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2.02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133.기름부음의 관유_향단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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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시133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내영혼의그윽히깊은데서412..내영혼이은총입어438..내아버지그품안에서..내게로부터눈을들어..따스한성령님..이세상을살아가는동안에...이곳에생명샘솟아나


@관유...몰약(JC의 대속적죽음) --육계(죽으심의효능 증강/강심제)--창포(JC부활생명)--계피(부활의 효능 증강/방충..뱀제거)

==>+감람유((HS) =관유=그영(JC안에서 모든 과정 거치신 복합적인 영)...체험된 JC를 살기 = 관유/복합적감람유 산출(JC를 사는 것..감람유안에 몰약-육계-창포-계피가 녹아듬 = 도유의 기름바름

+ 포도주산출(JC를 위해 죽는것..그리스도의 확대/재생산 =그리스도의 남은고난 채움 = 관제/전제의 부어짐)


@분향단의 향....소합향(식물생명...눈물방울)--나감향(동물생명..일종의 조개껍질로 이루어져 바스라질때 발향)-풍자향(새생명의 풍성-비옥함...번성번영,창대) --유향(보스웰리아...중보-치유/방충/뱀제거,해독)--소금(영원불변)  ::: 죽어야 다시 살며 이는 창대/형통/이김/영생으로 발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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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구속자, 구속하시는 여호와=====@구속[무름(속량)/자유]회복---속전(지속적으로 정결케 하는 보혈의 능력)--보수./보응/심판

la'G:(1350, 가알) 되 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근친의 역할을 행하다 [구속자 redeemer..근친/근족/혈연자 =고엘]

가알(동사)은 기본어근이며, '되사다, 도로 찾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redeem, 근친 역할(권리, 의무)을 행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어근은 '자기 친족을 어려움이나 위험에서 구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어근과 매우 유사한 어근 파다([d"P; , 6308): 구속하다 redeem) 사이의 한 가지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가알(la'G: , 1350)의 강조점이 구속자의 자격과 행함에 있는데, 반드시 근친이어야 하며, 근친의 특권이나 의무는 다름아닌 속량에 있다는 것이다.((JC가 바로 그러하시다..그는 태초이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신 아들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이미 예고된 대로, 참사람으로서 성육신하셨고 인성을 가지셨기에 [죄로 인해 자기의 모든 것을 사탄에게 넘겨주고 파산한 자들인]우리의 피를 나눈 근친/근족으로서 모든 면에서  참된 자격과 능력을 갖추신 유일무이한 고엘이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으로만 사용되었다.

가알은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자기의 친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포함하는 4개의 기본적인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a)  첫째로, 가알은 오경의 법령에서 궁핍한 때에 판 밭을 되사는 것이나 가난할 때 자신을 판 이스라엘인 노예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되사서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로 그대로 각 사람에게 배정/배분된 대로 모든 것을 돌려주고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지고지선의 진복 누림의 바탕을 제공하여 주는 구속의 일]로서 이런 매입과 무르는 일은 근친의 의무였다(레 25:25-54).

레 25:25에서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하였다. 

물론, 만약에 자신이 부유하게 되면 그 사람 자신이 그것을 '무를' 것이다(레 25:26). 

한편, 가난한 자는 기업만이아니라 자기 자신을 동족 이스라엘인에게나(레 25:39)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타국인(레 25:47)에게 팔기도 하였다. 

그를 속량할 책임은 가장 가까운 친척 - 형제, 삼촌, 사촌들, 가족의 혈족 - 에게 있었다(레 25:25, 레 25:48, 레 25:49).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친척을 속량한 redeemed 자(혈연자)는 '근족 - 구속자'로 알려져 있었다. (참조: EDBW).

---가난한 자의 구제에 관한 가장 유명한 실례는 수혼법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거가 가장 광범위하게 미치는 룻기에 있는 것 같다. 

신 25:5-10에 의하면, 남편의 형제는 후사 없는 과부를 취하여서 씨를 영속시키고, 남자 후손과 결부되어 있는 땅의 계승을 보증해야 했다. 

여기 [수혼법의 실행 의무]에서 그것을 실행하는 근친은 야밤이라고 불리어지며, 어근 가알은 사용되지 않는다.

....룻의 상황에서는 두 가지 것들, 즉 밭을 되사는 것과 수혼이 언급된다. 근친은 밭을 사는 것을 기꺼워했지만, 룻과 결혼하는 것은 기꺼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의 요지는 나오미가 가난하여 밭을 팔 수 밖에 없었을 때, 근친은 그녀를 위해 그 밭을 되사야 했다는 데 있다. 그는 후사 없는 형제의 과부를 위해서 이 일을 기꺼이 하려 했지만,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 근본을 모르는] 룻과 결혼하여 그들의 기업을 지속시킬 자손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는 거부하였으며 여기에 보아스가 개입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것, 즉 친족과 수혼은 구별되어야 한다. 고엘(구속자)이란 단어는 후자의 제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레게트(Leggett)는 룻기에 구속적이고 메시야적인 유형론의 주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고엘(goel)로서의 보아스의 행동들에서 우리는 보아스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예시되어 있음을 보았다. 보아스가 구속의 권리를 소유하였으면서도 분명히 룻을 위하여 개입할 의무(까지)는 없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보라...룻은 나오미의 견해를 따라서 겸손하게 자신을 신부로 취하여 후사를 낳도록 해 달라는 뜻으로 보아스의 이불을 들추고 눕는다!!...겸손과 순종의 극치이다!!))

....보아스가 이 가난한 과부들의 곤경을 보았을 때 그의 생애가 여호와와 여호와의 율법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구원하러 왔던 것과 같이 메시야의 경우도 그의 생애가 하나님의 법에 의해 지배되고 또한 그가 가난한 자들과 억압 받는 자들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었다(시 72:2, 시 72:4, 시 72:12, 시 72:13, 사 11:4).

(b)  둘째로, 가알은 재산이나 여호와께 바쳐진 희생제물 아닌 짐승들을 무르는 것, 혹은 부정한 짐승들의 첫 소산을 무르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레 27:11-33). 

이 [속전!!]사상은 인간이 교환물로 그에 상응하는 것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전은 부정직한 교환을 피하기 위해 약간의 추가 몫이 제공되었다. 이런 경우에 무르는 자는 친족이 아니라 재산의 주인이었다.

(c)  셋째로, 가알은 살해당한 사람을 대신하여 "피의 보수자"(RSV '보복자' revenger)가 되는 가장 가까운 친족을 언급하는데 사용되며, 칼 분사 고엘로 나타난다. 

고엘은 구속자이며, 이 구속자는 '피의 보수자'로 불리우는데, 그의 임무는 자신의 친척을 살해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다(신 19:6). 

이 사상은 가까운 친족이 생명에는 생명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임에 틀림없다. 

돈을 지불함으로서 집을 재매입하거나 노예를 속량할 수 있는 것처럼, 친족의 잃어버린 생명은 마땅히 살인자의 그에 상응하는 생명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친족은 피의 보수자이다. 이런 사형 제도는 피비린내 나는 숙원과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엘은 죄없는 사형 집행인이었으며 따라서 살해되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보수자'라는 의미로 12회 나온다(민 35:12, 민 35:19, 민 35:21, 민 35:24, 민 35:25, 민 35:27, 신 19:6, 신 19:12, 수 20:3, 수 20:5, 수 20:9).(참조: R. L. Harris).

(d)  넷째로, 가알은 하나님께서 '구속자'로서 '구속하시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출 6:6에서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라고 약속하신다(출 6:6, 참조: 시 77:15).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출 15:13).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시 78:35).

....이사야서에는 '구속자'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지칭하여 13회 나오는데 모두 사 41- 63장에서 사용되었다. 가알은 하나님에 대해 9회 사용되었으며, 사 43:1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가알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사 51:10, 사 63:9)과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의 구원(사 48:20, 사 52:3, 사 52:9, 사 62:12)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사 41:14)이며 '너희의 왕 이스라엘의 창조주'(사 43:14, 사 43:15)이며 '만군의 여호와'(사 44:6)이며 '야곱의 전능자'(사 49:26)이다. 그의 구원에 참예하는 자는 '구속 받은 자'이다(사 35:9).

....시편에는 종종 영적인 구원이 육적인 구원과 병행되어 나온다. 예를 들면 시 69:18.,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시 103:2, 시 103: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윤택을 잊지 말찌어다...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이 그러하다(참조: EDBW).

[욥19:25,26,27]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25. "And as for me,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And at the last He will take His stand on the earth.   *26. "Even after my skin is destroyed, Yet from my flesh I shall see God;   *27.Whom I myself shall behold, And whom my eyes shall see and not another.  

....유명한 구절, 욥 19:25에서 고엘이란 단어는 흠정역성경에서 '구속자' redeemer로 번역되며 어떤 이들은 이 단어가 속죄의 사역을 하러 오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히브리어 "파다"에 의해 더욱 특징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제 욥 19:25에 나오는 이 단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욥을 죽음의 먼지에서 구속할 친구이자 친족으로서의 하나님의 사역과 더욱 정확하게 관련된다. 욥 19:26의 난해한 어구, "이 가죽을 벗은 후에"는 다른 모음들과 함께 "내가 깨어난 후에"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NIV 각주와 욥 14:12-14을 참조하라. 욥 14:12-14에서 부활에 관한 욥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를 돌아보시며 욥은 나무처럼 제 2의 성장을 할 것이라는 그의 소망에 의해 절정에 달하게 된다 - 욥 14:14의 할리파는 욥 14:7의 할랍에 대한 응답이다). 어쨌든 욥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눈으로 자기의 고엘이신 하나님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참조: R. L. Harris). 


..[[사59:20,21]]..*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9:24]] *2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미가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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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괴수 죄성 지닌 자, 세상살이는 메섹과 게달의 장막에 사는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 탈취와 노략의 쟁투, 곧 환난의 날이라, 오직 구주JC께 부르짖어 그분안에 충만히 거하라.

[시120]   *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2.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3.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4.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5.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이제, 마음 열어, 중심으로 동행하시는 영원반석/성채/산성-보혜사-인도하시며 지키시는 목자, 엘에제르 HS와 동행하라

[시121]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보라, 그리스도를 살라, 사람들로 하여금 평강과 형통 허락하시는 네안의 여호와를 감사하며 흠모하고 기리게 하라, 자원하여 나아와 공예배에 함께 참석하기를 원하도록 만들라.

[시122편]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눈을 [세인의 조소와 멸시로부터]구주 JC께 돌려 중심으로 산 믿음 발휘함으로 앙망하라, 긍휼 구하라, 정복자 그 이상의 존재, , 허락하신 영생안에서 모든 이김을 감사하라

[시123편]    *1.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3.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4.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엘에제르, 임마누엘 여호와께 감사하라...[세인의 약탈-침노와 멸절로부터말씀의 뜻대로 행하시도다.

[시124]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지고지선의 진복은 오직 구주로 사는 (선을 행하며 정직하게 동행하는) 기독자들은 여호와의 선대하심/평강형통 깨닫고 감사하라..

[시125편]   *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3.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4.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오순절-해방/회복]구속 은혜 기쁨안에서: 섭리의 때, 해방 감격 = 전존재로 누리는 영적 기쁨과 감사, 실제적 형통 [모든 이들이 주께 돌이킴] 회복/부흥 추구 실행의 긍휼 간구

[시126편]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솔로몬에게 깨닫게 하신 말씀--친히 집과 가정을 세우며 지키시는 전능-은혜 구주를 높이며 친밀한 하나됨 이루어 따르라, 자랑-기쁨의 가정과 기업된 자녀들이여

[시127편]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 경외함 : 야다-에셰르-바라크, 구주영접/영생부활생명의 은혜, 믿음소망사랑오래참음기쁨평강-감사/형통/번성/번영/창대함--

[시128편]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세상 악인들이 주님의 기독자, 영적이스라엘을 미워하며 괴롭히나 결코 이기지 못하리라..JC안에서 소명과 사명 이루라---

[시129편]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2.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3.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4.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5.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6.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7.  이런 것은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하나니   *8.  지나가는 자들도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거나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부르짖음과 간구로 기도하며 주님을 앙망하노라---

[시130편]   *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그러므로 주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바, 내마음은 임마누엘 여호와안에서 고요히 쉬며 앙망하노라----

[시131편]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Q말씀을 바라는 이는 겸손-추구-치열함으로 서원한 바 이룬 다윗과 같을지니, 제사장마다 구원과 의를 옷입고, 성도마다 승리하신 JC의 풍성한 기쁨으로 외치리라 ----

[시132편]   *1.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겸손을 기억하소서   *2.  그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3.  내가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4.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5.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6.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7.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8.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9.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옷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10.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마옵소서   *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하지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위에 둘지라   *12.  네 자손이 내 언약과 그들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그들의 후손도 영원히 네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14.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15.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떡으로 그 빈민을 만족하게 하리로다   *16.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을 옷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이 외치리로다   *17.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위하여 등을 준비하였도다   *18.  내가 그의 원수에게는 수치를 옷 입히고 그에게는 왕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


-----선하고 아름다운 다윗과 같은 형제자매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연합/동거함이 복이라---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야하드) 동거함이(야샤브) 어찌 그리 선하고(토브) 아름다운고(나임)

2.  머리에(로쉬) 있는 보배로운(토브) 기름이(셰멘) 수염(자칸)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야라드) 그의 옷깃까지 내림(야라드)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베라카) 명령하셨나니(차와) 곧 영생이로다(올람+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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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시133

1.  {A Song of Ascents, of David.} Behold, how good and how pleasant it is For brothers to dwell together in unity!

2.  It is like the precious oil upon the head, Coming down upon the beard, [Even] Aaron's beard, Coming down upon the edge of his robes.

3.  It is like the dew of Hermon, Coming down upon the mountains of Zion; For there the LORD commanded the blessing-- life forever.

==시133개요===

이 시편은 형제의 연합과 사랑에 대한 간략한 찬사다. 

만일 우리가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화의 슬픔을 보지 않았다면, 그런 연합과 사랑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을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설득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시편을 지파들 간의 연합이 이루어져 만장일치로 다윗을 왕으로 추대했을 때 그가 기록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시편은 크건 작건, 세속적이건 거룩하건간에 모든 사회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노래다.

1. 형제 사랑의 행복에 대한 교리(1).

2. 두 가지 비유로 나타난 그 교리의 설명(2-3).

3. 그것에 대한 좋은 이유가 그 증거로 나타나 있다(3).

---우리는 이 시편을 노래할 때에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거룩한 사랑을 일으키도록 적용하는 것을 과제로 하고 있다. 

이 시편의 내용은 성경 중에서 짧지만, 매우 적당한 것이다. 그것은 “성도들의 교제의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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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사랑(시 133:1-3)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Ⅰ. 권한 것이 무엇인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다. 

서로 투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탐내지 아니하며, 각자 상호 친애[친절-온화-자애-우정]로써 즐거워하고, 상호 봉사해 각자의 복지를 촉진하는 것이다. 

때때로 평화를 보존하기 가장 좋은 방편으로써 형제가 떨어져 서로 멀리 사는 것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실로 그것이 반목과 질시를 억제하는 것일 수도 있다(창 13:9). 

그러나 선하고 즐거운 것은 “형제가 동거하는 것이요”, (어떤 이들이 해석하는 바에 의하면) “연합하여 함께 거하며, 하나가 되어 동거하는 것”이다. 

한 마음과 한 영혼과 하나의 관심을 갖고서 동거함이 선하며, 아름답다. 

다윗은 많은 아내에게서 낳은 많은 아이들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이 시편을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일에 참여토록 하기 위해 기록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이 가르침을 이행했다면 그의 가정에서 일어났던 많은 불행은 행복하게 억제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사사들의 통치기간에 오랫동안 서로 관심을 달리 했다. 그것이 자주 나쁜 결과를 나타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하나의 공동 수뇌를 중심으로 연합되었음과 그것이 얼마나 그들의 이익을 위하는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특히 법궤가 정착되고, 국가적인 예배를 위한 그들의 집결지를 거기에 두며, 그들의 연합의 중심지가 정해진 이후로 그 연합은 이루어졌다. 이제 그들은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Ⅱ. 어떻게 찬양되었는가?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것은 그 자체로 선하며,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며, 하늘과 땅의 해후가 된다.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며, 우리의 영광과 위로에 유익하다. 

그것은 하나님과 모든 선한 사람들에게 즐거움이며, 즐거워함이 된다. 그것은 이와 같이 연합해 살아가는 자들에게 끊임없는 기쁨을 가져다준다. 

“보라, 어찌 그리 선한고!” 

우리는 그 선함과 아름다움을 생각하거나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드문 일이므로 감탄할 만하다. 

사람들 가운데에 있는 큰 선함과 아름다움, 이땅에 하늘에 속한 것이 있음을 보고 경탄하라! 

그것이 우리 마음을 끄는 고운 것임을 보라. 그것이 있는 곳에서, 거룩한 경쟁심으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훌륭한 것임을 보라.

Ⅲ. 그 아름다움은 어떻게 묘사되었는가?

1. 그것은 강하게 향기를 내며, 그 향취를 발산하며, 그것을 보며 관찰하는 이들이나 방관자조차도 큰 기쁨에 이르는 거룩하게 부은 기름과 같이 우아하다. 

그것이 아론의 머리에 흐르고, 그 후손 대제사장에게 흐를 때 그것은 풍부하게 얼굴에 흘러내리고, 옷깃이나 의복의 접합점까지 흘러내린다(2절).

(1) 이 기름은 거룩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형제 사랑은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쳐져야 한다. 우리는 “그에게서 난 자”들을 사랑해야 한다(요일 5:1).

(2) 이 기름은 하나님의 처방에 의해 이루어진 합성물이다. 

하나님은 그 성분과 양을 정하셨다. 이와 같이 신앙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서로 사랑하도록 가르침 받는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그가 활동하시는 은총이다.

(3) 그것은 매우 진귀하다. 

그와 같은 것은 일상의 사용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와 같이 거룩한 사랑은 하나님이 보실 때 높은 가치가 있다. 실로 하나님의 시야에 있는 진귀한 것이다.

(4) 아론 자신과 그를 둘러싼 모든 자에게 고마운 것이었다. 

거룩한 사랑도 그러하다. 그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는 기름과 향기”와 같다. 인류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의 추종자들 위에 부은 기쁨의 기름”과 같다.

(5)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들이 이 기름으로 부음 받지 않을 때까지는 여호와께 성직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더욱이 우리의 예배는 이러한 거룩한 사랑 없이 하나님께 용납될 수 없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고전 13:1-2).

2. 그것은 열매를 맺게 한다. 

그것은 즐거움과 같이 매우 유익하다. 그것은 “이슬과 같다.” 그것은 이슬방울이 무수함과 같이 풍부한 축복을 수반한다. 

그것은 새벽에 내린 이슬이 공기를 시원하게 하고 땅을 신선하게 해줌과 같이 인간 정열의 맹렬한 열기를 식혀준다. 

그것은 선한 모든 일에서 우리의 결실에 상당히 큰 공헌을 한다. 

그것은 마음을 적셔주며, 부드럽게 해주고, 말씀의 선한 씨앗을 받기에 적합하게 해준다. 그와 반대로 “악독과 궤휼”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우리를 부적합하게 해준다(벧전 2:1). 

그것은 평범한 산 “헐몬의 이슬과 같고”(형제의 사랑이 세속사회의 아름다움과 미덕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산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룩한 사회의 결성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헐몬과 시온은 이러한 이슬이 없다면 마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이슬이라고 언급되었다(미 5:7). 

우리 형제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저희의 사랑이 우리에게 머물러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선술집의 사랑이다). 오히려 그들보다 앞서 가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Ⅳ. 형제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한 증거. 

사랑하는 백성들은 축복 받은 백성들이다.

1. 그들은 하나님께 축복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축복 받았다. “거기서”, 형제들이 연합해 함께 거하는 곳에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다.” 즉, 모든 축복을 포함한 복합적인 축복을 주셨다. 

복을 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권이다. 인간은 단지 복을 구할 수밖에 없다. 

약속에 따르는 축복은 명령된 축복이다. 왜냐하면 그가 “영원까지 그의 언약을” 명하셨기 때문이다. 

결과를 가져오는 축복은 명령된 축복이다. 왜냐하면 “그가 말씀하시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영원까지 축복을 받는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명하신 축복은 “곧 영생이로다.” 

그것은 축복 중에서 가장 큰 축복이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 안에 거할 뿐만 아니라, 이미 하늘에 거하는 것이다. 

사랑의 성취가 하늘의 축복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진실성은 그러한 축복의 징표이다. 

사랑과 평화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을 모시게 되며, 평화의 하나님을 함께 모시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와 함께 영원히 무한한 세계에서 사랑과 평화를 맛보며 살게 될 것이다. 얼마나 선하며, 얼마나 아름다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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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y"(3162, 야하드) 하나됨, 연합됨, 함께, 모두 함께, 모두 동시에
야하드(명남)는 야하드(dj'y:" , 3161)에서 유래했으며, '하나됨, 결합됨, 연합됨'을 의미하며, 주로 부사로 사용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40회 나오며, '연합, 하나', 부사적으로 '함께, 똑같이, 모두 동시에, 모두 함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야하드는 '연합, 하나됨'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형제가 연합하는 것(시 133:1), 백체를 하나로 이루는 것(욥 10:8)을 묘사한다.
(b)  야하드는 '함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어떤 문맥에서는 '행동의 일치'를 나타낸다. 골리앗은 이스라엘에게 도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나로 더불어('함께') 싸우게 하라"(삼상 7:10). 때때로는 '장소의 일치'를 강조하기도 한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삼상 11:11). 이 단어는 동시에 동일한 장소에 존재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저희를 기브온 사람의 손에 붙이니 기브온 사람이 저희를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매 저희 일곱 사람이 함께 죽으니..."(삼하 21:9).
야하드는 '함께, 즉 '동시에'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나의 분한을 달아 보며 나의 모든 재앙을(나의 재앙을 함께) 저울에 둘 수 있으면"(욥 6:2).
(c)  야하드는 '모두 동시에, 모두 함께, 일제히, 똑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출 19:8, 사 45:21, 사 46:2, 사 48:13, 사 52:8, 슥 10:4, 신 33:5, 시 62:9, 욥 31:38, 사 43:7, 시 49:10 등).(참조: TWOT;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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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v'y:(3427, 야샤브) 앉다, 머무르다, 살다, 거주하다
야샤브(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앉다, 머무르다, 살다, 거주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080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필,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1. 칼형에서
(a)  '앉다, 내려 앉다'(창 27:19, 욥 2:13, 시 9:5, 창 21:16).
사사나 왕(시 9:5, 사 10:13), 매복한 자(욥 38:40, 렘 3:2), 적(삼상 13:16), 애곡자(욥 2:13, 사 47:5), 게으른 자(사 30:7, 렘 8:14)에 대해 사용되었다.
(b)  '머무르다, 체류하다'(창 24:55, 출 24:14, 삿 19:4, 삼상 16:8 등).
(c)  '거주하다, 살다, 거처를 정하다'(창 4:10, 창 4:20, 시 107:10 등, 분사로, '거주자, 거주민이나 주민' 창 19:25, 삿 1:21).
2. 니팔형에서
'거주하다'(출 16:35, 렘 6:8, 렘 22:6, 겔 12:20, 겔 26:19 등).
3. 피엘형에서
(a)  '두다, 정하다, 치다' (겔 25:4).
4. 히필형에서
(a)  '앉게하다'(왕상 2:24, 대하 23:20, 욥 36:7, 왕상 21:10 등).
(b)  '살게하다'(삼상 30:21),
(c)  '거하게 하다'(창 47:6, 창 47:11, 레 23:43, 삼상 12:8, 왕하 17:6, 호 12:10, 사 54:3, 겔 36:33).
4. 호팔형에서
(a)  '살게되다, 거하게 되다'(사 5:8, 사 44:26, 겔 35:9)(참조: BDB; Gesen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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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2896, 토브) 좋은, 선한, 즐거운, 선, 이익, 번영, 복지
토브(형용사)는 토브(b/f , 2895)에서 유래했으며, 형용사로는 '좋은, 선한, 즐거운, 유쾌한', 명사로는 '좋은 것, 선, 이익, 번영, 복지'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60여회 나온다.
'선한'은 실제적인 혹은 경제적인 이익을 언급하는 것으로 잘 나온다. 좋은 열매(창 2:9)와 바로의 꿈에 나타난 이삭(창 41:5, 창 41:36)은 먹기에 좋은 것이었다.
요셉의 노예상태가 "좋은" 것은 양식과 민족의 생존 같은 실제적인 이익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선하지 못한" 모세의 재판에는 실제의 행정적인 불이익도 포함되었다: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출 18:17).
토브로 전달된 다른 실제적인 선은 아합에게 거부한 승리의 약속(대하 18:7); 환대와 우정(창 26:29); 유익한 충고(삼하 17:7, 삼하 17:14); 일반적인 경제번영(왕상 10:7); 농업 번영(호 10:1, ASV); 그리고 하나님의 의지(암 9:4) 등이다.
그러나 국가의 풍기를 문란케한(느 5:9) 강포한 삶(잠 16:29)과 행동은 "선하지 못하다"고 일컬어 진다.
노동의 "선"은 일에서 얻은 실제적인 이득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 3:13, 참조: RSV '기쁨' pleasure).
"선"은 여러 가지 광범위한 추상적인 관점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선한 이름은 명성이나 평판의 관점에서 볼 때, 후손보다 더 낫다: "내가 내 집에서, 내 성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며"(사 56:5). 
다윗이 제후인 아기스에게 충성한 것은 "선한 것"으로 묘사된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삼상 29:9, RSV '흠이 없는' blameless).
엘리후는 진리나 타당성과 관련 지어볼 때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결정하라고 동료들에게 요구했다: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은 택하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 보자"(욥 34:4).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있어, 노를 더디 내는 것은 이상적인 용사의 폭력적인 힘보다 더 바람직하였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마찬가지로,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아이는 고집 센 왕보다 "더 나았다"(전 4:13).
이 단어는 심미적이거나 감각적인 선함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비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이나 매력(창 6:2), 리브가의 아리따움(창 24:16), 그리고 밧세바의 아름다움(삼하 11:2)을 묘사한다. 
이 단어가 사람을 묘사할 때, 영어의 관용구는 '잘생긴' handsome이란 말을 사용한다(삼상 16:12).
감각적인 기쁨이나 좋은 것은 "단"이라고 묘사하는 데에서(렘 6:20), 그리고 다메섹의 물이 요단의 흙탕물보다 더 "낫다"는 나아만의 판단(왕하 5:12)에서 나타난다.
다른 것보다 더 나은 것으로서의 한 포도를 묘사하는 데에는 감각적인 매력도 포함되어 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삿 8:2).
'선한'은 자주 '행복한' happy을 나타낸다. 
이것은 왕이 결혼하는 때를 묘사한다: "내 마음에서 좋은 말이 넘쳐 왕에 대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필객의 붓과 같도다"(시 45:1). 
행복한 축제일은 "좋은 날"로 묘사되기도 한다: "왕의 조명이 이르는 각 도, 각 읍에서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로 경절을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에 8:17, RSV '휴일' holiday; 참조: 삼상 25:8).
"좋은 마음"은 행복을 나타낸다(대하 7:10, 잠 15:15).
행복은 술에 의해 야기되기도 하는 것 같다(전 9:7).
토브를 포함하는 관용어로는 선호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어떤 사람의] 눈에 선한"이란 용법이 있다. 
이런 용법의 예들로는 도망친 노예가 어떤 곳을 거처로 택함(신 23:16, RSV "그를 기쁘게 하는 곳), 그리고 슬로브핫의 딸들이 남편으로 택함(민 36:6)이 있다. 
하나님의 뜻은 이런 식으로 표현될 것이다(삼상 3:18). 이것은 타락하고 죄에 가득찬 욕망을 묘사한다(창 19:8, 삿 19:24). 이런 경우에, 이 관용어는 도덕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토브는 우수한 질이나 상대적인 가치에 대한 개념도 포함한다. 
이런 식으로 이 단어는 하윌라의 "정"금(창 2:12)과 고급 향유(아 1:3, RSV "바르는 기름" anointing oils)를 묘사한다.
우수한 장인은 모세가 "준수하다" (즉 고귀하다)고 묘사되는 경우(출 2:2)처럼, 인간의 성품의 특성이나 고귀성과 마찬가지로 이런 식으로 지칭된다(사 41:7).
토브의 중요한 용법은 도덕적인 선을 가리킨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시 34:14, H15)라는 명령은 분명히 "선"을 도덕적인 악과 대조 시킨다. 
하나님께서 다루기 어려운 자기 백성을 가르치실 "선한 길"은 도덕적인 삶을 가리킨다(왕상 8:36). 
'선한'과 '옳은'을 뜻하는 야샤르는 종종 도덕적인 선을 뜻하는 유사한 말로 나온다(대하 14:1, 대하 31:20).
토브는 하나님에 대해 사용되었다.
어떤 용법들에는 앞에서 논의된 둘 이상의 의미의 영역들이 뒤섞여 있다. 옛 언약의 "좋은 땅"은 실제적이며, 경제적이며 미학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신 1:25, 수 23:13).
마찬가지로, "선한 분"으로서의 하나님 개념도 "선한"이란 단어의 모든 가능한 의미들을 충분히 함축하고 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시 106:1, 대상 16:34), 좋으신 주님이시다(시 52:9).
구약성경에서 선의 개념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신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하나님의 개념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적인 것으로서의 선의 개념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선은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은사이며, 그렇기 때문에 선은 인간의 힘의 통제권 밖에 존재한다(창 3:5).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단지 '선'이 아니라 선하신 성품을 가지신 분이시라는 사상이 철두철미하게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인식이 구약성경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가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더욱 발전하였다.
하나님만이 오로지 선하신 분이시다라는 사실은 구약성경에서 그가 선택한 백성을 구원하신 것, 율법을 주신 것(신 30:15, 잠 28:10), 
그리고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출 18:9, 신 10:29이하)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명백해졌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의 창조 활동(창 l:1-8)에서건, 그의 말씀에서건(사 39:8), 그의 영에서건(시 l43:10), 심지어 그가 반대자들에게 말하기 위해 나타나셨을 때 조차도(창 50:20) 그에게서 유래되는 모든 것은 선하다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하나님을 오로지 선하신 분으로 찬양하는 새로운 계기로 발전하였다.
하나님은 역사를 통한 그의 사역에서 선(참조: 출 l8:9)을 행하시는 바 그 목적은 구원이며, 율법을 통해 인간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는데 있다. 
선은 이미 행해져 왔으며, 또한 준비되어 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약속했던 선은 메시야적, 종말론적 구원에서 실제로 성취될 것이다(레 32:39 - 42; 사 52:7). 
한편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통하여 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선하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도움,없이 가능할 것인가는 논쟁이 되고 있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도움,없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전 7:20).
랍비 유대주의는 하나님의 선함이 구원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다. 선한 것과 성취 가능한 것은 율법에 계시되어 있다. 
하나님의 법을 실행할 때 비로소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있고 또 선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선은 오로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동료 인간들 사이의 인격적 관계에서만 실행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의 논의에 비춰볼 때, 각 개별 용법은 앞의 의미들 중 어느 것이 가능한지를 고찰하기 위해 분명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수많은 문학적인 표현들은 특별한 취급을 필요로 한다. 
"선과 악"은 보편성에 대한 관용어로 이용된다(민 24:13, 삼하 13:22). 
어떤 이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이런 보편성을 뜻하는 관용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시사하였다(창 2:9). 
그러나 창세기 앞부분의 문맥은 전체적으로 이 어구의 도덕적 의미에 기초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선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곧 동의나 수용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도덕적 판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왕하 20:19, 참조: 삼상 20:7).
"선한 눈"은 관대함을 나타낸다(잠 22:9, RSV '관대한 눈' bountiful eye ).
전도서에서, "선을 보다" to see good는 좋은 것이나 삶의 기쁨을 경험하다로 번역된다(전 5:18, RSV '기쁨을 발견하다' find enjoyment; 전 6:6, RSV '선을 향유하지 못하다' enjoy no good).(참조: A. BOWLING; E. BEYREU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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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n:(5273, 나임) 즐거운, 사랑스러운, 아름다운, 노래하는
1. 나임(형용사)은 나엠(![en: , 5276)에서 유래했으며, '즐거운, 유쾌한'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1회 나온다.
(a)  나임은 '즐거운, 유쾌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울과 요단(삼하 1:23), 재물이나 보배(잠 24:4), 말(잠 23:8), 성도의 교제(시 133:1), 여호와 찬양(시 135:3, 시 147:1), 지혜로운 교훈을 지키는 것(잠 22:18), 지상적인 번영이나 형통(욥 36:11), 영적 즐거움(시 16:6, 시 16:11) 등 매력적이며, 기쁨을 주는 것을 묘사한다.
(b)  나임은 '사랑스러운, 아름다운'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아 1:16).
2. 나임(형용사)은 외국어에서 유래했으며, '노래하는, 감미로운 소리 내는, 음악적인'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회 나온다.
시 81:2에서 감미로운 소리내는 수금에 대해 사용되었다: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찌어다".
삼하 23:1에서 이스라엘의 음악가나 노래 잘 하는 자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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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o(7218, 로쉬) 머리 head, 꼭대기, 우두머리, 총계 시작 처음 등
로쉬(명남)는 기본어근이며, '머리 head'를 의미하며, '머리, 꼭대기, 정상, 우두머리(장), 전체, 총계, 시작, 처음, 첫째, 정선한 것'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600회 나온다.
(a)  로쉬는 몸의 일부분인 '머리'를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창 3:15, 창 40:20). 또한 '로쉬'는 베임을 당한 '머리'(삼하 4:8), 짐승의 '머리'(창 3:15)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자기의 머리를 들다'는 표현은 자신의 결백을 선언하는 표이다.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찌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올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목도함이니이다"(욥 10:15). 이와 같은 비유적 표현은 자기 주장에 대한 가장 맹렬한 형태인 전쟁을 시작하려는 의도를 지적할 수 있다: "대저 주의 원수가 훤하하며 주를 한하는 자가 머리를 들었나이다"(시 83:2). 이러한 표현은 부정어를 수반하여 다른 권세에 대한 복종을 상징하기도 한다: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삿 8:28). 로쉬는 타동사로 사용될 때(즉 다른 사람의 머리를 들다) 어떤 사람을 전의 위치로 복귀시킴을 의미할 수 있다.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하리니..."(창 40:13). 이 용법은 또한 어떤 자를 감옥에서 석방시킴을 나타낼 수도 있다".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십 이월 칠일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 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왕하 25:27).
'로쉬'는 '룸'(올리다)과 함께 즉위한 왕의 승리와 권세를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 머리를 드시리로다" 또는 그 통치를 펼치시리로다(시 110:7).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머리'를 드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소망과 믿음으로 채우신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니다"(시 3:3).
(b)  로쉬는 '머리'라는 의미에서 확대되어 가족의 '우두머리' chief(출 6:14), 구분한 이스라엘 백성의 '우두머리 관리' chief officer로서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로쉬'는 임명을 받았거나 선출되었거나 또는 스스로 되었거나에 관계 없이 '지도자'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한 무리의 백성들의 지도자인 족장들(출 18:25), 군대 지휘자들(삼하 23:8)에 대해 사용되었다. 민 1:16에서 족장들이 '두령'이라고 불리어진다(참조: 삿 10:18). 이 단어는 예배에서 백성을 대표하거나 인도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쓰인다(왕하 25:18, 대제사장). 이 어근의 용법의 독특한 히브리적 성격이 분명히 나타나는데, 그것은 이 어근이 구약성경에서 이방 민족들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데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c)  로쉬는 산이나 언덕과 같은 주요 지세의 꼭대기나 정상(출 17:9) 및 건물이나 건축물의 상부(창 11:4, 대하 3:15)에 대해서도 사용되며 이러한 것들에 대한 의인화로 사용되기도 한다(시 24:7, 시 24:9).
로쉬는 침상의 '머리', 사람의 '머리'를 두는 곳(창 47:3), 장대의 끝부분(왕상 8:8)에 대해 사용되었다.
(d)  로쉬는 '시작'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여행을 시작하는 장소에 대해서 사용되었다: "네가 높은 대를 모든 머리에 쌓고..."(겔 16:25). 이 시작의 장소라는 의미는 창 2:10(처음 용례)에도 나온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네 근원)이 되었으니".
(e)  또한 로쉬는 어떤 사물을 공간적으로 한 집단의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과 동일시한다. 그것은 정면에 또는 '선두'(head)에 선다(신 20:9, 왕상 21:9).
(f)  로쉬는 '정점, 중요한 위치'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별들 가운데서 '두령'(head)은 하늘의 정점에 위치한 별이다(욥 22:12). '머리돌'(슥 4:7)은 제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다른 모든 기준이 되는 돌이다. 그것은 중요한 모퉁이 돌이다(시 118:22). 이 구절과 이 단어의 이 용례는 신약성경에도 받아들여져서 예수님께서는 그가 유대인들에게 거부 받은 것에 관하여 언급할 때 인용한다(마 21:42, 눅 20:17, 엡 2:20, 벧전 2:7).
(g)  로쉬는 '첫째, 처음'이라는 시간적 의미를 나타낸다(출 12:2, 대상 16:7).
(h)  로쉬는 최상급의 의미, '가장 좋은 것, 정선한 것'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가장 좋은 상품과 향품(출 3:23, 아 4:14)과 제일 즐거워 하는 것(시 137:6)을 묘사한다.
유일무이한 가장 좋은 것만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적합한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의미는 성전 관리들(왕하 25:18)과 가장 훌륭한 음악가(느 11:17)에게도 적용된다.
(i)  로쉬는 '총계' sum 혹은 '총계의' total(잠 8:26)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KJV는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를 언급하는 구절에서 일관되게 '총계의' total '총계' sum라고 번역하며(출 30:12, 민 1:2 등), 아랍어 어형은 꿈의 '개략' sum 혹은 '내용, 요지' substance라는 특이한 의미로 나타난다(단 7:1).(참조: NEDOT; W. WHITE;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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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8081, 셰멘) 기름짐, 기름
셰멘(명남)은 샤만(@m'v; , 8080: 살찌다)에서 유래했으며, '기름짐(기) fate, 기름 oil'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93회 나온다.
(a)  셰멘은 '기름짐, 기름기가 많음 fate, fateness'을 의미한다.
① 비옥한 비탈(사 5:1, 사 28:1, 사 28:4)에 대해 사용되었다.
② 기름진 음식(비유적)에 대해 사용되었다(사 25:6, 시 109:24).
(b)  셰멘은 '기름 oil'을 의미한다.
이 단어가 기름을 가리킬 때는 대체로 감람유인데(에 2:12, "몰약 기름"은 액상의 몰약이거나 기름과 혼합된 몰약일 것이다), 이것은 고대의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① 셰멘은 요리할 때 쇼트닝으로 사용되었다(왕상 17:12-16), 즉 빵을 구울 때 밀가루와 올리브유를 섞는다(민 11:18). 기름은 좋은 음식의 상징으로서 고운 가루와 꿀과 함께 언급되었다(겔 16:13, 겔 16:19).
② 셰멘은 화장품 및 향수(신 28:40, 에 2:12, 전 9:8, 민 6:15, 암 6:6, 아 1:3, 삼하 14:2, 시 104:15)로 사용했다.
③ 셰멘은 의약용으로 사용했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 1:6). 신약성경에 보면 제자들은 그들이 행한 기적적인 병고침에서 그 상징으로 기름을 사용했다(막 6:13, 참조: 약 5:14).
④ 셰멘은 등유로 사용되었다(출 25:6, 출 27:20, 레 24:2). 기름은 성막에서와 같이 등불을 켜는데 사용되었다.
⑤ 셰멘은 의식용으로 사용되었다. 기름은 매일 제사, 또는 계속 드리는 번제(출 29:40), 소제(레 2:1-10), 나실인 예물(민 6:15), 위임제(민 7:13), 정해진 문둥병자의 속건죄(레 14:10-32)에서 고운 가루와 함께 섞었다. 기름은 또한 첫 열매 예물 중의 하나였고(레 2:14-16), 속죄제(레 5:11), 의심의 소제(민 5:15)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기름이 기쁨과 반가움을 상징했기 때문이다(시 45:7).
야곱의 원시적 예배에서 돌기둥에 기름을 부었다(창 28:18, 창 28:19). 우상 예배를 위해 기름을 사용했다(겔 23:41).
⑥ 셰멘은 왕을 세울 때 사용되었다. 사무엘이 사울(삼상 10:1), 다윗(삼상 16:1, 삼상 16:13)에 기름을 부었다. 제사장 사독이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다(왕상 1:39).
⑦ 셰멘은 기름병의 기름이 계속된 기적(왕상 17:8-16)과 기름병의 기름을 많게 한 기적(왕하 4:1-7)을 묘사한다.
⑧ 셰멘은 비유 및 상징적으로 사용되었다.
기름은 번영을 상징한다. 모세는 아셀에게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신 33:24)라고 축복한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 신 32:13에 주어져 있는데, 심지어 바위까지도 꿀과 기름을 생산한다고 한다. 즉 불모지이고 생산이 안되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축복 아래서는 풍성한 수확을 내게 될 것이다(욥 29:6).
기름은 기쁨과 즐거움을 상징한다(사 61:3, 시 45:7). 여기서 기쁨의 기름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아래 거하는 자의 복된 상태이다.
그리고 셰멘(기름)은 형제우애(시 133:2), 사치(잠 21:17), 음녀의 호리는 입(잠 5:3), 감언이설(시 55:21), 제어하기 어려운 것(잠 27:16)을 비유적으로 묘사한다.
(참조: BDB; TBT; TWOT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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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z:(2206, 자칸) 수염, 턱
자칸(명남)은 자켄(@qez: , 2204: 늙다)에서 유래했으며, '수염 heard, 턱 chin'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9회 나온다.
(a)  자칸은 '턱 chin'을 의미한다. 레 13:19, 레 13:30에서 문둥병의 진단에서 턱의 환처에 관해 언급한다. 문둥병자가 정결케 되려면 턱 수염을 깎아야만 한다(레 14:9).
요압은 아마사의 턱을 잡고 그 입을 맞추려 하는체 하였다(삼하 20:9).
겔 5:1에서, 에스겔은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의 상징으로서 머리와 턱의 털을 깎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삼상 21:13에서도 다윗이 미친체하며, 침을 턱에 흘리었다(삼상 21:14).
시 133:2에서는 '턱이나 턱수염'을 가리킨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삼상 17:35에서 사자의 '턱 즉 아래턱'을 가리킨다: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b)  자칸은 '수염'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염'을 잘 간직하는 것은 성인의 영예의 표시였다. 적에 의해 수염이 깎이고 뽑히는 것은 최대의 멸시를 당하는 것이었다(삼하 10:4, 삼하 10:5, 대하 19:5, 사 7:20).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은 수염의 모서리(양끝)를 깎는 것이 금지되었다(레 19:27, 레 21:5).
절망의 때나 깊은 슬픔의 때에는 수염을 뜯거나(스 9:3) 깎았다(사 15:2, 렘 41:5, 렘 48:37). 이것은 깊은 슬픔과 겸비의 표시였다.(참조: BDB; TW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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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a"(175, 아하론) 아론
아하론은 '총명한'을 의미한다. 한글개역은 '아론'이라 번역하였다.
(a)   아론의 가계. 아론은 레위의 자손으로, 아므람과 요게벳의 아들(출6:16,18,20;6:16-20; 민26:59),모세의 형(출7:17), 미리암의 남동생(출15:20),엘리세바의 남편(출6:23),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의 아버지이다(출6:23).
(b)   아론의 지위. 모세의 조력자(출4:13-31)요 모세의 대언자(출7:1,2).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출12:1) 모세와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로 위임받았다(출6:13,26,27).
(c)   아론의 특권. 모세와 함께 바로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출5:1-4), 이적을 행하고(출7:9,10,19,20; 출8:5-7; 출8:16-19). 훌과 더불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림으로 아말렉에 대한 승리를 쟁취했다(출17:10-12), 시내산에 올라가 여호와를 경배하고(출19:24),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며(출24:9,10), 모세의 부재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출24:14), 회막 안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아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는 직무를 행했다(레16:17 ). 아론은 백성을 축복하고(레9:22; 민6:23), 미리암을 위해 중보하였다(민12:10-12).
(d)   아론의 죄. 우상 숭배를 묵인 내지 관여하고(출32:1-4; 신9:20,21).  백성의 방자함을 허락하였다(출32:21-25).
아론은 미리암과 더불어 모세를 비방하고(민12:1,2,8), 므리바에서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말을 거역하였다(민20:8,10,11,12,25;20:1-13).(f) 아론의 성격. 아론은 성도로 불리워졌으며(시106:16), 능변가였으며(출4:14), 순종적이었다(레10:3,7;10:1-7).
그는 위기 때에 믿음이 약하였으며(출32:1,2,23,24;32:1-24), 질투심이 있고(민12:1,2), 죄의식을 가지었다(민12:11).
(e)   아론의 제사장직. 아론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제사장이 되어(출28:1), 평생 그 직무를 수행했으며, 세습되었다(출28:40-43; 출29:9; 대상23:13).
(f)   아론의 죽음. 아론은 123세에 호르산에서 죽었으며(민33:39),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그를 계승하여 그의 제사장의 직임을 행하였다(신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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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y:(3381, 야라드) 내려오다, 내려가다, 내리다
야라드(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내려오다, 내려가다, 내리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380회 나오며, 칼, 히필,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팔레스틴의 고원지대는 서쪽으로는 지중해에, 그리고 동쪽으로는 해면보다 훨씬 낮은 깊은 열곡, 아라바하(Arabah)에 면해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서는 어느 곳을 여행하든지 위로 가거나 아래로 가게 된다. 예루살렘이 지리상의 중심지이므로, 여행자는 "올라가거나"(알라) "내려간다".
몇 구절들에서 야라드는 목적지가 실제적으로 언덕 위에 있을 때 사용된다. 게다가 이 단어는 남쪽 방향이나 아래 지역, 혹은 그밖에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사 15:3).
또한 중요한 곳에서 보다 덜 중요한 곳, 즉 성전이나 궁궐에서 개인의 집으로 옮기는 것의 느낌도 있다: "그러나 우리 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 주의 신복들로 더불어 잔지라"(삼하 11:9이하).
더구나 내려온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명성의 신분을 떠나는 것, 자신을 낮추는 것을 말한다(사 47:1, 렘 48:18).
이 단어는 종종 전쟁시에 적과 교전하기 위해 행하는 '군사 기동 연습'을 의미한다.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군인, 도시, 성벽들은 모두 무너지고 만다(학 2:22, 신 20:20, 신 28:52). 그리고 넘어뜨린 사람은 누구든지 이런 식으로 패하게 된다(렘 51:40, 호 7:12).
다른 용례들은 '어떤 것을 분리하는 것, 짐승이나 전차, 옥좌나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 물건을 땅으로 끌어내리는 것, 비나 눈물이 내리는 것' 그리고 '선원들이 바다로 내려가는 것'(사 42:10)을 포함한다.
'애굽으로 내려가다'는 언약을 맺지 않은 백성들 사이에서 거주하기 위해 약속의 땅을 떠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야곱의 아들들이 맨처음 애굽에 정착하러 가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그들을 애굽으로 보내는 목적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창 46:2 이하). 그 후 그들이 팔레스틴의 지배권을 획득한 후에, "애굽으로 내려가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버리고 실패할 인간의 도움을 구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사 30:2, 사 31:1).
스올은 땅 아래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므로, 죽는 사람은 누구든지 스올로 내려간다: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줄을 너희가 알리라"(민 16:30).
스올의 욕구는 커서, 내려간 모든 사람들을 다 삼킬 것이다: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사 5:14).
잠언은 간음한 여자를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녀의 집이 "음부의 길이며,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는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잠 7:27).
신현현은 하나님이 내려오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자기의 거처를 떠나 직접적으로 말로써 혹은 간접적으로 어떤 도구를 매개로 하여 인간과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 오신다. 하나님은 시내산에 불로 내려오셨다(출 19:18, 대하 7:1 이하).
그리고 장막에서 그는 구름 기둥에서 나타나셨다(출 40:34이하, 민 12:5).
모세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하나님은 장로들 사이에 내려오셔서 그의 신중 어떤 것을 모세에게서 취하여 장로들에게 나눠주셨다(민 11:17).
더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내려오신다. 예를 들면, 그는 자기 백성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출하기 위해 나타나셨다(출 3:8).
다른 한편, 또한 하나님은 심판하러 내려오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내려오셔서 인간의 악함의 실상을 조사하신다(예: 바벨탑에서 창 11:5,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에서 창 18:20이하). 죄악이 관영하였음을 확인하고서 강림하사 높은 곳을 짓밟으신다(미 1:3). 즉 그는 우상숭배의 중심지를 파괴하심으로써 심판을 시작하신다.
게다가 그는 패역한 국가들을 쳐부수기 시작하신다: "옵 1: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찌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옵 1:4).
(참조: J. E. HARTLEY;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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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y:(3381, 야라드) 내려오다, 내려가다, 내리다
야라드(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내려오다, 내려가다, 내리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380회 나오며, 칼, 히필,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팔레스틴의 고원지대는 서쪽으로는 지중해에, 그리고 동쪽으로는 해면보다 훨씬 낮은 깊은 열곡, 아라바하(Arabah)에 면해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서는 어느 곳을 여행하든지 위로 가거나 아래로 가게 된다. 예루살렘이 지리상의 중심지이므로, 여행자는 "올라가거나"(알라) "내려간다".
몇 구절들에서 야라드는 목적지가 실제적으로 언덕 위에 있을 때 사용된다. 게다가 이 단어는 남쪽 방향이나 아래 지역, 혹은 그밖에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사 15:3).
또한 중요한 곳에서 보다 덜 중요한 곳, 즉 성전이나 궁궐에서 개인의 집으로 옮기는 것의 느낌도 있다: "그러나 우리 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 주의 신복들로 더불어 잔지라"(삼하 11:9이하).
더구나 내려온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명성의 신분을 떠나는 것, 자신을 낮추는 것을 말한다(사 47:1, 렘 48:18).
이 단어는 종종 전쟁시에 적과 교전하기 위해 행하는 '군사 기동 연습'을 의미한다.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군인, 도시, 성벽들은 모두 무너지고 만다(학 2:22, 신 20:20, 신 28:52). 그리고 넘어뜨린 사람은 누구든지 이런 식으로 패하게 된다(렘 51:40, 호 7:12).
다른 용례들은 '어떤 것을 분리하는 것, 짐승이나 전차, 옥좌나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 물건을 땅으로 끌어내리는 것, 비나 눈물이 내리는 것' 그리고 '선원들이 바다로 내려가는 것'(사 42:10)을 포함한다.
'애굽으로 내려가다'는 언약을 맺지 않은 백성들 사이에서 거주하기 위해 약속의 땅을 떠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야곱의 아들들이 맨처음 애굽에 정착하러 가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그들을 애굽으로 보내는 목적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창 46:2 이하). 그 후 그들이 팔레스틴의 지배권을 획득한 후에, "애굽으로 내려가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버리고 실패할 인간의 도움을 구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사 30:2, 사 31:1).
스올은 땅 아래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므로, 죽는 사람은 누구든지 스올로 내려간다: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줄을 너희가 알리라"(민 16:30).
스올의 욕구는 커서, 내려간 모든 사람들을 다 삼킬 것이다: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사 5:14).
잠언은 간음한 여자를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녀의 집이 "음부의 길이며,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는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잠 7:27).
신현현은 하나님이 내려오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자기의 거처를 떠나 직접적으로 말로써 혹은 간접적으로 어떤 도구를 매개로 하여 인간과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 오신다. 하나님은 시내산에 불로 내려오셨다(출 19:18, 대하 7:1 이하).
그리고 장막에서 그는 구름 기둥에서 나타나셨다(출 40:34이하, 민 12:5).
모세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하나님은 장로들 사이에 내려오셔서 그의 신중 어떤 것을 모세에게서 취하여 장로들에게 나눠주셨다(민 11:17).
더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내려오신다. 예를 들면, 그는 자기 백성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출하기 위해 나타나셨다(출 3:8).
다른 한편, 또한 하나님은 심판하러 내려오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내려오셔서 인간의 악함의 실상을 조사하신다(예: 바벨탑에서 창 11:5,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에서 창 18:20이하). 죄악이 관영하였음을 확인하고서 강림하사 높은 곳을 짓밟으신다(미 1:3). 즉 그는 우상숭배의 중심지를 파괴하심으로써 심판을 시작하신다.
게다가 그는 패역한 국가들을 쳐부수기 시작하신다: "옵 1: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찌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옵 1:4).
(참조: J. E. HARTLEY;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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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f'(2919, 탈) 이슬 dew
탈(명남)은 탈랄(ll''f; , 2926)에서 유래했으며, '밤안개 night-mist, 이슬 dew'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30회 나온다.
팔레스틴의 밤과 낮의 극심한 온도차로 인하여 많은 이슬이 내렸으며, 여름의 가뭄기에는 이것이 초목을 살아 남게 해 주었다. 그 양은 지역마다 달랐지만 가자(Gaza)에는 한해 250일의 밤에 이슬이 내렸다. 성경은 종종 이런 특색을 언급하곤 한다.
문 밖에서 밤을 지내는 사람은 "이슬로 젖었다": "내가 잘찌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아 5:2).
하늘에서 내린 선물로 여겨진(신 33:28, 잠 3:20) 이슬은 하나님에 의해 불순종한 사람들에게는 그쳐졌으며(학 1:10) 엘리야의 기도에 의해 비와 함께 그쳐졌다(왕상 17:1).
그러나 이슬은 하나님의 은혜의 시기에는 주어졌다: "곧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슥 8:12). 그러므로 이슬은 축복으로 간주되었고(창 27:28) 이슬의 부족은 고난(창 27:39)이나 저주(삼하 1:21)였다. 욥은 이슬을 누가 낳았는지 대답하지 못했다: "비가 아비가 있느냐 이슬 방울은 누가 낳았느냐"(욥 38:28).
광야에서 아침 이슬은 만나를 동반하여 이 이슬이 증발한 다음에 만나를 남겨 놓았다(출 16:13, 출 16:14, 민 11:9).
기드온에게 보여준 표적, 주변의 땅에는 이슬이 없고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는 표적은 그 후 바뀌어져서 땅은 젖어있고 양털은 말라 있었다(삿 6:37-40).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비유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왕의 은혜(잠 19:12), 인간의 언변(신 32:2), 그리고 형제 단합의 축복(시 133:3)은 이슬이 내리는 것에 비유된다.
하나님은 이슬 구름처럼 조용히 감찰하신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종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사 18:4).
욥이 이전에 지닌 번영은 가지 위에 내린 이슬에 비유된다: "내 뿌리는 물로 뻗어나가고 내 가지는 밤이 맟도록 이슬에 젖으며"(욥 29:19).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삼하 17:12), 열방들 사이에서의 야곱의 세력(미 5:7, H6), 그리고 청년의 활력(시 110:3), 이 모든 것들도 이슬에 비유된다. 믿음이 없을 때, 이스라엘은 일찍 사라져 버리는 이슬과 같았다(호 6:4, 호 13:3).(참조: J. P. LEWIS;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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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r;B](1293, 베라카) 축복, 복을 주는 것
베라카(명여)는 바라크(&r'B; , 1288)에서 유래했으며, '축복, 복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70회 나온다.
(a)  베라카는 '축복, 복 주심 blessing'에 대해 사용되었다.
① 부모의 축복(창 27:12-41, 창 49:28), 모세의 축복(신 33:1).
② 하나님의 복 주심(출 32:29, 레 25:21, 신 11:26, 신 11:27, 신 11:29, 신 23:6(= 느 13:2), 신 28:2, 신 28:8, 신 30:1, 신 30:19, 수 8:34, 삼하 7:29, 시 3:8, 시 21:3, 시 133:3, 사 44:3, 스 34:26, 스 44:30, 욜 2:14, 말 3:10, 창 39:5, 신 12:15, 신 16:17, 신 33:23, 시 129:8, 잠 10:22, 시 24:5, 창 28:4).
③ 사람의 축복(시 109:17, 잠 10:6, 잠 11:25, 잠 28:20).
④ 가난한 자의 축복(욥 29:13,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인하여 기뻐 노래하였었느니라").
(b)  베라카는 복의 근원 즉 복을 주는 한 복에 대해 사용되었다. 아브라함(창 12:2), 이스라엘(사 19:21, 겔 34:26, 슥 8:13), 의인의 씨(시 37:26), 왕(시 21:6), 의인의 기념(잠 10:7), 새로운 포도즙(시 65:8)은 세계나 인류 사회에 한 복이 되는 것이다.
(c)  베라카는 '복, 번영'에 대해 사용되었다. 정직한 자의 축원이나 번영(잠 11:11), 이른 비의 은택(시 84:6), 하늘의 복, 원천의 복, 태의 복(창 49:25), 아비의 복(번영)(창 49:26), 너의 복(번영)(말 2:2).
(d)  베라카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에 대해 사용되었다. '축복'이 하나님께 돌려질 때, 그것은 찬양과 감사의 표현이었다: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찌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느 9:5).
(e)  베라카는 '선물, 선사'에 대해 사용되었다(창 33:11, 수 15:19, 삿 1:15, 삼상 25:27, 삼상 30:26, 왕하 5:15).
잠 11:25에서 베라카는 '활수한 사람'에 대해 사용되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f)  베라카는 '평화 협정'에 대해 사용되었다: 왕하 18:21(= 사 36:16): "이제 네가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 손에 찔려 들어갈찌라 애굽 왕 바로는 무릇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참조: BDB; TW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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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x;(6680, 차와) 명령하다, 부과하다, 부탁하다
차와(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명령하다, 요구하다, 부과하다, 부탁하다, 지명하다, 정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0회 나온다.
명령은 아비가 자식에게(삼상 17:20), 농부가 일군에게(룻 2:9), 왕이 신하에게(삼하 21:14) 지시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것은 확고하게 틀이 잡힌 조직사회라는 점을 반영해 주는데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지배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었다(참조: 삼하 7:7, 왕상 1:35). 그러므로 지도자는 백성에게 명령하고 그들의 복종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수 1:9, 수 1:16).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세를 승계하도록 그 직에 임명하였다(민 27:18이하, 신 31:14이하).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택했을 때 그가 "그를 군주로 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즉 그를 군주[나기드]로 임명하였다, 삼상 13:14).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것만을 모두 선포하기 때문에 그의 말은 권위를 지닌다(렘 1:7, 참조: 신 18:18).
하나님은 세상으로 하여금 존재하도록 "명하셨다"(시 33:9, 사 45:12).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과 자연이 그의 명령에 복종한다(참조: 왕상 17:4, 욥 37:12, 시 78:23). 하나님은 또한 중대한 사건들을 명함으로써 역사의 과정을 이끌어 가신다. 참으로 그 어떤 결정적 사건이라도 하나님의 정하심이 없이는 발생하지 않는다(애 3:37). 또한 그는 자기 백성이 승리하도록 명하신다(시 44:4, H5).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명하실 때 그는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신다. 예컨대 하나님께서 제사 기구와 건물 축조에 관해 모세에게 지시하실 때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지혜의 신을 부어 줌으로써 그 사역을 완수할 수 있게 하셨다(출 31:2-6, 출 35:30-35, 출 36:1). 이러한 물건들을 만듦에 있어서 본문은 먼저 지시 사항을 상술하고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주의 깊게 수행한 사항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출 25-30장, 출 36-39장, 레 8장, 참조: 출 39:5, 출 39:7, 출 39:32, 출 39:42이하).
하나님은 말씀으로 명하심으로써 그 말씀의 진실성을 보증하신다. 이와 같이 그는 언약을 명하셨으며(시 105:8, 시 111:9) 그 언약에 충실한 자들에게 축복을 명하실 것이다(신 28:8, 시 133:3). 하나님은 자기가 명령한 것을 기억하시며 선포된 명령과 관련하여 자기 편에서 행해야 할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이행하신다(대상 16:15).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에는 축복이 수반된다. 그러나 거역은 저주를 가져온다(신11:26이하).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하였으므로 저주를 받았다(창 3:16-19).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했을 때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준행했으므로 홍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창 6:22, 창 7:5). 이스라엘은 출애굽시에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했으며 특히 유월절과 관련하여 그러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노예상태에서 도피해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참조: 출 12:28, 출 12:50). 그러나 불행히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에서 떠나는 경향이 있었다(참조: 신 31:29). 그의 계명에 순종하게 되면 행복한 삶과 장수의 결과를 가져온다(신 5:33).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명한 것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아야 했다(신 5:32).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은 순종하는 자의 의가 된다(신 6:25).
하나님께서는 죽을 병에 걸려 있는 히스기야에게, 그의 '집에 명을 내리라'(한글개역: "집을 처치하라")고 지시했다. 다시 말해 히스기야는 자기의 모든 책임이 이행되도록, 즉 그 책임이 자기의 후계자들에게 적절히 맡겨지도록 확실한 조처를 취해야 했던 것이다(왕하 20:1). 야곱도 자기의 장례 문제에 관해 아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창 49:29, 창 49:33).(참조: J. E. HARTLEY;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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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5769, 올람) 영원, 긴 기간, 고대, 옛날, 미래
올람(명남)은 '영원, 긴 시대(기간), 고대, (먼) 과거, (먼) 미래, 세상'이란 의미를 지닌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440회 나오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올람은 일정 기간의 범위를 나타낸다.
종의 고용 기간(신 15:17, 출 21:6), 사무엘의 성전 봉사를 위한 헌신 기간(삼상 1:22), 아론의 자손들의 제사장 복무 기간(출 29:9)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모든 경우에 그 기간은 사람의 전 생애에 걸치며, 또한 그 생애 내에만 국한된다. 이것은 평생 왕직의 약속의 경우(삼상 13:13), 모세가 생존하는 한 백성들이 그를 신뢰함의 경우(출 19:9) 혹은 평생 가신 관계의 경우(삼상 27:12)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것이 그 관련자의 죽음과 더불어 종결됨은 물론이다.
(b)  올람은 '긴 기간'을 나타낸다.
① 올람은 개인 뿐만 아니라 세대나(예: 출 40:15, 출 32:13, 시 18[17]:51) 혹은 전 민족(수 4:7, 삿 2:1)에 대해 사용될 경우에도 역시 위의 (a)와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이러한 실체들의 쇠퇴와 더불어 그들의 시간도 종식된다.
이것은 '영원'이나 '영원'이라는 말들로 표현되는 관용구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도 신뢰할만한 단서를 제공한다. 대상 16:36에서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하리로다"고 하였다. 찬양의 계속은 이처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민족의 영속과 연관된다. 사실상 대상 16:15에서 "영원히"와 "천대에"가 병행한다. 그러므로 관용구 "영원부터 영원까지"는 다른 문구 "대대로"(출 40:15, 사 13:20)에서 유래하였음이 아주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관용구는, 여기에서도 추상적이고 무한정적인 관점에서 생각되는 영원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결부된 인간의 생애와 찬양의 문제라는 점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되찾는다. 삼상 2:30과 삼상 3:13 이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은 추상적 불변성이 아니라, 인간과의 상호적 관계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고스란히 보존되는 한, 영원하지만 부서질 수 있다.
② 영원히 세워진 큰 약속이라도 단지 초시간적, 불변적으로 유효한 것이 아니다. 이 약속들은 살아계신 하나님 안에서 살아있는 관련점에 결속되어 있다. 성전의 영원성이 하나님의 임재에 달려있으며(왕상 9장), 왕권의 영원성도 그러하다(삼하 7장).
(c)  올람는 완전한 의미에서 '영원'을 의미한다. 인간의 생명은 제한되었으므로(창 6:3), 그 수명이 끝없는 지속의 바탕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완전한 의미에서 아이온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이 멸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영원히 살아계시고(신 32:40, 참조: 창 21:33)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며(참조: 사 40:28)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신다(시 90:2)라는 것을 의미한다. 영원은 무궁한 시간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므로 말씀은 영원하며(사 40:8), 그의 구원은 영원하다(사 45:17)(참조: Arndt).
(d)  올람은 미래의 시간(출 14:13, 신 13:16, 신 23:3, 신 23:6, 신 29:29, 수 8:28, 미 4:7) 뿐만 아니라, 먼 고대의 시간도 의미할 수 있는 그 까닭을 설명해 준다(창 6:4, 신 32:7).
신 32:7과 욥 22:15에서 올람은 선조들의 시대를 가리키는 것 같다. 잠 22:28, 잠 23:10, 렘 6:16, 렘 18:15, 렘 28:8에서 이 단어는 다소 먼 과거를 지칭한다. 사 58:12, 사 61:4, 미 7:14, 말 3:4과 스 4:15, 스 4:19의 아람어 본문에서 이 단어는 바로 이전 시대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삼상 27:8, 사 51:9과 사 63:9, 사 63:11, 그리고 아마도 겔 36:2에서 이 단어는 출애굽 사건을 언급한다. 창 6:4에서 이 단어는 노아 홍수 직전의 때를 가리킨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언급들 중에서 끝없음이나 무한의 개념을 지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각각의 언급은 살아있는 자들이 직접적으로 아는 시대 이전의 오랜 때를 가리킨다(CA. A. M).
여호와의 미래의 날과 관련하여 암 9:11, 미 5:2에 나타난다.
(e)  우리가 또 주목할 것은 서력 기원 전환기의 랍비 유대주의와 A.D.1세기의 묵시 문학에서(예: 에스드라스 하) 시간적 의미와 공간적 의미를 아울러 나타내는 올람의 아주 새로운 용법이다. 분명히 페르시아 사상의 영향 하에서 최초의 시간과 최후의 시간에 관한 구약의 진술들(사 24-27, 욜 2장)은 두 세계(aeons) 교리로 체계화되었다. 이 교리에서 유일한 공통 요소는, 하나님은 이 세계와 저 세계의 주이시며, 이 시대와 저 시대의 주이시라는 점이다. 이 시대는 불의와 죄, 고통의 시대이므로 이 두 세계는 대조적으로 관련된다. 장차 올 시대가 이 시대를 밀어내고 대신 들어서게 될 때 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니, 그 때에는 의인이 살 새 땅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용어 아이온(aion: 영원)과 코스모스(kosmos: 세계)의 신약적 유사성도 이 사상에 근거한다. 대망되는 메시야가 미래 시대에 친히 오시거나 혹은 "메시야의 날"이 새 시대가 뒤따를 과도기로서 생각된다. 이것은 "이 시대"(헬, 호 아이온 후토스/ 히, 하올람 핫제), "장차올 시대"(헬, 호 멜론 아이온/ 히, 하올람 합바)라는 용어에 반영되어 있다.
사 64:3에서 KJV는 이 단어를 '세상의 시작'으로 번역한다. 시 73:12("항상")와 전 3:11("영원")에서 이 단어는 '세상'(world)으로 번역되는데, 이는 앞에 언급한 것과 같은 새로운 용법의 영향일 것이다.(참조: Arndt.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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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2416, 하이) 살아있는, 생존하여 있는
하이(형용사)는 하야(hy:j; , 2421: 살다)에서 유래했으며, '살아있는, 생존하여 있는 living, alive'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0회 나온다.
이 형용사는 종종 하나님에 대한 수식 형용사로 사용되고 있으며(수 3:10, 호 2:1, 시 42:3, 등), 또한 죽었거나 말라버린 것에 대조되는 사람, 동물, 채소에 대해서도 사용되고 있다. 
복수어형은 흐르는 물 혹은 신선한 물을 묘사하고 있다(창 26:19, 레 14:5, 레 14:6, 민 19:17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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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奠祭, 히-네세크)’ = 하나님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 상징
‘전제’를 뜻하는 히브리어 ‘네세크’는 ‘부음’, ‘쏟음’을 뜻하는 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봉사하심을 상징한다(마 26:38~44). 
또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다 바쳐 충성하심을 상징한다(마 27:46~51).
전제의 제사법은 ‘번제’(출 29:40~41), ‘소제’(레 23:13), ‘화목제’(레 23:19) 등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기를 원하는 경배자들은 ‘포도주’와 ‘독주’(레 23:13, 민 28:7)를 제물로 드렸다.
경배자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는 포도주나 독주를 다른 제물과 함께 부어드렸고(민 28:7), 제사의 희생 제물이 수송아지일 경우에는 1/2힌, 숫양일 경우에는 1/3힌, 어린 양일 경우에는 1/4힌을 드렸다(민 28:14).
구약에 등장하는 다양한 제사들은 하나님과 인간이 원래 창조 상태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관계를 단절시킨 원인인 죄의 해결이 먼저 요청된다는 원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죄를 범한 자가 그 생명의 근원이 되는 피를 흘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창 2:17).
이런 점에 미루어 볼 때 구약의 제사법은 죄는 처벌돼야 한다는 공의의 원리와, 죄인이지만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가 조화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대한 신앙고백을 그 원리로 하고 성도의 자원하는 감사와 찬양, 간구로 이루어지는 신약의 예배와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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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상식]전제(奠祭)
구약의 제사를 제물의 종류에 따라 분류하면 번제,소제,전제로 나눌 수 있다.
번제(燔祭)는 짐승을 잡아 드리는 제사이고, 소제(素祭)는 곡식을 바치는 제사이며,
전제(奠祭)는 포도주나 독주를 희생 제물 위에 부어 드리는 제사로서 히브리어로 전제는 '네세크'인데,'붓다,따르다'는 뜻을 지닌 '사나크'에서 유래되었다.
전제는 단독으로 드려질 수 없고 항상 다른 제사와 함께 드려졌다.
[출29장40~41] *40. 한 어린양에 고운 밀가루 에바 십분 일과 찧은 기름 힌의 사분일을 더하고 또 전제로 포도주 힌의 사분 일을 더할지며  *41. 한 어린양은 저녁 때에 드리되 아침과 일반으로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지니
[민15장5~10] *5.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한 흰의 사분 일을 예비할 것이요  *6.숫양이면 소제로 고운 가루 한 에바 십분지 이에 기름 한 흰의 삼분지 일을 섞어 예비하고  *7.전제로 포도주 한 흰의 삼분지 일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롭게 할 것이요  *8.번제로나 서원을 갚는 제로나 화목제로 수송아지를 예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9.소제로 고운 가루 한 에바 십분지 삼에 기름 반 흰을 섞어 그 수송아지와 함께 드리고  *10.전제로 포도주 반 흰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화제를 삼을지니라
[민28장14절]*14. 그 전제는 수송아지 하나에 포도주 반 힌이요 숫양 하나에 삼분지 일 힌이요 어린양 하나에 사분지 일 힌이니....
이처럼 어린양,숫양,수송아지등 희생 제물에 따라 전제에 사용되는 포도주의 양도 달라졌다.
또한 전제는 '물 댈 관,제사 제' 자를 써서 관제(灌祭)라고도  한다. 사도 바울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마치고 순교할 시점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자신이 관제(전제)와 같이 벌써 부어졌다고 하였다.
[딤후4장6절..개역한글]*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개역개정,딤후4장6절]*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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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y"(3196, 야인) 포도주 wine
야인(명남)은 '포도주 wine'를 의미한다.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40회 나온다.
(a)  포도주는 색이 붉고 잔에서 번쩍인다(잠 23:31). 
포도주는 번영의 증거이며(창 49:11, 창 49:12), 황폐의 표시가 되기도 한다(신 28:39, 신 33:38).
(b)  포도주는 새 포도주, 묵은 포도주(호 4:10, 호 4:12), 혼합한 포도주(잠 9:2, 잠 9:5)가 있다.
(c)  포도주의 산지는 레바론(호 14:7), 헬본(겔 27:18), 모압(렘 48:33)으로 나타난다.
(d)  포도주는 포도로 제조하고(창 49:11), 가죽부대나(수 9:4, 수 9:13, 욥 32:19) 병에 보존하고(렘 13:12), 곳간에 저장한다(대상 27:27).
(e)  포도주는 제물(출 29:40, 레 23:13, 민 15:5, 민 15:7, 민 15:10, 민 28:14, 대상 9:29), 약품(잠 31:6, 잠 31:7), 음료(삼상 1:24, 삼상 10:3, 삼상 16:10, 삼상 25:18, 잠 9:5, 전 9:7, 아 8:2, 사 24:9, 암 9:14), 십일조(신 14:26, 느 13:15), 군수(대하 11:11), 상품 화폐(대하 2:10), 속임수(수 9:4, 수 9:13), 손님 접대(삿 19:19, 에 5:6)에 사용되었다.
(f)  포도주를 먹으면 눈이 붉어지고(창 49:12), 순하게 내려가고(잠 23:31), 취하게 되고(시 60:3, 시 104:15, 잠 4:17, 잠 31:6, 렘 23:9, 욜 1:5, 합 2:5, 슥 10:7), 육신을 즐겁게 하고(전 2:3), 마음을 빼앗고(호 4:11), 거만케 하고(잠 20:1), 떠들게 되고(잠 20:1), 바다 가운데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으며(잠 23:24), 괴이한 것이 보이고(잠 23:33), 마음에서 망령된 것을 발하며(잠 23:33), 옆 걸음 치며 비틀거리며(사 28:7),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시기도 한다(사 5:11, 사 5:12), 그래서 결국 그들에게는 재앙, 근심, 분쟁, 원망, 까닭 없는 창상이 닥친다(잠 23:29, 잠 23:30).
(g)  귀환한 유대인들이 포도주를 저축했고(렘 40:10, 렘 40:12), 거짓 예언자들이 포도주를 마시므로 부패를 드러내었고(사 56:12), 이방인들이 어린 아이들마저도 술로 바꾸어 마시었다(욥 3:3). 갈대아인들이 술을 즐기었다(합 2:5).
(h)  포도주로 취한 자들로는 노아(창 9:21), 롯(창 19:32), 나발(삼상 25:36), 암논(삼하 13:28), 아하수에로(에 1:10), 이스라엘의 왕들(호 7:5) 등이 나타난다.
한나는 포도주로 취한 자로 오해를 받았다(삼상 1:14 이하).
(i)  롯의 두 딸(창 19:32-35), 나발(삼상 25:37), 암논(삼하 13:28), 악인(잠 4:17)은 포도주를 악용한 자들이다.
(j)  성직을 집행하는 동안, 제사장들에게는 포도주 마시는 것이 금지되었다(겔 44:21, 
레 10:9 - 이것은 레 10:1-7에 나오는 나답과 아비후가 술을 마시고 성소를 더럽혔다는 암시이다). 
나실인은 그리고 삼손을 잉태한 그의 어머니도 포도주나 셰카르(발효된 음료, 삿 13:4, 삿 13:5, 삿 13:7, 삿 13:14, 민 6:3)를 마셔서는 안되었다. 
이스라엘인들은 광야 40년 동안 "빵을 먹지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신 29:6). 
왕들은 명석한 두뇌로 통치하기 위해서 그것을 피해야 했다(잠 31:4-5). 솔로몬은 포도주가 결국에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유를 들어 포도주를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한다(잠 23:30-31).
그리고 레갑 자손은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였고(렘 35:14), 다니엘은 절제했다(단 1:8, 단 1:16, 단 10:3).
(k)  포도주는 비유 및 상징적으로는 지혜의 기쁨(잠 9:2, 잠 9:5), 그리스도교의 기쁨(사 55:1), 하나님의 진노(렘 25:15 등), 하나님의 심판(시 60:3, 시 75:8, 렘 51:7), 강포(잠 4:17), 인생의 쾌락(아 1:2, 아 1:4, 아 4:10)에 대해 사용되었다. (참조: R. L. HARRIS; BDB; 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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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ve(7941, 셰카르) 강한 술, 독주
셰카르(명남)는 샤카르(rk'v; , 7937: 술 취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강한 술, 독주'를 의미한다. 이것은 곡물이나 과일로 빚은 모든 [발효시킨]알코올 음료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3회 나오며, 모두 포도주와 함께 나타난다.
독주는 취하게 하는 술로 언급되어 있다(민 6:3, 사 5:11, 사 5:22 등). 독주는 보통 석류, 사과, 종려나무의 열매, 포도로 만들었다.
나실인에게는 이런 종류의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찌니"(민 6:3, 눅 1:15).
제사장들도 성전에 들어가 일할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레 10:9).
왕도 불공평한 재판을 하지 않기 위해 이것을 삼가야 했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잠 31:4).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종일토록 술 마시는 자(사 5:11)와 직업적으로 술 만드는 자를 책망했다. 
이는 이러한 행위가 그들의 판단을 망치기 때문이었다(사 5:22-23).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독주로 인하여 옆 걸음을 쳤다(사 28:7).
술이 유행했던 시대에 잠 20:1의 책망은 합당한 내용이다: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유덕한 사람의 상용음료는 아니지만, 특별한 사정하에 있어서는 상심한 자에의 자극제로서 권해져 있다: "독주는 죽게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찌어다"(잠 31:6, 잠 31:4과 비교).
독주는 제의에서 관제로 드렸다: "또 그 전제는 어린 양 하나에 힌 사분지 일을 드리되 거룩한 곳에서 여호와께 독주의 전제를 부어 드릴 것이며"(민 28:7, 신 14:26). (참조: BD,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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