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1.2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느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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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13장 느헤미야의 개혁
1.  그 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2.  이는 그들이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3.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느니라
4.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의 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5.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만들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6.  그 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7.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만든 악한 일을 안지라
8.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9.  명령하여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놓았느니라
10.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11.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13.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지기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을 버금으로 삼았나니 이는 그들이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14.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15.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16.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도 유다 자손에게 팔기로
17.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8.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하고
19.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갈 때에 내가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나를 따르는 종자 몇을 성문마다 세워 안식일에는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20.  장사꾼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 번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므로
21.  내가 그들에게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후부터는 안식일에 그들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23.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24.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25.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26.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그를 범죄하게 하였나니
27.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29.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30.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31.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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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제13장 느헤미야의 개혁
1.  그 날, 백성에게 모세의 책을 읽어 주었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2.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맞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서, 우리가 저주를 받도록 빌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 저주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하셨다."
3.  백성은 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섞여서 사는 이방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모두 분리시켰다.
4.  ○이 일이 있기 전이다. 우리 하나님 성전의 방들을 맡고 있는 엘리아십 제사장은 도비야와 가까이 지내는 사이이다.
5.  그런데 그가 도비야에게 큰 방 하나를 내주었다. 그 방은 처음부터 곡식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성전 문지기들에게 주려고 십일조로 거두어들인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제사장들의 몫으로 바친 제물을 두는 곳이다.
6.  이 모든 일은, 내가 예루살렘을 비웠을 때에 일어났다. 나는 바빌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년에 왕을 뵈러 갔다가, 얼마가 지나서 왕에게 말미를 얻어,
7.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서야, 엘리아십이 하나님의 성전 뜰 안에 도비야가 살 방을 차려 준 이 악한 일을 알게 되었다.
8.  나는 몹시 화가 나서, 도비야가 쓰는 방의 세간을 다 바깥으로 내던지고,
9.  말하였다. "그 방을 깨끗하게 치운 다음에, 하나님의 성전 그릇들과 곡식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다 놓아라."
10.  ○내가 또 알아보니, 레위 사람들은 그 동안에 받을 몫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은 맡은 일을 버리고, 저마다 밭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11.  그래서 나는, 어쩌자고 하나님의 성전을 이렇게 내버려 두었느냐고 관리들을 꾸짖고, 곧 레위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다시 일을 맡아 보게 하였다.
12.  그랬더니, 온 유다 사람들이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지고 와서, 창고에 들여다 놓았다.
13.  나는 셀레먀 제사장과 사독 서기관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 책임자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이며 삭굴의 아들인 하난을 버금 책임자로 삼았다. 그들은 모두 정직하다고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맡은 일은, 동료들에게 돌아갈 몫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 일이었다.
14.  ○"하나님, 내가 한 일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성전을 보살핀 일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정성껏 한 이 일을 잊지 마십시오."
15.  ○그 무렵에 유다에서는, 안식일에도 사람들이 술틀을 밟고, 곡식을 가져다가 나귀에 지워서 실어 나르며, 포도주와 포도송이와 무화과 같은 것을 날라들였다. 안식일인데도 사람들이 이런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것이 나의 눈에 띄었다. 나는 안식일에는 사고 파는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16.  예루살렘에는 두로 사람도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안식일에 물고기와 갖가지 물건을 예루살렘으로 들여다가, 유다 백성에게 팔았다.
17.  그래서 나는 유다의 귀족들을 꾸짖었다. "안식일을 이렇게 더럽히다니, 어쩌자고 이런 나쁜 일을 저지르는 거요?
18.  당신들의 조상도 똑같은 일을 하다가, 우리와 우리 도성이 모두 하나님의 재앙을 받지 않았소? 당신들이야말로 안식일을 더럽혀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위에 진노를 내리시도록 하는 장본인들이오."
19.  ○나는, 안식일이 되기 전날은, 해거름에 예루살렘 성문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성문들을 닫도록 하고, 안식일이 지나기까지 문을 열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또, 나를 돕는 젊은이들을 성문마다 세워서,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들이지 못하게 하였다.
20.  그 뒤로도, 장사하는 이들과 갖가지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는 일이 한두 번 있었다.
21.  나는 그들도 꾸짖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성 밑에서 잠을 자고 있소? 다시 한 번만 더 그렇게 하면, 잡아들이겠소."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 안식일에는, 그들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22.  나는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깨끗하게 하고 와서 성문마다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라고 하였다. ○"나의 하나님, 내가 한 이 일도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지없이 크신 주님의 사랑으로 나를 너그러이 보아주십시오."
23.  ○그 때에 내가 또 보니, 유다 남자들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의 여자들을 데려와서 아내로 삼았는데,
24.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절반이 아스돗 말이나 다른 나라 말은 하면서도, 유다 말은 못하였다.
25.  나는 그 아버지들을 나무라고, 저주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야단을 치고, 그들 가운데 몇몇을 때리기도 하였으며, 머리털을 뽑기까지 하였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두고서 맹세하게 하였다. "너희는 너희 딸들을 이방 사람의 아들에게 주지 말아라. 너희와 너희 아들들도 이방 사람의 딸을 아내로 데려와서는 안 된다.
26.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죄를 지은 것도, 바로 이방 여자와 결혼한 일이 아니냐? 어느 민족에도 그만한 왕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으며, 하나님은 그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 그러나 그마저 죄를 짓게 된 것은 이방 아내들 때문이다.
27.  이제 너희가 이방 여자들을 아내로 데려와서, 이렇게 큰 잘못을 저지르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느냐?"
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인 요야다의 아들 가운데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기에, 나는 그자를, 내 앞에서 얼씬도 못하도록 쫓아냈다.
29.  ○"나의 하나님, 그들을 잊지 마십시오. 그들은 제사장 직을 더럽히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언약을 저버린 자들입니다."
30.  ○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묻은 이방 사람의 부정을 모두 씻게 한 뒤에, 임무를 맡겨 저마다 맡은 일을 하게 하였다.
31.  또 사람들에게 때를 정하여 주어서, 제단에서 쓸 장작과 처음 거둔 소산을 바치게 하였다. ○"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여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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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그 거룩한 성을 방비하고, 백성들로 채운 후에, 6절에 나타나 있듯이, 그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을 원치 않는 그의 주군 바사 왕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다시 허락을 얻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는 비탄스러운 일을 바로 잡고, 그의 부재시에 발생한 부패들을 일소했다. 그는 여러 가지 잘못된 일들을 바로 잡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1. 그는 섞여 사는 이방인들, 특히 모압 사람과 암몬 사람을 이스라엘에서 쫓아 내었다(1-3). 그는 성전에서 거하던 도비야에 대해 매우 분노하고 쫓아냈다(4-9).
2. 그는 이전보다도 더욱 견고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생활대책을 마련해 주었다(10-14).
3. 그는 안식일을 범하는 것을 막고 그날을 성결케 하도록 규정했다(15-22).
4. 그는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으로 인하여 피해가 커가는 것을 저지시켰다(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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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축출(느 13:1-9)
이스라엘이 독특한 백성으로서 보존되어 왔으며, 열방들과 섞이지 않고, 또 그 누구도 그들과 결합되는 것을 묵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자랑이었고, 그들의 성결을 보존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읽을 수 있다.
Ⅰ. 그러한 목적으로 율법을 "그 날에 낭독하여 백성들에게 들렸다" (1절). 즉 그들은 성곽을 낙성했던 날에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그 말씀을 읽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3절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른 슬픈 일들은 느헤미야의 힘으로 제거되었지만, 그후 오랜 기간이 지난 지금 이 섞여 사는 무리들은 백성들 스스로의 힘으로 제거할 수 있게끔 되었던 것 같다. 또는 이것은 성곽이 낙성된지 몇 해 후 그 기념일이 된 날이고, 그래서 "그 날에" 라는 단어로 표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들은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이스라엘인이 될 수 없으며 그들 가운데 거할 수도 없고 연합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율법책에서 발견했다(1절).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해하려는 악한 성품을 품고 있으며(2절),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행한 잘못을 특별히 용서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게 일상적인 경의조차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멸하려 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이유가 적힌 율법을 신명기 23장 3-5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Ⅱ. 백성들은 이 율법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3절). 하나님의 말씀을 공통으로 읽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 가를 보라. 우리가 이 말씀에 열중할 때, 우리의 죄와 의무, 선과 악이 드러나게 되며, 우리가 잘못한 것들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붙어 있던 악을 떨쳐 버릴 때, 우리는 말씀을 깨달음으로 인한 유익을 얻게 된다. 그들은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몰수히 분리하였다." 그들은 옛부터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되어 왔었다. 왜냐하면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기" 때문이었다(민 11:4). 이것은 그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횡령자요, 해로운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추방당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Ⅲ. 도비야의 특별한 경우가 언급되어 있다. 그는 암몬 사람이었다. 느헤미야가 이 율법(1절)과 그 이유(2절)를 낭독케 한 저변에는 아마 이 도비야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의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게 악의를 품고 있었고, 암몬 사람들의 기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의 분노는 느헤미야에 의해 목격된 바 있었고(2:10), 그는 느헤미야의 일을 방해한 일도 있었다(4:7, 8). 다음을 살펴보자.
1. 제사장 두목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성전 뜰안에까지 거하게 했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1) 엘리아십은 처음에는 결혼에 의해, 그 다음에는 우정에 의해, 도비야와 친분을 맺었다(4절). 그의 손자는 산발랏의 딸과 결혼했다(28절). 아마 그의 가족 중 다른 사람도 도비야의 가족과 결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매우 치욕스러운 일이었고, 또 그것을 수치스럽게 여겨야 할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제사장은 도비야의 가문과 동맹을 맺는 것을 영예로 간주하여,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대제사장은 "자기 백성 중"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자손으로 백성들을 더럽히게 된다" 는 것이 율법에 특별히 강조되어 있다(레 21:14, 15). 엘리아십이 암몬, 곧 "종" (도비야는 그렇게 불리워지고 있었다)과 동맹을 맺고서, 자기가 한 일을 자랑스레 생각했다. 그것은 아마 도비야가 지혜롭고 도량이 넓은 사람이며 훌륭한 자라고 칭찬을 받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6:19).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감히 성별된 그 면류관을 짓밟아 버리게 되었고, 이러한 소식은 아무도 원치 않았으나 가드에 전해지게 되고 아스겔론 거리에 퍼지게 되었다.
(2) 그가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가 도비야와 친숙히 사귀어 왔음에 틀림이 없다. 도비야는 사업하는 자였으므로 자주 예루살렘에 머물렀는데, 나는 그가 어떤 선한 계획을 품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엘리아십은 그의 새 친족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와 사귀는 것을 즐겼으며, 될 수 있으면 그와 가까이 있으려 했다. 성전 뜰에는 도비야가 거처할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러므로 골방으로 사용되던 여러 작은 방들의 간막이를 치워 큰 방으로 만듦으로써 도비야의 전용 거실을 마련해 주었다(5절).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비열한 일을 행했다.
① 그는 암몬 사람인 도비야가 이스라엘에게 존경받고 또 거창한 대우를 받도록 했다.
②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며 훌륭한 모범을 보여야 하는 대제사장인 그가 율법을 어겨 그를 환대했다. 그리고 성전 골방을 감독하는 직분을 맡고 있던 그가 이러한 목적을 위해 그의 권한을 남용했다.
③ 그는 마치 하나님에게 도전이라도 하려는 듯, 도비야를 하나님 전 뜰에 거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사악한 옛왕들이 행한 것과 같이 그곳에 우상을 세웠다. 암몬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런데 암몬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악하고 비열한 자가 어떻게 성전에 들어와 환대를 받을 수 있겠는가?
④ 그는 도비야의 방을 마련하기 위해 성전에 쌓아둔 물건들을 치워버림으로써, 그것들이 손실되고 파괴되어 허비되게 했으며 또 횡령했다. 비록 그것들이 "제사장들에게 돌려진 것" 이었지만, 그는 도비야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그렇게 처분한 것이다. 이처럼 그는 말라기가 그 당시에 책망한 것과 같이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다" (말 2:8). 느헤미야가 "그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었다" 고 덧붙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6절). 만일 그가 그곳에 있었다면 이 대제사장은 감히 그런 일을 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밭에 가라지를 뿌리려고 노리는 자는 기회를 포착하는 비결을 알고 있어, "종들이 잘 때" 나 없을 때 그 일을 행한다(마 13:52). 모세가 산에 있을 때 금송아지가 만들어졌던 것도 바로 이러한 때문이었다.
2. 방백의 두목 느헤미야는 도비야와 그에게 속했던 물건을 추방시키고 그 골방을 원상태로 복구시켜 놓는 용감한 일을 했다.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 선한 백성들에 의해 그들의 제사장 두목과 적의 두목이 친숙해짐에 따라 자기들이 고통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심히 근심하였다" (7, 8절). 왜냐하면 하나님의 전이 매우 더럽혀졌고, 그의 적들이 이처럼 옹호되고 신뢰되고 있어, 그 성전의 보호자이며 후원자이신 하나님은 결과적으로 배반당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하나님의 전의 일꾼들이 사악한 일을 행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보다 선한 백성들과 선한 치리자들에게 더 슬픈 일은 없다. 느헤미야는 권력을 잡고 있었으며, 그는 하나님을 위해 그 권력을 사용했다.
(1) 도비야는 추방되었다. 도비야의 뜻을 거역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느헤미야는 그의 분노나 엘이라십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한 대제사장의 관할에 속해 있는 일을 간섭한 것에 대해서도 미안하게 여기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선한 일을 열심히 사모하는 자였으므로, 도비야의 모든 세간을 내어던짐으로써, 그 침입자를 내쫓았다. 느헤미야는 그 물건들을 자기가 지니지 않고 모두 내어 던졌다. 이 때에는 아마 도비야가 밖에 나가고 없었을 것이며,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그 곳에서 다시 대접을 받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구주께서도 이처럼 "성전을 깨끗케 하여 기도하는 집이 도둑의 소굴" 로 되지 않도록 하셨다. 살아 있는 성전 곧 마음 속에 있는 죄를 쫓아내려는 자들도, 이와 같이 그 죄에 관련된 모든 세관과 모든 양식을 내어버림으로써 죄가 헐벗고 굶어죽도록 해야 하며, 탐욕의 먹이와 연료가 되는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 이것은 사실상 그 죄를 죽이는 것이다.
(2) 성전 곳간을 다시 들여 놓고, "하나님의 전의 기명을 그리로 들여 놓았다." 그러나 골방들은 더럽혀졌기 때문에 정결케 하는 물을 뿌려 깨끗하게 해야 했다. 이처럼 회개를 통해 죄를 마음에서 내어 쫓고 나서는,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피를 그 위에 뿌리고, 그 다음에 매일의 선한 사업을 위해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로 그 곳을 채우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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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습을 바로 잡다(느 13:10-14)
또 한 가지의 비탄스러운 일이 느헤미야에 의해 교정되었다.
Ⅰ. 레위 사람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즉 그들이 지급 받을 것을 받지 못한(10절) 비탄스러운 일이 있었다. 아마도 도비야는 골방을 차지했을 때 그 곳간도 함께 차지했던 것 같으며, 엘리아십이 그것을 묵인함으로써 그 속의 물건들을 마음대로 썼던 것 같다. 문제는 백성들로부터 거두어 들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거두어 들인 부과금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고, 또 레위 사람들은 너무 겸손하여 그것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그들의 들로 도망하였기" 때문이었다.
1. 이것이 바로 그들의 받을 것을 못 받게 된 이유였다. 그들은 성읍에 거하지 않았다. 즉 그들이 성전 주위에서 그들의 직분을 행해야 했을 때에도, 그들은 시골에 있는 자기들의 농장에 있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그들의 생계비를 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사역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격려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들은 자기들이 직무를 태만히 함으로써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은가를 스스로 반성해 보도록 하라.
2. 또는 느헤미야는 그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지 않은 것을 보고, 그들의 몫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 바로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노래하는 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느헤미야는 말했다) "왜 그들은 그들의 직책대로 하나님을 찬미하지 않는가?" "그들은 그들의 직책에 대한 보수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농작물로 그들과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각자 그의 시골로 가버렸도다." 초라한 생계비는 초라한 사역자를 만든다. 일하는 자들이 소홀한 대우를 받을 때, 그 일도 부실해지게 마련이다. 노래하는 자들에게 줄 급료를 매우 훌륭한 방법으로 정했던 것은 별로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12:47). 그러나 그 규정은 그것을 돌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곧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Ⅱ. 느헤미야는 이러한 잘못을 범한 민장들을 책망했다. 그들은 레위 사람들이 그들의 직무에 전념하도록 관심을 기울여 주고 그에 대한 모든 격려를 아끼지 말았어야 했다. 이것은 정치를 맡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이다. 즉 그들은 사역자들이 그 의무를 다하게 하고 백성들도 그들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데에 자기들의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제일 먼저 민장들을 불러 모아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바 되었느냐?(11절) 왜 레위 사람들을 굶도록 했느냐? 너희는 왜 이것을 살펴 막지 않았으냐?" 백성들은 "레위 사람들을 버렸는데," 이것은 율법으로 특별히 금해진 일이었다(신 12:19; 14:27). 따라서 레위 사람들도 하나님의 전에 있는 그들의 자리를 버렸다. 믿음과 그 믿음의 일을 버린 사역자들과 백성들, 그리고 그것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관 상태에 있는 장관들은 모두 그에 대한 많은 문책을 받게 될 것이다.
Ⅲ. 그는 흩어져 있는 레위 사람들을 다시 그 처소로 불러 들이고, 그 맡은 곳에 세우기를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11절). 밭에만 있는 레위인(clericus in foro-장보러 다니는 사역자)은 자기 위치를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전이 그의 처소이므로, 그는 항상 그곳에 있어야 한다. 무관심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다시금 의무 이행을 촉구 받으면, 예전보다 훨씬 훌륭하게 행하는 자들도 많이 있다. "아킵보에게 말하라. 삼가 네 직임을 돌보라고."
Ⅳ.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십일조를 가져오도록 명했다(12절). 그의 열의가 그들을 자극한 것이다. 그들은 레위 사람들이 각기의 직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더 이상 수치스럽게 그들의 임금을 보류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직하게 그리고 기쁘게 십일조를 가져왔다. 교회의 일이 더 잘 행해지면, 그만큼 교회 일꾼들이 더 나아지게 마련이다.
Ⅴ. 그는 레위 사람들의 봉급을 정당하고 신속하게 지불해 주도록 했다. 이 일을 감독할 자들이 임명되었는데, 그들은 "충직한 자로 인정된" 사람들이었다. 즉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있었으므로 "아름다운 지위를 얻게 되었다" (딤전 3:13). 우리는 먼저 사람을 알아본 후에 신뢰하도록 하자. 그리고 작은 일로 그를 시험해 본 후에 큰 신뢰를 주도록 하자.
그들의 직분은 받아 들이고 지불해 주며 합당한 급료를 그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다.
Ⅵ. 느헤미야는 이러한 선한 봉사를 했지만 아무런 보상도 없었으므로(그가 사례를 받았는지는 의문이다), 그의 임금의 지불자인 하나님께 나아갔다(14절).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느헤미야는 이처럼 경건한 탄원을 올릴 줄 아는 자였다. 즉 그는 모든 경우에 하나님을 구하고, 그 자신과 그의 일들을 하나님께 의탁했다.
1.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전과 그것에 관한 일을 행한 것에 대해 즐거움과 만족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나라 안에 믿음을 복구시키려 장려했으며 또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기뻐했다.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호의를 베푼 자들은, 이처럼 각자의 가슴 속에 그 보답을 받게 된다. 즉 그들은 잘 행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 많은 영혼들에게 선을 행했다는 사실이 그들의 가슴 속에 은밀한 기쁨을 솟게 할 것이다.
2.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생각해 주실 것을 청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자기의 행실이나 자기의 의로운 행위를 자랑하려는 것이거나 교만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또한 하나님이 자기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 때문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그가 행한 일 속에 있는 그의 고결하고 정직한 의도에 관해 하나님께 겸손히 말씀드린 것이며,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그의 행위와 사랑으로 섬긴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믿는 그의 소망을 표한 것뿐이었다(히 6:10).
그가 요청하는 태도가 얼마나 겸손한 가를 살펴 보라. 그는 단지 "나를 기억하소서" 하고 기도했으며, "내게 상을 주소서" 하지는 않았다. 그는 또한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하고 기도했으며 "그것을 알리고 기록하소서" 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보람을 받게 되었으며, 그의 선한 행위는 기록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청할 수 있는 이상으로 갚아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 즉 믿음을 지속시키고 장려하기 위해서 행하는 일들은 선한 사업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 속에는 의로움과 경건함이 모두 들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분명 그것을 기억하실 것이며 도말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 선행 행위는 결코 그 보답을 잃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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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대한 훈계(느 13:15-22)
여기에 느헤미야가 적극적으로 행했던 축복된 개혁의 또 한 가지 사례가 나와 있다. 그는 다시금 안식일을 성별시켰다. 그리하여 제 4계명의 권위를 존속시켰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과 거기에 행할 직무를 위하여 매우 잘한 일이다. 거룩한 때를 지키지 않고 소홀히 여기는 곳에서는, 모든 거룩한 의무가 일체 무시되어지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Ⅰ. 폐습에 대한 충고. 안식일의 율법은 매우 엄격했고, 많이 강조되어 왔다. 왜냐하면 안식일이 지켜지지 않고, 발 밑에 짓밟혀 있는 한, 믿음이 결코 그 보좌를 차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표징을 위해 주어진 그런 유다 사람들 가운데에도 이 율법이 비참하게 더럽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자신의 눈으로 이것을 직접 목격한 것이다.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려는 치리자들은, "그들의 눈으로" 직접 볼 것이며, 악한 것을 찾아내기 위해 "부지런히 살필" 것이다. 느헤미야를 매우 근심스럽게 만든 것은, 얼마 전에 하나님께 봉헌된 그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도 성일인 안식일에 불경스런 일이 전반적으로 자행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1. 농부는 그 날에 술틀을 밟고 곡식을 집으로 운반하였다(15절). 그러나 실상은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안식일에는 쉬라는 명령이 명시되어 있었다(출 34:21). 왜냐하면, 그런 바쁜 때에는 그들이 좀 더 마음대로 하려는 유혹을 받기 쉽고, 또 하나님께서 그것만큼은 관대하게 용서하시리라는 망상을 갖기 쉬웠기 때문이다.
2. 짐꾼은 "여러 가지 짐을 나귀에 실어 운반했다." 그러나 "안식일에는 유축을 쉬게 하고" (신 5:14). "짐을 지지 말라" 는(렘 17:21) 특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리낌없이 행했다.
3. 행상인과 도붓장수 그리고 소상인들은-그들은 유명한 상업 도시인 두로 사람들이었다-안식일에도 "각양 물건을 팔았다" (16절). 그리고 유다 예루살렘 자손들은 그것을 사서 하나님 아버지의 날을 장사하는 날로 만드는 데에 그들과 합세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모든 일을 하지" 말라고 금하는 제 4계명을 어겼다. 이 백성들이 "성소를 버리고 안식일을 범했을" 때에, 전반적으로 그들의 믿음이 타락하고 풍습이 부패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Ⅱ. 그 폐습의 개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성을 기울이는 자들은 하나님의 안식일이 범해지는 것을 목격했을 때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선한 사람이 어떻게 안식일을 바로 잡았는 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1. 그는 안식일을 범하는 자들을 "경계하였고" (15절) 그 말이 다시 나온다(21절). 그는 그런 일에 혐오를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그것이 큰 죄라는 것을 인식시키려 했고, 또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 증거로서 보여 주었다. 그는 그것이 죄악이라는 것을 밝히기 전에는 벌하지 않았다.
2. 그는 민장들과 그 일에 관한 시비를 따졌고, 유다의 귀인들을 꾸짖고 논쟁했다(17절).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이라도 그들을 책망하기에 합당한 직분을 맡은 자들로부터 그들의 잘못에 관한 말을 들어야 한다. 오히려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이 여기에서와 같이 제일 먼저 책망을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1)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이같이 행하라." 그들은 곡식을 나르지 않았고, 물고기를 팔지도 않았다.
①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는 자들을 묵인하고 자기들의 권력으로 그들을 규제하지 않음으로써, 그들 자신도 공범자가 되었다. 그들은 무용지물의 칼을 차고 있는 치리자들에 지나지 않았다.
② 그들은 다른 일에 있어서 나쁜 본보기를 보여 주었다. 귀인들 스스로가 안식일에 유희나 오락을 일삼고 쓸데없이 남을 방문하여 잡담이나 한다면, 도회지나 시골에 있는 상인들도 그렇게 세속적인 일로 안식일을 더럽힐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악으로 인도하는 우리의 행위에 대해 책임이 있다.
(2) 그는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과 자신들을 지극히 모독하는 것이라고 책망했다.
(3) 그는 그들과 함께 이 일의 시비를 따졌다(18절). 그리고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죄이므로, 그들이 이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또다시 죄를 짓는다면, 그들은 더 재앙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인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에스라도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우리가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면 주께서 어찌 진노하사 우리를 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스 9:14)
3. 그는 오직 개혁하기를 뜻하는 자로서, 안식일을 범하는 것을 막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만일 그가 그들을 개혁할 수 있었다면 그는 그들을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가 그들을 벌했다면, 그것은 단지 그들을 개혁하기만을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치리자들도 제재를 받아야 할 자들이요, 신중히 재갈과 굴레를 사용하여 될 수 있는 한 징계가 필요치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모범을 보인 일이다.
(1) 그는 성문을 안식일 전 저녁부터 안식일 후 아침까지 닫아 두도록 명하고, 자기가 데리고 있는 종들로 하여금(그는 이들의 관심과 용기와 정직성을 신뢰할 수 있었다) 성문을 지키도록 했다. 그리하여 안식일 날에는 물론 그 전날 밤 늦게나 그 다음날 이른 아침에도 그곳에 짐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함으로써,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19절). 성전 뜰에 예배드리러 오는 자들은 물론 통과시켜 주었으나,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성 밖에서 자야만" 했다(20절). 이들은 물론 안식일이 빨리 지나 곡식을 팔 수 있기를 원하는 자들이었다.
(2) 그는 상품을 가지고 성문으로 오는 자들에게 경고했다. 그들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다시 오면 틀림없이 그들을 잡겠다고 말함으로써(21절) 더 이상 그들이 오지 못하도록 막으리라고 했다. 만일 개혁자들이 결심만 한다면 자기들의 예상보다도 더 많은 성과를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묵인된 악덕은 실로 무서운 일이며, 그것은 충고와 책망에 감히 도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악덕은 숨게 될 것이며, 치리자들이 직접 그 악덕에 위협을 가하면, 움츠려 들고 말 것이다. "심판의 보좌에 앉으신 왕께서 눈에 띄는 모든 악을 전멸시키실 것이다."
(3) 그는 레위 사람들을 명하여 먼저 그들의 몸을 정결케 하여 안식일을 거룩하게 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 몇 명은 "와서 성문을 지키게 했다" (22절). 그와 그의 종들은 곧 궁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없을 때에도 이 안식일이 거룩하게 될 수 있도록 몇 사람에게 명하여 그곳을 지키도록 했다. 치리자들과 사역자들이 힘을 합한다면, 이러한 일뿐만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타난 느헤미야의 용기와 열의와 신중함은 우리가 따라야 할 것들이다. 우리는 느헤미야가 이뤄놓은 개혁이 지속되어 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구주께서 오셨을 때 유대인들이 다른 한 극단으로 나아가 안식일에 정결케 하는 율법에 지나치게 철저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그는 이 구절을 기도로 끝맺고 있다(22절).
(1) 그는 간구했다. "나를 기억하옵소서" (십자가에 달렸던 그 강도도 "주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했다).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시 40:5). 그는 "나를 아끼소서" 하고 덧붙이고 있다. 느헤미야가 "나를 아끼시옵소서" 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은 것은, 자기의 행실이 정당한 상급을 받기에 합당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인 것은 전혀 아니다. 에레미야도 그러했었다(렘 15:15). "주의 오래 참으심을 인하여, 나를 멸망치 않게 하옵소서" (10:24). "나를 진노로 징계하지 마옵소서" (렘 10:24).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렘 17:17). 아무리 선한 성도가 최선의 행동을 하고 있더라도, 역시 그에게는 "아껴주시는 큰 은혜" 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것은 "선을 행하되 악을 행치 않는 의인은 없기" 때문이다.
(2) 그는 탄원했다. "주의 큰 은혜대로" 행하소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호소할 때 의지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지 우리 자신의 공적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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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 여인들을 내쫓(느 13:23-31)
우리는 여기에서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인 그의 나라 사람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 경건한 열의를 쏟은 한 가지 실례를 더 읽을 수 있다. 그는 그의 권력을 그 자신을 부요케 하는 데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일을 하려는 데에 썼다.
Ⅰ. 그들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함으로써 자신들을 타락시켰다. 이것은 에스라의 시대에도 책망되었던 바요, 그 때에도 그것을 개혁하기 위해 많은 시도가 행해졌었다(스 9, 10장). 그러나 더러운 영은 쫓겨나갔다가도, 감시를 소홀히 하면 그것은 또다시 돌아오려 한다. 비록 에스라 시대에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자들은 그 여인들을 추방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집안의 싸움과 혼란만 초래했을 뿐이며, 어떤 사람들은 전혀 이 경고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Nitimur in Vetitum-" 우리는 여전히 금지된 것에 마음을 쏟는다." 느헤미야는 훌륭한 총통답게, 그의 책망을 받은 자들의 집안 상황을 물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고 물 근원을 바로 잡음으로써 시냇물의 방향을 바로잡으려 했다.
1. 그는 그들이 어디서 아내들을 취했는가를 물었다. 그리고 그는 많은 유다 사람들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다는" 것을 알았다(23절). 그들이 그렇게 행한 것은, 먼 곳에서 아내를 취하는 것을 좋아했거나, 이방 여인들과 연합함으로써 그들 자신을 강하게 하고 부요케 하려는 탐욕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이 일을 얼마나 책망하셨는가를 보라(말 2:11). "유다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 에스라 시대에 바로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과 맺었던 계약을 파기했다. 유다는 "이방신의 딸(즉 그것을 섬기는)과 결혼하여 여호와의 성결을 욕되게 했다."
2. 그는 그 자녀들과 이야기해 보고는, 그들이 "이방 사람의 자녀" 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었기" 때문이다. 그 자녀들은 그들의 어머니에게서 자라났고, 그 어머니와 그들의 유모와 종들의 말을 배웠다. 그러므로 그들은 유다 말을 전혀 못하거나, 쉽고 명료하게 발음하지 못하며, 그들 어머니의 나라에 따라 "아스돗 방언" 을 혹은 암몬이나 모압 방언을 "절반쯤" 할 뿐이었다. 다음을 주목하자.
(1) 자녀들은 유년 시대에 어머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Partus sequitur ventrem-사람은 어머니를 닮는 경향이 있다.
(2) 만일 양부모 중 한 사람이 나쁘다면, 자녀들은 곧 그 나쁜 성품을 닮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는 그 어느 한편도 부당한 멍에를 져서는 안 된다.
(3) 자녀를 교육할 때에 그들의 언어를 규제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했더라면, 그들은 아스돗 방언을 배우지 않았을 것이며, 불경스럽고 더러운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불순한 대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Ⅱ. 느헤미야는 이러한 부패가 만연된 것을 알았을 때, 어떤 방법으로 그 부패를 일소했는가?
1. 그는 그 행위가 죄악이란 점과, 자기는 그러한 죄악을 경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밝혀 주었다. 그는 그들을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심판에 의해 벌을 받아야될 죄악이었다. 결코 그가 묵인할 수는 없었던 죄악이었다(27절). "너희가 그것을 변명하고 용서를 구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그것은 죄악이다. 큰 죄악이다. 이방 여인을 취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막기 위해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 너희는 그들과 이혼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왜냐하면 죄를 씻고 죄가 감염되는 것을 막는 방법은 이 밖에는 달리 그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1) 그는 그것 자체가 큰 죄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계율을 인용했으며, 그들로 하여금 그 계율에 대해 맹세하도록 했다. 그런데 그가 인용한 구절 "너희는 너희 딸들로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라" 등은 신명기 7장 3절에서 온 것이다. 사람들을 죄에서 돌아서게 하려 할 때, 우리는 계명의 거울을 통해 그 죄의 죄악성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2) 그는 그것이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선례를 인용했다. 그러므로 그러한 죄는 주권자가 문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26절).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위대하고 훌륭한 자들의 실패담이 기록된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경고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 유혹을 피해 극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솔로몬은 지혜에 뛰어난 자였다. 지혜에 있어서 그를 따를 만한 왕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이방 여인들과 결혼했을 때는, 그의 지혜가 그들의 함정으로부터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오히려 지혜는 그를 떠나게 되었고, 그는 매우 어리석게 행하였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였다. 그러나 그가 이방 여인들을 취함으로 해서, 하나님의 은총이 떠나게 되었으며, 그의 영혼에 있는 거룩한 은총의 불꽃은 거의 꺼져가게 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왕인 그가 이렇게 행함으로써 그의 열두 지파 중 열 지파를 잃고 말았다. "너희는 이방 여자들과 결혼하고서도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고결함을 지킬 수 있다고 변명하나, 솔로몬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즉 그에게까지도 이방 여자는 죄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위기에 처했을 때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2. 그는 그런 일에 대해 그 자신이 몹시 불쾌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줌으로써, 그들에게 죄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 주고자 했다. 그는 "그들을 책망했다" (25절). 그들은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 했지만, 그는 그들의 변명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닫게 하고 격렬하게 책망했다. 그는 그들을 잠잠하게 하고 나서 "그들을 저주했다." 즉 그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할 것을 고했으며, 그들의 죄에 대한 대가가 무엇인가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들 중 유난히 완악한 자들 몇 사람을 끌어내어 "때렸다" (즉 그 일을 담당한 재판장들로 하여금 율법대로 그들을 때리게 했다. 신 25:2, 3). 그리고 그들에게 더욱 더욱 수치스러운 흔적을 남긴 것은, 그가 "그 머리털을 뽑거나" , 자르거나 혹은 밀어버린 일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머리 속이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으므로, 그가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을 추하게 그리고 굴욕을 느끼게 만들었으며, 그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적어도 한동안 그들에게 낙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에스라는 그 자신의 머리를 뽐음으로써, 죄에 대한 자기의 슬픔을 표했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죄인들에 대한 거룩한 분노로 그들의 머리를 뽑았다. 이 지혜롭고 선하며 유익한 자들의 기질에 차이점이 있는 것을 보라. 그들의 은사나 품성은 다양하나, 모두 한 성령에서 나온 서이다.
3. 그는 그들에게 더 이상 이방 여자들을 취하지 말며, 아내로 취한 그들과 헤어지라고 명했다. 그는 "저희로 이방 사람(남녀 모두)을 떠나게 하여 깨끗하였고" , 또 그들로 하여금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게 했다(25절). 이처럼 그는 이 재앙을 막고 이 길로 빠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시도했다.
4. 그는 제사장들의 가문에 대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그들이 이러한 오점, 이러한 죄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그는 심문에 의해 대제사장 자신의 족속 중 그의 손자 한 사람이 악명 높은 유다의 산발랏의 딸과 결혼하여(2:10; 4:1) 사마리아 사람들과 세력을 합해 나쁜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28절). 하나님과 자기의 조국에 모두 숙적인 자와 친분을 맺는 자는 하나님과 자기의 조국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자이다.
이 젊은 제사장은 그의 아내를 버리려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그 제사장을 "쫓아내어 그를 떠나게 했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그의 위신을 격하시키고 지위를 박탈당했으며 다시는 제사장의 직분을 맡을 수 없게 했다. 이에 대해 조세푸스(Josephus)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추방당한 제사장은 므낫세이며, 느헤미야에 의해 추방당하자 그의 장인 산발랏에게로 갔다. 이때 산발랏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과 같은 성전을 그리심산에 지어 주면서, 그로 하여금 그곳의 대제사장이 되게 했다. 그리하여 사마리아 사람들의 허세 위에 세워진 성전은 구주께서 오셨을 때까지도 남아 있었다" 는 것이다. 요한복음 4장 20절에 "우리 조상들은 이 산(그리심산)에서 예배하였다" 고 했다.
느헤미야는 이처럼 제사장의 영예를 잃어버린 자를 내쫓은 후, 다시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세워 각각 그 일을 맡게 했다" (30절). 그 지위에 합당치 못한 자를 이별하는 일은 손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 그 후 제사장의 직무는 그 없이도 더 잘 수행되었을 것이다. 유다가 나갔을 때도, 그리스도는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다" 고 말씀하셨다(요 13:30, 31).
이 때에 느헤미야는 기도를 했다.
(1) 그는 "내 하나님이여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기도했다(29절). 즉 "여호와여 그들로 하여금 잘못을 깨달아 회개하게 하소서. 그들이 마땅히 되어야 할 것과 행해야 할 것을 충심으로 깨달아, 그들의 본연의 위치로 돌아오게 하소서" 라는 것이다. 또는 "그들을 기억하사 그 죄를 헤아리소서. 그들의 죄를 기억하소서" 라는 기도이다. 우리가 후자의 해석을 택하면,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억하시어, 그들을 치시리라는 예언으로 볼 수 있다.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힌 자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이므로, 그는 자신의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자들이 너무 많았으므로 느헤미야가 일일이 그들을 처벌하기가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말했다 "여호와여, 그들을 처리해 주소서. 그 일을 주의 손으로 처리해 주소서."
(2) 그는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소서" 하고 기도했다(31절). 민중들은 흔히 자기들을 위해 최대의 봉사를 한 사람조차 종종 잊어버린다(전 9:15).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그 사실을 아뢰어 자기에게 보상해 주기를 원했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상금을 주시는 분일 줄을 알았고, 또 그가 받으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한 기도는 우리가 드리는 간구의 요약이 될 수 있다. 그 기도보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 줄 것은 없기 때문이다. 즉 "내 하나님이여! 영원히 나를 기억하소서" 하는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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