다. ---내 죄벌( עֲוֺנִ֖י 아오니 my punishment )이 지기가( מִנְּשֹֽׂא 미느소 칼 부정사 נָשָׂא 나사 above to bear )너무 무겁다( גָּד֥וֹל 가돌 exceeding ) 아담은 여호와께서 내리신 벌을 달게 받고 여호와께서 지정해주신 가죽옷과 양의 피를 계승해나가기 위해 아벨에게 그 직무를 맡겼다. 그런데 가인은 동생을 쳐죽은 천인공로할 죄를 지어놓고도 여호와의 벌이 너무 하다고 불평을 한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창4:14) 가인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지 않은 사실을 들고 나온다. 여호와께서 자신을 땅에서 쫓아내신다는 것이다. 언제 여호와께서 가인을 땅에서 쫓아내신다고 하셨는가? 아마도 가인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를 한 후 여호와께서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던 것을 알고 자신이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어서 거주지로부터 추방을 당할 것이라고 여긴 것 아닐까. 도둑이 제발저린다고 하는 속담처럼 가인은 아벨을 죽인 자책과 고통으로 부모인 아담과 하와와 한 지역에서 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스스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가인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기보다는 하나님없이 혼자 살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이것이 악인의 태도이다. 모든 사람들은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고자 하는 자는 의인이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고 자기의 힘으로 살아남으려는 자는 악인이 된다. ----가인의 두려움을 레26:36에서 "그들은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요 쫓는 자가 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라" 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창4:15) 여호와는 도망가는 가인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7배나 벌을 받을 것이고 가인에게 표를 주셔서 사람들이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요나단의 탈굼은 7배를 7세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인의 족보 기록으로 7세대는 라멕의 아들 두발가인이고 라멕의 77배라고 하는 잔악한 복수야욕으로 산 결과 가인의 대가 끊긴다. 유대작가들에 의하면 가인은 그의 후손인 라멕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악인들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지구상에서 그 씨가 끊어지고 말았다. 악인들이 자기들끼지 칼부림하고 죽이는 것은 여호와의 완벽한(7배) 심판이 될 것이다. 실제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이방족속들을 이와같은 방법으로 멸하신 기록이 곳곳에 나온다.(삼상14:20 "각각 칼로 그 동무를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대하20:23 "저희가 피차에 살륙하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내리신 것은 단지 벌뿐이 아니라 표를 주셨다.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가인이 완벽한 벌을 받기 전까지 은혜의 기회를 주셨는데 그것이 표이다.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고 하나님은 은혜의 문을 열어두신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주신 표는 무엇일까? 오트( אוֹת a signal evidence )는 어떤 신호나 증거를 뜻한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주신 신호나 증거는 가인이 면죄를 받을 수 있는 표시이다. 이 표시로 말미암아 만나는 사람들이 가인을 죽일 수 없다. ----다윗은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라고 찬송했다. 악인이 죄사함받고 그 죄값을 치루지 않아도 되는 복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그것은 여호와께서 아담에게 주시고 아벨이 순종했던 양의 피와 가죽옷이다. 즉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끝까지 여호와의 은혜를 거부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겠다고 배역한 가인의 험하고 고달픈 인생길에 7배의 저주를 내리셨지만 그리스도의 표( אוֹת 오트 )약속하셨다. א은 수소(본성)를 의미하고 ו 는 갈고리(중보)이며 ת는 서원(인침)을 이미지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석가들은 여러가지로 해석을 한다. 이마에 어떤 표라고 하고 머리에 유니콘 뿔이라고 하고 범접할 수 없는 내적 능력이라고 하기도 한다. 참고로 יהוה 손을 보라 갈고리(못)을 보라는 의미로 해석해서 여호와는 구속주 그리스도라도 해석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א֔וֹת 는 죄의 본성을 중보자 그리스도의 피로 인친다는 뜻이다. 즉 다시 말하면 가인에게도 하나님은 한번 더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피의 언약을 주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아벨을 쳐죽이고 하나님의 영역에서 쫓겨나는 가인이 하나님의 속죄방식인 양의 희생 장차 그리스도의 피를 간직하기를 원했던 것 아닐까. . 그것은 유랑방랑의 길을 떠나는 쓸픈 가인을 위한 하나님의 마지막 배려요 은총이었다. 가인의 여호와 하나님의 그 아린 마음을 알았을까? 알았다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