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역개정]제85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1.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 3.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4.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 5.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시겠나이까 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7.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13.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 NIV]Psalm 85 For the director of music. Of the Sons of Korah. A psalm. 1 You showed favor to your land, O LORD; you restored the fortunes of Jacob. 2. You forgave the iniquity of your people and covered all their sins. Selah 3. You set aside all your wrath and turned from your fierce anger. 4. Restore us again, O God our Savior, and put away your displeasure toward us. 5. Will you be angry with us forever? Will you prolong your anger through all generations? 6. Will you not revive us again, that your people may rejoice in you? 7. Show us your unfailing love, O LORD, and grant us your salvation. 8. I will listen to what God the LORD will say; he promises peace to his people, his saints -- but let them not return to folly. 9. Surely his salvation is near those who fear him, that his glory may dwell in our land. 10. Love and faithfulness meet together; righteousness and peace kiss each other. 11. Faithfulness springs forth from the earth, and righteousness looks down from heaven. 12. The LORD will indeed give what is good, and our land will yield its harvest. 13. Righteousness goes before him and prepares the way for his steps. ------------------ Prayer for God’s Mercy upon the Nation. To the Chief Musician. A Psalm of the sons of Korah.85 1 O Lord, You have [at last] shown favor to Your land [of Canaan]; You have restored [from Babylon] the captives of Jacob (Israel). 2 You have forgiven the wickedness of Your people; You have covered all their sin. Selah. 3 You have withdrawn all Your wrath, You have turned away from Your burning anger. 4 Restore us, O God of our salvation, And cause Your indignation toward us to cease. 5 Will You be angry with us forever? Will You prolong Your anger to all generations? 6 Will You not revive us and bring us to life again, That Your people may rejoice in You? 7 Show us Your lovingkindness, O Lord, And grant us Your salvation. 8 I will hear [with expectant hope] what God the Lord will say, For He will speak peace to His people, to His [a]godly ones— But let them not turn again to folly. 9 Surely His salvation is near to those who [reverently] fear Him [and obey Him with submissive wonder], That glory [the manifest presence of God] may dwell in our land. 10 Steadfast love and truth and faithfulness meet together; Righteousness and peace kiss each other. 11 Truth springs from the earth,And righteousness looks down from heaven. 12 Indeed, the Lord will give what is good, And our land will yield its produce. 13 Righteousness will go before Him And will make His footsteps into a way [in which to walk]. Footnotes Psalm 85:8 I.e. believers, those in right standing with Him. ===========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되돌아온 후에 지어졌다고 말한다. 그때에도 그들은 여전히 어느 정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었다. 이 시편에서는 그 진노의 제거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반대할 만한 아무것도 나타나 있지 않다. 이 시편은 137편처럼 그때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서 시편 저자가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공공의 유익이며, 이 시편은 그 큰 회중을 위해 지어졌다. 교회는 여기서 대홍수를 당하고 있다. 위에는 구름이, 밑에는 파도가 있다. 매사가 어둡고 암담하다. 교회는, 생명과 사망 사이에, 소망과 두려움 사이에 있었던 방주 안의 노아와도 같다. 1.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기도 속에 날려보낸 비둘기가 있다. 그 탄원은 죄와 분노를 대적하는 것이며(4), 긍휼과 은혜를 위한 것이다(7). 그 청원은 이전에 받은 은총(1-3)과 현재의 환난으로 취해진 것이다(5-6). 2. 여기에는 화평과 좋은 소식을 전하는 감람나무 가지를 물고 돌아오는 비둘기가 있다. 시편 저자는 비둘기가 돌아올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8), 그가 예언의 영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고 또 믿음의 영으로써 그 자신에게 확신시켜 주던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은총을 열거하고 있다(9-13). 이 시편을 노래하는 가운데, 우리는 일반적으로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특별히 우리 고국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전자는 우리의 열망을 지도하는 데, 후자는 이 기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격려하는 데 유용하다. ============ 환난 때의 기도(시 85:1-7) 고통과 환난 가운데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준비가 이미 되어 있으므로 말씀의 영과 마음에 작용하는 영을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께 탄원하도록 역사하고 계신다. 매우 천하고 연약한 처지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은 여기에서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아뢰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Ⅰ.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그 위대한 일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인정해야 한다(1-3절). “주께서는 우리와 우리 열조를 위해 이러이러한 것을 행하셨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현재의 고통에 대한 의식이 이전의 긍휼에 대한 기억을 잊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매우 비천하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기억해야 하고, 그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주목해 그에게 찬미를 돌려야 한다. 그들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즐겁게 말하고 있다. 1. 하나님은 친히 그들의 땅에 호의를 갖고 있음을 보이셨고, 그 땅을 자기의 소유지로 여기사 미소하셨다. “주께서 주의 땅에, 그것을 주의 것으로 여겨 특별한 은총으로써, 호의를 베푸셨나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각 사람에게는 물론 민족들에게도 모든 선의 원천이며, 행복의 근원임을 기억하자.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탈취해 소유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었다(44:3).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계속 큰 호의를 베푸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여러 번 멸망했을 것이다. 2. 그는 그들을 원수의 손에서 구출하셨고, 그들에게 자유를 회복시켜 주셨다. 주께서 야곱의 포로 된 자로 돌아오게 하셨고, 쫓겨나서 낯선 땅의 나그네가 되었던 자들, 압제자들의 땅에 갇혔던 자들을 다시 그들의 땅에 정주하게 하셨다.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은 비록 그 포로기간이 오래 계속될지라도, 때가 되면 돌아오게 될 것이다. 3. 그는 그들을 그들의 죄과대로 다루시지 않았다(2절). “주께서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주께서 하실 수도 있었던 공의대로 그들을 벌하지 않고서, 저희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하나님은 죄를 사하실 때는 그 죄를 덮으신다.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것은, “그 당시” 그들에게 베푼 하나님의 은총의 일례였다. 그때 그들의 죄를 사하셨다. 4. 그는 마땅히 그러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그들에 대한 분노를 계속하지 않으셨다(3절).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고 나서 주께서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왜냐하면 죄가 무효로 될 때는 하나님의 분노가 중지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정결케 되면, 하나님의 노는 풀어진다. 죄사함이 무엇인가를 보자. “주께서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즉, “주께서 우리를 불사를 정도로 뜨거운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주께서 주의 모든 분노를 발하지 않으셨나이다. 그리고 중재자가 주 앞에 서서 우리와 하나님간의 간격을 메우셨을 때, 주께서는 분노를 거두셨나이다.” Ⅱ. 그들은 그들의 현재의 환난에 관해 하나님께 은혜와 긍휼을 위해 기도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 “주께서 우리 열조를 위해 훌륭히 행하셨나이다. 이제 우리를 위해 훌륭히 행하소서.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언약의 자손들이기 때문입니다.” 1. 그들은 자기들을 개심시키는 은혜를 간구하고 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우리를 돌이키소서. 우리를 죄악에서 돌이키소서. 우리를 주께로, 우리의 의무에로 돌이키소서. 우리를 돌이키소서. 그러면 우리가 돌아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원하실 모든 사람들을 조만간 돌이키실 것이다. 개심이 없으면, 구원도 없다. 2. 그들은 그들이 겪고 있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표적을 제거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주께서 우리 열조의 날에 그들에게서 주의 분노를 거두셨을 때, 여러 번 노를 그치셨던 것처럼 지금도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그 순서를 주시하자. “먼저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시고 나서,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우리가 하나님께 화해할 때 그때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화해하심에서 오는 위로를 기대할 수 있다. 3.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한 선한 뜻을 표명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7절).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주께서 우리에게 인자하시다는 사실을 보이소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 긍휼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얻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금, 주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셨고, 우리를 위해 긍휼을 예비해 두셨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4.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롭고, 그 자신에게는 영광스럽게 그들의 편으로 나타나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약속대로 구원을 허락하소서. 그리하면 틀림없이 주께서 섭리에 의해 그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다는 것은 그의 구원을 상속받는다는 보장임을 기억하자. 그는 그가 구원을 주시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왜냐하면 구원은 오직 긍휼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Ⅲ. 그들은 그들의 현재의 환난에 관해 하나님께 겸손히 간언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5-6절). 여기에서 다음을 주목하자. 1. 그들이 두려워하고 면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겠나이까? 그러하신다면 우리는 파멸하나이다. 주께서 그러시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주께서 대대에 발분하시겠나이까? 아니, 주는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데에 빠르나이다. 그리고 영원히 다투시지 않을 것이옵니다. 주께서는 우리 열조에게 영원히 노하시지 않고, 곧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겠나이까? 그때처럼 지금도 주의 긍휼과 동정이 풍성하고 강력하지 않으시겠나이까? 영원히 계속되는 세대 속에 주의 분노가 임하는 것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 지옥이겠습니까? 땅 위의 지옥이 주의 백성들의 분깃이 될 것이옵니까?” 2.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주께서 우리를 살리지 아니하시겠나이까(6절). 우리에게 위로를 말씀해 주시어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건지시어 살리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주께서는 이전에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셨고, 그 일은 그것을 살렸습니다. 주께서 다시 은혜를 베푸시어 그것을 다시 살리시지 않겠나이까?” 하나님은 포로 된 자손들에게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성하게” 하셨다(스 9:8). 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것은 “무덤을 열고 나온 생명과 같았다”(겔 37:11-12). 이제 여호와여(그들은 말하고 있다),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다시 손을 펴사” 우리를 모으지 “아니하시겠나이까?”(126:1, 4; 사 11:11)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합 3:2). “우리를 다시 소성케 하소서.” (1) 그리하여 “주의 백성으로 기뻐하게 하소서. 그러면 우리가 그 위로를 얻을 것이옵니다”(14:7). 그들에게 생명을 주어 그들로 기뻐하게 하소서. (2) “그들로 주를 기뻐하게 하소서. 그러면 주께서 그 영광을 얻으실 것이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긍휼의 근원이시라면, 그는 우리의 온갖 기쁨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시 85:8-13) 여기에서는 앞에 나온 기도와 간언에 대한 응답을 볼 수 있다. Ⅰ.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화평의 응답이다. 이것을 시편 저자는 곧 깨닫고 있다(8절). 왜냐하면 그는 하박국 선지자처럼(합 2:1-2), “자기가 파수하는 곳에 서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실지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라.” 이는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하고 있다. 1. 그의 감정, 곧 그의 근심과 걱정,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일어난 그의 마음의 소요가 가라앉음. “내 영혼아, 겸손한 침묵 속에서 너 자신을 안정시켜,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뜻을 받들라. 내가 충분히, 또는 지나치게 많이 말했도다. 이제 내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그의 거룩한 의사를 환영하리라. 내 주께서 그 종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우리가 기도로써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을 그로 하여금 들으시게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말씀으로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을 준비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2. 그의 기대가 일어남. 이제 그는 기도하고 나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매우 크고 매우 친절한 어떤 것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기도하고 나서, 우리의 기도를 살펴보아야 하며, 응답을 기다려야 한다. 이제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1) 그가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그 자신에게 약속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가 그 백성, 그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위해 구별되어서 그에게 복종하고, 그에 의해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 그의 모든 백성들은 그의 은혜로써 성별되고, 그의 영광에 바쳐진 그의 성도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외적으로 싸움이 있고 내적으로 두려움이 있을 때, 때로 화평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만간 하나님은 그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다. 그가 외부적인 화평을 명하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부적인 화평을 암시해 주시면서, 그의 말씀과 사역자들에 의해 그들의 귀에 이야기하셨던 것을 그의 성령에 의해 그들의 마음에 말씀하실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기쁨과 즐거움을 듣게 만드실 것이다. (2) 그는 이 기대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① 그는 그 위로를 취하고 있다. 또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이다.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가 주신 화평에 대한 단언을 들으리이다.” 하나님께서 화평을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 귀를 막아서는 안 되며, 모든 겸손과 감사함으로써 그것을 받아야 한다. ② 그는 성도들에게 이것이 요구하는 의무를 행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저희는 다시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왜냐하면, 화평이 기대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관계 위에서이지 다른 것 위에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죄에서 돌아선 자들, 그러한 자들에게만 화평이 선포된다. 모든 죄는 망령된 것이다. 뒷걸음질하는 것은 특히 그러하다. 우리가 죄에서 돌아선 것처럼 보인 후에 다시 죄로 돌아서는 것, 하나님께서 화평을 말씀하신 후에도 다시 죄로 돌아서는 것은 지독히 망령된 일이다. 하나님은 화평을 위하시나, 그가 말씀하실 때는 전쟁을 위함이 된다. Ⅱ. 여기에, 이 화평의 응답에 대한 세부적인 것들이 나와 있다. 그는 모든 것이 잠시 후에 잘 되리라는 것만큼은 의심하지 않고 있으므로, 우리에게 이 시편의 마지막 다섯 구절 속에서 교회의 번영하는 상태에 대한 유쾌한 전망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 다섯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포로 된 자손들이 큰 고생과 소요를 겪은 후 결국 그들의 땅에 정착했을 때, 그들을 마침내 복되게 한 그 화평과 번영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롭게 행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약속, 즉 그들이 편하고 행복하리라는 약속으로서, 그리고 메시야 나라에 대한 예언과 그 나라를 풍요케 할 축복으로서 간주될 수 있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가까이에 있는 도움(9절). “진실로 구원이 가까우리니, 우리에게 가까우리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우리라.” 하나님의 때가 올 제는, 우리의 역경과 환난이 아무리 클지라도, 곧 이루어지며, 그때는 멀지 “않으리이다.” 벽돌을 구워야 하는 노역이 가중될 때, 그때 모세가 온다. 그것은 그를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가깝다. 환난이 가까울 때, 구원도 가깝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것인 모든 사람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 신속한 도움이 되시기 때문이다. 반면에, “구원이 악인에게서는 멀어진다”(119:155). 이것은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인 그리스도께 적용될 수 있다. 비록 그들이 바라던 그 구속을 예루살렘에서는 볼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가까우며 환영받을 것이라는 확신은, 구약의 성도들도 지니고 있던 위로였다. 2. 안전케 된 영예.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견고히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에 그 영광이 우리 땅에 거리하이다. 왜냐하면 그 영광은 땅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없어질 때, 그 영광이 떠났나이다. 그리고 그것이 있을 때, 영광이 거하나이다.” 이것은 메시아를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 메시야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 될 자로서, 와서 그들 가운데 거하셨던 것이다(요 1:4).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들의 땅은 “임마누엘의 땅”이라 불리고 있다(사 8:8). 3. 은혜의 만남과 행복한 포옹(10-11절).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도다.” (1) 이는 모든 은혜가 뚜렷하고 당당하게 나타나는 그러한 통치 속에서 백성과 정부가 개혁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모두 자비하고 진실할 것이며, 의롭고 화평할 것이다. 진실이나 인애가 없을 때 모든 것은 파멸로 향한다(호 4:1; 사 59:14-15).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모든 일들에 대한 처리 속에서 만날 때, 이러한 것들이 목적을 줄 때, 이러한 진리가 풍성히 있어 땅의 풀처럼 솟아나오고, 이러한 의가 풍성히 있어 하늘에서 비같이 쏟아져내릴 때, 그때 모든 것들이 잘 된다. 각 회중에서 긍휼과 진리가 만나고, 각 포옹에서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며, 보편적인 정직이 진정 보편적인 것이 될 때─부정직의 지배가 어느 백성에게나 치욕이 되듯─ 그 땅에 영광이 거한다. (2) 이는 땅에 하나님의 은총이 되돌아오고, 지속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와, 의무의 길에서 그를 신봉할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긍휼을 다시 베푸실 것이며, 긍휼의 길에 그들과 함께 머무르실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이것을 사람의 진실과 하나님의 긍휼이, 또 사람의 의와 하나님의 화평이 서로 만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에게 서로에게 진실함을 발견하신다면, 우리는 그가 자비로우심을 발견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의를 자각한다면, 우리는 화평의 위로를 얻을 것이다. “진리가 땅에서 솟아난다면,” 즉 하몬드 박사의 해석처럼, 진리가 자라기에 적당한 토양인 사람들의 마음에서 솟아난다면”, 의는(즉 하나님의 긍휼은) 해가 땅의 산물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들을 소중히 여길 때 이 세상을 하감하는 것처럼, 하늘에서 하감할 것이다. (3) 이는 메시야의 사업 속에 있는 하나님의 속성의 조화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의 구원이시며, 영광이신 주 안에서,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난다.” 하나님의 긍휼과 진리, 그리고 “그의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춘다.” 즉, 우리 구원에 대한 큰 일이 매우 잘 계획되어 있고, 매우 잘 협조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은 주의 진리와 의를 그르치심 없이, 불쌍한 죄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실 수 있으며, 그들과 화평하실 수 있다. 그는 그 경고를 지키시며, 그의 통치에 공정하시지만, 죄인들을 용서하시며, 그들로 하여금 그 자신과의 언약에 들어오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 죄가 이간시켜 놓은 하늘과 땅을 서로 만나게 하셨다. 그로 인해 “진리”, 곧 하나님께서 “마음에 원하시는” 그 진리가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예수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기 때문이다. 또는 그것은 메시야 나라에서 이 은혜들은 크게 번창할 것이며, 우주적인 지배권을 가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4. 바라는 모든 것이 매우 풍부함(12절). “여호와께서 좋은 것”, 곧 그가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여기시는 모든 것을 “주시리라.”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긍휼과 진리와 의가 사람의 마음과 생명에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할 때, 모든 좋은 것이 기대될 수 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이 더해질 것이다”(마 6:33). 복음의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는 그때에, 이 모든 것의 증대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영혼의 번영은 그와 함께 외적인 번영을 초래하거나 그 결핍을 감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67:6 참조). 5. 선한 길로 확실히 인도함(13절). 그가 우리에게 행복을 확신시켜 주시면서 하신 그의 약속의 “의와 성별의 의, 곧 그가 우리 안에 역사하신 그 선한 사업”, 이러한 것들은 주의 앞에 행하며 주의 길을 예비하면서, 주의 은총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일으키고, 우리에게 그에 대한 자격을 부여하신다. 이러한 것들은 또한 우리 앞서 행하며, 그가 긍휼의 길로 우리를 향해 오실 때, 우리가 그를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안내자로서, 우리로 하여금 “주의 종적으로 길을 삼게” 한다. 즉, 우리의 소망을 격려하며, 우리의 행실을 안내할 것이다. 그리스도, 의의 태양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리고 가시며, 그에게 이르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세례 요한, 의의 선포자는 그리스도 앞에 행해 그의 길을 예비한다. 의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를 따르는 일에서 틀림없는 안내자가 되어준다. =========
마음에가득한의심을깨치고257.샘물과같은보혈은258....하늘에나는새도 *십자가에 달리신 JC를 믿는 믿음안에서 그분과 연합한 바 내적죽음과 부활을 믿음안에서 경험한 성도들의 속사람의 회복 온전케 되기를 갈망함, 이는 HS과의 완전한 연합과 상호내재함으로 가능케 됨----Q께서 보내주신 바 JC를 믿고 HS따라 Q말씀안에 거하며 그의 임재안에 살 때 JC빼어닮아가며 맺어지는, HS의열매 사랑-희락-화평-인내-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들을 묵상함....그 안에 거하는 이들마다 수평적으로는 성도간에 진리말씀따라 서로 사랑안에 진실을 말함의 인애(인자)함으로 대접하여 이루며, 수직적으로는 Q으로부터 자신을 부어주심의 은혜따라 JC 곧 우리의 의와 화평이 부어주시는 바 십자가언약이 온전케 됨.....이 과정이 바로 다루심+파송의 인생길 *거룩하신 Q의 선하심[토브] = 객관적 은총 + 주관적 구원의 은혜 -->Q경외함(이르와...야레[경외하다]...Q말씀으로/HS따라 살아감)으로 살 때 경건을(하시드, 하사드) 이룸...Q의 인자하심이 삶속에 그대로 살아나고 드러남(=헤세드) =========== ==하나님을 경외함== [어떤 얘기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이에 관련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언급한 성경말씀들을 먼저 나열하고자 한다. 주의 깊게 읽어보자.] 시편 34: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시편 34: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시편 112:1-2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시편 25: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시편 25: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시편 31: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시편 33:18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시편 85: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시편 103: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시편 103: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시편 103:17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 시편 115:13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시편 128:1-4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시편 145:19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잠언 10: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 잠언 14: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잠언 14: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잠언 15: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언 16:6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잠언 19:2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 잠언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언 23:17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전도서 8:12-13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전도서 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 [위의 성경 말씀을 통해 드러나듯이 우리가 지금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읽은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의 주체로 언급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도대체 어떠한 의미인가? 하나님의 인상때문에 두려워하고 공포에 떨어야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약시대의 우리에게는 더 이상 논의할 주제가 아닌가? 게다가 요한1서는 사랑안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구약시대에만 적용되는 개념인 것인가? 이 글은 이와 같은 질문에 답을 제공하기 위해서 쓰여졌다.] >>1. 하나님을 경외함: 단순한 존경심도 아니지만 공포 또한 아니다 자신들의 배경에 따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을 이해하는 방법이 각자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일종의 공포로 받아들이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이를 단순한 존중감 또는 존경심 정도로 받아들인다. 동료들을 향한 존중감과 같은 수준으로 말이다. 또는 은혜의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나는 이 중 아무것도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등한 사이에 존재할 수 잇는 존중감은 높으신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과는 다르다. 왕국에서 피지배자가 동년배를 존중하는 같은 수준으로 자신의 왕을 존경하는 일은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그 분의 보좌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작은 피조물이다. 특히 왕중의 왕이신 하나님께는 그분께 합당하게 깊은 존경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우리의 왕이신 높으신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마땅한 경외함을 무효화하지 않았으며, 또한 동료들사이에 존재하는 단순한 존중감으로 비하하지 않았다. 반면에, 물론 왕의 아들은 낯선 사람이 왕에게 접근하는 방식으로 왕을 접근하지는 않을 것이다. 왕이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들은 공포가 아닌, 대담함과 자신감을 가지고 왕에게 다가갈 것이다. 그와 동시에, 높으신 왕중의 왕께 다가갈 때 왕의 아들은 자신의 친구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아닌 깊은 존경심과 경외함을 가지고 아버지께 다가갈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왕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된다. 대신 아이를 사랑하는 아버지이자 동시에 모든 만물을 창조한 높으신 분을 대하는 깊고 진실된 존경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제 경외함의 의미를 분명히 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위엄을 보여주는, 하나님을 경외함에 관련된 성경 말씀을 몇 가지 읽어 보도록 하자. 밑의 구절들은 하나님을 향한 공포심, 두려움을 유발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함은 그 분을 두려워해야 함을 뜻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공간을 채워주고 계신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하나님을 아버지로(두려움 없이, 대담하게), 또한 가장 높으신 분(깊은 존경심을 가지고)으로 여기며 바로 그렇게, 합당하게 그 분 앞으로 다가감을 뜻한다. ------------- 예레미야 10:6-7 여호와여 주와 같은 이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크시니이다 이방 사람들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하지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 이는 주께 당연한 일이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들의 지혜로운 자들 가운데 주와 같은 이가 없음이니이다 요한계시록 15:4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예레미야 5:22-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시편 33:6-9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다. 보이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 모두를 직접 창조하신 분이시다. 우리의 아버지시자 주님이시며, 가장 높으신 분이시다. 그 분을 향한 경외함과 깊은 존경심이 없다면, 성경에 대한 지식은 오만을 불러오게 된다 (고린도전서 8:1) 잠언을 보도록 하자.] 잠언 2:1-5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했을 경우에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경외함 없이는, 성경에 대한 지식은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으며 오히려 오만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2. 신약이 말하는 하나님을 경외함 그리고 대담함 [나는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에 대한 필요성이 무효되었다는 시각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을 언급하고 있는 몇 가지의 신약 성경 구절이다.] 사도행전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베드로전서 2: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고린도후서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골로새서 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한 자로써 이방인으로는 처음으로 자신의 집에서 복음이 선포되는 영광을 안았다. 사도행전 10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사도행전 10:1-2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또한 베드로는 사도행전 10장 34-35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도행전 10:33-35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이와 같이 신약 성서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은 존재한다. 하지만,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하여 신약에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너무나 다른 종류의 관계가 존재하게 된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을 이해하려 할 때, 이 새로운 종류의 관계 또한 고려해야 하겠다. 앞에서 언급된 예로 돌아가자면, 왕국안에서 평범한 백성과 왕의 자녀들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평범한 백성들과 왕의 자녀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왕에게 접근한다. 왕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단순한 종이자 숭배자인 평민들은 아마도 왕을 향한 공포심을 느끼며 그에게 다가갈 것이다. 하지만 왕의 자녀들은 두려움 없이, 대담하게 그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히브리서 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은혜의 보좌 앞으로 우리는 담대히 나아간다. 우리 자신 덕이 아닌 예수님의 덕으로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공간을 채워주시어,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요한1서 4장 17-19절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사랑과 두려움은 같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단순한 존중감으로 우리와 동등한 존재를 대하는 방식으로 높으신 하나님을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향한 공포감 또한 올바르지 않다. 사랑 안에는 공포와 두려움이 없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하나님을 아버지로(두려움 없이, 대담하게), 또한 가장 높으신 분(깊은 존경심을 가지고)으로 여기며 그 분 앞으로 다가감을 뜻한다.] >>3.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 그 분의 뜻을 따르는 것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가 어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어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곧 그 분의 뜻을 따름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며, 그 분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 그 분의 뜻을 향한 존경심, 그리고 주님을 향한 순종은 서로 떼어낼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어린이들을 생각해보라. 이런 아이들이 그들의 아버지를 존중하고 존경한다고 할 수 있는가? 가지고 싶은 것들을 얻기 위해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 있겠지만, 그들이 진정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아버지의 뜻을 가슴에 간직하고 실천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크리스찬들이 이러한 어린이들과 비슷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무언가가 간절히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고, 그렇지 않을 때는 세상에 묻어가는 크리스찬들 말이다. 이러한 행동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쌓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분의 의를 구할 때 비로소 모든 것이 우리에게 더해질 것이다 (마태복음 6:33). 빌립보서 2장 5-11절 말씀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빌립보서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어떠한 마음을 말하는가? 죽음의 순간 앞에서도 잃지 않은 순종의 마음이다. “내 원대로가 아닌 아버지의 원대로 되길 원하는” 마음을 뜻한다 (누가복음 22:42).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다면 진정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대한 논리와도 같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4:23-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정리하자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순종을 뜻한다. 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과 그 분의 뜻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높이 사는 것이다.] 4. 결론 이 글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가져다주는 축복을 논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정말이지 성경에서 이토록 많은 축복을 함축하고 있는 주제도 드물다. 장수, 번창, 구원 등 수많은 축복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것이 된다. 그다음에 이 글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동등한 인격체 사이에나 존재하는 단순한 존중감도 아니고 또한 공포심이나 두려움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했다. 반대로 경외함이란 아버지시자 하나님이시고, 주님이시자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신 그 분이 받아 마땅하신 깊은 존경심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경외함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이며, 그렇지 아니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따라 육체적인 욕망을 쫓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 함께 전도서의 교훈을 깊이 새기도록 하면서 이 글을 마감한다. 전도서 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타소스 키울라초글루 ==== === 시편 85편 - 진실함(에메트) (시 85:1-13) :::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니“(시 85:10) ‘인애(헤세드)‘와 ‘진리(에메트)‘는 본래부터 같이 다니기에(창32:11; 출34:6;사40:10; 57:10; 시89:14) 새삼스레 다시 만나야 할 것이 아니고, ‘의(체데크)‘와 ‘화평(샬롬)‘도 서로가 낯설지 않아(사32:17) 살렘왕 멜기세덱은 ‘평화의 왕‘인 동시에 ‘의의 왕‘이기도 한데, 이미 만나 입맞추었다는 인애와 진리, 의와 화평은 그러나 시인이 사는 땅에서는 쉽게 마주칠 수 없어 보인다(4~7). 시편 85편은 톰 라이트가 소위 ‘제2성전 유대교‘의 현실인식이라 서술했던 내용의 요약과도 같이 포로에서 돌아왔으나(1) 선지자들의 기대 속에 그려지던 영광의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아(4,9) 여전히 구원을 기다려야 하는(9) 상황 가운데 놓인 자들이 부르는 노래다. 하나님은 당신 백성의 죄악을 용서하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다(2). 그의 모든 분노를 모아 치워 버리셨다(3). 왜냐하면 그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헤세드‘)와 진실(‘에메트‘)이 많은 하나님‘이셔서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출 34:6). 그러나 포로에서 돌아온 현실은 영광과 화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에게 분노하시는 듯이 보인다(5).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 나무 열매 그치고 외양간 송아지가 없어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다‘던 하박국 선지자의 각오가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에게도 여전히 요구되는 매일을 살면서, 그러나 시인은 다시 한번 선지자들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마음을 집중하며 말을 한다. -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평화‘를 말해 주실 것이다(8; 렘29:11). 진실로 그의 구원이 가깝고, 영광이 이 땅에 거하게 될 것이다(9; 사46:13).‘ 그렇게 시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자(하시딤)의 자리에 선다(8). 대개 ‘경건한 자‘로 번역되는 ‘하시딤‘은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인 ‘헤세드‘가 빚어낸 자들이다. 의가 평화를 빚듯,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이 하나님께 믿음을 두는 자들 가운데 ‘진실함(에메트)‘을 빚는다. 땅에서 ‘진실함(에메트)‘이 싹을 틔우는 것은, 하늘에서 의가 비처럼 내리기 때문이다(11). 땅이 그 소산을 내는 것은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이다(12).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 시편 85편 (사역) -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1 여호와여, 당신께서 당신의 땅을 기뻐하셨고, 당신께서 야곱의 포로 된 자를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2 당신께서 당신 백성의 죄악을 용서하셨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습니다. 셀라 3 당신께서 당신의 모든 분노를 모아다 치워버리셨고, 당신의 진노를 돌이키셨습니다. 4 회복시켜주소서, 우리를,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끝내소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진노를! 5 영원히 우리에게 분노하시렵니까? 당신의 노여움을 대대로 품고 계시렵니까? 6 당신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어 당신의 백성이 당신을 기뻐하게 하지 않으시렵니까? 7 우리로 보게 하소서, 여호와여, 당신의 한결같은 사랑(‘헤세드‘)을! 주소서, 당신의 구원을, 우리에게! 8 내가 들으리라, 하나님, 여호와 그가 하시는 말씀을. 참으로 그가 말씀하시리라, 평화(‘샬롬‘)를, 자기 백성에게, 그의 한결 같은 사랑을 의지하는 자들(‘하시딤‘)에게 9 참으로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그의 구원이 가까이 있도다.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라. 10 한결같은 사랑('헤세드')과 진실함('에메트')이 만났고, 의('에메트')와 평화('샬롬')가 입맞추었다. 11 진실함이 땅에서 싹을 틔우고, 의가 하늘에서 내려다 본다. 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실 것이며, 우리 땅이 자기의 소산을(열매를LXX) 낼 것이다. 13 의가 그분 앞서 걸어갈 것이며, 그는 의의 발걸음을 (자기) 길로 삼을 것이다. *. 히브리어 '에메트'는 구약에 127회 사용되었는데, 칠십인역은 그 대부분을 '알레테이아(참됨,진실함)' 군으로 옮기는 중에도 7번을 '피스티스(신실함)'로 옮기고 있다. 에메트는 '진실'이라는 우리 말이 그러하듯 '참됨'과 '신실함'이라는 의미를 함께 아우른다. 맹세를 할 때조차 ‘진실(에메트)‘과 ‘의‘가 없는 사람에게(사48:1) 도대체 ‘참됨‘과 ‘신실함‘을 기대할 수 있을까? 참되고 진실한 분은 하나님이고, 참되고 진실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이며, 그의 계명이다(시119:142,151). 그럼에도 에메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의 모습을 표현하거나(삼상12:24), 하나님에 대해 신실한 자들의 삶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왕하 20:3). 이때 에메트는 ‘하나님의 진실함(에메트)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의미하는 ‘에무나(신실함, 믿음)‘와 언어적, 의미적 연관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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