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딛3.destiny, original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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딛3장 [320.나의죄를정케하사]

1.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추악한-토할 것같은/구역질나는/밥맛없는-증오/혐오/밉살스런)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8.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11.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부탁과 끝 인사

12.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

13.  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고

14.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

15.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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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us 3  Amplified Bible

===Godly Living

1 Remind people to be subject to rulers and authorities(세상의 유익을 위해 통치자와 권세자를 세우신 주님의 심정따라 권위에 순복하기), to be obedient, to be ready and willing to do good,(매사에 선한 일를 잘 준비하고 기꺼이 지고지선을 추구하기...분산/산만함-냉담함을 유발할 수 있는 것들을 피하고 금하되, 오직 집중된 거룩한 마음으로 성령따라 그리스도로 살기) 

2 to slander(중상-훼방-폄훼) or abuse(모욕-악담-악용/폄론) no one, to be kind(온유, 친절=충만한 참생명 Q의 부드러움과 탄력성 + 선대/예의바름) and conciliatory(화목/화평케 하는) and gentle(관용..역지사지 입장에서 개선/발전/궁극적 구원을 기대-소망하며, 늘 새로이 생명관점에서 민감한 영적 감수성으로 중보하면서 용서하기 잘하며 부드러우나 날카로운 일깨움으로 선대하며 관심을 가지고 품어 도와주며, 일절 오래참고 견디며 기다려 줌), showing unqualified(제한 없는,무조건적인, 적합하다 여겨주는, 세심한) consideration(배려, 고려) and courtesy(예의바름, 정중함) toward everyone. 

3 For we too once were foolish, disobedient, deceived, enslaved to various sinful desires and pleasures, spending and wasting our life in malice and envy, hateful, hating one another. 

4 But when the goodness and kindness of God our Savior and His love for mankind appeared [in human form as the Man, Jesus Christ], 

5 He saved us, not because of any works of righteousness that we have done, but because of His own compassion and mercy(구주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 그 사랑 나타내심, 곧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자비와 긍휼), by the cleansing of the new birth (중생/거듭남의 말씀..spiritual transformation영적 변형/변환, regeneration 참생명의 재생/갱신/부활-resurrection) and renewing(<구주JC를 통해 오신>갱신하시는 성령..다시, 늘 새롭게 하심) by the Holy Spirit, 

6 whom He poured out richly upon us through Jesus Christ our Savior, 

7 so that we would be justified [made free of the guilt of sin] by His [compassionate, undeserved] grace, and that we would be [acknowledged as acceptable to Him and] made heirs of eternal life [actually experiencing it] according to our hope (His guarantee). 한량없는 구주의 긍휼 풍성 가득한 은혜로 의롭다하심 받고<하나님께 합당히 여김 받고, 정죄감에서 자유한> 영생의 상속자 되었는 바 그 소망을 따라 이를 보증하시는 성령의 실제적으로 경험케 하심을 누림.

8 This is a faithful and trustworthy saying; and concerning these things I want you to speak with great confidence, so that those who have believed God [that is, those who have trusted in, relied on, and accepted Christ Jesus as Savior,] will be careful to participate in doing good and honorable things. These things are excellent [in themselves] and profitable for the people. 

9 But avoid foolish and ill-informed and stupid controversies and genealogies and dissensions and quarrels about the Law, for they are unprofitable and useless. 

10 After a first and second warning reject a divisive man [who promotes heresy and causes dissension—ban him from your fellowship and have nothing more to do with him], 

11 well aware that such a person is twisted and is sinning; he is convicted and self-condemned [and is gratified by causing confusion among believers].

===Personal Concerns

12 When I send Artemas or [perhaps] Tychicus to you, make every effort to come to me at Nicopolis, for I have decided to spend the winter there. 

13 Do your best to help Zenas the lawyer and Apollos on their way; see that they are supplied and lack nothing. 

14 Our people must learn to do good deeds to meet necessary demands [whatever the occasion may require], so that they will not be unproductive. 

15 All who are with me greet you. Greet those who love us in the faith.   Grace be with all of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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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3장 (개요)

아래의 내용을 고찰해 보자.

Ⅰ. 그리스도인 공동의 의무와 그 이유(1-8).

Ⅱ. 가르침에 있어서 피해야 할 것, 이단에 대한 처리, 그 외의 몇 가지 지시(9-14).

Ⅲ. 마감 인사(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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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의무(딛 3:1-8)

바울은 앞서 디도에게 몇몇 종류의 사람들이 지켜야 할 특별한 의무에 대하여 지시하였다.  

이제는 보다 일반적인 내용, 즉 권세잡은 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며, 언제든 선을 행할 준비를 하고,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정중하고 정당하게 대하여 신앙에 부합되고 참된 신앙을 따라 살아내는 일을 하도록 부탁하고 있다.  그러므로 디도는 이 모든 일을 명심하여 그들을 권면해야 했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기억하게 하여 주는 사람이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그의 백성들을 기억하시게 하듯(사 62:6) 설교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기억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벧후 1:12).  

누구든 자기 임무를 망각하기란 쉬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의무를 기억하게 하고 재촉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그들의 의무와 그 이유를 살펴 보자.

Ⅰ. 성도들에게 일깨워 주어야 할 의무.

1.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정사는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이 마련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이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할 것이다.  

강요와 강압에 못이겨서가 아니라 [주 임재앞에서, 말씀에 비추임 받은] 양심에 비추어 자진해서 실행하는 복종이어야 한다.  

"권세잡은 자들" 즉 어떤 형태의 정치 기구이든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 정부의 관리자들, 수상이든, 장관이든 아니면 하급 관리이든, 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들은 [합법적이며 양심적인 일에 있어서!!] 권세잡은 자들에게 복종하고 그들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이 복종은 그 직분상 요구할 수 있는 마땅한 것이다.  역사상으로 볼 때, 기독교란 종교는 [마치] 제왕의 권리나 지상의 권력에 대해 타고난 [부정적]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마치 기독교가 [괜히. 이기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선동과 소요를 일으켜 합법적인 권력에 대항하여 반대하고 있는 것처럼 기독교의 반대자, 적대자들은 허위선전하여 왔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의 무지로 하여금 침묵하게 하기 위하여" 악의에 찬 적대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은 자기들을 다스리고 있는 정치적 권세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태도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한편, 자유에 대한 자연스러운 소망은 [반드시!!] 이성과 성서에 근거하여 지시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져야 할 사회적인 의무를 대하여 영적인 특권을 소유한 자라도 [사회적 공익을 위해] 그 져야 할 사회적 의무를 피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자원함으로써] 확실하고 강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그리고,

2.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어떤 주석자는 여기에 나타난 선한 일을 정치적 권세가들이 요구하는 것으로 정치적인 범주에서 해석하려 한다.  

"바른 질서를 세우고, 공공의 안녕과 평화를 보호하며 증진시키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머뭇거리지 말고 준비하며 그러한 일을 도모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원래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선한 행실에 포함되는 것은 맞지만 이 말씀을 정치적 범주로만 제한할 수는 결코 없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하며, 또 예비함]. 이 말씀은 모든 종류의 선행, 하나님이든 우리 자신이든 우리의 이웃이든 그들에 대하여 기회가 생기는 대로 선한 일, 즉 세상에서 기독교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일을 하라는 뜻이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 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이것들을 행하고 따르고 도모하라.  선행 없이 단지 해롭지 않은 공손한 말과 착한 의도만으로 만족해선 안 된다.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 흠없고 순결한 신앙은 이것이라. 고통 중에 있는 아비없는 자와 과부들은 방문하고[돌보고] 세상에 물들지 말지어다."  

"선을 행할 기회를 얻지만 말고 구하라. 그 일에 합당하며 준비하라. 그 기회를 남에게 미루지 말고 네 스스로 그 일을 잡으라. 그 일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온 마음을 여기에 둘지어다."

3. ‘메데나 블라스페메인’(3:2) - 즉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아무도 욕하거나 저주하거나 모함하지 말며, 또는(공동 번역에서처럼) 누구를 헐뜯거나, 정당한 사유없이 남을 부당하게 혹은 필요없이 헐뜯지 말라.  자신이나 남에게 이익이 되지는 못할 망정 해가 되는 일은 철저히 삼가라.  

만약 불필요하게 남을 헐뜯어 유익할 것이 없는 경우라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라.  

우리는 결코 남을 헐뜯는 일을 즐기거나, 어떤 일이든 나쁘게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며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처럼 나쁜 이야기들을 지어내거나, 이웃의 이름에 누명을 씌운다던가 형제의 사랑을 파괴하는 모든 일을 저지르는 일이 없어야 한다.  허위 진술, 못된 의도로 하는 설득, 또는 위선적인 어투, 이런 것은 우리가 깨달아 고치기 어려운 것들로 이것 또한 금할 사항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러한 못된 것은 너무나 일반적인 것이어서 더욱 사악한 것이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 것이다(약 1:26)."  

이와 같은 무절제하고 무자비한 말들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며 인간들 사이에 해독을 가져오는 것이다.  

"허물은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즉, 허물이 있는 자보다도 자신에게 이와 같은 자비와 관용을 구하는 자이다..역지사지!!),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지니라"(즉, 남의 잘못을 세상에 공표하는 자이다)(잠 17:9).  

그런 사람은 자신과 친구사이, 혹은 다른 사람들끼리의 사이에 불화와 이간을 만드는 자이다.  이런 일은 반드시 피하여야만 할 죄 중의 하나이다(엡 4:31).  

왜냐하면 이런 잘못에 빠져들면 이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 공동체나 하늘에 있을 축복된 세계에 합당치 못하기 때문이다(고전 6:10).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이런 일을 피하도록 권고하라.  그리고

4. ‘아마쿠스 에이나이’(3:2) - 즉 다투지 아니하면 싸우지 아니하면, 말로나 손으로 싸우지 아니하면, 악하고 헐뜯는 말로 앙갚음을 하기 쉬운 다혈질의 싸움을 좋아하는 성격을 버리면, 이에 더하여 노하거나 해를 주는 폭력으로 대하지 말고 매사에 정중하고 온화한 태도로 모든 일을 처리할 때 선하고 중요한 일에 경건한 결과를 낳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평화를 유지하는 일을 따라야 할 것이다.  

또한 거칠거나 난폭하거나 해하는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지 말고, 평화와 사랑의 하나님의 종으로서 합당한 평화로운 방법으로 처리해야 한다(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지혜와 의무이다.  

"인간의 영광은 범죄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에 의해 이성이 개발되고 성장하는 참 그리스도인의 합리적인 의무이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를 해롭게 한 사람에게 즉시 앙갚음을 하지 않고 하나님처럼, "노하기를 더디하여 용서하기를 즐겨할 것이다."  

다툼과 충돌은 인간적인 욕망과 다스릴 수 없는 불 같은 감정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으로, 반드시 재갈을 물리고 절제할 것이며 여기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명심하자, 노하며 다투기 좋아하는 마음으로 일하여 하나님께 욕을 돌리거나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일, 신앙에 흠을 돌리게 하고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불화를 조장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사람이 강한 자보다 나으며, 자기의 심령을 다스리는 자는 한 성읍을 다스리는 것보다 더 나으니라" 계속해서,

5. 관용하며, ‘에피에이케이스’ - 즉 온순하고 올바르며, 혹은 어떤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공평하고 정당하며, 나쁜 의미를 가지고 행동이나 말을 하지 말며, 때로는 엄격한 태도를 요구하는 평화를 위한 일을 하며,

6.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우리는 온유한 성품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마음 가운데 온유함을 지닐 뿐만 아니라, 그 온유함을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야 한다.  

"범사에 온유함으로" ....모든 경우에 어떤 장소에서든지 항상 온유하여야 하며 친구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하여 온유하여야 할 것이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 3:13).  

"죄와 사람을 구별하여, 사람은 긍휼히 여기고 죄는 미워할 것이라.  죄와 죄사이를 구별하여 모든 것을 같은 것으로 여기지 말라.  기둥이 있고 담장이 있느니라. 죄인과 죄인도 구별하여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유 1:22, 23)." 이것을 명심하라.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순수(성결)하고 화평하며 관용하며 다루기가 쉽다(양순하다)."  온유한 심령과 태도는 신앙이 올바른가를 보여 준다.  

이것은 위대한 본보기가 되신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얻은 것으로, 그 자체로써 이미 상을 받은 바 되었으나, 이야말로 기쁨과 즐거움이 이런 식으로 교육받고 인도받을 때 양식에 부족함 없이, 구원의 만족 안에 살게 된다.  이상으로 디도가 사람들에  기억하여 지킬 의무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Ⅱ. [위의 권고의 말씀이]첨부된 이유들

1. 그들이 지내온 과거의 환경 때문에 인간의 본능적인 환경을 돌이켜 봄으로 아직도 그런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용과 온유의 평등을 베풀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이것은 아직 회개하지 않고 사람들에 대하여 교만을 버리고 자비와 희망을 주는 일을 해 주려는 것이다.  

"우리 자신도 과거에는 그렇고 그렇지 않았는가 타락하였고 죄많은 자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옛날의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너그럽지 못하고 냉정하며 쌀쌀하게 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때에 우리가 경시당하고 거만하고 거칠게 다루어졌는가? 아니다, 오히려 관용과 따스함으로 대접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등의 원칙에 따라 회개하지 않은 자들을 그처럼 대해야 한다.  Quod titbinon uis fieri, alferi ne feceris - 즉 네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들은 남에게 행하지 말지어다."  과거 그들의 본능적 상태는 몇 가지로 나타낼 수 있다.

(1)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참되고 영적인 이해나 지식도 없이 하늘 나라의 일에 대하여 무식하였다.  그런 자들은 이미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우리의 죄를 범하기 쉬운 자들이요,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온유하고, 겸손하며, 인내를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이미 한 번은 그렇게 되길 바라고 요구하였었다.

(2) "순종치 아니한 자요" 

완고하고 고집이 센 자들이었으며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본질적인 율법에 대하여 반대하고 인간 사회가 요구하는 법도를 파괴하려고 하였다.  

"어리석음과" "불순종"은 언제나 함께 따라 다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적인 것이든 제시된 것이든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께 순종치 않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이 또 있겠는가.  이것은 올바른 이성과, 인간의 진실하고 위대한 관심에 상반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것을 반대하고 어기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이 있으랴?

(3) "속은 자요"(3절), 혹은 진리와 거룩함의 길에서 벗어나 방황하는 자이다.  

이렇게 방황하는 상태에 있는 사람은 딴길로 벗어난 사람으로 잃은 양 한 마리와 비교할 수 있다.  이런 자는 찾아 올바른 길로 인도받아야 한다(시 119:176).  그는 약하고 사탄의 간교한 꾀임이나 술수에 넘어가기 쉬우며 유혹과 오류에 빠질 소질이 다분한 사람이다.

(4)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즉 정욕과 행락의 노예이며 종이 되었던 자이다.  속은 사람은 쉽사리 함정에 빠지고 유혹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들이 정욕과 행락의 노예가 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눈이 멀거나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또한 세상이 일반적으로 누리고 있는 육적이나 관능적인 삶에 대하여 전혀 다른 어투로 말하고 있음을 보라.  

육적인 인간들은 자기들이 자기의 행락을 즐긴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사도는 육신의 노예 상태로 표현하였다.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육신의 노예 상태에 얽매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것들에 사로잡혀 그것들의 일군과 폭군으로서 세상을 섬기게 되는 한 그들은 자기 안에 있는 자유와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죄의 노예가 된 자는 많은 주인을 섬겨야 하는 불행이 있다.  탐욕이 그들을 한 곳으로 몰아 붙이면 다른 것이 또 다른 곳으로 몰아 붙인다.  

교만이 이렇게 하라 요구하면, 욕심이 다르게 명령한다.  때로는 서로 상반되는 길로 가라고 서로 주장한다.  죄인들은 얼마나 불쌍한 노예들인가! 

그런데도 자기들은 자유롭다고 여기고 있으니! 탐욕은 그들을 유혹하며 자유를 약속하였으나 복종하다 보면 어느새 그들은 방탕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가 극복한 바른 그것에 매이게 되기 때문이다."

(5) 약독은 그들 가운데 기승부리는 정욕의 하나이다.  악독한 자는 다른 사람을 해하고 그것을 기뻐하는 자이다.

(6) "투기로 지낸 자요"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에 대하여 불평하고 심술부리며, 만사에 자기의 재산이나 성공을 얻고자 애태우며 조바심하는 자이다.  

그 두 가지가 다 괴로움의 근원이며 그것으로부터 모든 악이 생겨 나오게 된다.  

악한 생각과 말, 지옥불에 담겨진 혀, 이것은 다른 사람의 정당한 칭찬을 헐뜯고 진리를 떠나 상하게 한다.  

"그들은 말은 검과 같아서" 그것으로 이웃의 명예와 공명에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한다.  

이것이 사탄의 죄이며, 자기의 동생을 죽이고 가장 악한 죄를 저지른 가인의 죄이다.  

왜냐하면, 그가 동생을 죽인 것은 "자신의 행실은 악하고 동생의 행실은 선하다는 이유로" 악독과 투기가 생겨 저지른 죄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것들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지 않았던 옛 생활 가운데 범했던 죄 중의 하나이다.

(7) "가증스러운 자요" 

혹은 얄미운 자요, 이런 증오를 받을 만하다.

(8) "피차 미워하는 자였으나" 

죄 안에 살며 죄 안에 자신을 맡기는 죄 많은 자들은 하나님이나 모든 선한 사람들에겐 가증스러운 자들임을 유의하자.  

그들의 인격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의 기질과 성향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성도들의 의무이며 행복인 반면, 서로 미워하는 것은 죄인들의 불행이다.  

지금은 회개하여 선한 사람이 되었으나 옛날 아직 회개하지 못했던 상태에서 사나운 짐승처럼 서로 헐뜯으려고 달려가는 인간의 못된 본성에서부터 비롯된 분쟁과 다툼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이런 것들을 우리의 옛날과 견주어 볼 때, 마음을 진정하고 보다 친절하고 온유하게, 다정하고 부드럽게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그들을 대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그들의 옛날 사정을 언급하고 있다.

2. 현재의 입장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공적이나 자신의 힘으로, 그러한 과거의 참담한 상황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요, 오로지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자비를 힘입고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구원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을 돌이켜 보건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미워할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그들을 긍휼히 여기며 그들을 향하여 소망을 가짐으로, 비록 그들이 옛날의 우리처럼 자비를 얻기에 합당치 않으며 가치없는 형편에 있을지라도,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자비를 얻게 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서 사도는 이 기회에 다시 구원의 원인들을 열거하고 있다(4-7절)

(1) 우리의 구원의 주역인 아버지 하나님, 그러므로 여기에 우리 구주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케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  

타락했던 죄인이 생명과 행복을 얻는 모든 일은 새 창조에 속한 것으로, 이 모든 것은 이를 계획하시고 시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다.  

유지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일하시는 데에도 질서가 있다.  아버지께서 시작하시고 아들이 다스리시면 성령께서 일하시고 모든 것을 완전케 하신다.  

하나님(즉 아버지)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통하여 구주가 되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 외아들을 보내시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며 그를 통하여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신다.  모든 영적인 축복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아버지로부터 오는 것이다(엡 1: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기뻐한다"(롬 5:11).  그리고 "우리는 한 마음과 한 입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롬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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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5:17-19]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AMP] *17.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that is, grafted in, joined to Him by faith in Him as Savior], he is a new creature [reborn and renewed by the Holy Spirit] ; the old things [the previous moral and spiritual condition] have passed away. Behold, new things have come [because spiritual awakening brings a new life]. *18.  But all these things are from God, who reconciled us to Himself through Christ [making us acceptable to Him] and gave us the ministry of reconciliation [so that by our example we might bring others to Him],   *19.  that is, that God was in Christ reconciling the world to Himself, not counting people’s sins against them [but canceling them]. And He has committed to us the message of reconciliation [that is, restoration to favor with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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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원의 기원과 시발점.  

하나님의 "박애 정신" 또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친절과 사랑".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를 인하여 구원받은 것이다.  이것이 근거이고 동기이다.  

고통받는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앞바퀴이며, 혹은 바퀴들 안에 있는 정신이며, 이것이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고 계속 움직이게 해 준다.  

하나님은 그분 이외의 다른 것으로 움직여지지도 않으며 불행과 사악함에로 하나님은 움직이신다.  

그러한 고통을 가져 오는 죄는 연민보다는 진노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으로 자신의 영광과 완성에 합당하게 만드는 방법을 아시고 그들을 파멸시키시기보다는 구원하고 동정하시려 하신다.  

그는 자비를 베풀며 기뻐하신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풍성하고"(롬 2:4; 엡 2:7), 우리는 이 일을 깨닫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은혜를 방종으로 없애지 말고 감사하고 순종하자.

(3) 구원의 방법, 혹은 수단적인 원인. 복음 가운데서 하나님의 의와 같은 사랑과 은혜가 빛나게 나타나셨다.  

"나타나실 때에" 즉 말씀으로 나타나실 때에, 사랑과 은혜가 나타나심은 성령을 통해서 인간을 부드럽게 하며, 변화시켜 하나님께 돌아가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구원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인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구원의 주역 그의 무한한 은혜는 구원의 근원, 그리고 복음을 통하여 나타난 것이 구원의 방법이라면 이 모든 것의 영광은 그가 잘못된 근거로부터 멀리할 때 높여지게 된다.

(4) 잘못된 근거와 동기.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우리가 행한 일을 보신 것이 아니라 다만 주의 은혜와 값없이 주는 자비로 말미암은 것이다.  

구원받은 자들은 의로운 행실을 이루어야 하지만 그의 행실이 구원의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행실이 천국으로 가는 방법이긴 하지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결정적인 대가는 될 수 없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측량할 수 없는 사랑과 자비의 원칙에 의해 이루어진다.  선택은 은혜이다.  우리는 거룩하게 택함받았다.  

그것은 그렇게 택함을 받을 정도로 전에 보였기 때문이 아니다(엡 1:4).  행실은 택함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 2:13),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최초로 알 수 있는 부르심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는 자 되었으며"(롬 3:24),  은혜로 구원을 받고 성결하게 되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믿음과 모든 구원의 은사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는 선물이며 주의 역사하심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과 진행, 그리고 영광 중에 완성을 이루는 모든 것이 그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  

사랑으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성전을 이룰 때, 기초로부터 꼭대기에 이르는 동안 우리의 은혜, 은혜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의 행적에 의함이 아니니 누구든 그것으로 자만할까 함이요, 은혜로 말미암음이니 이는 찬양하는 자가 오직 주 안에서만 찬양하게 하려 함이라.  

이상과 같이 올바른 구원의 근거가 밝혀졌으면 그릇된 근거는 버릴 것을 지시하였다.

(5) 구원의 형식적인 이유, 구원의 근거, 혹은 적어도 구원의 시작의 근거. 여기에서 재생, 혹은 영적인 중생.  

"낡은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  물리적이며 현상적인 의미로써가 아니라, 도덕적 영적인 의미로 새롭게 되었다.  

사람은 꼭 같은 사람이나 다른 성격과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 악한 행실이 만연되어 있으나 그는 이것을 모두 버렸다.  

약간이나마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머잖아 버려질 것이고 하늘 나라에 합당한 행실로 가득 찰 것이다.  

사람을 새로운 사랑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유도하고 움직이게 하고, 주장하고, 이루어 주고, 새로운 생각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며, 생활과 행동을 새롭고 경건함으로 변화시키도록 이끌어 준다.  인간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게 된다.  

그것은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에게서부터 얻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로 합당하도록 이끌림을 받기도 한다.  

은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 완전에 이르기까지 성장하고 증가한다.  이런 뜻에서 "그가 우리를 구하셨다"고 기록한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시작되었는가.  마치 현재 시간 안에 완전하게 된 것같이,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것처럼 표현하였는가?  지체하지 말고 그것을 살펴 보자.  

우리는 우선 현재, 중생 함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그래야 이 근거 위에 하늘 나라에서 이룰 완전한 구원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변하는 정도의 문제이지 그 질이 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은혜를 입은 것은 이미 영광을 얻었다는 것이나 영광은 은혜가 그 충만한 분량에 이를 때에야 영광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그 시간도 안 되어 행복한 것이 두려운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하늘나라를 소유하고자 한다.  그런데 현세에선 거룩함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즉 그 말은 그들은 시작도 하지 않고 끝만 소유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된다.  죄인들은 이처럼 어리석다.  

그러나 중생없이는, 즉 첫 번 부활없이는 의로운 자들의 부활인 두 번째 부활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여기에 복음으로 새롭고 거룩한 생활을 하라는 형식적인 구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6) 세례를 통해 얻는 외적인 상징과 표시.  그래서 이를 "중생의 씻음"이라고 부른 것이다.  

중생 자체는 내면적이며 영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례를 통하여 외적으로 증명하고 나타내야 한다.  

물은 깨끗케 하고 정결케 해 주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 육신의 더러움을 씻어 주고 그리스도의 피와 영으로 죄와 더러운 것을 없이 하였다는 표시가 된다.  

죄를 지으려는 근성은 그리스도의 피가 없으면 완전히 사해질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할례와 같은 의미(이제는 할례 대신 세례가 계승하게 되었다).  

하나님 편에 서게 되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었다는 표식이 된다.  그리고 우리의 입장에선 주님과 약속을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를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세례는 형식적으로, 성례전적으로나 구원하는 것이다.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희 죄를 씻으라"(행 22:16).  또한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 5:26), 이러한 외적인 표시와 증거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  그것은 그리스도의 약속을 따라서 행하는 일이다.  

반면에 외모를 씻음으로 세례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세례에 첨부된 언약은 유익과 특권을 보여 주고 제공할 뿐아니라 의무에 묶기도 한다.  

의무를 경솔히 행하고 유익과 특권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이어놓으신 것을 끊지 말라.  

세례는 이와 같이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이 합해질 때 완성되는 것이다.  

할례받은 자가 모든 율법에 대해 빚진 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갈 5:3)  복음으로 세례받은 자는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명령과 직분을 가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 20).  이것이 여기에 "중생의 씻음"이라 기록된 세례, 즉 구원의 외적인 표시와 증거인 것이다.

(7) 새롭게 하는 주역, 즉 하나님의 영.  

그것은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은 이 세 분이 협력하여 이루신다.  

말씀과 성례전과 같은 도구로 배제하지 않는다.  성령은 그것에 의해 역사하신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 모든 것(말씀과 성례전)은 구원의 결과를 가지게 한다.  우리들의 구원의 과정에서 처음과 결과는 모두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 있다.  

우리는 성령으로 태어났으며, 성령에 의하여 재촉받고 성화(聖化)되고, 성령에 의하여 도움을 얻고 힘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죄를 없이하고 의무를 수행하며 하나님의 길을 걷는다.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한 삶의 모든 행위와 작업, 우리 밖으로 나타나는 의(義)의 행실과 열매, 이 모든 것을 복되고 거룩한 성령을 통해 얻어진다.  그래서 성령을 생활의 영, 은혜의 영 또는 성결의 영이라 부른다.  

모든 은혜가 그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진심으로 구하고 정신차려 주의하며 그의 거룩한 역사를 억누르지 말며 그의 역사하심에 반대하거나 반항해서는 안된다.  Res delicatula est Spiritus - 즉 영은 진실된 것이다.  우리가 성령을 바라고 행동하면 성령도 우리를 향하여 오실 것을 기대해도 좋다.  우리가 냉소하고 거부하고 그 역사하심을 거역한다면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거두실 것이다.  우리가 계속 성령을 괴롭힌다면 결국 우리를 떠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성령은 그의 새롭게 하고,  성결케 하며 증거하며, 보증하시는 일로 우리를 인치신다.  그것이 성령의 일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떠한 능력으로도 하나님께 돌아설 수 없으며, 우리 자신의 어떠한 의로움으로도 의롭다함을 입을 수는 더 불가능하다.

(8) 성령의 선물과 은혜를 주시는 방법.  

인색하거나 아까운 마음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값없이, 풍성하게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성령의 선물과 은혜는 율법 아래 있을 때 보다 복음 아래 있을 때 더 충만하게 내려 주신다.  그래서 고린도 후서 3장 8절에는 이를 "영의 직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모든 시대에 걸쳐 교회는 성령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복음의 시대에 들어옴으로 성령은 전보다 더욱 풍성해졌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오심 때문이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온 것이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즉 옛 율법의 약속과 예언을 이루시기 위하여 보다 풍성한 은혜가 내려 왔다.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사 44:3), 

이것이 가장 크고 좋은 축복이며 은혜를 부어 주심이며 성령의 거룩함을 입게 하는 선물인 것이다.  "모든 육신 위에 성령을 부어 줄 것이다"(욜 2:28).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풍성히 줄 것이다.  이런 일은 복음의 시대에 이루어질 것이었다.  

따라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말하면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실 것이며"(행 2:17, 18, 33)하였고, 사도행전 10장 44,45절에는 유대인 뿐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성령이 내렸다"고 거룩하고 있다.  이것은 과연 성령의 놀라운 기적이며 풍성한 은혜였다.  

비록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못했을지라도 이 성령의 은사는 성화(聖化) 은혜와 함께 내렸다.  

그때에 공통적인 은사가 풍성히 내렸는데, 예를 들면 환상, 믿음, 소망, 사랑과 기타 성령의 은사가 풍성히 내렸다.  이런 모든 은사에 동참하도록 하자.  

이처럼 풍성히 부어 주셨어도 우리가 메마른 채로 남아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와 같이 풍성한 은혜를 내렸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은혜가 텅빈 상태로 남아있다면 우리에게 내릴 징벌은 더욱 크게 마련이다.  "성령으로 채워지라"고 사도는 말하고 있다.  그것은 특권인 동시에 의무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복음을 통하여 축복하기고 이루시려는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 아래서 은혜와 모든 영적인 축복을 내려 주시는 방법이다.  풍성히 그는 우리를 향하여 손을 오무리시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향하여, 그리고 우리들 안에 그렇게 하고 있다.

(9) 이 모든 은사를 얻게 해 주는 분, 그리스도 "우리 구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과 구원인 은혜와 은사를 사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다.  

모든 것은 그를 통하여, 구주이신 그를 통하여 오는 것이다.  그분의 행적과 행실은 은혜와 영광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의(義)며, 평화며, 머리가 되시며 그로부터 모든 영적 생활과 열매를 얻게 된다.  "그는 하나님을 우리의 지혜와 정의와 성화와 구속으로 만드셨다." 무엇보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자.  그로 인하여 아버지께 나아가며 모든 성결과 구속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자.  

우리가 은혜를 입었는가? 그로 인하여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그에게 감사하자.  

그를 아는 지식이 날로 성장하기 위하여 헛되고 더러운 것을 버리고, 범사에 그를 위해 살자.  그리고 그 안에서 점점 성장하도록 하자.

(10) 우리가 이러한 새로운 영적인 조건, 즉 의롭다 함을 입고 영생의 소망과 상속권을 얻어야 할 목적.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7절).  

복음의 의미에서 의롭다 함을 얻음은 죄인에 대한 값없는 사면이며, 믿음으로 얻은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로 받아들여짐을 뜻한다.  

그 안에 벌받을 수밖에 없는 죄에 대한 사면과 이제 하나님의 빛에서 의로운 자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은혜가 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셨지만 사실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의로움이 중재되어 그를 믿음으로 우리는 이것을 얻게 되었다(롬 3:20 이하)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를 통하여 얻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4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25,26).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길로 죄인을 의롭다 하신 것은 죄인을 향한 은혜이며, 완전한 의를 통하여 그를 용서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화해의 제물이 되신 때문이며 죄인 자신의 공적 때문이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 기록된 대로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구원하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앞에서 본) 

구원의 근거와 원인이 은혜였던 것처럼 이것 역시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다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얻은 것으로 이것이 유일한 길이며 이것으로 하나님의 율법과 의는 완성을 이루며 믿음으로 그 구속을 얻게 된다.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믿는 이것이니라"(행 13:39).  그리하여 "바울은 그 안에서 율법으로 말미암은 자신의 의로운 바를 구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얻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선행의 공적이나 스스로 행한바 의로움을 믿지 말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고 하나님께 용납받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의로우심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본래부터 타고난 의로움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순종의 행실로 그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도 이를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조건으로 내 놓을 수 없고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고 그리스도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는 증거로써, 그리고 생명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으로서, 생활의 근거요 한 부분으로써 내 놓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주의 은혜로 의로움을 얻어 후사나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 은혜로 우리의 의로움은 영생의 후사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만약 그러한 의로움이 없다면 아무도 택함을 받거나 아들이 될 수 없으므로 상속받을 권리도 없게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세권를 주셨으니"(요 1:12),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영생을 믿게 하시고 소망을 두게 하신다.  그리하여 우리로 영생의 후사가 되게 하셨고 현재에서도 그 기업을 이어받게 하셨다.  

믿음과 소망은 영생에 가까이 가져다 주고 그것에 대한 확고한 기대 가운데서 기쁨으로 가득 채운다.  

가장 겸손하게 믿는 자가 위대한 후사이다.  비록 자기 몫을 수중에 얻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는 은혜를 통하여 확실한 소망을 얻었으며 모든 고난을 이기고 승리할 것이다.  

더 좋은 곳은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를 위하여 하늘에 예비된 부패하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상하지 않은 기업을"바라고 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얼마나 우리는 위로를 받는가! 그리고 이 모든 것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온유하여야"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과 친절로 베풀어 주셔서 너무나 많은 유익을 경험하였으므로 그들도 하나님의 때에 우리와 같은 은혜의 동참자가 되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평하고, 관대하며, 온유하고, 겸손한 행위로 대해야 할 이유들에 대해 살펴 보았다.  

그 이유는 그들 자신의 지난 과거의 잘못과 지금 그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한 상태, 이러한 것은 자신들의 덕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도 그들과 같은 은혜를 입기 원하기 때문이다.

Ⅲ.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보편적인 의무를 말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그 이유를 첨가한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열어 주었을 때 그는 즉시 선한 일을 행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의 의무를 자각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비의 유익을 바랄 수 없기 때문이다(8절).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이것은 가장 중요하며 참된 교훈이다.  목회자들은 이것을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창조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게으른 믿음이 그들을 구원하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고, 다만 근면하게 일하는 믿음으로 의의 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  그들은 이 믿음으로 "선한 일을 힘써야"할 것이며, 가끔가다 기화가 닥쳐올 때에만 할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할 기회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어떤 주석자는 이 "아름다운 일"혹은 이런 것들을 가르치는 일이란 다음에 살펴 볼 어리석은 문제들과는 다른 것으로 말한다.  

이런 것들은 그 자체가 아름다우며 이것을 가르침으로 인류에게 유익을 주게 되며 사람들로 각자 자기 처소에서 선을 이루게 만든다.  

목회자들이 가르칠 때에 본질적으로 바르고 선한 것을 나누어 주고 있는가.  그리고 듣는 사람들에게 유익함을 주는 교훈을 주고 있는가 유의해야 함을 명심하라.  반드시 사람들과 사회의 품성을 높이는데 유익한 말들로 가르쳐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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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문제(딛 3:9-15)

Ⅰ. 사도는 자기가 의도하는 바를 좀더 명확하고 충분히 밝히기 위해 특히, 그레데의 당시 시대적인 형편에 맞게, 그들 가운데 유대 지향 주의자가 많음을 알고 디도에게 가르칠 때에 금해야 할 것들을 지시하고 있다(19절).  

유익한 지식을 넓히기 위해선 토론하고 밝혀야 할 문제들도 있다.  그러나 게으르고 어리석은 탐구는 하나님의 영광이나 인간의 덕을 위해서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반드시 피하여야만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혜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비어있는 자이다.  유대교 학자들 가운데, 그리고 후대의 교사들 가운데도 그런 자들이 많았다.  

그런 자들은 엉뚱하고 신앙에나 생활에 전혀 유익을 주지 못하는 문제에 얽매여 있다.  이런 것들을 버려야 한다.  

족보 이야기와(어떤 주석자는 이를 신들의 족보라 보는데 이방인 시인들은 이를 가지고 소란을 피웠다.  아니면 유대인들이 상당히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다른 족보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선 예언의 성취를 알기 위하여, 특히 메시야 그리스도의 조상을 알기 위하여, 이런 족보에 대한 유익하고 정당한 연구는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특히 유대인 교사들은 그리스도가 오신 후로 지파와 가문의 구별이 사라졌음에도 다시 그것을 일으켜 세우려는 듯 장황하게 족보를 이야기하고 헛된 말로만 가르침으로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을 쓸 데 없는 일에 바쁘게 만들고 근심과 걱정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디도는 이런 것들을 어리석고 쓸모 없는 것으로 배격해야만 하였다.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모세의 의식과 절기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복음으로 중단되고 사라졌음에도 아직도 그것에 얽매여 교회 안에서조차 그것을 지키려는 자들이 있었다.  

디도는 이런 자들의 뒤를 밀어 줘서는 안 되고 그들을 피하고, 반대해야 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도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과 마찬가지로 무익하고 헛된 것이다.  

그런 것들은 거룩함을 세우고 교훈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일이며 오히려 이 일에 방해가 될 뿐이다.  

지켜져야 할 기독교 신앙과 선한 사업의 그것으로 약화되고 간섭받으며, 교회의 평화가 파괴되고, 복음의 발전에 방해가 된다.  

목회자는 유익하고 선한 일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믿음을 혼란시키고 거룩함의 방해가 되며 선한 사업에 반대되는 일들을 피라고 금하여야 함을 명심하라.  

그런 것들로 사람들의 귀가 현혹되지 말게하며, 덕행에 도움되는 바른 교훈으로 사랑하고 포용하도록 하라.

Ⅱ.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 "이교도와 이단에 속한 자들"이 있을 것이므로 다음으로 바울은 디도에게 그러한 경우에 어떻게 처리할지, 이단자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지시하고 있다(10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를 버리고 거짓된 교훈을 가르치며, 신앙의 중대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파괴하려고 거짓 교훈을 선전하며, 그들이 속한 교회의 평화를 깨뜨리는 자들을 한두 번 훈계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추방시켜야 한다.  

"가능하면 그를 훈계하시기를 되풀이하여 그가 돌이킨다면 다시 형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그를 돌이킬 수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기 위하여 그를 공동체 밖으로 추방시키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를 피하라고 경고하여야 한다.  이런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서(근본에서 떨어져나가) 스스로 정리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훈계로써 교정되지 않고 자기들의 죄와 허물을 고집하는 자들은 "부패하고 스스로 정죄한 자들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들에게 주어야 할 벌을 그들 스스로 받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교회 밖으로 나가 성도의 교제를 벗어버림으로 스스로 정죄한 자들이 되었다.  다음 사실들을 유의하자.

1. 진짜 이단자의 해.  

누구도 그 해를 가벼이 여겨선 안 되며 모든 사람이 경계해야 한다.  그러한 자는 "부패한 자" 혹은 타락한 자이다.  

너무 황폐해져서 수리하여 다시 재건하지 않고는 세울 수 없는 건물에 비유한 말이다.  진짜 이단자가 진실된 믿음으로 돌아 오기란 참으로 드문 일이다.  

판단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 교만, 야심, 억지, 고집 또는 이와 비슷한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된 삐뚤어진 의지 때문에 힘들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경계해야 한다.  "겸손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그대로 행하라. 그리하면 저주받을 이단은 도망칠 것이다."

2. 가장 심한 잘못을 저지르는 자들에겐 고통과 인내가 따라야 한다.  

그들은 쉽사리 항복하거나 죄를 버리지 못하는 그들을 돌이키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과 방법을 써야만 한다.

3. 이단자를 대할 때도 교회의 태도는 설득력 있고 합리적이어야만 할 것이다.  

그들을 훈계하고, 교정하고 경고해야 한다.  그래서 희랍어 본문에는 ‘누데시안’(3:10) - 즉 훈계라고 하였다.

4. 계속 고집을 부리고 교정할 수 없는 자들에 대해선 교회는 아래와 같은 조처를 취하므로 교회의 순수성을 지킬 권리와 의무가 있다.  

즉 이와 같은 잘못된 교인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훈계를 통하여 회개하게 되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안 될 경우엔 자신의 정죄함으로 더욱 용서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지도록 [그냥] 버려 두어야 하는 것이다.

Ⅲ. 추가된 몇 가지 지시사항(12,13절).  여기서 두 가지 개인적인 일을 지시한다.

1. 디도는 "아데마"나 "두기고"가 그레데로 오는 즉시 "니고볼리"(마케도니아 변경 지방, 드라스의 한 성읍인 듯하다)에 있는 바울에게 갈 준비를 해야 했다. 

그가 없는 동안 아데마나 두기고 중의 한 사람이 교회들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 

사도는 교회들을 지도하고 도와 줄 능력 있는 지도자 없이 어리고 약한 상태에 그냥 방치하여 두려 하지 않았다.  

이로 보아, 디도는 그레데에 머물러 있는 지역 목회자 또는 감독이 아닌 복음 전도자였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울이 디도를 자기의 의도대로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아데마에 관하여는 자세한 기록이 없으나 두기고에 관해서는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  

바울은 두기고를 "사랑하는 형제이며, 신실한 목사이며, 주안에서의 동역자"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헌신에 합당한 자였다.  

바울이 디도에게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과동하기로 작정하였노라"하고 말한 것으로 보아서 발문(跋文)이 암시하려는 것과 같이 바울이 디도서를 니고볼리에서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왜냐하면 바울이 니고볼리에서 디도서를 썼다면 "거기서"라고 표현하지 않고 "이곳에서" 겨울을 지내겠노라고 표현하였을 것이다.

2. 다른 개인적인 지시.  

디도에게 그의 친구 둘을 급히 먼저 보내는데 그들에게 궁핍한 점이 없나 살펴보고 자세히 보살펴 줄 것을 특별히 부탁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예의일 뿐 아니라, 그들과 그들이 할 사업에 대해 존경하는 뜻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베풀어야 할 자비요 돌봄인 것이다.  

그들은 아마 복음을 전하거나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든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도록 되어있었던 것 같다.  

"세나"는 "교법사"라고 지칭되었는데 언젠가 그의 전공이었던 로마의 법을 다루었는지 모세의 율법을 다루었는지에 관하여서는 잘 알 수 없다.  

아볼로는 탁월하고 신앙 깊은 목회자였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각자 할 일을 분담 시켜 주고, 그들의 사업이나 여행에 불편이 없도록 보살펴 주는 일은 거룩하고도 필수적인 봉사이다.  

그리고 이 목적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사도가 앞서 디도에게 가르치라 명한 바를 더욱 확실히 마음에 새기게 하기 위해 그는 여기에 다시 반복한다.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14절).  

하나님을 믿은 그리스도인들로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  특히 목회자들을 도와 설교하고 복음을 전파함으로 진리를 위해 함께 수고하는 자(요 3:5-8)된 이들은 이것을 마땅히 배워야 한다.  "저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기독교는 열매 없는 신앙이 아니다.  

기독교의 신앙을 고백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의의 열매로 가득 채워야 한다."  

그들이 해로운 인물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는 춘분하지 않고 악을 피하는 만큼 선을 행하는데 유익한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람들로 정직한 수고와 사업을 수행하여 그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윤택하게 함으로 세상에서 유익함이 없는 짐이 되지 않도록 하라."  

어떤 주석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기독교가 그들에게 [복음에 마땅한 대가 지불 없이] 안이한 교훈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라.  

오히려 기독교는 그들에게 정직한 일과 소명을 찾도록 명령하며 그러한 생활 가운데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도록 책임 지워 줌을 알게 하라.  

이것은 좋은 평판이며, 신앙의 증거가 되고 인류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더 이상 무익한 교인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부담을 주는 무익한 교인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힘쓰는 바, 재정적으로] 곤란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헌금을 통해] 기꺼이 도와 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이 될 것이다.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 다른 사람의 수고에 기대서 살지 말고 스스로 공동의 유익을 위하여 열매를 맺으라.

Ⅳ. 인사와 간구(15절).  

비록(적어도 몇 명이라도) 개인적으로는 디도를 모르지만 그래도 사도 바울을 통하여 모든 이들이 그에게 사랑과 선한 마음으로 인사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행적에 대한 표시이며 계속 그 일에 매진할 것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하여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와 용기가 된다.  

"믿음 안에서" 혹은 "믿음을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그들은 우리의 사랑하는 동역자 그리스도인들이다.  어느 누구든 그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나 거룩함은 다른 모든 갇힌 자들에게 큰 힘을 주는 귀한 것이며 그것 자체로도 최상의 것이다.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 구절은 끝맺는 간구이다.  

이것은 비록 편지나 디도 개인의 이름으로 쓰여졌지만 이 간구는 그곳에 있는 교회들을 위한 것이며 그의 이름을 기록함으로 사도 바울이 그들을 모두 지켜보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말이다.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이, 그것의 열매와 결실과 함께, 필요에 따라, 특히 영적인 은혜가 너희의 영혼 가운데, 날마다 더욱 풍성히 내리기를 바라노라."  

이것은 바울의 소망이며 기도로써 그들에 대한 그의 사랑, 그들의 선함을 바라는 그의 소원과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내려 주고 그들로 그것을 얻게 해 주려는 간절한 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은혜야말로 우리 자신이나 어느 누구든지 가장 바라고 구해야 할 중요한 것임을 명심하자.  

그것은 간단히 말해 선한 모든 것이다.  아멘은 기도를 끝맺으며, 그렇게 되기를 원하노라, 또는 그렇게 되리라는 소원과 희망을 표현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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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제 3장
=====3:1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은 어떤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통치세력을 의미한다(Hiebert,Lenski). 
바울은 본절에서 국가의 통치 권력에 대한 순종을 디도에게 권고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그레데인들이 로마의 지배 아래 있으면서 많은 소란과 폭동을 일삼았던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Scott). 
바울은 롬 13:1-7에서도 그리스도인들에게 통치 세력에 순종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지상국가의 권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통치 세력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복종해야하며, 그리스도인들은 통치 세력이 결정한 법규에 대해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Guthrie). 이렇게 함으로써 천국 시민인 동시에(빌 3:20) 이 땅의 시민인 그리스도인들은 평안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으며(딤전 2:2) 또한 그리스도의 명령이신 전도의 문을 넓힐 수 있다(벧전 2:15).
국가 권력에 대한 시민의 자세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롬 13:1-1 주제 강해 '시민복종과 불복종의 한계' 및 '사회 참여에 관하여'를 참조하라.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여 - 그리스도인들은 시민으로서 화재나 질병, 여러 가지 재난을 당할 때 언제든지 도움의손길을 펼 수 있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3:2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 그리스도인들은 통치 세력이나 이웃들, 심지어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에게조차 '비방과 악담'을 하지 말아야 한다(딤전 6:4 ; 벧전 2:23).
'훼방'하지않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지해야 하며 보다 적극적인 복음에의 순종을 필요로 한다(Guthrie).
@다투지 말며 - 그리스도인들은 문자 그대로 싸우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싸움이나 선동등에 현혹(眩惑)당하거나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Hiebert).
@관용하며 - 이것은 개인의 이익이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타인의 어려움을 돕는 자세를 의미한다(Hendriksen, Hiebert).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하라 - '온유함'은 하나님꼐 진실된 마음으로 순종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인내하며 정중하게 행함을 의미한다(courtesy, RSV). 
그리스도께서는 평생을 온유하신 모습으로 사셨고(사 53:7 ; 마 11:29) 모세(민 12: 3), 다윗(삼하 16:11), 스데반(행 7장), 바울(딤후 4:16) 등은 범사에 온유한 태도로 살았다. '온유함'은 성령의 열매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야 할 최상의 덕목 중 하나이다(갈 5: 23). 특히 본절의 '나타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데이크뉘메누스'(* )가 현재 분사형인 점은 이 온유함이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언제나 계속적으로 드러나야 할 덕목임을 시사한다.
=====3:3
개역 성경에는 '가르'(*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이후에 언급될 진술(3-7절)이 앞서 권고한 덕목들의 이유와 근거가 됨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인들은 전에 이교도와 같이 죄인이었으나 이제는 구원받은 자이며 영생의 소망을 가진 상속자이기 때문에 권고한 덕목들을 열심히 추구해야 한다.
@우리도 전에는 - '우리'는 바울 자신과 디도, 그리고 그레데 교인 전부를 포함한다. '전에는'은 그리도인들이 구원받기 이전 상태를 가리킨다(엡 23:3).
@어리석은 자요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노에토이'(* )는 '지각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영적 무지를 가리킨다(고전 2: 14).
@순종치 아니한 자요 - 본절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의도적인 도전이다(Hiebert, Hervey).
@속은 자요 - 거짓 교사나 거짓 종교에 의해 잘못된 길로 인도를 받아 멸망의 길로 빠진 것을 의미한다(벧전 2: 25).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 '행락'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도나이스'(* )는 '즐거음'을 뜻하는 '헤도마이'(* )에서 유래한 것으로 '쾌락' 혹은 '향락'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인간은 오직 자기 만족과 향락을 추구하는 타락된 상태에 사로잡혀 있다.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 '악독'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키아(* )는 일반적인 '악'을 가리긴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악한 기질 혹은 본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투기'(* ,프도노)는 '악독'으로 인해 속에서 나타나는 모습으로, 타인에 대해 악의를 가지고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Hendriksen).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 '가증스러운'은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Guthrie). 타락한 사람들의 삶의 잉태는 타인으로 하여금 추악하고 더러운 혐오감을 느끼게하며 그 결과 서로 미워하게 되고 파멸(破滅)의 길을 향하게 된다.
=====3: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 '우리 구주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신앙 고백이다(Lenski, Hiebert). 
본절의 '구주'라는 칭호는 6절에서 그리스도에게도 사용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으며 자신을 인류의 속죄양으로 드렸다.  바로 이 구속 사건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결정체였다. 
본절의 '나타내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페파네(* )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의미하는 바, 죄인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시사한다.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 '구원하시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소센'(* )은 '소조'(* , '구원하다')의 부정 과거로서 구원이 과거에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완전한 구원의 성취는 그리스도의 재림때에 이루어진다(Hiebert).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 '말미암지'에 해당하는 헬라어'여스'(* , '... 부터')는 '근원'을 나타내는 전치사로서 구원의 근거와 전제 조건을 나타낸다. 구원은 결코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의로움에 의해서 주어지지 않는다(롬 4:4, 5; 갈 2:16, 17; 엡 2:8, 9).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 '좇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 )는 기준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따라 주어진 것임을 의미한다. 
'긍휼하심'은 앞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두가지 속성 즉 '자비와 사랑하심'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불쌍히 여겨 용서하시고 호의를 베풀어서 구원을 허락하신 것은 구원이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총(恩寵)에 달려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롬 11 :6).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 본절은 구원의 수단을 두 가지로 밝힌다. 
(1) 중생의 씻음. '씻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루트루'는 (*)는 '대야' 혹은 '씻는 행위'를 의미한다. 본절의 '루트루'는 '씻음'특히 종말론적 입장에서 '세례'를 의미한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도래한 새시대에로의 진입 수단이다(Hanson). 그러나 외적인 물 세례를 통해서 구원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물 세례는 단지 '씻음'에 대한 상징직 표현에 불과하다. 그래서 바울은 '물세례'를 상징하는 '씻음'에 '중생의'라는 어구를 덧붙이고 있다. '중생의'로 번역된 헬라어 '팔링게네시스(* )는 팔린'(* ,다시')과 '게네시스'(* ,' 출생')의 합성어이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본절과 마 19:28에서만 나타난다. '팔링게네시아스'는 마테복음의 경우 우주의 변화를 나타내나 본절에서는 '영적 차원에서의 거듭남'을 의미한다(Simpson, Hiebert). 
(2)성령의 새롭게 하심. '새롭게 하심'은 '중생의 씻음'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과정이다(Simpson, 롬 12:12 ; 엡 5:26, 27). 한편 '중생'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대해 혹자는 동일 사건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며(Bengel, Alford), 혹자는 서로 다른 사건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Guthrie, Hiebert, Scotte).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중생'은 새로운 상태나 신분에로의 전이 즉 옛사람을 벗어 버리는 순간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새롭게 하심'은 전이가 초래한 내적이며 점진적(漸進的)인 변화 즉 새로운 삶을 살아가면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3:6
@성령을...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 본절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에 대한 초대교회의 사상을 반영한다(Scott). '부어 주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여세케엔'(* )은 부정 과거 능동태 직설법이다. 이는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주신 사건을 시사한다(행 2 : 17, 18, 33, Guthrie, Robertson). 한편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에서 '말미암아'로 번역된 헬라어는 '휘포'(* , '의하며')가 아니라 '디아'(* , '통하여')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개자'이심을 나타낸다(요 7:38, 39 ; 14:16 ; 15:26 ; 행 2:33). 즉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은총을 수여하신다(Scott).
=====3:7
본절은 '히나'(* , '위하여')로 시작된다. 이는 본절의 진술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궁극적 목적임을 나타낸다.
@우리로 저의 은혜을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 '의롭다 하심을 얻어'(* , 디카이오덴테스)는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롭다고 인정되다' 즉 '칭의'(稱義)를 의미한다. 
'칭의'는 인간의 공적이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죄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크신 은총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으며 성결된 삶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롬 5:20 ; 벧전 1:15).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본문은 구원시 본질이자 의롭다함을 얻은 결과를 진술한다. 
본절의 '후사가 되게'는 '히나'와 연결된다. 이는 '후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궁극적 목적임을 나타낸다. '후사'는 '상속자'란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됨을 나타낸다(갈 4:4-7). 후사된 그리스도인들은 미래에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린다(롬 8:17). 그러나 상속자로서 미래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현재의 고난에 동참해야만 한다(롬 8:36, 37).
=====3:8
@이 말이 미쁘도다 - '이 말'은 4-7절을 가리킨다. 바울은 4-7절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신실함'을 고백하며 찬양하고 있다고 말한다(Hiebert).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 바울은 본절에서 디도에게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해 강력하게 선포하라고 권면한다. '여러 것'은 4-7절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구원 사역, 즉 (1)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4절), (2) 중생과 성령의 새롭게 함(5절), (3)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을 부어 주심(6절), (4)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함(7절) 등이다. 한편 '굳세게 말하라'는 교훈은 거짓 교사를 전제로 하고 있다(Guthrie). 그레데 교회는 거짓 교사들이 허탄한 교훈을 전하여 혼란되었기 때문에 디도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확신 가운데 선포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는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나'(* , '위하여')는 다음에 이어질 내용이 디도가 강력하게 선포해야 하는 목적임을 시사한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 그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게 하기 위함이다. 디도가 선포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분명히 이해할 때 그레데 교인들은 거짓 교사의 가르침이 거짓임을알고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게 될 것이다. 
둘째, 선한 일을 힘써 행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선한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 사역을 온전히 이해할 때 나타나는 결과이다(Hiebert).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 본절의 '이것은'에 대해 혹자는 4-7절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라고 주장하며(Hendriksen). 혹자는 바울이 이제까지 디도에게 한 권면들 전체라고 주장한다(Scott, Hiebert). 두 견해가 나름대로 타당성을지닌다. 바울이 디도에게 권면한 윤리적 덕목들은 모두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말씀에따라 선행에 힘쓰는 것은 성도 자신은 물론 비그리스도인에게까지 기쁨과 유익(有益)을 끼치게 된다.
=====3:9
@그러나 - 본절에서 바울은 앞절과는 달리 금지 명령을 하고 있다. 본절에서 바울이 디도에게 금지시킨 명령들은 에베소 교회의 디모데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다(딤전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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