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1.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116.순전.관유와 향.안분지족.기도할때참내됨.사랑/믿음/거함따름/감사송축/결단((기도/부름-들으심-드림-보답/갚음-지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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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시116....주안에있는나에게370.이세상끝날까지447....예수결박푸셨도다..하나님의음성을..하나님이시여..


@출30장 관유와 향단의 거룩한향..


**@찬송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영원하신 주권적 뜻 이룸안으로 초대하사 영광안에서 예비하신 바 우리의 절대 필요-지족함의 기업-소유-누림-거함의 처소되시다니요!!

우리가 무엇이기에 주님 자신을 누림, 보고 들으며 먹고 마시며 향기 맡으며 입맞추며 품에 안기며 교통하시며 깨닫게 하시며 마음과 심정 생각 알아드리며 절절하게 하나되어 동행하십니까.

...오늘 [나를 향해 베푸시며 이루시기 원하는] 주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뜻 그대로 이루시도록 내려놓고 내어 비워드립니다.

...오직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섬기며 경외함의 궁극을 이루시되, 성령 인도 따라 주신 말씀을 이해하는 총명-명철-통찰-깨달음 통해 오직 주님의 말씀안의 참생명으로 살되, 우리를 충만-변화-성장성숙-넘침으로 신진대사적 거룩한 변화를 이루신 바 신령한 산돌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사랑하리이다, 찬양하리이다, 주 이름 부르오니, 주님 말씀 갈망하는 이웃들의 갈낭하며 듣기를 원하는 그 마음을 준비시키신 주님 뜻대로, 주님 주시는 말씀 말하며 주님을 말하며 주님에 대해 말하리이다...주님은 말씀이시며 그 씨앗의 생명이시며 열매를 맺게 하시는 전능자이십니다..주님 이름 그 영광 나타내소서.


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샤마...경청하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아헤브...사랑하다/좋아하다..Q이 그리하시듯..)

2.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카라...부르다)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  내가 여호와(YHWH.예수아)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카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안나..탄원하다) 내 영혼을 건지소서(말라트...구출/구원하다) 하였도다

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한눈..은혜/자비로운) 의로우시며(찻디크)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라함...깊이사랑하다/긍휼히여기다/자비롭다..이름-성품-영광의 어떠하심 그대로 반응하심)

6.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페티...단순/순진한/마음이 열린..자신을 내어주신 주님눈물 경험한 후 열어,비워, 내어드리고 내려놓은, ) 지키시나니(샤마르..지키다/보호하다...목자로서) 내가 어려울 때에(달랄...비천/연약한) 나를 구원하셨도다(야샤..구원/구출/구조하다)

7.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마노아흐...정착지, 안식/휴식처...목자의 품으로) 돌아갈지어다(슈브...회복하다/되돌리다/되돌아가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가말...은덕을 베풀다/선대하다)

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할라츠..끌어내다/구원하다....개인적 환난/슬픔은 곧 대속구주 JC의 바로 그것!!..풍성부요충만한 생명누림의 품안으로)

9.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땅에 사는 평생동안) 여호와 앞에(코람데오 솔라피데 솔리데오글오리아 솔라스크립투라) 행하리로다

10.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아만...확신하다...소합-나감-풍자향-유향-소금의 향기!!..관유의 기름바름 기억함!!)

11.  내가 놀라서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타그물...은혜, 은전, 은택...임마누엘)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슈브...보답하다/되돌리다)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네델...서원/맹세, 서원제물)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샬람....약속한 것을 완성/성취/완수/완료하다)

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과정거치신 복합적인 HS)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19.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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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시116

1.  주님, 주님께서 나의 간구를 들어주시기에,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2.  나에게 귀를 기울여 주시니, 내가 평생토록 기도하겠습니다.

3.  죽음의 올가미가 나를 얽어 매고, 스올의 고통이 나를 엄습하여서, 고난과 고통이 나를 덮쳐 올 때에,

4.  나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 간구합니다. 이 목숨을 구하여 주십시오" 하였습니다.

5.  주님은 은혜로우시고 의로우시다. 우리의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다.

6.  주님은 순박한 사람을 지켜 주신다. 내가 가련한 몸이 되었을 때에, 나를 구원하여 주셨다.

7.  내 영혼아, 주님이 너에게 잘해 주셨으니 네가 편히 쉴 곳으로 돌아가거라.

8.  주님, 주께서 내 영혼을 죽음에서 건져 주시고, 내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 주시고, 내 발이 비틀거리지 않게 하여 주셨으니,

9.  나는 생명의 세계에서 주님 보시는 앞에서 살렵니다.

10.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우냐?" 하고 생각할 때에도,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1.  두려울 때에는 "아무도 믿을 사람 없다" 하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12.  주께서 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주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14.  주님께 맹세한 것은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다 이행하겠습니다.

15.  주님을 성실하게 따르는 성도의 죽음은 주님께 귀중하다.

16.  주님, 진실로, 나는 주의 종입니다. 나는 주의 종, 주의 여종의 아들입니다. 주께서 나의 결박을 풀어 주셨습니다.

17.  내가 주님께 감사제사를 드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18.  주님께 맹세한 것은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다 이행하겠습니다.

19.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서 주의 성전 뜰 안에서, 맹세한 것을 이행하겠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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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시116

1.  I love the LORD, because he hath heard my voice and my supplications.

2.  Because he hath inclined his ear unto me, therefore will I call upon him as long as I live.

3.  The sorrows of death compassed me, and the pains of hell gat hold upon me: I found trouble and sorrow.

4.  Then called I upon the name of the LORD; O LORD, I beseech thee, deliver my soul.

5.  Gracious is the LORD, and righteous; yea, our God is merciful.

6.  The LORD preserveth the simple: I was brought low, and he helped me.

7.  Return unto thy rest, O my soul; for the LORD hath dealt bountifully with thee.

8.  For thou hast delivered my soul from death, mine eyes from tears, and my feet from falling.

9.  I will walk before the LORD in the land of the living.

10.  I believed, therefore have I spoken: I was greatly afflicted:

11.  I said in my haste, All men are liars.

12.  What shall I render unto the LORD for all his benefits toward me?

13.  I will take the cup of salvation, and call upon the name of the LORD.

14.  I will pay my vows unto the LORD now in the presence of all his people.

15.  Precious in the sight of the LORD is the death of his saints.

16.  O LORD, truly I am thy servant; I am thy servant, and the son of thine handmaid: thou hast loosed my bonds.

17.  I will offer to thee the sacrifice of thanksgiving, and will call upon the name of the LORD.

18.  I will pay my vows unto the LORD now in the presence of all his people.

19.  In the courts of the LORD's house, in the midst of thee, O Jerusalem. Praise ye the LORD.

----AMP------

Thanksgiving for Rescue from Death.116 

1 I love the Lord, because He hears [and continues to hear] My voice and my supplications (my pleas, my cries, my specific needs).

2 Because He has inclined His ear to me, Therefore I will call on Him as long as I live.

3 The cords and sorrows of death encompassed me, And the terrors of Sheol came upon me;

I found distress and sorrow.

4 Then I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O Lord, please save my life!”

5 Gracious is the Lord, and [consistently] righteous; Yes, our God is compassionate.

6 [a]The Lord protects the simple (childlike); I was brought low [humbled and discouraged], and He saved me.

7 Return to your rest, O my soul, For the Lord has dealt bountifully with you.

8 For You have rescued my life from death, My eyes from tears, And my feet from stumbling and falling.

9 I will walk [in submissive wonder] before the Lord In the land of the living.

10 I believed [and clung to my God] when I said, “I am greatly afflicted.”

11 I said in my alarm, “All men are liars.”

12 What will I give to the Lord [in return] For all His benefits toward me? [How can I repay Him for His precious blessings?]

13 I will lift up the cup of salvation And call on the name of the Lord.

14 I will pay my vows to the Lord, Yes, in the presence of all His people.

15 [b]Precious [and of great consequence] in the sight of the Lord Is the death of His godly ones [so He watches over them].

16 O Lord, truly I am Your servant; I am Your servant, the son of Your handmaid; You have unfastened my chains.

17 I will offer to You the sacrifice of thanksgiving, And will call on the name of the Lord.

18 I will pay my vows to the Lord, Yes, in the presence of all His people,

19 In the courts of the Lord’s house (temple)— In the midst of you, O Jerusalem.

Praise the Lord! (Hallelujah!)

=====시116개요======

이 시편은 감사의 노래다. 다윗이 이 시편을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기록했는지, 혹은 하나님이 그를 위해 행하신 예닐곱 가지의 문제로부터 은혜로우신 구원에 대한 일반적인 회고로 기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같은 구원들은 여러 가지 매우 생생한 헌신과 사랑과 감사의 표현을 낳게 한다. 우리의 영혼도 그와 같은 경건한 감정을 가지고서 이 시편을 노래하며 하나님을 높이 우러러보아야 할 것이다.

1. 거의 절망할 지경의, 시편 저자가 처했던 커다란 환난과 위험(3, 10-11).

2. 그가 환난 중에 하나님께 드린 간구(4).

3. 기도의 응답에서 그가 경험한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1-2), 그를 긍휼히 여기사(5-6), 구원하셨다(8).

4. 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며 경의를 표하고자 하는 그의 관심(12).

   (1)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고 있다(1).

   (2) 그는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기도하기를 원하고 있다(2, 13, 17).

   (3) 그는 하나님에게서 편히 쉬기를 원하고 있다(7).

   (4) 그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기를 결심하고 있다(9).

   (5) 그는 감사의 경배를 하고자 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자비의 보살핌을 간직하고 공개하기를 원하고 있다(13-15, 17-29).

5. 마지막으로 그는 일생을 마칠 때까지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16).

이러한 내용들은 매우 행복하게 토로하는 거룩한 영혼의 숨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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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에 감사하는 고백(시 116:1-9)

우리는 이 대목의 시편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Ⅰ. 다윗의 경험과 그의 경건한 서원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1-2절). 

이것이 전체 시편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1. 그는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기도의 응답에서 경험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셨다.” 

다윗은 환난 중에 겸손하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들으셨다. 

즉,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은혜롭게 받아들이셨으며, 그의 처지를 감찰하시고, 그에게 평안의 응답을 주셨다.” 

그는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다. 이것은 기도를 들으시려는 하나님의 준비성과 자진성을 나타내준다. 

그는 기도를 듣기 위해 기도하는 입에 자기의 귀를 두신다. 그 기도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울려 퍼지는 것일지라도 귀를 기울이신다. 

그는 “귀를 기울여 들으신다”(렘 8:6). 그렇지만 이것은 또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겸비를 나타내준다. 그의 귀를 숙이시는 것이다.

 “여호와여! 인간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같이 굽어살피나이까!”

2. 그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그는 하나님과 그의 영광에 전적으로 헌신하기를 결심한다.

(1) 그는 더욱더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한다. 

그는 그의 마음속에 차고 넘치는 고백으로 돌연히 시편을 시작한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18:1과 같이). 

그는 이 시편을 처음이자 가장 큰 계명에 따라서, 그리고 우리를 향한 그의 관대하심의 모든 은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서 시작한다.

“나는 그만을 사랑한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연민의 사랑은 정당하게 그에게서 만족하는 우리의 사랑을 요청한다.

(2) 그는 더욱더 기도를 사랑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기도하리로다.” 

우리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체험한 경험은 우리로 기도를 계속하게 하는 커다란 격려가 된다. 

우리는 기도에서 우리의 몰가치성과 허약성에도 불구하고 잘 진행해 왔다. 그런데 왜 우리가 할 수 없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를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 기도에 응답하신다. 그리고 그의 은총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로부터 기도를 고대하신다. 

왜 우리가 기도에서 잘 대접받을 때, 다른 밭에서 이삭을 주워야 하는가? 아니,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히브리어로는 “나의 날에”). 

마지막 날까지 매일매일 기도하리로다. 계속해서,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에 대한 기도는 우리가 마지막 숨질 때까지 숨쉬어야 할 호흡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는 기도를 해야 한다.

Ⅱ.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처사에 관한 더욱 상세한 이야기와 그가 받은 아름다운 인상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1. 하나님은 그를 대하시는 데에서 그 자신이 선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증언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둔다(5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신 분이다.” 

그는 의로우신 분이다. 그래서 내가 환난 중에 있을 때에 내게 악을 행하시지 않았다. 그는 은혜로우신 분이다. 

그래서 친절히 나를 원조해 주며, 구원해 주셨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발견한 하나님을 말해야 한다. 우리는 그가 의롭고 선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없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우리에게 자비로우시다. “우리가 진멸되지 않는 것은 그의 자비를 인함이라.”

(1) 다윗의 경험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① 그는 커다란 환난과 고통에 처해 있었다(3절). 

“사망의 줄이 나를 둘렀다.” 즉, 그것은 죽음과 같은 슬픔이었으며, 사망의 고통처럼 여겨지는 슬픔이었다. 

아마 극도의 육체적 고통 혹은 마음의 슬픔이 여기에서 “음부의 고통”이라고 표현되었을 것이며, 그것은 죄의식으로부터 일어나는 양심의 아픔이었다. 

다음 사실을 주목해 보자. 

사망의 줄은 커다란 슬픔이며, 음부의 고통도 커다란 고통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자에 대한 준비를 성실히 한다면 후자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사방에서 그를 “둘렀다.” 저희가 그를 붙잡았다. 그래서 “그를 묶어버렸다.” 그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두려움이 없는 곳에는 투쟁도 없다.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다.” 저희가 나를 만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저희를 만났다.

침울한 자들은 그들 자신이 발견하는 수많은 슬픔을 안고 있으며, 공상과 감정에 빠져 스스로 만들어낸 많은 환난을 안고 있다. 

이것이 때때로 선한 사람들의 약점이 되어왔다.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상황을 나쁘게 만들 때, 우리는 우리의 경거망동에 의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서는 아니 된다.

② 그는 환난 중에서도 신실하고 열심 있는 기도로 하나님을 의뢰했다(4절). 

그는 그가 기도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였다.” 

그가 최후의 곤경에 빠졌을 때, 최후의 요법으로서가 아니라 과거의 것이며 유일한 요법으로서, 그는 기도를 사용한다. 

그는 여기에서 모든 고통에 대한 구제책을 발견했다.

그는 그의 기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 준다. 그의 기도는 짧았으나 적절했다. 

“오 여호와여, 내가 주께 간절히 소원하나이다. 내 영혼을 구하소서. 나를 사망에서 구원하시며, 나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소서. 그것이 영혼을 죽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기도의 열심과 겸손은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올 때에는 자선금과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거지와 같은 자세로 나와야 한다.

다음에 오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5절)하는 말은 그의 기도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그의 요청을 힘있게 해주고, 그의 믿음과 소망을 격려해 주는 간구라고 보아야 한다. 

여호와여, “내 영혼을 건지소서. 주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직 구원을 주께만 의지합니다.”

③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때를 맞춰 효험 있는 구원을 주려고 오신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우며 자비로우심을 경험에 의해 알았으며, 긍휼로써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신다”(9절)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어리석기 때문에(즉 교활하지 않고 진지하며, 올바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바울을 보존하신 것과 같이 그들을 보존하신다. 

그는 세상에서 “육에 속한 지혜로써가 아니라 단순함과 경건한 진지성을 가지고” 말했다. 

그들이 어리석지만(즉 약하고 무력하고 자신들을 변경할 수 없으며, 아무런 계획도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보존하신다. 

그들이 자신들을 그에게 맡기며, 자신들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자신들을 하나님의 보호 아래 두는 자들은 안전하게 된다.

(2) 다윗은 그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

① 하나님은 그의 환난 가운데서 그를 도우셨다. 

“내가 낮게 될 때에” “내가 깊은 불행 속에 빠졌을 때” 나를 도우셨다. 

최악의 상태를 인내하며, 가장 좋은 것을 소망하도록 도와주셨고, 소망이 좌절되지 않도록 기도를 도와주셨으며,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기다림을 도와주셨다. 

나는 하나님이 보존하신 어리석은 자들 중의 한 사람이며, 여호와께 “구하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시는”(34:6) 곤고한 자다.

다음 사실을 주목해 보자. 

하나님의 백성은 낮아져 영원한 빈곤이 저희를 주관할 수는 결코 없다. 그리고 이와 같이 보존되는 자들은 결코 가라앉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도움을 주시는 것은 궁핍한 때며, 그때는 죽은 자들도 일어난다(신 32:36).

② 하나님은 그를 환난으로부터 구원하셨다(8절). 

“주께서 건지셨나이다.” 이것은 그가 환난으로 떨어지려는 것을 막음을 의미하거나 또는 이미 그가 처해 있는 환난으로부터 회복함을 의미한다.

a. 하나님은 그 “영혼을 사망에서” 은혜롭게 건져내셨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임을 기억해야 한다. 

자비는 우리가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다시 덤으로 살게 되고, 일으켜졌을 때 더욱 실감나게 된다. 

그 자비는 파멸을 되돌려 복귀하라고 명하시는 것과 같다. 

그렇게 쉽게 빼앗기고, 또 쉽사리 위험에 부닥치는 이 생명이 오랜 기간을 살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의 기적이라 하겠다. 

영적이며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영혼이 건짐을 받는 것은 이제 성화된 모든 자들과 장차 곧 영광 받을 자들에 의해 특별히 인정되어야 한다.

b. 하나님은 그 “눈을 눈물에서” 건져내셨다. 

즉, 그의 마음을 심한 슬픔에서 건져내셨다. 

슬픔의 상황과 비애를 야기하는 악으로부터 지키는 것과 과다한 슬픔에 싸이게 되는 상태로부터 지키는 것은 크나큰 자비이다. 

하나님께서 던져진 자들을 위로하시며, 통곡하는 자의 베옷을 풀어주시고, 저희에게 기쁨을 주실 때, 그는 저희의 “눈을 눈물에서” 건져내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그 세상에 임할 때까지는 완전히 이루어질 수 없다.

c. 하나님은 “내 발을 넘어짐에서”, 죄에 빠지는 것에서, 불행으로 떨어지는 것에서 건져내셨다. 

우리의 발이 거의 넘어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붙드시는 것”(73:2-3)은 커다란 자비이다.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시험에 빠지고, 시험에 의해 쓰러진다 하더라도 붙들어주신다. 

“주께서는 무덤에로 넘어짐에서 내 발을 건지셨나이다. 그때에 나는 이미 한 발을 거기에 두었나이다.”

2.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은혜의 보답으로 그 자신이 선한 사람임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다윗을 위해 보여주셨다.

(1)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이 즐거워하는 생활을 한다(7절).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① “편히 쉬고 안식을 취하라. 그리고 네가 전에 가끔 행하였던 것과 같이 믿음 없이 동요하는 공포로 너 자신을 흥분시키지 말라. 평온하라. 그리고 스스로 기쁨을 가지라.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친절로써 대하셨다. 그러므로 너는 그가 너를 무섭게 대하실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② “하나님 안에서 편히 쉬어라. 그에게 너의 평안함을 돌리고, 그에게만 있는 안식을 피조물에게서 구하지 말라.” 

하나님은 영혼의 안식처다. 그에게만 편히 거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들어가 그 안에서 즐거워해야 한다. 

그는 “우리를 후대하셨다.” 그는 우리의 위로와 안식을 위해 충분히 공급하셨다. 

그리고 그는 모든 때에, 모든 경우에 자기에게로 나아오라고 우리를 격려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족해야 한다.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마 11:28)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안식에 들어가야 한다. 

노아에게로 돌아가라. 그의 이름은 비둘기가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간 것과 같이 “안식”을 의미한다. 

나는 밤에 우리의 두 눈을 감고 잠을 청할 때, 긴 잠을 자기 위해 죽음 앞에서 눈을 감을 때, 이 말보다 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겠다. 

즉, “내 영혼아!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2) 그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생활을 원한다(9절). 

“내가 생존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즉,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여호와 앞에서 행하리로다.

① “여호와 앞에서 행하는 것”은 우리의 큰 의무다. 

그의 현존과 그의 감찰하심 아래서 모든 것을 행하며 그가 거룩한 하나님이심을 시인하는 것, 그를 즐거이 신뢰함으로써 그는 모든 것에 넉넉하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이 우리의 커다란 의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우리는 최대의 기쁨으로 여호와 앞에 행해야 한다.”

② 우리가 산 자의 세계에 있음을 이렇게 숙고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그렇게 행하도록 재촉하며, 결국 거기에 참여하게 한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권능과 인내와 부드러운 자비로 말미암아 산 자의 세계에 남아 있게 되고, 오래 살아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성심껏 행해야 한다. 

“산 자의 세계”는 우리가 감사해야 할 자비의 세계다. 그것은 우리가 이용하고 개선해야 할 행운의 기회의 세계다. 

가나안은 “산 자의 땅”(겔 26:20)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그러한 환상의 계곡에서 던져진 많은 자들이 특별히 여호와께서 저희들 앞에 항상 계시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져내셨다면, 우리는 그 앞에서 행해야만 한다. 새로운 삶은 진정으로 새로운 삶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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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결의(시 116:10-19)

칠십인역과 다른 고대 번역본들은 이 구절들을 앞에 나온 구절들과 구분해, 하나의 독특한 시편으로 삼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일컬어 “순교자의 시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15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윗은 여기에서 세 가지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Ⅰ. 그의 신앙(10절). 

“내가 믿는 고로 말하리라.”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지만, 그를 고백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 자신과 동역자들에게 적용하면서 인용했다(고후 4:13). 

다윗은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와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에 의해 그의 목동의 지팡이를 왕의 홀로 변하게 함으로 그에게 주신 확증을 특별히 믿었다. 그는 이러한 신념으로 많은 고초를 견뎌냈다. 

그러므로 그는 기도로써 말했고(4절), 찬양으로써(12절) 말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그에게 말하기를 원한다. 

또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가 믿었기 때문에 그의 영혼에게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하고 말했다. 

비록 사울이 자기에 대해 분노하고, 다윗은 그로 인해 크게 고난을 겪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고, 그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 근거가 무엇인지를 그의 친구들에게 말했다. 

마음으로 믿는 자들은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격려를 위해 입으로 고백해야 한다(롬 10:10; 행 9:19-20). 

영광의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자들은 자기들을 위해 하늘나라를 값 주고 사신 분께 대한 자기들의 의무를 인정하기를 두려워해서도, 부끄러워해서도 안 된다(마 10:22).

Ⅱ. 그의 두려움(11절).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 그러고 나서 “내가 경겁 중에 이르기를”, 또는 “내가 놀랐을 때에”, 내가 소스라쳤을 때에, 즉 “내가 싸울 때에”(등등으로 해석한다), 사울이 나를 추적할 때에,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그가 관계를 가졌던 모든 자들, 사울 그리고 그의 정신(廷臣)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 했다. 

자기편에 설 것이라 생각했던 친구들은, 궁정에서 그가 수치를 당할 때, 그를 버리고 모른다고 부인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 왕국을 약속했지만 그를 속였던 사무엘을 비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윗이, “내가 어느 날엔가 사울의 손에 망하리라”(삼상 27:1)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사실들을 주목해 보자.

1. 아무리 위대한 성도의 신앙도 완전하지 못하며, 항상 똑같이 강하고 활동적이지는 못하다. 

다윗은 “믿고 말했다”(10절). 그러나 이제는 불신앙을 통해 잘못 말하게 되었다.

2. 우리가 크고 쓰라린 고뇌에 처하게 될 때, 특히 그것이 길어진다면 우리는 지치고 낙담하며, 좋지 못한 결과에 대해서는 절망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견책하는 데에 무자비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우리 자신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39:1-3).

3. 만일 선한 사람들이 잘못 말한다면, 그것은 시험의 갑작스러움으로 인한 저희의 성급함 때문이지, 악한 사람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서”(1:1) “그 형제를 공박하는”(50:19-20) 것과 같이 고의나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다.

4. 우리는 경겁 중에 잘못 말한 것을 회개로써 다시 철회해야 한다(다윗과 같이. 31:22). 그러면 그것은 우리의 짐으로 남아 있지 않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결코 다윗의 성급한 말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크게 고통을 겪고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았고, 또한 그의 팔도 힘있지 못했다. 아니다. 그는 이르기를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낮은 자들이 공허한 것같이, 높은 자들도 거짓말쟁이다.” 그러므로 나의 신뢰는 하나님에게만 있었고, 절망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의미로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과 비교하여 볼 때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롬 3:4). 모든 사람들은 변하기 쉽고 변덕스럽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을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Ⅲ. 그의 감사(12절 등). 

하나님은 그에게 그의 두려움보다 더 좋은 것을 주셨으며, 은혜롭게도 그의 환난으로부터 그를 건져내셨다. 

여기에서 그는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1. 그는 어떤 보답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12절).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여기에서 그는 말한다.

(1)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많은 자비들을 생각한다― “그가 주신 모든 은혜”를 깊이 생각한다. 

이 시편은 어떤 특별한 은혜의 경우에 기록되었다고 생각된다(6-7절). 그러나 그는 아마도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마음에 받고, 이제는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말할 때, 우리는 크게 높여야 하며, 칭송해야 한다.

(2) 그는 그의 감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를 염려하고 고심하는 자로서 말한다.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꼬?” 

그는 그가 받은 것에 대한 적당한 보답으로 어떤 것을 돌려드릴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아야 마땅하며, 그에게 보답을 드릴 수 있다고 자처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그는 감사의 표시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어떤 것을 돌려드리기를 갈망한다. 그는 하나님께 묻는다. “내가 무엇으로 보답하리이까?” 

그는 그것에 대해 제사장에게 묻고, 친구들에게 묻고, 또 자문해, 그의 마음과 교통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택을 받았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우리가 무엇으로 보답할꼬?”

2. 그는 그가 해야 할 보답이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1) 그는 가장 열성적이고 장엄한 자세로 그의 찬양과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심한다(13, 17절).

① “내가 구원의 잔을 들겠나이다. 즉 내가 하나님께 대한 나의 감사의 징표로서 율법에 명시된 전제를 드리겠나이다. 그리고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인해 나의 친구들과 더불어 기뻐하겠나이다.” 

이것은 구원을 기억하면서 마셨기 때문에 “구원의 잔”이라고 불렸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때때로 저희의 사식(私食)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잔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손에 두신 잔이라고 이해한다. 

그것을 “내가 기꺼이 들겠나이다.”

a. “고난의 잔을.” 

많은 유명한 주석가들은 성도들에게 성별된 쓴잔이라고 이해하며, 그리하여 그것이 저희에게 구원의 잔이 된다고 이해한다(빌 1:19). 

“이것이 내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영적인 건강의 매개다. 

다윗의 고난은 그리스도 고난의 모형이었으며, 우리가 그와 연합하면 그의 잔이 실로 구원의 잔이 된다. 

“하나님께서 제게 많은 은택을 주셨기 때문에, 내 손에 주시는 어떤 잔이라 할지라도 나는 거절하지 않겠나이다. 그리고 주의 거룩한 뜻을 영접하겠나이다.” 여기서 다윗은 그의 자손인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나이까?”(요 18:11)

b. “위로의 잔을.”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손으로부터 내게 주신 은혜를 기꺼이 받고, 그 안에서 그의 사랑을 맛보겠나이다.” 

그것은 저 세상에서 나의 유업의 몫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나의 잔의 몫이 되기도 한다.”

② “내가 감사의 희생을 주께 드리겠나이다.” 즉,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감사제물을 드리겠나이다”(레 7:11-12 등). 

마음이 진실로 감사한 자들은 감사제로 저희의 감사한 심정을 표현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롬 12:1; 고후 8:5). 

그러고 나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의 영광을 위해 경건과 자비로 행해야 한다. 

선을 행함과 성전에 참예함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다(히 13:15-16). 그리고 이것은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함을 수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대하게 대하셨다면, 우리는 그 보답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일지라도 가난한 자들에게 관대해야 한다(16:2-3). 

왜 우리는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가?

③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그는 이미 약속했고(2절), 다시 반복한다(13절). 그리고 또다시 되풀이한다(17절). 

우리가 우리와 같은 사람에게서 친절을 받는다면, 다시는 그에게 신세를 지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기도를 그에 대한 영광으로 받아주며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이전의 자비에 대한 감사로써 우리는 그에게서 더 큰 자비를 찾아야 하며, 끊임없이 그를 불러야 한다.

(2) 그는 항상 하나님을 생명의 보호자로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는 자로서, 선하게 생각하기를 즐긴다(15절).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성도의 죽음이 귀중하기 때문에 그의 죽음으로 사울을 기쁘게 하지 않으시며, 압살롬이나 다윗의 적들 중 어떤 자에게라도 저희가 아무리 진지하게 원할지라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다윗이 그의 고통과 위험의 깊은 곳에서도 위로를 받은 사실은 바로 이러한 진리를 보여준다. 

다윗은 그와 같이 위험에 처해 있는 다른 자들을 위로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도 그의 성도요, 그의 자비로운 자요, 자비의 사람들인 백성을 갖는다.

그들은 그로부터 자비를 힘입으며, 그를 위해 자비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성도들은 죽을 운명에 놓여 있고, 죽어가고 있다. 아니, 저희의 죽음을 갈망하는 자들이 있고, 모두 그것을 서두르며, 때로는 그들의 죽음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호와 앞에서 귀중히 여김을 받는다. 

“저희의 생명”도 그러하다(왕하 1:13). “저희의 피”도 그렇게 귀중하다(72:14). 

하나님은 그의 성도들이 죽음에 직면해 있을 때 종종 기적적으로 보호하신다. 

그는 저희의 죽음을 특별히 돌아보시며, 모든 상황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명하신다. 

저희를 죽이는 자는 누구든지, 그들이 아주 가볍게 여기는 자일지라도, 성도들의 피를 흘리게 했다면 그 대가를 크게 치르게 될 것이다(마 23:35). 

“의로운 자들이 멸망할” 때 아무도 마음에 두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두신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죽게 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죽게 한다. 

우리가 죽음에로 이끌림을 받는다면 우리의 죽음은 하늘에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귀중한 것이, 우리에게도 귀중한 것이 될 것이다.

(3) 그는 그가 사는 날까지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을 의무로 여긴다.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는 물음으로 자신을 내어 맡긴다.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입니다”(16절). “번제와 희생제를 더욱 드리겠나이다.”

① 여기에 다윗이 하나님께 대해 공언한 관계가 나타나 있다. 

“나는 주의 종입니다. 나는 그렇게 택함을 받았나이다. 나는 그렇게 되기를 결심했나이다. 나는 주를 예배하면서 살고, 죽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사랑 받는 자들을 “그의 성도”라고 부르셨다. 

그러나 다윗이 자신에게 적용했을 때, 그는 “진실로 나는 주의 성도입니다”(자신에게는 너무 높은 칭호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하지 않고, “나는 주의 종입니다”라고 말했다. 

다윗은 왕이었고, 거기서 영광을 받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종이었다.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왕들도 하늘의 하나님의 종이 됨이 결코 낮아지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영광이 된다.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 가운데서 평범하게 말하듯이, “주님,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하고 말한다. 

아니다.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는 모든 것을 아시며, 주는 나를 아시나이다.”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며, 그렇게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기쁨을 취했다. “나는 주의 종이요, 곧 주의 종이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주인이 원하는 바를 섬기게 할지라. “진실로 나는 주의 종이라.”

② 여기에 그러한 관계의 근거가 있다. 두 가지의 방법으로 인간은 종이 될 수 있다.

a. 출생에 의해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나는 주의 여종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것입니다.” 

하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큰 자비며, 그것은 또 우리에게 위무(慰撫)가 되고, 자비로 인해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하게 된다.

b. 구속에 의해서다. 

포로에게 해방을 가져오는 자는 그 포로를 종으로 삼는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나를 에워싼 죽음의 슬픔을 주께서 멀리 해주셨으며, 나를 구하셨으므로, 나는 주의 종이요, 주의 일을 의무적으로 해야 함은 물론 주의 보호를 받을 자격을 가집니다.” 

“주께서 푸신 바로 그 결박은 나를 주께로 더욱 단단히 매이게 할 것입니다”(패트릭 주교).

(4) 그는 그가 드리고자 맹세했던 감사제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그가 고난에 처해 있을 때 한 다른 모든 약속을 지켰다(14절).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그리고 다시 “내가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지라”(18절). 

다음 사실을 주의 깊게 보자. 

맹세는 갚아야만 할 빚이다. 맹세하지 않는 것이 맹세하고 갚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 다윗은 자기가 맹세한 것을 수행했다.

① 즉시 했다. 

그는 다른 채무자처럼 빚을 갚는 데 더디지 않았고, 기일을 연장해 달라고 애걸하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 그 빚을 갚노라”(전 5:4).

② 공개적으로 했다. 

그는 구석에서 움츠려 찬양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대한 그의 예배는 모든 여호와의 백성 앞에서 행해졌다. 

그의 예배는 겉치레나 과시가 아니었고, 하나님께 예배드림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을, 다른 사람들도 그와 함께 예배에 동참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예배였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운집해 참석하는 초막절의 궁성에서 그의 서원을 갚고자 한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가운데서” 예배를 더욱 큰소리로 진행하고자 했다. 그러면 신앙심이 더 큰 존중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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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ea;(157, 아헤브) 사랑하다 love, 좋아하다 like, 사랑스러운 lovely

동사 아헤브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를 의미하며, 그 의미의 강도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부터 게으른 대식가의 육체적인 식욕에까지 이른다. 이 동사는 칼 어간의 모든 법(mood)과 니팔 분사형, 그리고 피엘 분사형으로 나온다. 16회의 피엘형은 강의적인 것이 아니라 대개 부정한 '연인' lover을 가리킨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00회 이상 나온다.

구약성경에서 사랑은 그 사람을 강요하여 그가 좋게, 또는 올바르게 평가하거나 인정하는 사물이나 사람에게로 이끌어 가는 자발적인 힘이다. 사람은 이 사랑의 힘에 제어를 받아 자기 자신을 주거나 혹은 사랑의 원인이 되는 대상을 확고히 붙잡거나 혹은 즐거움을 주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사랑은 내적 인격에 심은 영혼의 불가해한 힘이다. 사람이 사랑의 대상을 올바로 인정하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한다(신 6:5). 사랑과 미움은 생의 양극이다(전 3:8, 전 9:6). 사랑은 인간 상호간의 사랑, 하나님의 인간과의 사랑, 사물에 대한 사랑 등을 나타낸다.

(a)  이 단어는 남녀의 사랑에 대해 사용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하나님과 관계, 그리고 남녀의 성적 관계를 시사해 준다. 이 남녀의 사랑은 이성(sexes) 상호간의 생명력 넘치는 충동을 의미한다. 선지자 예레미야(렘 2:25)나 호세아(호 3:1, 호 4:18), 그리고 에스겔(겔 16:37)은 사랑의 성적(sexual) 측면을 매우 진하게 묘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단어는 남녀의 연애나 열애(창 29:18이하, 창 34:3, 삿 16:4), 합법적인 부부의 행복한 사랑(창 24:67, 삼상 1:5)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창조의 기사는 성의 구별과 부부간의 사랑이 생을 풍요하게 하는 은사임을 설득력 있게 이해시켜 준다(창 2:18이하).

「그러나 이 사랑은 성적 사랑의 범위를 포함하지만 그것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헌신적 사랑과 생활의 충실함이 합쳐져 있다. 구약의 초기 기록에 의하면 이러한 사랑은 일부다처나 일처다부 사상과 부합하지 않는다. 구약성경은 충실(참조: 창 20:13, 삿 14:16, 삿 16:4-5, 겔 16:8, 겔 23:17, 호 3:1), 상호의존(참조: 창 24:67), 책임(참조: 삼하 13:1, 삼하 13:4, 삼하 13:15)과 같은 인간 사랑의 다른 측면을 제외하고 성적인 것에 집중하는 위험을 이해시켜 준다(The interpertreter's D.B).」

더 나아가서 아가서는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라고 열정적인 사랑의 강력한 힘을 찬양까지 한다. 이 노래는 성적(남녀) 사랑의 기이함과 적극적인 힘을 찬양하지만 그 찬양에는 그 사랑이 근거를 두고 있는 상호의존과 신앙심(헌신)을 강조하고 있다(참조: 아 2:16, 아 3:1-8, 아 7:10, 아 8:6-7). 아가서에서 사랑을 묘사할 때 거의 대부분 아헵(아가파오)과 아하바(아가페)를 사용했다. 그러나 여자가 남자를 부른 칭호는 도드(d/D , 1730, 사랑하는 자)를 사용했다.

이러한 사랑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암논과 다말의 이야기는 성충동의 야수성, 즉 대상자와 성적 관계를 가지려는 무절제한 요구를 보여준다(삼하 13:1-22). 사랑은 성애 또는 성욕적인 영역에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근원, 곧 마귀로부터 기인한 원시적 힘인 미움을 부인함으로 맞서는 적극적인 능력이다. 이 이야기는 이 두 가지 충동의 야수성도 투명하게 보여준다(삼하 13:1-22). 결혼이나 부부 생활은 상대에 대한 사랑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 삼손의 신부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치 아니하는도다"라는 히스테릭한 말에서(삿 14:16, 참조: 삿 16:15, 창 29:31, 창 29:33) 동일한 요소가 표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법까지도 사랑과 미움의 성욕적 증상에 관여하고 있다(신 21:15이하, 신 22:31이하, 신 24:1이하).

아헤브가 '사랑의 행위를 하다'(일반적으로 이것은 야다<알다>나 샤카브<~와 함께 눕다>로 표현된다)라는 뜻을 가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러나 왕상 11:1에서 이 단어는 이러한 부가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참조, 렘 2:25).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바를 기록할 때, 이러한 의미를 사용하였다: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호 3:1). 이 단어의 이런 의미는, 이 동사가 사역동사의 어간(분사로서)으로 나올 때 현저하게 나타난다.

(b)  이 단어는 부모와 자식, 가족간의 사랑에 대해 사용되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사랑했으며(창 22:2), 리브가는 아들 야곱을 사랑했다(창 25:28). 야곱은 요셉과 베냐민을 사랑했다(창 37:3, 창 44:20). 잠언은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경계하느니라"고 했다(잠 13:24).

또한 이 단어는 며느리의 시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같은 가족간의 사랑을 표현한다(룻 4:15).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은 어느 곳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부모를 존중하고 존경하며 또 부모에게 복종해야 한다.

「참고 - 창 47:29에 보면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인애(헤세드: 친절, 자비)란 단어를 사용하여 자기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기를 요청했다. 이것이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족속이나 가족의 유대는 이스라엘에서 매우 강하였다. 그러므로 '근친' 관계의 중요한 요소인 사랑에 대하여 놀랄 일이 아니다. 그것은 룻 3:10에서 이성 곧 남녀 사랑과 관련되어 있다. 그곳에서 인애(헤세드: 친절, 자비)는 남녀 사랑의 개시와 가까운 친족에 대한 충실, 이 둘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가족적 사랑이 너무 선택적일 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창 25:28). 그 결과로 야곱과 에서가 서로 반목하고 미워하게 되었다. 요셉에 대한 야곱의 편애로 인하여 다른 아들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시기하게 되었다(창 37:4). 배타적인 사랑은 증오가 들어올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있다. 이는 사랑이 헌신적일 뿐만 아니라 책임을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c)  아헤브은 때때로 종이 그 주인의 지배하에 남아 있기를 원하는 주인에 대한 특별하고도 강한 애착심을 나타낸다. 출 21:5에 보면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라고 한다. 아마 여기에는 가족애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들이 그의 아버지를 사랑하듯이 종이 그의 주인을 사랑한다(신 15:16). 이러한 의미가 강조되는 구절로는 삼상 16:21이 있는데 여기에는 사울이 다윗을 크게 사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을 사랑하고(삼상 18:16) 심히 존경하게 되어 그의 모든 행동들을 경탄으로 바라보았다.

(d)  이 단어는 친구의 특별한 애착을 나타낸다. 다윗과 요나단 사이의 사랑은(삼상 18:1, 삼상 18:3, 삼상 20:17) 여인의 사랑보다 더 깊은 우정의 차원이었다 -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삼하 1:26).

(e)  아헵은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 부친을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 신복을 솔로몬에게 보내었으니 이는 히람이 평일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왕상 5:1). 다윗에 대한 히람의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국제적인 우호 관계나 화해 정책을 예증하는 것이다. 후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그것이 그가 지극히 충성스러웠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f)  더 나아가 이 사랑은 사회적 공동 생활의 근본과 규범으로 나타난다 -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 19:18). 이러한 면에서 사랑은 이웃을 위한, 그리고 이웃을 향한 헌신이며, 이웃을 형제로서 받아들이는 것이고 이웃이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특히 외국인(레 19:34)과 가난한 자(레 25:35)와 고아의 권리와 관련된 사회적 법률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이웃 사랑은 단순한 친절이나 호의로 해석할 수 없다. 이것은 편협한 배타주의를 배제한다. - 바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웃이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적(enemy)으로 생각되는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도 의미한다.

그 이유로 신 22:1-4이 동포를 도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인 반면, 출 23:4-5은 특별히 이 의무를 적대적인 사람에게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은 동료일 수도 있고 적일 수도 있으므로, 그는 사랑의 대상이지 법적 제한의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개인은 법적 개인보다 우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형태에서 출 23:4이하의 요구와 아마도 한층 더 높은 수준인 잠 25:21에 있는 기본적 진술("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은 원수를 향한 성향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으나 한 특별한 방식의 행위의 의무를 지우는 것으로서, 원수에 대한 사랑을 실천적으로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요셉은 그의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선으로 악을 갚는 그런 실례를 보여준다(창 50:19).

물론 구약성경에는 이러한 원수를 사랑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시 109편과 잠 14:20 및 적대 국가들에게 향한 일반적인 태도는 이에 대한 예증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의해 부과된 윤리적인 요구의 고결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g)  이 단어는 구체적인 것이나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기름(잠 21:17), 은과 풍부(전 5:10), 뇌물(사 1:23)을 사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악(시 52:3-5), 사망(잠 8:3), 허사(시 4:2-3), 거짓 맹세(슥 8:17)를 사랑했다. 또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시 119:47), 율법(시 119:97), 증거(시 119:119), 법(119:159), 그리고 그들은 선(암 5:15), 진실과 화평(슥 8:19), 구원(시 40:16-17)을 사랑했다.

(h)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기를 "사랑하라"고 명하셨다(신 6:5). 그리고 시편에는 이 계명에 대한 순종의 증거들이 포함되어 있다(시 116:1, 시 145:20). 반대로 하나님은 사람들, 특히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신 4:37, 사 43:4, 말 1:2). 주님은 또한 시온의 문들(시 87:2), 정의와 공의(시 33:5), 성전(말 2:11)과 같은 것들을 "사랑하신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한다(수 22:5). 예레미야는 이 백성이 방황하기를 좋아한다고 질책하였다(렘 14:10).

(i)  이 분사형들은 종종 '친구' friend로 변역되곤 한다. 대하 20:7에 보면, 아브라함은 주의 "벗"이라고 한다.

(j)  위에서 지적하였듯이 피엘형 분사를 번역한 영어 단어 "lover" (연인)는 종종 매춘을 암시하는 경멸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다. 선지자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등은 이스라엘의 부정한 관계를 언급하기 위해서 이 단어를 사용한다. 호 2:7, 호 9:12, 겔 16:33, 겔 16:36-37, 렘 22:20, 렘 22:22, 렘 30:14, 애 1:19, 슥 13:6 등). (참조: R. L. Alden; Nelson's ED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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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8085, 샤마) 듣다 hear

샤마(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듣다 hear'를 의미하며, '경청하다 listen to, 순종하다 obey'라는 의미도 지닌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15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필형으로 사용되었다.

샤마는 '듣다'라는 기본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기본적인 의미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확대되는데, 대개 효과적인 들음이나 경청을 포함한다.

① '경청하다' listen to, '주의를 기울이다' pay attention,

② '순종하다' obey('명령'고 같은 단어들과 함께 쓰일 경우),

③ '기도에 응답하다' answer prayer, '듣다' hear,

④ '이해하다' understand,

⑤ '비판적으로 듣다' hear critically, '(법정에서) 조사하다, 심문하다' examine(in court).

파생 어간들은 이런 의미들에서 적합하게 수정된 의미를 지닌다.

샤마의 기본적인 용례는 무수하다(예를 들면 민 12:2에서 여호와께서 미리암과 아론의 불평을 들으셨다). 신 4:12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음성은 들었지만 형체는 보지 못했다. 창 3:8에서 아담과 하와는 동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무엇을 듣는지 하는 것은 종속절에서 표현된다. 창 37:17에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창 14:14에서 "그의 형제가 사로잡혔다는 것을 들었다", 삿 7:11에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샤마는 '귀를 기울이다', '따르다' listen to라는 의미를 지닌다. 창 3:17에서 아담이 아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즉 그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왕상 22:19에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라고 한다. 시 81:11, 잠 12:15에서도 예증된다.

샤마는 이러한 의미에서 점차 변하여 '순종하다' to obey라는 의미를 나타내게 되었다. 그 실례는 출 24:7, 사 42:24, 느 9:16, 렘 35:18에서 볼 수 있다.

삿 13:9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반응한다. 즉 응답한다는 의미에서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신다". 비슷한 용법이 겔 8:18, 시 4:1에서 발견되는데,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라는 표현은 "내가 부를 때에(내게) 응답하소서"라는 말과 병행된다. 또한 시 34:17에서도 발견된다.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기도의 응답과 관련하여 하나님은 렘 11:10-11에서 매우 중요하고 진지한 원리를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환난 날에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찌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신다(응답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그들은 알게될 것이다. 미 7:7은 의인의 확신을 표현한다. 즉 하나님의 음성에 스스로 귀기울이는 자는 하나님께서도 그의 기도를 진실로 들으시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보다 더 고무적인 강한 말씀이 시 94:9에 나온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않으시겠느냐?".

효과적으로 듣는다는 말은 '이해한다'는 개념도 역시 포함한다. 예컨대 창 11:7에 의하면 바벨탑 사건에서 언어가 혼란된 이후에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 "들을"(즉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J. E. Hartley)(참조: BDB; Gesenius; TW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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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30]]거룩한 향기름(관유)...성령의 기름부음/바름...제사장직무담당자들 모두, 회막과 증거궤, 떡산-등잔대-분향단-번제단물두멍과 그 받침대 등 모든 기구에 바름.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너는 상등 향품을 가지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오십 세겔과
24.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로 하고 감람 기름 한 힌을 가지고
25.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26.  너는 그것을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27.  상과 그 모든 기구이며 등잔대와 그 기구이며 분향단과
28.  및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29.  그것들을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라 이것에 접촉하는 것은 모두 거룩하리라
30.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
31.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내게 거룩한 관유니
32.  사람의 몸에 붓지 말며 이 방법대로 이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 이는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히 여기라
33.  이와 같은 것을 만드는 모든 자와 이것을 타인에게 붓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하라
=거룩한 향...대제사장의 중보기도를 의미, 분향단에서만 사르며, 방울소리나는 성의를 입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 따로 화로에 담아 들어가고 그 연기가 피어나 가려져야 함
3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가져다가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같은 분량으로 하고
35.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36.  그 향 얼마를 곱게 찧어 내가 너와 만날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하니라
37.  네가 여호와를 위하여 만들 향은 거룩한 것이니 너희를 위하여는 그 방법대로 만들지 말라
38.  냄새를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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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Moreover the LORD spake unto Moses, saying,
23.  Take thou also unto thee principal spices, of pure myrrh five hundred shekels, and of sweet cinnamon half so much, even two hundred and fifty shekels, and of sweet calamus two hundred and fifty shekels,
24.  And of cassia five hundred shekels, after the shekel of the sanctuary, and of oil olive an hin:
25.  And thou shalt make it an oil of holy ointment, an ointment compound after the art of the apothecary: it shall be an holy anointing oil.
26.  And thou shalt anoint the tabernacle of the congregation therewith, and the ark of the testimony,
27.  And the table and all his vessels, and the candlestick and his vessels, and the altar of incense,
28.  And the altar of burnt offering with all his vessels, and the laver and his foot.
29.  And thou shalt sanctify them, that they may be most holy: whatsoever toucheth them shall be holy.
30.  And thou shalt anoint Aaron and his sons, and consecrate them, that they may minister unto me in the priest's office.
31.  And thou shalt speak unto the children of Israel, saying, This shall be an holy anointing oil unto me throughout your generations.
32.  Upon man's flesh shall it not be poured, neither shall ye make any other like it, after the composition of it: it is holy, and it shall be holy unto you.
33.  Whosoever compoundeth any like it, or whosoever putteth any of it upon a stranger, shall even be cut off from his people.
34.  And the LORD said unto Moses, Take unto thee sweet spices, stacte, and onycha, and galbanum; these sweet spices with pure frankincense: of each shall there be a like weight:
35.  And thou shalt make it a perfume, a confection after the art of the apothecary, tempered together, pure and holy:
36.  And thou shalt beat some of it very small, and put of it before the testimony in the tabernacle of the congregation, where I will meet with thee: it shall be unto you most holy.
37.  And as for the perfume which thou shalt make, ye shall not make to yourselves according to the composition thereof: it shall be unto thee holy for the LORD.
38.  Whosoever shall make like unto that, to smell thereto, shall even be cut off from his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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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유.[거룩하게, 주께 합당한 영광 돌림]..몰약(JC의 대속적 죽음) --육계(죽으심의 효능 증강/강심제=담대)--창포(JC부활생명=돌파)--계피(부활의 효능 증강/방충..뱀제거 =넉넉히 이김)==>+감람유((HS) =관유=그영(JC안에서 모든 과정 거치신 복합적인 영)...체험된 JC =감람유 산출(참생명의 연합안에서 JC를 사는 것,) + 포도주 산출(JC를 위해/영적 후사 산출위해 고난/죽음에 넘겨짐을 기뻐함)
@분향단의 향..[주로 기억나시게 함]..소합향(식물생명...눈물방울)--나감향(동물생명..일종의 조개껍질로 이루어져 바스라질 때 발향)-풍자향(새생명의 풍성-비옥함...번성번영,창대) --유향(보스웰리아...중보-치유/방충/뱀제거, 해독)--소금(영원불변)
===========사62:4, 욥42 : 14, 15

===안분지족.감사.시23=====
confidence(confide :con.함께.완전한/완전히 + fid믿음, 신뢰)절대신뢰-의지-교통하다...절대긍정/절대기쁨이신 주님을 절대 신뢰하며, 끝까지 추구하여 발견/체득하는 믿음[확신], confidence...fidelity는 충성과 신실) / 
communion(성찬 참여..참생명 충만한 그리스도의 몸안에서, 상호간 참생명 그리스도를 빼어닮고 누리며 공급하는 상호지체됨, 사랑과 섬김 실행으로 한 몸됨) / ...communion : [영적] 상호나눔교감[성찬].....공동체community는 라틴어 'cum'과 'munus(또는 munere)'가 어원 ::. 'cum'은 '함께(together), 서로 간에(among each other)', 'munus'는 '선물(gift)', 'munere'는 '준다(to give)'를 의미. 즉 공동체(community)는 '서로 간에 주는 것'이 그 기반으로, '서로간에 선물 주는 이를 존중하고 그들의 선물이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보답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사는' 인간집단 ..무엇을 줄 것인가..[살아낸 그리스도가 가장 귀중하다!!]
complacency (com[cum..함께 완전한/완전히] +plac [calm, place, please...고요, 안정/진정, 기쁨누림] = pleasant ...  말씀 그대로 참믿음을 발휘하여 깨닫고 체득하여 확신함의 신뢰 통해 자신의 모든 영광을 내어 주사 친히 섬겨주시는 그리스도의 평강 깨닫고 감사함..상호거처-상호소유/상호기업(주종, 백성, 자녀, 연인/신랑신부, 친구, 형제자매, 내외지간/남편과 아내)-상호친밀/상호기쁨/상호누림됨..지고지선의 진복 누림, 바로 그 모든 예비-공급-인도-양육-보호-보전-성장성숙-영적후사 산출의 원천이 주님과 함께 하나되어 걸으며 뜻하신 바대로 주님 섬기며, 또한 바로 그렇게 맡겨주신 영혼들 섬기며 주님을 공급하기에, 중생한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고 족함을 알며 실행한다...추구하는 바 주님을 끝까지 알고 사랑하며 섬기며 누리며 반사반영공급할 바, 참생명 주님이면 충분합니다...안분지족 =안정되고 고요한 마음으로 분수(주께서 맡기신 소명/직분과 사명새로 주어진 인생의 가치-의미-목적-보람을 알고 결단한 바 순전순수한 동기와 지향을 지키며, 절제와 근신가운데 주님께 합당한 영광돌림)과 (그리스도의 평강의) 구체적 인도하심따라 살며 그 모든 것에 감사함 = Happiness is answering your ca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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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본질적 참된 생명을 사는 참사람으로 삶을 의미..곧 주안에서 참생명 호흡(HS생기)로 살 때 산 목숨이요 참 영혼됨이니].
....죄성-세상-사탄의 기망따라 오해와 착각가운데 머물러 있는 불쌍한 이들을 찾아 주소서.
....육적 구원--->영적구원에로 선순환의 전환이 임해야 함...
....[고민하게 되는 상황을 주사 생명 없음을 깨닫고, 갈망하며 구원의 그 길 찾는 가운데서 권고하시는 주님 메세지를 듣고 돌이키는 때가 주어졌을 때 각자가 참되게 주님 믿고 주께로 돌이킴이 임하기를]..
...주님 위해 친히 일하소서.., 주님으로부터 (주님 위해, 주님자신을, 주님에 의해), 주님께로 온전한 영광 돌림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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