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약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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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3장  [312.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달고오요한 그 말씀] [288.예수를 내가 주로 믿어] [425.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하라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위로부터 난 지혜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섞인 것 없이 순수하며 동시에 점흠티주름없이 고결함 = 오직 중생한자의 보혈로 씻김안에서 성령과 동행함...하나님께 합당함 :: 하나님을 주되시게 함) 다음에 화평하고(화목-화평 추구, 평화를 사랑하며 지향하는) 관용하고(너그러움-온유-예의바른/정중한/신사적인-용서/용납-기다려줌-이해하고 품어주는) 양순하며(합리적-배우기를잘하는/경청하는)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치우침-편당)과 거짓(교묘/간교/교활-위선/위장)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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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3  Amplified Bible

===The Tongue Is a Fire

1 Not many [of you] should become teachers [serving in an official teaching capacity], my brothers and sisters, for you know that we [who are teachers] will [a]be judged by a higher standard [because we have assumed greater accountability and more condemnation if we teach incorrectly]. 

2 For we all stumble and sin in many ways. If anyone does not stumble in what he says [never saying the wrong thing], he is a perfect man [fully developed in character, without serious flaws], able to bridle his whole body and rein in his entire nature [taming his human faults and weaknesses]. 

3 Now if we put bits into the horses’ mouths to make them obey us, we guide their whole body as well. 

4 And look at the ships. Even though they are so large and are driven by strong winds, they are still directed by a very small rudder wherever the impulse of the helmsman determines. 

5 In the same sense, the tongue is a small part of the body, and yet it boasts of great things. See [by comparison] how great a forest is set on fire by a small spark! 

6 And the tongue is [in a sense] a fire, the very world of injustice and unrighteousness; the tongue is set among our members as that which contaminates the entire body, and sets on fire the course of our life [the cycle of man’s existence], and is itself set on fire by [b]hell (Gehenna). 

7 For every species of beasts and birds, of reptiles and sea creatures, is tamed and has been tamed by the human race. 

8 But no one can tame the human tongue; it is a restless evil [undisciplined, unstable], full of deadly poison. 

9 With it we bless our Lord and Father, and with it we curse men, who have been made in the likeness of God. 

10 Out of the same mouth come both blessing and cursing. These things, my brothers, should not be this way [for we have a moral obligation to speak in a manner that reflects our fear of God and profound respect for His precepts]. 

11 Does a spring send out from the same opening both [c]fresh and bitter water? 

12 Can a fig tree, my brothers, produce olives, or a grapevine produce figs? Nor can salt water produce [d]fresh.

===Wisdom from Above

13 Who among you is wise and intelligent? Let him by his good conduct show his [good] deeds with the gentleness and humility of true wisdom. 

14 But if you have bitter jealousy and selfish ambition in your hearts, do not be arrogant, and [as a result] be in defiance of the truth. 

15 This [superficial] wisdom is not that which comes down from above, but is earthly (secular), natural (unspiritual), even demonic. 

16 For where jealousy and selfish ambition exist, there is disorder [unrest, rebellion] and every evil thing and morally degrading practice. 

17 But the wisdom from above is first pure [morally and spiritually undefiled], then peace-loving [courteous, considerate], gentle, reasonable [and willing to listen], full of compassion and good fruits. It is unwavering, without [self-righteous] hypocrisy [and self-serving guile]. 

18 And the seed whose fruit is righteousness (spiritual maturity) is sown in peace by those who make peace [by actively encouraging goodwill between individuals].

===Footnotes

James 3:1 Lit receive greater judgment.

James 3:6 See note Matt 5:22.

James 3:11 Lit sweet. 

James 3:12 Lit s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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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3장 (개요)

이 장에서 야고보는 야심과 거만하고 오만불손한 혀에 대하여 책망하면서, 혀가 저지를 수 있는 악 영향의 위험성을 고려함으로써 혀를 제어할 의무와 그 유익함을 보여 준다.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은 특히 그들의 혀를 다스려야만 한다(1-2). 

참된 지혜는 인간을 온유하게 하며 분쟁과 시기를 피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 참 지혜는 세상적이고 위선적인 지혜로부터 쉽게 구별된다(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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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다스리기(약 3:1-12)

전 장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 얼마나 무익하며 쓸모 없이 죽은 믿음인가를 보여 주었다.  

그러한 믿음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들의 성품과 말에 있어서 잘난 체하며 거만하게 만들기가 쉽다는 것이 3장에서 분명하게 연관되어 기록되어 있다.  

2장에서 정죄되고 있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본 장이 비난하는 혀의 죄를 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혀를 사용하는 최선의 방법이 혀를 함부로 사용하여 남을 명령하고 비난하여,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에 대한 경계로써 요구된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들을 배우게 된다.

Ⅰ. 우리의 혀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않도록 하라.  

"내 형제들아,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1절).  

이 말씀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자매요 지체된 이들이 지켜야 할 마땅한 태도와 의무에 대하여 [오직 말씀과 성령따라 분별하며] 지시하고 가르치거나 잘못된 그리스도인의 길을 갈 때에 그들을 [긍휼의 눈물과 기도로 중보하며] 책망하고 권고하는 것조차 금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 말씀은 항상 스스로 앞다퉈 지휘자의 위치에 서려고 하는 사람들과 같이 [마치 스스로 최종 권위자 인 듯,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기나 하는 것처럼 교만하게 강압적으로]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즐겨해서는 안 되며, 또한 자신의 판단을 다른 모든 사람들이 기준으로 삼아 행동하도록 명령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각각 부르심에 합당한, 각각의 데스티니로 주님과 교회를 섬기도록] 각기 다양한 은사를 주셨으며, 그들이 받은 바 지혜에 따라 [각자 일절 오래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과 신실,  온유와 겸손, 절제의 섬김이로서, 다만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잘 배우며 지도 받고 균형-조화-협력하여 그리스도의 몸 세우기 위해] 합당하게 행동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는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였다.  

즉, "너 자신이 선생과 권세가와 재판관과 같은 거만한 자세를 지니지 말고 다만 배우는 자로서의 겸손과 [근신과 절제의 명료함안에서 잘 배우려는 탄력성과 부드럽고 열려진 축복의 통로로 상대방을 포용하는 깨어 있는] 정신으로써 말하라.  [오직 그리스도만이 참된 분별과 사려깊음의 기준이시기에] 마치 다른 모든 사람들이 너의 기준으로 판단 받아야 하는 것처럼 서로 비난하지 말라."  

이것은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강조되었다.

1.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남을 비난하고 재판하는 자로 나선 자는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 우리 자신은 그 보다 더 엄격하고 혹독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마 7:1, 2).  

다른 사람의 잘못을 몰래 염탐하는 것을 즐겨하고 오만한 태도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말하고 행한 잘못들을 극도의 노하심으로 기록해 두실 것이다.

2. 선생으로 행동하지 말라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2절),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잘못과 범죄에 대하여 좀더 깊이 생각한다면, 한결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남에게서 잘못을 찾아내려는 심한 충동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남을 향한 범죄 의식을 깨닫지 못한다.  

스스로의 의롭다 여기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자들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다른 사람의 약함과 허약성에 대하여 헛되이 떠드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내적으로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거의 생각지 못한다.  

아니, 아마도 그들의 거만한 태도와 비난하는 혀가 그들이 비난하는 다른 사람들 속의 잘못보다 더욱 나쁜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을 판단할 때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는 [상대방의 전후사정을 다 알지 못하기에 항상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그 처지를 이해하고 들어주려는 부드럽고 온화함으로, 서로가 주님앞에서 사랑받는 자임을 자각함안에서] 자비롭게 대하는 태도를 배우자.

Ⅱ.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혀를 제어함으로 우리 자신이 완전하고 올바른 사람으로 판명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몸 전체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2절).  

여기서 암시하는 바, 양심에 혀로 저지르는 죄의 유혹을 받을 때[그 어떤 일에서든지, 지금 공공의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의 개인의 처지나 사정을 먼저 친히 듣고 살펴 헤아려 보려 하지도 않고 그냥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서 세상적으로 쉽게 단정짓고 결론내며 동조하기를 서두르고자 하는 옛자아에 속한 마음의 급한 격정/충동-악독/투기/저주-오만/무례-냉담/이기심의 교만을 느낄 때, 영안에서 주 이름 부르며 십자가와 부활로 모든 이들을 살리신 그리스도의 친절-자비/긍휼-온유-겸손을 떠 올림으로써]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고결한 사람이며, 그것이 바로 참된 은혜를 받았다는 분명한 표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만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1장에서 언급했듯이)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면, 그의 신앙 고백과 경건은 헛 것이다(1:26).    

더욱이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성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증명될 뿐만 아니라 한층 진보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도 판명된다.  

따라서 한 사람의 혀를 다스릴 수 있는 은혜와 지혜는 그 사람의 모든 행동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비교함으로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

1.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며 이끌 수 있는 것은 그 입에 재갈을 먹임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먼저 주께 잘 듣기를 배우고 그 들은 바대로 실천궁행하라!!]]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먹여 온 몸을 의거하며"(3절) 

우리의 마음 가운데는 짐승과 같은 맹렬함과 방약무인한 요소가 다분히 많다.  이런 요소는 거의 대부분이 혀에 의하여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혀를 재갈먹여야만 한다.  이 필요성에 대하여서는 시편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가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시 39:1).  

우리의 혀가 재빠르며 활동적이면 일수록 더욱 더 그것을 다스리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통제되지 아니하면, 마치 의거하지 못하고 다스리기 힘든 말이 주인을 태운 채 달아나거나, 주인을 내동댕이치듯이, 다스려지지 못한 혀도 그러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다스려지는 마음을 따라서 일편단심 주와 동거함안에서 깨어 살피고자 하는 각오와 경계심으로 혀를 제어하게 하면, 우리 몸이 행하는 모든 몸짓과 행동이 쉽게 인도하며 다스려질 것이다.

2. 키를 바르게 조종함으로 배를 조종할 수 있다.  

[[마음의 지향이 일편단심 주바라기,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 일심으로 향하여 붙어있음으로써 생명 공급받기를 유지하라..내안의 그리스도께서 듣고계심을 인식하라..그분께 여쭈라...그후에 성령안에서 발언하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4,5절).  

키가 배의 작은 부분인 것과 같이 혀도 우리 몸에서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키를 올바르게 조종할 때 그 배가 운전하는 사람의 뜻대로 움직여 나아가는 것과 같이, 대개의 경우에 혀를 바로 사용함으로써 한 인간이 전체적으로 다스려지는 것이다.  

이러한 비교에는 작은 것들이 거대하게 사용되는 것을 보여 주는 경이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혀의 바른 사용에 대하여 더욱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혀가 작은 지체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대단히 큰 유익을 가져다 주거나 아니면 크나큰 해를 입힐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Ⅲ. 우리는 다스려지지 않은 혀를 가장 크고 치명적인 악으로써 [코람데오..주께 합당히 행함의 주 임재의식안에서]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것을 배운다.  

많은 가연성 물질 가운데 있는 적은 불꽃이 순식간에 큰 화염으로 변하여 마침내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것과 같이, 혀는 작은 불꽃에 비교되었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5,6절).  

혀에는 그것이 불의의 세계라고 불릴 만큼 많은 죄가 포함되어 있다.  

혀가 저지르는 더러운 죄악이 얼마나 많은가! 혀가 일으키는 불길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것인가!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6절).  

여기서 혀가 일으키는 죄 가운데는 크나큰 공해와 불결이 있음을 명심하라.  

더러운 정욕이 [제어되지 앟은 채 마음안으로부터]불타오르고 [이윽고] 남에게까지 악영향과 피해를 끼치는 바, 마음속에 이 정욕이 솟아오르는 것은 모두 이 제어되지 못한 혀로 인하여 되어지는 것들이고, 온 몸이 죄에 빠져 범죄케 되는 것도 바로 이 혀 때문인 것이다.((추함과 타락, 더러움의 악순환의 주범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말하기를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전 5:6)고 하였다.  

인간들이 자기의 혀로 인하여 걸려들게 되는 덫은 스스로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며 타인들에게는 파괴적인 것이다.  

혀가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6절).  

인간과 그 사회의 일은 자주 혼란에 빠지며, 모든 것이 불꽃과 같이 격렬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 대부분이 인간의 혀가 원인이 되는 수가 많다.  

어떤 주석자는 위의 구절을 "우리의 모든 세대가 혀로 인하여 불살라진다"라고도 해석한다.  

이러한 예가 적용되지 않는 시대나 삶의 정황, 그리고 개인 또는 집단이란 없다.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6절).  

지옥은 인간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혀에 불을 더해 준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인간의 혀가 격분되어 불타오르는 것은 악마의 유혹으로부터 시작되며, 결국 악마적 계획에 종사하게 된다.  

악마는 거짓말쟁이 이며, 살인자이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라고 분명하게 불리운다.  인간의 혀가 이러한 일에 사용될 때는 언제나 지옥의 불로 타오르게 된다.  

성령이 불의 혀와 같이 갈라진 형태로 내려온 적이 한번 있었다(행 2장).  그때에 혀는 하늘로부터 임해 있었다(행 2장).  

그때에 혀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에 의하여 말해져서 선한 마음과 거룩한 감동, 그리고 뜨거운 헌신을 불일 듯하게 했다.  

그러나 인간의 혀가 지옥 불로 뜨거워졌을 때에는 적당한 열이 가해지지 않았을 경우처럼  해로울 뿐이며 분노와 미움만을 일으키고 사탄의 계획에 종사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므로 불꽃과 화염을 두려워하듯이, 말다툼과 욕설과 중상모략과 거짓말, 그리고 그 밖의 영혼이나 다른 사람의 영혼에 진노의 불을 타오르게 하는 모든 일을 두려워해야 한다.

Ⅳ. 그러나 다음으로 우리가 배우는 것은 혀를 다스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이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나"(7,8절),  

야고보가 말한 것은 마치 다음과 같다.  사자들과 야수들과 가장 힘센 동물들도 말과 낙타처럼 길들여져서 인간이 다스리고,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공중의 날아다니며 야생적이고 겁많은 새들도 인간에 의하여 다스려지며, 독을 지니고 교활한 뱀도 인간과 친밀해지고 무해할 뿐만 아니라, 바다 속에 있는 생물까지도 인간에게 이용되고 필요한 것이 되었다. 

이러한 피조물들은 기적에 의하여서만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것은 아니고(사자가 다니엘을 삼켜버리기는커녕 그저 웅크리고 앉아만 있었고, 까마귀가 엘리야에게 음식을 날라다 주었으며, 고래가 깊은 바다 속에서 요나를 건져내어 마른땅에 데려다 준 기적들처럼),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되어질 수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써 사람이 길들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혀는 그러한 동물들보다도 더욱 길들이기 힘들며, 이런 동물들을 길들이는 기술과 능력으로는 결코 길들일 수가 없다.  

"혀를 길들일 수 있는 것은 초자연적인 은혜와 도움뿐이다."  

야고보가 여기서 의도하는 바는 그 일이 아주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며, 따라서 혀를 질서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경계와 수고와 기도가 요구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때때로 이 모든 수고가 그래도 부족하여 수포로 돌아갈 때가 있다.  왜냐하면 혀는,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8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서운 짐승이라 할지라도 다스리며 훈련시킬 방법이 있는 바, 어떤 우리 안에 가두어 둘 수 있고 어떤 훈련법으로 다스릴 수 있으며, 심지어 뱀까지도 그들의 모든 독에도 불구하고 해롭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혀는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마음 지킴=마음 다스리기를 게을리 하면] 그 울타리와 규칙을 파괴하고 때때로 독을 뱉어내기 쉽다.  

그러므로 혀에 대해서는 야수나 또는 해롭고 독을 지닌 생물들처럼 다스려지고 경계될 뿐만 아니라 그 해롭기 이를 데 없는 피해의 발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좀더 강력하고 세심한 주의와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Ⅴ. 우리는 신앙 생활과 하나님께 대한 예배에서 우리의 혀를 사용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도록 가르침을 받는데, 이것은 우리가 그러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서 우리의 혀를 남을 욕하고 비난하며 그밖에 악을 행하는 일에 사용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9,10절).  

자기의 혀를 기도와 찬송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또한 그 혀를 저주와 비난과 같이 악한 일에 사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만약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선한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말을 한 혀가 또한 자기의 동료 인간들을 욕하는 언쟁적인 말을 한다는 것은 커다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들은 남을 욕되게 하는 비난을 감히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본래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로이 지음 받은 인간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들 자신과 그들이 위대한 원천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체하는 태도와의 사이에는 가장 부끄러운 대조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10절)는 말씀대로 만일 이런 생각이 항상 가까이에 있다면 설마 그같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경건에 아가페적 사랑[성령의 열매로 완전충만가득하신 그리스도의, 대속하사 부활하시면서 자기의 영광의 모든 것과 함께 성령을 보내셔서 친히 도와주심으로써 당신의 영광의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아가페적 사랑!!]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경건은 그 나타내는 모든 일 중에서 치욕을 당하게 된다.  

이 같은 사람의 혀는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그에게 찬양을 돌리는 척하는 자신을 변호하면서, 동시에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기처럼 말하고 표현을 나타내지 않을 때에는 그 사람을 정죄하는 자신을 또한 변호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러한 생각을 확고하게 하기 위하여 야고보는 동일한 원인에서 상반되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 근본이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이는 덕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11,12절).  참된 경건은 부정을 받아들일 수 없고, 참으로 경건한 사람은 자기의 말과 행동에서 이같은 자가당착을 허용할 수 없을 것이다.  

경건은 진실로 이러한 죄를 방지하며, 믿음과 행실의 상호 모순 가운데 빠진 인간을 다시 회복시켜 항상 자기 자신과 일치한 삶을 살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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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 온 지혜(약 3:13-18)

이미 전 구절에서 정죄한 죄들이 남보다 더 현명한 체하며 자기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 더 총명한 듯이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야고보 사도는 이 구절에서 스스로 지혜 있는 자인 체하는 사람과 진실로 현명한 사람 사이의 차이를 보여 주며, 또한 아래에서(이 세상과 지옥) 생겨진 지혜와 위에서부터 온 지혜의 차이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Ⅰ. 우리는 그 특이한 표식과 열매로써 참 지혜를 분간해 낼 수도 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13절).  

참된 지혜가 있는 사람은 사물을 올바로 인식하는 사람이다.  

그는 충분한 지식을 지니지 않은 채 현명하다는 평을 결코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또한 그 지식을 올바르게 적용하며 사용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단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을 가치 있게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참 지혜의 진위를 결정하는데 꼭 같이 필요한 요소이다.  

(먼저 최선을 다해서 드러난 사실에 대한 객관적 자료들을 모으고, 친히 그 자료들을 객관적으로 잘 살펴보고 취합하여 신중하게 그 모든 가능성들을 사려분별 깊게 검토한 후 주께 아뢰고, 이제 상대방의 사정-형편-처지를 친히 잘 경청한 후에 살펴본 자료들과 어떤 차이가 있거나 불일치가 있는지를 주 임재앞에서 점검한 후에 주께서 일깨워 주시는 판단을 따라 가되, 항상 사람이란 불완전 하다는 것을 잊지않고 공공앞에서도 주 앞에서 성령따라 분별의 말을 내며, 진실로 양심에 그 어떤 미심쩍거나 거리낌없이 공정과 자비로 처리함을 최선의 가치로 여김으로써 행한 후에라야 비로소 마음을 놓는다!!)    

누가 지혜로우며, 또한 지식을 부여받았는가? 다행히도 이 두 가지가 더 구비되어 있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함께 있을 것이다.

1. 선행.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지혜롭다면, 우리의 행실에서 거칠고 허탄함이 보이지 않고, 선함이 보임으로써 그 지혜가 증명되어야 한다!

(오직 참생명의 부드럽고 온화함, 거리낌 없는 탄력적인 친절과 자비, 긍휼, 새로운 출발과 돌파-격려-위로-세움-잔잔한 주님의 기쁨이 뒤따라 올 것!!)   

남에게 알려 주며 화해시키고, 선을 행하는 말들을 지혜의 표지가 되고,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나 또는 다른 사람의 경우에 있어서 위대하게 보이면서 해독을 끼치며, 악의 기회가 되는 말들은 지혜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다.

2. 참된 지혜는 그 행하는 일로써 알려진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행"의 의미는 단순히 말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참된 생명의 유익을 지향함]]의 전 인격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선행으로 네 하는 일을 나타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참된 지혜는 선한 개념이나 환상속에 남아 있지 않고, 오히려 [반드시!!]선하고 유익한 [새롭게, 돌파케 하는, 참생명을 공급하는]행위로 나타난다.  

만일 [오직 말씀과 성령따라 보혈의 새롭게 하심과 하나님의 어떠하심의 패러다임으로 사는 참 신자, 거듭난 자의 자연스럽운 행보와 태도의 특징은 주님의 선하심따라 온유-겸손-기쁨-감사로 순복하며 동행함인 바]선하게 행동하며 선하게 살지 않는다면 그가 아무리 깊이 생각하고 훌륭한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는 성서가 의미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다.

3. 참된 지혜는 영혼과 성격이 온유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13절).  

우리들 자신의 진노를 조심스럽게 재갈먹이며, 다른 사람의 노함을 끈기 있게 참고 견디는 것은 지혜가 있음의 훌륭한 증거가 된다.  

또한 지혜는 온유함으로 자신을 증명하듯이, 온유함은 지혜의 둘도 없는 벗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격정이야말로 우리가 지혜롭게 행동하는데 필요한 공정한 사고력과 엄격한 판단, 그리고 올바른 이해를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온유하고 마음이 고요할 때 사건의 이유에 대해서 가장 잘 들을 수 있고, 또 그에 대하여 가장 적절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는 온유함을 낳고, 온유함을 지혜를 더해 준다.

Ⅱ. 우리는 여기에 언급된 것에 상반되는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스스로를 자랑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들의 지혜는 그들의 자만함과 행실에서 그 성격이 밝혀진다.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14절).  

사랑과 화평케 하는 생활을 그만두고 시기와 다툼으로 일삼는다면, 이것이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겉으로 현명한체 행세하는 자랑을 즉시 중단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만일 네게 진리와 정통적인 것에 대한 열심히 있으며 남보다 더 많은 지식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길지라도 이것들을 남을 미워하는데 사용하거나 네 마음을 원한으로 불타오르게 하는데 사용한다면, 이는 너의 기독자로서의 신앙 고백에 부끄러움이 되며, 기독교에 정반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를 거슬려 거짓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을 유의해 보자.

1. 시기와 다툼은 지혜의 온유함에 반대된다.  

우리 마음은 지혜의 온유함 또는 시기와 다툼, 이 두 가지가 다 거처할 수 있는 진리의 샘이다. 그러나 시기와 지혜가 한 마음속에 동시에 함께 거하지 못한다.  

거룩한 열심과 격심한 질투는 천사들의 거룩한 화염과 지옥의 불길이 서로 다른 것과 같이 상이한 것이다.

2. 시기와 다툼에도 순서가 있다.  

시기심이 먼저 발생하고 이것이 다툼을 일으킨다.  다툼은 헛된 자랑과 거짓말로 자신을 변명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로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뒤따라 일어나게 된다(16절).  

악함과 시기와 자만과 혼란 가운데 사는 사람은 모든 악한 일을 행하도록 자극 받고 서두르게 되기 쉽다.  

그러한 무질서는 많은 유혹을 일으키며, 그 유혹을 점점 더 거세게 만들어서 마침내는 인간들로 하여금 대단히 많은 죄를 짓게 한다.  

하나의 죄는 또다른 죄를 낳으며, 그 악영향이 얼마나 클 것인가는 결코 상상할 수 없으며 많은 죄악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지혜를 자랑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의 가르침이 거짓이라고 비난하며 이 거짓 지혜가 정직한 지혜인 체 속이지 않고서야 이 지혜가 자랑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을 명심해야 한다.

3. 이런 지혜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시기와 다툼<악독-자만-혼란/무질서가 뒤따름>,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이 땅에서 생겨난 것으로써 더 분명히 말한다면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것이다(15절)" 

그것은 이 세상적인 원칙에서 생겨나서 세상적인 동기에 따라 행동하고, 세상적인 목적에 사용되기 위한 것이다.  

이 지혜는 정욕적이고 육의 쾌락을 도모하며 육신의 번뇌와 욕망을 성취시키려고 준비한다.  

또한 [정욕적..프쉬키코스]의 뜻으로 쓰인 원어인 ‘프쉬키케’(5591)라는 단어의 뜻은 영적인 것에 반대되는 의미에서의 동물 또는 인간으로서 어떤 초자연적인 빛의 도움이 없는, 전적으로 본성의 욕구에 이끌려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분명히 악마적인 것으로써 이 지혜는 마귀의 지혜이며(불만을 조성하고 해를 입히며), 마귀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마귀의 꾀임은 교만이며(딤전 3:6),  성서의 다른 부분들을 이 마귀가 내뿜는 분노와 형제에 대한 비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악한 지혜를 갖춘 사람은 마귀가 받을 심판을 함께 받아야 한다.

Ⅲ. 우리는 이 땅에서 생겨난 마귀의 지혜와 반대되며, 하늘로부터 내려온 충만한 지혜의 아름다운 모습을 여기서 읽을 수 있다.  

즉,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17절) 

참된 지혜는 오직 하나님의 은사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지혜는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인간과 더불어 사귀는 가운데 얻거나 세상 지식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위로부터 오는 것이다. 

이 지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구성된다.

1. 이 지혜는 첫째, 성결하다.

그 가치를 떨어뜨리게 될 다른 교훈이나 목적, 명옥들과 뒤섞이지 않고 [의도면에서 그 어떤 혼합됨 없이]진실로 순전하다는 의미로서 성결하며, 또한 [죄된 추악함이 하나도 없다는 의미에서] 불의와 더러움과 상관이 없고 죄라고 알려진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지혜는 오직 마음과 생활에 거룩함을 간직하기를 바랄 뿐이다.

2. 하늘로부터 오는 이 지혜는 둘째, 화평하다.  [[화목과 평화를 만들며, peace-making, 그것을 유지-보존-회복케 함으로써]]

평화는 성결함의 뒤를 따르며 성결함에 의존한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평화 보존의 일을 하므로 평화가 결코 깨어지지 않으며, 또한 그들은 평화를 이룩하는 일을 하므로 평화가 상실된 곳에 평화가 다시 회복되게 된다.  국가와 가정과 교회와 모든 사회안에, 그리고 모든 회담과 계약에서, 하늘로부터 온 지혜는 인간을 화평케 만든다.

3. 위로부터 이 지혜는 세째, 관용하다. 

관대하여서 재산 문제에서 과격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며, 거친 말과 행동으로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우리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에 대하여 그 의로움에 있어서나 중요성을 무시한채 무조건 자신의 의견만을 맹렬히 주장하지 않는다.  

또한 타인과 대화할 때 무례하거나 오만하지 않고, 또 성격이 거칠거나 무정하지 않다.  이와 같이 관용함은 이 모든 것에 반대된다.((늘 예의바르고 존중해 주며오유-겸손-친절함을 발휘함 통해 마음에 품어주는 여유가 있고 잘 들어주고 이해하며, 너그러우며 최상의 것을 공급하려 함))

4. 하늘에서부터 온 지혜는 네째, 양순하다. 

여기서 양순하다는 말은 ‘유페이케스’ ─ 즉 매우 쉽게 권고될 수 있다는 뜻으로써 [긍정적 측면에서!!]선한 일을 권하거나 악을 떠나라고 권하는 [권선징악의 권고]말은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일 때는 연약하고 그릇된 양순함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권고하는 바와, 우리의 동료들의 모든 정당하고 합리적인 조언과 요청에 대하여 우리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은 비난받을 양순함이 아니다.  

이 양순함은 논쟁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고, 또 그 논쟁을 통해서 선한 결과가 오게 될 때는 [명료하게 최선의 판단과 선택을 밝혀내기 위해서라면!!] 논쟁도 포기하지 않는 양순함이다.[[그러나, 이 때에도 성경-화평-관용을 결코 잃지 않음이 전제됨에 주의하라!!]]

5. 하늘에서 온 지혜는 다섯째,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

구제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구제하며, 죄를 범했을지라도 용서를 구하는 자를 용서해 주는 등 친절하고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생각을 내면적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실제로 그러한 기회가 생겼을 때는 그 기회에 적절하게 행동하는 긍휼과 선한 열매로 가득차 있다.

6. 하늘에서 온 지혜는 여섯째 편견, 곧 편파적 치우침이 아니다.  

원어인 ‘아디아크리토스’(87)는 여러 사람 중에서 특별히 한 사람을 지목하여 의심하거나 판단 또는 엉뚱하게 그릇된 추측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난외의 주에 의하면 이 말의 뜻은 분파적인 행동이나 지기파의 유익만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또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해 주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을 비난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7. 위로부터 오는 지혜에는 일곱째 거짓 없다.  

이 지혜는 위장하거나 속이지 않는다.  또 이 지혜는 교활하고 간사하며, 세상에서 현명하다고 말하는 술책에 빠져들지 않는다.  

이 지혜는 오직 신실하고 개방적이고 꾸준하고 변동되지 않으며 그 지혜 자체와 항상 일치된 길을 걷는다.  

당신과 내가 다같이 이와 같은 지혜의 인도함을 받는다면 우리로 바울처럼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말하는 것은 육신의 지혜를 따름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단순함과 경건한 신실성으로니라."  

8.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참된 지혜는 계속하여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둠으로써 이 세상에 평화를 이룰 것이다(18절).  

평화로 심은 것은 기쁨의 수확을 얻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경쟁에서 얻은 열매를 수확하도록 하자.  

그들은 거기서 자신의 유익을 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화평으로 의의 씨를 계속 뿌리도록 하자.  

우리가 이 수고를 계속하는 한 그 수고한 대가를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빛은 의로운 자들에게 비추어졌고, 기쁨은 마음이 청결한 사람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의가 하는 일은 화평을 이루는 일이고, 그 결과는 마음의 평온과 영원에 대한 보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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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제 3장
=====3:1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 야고보는 자신을 포함한 '선생들'이 더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경고한다(Tasker, Burdick).여기에서 '심판'의 헬라어 '크리마'(* )는 '재판을 통하여 내려진 판결'을 의미한다(롬 13:2,D-ibelius-Greeven, Robertson). 선생들이 받을 '더 큰 심판'은 단순히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선생들이 더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책임'을 수반한 '은사'로서의 '선생'의 사역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심판관의 대가가 치러져야 함을 시사한다(눅 12:48,Moo,Adamson). 야고보는 이런 경고를 통해서 선생으로서의 가르치는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Moo).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 '되지 말라'(* , 메 기네스데)는 부정어 '메'(* )와 '...이 되다'를 뜻하는 '기노마이'(* )의 현재 중간태 명령법인 '기네스데'가 결합된 것으로 선택적인 권고의 성격이 아니라 금지를 요구하는 명령이다(Robertson, Burdick). 
이러한 어휘들은 당시 대부분의 독자들이 지위 향상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선생'이라는 직임의 권위와 명성에 매료되어 영성이나 도덕적, 윤리적인 책임감 없이 어떻게든 선생이 되려는 갈망이 공동체 전반에 편만했음을 추측하게 한다(Burdick, Moo). 더욱이 바울이 교회 직임에 대해 진술한 것을 살펴 볼 때(고전 12: 8; 엡 4:11) 당시에 이러한 현상이 있었음을 추측하기에 충분하다(Tasker, Moo, Mayor).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 원문에 있는 '폴라'(* ,'많은,많은 것에')라는 단어를 개역성경에서는 삽입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명확한 의미를 파악 하기가 어렵다(Robertson, Martin, Moo, Dibelius-Greeven). 
'폴라'의 의미에 대해 혹자는 죄의 '수량'(RSV)이나 죄의 '다양성'(NIV, 잠 10:19),또는 이 두 가지 모두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Martin).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의미상에 큰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본문을 '우리는 모두 많은 실수를 한다' 혹은 '우리는 모두 많은 것에 실수를 범한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 
한편 '실수하다'를 뜻하는 단어 '프타이오멘'(*)은 유대 문헌이나 신약성경에서 영적인 실패, 즉 모든 죄의 행동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2:10; 벧후 1:10, Moo, Burdick). 
한편 '프타이오멘'의 인칭 어미인 '-오멘'(* )은 1인칭 복수 주격을 나타내는 것으로,야고보가 경고받는 '선생들'의 부류에 자신을 포함시킬 뿐만 아니라 실수하는 '우리' 가운데도 역시 자신을 포함시키고 있음을 나타낸다(Robertson, Moo, Martin).
@만일 말에 실수가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 본문의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은 '실수하다'라는 의미의 '프타이에이'(* )와 '...아니다'를 의미하는 '우'(* )가 연결되어 말의 실수를 부정하고 있는 조건문으로서 어떤사람이든 말에 실수가 없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함을 암시한다(Martin). 이것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조차 때때로 죄를 범하게되는 죄의 보편성을 시사한다(Burdick). 
1절에서의 선생들에 대한 경고가 2절에서 '말'에 대한 주의로 연결되어,본절의 '말'은 후속절의 초점이 되는 '혀'에 대한 이야기에 배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전후 문맥으로 볼 때 본문은 '만일 말로 범죄하지 않는 자면'을 의미한다(Burdick, Martin, Moo). 
한편 '온전한 사람'은 죄가없거나 결백한 의미에서의 완전함이 아니라 잘 갖추어지고 성숙한 '온전함'을 나타낸다(1:4, Martin).야고보는 말로 행하는 범죄는 누구든지 쉽게 범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말을 잘 통제하여 실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성숙되고 온전한 사람임을 강조하며 더불어 언어생활을 조심할 것을 권고한다.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 야고보는 이와 같은 본문을 통해서 상이해 보이는 듯한 1절과 3절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연결시키고있다(Dibelius-Greeven). 
'굴레 씌우리라'의 헬라어 '칼리나고게사이'(* )는 '재갈을 물리다'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에서 드물게 쓰이는 단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가 1:26절에서 '혀'와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Robertson) 본문도 역시 다음절부터 전개될 혀에 관한 진술과 관련 하여 권면을 전개하려 한 듯하다. 사실상 본문은 1-12절까지의 내용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으로, 선생들에게서 시작된 경고를 전체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확대시키고 있다.
즉 야고보의 이러한 진술은 지도자들에게 그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Matin) 궁극적으로는 공동체에 전반적인 적용을 의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Moo). 선생이든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이든간에 혀를 제어(制御)하여 말의 실수가 없게 하는 것은 결국 온몸에 굴레를 씌워 죄짓는도구로 이용되지 못하도륵 하는 것과 같다(Burdick, Tasker).
=====3:3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 헬라어 본문에서 본절의 첫머리에 나타나는 '에이 데'(* , '만약','if', 'When')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 이다. (1) 혹자는 '이데'(* , '보라')라고 주장한다(C P, Mayor, Ropes).(2) 혹자는 '에이 데'(* , '만약')라고 주장한다(A, B, K, L,RV, NIV, Martin, Moo, Dibelius-Greeven).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비록 '이두'(* , '보라')가 4,5절에서 등장하여 '이데'가 조화를 이룬다 할지라도 '이데'는 본서에서 한번도 사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본절의 재갈 예는 말(馬)의 온 몸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말의 '입'에 물려진 재갈에 있음을 나타낸다. 즉 재갈이 말의 '입'에 채워짐으로 말이 통제된다는 사실이 강조된다(Moo). 야고보는 이렇게 해서 다음에 이어지는 다른 예화들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뤄간다.
=====3: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 본절은 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이전에 그 예로 배와 키의 관계를 나타낸다(Moo,Tasker). 즉 야고보는 작은 부분을 통해 커다란 몸체를 조종할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Moo, Dibelius-Greeven) 배와 키의 관계를 제시한다. 큰 몸체가 '광풍에 밀려갈 때' 일지라도 사공은 자그마한 키를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배를 조종할 수 있다. 야고보는 말과 재갈, 배와 키, 몸과 혀를 비교시켜서 혀가 작지만 혀를 제어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범죄가 발생하게 됨을 강조한다.
=====3: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 '이와 같이'로 연결되는 것은 앞의 두 예화가 본절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뒷받침 해준다(Burdick, Mayor). 이것은 본절이 3,4 절의 예화를 완성하고 있음을 시사한다(Martin). 재갈과 키가 그 자체의 왜소함에도 불구하고 말의 온몸과 배의 진로를 좌우하듯이, 우리의 혀역시 비록 크기는 작을지라도 그 역할은 매우 크다(Moo, Tasker). 
헬라어 본문에는 '큰 것을 자랑하도다'의 헬라어가 '메갈라 아우케이'(* )로 되어있으나 다른 사본에는 '메갈라우케이'(* , '자랑하다', '뽐내다')로 되어 있어(* ,P*20, k, L,) 의미 파악에 주의를 요한다(mayor, Tasker). '메갈라우케이'로 보게 될 경우 '자랑하는 혀'의 의미가 강조 되는 반면에 '메갈라 우케이'로 이해할 경우 '큰 것을 자랑하다'라는 의미로 '작은 혀'와 '큰 역할'이 대조된다(boasts of great things, RVS, Tasker, Robertson). '메갈라우케이'와 '메갈라 아우케이' 두 경우 중 후자의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된 두 가지 예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은 것'과 '큰 것'이 대조되기 때문이다. 본문은 비록 혀가 작을지라도 큰 역할을 하여 엄청난 힘, 곧 잠재된 거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Moo, Martin, Burdick).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 본문의 '어떻게 작은'과 '어떻게 많은'은 동일한 헬라어 단어 '헬리콘'(* )으로 한 단어가 두상반된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야고보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일종의 균형과 대칭의 효과를 내고 있다(Moo, Martin). 한편 '나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휠렌'(* )은 메마른 지중해 기후로 인한 불꽃에 의해서 쉽사리 재가 되어 버릴수 있는 팔레스틴 언덕의 산림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RSV, Moo, Martin). 야고보는 본절에서 산림이 작은 불씨에 의해 파괴되어 버림을 예로 들어 혀의 잠재적인 파괴력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Burdick).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 본절에서는 5절에서 보여준 혀의 파괴적 성향이 곧 바로 언급된다. '혀는 곧 불이요'는 '혀 또한 불이다'(Adamson) 혹은 '이와같이 혀는 불이다'(Martin)라고 것이 자연스럽다. 한편 '세계'의 헬라어 '코스모스'(*)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꾸밈(벧전 3:3), (2)악의 총체(Vulgate), (3)사악한 세상 조직의 타락하고 반역적인 형세(Tasker, Martin, Moo, obertson). 이 세가지 중 세번째 해석이 문맥상 가장 타당한 듯하다(1:27;4:4, Moo). 혀는 불과 같이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악들과 연관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케 한다(Burdick).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 '바퀴'를 의미하는단어 '트로콘'(* )은 '트레콘'(* , '달리다', '뛰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오르페우스 신비 종교의 문서에서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야고보가 오르페우스 신비 종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하기보다는 당시에 널리 대중화 되어있었던 종교적 또는 철학적 표현을 효과적으로 사용했음을 암시한다(Robertson, Moo, Martin, Dibelius-Greeven, Mayor). 이것은 인생의 전영역 가운데 성쇠(盛衰)를 가리키는 듯하다(Moo,Burdick). 이렇게 혀는 온 몸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불과 같아서 인생을 파괴시킬 수 있다. 한편 혀와 동일시되며 인생 전체를 파괴시킬 수도 있는 불의 근원은 '지옥불'이다. '지옥'을 뜻하는 헬라어'게엔네스'(* )는 힌놈의 골짜기를 지칭하는 히브리어 '게힌놈'(*)에서 유래한 표현이다(Burdick, Martin, Moo ). '게힌놈'은 예루살렘 정남방의 쓰레기 소각장으로, 계속 타고 있는 쓰레기 불로 말미암아 마지막날의 심판의 장소로 자주 비유되어 왔다.야고보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만약 각자가 자신의 혀의 힘을 제어하는 데에 실패한다면, 급기야 완전한 파멸에 이르는 것을 피할 수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파멸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혀의 오용과 남용이 사단으로부터 비롯되기때문이다(Martin, Moo, Tasker, Mayor).
=====3: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 본절은 다음절의 내용을 유도하기 위한 대조적인 예이다. '길들므로'의 헬라어 '다마제타이'(* )는 현재 시상이며 '길들었거니와'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다마스타이'(* )는 완료 시상이다. 야고보는 현재시상과 완료시상을 중복하여 사용함으로 인간이 여러세대에 걸쳐 짐승과 새,벌레와 해물(창9:2-7;행 10:12; 11:6)등의 동물들을 지배하고 정복한 상태의 연속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Robertson, Tasker, Burdick, Mayor, Adamson, Moo).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할 권한을 주셨으며(창 1:28;시 8:6-8) 실제로 인간들은 동물들을 다스려 길들였고,동물들은 인간에게 지배되고 복종하였다.한편 '짐승'을 나타내는 '데리온'(*)은 원래 신약성경에서 길들지 않은 동물들 즉 야생 동물에만 사용되어 왔다. 야생 동물이 길들여지는 것은 사 11:6-9처럼 메시야 시대의 상징으로 쓰여진다(Adamson).
=====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가득한 것이라 - 앞절에서 언급한 바대로 인간은 모든 짐승을 다스리고 길들였다. 반면에 인간은 자신의 지체 중 하나에 불과 한 혀를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 야고보는 앞절에서 인간이 다스린 동물과 본절에서 인간이 다스릴 수 없는 혀를 대조시켜서 혀의 악함과 파괴력을 강조하고있다. 하지만 비록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는 혀를 제어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의 혀는 성령에 의해서 지배되며,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과 은혜로 말미암아 제어될 수 있다(Burdick, Moo, Mayor, Martin). 야고보는 본절에서 제어되지 않은 혀의 두 가지 속성을 제시한다.
@쉬지아니하는 악 - '쉬지 아니하는'의 헬라어 '아카타스타톤'(*)은 1:8의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에서 '정함이 없는'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것은 '아카타스타톤'이 수식하는 악이 불안정함과 한 마음을 품지 않는 데서 기원함을 시사한다(Moo). 이러한 악은 마치 복종될 수 없는 흉악한 짐승과도 같은 것으로 결코 제어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Burdick,Tasker).
@죽이는 독 - '죽이는'을 뜻하는 헬라어 '다나테포루'(* )는 '다나토스'(* , '죽음')와 '페로'(* , '가져오다')의 합성어로 '죽음을 가져오는'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Robertson).'죽이는 독이 가득 하다'는 구약성경의 교훈들을 반영하는 것으로(시 140:3; 잠 10:8; 11: 9, Moo) 독사에게 물린 즉시 온 몸에 독이 퍼지고 급기야는 죽음을 초래하는 것처럼(Burdick,Robertson, Moo) 혀는 이웃을 파괴시킬 뿐만 아니라 범죄케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
=====3:9
야고보는 혀의 양면성 즉 '찬송'과 '저주'를 대비시켜서 그 불합리성을 제시한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 '주 아버지'라고 해석되는 헬라어 '톤퀴리온 카이 파테라'(* )는 '주와 아버지'가 아니라 '주이신 아버지'라는 의미로 '주'와 '아버지' 모두가 하나님께 적용되고 있다(Robertson). '주 아버지'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고백으로(RV, Tasker) 혀의 가장 고귀한 기능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임을 시사한다(Martin, Moo).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 '저주'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주제이다(창 9:25; 49:7; 잠 11:26; 24:24; 26:2). 이러한 저주는 고대 세계에서 큰 힘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되어지고 영원한 심판을 겪게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비해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저주하는 것을 금했다(롬 12:14).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저주를 금하고 오히려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라 하셨다(눅 6:28, Moo, Martin). 
한편 '형상'을 의미하는 '호모이오신'(* )은 '닮게 만들다'는 뜻을 가진 '호모이오오'(* )로부터 온 것으로 '하나님의 외관대로 지으심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made after the likeness of God, RV). 또한 '지음을 받은'을 의미하는 헬라어'게고노타스'(* )는 완료시제이다. 이 두 가지 즉 '호모이오신'과 '게고노타스'는 인간이 범죄로 타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자신의 거룩함을 보여주는 흔적을 여전히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Tasker, Burdick). 
이에 야고보는 사람이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또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높이고 저주하는 것과 마찬 가지임을 강조하여 그 불합리성을 나타낸다(Burdick). 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3: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 하리라 - 야고보는 한 입에서 찬양과 저주가 나오는 이중성을 드러내며 경고한다(Mayor). 
'마땅치 아니하니라'의 헬라어 '우 크레'(* )는 선악간의 차이를 분별하는 기준이라기보다는 이중적인 면 즉 찬송과 저주의 공존으로 인해 생겨나는 불안정함을 시사한다(Tasker). 
이와같이 입에서 나오는 말의 이중성으로 인해서 생기는 모든 양태는 죄악이며 사람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범죄이다. 이러한 말의 폐해(弊害)에 대해 예수께서도 엄중히 경고하셨기에(마 15:11,18,19)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지배와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의 입을 일관성 있게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사람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것에 효과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Burdick).
=====3:11
본절의 샘의 비유는 매우 인상적이고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건조한 팔레스틴 기후에서 샘의 중요성이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많은 마을과 촌락들이 이 샘과 시내를 의존하여 형성되었다(Moo, Martin).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 본문 처음에 등장하는 '메티'(* , '어찌...하지 않겠느뇨')는 야고보가 즐겨쓰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부정적인 대답을 예상하면서 묻는 수사학적인 질문이다(Moo, Martin,Robertson). 
야고보는 이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서 한 샘이 두 가지 맛을 낼 수 없음을 예로들어 한 입에서 경배와 저주가 나오는 것이 부당함을 예증한다. 한편 '구멍'을 나타내는 헬라어 '오페스'(* )는 땅의 갈라진 틈 또는 바위 표면에 갈라진 한틈을 의미한다(Robertson, Tasker, Adamson). 이러한 틈새에서 솟아나는 두 종류의 물 즉 '단 물'과 '쓴 물'은 '신선한 물'(fresh water)과 '짠 물'(salt water)을 가리킨다(NIV, RSV). 한 샘에서 신선한 물을 내놓다가 다시 짠 물을 내놓는 일은 있을수 없으며(Moo, Martin, Adamson),만약에 신선한 물에 쓰거나 짠 물이 첨가된다면 그 물은 이미 신선함을 잃어 효력을 발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물을 마시는 자에게 피해를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입에서 찬양과 저주가 나오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혀가 사악하게 활용되었을 때 그 말은 바로 이 쓴 물과 같아져서(Moo) 비극을 초래하며 전체를 그릇되게 한다(Martin).
=====3: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 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 본문 역시 부정어 '메'(* , '아니')로 시작되어 부정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수사학적인 질문이다(Martin). 
본문에서 열거되는 무화과나무, 감람열매, 포도나무, 무화과 등의 식물을 사용하는 비유는 고대 문학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Martin). 신약성경에도 복음서를 중심으로 여러 번 사용되고 있다(마 7:16-20; 12:32,33; 눅 6:43-45,Martin, Adamson). 이 비유가 신약성경에서 사용될 때의 의미는 '선한 마음에서 선한 것이 나오고 악한 마음에서는 악한 것이 나옴이 마땅하다'는 것이다(Moo, Martin). 따라서 야고보는 본 비유를 통하여 모든 나무가 자신의 특성에 맞게 열매를 맺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같이 짠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 야고보는 본문에서 11절의 질문으로 돌아가 11,12절의 수사학적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앞서 언급한 이중성의 부당함 즉 한 샘에서 두 종류의 물이 나올 수 없고 한 나무가 다른 종류의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결국 짠 물은 짠 물일 뿐이라는 일관된 부정적 견해 즉, 혀의 악함을 드러내어 강조하고 있다(Tasker, Moo, Martin).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 근원에 있어 나무와 열매의 비유처럼,짠 물이 단 물의 근원일 수 없기 때문이다(Burdick). 그러므로 선한 사람의 입에서 선한 말이 나오고 악한 사람의 입에서는 악한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3:13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 본절은 '티스'(* , '누구')로 시작하면서 새로운 문단을 소개한다(13-18절, Adamson). 
'지혜'애 해당하는 헬라어 '소포스'(*)는 유대인들이 교사, 서기관, 랍비를 가리킬 때 사용한 전문용어였으며 '총명'의 헬라어 '에피스테몬'(* )도 특별한 지식이나 훈련을 받은 전문인을 가리킨다(Moo, Tasker, Burdick, Robertson). 이러한 '지혜와 총명'은 1절에서 언급한 '선생이 되려하는 자들'을 암시한다. 한편 '지혜의 온유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프라위테티 소피아스'(* )는 문자적으로 '지혜로부터 나오는 온유함으로'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지혜'는 헬라적 지혜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하는 실제적인 히브리적 개념의 지혜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Adamson). 또한 '온유함'은 약함이나 체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포괄적인 포용성으로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 성취될 수 있는 부드러움을 가리킨다(갈 5:22,23, Burdick). 
야고보는 본절에서 선행과 온유의 근원을 믿음과 동일하게 취급되는 지혜로 보면서(Tasker, Burdick) 선생이 되려는 자들에게 선생을 영예와 지위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삼지말고 참된 선생으로서 하나님을 아는 지혜에서 비롯된 온유함으로 모든 사람에게 선행을 행해야 함을 권면한다.
=====3:14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말 하지 말라 - '젤론'(* , '시기')은 신약성경에서 긍정적으로도(요2:17), 부정적으로도 사용된다(행 5:17, Robertson, Moo). 본절에 사용된 '젤론'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이기적인 열정을 의미한다(Mayor). 또한 '다툼'에 해당하는 헬라어'에리데이안'(* )은 '이기적인 야망'의 의미로 자기나 자기편의 특권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리킨다(Moo, Burdick).
이것으로 인해서 '당파심', '불화'가 일어나기에 바울은 '당파심'이나 '불화'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였다(고전3:3; 고후 12:20; 갈 5:20, Martin, Moo, Dibelius-Greeven, Robertson). 당시 본서의 수신자들중에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과 열정 그리고 야망에 빠져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편을 만들고 당(黨)을 지어 홀란스럽게 만들며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이 있었다(Burdick). 그래서 야고보는 이런 자들을 향해 이기적인 욕망과 야망에 빠지지 말고 진리를 거스려 교만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 본절은 앞절에서 언급한 내용인 이기적 욕망과 야망에 사로잡힌 '지혜'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다(Burdick). 즉 그것은 참된 지혜의 근본이신(잠 2:6)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지혜가 아니다(Martin, Moo).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지혜는 세가지 특성을 지닌다.
@세상적이요 - 이것은 하늘과 비교하여 부정적인 의미의 땅을 지칭하는 표현으로(Moo, Martin, 고전 15:40; 고후 5:1)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기보다는 세상의 제한된 사고와 견해로 평가하는 지혜를 나타낸다. 이러한 지혜는 세상의 인침을 받은 일련의 모든 활동과 동일한 의미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전 1:20;2:5,6, Adamson, Martin).
@정욕적이요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쉬키케'(* )는 '영적'인 것과 비교되는 '육신적'인 것을 의미한다(Moo,Martin, Adamson, 고전 2:14; 15:44,46).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 즉 중생하지 못한 자들의 특성 이다(Burdick).
@마귀적이니 - 이것은 참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기인하지만(잠 2:6) 이기적인 욕망과 야망에 사로잡혀 중생하지 못한자들이 소유하는 지혜는 마귀에 의해서 그 행동과 생각을 지배받고 선동됨을 나타낸다(Martin, Moo, Adamson).
=====3:16
개역성경에는 '가르'(*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절이 이기적인 욕망과 야망에 사로잡힌 거짓된 지혜의 특성을 정의한 것(15절)에 대한 근거임을시사한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 '요란'을 뜻하는 헬라어 '아카타스타시아'(* )는 '무질서함'(고전 14:33)을 나타내며 일반적으로 무정부 상태와 정치적인 소동을 연상케 하는 단어다(Robertson,Burdick). 또한 '악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울론'(* )은 요 5:39의 '아가다'(* , '선함')와 반대 개념으로 하나님과는 전혀가까워질 수 없는 악한 행위를 나타낸다. '시기'와 '다툼' 즉 이기적인 욕망과 열정 그리고 야망은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영적인 생명과 사업을 파괴시키는 무질서와 악한 행위만 생산할 뿐이다(Burdick). 그러기에 그러한 것을 유발시키는 거짓된 지혜는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것이다(15절).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 본절은 앞서 언급된 거짓 지혜와 대조되는 참된 지혜 즉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지혜의 특성에 대한 진술이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지혜는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실천적인 것이다.
@성결하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그네'(* )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지혜의 기본적 특성으로 성적인 순결의 의미보다는 모든 악한 태도나 동기가 없음을 의미하며 '거짓된 지혜'의 이기적인 동기와 대조를 이룬다(Robertson,Burdick).
@화평하고(* , 에이레니케) - 이는 '평화를 사랑함'이나 '평화를 가져옴'을 의미한다(히 12:11). 이것 역시 독한 시기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위로 난 지혜는 모든 이에게 화평을 가져다준다(Tasker).
@관용하고 - 이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에이케스'(* )는 주로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로 죄인에 대해 단호하게 징벌하실 수 있음에도 블구하고 용서하시고 인내하시는 온유와 자비를 나타낸다.
@양순하며 - 이의 헬라어 '유페이데스'(* )는 '유'(* , '잘', '좋게')와 '페이도마이(* , '순종하다')의 합성어로 '잘 순종 하는' 이나 '유순한'을 의미한다. 이것은 교만하여 진리를 대적하는 것과(14절) 대조되는 것으로 위로 난 지혜는 하나님께 잘 순응하는 성품을 소유케 한다.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 '긍휼'과 '선한 열매'는 상관 관계를 갖는다. 
'긍휼'은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자들을 실제로 도와 주는 마음 자새로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하나님의 정죄 아래에 있는 자이다(2:13). 이러한 긍휼을 드러낼 때 그 결과로 선한 열매를 맺게된다(마 7:17,18, Martin, Burdick).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 거짓된 지혜의 당을 만들고 구별하며 자기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는 달리 위로 난 지혜는 구별이나 위선이 없는 공평함과 신실함이 가득하다.
=====3:18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 본문은 '위로 난 지혜'에 대한 결론이다. '의의 열매'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르포스 디카이오쉬네스'(*)는 '의로 이루어진 열매'를 뜻한다(Laws, Ropes).
'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Moo) '화평'과 긴밀한 상관관계를 지닌다(시 85:10;사 32:17, Tasker).이러한 의는 이기적인 욕망과 야망에서 비롯된 무질서와 악한 행위에서는 생겨날 수 없으며 오직 화평 가운데서 맺어질 수 있는 열매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인 화평을 소유하고 닮은 자녀이기에 화평을 이루어 '의'를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마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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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케 하다, 복종케 하다, 권면하다  납득시키다, 확신시키다 convince, 설득하다 persuade.  간청하다 유혹하다 오도하다 peivqw(3982, 페이도)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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