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역개정]제87 고라 자손의 시 곧 노래...내주예수주신은혜한없건만317. 구주를생각만해도85.내구주예수를더욱사랑314**이세상에하나밖에.4월아이.정이란무엇일까..잊으라했는데...//잊으라시네.갈길이멀어도.날구원하신주감사.사랑이구주를죽게했네.그를아는가.하늘의나는새도.
1.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시24편. 출38:18.왕상7:15-22 : 모리아산의 성전 있는 시온성(하늘의 예루살렘/부활생명의 몸-성화된 영혼표상) 2.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성전/교회의 두기둥.남(야긴..그가 세우심).북(보아스..그분께 힘이 있다)..가정/교회 3.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셀라)..Q의 임재,통치..그 중요성:공중예배>가정예배..내적형상의거룩한아름다움,외적넘침.풍성부요충만한 거룩한나름다움=Q얼굴=카보드.Q은혜로 그 임재 나타내심=세키나...부활생명능력,길진리빛<절대믿음신뢰긍정!!>..구원회복영생복락의 삶!! 4.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야다!.시온의시민권은Q아는것,엡2:19.사19:23-25 5.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오늘살아낸JC는 극상의 의의옷!! 6.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셀라),,생명책.출32:32.단12:1.말3:16.지식+체험한JC=영적각성....오직Q말씀그대로HS따라.섬기며사랑함으로써경외하고따르라(베레스웃사 기억하라!) 7.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 NIV]제87 Psalm 87 Of the Sons of Korah. A psalm. A song. 1 He has set his foundation on the holy mountain; 2. the LORD loves the gates of Zion more than all the dwellings of Jacob. 3. Glorious things are said of you, O city of God: Selah 4. "I will record Rahab and Babylon among those who acknowledge me -- Philistia too, and Tyre, along with Cush -- and will say, `This one was born in Zion.'" 5. Indeed, of Zion it will be said, "This one and that one were born in her, and the Most High himself will establish her." 6. The LORD will write in the register of the peoples: "This one was born in Zion." Selah 7. As they make music they will sing, "All my fountains are in you." --------------- The Privileges of Citizenship in Zion. A Psalm of the sons of Korah. A Song.87 1 His foundation is on the holy mountain. 2 The Lord loves the gates of Zion More than all the dwellings of Jacob (Israel). 3 Glorious things are spoken of you, O city of God [Jerusalem]. Selah. 4 “I will mention Rahab (Egypt) and Babylon among those who know Me—Behold, Philistia and Tyre with Ethiopia (Cush)—‘This one was born there.’” 5 But of Zion it will be said, “This one and that one were born in her,” And the Most High Himself will establish her. 6 The Lord will count, when He registers the peoples, “This one was born there.” Selah. 7 The singers as well as the players of flutes will say, “All my springs and sources of joy are in you [Jerusalem, city of God].” -------------- [시87 개요] 이 시편에는 이해하기에 모호하고 힘든 것들이 있다. 이 시편은 복음 교회의 모형이며, 상징으로서의 시온에 대한 찬사인데, 여기에 언급된 것이 그 시온에 매우 잘 적용된다. 시온은 여기에서 성전으로 묘사되고 있다. 1. 가나안의 다른 지역에 비해 시온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곳임(1-3). 2. 훌륭한 인물과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했기 때문에, 그 어느 장소나 지역보다 뛰어남(4-7). 어떤 사람은 시온이 번영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 백성들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이 시편을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시온이 멸망해 포로사건 이후 다시 재건시켜야 했을 때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격려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록 아무도 시온을 돌보지 않았을지라도(렘 30:17, “이것은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하나님께서 시온을 위해 큰 일을 행하셨고, 시온에 대해 영광스러운 것들을 말씀하셨는데, 모두 복음 교회 안에서 완전케 되고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편을 노래하는 가운데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영존하시는 주재의 영광을 주목하며 묵상해야 한다. -------------- 시온의 영광(1)(시 87:1-3) 어떤 사람들은 이 시편의 맨 처음 말을 표제 부분으로 삼고 있다. 이 시편의 주제는 성산─모리아 산 위의 시온에 바로 성전이 세워졌다─이다. 이것이 그 요지의 근거요, 또 이 시편의 서론이다. 또는 시편 저자가 지금 장막이나 성전을 염두에 두고서 그것의 영광을 묵상하던 중 마침내 이러한 표현을 터뜨리고 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은 그가 이전에 기록했던 것과는 관계가 없을지라도, 그가 생각했던 것과 관계가 있다. 그가 이처럼 “그 기초가 성산에 있음이여!” 하고 돌발적으로 말했을 때 각 사람은 그가 의미한 것을 [영으로] 알았다. 이 성전에 대한 찬미 속에서 우리는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Ⅰ. 성전은 성산 위에 세워졌다(1절). 교회에는 초석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라앉거나 흔들릴 수 없다.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교회의 초석이다. 이 초석은 하나님이 놓으신 것이다.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도 초석이 있는 도성이다. 그런데 그 초석은 산 위에 있다. 그것은 높이 세워진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다”(사 2:2). 교회는 견고하게 세워진다. 그 산은 바위로 되어 있고, 반석 위에 세워진다. 세상은 그 터가 바다 위에 있으며(24:2), 바다는 끊임없이 물이 빠져나가고 들어오고 하므로 매우 연약한 터가 되고 있다. 바벨은, 그 터가 썩어 있었던 평지에 세워졌다. 그러나 교회는 영원한 산과 영구한 언덕 위에 세워진다. 왜냐하면,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하나님의 화평케 하는 언약은 옮기지 않으며, 교회는 그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사 54:10). 그 기초가 성산에 있다. 거룩함은 교회의 힘이며 안정이다. 즉, 그것을 지탱하며, 쓰러지지 않게 해주는 것은 거룩함이다. 그것은 산 위에 세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성산 위에, 즉 성령의 성별케 하심 위에, 그가 그의 거룩하심으로 맹세하신 것을 확고히 하기 위해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워져 있는데, 이는 모든 성도들의 행복을 보호해 준다. Ⅱ.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표하셨다(2절).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이나 그밖에 다른 곳에 있던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 성전의, “교훈의 집의 문들을(갈대아역에 있는 것처럼) 사랑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시온에 관해, “이는 영원한 내 안식처이니, 여기에 내가 거하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서 그는 자기 백성들을 만나셨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셨으며, 그들의 경의를 받으셨고, 그의 은총의 표징을 보이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이 문들을 매우 사랑하고 계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하나님은 야곱의 거처에 대한 사랑을 품고 계시며, 신앙적인 가정을 은혜롭게 돌보시고, 그들의 가정예배를 받으신다. 2. 그러나 그는 시온의 문들을 더욱 사랑하신다. 야곱의 거처 중에서 다른 것보다 시온의 문들을 더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문들보다 더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야곱의 거처에서 경배되었다. 가정예배는 가정의 의무로서 결코 소홀히 여겨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들을 비교해 볼 때, 공중예배는(“다른 것들은 동등하다고 한다면”) 개인예배보다 더 우선권을 취해야 한다. Ⅲ.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시온에 관해 언급된 곳이 많다(3절).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우리는 사물과 사람을 그 나타난 모습과 또 성서 안에서 성서에 의해 부여되는 그 평가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에 대한 많은 상스러운 것들이 그 원수들에 의해 [모욕적으로] 언급되어, 그 성을 천하고 추악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판단을 진실에 의한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 그분은 그 성을 영광스럽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성전에 대해,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 내가 이 전을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리라”(대하 7:16). “시온 산이 아름답도다”(48:2)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이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더욱 영광스러운 일들이 복음 교회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복음 교회는 그리스도의 배우자요, 그의 피로 사들인 것이다. 그것은 “특별한 백성이요, 거룩한 민족이며, 왕적인 제사장이다.” 또 “음부의 권세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비록 복음교회가 지금 어떠한 상황이나 형편에 처하여 있던지]우리는 가장 비천한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나 거기에 속해 있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자. 그리고 그 교회가 아무리 우리에게 비방거리가 된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부인하지 않도록 하자. 이처럼 영광스러운 말이 [여호와의 입이 친히 말씀하신 바이기에]그 교회에 대해 말해진 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시온의 영광(2)(시 87:4-7) 여기에서 시온은 다른 곳과 비교되고 있다. 다른 어떤 곳보다 우월하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열방들보다 더욱 영광스럽고 훌륭하다. Ⅰ. 다른 장소들도 각자의 영광을 지니고 있음이 인정되어 있다(4절). “내가 라합(즉, 애굽)과 바벨론을 내가 아는 자와 내 주위에 있는 자, 그리고 내가 공적 일을 의논하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또는 차라리 아랍이여), 우리는 이도 거기서 났다는 것을 주목하겠다. 여기저기에서 한 유명한 자, 즉 이 나라들의 원주민으로서 지식과 덕에 뛰어난 자가 생길지도 모른다. 여기저기에서 개종자가 되고, 참된 하나님의 경배자가 될 자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오고, 그들이 유대인들과 한 몸으로 연합한다는 예언이나 약속으로 추측하면서 다른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애굽과 바벨론도 나를 아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여기리라. 나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때, 이스라엘처럼 내 백성으로 간주하겠고 시온에서 태어난 자로서, 거기에서 거듭난 자로서 시인하리라. 그리고 참 이스라엘 사람처럼 아낌없이 시온의 특권을 허용하리라”고 해석한다. 나그네였고, 외인이었던 자들이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 되었다(엡 2:19). 이방인 개심자는 본토 유대인과 동등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사 19:23-25와 비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Ⅱ. 시온의 영광이 여러 면에서 그들 모두보다 더 빛남이 증명되어 있다. 다음을 보라. 1. 시온은 그 세대에 유명하게 될 훌륭하고 선한 사람들을 많이 내게 될 것이다(5절). 시온에 관해,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는 말이 그 모든 이웃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것이다. 지혜와 경건으로 이름나고, 특히 하나님의 말씀과 전능자의 이상을 잘 알기로 유명한 사람들─애굽이나 바벨론에서 자라난 자들보다도 하늘의 더 큰 총아이며, 땅의 더 큰 축복인 많은 선지자들과 왕들이 거기서 났다는 사실이 알려질 것이다. 교회의 훌륭한 인물은 이방나라의 인물들을 훨씬 능가하며, 그들의 이름은 영구한 기록 속에서 보다 더 밝게 빛날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거기서 났다.”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 바로 그 분, 곧 사람의 자손들보다 더 뛰어난 그 인자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시온 가까이에 있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고, 그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었다. 유대 민족에게 부여된 가장 큰 영광은,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다”는 사실이다(롬 9:5). 또는, 이것은 이방인들의 개종에 적용할 수 있다. 시온에 관해 시온에서 발해진 율법, 즉 그리스도의 복음이, 많은 영혼들로 하나님의 자식으로 나게 하는 도구가 될 것이고, 위로부터 오는 그 예루살렘이 그들 모두의 어머니로 인정될 것이라는 사실이 언급된다. 2. 시온의 세력은 전능하신 능력에 의해 강하게 될 것이며, 견고케 될 것이다.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려” 착수하실 것이다. 그는 그것을 충분히 하실 수 있다. 여러 민족의 사람들이 개종자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불화와 분리를 야기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시온의 힘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영원한 초석을 놓으셨으므로 비록 나라들과 열방에 어떤 폭동과 혁명이 일어나고 천지가 요동할지라도 이것만은 영원히 설 것이다. 3. 시온의 아들들은 존귀한 자로 등록이 될 것이다(6절). “여호와께서 백성을 등록하시며, 자기에게 속한 자들의 명부를 작성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하실 것이다. 곧 그는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속민이 되는 것이니, 땅 위의 자기 집에서 태어난 첫 번째 탄생시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는 때부터도 그의 백성이 된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행위대로 각자에게 갚아주시기 위해 인간들과 셈을 하실 때에는 시온에서 태어난 자가 누구며, 따라서 하나님의 지성소에 참예하는 특권을 누린 자가 누구인지를 자세히 살펴보실 것이니,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과 예배가 허락되었다(롬 9:4, 3:1-2). 그들에게는 많은 것이 주어졌으므로 많은 것이 요구되며, 계산도 그에 따라 행해진다. 다섯 달란트를 위탁받은 자들은 그 다섯 달란트를 활용해 그 가치를 더욱더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네가 한 일들을 아노니, 네가 어디에 거하였으며, 네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를 아노라. 셀라.” 시온에 거하는 자들은 “이 점을 주목하고,” 자기들의 신앙고백대로 살아야 할 것이다. 4. 시온의 노래들은 기쁨과 개선의 환희로 불러야 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자들과 똑같이 노래하는 자들도 거기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7절). 하나님이 시온에서 섬김을 받으며, 기쁨으로 예배를 받으심은 시온의 영광에 큰 보탬이 되었고, 복음 교회를 영예롭게 돋보이도록 하는 것이 된다. 그의 일은 행해지되 그나마도 즐겁게 행해졌다(68:25 참조). “오, 시온이여!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도다.” 하나님은 그와 같이 말씀하신다. 그는 은혜의 보물들을 자기의 거룩한 율례 안에 예탁해 두셨다. “우리 하나님의 도성을 기쁘게 하는” 시냇물들은 이 근원에서 나뉘어 흐른다. 시편 저자도 자기의 메마른 영혼이 물을 공급받아야 할 근원은 지성소와 말씀과 율례와 성도의 교제에 있음을 생각하고 그와 같이 표현했다. 육욕을 가진 속인들에게는 기쁨의 원천이 부귀와 쾌락에 있지만, 은혜스런 영혼에게는 즐거움의 근원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성전이시다. 우리의 모든 근원은 그에게 있으며, 그에게서 우리의 모든 시냇물은 흘러나온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완전함이 거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했다. 모든 신자들도 마찬가지로 그 사실을 아주 기뻐한다. =========== [롬14: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겻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오직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화평과 기쁨 ---------- (5) ① 진정한 기독교의 본질.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다. 그것은 우리를 다스리는 종교요 왕국으로써 하나님의 능력과 지배에 충심으로 복종의 관계에 서 있다. 복음 세대는 특수한 의미에서 구약 율법 세대와 구별되는 "하나님의 나라"다(마 3:2; 4:17). 첫째, 그것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음식을 먹거나 마시거나 안 먹거나 안 마시는 데 있는 게 아니다. 기독교는 먹고 마시는 일에 있어서 어떤 법칙을 제시하지 않는다. 유대교에서는 음식규정이 까다로와(히 9:10) 제물에 있어서 어떤 것은 못 먹게 하고(레 11:2) 어떤 것은 여호와 앞에서 먹게 하는 등 가리는 게 많았으나 이 모든 조항이 이제는 철폐되고 무효화하고 말았다(골 2:21, 22). 이제 이 문제는 방임 상태에 놓여 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딤전 4:4). 다른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니 그것은 할례도 무 할례도 아니다(갈 5:6; 6:15; 고전 7:19). 우리는 하나님께 천거하는 것은 사소한 문제에 있어서 이 편을 드느냐 저 편을 드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다. 최후 심판날에는 "누가 고기를 먹었느냐? 누가 채소를 먹었느냐?" "누가 거룩한 날을 지키고 누가 안지켰느냐?" "누가 정통이요 누가 비정통이냐?"하는 식의 질문이 아니라, "누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고 누가 그러지 않았느냐?"하는 질문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 나라를 겉 모양과 습관 그리고 상황에 결부시키는 나머지 본질적인 것을 불식하는 죄보다 더 파멸적인 것은 없다. 둘째, 그것은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런 것들이 기독교 본질의 일부이니 우리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것을 추구하는 데 열성을 다 할 것이요 그것만을 염두에 둘 것이다. 의, 평강 희락은 아주 함축적인 말로써 신앙의 바탕과 철학(superstructure)을 내포하고 있다. 외람되이 본인이 이 말의 의미를 규정해 본다면 이런 식이 될 것이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우리의 지대한 관심은 "의"다. 곧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로 의롭게 되고 그의 은혜의 성령으로 성화되어 하나님 앞에 입고 나타날 의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형제에게 있어서, 우리의 지대한 관심은 "평강"이다. 곧 이들과 평화롭게 사랑으로 사는 것이요 모든 인간과 더불어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위대한 화해자(peace-maker)가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 우리의 지대한 관심은 "성령 안에서 희락"이다. 곧 복되신 성령에 의해서 우리 믿는 자들의 마음 속에 이뤄지는 영적 기쁨이나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화해된 아버지로, 하늘을 돌아갈 집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된 다음에는 그 분 안에서 하나가 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게 신앙의 본질이어야 한다. 분명히 우리에게는 우리 신앙의 본질인 평강과 희락을 주시는 좋은 주인이 있다. 기초가 놓여진 다음에라야, 오직 그 때 가서야, 우리는 성경 안에서의 평강과 희락을 기대할 수 있다(사 32:17). 셋째, 하나님의 나라는 이 모든 일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18절)이다. 곧 그리스도를 우리의 중보자로 그의 뜻을 우리의 법칙으로 그의 영광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고 이 먹고 마시는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선행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그걸 행하는 데 있어 그리스도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의 뜻과 계획을 섬겨야하니 그의 뜻과 계획이란 무엇보다도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것이요 다음에 우리를 서로를 화해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 말고 기독교의 할 일이 뭔가? 우리를 위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종의 모습을 취하신 그분을 섬기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본문이 아닐 수 없다. ② 하늘 나라의 혜택. 이것을 체대로 지키는 자는 첫째,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는다. 그런 사람은 우리의 표준에는 안 맞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다. 하나님의 사랑과 총애를 독차지하는 사람이니 그 사람됨과 그의 행동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즐겁게 할 필요가 더 이상 없다. 하나님께서 그대의 행위를 인정하면 그대는 그대의 음식을 즐겁게 먹어도 좋다. 하나님 자신으로 더불어 가장 기뻐하는 그런 자를 하나님은 제일 반가워하신다. 이러한 자들이야말로 성령 안에서 얻어지는 평화와 기쁨을 만끽하는 자들이다. 둘째, 그런 사람은 인간들의 인정을 받는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만한 사람은 우리의 인정을 받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걸 우리가 기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성화라는 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니고 뭣인가? 인간들의 인정을 무시해서 안 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하는 일이 모두 인간들 보기에 정직하고 좋은 평판이 되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첫째로 바랄 것은 하나님의 인정이다. 왜냐하면 조만간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상을 그의 마음에 들도록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겻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습니다. 표준새번역에서는 오직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은 성령 안에서 누려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개념 설명 ;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많은 설명을 해야 하지만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세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초림과 함께 이 땅에 임한 현재적 의미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하나님의 나라', 셋째는 종말론적 개념인 미래왕국으로, 종말에 사단들을 물리치고 최종적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 에클레시아'는 종말론적 미래 왕국이 아닙니다. 현재 성도의 마음 속에서 진행되는 하나님의 통치, 즉 첫 번째 의미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있는 성도 및 교회'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온 우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 통치에 순응하면서 이 땅에서 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구속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복된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내 마음에 임하면 삶이 바뀌어지고, 가치관이 바뀌어지고,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문제가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은 '무엇을 먹었느냐?, 먹지 않았느냐?'라는 비본질적인 것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은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고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로마교회의 상황 설명 이와 같은 상황은 로마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로마는 시장에서 파는 육류를 먹으면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장에서 팔고 있는 제사 음식을 먹는 사람을 비난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사 음식을 먹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두 그룹이 있었습니다. 서로 갈등하는 상황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음식 규례가 마치 경건의 척도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과 자유롭게 먹는 자유의 사용이 형제의 실족보다 더 우선되어도 좋다는 생각은 모두 옳지 못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먹고 마시는 일은 단지 그리스도인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에 불과합니다. 채식주의자라고 해서 경건하고, 우상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불경건하다는 생각은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는"이라는 말을 통해서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면서, 본질로 문제를 풀자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본질로 문제를 푸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음식으로 발생한 문제를 '하나님 나라'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여 갈등을 해결해 가고 있습니다.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에 대한 설명 하나님께서 중시하시는 것은 음식처럼 비본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만일 오늘날 우리들이 이러한 것들에 얽매인다면 유대인들의 실패한 전철을 따라가는 것이므로 똑같은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본질적인 면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본질적인 것은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이러한 '의와 평강과 희락'은 구원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이 이미 갖추고 있어야 할 덕목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즉, 본문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설명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기 전의 상황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성도, 자신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성도, 오직 성령 안에 하나님의 통치 영역 안에 속한 참된 성도에게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첫째는 ‘의’ 입니다. 의란 칭의, 정의, 법정적인 의도 아니고, 관계적 의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입니까? 주종관계입니다. 왕과 백성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왕이 되시고, 나는 그 분의 백성이 되는 것입다. 왕은 주인이므로 나는 그 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 되고, 나는 그 분의 종이 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왕으로 모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나의 고백을 찬양으로 드려야 합니다.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다윗의 고백을 우리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 마음으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왕상 8:23).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온 마음과 정성을 드려 경배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종은 4가지가 없어야 합니다. 자기 뜻이 없어야 하며, 자기 돈이 없어어야 하며, 자기 자식이 없었고, 자기 목숨이 없어야 합니다. 주인이 원하시는대로 해야 합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평강'입니다. ‘평강, 에이레네’는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 전쟁에 반대 되는 것, 또는 전쟁이 종식된 상태를 의미하였습니다. 즉 헬라인들에게 있어서 평화는 복된 번영을 가져오도록 법과 질서가 잘 유지되는 상태입니다. 히브리어 ‘솰롬'은 전쟁의 종식으로 말미암는 평화라기보다는 나라의 집단적 안녕을 위태롭게 만드는 불안한 요인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솰롬’이 여호와와 갈등이 없는 상태를 말하며, 이것은 그분만이 줄 수 있는 것으로 확신하였습니다. 바울은 ‘에이레네’를 사람들 사이에서 상호 갈등이 없으며 올바른 조화 가운데 있다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H. Beck). 대인관계에서의 평화를 의미합니다. 성도에게는 이웃과 갈등이 없는 올바른 관계, 즉 조화로운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평강은 믿음의 성숙도가 다른 형제간에 자신의 자유를 좀더 제한하고, 또 상대방의 자유로운 행동을 신앙 안에서 이해함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그 마음 속에 평강이 임합니다. 의는 對神關係이며, 평강은 對人關係입니다. 인간관계에서 평강이 깨뜨려지면 그곳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에서."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다. 이처럼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롬 14:19을 보면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을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덕을 세우는 일이 곧 화평의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덕을 세운다는 말은 인간관계에 유익을 끼친다는 의미도 있지만, 건축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을 유익하게 하는 일은 건축하는 일입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생기가 돋아나고, 용기가 북돋워지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이 덕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결국 평강은 상대방을 일으켜 세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힘들어서 넘어진 자를, 고통당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를,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아 마음에 위로가 필요로 하는 자들, 재난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자들을 일으켜 세워주는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것은 건축하는 것이다. 격려하는 것,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평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덕을 깨뜨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롬 14:1-3에서 덕을 깨뜨리는 사람은 업신여기는 사람, 비판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자는 평화를 파괴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판의 종류에는 비평(critic)과 비난(blame)이 있습니다. 비평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평강을 깨뜨리는 일입니다. 우리의 입과 마음에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하나님 나라를 깨뜨리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을 용납하도록 합시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는 사랑을"(in essentials unity, in nonessentials liberty, in all things charity)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를 실천하는 삶이 되도록 합시다. 그렇다면 본질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교리문답의 주된 내용은 우리 신앙의 모범인 사도신경, 생활의 모범인 십계명, 기도의 모범인 주기도문에 담겨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매우 중요하며, 우리 신앙인들의 사도신경을 중심으로 모두 일치해야 합니다. 사도신경의 내용은 분명히 지켜야 하지만, 사도신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나머지는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즉 본질적인 것은 꼭 지켜야 하지만, 비본질적인 것에는 관용해야 합니다. 비본질적인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기록했는데, 고린도교회에도 음식 문제와 관련된 내용이 고전 8: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도 먹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먹지 않는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형제를 다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롬 14:13,15에도 형제를 실족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유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청년에게 "머리는 노랗게 물들이더라도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물들이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이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평강을 가져오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셋째는 '희락'입니다. ‘희락, 카라’는 문자적으로 ‘기쁨’, ‘즐거움’을, 신약에서는 ‘기쁨을 주는 사람이나 사물’, ‘기쁨의 상태, 즐거운 잔치’ 등을(마 25:21 ; 행 13:52) 의미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들에서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슬픔과 고통, 근심 가운데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증거(고후 8:2 ; 살전 1:6)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분히 역설적이기는 하나 성령 안에서 우리가 소유한 기쁨의 능력을 확실하게 증명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경학자 바클레이(W. Barclay)는 기독교적 즐거움에 대해 적절한 정의를 내려주었는데, 그것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있으며, 개인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얼마든지 기쁘게 행사할 수 있지만, 믿음이 약한 형제를 위해 자제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그 형제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덕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 형제가 기뻐하며 믿음 안에서 세워져 가는 것을 보는 것은 자신에게 더욱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희락의 반대말은 쾌락입니다. 희락은 '카라'로서, 영어로는 joy입니다, 희락은 나의 기쁨을 포기하고 다른 형제의 기쁨을 위해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쾌락은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짓밟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십자가의 은혜로 죽이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1절을 보면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이웃을 기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웃의 기쁨을 추구하는 게 희락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기쁨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기쁨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기쁨을 위해서 자기의 기쁨을 포기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희락의 축복을 받아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나의 기쁨보다는 형제자매들의 기쁨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서 살아가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쁨을 추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쁨이라는 단어 "JOY"는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last"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 때 진정한 기쁨, 희락(카라)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우선 순위를 두고 살아야 하는 이유 또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18절). 헬라어로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기 위함입니다. 결 론 죄악의 세상에서 이미 구원 받은 우리가 경험해야 될 하나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즉 비본질적인 문제를 갖고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본질적인 문제를 갖고 의와 평강과 희락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세워가야 할 교회의 모습도 의와 평강과 희락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 의와 평강과 희락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그러한 교회가 지속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간구합시다.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왕과 주인으로 모시고 철저하게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평강은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비판하지 않아야 합니다. 비본질적으로 싸우지 않아야 합니다. 나의 기쁨이 아니라 이웃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면 진정한 희락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죄성을 가진 우리들이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성령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가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 [[조경수 - 행복이란]]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이 생명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하리 이 목숨 다 바쳐서 영원히 사랑하리 이별만은 말아줘요 내 곁에 있어줘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사랑이 중한 것도 이제는 알았어요 당신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이 생명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하리 이 목숨 다 바쳐서 영원히 사랑하리 이별만은 말아줘요 내 곁에 있어줘요 당신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나훈아-사랑.연인]] 이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연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 않은 내사랑아 비내리는 여름날에 네 가슴의 우산이되고 눈 내리는 겨울날에 네 가슴의 불이 되리라 온세상을 다준다해도 바꿀수 없는 내연인아 잠시라도 떨어져선 못 살것 같은 내사랑아 이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연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 않은 내사랑아 행여 당신 외로울땐 내가 당신 친구가 되고 행여 당신 우울할땐 내가 당신 웃음 주리라 이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연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않은 내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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